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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안보역량은 국민통합, 안보의식 중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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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63주년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이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올림픽 공원 올림픽홀에서 재방한 유엔참전용 사, 참전용사 후손, 참전국 외교사절 등 3,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국가보훈처는 ‘함께 지켜온 정전협정 함께 나아갈 통일한국’을 주제로 열린 이날의 정부기념식과 함께 참전용사들 이 참석하는 감사만찬, 참전국 현지 위 로·감사행사 등 국내외에서 혈맹과 우의 를 다지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관련기사 3면>

황교안 국무총리는 이날 기념식에서

“북한은 지금 대남 선전선동과 사이버 공격 등을 통해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있 다”며 “최고의 안보역량은 바로 국민통 합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황 총리는 “정부의 확고한 안보태세와 함께 우리 국민의 굳건한 안보의식이 매 우 중요한 때”라며 “오늘 이 자리가 국가 안보를 위해 온 국민이 대동단결하는 새 로운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며 이같 이 말했다.

황 총리는 “최근에도 북한은 4차 핵실 험에 이어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무모

한 도발을 계속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우리의 항구 와 비행장에 대한 선제타격 훈련이라고 공공연히 위협했다”고 말하고 “정부는 6·25전쟁의 뼈아픈 교훈을 영원히 기억 하면서 강력한 안보태세를 구축하여 어 떠한 경우에도 국민의 안위와 생명을 지 키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우리의 물샐 틈 없는 안 보태세와 유엔과 6·25 참전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하게 대응 해나갈 것”이라며 “북한이 핵무기를 스 스로 포기하고 진정한 변화와 개혁의 길 로 나오는 그날까지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황 총리는 “6·25전쟁에 참전했던 90만 명의 국군과 195만 명의 유엔군을 평화 수호의 영웅으로 생각하며, 정부는 참전용사 여러분의 헌신을 기리고 명예 를 더욱 드높이는 데 노력을 기울이겠 다”고 말하고 “정부는 참전용사 여러분 한분 한분의 고귀한 정신이 자자손손 이 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보훈정책을 추 진하는 한편 특히 해외 참전용사들의 방

한 초청 등을 통해 6·25 참전국들과의 우 호협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이날 기념식에 참석한 빈센트 브 룩스 주한미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 은 인사말을 통해 “정전협정은 휴전을 유지하고 안정을 보존하기 위한 도구로 지속돼왔다”며 “특히 전쟁이라는 비극 이 재발하지 않도록 지침을 제공해왔 다”고 말했다.

그는 “63년 전 서명된 정전협정은 평 화를 목표로 하는 정치적 합의를 통해 3 년간의 유혈사태에 마침표를 찍음으로 써 전 세계에 안도감을 줬다”며 “불행히 도 정치적 타협을 통한 평화체제는 달성 하지 못했지만, 적대적 상황도 재발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브룩스 사령관은 “대한민국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희생하고 헌신한 수많 은 분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오늘 정전협정의 성공을 기리는 가운 데 우리는 정전협정의 탄생을 가능하도 록 한 모든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 조했다.

한편 미국의 워싱턴DC와 런던 등의 참전국 현지에서도 각각 정전협정 기념 행사 등이 다양하게 열렸다.

1953년 7월 27일은 6·25전쟁 3년여 만 에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로, 정부는 해 마다 기념행사를 열어왔다. 정부는 2013 년부터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공식 제정 하고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최고 안보역량은 국민통합, 안보의식 중요한 때”

2016년 8월 1일 월요일 (월간) 국가보훈처 ☎ 1577-0606

‘정전협정 63주년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 개최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6·25전쟁 정전협정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서 뮤지컬 배우 김소현, 손준호, 유엔참전국 청소년 평화캠프 참가자들이 기념공연을 하고 있다.

“강력한 안보태세로 국민 안위와 생명 지킬 것”

“함께 갑시다(We go together)”

지난달 27일 서울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서 황교안 국 무총리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등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있다.

황교안 총리 기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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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6월 24일 삶의 역 경을 이겨내고 국가유공자 복 지증진 및 지역사회 발전과 국 민의 나라사랑정신 함양에 이 바지한 모범 국가보훈대상자에 대한 정부포상을 수여했다.

이날 포상식에서는 고엽제전

우회 이형규 총회장이 국민훈 장 동백장을 수여받는 등 모두 20명이 훈·포장, 대통령표창, 총리표창을 받았다.

다음은 포상자 명단.

△국민훈장 동백장 이형규 (전상군경 고엽제), 목련장 전록

찬(전몰군경유족) △국민포장 강낙현(공상군경), 강석진(6·25 참전) △대통령표창 부형규(특 수임무), 이경수(전상군경), 신 두균(공상군경), 이동진(애국지 사유족), 황수연(미망인), 이준 배(전몰군경유족), 손양기(무공 수훈) △총리표창 오정근(월남 전참전), 장석구(공상군경), 송

성용(고엽제), 박래욱(전몰군경 유족), 김종익, 이동복(이상 6·25

참전), 장수환(공상군경), 이정 희(미망인), 김성길(전상군경) 제855호 2016년 8월 1일 월요일 (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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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모범 보훈대상자 20명 정부포상

유엔참전국 등 세계 각국을 향해 펼치고 있는 보훈외교가 다양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달 3일부 터 8일까지 박승춘 처장 등 11 명의 방문단이 아프리카 앙골 라를 방문해 양국 간의 보훈업 무 협력을 본격 추진해 나가기 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방문은 최근 참전 국과 유럽, 아시아 중심으로 이 어지던 보훈외교가 아프리카 지역 등으로 본격 확장됐다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방문에서 보훈처는 앙 골라 보훈부와 여러 차례 실무 회의를 갖고, 앙골라 국내의 재 활센터, 보장구센터, 제대군인 취업교육, 의료진 교류 등에 관 한 구체적인 실행계획에 합의 했다.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추 진시기와 방법 등은 추후 논의

를 통해 결정키로 하고, 앙골라 대표단이 올해 11월 경 방한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방문 기간 중 박승춘 처장은 앙골라 부통령 및 국회의장, 국 방·외교장관 등 주요인사와 면 담하고, 보훈대상자를 위한 재 활센터 등 보훈관련 시설을 방 문하는 한편 앙골라 주요 지방 을 찾아 보훈정책현장을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박 처장은 비센떼 부통령 면 담에서 양국 간 상호 협력을 희

망하는 내용의 박근혜대통령 친서를 전달했으며, 비센떼 부 통령은 한국의 경제성장 정책 을 벤치마킹하고 싶다고 강조 하면서 빠른 시일 내 도스 산토 스 대통령의 방한이 성사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또 박 처장과의 면담에서 국 회의장과 국방·외교장관은 한·

앙골라 간 보훈협력을 포함해 다양한 분야 협력을 통해 양국 우호관계증진을 희망하며 이를 위해 가능한 지원을 아끼지 않

겠다고 강조하면서 지속적으로 유엔안보리 결의를 준수하며 한국의 통일정책을 지지할 것 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방문은 올해 3월 체 결된 ‘한·앙골라 보훈정책협력 양해각서’에 기반한 구체적인 보훈정책 협력에 관한 논의 및 경제분야 협력을 위해 앙골라 측에서 적극 요청해 성사된 것 이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이번 방문기간 중 앙골라는 국가보

훈처장 지방 방문 행사 시 대통 령 전용기를 이용할 수 있게 하 는 등 적극적 협력의지를 표시 해 왔으며, 앙골라 주요 언론도 한국 방문단 일정을 연일 상세 히 보도하며 큰 관심을 나타냈 다”고 말하고 “이번 방문을 계 기로 6년 동안 중단됐던 ‘한·앙 골라 경제공동위원회’가 하반 기 중 다시 개최되는 등 양국 관 계가 한 차원 높은 단계의 우호 관계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 다”고 평가했다.

박승춘 처장 앙골라 방문 양국 보훈협력 추진 합의

앙골라를 공식방문중인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지난달 7일 오후(현지시간) 루안다 HCTA호텔에서 열린 보훈협력실천계획에 관한 서명식에서 깐디두 반 두넴 보훈부 장관과 협약서를 교환하고 있다.(사진 왼쪽) 지난달 4일 비아나 재활센터를 방문해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는 박승춘 처장.(오른쪽)

보훈외교 확장…앙골라를 넘어 아프리카 대륙을 향하다

발행일 2016년 8월 1일 발행처 국가보훈처 발행인 박승춘 대표전화(정책·민원·상담) 1577-0606 편집·배포 044)868-0745·6

(우)30113세종특별자치시 도움4로 9

본지에 수록된 내용은 국가보훈처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창간 1963년 9월 19일 홈페이지 www.narasara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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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정한 정전협정 및 유 엔군 참전의 날은 △6·25전쟁에 서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과 자 유민주주의를 수호한 90만 국 군과 195만 유엔군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고 △한반 도 평화보장과 경제발전의 토 대가 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 결 이후 지난 60여 년 간 국토방 위에 헌신한 1,000만 제대군인 과 350만 주한미군 장병의 노고 에 감사하며 △정전협정 유지 를 위한 유엔군사령부와 한미 연합사의 역할과 중요성을 국 민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유 엔참전 21개국과 유대강화로 국제사회 우호협력 기반을 확 대한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 국가와 세대 넘어 우의를 확 인한 기념식과 공연

따라서 기념식도 그 정신에 맞게 참전국 국기 입장을 시작 으로 국민의례, 영상물 상영, 유 엔군사령관 인사말, 훈장수여 등의 순서가 엄숙하게 진행됐 으며 특히, 올해 ‘유엔군 참전의 날’에는 정부포상 대상자 12명 중 유엔군 참전자인 태극무공 훈장 수훈자 3명과 국민훈장 수 훈자 1명이 기념식에 초청돼 한 국정부가 수여하는 영예로운 훈장을 수상해 더욱 그 뜻을 깊 게 했다.

훈장을 받은 유엔군 참전자 는 미 해병대 중령으로 참전한 고 레이몬드 데이비스의 장손 제프리 데이비스와 남아공 공

군 중위로 참전한 안토니오 마 이클 뮬러, 필리핀 육군 하사로 참전한 맥시모 퓨리지마 영(이 상 태극무공훈장)과 프랑스 한 국전 참전용사의 명예를 선양 한 파트릭 보두앵(국민훈장) 등 4명이다.

특히 행사 기념공연에서는 한국의 젊은이와 전쟁영웅이 세대를 넘어 나누는 우정의 무 대 등이 펼쳐져 감동적인 상황 을 연출하기도 했다. 유엔참전 용사께 감사를 표현하는 홍지 민 양(민족사관고 1년)에 대해 다부동전투와 인천상륙작전, 장진호전투 3개 전투에 해병대 일병으로 참전했던 전쟁영웅 워렌 위드한 씨의 전쟁 회고와 한국 사랑으로 화답을 한 것.

이날 공연 마지막 순서는 뮤 지컬배우 손준호, 김소현과 참 전용사 후손 평화캠프에 참가 한 청소년 170여 명이 함께 부 르는 우정과 화합의 대합창(We go Together)으로 장식됐다.

대합창 중반에 상영된 ‘유엔 참전국 외교사절들이 전하는 우정의 메시지’는 참전 21개국 대사들이 혈맹의 우의를 재확 인하고 ‘함께 가는 희망의 미래’

를 약속하며 공고한 동맹의 힘 을 보여주기도 했다.

█ 청소년 평화캠프- 새로운 세대가 이어가는 희망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에 맞춘 유엔참전국 청소년 평화캠프가 지난달 22일부터

28일까지 6·25참전 17개국 참전 용사 후손 대학생 162명과 미국 역사·사회교사 10명 등 총 172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평화캠프 참가자들은 23일 오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람을 시 작으로 24일에는 부산유엔묘지 에서 전사자묘역을 참배하고, 다음날인 25일에는 DMZ를 방 문해 대한민국 분단현실을 직 접 보고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26일 오후에는 재방한 행사에 참석한 유엔참전용사들과 함께 영화 ‘인천상륙작전’ 시사회에 참여하는 한편, 27일에는 7·27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과 저녁만찬에 참석해 유엔참전용사에 대한 감사와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2009년부터 시작된 유엔참전 국 청소년 평화캠프는 전후 3세 대에게 전쟁 1세대의 교훈과 유 산을 전승하고 미래협력 기반 구축에 기여하고 있다.

█ 미국 영국 캐나다 수리남, 21개 참전국도 행사 참여

참전국 현지에서도 참전 21 개국 주재 38개 재외공관 주관 으로 다양한 위로감사 행사가 열렸다.

미국 워싱턴 DC에서는 27일 오전 10시 한국전참전기념비에 서 ‘정전협정 63주년 기념식’이, 영국 런던에서는 오전 11시 한 국전참전기념비에서 ‘정전 63 주년 기념행사 및 평화의 사도 메달 수여식’이 각각 개최됐다.

캐나다의 오타와와 밴쿠버 한 국전참전비 등에서도 27일 오 전 ‘정전협정 및 한국전 참전 기 념행사’가 열렸다.

특히 6·25전쟁 당시 네덜란드 군 소속으로 참전했던 남아메리

카 수리남의 한국전 참전비에서 는 올해 처음으로 한국전 참전 용사와 유가족 등 100여 명이 모 인 가운데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 및 평화의 사 도메달 수여행사’를 가졌다.

2016년 8월 1일 월요일 (월간) 제855호 3

뉴스

지난달 27일 6·25 전쟁 정전협정 유 엔군 참전의 날 기 념식에서 워렌 위 드한 미국 한국전 참전협회 부회장 과 민족사관고 홍 지민 양이 Thanks KOREA 자막을 배 경으로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함께 지켜온 대한민국, 함께 이룰 통일한국을 노래하다”

국가기념일 지정 네 번째를 맞는 올해 ‘정전협정 63주년 및 유엔군 참 전의 날’의 주제는 ‘함께 지켜온 정전협정 함께 나아갈 통일한국’. 정전협 정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켜온 역사를 기억하며, 통 일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각오를 다지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었다. 기 념식과 함께 전국 곳곳에서 펼쳐진 다행한 행사들은 여전히 한미동맹이 유효함을, 그 튼튼한 힘이 오늘 대한민국 발전의 동력의 하나임을, 그 힘 을 토대로 통일까지 함께 가는 동맹의 미래를 입증해 보였다.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결산

이달부터 국가유공자 대부업 무를 농협은행에서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국가보훈처는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들의 주거안정과 생활 안정을 위한 대부지원 사업을 오는 5일부터 농협은행에도 추

가 위탁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농어촌 지역에 거 주하는 고령 국가유공자와 유 족들은 농어촌에 점포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농협은행에 서 편리하게 나라사랑 대출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국가유공자 대부사업은 1962

년부터 보훈처에서 직접 대부 업무를 취급해 왔으나 2007년 7 월부터 국민은행에 위탁해 운 영하고 있으며, 현재 매년 3만 여 명이 주택대부 등 8종의 대 부를 이용하고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국민은행 점포가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

되어 있어 그동안 농어촌 지역 에 거주하는 국가유공자들이 불편을 호소해 왔는데, 이번 위 탁은행 추가로 1,100여개의 국 민은행 지점과 함께 1,100여개 의 농협은행 지점이 추가돼 더 욱 편리하게 대부업무를 보실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부업무 농협은행에서도 처리

국민은행 이어 위탁 5일부터 대부업무 개시

유엔참전용사들이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을 찾아 전사자명비 에 헌화 후 경례를 하고 있다.

25일 오전 경기도 파주 DMZ내 판문점을 방문한 유엔참전국 청소년 평화 캠프 참가자들이 북측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유엔참전국 청소년 평화캠프 참가자들이 25일 오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Peace Ambassador 선포식에서 캠프기를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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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5호 2016년 8월 1일 월요일 (월간)

4

뉴스

8월은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 게 한 광복의 달. 8월 15일 광복 절을 전후해 전국에서는 광복 71주년 행사가 다양하게 펼쳐 진다.

8월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에서는 광복71주년 중앙경축식 이 개최된다.

경축식에는 5부요인을 비롯 한 국가 주요인사, 독립유공자 와 유족, 주한 외교단, 사회 각 계대표 등 3,000여 명이 참석해 광복의 뜻과 오늘의 과제인 한 반도의 평화통일에 대한 의지 를 다지게 된다.

이 날은 전국의 각 주요도시 에서도 광복절 경축식을 갖고 광복의 기쁨을 함께 나눈다. 각 지자체는 경축식과 함께 전야 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도 함께

개최한다.

해외에서도 현지 한인회 등 이 주관하는 경축식이 열리며, 경축식이 끝난 후에는 교민들 의 친선을 도모하는 행사들이 함께 이어진다.

정부는 광복절을 맞아 순국 선열과 애국지사에 대한 포상 도 실시한다. 훈·포장과 각급 표창은 중앙경축식장과 지자체 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유 족에게 수여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국가보훈처는 국외 거주 독립유공자를 초청하는 행 사도 갖는다. 조국에 대한 자긍

심과 한민족 공동체 의식 강화 를 위해 추진되는 이 행사는 대 한민국의 역사와 분단현실을 재 인식하고 선조들의 희생정신을 확인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으로 진행된다.

독립기념관과 대한민국역사 박물관도 광복절을 기념한 다 양한 전시회 등을 기획하고 있 다.

독립기념관은 8월 10일까지 겨레의 큰마당에서 ‘태극기, 독 립운동의 현장에서 나부끼다’

를 주제로 한 태극기 기록사진 전시회를 갖는다. 이어 14일과

15일에는 광복절 충남 경축식 과 함께 국가상징물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등을 마련한 문 화행사를 개최한다.

특히 13일부터 15일까지 사 흘간 항일영상역사재단과 함께 개최하는 제1회 독립운동 국제 영화제는 근현대 식민시대를 경험한 국가에서 제작된 독립 운동 관련 영화와 영상물을 한 곳에서 상영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15일 오후 1시부터 박물관 기획전시 실 앞에서 광복절 특별 초청기 념음악회를 개최한다. 이외에 도 나라사랑 퀴즈대회, 대한민 국 사행시짓기대회, 대형 태극 퍼즐 맞추기 등 다양한 체험 프 로그램도 운영한다.

8월, 광복절 “독립을 기리고 통일을 다진다”

 

 





 



   

   



 

 

     



광복절과 8월의 행사

압류 방지 전용 ‘호국보훈지킴이 통장’ 안내

국가보훈처는 정부3.0의 일환으로 보훈급여금 등을 압류할 수 없는 ‘호국보훈지 킴이 통장’을 출시하였습니다. 아래의 내용을 참고하여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 발급 은행 : 우체국, 국민은행, 기 업은행, 농협은행, 산업은행, 우리은 행, 새마을 금고, 신용협동조합 - 신한은행, 대구은행(8월 말 출시예정)

█ 발급 대상 : 보훈급여금, 고엽제후 유의증수당(고엽제후유증2세환자수 당), 참전명예수당을 지급 받는 국가 유공자와 유족 등

█ 발급 및 신청절차 1. 우체국 등 발급 은행 방문

2. 국가보훈처에서 발행한 증명서 또

는 확인원과 신분증을 제시하고 통장 발급 신청

3. 통장 발급 후 관할 보훈(지)청에 ‘예 금 계좌 등 변경 신청서’ 제출

※ 압류방지전용통장은 출금과 이체는 자 유로우나 보훈급여금, 고엽제수당, 참전 명예수당 등 국가보훈처에서 매월 지급되 는 정기급여만 입금되고 다른 금액은 일체 입금되지 않아 다소 불편할 수 있음.

█ 문의 : 전국대표전화 1577-0606, 국 가 보 훈 처 보 상 정 책 과 044-202- 5420~1, 전국 보훈(지)청 보상과 국가보훈대상자의 연소득 등

이 유사한 연령대의 노인층보 다 다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보훈처가 한국갤럽에 의 뢰해 실시한 ‘2015 국가보훈대 상자 생활실태조사’ 결과에 따 르면 보훈대상자의 연소득은 2,359만원으로 일반 노인층의 2,305만원보다 높았으며, 자가 비율도 보훈대상자(75.8%)가 노인(69.2%) 보다 6.6% 포인트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부채의 경우도 보훈대상자가 2,083만원 수준으로 일반 노인 층의 2,630만원보다 26.2%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초수급자 비율은 보 훈대상자가 2.7%인데 비해 노

인층은 7.4%로 나타나, 보훈대 상자의 기초수급자 비율이 노 인층에 비해 1/3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조사결과는 국가유 공자에게 상이등급 등에 따라 지급되는 보상금과 함께, 진료

비와 약제비를 무료 또는 60%

할인하는 등의 의료 지원, 보훈 섬김이를 통한 재가복지서비 스 제공, 본인과 자녀에 대한 무료 교육과 취업알선, 국립묘 지 안장 등의 각종 지원 제도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조사대상자의 54.3%가

“국가보훈대상자로서의 자긍심 을 느낀다”고 대답했으며, 자긍 심 정도 평균은 5점 척도에 3.74 점으로 분석됐다. 자긍심을 느 끼는 이유로는 ‘보훈대상자에 걸맞는 대우’나 ‘예우 정책’보다

‘국가발전에 이바지했다는 자 부심(80.2%)’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생활실태조사는 국가보 훈처가 국가보훈기본법에 따라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 의뢰해 전국 17개 광역시도의 국가보 훈대상자 1만 가구를 표본으로 선정해 실시했다. 조사기간은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6개 월간이며, 가구방문 대인면접 조사에 의해 이뤄졌다.

보훈대상자 연소득 등 일반 노인층 비해 다소 높아

대상자 생활조사 분석 기초수급자 비율은 노인층의 1/3 수준

보훈대상자와 일반 노인층 생활수준 비교

소득 부채 기초수급자 비율

2,359만원

2,305만원 2,083만원

2,630만원

2.7%

7.4%

노인층 노인층 노인층

보훈대상자 보훈대상자 보훈대상자

경축식·전야제 등

전국서 다양한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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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일 월요일 (월간) 제855호 5

단체

대한민국상이군경회(회장 김 덕남)는 지난 6월 23일부터 7월 5일까지 미국 상이군인재활제 도 연수와 PVA체육대회 참관 을 위해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 크 시티를 방문했다. <사진>

이번 참관단은 박광봉 부회 장을 단장으로 상군체육회 편 무조 부회장, 상이군경회 1급 중상이자 6명이 함께 했으며 휠

체어상이군인체육대회와 솔트 레이크 시티 보훈병원, 오렌지 카운티 장애인 재활 및 물리치 료센터 등을 견학했다.

이번 참관에서 미국 휠체어 상이군경체육대회의 경우 미국 내 많은 기업들이 후원하고 지 역주민과 학생들이 자원봉사로 활동해 지역의 축제로 진행되 고 있으며, 이 행사를 통해 정부 와 민간이 함께 보훈정책에 공 감, 실천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미국 선진 재활 시스템 참관

상이군경회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회 장 최해근)는 정전협정 63주년 을 맞아 지난달 26일부터 27일 까지 1박 2일간 제14회 휴전선 155마일 종주를 개최했다.

6·25전쟁의 의미와 자유 평화 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해 마 련된 이번 종주대회는 유족회 회원과 6·25참전유공자, 귀환국 군용사회, 대학생 등 370여 명 이 참석했다.

155마일 종주는 26일 고성 통 일전망대에서 출정식을 가지고 진부령, 인제 백골병단 전적지, 원통을 거쳐 화천7사단 내 신교 대에 도착해 안보행사와 화합 의 마당으로 이어졌다.

27일은 화천군 충렬탑을 참배 하고 철원 평화문화광장에서 중

부전선 전사자 추모제를 지낸 뒤 임진각에서 평화통일기원 타 종식을 갖고 서울역 광장에 집 결해서 행사를 마무리했다.

최해근 회장은 “6·25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60여 년이 지났 지만, 아직도 전쟁의 위협이 도 사리고 있다”며 “우리 모두 호

국 안보의식과 나라사랑 정신 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 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155마일 종주 행 사에 참여한 학생 여러분은 조 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안보역 군으로서 선봉자적 역할을 다 해줄 것”을 당부했다.

휴전선 155마일 종주하며 안보의식 다져

전몰군경유족회

광복회(회장 박유철)가 추진, 서울 여의도에 신축중인 새 광 복회관이 터파기와 함께 흙막 이 공사에 진입하면서 기초를 탄탄히 닦아가고 있다.

지난 1월 18일 착공한 새 광 복회관은 지하4층, 지상9층의 연면적 약 5,570평 규모로 기

존 건물보다 약 2.4배 정도 넓 게 지어진다.

광복회는 공사가 본격화 되 면서 지난 6월 8일 재건축 기 공식을 개최했다.

새 광복회관에는 독립유공 자와 유족을 위한 공간과 독립 전시관 등이 설치될 예정이며, 이곳에서 나오는 수익금은 광 복회 재정 보강과 회원 복지

향상, 장학사업 강화에 사용될 예정이다.

박유철 광복 회장은 기공식 에서 “항일 독

립의 가치와 의미를 새기고 독 립운동이 우리 국민 모두의 긍 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데 새롭게 지어지는 광복회관이

역할을 하길 바란다”며 “광복 회가 국민화합을 이루고 선열 님들의 염원이자 겨레의 숙원 인 평화적 통일 국가를 건설하

는데 굳건한 중심이 되어야 한 다”고 말했다.

광복회관 준공은 2년 후인 2018년 5월이다.

‘광복의 꿈’ 실은 새 광복회관 공사 ‘활발’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회장 이종열) 제주지부는 지난 달 13일 제주시 애월리 애월항 에서 바다사랑 수중해안정화 활동을 개최했다. <사진>

이번 행사는 이종열 회장과 본부 임직원, 특임자회 회원 등

100여 명이 참석해 수중에 방치 된 침전물과 해안가 주변 각종 쓰레기를 수거했다.

특수임무유공자회는 우리나 라를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존 해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수 중 해 안 정 화 활 동 을 지 난 2008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8년 째 시행해 오고 있다.

바다사랑 수중해안정화 활동 개최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총회 장 이형규 회장 강인호)는 지난 달 18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에서 제18차 고엽제의 날 충혼 위령제 및 전우 만남의 장을 개 최했다. <사진>

7,0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행 사는 1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고엽제로 희생된 전우들의 넋 을 달래는 충혼위령제에 이어 2 부 박근혜 대통령의 축사와 함 께 모범회원에 대한 표창 수여 식으로 진행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행사 에 보낸 영상메시지에서 “국민 의 힘을 모아 빈틈없는 안보 태

세를 구축하고 국제사회와 공 조해 일관되고 단호한 제재를 펼쳐야만 북한의 핵 포기와 변 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며 “굳 건한 애국심으로 국가 발전에 기여해 오신 여러분께서 국민 의 단합과 든든한 안보 구축을 위해 앞장서서 노력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박 대통령은 고엽제 피 해자 문제와 관련해 “정부는 여 러분과 같은 애국자들이 명예 롭게 예우 받을 수 있도록 하고 한반도에 평화통일 시대를 열 어 여러분의 헌신에 보답해 나 갈 것”이라 말했다.

충혼위령제와 전우 만남의 장 개최

고엽제전우회

특수임무유공자회

광복회

지난달 27일 155마일 종주단이 화천 충렬탑 참배를 마치고 철원으로 이 동하기 전 청소년 회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6월 8일 개최된 광복회관 재건축 기공식 장면. 오른쪽은 신축 광복회관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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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공자의 손과 발, 그리 고 눈과 귀가 되어 생활의 불편 을 최대한 덜어드린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이사 장 김옥이)는 서울의 중앙보훈 병원을 비롯해 부산, 광주, 대 구, 대전보훈병원에도 각각 보 장구센터를 설치해 국가유공자 를 위한 보장구 제작기관으로 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보훈공단의 보장구센터는 1964년 ‘원호처 국립직업재활 원 보철구공장’ 창설을 모태로 설치돼 우리나라 보장구 역사 와 그 발걸음을 같이해 왔다. 현 재는 현대적 시설과 첨단장비 를 갖추고 국가유공자와 일반 장애인의 신체기능 회복과 2차 질환예방을 위한 의지·보조기, 맞춤형 교정용신발(장애인용), 보청기, 의안, 실리콘 의수 등 51종의 보장구를 공급하고 있 다. 연간 매년 제작·공급 실적 도 1만 2,000건 이상에 달한다.

보훈병원 보장구센터는 최근 병원을 찾기 어려운 중증, 고령 국가유공자와 일반 장애인에 대해서는 가정으로 직접 찾아 가 보장구 형태를 맞추고(취형) 장착을 지원하는 ‘찾아가는 보 장구 서비스’ 운영을 통해 고객 감동 서비스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구급차 타고 들어와 걸어나가 는 기적을

# 경북 청도의 국가유공자 서 OO씨(42세)는 1996년 군 작전 중 지뢰사고로 좌측 종아리부 위가 손상됐다. 경북 장애인수 영선수로 활동 하던 서씨는 철 인3종경기에 도전하기 위해 보 장구센터와 상담을 한 끝에 달 리기에 적합한 맞춤형 종아리 의지를 공급받게 됐다. 그는 이 후 철인3종경기 장애인국가대 표로 발탁돼 2015년 필리핀에 서 개최된 수빅만 장애인트리 아슬론 아시아 챔피언십대회에 서 3위에 오르는 등 국내·외 철 인3종 경기에서 잇달아 쾌거를 이뤘다.

# 2015년 8월 4일 나라를 떠 들 썩 하 게 했 던 비 무 장 지 대 (DMZ) 북한 매설 목함지뢰 폭 발 사고로 신체가 손상된 김 OO, 하OO 하사. 두 장병은 10 월 7일 중앙보훈병원으로 이송 돼 3개월간의 재활치료와 의지 착용훈련을 거쳐 구급차를 타 고 들어와서 걸어서 나가는 ‘기 적’을 연출했다.

김OO 하사는 퇴원하는 날 한 쪽 의지를 착용하고 달리기와 점프 동작까지 해 보이며 당당 하게 군으로 복귀했다. 하OO 하사도 병원의료진과 보장구센

터와의 긴밀한 협업으로 약 3개 월간의 힘든 재활을 마치고 두 다리로 걸어서 퇴원하게 됐다.

보장구센터는 쉬지 않는 연 구개발로도 유명하다. 새로운 기술로 더욱 편리한 제품을 공 급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 구개발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다.

센터는 지난 2014년도 ‘고체 형 실리콘 의수 제조방법’으로

특허를 취득해 실리콘 의수 제 작방법에 대한 독창적 기술력 을 확보했다. 이 기술을 이용해 센터는 고품질의 실리콘 의수 를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제작 공급 수리 벗어나 헬스케어 등 첨단 제품 투자

보장구센터는 또 기존 공급 하던 820g에 이르던 경량화 제 품에서 346g을 덜어내 474g짜

리 제품을 개발했다. 특히 고령 자에게 적합한 이 제품은 의지 를 착용한 장애인에게 보행에 서 가볍고 충격흡수 능력이 탁 월한 것으로 확인돼 높은 만족 도를 얻고 있다.

이외에도 보장구센터는 미래 성장 발전을 위한 임상연구 및 자체 브랜드 개발에도 힘을 쏟 고 있다. 레저 활동을 위한 맞춤 형 의지, 고령화에 따른 무게 감 소방안 마련, 해외 수입품목을 자체 개발품목으로 대체하는 등의 다양한 연구개발을 추진 하고 있다.

보장구센터는 앞으로도 연구 인력을 지속적으로 보강해 내 년에 개원할 ‘보훈의학연구소’

와 함께 기존 제작, 공급, 수리 위주의 업무를 벗어나 3D 프린 터를 이용한 의수족 제작, 웨어 러블, 헬스케어 관련 첨단 보장 구 등의 연구개발에도 집중 투 자할 계획이다.

제855호 2016년 8월 1일 월요일 (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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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맞춤보장구로 고객 만족도 향상 … 최고제품 개발 집중

보훈공단 보장구센터는 우수 한 인적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 내외 장애인들을 위한 사회공 헌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중국 연길시와 의료봉사활동 협약을 맺어 2001년부터 절단 장애인과 지체장애인에게 팔·

다리 의지와 보조기를 맞춤 형으로 제작해 공급해 왔다.

2012년과 2013년에는 사 회공헌활동 일환으로 국내 절단장애인 중 경제적 지원 이 필요한 이들에게 의지를 무상 공급했으며, 올해에는 장애인의 날 기념 봉사활동 으로 재활의학과와 협업으로 서울 암사장애인재활원 어린이

8명에게 보장구제작과 수리를 지원했다.

활발한 사회공헌활동

중앙보훈병원 보장구센터 직원들이 새로 제작한 보장구를 점검하고 있다.

 

 





 



   

   



 

 

     



기획취재 - 보훈공단 보장구센터

중국 연길시 장애인연합회에 방문해 보장 구를 설명하는 김옥이 이사장과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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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일 월요일 (월간) 제855호 7

기획

지난 6월 29일 오전 서울 여의 도한강공원. 이곳에서는 국내에 유학 중인 유엔참전국 학생과 국 내 참전유공자 후손 65명이 ‘유 엔참전국 청소년 대한민국 대장 정’ 발대식에 참석하고 있었다.

이 행사는 6·25전쟁 당시 우리 나라를 도왔던 참전국 후손들에 게 은혜를 갚기 위해 준비됐다.

첫날 첫 방문지는 강원도 양 구 DMZ로부터 3킬로미터 후방 이면서 우리나라 최전선의 중 간 꼭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두 타연이었다. ‘삶의 걱정을 떨치 고 욕심을 버린다’는 뜻을 가진

두타연은 6·25전쟁 당시 고지전 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졌던 피 의능선 전투, 도솔산 전투 등이 발발했던 안보현장이다. 대장 정 일행은 먼저 6·25전쟁에서 희생된 2만 5,000여 명의 전사 자들이 잠들어 있는 양구전투 위령비 앞에서 그들의 넋을 기 리고 감사의 묵념을 올렸다. 지 금 이들이 전몰장병께 드리는 묵념은 앞으로 통일을 이루는 그날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힘 으로 느껴졌다.

이어서 이곳 해설사의 안내 를 받아 전후세대가 통일을 염

원하는 뜻에서 만들었다는 조 각공원 견학, 분단국가에서나 가능한 모형지뢰, 크레모아 등 의 폭발 절차와 폭음 등도 직접 체험했다. 특히 전쟁의 상처가 만들어낸 이곳이지만 남북생태 계와 동북생태계가 마주치는 아름답고 숨 막히도록 맑은 계 곡과 오염되지 않은 자연이 숨 어있다는 점에서 전쟁과 평화 의 아이러니처럼 다가왔다.

2일차는 독도를 탐방하는 날.

일기예보는 남부지방 및 서울 에서 많은 비가 내리겠다고 했 으나 이곳 날씨는 매우 맑고, 배 도 순항했다. 울릉도를 경유해 독도를 향하는 배안에서 끝없 이 펼쳐진 동해의 수평선이 나

타났다. 배가 독도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은 박수와 태극기 를 손에 들고 흔들었고, 학생들 은 어깨에 태극기를 걸치고 환 호했다.

그날 저녁 프로그램에는 필자 의 나라사랑 교육이 들어있었다.

필자는 강연에서 독도가 왜 대한 민국의 영토인지를 지리적, 역사 적 사실과 일본 스스로 발간한 정부발행 문서와 민간 출판사에 서 제작한 각종 지도 등의 입증 자료를 가지고 설명했다.

대장정 마지막 4일차는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하는 날이 다. 아침엔 화창하던 날씨가 우 리 일행이 도착하니 가랑비를 뿌렸다.

유엔기념공원 견학 마지막 시간에 우리나라의 자유와 평 화를 위해 희생한 전몰장병들 에 대한 헌화하고 참배했다. 전 몰장병에 대한 연주가 울려 퍼 지자 비는 굵은 빗방울이 되어 더욱 세차게 내렸다. 참배가 끝 나자마자 대장정 일행은 헌화 대 앞에서 손과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우리 함께 대한민국의

통일을 향해 나아가자는 무언 의 굳은 약속을 했다. 참으로 감 격의 순간이었다.

유엔참전국 청소년과 우리나 라 청소년들의 맞잡은 손을 보 면서 “한국전쟁에 참여했거나 목격한 세대들이 사라진다면 6·25전쟁의 참상도 잊혀질 것 아닌가. 이 맞잡은 손이야말로 전쟁을 겪지 않은 세계의 모든 청소년들에게 전쟁의 비참함과 평화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함 께 유대를 나누는 생생한 경험 이자 출발”이라고 생각했다.

행사를 마치는 해단식 소감발 표 시간에 터키의 한데 양이 “대 장정과정을 통해 형제국의 발 전상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 다. 이제 나는 죽는 순간까지 대 한민국을 사랑할 것이고, 앞으 로 민간외교 사절로서의 역할 을 해 나갈 것”이라고 얘기해 큰 박수를 받았다. 대장정은 그렇 게 모두를 뜨겁게 하나로 만들 고 마무리로 접어들고 있었다.

유엔참전국 청소년 대장정에 참가한 참전유공자 후손들이 독도를 찾아

‘대한민국 사랑’을 확인했다.

“전쟁 ·평화를 기억하는 생생한 경험”

지난 6월 17일 경남 창원의 경남지방합동청사에서 독립유 공자 후손인 이도필 여사(82)의 장학금 전달식이 열리고 있었 다. <사진>

이날 행사의 주인공인 이도 필 여사는 밀양 독립만세운동 등 대일 항쟁을 주도했던 애국 지사 이차금 선생의 3녀. 이 자

리는 그가 매 월 받은 연금 과 빌딩청소 등을 해서 모 은 돈으로 가 정형편이 어려운 20명의 학생 에게 장학금 5,000만 원을 전달 하는 자리다. 이날 전달된 장학 금은 그에게 사실상 전 재산이 나 다름없는 큰 금액이다.

이 여사는 가족 없이 홀로 지 내며 막노동, 식당일로 생계를 유지해왔다. 아직도 10평 남짓한

전세 원룸에 거주하고 있지만 어 린 시절 어려운 형편으로 한글을 배우지 못했던 아픔을 기억해

‘좋은 시절이 오면 꼭 불우이웃 을 도우라’는 선친의 유언을 잊 지 못해 이날 15년간 모은 소중 한 장학금을 전달하게 됐다.

그는 장학금을 전달하며 학 생들의 손을 잡고 “여러분들이 잘 커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 람이 되면 좋겠고, 그렇게 건강 하게 커 가는 모습을 보고 싶 다”며 “죽기 전까지 5,000만 원 을 더 모아 원래 계획했던 1억 원을 기부하는 것이 다음 목표”

라고 말했다.

독립유공자 후손 이도필 여사 장학금 기부

연금·청소로 모은 5천만원 ‘쾌척’

 

 





 



   

   



 

 

     



유엔참전국 청소년 대한민국 대장정 참가기

이원술국가보훈처 나라사랑 전문강사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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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5호 2016년 8월 1일 월요일 (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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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호국정신

6·25전쟁은 김일성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됐으나, 이후 유엔회원국이 대거 참 전한 세계전쟁이었다. 또한 6·25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첫 번째로 일어난 국제 전쟁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은 인류에게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입혔다. 제2차 대전 이전 규모나 피해로 보아 세계최대의 전쟁은 제1차 세계대 전이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전쟁명칭 을 ‘대전쟁(大戰爭, the Great War)’으 로 불렀다. 인류가 일찍이 겪어보지 못 한 커다란 전쟁이라는 의미에서다.

그 후 그보다 더 큰 전쟁이 1939년 독 일에 의해 시작됐다. 이 전쟁은 제1차 세 계대전 때보다 훨씬 많은 물적·인적 피 해를 입혔다. 역사가들은 앞서 일어난 대전쟁을 제1차 세계대전, 독일·일본·이 탈리아가 일으킨 전쟁을 제2차 세계대 전으로 부르게 됐다.

제2차 대전을 끝내면서 연합국 정치지 도자들은 각오를 다졌다. 다시는 이 지구 상에 전쟁이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되겠다 는 생각이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유엔 을 창설해 국제평화를 담당하게 했다.

그런데 북한 김일성이 6·25전쟁을 일 으킴으로써 이 지구촌에 5년 만에 또 다 시 전쟁이 터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도 가만있지 않았다. 일찍이 한 번도 써 본적이 없는 집단안전보장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그렇게 해서 자유민주주의 대 한민국을 돕기 위해 유엔이 나섰다.

그런데 한국을 돕겠다고 나선 국가들 대부분이 미국과 영연방 그리고 유럽 등 백인들 국가였다. 유엔의 이름으로 응징 하게 될 유엔군에 아시아나 아프리카 국 가의 참여도 필요했다. 그래야 국제평화 를 위해 칼을 빼든 유엔에 힘과 명분이 실리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시아와 아프 리카 국가도 적극 참여했다. 이때 아프 리카에서 한국을 돕기 위해 참전한 국가 가 바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에티오피 아다. 검은 대륙의 용사들이 하늘과 지 상에서 한국을 돕기 위해 파병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공군의 활약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한국전선에 공 군을 파병했다. 남아공은 유엔안보리에 서 한국에 대한 군사지원 결의가 통과되

자 1950년 7월 1일 이를 지지하는 성명 을 발표하고, 군사지원 방안을 모색했 다. 그러나 한국과의 지리적 여건을 고 려할 때 전투부대 파병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판단해 이를 미국과 논의했 으나 7월 말까지 그 해법을 찾지 못했다.

이에 남아공은 8월 4일, 의회의 동의를 얻어 전투비행대대의 파병을 결정하고 부대편성에 들어갔다.

남아공은 최초 새로운 대대를 창설해 파병할 방침을 정하고 지원자를 공모했 으나 정규군은 물론이고 예비역과 민간 인들까지 지원이 쇄도해 이를 포기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 유럽·아프리카·중동 지역에서 ‘나는 치타(Flying Cheetah)' 라는 별칭을 얻고 용맹을 떨쳤던 제2전 투비행대대를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이때부터 남아공 파병이 급물살을 타 고 순조롭게 진행됐다. 1950년 9월 5일, 유엔군사령부가 있는 일본 도쿄에 연락 업무를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 공군연 락본부’가 설치된데 이어 9월 26일에는 장교 49명을 포함한 대대 총병력 826명 이 선박 편으로 남아공의 더반항을 출발 해 40일간의 긴 항해 끝에 11월 5일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했다. 그들은 도쿄 외곽 에 있는 미 공군의 존슨기지로 이동했 다. 이는 남아공 역사상 최초의 극동지 역에 대한 파병이었다.

일본에 도착한 후 남아공 전투비행대 대는 11월 6일 미 공군으로부터 F-51전 투기 16대와 장비를 인수했다. 비행대대 는 최초 미 제6002전술지원비행단에 배 속돼 현지적응훈련을 받은 후 중공군 개 입으로 전선이 악화되자 11월 15일, 선 발대가 한국의 수영비행장으로 이동해 작전활동에 들어갔다.

한국에서 비행대대는 미 제18폭격비 행단에 배속돼 공중작전 임무를 수행했 다. 이후 비행대대는 평양비행장, 수원 비행장, 진해기지, 여의도기지, 횡성기 지, 오산기지 등 전후방 기지를 오가며 유엔군의 주요 공군 및 지상 작전에 참 가했다. 그 과정에서 비행대대는 조종사 826명이 95대의 F-51전투기와 20대의 F-86제트전투기로 1만 2,405회의 놀라 운 출격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그 과정 에서 공군조종사 36명이 전사하고 8명

이 포로가 됐으며, F-51전투기 74대와 F-86제트전투기 4대를 잃었다. 대한민 국 영공을 수호하다 산화한 고귀한 희생 이 아닐 수 없다.

에티오피아 육군의 활약

에티오피아는 6·25전쟁 당시 아프리 카에서 유일하게 한국에 지상군을 파병 한 국가다. 에티오피아는 유엔안보리에 서 한국에 대한 군사지원 결의에 따라 유엔사무총장의 지원요청을 받게 되자 셀라시에 황제는 즉각 군사지원을 밝혔 다. 에티오피아는 1935년 이탈리아의 침 략을 받고 이를 국제연맹에 호소했으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침략을 받아야만 했던 쓰라린 역사를 갖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파병할 부대의 규모·장 비·수송수단 등을 미국과 협의하고 1,200명 수준의 1개 보병대대를 참전시 키기로 결정했다. 부대는 1년 주기로 교 대하기로 했다. 1950년 8월부터 에티오 피아는 부대편성에 들어갔다. 부대는 황 제의 명에 따라 황실근위대에서 차출해 편성했다. 편성된 대대는 영국군에서 파 견된 교관단의 지원 하에 수도 아디스아 바바 근교의 한국지형과 유사한 지역에 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출정식에서 셀라시에 황제는 “국제평 화와 인류의 자유 수호를 위해 침략자에 대항하고 용전하라!”는 환송치사와 함 께 출정부대의 명칭을 ‘관통하기 어려운 물체 또는 상대에게 결정적 타격을 주거 나 궤멸’을 뜻하는 ‘가그뉴(Kagnew)’로 명명했다.

에티오피아 대대는 1951년 4월 16일, 가그뉴 대대와 지원사령부 요원 1,158명 은 사령관 구에브레 대령의 지휘 아래

미 수송선을 타고 20일간의 항해 끝에 5 월 6일 부산에 도착, 이승만 대통령을 비 롯한 한국정부와 유엔군 수뇌부의 환영 인사를 받고 동래의 유엔군수용소로 이 동해 현지적응훈련을 받았다. 이후 에티 오피아 대대는 7월 11일 미제7사단 제32 연대에 배속돼 전투 활동에 들어갔다.

에티오피아 대대는 한국전선에서 평 균 1,170명을 유지하며 가장 힘들고 어 려운 산악전투를 수행했다. ‘아프리카의 스위스’라고 할 정도로 산악이 많은 곳 에서 파병된 에티오피아 대대는 주로 험 준한 산악지형이 많은 한국 중동부전선 에서 전투를 치렀다. 에티오피아 대대는 철원-평강-금성-펀치볼-화천-김화-연 천 등에서 고지전투를 수행했다. 특히 적근산 전투, 삼현지구전투, 851고지전 투, 요크고지 전투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이승만 대통령 표창(2회)과 미국대통령 표창(1회)을 수상했다.

그 과정에서 대대는 3,518명이 참전해 전사 122명, 부상 536명의 큰 피해를 입 었다. 에티오피아군의 희생이 컸던 것은 그들이 황제의 근위대라는 명예와 자긍 심을 갖고 싸웠기 때문이다. 특히 그 과 정에서 단 한 명의 포로도 발생하지 않 았다. 에티오피아군은 포로가 되는 것을 불명예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포로 가 되거나 실종이 될 상황이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명예로 생각했다. 그 들이 그러한 명예심과 자부심을 갖고 한 국의 험준한 산악지형에서 한 번도 경험 하지 못한 한반도의 혹한을 견뎌내며 지 켜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아프리카의 검은 용사들’… 명예와 자부심 안고 참전 결정

(위) 정찰 떠나기 전 작전 지시를 받고 있는 에티 오피아 가그뉴부대원들 (아래) 남아공 공군 ‘나는 치타’ 대대





 





    







6·25전쟁 65년 …참전국의 희생과 공헌 ⑪

남정옥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 구원, 문학박사

에티오피아

참전현황 :육군 3,518명 피해현황 :122명 전사 등 658명

국내정세 혼란에도 불구하고 황실 근위대 차출 파병

남아공화국

참전현황 :공군 826명 피해현황 :36명 전사 등 43명

평양비행장 첫 출격, 수원기지 작전, 반격 작전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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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일 월요일 (월간) 제855호 9

이 시대의 호국정신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미 국에 항복하며 우리나라는 일본의 불법 점령에서 해방됐다. 당시 소련에게 한반 도는 아시아의 공산주의 확장을 위해, 미국에게 한반도는 아시아의 공산주의 팽창을 막기 위해 매우 중요했다.

해방 후 며칠 뒤인 1945년 8월 24일 구 소련이 한반도 내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명분으로 평양에 입성했고, 미국은 소련 을 막고자 9월 9일 서울로 들어왔다. 이후

‘조선’은 35년간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아 정식 정부가 없다는 이유로 미국과 소련 이 합의해 38도선을 정하고 남쪽은 미국, 북쪽은 소련의 신탁통치를 받게 됐다.

1948년 남측이 북측에 민주주의로 대표 자를 뽑자고 제안했으나 북측이 이를 거 절했다. 이에 선거가 가능한 곳에서만 먼 저 투표를 실시하자는 유엔의 입장에 따 라 남측이 먼저 투표로 이승만을 대표로 선출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으며, 이 후 북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따로 세우며 실질적 분단이 시작됐다.

1949년 3월 김일성과 박헌영 등 북한 핵심인사들이 소련을 방문해 스탈린 등 소련 지도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이때 소련은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는 것에 동 의하고 긴밀한 협력을 약속했다. 김일성

은 이어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과 만나 남침에 대한 군사지원을 약속받았다.

미국 주도 유엔군 조직의 결단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 벽 4시경 서해안의 옹진반도로부터 동 해안에 이르는 38선 전역에 걸쳐 국군의 방어진지에 맹렬한 포화를 집중하면서 기습공격을 개시했다. 당시 국군은 개전 하루 전인 24일 0시를 기해 비상경계령 이 해제돼 병력의 1/3이 외출중인 상태 에서 기습공격을 받았다.

개전과 함께 의정부 방어선을 돌파한 북한은 서울을 집중 공격했다. 국군은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키고 한강선 방 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한강 인도교 를 폭파했다. 한강다리를 따라 피난길에 나섰던 피난민 4,000여 명이 사망하고 국군도 맨몸으로 한강을 건넜다. 개전 3 일 만에 서울을 뺏겼고 파죽지세로 몰려 오는 북한군에 의해 낙동강 전선까지 밀 려 내려왔다.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남침을 평화 파괴, 침략행위로 보고 북 한군에게 38도선까지 철수를 요구했으 나 북한은 이를 무시했다. 미국은 사회 주의 진영을 봉쇄하기 위해 미국 주도의

유엔군을 조직했고, 낙동강 전선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이때 치러진 다부동 전투는 세계 전쟁 사에 가장 처참한 전쟁으로 기록돼 있 다.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55일간 15, 16 세 학도병까지 동원된 전투로 국군 1만 여 명이 낙동강 전선에서 희생됐다. 그 결과 당시 투입된 북한군 3개 사단에 치 명적인 패배를 안겨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낙동강 전선을 되찾고 국군과 유엔군 이 북진할 무렵, 유엔은 북한군의 허리 를 절단해 섬멸한다는 계획을 세워 첫 작전으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다. 9 월 15일 한·미 해병대는 맥아더의 지휘 아래 월미도에 상륙해 작전 개시 2시간 만에 점령을 끝냈다. 인천상륙작전을 전 환점으로 전세를 반전시킨 유엔군은 패 주하는 북한군을 추격, 개전 90일 만에 서울을 되찾고 10월에는 평양을 수복하 고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격했다.

큰 희생 딛고 일어선 대한민국 그러나 압록강까지 쫓긴 북한군을 위 해 중공군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중공군 의 개입으로 12월에는 북한지역에서 철 수하게 됐고, 청천강과 장진호 전투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피난민들은 영하 27도의 추위 속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방 어하며 함흥과 흥남으로 후퇴했고 맥아 더가 미합참의 철수를 승인하면서 흥남 철수작전이 개시됐다. 당시 피난민을 수 송했던 메러디스 빅토리아 호는 가장 많 은 사람을 구조한 선박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1951년 1월 4일 다시 서울을 철수하고

수복하는 과정을 거쳐 전선은 현재의 휴 전선 일대로 고착됐다. 이후 7월 유엔군 사령부와 공산군사령부는 휴전을 위한 회담을 개시했으나 포로교환문제를 합 의하지 못해 9개월 동안이나 회담이 중 지되고, 2년이나 더 흐른 1953년 휴전협 정을 조인했다.

3년에 걸친 6·25전쟁은 남북한을 막론 하고 전국토를 폐허로 만들었으며 막대 한 인명피해를 냈다. 남한에서만 유엔군 과 한국군을 포함해 병력손실이 18만 명 이 넘었고 10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피해를 입었으며, 전쟁고아 10만 명, 전 쟁미망인 30만 명이 생겼다.

6·25전쟁은 북한과 중국, 소련이 오랫 동안 준비하고 모의해 만든 전쟁이었으 나 우리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전 국 민이 힘을 모아 전쟁을 막아냈다. 이 과 정에서 함께 자유를 지켜낸 미국을 비롯 한 전 세계 63개국의 도움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후 전쟁의 참화를 딛고 선 우리나라 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세 계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원조 를 받은 지 60여 년 만에 원조하는 나라, 원조공여국으로 발전했다.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을 다시는 이 땅에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아직 ‘휴전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우방국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위기에 대 비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무엇을 할 것 인가에 대한 각오를 새기고 역사적 진실 을 바로 알아야 한다.

“역사적 진실 바로 알고, 아픈 역사 되풀이 되는 것 함께 막자”

황인효예비역 대령, 6·25참전유공자회 전문강사





 





    







나라사랑교육 강좌 ②중고생을 위한 6·25 바로 알기 교육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가 진행하는 6·25전쟁 바로 알리기 교육은 지난 2010년부터 전 국의 초·중·고등학교와 학군단, 교육대학 등을 대상으로 진행돼 왔다. 6·25전쟁 바로 알리기 교육은 예비역 장교와 6·25참전유공자, 나라사랑 전문 강사들이 나서 6·25의 진실을 알리고 전후세대에게 올바른 역사교육과 튼튼한 안보관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다음 은 지난 7월 대전가양중학교에서 있었던 황인효 예비역 대령의 강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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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5호 2016년 8월 1일 월요일 (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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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

채광묵 선생은 1896년 김복한 등과 홍주(현 충남 청양)에서 지역 유생을 모아 의병을 일으키고 반개화, 반침 략 등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관찰사의 배반으로 의병투 쟁이 실패로 돌아가자 선생은 상경해 도약소를 차리 고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에 복수할 것과 친일내각 의 외부대신 이완용 등을 탄핵할 것을 상소했다.

선생은 1901년 8월 조정에서 내린 내부주사 직을

“국모의 복수를 할 기약도 없는데 영예를 받을 수 없 다”며 강하게 거절했고, 1904년에는 일본인 나가모 리가 황무지개척권을 요구하자 김기우 등과 함께 반

대 통문을 작성해 배포하고 직접 일본공사를 만나 일 본의 부당한 요구를 비판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선생은 1906년 5월 안병찬 등 과 홍주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키고 전 참판 민종식을 의병장에 추대했다. 선생이 주도한 홍주의병은 구식 화포 2문을 선두에 내세워 홍주성을 포위 공격해 일 본군을 물리치고 성을 점령했다.

홍주에서 패전 소식이 전해지자 이토 히로부미가 보병 제60연대의 참전을 명령했다. 홍주의병 참모장 으로 활약하던 선생은 일본 정예부대의 공격을 받아 수백 명의 동료 의병들과 함께 순국했다. 홍주성에서 항전하던 선생의 아들 규대도 선생과 함께 전사했다.

1950년 8월 남으로 밀고 내려오던 북한군은 서해안 연안 가까이에 있는 일부 도서를 점령해 무고한 주민을 학 살하고 아군 함정의 동정을 감시하는 거점으로 활용했다.

이에 해군은 인천상륙에 필요한 정보수집과 교두 보 확보를 위해 각 함정의 승조원들로 구성된 상륙부 대(육전대)를 편성하고 덕적도와 영흥도 탈환작전을 전개했다. 덕적도는 위치상 인천항 입구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기 위해 먼저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1950년 8월 18일, 아군의 함포지원을 받으며 덕적 도에 성공적으로 상륙한 해군 육전대 1소대 1분대장 박동진은 산악고지로 도주하던 적을 격파하고 덕적 도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20일 새벽, 육전대는 다음 목표인 영흥도 탈환작전 을 전개했다. 덕적도를 뺏긴 적군은 격렬히 저항했으 나 박동진을 비롯한 해군 육전대는 국군포로 4명을 구출하고 적을 맹렬히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적을 추격하던 중 은신처를 발견한 박동진은 부하 들의 전진을 중지시킨 후 수류탄과 함께 엄호사격을 받으며 단독 돌진했다. 두 번째 수류탄을 투척한 순 간 적 탄환이 박동진의 가슴을 관통했고 적의 저항선 을 무너뜨린 그는 장렬하게 산화했다.

적의 집중 사격으로 부분대장마저 쓰러지자 전 분 대원들은 다시 일제히 적진으로 돌격했고 목표로 했 던 영흥도를 완전히 탈환할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의 영흥도 탈환은 이어 전개된 인천상 륙작전 성공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달의 독립운동가 채광묵

(1850.7.15~1906.4.8) ·

채규대

(1890.?~1906.4.8)

아버지와 아들, 항일운동 벌이다 함께 산화하다

인천상륙작전의 교두보를 확보하라

이달의 6·25전쟁 호국영웅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1930.?~1950.8.20)

다부동 전투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 을 형성한 직후부터 반격으로 전환할 때까지 국군 제1사단과 미 제1기병사단이 왜관과 다부동 일대 에서 제105전차사단으로 증강된 북괴군 제2군단 의 8월 공세와 9월 공세를 저지한 방어 전투다.

국군 제1사단은 이 전투에서 유학산과 다부동 일대에 주 저항성을 형성하고 북괴군 3개 사단(제 3, 제13, 제15사단)과 25일 동안 교전을 전개해 북 괴군의 8월 공세를 저지한다. 이후 미 제1기병사단 에게 진지를 인계하고 신녕 지역으로 이동했다.

진지를 인수한 미 제1기병사단은 다부동과 지 천, 도덕산 일대에서 북괴군 2개 사단(제3, 제13사 단)과 23일간 공방전을 전개한 끝에 북괴군의 9월 공세를 저지하고 대구 북방의 방어선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제1사단 12연대 2대대 5중대장이었던 김초 동 중위는 북괴군을 상대로 선두에서 중대원들을 독려하며 적진을 향해 돌격해 장병의 사기를 높였 다. 그는 안타깝게도 역습에 나선 북괴군과 처절 한 백병전으로 고지 사수를 하던 도중 고지 정상 에서 전사했다.

이 전투로 북괴군은 낙동강 전선의 돌파가 불가 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고, 국군 제1사단과 미 제1기병사단은 다부동 전투 승전의 기세를 이 어 다른 유엔군 부대들과 함께 반격 작전으로 돌 입, 전쟁의 결정적 국면을 바꿨다.

낙동강, 최후 방어선을 지켜라

8월의 6·25 전투

<다부동 전투>

국군 제1사단에 지원한 학도병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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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일 월요일 (월간) 제855호 11

대전지구전투 호국영웅비는 1950년 7 월 대전지구 전투에서 산화한 장병들의 넋을 기리고 위대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 해 미 제24사단 본부가 있었던 대전 보 라매공원 자리에 세워졌다. <사진>

이 호국영웅명비 전면 기념비에는 당 시 처절했던 대전지구 전투의 상흔을 표 현하기 위해 철을 부식시켜 전쟁의 참상

을 표현했다.

기념비 상단에는 유엔마크를 형상화 했고 하단에는 태극기와 유엔기, 당시 6·25전쟁 전황과 대전지구전투에 대한 설명이 있다. 또한 우측 벽면에는 성조 기와 전쟁기념관에서 대전지구전투에 서 전사한 것으로 확인된 818명의 명단 을 각인했다.

햇살 따가울수록

하늘은 푸르고 숲속 기운은 더욱 서늘하다 햇살을 이고 숲을 안고 들어선

황토의 원시적 질감이 더 푸근하다

언제 맨발이 되었던가 언제 맨발로 흙길을 걸었던가 언제 그 질퍽한 혹은 차진 감을

발끝으로 온몸으로 가슴으로 이해했던가

인간이자 자연의 부분으로 자연이자 지구별의 구성체로 돌아가 조용한 일체감을 맛본다

만나는 이들과 함께 조용한 미소를 나눈다

그렇게, 자연이다. 해방이다.

함께하는 나눔이다.

<지역현충시설>

대전지구전투 호국영웅비

커버스토리 - 대전 계족산

* 대전 계룡산과 이어지는 자락에 위 치한 산이다. 계룡산을 닭의 머리로 보 면 닭의 발 부위, 혹은 일부 산길이 닭의 다리를 닮았다 해서 붙여졌다. 해발 400 미터의 나지막한 높이가 더욱 편안하 다. 장동 삼림욕장을 품고 만들어진 길 은 지역 업체의 전면 지원으로 무려 14.5 킬로미터의 황톳길을 선물 받았다.

대전지구전투 호국영웅비 제막식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