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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주얼리의 새로운 두 흐름에 대한 연구 -1920,30년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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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일_2020.06.10 심사기간_2020.07.01-14 게재확정일_2020.07.15

20세기 초 주얼리의 새로운 두 흐름에 대한 연구 -1920,30년대를 중심으로- A Study on two new Flows of Jewelry in the early 20th Century

-focusing on 1920~30's-

이광선, 한양대학교 디자인대학 주얼리패션디자인학과

Lee, Kwang Sun, Hanyang University, College of Design, Department of Jewelry & Fashion Design

차례 1. 서론

2. 20세기 초의 시대적 배경

3. 코스튬주얼리

3.1. 코스튬주얼리의 발생과 의미 3.2. 코스튬주얼리의 디자이너와 브랜드

4. 아트주얼리

4.1. 아트주얼리의 탄생배경 및 특징 4.2. 대표 작가와 작품

5.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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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주얼리의 새로운 두 흐름에 대한 연구 -1920,30년대를 중심으로- A Study on two new Flows of Jewelry in the early 20th Century

-focusing on 1920~30's-

이광선, 한양대학교 디자인대학 주얼리패션디자인학과

Lee, Kwang Sun, Hanyang University, College of Design, Department of Jewelry & Fashion Design

요약 중심어

코스튬주얼리 아트주얼리 패션 공방

새로운 두 흐름

이 연구는 20세기 초에 나타난 새로운 성격의 두 주얼리의 흐름에 대해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두 흐름의 주얼리는 코코 샤넬을 선두로 등장한 코스튬주얼리와 작가를 중심으로 제작된 아트주얼 리라 할 수 있다. 이 두 주얼리는 시작부터 지향한 목적에 있어 뚜렷한 차이가 있었으며 이는 현대 주 얼리의 다양화의 시작점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에 대한 연구방법으로는 1장에서는 이 당시 의 시대적인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2장에서는 코스튬주얼리의 발생 배경 및 의미와 대표적인 디자이 너에 대해 알아본다. 3장에서는 아트주얼리의 탄생배경과 특징 그리고 대표적인 작가에 대해 알아본 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이 두 주얼리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코스튬주얼리와 아트주얼리는 모두 시대적 변화와 함께 전통의 권위나 신분에 대한 거부로 나타났다는 점에서는 공통 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두 주얼리의 차이로 첫째는 코스튬주얼리는 패션디자이너와 주얼리 회사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유행과 치장을 위한 수단으로 대중성과 상업성을 추구한 데 반해 아트주얼 리는 새롭고 다양한 표현 양식을 시도하며 작가 개인의 미감을 보여주기 위한 예술의 매체였다는 점 이다. 둘째는 재료에 있어 두 주얼리 모두 다양한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였으나 코스튬주얼리에는 그 러한 재료를 비교적 값싼 가격과 대량생산의 용이성 때문에 사용한 반면 개인 작가들은 경제적 가치 보다는 그들의 심미적, 조형적 표현의 매체로서 재료의 물성과 미학적인 조형성에 가치를 두고 이들 재료들을 선택하였다는 점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방향성을 갖고 전개 된 새로운 두 주얼리의 흐름이 하나는 현대의 상업적인 코스튬주얼리로 또 다른 흐름인 작가들에 의해 주도된 주얼리는 아트주얼리 로 오늘날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ABSTRACT Keyword

Costume Jewelry Art Jewelry Fashion Studio

Two new flows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ompare and analyze the flows of two jewels, each of which has distinguished feature and first appeared in the early 20th century. One of these two flows of jewelry is costume jewelry and the other is art jewelry which was centered on the artist. These two jewelry had distinct differences in their pursuits from the beginning and, significantly, this is the starting point for the diversification of contemporary jewelry. As for the research process, Chapter 1 deals with the situation at that time, and Chapter 2 examines the background and significance of the costume jewelry along with representative designers. Chapter 3, deals with the background and characteristics of art jewelry and its representative artists. Finally, the conclusion analyzes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the two jewelry. Both costume jewelry and art jewelry have a common ground in that both flows have emerged as a reaction to the authority or status of tradition and evolved with the times. Still, they are distinguished in two aspects; first, costume jewelry was a tool for fashion and decoration, led by fashion designers and jewelry companies, pursuing popularity and commerciality while artist jewelry as a medium of art to show, exploring various and new styles and the personal aesthetics of the artist’s. The second is the different purposes of using various materials, even though both pieces of jewelry used various new materials such as synthetic resin and glasses. In costume jewelry, such materials were used because of their relatively low price and ease of mass production.

Artist’s jewelry chose these materials based on the value of material properties and aesthetic formation as a medium of aesthetic and artistic expression rather than economic value. The two jewelry, which evolved with different directionality from the beginning, has continued developing to the present day into commercial costume jewelry and art jewelry as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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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인류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고 있는 주얼리는 그 외형과 사회적인 의미가 시대와 문화에 따라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며 조금씩 변화를 거듭해왔다. 현대에는 파인주얼리(fine jewelry), 커머 셜주얼리(commercial jwelry), 코스튬주얼리(costume jewelry) 그리고 아트주얼리(art jewelry)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주얼리가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게 된 것은 과거 처음부터 그렇게 분류된 것이 아니라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부터 시대의 변화와 함께 서서히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즉, 그 이전 시대에는 주로 왕족이나 귀족 중심으로 값비싼 귀금속 주얼리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산업 혁명과 함께 시민사회와 경제민주화 등으로 계급이 무너지면서 주얼리에도 평준화가 이루어지며 같은 시기에 다양한 성격의 주얼리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이 시기의 여권의 신장으로 여성이 사회 활동을 하게 되면서 패션과 주얼리에 대한 관심의 고조와 함께 주얼리의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주얼리의 재료가 보석과 귀금속이었던 것에 반해 이제는 베이클라이트(bakelite)1)와 같은 플라스틱과 합성석 등의 개 발로 주얼리의 재료가 다양해졌다. 이러한 비교적 값싼 재료의 개발로 주얼리의 가격대도 이전 보다 저렴해지고 원하면 누구나 구매하고 착용할 수 있게 되면서 그 변화는 더욱 가속화되어 졌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 코코 샤넬(Gabrielle Coco Chanel)을 선두로 패션디자인과 함께 코스튬주얼리라는 새로운 개념의 주얼리가 대두된 것도 바로 이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러 나 이 시기는 이러한 상업성이 강한 코스튬주얼리의 흐름 외에도 예술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작가를 중심으로 제작된 또 다른 주얼리의 흐름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이 시기는 주로 코스튬주얼리의 탄생 시기라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대중적 인 코스튬주얼리뿐만 아니라 현대 아트주얼리의 맥을 잇는 작가의 주얼리가 근본적으로 발생 한 시점이기도 하다. 이 두 주얼리의 양상은 시작부터 지향한 목적의 뚜렷한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으나 이러한 관점에서의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오늘날의 코스튬주얼리와 아트주얼리의 시작 시점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 시기의 서로 다른 양상의 주얼리에 대해 각각의 의미와 발생 배경 및 특징 그리고 대표 브랜드, 디자이너와 작가에 대해 유럽 국가 특히,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코스튬주얼리와 아트주얼리의 관계나 차이를 명확히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며 이에 이 연구의 목적과 의미가 있다.

이를 위해서 본론 1장에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되게 된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이 시대의 여성의 사회적 활동 및 위상의 변화 그리고 다양한 예술운동 및 여러 양식을 중심으로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 후 2장에서는 상업적인 코스튬주얼리의 발생 배경과 그 당시 코스튬주 얼리의 특징 그리고 대표적인 브랜드와 디자이너에 대해 알아본다. 마지막으로 3장에서는 코스 튬주얼리와 함께 또 다른 흐름을 주도했던 개인 공방을 중심으로 전개된 아트주얼리의 특징과 유럽의 대표적인 국가의 개인 작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20세기 초의 시대적 배경

1차 세계대전 이후 20세기 초반은 시민계급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와 산업 혁명 이후 가속화된 상업적 자본주의로 경제적인 측면과 도덕적인 가치 기준의 급속한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이러 한 변화는 파리와 런던 그리고 베를린 등 유럽을 중심으로 젊은 세대와 여성의 가치관 변화가 두드러졌다. 무엇보다 여성들도 경제적인 활동과 정치 참여를 하게 되면서 여성의 사회적인 위상에 큰 변화가 일었으며 이는 여성 해방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독일의 한 통계에 따르면 1925년 경제 활동을 한 여성은 인구의 36%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2) 여성들은

1) 베이클라이트(bakelite)는 최초의 인공 플라스틱이다. 1907년 ~ 1909년에 벨기에계 미국인인 레오 베이클랜드(LeoBaekeland)가 최초로 합성 하였다. 레오 베이클랜드는 페놀과 포름알데히드를 반응시켜 베이클라이트를 합성하였으며 애초에는 폴리옥시벤자일메틸렌글리콜란하이드리드 (polyoxybenzylmethylenglycolanhydride)이라는 화학명으로 불렸다. 베이클라이트는 독일계 회사인 베이클라이트사가 이 물질을 상업 생 산하면서 붙인 브랜드명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bakelite

2) Christianne Weber, Art Deco Schmuck, Heyne, 2000, p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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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사회에서의 역할과 일자리를 찾아 독립하였으며 이러한 여성의 경제적 독립은 여성 스스로 자의식을 갖고 사회에서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게 되었으며 동등한 위치 에 설 수 있게 되었다.3) 이는 전문인으로서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여성의 새로운 기회를 상징했다. 여성들은 또한 정치, 경제 활동과 함께 스포츠, 여행, 운전 등 그들의 생활양식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에 따라 여성들은 활동하기 좋은 자유로우며 기능적 인 복장의 착용과 짧은 머리 등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선호하기 시작하였으며 이와 함께 핸드백 이나 주얼리에 대한 관심도가 특히 높아지게 되었다.4) 이러한 여성들의 패션에 대한 관심은 의복과 주얼리 그리고 디자인계의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과거의 주얼리는 귀족 층이나 일부 부유층 등 특권 계층에만 국한되었던 상징물로서 주로 보석과 귀금속으로 제작되 어졌던 반면 이제는 모조 보석이나 베이클라이트와 같은 값싼 재료들의 등장으로 가격이 저렴 하게 되면서 누구나 쉽게 구매하고 착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주얼리에 대한 인식의 변화 와 함께 주얼리의 개념도 변화하였는데 이는 바로 주얼리의 대중화라 할 수 있다5) 20세기 초는 또한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함께 미술사에서도 모더니즘이라는 큰 흐름 안에서 다양한 예술운동과 여러 양식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시기라 할 수 있다. 모더니즘의 예술가들은 권위적인 전통에 반하여 데 스틸과 구성주의, 입체파와 표현주의와 같은 다양하고 새로운 양식 을 시도하며 그 당시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관점의 작품들을 시도하였다. 이들은 전통 적인 회화에서 중요시하던 묘사중심의 표현이나 사실의 재현에서 벗어나 작가 개인의 관심과 의식을 표현하고자 하였다.6) 이러한 모더니즘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아르데코, 독일의 바우하 우스, 그 외 영국의 아트앤크래프트, 오스트리아의 비인공방, 스칸디나비아의 스쾬비르케 등 각 나라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예술운동이 유럽 곳곳에서 전개되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예술운 동에 의한 새로운 조형적 경향이 생활문화 곳곳에 나타남과 동시에 예술과 기술의 조화라는 조형 형식이 그 당시 가구나 건축 그리고 패션뿐만 아니라 주얼리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예술운동의 영향을 받은 주얼리 작가들이 독자적인 개인 공방을 운영하면서 작가 주얼 리가 출현하게 되고 이는 대중적 주얼리와 함께 주얼리의 다변화를 이루는 계기가 된다. 그러면 이 당시 새롭게 부각 된 서로 다른 주얼리 즉, 대중적인 성격의 코스튬주얼리와 개인 공방을 중심으로 나타난 아트주얼리의 두 양상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3. 코스튬주얼리

3.1. 코스튬주얼리의 발생과 의미

여성의 사회 활동과 경제적 독립에 따른 여성들의 패션에 대한 관심의 고조와 함께 여성들은 주얼리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한 소품이라는 인식변화를 하게 된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 속에 그 당시의 여성들은 1차 세계대전 후 경제적 어려움에도 치장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으 며 그러한 분위기가 코스튬주얼리를 탄생케 하고 발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렇듯 19세 기 이래 이슈로 떠오르던 “demokratisierung des Luxus”(사치의 민주화)7)가 1910년대 이후 1920, 30년까지 계속 이슈로 떠오르면서 사람들은 점차로 주얼리가 금이나 보석으로 이루어져 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주얼리의 대중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새로이 개발된 다양한 값싼 재료와 기술의 발달로 귀금속주얼리를 대체한 주얼리를 다량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는데 이러한 주얼리를 영국에서는 ‘costume jewelry’, 프랑스에서는 ‘bijou de couture’

독일에서는 의‘Mode schmuck’라 명명하였다.8) 위키피디아의 정의에 따르면 코스튬주얼리는 1920년대 중반에 의상과 관련하여 프랑스에서 나타난 현상으로서 그것의 특징적인 면모는 저 렴한 재료, 대량생산이라고 설명되어 있다.9) 즉, 의상과 관련된 치장의 용도로 만들어진 주얼

3) http://www.kubiss.org/hkk-20er-jahre/frau.html, Die Frau der zwanziger Jahre, Von Jessica Reichel 4) Melissa Gabardi, Glanzstuecke, Prestel, 1991, pp.113

5) 이광선, 아르데코, 현대장신구의 시작, 기초조형학연구, 19권 6호, 2018, pp.510 6) 이윤령, 모더니즘이 예술주얼리의 발생에 끼친 영향, 한국공예논총, 2014, pp.15 7) Christianne Weber, 앞의 책, pp.98

8) bijou de couture는 의상 보석/주얼리, Mode schmuck은 의상/유행 주얼리라 번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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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라 할 수 있다. 코스튬주얼리의 탄생에 핵심역할을 한 인물은 패션디자이너 샤넬이라 할 수 있다. 이 당시 샤넬은 파리에서 그녀의 컬렉션을 발표할 때 그녀 의상에 어울리는 주얼리를 함께 디자인하여 선보였다. 그녀는 1928년에 유리와 모조 진주로 만들어진 주얼리를 직접 착용 하였으며 패션디자이너 마들렌 비오네(Madelein Vionnet)는 그 당시 녹색 깃털과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샤넬의 체인을 착용하여 여성들의 눈길을 끌기도 하였다. 샤넬과 함께 프랑스 코스튬 주얼리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디자이너로 엘사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를 빼놓을 수 없으며 그녀는 활발하게 코스튬주얼리의 시장을 주도했다. 이와 함께 프랑스 주얼리 회사 오귀 스트 보나즈(Auguste Bonaz)는 30년대부터 합성수지로 제작된 주얼리를 대량생산하였다. 독 일에서는 테오도르 파르너(Theodor Fahrner)사와 헨켈 앤 그로세(Henkel & Grosse)사를 중 심으로 대중적인 주얼리를 생산하였다. 또 다른 독일 주얼리 생산의 대표회사로 야콥 뱅엘사 (Jakob Bengel)가 있다. 이 야콥 뱅엘사에서는 주얼리뿐만 아니라 주얼리 재료인 모조 보석을 생산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유럽 곳곳에서 주얼리 회사가 늘어나면서 1924년 귀금속주얼리의 수출액은 20million 프랑이었는데 반해 코스튬주얼리 수출액은 100millionen 프랑이나 되었으 며 1930년경에는 이 분야의 크고 작은 주얼리 회사만도 3000개에 달했으며 그 종사자는 3만 명에 달하는 규모였다.10) 당시 주얼리와 함께 재료 생산의 중심역할을 한 회사로 다니엘 스와 로브스키(Daniel Swarovski)가 창립한 스와로브스키사를 들 수 있다. 스와로브스키는 현존하 는 크리스털 주얼리의 대표 브랜드로 여전히 코스튬주얼리계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때는 다양한 색상의 모조 보석 등 화려한 색상뿐만 아니라 검은 색상 또한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게 되면서 유리 외에도 경화 고무인 에보나이트(ebonit)와 고급스러운 플라스틱의 일종 인 셀룰로이드(celluloid) 등이 조개나 상아 그리고 거북이 껍질의 대용품으로 사용되기도 하였 다. 그리고 코스튬주얼리에서 가장 사랑받던 금속으로 그 당시 새롭게 부각 된 크롬을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주목할 또 다른 재료는 갈랄리드(Galalith)11)와 베이클라이트 등 합성수지를 들 수 있는데 플라스틱은 이제 모방의 대용물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런 배경 에는 플라스틱이 비교적 저렴한 이유 외에도 대량생산 공정이 수월하여 표현의 제약이 거의 없고 색상도 무궁무진하다는 이유로 더욱 선호하게 되었다. 이처럼 비교적 저렴한 재료로 만들 어진 유행에 민감하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치장의 수단으로 제작 된 주얼리를 코스튬주얼리 라 할 수 있으며 이들은 대중적이며 상업적인 성격을 띤다.

3.2. 코스튬주얼리의 디자이너와 브랜드 3.2.1. 프랑스

코스튬주얼리를 탄생시키고 주도해나간 국가는 단연코 프랑스라 할 수 있다. 이는 프랑스가 그 당시 패션의 중심지였던 점과 무관하지 않다. 1920년대 코스튬주얼리 출현의 독자적이며 선도적인 역할을 한 샤넬은 패션의 목적은 부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했으며 이러한 생각을 그녀의 의상에 그대로 반영하였다. 그녀는 남성복이나 상복에만 사용되던 검은색을 여성복에 도입하여 언제, 어디서나 입을 수 있는 우아한 색으로 만들었으며 여성의 활동성을 높일 수 있는 저지 소재의 스커트나 스포티한 수트 등의 패션으로 새로운 유행을 주도해갔다. 그녀 의상의 간결하고 단순한 실루엣은 주얼리를 위한 훌륭한 배경이 되었 으며 그녀는 단순한 의상을 주얼리로 코디하였다. 그녀의 주얼리는 이전의 주얼리와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시대적인 변화와 맞물려있다. 짧게 자른 단발머리와 팔 전체를 드러내는 의상은 주얼리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준다. 샤넬은 이에 착안하여 자신의 의상에 어울리는 주얼리를 직접 디자인하게 되었으며 이를 위해서 그녀는 주얼리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주얼리를 직접 생산하게 된다. 노출된 신체 부위를 위한 팔찌나 아주 긴 형태의 목걸 이를 주로 제작하였으며, 의상의 변화에 따라 브로치를 가슴만이 아닌 허리나 어깨, 허리띠에도

9) https://de.wikipedia.org/wiki/Modeschmuck 10) Christianne Weber, 앞의 책, pp.100

11) Galalith(영국의 Erinoid)는 카세인 과 포름알데히드 의 상호 작용에 의해 제조 된 합성 플라스틱 소재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Galal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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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으로 착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주얼리는 의상과 어울리는 아름답고 우아하며 화려한 효과였고, 이를 위해 소재는 어떤 것이든 상관없었다. 그녀는 값비싼 보석 대신에 저렴한 유리를 사용하였는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유리는 오만하지 않아서 쉽게 화려해지고 싶어 하는 분위기와 맞아 떨어진다”12)

1924년에 선보인 모조 진주와 유리구슬을 결합한 겹겹이 두른 목걸이는 메종 그리푸아 (Maison Gripoix)와 함께 디자인한 혁신적인 컬렉션으로 그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주얼리라 할 수 있다.13)(그림1) 그 당시 샤넬과 함께 코스튬주얼리를 선도한 디자이너로는 엘사 스키아 파렐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1890년 이탈리아 로마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1920년에 독자적인 성공과 자립을 위해 예술에 뜻을 품고 파리로 이사를 하여 의상실의 열게 된다. 그곳에서 그 당시 최고의 디자이너인 폴 푸아레(Paul Poiret)를 알게 되고 1927년에는 그녀의 첫 쿠튀르(Couture)를 오픈한다.14) 이때 그녀는 샤넬과도 친분을 맺게 되면서 샤넬과 코스튬주얼리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게 된다. 즉, 주얼리의 가치를 경제적 재료의 가치로서가 아닌 의상과의 관계에서 찾게 된다. 그녀는 초기에는 아프리카의 동물들이나 항해사들의 타투, 앵무새 그리고 악기 등의 모티브 등 엉뚱한 테마의 펜던트와 핀 그리고 곤충을 그려 넣은 플라 스틱 목걸이 등을 제작하였다. 그녀는 이후에 리다 코폴라(Lyda Coppola), 장 슐럼버제(Jean Schlumberger), 장 클레망(Jean Clement)과 함께 협업을 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작업은 샤넬 의 우아한 디자인과 끊임없이 비교되었으나 그녀의 디자인은 샤넬의 디자인과는 대조적으로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적인 컨셉이었으며 주얼리에도 그런 경향이 드러난다. 그녀의 이런 성향 은 1936년 그녀의 컬렉션인 ‘shocking Pink’ 에 잘 반영되어 있다.15) 또한 그녀의 주얼리에는 투명하고 이국적인 강렬한 핑크의 보석이 사용되었으며 이를 ‘unreal pink’ 라 명하며 그녀의 시그니쳐 컬러가 된다.(그림2) 그녀는 1949년에 ‘ready–to-wear’ 아울렛을 설립한 이후 1950 년부터는 코스튬주얼리 디자인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녀의 매력적인 팔찌는 그레이스 켈리가 착용하면서 더욱 유명해졌고 그녀 최고의 것으로 인정받았으며 1973년에 사망할 때까지 활발 하게 활동하였다.16) 샤넬과 엘사 스키아파렐리와 같은 패션디자이너 외에 주얼리 회사에 의해 코스튬주얼리의 대량생산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회사 중 한 곳은 오귀스트 보나즈 라 할 수 있다. 세자르 보나즈(Cesar Bonaz)는 1910년 프랑스 동부지역인 오요나(Oyonnax) 에 머리 장식을 생산하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되었으며 특히 뿔로 만든 머리빗으로 잘 알려 져 있다.17) 이후 그의 아들이 보나즈의 이름으로 크롬과 갈라리트를 재료로 한 목걸이와 브로 치를 제작하여 판매하게 된다. 특히 1923년도에 제작된 이 빗 형 머리 장식은 그 당시 잘 알려 진 비인공방의 조형 형식이 반영되어 있다.(그림3) 보나즈의 머리 장식은 금이나 모조 보석으 로 상감을 한 동양적인 느낌의 디자인이 주 특징이었으며 빗 형식의 머리 장식 외에도 모자나 스카프를 장식하기 위한 핀 장식도 생산을 하였다. 이 핀들은 주로 펭귄, 부엉이, 새, 흑인이나 일본인의 형태를 모티브로한 디자인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 외에도 그 당시 유행한 흑백의 의상 에 어울리는 기하학적인 클립을 수공으로 생산하기도 하였으며, 부분적으로 금색으로 덧칠한 붉은 색의 셀룰로이드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앉아 있는 커플 형태의 브로치는 그 당시 유행하는 전형적인 아르 데코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그림4) 그 밖에 보나즈의 생산품에는 목걸이, 팔찌 그리고 크롬과 다양한 색감의 플라스틱 콤비의 주얼리들이 생산되었으며 그 당시 여성들 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 특히 빗 형 머리핀은 오늘날까지도 긴 머리를 한 여성들에게 머리 장식품으로 애용되고 있다.

12) 캐롤라인 콕스, 마은지 역, 빈티지주얼리, 투플러스, 2012, pp.84 13) 캐롤라인 콕스, 앞의 책, pp.84

14) Judith Miller, Costume Jewelry, Octopus, 2010, pp.86

15) 박준오, 20세기 커스텀주얼리 형성과 전망에 대한 연구, 한국공예논총, 2009 16) Judith Miller, 앞의 책, pp.89

17) Melissa Gabardi, 앞의 책, pp.218

<그림 1> 가브리엘 코코 샤넬

<그림 2> 엘사 스키아 파렐리 팔찌와 귀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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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오귀스트 보나즈, 머리빗핀, 갈라리트, 1923

<그림 4> 오귀스트 보나즈, 브로치, 갈라리트, 금칠

3.2.2. 독일

독일에서는 그 당시 유행하던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절제 된 형태들이 주얼리에 반영되고 선호 되었다. 독일에서는 개인 패션디자이너보다는 포르츠하임과 이다-오버슈타인의 두 도시를 중 심으로 한 주얼리 회사를 통해 코스튬주얼리가 활발하게 생산되었다. 테오도르 파르너는 유럽 코스튬주얼리의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 중의 한 곳이다. 파르너사는 테오도르 파르너 경 (Theodor-Farner,Sr)에 의해 1855년 독일 포르츠하임에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반지를 생산 하는 회사였으나 1883년에 파르너가 죽고 그의 아들 테오도르 파르너(Theodor –Farner)가 물려받은 후부터 반지 이외의 다양한 스타일의 주얼리를 생산하게 된다.18)그가 죽은 이후 독일 에슬링엔(esslingen) 출신인 젊은 주얼리디자이너 구스타프 브랜들(Gustav Braendle)이 1920년부터 이 회사를 맡게 되면서 그래픽적인 디자인의 주얼리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19) 파르너 주얼리는 주로 은으로 제작되었으며 부분적으로 금도금이나 칠보, 유리 그리고 준보석 등으로 장식하였다.(그림5) 그리고 파르너 주얼리에는 1910년 독일에서 생산되기 시작한 마 카사이트(Markasit)20)라는 준보석이 사용되었는데 이 보석은 금속 느낌이 나는 특징이 있다.

이 외에도 상아나 산호 등의 재료들과 결합시킨 주얼리를 생산하기도 하였다. 또 다른 대표적인 회사로 1871년 이다-오버슈타인에 설립된 야콥 벵엘사를 들 수 있으며 이 회사의 주얼리는 기하학 형태와 높은 퀄리티로 잘 알려져 있다. 벵엘사는 약 1924년 말부터 코스튬주얼리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는데, 벵엘사의 순수 금속이나 플라스틱과 크롬을 결합시킨 다양한 환상적 인 모티브의 목걸이들은 독일의 코스튬주얼리계를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때로는 대량생산뿐 만 아니라 특정 디자인은 한정된 시리즈로 일정량만 생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주얼리는 손으 로 땜을 하거나 칠보 작업 등 높은 수준의 수공 기술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이러한 경험이 대량생산품에 중요 역할을 하였다. 목걸이들은 크롬이나 플라스틱 이외에도 유리나 황동 그리 고 실크줄과 결합시키기도 하면서 주얼리 형식의 다양화를 이루기도 하였다.21) 그 당시 많은 회사들이 생산하고 유행하던 벽돌형 체인(Ziegelmauer Ketten)이라는 목걸이를 벵엘사는 양 면을 서로 다른 색상으로 칠해서 옷의 색상에 따라 변화를 주어 착용할 수 있게 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그림6) 1930년대에는 파리의 유명백화점에 납품도 하게 된다. 이러한 적극적 인 국제적 마케팅 전략을 세워 벵엘사는 유럽뿐 아니라 미국에까지 그들의 주얼리를 수출하며 코스튬주얼리계를 주도해나갔다. 벵엘사와 함께 독일 코스튬주얼리를 주도한 또 다른 대표적 인 회사로는 1907년에 포르츠하임에 설립된 헨켈 앤 그로쓰사를 들 수 있다. 헨켈사는 주로 크롬과 플라스틱을 결합시킨 주얼리를 디자인하고 생산하였다.(그림7) 헨켈사가 제작한 금도 금한 브로치는 파리만국박람회에 출품하여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특히, 1955년경 크리스찬 디 올(Christian Dior)이 헨켈 앤 그로쓰사와 협업으로 코스튬주얼리를 생산하면서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22) 이 회사 역시 현존하는 회사로 여전히 상업적 주얼리 업계를 이끌고 있다.

18) Judith Miller, 앞의 책, pp.108

19) https://de.wikipedia.org/wiki/Theodor_Fahrner

20) 마르카 사이트 는 “황화물 및 황화물”의 미네랄 등급 에서 자주 발생하는 미네랄이다. 이것은 화학 조성 FeS 2를 갖는 사방 정계 결정계 에서 결정화되므로, 화학적으로 철 (II) 이황화물이다. https://de.m.wikipedia.org/wiki/Markasit

21) Christianne Weber, 앞의 책, pp.109 22) Judith Miller, 앞의 책, pp.170

<그림 5> 테오도르 파르 너, 브로치, 모조보석, 마 카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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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야콥 벵엘, 체인목걸이, 크롬,칠보

<그림 7> 헨켈 앤 그로쓰, 베이클라이트, 금속에 크롬도금

4. 아트주얼리

4.1. 아트주얼리의 탄생배경 및 특징

주얼리의 대중화와 함께 패션과 관련하여 대량생산된 비교적 저렴한 코스튬주얼리의 확산과 동시에 또 다른 성격의 주얼리가 이 시기에 나타나게 된다.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개인 작가들에 의해 제작된 주얼리가 그것이다. 20세기 초 모더니즘의 예술가들은 이전의 권위나 전통에 반하여 그들만의 독자적인 표현 양식을 시도하며 그 때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관점의 작품들을 시도하였다. 이들은 전통적인 회화에서 중요시하던 묘사위주의 표현에서 벗 어나 작가 개인의 관심과 의식을 표현하고자 하였다.23) 또한 이 당시 다리파(die bruecke)의 멤버 중 한 명인 화가 칼 슈미트 로트루프(karl schmidt rottluff)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그리고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등 예술가들 은 주얼리를 제작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당시 주얼리 작가들에게 새로운 자극제가 되었다. 더불 어 아르누보의 대표적 작가인 르네 랄리크(Rene Lalique), 조르쥬 푸케트(georges fouquet),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의 다양한 보석 및 칠보와 금과 은의 금속이 결합 된 조각적인 주얼리는 보석의 경제성을 부각시키는 전통적 주얼리가 아닌 작가의 감각과 섬세하며 뛰어난 기술을 보여주는 새로운 미감의 주얼리였으며 이는 수공예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24) 이러한 시대적 변화와 흐름은 이 시기의 주얼리에도 영향을 미치며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주얼리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미술대학교에서 정식 교육을 받은 주얼리 작가들에 의해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영국, 스칸디나비아 등 유럽으로 확산 되었다. 이들은 기존의 전통적인 주얼리와는 다른 작가 개인의 사고나 감성을 보여주는 주얼리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들은 그 당시 활동하던 순수 예술가들과 모더니즘 미학을 공유하며 그들의 미적 사고를 주얼리에 반영하였다. 이는 유행이나 의상과의 관계 등 치장과 상업적인 목적으로 생산되었던 상업적이며 대중적인 성격의 코스튬주얼리 와는 출발부터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주얼리 작가들은 재료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과 태도를 지니게 된다. 이들은 합성 수지나 모조 보석부터 계란 껍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였으며 이들에게 재료의 선택은 개인 작가의 심미적, 조형적 표현을 위한 매체로서의 의미가 우선이며 이러한 점이 재료 선택과 사용의 주목적이 되었다. 코스튬주얼리에서도 합성수지나 모조 보석 등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였으나 이는 저렴한 가격과 색상 및 패션과의 조화 등 상업적인 이유가 주목적이었으며 이 또한 작가 주얼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4.2. 대표 작가와 작품 4.2.1. 프랑스

프랑스에서는 1920, 30년대를 전후로 시대적 흐름과 정신을 표현한 아르데코 양식의 확산이 주얼리 분야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며 개인적 의미가 담긴 예술로서의 주얼리 출현의 원동력이 된다. 이를 주도한 대표적인 작가로는 장 푸케(Jean Fouquet), 조지 푸케(Georges Fouquet), 장 데프레(Jean Despres), 레이몽 탕플리에(Raymond Templier), 장 뒤낭(Jean Dunand), 제 라드 상도즈(Gerard Sandoz)와 여성 작가인 수잔 벨페롱(Suzanne Belperro)을 들 수 있는데

23) 이윤령, 모더니즘이 예술주얼리의 발생에 끼친 영향, 한국공예논총, 2014 24) 클레어 필립스, 김숙 역, 장신구의 역사, 시공사, 2002, p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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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주로 주얼리 집안 출신 이거나 학교에서 주얼리디자인과 예술을 정규과정으로 배운 이력의 소유자들 이었다.25) 이들은 1931년 따로 ‘Societe des Artistes Decorateurs (U.A.M)’

를 결성하였는데 여기에는 주얼리 작가 외에 르 꼬르뷔제((Le Corbusier) 등 건축가와 예술가 들도 동참을 하였다.26) 이들은 공동의 시대정신과 노선을 목표로 하였으며 1년에 한 번씩 정기 그룹전을 열었는데 이를 통해 주얼리를 타 예술과 같은 선상에 놓고자 하였다. 이들의 주얼리는 공통적으로 새로운 테크닉과 절제된 단순한 형태를 기본 조형요소로 하였다. 재료도 기존의 귀금속이나 보석뿐만이 아니라 나무, 합성수지, 스틸, 유리, 오닉스, 상아, 산호 그리고 옻칠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시도하였다. 이들은 재료를 그들의 조형적 미감을 위해 선택하고 사용하였다. 작가별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장 뒤낭은 스위스 출신으로 제네바의 ‘Ecole des arts industriels’에서 수학을 하였으며 이후 파리로 거처를 옮겨 개인 스튜디오를 열고 본격적인 주얼리 작가로 활동하면서 1922년에는 프랑스 시민권을 받게 된다. 그는 또한 1903 년에는 조각을 그리고 1912년에는 일본인 세이조 수가와라(seizo Sugawara)로부터 옻칠 기술 을 배운 후 그의 주얼리에 옻칠을 자주 활용하였다.27) 그는 모더니즘의 간결한 형태에 여러 패턴의 반복적 사용을 통한 장식적 효과를 더함으로써 이국적인 화려함을 그의 주얼리에 표현 하였다. 특히, 그의 금에 옻칠을 상감하여 제작한 팔찌와 목걸이는 옻칠의 붉고 검은 색과 금색 의 강렬한 조합이 두드러지며 독특한 그만의 조형감각이 잘 나타나 있다.28)(그림8) 장 데프레 는 주얼리 세공사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으며 실습 기간에는 초현실주의 작가 조르주 데 키리 코(Giorgio de Chirico), 이탈리아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Amedeo Modigliani) 그리고 무엇보다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등 예술가들과 친분을 갖게 된다.29) 그의 장신구는 이러한 작가들의 영향을 받아 입체주의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며 단순하면서도 강한 기계적 취 향을 보여준다. 기계부품인 베어링이나 볼을 이용한 그의 주얼리는 새로운 시대의 산업화, 기계 화된 현대적인 기계 미학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은을 사용하여 만든 원형의 반지(그 림9) 또한 방사선 모양으로 기계적 패턴의 느낌을 사용하여 빠르게 움직이는 새로운 시대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30) 그는 주로 은을 사용하였으며 오닉스, 터키석, 산호와 락커 등을 함께 사용하였다. 레이몽드 탕플리에 역시 그 시대 많은 주얼리 작가들이 그렇듯 주얼리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1849년 파리에 탕플리에 회사를 설립하였고 그의 아버지 가 뒤를 이었으며 레이몽드는 1919년부터 합류하였다. 그는 ‘Ecole National des Arts Decoratifs’ 에서의 수학 후 1911년부터 협회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U.A.M의 고정 비서직을 맡았다. 1925년과 1937년에는 파리에서 2차례에 걸친 전시를 통해 그의 작품을 선보였다. 그 의 주얼리는 친분이 있던 르 꼬르뷔제나 폴 발레리(Paul Valery)의 영향을 받아 참신하고 순수 한 추상화의 느낌을 준다.31) 그는 특히 호나 반원 그리고 다양한 역삼각형에 매료 되었으며 이러한 형태를 혁신적인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즉, 이러한 형태를 통해 빛과 볼륨의 상호작용을 완벽하게 표현하였고 이를 위해 종종 다이아몬드를 사용하였다. 이는 경제적인 가치보다는 건 축물의 창문이나 빛의 효과를 주기위한 것이었다.(그림10) 이외의 재료로는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은과 동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옻칠을 하거나 칠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32) 주얼리 를 가업으로 물려받은 제라드 상도즈 역시 U.A.M 의 창립 멤버였으며 ‘Ecole de la bijouterie-joaillerie-orfevrerie’에서 수학을 하였다. 그는 화가이자 장식가로 활동을 하며 초 기에는 주로 회화와 조각을 하였으나 1920년부터는 주얼리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33) 대부분 그의 작품은 구성주의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으며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를 대칭적으로 배치하

25) Ring, Barbara Cartlidge, Hirmer, 1981, pp.141 26) Christianne Weber, 앞의 책, pp.147

27) Christianne Weber, 앞의 책, pp.154 28) 이광선, 앞의 논문, pp.512 29) Christianne Weber, 앞의 책, pp.158 30) 이윤령, 앞의 논문, pp.19

31) Christianne Weber, 앞의 책, pp.148

32) https://www.primaveragallery.com/artist/raymond-templier/

33) Christianne Weber, 앞의 책, pp.150-151

<그림 8> 장 뒤낭, 목걸이, 금, 옻칠 1925

<그림 9> 장 데프레, 반 지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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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으며 흥미로운 비례와 색감이 특징적이다.(그림11)

<그림 10> 레이몽 드 탕플리에, 브로 치, 오닉스,다이아 몬드, 백금, 1930

<그림 11> 제라드 산도즈, 펜던트, 금, 백금, 오닉스, 라피스라줄리 1928

4.2.2. 독일

독일은 개인 공방을 중심으로 한 주얼리 작가들의 활동이 유럽의 타 국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활발하였다. 그 중심에는 1919년에 설립된 바우하우스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작가로 나움 슬롯츠키(Naum Slutzky)를 들 수 있다. 나움 슬롯츠키의 주얼리들은 바우하우스의 전형적인 양식으로서 명료한 형식을 띠며 주로 크롬과 합성수지, 유리와 같은 새로운 재료의 결합이 두드러진다. 주로 재료와 그것의 조형적인 효과에 대한 실험에 관심이 컸으며 그런 점이 그의 주얼리에 잘 나타난다. 무엇보다 그의 장신구의 기계 미학적 요소와 모더니즘을 반영한 기하학의 추상형태는 인체의 유기적인 선과 결합되어 착용했을 때 대조적 인 형태들의 역설적인 조화를 이끌어낸다. 그만의 새로운 세팅 방식을 조형적으로 해결한 반지 와 보석의 교체가 가능한 반지(그림12), 착용 시 움직일 수 있도록 키네틱하게 결합된 원형의 펜던트들은 착용자의 신체와의 관계를 통해서 완성되어진다.34) 그는 또한 바우하우스에서 후 학의 양성에도 큰 역할을 하였는데 그의 제자들로는 이후 주얼리계를 이끌어간 마리안느 브란 트(Marianne Brandt), 볼프강 튐펠(Wolfgang Tuempel), 빌헬름 방엔펠트(Wilhelm Wagenfeld)를 들 수 있다. 이 당시의 또 다른 대표적인 작가로 허버트 짜이트너(Herbert Zeitner), 소피아 쾨니히(Sophia Koenig)등이 있다. 독일의 주얼리 작가들의 활동은 주로 베를 린, 뮌헨, 프랑크푸르트와 하나우 그리고 포르츠하임의 도시들을 중심으로 활발하였다. 독일에 서는 특히 일찍부터 많은 주얼리 학교가 설립되었는데 현재까지도 이들 학교가 지속해서 이 분야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예를 들면 ‘Burg Giebichendstein Halle’, ‘Badische Kunstgewerbwschule Muenchen’, ‘Pforzheim Goldschmiedeschule’, ‘Zeichenakademie Hanau’를 들 수 있다. 독일은 또한 다른 국가에 비해 여성 작가의 비율이 높다. 이는 이전과 달리 여성들도 교육을 받으며 주얼리 작가로 활동하는 여성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생긴 결과 라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은 마르가 제스(Marga Jess)이다. 그녀는 독일에서는 처음으로 1912년에 세공 마이스터 시험에 합격을 하였으며 1911년 베를린에서의 실습 후 20 세기 중반에는 주얼리 작가로 자리매김을 한다. 그녀의 주얼리는 주로 각진 형태와 표현주의적 인 성향을 띈다. 또 다른 대표작가로 엘리자베스 트레스코프(Elisabeth Treskow)를 빼놓을 수 없는데 그녀는 그 당시 중심인물이었으며 에센의 ‘kunstgewerbeschule’와 ‘Fachschule in Schwaebisch Gmuend에서 예술 학사를 취득하였다. 1919년에 뮌헨의 로트뮐러(rothmueller) 에서의 인턴 후 보쿰에 그녀 자신의 작업실을 오픈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35) 그녀의 주얼리에 나타나는 교차하는 선과 면들의 조합 그리고 그를 통한 공간적이며 구조적인 표현 형식은 그녀만의 독자적인 조형 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36)(그림13) 또 다른 대표적 여성 작가인 에바 마셔-엘제써(Eva Mascher–Elsaesser)는 평생 주얼리와 은기제작에 몰두하 였으며 조형적으로뿐만 아니라 테크닉적으로도 매우 뛰어났다. 그녀는 1926-28년에 개인 공

34) 이광선, 나움슬루츠키의 장신구에 대한 연구, 기초조형학연구, 6권 4호, 2005 35) Christianne Weber, 앞의 책, pp.227

36) 이광선, 아르데코, 현대장신구의 시작, 기초조형학연구, 19권 6호, 2018, pp. 512

<그림 12> 나움 슬 롯츠키,반지, 1924

<그림 13> 엘리자베쓰 트레스코프, 펜던트, 금, 지르코니아,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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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을 오픈하였으며 1928년에는 쾰른예술대학교에서 학업을 다시 하면서 작가로서의 길로 들 어서게 되었다. 그녀의 오팔을 이어서 만든 목걸이는 이집트를 연상시키며(그림14) 그녀의 주얼리는 수공적인 손맛과 강한 질감이 특징이며 그레뉼레이션 기법도 자주 사용하였다.

4.2.3. 그 외의 지역

영국에서는 아트앤크래프트 운동이 주얼리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이를 중심으로 작가 군이 형성되었다. 이 운동의 영향으로 개인 작가들이 타 유럽 국가에서와 같이 개인 공방 을 중심으로 작업을 하게 된다. 이 당시 영국의 대표적인 작가는 건축가이자 주얼리 작가로 활동한 헨리 조지 머피(Henry George Murphy)가 있으며 그는 아르누보적인 모티브의 주얼리 를 제작하였다. 그는 1909년부터 영국 런던의 왕립미술학교(Royal College of Art)에서 교수 로 재직하며 1937년에는 학장을 역임하였다. 이후에 그는 개인 스튜디오를 열고 그의 주얼리 들을 선보이게 된다. 그의 주얼리는 칠보를 통해 보여주는 다양한 색감이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데 후반으로 갈수록 점차로 아르데코의 영향을 받아 아르데코 스타일의 주얼리 작업을 하게 된다. 이외에 그 당시 활동한 영국의 주얼리 작가로는 시빌 던롭(Sibyl Dunlop)이 있다. 그는 1900년 브뤼셀에서 프랑스어와 주얼리 세공을 배웠으며 20년대 초 런던에 꽤 큰 규모의 스튜 디오를 오픈하여 2차 세계대전 발발 때까지 유지하였다. 그녀는 아트앤크래프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그녀의 주얼리에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녀의 작품에는 자연적인 요소들과 양식화된 잎, 물방울의 모티브들이 주요소를 이룬다.

스칸디나비아에서도 20세기 초 아트앤크래프트와 비인공방의 예술운동에 영향을 받아 비슷한 운동이 일어난다. 덴마크를 중심으로 유기적이고 간결한 디자인과 수공적인 미감을 지닌 스쾬 비르케 양식이 그것이며 주얼리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덴마크 주얼리는 수공예적인 부분을 강조한 영국이나 오스트리아와 비슷하게 공예의 새로운 미학적 형태가 주류를 이루었다. 스쾬 비르케 운동은 1925년에 건축가 카스파 러닝 보크(caspar Leuning Borch)에 의해 시작이 되었 는데, 그는 산업화에 따른 획일화와 대량생산에 반해 장식적인 면을 강조하였다. 스켄비르케 협회는 질 높은 수공 작업을 요구했으며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러한 모토 하에 주얼리를 제작하 였다. 대표적으로 예술가이자 건축가인 토르발 빈데스뵐(Thorvald Bindesboll)과 요킴 스코프 가드 (Joakim skovgaard)를 들 수 있다.37) 이들은 주얼리 작업도 조소나 회화처럼 예술에 속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전통 주얼리의 광택을 포기하고 망치의 질감을 선호하였으 며 수공의 흔적들을 그들의 주얼리에 남기고 표현하였다. 이외에 한스 한센(Hans Hansen)은 덴마크의 유명한 칼 구스타프 한센(Karl Gustav Hansen)의 아버지로 1906년에 자신의 개인 작업실을 오픈한 이후 1934년에 그가 제작한 은 주얼리 모델이 200개 이상일 정도의 수많은 은 주얼리를 제작하였다. 그의 작업은 단순하고 강한 조각적 요소와 수공예적인 특성을 지닌다.

주로 은 선을 이용하여 대칭적으로 배열한 핀 형식의 브로치들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그 림15) 스칸디나비안 주얼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오르그 옌센 (Georg Jensen)도 이 시기에 주얼리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는데, 자신의 공방을 오픈 하여 개인적이며 수공예적인 주얼리를 디자인하고 제작하였으며 주로 은과 준보석을 주재료 사용하였다.

<그림 15>칼 구스타브 한센, 브로치핀 시리즈, 은, 1932

37) Christianne Weber, 앞의 책, pp.287

<그림 14> 에바 마셔-엘제써, 목걸이, 금, 오팔 19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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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론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이번 연구에서는 1920, 30년대의 유럽 특히,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 로 시대적 변화와 함께 새롭게 나타난 주얼리의 서로 다른 두 흐름에 대해 살펴보았다. 하나의 흐름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가속화된 민주화와 상업적인 자본주의 그리고 무엇보다 여권신장 과 여성의 경제적 독립 등의 시대적인 상황에 따른 대중적인 성격의 코스튬주얼리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흐름은 개인 공방을 중심으로 나타난 아트주얼리라 할 수 있으며 이는 20세기 초의 모더니즘과 함께 나타난 유럽 각국의 예술운동과 양식 등 예술가들의 새로운 관점을 통한 개인 작가의 의식과 관심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코스튬주얼리와 아트주얼리는 두 흐름 모두 시대적 변화와 함께 전통의 권위나 신분에 대한 거부로 나타났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두 흐름의 주얼리는 출발부터 지향한 목적과 전개 과정 그리고 특성의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첫째로 코스튬주얼리는 패션디자이너와 주얼리회사에 의해 주 도되었으며 대중성과 상업성을 띠고 패션과 함께 치장을 위한 수단으로 대량생산이 이루어진 데 반해 아트주얼리는 개인 작가들에 의해 다양하고 새로운 표현 양식을 시도하며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기 위한 작품들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주얼리는 일품이나 소량으로 제작되었다. 둘째로 재료의 다양성으로 두 주얼리 모두 전통적인 재료인 귀금속과 보석 이외의 합성수지, 모조 보석, 합성석 등 다양한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였다. 그러 나 코스튬주얼리는 그러한 재료를 비교적 값싼 가격과 대량생산의 용이성에 초점이 맞춰진 반면 개인 작가들의 재료 선택은 경제적 가치보다는 그들의 심미적, 조형적 표현을 위한 매체로 서 재료의 물성과 미학적인 조형성에 가치를 두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시작부터 서로 다른 방향 성을 가지고 발생한 두 주얼리는 하나는 현대의 상업적인 코스튬주얼리로, 작가를 중심으로 한 또 다른 주얼리는 20세기 중반의 급속한 성장과 함께 아트주얼리로 오늘날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1920, 30년대의 이러한 주얼리의 두 흐름은 현대 주얼리 분야의 다양성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주얼리의 역사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라 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연구가 이번 논문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번 논문에서는 개괄적으로 다루 느라 세부적으로 자세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나라도 대표적인 국가로 제한을 둔 아쉬 움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그 맥이 50, 60년대를 거쳐 현대에까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에 대한 더 깊이 있는 후속 연구와 함께 계속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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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2563&cid=58794&categoryId5912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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