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 이제 내 인생도 도전과 패기 대신 관조와 기다림의 계절로 접어드나 싶습니다. ‘사오정’과
‘오륙도’라는 말이 오고가는 세상에서 대학교수로 서 25여년 살았으니 인생의 철도 바뀌는 게 당연 하다 싶으면서도, 교수로서 연구자로서 이룬 업적 을 생각하면 어깨가 처지곤 합니다. 교육자로서 삶에 자신을 가질 수 있기 원하지만, 내 삶을 되돌 아보면서 이룰 수 없는 꿈인가 하는 허전함을 지 우지 못합니다.
직업이 대학교수라고 주변에서 교육에 대해 자 주 묻곤 하지만 어느 때나 답하기는 쉽지 않았습 니다. 심하게 왜곡되어 본질 자체가 흐릿해진 우 리나라 교육의 현장에 서있으면서 확신에 찬 답을 강요받는 건 매우 씁쓸한 일입니다. 소신껏 답하 면서 살려고 애쓰지만 “참 어렵다”하는 기분을 지 우기 어렵습니다. 대학 수준이 아니고 대학원으로 넘어가면 더 어려워집니다. 상황이 구체적이므로 답의 폭은 더 좁아지지만, 길게 보아 스스로에게 아름다운 삶인지 또 긴 안목으로 우리나라에 바람 직한 방향인가를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국내에서 박사과정을 진학하려는 자제분의 앞날 을 걱정하는 부모로서 김형은 마음 편하게 물어볼 수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얼마나 의미 있고 도움 이 되는 답을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직선적이고 현실적인 답으로 내 똘똘함을 과시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애매한 답으로 실수를 줄
이는 대신 상징적인 답으로 스스로 생각하도록 부 탁드리고 싶습니다.
요즈음 나는 빠르고 확실하다는 기준보다도 힘 들고 시간이 걸려도 자기 자신이 노력해서 틀을 갖추고 속을 채우는 방법 쪽을 더 중요하게 생각 합니다. 경쟁에서 탈락한 자의 생존을 위한 변명 인지 몰라도 내 손으로 일군 자그마하고 진솔한 즐거움과 보람이 외형적이고 가시적인 화려함보 다 내 가슴을 더 따뜻하게 해주는 걸 배우기 때문 입니다. 이런 뜻에서 김형에게도 삶에 대한 긍정 적 기대를 가지고 아드님을 지켜보라는 말로 답이 충분하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드님의 삶에 대한 절실한 기대를 접고 거리를 두면서도 사랑의 눈으 로 지켜보므로 한자말의 풀이대로 “나무 위에 서 서 지켜보는 사람(親)”인 애비(父親)가 되라고 이야기해드리는 걸로 답을 대신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공부한 결과는 공들인 노력에 비 해 교육 효과가 적을 수도 있고 또 교육의 성과에 대한 사회의 평가가 외국에서 공부했을 때보다 훨 씬 낮을 수 있다고 확실히 예상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박사과정을 진학하겠다는 자제분의 결심에 대해 가볍게 답하는 건 실례라는 마음의 부담이 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족집게 같이 효과적이고 쓸모 있는 답을 드리지 못하더라 도 선배로서 같이 고민하고 격려하는 태도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마음을 누르고 있습니다.
서 곤
전남대학교 응용화학부, [email protected]
이런 뜻에서 김형의 직설적인 물음에 대해서는 엉뚱한 답이지만, 나의 이런저런 고민을 담은 글 을 쓰려 합니다. 우리가 20대에 즐겨 읽었던 무협 지에 비추어 내가 생각하는 대학원 교육을 포괄적 으로 전해드리는 걸로 답을 대신하려 합니다. 대 학원은 어울려 살 수 있는 착한 사람을 키우는 인 성 교육기관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특수목적의 기 능만을 강조하는 직업 교육기관도 아닙니다. 고도 의 전문성을 갖추고 스스로의 길을 의연하게 창조 해갈 수 있는 사람을 양성하는 교육과정입니다.
연구자에게는 독창성이 필수적인 가치기준이 되 고 끝없는 경쟁의 삶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고독한 무림의 영웅이 비쳐지기 때문에, 김형도 무협지의 교육과정에서 자제분이 걸어갈 길을 볼 수 있으리 라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사지선다형 문제가 아니어서 확실 한 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한계를 잘 알면서 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수능 시험에서처럼 확실히 맞는 답을 바랄 때가 많습니다. 김형도 비슷 한 기대로 물어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무협지의 영웅 이야기가 ‘확실한’ 답은 못되지만, 우리 나이에 걸맞게 걸음을 멈추고 생각해볼만한
‘잔잔함’이 배어 나오는 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입신양명이라는 오늘날 보편화된 가치 기준으 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대학교수 입장에서 우리 아 이들에게 이공계 진학을, 특히 국내에서 박사과정 진입을 권하기가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이공계 전문 인력이 산업 현장에서 소모품처럼 고려되는 현실이 씁쓸하고, 노동력은 의미 있어도 기술인으 로서 꿈을 인정받기 어려운 여건이 마음에 걸립니 다. 세월과 함께 쌓여 가는 전문가의 경륜을 도리 어 부담스러워 하는 현실의 극복이 어렵기 때문입 니다. 과학자에게는 자신의 아름다운 꿈과 설레는 가슴을 구체화된 제품과 이론에 담을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지만, 이를 위해서 얼마나 힘든 과정 을 거치고 얼마나 아픈 상처를 안아야 하는지 너 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가품이면 국산 대신 외국산 명품을 선택하는 게 당연해 보입니다. 물건뿐 아니 라 사람에 대해서도 같은 풍조가 만연해 있습니다.
박사급 연구자나 교수를 채용할 때는 우리나라에 서 키운 인재를 너무 쉽게 무시합니다. 고급인력에 관한 한 ‘국산품 불매’ 구호가 우리나라처럼 거침 없이 들려오는 나라가 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싶습니다. 선진국이라면 자기나라의 정책 방향과 운영 틀을 결정하는 지도층 인재를 스스로 양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조차도, 선진 국 진입 구호가 불쌍할 정도로 열심히 들려오는 우 리나라에서 정말 용감하게 무시되고 있습니다.
자제분도 이러한 불리함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 각합니다. 망설임도 있었겠지만 이를 딛고 박사과 정에 진학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제분께 격려가 되었으면 하는 뜻으로 바람직한 대학원 교육에 대 해, 제대로 된 교육에 대해 내 의견을 적어보고 있 습니다. 교과서에 나옴직한 딱딱한 이야기 대신 우스개처럼 들을 수 있는 무협지 이야기와 연관지 어 대학원 교육의 본질을 설명해주므로 선배로서 의무를 다하고 싶습니다. 덧붙여 자제분이 멋있는 지도교수를 만나 한 사람의 박사로 성장하는 과정 을 김형이 잘 이해하므로, 따뜻하고 절제된 마음 으로 어려운 과정을 의연하게 걸어가야 할 자제분 을 지켜볼 수 있기 바랍니다. 성공적인 교육을 마 치고 결실을 거두는 기쁨을 자제분의 교육에 관련 된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하는 뜻도 같이 담겨 있습니다.
국내 여행에서조차 비행기가 일반화되고 달나 라가 아닌 화성에도 탐사선이 찾아가는 과학의 시 대에 허황되어 보이는 장풍과 검법 이야기로 짜여
진 무협지를 예로 드는 게 좀 이상해보일지도 모 릅니다. 그러나 무협지에 설명되어 있는 무술의 전수과정은 교육제도나 방법 측면에서 오늘날 그 어떤 교육보다 더 엄격하게 효율을 고려하고 있습 니다. 제대로 배워 고수가 되면 자신의 생명을 지 킬 수 있고 나아가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지만,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여 무공이 출중하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무협지에서 이야기하 는 교육은 처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러설 수 없 는 한판 승부의 순간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건 오로지 그동안 쌓아온 수련의 결실인 무공 하나라 는 점에서 교육의 효과가 가장 극명하게 두드러지 는 세계가 무협지에 그려집니다.
무협지도 폭이 넓고 종류가 많아서 이의 구 성을 단순하게 정리하기 가 쉽지 않지만, 훗날 무 림의 영웅이 되는 그러 나 당장은 힘이 없는 어 린 아이가 사부를 찾아 나서는 데서 시작합니다.
소문을 듣고 또는 운명
적인 인연에 끌려 무술을 배우기 위해 사부를 찾 아갑니다. 큰 기대를 가지고 모든 것을 던져 배움 에 나서지만, 대부분의 사부는 쉽게 받아주지도 않고 받아주었다 해도 처음부터 무술을 가르쳐주 지 않습니다. 아이의 바쁜 마음은 제쳐놓고 무술 공부보다는 청소하고 빨래하고 나무하고 물 깃는 과정이 필수과목처럼 등장합니다. 대단치 않은 사 형들에게 굴욕적이고 참기 힘든 고통을 겪기도 합 니다. 그렇다고 사부가 특별히 챙겨주지도 않고 따로 위로해주지도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학생들 이나 학부모 눈으로 보면 이런 과정은 매우 비효
율적일뿐 아니라 미련해보이리라 생각합니다. 과 목 전반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수고 도 아까워 시험에 나올 만한 문제만 골라서 또 원 리는 제쳐두고 푸는 요령만 가르쳐주는 학원이 인 기 있는 현실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한가로움입 니다. ‘바람직한 인간상’처럼 구름잡는 듯한 명제 는 일찌감치 무시하고 출세에 유리한 줄에 끼어드 는 수단으로서 교육을 생각하면 무협지에 나오는 교육의 시작 단계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무술 수 련에 앞서 바탕을 준비하기 위한 노력은 시간과 돈의 낭비일 뿐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무협지는 이 과정을 지루하리 만치 소상히 소개합니다. 얼마나 고생했는지 얼마 나 힘들게 그 과정을 거쳤는지를 설명합니다. 마 치 어려운 과정이 있었고 이를 극복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다짐해 주려는 듯 자세히 묘사합니다.
이러한 교육의 예는 무협지가 아닌 현대식 군사 훈 련에서도 반복됩니다. 신병 교육도 ‘앞으로가 뒤로 가’가 기본인 제식훈련에서 시작합니다. 고등학교 를 졸업한 젊은이가 제대로 걷지 못할까봐 이를 교 육하는 건 아닙니다. 위세 높은 장군들 앞에서 보 기 좋게 줄 맞춰 행진할 수 있도록 훈련하기도 하 지만, 이보다는 생각과 행동을 단순하게 하는 목적 이 더 강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의 지시에 그대로 따를 수 있는 마음가짐을 만들기 위해 무술공부가 아닌 허드렛일을 시키면서 최선을 다해 사부의 말 을 따를 수 있는 마음가짐을 만들어 줍니다.
사고의 방법을 단순화하려는 교육의 시작 부분 을 열역학 입장에서 보면 엔트로피를 줄이려는 노 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계의 다양성을 나타 내는 엔트로피가 커질수록 계의 안정성이 증대됩 니다. 우리 사회도 생각하는 방법과 관심의 대상 이 다양해질수록 안정해집니다. 그러나 엔트로피 의 증가는 즉 다양성의 증가는 일의 효율을 낮출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들 면 안정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는 학생들 에게 교복을 입히고 빡빡머리를 강요했던 시도도 무협지에 나오는 교육방법처럼 엔트로피를 줄이 려는 측면에서는 타당합니다. 다만 이웃과 조화로 운 삶을 목적으로 하는 중·고등학교 교육에서 사 람의 다양성 자체를 무시하고 ‘무림의 고수’ 하나 를 교육하는 방법을 썼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질 높은 교육대신 교복이나 머리로 행동을 단순화 시켜 교육의 효과를 높이려는 건 너무 편한 발상 일 수 있습니다. 하나 ‘최고’를 지향해야 하는 대 학원 교육에서는 학생 스스로든 아니면 부모나 선 생에 의해서건 배우는 사람의 엔트로피가 줄어들 어 스승이나 사회가 학생의 발전을 위해 제공하는 노력이 배우는 사람의 기량을 높이는 데 효과적으 로 쓰여야 합니다.
가끔 제자들에게 무협지 이야기를 해주곤 합니 다. 무술을 배우는 제자도 쉽지 않았겠지만, 사부 도 참 힘들었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나이도 어리고 힘도 없고 경험도 없는 녀석이 해준 밥을 먹어야하 고 어설픈 솜씨로 빨은 옷을 입어야한다면 밥 짓고 빨래하는 녀석보다 더 고역이 아니었을까 싶습니 다. 부려먹으려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같이 참으면서 목표를 향한 정진을 위해 사부나 제자나 참고 견디면서 배움이 자리잡을 수 있는 바탕을 만 듭니다. 구체적인 기능에 마음을 빼앗겨 유치원생 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초등학생에게 컴퓨터 자격 증을 따라고 부추기는 오늘날과 비교하면 너무나 다릅니다. 무협지에서는 제대로 다져진 바탕에서 만 큰 재목이 자랄 수 있다는 교육의 가장 평범한 깨우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고 많은 사람을 감싸 안을 수 있는 또 많은 사람 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많은 사람의 마음에 자 리할 수 있는 큰 나무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자라
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 우리의 내일을 걸 수 있고 희망을 줄 수 있는 큰 인재가 자라날 수 있을지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이러한 시련을 누구나 극복할 수 있는 건 아닙 니다. 어려움을 견딜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훗날 영웅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좋은 스승 을 만나는 것 못지않게 목적을 달성하려는 욕구가 강해야 합니다. 신하의 배신으로 부왕이 죽임을 당했다든지, 상대 문파에게 공격을 받아 비참하게 패배한 가문의 후손이라든지, 나쁜 사람들의 악행 으로 부모를 잃는 등 잊을 수도 없고 지울 수도 없 는 아픔이 무술을 배우는 이유로 흔히 제시됩니다.
고상한 정신이 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요. 아픔의 종류에 관계없이 어떠한 고통을 감수하면서라도 무술을 배우겠다는 필연성이 있는 사람이어야 어 려움을 딛고 성공적으로 무공을 쌓을 수 있다고 이야기해줍니다. 다른 말로는 ‘한’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요. 무술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절 실할수록 무공의 수준이 높아지고 성공의 가능성 이 높아집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라는 막연한 구호보다는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하는 원한이 더 절실할 수 있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보다는 “복수를 해야 한다”는 현실감 있는 명제가 더 효과적입니다.
오늘날 교육 현장에서는 이처럼 목적이 뚜렷한 제자를 만날 수 없어 아쉽기도 하지만 다행스럽기
도 합니다. 원수를 갚기 위해 공부하러 왔다면 선 생은 무척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적당한 일자리가 눈에 띄지 않아서 또 마땅히 할 일이 없 어서 박사과정에 진학한다면 이는 비극입니다. 적 어도 자신의 삶에 대한 구체적 이해를 바탕으로 배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공부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학부모나 학생의 마음은 학 교나 학과의 명성에 쏠려 있지만, 효과적인 교육 을 위해서는 “무엇을 공부하느냐”는 물음보다 “왜 공부하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살 아가는데 유리하다”는 판단보다는 “공부하려는 이유”가 중요합니다. 스스로 이유를 제시하고 공 부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젊은이라 야 공부할 자격이 있습니다. 이유가 뚜렷한 선택 이 공부를 즐겁게 하고 보람도 줍니다.
자녀를 사랑하기에 그 자녀들이 기세등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자신의 삶조차 팽개 치며 희생하는 부모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모가 억지로 주입하는 명분이나 가치 역시 ‘공부의 이유’가 될 수 있지만, 그리 강한 의 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커가면서, 보 고 들은 게 많아지면서, 스스로 인식하고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커지면서, 스스로 세우지 않은 명 분은 쉽게 무너지기 때 문입니다. 더 무서운 것 은 강요받은 명분에 대한 반발로 인해, 그처럼 귀 하게 생각하는 자녀가 부모나 사회로부터 떠나고 싶어 하는 충동을 크게 느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점에서 자녀 스스로 자신의 삶을 헤아려 결 정하도록 기다리며 지켜보는 게 부모의 진짜 사랑 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다리기 힘들고 옆에서
보기 안타까워 자꾸 나서면서 사랑이라고 착각하 는 부모님은 자녀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뺏고 있 는 셈입니다. 희생적인 부모의 사랑인양 착각하는 우행에서 벗어나기를 권해드리고 싶을 때가 많습 니다.
사부의 억지 같은 초기 훈련이 끝나서 어려운 입문의 과정을 지나면 끈기를 필요로 하는 수련이 시작됩니다. 배우는 사람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 해 체계적인 훈련이 진행됩니다. 이 단계에서는 사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부를 선택하는 것은 제자의 몫이지만 교육의 방향과 방법은 오로 지 사부가 결정해야 합니다. 제자의 능력을 파악 하고 기질과 체질에 적합한 방법으로 최고의 무술 을 전수하는 방법은 사부 스스로 모색하고 결정하 여 진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부의 말을 하늘 처럼 따르도록 사고의 방법까지 단순화 시킨 사부 가 교육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영웅을 키워낸 대부분의 사부는 그 시대 무술의 최고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는 최고의 수준에 도달해 있는 무인 이었습니다. 검법이든 장풍이든 취권이든 독침이 든 도망치기든 사기든 어느 것 한 가지는 최고가 되어야 최고의 제자를 키울 수 있는 자격이 있습 니다. 무림의 일인자는 자신의 뛰어난 무술 이외 에도 균형적인 감각과 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주 변과 조화 등 여러 면에서 고루 장점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에 비해 사부는 최고의 무인은 아니더 라도 한 가지 기술에서는 최고 경지에 이르러, 무 술의 최고 수준을 이해하고 제자에게 이를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대목에 오면 대학교수로 서 내가 무척 자신 없어집니다. 열심히만 한다고 해서 모두 다 최고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타고난 자질과 안목이 없으면 노력만으로 는 중간 수준에 이르는데 그치기 때문입니다. 나
에게 배운 제자도 이런 나의 한계를 느끼리라는 점에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제자는 일단 사부가 그려주는 최고의 수준을 목 표로 하기 때문에 또 사부가 제시한 방법을 따라 목표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에 사부의 한계를 넘어 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교육의 완성도는 일차적으 로 사부의 눈높이에 달려 있기에 최고를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도록 사부는 최고를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최고의 대상은 통 속적인 ‘1등’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 상에는 많은 사람의 눈에 띄지 않아도 꼭 있어야 하는 최고가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박수를 받 지 못하는 분야라 해도 온 삶을 건 구도자의 길을 걸어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러 제자에서 최고가 되 는 방법을 이야기해줄 수 있으면 행복한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약점에서 최고가 될 수 있는 비법을 찾아내는 영특한 제자를 만나 는 운이 좋은 사부의 꿈으로 변명을 삼고 싶은 유 혹도 있습니다.
어쩌다 쉬는 날 텔레비전에서 고수들의 바둑을 보는 건 기쁨입니다. 반상에 놓이는 돌의 흐름에 억지가 없고 서로 기울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 러질 때 참 멋있습니다. 지금은 구경으로 그치지 만 ‘바둑’이라는 잡지가 처음 나올 때는 바둑도 공 부하고 관련 서적도 제법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 때 읽었던 대담 기사가 교육을 이야기할 때면 생 각나고 합니다. 일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바둑 고수에게 “이제 계속 정진하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 분은 자기가 세계 최고 가 될 가능성은 낮다고 답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세계 최고 수준의 바둑을 보고 왔으므로 자기가 가르치는 제자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으리라고 말합니다. 요즈음 우리나라 기사들이 국제기전을 계속 제패하는 걸 보면서 최고를 볼 수 있는 사람
들이 가르친 제자들은 외국에서 공부하지 않고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나라와 일본, 중국 등지에서만 바둑활동이 활발하 다는 특수한 상황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제 우 리나라도 이공계 분야의 최고 인재를 우리나라에 서 키워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대 학교수 반 이상이 외국에서 우수하게 공부했다고 하면서도, 우리나라 산업 규모가 교역 규모가 세 계 몇 위라고 자랑하면서도, 외화 유출이 걱정될 만큼 많이 나가서 공부해야 하는지 의아합니다.
우리나라 교수도 어디서 학위를 땄느냐에 관계없 이 세계 최고 수준 가까이에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으므로 최고의 인재를 키울 자격은 충분합니다.
능력보다는 학문적 사대주의에 찌든 세상이 두려 워 학벌과 인맥으로 공정한 경쟁이 어려운 세상에 홑옷으로 제자를 내보내야하는 괴로움을 피하고 싶어 힘든 사부로서 길을 포기하고 외국으로 나가 는 제자를 잡지 않는지 모릅니다. 스스로를 존중 하지 않으면 누구도 존중해주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잘 알면서도, 생물학적 씨는 지키려 애쓰 면서도 정신적 꽃을 피우는 수고를 사양하고 진정 이 땅의 숨결과 전통이 응결된 학문의 후배를 키 우는 기쁨을 남에게 넘겨주고 있습니다.
대학원생의 지도를 맡은 대학교수에게 연구를 의무로 부과하는 제도는 최고를 지향해야 최고를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시도조차 해보 지 않은 학문을, 그려보지도 않은 학문을 학생에 게 제대로 가르칠 수 없습니다. 연구 결과가 쓸모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많은 사람에게 공감 받지 못하고 지금 당장 쓸모가 없어도 최고가 되려는 집념은 있어야 한다는 주문입니다. 오랫동안 쌓아 오고 다듬어오는 내공이 있어야 새로운 싹을 틔어 주고 제자의 눈을 열게 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문도 세월 따라 변하고 무술도 사회와 함께 변
하기 때문에 사부가 가진 기능 자체가 그토록 중 요한 건 아닙니다. 이보다는 최고에 이른 스승의 문제를 인식하는 태도와 풀어가는 방법이 최고의 제자를 기르는 데 중요합니다. 오늘날의 스승 역 시 시대가 달라지고 여건이 변해도 변함없이 쓸모 있는 문제해결의 능력을 제자에게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날카로움과 영민함이, 체계적이면서도 틀 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한없이 엄격하면서도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는 지도교수를 만나는 건 박사과정을 시작하는 학생에게 가장 큰 복입니다.
이기적인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학문을 향한 진지한 마음을 간직한 학생이어야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대단해보이지 않으면서도 최고의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무협지는 사부의 무술 전수만으로 교 육이 끝났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단신으로 강 호를 섭렵하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사 부의 그늘 아래 안주하기보다 무협지의 주인공은 하산하여 강호를 헤매면서 영웅으로 성장합니다.
의외의 곳에서 의외의 인물을 만나 자신의 무공을 시험받기도 하고 죽음의 순간으로 내몰리기도 합 니다. 다른 무인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기술을 습 득하게 됩니다. 사부에게서 전수받은 무공에 자기 의 색깔을 칠하고 자기의 체질에 맞추어 자신의 무술을 정립해 나갑니다. 힘든 상대를 만나 겪는 어려움의 세기만큼이나 크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사부에게 전수받은 무술을 그대로 간직하는 대신 자신의 기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자기의 무술로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이 영웅이 됩니다.
과학계에서는 박사과정 학생과 교수가 같이 논 문을 씁니다. 교수가 떠올린 착상을 바탕으로 교 수가 준비한 시설과 연구비를 활용하여 학생이 실 험합니다. 착상이 구체적인 결과로 나타나려면 실 험에 참여한 학생의 노력과 수고가 절대적입니다.
그러나 이 연구의 성과는 일차적으로는 교수의 업 적으로 간주합니다. 교수의 머리에서 연구가 시작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연구의 진행상황을 점 검하고 방향을 결정하는 책임이 교수에게 있고, 연구의 의의에 대한 가치 판단이 교수의 능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박사학 위를 받은 후부터 업적을 자신의 연구업적으로 인 정하는 게 보통입니다. 이 때부터 업적이 자기 발 로 자기 머리로 쌓은 결과라는 뜻입니다. 학생이 보면 자기가 다 한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교수 의 그늘 아래서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한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강호를 전전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면서 자신의 무공을 완성해나가는 사 람이 영웅이 될 수 있듯이 교수의 그늘을 벗어나 서 자신의 학문을 갖추어가는 사람이 제대로 교육 받은 사람입니다. 교수의 아류가 되느냐 아니면 자신의 학문 세계를 세워 나가느냐 여부는 교수를 떠나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결정됩니다. 스스로 의 생명력에 바탕을 두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려 는 꿈을 포기하고 체제 속에서 안주하고 싶은 유 혹을 뿌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연구 활동을 통해 자신을 시험하고 자신의 세계 구현에 모든 것을 걸어야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미리 배워서 또 문제 푸는 요령을 배워서 유리 한 자리를 차지한 사람에게 계속 배워야 하고 끊 임없이 발전해야 하고 새로운 능력을 지속적으로 보강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 다. 효과적인 교육 방 법인양 선전하는 선도 학습으로 잘 나가는 학생은 박사과정에서 도 과외선생님을 찾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무협지의 영웅은 스스로 강호를 섭렵하면 서 자신을 구체화시키고 자신의 무공을 완성해갑 니다. 무협지에서 사부의 의무는 영웅에게 강호에 서 자신을 완성해갈 바탕을 만들어주는 데 있습니 다. 영웅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 을 피하지 않으며 능력과 함께 용기와 담력을 같 이 키워갑니다. 자제분은 그냥 배우기 위한 단계 로 박사과정에 진학하기보다 새로운 세계에 나가 는 기본기를 갖추기 위해 공부한다는 뚜렷한 인식 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려는 단계로 박사과정 을 이해하기 바랍니다.
너무 길게 쓴 듯 합니다. 무협지에서 영웅이 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기본 요건이나 영웅을 키우는 교육제도에 대해서는 아직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제법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영웅이 될 수 있는 자질, 영웅에 대한 평가 등 교육과 관련지어 볼만한 사항 이 꽤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김형이 오래전에 읽었 던 무협지를 떠올리면서 빠뜨린 내용을 살펴보도록 남겨 두려고 합니다. 열역학 시각에서 교육 효과를 엔트로피와 관련지어 설명했던 시도도 바람직한 방 향을 모색하는 방법의 하나로 검토해보도록 남겨 놓습니다. 사람이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을 키우는 이야기도 길어질 수밖에 없나 봅니다.
남아 있는 이야기가 많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꼭 말씀드려고 싶습니다. 능력을 타고 났고 배워 야할 강렬한 이유가 있고 또 훌륭한 사부를 만나 힘든 과정을 모두 이겨냈어도, 성공하는 영웅이 되려면 한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영웅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어 보이지만, 큰 그릇으로 발전해 가는 길에서 부딪히는 모든 어려움을 스스 로의 능력만으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목숨마저 부 지 못할 위험한 순간을 만나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어 보이지만, 다른 사람의 호의로 살아나는 이 야기가 영웅전에는 꼭 들어 있습니다. 부모가 쌓 은 덕의 보은이던지 자신의 외모와 당당함 때문이 던지 하여튼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대성의 길 을 마무리 합니다. 영웅은 훌륭한 체격을 갖춘 미 남이 대부분이어서 능력 있는 여인의 헌신적인 도 움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웅이 되려면 멋있 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무협지가 사람의 외모를 강조하기 위해서 여인의 역할을 강조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보다는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어떠한 영웅도 자신의 노력 만으로 자신의 실력만으로 이 세상에서 최고가 될 수 없음을 일러주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태풍은 어떤 바다를 건너오느냐에 따라 세력의 크기가 결정된다고 합니다. 따뜻한 바다를 건너오 면서 수증기를 많이 공급받으면 큰 태풍으로 커지 지만, 차가운 바다를 건너오면 수증기를 잃어버려 세력이 약해져 열대성 저기압이 됩니다. 이웃으로 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만이 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손 꼽히는 화학자이셨던 이태규 박사님은 학자로서도 교육자로서도 위대한 분이지만 재미있는 분이기도 하셨습니다. 말년에 한국과학원의 명예교수로 계 실 때 신입생 환영회에 나오시면 이야기를 잘 해주 셨습니다. 그중에서 자신이 부딪혔던 많은 과학자 들 중에서 “위대한 과학자는 좋은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으셨습니다. 똑똑한 과학자 보다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이야기를 많 이 하셨습니다. 아무리 머리가 우수하고 재능이 뛰 어나도 주변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면 큰 인물 이 되지 못하더라는 예를 들어주시곤 했습니다. 강 호를 섭렵하는 영웅이나 박사과정을 마친 연수자 도 같은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마음이 있어야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도 받을 수
있고, 착한 마음이 있어야 하늘이 보살펴주심과 이 웃의 따뜻한 손길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무협지에서는 남을 죽일 수 있는 기술보다 자신 을 지키면서도 남을 살릴 수 있는 무술을 최고로 평가합니다. 대학원 교육에서도 같은 기준이 적용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높이 고 뜻을 펼치는데 너무 매달리면 최고가 되가 어 렵습니다. 자신의 발전과 함께 같이 주변의 사람 과 자연을 함께 감싸 안을 수 있는 태도가 있어야 바람직한 학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부를 만나 무 도에 입문하여 영웅으로 자라는 과정도 길고 또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지만, 이처럼 힘들게 태어 난 영웅은 주위 사람과 자연에게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고마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김 형 자제분이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서도 맑은 마음 과 밝은 태도를 지켜 스스로도 즐겁고 지켜보는 우리에게도 기쁨을 주는 멋있는 과학자로 자라나 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더 나아가 자제분이 우리 의 자랑할만한 후배로, 따뜻함과 뿌듯함이 같이 느껴질 수 있는 멋있는 사람으로 우리 앞에 나타 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 이글은 풍경소리(2004. 1)에 “대학원교육과 무 협지”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으며, 다듬어 발표 하도록 동의해주신 풍경소리사에 감사드립니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