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소수민족 연구의 동향과 전망
— 티베트 사례를 중심으로 —
심혁주*1)
1.
중국은 56개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국가다. 인구와 영토점유율이 적은 한족이 상대적으로 거대한 55개의 소수민족을 통합하고 있다. 소수민족 중에서 티베트(西藏)는 역사, 종교, 경제, 정치, 외교, 영토 면에서 중요한 이슈들이 잠복 하고 있어 국내외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중국(中國), 대만(臺灣), 일본(日 本)은 아시아에서 티베트연구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고 장학(藏學)이라는 학술적 네트워크로 교류한다. 반면 서구에서는 유럽을 출발점으로 현재는 미국이 티베 트학(Tibetology)이라는 독립된 학문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시아에 서의 티베트연구가 변경(邊境), 변강(邊疆), 변연(邊緣), 변계(邊界), 접경지대라는
*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HK연구교수, [email protected]
역사적 판도(版圖)와 불교사적 관점을 중심으로 연구돼왔다면 미국과 유럽에서 는 좀 더 색다른 학문적 전통을 구축해왔다. 본문은 아시아와 서구의 티베트 연 구동향과 특징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고 향후 국내의 연구방향과 전망을 가늠하 고자 한다.
2.
중국은 소수민족 자치원칙(當家作主)을 기반으로 고원의 티베트를 서장자치구 (西藏自治區, 1969년)로 규획하고 관리하고 있다. 학술적으로는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연구자, 연구기관, 학술지, 집담회 등을 구축하고 있는 실정인데 이유는 8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에 대한 외교적 자극과 역사공정의 방어적 차원에서 당과 정부의 주도로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중국티베트연구센터(中国藏学研究中 心, 1986)는 대표적인 국책연구기관으로 티베트관련 세미나와 학술지(西藏硏究) 를 발행하고 관련 프로젝트를 위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주제와 내용은 국 가가 견지하는 ‘하나의 중국’과 ‘중화민족다원일체론’(中華民族多元一體)에 부합 되어야 한다.
중국의 티베트연구는 독립문제와 인권, 해외 망명정부의 영향력에 관한 대응 수단으로써 학술이 정치적 의무를 대행하고 있다는 편향적인 경향에 대해서 지 적을 받아왔다. 여기에는 연구자의 연구방법과 방향성의 문제도 포함된다. 이를 테면 소수의 연구자만이 티베트 원전사료의 독해능력을 갖추었을 뿐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그 자질과 역량이 뒤떨어지는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장고증의 인식문제는 본질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지답사를 통한 티베트 의 전통과 문화를 그대로 인정하고 기록하기 보다는 ‘오지’ ‘非문명’ ‘낙후’ ‘야 만’ 이라는 이분법적 인상을 부각시켜 한족이 티베트민족을 ‘해방’ 시켰다는 관 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양안(兩岸)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대만은 중국과 는 판이하게 다른 연구 성향과 방법을 추구해왔다. 중국의 티베트 연구가 순수 학문 영역이기보다는 당의 정책과 직간접적인 연계성을 지닌 연구가 대부분인 반면, 대만은 연구자의 개인성향과 연구방법에 따라 연구결과가 다양하게 나타 나는 경향을 보인다.
대만에서 티베트연구의 중심은 국립정치대학교(國立臺灣政治大學校)의 민족(民 族)연구소를 들 수 있다. 1969년 변정(邊政)연구소로 출발한 이 기관은 중국의 소수민족을 공부하는 민족학과를 기반으로 대만에서 가장 많은 티베트 논문을 제출하는 석/박사 연구생을 포진하고 있다. 1999년 민족연구소로 개명한 뒤 중 국의 주요 소수민족과 대만 원주민을 연구한다는 방침에 따라 역사, 언어, 종교, 문화, 민속에 관한 커리큘럼을 중심으로 해외의 학자들과 교류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1989년 14대 달라이 라마의 노벨평화상 수상, 중국의 대외개방정책, 영 안의 학술교류 증진 등으로 중국출판물과 연구자들이 대만으로 들어오면서 티 베트연구는 저변확대와 다양한 연구결과를 도출하기 시작했다. 대만의 티베트 연구는 유럽과 미국에서 유학하고 온 연구자들의 개방성과 다양성 그리고 연구 기관의 전폭적인 재정지원에 힘입어 2000년대 절정을 이루었으나 최근에는 연 구자 감소추세에 있다.
3.
아시아에 비해 서구의 티베트연구는 유럽에서 시작해서 미국으로 번져가 몇 몇 주요 연구기관과 연구자들의 주도로 티베트학(Tibetology)이라는 하나의 독 립된 학문영역이 구축된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에서 티베트연구의 학문적 출발점은 17세기 선교사의 활동에서 시작되어 점차 외교관, 탐험가, 식 물학자, 고고학자 등으로 확산되면서 그 방향과 내용이 심층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살펴보면 최근 10년간 서구에서는 티베트관련 연구자와 학술적 교류가 꾸준 히 늘어나고 있으며 ‘티베트 역사와 불교’에 대한 역사적 지위를 회복하려는 연 구경향이 주류를 이루었다. 국가와 정부 또한 연구기반 자립과 확충을 위해 재 정지원을 늘려왔으며 국제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왔다. 런던대학, 워싱턴 주립대 학, 독일 본(Bonn)대학 등은 티베트 망명 학자들(라마승)을 적극 영입하여 자국 의 티베트 연구기반확충을 마련하기도 했다. 아시아에 비해 티베트 출신의 라마 승이나 연구자들이 유럽, 미국에 많이 거주하고 있는 이유다.
유럽에서 티베트 붐이 형성된 것은 1970년대부터라고 볼 수 있다. 헝가리 사 회과학원 소속의 리게티(L. Ligeti)등을 주축으로 쵸마기념 학술대회(1976, Mátrafüred, Hungary)가 조직되었고 <국제티베트학회>(International Associa- tion for Tibetan Studies, IATS, 1979)가 성립되어 티베트연구의 국제화를 촉발 시켰다. 이 시기 미국에서는 불교사 연구자들을 주축으로 북미티베트학회(The North American TibetologicalSociety, 1981)가 조직되고 논문집이 발간되는 한편 티베트를 독립된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단행본들이 다수 출간되면서 대중 의 관심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시기 주목할 만한 국제티베트학회는 옥스퍼드 대학(Oxford University)의 마이클 아리스(Michael Aris, 1946~1999)와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 1945~)여사의 주도로 이루어졌는데 티베트와 관련된 학제 간 연구를 목표로 역사, 종교, 언어,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을 섹터별 팀으로 구성하고 있다. 3~4년에 한 번씩 나라별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 하고 있으며 2005년 10월부터는 학회지도 발행하고 있다. 최근 10년 동안은 티베트 불교철학이 아젠다의 중심을 이루어 왔다. 이 외에도 세계 젊은 티베트 학자 세미나(International Seminar of Young Tibetologists, ISYT), 루빈예술박 물관(RubinArt Museum, New York), 국제 라다크학회(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Ladakh Studies, IALS)에서도 정기적으로 티베트의 종교, 예술, 산림보호, 환경, 생물종보호 등에 관하여 전시회나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한편, 미국의 티베트연구는 시기적으로 두 차례의 걸쳐 성숙되었는데, 첫 번 째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유럽에서 중앙아시아 역사와 언어를 연구하던 일부 학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시작된 시기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1959 년 달라이라마의 인도 망명과 다람살라 망명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티베트 불교사원에서 수행하던 라마승(활불)들이 미국학계로 유입된 시점이다. 그들은 미국의 주요 연구기관이나 명상센터 등에서 학술적 자문과 연구보조를 담당하 면서 티베트의 불교와 종교를 알리는데 주력했다.
초기 학문전통이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박약했던 미국은 티베트 관련 문헌 수집, 분류, 정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선 방대한 원전자료 수집을 위한 재정확충과 네트워크 구축에 힘을 쏟았다. 여기에 참여한 주요 인사들로는 하버 드대학의 반 데어 퀘입, 버지니아대학의 제프리 홉킨스(Jeffrey Hopkins, 1940~), 미시간대학의 도날드 로페즈(Donald S. Lopez J, 1952~), 콜롬비아대학의 로버 트 서먼(Robert Alexander Farrar Thurman, 1941~)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유 럽의 티베트학자들, 이를테면 영국 브리스톨 대학의 폴 윌리엄스, 독일 함부르 크대학의 도르지 왕축과 오르나 알모기,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의 크라우즈 디 터 마티즈, 스위스 로잔대학의 톰 틸레만,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찰스램블 교수 들과 학술적 교류와 협업을 이루어내며 미국 티베트연구를 주도하였다. 특히 로 버트 서먼 교수는 티베트의 정신수양 및 마음치유 분야로 유명한데 1997년에는
‘타임’이 선정한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에 뽑히기도 했다.
현재 미국에서 티베트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연구기관은 중앙아시아 지역학으 로 유명한 인디아나 대학(Indiana University, Bloomington), 유럽 티베트학의 미국전파를 담당하고 있는 워싱턴 대학(University of Washington, Seattle), 티 베트불교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하버드대학(Harvard University, Cambridge) 등을 들 수 있고 버지니아 주립대학(University of Virginia)은 티베트 문헌학, 종교, 명상학으로 유명하다. 이밖에도 티베트 관련 자료를 디지털화해서 PDF 파일로 제공하고 있는 미국의 티베트불교자료센터(Tibetan Buddhist Resouce
Center)는 티베트불교의 보존과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4.
국내의 티베트 연구동향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티베트 관련 연구기관과 학술적 네트워크가 빈약하다.
둘째, 학술기반이 대부분 종교(불교)와 역사에 치중되고 있으며 그 외 민속학, 인류학, 언어학, 문학 등의 분야는 취약하다.
셋째, 거시적인 티베트 연구보다는 단편적인 연구 성과만을 도출하고 있다.
넷째, 티베트 관련 여행기나 에세이에 관한 영상물과 책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국내 출판계에서는 티베트불교, (밀교)수행, 수행분야에 서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저서가 지속적으로 출간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는 1990년대부터 늘어난 티베트불교 전공자의 저작물과 사회적 활동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2009년 12월 개원한 (경주)동국대학교 산하 <티베트대장경역경 원>은 학술, 번역, 언어, 교육사업 등을 통해 티베트불교에 대한 입체적인 관심 을 이끌어 대중의 참여와 학습을 이끌어 내고 있다. 소수이긴 하지만 국내 티베 트연구자들의 국제 학술활동도 주목할 만하다. 2010년 캐나다 밴쿠버의 브리티 쉬 콜럼비아대학(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에서 열린 국제티베트학회 제 12차 세미나에서는 총45개 패널에서 350여명의 티베트학자가 참석했는데 버 지니아대학의 이종복과 금강대학교 차상엽 박사가 참여하여 티베트불교 관련 주제를 발표했고 한림대학교의 심혁주 박사는 2019년 ‘티베트 라싸 국제포럼’
에 초청되어 <티베트 문헌의 디지털 전환의 필요성과 전망>이라는 주제를 발표 했다.
국내에서 일반인들이 티베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책, 언론, 영상매체
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지만 결정적인 촉발점은 14대 달라이 라마의 국제 적 활동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달라이 라마는 노벨평화상 수상(1989)이후 티 베트의 종교, 인권, 명상, 수행에 대한 인터뷰와 종교 활동으로 세계 각국을 순 방했다. 또 그때마다 그의 메시지와 교훈을 담은 영상물과 책들은 전 세계에 영 향을 미쳤고 국내에서도 에세이, 여행기, 티베트불교, 자기계발, 예술 등 각 분 야에서 수백 종이 출간되었다. 현재까지 국내에 소개된 티베트에 관한 서적은 이미 수백 종을 넘는다. 불서총판운주사 집계에 따르면, 티베트불교 관련 서적 은 2000년 이전에는 5종에 불과했지만 2001∼2005년 9종, 2006∼2010년 32 종으로 늘어났고 특히 2013년에는 한해에만 티베트불교 관련 서적이 13종에 이를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달라이라마 관련 서적을 제외하고도 이처럼 티베 트에 관련된 책들이 급증한 것은 관련 연구자들의 사회적 활동과 대중들의 인문 의식의 성숙으로 보여 진다.
5.
오늘날 티베트 문헌수집과 분류, 정리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기관은 미국의 TBRC(Tibetan Buddhist Resource Center)다. TBRC는 1959년부터 세 계각지로 흩어진 망명 티베트인들과 그들이 소장한 문화유산(티베트경전, 불상, 벽화, 법기)을 지키려는 미국인 연구자 스미스(Gene Smith, 1936~2010)로부터 시작되었다. 1999년 스미스는 티베트 문헌의 보존과 유지를 위해 TBRC를 기 획하고 설립했다. 그는 미국의회도서관 뉴델리 분소(Library of Congress New Delhi Field Office)에 근무하면서 티베트 문헌의 수집과 정리에 독보적인 역할 을 수행했다. 1999년 하버드대학의 쿠입교수와 함께 TBRC를 공동 설립한 스 미스는 우선 1만 2천권에 이르는 티베트 문헌의 디지털화를 통해 온라인 서비 스의 기틀을 마련했다. 티베트의 방대한 자료를 구축하고 있던 TBRC는
2001~2012년도까지 도날드ㆍ셸리 루빈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뉴욕루빈예술 박물관(Rubin ArtMuseum)에서 운영되었고 후에 다시 하버드가 자리하고 있는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 하버드 스퀘어(Harvard Square)로 옮겨 운영되었다.
TBRC가 특별한 이유는 가치 있는 티베트 문헌을 디지털화하여 보존하고,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연구자들과 티베트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인터넷으로 자료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추산으로는 백만 페이지의 자료가 매년 스캔되고 있는데 이 분량은 전체 티베트 관련 문헌의 약 25%에 해당된다. 2010년 스미스가 사망 후에도 디지털화 작업 은 계속되어 현재 약1만 7천 권의 자료가 이미 디지털화 되었고 하루 5천 명 정도의 사용자가 접속한다.
문헌에 대한 스캔 작업은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 하버드 스퀘어의 본부와 중 국 사천성(四川省)서남민족대학(西南民族大學)장학학원(藏學學院)이 함께 진행되고 있는데 2012년까지 약 900만 페이지가 스캔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한 현재까지 수집된 자료는 향후 5년간 스캔 작업을 진행하면 거의 완성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이후 새로운 자료에 대한 스캔과 함께 이용자들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기술적 발전과 내용의 정리가 계속될 전망이다.
시대의 흐름과 학문의 유연성을 고려할 때, 이제 국내 티베트연구도 새로운 방향과 접근법을 모색해야 할 지점에 있다. 티베트 연구가 그동안 재원확보와 연구 환경의 개선, 전통적인 인문학적 사유방식, 학술적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고집했다면 이제는 분야와 연구자에 따라 새로운 방향, 예를 들면 미국의 스미 스가 추진했던 디지털과의 협업을 생각할 때다.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디지털이라는 외피가 어쩌면 티베트의 학문적 전통과 유산을 오래도록 지 속하고 보존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