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상 중 계
공간과 경제 *
송병락|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공간+경제’의 시대
국내∙외적으로 공간과 공간경제의 중요성이 날로 증가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아파트에 사는 사 람에게는 공간이 부(富)와 삶의 질의 척도처럼 되 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는 1990년대 초부터 서비 스 경제로 변해가고 있는데, 서비스산업 경쟁력의 주된 결정요인 중 하나는 공간 면적과 공간 비용이 다. 우리 주위에서 발생하는 경제문제 중 공간과 관련이 없는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과거의 전쟁 도 결국은 국토공간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많은 경제활동이 사이버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것도 공간의 중요성을 나타 내는 것이다. 실로‘공간+경제’의 시대가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심각한 공간경제 문제가 잘 해 결되는 데 공간경제연구원이 큰 공헌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연구원이 이미 오래
전에 설립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라도 설립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 간경제연구원 설립을 거듭 축하드리며, 이 뜻깊은 자리에서 기조강연의 기회가 주어져 대단히 기쁘 게 생각한다.
지리학과 경제학의 융합과 공간경제
먼저 지리학과 경제학은 잘 융합되어야 한다는 사 실을 말씀드리고 싶다. 하나의 예를 보면, 칭기즈칸 과 그의 후손들은 러시아를 240~250년간 통치하 고, 중국은 원(元)나라를 설립하여 통치했으며, 인 도는 무굴제국을 설립하여 통치했다. 무굴은 페르 시아 말로 몽골을 의미하는데, 중동과 러시아도 지 배했다. 신시아 크로센(Cynthia Crossen)은「부자, 그들은 어떻게 부자가 되었나」라는 책에서 칭기즈 칸이 차지한 국토공간이 1,300만km2나 된다고 했 다. 그런데 당시 몽골의 인구는 불과 70만 명, 많게
*이 글은 지난 6월 30일 서울 용산구 해밀턴호텔에서 개최된 사단법인 공간경제연구원(원장: 박삼옥 서울대학교 교수) 개원식에서 발표한 송병락 서 울대학교 명예교수의 특별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임.
중동의 화염방사 기술 그리고 몽골인의 심리적인 기술을 잘 융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화약 기술은 본래 중국인들이 발명했지만 가장 많이 사용한 인 종은 몽골족이라고 한다. 신시아 크로센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가장 많은 땅을 소유한 땅 부자는 CNN의 설립자인 테드 터너(Robert Edward Turner III)로 소유 면적이 1,713km2라고 한다.
지금은 전화기도 고성능 전화기만으로는 안 되 고, 전화기와 계산기 기능 등이 융합되어야 훌륭한 휴대폰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지리학 과 경제학도 분리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 잘 융합되 어야 하는 시대다. 융합되어야 두 학문이 더욱 발전 할 수 있고, 시너지 효과도 발생하며, 공간경제 문 제도 더욱 잘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 서 공간경제연구원의 설립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하겠다.
한국은 공간의 중요성이 가장 중요한 나라 중 하나
「국토해양통계연보」(2009)에 따르면 한국의 국토 면적은 10만 140km2다. 인구는 외국인을 포함하고 통계적 오차를 감안했을 때 약 5천만 명이 된다. 따 라서 인구밀도는 km2당 500명이나 된다. 한국의 인 구밀도는 싱가포르의 6,943명, 방글라데시 1,229 명, 대만 638명, 모리셔스 625명에 이어 세계 제5위 가 되었다.
명으로 증가한다. 특히 서울의 경우 산과 강을 제외 하면 인구밀도가 싱가포르의 거의 4배나 된다. 서울 과 전국의 국토공간 활용에 국가의 장래가 결정된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국민 생활의 질과 녹색 성장의 장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km2당 인구밀도 가 500명이라는 사실은 가로, 세로가 1천m에 불과 한 좁은 땅에 5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살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한국은 국민의 건강한 생활이 어려 울 정도로 공간부족 문제가 심각한 나라다. 공간부 족 문제는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수도권의 공간부족에 따른 입지규제, 신행정수도, 지역균형개 발, 서울 강남지역의 높은 지가 등 공간부족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미국의 국가정보위원회는“Global Trends 2025”(2008년 11월 말 발표)에서 미래는 경제전 쟁, 자원전쟁, 환경위기의 시대라고 했다. 세계는 울 타리가 터진 하나의 정글에 비유된다. 이는 생사가 걸린 경쟁이 끊임없이 진행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도 세계 경제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국토의 글로 벌 경쟁력 향상이 시급하다.
한국의 주요 경제문제와 공간
우리나라의 근본적인 경제문제는 경제성장, 경제안 정, 형평의 실현 및 삶의 질 향상 등 넷으로 나뉘는 데, 공간문제는 이 네 가지 문제 모두와 긴밀한 관
지 상 중 계
계가 있다. 우리 경제가 당면한 주요 경제문제를 몇 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한국의 10대 그룹 435개 회사의 자산총액은 7,901억 달러로 GE 한 회사의 자산인 7,800억 달 러와 비슷하다. ② 전문대 이상 학교 졸업자의 수는 한 해 55만 5천 명이나 된다. 일자리는 몇 개나 만들 어지고 있는가? ③ 인구가 우리나라의 5분의 1이 안 되는 스위스에는 세계 1,000대 은행 중 38개가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13개밖에 없다. 13개 은행 자 산총액은 스위스 UBS은행의 4분의 3이 안 된다.
금융이 이런데, 일류 선진국이 될 수 있는가? ④ 삼 성전자 우선주의 80%를 외국인들이 소유하고 있 다. 삼성전자의 소유자는 누구인가? 왜 이렇게 되었 는가? ⑤ 수출상품 중 수익성이 가장 좋은 것, 국가 브랜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를 (원화) 왜 수출하지 못하는가? ⑥ KTX 호남선에는 앞으로 시속 400km의 고속전철이 운행된다. 전국 이 하나의 도시권이 되어가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 가? ⑦ 태능선수촌은 세계적인 스포츠 선수를 잘 양 성하고 있다. 각계각층의 세계적 전문가를 양성해야 하는 한국의 종합연구대학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⑧ 해외의 경쟁자들을 모방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강점을 융합하여 앞서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전 략이다. 한국은 전략사회인가, 전투사회인가?
그런데 1964~2008년 동안 1억 달러이던 수출 액을 4천억 달러로 증가시킬 정도로 경제 기적을 창출한 인종은 한국인뿐이다. 이런 저력을 활용하 면 앞으로 공간문제도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 인다.
경제학과 공간차원
한국의 공간문제를 보기에 앞서 경제학과 공간의 관계를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경제학은 여러 단 계를 거쳐서 발전하였는데, 제1단계에는 경제학에 논리학이 도입되어 이론이 더 논리적이고 정치(精 緻)하게 되었다. 제2단계에는 경제학에 수학이 도 입되어 수리경제학이 탄생하고, 경제이론이 더욱 정치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생산비의 변동이 2차 함수 형태로 나타나면, 수학의 기법을 사용하여 생 산비나 이윤의 극대점과 극소점 등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경제이론의 실용화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 다. 경제학 발전의 제3단계에는 경제학에 시간차원 (Time Dimension)이 도입되면서 동태경제학이 탄생하고, 5개년 계획 등 장기간에 걸친 경제계획 이 도입되고, 경기변동론 등의 이론이 발전하게 되 었다. 제4단계에는 경제학에 통계학이 도입되면서 계량경제학(경제학+수학+통계학)이 탄생하고, 각종 경제현상을 수량적으로 표시하고 측정하며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제 5단 계 는 경 제 학 에 공 간 차 원 (Space Dimension)이 도입되면서 공간경제학이 탄생하 고, 도시경제학, 지역경제학 등이 많이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농경사회에서는 토지면적과 생활공 간 및 생산공간의 면적이 거의 일치했다. 그러나 공 업화사회가 되면서, 그리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양자의 차이는 증가하게 되었다. 특히 도시에서는 제한된 토지면적으로 필요한 공간을 다 확보할 수 없어서 자본으로 토지를 대체하는 현상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따라서 제한된 토지에 고층빌딩을 지
를 결정하는 중요 요인이 되기에 이르렀다. 기업의 경우에는 토지와 공간의 활용이 경쟁력의 중요한 결정요인이 되었다.
경제학에서 그 중요성이 증가하는 외부효과(환 경오염, 환경파괴 등) 문제는 공간차원을 도외시하 고 해결하기 어렵다. 생활권, 학군, 시장, 행정서비 스권 등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인구밀도가 세계적 으로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공간의 중요성이 계속 증가하게 될 것이다.
전국은 하나의 도시로 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과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국민 생활 의 질, 그리고 경제안정 문제와 관련된 우리나라의 국토공간 활용문제를 보기로 한다. 한국의 국토공 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길은 무엇인가? 이 는 전 국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며, 그 길은 전국을 하나의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전국이 하나 의 도시가 되는 이유, 하나의 도시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미국의 존 카오(John Cao) 전 하버드대학교 경영대 교수는 지금은 창의성의 시대이므로 미국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실리콘밸리 같은‘창의적 도 시’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러시아의 어느 지도자는 국토 면적이 러시아의 162분의 1밖에 안 되는 좁은 국토를 가진 한국이 2008년 수출액이
② 우리나라의 무역 의존도는 107%나 될 정도 로 높아서 외국 경기의 영향을 과도하게 받게 되었 다(OECD, 2010, 연감). 어느 그룹 총수는 지금까 지 한국이 추진해온 수출주도형 성장이‘밀어내기 식 성장’이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무역비중이 100%를 넘은 지금 세계시장으로 더 밀어낼 여력 도 별로 없다. 사실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 러인데 선진국 평균인 4만 달러, 세계 최고인 노르 웨이 수준인 8만 달러로 높이기 위해서는‘끌어들 이기식 성장’도 아울러야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토공간 사용면에서 일대 혁신 이 있어야 한다. 스위스는 외국의 돈을, 싱가포르는 외국의 돈, 사람, 기술, 기업을 끌어들이고 있다. 우 리나라도 앞으로 끌어들이기식 성장이 중요하다.
그리고 밀어내기식 성장과의 조화가 중요하다. 이 를 위해서는 전 국토의 글로벌 경쟁력을 향상시켜 야 하는데 전국을 서울처럼 기업하기 좋고, 살기 좋 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전국을 서울 수준으로 업 그레이드하여 서울 수준과 같은 하나의 도시로 만 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수도권이라는 말 자체가 없어지고 영호남의 구분도 없어지게 된다. 수도권 집중이나 분산문제, 지역격차 등 많은 문제의 해결 이 쉽게 된다.
③ 중국의 충칭시는 면적이 8.2만km2나 된다.
인구는 2,800만 명이다. 중국의 어느 전문가는 한 국은 면적이 10만km2에 불과하므로 규모로 보면
지 상 중 계
하나의 도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은 세계 4 대 KTX 기술 보유국으로, 시속 350km 열차를 제 작 중이다. 시속 400km 열차는 호남선에서 운행 될 계획이다. 경부선 KTX 거리는 약 400km로, 서울역에서 서울 외곽지역에 가는 것보다 부산역 에 가는 것이 빠를 수도 있다. KTX를 통해 전국은 이미 하나의 생활권이 되고 있다. 앞으로 교통카드 하나로 전국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게 된 다고 한다.
④ 휴대폰 사용면에서 보면 지금도 서울과 지방 의 차이는 없다. 네그라폰테(N. Negraponte) MIT 대학교 교수는 지식사회에서는 서울과 지방, 중심 과 주변의 차이가 없어진다고 했다.
⑤ 도시문제의 대가인 존 킹글리(John Quigly) UC버클리대학교 교수는 한국은 결국 하나의 도시 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영국의 세계적인 도시 및 지역문제 전문가인 피터 홀(Peter Hall) 교수도 한국은 전 국토가 하나의 거대한 도시처럼 되는 것 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⑥ 올해 경부선 KTX 신선이 개통된다. 한국은 앞으로 KTX를 국가발전과 잘 연결시킬 필요가 있 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는「국부론」에서 국 부를 증가시키는 길은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것이 며, 생산성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분업을 증가시 켜야 하고, 분업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의 사 용량을 증가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시장의 규모를 증가시키는 것이고, 시장 의 규모를 증가시키는 길은 교통의 발달이라고 하 였다. 선진국들은 철도의 건설을 국가 발전의 중요 한 기회로 삼았는데, 한국은 세계 4대 KTX 기술
보유국이지만 이를 국가 발전으로 잘 연결시키지 못했다. 영국은 1804년 증기기관차와 철로를 건설 하면서 도약할 수 있었다. 미국은 1869년 대륙횡단 철도 건설을 국가경제 도약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 었고, 일본은 1964년 신간선 건설로 비약적인 발전 을 하여 국력이 치솟았다.
⑦ 한국의 도시는 수도권이라는 표현에 나타나 는 것처럼 원형도시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병석 KTX 경제권 공동대표의 지적처럼 한국은 수 도권‘단일경제권’또는‘단성경제권’, 그리고 억 제에만 매달렸다. 교통로를 따라 발전하는 선형도 시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2020년까지 시속 550km(마그레브) 고속철도를 개발하여 도쿄 - 오 사카 간 550km 지역을 하나의 선형도시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국도 앞으로 선형도시를 잘 개 발해야 할 것이다. KTX 경제권 개발을 통하여 최 소한 단기적으로는‘수도권 성장억제’에서‘KTX 경제권 성장촉진’으로, ‘수도권 중심의 원형성장’
에서‘KTX 경제권 중심의 선형성장’으로 전략의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수도권’에서‘KTX 경제권’으로‘권’의 이름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이 렇게 해야 녹색성장과 2만 달러 이후의 경제성장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전략이란 경쟁자는 못하고 나만 할 수 있는 것을 하여 승자가 되는 것을 말한다. 국토를 하나의 도시 로 만드는 것은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 그 어느 나라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들 나라 중 한국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간경제연구원의 출범을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앞으로 많 은 발전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