후기로마 체육
1) 후기로마시대의 특징
- 로마는 고대 세계의 지배자로 등장하면서 광범위한 제국, 막대한 부와 명성을 획득하였으며, 그리스 및 동방문화와 접촉함으로써 로마의 지적인 지식을 확대 - 약탈한 서적들, 귀중한 미술품들, 박학한 노예들, 깊은 지식을 가진 철학자들, 그리고 의료인들은 로마로 하여금 그리스의 철학, 건축, 과학, 문학과 종교에 정통하게 해줌
- 공화국을 지탱해 온 튼튼한 농민계급의 군인들은 기원전 146년 코린트의 멸망 이후 경제적, 정치적 권한이 감소
- 소지주들은 토지를 잃고 대지주들은 농장을 확대시키고 농노들을 획득 - 로마가 영토를 확장하고 식민지를 확보하면서 노예들이 로마로 유입됨
1. 후기 로마시대의 체육
- 민중의 지지를 받던 군부지도자들이 권력투쟁을 벌여 정권을 잡고 황제가 등장 - 90년 동안 80명 이상의 황제들이 등장
- 야만인들의 침입이 날로 격화되고 용병을 통해 로마를 지키려 했으나 게르만의 용병대장 오토아케르에 의해 로마의 마지막 황제가 폐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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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육의 목적
- 군대는 용병으로 조직되고 개인적인 명성과 재산을 얻는 방법도 신체 단련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신체적 가치와 도덕적인 가치에 대한 로마인들 의 관심은 감소
- 지능을 개발시키자는 그리스의 이상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체의 조화로운 발달, 아름다움의 표현 등과 같은 목표는 배격
- 지적훈련만을 강조
- 로마후기에 발생한 기독교 사상은
수세기 동안 이러한 전통을 완전히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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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포츠의 목표
- 후기 로마 시대에 와서 사람들은 군인과 직업 경기자들에게만 스포츠가 중요 하다고 생각함
- 스포츠를 통한 군사적, 심미적, 도덕적, 종교적 동기는 인기가 없었음 - 건강유지와 오락을 위한 최소한의 운동만을 실시
- 병역의 복무에 신체적 탁월성이 필요하지 않으면서 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쇠퇴되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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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포츠의 목표
- 격렬한 스포츠보다는 보건체조(health gymnastics)가 장려되기 시작 - 아동에게 시키는 스포츠의 가치는 인정
- ‘휴식은 모든 이에게 허용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노동을 견디어낼 수 있는 것 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소년들은 기분전환이 되고 활력을 되찾을 때 그들의 학업에 더욱 몰두할 수 있다. 나는 소년들의 놀이를 불쾌하게 여긴 적이 없다.
그것은 활기의 징표이다’퀸틸리아누스(로마의 철학자)
- 키케로는 그리스 스포츠에 대하여 비판적이었으나 사내다운 스포츠의 제한적 실습은 수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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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포츠의 목표
- 스포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보다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경기와 축제를 장려
- 자극을 좋아하는 군중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화려한 경기회를 개최 - 후에 귀족들은 검투사의 훈련소를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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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투사의 훈련장면
2) 스포츠의 목표
- 신체운동에 대한 관심이 저조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대철학자이자 의사인 갈레 노스는 운동과 식이요법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하여 상당한 정력을 쏟음 - 갈레노스는 스포츠는 사람으로 하여금 조화롭고 균형잡힌 신체에서 넘치는
건강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
- 또한 시민으로서, 그리고 군인으로서의 임무를 감당하기 위하여 적합한 신체 와 기민성을 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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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레노스
3) 스포츠의 진흥
- 로마인들은 그리스 교육에 대하여 처음에는 비판적이었으나 서서히 새로운 문 화교육을 받아들였고 이를 모델로 삼아 하나의 교육체계를 확립
- 초등교육 수준인 초등교사의 학교, 중등 수준인 문법교사의 학교, 그리고 고등 수준인 변론가의 학교로 구성
- 로마의 여성들은 아테네 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고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졌 으나 그들의 교육은 주로 가정에서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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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포츠의 진흥
- 학교는 학구적인 성격을 지녔고 스포츠는 지도하지 않음
- 학교와 좀 떨어진 곳에 원형 경기장, 축제장소, 검투사 경기장, 욕실 등과 같은 직업경기자와 오락을 위한 시설들이 있었음
- 군대는 하나의 교육제도로 남아있었으나 소지주들의 몰락으로 모든 계층으로 대상을 확대
- 많은 시민들이 병역을 기피함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과 외국인 용병으로 구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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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포츠의 진흥
- 로마후기에는 축제일이 약 175일이나 됨
-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경기회를 개최하고 재정지출이 커지게 됨 - 대형원형경기장과 플라미누스 경기장 등 대규모 경기장이 건설 - 전차경주의 활성화
- 로마전기에는 누구나 참가하였으나 이후 노예들로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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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포츠의 진흥 - 콜로세움의 등장
- 콜로세움에는 9만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고 지하에는 검투사의 거실, 동물 의 우리, 수상경기를 위한 수도관과 배수관들이 있었음
- 검투사들은 대개 노예들, 죄수들, 또는 포로들이었으나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자유민들도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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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훈련소에서 직업 경기자 교육을 받고 일부는 제정시대에 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기도 함
- 로마에 최소한 4개의 검투사 학교가 있었음
이탈리아 로마의 콜레세움
3) 스포츠의 진흥
- 고린토 멸망 이후 그리스의 올림픽 경기는 거의 완전히 지역행사로 전락
- 술라는 기원전 80년 모든 축제를 로마로 이전시킴으로써 올림픽 경기의 존엄 성 침해
- 그러나 이후 현명하지 못했던 처사임을 깨닫고 그리스로 복귀시킴 - 후기 로마황제들은 그리스의 경기회를 부흥시킴
- 아우구스투스는 운동경기에 대하여 순수하게 관심을 가짐 - 네로는 그의 자아를 추켜세우는데 사용
- 음악경기와 전차경기에 직접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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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포츠의 진흥
- 테르매라 불린 대욕장은 그리스의 짐나지움 및 팔레스트라에 부설된 목욕탕과 비슷한 시설
- 로마전기에는 간단한 목욕시설을 부엌부근에 설치했으나 후기 공화정과 제정 시대에는 그리스 양식의 공중목욕탕 건설
- 처음에는 발네애라 불리는 일반적인 목욕시설에서 대규모의 값비싼 레크리에이 션 센터로 발전한 ‘테르매’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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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목욕탕
유물
3) 스포츠의 진흥
- 대부분의 테르매에는 조그마한 팔레스트라와 노천풀장, 그리고 스패리스테리움 이라는 여러가지 공놀이를 하는 방이 있었음
- 웅토리움이라는 도유실 - 칼라디움이나는 증기실 - 프리지다리움이라는 냉탕
로마의 목욕탕 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