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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美)와 추(醜), 아(雅)와 속(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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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美)와 추(醜), 아(雅)와 속(俗)

민 주 식*

Ⅰ. 머리말

Ⅱ. 서양미학에서의 추(醜)의 의의

Ⅲ. 고전 그리스적인 미와 추

Ⅳ. 고대 동양에서의 아속(雅俗) 개념

Ⅴ. 아속의 교융(交融)

Ⅵ. 결어

일반적으로 서구에서는 미(美, beauty)에 대립되는 개념 내지 가치로서 추 (醜, das Häßliche, ugliness, laideur)를 들고 있다. 그런데 미학사나 예술사의 추 이과정을 살펴보면, 특히 근대에 이르러 미가 해소되는 과정을 읽어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미의 개념은 서구 근대에 이르러 인간의 삶이나 예술의 현실을 적절하 게 파악하는 데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졌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한편으로 미의 개념이 도덕과 종교로부터 해방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숭고나 골 계나 그로테스크한 것, 나아가 추와 같은 것조차 미 자체 속에 받아들이게 된다.

다시 말해 미의 영역이 확장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광의의 미를, 우리는 고전적인 협의의 ‘미(beauty)’와 구별하기 위하여, ‘미적인 것(the aesthetic, das Ästhetische)’

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하튼 미추(美醜)는 진위(眞僞)라거나 선악(善惡)과 마찬가지

* 영남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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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서로 대립되는 가치 개념의 쌍을 이루고 있다.

현재 우리의 일상 언어의 용례에서도 미와 추는 상호 대립되는 의미로 사용 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로 삼고자 하는 것은, 동양의 전통 속에서도 과 연 미와 추가 그처럼 대립적으로 한 쌍을 이루면서 관념이 형성되었는가라는 점 이다. 나아가 미학이나 예술비평의 영역에서 미․추라는 용어가 동양 문화권 내 에서도 서양과 마찬가지로 가장 중심적인 가치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였는가라는 점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는 나라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미추의 개념이 서구처럼 그렇게 강하게는 인식되지도 않았으며, 미와 추가 하나의 쌍을 이루는 대(對)개념으로서도 확고한 위치를 점하 지 못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동양의 예술론에서는 미추 개념보다는 오 히려 아속(雅俗)이라는 개념이 더욱 중시되었고 활발하게 논의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보고자 한다. 다시 말해 서양에서의 미와 추라는 예술적 가치개념이 행한 역 할은, 동양미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아와 속이라는 개념이 수행해 왔다는 사실이 다.

잠시 여기에서 조선시대 서예의 전무후무한 대가였다고 평가받고 있는 완당 (阮堂) 김정희(金正喜)의 아속에 관련된 언급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는 예서(隸書) 가 서법의 종주이고, 만일 서도에 마음이 있으면 예서를 알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예서는 대개 미끈한 자태나 시정(市井)의 기풍을 걸러내야 한다. 또한 예서 쓰는 법은 흉중(胸中)에 청고(淸高)하고 고아(古雅)한 뜻이 있지 않으 면 손에서 나올 수 없다. 흉중의 청고하고 고아한 뜻은 또한 흉중에 문자향 (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가 있지 않으면 팔뚝 아래와 손가락 끝에 발현될 수가 없으니, 보통의 해서(楷書)와는 비교할 수 없다. 모름지기 흉중에 문자 향과 서권기를 갖추는 것이 예법(隸法)의 장본(張本)이 되며 예서 쓰는 신 묘한 비결이 된다.1)

1)「書示佑兒」,『阮堂先生全集』 卷七. “隸法分膩態市氣 且隸法 非有胸中淸高古雅之意 無以出手 胸中淸高古雅之意 又非有胸中文字香書卷氣 不能發現於腕下指頭 又非如尋常 楷書比也 須於胸中先具文字香書卷氣 爲隸法張本 爲寫隸神訣”(김정희,『秋史集』, 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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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완당이 강조하고 있는 가슴 속의 ‘청고고아지의(淸高古雅之意)’란, 유 교에 바탕을 두고 있으면서 도교와 불교를 함께 수렴하는 가운데, 시기(市氣)․속 기(俗氣)에서 벗어나고 유예정신(遊藝精神)에 의해 덤덤히 살아가는 인격의 세계 를 일컫는다. 이는 다름 아닌 조선조 선비들, 나아가 동양의 문인 식자들이 지향 하는 이상이다. 요컨대 완당은 시정의 기풍 즉 속(俗)을 걸러내고 고아(古雅)한 뜻을 가져야만 훌륭한 예술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피력하고 있다. 이처럼 우 리는 완당이 아와 속의 대비 개념 속에서 예술적 창작의 올바른 방향성을 정립하 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속 개념은 동양의 예술론에서는 창작과 비평의 가치를 근거지우는 주요한 개념으로 줄곧 인식되어 왔던 것이다.

본시 미(Schönheit)라는 말은 어원적으로는 빛나다(scheinen), 반짝이다 (glänzen), 보다(schauen)라는 말과 관계가 있으며, 철학 일반의 중요한 개념이다.

이 개념은 우선 최초로 형이상학, 코스몰로지, 그리고 신학의 컨텍스트에서 사용 되었고, 후에 비로소 미학과 예술철학의 컨텍스트 속에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미의 경험에서 주관성에 관한 통찰이 중시됨에 따라 이로 인해 미의 개 념의 의미가 확대되고 또 역사적으로 상대화된다. 그래서 근대에 이르러 미의 개 념은 많은 문제점을 유발하게 되면서, 점차 그 의의를 잃게 된다. 근대에 이르면 미의 개념이 우리의 삶과 예술의 현실을 적절하게 파악하기에는 미흡하며 또 어 울리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이러한 사실은 미의 개념이, 헤겔(G. W.

F. Hegel, 1770-1831) 이후의 미학에서, 도덕이나 종교로부터 해방되고, 숭고, 골 계, 그로테스크한 것, 나아가 추와 같은 것조차 자신의 내부에 받아들이게끔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가 있다. 이러한 과정을 우리는 피셔(F. Th.

Vischer, 1807-1887), 로젠크란츠(Karl Rosenkranz, 1805-1879), 후에는 폴켈트(J.

Volkelt, 1848-1930)와 립스(Th. Lipps, 1851-1914) 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현대 수 역, 현암사, 1976, pp. 13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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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미학자 헹크만 교수는 서양미학사에서의 추의 개념의 전개과정을 잘 정리 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이해에 크게 도움이 된다.2)

인간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추(醜)의 작용은 현실의 모든 영역에서 만날 수 있다. 동물의 경우 자웅 동체의 생명체라거나, 인간의 경우 기형(奇形)․질 병․죽음에서, 자연의 경우라면 인간의 생활공간을 파괴하는 데서, 도덕의 경우에 는 잔인과 범죄 같은 데서 만날 수 있다. 또 사회와 정치의 경우 부패와 탄압 가 운데서, 마술적인 불쾌한 얼굴이나 신화적 환상 또는 종교적 표상 등의 공포한 형상 가운데서 만날 수 있다. 그러므로 추는 항상 예술의 몫이 되어 왔다. 그 뿐 아니라 사실주의가 시작된 이후에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예술”3)이 주류가 되 면서, 추에 대한 관심도 증가되었다.

추의 개념규정은 상이한 관점과 철학적 단서에 입각하여 행해지고 있다. 플 로티누스(Plotinos, 204-269)는 일자(一者)가 지성미의 방향을 취하는 미학의 틀 내에서 추를 모름지기 소재적인 것, 물질적인 것, 신체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신의 형성력으로부터 배제된 것 또는 그것이 불충분하게 침투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추한 것이다.4) 이에 반하여 헤겔의 후계자는 우주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윤 리적․정치적 차원을 중심에 둔다. 칼 로젠크란츠5)는 추의 본질을 단지 한계가 부당하게 정해진 ‘비열(卑劣)’의 경우뿐만 아니라 한계가 자의적으로 폐지된 ‘반역 (反逆)’의 경우에도 성립하는 ‘예속(隸屬)’으로서 규정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르 크스주의 미학도 헤겔의 전통의 기반에 있는데, 추를 ‘소외의 현상형식’6)으로 파 2) Cf. W. Henkmann & K. Lotter, Lexikon der Ästhetik, München: C. H. Beck’sche

Verlag 1992.

3) 야우스는 이 명칭의 저술을 편집하고 있다. H. R. Jauß(hrsg.), Die Nicht mehr Schönen Künste: Grenzphänomene des Ästhetischen, München: Wilhelm Fink Verlag, 1968 참조.

4) Plotinus, Enneads, Ⅰ, 6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London: W.

Heinemann, 1966).

5) K. Rosenkranz, Ästhetik des Häßlichen(1853),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Darmstadt 1979.

6) M. Kagan, Vorlesungen zur marxistisch-leninistischen Ästhetik, Berlin 1971, p. 57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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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하며, 혁명적 개혁과 사회의 교화에 의해 그것이 지양될 것을 기대한다.

니체(F. Nietzsche, 1844-1900)에서는 추는 쇠퇴의 징후로서, 생존경쟁에 굴 복하는 허약, 고갈, ‘퇴화’로서 나타난다.7) 또 아도르노(Th. W. Adorno, 1903- 1969)는 추를 역사적으로 더욱 오래된 것, 미가 현저하게 보여 계몽의 변증법적 과정이 되풀이되는 아르카익한 것으로 이해한다.8)

현실에서 추의 광경은 혐오감과 구역질을 불러일으키지만, 예술에서는 이와 달리 추는 색다른 매혹(魅惑)을 불러일으킨다. 그뿐만 아니라 ‘만족을 갖고’(아리 스토텔레스) 볼 수도 있다. 레싱(G. F. Lessing, 1729-81)은 추를 회화의 대상으로 는 거부하지만, 시에서는 시간적 계기적 묘사형식에 의해 효과가 완화된다고 하 는 모방의 견해에 입각하여 추를 받아들이고 있다.9)

추의 개념이 중심적 역할을 행하는 것은 헤겔학파의 미학에서이다. 바이쎄 (Chr. H. Weiße)10), 루게(A. Ruge)11), 피셔, 로젠크란츠 등은 추를 골계나 숭고와 마찬가지로, 변증법적 부정으로서, 그 때문에 미 그 자체의 불가결한 구성요소로 서 파악한다. 예술은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추를 그 표현으로부터 배제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역시 이차적으로 ‘아름다운 전체성’ 가운데 지양된 것으로서 나타나 지 않으면 안된다. 이 개념은 이 주어진 틀 내부에서는 확실히, 새로운 사실주의 예술(발자크, 디킨즈 등)을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이 예술은 진실을 그 프로 그램에 부각시키고, 그러기 위해 미는 하나의 (특히 혜택 받은 사회적 조건 아래 에서만 실현될 수 있는) ‘특수 케이스’(루카치)12)로 폄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7) F. Nietzsche, Götzendammerung(1888), Nr. 19-20(Götzendämmerung; Der Antichrist; Ecce homo; Gedichte, Sämtliche Werke: in zwölf Bänden/ Friedrich Nietzsche Bd. 8, Stuttgart: Alfred Kröner, 1964).

8) Th. W. Adorno, Ästhetische Theorie, Gesammelte Schriften, herausgegeben von Rolf Tiedemann unter Mitwirkung von Gretel Adorno, Susan Buck-Morss und Klaus Schultz, Bd. 7, Frankfurt am Main: Suhrkamp 1970, S. 74 ff.

9) G. E. Lessing, Laocoön : an essay on the limits of painting and poetry, tr., with an introd. and notes, by Edward Allen McCormick. Bobbs-Merril, 1962, Ch. 23-25.

10) Chr. H. Weiße, System der Ästhetik als Wissenschaft von der Idee der Schönheit (1830), Hildesheim 1966.

11) A. Ruge, Neue Vorschule der Ästhetik(1837), Hildesheim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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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예술의 과제는 오히려, 혐오감을 야기하는 현상과 함께 추의 본질, 즉 그 사 회적 원인을 표현으로 가져오는 데 있다.

추는 미의 대립개념으로서 일반적으로 미적 규범에 어긋나며 미적 관조를 방해하는 것, 즉 반(反)미적(widerästhetisch)인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현실의 자 연현상 및 정신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발견되며 예술작품에도 종종 혼입되고 있다.

그러나 대체로 고전적 예술은 추와 전혀 관계가 없거나 거리가 먼 ‘미의 예술’이 다. 따라서 고전적 미학은 추를 미의 부정태로서밖에 다루지 않았다. 예컨대 헤겔 이나 피셔의 미학에서는 추는 악 또는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것을 현상으로 가져 오며, 따라서 이념의 순수한 현현을 저해하는 것으로서 배척되었다. 그러나 근대 에 있어서는 바로크와 사실주의 내지 자연주의의 문예 및 미술에서 보이는 것처 럼, 추가 점차적으로 예술의 세계에 침투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미학상에서도 추 의 미적 의의를 찾으려고 하는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헤겔학파의 관념론적 입장에서도 샤슬러(Max Schasler, 1819-1903)는 소재 의 추는 미가 그것을 통해서 자기를 의식하고 실현하기 위하여 필요한 계기라고 하였다.13) ‘추의 미학’을 역설한 로젠크란츠는 예술이 이념의 현상을 그 총체성에 있어 표현하기 위해서는 현상계에서 긍정적인 것과 서로 뒤얽혀 있는 부정적인 것, 다시 말하면 추가 결여되어서는 안 된다고 논하고 있다. 그리고 립스의 미학 에서도 추는 ‘소극적 감정이입’의 대상이라고는 하지만, 미가 한층 돋보이게 하는 역할, 즉 미를 한층 인상 깊게 두드러져 보이도록 하는 배경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종류의 미에는 직접적인 그 실현을 위한 조건이 되고, 더 나아가서 는 미가 그것에 대해서 항쟁하며 자기를 주장함으로써 그 힘을 과시하기도 한다 는 점에서, 추의 적극적 의의를 인정하였다.

그런데 추는 미적 대상의 형식과 내용 및 이들 양자의 관계인 표현의 어느 쪽에 존재하는가에 따라서 구별된다. 로젠크란츠는 이것을 구별하여 ① 무형태(無 形態)․불균제(不均齊)․부조화(不調和)와 같은 ‘몰형식성(Formlosigkeit)’, ② 표현 12) G. Lukács, “Karl Marx und F. Th. Vischer”, in: Beiträge der Ästhetik, Berlin

1954, p. 217 ff.

13) Max Schasler, Ästhetik: Grundzüge der Wissenschaft des schönen und der Kunst, Leipzig: G. Freytag, 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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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부정확성(Inkorrektheit)’, ③ 정신적 자유의 부정에 근거한 ‘왜곡(Defiguration oder Verbildung)’이라고 하며, ③을 다시 a) ‘비속한 것(das Gemeine)’, b) ‘혐오스 러운 것(das Widrige)’, c) ‘커리캐츄어(Karikatur)’로 구분하고 있다. 이 구별로부 터 말한다면 어떤 종류의 숭고는 그 몰형식성에 있어서 추의 요소를 포함하며, 비장은 종종 혐오스러운 것, 사악한 것에 대한 표현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골계는 비루하고 약소한 것에 대한 표현이나 회화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추와 결 부된다고 할 수 있다. 또 특성미도 어떤 종류의 감각적 또는 정신적 특성을 일면 적으로 고조시킬 때에는 추로 전락하게 된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미적 유형은 많든 적든 추를 그 구성요소로 포함하고 있는데, 그 경우 추는 미적 인상에 활기 를 불어넣어주고 전체의 생동감을 높여주는 자극제로서의 힘을 갖는 것이라고 생 각된다. 그리고 어떤 예술경향에 있어서 두드러지게 추의 몰골을 드러내면서도 전체적으로 일종의 미적 매혹으로써 우리들을 감동시키는 작품이 발견된다. 특히 현대의 실존주의 문예나 그 밖의 예술에는 이른바 ‘추한 미’를 나타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 많다. 이러한 사례로부터 볼 때, 추는 그 자체가 미적 범주의 하나로 거론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의 추는 미적 범주의 체계에 있어서는 최대한으로 불쾌 및 불협화의 요소를 포함하는 것으로서 협의의 미, 즉 순수미와 정반대의 위치에 놓여진다. 물론 추를 취급하는 방법은 미학설에 따라서 다양하게 차이를 보여주고 있지만, 미적 범주론에 있어서 이 문제가 갖고 있는 의의는 특히 오늘 날의 예술상황에서 볼 때 경시할 수 없다.

이러한 미적 범주의 문제는 20세기 초까지 주로 독일미학에서 주요한 과제 로 다루어 왔다. 그러나 그 후 미학에서 예술의 역사성을 중시하게 되고 이에 예 술의 양식(style) 문제가 관심의 대상이 됨에 따라, 근래에는 거의 논의되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예술 양식론에서 양식적 본질의 문제를 추구하게 될 때, 사실상 미적 범주개념의 문제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한히 다종다양한 미의 특수상이 실제로 우리의 미적 체험 가운데 존재하고 있는 한, 이 문제는 미 학 분야에서 아직도 논구되어야 할 문제로 남아있다고 하겠다. 영미 미학에서는 20세기 후반 ‘미적 성질(aesthetic quality)’이라는 논제로 한 때 활발하게 논의되 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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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의 미의식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원리는 그리스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 C.)는 미의 주요한 형상(形相)으로 서 질서(taxis)와 균제(symmetria)와 피한정성(to horismenon)을 들고 있다.14) 가운데 질서란 각 부분의 올바른 배치를 의미하며, 균제란 각 부분의 비례적 균 형을 말한다. 그리고 피한정성이란 전체의 크기가 한정되고 일정한 형태를 갖는 것이다. 이 삼자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본질은 전체와 부분과의 조화(harmonia) 이다. 삼자는 함께 길이, 깊이, 크기, 넓이 등 수량적 관계에 의해 파악할 수 있으 며, 따라서 수학적 계량이 가능하다. 그런데 계량에는 측정의 준거 즉 척도 (metron)가 필요하다. 이 척도에 적합한 것이 미가 된다. 인간 영혼에서의 척도에 사물의 척도가 합치하거나 조화를 이룰 때, 인간은 그 사물을 ‘아름답다’고 부른 다. 감각적인 미를 문제로 삼는 한, 미란 다름 아닌 인간과 사물과의 공통적 척도 의 합치 내지 조화이다. 그것은 영혼에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쾌락을 낳는다. 플라 톤(Platon, 427/8-347/8 B.C.)이 논하고 있듯이, 감각적 사물의 아름다움이란 “청각 이나 시각을 통해 주어지는 쾌감”15)이며, 미적대상이 이루는 영혼과의 적합, 칸트 (Immanuel Kant, 1724-1804)가 적의(適意, Wohlgefallen)16)라고 부르는 것에 의해 미는 판단된다.

그런데 플라톤에 의하면 감각적인 미는 유익(有益)이라거나 쾌락(快樂)에 준 하여 아름답다고 파악되는 말하자면 하위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질서와 균제와 피한정성을 가진 것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것이 우리들이 뜻에 적합하고 마음을 기쁘게 하기 때문이다. 감각적인 미에 관한 한 외부 대상과 내부 영혼이 적합하 여 거기에 아무런 어긋남이 없을 때, 그 대상은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외계와 내 심이 조화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인이 무엇보다도 강하게 희구했던 행복의 조건 14) Aristoteles, Metaphysica, 1078 a 31(W. Tatarkiewicz, History of Aesthetics, Ⅰ.

Ancient Aesthetics, Mouton, 1970, p. 164에서 재인용).

15) Platon, Hippias major, 298 a(translated with commentary and essay, by Paul Woodruff, Oxford: Blackwell, 1982).

16) I. Kant, Kritik der Urteilskraft, Felix Meiner Verlag 1968, S. 48.

(9)

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열거한 질서․균제․피한정성 가운데, 그리스인은 특히 균제를 사랑하였다. 그들은 자연의 전체도 부분도 모두 균제를 취하고 있기 때문 에 아름답다고 보았다. 자연계에는 좌우대칭을 이루는 형태를 취하는 것들이 무 한히 존재한다. 특히 인간의 신체 각 부분은 기하학적 대칭 구조를 이룬다. 균제 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각 부분이 상하좌우 모두 서로 균형을 이루며 동시 에 전체와의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가리킨다. 어원적으로는 균제(symmetria)는 척도(metron)를 같이․함께(sym)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 척도는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미가 척도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대상물과 영 혼의 합치 내지 조화라고 한다면, 척도는 대상물 가운데 내재하고 있는가? 또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모든 존재자가 공유하고 있는가? 프로타 고라스(Protagoras, 540-430 B. C.)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17)라고 말하고 있 다. 그러나 척도를 인간의 주관성으로만 돌리고 있는 프로타고라스 식의 사고는 그리스 철학 전체에서 볼 때 소수파의 견해이다.

척도는 모든 것에 내재하고 있다. 자연에는 수학적 법칙이 관통하고 있으며, 사물의 각 부분은 비례적 균형에 기초하여 그 존재성을 획득한다. 인간의 신체는 그 훌륭한 전형이며, 나아가 인간은 그 비례관계를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이성을 갖고 태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있어서 인간은 모든 존재자 가운데 가장 아름다우며, 가장 힘 있고, 가장 고귀하다. 요컨대 ‘신(神)들’의 닮은 모습을 그리 스인이 ‘인간’의 형상을 사용하여 조탁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들은 선진문명 을 지녔던 이집트인처럼 조수(鳥獸)의 형상을 갖고 신들을 머리에 떠올리는데 수 긍하지 않았다. 이상적인 인간의 신체야말로 신들을 가시적인 형상으로 파악할 경우 유일한 귀감이 되었다. 그들은 모름지기 인체의 각 부분의 비율을 추구하고, 그들이 숭배하는 신상(神像) 가운데 완벽한 균제를 구현하는 일에 노력하였다. 이 렇게 표현된 신이야말로 만물의 참된 척도,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의 준거였다. 자 연의 이법, 우주의 이법은 남김없이 모조리 인간의 신체 속에 집약되고 있다고 17) Hermann Diels & Walther Kranz(hrsg. und übers.), Die Fragmente der

Vorsokratiker, Griechisch/Deutsch, 3 Bände, Berlin 1912, 80-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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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소위 ‘인간=소우주’ 설은 이와 같은 신앙이 살아있는 곳에서만 의미를 갖는 다. 신상(神像)만이 아니다. 그 거처하는 집이 되는 신전(神殿) 자체가 인간의 신 체 각 부분의 비례관계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리스인은 생각하 였다.18)

이처럼 균제를 중시하는 그리스인의 기하학적 정신이 니체가 말하는 ‘아폴 론적인 것’에서 유래하고 있다는 사실은 새삼스럽게 지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조형의 신 아폴론은 그리스인이 그들의 예술 가운데 의탁한 “그 척도에 적합한 한정, 거친 격정으로부터의 해방, 지혜로 가득 찬 고요함”19)을 관장하는 신이다.

이 정신에 비추어 보아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것, 충돌하는 것, 반항하는 것은 모 두 ‘추’로 낙인이 찍혀 말살되어 버린다. 질서를 결한 혼돈, 균제를 취하지 못한 불균형, 형태 없는 유동(流動), 비소(卑小)한 것, 보기흉한 것, 과잉한 것, 부족한 것은 모두 ‘추한 것’으로서,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고전예술 특히 조형예술 의 세계에서는, 추는 미의 부정태(否定態), 결여태(缺如態)로서 때로는 멸시되고 또 때로는 탄압되었다. 그러한 일은 지극히 준엄하고 잔혹하게 행해졌다. 그리스 신전에서 대표적인 영웅인 헤라클레스, 페르세우스, 테세우스 등은 모두 괴물 퇴 치의 사명을 띠고 있는데, 이들 설화는 그리스인의 ‘추한 것’에 대한 가차 없는 태 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 괴물은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물(異物)이며, 그 형 상은 생각할 수 있는 한에서 추악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헤라클레스가 퇴치한 히드라는 9개의 머리를 가진 물뱀이었다. 페르세우스가 무찌른 메두사는 머리카 락은 뱀처럼, 이빨은 돼지처럼 생기고 거대한 황금의 날개를 등에 걸머진 괴수(怪 獸)이며, 그 시선에 쏘인 자는 모두 돌로 변해버린다고 한다. 테세우스가 크레타 섬의 미궁(迷宮)에서 사살한 미노타우로스는 우두인신(牛頭人身)의 추물이었다.

자연의 이법으로부터 벗어나 태어난 이들 괴물들은 영웅에 의해 퇴치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였으며, 살해의 방법은 모두 잔혹의 극치에 달했다. 테세우스가 에레 18) 이에 관해서는 비트루비우스(Marcus Vitruvius, 기원전 1세기 경)의 건축서 De architectura Ⅲ. 1(Vitruvius, The ten books on architecture, translated by Morris Hicky Morgan, New York: Dover Publications, 1960)을 참조.

19) F. W. Nietzsche, Die Geburt der Tragödie, Kröners Taschenausgabe, Bd. 70, 1955, p.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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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스 가까이에서 퇴치한 괴도(怪盜) 다마스테스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무리하게 자기 침대로 끌고 가서 눕힌 다음, 나그네의 키가 침대보다 짧으면 추를 달아 늘 리고, 길면 그 다리를 잘라냈다고 한다. 그는 페르세우스에 의해 같은 방법으로 살해된다.20) 이러한 태도는 그리스인 일반의 미의식에 조응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들은 우주, 자연, 인간에 공통되는 ‘척도’가 있다고 믿고, 그 척도에 맞지 않는 것은 ‘추한 것’이며, 거기로부터 불거져 나오는 부분을 깎아 없애고 모자라는 부분을 보완하여 ‘아름다운 것’을 형성한다.

그리스인에게서 ‘추(aischron)’라고 하는 개념이 동시에 ‘치욕(恥辱)’이나 ‘수 치(羞恥)’를 의미하고 있음은 더욱 분명히 이러한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다. ‘치욕’

이란 어떠한 대타적(對他的) 관계가 자기에게 되돌아오는 형태로 성립하는 감정 이다. 집단이 공인하는 척도를 일탈하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향해오는 집단의 척 도는 동시에 개인의 영혼에 내재하는 척도이며, 그 척도를 벗어난 것, 삐져나온 것, 부족한 것이 치욕을 의식하게 한다. 요컨대 추와 치욕은 척도와의 관계에서 볼 때 동일한 구조를 지니며, 그 때문에 같은 한 가지 말로 불렸던 것이다. 척도 에 적합한 것은 ‘적도(適度)’, ‘온건(穩健)’, ‘중용(中庸)’을 의미한다. 그것은 존재하 는 것이 일정한 한계 내에서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며, 그 한계를 넘어서는 것 은 ‘교만(驕慢, hybris)’이라고 하여 엄하게 징벌을 받았다. 거꾸로 그 한계를 항상 의식하고 각기 분수를 지키며 산다는 것은 ‘절도(節度, sophrosyne)’라 불렸으며, 폴리스를 규율하는 윤리로서 사람들로부터 칭송받았다. 고전적인 미의식은 이러 한 윤리와 불가분으로 결합되어 있었다.

아속(雅俗)이라는 말은 아담한 것과 속된 것을 함께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물론 아(雅)와 속(俗)은 각기 개별적으로 의미를 지니는 말이다. 그리고 문화적으 20) 플루타르코스,「테세우스전」11, 김지원 편저,『그리스 로마 신화』, 삼원출판사, 1989,

pp. 148-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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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는 풍아(風雅)와 비속(卑俗)을 뜻한다. 또 때로는 아어(雅語)와 속어(俗語) 또는 아문(雅文)과 속문(俗文)을 지칭하기도 한다.

아속은 동양의 예술 이론과 비평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역사적으로도 오랜 동안 의미의 축적이 이루어져 왔고, 전통적인 예술양식과 존재방식이 거듭 변화를 겪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근래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서도 미추 개념 못지않게 또는 그 이상으로 여전히 적용되고 있는 개념이다. 아 속은 단순히 심미적 범주도 아니고 또 예술 사회학적 범주도 아니다. 그 가운데 도덕적 정치적 함의를 아울러 내포하고 있는 포괄적인 문화예술의 범주이다.

앞서 말했듯이 아속이 예술비평 개념으로 채택되기 이전에, 아와 속은 각기 개별적인 의미로 다른 영역에서 사용되었다. 그 후 아․속이라는 대(對)개념으로 결합되어 예술비평의 범주로 사용되기에 이른 것은 유협(劉勰, 465-521)의『문심 조룡』(文心雕龍)에서부터이다. 그 이전에 아와 속의 용례를 살펴보면 처음에 아 는 고대 문화․정치의 중심지와 관련되어 있었다. 즉 아(雅)는 당시 하(夏)와 음 이 같아 서로 호환적으로 통용되었다. 서주의 수도인 풍호(豊鎬)는 옛 하(夏)나라 의 유적이었다. 그래서 서주의 수도 및 경기 지역의 음과 노래를 하(夏)나라의 음 이나 노래로 간주하면서, 그것을 통용어인 아시(雅詩)나 아언(雅言)으로 불렀던 것이다. 따라서 아(雅)라는 말에는 바로 수도를 중심으로 한 표준음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즉 관방어로서 바른 음이라는 정음(正音)의 뜻이 있다.

그러나 아는 단순히 규범이나 표준이라는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천하 에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관방의 통치이념을 뜻하게 되었다. 유가를 통치이념으로 할 때는 바로 유가의 이념과 가치지향이 바로 아의 표준이자 기본 내용이 되었다. 이를테면『모시서(毛詩序)』에서는, “아(雅)란 바르 다는 뜻이니 왕정의 흥하고 망하는 까닭을 말하는 것이다. 정치에 크고 작음이 있으니 소아(小雅)와 대아(大雅)가 있게 된 것이다”21)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정 교(政敎)일치를 강조하는 유가에서 아는 바로 도덕적 사회적 가치 규범이자 정치 의 이념이었다. 즉 ‘아(雅)=정(正)=정(政)’이었던 것이다.22)

21)『毛詩序』, “雅者, 正也. 言王政之所由發興也. 政有大小, 故有小雅言, 有大雅言”(심규호,

「漢代 雅俗觀과 아속문화의 변천과정에 관한 일 고찰」,『중국인문과학』제31집[2005 년 12월], 중국인문학회, p. 181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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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달리 속(俗)은 지방 즉 향토사회에서 세대를 거쳐 이어져온 관습과 규 약을 의미하였다. 원래는 주변민족(夷)의 예법, 즉 풍속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 풍속 자체는 폄하적인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니었지만, 후대에 가서 세속적인 것을 가리키는 말로서 의미가 폄하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특히 아와 비교해 볼 때, 속 은 중앙(수도)에 비해 지방을, 위(上)에 비해 아래(下)를, 보편적인 규범에 비해 지방적 특수성을, 문자에 비해 음성(口傳)을 지칭하였다. 즉 속은 국가나 도시에 대해 일상적인 것을 의미하고, 또 특수계층으로서의 문인에 대해 평범한 사람 즉 대중을 의미하게 되었다. 중국은 역대로 속(俗)의 향토사회가 펼치는 자발적인 문 화가치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위로부터 정교를 통한 교화의 대상으로 간주하였 다. 즉 ‘이풍역속(移風易俗)’이라 하여, 풍속을 고쳐 세상을 깨끗이 하는 것을 목표 로 삼았다. 이처럼 처음에는 지역을 가리키는 의미로 출발한 아와 속은 공간적 의미를 넘어서서 점차 추상적인 가치를 지닌 개념으로 변화하였다. 이처럼 아(雅) 란 정치적 의미가 강하게 실려 시교(詩敎)와 악교(樂敎)에 바탕을 둔 예교(禮敎) 의 핵심적인 문화로 간주되었으며, 이를 통해 이풍역속의 근거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23)

아와 속의 의미 변화를 주도한 사람은 중국의 전통적인 지식계층이었다. 황 제를 정점으로 한 강한 구심력으로 몇 겹의 원을 형성하고 있던 지배계층은 바로 이러한 아를 자신의 신분과 정체성에 대한 상징체로 인식하였다. 특히 아는 문화 권력과 헤게모니의 표상이었다. 따라서 지식 계층 간의 권력투쟁은 종종 아와 속 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 즉 아의 정통성에 대한 쟁탈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선진(先秦) 시대 유가와 도가의 논쟁은 바로 이러한 측면을 잘 보여준다. 유 가든 도가든 또는 법가 등을 포함하여 모두가 아에 대한 적극적인 의미부여와 속 에 대한 부정적 의미부여를 통해, 특히 부정적인 속과의 대비를 통해 자신의 문 화적 사상적 정치적 정체성을 확인하려 하였다. 그런데 당(唐)․송(宋) 이전의 아 개념은 속 개념에 비해 내포성이 상대적으로 빈약하였다. 그것은 구체적인 개념

22) 차태근,「비평개념으로서의 雅俗과 그 이데올로기」,『중국어문논총』제28집(2005), 중 국어문연구회, pp. 88-610.

23) 심규호, 앞의 논문, p.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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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틀을 지녔다고 하기보다는 왕실과 지식인층의 가치기준이나 문화 또는 의식 (儀式)을 막연히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아로써 자신의 신분과 인격의 정체성을 표현할 때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 이로 인해 유가(儒家) 나 도가(道家) 모두 자신들이 추구하는 문화와 가치를 속에 대한 대비를 통해 형 성해 나갔다.

특히 도가(道家)의 속에 대한 거부와 멸시는 유가보다 더욱 심했다. 그들에 의해 규정되는 속의 범위는 유가보다 더 포괄적인 것이었는데, 개인의 욕망이나 이에 근거한 현실정치에 대한 참여를 모두 속으로 규정하였다. 예를 들면 노자(老 子)는 “세상 사람들은 빛나는데 나는 홀로 어둡고 세상 사람들은 똑똑한데 나는 홀로 둔하다”24)라고 하였다. 또 장자(莊子)도 “통속적인 학문으로써 본성을 닦아 그 원초적인 상태로 되돌아가기를 바라고, 통속적인 생각으로써 욕망을 다스려 밝은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몽매(蒙昧)한 백성’이라고 말한다.”25) 또 “예의는 세속 사람들이 행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지만, 참(眞)은 각각의 사람이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참은, 처음부터 저절로 그러한 것[自然]이기 때문에, 고칠 수 없다. 그래서 성인(聖人)은 하늘의 자연스러움에 좇아 참을 귀중하게 지켜 세 속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는, 이와 반대로, 하늘의 자연스러움에 좇을 수가 없어 세속의 일에 마음을 괴롭게 하며, 참을 귀중하게 지켜야 함을 몰 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속에 이끌려 그 참을 변화시켜 버리고 만다.”26)라고 한 말들이 그러한 예이다. 여기에서 보여주듯이 노자와 장자에게서 속은 세속적 인 것, 형식과 예법 등을 말하며 이에는 유가적 사유방식이나 가치철학을 포함하 고 있다.

24)『老子』20장, “俗人昭昭, 我獨昏昏. 俗人察察, 我獨悶悶”(장일순,『무위당 장일순의 노 자이야기』, 도서출판 삼인, 2003, p. 209).

25) 『莊子』외편 16 繕性, “繕性於俗, 俗學以求復其初. 滑欲於俗思, 以求致其明. 謂之蔽蒙 之民.” “喪己於物, 失性於俗者, 謂之倒置之民”(김학주 옮김,『장자, 상』, 을유문화사, 2000, p. 338).

26) 『莊子』잡편 31 漁夫, “禮者, 世俗之所爲也. 眞者, 所以受於天也, 自然不可易也. 故聖 人法天貴眞, 不拘於俗. 愚者反此. 不能法天而恤於人, 不知貴眞, 祿祿而受變於俗”(박일봉 역,『장자, 잡편』, 동양고전신서 19, 육문사, 1990, p.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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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의 순자(荀子)도 마찬가지로 속은 비루하고 정(情)이나 이(利)에 좌우되 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학문을 하지 않고 정의(正義)가 없으며 부유함과 이익 으로써 융성을 삼는, 이런 사람을 ‘속된 사람’이라고 한다.” “성정(性情)을 방종하 게 하면서 학문을 하지 않으면 소인(小人)이 되는 것이다.”27) 즉 순자에게서 속인 은 욕정이나 이익에 얽매이거나 비루하고 저속한 인물이다. 순자는 주(周)대의 신 분구별과 공자의 정명론(定命論) 등을 바탕으로 하여 철저한 신분 차별론을 주장 하였다. 그것은 단순히 계층 간의 구분이 아니라, 유가적 인간론 즉 군자와 소인 의 구분과 마찬가지로 인물의 도덕과 학문과 수양 등을 참조하여 행해졌다. 그는 사람의 품격에 따라 소인(小人), 지인(至人), 군자(君子), 성인(聖人)으로 구분하고, 임금의 경우도 왕자(王者), 패자(覇者), 강자(疆者)로 나누었으며, 유자(儒者) 역시 속유(俗儒), 아유(雅儒), 대유(大儒) 등으로 구분하였다. 특히 그는 예(禮)를 따를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여 아(雅)와 야(野)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야란 곧 속의 의미이다.28) 또 맹자도 향원(鄕原)을 “세상습속과 같이 행동하고 더러운 세상과 합치되게 행동한다.”29)라고 비판하면서, 세속적 가치에 부화뇌동하는 사람 과 대조되는 모범적인 유자(儒者)의 인격상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이 유가가 현실 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와 유가적 문화규범의 실천을 통해 아를 유지하려 했다면, 도가는 유가적인 현실참여마저도 속으로 간주하고 현실 초월적 아를 제창하였다.

그러나 그 차이야 어떻든 이들이 이미 아와 속을 인격의 상태나 특징으로 간주하 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아와 속의 이원적 가치관은 동한(東漢) 말에 이르러 더욱 현저해진다. 특히 이 때 속(俗)은 욕(欲)과 같은 의미로 더욱 더 폄하되며,30) 속설(俗說), 속론(俗 論), 속의(俗議), 속호(俗好), 속인(俗人), 속유(俗儒), 속리(俗吏), 속사(俗士) 등 다 27)『荀子』儒效, “不學問, 無正義, 以富利爲隆, 是俗人者也”, “縱性情而不足問學, 則爲小人

矣”(이지한 해역,『순자』, 자유문고, 2003, p. 144, p. 149).

28) 심규호,「漢代 雅俗觀과 아속문화의 변천과정에 관한 일 고찰」, 중국인문학회, 『중국 인문과학』제31집(2005년 12월), pp. 175-196. 특히 p. 177 참조.

29)『孟子』盡心下, “同乎流俗, 合乎濁世”(김학주 역저,『신완역 맹자』, 명문당, 2002, p.

497).

30)『釋名』, 釋言事, “俗, 欲也. 俗人所欲也”(차태근, 앞의 논문, p. 593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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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 부정적 함의를 지닌 단어들이 빈번히 출현하였다. 이는 당시 사회적 혼란이 나 지식계층의 강열한 자의식 대두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특히 이 시기는 중국 역사에서 ‘문인(文人)’이라는 특수한 사회계층이 등장하여, 위로는 황권과 아래로 는 민간계층과 일정한 거리를 둔 독특한 가치를 공유하는 세력을 형성해 가던 시 기였는데, 아속은 그들이 독자적인 사회이상과 가치의식을 구축하는 중요한 사유 언어였다.

이러한 문화와 사회를 이분화한 아속 대비개념을 본격적으로 문예비평에 적 용한 것이 유협의 『문심조룡』이었다. 그 주요 내용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본질과 형시에 대한 요구의 한 가운데를 꿰뚫을 수 있 고, 또한 우아한 표현과 저속한 표현 사이의 선택에 직면해서는 올바른 원 리를 따를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전통과 새로움이라는 문제에 대해 함께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31)

감정의 교직은 작품의 우아함과 비속함으로 하여금 서로 다른 체세 (體勢)를 갖게 한다.32)

사언시는 정통적인 형식으로서 우아함(雅)과 빛남(潤)을 근본으로 한 다.33)

시류적인 가벼움이란, 문장은 화려하나 유약하여 힘을 결한 것으로서 가볍게 시류에 영합하는 경우이다.34)

이와 같이 유협은 질과 문, 아와 속으로서 문예의 경향과 변화를 논하였다.

그에게서 아와 속은 이미 확연히 구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심미적 가치 평가 가 농후하게 드러나고 있다. 즉 그의 문예비평 속에는 아를 중시하고 속을 경시

31)『文心雕龍』제29장 通變, “斯斟酌乎質文之間, 而檃括乎雅俗之際, 可與言通變矣”(유협, 최동호 역편,『문심조룡』, 민음사, 1994, p. 362).

32)『文心雕龍』제30장 定勢, “情文而雅俗異勢”(유협, 앞의 책, p. 370).

33)『文心雕龍』제6장 明詩, “若夫四言正體, 則雅潤爲本”(유협, 앞의 책, p. 96).

34)『文心雕龍』제27장 體性, “輕靡者, 浮文弱植, 縹緲附俗者也”(유협, 앞의 책, p.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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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는 언문(諺文)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았 지만, 문예에서 중화지미(中和之美)와 유가의 온유돈후(溫柔敦厚)를 순정(純正)한 것으로 가치평가하고 있으며, 통속적인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후 문예에서 아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혼합되어 표현되었다. 즉 유가의 중화(中和), 고아(古雅)한 것과 도가의 한일(閑逸), 자연(自然), 고격(高格) 등과 같은 경향이 결합되어 아문(雅文)의 상징적 의미경계를 구성하였다. 이는 왕 창령(王昌齡, 698-755)의 『시격(詩格)』중 5가지 취향35)과 사공도(司空圖, 837-908)의 『24시품(詩品))』36)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런데 왕창령의 5가지 취향 과 사공도의 24시품이 모두 적극적으로 아시(雅詩)의 풍격을 논한 것이라면, 엄우 (嚴羽, 1197-1253)는 시에서 5가지 속, 즉 속체(俗體), 속의(俗意), 속구(俗句), 속 자(俗字), 속운(俗韻)의 사용을 금하고 있다.

이러한 아 문화주의는 송(宋)대에 이르러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당시 문화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회고적인 ‘숭아(崇雅)’ 경향이 더욱 강화되었다. 즉 송대에 는 이른바 속문화가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지만, 통치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는 숭아의 경향이 더욱 강화되었다. 즉 시언지(詩言志)의 전통을 강조하고, 당시 속 (俗)에 속해 있으면서 문인들의 주목을 끌고 있던 사(詞)를 아화(雅化) 시키려는 시도37)가 이루어지는 등, 중국 유가 중심의 아(雅)문화를 부흥하려 하였다. 그 후 명말(明末) 이래 아속의 이원적 대립구도, 특히 아속의 가치 평가적 함의에 대해 서 문제가 제기되어 왔지만, 근대 이전까지 형성된 아속의 구도는 대체로 송대에 형성된 아속관의 기본적인 연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아속의 구분을 문예에 중심을 두고 도식화해 본 차태근 교수의 정리내용38)을 들어보기로 한다.

35) 高格, 古雅, 閑逸, 幽深, 神仙을 일컬음.

36) 雄渾 沖澹 纖濃 沈着 高古 典雅 洗鍊 勁健 綺麗 自然 豪放 含蓄 精神 縝密 疎野 淸 奇 委曲 實境 悲慨 形容 超詣 飄逸 曠達 流動을 일컬음.

37) 張炎,『詞源』雜論, 卷下, “詞欲雅而正, 志之所之. 爲情所役, 則失其雅正之音”(차태근, 앞의 논문, p. 595에서 재인용).

38) 차태근, 같은 글, p. 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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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雅) 속(俗)

창작주체 문인(士) 주변문인/민간

심미적 풍격 온유돈후(溫柔敦厚), 초일(超 逸), 호방(豪放), 고아(古雅)

직설(直說), 질박(質朴), 염려 (艶麗)

언어 문언, 관방어 백화, 지방어

장르 시, 산문 소설, 희곡, 사

문체 시적 운문체 고사성을 중시한 산문체

독자 문인집단 주변 문인과 대중

창작목적 사교성, 교화성, 사회성 오락성, 상업성

사상배경 유가 및 도가적 가치중심 불교나 민간신앙

소재 자연, 사회 및 국가문제, 인생 일상적 애정고사, 협객, 야사

문화의 민족성 한족(漢族) 이족(夷族/異族)

시간적 지향 회고(懷古) 종신(從新)

지역성 전국적 지방적

창작태도 창조성, 자율성 모방성, 집단성

이러한 구분은 지나친 일반화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왜냐 하면 아속의 개념은 무엇보다도 개인적이고 시대적인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그 럼에도 이러한 구분은 문화권력 또는 상징권력을 둘러싼 아속의 집중성과 분산성 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즉 아와 속은 다양한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져 가치영역 을 구성하며, 위의 여러 가지 특징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여기에는 부분적으로 어떤 요소들의 가감이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사회의 아문화 권이 하나의 독특한 사회적 계층과 집단을 형성하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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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속 개념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양의 전통에서 예술을 인식하는 하 나의 틀을 마련해주었다. 그래서 아속은 동양예술의 자기 인식방식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그러한 인식과 논리에는 강한 이데올로기가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이 것이 가치판단의 개념이나 비평개념으로서 적합한지의 여부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이 논리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명확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앞의 도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전통적인 아문화의 핵심은 기본적으로 문자능력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온유돈후, 시적 운문체, 문언, 회고 등은 모두 문자능력과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아문화가 바로 그 문자능력을 갖춘 집단의 삶의 지향성과 심미적 경향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러한 지향성 과 경향이 어려서부터 문자능력을 위한 고도의 훈련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이것 은 개인의 의지보다는 그의 신분적 가치와 정치적 사회적 성공여부를 결정하는 정교일치, 과거제도, 문벌사회 등과 같은 사회적 시스템이나 문화적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규범적인 문자능력을 갖추지 못한 속문화는 그 러한 시스템과 제도에 의해 배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39)

이렇게 볼 때 속문화권은 아문화권과 더불어 자발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 다. 속문화권은 그 자체의 속성에 의해 구성되기 보다는 아문화권의 타자로서, 즉 비(非)아문화권으로서 구성된다. 아․속의 분류는 예술이 두 가지 방식으로 존재 하고 있음을 말하고자 하기보다는 예술은 아하여야 하며 속은 예술이 아님을 말 하고자 한다. 즉 아는 예술의 필요조건이다. 소위 아문화 집단은 예술의 창작자이 자 소유자인 동시에 예술의 판정자이다. 따라서 속은 비아(非雅)로서 부정적 함의 에서, 즉 예술의 밖에서 예술의 경계를 드러낸다.

아속 자체는 강한 정치적 심미적 이데올로기를 지니고 있으며, 단순한 문화 현상에 대한 구분이 아니라 일종의 가치평가를 지니고 있다. 즉 고급과 저급이라 는 기준이 아속의 근간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고급과 저급의 구분은 물론 고 39) 차태근,「비평개념으로서의 雅俗과 그 이데올로기」,『중국어문논총』제28집(2005), 중

국어문연구회, p. 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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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문화를 생산하거나 감상할 수 있는 계층이나 집단이 자신들의 집단적 우월성을 보여주는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그러한 경계를 통해 타계층이나 집단에 대해 열등의식을 갖게끔 만든다.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물론 사회구조나 체제상의 특징이지만, 그것을 현실적으로 작동시킨 것은 앞서 말한 특수한 문자능력이었다. 이러한 문자능력을 매개로 그들은 아문화권을 형성하고 그밖의 것에 대해 속문화라는 명칭을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아문화가 갖는 집중 성에 비해 속문화는 그 자체가 분산적이고 통일적이지 않다. 속문화에 부여된 몇 가지 속성들은 속문화의 실체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아문화를 반추하기 위한, 타자 의 거울 속에 드러날 수 있는 선택된 몇 가지 유형에 불과하다. 아속이라는 관념 자체는 아 문화를 드러내기 위한 개념일 뿐이며, 아속이 서로 대등한 조건 속에 서 상호 규정하는 경쟁적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데올로기성은 예술문화 비평의 개념으로서의 아속의 적절 성에 의문을 제기한다.40) 우선 그 개념의 모호성에 대해서이다. 앞에서 우리는 아 속의 경계를 열거했지만, 아속을 논하는 사람마다 그 개념을 강조하는 데에 많은 편차를 보인다. 소위 속예술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아는 창조적이라기보다 는 과거의 것이며 또 아문화권은 유행을 뒤쫓는 무의미한 수사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진정성과 진실성이 결여된 진부한 예술에 불과하다. 그리고 속예술은 오히 려 인간의 자연적 자발적 성정을 표현하는 참된 예술로 간주된다. 또 아속에 대 해 상대적으로 가치중립적인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이백(李白)의 시는 표일(飄 逸) 고고(高古)하여 아의 전형이라 할 수 있고, 두보(杜甫)의 시는 민생에 밀접히 다가가므로 속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시를 짓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각각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속은 그것 자체가 예술을 이해하는 잣 대라기보다는 이미 특정한 예술관과 인생관에 근거한 평가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일반 민중과 대중이 사회의 전면에 등장한 근대 후반기에 접 어들면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근대 이후 이원적으로 분리되었던 예술이 통합을 추구하면서 아속의 결합이 다방면으로 행해진다. 이를테면 작가는 이른바 아문화 집단이면서 독자는 주변부 아문화권과 민간에 두고 있다거나, 또는 내용 40) 차태근, 같은 글, p. 605 이하 참조.

(21)

은 아문화적인데도 형식은 속문화적인 경우가 있다. 요컨대 다양한 형태의 ‘전아 반속(轉雅返俗)’ 혹은 ‘전속반아(轉俗返雅)’가 이루어졌다.41)

이러한 문제와 관련하여 최근에는 아속을 획일적으로 구분하기보다는 구체 적 예술작품의 다양한 성격을 감안하여 ‘아속공상(雅俗共賞)’42)이라는 절충적 표 현이 제시되고 있다. 구체적인 작품을 비평할 경우 아예술이나 속예술로 단정하 기보다는 다양한 편차를 보이는 가운데 아속공존 또는 아속공상으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변화는 한편으로 아속 개념의 모호성을 회피하면서 아문 화 중심주의라는 비판을 벗어나는 전략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 이후의 예술에 대한 새로운 관념에 근거한 태도라 볼 수 있다.

미와 추라는 말은 오늘날 우리들의 일상어로서 또는 전문 학술용어로서 빈 번히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용어들이 언제부터 사용되었으며, 그 당시 말 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미술이라거나 미학이라는 말은 메이지(明治) 시대 일본인이 번역어로서 사용하기 이전에는 존 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근대어이며, 미라는 말도 이 무렵 빈번하게 사용되기에 이 르렀기 때문이다.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와 환경이 크게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학문연구 의 방식도 새로운 변혁을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학문과 예술의 장르 개념에 관해서도 그 형성과정을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 다. 서구 근대의 개념과 제도의 도입에 의해 전통적인 학예의 개념과 체계가 해 체되고 새롭게 편성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매우 착잡한 것이긴 하지만, 그러한 사 실이 간과된 채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美)’라는 개념도 근대화 과정 속에서 41) 陳平原,『二十世紀中國小說史』第1卷, 北京大學出版社, 1998; 차태근, 같은 글, p. 606

참조.

42) 심규호,「漢代 雅俗觀과 아속문화의 변천과정에 관한 일 고찰」,『중국인문과학』제31 집(2005년 12월), 중국인문학회, p.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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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역할을 행한 한자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미술․미학 등의 용어는 서양어를 번역한 말이다. 서양어를 한자어로 번역하는 방법에는 1) 치환(기존의 말로 바꿔 부름), 2) 고어(古語)의 재생 : a.전 용(轉用) b.변형(變形), 3) 중국번역의 차용, 4) 신조어(新造語)가 있다.43) 이러한 분류에 따르면 ‘미술(美術)’, ‘미학(美學)’은 신조어이며, ‘예술(藝術)’은 전용어이고,

‘미(美)’는 치환어이다. 미라고 하는 말은 예부터 한자로서 사용되었으며 일본 고 유어로서도 ‘美しい’라는 말이 있으므로, 혹자는 그것이 번역어가 아니라 고유어라 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일본이나 한국에서 추상관념으로서의 ‘미’는 없었 다. 예컨대 ‘꽃의 아름다움’이라는 것과 같은 용어도 사고방식도 존재하지 않았다.

또 진․선․미를 총괄적으로 생각하는 가치체계도 서양철학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것은 칸트철학 내지 신칸트학파의 철학으로부터 일본에 전해진 것이다.

일본에서 나아가 중국과 한국에서도 미학이나 미술이라고 하는 전문용어가 정착해가는 과정과 더불어, 동시에 서양의 근대적인 미의 개념도 점차 형성되어 간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이 미라는 말의 의미는 일정 부분 일본 고래의 전통적 인 미의식을 포함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서양의 미 개념을 나타내며, 시대의 흐름과 함께 거기에 근접해 가게 되었다. 그러므로 메이지 시대부터 일본의 미의 식은 서양풍의 미의식으로 바뀌어 간다. 문명개화의 풍경으로서 당시 일본인에게 는 ‘미’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이다. 근대 서양 학문의 선구적 수용자였던 니시 아마네(西周, 1829-1897)는 “미추의 분별은 인간사회를 문명화하는 지표이기도 하 다”44)라고 언급하였다.

이렇게 볼 때 지금 우리가 미학에서 미와 추를 논한다는 것은 물론 그 나름 대로 학문적 의의가 있겠지만, 한국이나 동양 사회에서 미적가치가 어떻게 인식 되고 있었는가에 대해 충실히 이해하는 데는 그 방향설정에서 문제가 있음을 확 인한 셈이 된다. 따라서 본 발표에서는 서양어의 번역어인 미와 추가 아니라, 동 양적 전통 속에서 비중 있게 거론되어 온 아속의 개념에 주목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결과 동서양의 미의식을 나타내는 개념들의 관련양상과 역할의 상이함을 살펴 43) 小池清治,『日本語キーワード事典』(「訳語」項、赤羽根義章), 朝倉書店, 1997.

44)『西周全集』(全4巻, 宗高書房, 1960-1971) 第1卷 哲學篇,「美妙学説」其一.

(23)

보게 되었다.

그 특징적인 면모를 간단히 지적하자면 다음과 같다. 서양에서의 미․추는 미적가치의 형상적(形相的) 측면에 주목한 개념이고, 미와 추는 서로 대립적이며 대조관계를 보인다. 미와 추는 기본적으로 존재론적 차별성을 갖는다. 이에 반해 동양에서의 아․속은 인간의 내면의식에 주목한 개념이며, 아와 속은 상호 전환 관계, 교융관계를 도모하기도 한다. 아와 속은 문화 계층적 구분을 기본적인 조건 으로 삼고 있다.

핵심어

몰(沒)형식, 미의식, 미적 가치, 미적 범주, 미추(美醜), 서구화, 속(俗), 아 (雅), 아속(雅俗), 칼 로젠크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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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Conceptual Implication of Beauty/Ugliness in the East and the West

Joo-Sik Min*

The parallel words of ‘mi(beauty)’ and ‘chu(ugliness)’ are frequently used in our daily life and in technical terms. We need to investigate when these words began to be used and what were the meaning at that time.

The words ‘mihak(aesthetics)’ and ‘misul(fine art)’ were modern translated words which did not exist before the Japanese Meiji era. The method of academic study needs new innovation and perspective in the rapid change of human society and environment. We should investigate the process which has formulated the genre concepts concerning learning and art in the modern westernizing period. This task is a very complicated thing, but it was overlooked for a while. It is worth to notice the ideological or cultural meaning of the concept of beauty which has played a role in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The beauty as an abstract idea did not exist in Korea and Japan until confronting westernization. And the inclusive value system covering truth, goodness, and beauty also did not exist. It was borrowed from neo-Kantian philosophy. Though the meaning of beauty used in present times in Korean society includes the traditional aesthetic concept to a certain degree, it basically expresses the Western concept of beauty. In

* Professor of Yeungnam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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