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1주일 여 앞둔 2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2층 입국장.
피우진 국가보훈처장과 주한 네덜란 드 대사 등 관계자들이 엄숙한 모습으 로 입국장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 었다. 짧은 안내가 있은 후 마침내 입국 장 문이 열리고 태극기에 덮인 유엔참 전용사의 유골함이 의장대 행렬과 함께 들어왔다.
오늘의 주인공은 요한 테오도르 알데 베렐트(Johan Theodoor Aldewereld).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우다 산화한 동료들이 있는 대한민국 땅에 내 유해를
묻어 달라. 우리가 대한민국 땅에서 싸 운 목적인 통일이 이뤄지는 순간을 지켜 보고 싶다.”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임무 를 끝내고 이 땅을 떠난 지 65년 만에 그는 그의 유언대로 사랑했던 이 땅 대한민국 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네덜란드 참전용사인 그는 6·25전쟁 이 한창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던 1951년 8월 네덜란드 반호이츠부대 일등병(보 병)으로 참전했다. 바로 전장에 투입된 그는 단장의 능선 전투, 평강 별고지 전 투, 철의 삼각지 전투 등 주요전투에 참 전한 용맹한 군인이었다.
“고인을 비롯한 유엔참전용사의 희생 과 헌신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6·25전 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기적과도 같은 경 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하여 세 계 속에 우뚝 선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
리 정부와 국민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 르는 나라, 만나본 적 없는 국민에게 자 유와 평화라는 소중한 가치를 선물해 주 셨던 유엔참전용사의 값진 희생을 영원 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의 인사말이 공 항의 넓은 공간으로 퍼져나갔다.
피 처장은 “65년 만에 목숨을 걸고 지 켰던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오신 우리 들의 영웅 고(故)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 렐트 씨에게 무한한 존경을 바치며, 전
우들 곁에서 편안히 안식하시길 기원한 다”며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날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고인은 서 울현충원 봉안당에 임시 안치된 후 27일 오전 11시 전우들이 잠들어 있는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유엔참전용사가 사후 개별로 안장된 것은 지난 2015년 5월 프랑스 참전용사 레몽 베르나르가 처음이며, 이번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는 여섯 번째 개별 안장 참전용사로 기록됐다.
2017년 10월 1일 일요일 (월간) 국가보훈처 ☎1577-0606
‘유엔참전용사의 귀국’ 지난달 25일 인천 국제공항 입국장에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유엔공원 안장을 위해 입국한 유엔참전용사 요 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의 유골함을 맞고 있다.
작은 사진은 고인의 생전 모습.
“자유 위해 싸운 한국에 묻혀 통일 지켜보고 싶다”
2017년 국제보훈워크숍이 지난달 26~27일 밀레니엄 서울힐튼호텔과 국 가보훈처에서 열렸다.
<주요 발표 내용 5면>
올해로 13회째를 맞는 국제보훈워크
숍은 보훈선진국과 유엔참전국 보훈 관 계자들이 매년 한자리에 모여 각 국의 보훈제도를 비교·분석하고 정책비전을 공유하는 국제학술 교류의 장이다.
올해 워크숍은 국가보훈처가 새롭게 추진하고 있는 ‘따뜻한 보훈’ 정책 기조 에 맞춰 ‘여성 제대군인 지원정책의 현
주소와 미래 발전방안’을 주제로 각 국 의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특히 이번 국제보훈워크숍에는 전직 을 앞두고 있는 여성 군인과 각계 전문 가, 학군단 후보생 등 200여 명이 참석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질의응답을 갖는 등 열띤 반응을 보였다.
이어 워크숍 참석자들은 27일 국가보 훈처 대회의실에서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한국 5개국의 보훈제도 및 정 책 현안을 공유하는 대화의 자리를 갖기 도 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국제보훈워크 숍이 주요 선진국의 보훈관계자의 학술 교류를 촉진하는 것은 물론 보훈분야 우 호협력을 확산하는데도 크게 기여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각 국 여성 제대군인 지원정책 비교 분석
올해 국제보훈워크숍 개최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 네덜란드 용사 유해 봉환 유언 따라 유엔공원 영면
피우진 처장 “자유와 평화라는 소중한 가치 선물한 값진 희생 잊지 않을 것”
□ 고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는 고국에서 사업가로 일생을 보낸 후 2016 년 5월 네덜란드 횡성전투 65주년을 계 기로 국가보훈처 재방한 사업 초청대상 에 포함돼 한국을 처음 방한했다.
당시 그는 동료 전우 니콜라스 프란스 웨셀(Nicolas Frans Wessels) 씨의 유해
봉환식과 유엔기념공원 안장식에도 참 석, 60여 년 전 자신들의 희생을 잊지 않 고 예우해 주는 따뜻한 사랑에 벅찬 감 동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유해도 동료 들이 잠들어 있는 대한민국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올해 2월 4일, 향 년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광복군 창군 77주년 기념행사’가 지난달 14일 서울 용산 백범김구기념관 에서 열렸다.
이날 기념식은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과 이영수 한국광복군동지회장, 박유철 광복회장 등 각계인사와 광복군동지회 원, 시민, 학생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 운데 기념사와 축사, 광복군 창군 선언 문 낭독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축사를 통해
“한국광복군은 민족의 군대로서 대한민
국 국군의 정신적 토대가 되었으며, 불 굴의 투쟁정신은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 어지고 있다”며 “선열들의 위대한 나라 사랑 정신을 계승하고, 모든 국민이 하 나 되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최선 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기념식 이후에는 ‘한국광복군의 시대 정신’을 주제로 이준식 근현대사기념관 관장의 학술강연회가 열려 한국광복군 의 시대정신을 재조명했다.
한국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 가릉빈관에서 한국광복군 총사령 부의 성립 전례를 가짐으로써, 대한민국 임시정부 직할 국군으로 창설됐다. 태평
양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임시정부 는 한국광복군을 주축으로 대일 선전포 고를 정식으로 선언했다.
한국광복군은 ‘광복’이라는 간행물을
발간하는 한편, 방송과 선전지를 전·후 방에 확산해 애국청년은 물론 일본군에 징병돼 온 한국청년을 유치하는데도 힘 썼다.
광복군 창군 77주년 기념식
“선열 나라사랑 정신 계승, 하나 되어 위기 극복할 것”
제869호 2017년 10월 1일 일요일 (월간)
2 종합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자에 대한 발 굴과 포상을 크게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보훈처는 독립운동 활동에 대한 국가 입증 책임을 강화하고, 독립 운동 발굴 사각지대도 적극 해소해 나가 기로 했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지난달 19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 에서 이 같은 내용의 독립유공자 발굴·
포상 확대 계획을 보고했다.
이제까지는 독립운동 활동에 대한 후 손의 입증이 쉽지 않았으며, 독립운동이 확인된 이후에도 현행 포상 기준이 지나 치게 높아 서훈되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계획에 따라 보훈처는 독립운동 의 공적을 확인하는데 기초가 되는 일제 강점기 판결문·범죄인명부 등 재판 기록 과 수형 자료를 직접 전수 조사키로 했 다. 특히 유공자 발굴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후손이 없거나 사회적 차별로 실태 파악도 제대로 되지 못했던 의병과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발굴도 집중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이를 위해 “이름조차 파악하기 어려웠던 여성의 시대적 상황 을 감안해 독립유공자의 제적원부를 조 사하고, 배우자인 여성의 인명을 밝혀내 독립운동 기여나 활약상을 역(逆)추적 하겠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훈처는 또 체계적인 독립유공자 발 굴 정책 수립을 위해 민관합동협의체를 구성하는 한편, 민관 협업을 통해 장기
간 해결되지 못했던 독립유공자 포상 민 원에 대한 현지조사도 실시할 계획이다.
한편 보훈처는 포상 심사 기준도 재검 토해 수형(受刑) 중심의 현행 포상 기준 이 독립운동가의 공헌과 희생을 제대로 판단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 전문가 용역 및 자문 등을 거쳐 수형 사실이 없 더라도 독립운동 공적이 분명한 경우 포 상하고, 현행 포상 기준의 적정성도 검 토할 예정이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이와 관련 “독 립운동가에 대한 예우에서 억울한 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 분의 유공자라도 더 찾아내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 하고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이 되 는 2019년에 독립유공자를 대대적으로 포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독립유공자 발굴과 포상 대폭 확대
발행일 2017년 10월 1일 발행처 국가보훈처 발행인 피우진 대표전화(정책·민원·상담) 1577-0606 편집·배포 044)868-07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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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에 수록된 내용은 국가보훈처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창간 1963년 9월 19일 홈페이지 www.narasarang.kr 국가보훈처 심덕섭 차장이 지난달 6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의 운영 및 관리 현황을 점검했다.
심 차장은 이날 업무 현황을 받은 후 제1묘역, 유영봉안소, 추모관, 역사광장 에 이어 구 묘역에 마련된 위르겐 힌츠페 터 추모비를 참배했다. 위르겐 힌츠페터 는 최근 화제가 된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주인공으로 1980년 당시 광주로 잠 입 취재에 나서 광주 5·18민주화 운동의 실상을 카메라에 담아 전 세계에 알린 독 일 언론인이다.
국립 5·18민주묘지 현장 점검 나서
보훈처 심덕섭 차장
피 보훈처장 국무회의 보고 사료 국가입증 책임 강화 유공자 발굴 사각지대 해소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지난 1일 대통 령경호처 경호과장과 신홍경 의무대장 을 집무실로 초청해 표창장을 수여했다
국가보훈처가 보훈행사와 관련해 대 통령 경호처 직원에게 처장 명의의 표창 을 직접 수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표창을 받은 두 사람은 지난달 14 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유족과의 오찬’ 행사 중 신속한 조처 로 광복회 경북경산지부장 최용근 씨(63 세, 독립유공자 최동식의 아들)의 생명 을 구했다.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화장실로 이동 하던 최 씨가 쓰러지자 경호과장은 곧바 로 의무대장을 호출해 환자를 살피도록 했고, 의무대장은 응급약을 처방함과 동 시에 서울국군지구병원으로 이송 조치 해 진료를 받도록 했다.
대통령 경호처 직원 보훈처장 표창
청와대 행사장 응급 구조
피우진 처장이 지난달 14일 오전 서울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열린 한국광복군 창군 제 77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함께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지난달 6일 오후 국가보훈처 심덕섭 차장이 광 주 국립5·18민주묘지를방문해 제1묘역을 둘러 보고 있다.
2017년 10월 1일 일요일 (월간) 제869호
3
기획 - 따뜻한 보훈
‘피부에 와닿는 정책’ 기대…소외된 분 없도록 ‘최선 다할 것’
지난달 21일 제354회 정기국회 정무 위원회에서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 률’,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 한 법률’ 등 10개 일부개정법률안이 통 과됐다.
이날 통과된 법안에 따르면 정부는 국 립묘지 이외의 지역에 안장된 독립유공
자의 묘지관리에 드는 비용을 지원(독립 유공자법 일부개정법률안)하고, 보훈급 여금을 받는 국가유공자가 국적을 상실 한 상태로 사망한 경우, 대한민국 국적 을 회복한 그 유족에 대해 보훈급여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국가유공자법 일 부개정법률안).
국립묘지 안장대상자 중에서 유골이 나 시신을 찾을 수 없는 경우는 물론 산 골 등으로 시신이나 유골이 없는 경우에 도 국립묘지에 위패로 봉안될 수 있도록
했다(국립묘지법 일부개정법률안).
이외에도 우리나라 최대 독립유공자 집단 묘역(총 52기)인 대구 신암선열공 원을 국립묘지로 지정, 국가차원에서 체 계적으로 관리하도록 하는 국립묘지법 일부개정법률안, 대부 대상자에게 민영 주택을 우선 공급하는 근거를 마련한 제 대군인법, 보훈보상대상자법 등 6개 법 률 일부개정법률안, 국가유공자 등록 등 의 사무 수행에 필요한 자료를 관계 기 관 장에게 요청할 수 있는 근거 및 제공
받은 자료에 대한 보호·벌칙 규정를 마 련한 국가유공자법, 독립유공자법 등 7 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등이 통과됐다.
이번 정무위를 통과한 10개 보훈 관계 법률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 의 의결을 남겨두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이번 보훈관계 법안 개 정을 시작으로, 새 정부 국가보훈정책인
‘따뜻한 보훈’의 추진과제가 실질적으로 법안에 반영될 수 있도록 입법과정에 전 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독립유공자 산재묘소 비용 지원’ ‘대구 신암선열공원 국립묘지’ 추진
국가유공자법 등 10개 법안 정기국회 정무위원회 통과
피우진 처장: 오늘 여러분들에게 제 가 그동안 보훈처에서 마련한 보훈가족 중심의 따뜻한 보훈정책을 소개해 드리 고 여러분과 함께 따뜻한 보훈을 완성시 키고자 이 자리를 만들어 함께 하고 있 습니다. 좋은 의견 부탁드리고 평소 궁 금하셨던 점 있으시면 오늘 이 자리에서 해소하시기 바랍니다.
- 사회 : 사람 중심의 따뜻한 보훈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보훈처, 계획하셨 던 일들이 잘 실천되고 있는지.
피 처장: 제가 취임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우리 보훈가족 분들이 수단화되서는 안 된다’였습니다. 한때는 이념과 정치의 논쟁 대상이 되기도 했기 때문에, 이제 그런 시선을 불식시키고 보훈정책은 보훈가족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보훈가족 여러분의 이야 기를 많이 듣고 그것을 바탕으로 보훈정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게
‘따뜻한 보훈’으로 이어졌습니다.
- 사회 : 국가유공자 정책에 대해서 어 떻게 계획하고 있나요?
피 처장: 보훈가족, 특히 유공자 분들 은 고령에 다친 몸을 이끌고 계십니다.
그래서 생존해 계실 때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보훈가족을 중심으로 한 보훈정 책을 마련하고 희생과 헌신에 기여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 사회 : 또 다른 큰 변화의 하나인 장 관급 격상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피 처장: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우리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의 희생과 헌신 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 고, 그 덕분에 우리나라가 존재한다는 의식을 갖고 계십니다. 따라서 나라다운 나라, 국민 통합을 위해서 여러분의 희 생과 공헌에 최선을 다해 최고의 예우를 해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시죠. 그런 신념 이 국가보훈처를 장관급으로 격상시키 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사회 : ‘따뜻한 보훈’이란 무엇인지, 왜 보훈 앞에 ‘따뜻한’이란 말이 붙었는 지 설명을 좀 부탁드립니다.
피 처장: 따뜻한 보훈은 정책과 제도 중심이 아니고 사람 중심의 보훈입니다.
여러분들 한 분 한 분 찾아 뵙고 다가가 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희생과 공헌에 보답하기 위해서 정책을 입안하는 것, 현장중심, 인간존중의 정책이 되겠다는 뜻입니다. 이에 따라 과거와 미래를 통 합하는 보훈, 보상과 복지가 균형 잡힌 보훈, 다양성을 존중하는 보훈, 국제사 회와 연대하는 보훈이라는 네 가지 실천 전략을 세워 추진 중입니다.
- 사회 : 아직도 어르신들이 등록절차 가 접근하기 어렵거나 까다롭다는 걱정 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민병원 기조실장: 심사기준이 까다로 운 부분도 있죠. 사실은 입증할 자료가 부족한 게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과거 엔 신청한 분이 찾도록 했는데 이젠 그 런 부분 탈피해서 국가가 더 많은 책임 을 지는 쪽으로 정책을 마련 중입니다.
- 참석자 : 보훈대상자가 고령화되고 있는데 노인복지서비스에 대한 지원 내
용과 향후 추진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민 실장: 의료지원 강화를 위해 노력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천보훈병원 이 내년에 완공됩니다. 내년부터는 진료 비 혜택도 크게 늘리기 위해 노력중입니 다. 아울러 고령의 국가유공자에게 실질 적인 도움이 될 강원권 요양원이 건립 중에 있습니다. 재활시설 요구도 많아져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광주, 부산에 재활 센터를 건립해 나갈 계획입니다.
피 처장: 말씀을 조금 더 드리겠습니 다. 국가보훈처는 보훈섬김이를 통해서 보훈가족께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하 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일자리 안정화를 위해서 이번에 1,400여 명의 보훈섬김이 를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합니 다.(박수) 다가가는 서비스를 더 강화하 기 위해서 정책을 추진한 것입니다.
- 사회 : 이제 정리할 시간입니다. 국 가유공자분들과의 대화, 소감이 어떠신 가요.
피 처장: 네, 오늘 이렇게 보훈가족분 들을 모시고 저희 보훈정책과 따뜻한 보 훈에 대해서 말씀드릴 수 있어서 굉장히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저희들
은 언제나 보훈가족 중심으로 여러 가지 정책을 펼치고 또 따뜻한 보훈도 실행해 나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응원해 주시고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 사회 : 따뜻한 보훈의 핵심은 사람이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떠신가요?
피 처장: 네, 그렇습니다. 보훈가족이 중심입니다.
- 사회 : 과거와 미래의 통합, 보상과 복지의 균형, 다른 생각의 존중, 국제사 회의 연대 등 네 가지 말씀 해주셨는데, 가장 방점이 찍힌 곳은 어디입니까?
피 처장: 다 중요하지만 보훈과 보상 의 균형이 조금 더 비중이 크다 할 것입 니다.
- 사회 : 마지막 말씀, 이런 일은 꼭 이 루겠다 한 말씀 해주십시오.
피 처장: 여러분들이 있기에 지금 대 한민국이 이런 놀라운 발전을 했고, 지 금 당당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저희들은 끝까지 잊지 않을 것입니다.
따뜻한 보훈을 중심으로 보훈 정책이 제 역할을 하고 잘 펼쳐질 수 있도록 저희 들이 노력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지켜 봐 주시고, 또 따뜻한 격려도 부탁드리 겠습니다.
KTV 토크콘서트 ‘따뜻한 보훈’ 지상중계
장관급 격상은 유공자 격상 보훈·보상 균형에 최선 노력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최근 국가보훈처가 중점 추진하고 있는
‘따뜻한 보훈’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최근 정책의 상세한 내용을 알리는 한편 국가유공자들이 직접 참석해 정책에 대한 제언을 놓고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피우진 처장이 지난달 25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KTV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국가유 공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23일 오전 8시,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 원 장례식장. 6·25전쟁에 참전해 화랑무 공훈장을 받은 안정순 국가유공자의 영 정과 조화 앞에 일군의 사람들이 나란 히 섰다.
방금 해가 떠오르고 분주해지기 시작 한 장례식장에 국가보훈처 서울지방보 훈청 최은진 등록지원팀장이 유족에게 장의용 대형 태극기를 전달하는 의식이 진행되고 있다.
무공수훈자회 장세훈선양단장을 비 롯한 5명의 단원들이 엄숙하게 거수경 례를 하고 “국가유공자 안정순 님 영전 에 대한민국 국민을 대신해 국가보훈처 장의 태극기를 전달한다”는 설명이 있 은 후 최 팀장이 태극기를 전달했다. 태 극기가 담긴 함을 전달받은 유족들이 조 용히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다시 태극 기가 고인 앞에 놓이고 참석자들의 조문
이 이어졌다. 선양단의 경례와 함께 짧 은 태극기 전달 절차는 마무리됐다.
20여분이 지난 후 바로 옆 건물 안치 실. 이곳에서는 유족들이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 후 슬픔을 참고 있는 가 운데 엄숙하게 태극기를 관에 씌우는 관
포식이 열리고 있다. 유족들 사이로 선 양단원들이 펼쳐진 태극기를 들고 입장 한 후 관포식의 의미를 알리는 설명을 하고 익숙한 솜씨로 태극기를 들어 관을 둘러쌌다.
관포식을 마친 안치실은 대한민국의 오늘을 위해 헌신했던 삶을 자랑스럽게 주변에 알리듯 커다란 태극문양과 함께
환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고인과의 이별 이 아쉬워 눈물을 보였던 유족들의 얼굴 도 아버지, 남편, 할아버지의 자랑스러 운 모습에 위안을 받은 표정들이다.
“정부가 이렇게 직접 태극기를 전달해 주는 것은 국가유공자의 공훈을 인정하
고 끝까지 그 영예를 지켜준다는 깊은 뜻이 담긴 것으로 생각됩니다. 젊은 시 절 국가를 위해 싸웠던 아버님의 삶이 새삼스럽게 자랑스럽고, 돌아가실 때까 지 이를 잊지 않고 예우해 주는 정부와 보훈처에 참으로 고맙습니다.”
경황이 없는 가운데 일행을 마중 나온 유족 대표는 장례 과정에 보여준 보훈처
의 관심과 지원에서 유족들, 특히 어린 손주들이 ‘자랑스러운 할아버지’ ‘나라 를 지켜낸 할아버지’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짧지만 강렬했던 예식은 고인을 마지막으로 빛나게 했던 ‘대한민국의 엄 숙한 마지막 경례’, 그것이었다.
제869호 2017년 10월 1일 일요일 (월간)
4 기획 - 따뜻한 보훈
밝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파트 2층 으로 올라서자 현관까지 10여 미터 거리 가 남아있는데도 여느 식구 많은 가정집 같은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일요일 오후, 조용한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보훈섬김이 정형욱 씨와 김삼길 참 전유공자(87세)가 밝은 표정으로 대화 를 나누고 있었다.
“막내딸처럼 일을 성심껏 챙겨줘서 정 말 고맙지요. 나이가 많아 혼자서 살림 살이를 하기가 어려운데 식구처럼 정리 해주고, 이야기 해주고, 반찬도 해주 고…. 지내기에 불편한 게 없어요.”
“할아버지가 아주 깔끔하고 밝게 사셔 서 저도 일하며 힘이 됩니다. 특히 이웃 과 나누는 걸 좋아하셔서 과일이나 차를 사다두고 친구들 불러서 함께 드시고 이 야기를 나누는 걸 보면, 참 아름답게 사 신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게도 언제나 아버님처럼 느껴지지요.”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칭찬에 바쁘다.
이 따뜻한 대화가 가능했던 것이 바로 찾아가는 재가복지서비스 ‘보비스’ 덕분 이다.
그가 보훈섬김이 일을 시작한 것이 2007년 1월이니, 그는 보비스 10주년의 역사를 함께 써온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얼마 전 열린 보비스 10주년 기념 식에서 ‘좋은 사례’로 뽑혀 발표까지 하 게 된 것은 그동안의 꾸준한 노력을 인 정받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어르신을 대하지만 날마 다 반복되는 일인지라 돌이켜 보면, 온 마음을 다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습 니다. 어르신의 건강, 영양, 위생, 약 복
용 등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생각하며 미소와 친절함으로 다가가려 하지만 과 연 그렇게 느끼고 계신지 궁금하기도 하 고요.”
아직도 늘 부족하다는 그의 말에서 그 가 이 일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6·25전쟁으로 남편을 잃어 홀로 어렵 게 자녀를 키워내고 지금은 혼자 외롭게 사시는 분, 부상으로 앞을 보지 못하시 는 분, 아들을 먼저 보낸 아픔을 가슴에 묻고 사시는 분, 전쟁에서 얻은 부상으 로 병상에 누워있는 남편 대신 가사와 생계까지 책임지고 살아오신 분, 한 분
한 분 사정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가족같 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10년 간 이분들을 섬길 수 있었 다는 사실이 오히려 고맙다고 얘기한다.
콩, 현미, 호두 외 4종 영양미숫가루 를 두유와 함께 매일 잡숫게 하니 다리 힘도 좋아지시고 혈압, 당뇨까지 좋아 지신 90세 어르신께서 “내가 이렇게라 도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섬김이 덕”이 라는 한 마디에 마음이 따뜻해진 경험 도 있다.
특히 미용실을 운영했던 경험이 있는 그는 ‘가위손’ 능력을 발휘해 2개월에 한 번씩 머리를 예쁘게 다듬어 드리기도 한 다. 지역사회 연계로 어르신들의 장수사 진 촬영과 사랑의 우리밀 빵 나누기도 그만의 ‘특급 서비스’다.
그는 “이분들과 함께해서 난 참 행복 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가족에게도 잘 듣기 어려운 “고마워” 라는 말을 이렇게 매일 매일 들을 수 있으니 누구보다 행 복한 게 당연하다는 얘기다.
그의 국가유공자와의 ‘따뜻한 동행’은 연세 많으신 유공자들의 일상에 든든한 힘이 되고 있다.
보훈섬김이와 유공자, 함께하는 ‘섬김과 나눔’의 삶
보훈섬김이 정형욱 씨와 김삼길 참전유공자
영구용 태극기와 관포식…대한민국의 마지막 ‘경례’
‘따뜻한 보훈’ 현장을 가다
‘따뜻한 보훈’ 선포 100여 일이 지난 현장에서는 새 정책이 어떤 모습으로 국가유공 자의 생활로 다가가고 있을까. <나라사랑>은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많은 국민과 국가 유공자의 기대 속에 펼쳐지고 있는 ‘따뜻한 보훈’의 정책현장을 점검한다. 찾아가는 현 장 서비스 ‘보비스’에서부터 국가유공자 발굴과 예우, 그리고 영예로운 삶의 마지막 현 장까지 이어지는 정책의 현장을 보다 생생하게 취재한다.
전남 나주 김삼길 국 가유공자 댁을 찾은 보훈섬김이 정형욱 씨가 함께 정겨운 대 화를 나누고 있다.
지난달 23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서울지방보훈청 최은진 팀장이 유족에게 영구용 태극기를 전달하고 있다.
전달된 태극기로 관포식을 끝낸 후 무공수훈자회 선양단원들이 고인 에게 경례를 하고 있다.
2017년 10월 1일 일요일 (월간) 제8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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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원격의료 ‘혁신’ 도입
□ 미국
미국의 제대군인 의료서비스는 등록환 자 800만 명을 돌보는 미국 내 가장 큰 의 료보건 시스템이다. 이중 70만 명이 여성 제대군인으로 전체의 7%를 차지한다.
미국은 미국 전역의 의료센터 168개 소와 지역사회 기반 외래환자진료소 1,050여 곳을 관리하고 있다. 보훈부는 암 치료부터 가정 요양서비스까지 다양 한 질병 치료를 위탁하고 비용을 지원하 고 있으나, 여전히 제대군인의 83%가 보훈부의 의료서비스 혜택을 받지 못하 고 있다.
보훈의료청은 여성 제대군인에게 종 합적인 1차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 해 2010년 ‘모든 제대군인들이 필요로 하는 1차 의료서비스 제공자’ 제도를 도 입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이 제도를 경험한 이용자들은 다른 1차 의료서비 스 제공업자를 배정받을 때보다 전반적 으로 서비스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 타났다. 이들은 접근성, 의사소통, 공동 의사 결정, 자기관리 지원, 포괄성, 직원 분야 등 6개 분야에서 높은 만족도를 보 였다.
특히 모든 여성 제대군인은 유방암 치 료를 받을 수 있는데, 보훈부의 진료소 60곳에서 디지털 유방촬영술을 제공하 며 다른 진료소를 이용할 경우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보훈부의 유 방암 자궁경부암 검사비율은 민간 비율 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보훈부는 130개의 의료센터에 부인과 를 두고 있으며 산모 의료와 분만 비용 을 지원하면서 자격요건을 갖춘 제대군
인에게는 7일간의 신생아 돌봄 서비스 를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보훈부는 산모에 대한 의료 지원, 불임치료, 제대군인 정신건강 서 비스를 연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특히 2016년의 경우 보훈부 의료서비스를 이 용한 여성의 40%가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을 정도로 이 서비스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보훈부는 의료서비스의 혁신 프 로젝트로 원격의료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1차 의료, 부인과, 제약, 약국, 정신건강, 모성의료 등 6개 분야를 포함하고 있다.
한편 보훈부는 여성제대군인 콜센터 를 별도로 운영해 5만 7,861건의 전화를 받고 4만 6,424건의 정보자료를 제공했 으며, 1,003건의 채팅상담을 실시해 제 대군인과의 소통통로를 적극 확대해 나 가고 있다.
□ 캐나다
캐나다는 2016~17년 기간 중 1만 4,122명의 여성 제대군인에게 보상 등의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이는 서비스를 제 공받은 제대군인의 11% 수준이다.
캐나다의 여성 제대군인은 남성과 동 일한 보상과 서비스를 받을 자격을 갖고 있으며, 현재 여성 제대군인만을 위해 별도로 고안된 프로그램은 없다. 이는 캐나다가 양성평등을 추구하기 위한 ‘젠 더기반평가’ 실현 의지에 따른 것이다.
제대 후의 삶에 대한 연구 결과(2013 년) 여성 제대군인은 건강, 정신건강, 장 애 등에서 남성 제대군인과 비슷한 양상
을 나타냈으나 남성에 비해 일상 생활을 하기 위한 활동에 더 많은 도움을 필요 로 하고, 고용률은 더 낮은 것으로 나타 났다.
특히 여성 제대군인은 제대 후 노동시 장에 참여할 가능성이 39%로 남성의 59%에 비해 20%포인트나 낮게 나타났 다. 이에 따라 여성 제대군인은 제대 후 의 총 수입 감소폭과 고용소득 감소폭이 남성보다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 보훈부는 이 같은 상황을 감안 해 우선 여성 제대군인의 민간부문 적 응, 전직과 특정분야 진입장벽 등에 대 한 연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보훈부는 향후의 정책으로 △ 남성 중 심의 혜택 자격요건 △ 외상 관련 정신 건강 치료 △ 정신 건강 서비스 조기 공 급 △ 자료 수집 및 분석 투자 △ 가족과 간병인의 요구 등에 대해 새로운 검토와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 호주
호주는 특히 여성 제대군인에 대한 연 구가 활발해 ‘베트남 참전 및 현 여성 제 대군인의 건강과 복지’ ‘중동 작전지역 에 파견된 여성의 모자 보건 영향’에 대 한 연구를 완료했고 현재 ‘이전과 복지 연구 프로그램’ ‘호주 보건복지 기관과 의 전략적 협력관계’에 대한 연구가 진 행 중이다.
여성 제대군인과 여성포럼에서도 ‘노 숙 및 빈곤계층 여성’ ‘제대군인 자녀들 을 위한 지원’ ‘복무 관련 여성 건강상태 분석’ ‘제대군인과 가족에 대한 전 생애 적 서비스 전달 접근법’ ‘새로운 서비스 발굴’ 등을 주제로 활발한 토론을 진행 하고 있다.
최근 호주 보훈부는 제대군인 정책 개 혁을 추진 중이다. 보훈부가 추진 중인 개혁은 간편한 서비스 신청 지원, 쉽고 성공적인 이전 절차, 조기개입과 예방 중심의 의료, 신체 정신건강을 위한 조 기 치료, 제대군인의 자기관리 등이다.
이를 위해 보훈부는 접근성을 향상하
는 등의 제대군인 서비스 개선, 디지털 화 간소화 현대화된 절차 개선, ICT 플 랫폼의 최신화, 선제적 개입과 행동경제 학을 통한 서비스 제공 등을 전략의 중 심으로 고려하고 있다.
특히 보훈부는 최근 제대군인 대상의 정보와 민원을 처리하는 ‘마이서비스 (MySevice)’ 베타판을 개통해 서비스의 혁신을 추구하고 있으며, ‘조기 개입 모 델’을 통해 국방인력과 관련된 사고를 조기발견-개입-지원하는 시스템을 운 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올해에는 정신질환이 발생 할 경우 복무와 관련이 있다는 입증 요 구를 하지 않고 관련 의료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획기적인 제도도 도입했다.
□ 뉴질랜드
뉴질랜드의 여성 국방인력은 17%에 이르며, 민족별 구성에 있어서도 현지의 마오리족이 13%를 차지하고 있다.
뉴질랜드 제대군인의 4대 청구 질환은 청각이 31%로 가장 많고, 정형외과 24%, 피부질환 7%와 정신건강 관련 질 환도 10%에 이른다.
뉴질랜드는 새로운 제대군인 관련 법 령을 통해, 아픈 제대군인에 대한 도움 에서 ‘지원과 돌봄’으로, 기관 의존에서 변화하는 환경과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독립’으로, 장애비용 지급에서 ‘경제적 서비스적 지원’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
또 부상과 질병에 대한 치료에서 ‘최 적의 신체적 정신적 회복’으로, 사회적 재활에서 ‘가정과 사회에 대한 기여와 소속감’으로, 직업 재활에서 ‘직업 개발’
로 집중 분야를 바꿔가고 있다.
이와 관련 보훈부는 여성 제대군인에 대해 △ 군사 관련 작전으로 발생하거나 악화된 부상과 질병에 대한 지원 △ 아 동 돌봄 서비스와 직업 지원 등 가족지 원과 전사자 가족에 대한 특별 지원 △ 자격 있는 제대군인이 가정에서 독립적 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 등을 실시하고 있다.
국제보훈워크숍 발표문 (요약)
2017년 국제보훈워크숍은 ‘여성 제대군인 지원정책의 현 주소와 미래 발전 방안’을 주제로 개최됐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소수였던 여성 제대군인을 위해 미국 등 선진국은 이와 관련해 어떤 지원정책을 갖고 있는지, 어떤 정책적 고민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틀간의 짧은 워크숍이었지만 ‘따뜻한 보훈’으로 정책의 큰 흐름을 바꿔가 고 있는 우리 보훈정책에 중요한 정책적 시사점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음은 해 외 참석자의 워크숍 발표 내용 요약.
미국 캐나다 여성 진입장벽 본격 연구
제869호 2017년 10월 1일 일요일 (월간)
6 단체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회장 강 길자)는 지난달 12일부터 14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용문산지구 전적비, 가평 지구 전적비 등 6·25전쟁 격전지 탐방행
사를 가졌다.
이번 탐방행사에는 강길자 회장과 전 국 16개 시도지부 회원, 일반시민 등 78 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12일 경기도의
용문산지구 전적비, 지평지구 전투전적 비, 용문산지구 전투전적비 탐방을 시작 으로 13일 강원도 홍천지구 전투전적비, 인제지구 전투전적비, 백골병단 전적비, 필리핀군 전투전적비, 6·25춘천대첩 기 념탑, 14일 가평지구 전적비 등 9곳을 방 문하고 참배했다.
강 회장은 이날 행사와 관련해 “전적 비 탐방을 통해 수많은 젊은이가 목숨 으로 맞서 이 나라의 자유와 민주주의 가 지켜졌으며, 듣지도 알지도 못했던 나라의 자유를 위해 희생한 참전국의 공훈을 되새기는 귀중한 시간이 됐다”
고 말했다.
6·25전쟁 주요 격전지 탐방
미망인회
대한민국상이군경회(회장 김덕남)는 지난달 11일부터 15일까지 4박 5일간 6·25전쟁 유엔군전상자 초청행사를 가 졌다.<사진>
이번 행사에는 미국, 캐나다, 푸에르 토리코, 터키, 에티오피아 등 6개국의 유 엔군 전상군인 16명과 보호자 16명이 참 가했으며, 12일 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전쟁기념관, 파주 도라전망대, N서울타 워 등을 방문하고 15일 출국했다.
13일 영등포 타임스퀘어 아모리스홀 에서는 오찬 환영연을 열고 각국 외교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상이군경회 임직원 등 200여 명과 감사 인사를 나누는 시간 을 갖기도 했다.
김덕남 회장은 이날 환영연에서 “지금 대한민국의 번영과 자유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시어 전상을 입으신 노병 여러분 의 희생 덕분에 가능했다”며 “상이군경 회는 2007년부터 매년 유엔군 전상자와 가족들을 초청해 영예를 치하하고 있으 나 해가 갈수록 고령의 유엔군 전상자 분들을 모시기 어려워 안타깝다”고 말 했다.
김 회장은 이어 “북한의 핵실험과 미 사일 발사 등으로 안보가 위협받는 요즘 국제사회의 공조가 과거 어느 때보다 긴 요하다”고 말하고 “유엔군 전상자분들 을 잊지 않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따 스한 마음을 가슴 깊이 새겨 가시길 간 절히 기원한다”고 당부했다.
상이군경회는 2007년부터 6·25전쟁 당시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한 전상군인 을 초청하는 행사를 시작해 올해로 10년 째 유엔참전용사의 희생에 존경과 감사 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참전 유엔군 전상자 초청 행사
상이군경회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회장 박희모)는 상주시지회 (지회장 최영근)와 함께 지난 달 13일 상주시 북천시민공원 과 시내 일대에서 ‘상주 화령 지구 전투 전승기념행사’를 개최했다.<사진>
화령장 전투는 상주 화령장에서 1950 년 7월 국군 제17연대와 국군 제1사단이 남하하는 북한군 제15사단을 격퇴해 대 승을 거둔 전투로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 이 최초로 승리했던 의미 있는 전투다.
상주시와 육군 제50보병사단과 함께
한 이날 행사에는 각 보훈단체 지회장, 일반 시민, 학생 등 4,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상 상영, 전쟁영웅 소개, 6·25 참전용사 모교 명패 증정식으로 이어졌 다. 행사 후에는 참전용사, 군인, 시민 등 1,000여 명이 후천교에서 상주시청까지 2km구간 시가행진을 벌였다.
화령지구 전투 전승기념행사 개최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회장 최해 근)는 지난달 19일부터 26까지 에티오피 아 현지를 방문해 6·25참전용사와 전사 자 유족을 찾아 위로·격려하는 행사를 가졌다.<사진>
최해근 회장과 위문단 6명은 이 기간 중 한국전 참전 전사자 유족과 함께 한 국전 참전비에 헌화하고 참배했다.
이어 21일 오찬 위로행사에서는 에티 오피아 참전 전사자 유족 10명에게 각각 1,000달러의 위문금을 전달하는 한편 태 극기와 에티오피아 국기가 새겨진 혁대·
태극선 등을 위문품으로 전달했다.
최 회장은 이날 위로연에서 “반세기 전 우리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 을 때 유엔군을 파견해 북한의 공격을 방 어해 준 에티오피아의 은혜를 영원히 잊
을 수 없다”며 “전몰군경유족회 회원들 이 자발적으로 모은 성금으로 드리는 작 은 선물을 받아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위문단은 오찬 행사에 앞서 에티오피 아 참전용사회를 방문해 간담회를 갖고 영상장비를 기념품으로 전달했다.
또한 아디스아바바 시내의 한국인촌 을 방문, 참전용사후손의 장학금으로 5,000달러를 전달하고, 명성병원에서 치 료 받고 있는 참전용사의 진료비와 약제 비 2,000달러를 지원했다.
전몰군경유족회는 지난 2009년 에티 오피아를 시작으로 매년 6·25전쟁 참전 전사자와 전사자 유족을 찾아 직접 감사 와 위로의 뜻을 전하는 행사를 펼치고 있다. 유족회는 이 행사를 위해 매년 회 원들이 성금 5,000여만 원을 자발적으로 모아 기부금, 장학금, 위문품 등으로 전 달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현지 참전 유가족 위로
6·25참전유공자회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회 장 박종길)는 지난달 14일 창 원시 경남도청 대강당에서
‘호국영웅 안보·통일 결의대 회’를 개최했다.<사진>
이날 결의대회에는 박종길
무공수훈자회장과 각급 관계자, 경남지 역 호국·보훈·안보단체장, 무공수훈자 회 전국 시·도지부장과 회원, 일반 시민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안보강 연과 대회사, 안보결의문 낭독, 만세삼 창 순으로 진행됐다.
박 회장은 대회사를 통해 “북한의 무
모한 핵 도발을 초전에 분쇄하고 평화적 통일을 달성할 수 있는 최상의 무기는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여 철통같은 방위 태세를 갖추는 길 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를 마친 후 참석자들은 거제 포로수용소, 충렬사, 해병대 통영상륙작 전 전승기념비에 헌화하고 참배했다.
‘호국영웅 안보·통일 결의대회’ 개최
전몰군경유족회
무공수훈자회
2017년 10월 1일 일요일 (월간) 제8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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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2017년 제대군인주간 행사가 오는 23 일부터 27일까지 다양하게 개최된다.
올해로 6년차를 맞는 ‘제대군인주간’
은 국토수호를 위해 헌신한 제대군인들 이 자긍심을 느끼고, 국민들은 제대군인 에게 감사하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며, 기업은 제대군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마련되는 행사이다.
제대군인주간은 각종 행사를 통해 제 대군인 정책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제대군인 일자리 확보에 기여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3일 오전 11시 용산 드래곤시티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리는 제대군인주간 기념식 국가보훈처 관계자와 제대군인, 제대군인 단체, 유관기업체 관계자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날 행사에서는 제대군인주간을 선 포하고, 제대군인 취·창업 수기 공모에 서 우수작으로 선정된 9명의 제대군인 과 2017년 제대군인 고용우수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에 대한 시상이 진행된다.
제대군인에 적합한 일자리 보유 기업 이나 협력단체 등과 맺게 되는 ‘제대군인 일자리창출 업무협약’은 25일 ‘1사 1제대
군인 채용 협력’을 내용으로 이뤄진다.
협약기관이 선정되면 국가보훈처와 기관 간의 협력을 통해 최소 1명의 제대 군인 채용을 약속하는 형식으로 협약을 맺게된다.
26일 용산 드래곤시티 호텔에서 열리 는 ‘제대군인 특별한 만남의 날’ 행사는 전역 직전 제대군인과 취업에 성공한 제 대군인 등 약 100여 명이 참석한다.
이 행사에서는 취업선배 스토리 강연, 취업 컨설팅 등이 이뤄지는데, ‘취업선배 스토리 강연’은 취·창업수기 우수자 중 2 명, ‘취업컨설팅’은 제대군인 채용에 적극 적인 기업 CEO를 각각 초청해 진행한다.
이와 함께 27일 진행되는 ‘제대군인
고용우수기업 인증현판식’에서는 올해 제대군인 고용우수 인증 기업체 중 대표 적인 우수업체를 선정해 현판을 증정하 는 행사이다.
제대군인 ‘구인·구직 만남의 날’ 행사 는 10월 10일부터 내달 중순까지 각 지 역 제대군인지원센터가 중소벤처기업 부 등 일자리 관련 부처와의 협업을 통 해 맞춤형 취·창업 지원행사의 일환으로 개최하게 된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올해 들어 현재까 지 5,480개의 제대군인 일자리를 확보해 금년 목표(6,282개) 대비 87.2%를 달성 했으며, 2013년 제대군인 일자리 확보를 중점 추진한 이후 총 5만 2,698개의 일자 리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더 많은 제대군인들이 취업할 수 있도록 ‘1 사 1제대군인 채용’ 캠페인에 기업의 적 극적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2017년 제대군인주간 23일부터 1주일간 운영
“제대군인에게 감사와 일자리를”
지난달 18일부터 23일까지 5박 6일간 6·25전쟁에 참전한 미국, 푸에르토리 코 참전용사와 가족 100여 명이 재방한 했다.
이번 재방한에는 지난해에 이어 미군 소속으로 참전했던 푸에르토리코 참전 용사들이 초청돼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 다. 미국 자치령인 푸에르토리코는 6·25 전쟁 당시 미군 소속으로 6만 1,000여 명 이 참전했다.
이번 방한에는 참전 당시 제65보병연 대에서 근무하며 미 공군전투기가 적군 을 공습할 수 있도록 목숨을 걸고 적의 위치를 알려준 공로를 인정받아 동성훈 장을 받은 푸에르토리코 참전용사 이스 마엘 네바레즈와 일병으로 장진호 전투 에 참전한 미국 참전용사 딕 트롬이 포 함됐다.
방한단은 19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참 배하고 20일에는 판문점과 인사동을 방 문했다. 이어 21일 오전 전쟁기념관에 들러 전우들의 넋을 기리고, 오후에는 한국민속촌을 방문해 한국의 전통 문화 를 체험했다. 마지막 날인 22일에는 창
덕 궁 에 서 한 국 왕실 문화와 정 취를 감상한 후 감 사 만 찬 행 사 에 참석했다.
유엔참전용사 등 초청 사업은 1975년 민간단체 주 관 으 로 시 작 됐 으 며 2010년 6·25전쟁 60주년
사업을 계기로 국가보훈처에서 주관하 고 있다.
지난해까지 3만 1,000여 명의 유엔참
전용사와 가족이 한국을 다녀가는 등
‘은혜에 보답하는 대한민국’ 이미지 제 고에 기여하고 있다.
‘다시 찾은 한국’…유엔참전용사 재방한
미국·푸에르토리코 용사와 가족 100여 명
국가보훈처는 일선 현장에서 거동이 불편한 국가유공자의 일상과 건강유 지를 지원하는 보훈섬김이와 복지사 등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키는 등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본
격 추진키로 했다.
전환 대상은 보훈섬김이 1,065명을 포함한 복지인력 1,074명, 직업상담사, 국립묘지관리소 내 안내·해설사 등 24 명이며 현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2018 년 초부터 적용된다.
이번 정규직 전환으로 보훈복지 현
장 인력의 고용 안정성을 제고하고 양 질의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또 근로자의 현장 근무환경이 개선돼 국 가유공자들이 보다 안정적이고 높은 품질의 재가복지 서비스를 누리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번 전환의 주 대 상인 보훈섬김이는 당초 전환예외대상
이었으나, 지난 7월 고용노동부가 확대 된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데다, 보훈섬 김이 업무의 상시·지속성을 고려해 전 환 대상으로 최종 결정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이번 정규직 전환 과 함께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정규직 전환이 국가유공자 재가복지 기반을 더욱 강 화하고 확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훈복지인력 1,074명 정규직 전환 추진
보훈섬김이·복지사 등 포함
지난달 21일 재방한한 미국·푸에르토리코 유엔참전용사가 서울 용산 구 전쟁기념관을 찾아 전사자 명비 앞에서 경례를 하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추석 명절을 맞아 보훈 가족 위문에 나섰다.
피우진 처장은 지난달 28일 수원 보훈 요양원과 보훈원을 방문해 복지시설의 국가유공자와 유족을 격려하고 위로하 며 존경과 감사의 뜻을 전했다.
심덕섭 차장은 26일 대구보훈병원을 찾
아 입원환자를 위문하고 소통하며 환자 들을 위로한 후 직원들을 격려했다.
국가보훈처 본부와 전국 27개 보훈관 서도 추석을 맞아 실·국장, 지(방)청장과 직원들이 국가유공자를 직접 찾아 각종 위문품과 위문금, 온누리 상품권 등을 전달하며 우리 명절의 온기를 나눴다.
따뜻한 마음, 풍성한 한가위 기원
국가보훈처는 추석 연휴기간(9.30~
10.9) 현충원 등 국립묘지와 보훈병원, 지정 위탁병원 이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평시와 같이 정상 운영한다.
현충원과 호국원을 이용할 경우 인터 넷 ‘국립묘지안장관리시스템’에 접속해 안장 신청하면 국립묘지 안장대상 여부
를 심사한 후 그 결과를 유족 휴대전화에 문자메세지로 통지해 준다. 또한 추석 연 휴기간 응급환자 발생 시를 대비해 전국 5개 보훈병원은 응급실 근무인원을 보강 해 24시간 운영한다. 전국 310개의 지정 위탁병원에서도 연휴기간동안 정상진료 또는 오전진료, 응급실을 운영한다.
연휴, 국립묘지·보훈병원 정상 업무
제869호 2017년 10월 1일 일요일 (월간)
8 기획
참배객을 뒤로하고 내려와 조금 더 걸 어 ‘백범김구기념관’으로 들어선다. 그 곳에서 트레이드마크인 둥근 안경을 쓰 고 인자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 언제든 일어나 손을 맞 잡아줄 것처럼 생동감 넘치고 인자한 모 습이다. 선생의 동상 뒤로 걸린 태극기 는 마치 선생의 옷처럼 어우러져 선생이 생전 ‘나의 소원’이라 말했던 ‘자주 독립’
을 떠올리게 한다.
선생의 인자한 미소에 인사를 남기고 돌아서니 전시실 입구에 걸린 ‘나의 소 원’이 선생의 육성으로 들리는 듯 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 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 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전시관은 김구 선생의 출생부터 서거 까지 선생의 전 인생을 펼쳐놓았다. 선 생의 삶은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조선의 시간과 함께했다. 독립운동과 관련된 단 체나 활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1, 2층으로 분리된 전시관을 따 라가다 보면, 선생의 삶을 기록한 것인 지 한국 근현대사를 기록한 것인지 착각 마저 든다.
1층 전시실에는 성인이 모습으로만 익
숙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선생의 청년 시절을 만날 수 있다. 선생은 황해도 해 주에서 태어나 열일곱 나이에 매관매직 의 부당함을 목격하고 그때부터 더 바르 고 강한 조국을 만들기 위해 동학운동에 참여하는 등 앞으로 나섰다. 황해도 치 하포에서 명성황후 시해의 책임을 물어 일본인 육군중위를 처단한 것도 약관의 나이였다.
혈기 넘치는 청년이었던 선생이 민족 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데는 어머니의 헌 신이 있었다.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 는 선생을 비롯해 독립운동가를 위해 한 밤중 쓰레기통을 뒤져 아들과 임시정부 요인들의 주린 배를 채우는 등 ‘임시정부 의 어머니’로 불린 또 다른 영웅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늘 애틋했던 선생이 어 머니의 동상 세우기를 추진했으나 그 자 신은 완성을 보기 전에 서거하고 말았 다. 기념관 1층 전시실에 여사의 동상이 놓였는데, 아름다운 모습의 다른 동상과 는 달리 허리춤을 질끈 묶고 동냥 바가 지를 들고 서 있는 여사의 모습이 너무 나 사실적이라 마음이 아프다.
2층은 선생의 청년기 이후의 삶을 펼 쳐 놓는다. 2층 전시실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은 선생이 독립을 이루기 위해 발로 뛰었던 모든 곳이 나열돼 있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선생의 발자취를 떠올리게 했다. 선생은 독립운동가의 횃불이었고, 굳건한 버팀목이었다.
2층 전시실 초입에는 대한민국의 시작 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에서의 활동을 상세히 확인할 수 있다.
3년간 임시정부의 경무국장을 맡으면서 주요 인사를 보호하고, 일제 밀정을 찾 아 설득하거나 처단하며 임시정부를 수 호한 활동이 그려졌다.
이곳에서는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봉창, 윤봉길 의사 의거를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길 수 있다. 선생이 조직한 한인애국단에서 활약한 두 의사 는 우리 민족에게 독립의 확신과 용기 를 심어주었고, 갈라지기 시작한 독립 운동 세력을 다시 결집시키는데 큰 역 할을 했다.
기념관에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기쁨을 누렸으나 선생이 그토록 열망했 던 ‘자주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흉탄에 서거하시기까지 독립을 향한 선생의 절 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역사교과서를 읽듯 덤덤히 관람하다가 마음이 울컥해 지는 것은 선생의 그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이리라.
기념관 왼편의 효창원은 조국 독립에 목숨을 바친 선열을 품고 있다. ‘삼의사 의 묘’에는 4기의 봉분이 자리하고 있는 데, 묘비가 세워지지 않은 한 곳은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안중근의사의 자리다.
안 의사는 아직도 조국이 아닌 찬 땅의 지하에서 조국의 맑은 하늘과 따뜻한 햇 살을 그리워하고 있을 터다.
효창원은 모셔져 있는 순국선열의 치 열했던 생전과 달리 평화롭고 아늑하다.
그들의 삶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들른 후손들의 작은 대화와 옅은 웃음소리가 원내에 낮고 부드럽게 깔려 선열의 고단 하고 핍박받던 삶을 달래주는 듯하다.
기념관은 우리가 더는 볼 수 없는 그의 삶과 정신을 고스란히 담았다. 기념관에 서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에 마음이 저리고, 그의 조국 사랑에 감동하고, 끝내는 굳은 애국심을 마음 한쪽에 쌓는다.
효창원 순국선열과 함께 살아 숨쉬는 선생의 ‘민족혼’
현충시설을 가다 - 백범김구기념관
9월 중순의 하늘은 더없이 파랗고 높다. 청명하다 못해 시리게 펼쳐진 가을하늘 아래 로 백범 김구 선생의 기념관을 만난다.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그의 민족혼이 기념관 전체 를 감싸고 있는 듯했다. 당당한 그 모습이 효창원의 중심을 잡고 서 있었다.
백범김구기념관으로 올라가는 길에 먼저 마주치는 곳은 선생의 묘소. 일본 경찰에 쫓 기느라 임종도 지키지 못했던 아내와 합장된 곳이다. 죽어서도 삼의사를 바라보고 싶다 는 선생의 평소 바람에 따라 삼의사 묘역이 보이는 조금 높은 곳에서 자신이 이끌었던 한인애국단과 신민회 의·열사가 누운 자리를 지긋이 품고 있었다.
효창원 내에 마련된 ‘삼의사의 묘’.
아직 비가 세워지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묘가 왼쪽으로 보인다(좌).
순국선열의 묘소와 임정요인 이동 녕, 조성환, 차리석 선생,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 김구 선생 등 7인의 순국선열 영정을 모신 의열 사가 있는 효창원 입구(우).
기념관 입구로 들어서면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이 관람객을 반긴다(위). 김구 선생의 삶과 사 상을 통해 근현대사를 이해하고 통일을 지향하고자 건립된 기념관 전경(아래).
2017년 10월 1일 일요일 (월간) 제869호
9
기획
6·25전쟁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국 군에 의한 38도선 돌파였다. 북한 남침 이후 서울을 빼앗기고 낙동강까지 밀려 났던 국군이 인천상륙작전에 힘입어 서 울을 탈환하고, 남북 분단의 상징이던 38도선을 돌파했다.
그때가 바로 1950년 10월 1일이다. 38 도선이 돌파되자 국민들은 일제히 환호 성을 질렀다. 38도선 돌파는 누가 보든 지 통일로 가는 길목이었다. 그때부터 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통일에 대한 희망으로 들뜨게 됐다.
그런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에 불 을 확 지핀 것은 바로 대한민국 국군이 었다. 남침 이후 동해안에서 악전고투하 며 싸웠던 국군3사단이 낙동강 전선의 포항과 영덕에서 출발해 강릉과 주문진 을 거쳐 38도선이 놓여있는 있는 강원도 양양에 도달했다. 그때가 바로 9월 30일 이다. 숱한 전투를 치르며 북녘 땅을 바 로보고 선 국군 장병들의 감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뜻하지 않은 문제가 생 겼다. 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갖고 있던 유엔군사령부에서 아직 38도선 돌 파에 대한 명령이 내려오지 않고 있었 다. 국군 단독으로 38도선을 넘어 북진 했다가는 분명 군 지휘계통상의 문제가 야기될 수 있었고, 나아가 국제문제로까 지 비화될 소지가 다분했다. 38도선 돌 파는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38선 앞두고 유엔군 고민 깊어져 북한 남침 이후 유엔은 안전보장이사 회의 결의에 따라 대한민국에 대한 군사 적 지원을 결의함으로써 유엔회원국으 로 하여금 군대를 파병해 한국을 돕도록 했다. 그때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유엔군이 수행해야 될 전쟁목표를 ‘전쟁 이전 상태의 회복’으로 정했다.
이른바 38도선을 넘은 북한군을 무력 을 사용해 38도선 이북으로 쫓아낸다는 것이었다. 유엔안보리로부터 위임받아 전쟁지휘본부 역할을 하고 있던 미 합참 이 한국에서 유엔작전을 총괄하는 유엔 군사령관 맥아더 원수에게 주었던 임무 도 북한군을 38도선으로 격퇴하라는 것 이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38도선을 군사 적으로 회복하라는 것이었지, 38도선을 돌파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유엔의 전쟁방침은 국군3사단이 38도선에 도달할 때까지 유효했고, 유엔 군사령부는 그 범위 내에서 작전을 수행 했다. 유엔의 전쟁방침은 아직 바뀐 것 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국군이 38도
선에 도달했다고 해서 넘을 수는 없었 다. 국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문제의 소 지를 없애려면, 유엔에서 먼저 전쟁방침 을 변경할 필요성이 있었다.
6·25전쟁은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남 침전쟁이지만, 유엔의 입장에서는 ‘유 엔의 전쟁’이었다. 왜냐하면 유엔안보리 는 대한민국에 대한 북한의 무력공격을 국제평화를 파괴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북한에 대한 무력 제재를 결의했기 때문 이다.
나아가 유엔안보리는 유엔군을 통합 지휘할 유엔군사령부를 설치해 운용하 도록 조치했다. 그런 점에서 6·25전쟁은 비록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이었지만, 전쟁수행은 유엔이 총괄하는 유엔의 전 쟁이었다.
최초 돌파, ‘국군의 날’ 연원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대한정책이 비 록 ‘전쟁 이전 상태의 회복’에서 ‘한반도 의 통일’로 바뀌었다고 해도, 유엔에서 정당한 절차를 밟아 유엔의 정
책으로 채택해야 했다. 유엔총 회에서 한반도에서의 전쟁정 책이 한반도통일정책으로 확 정된 것은 1950년 10월 7일이 었다.
그에 따라 미군을 포함한 유 엔군의 예하 부대들은 10월 9 일에야 38도선을 돌파하게 됐 다. 이는 유엔총회 결의에 따 른 적법적인 군사행동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10월 7일 유 엔 결의가 있기 전까지는 국군 이 아무리 빨리 38도선에 도달 한다 해도 작전지휘권을 갖고 있던 유엔군사령부가 국군의 38도선 돌파를 승인해 줄 것 같 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러했다. 1950년 9 월 29일, 서울 탈환식에 참석했 던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원 수에게 38도선 돌파문제를 꺼 냈을 때, 맥아더는 아직 유엔에 서 그에 대한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정 총장은 이를 원만히 해결해야 될 입장 에 놓였다. 그렇지 않으면 작전 지휘권 행사를 놓고 한미간 군 사적 대립뿐만 아니라 외교적 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정 총장은 대통령의 북진명 령도 받들면서, 유엔군사령부 와의 작전지휘권 행사에 대한
마찰도 피할 묘안을 강구했다. 워커 미8 군사령관을 찾아가 38도선 북쪽에 있는 북한군 진지가 아군에게 위협적인데, 그것을 파괴하고 내려오겠다고 했다.
이에 워커도 처음에는 내켜하지 않다 가, 정 총장에게 그렇게 하라며, 38도선 월경을 승인했다.
정 총장은 곧장 강릉에 있는 1군단사 령부로 가서 김백일 군단장과 함께 양양 으로 달려가,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3 사단 23연대 3대대에게 38도선 돌파를
명령했다. 그렇게 해서 국군3사단이 최 초로 38도선을 돌파하게 됐다. 통일을 향한 힘찬 거보였다. 뒤이어 38도선에 도달한 국군사단들도 38도선을 넘었다.
국군이 38도선을 최초로 돌파한 10월 1 일을 현재 ‘국군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남정옥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 연구위원, 문학박사
1950년 10월 1일, 국군에 의해 38도선이 최초 돌파된 후 찍은 기념사진.
국군 3사단의 38선 최초 돌파, 통일 향한 큰 걸음되다
6·25전투현장과 호국영웅 - 38선 돌파 영웅들
제869호 2017년 10월 1일 일요일 (월간)
10 현충
채상덕 선생은 황해도 출생으로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만주로 망명해 대한통군부 총장, 대한통의부 부총 장, 의군부 총장을 역임하며 만주에 서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1910년대에 독립의군부가 와해되자 국내에서 활동 이 어렵다고 판단해 압록강을 넘어 남만주로 망명했 고, 1922년 대한통군부 총장에 선임됐다. 이후 대한 통의부 부총장으로 선임돼 이주한인사회를 복원하고 만주 한인의 삶을 지원했다. 그러나 통의부 내에서 이 념과 노선의 갈등이 발생했고, 복벽주의 계열 인사들 은 1923년 통의부를 이탈해 대한의군부를 조직해 선 생을 총재로 추대했다.
1923년 여름 중국 남만주 화전현에서 독립운동 지
도자 58명과 함께 만주독립운동계의 통일과 진로에 대해 논의해 ‘만몽신당’이 편제되고 선생은 비서라는 중책을 맡게 된다.
1924년 항일무장투쟁을 주된 노선으로 하는 참의 부가 성립되자 선생은 자신의 제자와 부하들을 참의 부에 가입시켜 독립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1925년 3월 참의부 회의장소를 밀정 이죽파가 일제의 초산경찰대에 밀고해 일본경찰이 이곳을 기습 공격 했고, 많은 참의부원들이 전사하거나 중상을 입는 사 건이 발생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선생은 비통함에 젖어 제자 이 수홍에게 독립군이 돼 자신의 의지를 이어줄 것을 당 부하고 “부하가 다 죽었으니 나 혼자 살아있을 면목 이 없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자결순국했다.
1952년 10월 국군 제9사단과 중공 군 제38군 예하 3개 사단은 철원평야 서북단의 백마고지에서 치열한 고지 공방전을 전개했다. 백마고지 전투는 10일 동안 고지의 주인이 24번이나 바 뀌고 하루 평균 5만발 가량의 포탄이 작렬한, 세계 전 쟁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진일퇴의 혈전 이었다.
1952년 10월 11일 국군 제9사단 제29연대 제2대대 장인 김경진 소령은 사단장으로부터 불과 1시간 전 제1대대가 물러났던 정상을 탈환하라는 명령을 받고 역습을 감행했다.
그는 고지 정상의 중공군이 진지보강 작업을 시작 하기도 전에 빗발치는 총탄과 포탄 파편을 뚫고 포복 으로 전진해 최전방으로 나아가 부하들을 독려하며 진두지휘했다. 김 소령은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함 께한 부하를 진심으로 아꼈고, 육박전이 벌어지는 상 황을 뒷전에서 보고 있지 않았다.
정상 20m 앞까지 진격한 김 소령은 최후의 돌격사 격을 감행하던 중 적의 박격포탄에 의해 현장에서 전 사했다. 그의 전사는 대대원의 전투의지를 불살라 과 감한 돌격으로 이어지게 했고, 결국 백마고지를 탈환 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달의 독립운동가 심호 채상덕
선생(1862~1925)압록강을 넘어 조국 독립의 푯대를 세운 의병
저항과 역습의 최전방에서 이끈 백마고지 탈환
이달의 전쟁영웅 김경진
육군 중령(1920. 9. 8~1952. 10. 11)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은 지난달 26일 겨레의 집 2층에서 국채보상운동 110주년을 맞아 ‘하나 됨 으로 뜨거웠던 그날들: 1907년 국채보상운동’ 특 별기획전 개막식을 개최했다.
오는 12월 3일까지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체험 동 2층)에서 진행되는 이번 특별전은 일본제국주 의의 경제적 침탈에 맞서 국권을 지키고자 했던 국 채보상운동의 의미와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하기 위한 것으로 ‘국채보상기성회취지서’, ‘단연상채 광고가’ 등 75점의 자료가 전시됐다.
독립기념관은 이번 특별전이 110년 전 국채보상 운동의 현대사적 의의를 되돌아보고 독립기념관 으로 이어진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돼 국민 스스로 1,300만 원의 나라 빚을 갚고자 했던 주권 수호운동이다. 국채보상운동은 자발적으로 일어 나 지휘체계가 없었다는 한계 때문에 일제의 방해 와 탄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끝내 좌절 로 끝났으나, 국권 회복을 위한 투쟁으로 역사적 의의가 크다. 현재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재를 준비 중이다.
국채보상운동 특별기획전
정부는 TV수신료 면제대상 국가유공자 중 디지 털TV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국가유공자가 디지털 TV를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TV수신료 면제대상은 독립유공자 본인과 독립 유공자의 선순위유족, 전·공상군경, 4·19부상자, 공상공무원, 특별공로상이자, 5·18부상자다.
구매 가능한 디지털TV는 국내 TV제조업체의 4 개 제품군(24~49형) 13개 모델이며, 가격은 16만 5,000원~59만 원까지 다양하다.
보급형 디지털TV 구매와 디지털 방송매체에 대 한 안내와 지원은 디지털방송 시청지원센터로 문의.
국번 없이 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