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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교통의 중심지 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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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시내의 모습

강원도로 통하는 관문,

철도 교통의 중심지 제천

심승희 | 청주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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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때문에 시(市)로 승격된 제천

제천이 속한 충청북도는 시(市)가 3곳뿐인데, 충청도라는 이름을 있게 한 충주와 청주, 그리고 제 천이다. 전근대부터 지방 중심지였던 청주는 1949년에, 충주는 1956년에 시로 승격된 반면 제천 은 그보다 한참 뒤인 1980년에야 승격되었다. 중앙선의 여객수송력이 최전성기였던 시점은 1970 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로 이 시기 여객수송 1위 역이 영주역이었고 2위가 제천역이었다. 흥미 롭게도 영주 역시 1980년에 시로 승격되었다. 제천과 영주 모두 남북으로 관통하는 중앙선을 중 심으로 각각 동서 양방향의 철도노선이 교차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연히 제천은 코레일의 충북 본부가, 영주는 경북본부가 소재하는 철도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한마디로 제천은 기차 때문에 시로 승격된 도시이다. 제천에서 서울로 이동할 때, 일반열차 중 앙선의 여객 수송력이 현저히 약화된 지금도, 기차는 비용과 시간 면에서 고속버스에 밀리지 않 는다. 제천역이 지금과 같은 자동차 시대에도 꿋꿋이 제 몫을 해내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중앙 선, 태백선, 충북선 3개 노선이 교차하는 철도도시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제천역이 이런 역할을 떠맡게 된 데에는 남북 분단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원래 제천역은 중앙 선의 한 역으로 1941년 개통되었는데, 해방 이후 남북이 분단되자 남한은 북한에 의존해오던 지 하자원이 단절되는 상황에 처했다. 이로써 남한의 최대 석탄 및 석회석 밀집 지역인 태백 · 소백산 맥 지역의 개발이 시급해졌을 뿐만 아니라, 채굴된 자원을 인구밀집 지역인 수도권과 서남부 지 역으로 수송해올 철도 건설 역시 급선무였다. 이미 남북 방향의 중앙선 노선은 개설된 상태였으 므로, 중앙선의 동쪽 지역에 위치한 태백 · 소백산맥 지역을 연결하는 동서횡단형 철도를 놓아야 했다. 제천은 동쪽으로 석탄과 석회석의 산지인 영월군, 정선군, 태백시(당시 삼척군)가 연이어 자리잡고 있어 강원도로 들어가는 관문적

위치에 있다. 따라서 제천과 강원도를 연결 하는 태백선(당시 영월선)이 1949년부터 착 공되기 시작해 1973년 제천역에서 백산역 (태백시)까지 이어지는 노선이 완공되었다.

태백선의 완공으로 사북, 고한 탄전 등 정 선군의 탄전에서 채굴된 석탄이 화물열차에 실려 제천까지 오고, 다시 제천에서 중앙선 노선으로 방향을 틀어 청량리역까지 운반되 는 시스템이 마련되었다.

제천역에 충북선이 연결된 때는 태백선 의 완공보다 훨씬 전인 1958년이었는데, 충

코레일 충북본부 제천역이 관리하는 철도 권역(분홍색으로 표시된 노선) 주: 중앙선의 원주, 제천, 단양과 태백선의 영월, 정선 그리고 충북선의 충주까지 십

자형으로 포괄하고 있음.

출처: 코레일 홈페이지.

제2 종관철도_중앙선을 타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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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대도시의 인구와 공산품이 태백 · 소백산맥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제천역에 철도수송력이 집중되자, 열차 운행과 화차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1966년 제천 역과 봉양역 사이의 대규모 부지에 조차장역을 건설했다. 조차장이란 철도역의 한 종류로 화차와 객차가 들고 나는 것을 조절하기 위해 특별히 설치한 역을 말한다. 남한에는 대전조차장역과 제 천조차장역 두 개가 있는데, 제천조차장역은 건설 당시 동양 최대였다고 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이 제천조차장역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철도도시로서의 제천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제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철도도시의 풍경

제천역에 도착하면 인구 13만 명 규모의 도시치고 상당히 큰 역사(驛舍) 규모와 붐비는 인파에 살 짝 마음이 들뜬다. 특히나 기차에서 내린 승객들이 제천역 앞 광장으로 나오려면 통과하게 되는 맞 이방은 코레일 충북본부의 위상에 걸맞게 기차와 철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소박한) 전시관 으로 꾸며져 있다. 이 전시관에 눈길을 주며 조금만 걸어 나오면 바로 제천역 광장이고, 이 광장 전 면으로 난 대로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시내 중심가다. 제천역 주변도 인구밀집 지역임을 알 수 있 는데, 제천역 광장 바로 앞에 ‘제천역전시장’이 있다. 특히나 제천역전시장 입구에는 장칼국수 같 은 국수류를 파는 분식점이 꽤 있는데 몇 군데는 내일로 승객들 사이에 맛집으로 소문나 있다. 제천 은 철도도시답게 일찍부터 ‘가락국수’가 유명한 곳이었다고 한다.2) 과거 기차가 역에 정차하는 동안 잠깐 내린 승객의 허기를 달래주던 가락국수는, 내 경험상 절대 맛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추 억의 음식이 되었고 정차하는 동안 잠깐 먹는 음식이 아닌, 일부러 찾아와서 먹는 음식이 되었다.

이 글을 연재하고 있는 우리 답사팀도 2014년 2월 제천역전시장 앞 국숫집에서 먹은 장칼국수 와 냉이고기만두 맛에 반해 올해 8월에도 역전시장 그 국숫집을 찾아갔다가, 다른 국숫집에 내일 러1)들이 줄 선 모습에 혹해 그쪽으로 끼는 바람에 엄청나게 맛없는 국수를 먹어야 했다. 스마트 폰으로 셀카를 찍어가며 그 맛없는 국수를 꾸역꾸역 먹고 있는 내일러들을 보며 우리는 이제부터 인터넷 맛집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자고 두 손 맞잡고 다짐했더랬다.

제천역 앞 서편으로는 코레일 충북본부 소재지답게 꽤 큰 규모의 코레일 관련 사무실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가보려는 곳은 사무실이 아니라 집, 바로 철도관사 단지였다. 이 철

1) 내일로 티켓을 이용해서 1주일 동안 전국을 여행하는 청년들(출처: 네이버 오픈사전).

2) 출처: 디지털제천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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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관사 단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두 번째 제천 답사였던 2014년 10월에 답사를 끝내고 다시 제천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데, 제천역 주변을 채 벗어나기 전 선로 방향을 따라 동 번호까지 매겨져 있는 단층의 낡은 공동주택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하면서 분명 철도와 관련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문헌을 조사해 보니 그 공동주택 의 정체는 철도관사였다.

철도가 개설되면 철도역을 운영하고 관리할 직원들이 근무해야 하는데, 과거에는 교통수단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먼 지역에서의 출퇴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철도 직원과 그 가족들이 상주하는 관사를 철도역 주변에 함께 건설해야 했다. 지금은 철도 운행과 관리의 상 당 부분이 자동화되어 철도역에 근무하는 직원 수가 많이 줄었지만 과거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았 다. 특히 제천역처럼 등급이 높은 역은 직원 수가 많아 대규모 철도관사가 건설되었다. 우리가 찾 아간 제천역 주변 영천동 철도관사는 1974년에 건설된 20동 규모의 공동주택이다. 넓은 마당과 건물 규모로 볼 때 1974년 당시로서는 상당히 높은 직급의 철도직원용 관사였을 것이다. 하지만 4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아파트 같은 더 좋은 주거환경으로 이사하거나 자동차 통근자의 증 가로 굳이 철도역 인근으로 주거지의 범위를 한정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면서 낡고 구식인 철도관 사는 빈집으로 전락해 버렸다. 현재 제천의 철도관사가 신문기사에 심심찮게 오르내리고 있는데, 잡초가 무성해진 이 빈집에 노숙자나 탈선 청소년들이 들어와 불을 피우고 술을 마시는 위험지구 가 되었으니 대책을 세우라는 내용들이다. 그래서 현재 이 철도관사 대문마다 무단출입을 금지하 는 제천경찰서장의 노란색 경고 딱지가 붙어 있다.

제천역 관사단지 같은 대규모 철도관사부터 산간 오지의 작은 간이역에 붙어 있는 소규모 철도 관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관사부터 비교적 최근에 건설된 관사에 이르기 까지 철도관사는 다양한 공간성과 시간성을 품고 있어 건축학이나 역사학에서도 중요한 학술 연 구 대상이다. 또한 이 시설물의 소유주이자 관리자인 코레일은 앞으로 이 철도관사들을 어떤 방 식으로 처리할 것인지도 궁금하다.

하지만 철도도시 제천에서 가장 눈길을 끄 는 풍경은 뭐니 뭐니 해도 제천조차장역이 아 닐까 한다. 지금은 여객열차가 서지 않기 때 문에 일반인들은 제대로 인식도 하지 못하 고 지나가게 되는 제천조차장역은 제천을 동 서로 가로지르는 장평천의 넓은 범람원 위에 자리잡고 있다. 총 60개의 선로에 궤도 연장 48.2km에 달하는 규모라서 제천조차장역으

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상으로 난 여러 선로 제천역 인근에 위치한 철도관사 제2 종관철도_중앙선을 타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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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자동차를 직각으로 꺾어 나올 때 느꼈던 강렬하고 독특한 공간감의 기억이 생생하다. 제천 의 중앙선 답사가 정겹게 느껴졌던 것은, 제천의 첫 답사였던 2014년 2월 장평천 주변을 헤매다 겨우 도착한 제천조차장역의 직원 분들이 너무 반갑고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주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를 위해 수동기계로 선로를 변경하는 시범도 보여주시고 옥상에 올라가 조차장 전체를 조망 하면서 전체 구조도 설명해 주시고, 기관차까지 태워주려 하셨다. 나중에 알아보니 제천조차장역 은 교통대학 학생들의 답사 코스일뿐만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철도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는 등 철도 교육 현장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제천이 고향이지만 강원도 말씨를 구사하는 직원 분이 우리 질문에 친절히 답해 주셨는데, 제 천이 강원도와 인접해 있어 말씨가 비슷하다 보니 제천 사람들은 종종 강원도 사람으로 오해 받 곤 한단다. 제천조차장역은 주로 화물열차를 편성하여 인근의 화물역인 도담역과 입석리역에 보 내는 기능을 하고 있는데, 하루 300회 정도 화물열차가 운행하며 이 중 90%가 시멘트, 10%가 석 탄이라고 한다. 중앙선에 속하는 단양의 도담역은 인근 시멘트 공장들 때문에 화물운송량이 엄청 난 곳이고(다음 연재 지역인 단양 편을 기대하시라!), 입석리역은 제천에 위치하지만 중앙선이 아 니라 태백선 노선이다. 입석리역을 포함하여 다음 역인 영월군 쌍룡역은 모두 석회석 산지로 이 름이 높은 곳이다. ‘쌍용양회’라는 회사명이 이 영월군 한반도면 쌍용리에서 유래했을 정도다. 제 천시 송학면 입석리에 위치한 입석리역은 서 있는 돌, 선돌(立石)에서 유래한 지명이지만 압도적 인 풍경은 입석리역을 끼고 거대하게 자리잡은 아세아시멘트 공장이다. 이를 상징하듯 입석리역 앞에는 석회석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종유석을 조형물로 세워놓았다.

하지만 대중의 뇌리에 각인된 철도의 이미지로 유명한 사례가 영화 ‘박하사탕’(1999년 작)에서 주인공 설경구가 철교 위에서 “나 돌아갈래”를 외치던 장면일 것이다. 무심한 기차는 주인공 설 경구를 받아버린 채 그대로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면서 설경구가 지나온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이 명장면을 연출한 곳이 제천으로, 설경구가 올라갔던 철교는 충북선인 공전역과 삼탄역 사이에 위치하며 남한강 지류인 주포천을 횡단하는 철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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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제천은 철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다. 그렇다면 기차라는 교통수단이 들어오기 전 의 제천은 어떤 곳이었을까?

제천의 또 다른 이름, 내토와 청풍

앞에서 언급한 제천역 철도관사 단지는 내토로와 청풍호로2가길 사이에 위치한다. 이처럼 제천 을 다니다보면 ‘내토’와 ‘청풍’이라는 지명을 자주 접하게 된다. 지금의 제천시는 1914년 청풍군이 제천군에 편입되면서 형성된 행정구역이 기초가 된 곳이다. 제천군은 고구려 시대에 ‘내토(奈吐)’

로, 통일신라 시대에 ‘내제(奈堤)’로, 고려 시대에 ‘제주(堤州)’로, 조선 시대에 이르러 현재와 같은

‘제천(堤川)’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제천이란 지명의 기원인 ‘내토’나 ‘내제’ 모두 큰 둑이나 제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 고대의 수리시설인 ‘의림지(義林池)’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도 충청도를 호서(湖西)지방이라 부르는데, 이 지명에서 말하는 호수가 제천의 의림지로, 호 서지방이란 의림지의 서쪽 지역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한다.

청풍군은 고구려 시대에 사열이현(沙熱伊縣)으로 불리다가 통일신라 시대부터 청풍(淸風)으로 불렸다. 1914년 제천군이 청풍군을 흡수해 제천군이 되었지만, 1980년 도시 지역에 해당하는 제 천읍이 제천시로 승격되자 나머지 면 지역은 제원군으로 분리되었다(1991년 제천군으로 명칭 변 경). 하지만 도농통합정책이 실시되면서 1995년 제천시와 제천군이 통합된 제천시가 되었다. 따 라서 현재 제천시는 1읍 7면 9동으로 구성된 도농복합도시

로서, 옛 청풍군 땅이 대략 남한강의 청풍호를 끼고 있는 금성면, 청풍면, 수산면, 한수면, 덕산면으로 제천시의 남 쪽에 위치한다. 그리고 나머지 북쪽 지역을 옛 제천군 땅으 로 보면 된다.

제천의 지형도를 보면 북쪽으로는 차령산맥이, 남쪽으로 는 소백산맥이 지나가는 지역으로 평균 해발고도가 250m 에 이른다. 그래서 제천시는 남한에서 태백시 다음으로 해 발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한 도시로(이승호 2010), 상대적 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기온이 낮아 일찍부터 농업은 밭농 사 위주로 발달했다.

제천이 험준한 산지 지역이다 보니, 조선 말 신유박해, 병인박해 등 천주교 박해 때에도 신자들이 숨어들어 화전 을 일구고 옹기를 구우며 신앙을 지켜갔던 교우촌이 형성 되기도 했다. 그곳이 바로 배론 성지인데, 대부분의 사람들

제천시 지도 청풍호

철도 노선 원주 Wonju

백운면 Baegun-myeon

수산면 Susan-myeon

한수면 Hansu-myeon

송학면 Songhak-myeon

금성면 Geumseong-myeon

덕산면

Deoksan-myeon 월악산국립공원 Woraksan National Park 청풍면

Cheongpung-myeon

영월 Yeongwol

단양 Danyang 충주

Chungju

문경 Mungyeong 봉양읍 Bongyang-eup

도심지역 Downtown Area

출처: 제천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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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로 이곳 토굴에서 황사 영이 백서를 작성하여 로마 가톨릭에 전달하려다 발각되어 16명이 순교한 ‘황사영 백서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더구 나 이곳은 일찍 순교한 김대건 신부에 이어 우리나라 두 번 째 신부이자 헌신적인 전교활동으로 순직한 최양업 신부의 묘소가 있는 곳이라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찾아오는 성지 이다. 배론 성지 내 대성당은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인데 배론이란 지명과 노아의 방주를 상징하여 커다란 배의 모습으로 건축되었다. 이 배론 성지에서 가까운 역이 중앙선의 구학역인데 무배치 간 이역이라 열차가 정차하지 않으나 간혹 성지순례 전세 기차가 서기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제천이 험준한 산지 지역이다 보니, 과거 물자는 주로 옛 청풍군을 동에서 서로 관통하 는 남한강 수운을 이용해 유통되었다. 즉 서쪽인 충주 쪽에서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온 짐배가 청 풍나루까지 물자를 실어 나르면 봇짐장수들이 등에 메고 천등산 박달재를 넘어 산골짜기 마을까 지 장사를 다녔다. 천등산 박달재는 대중가요 ‘울고넘는 박달재’(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 1948 년) 때문에 전 국민이 아는 지명이 되었는데, 박달재의 전설에 나오는 박달도령과 금봉처녀의 슬 픈 사랑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노래다. 이들의 유명세로 제천시의 캐릭터가 박달이와 금봉이가 되었는데 제천역 앞에도 이들의 동상이 서 있다.

이를 통해 제천시를 동서남북으로 둘러싸고 있는 영월군, 단양군, 충주시, 원주시 모두 남한강 유역권으로서 이들 지역은 철도교통의 발달 이전부터도 남한강 수운을 이용한 공동 생활권을 형 성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근대적 교통수단인 기차가 들어오면서 수운중심의 교통체계 는 붕괴되고 철도 중심의 교통체계가 새롭게 형성되었다. 즉 수운교통의 중심지였던 옛 청풍군의 나루들은 쇠퇴하고 철도가 놓인 옛 제천군 지역이 중심지로 발달하게 된다. 지도를 보면 제천을 지나는 3개 노선 철도가 모두 제천의 북쪽 지역(옛 제천군)을 통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곳 이 현재는 제천시의 도심 지역이거나 유일한 읍(봉양읍), 대규모 시멘트 공장이 있는 곳(송학면) 으로, 도농복합도시 제천시에서 도시적 특성을 보이는 지역은 모두 철도를 끼고 있다는 말이 된 다. 결국 철도가 지나는 지역은 도시로 발전하고, 나머지 지역은 농촌 지역으로 남았다.

제천역을 통과하는 3개 철도 노선 중에서도 태백선을 타고 오가는 강원도 사람들이 제천의 도시 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 이 태백선을 따라 강원도 영월군, 정선군, 태백시가 연결되는데, 1971년 영 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만 해도 탄광촌에 몰려든 강원도 사람들이 도매물품을 떼 오는 곳이

배론 성지의 가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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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태백선을 타고 닿을 수 있는 첫 번째 도시 제천이었다. 영월, 정선, 태백의 상인들이 새벽 첫 기차를 타고 와서는 제천 중앙시장에서 물건을 뗀 다음 아침밥을 먹고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가 장 사했던 것이다. 지금은 폐역이 되었지만 장락역 역시 강원도 사람들이 채소를 사러 오던 번개시장 이 열리던 곳이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제천은 광업으로 인구밀집 지역이 되긴 했지만 아직 생활기 반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강원도 사람들이 철도를 이용해 가장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도시 기능을 수행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자동차 교통의 발달에 따라 서울 도매시장 이용객의 증가와 강원 도 내 도매시장의 성장 등으로 제천의 도매시장 기능은 크게 약화되었다. 이를 반영하듯 제천에 3 개 노선 철도가 지난다고는 하지만 현재 여객이 승하차할 수 있는 역은 제천역뿐이다.

이처럼 철도가 지나는 제천의 북쪽 지역은 현재 여객수송 기능의 약화라는 어려움을, 그리고 남한강이 지나는 제천의 남쪽 지역은 수운교통의 붕괴에 이어 1985년 충주댐의 건설로 상당 면적 의 수몰지역이 생겨나는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천은 부지런히 새로운 도전 을 진행 중이다.

‘자연치유도시’를 꿈꾸는 제천

현재 제천은 ‘자연치유도시 제천’이란 제2의 타이틀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특히 남한강을 끼고 있는 옛 청풍지역은 수몰의 아픔을 겪은 대신 아름다운 호반풍경과 산수를 두루 갖춘 자연풍 광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의 하나가, 충주댐의 건설로 생겨난 넓은 호수 지역을 법적 명칭인 충주호라 부르지 않고 청풍호로 부르는 시 차원의 움직임이 다. 원래 충주호는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조동리 사이의 남한강 물길을 댐으로 막아 생겨난 호 수로 충주시, 제천시, 단양군 일부에 걸쳐 있으며 호수명은 댐이 위치한 곳의 지명을 따야 한다는 법령에 의해 충주호로 이름 붙여졌다. 하지만 실제 충주호 중에서 가장 넓은 수몰지역이 발생한

드넓은 청풍호와 호수를 가로지르는 옥순대교 제2 종관철도_중앙선을 타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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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등 문화재를 모아 전시해놓은 청풍문화재단지와 수몰 역사관이 있다. 청풍호가 한눈에 들어오는 고지에 자리잡 고 있어 전망대로서의 역할도 한다. 청풍호의 아름다운 호 반을 따라 호텔, 리조트, 유원지가 들어서 있고, 호반과 호 반을 둘러싸고 있는 금수산, 가은산 등 산지 사이를 걷는 트레킹 코스인 ‘청풍 자드락길’도 만들어 놓았다.

또한 석회암이 용식되고 남은 회색빛의 돌이 지표면에 노출되어 드러난 지형을 라피에, 또는 카렌이라고 하는데, 석회암이 많은 제천에는 라피에가 집단적으로 모여 만든 장관이 청풍호반인 금성면 월굴리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이곳은 아세아시멘트 회사에서 시멘트 제조용 점토 채취장 으로 사용해오던 야산이었는데, 1993년 점토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기암괴석군, 즉 라피에 지형 이 발견된 것이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금강산을 닮은 모습 때문에 ‘작은 금강산’으로 불리다가, 제 천시에서 명칭공모를 통해 ‘금월봉’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용식지형 특유의 울퉁불퉁한 생김 새 때문에 ‘두꺼비 바위’라고도 부른다. 이 금월봉 바로 뒤편이 청풍호인데, 제천시에서는 금월봉 의 독특한 자연풍광과 청풍호의 수상레포츠 시설을 한데 묶어 종합관광지로 개발하려고 노력 중 이다. 이처럼 철도를 배경으로 하여 도시로 성장한 북쪽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에 뒤처졌 던 남쪽 지역이 청정의 물과 산을 이용해 관광산업의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제천이 ‘자연치유도시’를 내세우는 것은 청정한 물과 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통적인 강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약초의 고장’ 제천이다. 제천역을 통해 제천을 찾는 사람들은 대합실 바로 옆 에 널찍하게 마련된 제천한방특산품판매점을 돌아보며 씁쓰름한 약초 냄새로 제천을 기억하게 된다. 2015년에 있었던 가짜 백수오 사건으로 피해를 보았던 대표 지역이 제천일 정도로 제천은 약초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제천이 약초의 고장이 된 것은 일교차가 큰 준고랭지에다 석회암의 사질 토양이 많아 약초재 배에 유리한 지리적 배경 때문이라고 한다. 제천에 약초시장이 형성된 것은 조선 후기부터이며, 1929년부터 공식적으로 제천 약령시가 개설되었다. 현재 제천 약령시의 규모는 서울 약령시장 다 음으로 큰 규모라고 한다. 제천 중앙시장에서 만난 상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제천의 약초시장이 커진 것은 강원도에서 가깝다 보니 강원도 약초꾼들의 약초를 제천의 상업자본가들이 사들여 약 초거래를 크게 하기 때문이란다. 다시 말해 제천 자체의 약초 재배규모 때문만이 아니라 강원도 에서 생산된 약초거래까지 그 규모를 넓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약초시장이 거대한

금강산을 닮은 금월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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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지를 중심으로 발달한 시장이 라면, 제천의 약초시장은 생산지를 중심으로 발달한 시장이며 이는 강 원도에 인접한 제천의 지리적 이점 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제천은 강원도의 인접도시로서 이래저래 강원도의 덕을 많이 보 고 있는 지역 같다. 일반열차 중앙 선의 여객수송 기능이 현저히 떨 어져가고 있는 이 시점에 제천역 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계기는 중앙선의 복선전철화 완료 (2020년 예정)와 관광열차의 활성

화이다. 제천역은 철도교통의 요충지라는 위치 덕분에 2013년 코레일 관광개발에서 운행을 시작 한 중부내륙순환열차 ‘O-train’의 시 · 종착역이 되었다. ‘O-train’은 충북, 강원, 경북 이렇게 중 부내륙 지역을 동그랗게 연결한 노선이기 때문에, 이를 따라 돌면 강원도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볼 수 있는 정선아리랑열차(A-train),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 노선으로도 연결된다. 제천이 철도도시로 성장한 배경이 강원도의 석탄과 석회석 때문이었던 것처럼, 관광열차의 중심지로 성 장하는 데에도 강원도의 아름다운 자연이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O-train은 강원도뿐만 아니라 단양, 영주, 봉화 같은 충북과 경북 지역과도 연결된다. 과 거 제천을 통해 동서남북 지역이 연결되었듯, 관광열차의 시대에도 제천은 그 역할을 다하고 있 다. 여전히 제천은 철도도시인 것이다. 이에 부응하듯 2017년 8월 세 번째로 찾은 제천역에서는 2018년 서원주-제천 간 복선전철 개통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역사 신축공사가 빗속에서도 열심 히 진행되고 있었다.

참고문헌

권동만. 2011. 근대 철도역사의 건축적 특성에 관한 연구: 경상북도 6개 노선에 현존하는 근대역사 건축물을 대상으로. 석사학위논문, 경북대학교.

김수영. 2000. 해방 이전 건립된 철도관사의 공급방식과 평면유형의 특성에 관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한양대학교.

디지털제천문화대전. http://jecheon.grandculture.net

심승희, 한지은, 이미란. 2016. 제2종관 철도 중앙선과 주요 연결노선의 형성 과정 및 기능 변화. 문화역사지리 28권, 3호: 3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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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시 홈페이지. http://www.jecheon.go.kr

천주교 원주교구 배론성지 홈페이지. http://www.baeron.or.kr 코레일 홈페이지. http://www.letskorail.com

O -tra in

도계

철암

분천 태백 제천

영주 서울

승부

춘양

안동 점촌

풍기 단양 충주

일반열차 연계역

V-train 환승역 청량리

정선 고한 추전 민둥산

영월

봉화 4851

4851

4854 4854

4852 4853

O-train 노선도 출처: 코레일 홈페이지.

제2 종관철도_중앙선을 타다 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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