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관복 담홍포 담론 연구 (제1보)
박 현 정†
전주대학교패션산업전공
A Study on Arguments over the Light Pink Color of Official Uniforms in the Joseon Dynasty (Part I)
Hyun-Jung Park†
Dept. of Fashion Business, Jeonju University
접수일(2011년 7월 4일), 수정일(2011년 8월 8일), 게재확정일(2011년 8월 23일) Abstract
This study investigates when and why the light pink Dan-ryoung appeared as part of the official uniform of the Joseon Dynasty and which official uniform used the light pink color.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books written by scholars, and related laws were used as research materials. The following results were obtained by analyzing the arguments of kings and officials on light pink uniforms and laws related to official uniforms. 1. Red was the color of the king as well as the color of Dang-sang-gwan's Gong-bok (one of the official uniforms). 2. The colors such as To-hong, Dam-hong, Do-hong, Bun-hong, Cheon-hong that appeared in Sang-bok (among official uniforms) were relatively lighter than red. 3. To-hong started to be used in Sang-bok at the time of King Se-jong and was used at the time of King Seong-jong in Sang-bok because it was the preferred color. 4. In the Joseon Dynasty, safflower (the basis of red color dye) was cultivated extensively; in addition, people liked red dyeing because it was relatively easy apply; subsequently, a ban on red dyeing was continually issued. 5. Kings Se-jong and Jung-jong ordered officials to use Do-hong and Bun-hong to distinguish the red color of the king. After Im-jin-oe-ran, Cheon-hong was officially designated the color of Sang-bok. 6. The reasons why Dam-hong was used in official uniforms were twofold: the preference for red-like colors and the influence of the Confucian hierarchy to distinguish the king.
Key words: Argument, Light pink color, Official uniforms, Joseon dynasty; 담론, 담홍색, 관복, 조선
I. 서 론
영국런던(London)에소재한 University of London의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방문 학자로머물당시필자는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의한국관(Korean Foundation Gallery)에소장되어있
는조선시대채제공초상화의복식에관한논문을미 술사분야학술잡지『Orientations』에발표할기회를얻 었다. 채제공은정조때영의정을지낸인물로이초상
화는어진화사이명기에의해그려진그의여러개초
상화중하나이다. 이그림의경우 1789년에그려진
70세상으로정조의명으로원본이제작될때채제공 이한본더그리게하여후손에게보존하도록한것이 었다(Fig. 1). 논문은『(Ad)Dressing Joseon Portraiture:
The British Museum's Portrait of Chae Je-gong』이란제 목으로『Orientations』 2010년 November/December호에게 재되었다. 당시의논문은해외독자를대상으로하기 에한국의조선시대양반들의기본복식구조와관복 의종류및해외학자들이궁금해하는채제공의담 홍포에대해소개하였다. 그후필자는담홍포에대한
†Corresponding author E-mail: [email protected]
보다상세한논의의필요성을느껴담홍색관복의정 착과정을살펴보았다.
조선왕조는방대한왕실문서를남겨수백년이지 난오늘날에도우리후손들로하여금당시의생활상 을규명할수있게한다. 특히왕실복식에대해서는 자료보존도가높고접근이용이하고또다수의시대 극제작으로인해일반인의관심도높다는이유로이 미많은연구가이루어졌으며법전, 예서등의명문 화된제도고찰을통해일목요연하게정리된관복제 도는조선왕실의신분별, 품급별로체계화된의생활
의면모를짐작하게한다.
하지만많은 연구성과의축적에도 불구하고 여전 히남아있는의문점들은제도사중심으로전개된관 복제도연구의한계와문제점에서비롯된것으로생 각된다. 관복제도에관한연구의진전을위해서는제
도화과정속에있었던담론들에접근함으로써당대 상황에보다가까이다가갈필요가있다. 이는자료 활용과방법론전환의한시도라고할수있다.
지금까지의 복식사 연구에서담홍색이 상복 혹은 시복의색으로서착용되었던사실을밝혀주었다면본 연구에서는관복담홍포에관한담론분석을통해관
복담홍포는언제등장하였으며왜입게되었는가에 대해설명해보고자한다. 즉관복에서의담홍색출 연및상용의계기와근거를파악하는데연구목적이 있다.
II. 선행연구 및 연구방법
본연구의핵심주제어는담홍색이지만논의의시 작은홍색에서부터시작된다. 그이유는관복제도에 서처음에홍색으로 제정되었다가 담홍색으로변화 되는과정이있었기때문이며이는동일염료를통해 다양한농도의홍색을얻을수있는전통적염색방법 과도연관된다. ‘홍’은복식과직물의붉은색을표현
하는대표적색명으로서다른낱말과결합하여만들 어지는붉은색계통의복합색명에가장많이사용되
기도한다(Nam et al., 2005). 조선시대 관복색에는
비교적옅은붉은색을뜻하는복합색명으로담홍색,
도홍색, 분홍색, 토홍색, 천홍색등이등장한다. 본연 구에서는홍색은임금의곤룡포대홍색에견줄만한진 한붉은색명으로사용하고, 그외의색은각원문에 나타난색명을표기하되홍색보다옅은색을대표하는 색명으로는영조22년『속대전』에규정된당상관의관 복담홍포규정에따라 ‘담홍색’을사용하기로한다.
연구대상은조선시대관복중단령을착용하는관 복인공복, 상복, 시복으로 1품에서 9품까지의관리 들이의례복또는 업무복으로착용한관복 단령 중 홍포와담홍포관련자료를총망라하여분석하였다.
연구방법은문헌연구로서당시관복색에관한담론 들을구체적으로알수있는『조선왕조실록』과개인문 집, 그리고관복제도가기록된『경국대전』,『속대전』,
『대전통편』,『증보문헌비고』를문헌자료로사용하였
다. 즉법전에나타난관복제도뿐만 아니라홍색및
담홍색에관해조정에서이루어진분분한담론과사 후평론을통해담홍포출현및상용의계기와근거를 분석하였다.
홍색및담홍색단령은공복, 상복, 시복세가지관 복영역에서나타나며단령색에대한선행연구는관 복각론또는궁중행사도복식연구에서주로다루어
져왔다. Moon(2004)와 E. J. Lee(2005)는광해군때
담홍색단령이상복이었다가 시복으로 명칭이전환 된것을포함하여 17세기까지상복과시복의색상변 천과정을체계적으로 정리하였으나 공복은함께 다 루지않았다. 또한연구자에따라조선초기상복단
Fig. 1. Portrait of Chae Je-gong (British Museum).
령색에대해『경국대전』의공복색규정이상복에도 적용된다고 보는 시각(Cho, 1986; Choi, 1981; Jeon,
1972; C. K. Lee, 2005; Yu, 1975)과조선초기상복은
색규정이없었다고보는시각(Cho, 2000; E. J. Lee,
2005; Moon, 2004)으로구분된다.
본연구에서는『경국대전』의 상복단령이공복색규 정을따른다고보고공복의홍색규정부터고찰하였 다. 홍색은태조때처음공복색으로정해져성종때
『경국대전』에서공복의최상위색으로규정되었다.
상복의색은초기에규정이없었지만『경국대전』에공 복과함께색구분체계가마련되었다. 그러나공복에 비해엄격하지않았던상복단령의색은때로는소색 과혼동될만큼색이연하기도하고때로는색이진하 여금지되기도하였는데성종때는토홍색을선호하 는현상이나타났고어느순간담홍색이보편화되었
다. 한편 E. J. Lee(2005)는조선초기에는상복과시
복의용도와명칭이구분없이사용되었다가세종28년
의례용흑단령이기타색의집무용단령과구분되고,
중종때부터용도와명칭이분화된다고보았다. 본연 구에서는기본적으로는이흐름을따르되선조34년천 홍색관복시행에관한논의중좌의정김명원의 “관복 의제도는법전에실려있다. 시복·상복이각기용도 가있는데”란언급을근거로『경국대전』의흑의를시 복으로구분하고시복이라는명칭을조선초기흑색 단령부터소급적용하여사용하기로한다.
임진왜란이후융복에서관복으로복귀할때흑단 령관복을먼저시행한후천홍색관복을시행하였다.
이때까지 담홍색의홍단령을상복, 흑단령을시복이 라고불러왔으나광해군때이르러반대로홍단령을 시복, 흑단령을상복으로부르게된다. 영조때『속대
전』에시복의신분을구분하기위해당상관담홍포와 당하관홍포규정이만들어지고다시영조33년에당
하관의홍포가청록포로바뀌어정조때『대전통편』에 시복 규정이담홍포와 청록포로 변경되며 담홍포는 당상관의시복색으로제도화되었다.
본편에서는홍색이공복의색으로규정되는것부 터 임진왜란직후 상복으로 담홍색이 제정되기까지 살펴보고, 다음편에서홍단령이시복, 흑단령이상복 으로바뀌는것과영조·정조때시복의색규정을살 펴볼것이다. 각편에서는관복 담홍포를주제로한 담론분석이이루어질것이며본편에서는담홍포가 관복으로 정착하기까지의 담론을통해 담홍포출현 및상용의경위가설명될것이다.
III. 담홍포의 제도화 과정과 그 담론
1.공복의색구분체계및홍색의지위
홍색은태조때부터최상위관복색으로제정된다.
태조1년(1392) 12월 12일이듬해원정부터시행할관복
제도를정했다. 그내용은다음과같다. “1품은홍포·
서대, 2품에서판각문이상은홍포·여지금대, 3, 4품 은청포·흑각혁대·상홀, 5, 6품은청포·흑각혁대·목 홀, 7품이하는녹포요, 대와홀은 5, 6품과같고, 신[靴]
은모두검은색[ 色]이다.” 관복의색은품급을구 분하는항목의하나였으며홍색은홍포, 청포, 녹포의 세단계구분체계에서가장상위의품급인 1~2품의색
이었다. 이태조1년에정한관복은구체적으로어느관
복이라고명시하지않았지만홀이포함되어있는것 과세종8년의기록을통해공복임을알수있다. 세종
8년(1426) 2월 26일 “임금께알현하거나사은또는부
임전에배사하러뵈올때에는공복을착용하며, 1품은 홍포·서각대·상홀이며, 2품이하정3품이상은홍포·
여지금대·상홀이며, 종3품이하는청포·흑각대·상홀
이며, 5, 6품은청포·흑각대·목홀이며, 7, 8, 9품은
녹포·흑각대·목홀이다. 이상각품의검정신[黑靴]과 복두는같다.”고하여태조1년관복제도와내용이거 의동일하다. 다만 3품이정3품과종3품으로구분되 어각각홍포와청포로나뉘어홍포는정1품에서부터 정3품까지당상관의공복색이되었다. 한편 “임금알 현또는사은또는부임전배사하러뵈올때, 왕세자에 게하례를올릴때, 중궁과왕세자에게사은할때”라 고공복의구체적으로용도를설명하고있다.
아직『경국대전』상에법문화되었던것은아니지만 초기의공복규정도이를지키지않았을때는제재를
가할만큼규제력이있었다. 태종11년(1411) 5월 8일
의정부에서당참하던날김여하가홍포를입어사헌 부에서이것을문책하였는데이는 4품인김여하가정 3품이상만입을수있는홍포를입었기때문이었다.
성종16년(1485)에시행된법전『경국대전』에는백관
의제복, 조복, 공복, 상복제도가완성된다. 역시홍색은 공복의홍포, 청포, 녹포등품급에따른색구분체계 중최고상위색으로제정되어태조1년과세종8년의 공복규정을계승하고있다. 1품에서 9품까지의공복
에대한규정만뽑아보면다음과같다. “1품공복은
홍포를착용한다. 2품공복은홍포를착용한다. 3품공 복은정3품은홍포를입고종3품은청포를입는다. 4품
공복은청포를입는다. 5, 6품공복은청포를입는다. 7,
8, 9품공복은녹포를입는다.”
한편조선시대홍색의지위는백관공복의최상위색
을초월하여임금의색이었다. 태종8년(1408) 9월 29일
태종이세자때홍포를입었음이기록되어있으며, 재
위후인태종11년(1411) 6월 14일에홍색옷을입었다.
세종1년(1419) 1월 12일세종은고명받을때홍의에
옥대를 띠었으며 연산군3년(1497) 9월 11일에 대홍
의는임금의옷이라고하였다. 영조27년(1751)『국조
속오례의보서례』권2 가례에전하시사복곤룡포는대 홍단이나 여름용대홍사로 만들고 오조원룡보를부 착한다고하였다.
이와같이홍색은태조1년, 세종8년규정에이어성
종16년『경국대전』에공복의최상위색으로제도화되
었다. 즉공복은홍포, 청포, 녹포의세단계색구분체 계를가지며홍색은당상관즉, 정1품부터정3품까지
의색이었다. 한편홍색은관복의최상위색을초월
하여임금의복색이었다.
2. 상복홍색의변화
조선초기『경국대전』시행전까지상복에는공복과 같이품급을구별하는색구분체계가없었다. 다만착 용되는색에대해규제하거나특정색을장려하는것 을볼수있다. 이들관복색에대한기록에는관복구 분이없이단령이라는관복포명칭이사용된경우가 많기때문에공복, 상복, 시복중어느관복을가리키 는지판단이요구되며문맥과정황을통해복두를착 용하는공복이나흑색단령의시복과구분되는상복 단령의색을정리해보면다음과같다.
세종27년(1445) 8월 6일 “개국한이래로문무조관
이모두회색단령을입었는데, 뒤에동방은목에속
하니회색은상서롭지못하다하여금하였다.”고하여
조선초기회색단령을착용한것과이를금한것을기 록하고 있다. 회색 금지령은 일반인의 의복으로부터 관복까지적용되었다. 즉태조7년(1398) 6월 29일모든 남녀에게황색, 흰색과함께회색옷을금한것, 태종
2년(1402) 3월 9일회색옷을금한것, 태종11년(1411) 4월 26일상례가끝난후조회에회색, 옥색을금하고
채의를입도록한규정, 태종15년(1415) 11월 29일옥
색금했던것을철회하고짙게물들여입게했다가태
종16년(1416) 4월 12일옥색을다시금지한규정등
을통해초기에관복단령으로회색, 옥색등을착용
하였음과오행사상에근거하여회색을금지하고진한 색을착용하도록한것을엿볼수있다.
때로는보다적극적으로구체적인관복색을지정
하기도하였다. 태종16년(1416) 7월 17일에는여름철
관복으로심남색, 홍색, 흑색을사용하게하였고태종
18년(1418) 4월 15일에는관복에색이없음을지적하
며홍단으로관복을만들어주게하였다. 세종도태
종과같은색을입게하였는데세종1년(1419) 7월 17일
조관의평상시조회복색을남색, 홍색, 흑색으로입
게하였다. 한편세종6년(1424) 10월 13일에는 “토홍
색과옥색은소복과비슷하니, 지금부터사신을영접 할때와대소조회에는입지못하게하고, 상시에도깊 게물들인것을입게하소서.”라고하였다. 조정에서
의 ‘상시’란상복의개념이므로사신영접과대소조회
에착용하는공복이나조복뿐만아니라상복의색에 도토홍색과옥색은금지하고남색, 홍색, 흑색을진
하게염색하여입게한것이다. 세종11년(1429) 2월
5일에는다시한번사신영접과대소조회에토홍색과 옥색금지규정을마련하여관복색유지에힘썼다. 세
종27년(1445) 3월 3일에는또 6명의승지에게압두록
색무명과홍색주로 단령을만들어 입게함으로써 남색, 홍색, 압두록색을상복의색으로장려하였다. 태 종과세종때시행한관복의남색, 홍색, 압두록색, 흑 색중남색, 홍색, 압두록색은상복의색으로, 흑색은 시복의색으로해석된다.
한편세종은대홍색과홍색을금지하고대신도홍
색과분홍색을쓰도록한다. 세종9년(1427) 2월 19일
각관사의이전, 외방의향리, 공상, 천예등에게홍색
안감사용을금지한데이어세종28년(1446) 5월 25일에
는 ‘위로는 1품으로부터아래로유음자제와부녀에
이르기까지속옷외에는홍색상의를허락하지말게 하고그외대소남녀의상에모두홍색을금지’하면서
‘대홍은이미임금의복색이므로속옷[裏衣]이라도금
지해야한다’고설명하였다. 여기서의속옷이란 겉에
입은 포 안쪽에 착용한 받침옷을 말한다. 세종31년
(1449) 1월 25일의복의금제조건 5개항을발표할때
“대홍으로물들인외의는대소조사(朝士)들이이미입 지못하니, 이뒤로는양반부녀의외의와서인과천인 남녀의안팎의복은모두대홍색을쓰지말고, 도홍색
과분홍색만쓰게하여명년부터이금법을시행한다.”
고하였다. 이상의홍색금지령은일반복식과관복에 대한내용이섞여있으나 ‘1품으로부터’와 ‘대소조사 들’에게금한것은관복까지포괄하는것으로생각된
다. 즉임금의복색인대홍색과 이와유사한홍색을 금하기위해공식적으로홍색보다옅은색인도홍색 과분홍색을쓰게한첫번째법령이라고할수있다.
단종 때는 대소신료에게 상복으로토홍색을 입게
하였다. 단종2년(1454) 5월 2일조계·상참·조참·회
례연·사신영접할때와제관이향을받을때이외에는 대소신료에게토홍색옷을입게하였는데『경국대전』
의장서문에조참, 상참, 조계에 흑의를입는다는규 정을참고하면단종때에도시복흑단령과공복을입 는의례가구분되고그외용도에입는상복은토홍색 으로규정한것을알수있다.
한편세조때는상복에도신분과품급에따라공복 의색구분체계를도입해야한다는주장이제기된다.
세조2년(1456) 3월 28일집현전직제학양성지의상
소에는상하를분별하기위한복색제정의필요성을 강조하며상복색구분체계를제안하며 “복색의제정
은상하를분별하려는것으로풍속을한결같이하는것 을엄하게하지않을수없습니다. (중략) 우리동방은 조관(朝冠)과공복을실상은중국을의방하였으되, 상 시에는백의입기를좋아하니마음대로여러가지색 을쓰는것은심히속되고촌스럽습니다. 빌건대공 복의제도에따라당상관이상을한색으로하고, 6품 이상을한색으로하고, 유품원·성중관·의관자제를 한색으로하고, 제위군사를한색으로하고, 경중과 외방의양인·이서를한색으로하고” 라고하였다. 역 시 ‘상시’란상복의개념이므로당시백색을즐겨입 던풍속과마음대로여러가지색을쓰는것이바람 직하지않으니상복을공복규정에준하여당상관이 상, 6품이상, 기타직책으로묶어신분과품급별색 을정해야한다는주장이다.
세조때편찬작업이시작되어성종때시행한『경 국대전』에는조복, 제복, 공복과함께상복규정이포
함되었다.『경국대전』예전의장에는관, 복, 대, 홀, 화
등구성품목별로나누어 1품부터 9품까지의각관복
규정이순서대로나열되어있다. 복부분에품급별로 공복의색이규정된반면상복의경우색에대한언 급이없음으로인해상복은색규정이없었던것으로
해석하는경우가있지만태조1년공복규정에서 1, 2품
에대해서는홀에대한언급이없어도 3, 4품과같은
상홀이라고추측할수있는것처럼상복의색은공복
과같기때문에반복설명하지않은것으로생각된다.
이러한판단의근거는공복규정에따른상복색규정 을마련해야 한다는세조2년양성지의 상소내용이
『경국대전』에반영되었을것으로보기때문이다. 즉
『경국대전』의상복색규정은공복과같이홍포, 청포,
녹포의세단계색구분체계를가진다.
그러나『경국대전』에는상복색규정과함께홍색 금지조문이포함되어있는데내용은 “대소인원에게 홍색, 회색, 백색표의를금지하고서인남녀에게홍의,
자의를금지”하는것이다. 이는예종1년(1469) 7월 9일
에 “대소인민의홍색표의와홍색속옷을금지하되 공복, 조복, 제복과기생, 공인의관대홍색은예전대
로하게한” 규정과도 연결되는 것으로조복, 제복,
그리고공복당상관의홍색은제도대로시행하되그 외의홍색을금지한것이므로상복홍색은공복과같 은진한붉은색으로입을수없었음을뜻한다.
한편성종때는상복으로토홍색을선호하는현상 이나타나이를감다갈, 압두록(혹은초록)색으로바
꾸려는노력이 있었다. 성종16년(1485) 11월 21일에
는임금이승정원에전교하여 “내가듣건대, 세종조에
조사(朝士)들이입는원령은더러는압두록으로염색 하고더러는감다갈로염색하고더러는아청으로염 색했다고하는데지금은 이런복색이없으니금하는 영이있어서그런가, 사람들이스스로입지않는것인 가?”라고묻자승지는 “특별히금지하는영은없었으 나세속에서좋아하지않을뿐입니다.”라고대답하였 다. 3일후인성종16년(1485) 11월 24일 “대소인원 의상착표의색(常着表衣色)에일정한제도가없기때 문에조종조에서더러감다갈또는압두록혹은초록 색을썼는데, 근년에오면서모두세탁하기가편하다 는것으로 다들 토홍색을 숭상하니, 조복의 문채가 너무없다. 지금부터는토홍색을제외하고는위의여 러가지색을편리한대로착용하되중국사신을접대 하는때가아니면무릇길복으로통용하라.”고하였
다. 여기서 ‘상착표의색’ 역시상복의개념으로서토홍색
을많이착용하는것을문제로제기하며 ‘위의여러가
지색’을사용하게하였는데이여러가지색은아무런
색이아니라위에제시된감다갈, 압두록(혹은초록)
색을말하며이는세종때입던감다갈, 압두록, 아청 색을참고한것이다.
또한후대의 기록인선조34년(1561) 6월 8일홍색
관복에관한논의기사에의하면영의정이항복이『승 정원일기』를인용하여성종때상복색으로아청, 초 록, 목홍색을정했다고했다. “내가승지로있을때우 연히『정원일기』를보니, 성종초년에조신의건의에 인하여 ‘조신이복색을마음대로만들어난잡하여법
도가없으니예관으로하여금대신들과의논하여제도 를정하게하되아청·초록·목홍을상용하게하고이 외에옥색·치색·담황색은사용하지못하게하라’ 하 였는데, 어느때부터일체담홍색을사용했는지모르 겠다.”가그것이다. 비록 후대의기록이지만성종이 시행했다는목홍·아청·초록은각각『경국대전』 상 복의홍, 청, 녹색과동일계통의유사색명이므로홍색 에서목홍색으로색명이변화된것을통해상복홍색 이보다옅은목홍색으로바뀌었을가능성을생각해 볼수있는단서가된다.
그런데광해군2년(1610) 윤 3월 2일지경연사박홍구
는 관복홍색의연혁을 설명하며 “우리나라조신의 복색은조종조부터일정한규정이없었는데, 성묘조
때에와서홍색으로정했다합니다.”라고했다. 성종
당시홍색으로만상복색을정한기록은없으나후대 사람들이 ‘성종때홍색으로정했다’고한것은『승정 원일기』에 ‘어느때부터일체담홍색을사용했다’는
담홍색보편화현상이이미성종때시작된것으로인
식했음을알수있다.
이와같이조선초기에는상복색으로회색, 옥색등 을착용하였고조정에서는이들색을금지하고진한 색을착용하도록하였다. 심남색, 홍색을사용하게한 태종에이어세종도남색, 홍색, 압두록색을진하게염 색하도록하였다. 한편세종이품관과그가족, 그리고 일반복식에까지대홍색과홍색을금지하고대신도홍 색과분홍색을쓰도록한것은임금의대홍색과구별 되게하기위한조치였으며단종때상복으로토홍색 을입게한것은그영향을받은것이라생각된다.
세조때양성지의건의를반영하여『경국대전』에상 복은공복의색규정을따라홍, 청, 녹색세단계로 구분규정되었지만이상복규정은공복만큼엄격하 게시행되지않았고대홍색, 홍색금지령속에홍색
에변화가있게된다. 후대사람들은성종이목홍, 아
청, 초록색을시행하였다고하기도하고홍색으로정
했다고도했는데목홍은홍색의색이보다옅은색으 로변화된것을보여주며홍색으로정했다는것은일 체담홍색이되었다는내용과연결된다. 즉후대사 람들에게상복의담홍색보편화현상은이미성종때 시작된것으로인식되었음을알수있다.
3. 홍색선호풍속
상복의담홍색 형성과정을논의하기 위해서는조
선시대홍색에대한임금과일반백성의생각을살펴 볼필요가있다. 임금의생각은홍색금제를통해, 일 반백성의생각은염색을통해고찰해본다.
태종은홍색에대한뜻을분명히하였다. 태종17년
(1417) 6월 27일에는예조판서변계량이홍염의를금
할것을제안하였는데이에대해태종은 “홍색은상 에속하는것도아닌데어찌하여금지하자고하는가? (중략) 홍색은황색에비할바아닌것이다.”라고하
였다. 이미태조5년(1396) 6월 9일남녀의황색의복
을금한적이있다. 태종이말한 ‘상’이란중국을말 하는것으로황색은중국황제의색이기때문에금지 에동의하지만홍색은중국에속하는것이아니기때 문에황색처럼금할필요가없다는뜻이다. 즉홍색
이우리고유의색이라고말하고있다. 태조는당상
관의공복, 태종과세종은상복색으로홍색을입게
한것은앞에서살펴보았다.
한편세종은세종28년(1446) 5월 25일대홍색이임금
의복색이라는이유로품관으로부터일반복식에이르 기까지겉옷뿐아니라속옷에도홍색사용을금지하
고, 세종31년(1449) 1월 25일에는홍색을금지한대
신도홍색과분홍색을쓰도록한다. 그러나홍색사용 은쉽게사라지지않았던것으로보인다. 문종즉위년
(1450) 9월 21일국상 3년안에대소관원속옷에홍
색과자색을금하였는데이는비록국상기간상례에 관한내용이긴하나당시상복단령받침옷으로홍색 을입었던것을알수있다.
예종1년(1469) 7월 9일에공복, 조복, 제복의홍색
을제외한 “대소인민의홍색표의와홍색속옷을금 지”한것과『경국대전 』에 “대소인원에게홍색, 회색,
백색표의를금지하고서인남녀에게홍의, 자의를금
지”한홍색금지령(Son & Kim, 1982)을통해세종부
터성종때까지당상관의 공복 홍색은유지된반면 상복의경우는당상관의상복홍색뿐만아니라당하 관의받침옷으로입는홍색까지도금지된것을알수 있다.
연산군대에이르면다시관복홍색에대한제재가
가해진다. 연산군4년(1498) 6월 15일에는 당하관은
대홍의를금한다고하였으며, 연산군10년(1504) 5월
9일에는 “조관에게 홍색에가까운옷을입지 말라.”
고하였다. 어떤관복인지가나타나있지않아공복과 상복두가지가능성을모두고려해볼수있는데, 만 약공복으로생각한다면연산군4년당하관이당상관 의색인홍색을입었다는뜻으로 6년후에는당상관
의공복홍색마저도임금의홍색과 구별시키고자한 것이다. 상복으로생각한다면당시당상관부터당하관 까지상복으로홍색을입었음과이역시임금의홍색 과구별시키고자한것이다. 연산군5년(1499) 7월 20일 하사 복식 품목중에 토홍단목면 단령이들어있는 것도이러한홍색금지령과연관된다.
중종때역시홍색을진하게염색하는현상때문에 수차례의홍색금지논의가있었으며당상관공복홍 색까지도 금지 규정에 포함되기도 하였다. 중종3년
(1508) 3월 15일우리나라에서홍색을금하지않음에
대한문제점을지적하며홍색금지의필요성이제기
되었고, 중종3년(1508) 11월 6일에도 “지금어의를홍
색으로하는데재상들도홍색의착용을좋아하니, 값이
비쌀 뿐만 아니라명분에있어서도 더욱삼가야할 일입니다.”라는제안에대해중종은 “체모에관련되
는일이니 1품이상은착용하는것이좋겠다.”고한다.
중종7년(1512) 2월 10일에는지나친홍화진상수량
으로인한백성의어려움을해결하기위해홍색을금
하였지만일주일후인중종7년(1512) 2월 17일다시조
복과공복의홍색을원래대로허용한다. 이날송일 은 “조종조에도홍색을금하지아니하여속옷를지어 입은지이미오래인데, 어찌한가지일때문에갑자 기법을세울수있겠습니까. 홍단·사라같은것은빛 깔있는것중에서도제일이니진실로금단해야마땅 하나, 다만풍속이검소를숭상하면사대부들이반드 시사치를부끄럽게여겨저절로입으려하지않을것
이니, 이것이금하지않아도크게금해지는일입니다.
또한공복과조복도홍색이나조종때에제작한뜻이
있는것이니, 지금와서고치기는어려울듯합니다.”
고한다. 뒤이어이손등도역시 “『대전』에는홍색을
단지표의만금했고, 정묘년수교에는당하관의속옷
도홍색을금하여그법이자상하게되어있으니, 다시
과조를세울것이없습니다. 더구나조복과공복도모
두홍색인데어찌모두 폐지할수있겠습니까. 조종
때의고례대로 함이마땅합니다.”라고하여결국조 복과함께공복의당상관홍색을원래대로허용하였 다. 즉중종때는홍색에대해 1품에게만허용, 전면금 지, 다시 1품부터정3품당상관공복에허용하는등 의금지와허용이반복되었다.
중종은도홍색을허용하기도했는데, 중종8년(1513) 9월 5일영평위가친열할때붉은옷입은것에대해 벌하기를 청하였으나 도홍색이니내버려두게 하였 다. 이는세종31년의도홍색과분홍색을사용하게한
것과상통하는것이다.
중종후반기에또다시홍색을진하게염색하는현
상이나타나금지하게된다. 중종23년(1528) 8월 18일
“지금풍속이퇴폐한지이미오래고다투어사치를숭 상하여바로잡을수없는데, 복식을아름답게하는것 이더욱풍습화되었기때문에물가가앙등하니, 만 일상께서검덕으로시범하여이런폐풍을바로잡으 신다면될것입니다.”라는제안에대해임금은 “이런 풍습은하루아침에고칠수없는것이다. 그러나위 에서하지않는다면아래에서는자연히하지않게되 는것이다.”라고하였으며또한 “전에는홍색에가까 운것은금단했었는데지금은금단하지않기때문에 의복이지나치게 붉다. 이는 비록 세쇄한 일이기는
하지만또한금단해야한다.”고하였다. 이어서정광
필이 “복식이홍색에가까운것은신도놀랐습니다. 전
에는무명단령을편리한것에 따라입었었는데, 요
사이 6~7년이래로시신들이다투어홍색에가까운옷
을입으므로신이 일찍이무슨 마음으로그런 옷을 입고상의앞에서가까이모시면서오히려고치지못 하는가여겼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는옛적에금단 하던 것인데, 지금은융복류도 다투어짙은 홍색을 숭상하니매우 불가하다.”고하였다. 결국중종38년
(1543)『대전후속록』각종금제(Son & Kim, 1982)에
당상관외에는대홍의를입을수없다는내용과안감 에는허용하는규정이포함되었으며이는연산군4년 금제와마찬가지로공복과상복의가능성을모두생 각할수있다.
홍색시행및금지논의를통해살펴본조선시대임 금의홍색에대한생각은홍색을우리고유의색으로 생각하여백관 공복과상복의 색으로규정하면서도 임금의대홍색과는구별되게하였다. 그러나연산군
때당하관까지홍색을입기도하고중종때는복식의 사치와아름다움을추구하는 풍속이형성되어 공복 및상복단령의홍색을진하게염색하여임금의대홍 색과같아지기도했다.
다음으로염색을통해조선시대일반백성의홍색에 대한생각을살펴본다. 홍색은홍화와단목즉소목으 로염색했으며『상방정례』( 와『탁지준절』), 토홍색은朱 土와대자석, 목홍색은소목, 도홍은홍화병『성호사설』( ,
『임원경제지』), 분홍은연지를밭치고난후의종이 (『규 합총서』)를사용하였다(Nam et al., 2005). 한편『성호 사설』에도홍은토홍이구전되면서바뀌었다고하여토 홍과도홍의연관성을말해주며, 또사치가성행하면서
토홍을홍남즉홍화로염색하기도했다고하여홍화 염색이확대되어보편화되었음을알수있다.
우선홍화는자초와함께조선시대우리나라에서생 산되는염료식물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의하면
전국지방별특산물목록에서홍화는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황해도, 평안도, 함길도등전국에서 재배되고있음을알수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홍화
생산량은 수요를감당하지못하였다. 세종9년(1427)
2월 19일홍화는비록본국에서생산되는것이지만희 귀한것이라고하였으며홍색의또다른염료인소목의 경우에는 전적으로 외국으로부터구입하는 상황인데 당시옷의안감까지홍색을사용하니값이싸지않고
물가가오를것을염려하는내용과세종28년(1446) 5월
25일대홍색염색값이비싼데도불구하고민간에서
다투어대홍색염색을선호한다는내용은홍색염색 의가치와일반백성의홍색선호풍속을말해준다.
이러한홍색선호현상은홍화진상수량을늘리는 결과를가져와심각한사회문제가되었다. 성종22년
(1491) 10월 12일홍화를공물로바치는데있어서의
폐단이 이를말해주며 중종7년(1512) 2월 10일에는
계속늘어나는홍화진상수량을감당하지못한백성 들이도망하여유랑하는폐단이발생하였다. 이에백 성이유랑하는고을의문제를해결하는동시에임금 의옷색과같은색을입는문제도해결하기위해대 홍색을금지하였다.
『연려실기술』 별집권13 정교전고(Son & Kim, 1982)
에도『식소록』을인용하여 “대개우리나라에서홍화 를많이심어그것으로홍색을물들이기가쉽기때문 에세상사람의마음이이를즐겨하였던것이다. 조 종조에서홍색, 회색, 백색을금제의조목에기재하였
지만 중지시키지 못하였다.”고 하여 조선시대 홍화
염색을많이한이유에대해서는홍화를많이재배하 였고염색이 쉽기때문에사람들이이를좋아하였다 고 하였다. 또한 홍색 염색을 매우 잘하였던 것을
『지봉유설』권19 복용부채폐(Son & Kim, 1982)에 는『계림지』를인용하여 “고려사람은옷감에물을잘 들이는데, 홍색과자색을더욱 잘들인다”라고하여 중국에서우리나라의홍색염색수준을인정한사실 에서확인할수있다.
홍색과담홍색관련 색의염료로는주로홍화, 소 목, 주토등이 사용되었으며그중에서도홍화가가 장많이사용되었다. 중종때홍색진상수량이증가 함으로인해유리하는백성이늘고소목은수입에의
존함으로인해값이오르는사회적문제가야기될만 큼홍색을선호하였다.
4. 임진왜란후천홍색상복시행
전란으로인해관복착용이중단되었던적이있다.
1592년부터 1598년까지의임진왜란기간동안임금을
비롯한관리들은관복대신융복을착용하였다. 선조
25년(1592) 4월 14일선조는백관에게융복을입도록
명하였고선조27년(1594) 5월 27일선조자신도융복
을입고칼을차겠다고 하였다. 임진왜란이끝난후 융복에서다시관복으로복귀하게되는데먼저흑단 령을착용하기시작한후천홍색상복이시행된다.
먼저흑단령시행과정에대해『연려실기술』별집 권13
정교전고(Son & Kim, 1982)에는기해년즉선조32년
(1599)에비로소흑단령제도를정하였다는제목으로
선조31년(1598) 12월에이듬해 2월그믐을기하여관복
을갖추게하고단령은흑색으로하도록명한후선 조32년에시행되었다는 내용을짧게전하고 있지만 실록에의하면관복복귀논의는이보다 11개월앞선
선조31년(1598) 1월에시작되어 12월에복귀안을발표
한것이며다시약 9개월후인선조32년(1599) 9월에
이르러수도관리들을시작으로점차시행되었다. 그 과정을살펴보면다음과같다.
선조31년(1598) 1월 27일에신하들의복색이융복
으로오랑캐풍속처럼되어버렸다고한탄하며, 복색 은국가의체모에관계되므로사모·흑단령·화·대 를대략이라도조사(朝士)의의장으로갖추어야한다 는의견이었다. 선조31년(1598) 12월 19일예조에서
“조정의대소관원이모두군복차림으로 7년이란세 월을보냈습니다. 따라서상하의구분이없고외관상
볼품이없기때문에중국사람들이모두우리나라복색 이원래이와같다고생각해조소를금치못합니다. (중
략) 명년 2월그믐까지기한하여일제히관디를갖추
게함으로써 평상시의규정대로 회복시키고 단령은 흑색으로하도록하여차츰중국제도를따르게하는 것이 사의에 합당할 듯합니다.”라고 정식으로 관복 복귀안을발표하였다.
그러나전란을치르며 7년동안착용하지않던관 복으로의복귀는용이하지않았던것으로보인다. 선 조32년(1599) 1월 7일, 선조32년 1월 18일, 선조32년
4월 19일, 선조32년 8월 1일까지네차례에걸쳐관복 준비의어려움이 제기되어 시행시기를 연기하였으며
결국선조32년(1599) 8월 26일흑색단령시행일자를 경중은 9월 1일, 외관은 9월 20일, 나머지경외조관은 준비의지속에따라착용하게한다. 한편선전관이하 부장등입직하는무반, 훈련도감의천총·파총·초관 등직책이없으나군직에붙여져상사하는자, 비변 사낭청, 훈련원관원, 군기시의참하관, 삼의사및이 서의무리들은모두융복을그대로착용하여활동에 편리하게하였다. 흑단령제도를정했지만모든관리 들이관복을갖추는데는상당한시간이필요했던것 이다.
한편흑단령을시행한 후조복이나공복을입어야 하는의례에도흑단령으로대신하는것을볼수있다.
시행 1년후인선조33년(1600) 10월 21일평시에는정
월초하루와 동지조하및교묘 대례에임금은 면복,
백관은 조복을입어왔지만임진왜란 후에는조복은 물론시복도갖추어지지못한상황을설명하고있으
며이듬해선조34년(1601) 3월 18일에는 “조하때는
공복을입어야합니다. 하지만지금은백관들의관복 도겨우갖추는형편이어서복두·포·홀은거의없습 니다. 우선시복으로조하해도무방할듯합니다.”라고 하여조하때는백관이공복을입어야하지만관복즉 시복도거의갖추는형편이기때문에공복대신시복을 착용하게하였다고기록하고있다.
이와같이임진왜란을당하여임금을비롯한백관 들은 7년동안융복을착용하였으며난이끝난후선 조32년에 다시관복으로 복귀하면서흑단령을 착용 하게되었다. 이흑단령은당시에시복으로불리웠으 며 당시에는공복까지 갖추기는 어려운형편이어서 조복이나공복을착용해야하는조하등의의례에시 복흑단령이대신착용되기도하였다. 이후선조37년
(1604) 10월 19일존호올리는절차에진전관이공복을
착용한기록이있으나정묘·병자호란을치르고난인
조16년(1638) 10월 9일육례에갑자기조복, 공복을
준비하기어려우니대신흑단령을착용하게한기록을 통해전란이후정식관복을갖추기어려울때면시 복이공복을대신하곤했음을알수있다.
다음으로 천홍색상복이시행되는 과정을살펴보 면, 임진왜란이끝나고선조32년(1599) 9월시복흑단 령시행 8개월후인 선조33년(1560) 5월 5일 “전쟁 후중국을모방하여대략상복을준비하였으나紅服 은아직 만들지못하여 예의에 어긋난다.”며홍단령 시행안이제기된다. 단, 이기록에서는흑단령을상복 이라고하여당시흑단령을시복이라고했던다른기
록들과다르나이러한이견은이기록이유일하므로 당시의 보편적 인식은 흑단령이 시복이었던 것으로 본다.
실록의 선조34년(1561) 6월 8일에는천홍색관복
을주제로한두개의기사가있다. 두기사모두천 홍색관복을정하는문제를놓고천홍색주장과흑색
주장 양측의논쟁과 임금의 결론을 기록하고 있다.
이두기사에나타난여러사람의주장속에는청색 과흑색, 그리고홍색과천홍색이함께사용되어 색 명에혼돈이있다. 청색과흑색은시복색으로홍색 계통의상복과대비되는개념으로서당시청색, 아청 색, 현녹색, 청현색 등을흑색의범주에포함시키는 관례가있었다. 또한홍색과천홍색은상복색으로역
시흑색계통의시복과대비되는개념으로서이날의 논의에서는혼용되고 있지만실제로는 홍색보다 밝 은색인천홍색을가리킨다.
첫번째기사는천홍색반대안과임금의천홍색시 행안의대립논의를보여준다. 예조판서이정구는 “복 색을천홍색으로 정한다고 하는데, (중략) 천홍색은 홍색과백색의간색이어서바르지못한것입니다. 임 금과신하가같은색임을혐의한다면짙은색과옅은 색으로어찌 구분할 것이 있겠습니까. 중국의 예에 따라청색으로 하는 것이마땅합니다.”라고 하였다.
즉천홍색은간색이기때문에관복색으로적합지않 다는것과신하의복색이임금의것과구별되어야한 다면짙은색과옅은색정도의구별로서충분하지않 으니청색으로해야한다는두가지이유로천홍색안 에대해반박하고있다. 특진관이충원역시 “국가가 거의망하게되었을때중국에서대병을출동시켜구 해주었으니은혜가막중합니다. 관복의제도는일체
중국을따라야합니다.”라고하며중국의제도에따
라흑색으로입어야한다고했다.
이에대해임금이 “만들기가흑색은어렵고홍색은
쉬운가?”라고하며홍색염색의용이함을들어천홍
색안을지지할뜻을비친다. 하지만이원은 “할수없 이해야하다면어찌어렵고쉬움을따질수있겠습니 까.”라고흑색안을주장한다. 임금은다시 “습속을바 꾸기는어렵다. 우리나라사람에게철대를띠게하면 반드시하려고하지않을것이다. 전일소모자를쓰게 했더니모두수치스럽게여겨살고싶은생각이없는 것처럼하였으니, 중국옷을입으라고하더라도어찌 잘따르겠는가.”라며습속중시를새로운이유로들고 나온다. 이전에우리풍속이아닌중국모자를쓰게한
후잘시행되지않았던예를들며 2년전에정한흑단 령은중국제도를따른것이며홍색이우리풍속이며 풍속을따라야한다는논리로천홍색안을지지한것 이다.
두번째기사는천홍색시행안과반대안의대립논 의후천홍색시행이결정되는것을보여준다. 먼저영 중추부사최흥원의천홍색관복사용안으로부터시작 된다. “조종조로부터홍색과흑색의두가지옷을입어 행해온지가오래되었다. 변란을겪은이후중국장 수를접대할때항상흑색을착용하였으나이는구제 가아니었다. 일체구제에의해 시행하는것이마땅 하다.”고하며조선왕조는초기부터홍색과흑색두 가지관복을입어왔으며사신접대시조복이나공복 을입었던옛제도를참고하여중국장수접대시흑 색관복은우리의옛제도가아님을들어원래의풍 속인천홍색관복사용을제안한다.
다음으로영의정이항복은천홍색안에대해반대 하는데그이유를선조32년흑단령정할때반대한이 유부터설명하고있다. 여기서이항복이청색이라고 한것역시선조32년정한흑단령을말함이다. 그는
“논하는 사람들이 모두 한결같이 중국 제도를따라 홍색을청색으로바꾸어야한다고하였다. 신은그때
「의관에관한것은『대전』으로국가의법도에관계되 고위의의성쇠에관계됨은물론문치의정화와귀천 의등급이되는것이어서사체가중대하니, 소홀히강정 해서는안된다. 더구나지금은모든일이어려워이런 일들은할겨를이없다.」하였었다. 기해년(선조32년) 8월에또관대를갖추고자하므로신은「사세가어려 워곤란하니우선물력이조금펴져서시행할수있 게될때까지기다렸다가행하자.」고하였다. 신이전
후하여논한것은전부복색은변경할수없고관대는 갑자기갖추기가어렵다는것이었다. 그러나변경하고
자하던당시에는국명(國命)이다시새로와졌으니정
치도기강을개혁하여야할때였다. 따라서중국을본
받아청색으로변경시켜한시대의체모를새롭게했 어야하므로급한일은아니지만역시소견이없지않 았던것이다. 그런데금일에이르러겨우몇년밖에 지나지않았는데별다른이유없이또고치면아이들 장난같아체모에관계되니, 시행하기가어려울듯하 다. 내가승지로있을때우연히 『정원일기』를보니,
성종초년에조신의건의에인하여「조신이복색을마 음대로만들어난잡하여법도가없으니예관으로하 여금대신들과의논하여제도를정하게하되아청·초
록·목홍을상용하게하고이외에옥색·치색·담황 색은사용하지못하게하라.」하였는데, 어느때부터일 체담홍색을사용했는지모르겠다. 전성기에도물력 을참작하여행하기쉬운것부터행한뜻을알수가있 는데, 지금처럼변란을겪은후에갑자기관대를갖 추고존귀한사람이나비천한사람이나함께사견(絲 絹)을입고또홍색으로바꾼다면, 몇년사이에어지 럽게고치게되어조정의체면은그만두더라도경비 를소모하는것이이보다심할수없다. 때문에나는
전에는홍색을 청색으로 변경할 수 없다고하였고,
지금에도결코청색을홍색으로변경할수없다고여 긴다.”고하였다. 인용이다소 장황하지만요약하자 면이항복은 2년전기해년에난이끝난직후어려운
형편에관복갖추는것을반대했음과그때중국제도 를따라흑단령으로정한지겨우 2년만에또다시
홍단령으로바꾸자는 제안에도 역시반대한다는 내 용이다.
한편『연려실기술』별집권13 정교전고(Son & Kim,
1982)에는이날이항복의발언에대한추가내용이
기록되어있는데 “난리후에의논하는사람들이복색 은한결같이중국제도를따르되홍색을고쳐청색으 로함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예문의 시복 흑단령, 상복홍단령을구별하기어려우니, 시복상복 을논할것없이모두청색으로입는것이무방하다 고하였사온데”라고 하였다. 이 기사에서 이항복은 난이끝난직후경황없는상황에시복과상복을구별 하여입기어려우므로청색즉흑단령한가지만으로 충분하다는의견을말하는동시에당시시복을흑단 령, 상복을홍단령이라고했음을알려주고있다.
이항복의천홍색반대의견에뒤이어완성부원군이 헌국은홍화보다비용이절감될수있는토색으로분 홍을만들수있는방법을제시하며천홍색사용을주 장한다. “변란이후물력이탕진되었는데마침중국
상인들이성에가득하여아청이나비단을무역하기가 아주쉬워서이런물건으로단령을만들어당상관·
당하관이함께사견을착용하여금법을범하는자가 많았는데심지어법관까지도그런사례를면치못하 고있으니매우온당치못하다. 지금석복으로인하여 다시홍색을착용하면선왕의구제를회복하는것은 그리어려운일이아니다. 더구나조종조에서토색으 로분홍을만들어착용했는데한번물들이면빛깔이 바래지지않으니홍화를쓸것이뭐가있겠는가.”라 고하며홍화 염색비용이 문제가된다면토색으로
분홍색을만들수있음을제안하여홍색사용을주장 하였다.
좌의정김명원역시흑색과홍색이모두필요함을 주장하며 천홍색 관복제정에 찬성의견을 내놓는다.
“관복의제도는법전에실려있다. 시복과상복이각 기용도가있는데난후에일체흑색만을사용해왔으 니이는일시의권제에서나온것이다. 다시홍색을쓰 면아이들장난같기는하나조종조의구제가분명해 진다.”라며시복흑단령과상복 홍단령이모두있어 야함을설명하고하고있다. 우의정윤승훈역시청 색만시행하는것은중국식을잘못따르는것이라며 홍색시행에찬성하며시행일자를 제시한다. “백관의 복색은, 처음에는일정한제도가없었으나오로지홍
색을사용한것은그유래가이미오래되었다. 또중국
에서는청색과홍색을겸용하면서경사를만나면반 드시홍의를착용한다. 우리나라는한번청색을착
용한후부터는홍의는아주폐하고사용하지않으니,
이는중국제도를따르려고하면서도오히려잘못된 것이다. (중략) 홍색으로해야한다는의논이이미발 단되었으니끝내막을수가 없다. 그러니이번석복 하는때를당하여홍색으로하는것이마땅하다.”
결국임금은홍색사용안을지지하여다음과같이 전교한다. “복색은구제가있으니다시의논할것이 없다. 지난해에유사가아뢰어흑색으로변경하였으 나이는제도를변경한것이아니고일시의권도에서 나온것이니, 이제의논에따라다시구제를회복해야 한다. 다만내가듣건대전에중국사신이 ‘그대나라 는군신의복색이구별이없으니무슨이유인가?’하 였다고한다. 이는조신의홍색 옷을비난한것이니 다시의논하여아뢰라.” 즉흑색으로정한것은일시적
인제도였으니옛제도에따라홍색관복을다시시행 하되군신의구별이없게되는문제점을해결하도록 지시한것이다.
두번째기사말미에는천홍색시행을주장하는입 장을요약하여, 최흥원은 “관복의제도는그유래가 이미오래되었으므로중국사신의한마디때문에경솔 히고치기는어려울듯하다.”하였고, 이헌국은 “토홍 색을쓰면선왕조에서검소함을숭상하던뜻에가까
울듯하다. 중국사신이이른바 ‘복색에구별이없다.’
는말은방해로울것이없을까한다.”하였고김명원과 윤승훈은 “군신간의 복색이구분이 없는것은 과연 미안하니조신들은항상천홍색을입는것이무방할 듯하다.”고한것으로정리한후임금은의논대로하
라고전교하였음을기록하였다. 예조에서는또 “대신 의뜻은이번석복하는기회에천홍색으로하는것이 합당하다고하였으니, 상복의단령은천홍색을사용 하되이달 27일상제후에변복을시작으로착용하게 하고외방은원근이같지않으니공문이도착하는대 로거행하게하소서. 대개우리나라는처음에제도를 정하지만나중에는금법을범하게되는데, 이번천홍 색으로한제도는군신간의복색을구별하기위하여 만든것이니, 홍색이조금 짙은자는법사로하여금 일체규검하여폐단이일어나는일이없게하는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임금이윤허한다고전교하였다.
이렇게하여선조34년(1561) 6월 27일의인왕후 상
일에백관이소복을벗고천홍색을입음으로써임진 왜란이후공식적으로천홍색관복이시작된것이다.
이날의논의는광해군6년(1614)에편찬된『지봉유
설』에요약되어있다. 임진왜란후흑단령, 홍단령시행
에관한기록은실록뿐만아니라『지봉유설』,『연려실
기술』『증보문헌비고』, 등에실려있지만실록과비교 할때기록연대가앞설뿐만아니라가장정확하게기 록하고있는것은『지봉유설』이다『지봉유설』권. 19 복
용부조장(Son & Kim, 1982)에 “우리나라에서는양관
의복을조복이라고 하고, 흑단령을시복이라 하며,
홍단령을상복이라하고, 철릭을융복이라고한다. 나
라의풍속에전부터의관리는모두홍단령을입었다.
중국사람들은임금과신하가똑같은색의의복을입 는것을잘못으로여긴다. 임진왜란뒤에는난리속 이고창졸간이므로사대부들은모두철릭을입었다.
기해년에이르러 비로소중국을모방해서 흑단령을 입었다. 신축년에유근이예조판서가되어위에건의 해서임진왜란이전과같이홍색으로고쳐입게해서 지금까지계속되었다. 대체로사람의마음이란옛날
을따르기를즐겨하기 때문이다.” 즉임진왜란이전
부터관리들이모두홍단령을입었던풍속이있었으
며임진왜란 뒤에 중국을모방해 흑단령을 입었고,
신축년즉선조34년에천홍색단령을입게했다는내 용과함께흑단령이시복, 홍단령이상복이라는내용 이요약정리되어있다.
선조34년 6월의천홍색관련논의는중국 제도에 따라흑단령을입어야한다는입장과홍색이우리의 옛풍속이니홍색을입어야한다는입장의대립이었 으며임금은우리풍속을존중하는입장에동의하되 임금의홍색과구별되게하기위해천홍색관복을시 행하게된다. 이와같이임진왜란이끝난후융복을
벗으며흑단령을 시행했지만 2년후인선조34년의 인왕후상일을기하여백관이소복을벗게되면서천 홍색 단령을입음으로써 임진왜란 이후공식적으로 천홍색관복이시작되었다. 당시흑단령은시복, 천홍 색관복은상복에해당하였다.
IV. 결 론
조선 관복담홍포출현 및상용의계기와근거를 밝히기위해공복의색구분체계및홍색의지위, 상 복홍색의변화, 홍색선호풍속, 임진왜란후천홍색 상복시행이라는네가지주제에대해고찰하였으며 결과는다음과같다.
홍색은태조1년, 세종8년공복의최상위색으로규
정된데이어성종때『경국대전』에법령으로제도화 되었다. 즉공복은홍포, 청포, 녹포의 3단계색구분
체계를가지며홍색은당상관즉, 정1품부터정3품까
지의공복 색이었다. 한편홍색은관복의최상위색 을초월하여임금의색이었다.
세조때양성지의건의가반영되어『경국대전』에상 복의색을공복색에따라홍색, 청색, 녹색으로규정 했지만당상관상복의홍색은공복만큼유지되지못 한다. 비록태종때상복색으로남색과함께홍색을 장려했고세종역시남색, 압두록색과함께홍색을사 용하게했지만, 반면임금의대홍색과구별되도록하 기위해대홍색과홍색을금지하고도홍색과분홍색 을입도록하였다. 예종1년(1469) 7월 9일공복, 조복,
제복의홍색은예전대로하면서대소인민의홍색표 의, 홍색속옷을금지하고,『경국대전』에도대소인원 의홍색표의를금지하였으며, 연산군때조정관리의 공복또는상복에홍색에가까운색을입지못하게한 것, 그리고하사복식품목중에토홍단목면단령이 들어있던것등은모두『경국대전』당상관상복홍색 규정에도불구하고홍색이진한붉은색으로착용되 지못하도록한전후의상황을보여준다.
또한후대의기록에나타난색명의변화는상복홍 색의색이담홍색으로변화되어가는과정을확인할수
있는단서가된다. 선조34년(1561) 기록에『승정원일
기』를인용하여성종때시행했다고한아청, 초록,
목홍색은『경국대전』의홍, 청, 녹색과동일계통의유 사색명이다. 즉『경국대전』당상관상복의홍색이후 대 목홍색으로기록된것은 비록법률 제도상에는 홍색으로 규정되었지만 임금의 대홍색과 구별되기
위해색상이변화된것을보여주는예이다.
한편 조선시대는신분고하를 막론하고홍색을 복 색으로선호했다. 홍색은홍화나소목을염료로사용 하였으며비록홍화의생산량이수요를따라가지못 하고소목은수입해야하기때문에값이오르는사회 적문제가발생하기도했지만전국적으로재배되는홍 화는염색방법이쉽고세탁이용이하다는 편리성때 문에선호하는염색방법이었다. 한편조선시대임금 은홍색을우리고유의색으로생각하여백관공복과 상복의색으로규정하면서도임금의대홍색과는구별 되게하고자금지령을시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연산군때당하관까지홍색을입기도하고중종때 는복식의사치와아름다움을추구하는풍속이형성 되어공복 및상복단령의 홍색을진하게염색하여 임금의대홍색과같아지는현상도나타났다.
임진왜란이끝난후융복을벗으며흑단령을착용 했지만 2년후인선조34년천홍색관복논의결과의
인왕후상일을기하여소복을벗고천홍색단령을시 행함으로써공식적으로천홍색관복이시작되었다. 이 천홍색관복은당시상복에해당하며흑단령은시복 으로서임진왜란후복귀되지않은공복의용도를대 신하기도하였다. 선조34년의천홍색관복논의는중 국제도에따라흑단령을입어야한다는입장과홍색 이우리의옛풍속이므로홍색을입어야한다는입장 의대립이었으며결국우리풍속을존중하되임금의 홍색과구별하기위한방안으로천홍색관복을시행 하게된다.
천홍색상복은임진왜란이전에이미상용되었던담
홍색풍속을모델로한것이었다. 선조34년(1561) 천홍
색관복시행에관한논의에서영의정이항복이 “성종
때아청·초록·목홍을상용하게했지만어느때부터 일체담홍색을 사용했는지모르겠다.”고했는데, 영
중추부사최흥원의 “홍색과흑색의두가지옷을입
어온지가오래되었다.”고한것, 우의정윤승훈이 “오
로지홍색을사용한것은그유래가이미오래되었다.”
고한것『지봉유설』에서, “나라의풍속에전부터의관 리는모두홍단령을입었다.”고한것등은모두홍색 계통의단령착용이상당히오랜역사를가지고있음 을뒷받침하는설명이다. 또한 “선조34년부터임진왜 란이전과같이홍단령으로고쳐입게해서”라고한것 을통해임진왜란이전에홍색계통단령이상복으로 착용되었음을알수있다. 또한광해군2년의 ‘성종때 홍색으로정했다’는또다른기록은 ‘어느때부터일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