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wen 이론의 문화적 보편성과 특수성에 관한 一考
이 선 혜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I. 서론
지난 20-30년 동안 한국의 가족치료 분야에서는 다양한 가족치료이론을 국내에 도입함으로써 우리사회의 가 족문제에 대한 접근에 전기를 마련했다. 변화하는 우리사회의 가치관, 가족구조, 가족관계양상에 따라 가족치료 분야에서는 다양한 가족과 문제유형을 대상으로 하는 가족치료모델의 개발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동 시에, 도입된 이론을 이러한 대상과 문제에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 제 이론들을 우리의 문화적 상황에 맞게 수 정 적용하는데 대한 요구도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21세기 가족치료 분야의 최대과제는 도입된 이론을 우 리의 문화적인 특성에 적절하게 수정・보완함으로써 가족치료방법을 보다 활성화시키는 것임은 우리 모두 공 감하는 바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적 필요성에 따라, 본고에서는 가족치료이론의 효시로써 미국에서 널리 사용되어 온 Bowen의 가족체계이론 (Family Systems Theory)을 대상으로 한국가족에 대한 적용가능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 서 Bowen 이론의 문화적인 보편성과 특수성을 논함으로써 그의 이론 중 문화간 장벽을 초월하여 적용될 수 있는 측면과 근본적인 문화적 차이로 인해 그 활용의 정도에 제한이 있는 측면에 대해 논의하고, 그의 이론을 한국가족에 적용한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이론의 활용가치에 대한 논의의 기초로 삼을 것이다. 이러한 논의의 출발로써 II장에서 Bowen의 가족치료이론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하는데, 이 과정에서 언급되는 Bowen의 이론 은 그가 집필한 다수의 저서 중 세 문헌 (1988, 1976, 1966)을 바탕으로 한다.
II. Bowen의 가족치료이론
1. Bow en 이론의 핵심개념들
Bowen의 가족체계이론은 1960년대 그 핵심개념들이 정립된 이래 Carter와 Orfanidis (1976), Fogarty (1976a,
b), Guerin (1987, 1986)을 비롯한 여러 가족치료자들을 거치면서 변화・발전해 왔다. Bowen은 이론은 자연과
학에서 생물의 행위를 설명하고자 세워진 자연체계이론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자연체계이론에 따르면, 생물
의 행위는 모든 생물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두 가지의 상반되는 생명력 (life forces)에 의해 유발되고 조절
된다. 개별성 (individuality)
1)은 유기체가 자신의 의지에 따르고 독립적이며 개별적인 실체로 존재하고자 하는
욕구이며, 공동성 (togetherness)
2)은 타자의 의지에 따르고 의존적이며 타자와 공동체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욕 구이다. 이와 흡사하게, 인간도 유기체로서 개별성과 공동성이라는 두 가지의 욕구를 동시에 가지면서 양자간 의 상충되는 성질로 인해 갈등한다. 개인은 적절히 기능하기 위해 개별성과 공동성의 두 욕구 간 배분을 조절 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그의 자아가 분화 (differentiation)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아분화 (differentiation of self)는 Bowen의 이론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으로 개인의 자아분화는 개인 의 내면 및 타인과의 관계 차원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는데, 개인의 정신 내적 개념으로서 분화 란 사고와 느낌을 분리시킬 수 있는 능력을 말하며 인간관계 차원의 개념으로서 분화는 자신과 타인을 분리시 켜 사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개인이 자아분화, 즉 정서적 분리를 성취하는 정도에는 개인차가 있는 데, 그 차이는 그의 부모가 원가족으로부터 분화를 달성한 정도와 그 자신이 부모, 형제, 기타 가까운 친척과 가지는 관계의 특성이라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분화된 사람은 독립적으로 사고하며 신념에 따라 결정을 내리고 행동한다. 또한,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는데 대한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다. 미분화된 사람은 독립적으로 명확히 사 고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여 상황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며 자신과 타인을 융해 (fuse)시키고자 한다. 자아분화 는 이분적 또는 결정적 개념이 아니라 연속적인 개념으로서 평생을 통해 성취해 가는 “자아분화 과정”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되며, 개인의 분화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0에서 100까지로 이루어진 분화척도 (scale of differentiation of self)를 사용하기도 한다. 완전 분화 (100)는 이상적인 상태로서 일반일들이 자신의 원가족으 로부터 정서적으로 완전히 분리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미분화된 인간관계 (특히 가족의 경우)는 역기능적인 것으로써, 이인관계 (dyad)상의 긴장과 갈등을 회피하 고자 형성하는 삼각관계 (triangles), 미분화된 부모와 자식간의 정서적 융해를 칭하는 핵가족 정서체계 (nuclear family emotional system), 부모의 불안이 자녀에게 투사되는 가족투사과정 (family projection process), 가족의 정서적 과정이 세대를 거쳐 전달되는 다세대 전수과정 (multigenerational transmission process), 형제순위 (sibling position), 융해가 심한 개인이 원가족과의 정서적 접촉을 피함으로써 긴장을 감소 시키는 정서적 단절 (emotional cutoff), 사회적으로 만연된 정서 및 가치가 가족의 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 는 사회정서적 과정 (societal emotional process) 등과 같은 관계 및 과정 속에서 발견된다. 이상에 소개된 핵 심개념들을 포함하여 Bowen의 가족체계이론은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다 (김유숙, 1998; 김정택, 심혜숙, 1993; 송성자, 1995).
2. 치료과정 및 기법
Bowen식 가족치료의 궁극적인 목적은 불안 (anxiety) 수준을 감소시키고 자아분화를 촉진시키는 것이다. 개 입에 앞서 치료자는 클라이언트의 문제가 그를 비롯한 주위사람들이 미분화된 방식으로 서로에게 정서적 반응 을 하는데 기인한다는 가정하에 치료과정 속에서 개인이 정서적 분리와 중립성을 지닐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하 면서 높은 수준의 분화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다. 변화는 불안수준이 낮을 때 일어날 수 있으며, 행동상의 변화는 자신에 대한 통찰력이 전제되었을 때 비로소 발생하게 된다.
Bowen 가족치료에서 치료자는 코치 또는 자문인으로서 내담자가 핵가족의 범위를 넘어선 넓은 의미의 가족 관계에 있어서 역기능적인 부분을 발견해낼 수 있도록 지도한다. 개입과정에서 개인으로 하여금 자세한 원가 족도를 그리도록 하고 다양한 구성원간의 관계양상에 대한 인식을 갖도록 지도한다. 지도의 방법으로써 내담
1) 국내에서는 개성화 (김정택, 심혜숙, 1993), 분화 (최선화, 1995), 개별성 (김유숙, 1998)으로 번역된 바 있다.
2) 국내에서는 동질화 (김정택, 심혜숙, 1993), 통합 (최선화, 1995), 연합성 (김유숙, 1998)으로 번역된바 있다.
자로 하여금 통찰력을 증진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하고 유용한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접근은 Bow en 가족치료의 특징이자 주요기법이기 때문에 치료자의 관심은 사정의 내용을 바탕으로 가족관계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사항이 내담자에게서 나오도록 유도하는 질문을 구성하고 던지는데 있다 하겠다.
변화의 과정 면에서, Bowen식의 치료에서는 변화가 면담과 면담 사이에, 대부분 내담자의 일상생활에서 장 기간에 걸쳐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개입 양식은 치료자가 가족역동에 직접 개입하고 권위적인 제안을 하며 면 담 중 가족관계의 양상에 극적인 변화를 꾀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 (Minuchin, 1974; Minuchin &
Fishman, 1981)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대신 치료자는 내담자가 그의 생활 속에서 행할 수 있는 다양한 과제 를 부여하는데, 편지, 전화, 방문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여 그간 단절되었던 관계를 회복하거나 삼각관계를 해체하도록 하는 등의 과제가 여기에 포함된다.
III. Bowen 이론의 문화적 보편성과 특수성
비교문화적으로 볼 때, 현대산업사회에서 가족이라는 생활공동체는 문화와 사회라는 장벽을 초월하여 재생 산의 보편성을 가지는 것으로 관찰된다. 동시에, 가족은 생활양식으로 표현되어지는 문화적 차이로 인해 가족 의 구조, 관계에 대한 규범에 있어서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가족이 가지는 이러한 문화적 보편성과 특수성을 고려할 때 서구에서 개발된 가족치료이론을 한국적 상황에 적용함에 있어서도 직접 적용가능한 보편적인 특성 은 무엇인지, 동시에 수정 보완이 요구되는 특수한 부분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러한 이론의 문화적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고찰이 가족치료이론의 횡문화적인 적용을 논의함에 있어서 하나 의 유용한 접근법이 될 수 있기에 본 고에서는 Bowen 이론의 적용에 관한 논의에 이를 활용하고자 한다.
1. Bow en 이론의 문화적 보편성
우리의 문화와 가족관계 양상에 보다 부합하는 치료 모형에 대한 제고에 있어서 Bowen 이론이 기여하는 바 는 문화를 초월하여 적용될 수 있는 인간관계상의 보편적 정서에 대한 그의 통찰력에 근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인간관계의 원동력은 모든 유기체가 자연체계로서 가지는 개별성과 공동성의 욕구 사이에서 개체를 조절하고자 하는 데에 기인한다고 보면서 두 욕구간의 적절한 조절을 통해 갈등적인 인간관계의 실마리를 풀 려고 한 그의 시도는 그 나름의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나아가, 개인의 이러한 기본적 욕구 및 대응방식은 그 가 속한 가족의 특성에 기인한다는 점, 즉 세대간에 전수되는 것으로 보는 그의 시각은 가족관계에 있어서 문 화를 초월하는 보편성에 근거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세대 전수라는 용어 자체는 우리문화에 있어서 새로운 것일 수 있으나 개념상으로 볼 때 종종 가족과 가
문을 동일시하는 우리문화의 관점과는 잘 맞아떨어진다. 즉, 유교문화에서 가족은 다세대로 구성되며 때때로
역사적인 측면을 내포하는 가문 (家門)과 동일시되기도 하는 가운데 개인과는 불가분의 관계로써 인식되고 있
는데 (최봉영, 1994), 여기서 개인과 불가분의 관계란 가족이 가치와 신념을 포함하는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
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역으로는 개인의 행위가 대외적으로 가족의 특성을 대표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점을 말한다. 이렇듯, 우리문화에서 가족 또는 가문에 대한 이해를 개인에 관한 이해의 기초로 삼은 점으로 미
루어 보아 Bowen의 ‘세대간 전수’ 개념은 이미 우리의 문화 속에 자리잡고 있는 바 용어의 적용에 있어서 별
무리가 없다. 또한, Bowen의 이론에서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개념들, 즉 삼각관계, 출생순위 등은 우리문화에
서 전통적으로 관찰되어 온 가족문제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소외되는 친밀한 모자관계, 아들을 사이에 둔 고 부갈등, 장자의 권리・의무를 둘러싼 형제간 갈등 등 이미 널리 인식되어 온 다양한 문제들을 설명하는데 있어 서 그 자체로써 유용하다.
2. Bow en 이론의 특수성
우리사회는 지난 한 세기 동안 다양한 방식을 통해 서양문화에 노출되는 과정에서 가족과 가족관계면에서 많은 변화를 경험해왔다 (김은희, 1993; 김흥주, 1993; 최준식, 1997; 통계청, 1991; 함인희, 1995; Sung, 1995).
가족구조를 비롯하여 역할기대에 있어서 지난 500년간 우리 문화에 깊이 뿌리내려온 유교전통이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듯하다.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서구식 가치관이 공존하면서 가족의 상호관계가 단일한 규범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 오늘날, 더 이상 정상적이고 기능적인 가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어내기란 불가능한 듯 이 보인다.
이러한 변화양상은 비단 우리사회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서양문화, 특히 본 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Bow en이론의 부화기 역할을 한 미국 백인계 중산층 문화에서도 지난 반세기 동안 나타난 현상이다. 성과 결 혼에 관한 관념의 변화와 더불어 동거, 편부모 가족, 혼합가족, 선택에 의한 무자녀 부부, 동성간의 결혼과 자 녀양육 등 대체적인 형태의 가족들이 증가하면서 기성 가족치료이론의 전제에 부합하는 않는 가족의 비율이 급증했다 (Blumstein & Schwartz, 1983). 따라서, 가족치료 분야에서는 점진적으로 정상적 발달(normal development)보다는 기능적 적응 (functional adaptation)에 초점을 맞춘 사정과 치료를 시도하고 있으며, 기능 과 역기능의 개념은 보다 다양하고 유연한 방식으로 적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시각에서 볼 때 우리사회 전반에서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가족에 대한 전 제는 Bowen 이론의 생성배경이 되는 미국의 백인중산층 문화 (이하 미국 주류문화)와는 두드러지게 구별되며, Bow en 이론을 우리문화에 적용시키는 작업에 있어서 그 이론의 특수성은 바로 여기에 근거하는 것이라 하겠 다. 이 장에서는 최근 한국 가족의 다양한 변화양상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미국 주류문화가 상이한 성격으로 규 정되는 바에 대한 고찰에 그 목적을 두고, 양대 문화에 있어서의 가족에 대한 문화적 전제들을 가족구성원의 범위, 가족발달 및 생애주기, 가족 기능의 세 가지 영역에서 살펴볼 것이다.
1) 가 족구성원의 범위
가족구조의 측면에서 그 차이를 단순화시켜 표현해 보면, 개인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주류문화에서는 2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적인 핵가족 구조가, 한국을 포함하는 동양문화권에서는 3세대를 포함하는 직계가족 또는 확대가족 구조가 보다 널리 받아들여지는 가족의 모형으로 인식되고 있다 (인구보건연구원, 1989; 장현섭, 1993). Bow en 이론을 포함하여 미국주류문화권에서 발달한 서구가족치료이론에서 가족이란 결혼한 남녀와 자 녀들로 이루어진 핵가족으로 전제한다. Bowen에 있어서, 일차적인 관심은 “핵가족 구성원이 어떠한 방식으로 서로 관계하는가”에 있으며 원가족은 핵가족의 정서적 과정에 영향을 주는 “정서적인 힘 (emotional force)"으 로써 이해되고 있음을 볼 때, 그의 이론에서 가족구성원의 범위는 일차적으로 핵가족에 제한되며 원가족은 각 배우자가 결혼생활에 가지고 들어오는 인간관계 방식의 원천으로써 비로소 자리매김 됨을 알 수 있다.
현대 한국사회에 있어서, 가족이란 구조상 대개 부부의 원가족 (특히, 남편의 부모)을 포함하며, 부모는 지역
적으로 핵가족과 떨어져 살아도 집안의 대소사에 대한 의사결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주류 미국인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부모와 형을 위시한 확대가족의 존재는 핵가족의 관계방식에 영향을 미치
는 간접적 요인으로서가 아니라 핵가족과 일상사를 나누는 실질적 존재로써 자리하고 있다. Bowen의 시각이 여타의 서구식 가족 이해에 비해 확대가족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가족관계의 이해에 새로운 국면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나 그 이론의 역점이 핵가족의 역동 이해에 있는 바, 한국문화에서 일반적인 가족관계의 양 상으로 관찰되는 핵가족과 원가족간의 역동, 즉 양자가 정서적 및 물리적 (실질적)인 두 측면에서 상호간에 복 합적으로 끼치는 영향에 관한 이해의 틀로 활용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2) 가 족발달과 생애주기
Bowen의 이론에 내포된 또 하나의 문화적 전제는 가족의 생애주기에 관련된 것으로써, 그의 후예들인 Carter와 McGoldrick (1988)은 정상가족발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미국가족을 연구하였다. 그들은 주류미국인 가족의 생애주기란 결혼, 어린 자녀를 둔 가족, 성인자녀의 독립, 노후가족이라는 일련의 과정으로 가족구성원 의 출입과 발달을 기능적으로 지지하기 위해 관계체계를 확장, 수축, 재편성하는 과정으로 정의하면서, 모든 가 족은 자기발전의 과정에서 발달적 욕구가 필연적으로 발생하며, 그 욕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한다고 보았 다. 건강한 가족은 욕구의 성격에 따라 그 구조를 재정렬하거나 (first-order change) 완전히 바꾸면서 (second-order change) 상황에 적응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Bowen이 그의 이론을 발달시키는데 있어서 특히 주목한 부분은 “성인자녀의 독립” 단계였다고 본 다. 그는 독립한 성인자녀가 “원가족으로부터 정서적으로 분화되었는가” 의 여부 및 그 정도를 인간관계를 개 념화하는 그의 이론의 중심부에 놓았다. 주류미국 문화에서 성인기는 고등학교 졸업 후 취직이나 대학진학으 로 인한 실질적인 “출가 및 이사 (moving-out)” 경험과 함께 시작되는 것으로 보는데, 이러한 지표의 사용은
“독립”에 대한 강한 문화적인 집착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Bow en은 “성장한 자녀가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 집을 떠나는 것”이 자동적으로 개인을 성숙한 성인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며 독립의 진정한 척도는 정서적인 분화의 정도라 하여 가시적인 지표의 허구성을 주장하고는 있으나, 그의 이론은 정서적 측면에서 여전히 “분 리”를 강조함으로써 성숙한 개인을 원가족으로부터의 독립 차원에서 규정하려는 극히 주류 미국문화적인 규범 이자 이상 (ideal)을 반영함을 엿볼 수 있다.
미국 가족과 마찬가지로 현대 한국가족 내에서도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는 하나 변화의 방식면에서는 서 로 다르다. 현대 한국에서는 군 입대, 결혼, 취직으로 경제적 능력이 생기는 것 등의 생애사건이 성인기 시작의 보편적인 지표로서 수용되고 있으며 (한경혜, 1993), 주류 미국문화에서와는 달리 이들 지표가 개인의 정서적
“독립”과 연관되어 인식되는 것은 아니다. 성인기의 절대적 지표로 여겨지는 결혼조차도 “원가족으로부터의 물 리적, 정서적” 분리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성인이 된 자녀들이 그들 나름의 삶을 위해 이성의 성인을 만 나 새로운 가족을 탄생시킨다는 시각보다는 가계를 계승한다는 시각이 여전히 현대 한국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딸・아들에 관계없이 일반적으로 자녀들은 적어도 결혼할 때까지는 부모와 동거하는
것, “아들은 결혼하여 아내를 집안으로 맞아들이고 자녀를 낳아 가문을 번창시킨다” (Shon & Ja, 1982)는 사고
방식, 아들은 결혼 후에도 그의 아내가 “새 며느리로서 가풍을 익히고 살림을 배우기 위해” 그의 부모와 동거
하는 것, 장남의 경우에는 핵가족 형태의 생활이 종종 임시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 전근 등의 이유로 불가피
하게 따로 사는 경우에도 확대가족 또는 원가족은 “본가”로 통칭되는 것 (장현섭, 1993), 신생아 성비 불균형
(김흥주, 1993)등 현대 한국인의 사고방식 및 생활양식은 양자간의 문화적 차이를 대비시켜주는 실례이다. 나아
가, 전통 한국사회에서는 여성은 결혼과 함께 출가외인으로 원가족을 떠나 배우자 가족의 일부가 되는 것으로
여겼으나 근래에는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가치에 변화가 오면서 여성은 오히려 원가족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어, 원가족과 성인자녀가족간의 관계에 대한 미국 주류문화와 우리의 시각 간에는 여전히 거리가 존재 함을 발견할 수 있다.
3) 가 족의 기 능
결혼을 독립적인 가족주기의 시작으로 이해하는 것과 가문을 잇기 위한, 연속적인 가족사 (家族史)상의 의식 으로 이해하는 저변에는 가족의 기능에 관한 판이하게 다른 문화적 이해가 전제된 것이며, 이는 양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자녀양육 방식에 명백히 반영되어 있다.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주류 미국가정에 서는 자녀가 부모로부터 신체 및 정서적으로 독립하는데 그 역점이 있는 바, 자녀양육 관습의 초점은 자녀의 사회진출 준비에 맞추어진다. 김인수의 관찰은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써 그는 “벌주기 (grounding)” 관습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흥미로운 문화간 차이를 지적하고 있다 (Berg, 1993). 김인수에 의하면, 주류 미국문화에서 는 자녀들이 규칙을 어겼을 때 외출이 금지되고 집에서 가족과 같이 있도록 강요당하게 된다.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는데 대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소위 “해방 (emancipation)”의 과정, 즉 “성장하는 자녀들이 원가족에 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에 있어서는 자녀양육 방식의 역점이 자녀의 독립을 돕는데 있지는 않다. 오히려 가족과 같이 머무르면서 조상들, 현존하는 가족구성원들, 차세대간에 강한 결속을 유지하도록 강화하는데 있다. 어린이들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나가라”는 말을 듣거나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을 것이라는 위협”을 당하게 된다. 가문으로부터 제외되는 것은 동양인에 있어서 가장 견디기 힘든 최악의 벌로 여겨지는 바, 이 상황에서 어린이들은 “집밖으로 내쫓기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김인 수 (Berg, 1993)의 관찰로 미루어보아, 동양문화권에서 청소년기는 “정체감 위기 (identity crisis)"로 통칭되는 서구식의 독립과정보다는 개인이 가족관계상에서 취해야할 위치와 역할을 깨닫는 전이과정이라는 맥락에서 보 다 잘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
4) 한 국문화에서 자아분화 의 개념 적 적용
Bowen 가족치료의 궁극적 목표가 되는 “자아분화”는 개인의 정서체계에 존재하는 개별성과 공동성 간에 발 생하는 딜fp마를 해결하는 방향으로써 제시되고 있다. Bowen에 의하면, 자아분화는 인간관계상의 문제를 해결 하는 열쇠로서 개인차원에서는 감정과 사고를 분리하고, 대인관계 차원에서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여 규정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주류 미국문화에서는 “사고와 감정의 분리,” 한국문화에서는 전통적으로 “오덕(五 德)의 배양과 칠정 (七情)의 억제”를 강조하는 점에서 볼 때, 감정에 치우치는 것이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저해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데는 두 문화가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가족이나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상적 인 인간으로서 행위하고자 하는 바는 두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추구되는 바일 것이나, 가족간의 밀착된 관계 와 화목에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는 우리 문화에서 (Park & Cho, 1995) 바람직한 인간관계는 타인들과 의 분리라기보다는 융합 속에서 정의되어 온 바 이상적인 인간관계에 도달하는 과정으로써 “분화” 개념을 적 용하는데는 한계가 따른다.
이렇듯 이상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규정에 있어서 두 문화권이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상적인 자아 (ideal self)에 대한 문화적 표현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3)앞서 논의된 바와 같이, 서양문화권에
3) Bowen이론의 횡문화적 적용을 논하는데 있어서 이상적인 인간상 (ideal sefl)에 대한 동서양 문화간 비교는 본 고의 범위를 벗어나며 오히려 문화적 표현의 측면이 논지에 부합하는 것으로 판단됨.
서 이상적인 자아는 성장 후 가족이라는 친밀한 환경을 떠나는 독립적인 인간으로 그려진다. 원가족으로부터 의 물리적, 정서적 분리가 종종 개인의 성숙과 독립의 척도가 되기 때문에, 서양인은 당면한 심리적 욕구를 충 족시키는데 있어서 동양인과는 다르다. 즉, 독립된 성인으로서 그들은 친척이 아닌 타인에게서 친밀감을 구하 고자 하는 것이다 (Hsu, 1985). 삶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개인은 끊임없이 자신이 독립된 존재임을 확인하고자 한다.
한국인의 경우는 이와 달리 지속되는 가족관계 속에서 자신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이는 동양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바로써 개인의 친밀감에 대한 욕구는 부모, 형제, 그리고 가까운 친척들과의 관계 속에서 쉽사리 충족된다 (Hsu, 1985). 개인의 인간적인 성숙은 가족 내에서, 친구간에, 그리고 지역공동체 안에서 그가 수행하는 역할이 얼마나 적절한 것인가로 가늠된다 (Tu, 1985). 타인과의 관계에서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고 공감하는 것이 덕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본질적으로 타인과 자신 을 분리시키기보다는 오히려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Kim & Choi, 1994). 즉, 성장의 과정에서 개인이 경 험하게 되는 다양한 인간관계는 개인의 독립과 분리라는 것보다는 타인과의 통합 (integration)이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요약하면, 성숙한 인간과 인간관계의 본질면에서는 문화간에 보편성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이상적 인간에 대 한 정의, 그리고 이상적인 상태에 도달하는 방법에서는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Bow en은 “문화는 가족과정 (family process)을 유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물들인다. 문화는 조형의 기능을 하기 보다는 가족과정이 그 나름의 예술을 창조해 나가도록 하는 매개체이다”라고 지적하고 있으며 (Freidman, 1991). 가족치료이론은 개발자의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경험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Framo, 1972). 이에 따라, 그의 이론은 중산층으로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서 비교적 밀착된 가족관계를 유지했 던 가정에서 성장한 그의 배경상 그러한 유형의 가족에 보다 적합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으며, 실제로 미국에 서 Bowen 가족치료자들은 주로 중산층 출신이다 (Nichols & Schwartz, 1995).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자아분화 라는 치료 목표는 두 가지의 상충되는 생명력간의 갈등을 미국 백인중산층 나름의 문화적 맥락에서 풀어낸, 그 의 문화적 배경의 소산으로써 범문화적인 이상 (ideal)으로써 적용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5) Bowen 이 론의 특 수성에 따른 임 상적 함 의
이상과 같은 문화적 특수성으로 인해 Bowen 이론을 한국 사례에 적용함에 있어서 다양한 현상들이 예견된 다. 첫째, 개인이 상담을 받기 위해 가지고 오는 문제의 성격에 있어서 두 문화간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주류 미국인들은 성인기에 정서적 안정의 원천으로서 비친척관계에 의존하고 있는 이유로, 내담자의 주요 관심사는 타인과의 친밀감과 친밀감의 질적 향상이 된다. 따라서, Bowen 가족치료의 주요 관심은 내담자가 성숙한 인간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자아 분화된 성인이 되는 과정을 지지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당면한 문제를 이해함 에 있어서 개인이 과거에 그의 원가족과 가졌던 관계에 귀인하는 Bowen의 의도는 원가족과의 관계 자체를 현 재 문제 (presenting problem)로서 보기보다는 현재 미분화된 관계의 근원으로 보고 내담자로 하여금 이에 대 한 통찰을 통해 스스로 변화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 가족은 비친척간의 친밀감 문제보다는 원가족과의 문제 자체로 전문가의 도움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Bowen의 기준으로 볼 때, 한국가족이 경험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미분화에 기인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데, Tamura와 Lau (1992)는 동양인을 대상으로 한 그의 가족치료 경험에 근거하여 지적
하기를, 가족 내에서 다른 구성원과의 통합과 화목한 관계유지가 강조되는 문화적인 구도 속에서는 문제가 미
분화에 기인한다기보다는 오히려 통합이 덜된데서 오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이해가 더 빠르다는 것이다. 즉,
문제를 분화의 척도보다는 오히려 통합의 척도 (scale of integration)라는 새로운 잣대를 가지고 풀이하는 것이 우리의 사고방식에 더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이선혜, 1998). 통합의 척도라는 새로운 기준은 공동성과 개별성 이라는 상충되는 욕구 사이에서 발생하는 딜fp마에 대한 한국적인 해결로서 큰 잠재력을 가진다고 보는 것이 다. 분화가 분리 (separation)와 동일하지 않듯이 통합 (integration)도 융해 (fusion)와 동일하지 않다. 다만, 이 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유사한 목표에 대한 문화적으로 상이한 접근일 뿐인 것이다.
Bowen 이론을 한국 사례에 적용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또 다른 현상으로써, 일반적으로는 “자아분화” 개념 의 적용에 제한이 있을 것으로 사료되나, 그 정도에 있어서는 개인간 및 가족간에 차이를 나타낼 것이다. 그 동안 우리 사회는 도시 산업화와 함께 다각적 측면에서 서구적 가치관의 영향을 받아온 반면, 확대가족과 관련 된 전통적인 가치나 관습이 여전히 우리 생활 구석구석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함인희, 1995). 이러 한 현실 속에서 한국인들 사이에서 전통적인 가치관을 보유하는 정도에는 개인간 및 가족간에 (최봉영, 1994;
이정덕, 1981; 최재석, 1982), 도시・산업화 정도에 따라 지역 (Kim, 1991; Ying & Zhang, 1995)간에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개인주의적인 관계양상이 두드러지는 개인 또는 가족의 경우는 그 렇지 못한 경우에 비해 “자아분화”의 적용이 보다 용이할 수 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자아분화”가 유 동적 적용의 여지는 있는 개념으로써 이해될 수 있다.
IV. 사례
이 장에서는 정신분열병으로 재활치료 중인 아들의 어머니에 대한 개입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이를 Bowen 이론의 한국적 적용에 대한 본 고의 논의를 구체화시키는데 활용하고자 한다.
1. 의뢰경위
본 사례의 의뢰 및 개입 배경이 되는 기관은 경기도 소재 한 지역사회정신보건센터이다. 지역정신보건센터 에서는 일반적으로 관할지역의 주민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증진을 목표로 홍보 및 교육을 포함하는 다양한 사업 을 실시하는 동시에 만성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주간재활 및 직업재활 프로그램을 직접 또는 연계 제공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위 센터의 재활팀장으로 일하는 사회복지사는 센터 內 주간재활프로그램 회원인 정**가 어머니와의 관계에 있어서 갈등이 심한 것으로 판단, 그의 현 재활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어머니 와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 본 센터의 자문위원으로 활동중인 필자에게 정**회원 가족에 대한 가족치 료를 의뢰했다.
2. 문제상황 (Presenting Problem) 및 사례진행 개요
센터의 사회복지사에 의하면, 정회원의 어머니는 아들의 상태와 재활과정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는 가운데
“몹시 걱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어머니의 주 호소내용으로는 아들이 현재 “일거리”가 충분치 않아 “특
별히 하는 일없이 시간 보내고 있으며,” “장차 생계를 위한 구상을 하는데 충분히 노력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다. 정회원은 지난 퇴원 이후 센터에서 운영하는 주거시설에 입소하여 생활하다가 독립한 이후 현재까지도 그
상태를 유지해오면서 부모와의 갈등을 피하고자 접촉을 꺼리고 있다. 센터의 사례관리팀은 회원의 재활과정
관리에 있어서 이러한 어머니의 태도는 관리팀의 개입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정회원의 재활과정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 개입을 통해 조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모자관계 개선을 위해 가족치료가 요구된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관리팀의 의견과는 조금 시각을 달리하여, 본 치료자는 현재 회원이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일상 생활상의 갈등은 없다고 보고 어머니에게 일차 적인 초점을 두고 개입하기로 했다. 어머니도 본 치료자와의 장기적인 관계를 통해 지지적 도움을 얻는데 대해 욕구가 있음을 밝히고, 장기적 관계를 전제로 본 치료자와 만날 것에 동의했다. 월1회의 만남에서 가계도를 작 성해 나가면서 가족력에 대한 정보를 축적했고 이를 지속적인 가족평가 (family evaluation)의 기초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내담자 (어머니)와 정회원을 포함하는 일련의 삼각관계 형성 및 변화과정이 관찰되었고 관계상 에서 인정 (validation)과 지지 (support)의 결핍이 두드러지는 테마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본 치료자는 내담 자의 정회원에 대한 인정과 지지 기술의 향상에 일차적인 목표를 두고 내담자로 하여금 정회원에게 그의 재활 성과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내용의 메모를 전달하는 과제를 부여했다. 이 과제는 내담자와 정회원간의 불안 수 준을 감소시킴으로써 내담자가 다른 가족성원, 치료팀 또는 치료자를 영입하여 삼각관계를 구성하고자 하는 욕구를 감소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 사례는 현재 진행 중이며, 경우에 따라 정회원의 부분적 참여가 시도될 것이다.
3. 정** 회원 병력
39세 남성인 정** 회원은 10년 전 정신분열병으로 진단받은 이래 두 차례의 입원치료를 거쳐 약 1년 전 두 번째 퇴원 직후 본 센터의 주간재활 프로그램에 의뢰된 이래 정규회원으로써 참여해 오고 있다. 정회원의 첫 발병은 29세 때로 당시 해외유학 중 “스트레스가 심하여” 중도 귀국한 후 환청・환시를 경험하고 경기도 내 한 전문정신병원에 내원, 정신분열병으로 진단 받고 6개월 입원치료를 했다. 퇴원 후 전자회사에 취직하여 3년 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IMF직후 “직무에 태만하다”는 상사의 평가로 사퇴했다. 그 후 번역일을 하면서 “한국에 서는 적응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남미로 이민하기 위해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다.
약 2년 전 이민 사전작업을 위해 남미를 방문 중 증세가 재발하여 한 가족원이 직접 찾아가 동반 귀국하여 입원시켰다. 동 정신병원에서 1개월 동안 입원 치료하다가 퇴원과 함께 본 센터에 의뢰되었다. 퇴원시 정회원 은 부모와의 갈등적인 관계를 이유로 귀가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센터에서 운영하는 주거시설에 입소하여서 약 8개월간 지냈다. 본 사례가 의뢰될 무렵, 정회원은 주거시설에서 독립해 나온 이후 아파트에서 약 3개월 째 혼자 식사, 빨래, 청소를 하며 생활해오고 있는 상태였다.
현재, 주중에는 센터의 주간재활 프로그램 참여하고 컴퓨터 강습을 받고 있으며, 비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번 역일에 전념하고 있다. 자신의 번역작업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머리가 굳을까봐 무서워 서” 늘 단어를 외우며 다닌다. 최근, 이민계획을 포기하기 위해 남미를 1달 간 방문, 신변을 정리한 후 귀국했 다.
4. 가족력
정회원의 아버지 (72세)는 경상도에서 농업에 종사했던 부모님의 3남1녀 중 막내이며, 어머니 (68세)도 역시
농업에 종사했던 부모님의 2남3녀 중 막내이다. 이 부부는 6.25동란 직후 중매로 결혼하여 슬하에 4남을 두었
는데, 정회원은 그 중 3남이다. 그를 제외한 다른 형제들은 모두 결혼하여 자녀가 있으며 외국유학을 마친 후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정회원의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40대에 공직에서 나와 사업을 시작
하여 현재도 사업을 하고 있으며, 어머니는 평생 가정주부로 살았다.
성장기에 정회원은 4형제 중 학업면에서 가장 뛰어났으며, 두 형들이 항상 부부에게 꾸중을 많이 들은 것에 비해 정회원은 “말썽을 부리지 않아”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취미생활면에서도 “다양하고 고상하여” 사진촬 영, 기계조작, 피아노 실력이 상당한 수준이었으며 “글을 잘 썼다”고 하나, 그의 취미활동은 “혼자하는 일”이 주를 이루었다는 것이 어머니의 평이다. 대인관계에 있어서 가족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으며,” 친구관계에서도
“극소수의 친구들과만 사귀었다.”
정회원의 아버지는 “경상도 특유”의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으며” “마음에 들 지 않으면 큰 소리를 지른다”며 시모도 이와 비슷했음이 지적되었다. 어머니는 “아들만 두어서인지” 일상생활 에서 자식에게 자상한 표현을 별로 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정회원의 상태에 대해 아버지는 지난 퇴원 당시 병 전 기능이 회복되지 않음에 분노를 표현했으나 현재는 “그런 상태로 살 수 밖에 없지 않느냐”라는 현실수용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에 어머니는 정회원이 “일거리”가 충분하지 않으며 “생계” 대책에 적극적이지 못한데 대한 근심을 강도 높이 표현하고 있다.
그녀는 정회원의 발병 이후 심한 우울증을 앓아 한때 정신 과약을 처방 받은 적이 있었으며 현재는 운동과 취미생활에 전념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려하고 있다. 센터에서 월1회 개최하는 가족모임에 정기적으로 참 석하고 있으며, 반찬을 전달하기 위해 주1회 아들을 방문한다. 아들 방문시에는 내담자가 일상생활에 관련된 질문을 하면 아들은 “간단히만 대답하는” 방식으로 대화하다가, 내담자의 잔소리가 많아서 아들이 괴로워하면 서 “빨리가라”고 하면 그녀는 기분이 상해서 돌아오곤 한다.
내담자의 다른 아들들은 외국인 회사에서 근무하는 관계로 영어와 스페인어 번역경험이 있는 정회원에게 간
헐적으로 번역일을 맡겨 그에게 소일거리와 수입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내담자는 막내아들이 가족과 잘 어
울리지 못하는 정회원과 가족 사이를 연결해준다며 그를 통해 정회원이 “앞으로의 삶에 대해 구상하는 바”를
듣고 싶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그녀는 정회원에 대해 남편과 자녀들 (아들 및 자부)에게 “솔직하게 다 이야
기”하기 때문에 자식들이 “어머니 목소리만 들으면 기분이 어떤지 금방 알 수 있으며,” 남편과 자식들이 “어머
니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한다고 보고했다.
<그림1> 정회원 가족의 가계도
5. 가족평가 (Family Evaluation)
Bowen의 이론은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사정 (assessment)의 틀로써 각별히 평가되고 있으며 현재 본 사례는 진행상 비교적 초기단계에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사정을 중심으로 사례를 상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본 연구자 는 정회원 가족사례를 사정함에 있어서 센터에서 제공한 정보와 내담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가족도를 작성하고 II장에서 소개한 기본개념들을 바탕으로 가족도를 분석했다. 사정 내용은 Kerr과 Bowen의 가족평가를 위한 10 가지 기본질문 (1988)을 활용하여 요약・정리하였다 (<표1> 참조). 본 사례에 있어서 개입의 배경이 되는 기관 이 지역정신보건센터이기 때문에 사정의 역점을 정회원의 재활에 두었다.
<표1> 가족평가를 위한 10가지 기본질문
4)4) Kerr & Bowen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