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가․관광 현상과 사회 1.1. 사회없는 여가․관광
한국의 여가 관광학 연구가 편향되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연구주제와 연구 방법, 연구형식 모두 편중되어 있다. 연구방법에 있어서는 이론․문헌연구, 면접조사, 현장조 사 등이 급속히 퇴조하고, 설문조사에 의존하는 양적 연구가 압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연구 주제에 있어서도 관광 분야에서는 호텔․외식에 대한 연구가 다수를 이루고 있고, 여가 분 야에서는 여가경험과 태도, 여가만족 등의 주제에 크게 점유되고 있다(김사헌, 2006; 김기 용․김헌일, 2004). 연구의 형식에 있어서는 에세이나 모노그래프(monograph), 단행본 등은 철저하게 배제되고 논문 일변도의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연구방법에서의 편향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한국 사회과학 연구의 일반적인 현상이기는 하지만, 여가 관광학의 경우 에는 그 정도가 심하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편향은 연구자들 개개인에 기인하는 문제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겠지만 동시에 학 술연구 생산구조와 밀접하게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학술연구 생산구조란 작게는 학술논 문 평가기준이나 평가체계, 연구비 배분과 지원체계 등을, 크게는 확립된 지적 체계와 이데 올로기, 학술정책에 이르기까지 학문연구와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과 구조를 말한다. 학 술연구는 단순히 연구자의 지적 호기심의 산물인 것만은 아니다. 학술연구는 아카데미를 둘 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제도나 구조의 영향을 강하게 받지 않을 수 없다. 가령 학문 연구 의 중심인 대학에서의 ‘연구업적’ 평가기준이나, 연구비를 지원하는 대학이나 정부, 재단(문 화재단, 연구재단, 장학재단) 등에서의 연구비 지원 및 배분기준, 정부의 학술정책 등에 따 라 학문 생산의 모습은 달라지게 된다. 관광학연구를 비롯해 소위 ‘한국학술진흥재단’(현 재의 ‘한국연구재단’, 이하 ‘학진’이라 한다) ‘등재(후보)지’에 많은 논문이 투고되고 있고, ‘등 재(후보)지’가 아닌 학술지에 투고되는 논문이 점차 감소하는 현상도 학술지의 명성과 평판 의 영향 또한 부인할 수 없겠지만, 각 대학에서 ‘등재(후보)지’의 논문만을 ‘연구업적’ 평가에 반영하고 연구비를 지원하는 사정 때문이다. 더불어 질적으로 우수한 논문을 쓰는 것보다도 많은 편수의 논문을 게재하는데 관심을 더 기울이는 것도 대학에서의 質이 아닌 量 위주의 학술논문 평가방식의 영향이 크다고 할 것이다. 또한 한국의 현실과 문제를 분석한 논문을 굳이 외국의 저널에 게재하려고 애쓰는 것도 세계화 시대에 자신의 연구결과를 국제적으로 공유하려는 의도 내지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검증”을 위한 목적이 없지는 않을 것이지만, 대학의 연구논문 평가체계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학문 내부적으로 ‘어떠한 영역과 주제가 연구되느냐’ 하는 문제도 이러한 학술 연구 생산구조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긴 호흡의 글보다는 짧은 기간에 완성하기 쉬운 주제
가 선호되는 것도, 실증분석 위주의 연구방법과 주제가 선호되는 것도, ‘논문을 위한 논문’이 양산되는 것도 바로 많은 논문을 쓰는 것이 미덕이 되는 현실의 연구 평가체계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학진용 연구주제”라는 말에서 감지되는 냉소와, 그럼에도 학문 생산 구조에 대한 성찰이나 별다른 문제의식조차 없이 현실에 매몰되어버리거나 혹은 적극 적으로 호응하는 여가 관광학의 연구 현실은 한편의 희극이자 비극이다.
1.2. 여가 관광현상의 이해에서 사회이론의 중요성
이처럼 학술연구에 있어 연구자 개인의 판단이나 결정에 학문 외적인 구조가 중요한 영향 을 미치고 있다. 여가 관광 연구가 연구자 개인의 순수한 관심과 호기심의 산물만이 아니라 는 점은 분명하다. 푸코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지식은 본래 권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권력은 평가(시험), 기록, 개별화, 시간 사용 등과 같은 다양한 기술을 통해 개인/연구자를 규율한다. 당대의 지배적인 학문생산 담론과 방법론, 평가 시스템과 제도, 담론공동체에 따 라 학술연구의 형식이나 주제, 연구방법이 달라진다. 학술 연구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환경 의 변화,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은 학문 연구의 중요한 토대이자 동인이다. 필자를 포함해 서 모든 연구자는 이러한 구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연구자 개개인 의 변화와 함께 여가 관광학 연구 환경을 둘러싼 구조의 변화를 위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 다.
다행스럽게도 근자에 여가 관광학계에서는 연구방법의 편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공감 을 얻어가고 있다. 실증분석 위주의 연구 편향을 비판하고 질적연구를 포함한 다양한 연구 방법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안제시가 이어지고 있다(김사헌, 2006, 2007; 김기용․
김헌일, 2004; 김헌일․김기용․유미진, 2004). 이에 따라 한국 여가 관광학의 대표적인 학술 지인 관광학연구에서는 2007년부터 매년 한 호씩 ‘질적연구논문 특집호’를 발간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제기와 노력으로 인해 적어도 실증분석 위주의 양적연구 일변도의 연구풍토는 문제가 있으며, 다양한 연구방법이 시도되어야 한다는 인식은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실 증분석 위주의 양적연구 편향은 점차 개선되리라 기대하고 싶다. 다만 학술연구 평가시스템 등 학문생산 구조가 변화하지 않고 있고, 연구자 개개인의 학습과 지적훈련 경험을 결정하 는 대학에서의 교육과정이 변화하지 않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연구방법의 다변화에 대 한 기대와 희망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노력 과 시도는 그 자체로 가치있고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일한 연구주제나 연구문제라 하더라도 연구방법이 달라지면 연구내용이나 결과 또한 달라질 수 있다. 이 점에서 다양한 연구방법의 시도는 바람직한 것이다. 한 마디 덧붙인다면, 연구방법은 말의 뜻 그대로 어디 까지나 연구주제나 연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을 의미하기 때문에 연구방법의
다양성만으로는 연구 지형이 협소한 틀을 벗어나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연구주제나 연구문제가 다양해지면, 그에 걸맞는 연구방법도 다양하게 시도될 수 있을 것이다.
여가 관광학 모두 연구주제나 연구주제의 학문적 배경 측면에서는 아직도 특정 학문 분야 에 기반한 연구의 편중이 심하다(변우희․조광익․김기태․한상현, 2008; 이진형․심재명, 2009). 관광학 분야의 대표적인 학술지인 관광학연구에 게재된 연구 논문을 분석한 사례 를 보면 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변우희 외, 2008). 관광학연구가 학진의 ‘등재후보지’로 선정된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약 9년 동안 관광학연구에 게재된 논문 627편 중 60%인 376편이 경영학에 기반한 논문이었다. 이어 경제학 분야 논문이 10.8%(68편)였고, 복합학문 분야 논문이 9.3%(58편), 사회학/여가학 분야 논문이 4.8%(30편), 정책학/정치학 분야 논문 은 4.3%(27편), 환경/생태학 분야 논문은 2.1%(13편)에 불과하였다. 경영학과 경제학 분야를 제외한 타 학문분야에 근거한 연구가 미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경영학에 근거한 논문 중에서도 편중 현상은 심각하여 절반을 넘는 201편(53.5%)이 ‘마케팅 관리’ 분야 논문 으로 나타났고, 인사조직(15.2%), 경영정보(10.4 %), 경영전략(8.0%), 생산운영(7.4%), 회계/
재무관리(5.6%) 등 타 경영학 분과 논문은 많지 않았다.
여가 연구에 있어서도 관광 연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연구주제의 편중이 심각하다. 1990년 이후 국내의 여가 연구 811편을 대상으로 연구경향을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국내의 여가 연구는 체육학(342편, 42.2%)에서 가장 많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어 관광학(126편, 15.5%), 사회복지학(64편, 7.9%), 가정/여성/소비자학(51편, 6.3%), 사회학(42편, 5.2 %), 교육학(38편, 4.7%) 등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김기용․김헌일, 2004). 국내의 여가 연구에서 다루어진 연구주제는 주로 여가행동과 여가심리 분야에 편중된 특징이 있다. 1990년 이후 국내에서 발표된 여가 연구 중 여가경험과 태도(195편, 24%), 여가 만족(112편, 13.8%), 여가소비와 소비행동(25편, 3.1%), 성격차/개인차(13편, 1.6%), 여가동기와 욕구(11편, 1.4%) 등과 같이 여가행위 및 심리와 관련된 연구가 43.9%(356편)에 달하고 있다. 특히 여가경험과 태도 및 여가 만족을 주제로 한 연구가 전체의 37.8%(307편)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여가 연 구가 (사회)심리학적 접근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관광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여가 연구의 경우에도 여가행위 및 여가 심리 분야 연구가 가 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이진형․심재명, 2009). 관광학 분야에서 여가와 관련된 연구 논문이 가장 많이 게재되고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인 관광학연구와 관광․레저연구에 게재된 여가 관련 논문 75편 중 여가행동(20편, 26.6%), 여가심리(12편, 16%), 여가제약(7편, 9.3%) 등과 같이 여가행위와 심리를 주제로 한 연구가 절반이 넘는 52%(39편)를 차지하고 있다.
체육학 분야의 대표적인 학술지인 한국여가레크리에이션학회지를 대상으로 한 여가 연 구경향 분석에서도 연구주제의 편중 현상은 확인되고 있다(김헌일․김기용․유미진, 2004).
1992년 이후 게재된 여가 연구논문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전체 291편 중 36.8%(107편)가 여가행위 및 심리와 관련된 연구로 나타났다. 특히 여가경험과 태도(53편, 18.2%), 여가 만 족(36편, 12.4%)을 주제로 한 연구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다학제성’과 ‘간학문성’이 라는 여가 관광학의 특징이 무색해지는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한국의 여가 관광학 연구에 있어 학문적 배경이나 연구주제가 다양하기보다는 매 우 협소하고, 편향되어 있다는 것이다. 관광 연구의 경우 경영학 분야에 대한 편중이 심하 고, 경영학 중에서는 마케팅 분야에 대한 편향이 크다. 여가 연구에 있어서는 여가행위 및 심리에 관한 연구주제가 많고, 이 주제들이 결국 (사회)심리학적 연구주제라는 점에서 (사 회)심리학이 중요한 학문적 배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여가 관광학 연구자의 전공 분야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고, 연구자들을 생산한 학문 내적 및 외적 구조, 현실적 생활 여건의 반영이기도 하다.
또한 여가연구의 편향성은 한국 여가 관광학의 ‘학문적 종속’의 문제와도 관련된다. 한국 의 여가연구는 북미의 여가연구와 닮아 있을 뿐 아니라, (사회)심리학적 측면에 편중되어 온 북미의 여가연구 편향을 반복하고 있다(Shim, 2004; 이진형․심재명, 2009). (다만 북미지역 의 여가연구는 한국에 비해 연구주제가 훨씬 다양하다는 차이가 있다) 이는 한국의 여가연 구가 “여가연구가 선행 발전된 북미지역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이고, “국 내의 많은 (여가) 연구자들이 이 지역에서 공부를 한 만큼 북미(의) 여가연구가 우리나라의 여가연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이진형․심재명, 2009: 21, 24). 북미 여가연구의 특성을 영국의 여가연구와 비교․분석한 콜터(Coalter, 1997)에 따르면,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의 여가연구가 사회문화적 불평등의 재생산기제로서, 그리고 문화적 경 쟁과 협상 및 저항의 장으로서 여가를 다루어왔고, 실무적으로는 사회정책과 복지정책의 차 원에서 여가를 다루어왔다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북미의 여가연구는 개인적 소비와 자아 표현 그리고 성취로서 여가를 다루어 왔기 때문에 그 만큼 동기나 만족, 편익, 제약 등에 관 심을 가져왔다(이진형․심재명, 2009에서 재인용). 한국의 여가연구가 유럽보다는 주로 북미 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의 여가 관광 연구에서는 경영학이나 심리학적 접근이 많은 반면, 문화인류학이나 사회학, 정치학, 지리학 등 주요 인접 학문에서의 접근은 매우 미미하 다. 이러한 연구의 편중과 편향은 다양성을 희생한 결과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바람직하지 않고, 여가 관광학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올바른 것이 아니다. 또한 종내에는 여가 관 광학의 학문적 영역 축소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 학제적 혹은 간학제적 학문이라는 여가 관광학의 이름에 걸맞는 다양한 주제와 대상, 형식, 방법론의 연구가 많아질 때 여가 관광학의 학문적 발전이 심화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국내 관광학의 연구 경향과 관련하여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관광학연구에 투고
되는 논문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특징적인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의 하나는 이론적 고찰(theoretical background)이나 문헌연구(literature review)에 대한 관심의 부족을 들 수 있다. 많은 논문에서 ‘이론적 고찰’이라는 제목 하에서, 실제로는 연구주제와 관련된 이론적 논의나 이론적 배경에 대한 논의 대신에 몇몇 선행연구 고찰로 이론적 고찰을 대신하거나, 또는 개념이나 변수에 대한 정의를 기술하는 것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지하듯이, 이론적 고찰이나 이론적 배경은 “이전의 연구경로를 보여주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연구와 어떻게 연관성을 맺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현재 밝혀진 이론이나 법칙을 종합하고 요약”
함으로써 연구주제의 쟁점과 이론 간의 관계, 가설과의 관련성 등을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 이다(김사헌, 2002). 하지만 연구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평가되는 이론적 배경이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론 없는 실천은 맹목 이고 실천 없는 이론은 공허하다”는 말이 있다. 이론이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론 은 실천의 지침이 되어야 하고, 실천은 이론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론을 경시하 고 실증분석만 중요시하는 연구는 반쪽도 아닌 반의 반쪽짜리 연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필자 의 생각이다. 이론적 배경의 중요성에 대한 경시는 자칫 여가 관광학 연구결과의 축적을 어 렵게 하고, 여가 관광학의 이론적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여가 관광학 연구가 현실적인 문 제의 해결 못지않게 이론적인 문제의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