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구 배경 및 목적
최근의 성곽에 대한 연구는 주로 성곽의 축성법 등에 대하여 이루어지고 있으나 개별시설물에 대해서는 성문과 육축에 대한 일부 연구1)를 제외하고는 아직 많은 성과를 보이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특히 성곽을 구성하는 주요 건축물인 암문에 대하여 는 일반적인 형태를 소개한 보고서 외에 특별한 연구는 진행되 지 않았다.
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의 일종으로 전 쟁에 필요한 물자를 운반하고, 적에게 포위당했을 때 적의 눈에 띄지 않게 구원을 요청하거나 원병을 받고 역습을 하는 통로이 기도 하다. 암문은 이름 그대로 비밀스러운 통로이기 때문에 크 기도 일반 성문보다 작고 문루나 육축 등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시설을 하지 않았다.
남한산성 암문의 명칭은 특별하게 지칭된 것이 없어 2000년 토지박물관에서 발간된 보고서를 기준으로 부여하였다.2) 이 보
*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 문화재청, 사무관
(Corresponding autho : Deputy director,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email protected])
1) 이응묵, 한국성곽의 성문건축양식에 관한 연구, 단국대 석사학위논문, 1984 맹홍규, 조선시대 성문의 건축형식에 관한 연구, 홍익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8
김병희, 신라 성곽 성문의 특징과 변천과정 검토, 육군사관학교육군박물관 학예지. 통권 제14집 27-47쪽, 2007년
우정희, 성곽문루의 건축적 특징에 관한 연구 :읍성문루를 중심으로, 명지대 산업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
강두용, 조선시대 도서지역 읍성에 대한 연구, 동아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8 차용걸, 한국 고대산성 성문구조의 변화, 중원문화재연구. 제2호, 61-86쪽, 2008 2)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광주군, 2000, 남한산성 문화유적 지표조사보고
서, 114쪽
고서에서 암문의 명칭은 산성 서술의 일반적인 기준에 따라 도 면 1과 같이 동문에서 북쪽으로 가면서 원성부터 일련번호를 부여하고 봉암성, 한봉성의 순으로 번호를 부여하였다.
남한산성에 설치된 성문의 위치를 살펴보면, 지형과 교통로 를 고려하여 성 전체에서 서쪽지역에만 남문, 북문, 서문의 성 문이 이 밀집되어 있고, 나머지 지역에는 동남쪽으로 치우친 동 문 하나만이 있어 성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교통에 어려움이 야기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암문이 주요 통로 역할을 수 행하게 되었다. 특히 남문에서 동문에 이르는 긴 구간에는 4개 의 암문을 설치하여 신남성과 남동지역으로의 출입이 원활하도 록 하였고 그 중 신남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7암문, 검복리 방면 으로 가기 위해서는 8암문이 주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동쪽 부분 특히 1암문은 용미리나 퇴촌 등 동쪽 지역의 교 통과 물자이동에 중요한 기능을 분담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북 문에서 북장대에 이르는 구간은 3암문과, 봉암성의 12암문, 벌 봉 부분의 13암문이 주로 이용되어 동북지역으로의 왕래를 원 활히 할 수 있도록 하였다.3)
이처럼 남한산성의 16개 암문은 전시에 산성의 비밀통로로 사용되고 평상시에는 중요한 교통로로 사용되어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으나, 현재는 1번~16번까지 번호로 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우리나라 성곽 중에서 가장 많은 암문을 가지고 있는 남한산성 암문의 명칭에 대하여 중정남한지와 고지도에 나타난 기록을 찾아보고, 기록에 나타난 암문이 어느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지에 관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또한, 이를 토대로 암문의 명칭설정 기준을 고찰하여 추후 연구에 기초를 제공하고 남한산성을 방문하는 탐방객들에게 보다 쉬운 명칭을 전하고자 한다.
3)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광주군, 2000, 남한산성 문화유적 지표조사보고 서, 114쪽
기록에 근거한 남한산성 암문의 명칭 설정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Naming of the Hidden Gates in Namhansansung by Records
이 천 우* 1) 김 석 희**
Lee CheonWoo Kim SukHee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change of Hidden gates form with the times. Fortresses position is constructed on the Korea mountain ranges. Hidden gate, one of facilities to construct fortress among various factors, represents as route of supplies way, ask for rescue, or counterattack plan to come in. The shape of hidden gate changes depend on land form, function, and time period. Previous research partially based on archeology or history. This research analyze Namhan mountain Namhansansung, one of the highest hidden gates count in Korea, distributive by main fortress, Bong-am fortress, Hanbong fortress.
Nahhan Mountain fortress repeatedly affected by King Injo in Joseon Dynasty. As a result, Nahhan Mountain fortress consist of hidden gates alternation depend on the time of establishment or extension which makes different shape or size.
주 요 어 : 남한산성, 암문, 봉암성, 성곽
Keywords : Namhansansung(Namhan mountain fortress), Hidden gate, Yuhuichunm, Bongamsung(Bongam fortress, Fortress http://dx.doi.org/10.14577/kirua.2019.21.4.53
2. 암문 현황
남한산성 암문은 2000년에 진행한 지표조사에서 현재 16개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문 현황은 다음과 같다.
2.1 암문1 (장경사 암문) 암문1은 동문에서 능선 말단부 를 회절하여 장경사를 바라보게 되 는 지점에 있다. 이 암문 밖은 계곡 을 따라 경사가 완만한 소로가 이 어지고, 길을 따라 200m정도 내려 가면 큰 골쪽으로 올라가는 길을 만나게 된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 큰골 굿당쪽에서 암문16을 통해 벽
수골쪽으로 내려가면 동문보다 쉽게 퇴촌이나 43번 국도 방향 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암문이었을 것 으로 보인다.
2.2 암문2 (장경사신지옹성 암문)
이 암문은 장경사신지옹성으로 연결되는 통로에 설치된 암 문이다. 원성 축조 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장경사신지옹성을 축성하면서 옹성 출입을 위하여 신축한 암문으로 보인다. 암문 개구부 주변의 성벽에 일반적인 성돌과 무사석이 혼재되어 있 으며, 체성벽의 축조기법이 다른 것도 본래 원성의 암문이 아니
고 중간에 증축된 암문이라는 견해 를 뒷받침해 준다.
2.3 암문3 (망월사 암문) 동장대에서 서쪽으로 57m 거리 에 위치하고 있으며 암문 남쪽의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망월사가 나 온다. 현재도 봉암성을 가기 위한 최단거리는 망월 동측 능선을 따라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이 암문은 원성과 한봉성 및 봉암성을 연결하 는 주 출입구로서 남문이나 동문처 럼 이용 빈도수가 높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곳을 차단할 경우 동 장대 좌우로 약 1km범위 내에는 출
입문이 없으며, 원성 외부의 지형이 가파르기 때문에 이 3암문 의 기능은 다른 암문에 비해서 매우 큰 편이다.
2.4 암문4 (옥정사 암문)
동장대에서 서북쪽으로 263m 거리에 있다. 이 암문은 북문의 보조기능을 하도록 설치한 것으로 암문에서 연결된 소로를 따 라 1km정도 내려가면 하남시 하사창동에 도달하게 된다. 따라 서 성의 북쪽에서 옥정사나, 망월사등으로 가기 위해서는 주로 이 암문4를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청사지
개원사
남단사지 한흥사지
장경사 망월사
동림사지
옥정사지
천주사지
영원사지
4444444444444444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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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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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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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222222222222222 2 33333333333333333 3 55555555555555555
5
66666666666666666 6
777777777777777777
88888888888888888
8 9 99999999999999999 1010101010101010101010101010101010 10
1515151515151515151515151515151515 15 1414141414141414141414141414141414 14 1313131313131313131313131313131313 13
121212121212121212121212121212121212
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 11
1616161616161616161616161616161616 16 장경사신지옹성
제2남옹성
동문
제1남옹성
★ 연주봉옹성
외동장대지
★
●
◆
1
Fig. 1. floor plan ● 암문 번호, ◆ 사찰(사지), ★ 주요시설물
Fig. 2. Janggyeongsa Ammun
Fig. 3. Janggyeongsa Sinsinjisongammun
Fig. 4. Mangwolsa Ammun
2.5 암문5 (연주봉 암문) 서문에서 북동쪽으로 약 200m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연 주봉 옹성과 연결되는 통로이다.
암문의 서쪽 체성벽에는 2m정도 돌출된 치가 있고, 북쪽으로는 직 선길이 150m정도의 연주봉 옹성과 연결되어 있다.
2.6 암문6 (서암문, 천주사암문) 수어장대에서 서남쪽으로 약 100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암문6 을 경계로 남쪽과 북쪽에 서문과 남문외에는 통로가 없고, 수어장대 와 가까이 있어 전쟁 시 전술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 다. 암문 남쪽에는 천주봉 근처에 천주사지가 있는데, 천주사에서 성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암문6이 가장 가까운 통로이다.
2.7 암문7 (제1남옹성암문) 이 암문은 제1남옹성과 신남성 으로 연결되는 통로이다. 제1남옹 성의 성벽은 길게 동쪽으로 뻗어 이 암문까지 연결되어 있다. 남문 과 가장 근접한 위치에 있는 암문 으로 주용도는 전쟁 시에 제1남옹 성과 연결 통로가 가장 큰 용도로
추정된다. 평상시에는 신남성 쪽으로 이용빈도가 높았던 것으 로 보인다.
2.8 암문 8 (개원사암문, 제2남옹성암문) 암문7에서 동쪽으로 192m 거리
에 있다. 제2남옹성의 남서쪽 성벽 을 암문 입구까지 연결하여 암문도 보호하고 제2남옹성으로의 출입도 원활하도록 하였다. 주변에는 남장 대지가 있고, 성내의 북쪽에는 개 원사가, 북동쪽에는 남단사지가 있 어 평상시에는 이 두 사찰에서 주 로 이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2.9 암문 9 (남단사 암문)
제2남옹성과 제3남옹성 사이에 위치하며 제3남옹성에서 100m정도 거리에 있다. 암문 안쪽은 해발 440m의 능선 정상부 인데 약 700평 정도의 넓은 평탄지가 조성되어 있고, 주변에서 많은 양의 와편이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여러 동의 건물 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평탄지에서 북서쪽 사면으로 내려가
면 약 100m 내외의 지점에 사직단 과 남단사터가 있고, 평상시에는 남단사에서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 된다.
2.10 암문 10 (한흥사암문) 제3남옹성에서 동쪽으로 69m 거 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암문은 암문9와 함께 제3남 옹성으로의 출입을 위하여 구축하 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3옹성에 인 접하여 구축하지 않은 것은 3옹성 의 위치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 암문은 동쪽으로 동문 가까이에 있는 1암문에 이르기 까지 약 500m범위 내에서 성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문 이므로 이 암문을 통해 검복리쪽으로 출입하였을 것으로 보 인다.
2.11 암문 11 (동암문) 이 암문은 산성 내 계곡물이 빠 져나가는 수구문 남쪽 2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남한산성에 소재 하는 16개의 암문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이 암문은 동문의 보조기능 을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문 의 경우 위엄성과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도로보다 높은 곳에 축조였고, 이 때문에 성문 밖에 계단 을 설치하여 우마차의 통행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성내에 필요 한 물자의 공급을 위한 수레나 일반인들의 통행은 주로 이 암문 11을 이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4).
2.12 암문 12 (봉암초암문) 3암문을 통하여 원성을 나와 봉 암성과 한봉성으로 들어가는 관문 에 해당하는 암문이다. 3암문에서 동쪽으로 100m거리에 있다. 암문 을 들어서면 바로 우측에 원성 동 장대가 있다.
2.13 암문 13 (동림사암문)
벌봉에서 서쪽으로 42m 거리에 있는데 서쪽에 동림사지가 있어 이 사찰에서 주로 이용했을 것으로 추저오딘다. 이 암문은 봉암성에서 가지울을 지나 상산곡동이나 하남시 쪽으로 출입을 위하여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이 암문을 통하지 않을 경우 암 문14를 지나 벌봉을 우회하여야 한다. 따라서 이 암문은 장경사 부분의 암문1과 암문3, 암문 16등과 함께 이용빈도가 상당히 높
4) 구 지적도상에 나타난 도로의 표시를 살펴보더라도 동문 쪽에서 연결되는 도로보다 암문11에서 연결되는 곳이 더 평탄하고 도로의 폭도 넓었음을 알 수 있다. 두 도로는 동문 밖에서 합류하였다.
Fig. 5. Okjeongsa Ammun
Fig. 6. Yeonjubong Ammun
Fig. 7. Seoammun
Fig. 8. 1st Namongseongammun
Fig. 9. 2nd Namongseongammun
Fig. 10. Namdansa Ammun
Fig. 11. Hanheungsa Ammun
Fig. 12. Dongammun
Fig. 13. Bongamchoammun
았던 것으로 보인다. 암문 바깥쪽 으로는 옛길로 보이는 소로가 잘 남아 있다.
2.14 암문 14 (외장대암문) 암문14는 봉암성의 외동장대지 동남쪽 42m 지점에 있다. 이 암문 은 암문13과 봉암성의 암문16까지 성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출입시설 이 없기 때문에 유사시를 대비하여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크기 도 작고 연결되는 도로가 적절하지 않아 암문13에 비해 사용빈도가 크 게 낮았을 것으로 보인다.
2.15 암문 15 (봉암성 한봉초암문) 암문15는 봉암성에서 한봉성으 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이다. 외동 장대 남쪽부터 남북에서 내려온 두 성벽이 병목처럼 좁아들어 내려오 다가 능선 남쪽의 넓은 완경사지역 을 포용하기 위하여 다시 벌어진 후 발모양처럼 마무리 되었다. 한
봉성은 봉암성의 남동쪽 끝부분에 연결되어 있다. 암문은 연결 부위에서 서쪽으로 10m 지점에 있다.
2.16 암문 16 (영원사 암문) 봉암성에 연결되는 한봉성의 기 점에서부터 473m 지점에 있다. 이 암문은 조선시대의 고지도에도 주 요 길목으로 표시되어 있듯이 외성 에 설치된 암문 중 가장 이용 빈도 가 높은 암문 이었다. 장경사 부근 의 암문1을 나와서 큰골을 경유하 여 암문16을 통해 벽수골로 내려가
는 길은 동문로보다 퇴촌방면으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5).
3. 암문의 명칭
3.1 기록에 나타나는 암문의 명칭 (1) 중정남한지
남한산성의 가장 자세한 기록인 중정남한지를 보면 매탄 처(埋炭處)를 표시한 기록에서 암문의 명칭이 다수 확인되며, 암문과 관련된 기록만 발췌하면 아래와 같다.
“북장대 군포 앞에서부터 성내 각 사찰에 이르기까지 전후에 숯을 묻어 둔 곳이 94곳이고 숯은 24,192석이다.…중략
5) fig 1 남한지도 참조
천주사(天柱寺)암문 북변에 300석,
서문직의 신지 연주봉암문 동변 45군포 사이 144석, 장경사(長慶寺)암문 군포 앞 북변 250석
옥정사(玉井寺)암문 78군포 사이 218석
한흥사(漢興寺)암문 서변 1군포 위 제1처 360석 개원사(開元寺) 암문 서변 1군포 아래 400석…생략6) 옥정사 암문, 장경사 암문, 연주봉 암문, 한흥사 암문, 개원사 암문, 천주사 암문이 나타난다.
(2) 서암문 파적지
병자호란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서암문의 명칭이 나타나는 데, 중정남한지에 ‘서암문 파적지(西暗門 破敵址)’라 하여 서 암문과 관련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인조 15년(1637) 1월 23일 한밤중에 적군이 서쪽 성벽을 넘 어서 쳐들어 왔다. 이 지역은 수어장대와 가까운 곳이며 행궁으 로 통하는 곳이므로 아군에게는 매우 긴요한 곳이었다. …생략”
또한, 이와 관련된 다음의 시가 전한다.
- 서암문 파적처를 보며-
장사가 창을 깨고 호관(虎關)을 지키니 서문에서 한판 싸움 굳었던 얼굴 폈구나.
지금도 치(雉)와 첩(堞)이 구름과 연한 곳에 오히려 당시 싸움의 핏자국이 얼룩져 있구나
‘파적(破敵)’이란 ‘적을 깨뜨렸다’는 뜻으로 ‘서암문 파적지’
라 함은 이때에 서암문의 승리를 두고서 부르게 된 것이다.
(3) 「남한지도」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 원에 소장된 「남한지도」7)를 보면 지도 아래에 남한산성을 구역별로 나누어 책임을 지정한 기록을 확인 할 수 있다.
“중영(中營)의 책임구역은 서문 북변 제2군포에서 망월사(望月寺) 암문까지이고…, 우영(右營)은 망 월사암문에서 동문남변 제2군포까 지이며…, 후영(後營)은 봉암초(蜂 岩初)암문에서 한봉장대까지…8)” 로 기록되어 있다.
원성은 전・좌・중・우영에서 책임 지고, 후영에서는 봉암성과 한봉성
을 책임지는 것으로 구역이 나뉘어져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망월사 암문과 봉암초암문이다. 망월사 암문은 중영과 우영의 관할이므로 본성에 포함되어 있고, 망월사에서 가장 근거리에 있는 암문, 즉 도면1에서 3암문임을 추정할 수 있다9). 봉암초 암문은 후영의 영역이므로 봉암성에 포함된 암문이며, 초(初)
6) 중정남한지 권4, 군수(軍需) 매탄
7) 「남한지도」, 채색도, 132cm×83.5cm,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8) 위의 지도, ‘中營將楊州牧使信地北將臺 自西門北邊第二軍舖至望月寺暗 門…, 右營將右別將信地東將臺 自望月寺暗門至東門南邊第二 軍舖…, 後營將竹山府使信地蜂岩外東將臺 自蜂岩初暗門至汗 蜂將臺….’
9) 현재도 망월사에서 올라가면 3암문에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다.
Fig. 15. Oejangdae Ammun
Fig. 16. Hanbongcho Ammun
Fig. 17. Yeongwonsa Ammun Fig. 14. Dongrimsa Ammun
Fig. 18. South Korea Map
암문이므로 시작부에 있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도면1 에서 12암문임을 알 수 있다.
Fig. 19. Expanded records related to responsible areas during
“South Korea Map”
3.2 기록과 현재 암문의 위치 비교
따라서 기록에서 명칭이 확인되는 암문은 옥정사 암문, 장 경사 암문, 연주봉 암문, 한흥사 암문, 개원사 암문, 천주사 암 문, 서암문, 망월사 암문, 봉암초암문으로 총 9개이다. 이들 암 문의 이름은 고지도와 문서 등 기록을 통해서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1) 현황도를 이용한 비교
암문명의 특징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사찰의 이름을 붙여 암 문명을 지칭했고, 부분적으로 방위와 봉우리를 기준으로 했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관계를 확인하기 위하여 현재의 암문 위치와 사찰(또는 사지), 봉우리, 시설물 위치를 산성 현황도에 얹어서 비교하면 도면1과 같이 나타난다.
위 도면상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
- 옥정사암문은 옥정사에서 이용하거나 책임을 맡은 암문일 것이므로 옥정사지 주변에 있는 암문을 확인해 보면 4암 문 외에는 확인되는 것이 없어 쉽게 4암문이 옥정사암문 임을 추정할 수 있다.
- 장경사암문은 1암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가까운 거리 에 장경사가 자리 잡고 있어 이것도 마찬가지로 쉽게 1암 문임을 추정할 수 있다
- 연주봉암문은 연주봉옹성으로 통하는 문이 반드시 필요하 고 현재 5암문이 옹성 통행로이므로 이 5암문을 지칭하는 것을 알 수 있다.
- 한흥사암문도 앞의 경우와 같이 가장 인접해서 1개의 암 문이 있으므로 쉽게 10암문이 한흥사암문임을 추정할 수 있다.
- 개원사암문은 현재 개원사가 암문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 쉽게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7, 8, 9암문 중에 하나 라는 것은 추정 가능하다.
- 천주사지 근처에도 마찬가지로 6암문뿐이므로 쉽게 추정
이 가능하다. 그런데 6암문은 천주사암문 외에도 서암문 으로도 불려진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중정남한지에 나타 나는 서암문 파적지 기록에 따르면 서암문의 위치는 수어 장대와 가까운 곳이며 행궁으로 통하는 곳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렇다면 서암문은 현재 수어장대와 가장 가까운 위 치에 유일하게 있는 6암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서암문은 천주사암문과 같은 암문으로 현재의 6암문이며 2개의 이 름이 붙여진 것으로 볼 수 있다.
- 망월사암문은 현 망월사 근처에 3암문과 4암문이 위치하 고 있다. 여기서 4암문은 옥정사암문으로 추정할 수 있었 고, 현재도 망월사에서 뒤에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3암문 에 쉽게 갈 수 있는 것 등을 고려할 때, 망월사 암문은 3암 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
- 봉암초암문(蜂岩初暗門)은 구역을 나누며 나온 이름이므 로 원성에서 봉암성으로 들어서는 가장 첫 번째 문인 12 암문일 것이다. 이름의 한자도 봉암성 입구에 설치된 암 문을 뜻하고 있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2) 고지도에 의한 분석
고지도에서 나타나는 교통로를 살펴보면 상기 암문명의 위 치 추정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데 그림 3의 남한산성 도10)를 부분적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사찰에서 암문을 통한 이 동경로가 비교적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어 사찰과 암문이 밀접 한 관계임을 확인할 수 있다.
Fig. 20. Namhansanseong Fortress (director of the Korea Institute of Mental Culture)
① 동장대 주변의 암문
- 장경사에서 출발한 교통로는 사찰 동쪽의 1암문을 통해서 성 밖으로 연결되고 있어 장경사와 1암문이 밀접한 관계 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0) 남한산성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소장)는 산성내의 하천과 교통로가 붉은색 으로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고, 주변 산세와 건축물과의 관계도 비교적 잘 나타나 있다. 특히 4대문과 암문을 통한 이동동선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Fig. 21. Namhansanseong Fortress (expanded around Dongjangdae)
- 옥정사는 봉암성으로의 주 교통로상에 있는 것을 알 수 있 으며, 봉암성으로 가는 길에 4암문과 동선을 연결하고 있어 옥정사암문이 4암문임을 알 수 있다.
- 망월사는 직접적으로 연결된 교통로는 없으나 가장 인근에 접한 교통로가 옥정사에서 나와 봉암성으로 가는 동선이 고, 현재도 망월사 뒤 능성을 따라 길이 나 있는 것을 고려 하면 망월사 암문은 3암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원성을 나와 봉암성으로 들어오는 첫 번째 암문이 12암문 으로 「남한지도」11)에 나타나는 봉암초암문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② 남옹성 주변의 암문
- 동서대로에서 남쪽으로 갈라진 길은 개원사와 남단사 그 리고 한흥사로 나뉘어 갈라져 있다. 개원사로 연결된 도로 는 2남옹성에 있는 남장대로 연결된 것을 확인할 수 있어 개원사암문은 2남옹성에 설치된 8암문임을 알 수 있다. 그 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현재의 9, 10암문이 하나만 표 현된 것으로 한흥사 부분에 암문의 표기가 누락되지 않았 나 판단된다.
Fig. 22. Namhansanseong Fortress (expanded around Namongseong Fortress)
11) 「남한지도」, 채색도, 132cm×83.5cm,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③ 서장대 주변의 암문
- 서장대 주변의 암문은 6암문뿐이고, 주변에는 사찰건축으 로 천주사와 국청사가 있다. 6암문으로 연결된 교통로는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았으나 6암문의 위치는 그림과 같 이 멀지 않고 상당히 가까운 위치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규 장각에 소장된 고종대 군현지도인 「광주부지도」를 에서는 천주사를 통하여 암문으로 통해로가 설정되어 있어 6암문 이 천주사암문임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서암문 파적지’와 관련된 내용에서 보면 “… 이 지역 은 수어장대와 가까운 곳이며 행궁으로 통하는 곳이므로 아군 에게는 매우 긴요한 곳이었다. …생략”라고 기록되었는데, 서장 대에서의 교통로를 보면 세 갈래의 길이 서장대와 연결되었고, 그 중 하나는 행궁과 연결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서암 문 또한 천주사암문과 같이 수어장대 바로 옆에 축조된 6암문 임을 알 수 있다.
Fig. 23. Namhansanseong Fortress (expanded around Seojangdae)
- 남한산성 암문의 이름은 기록에서 대부분 사찰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였는데, 연주봉암문만은 봉우리 이름으로 기 록된 유일한 암문이다. 서문 북쪽 연주봉에 있으며 연주봉 옹성과 원성의 통행을 위해 설치된 것을 확인할 수 있으 며, 이 주변에 다른 암문이 전혀 없어 연주봉옹성이 5암문 인 것을 알 수 있다.
④ 기록에 나타나지 않은 암문 이처럼 문헌에 나타나는 암문의 명칭은 사찰과 주요시설물에 관련 이 큰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기록 에 나타나지 않는 암문의 명칭에 관하여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 이다.
- 장경사신지옹성에는 암문이 표현되지 않았는데, 이것은 여기에 설치된 2암문은 오직 옹성 출입을 위한 시설물로 교통로와 관계가 약하기 때 문에 표현되지 않았거나 누 락된 것으로 추정된다.
- 12암문을 들어선 교통로는
두 갈래로 갈라져 동림사쪽과 한봉성쪽으로 나뉘어진다. Fig. 24. Namhansanseong Fortress (expanded around
Dongjangdae)
동림사에서 나온 동선은 벌봉 아래에 13암문으로 연결되 어 있다. 기록에 13암문의 이름은 확인되지 않지만 교통 로와의 관계를 고려하면 동림사암문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 14암문은 외동장대의 비상시 동선으로 추정되므로 외동장 대 암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
- 15암문은 봉암성에서 한봉으로 출입을 위한 암문이므로 봉암성한봉초암문으로 명명할 수 있다.
- 16암문은 영원사와의 관계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 동문 주변에는 나란히 동문, 수문 그리고 문으로 기록되 었고, 이 문(門)으로 표현된 것이 11암문이다. 고지도를 시대별로 분석해보면 11암문 은 동문의 보조기능을 하기 위하여 후대에 만들어진 것 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름은 서암문의 반대 개념으 로 동암문으로 칭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다만, 남한산 성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소 장)에서 타 암문은 암문(暗 門)으로 명기하고 있으나, 암 문11은 문(門)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암문 외부 전면에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축대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암문 주변의 다른 시설은 확인하 기 어렵다. 통행량이 많은 문이므로 암문보다는 소문(小 門)으로 불렀을 가능성도 있다.
(3) 종합
위에서 검토한 결과, 개원사가 암문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찰이 암문과 지근거리에 설치되어 있어 사찰의 이름을 붙여 암문의 이름을 설정했고, 암문의 명칭 과 사찰과는 연관성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연관성에 대 한 근거로는 남한산성 수축과 관리에 승군이 지속적으로 관여 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12), 관리를 위한 이동동선을 고 려하여 암문은 필요했을 것으로 보여 진다. 부분적으로 방위와 봉우리, 주요시설물을 기준으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암문의 명칭에 대하여 비교해 볼 수 있는 것은 북한산성을 기록한 북한지가 있다. 이 기록에 나타나는 암문의 명칭은 서 암문, 동암문, 백운봉암문, 용암봉암문, 청수동암문, 부왕동암 문, 가사당암문을 확인할 수 있는데, 명칭의 특징은 방위와 지 명 등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한지와 북한지에 나타 나는 암문의 명칭을 비교해보면, 남한산성에는 사찰명 암문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비해 북한산성에는 전혀 없다는 차이점이 있으나 방위와 봉우리의 명칭을 이용하여 암문명을 정한 공통 점이 있다.
남한산성의 명칭 부여기준은 기록에 나타난 순서대로 가장 첫 번째 기준은 ‘장경사암문’과 같이 사찰과 인접하거나 동선이
12) 승군과 관련기록에 대한 언급은 기 발표된 글이 있고, 암문의 명칭과 직접적 인 관련성이 떨어지므로 서술하지 않음.
확인된 암문은 ‘사찰명+암문’으로 붙이고, 사찰은 없으나 주요 시설물 또는 봉우리가 있는 경우는 이것들 뒤에 ‘암문’을 붙이 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하면
- 암문1・3・4・5・6・8・10・12는 기록에 나타나는 이름으로 사 용하여 장경사 암문, 망월사 암문, 옥정사 암문, 연주봉 암 문, 천주사 암문(또는 서암문), 개원사 암문, 한흥사 암문, 봉암초암문으로 명명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판단된다. - 암문2・7은 원성 축조 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후대에 옹
성을 축성하면서 옹성 출입을 위하여 신축한 암문이므로 시설물의 명칭을 따서 장경사신지옹성암문과 제1남옹성 암문으로 명명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판단된다. - 암문9・13・15는 사찰과 인접하게 위치하여 사찰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을 것이므로 사찰명이 붙었을 가능성이 가 장 높으므로 남단사암문, 동림사암문으로 지칭하거나 벌 봉과 인접하여 있으므로 벌봉암문으로 지칭하는 것도 괜 찮을 것으로 판단된다.
- 암문11은 서암문의 반대인 동문 근처에 위치하여 동문대 신 많은 통행을 수용한 문13)이므로 동암문(또는 동소문) 으로, 암문14는 외동장대에 인접하므로 외동장대암문(또 는 외장대암문)으로, 암문15는 봉암성에서 한봉성으로 출 입하는 문이므로 봉암초암문의 사례를 참고하여 봉암성 한봉초암문으로 명칭을 부여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판 단된다.
4. 결 론
암문은 산성에서 중요한 시설물이고 남한산성에 남아있는 암문은 총 16개로 우리나라 성곽 중에서 가장 많은 암문을 가지 고 있다. 원성에 11개, 봉암성에 4개, 한봉성에 1개가 있다. 남한 산성처럼 암문이 많은 산성에서 이름을 부여한다면 학술적인 연구나 탐방객의 탐사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본 연 구에서는 각종 기록을 통하여 남한산성 암문의 명칭을 부여하 는 방안을 연구하였다.
본 연구의 결론으로는 문헌에 나타난 암문의 이름으로는 중 정남한지에 옥정사 암문, 장경사 암문, 연주봉 암문, 한흥사 암 문, 개원사 암문, 천주사 암문, 서암문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고지도인 「남한지도」에 나타난 암문으로는 망월사 암문과 봉암초암문이 있다.
이외의 암문 이름은 문헌기록과 고지도, 현황 등을 종합하여
‘장경사암문’과 같이 사찰과 인접한 암문은 ‘사찰명+암문’으로 붙이고, 주요시설물 또는 봉우리가 있는 경우는 ‘시설명+암문’
을 붙이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하 여 남한산성에 있는 16개의 암문의 명칭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 고자 한다.
13)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광주군, 2000, 남한산성 문화유적 지표조사보고 서, 127쪽
Fig. 25. Namhansanseong Fortress (expanded around the
east gate)
번호 명 칭 번호 명 칭
암문1 장경사암문 암문 9 남단사암문
암문2 장경사신지옹성암문 암문10 한흥사암문
암문3 망월사암문 암문11 동소문(동암문)
암문4 옥정사암문 암문12 봉암초암문
암문5 연주봉암문 암문13 동림사암문(벌봉암문)
암문6 천주사암문(서암문) 암문14 외동장대암문(외장대암문)
암문7 제1남옹성암문 암문15 봉암성 한봉초암문
암문8 개원사암문(제2남옹성암문) 암문16 영원사암문
Table 1. Ammun Name (Plan)
본 연구에서는 남한산성의 암문을 대상으로 고문서와 고지 도에 나타난 결과와 현황을 종합하여 명칭을 부여하였다. 추후 관련 기록이 더 나타나거나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온다면 명칭 은 변경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본 명칭이 최선이라고 사료된다. 이러한 점에서 본 연구의 한계가 있으며 추후 관련 연구도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남한지도」, 채색도, 132cm×83.5cm,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2. 중정남한지 권4, 군수(軍需) 매탄
3.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남한산성 문화유적 지표조사보고서, 광주 군, 2000
접 수 일 자 게재확정일자 : :
2019. 10. 23 2019.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