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책포럼이 400회를 맞이했다. 1998년 첫 회1)를 시작으로 2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며, 과학 기술정책포럼은 각계 전문가와 연구자, 대중이 모여 과학기술정책 현안을 나누고 우리 사회의 발전 전략 을 모색하는 공론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4월 15일, 포럼 400회를 기념하여 과학기술정책연구원
(STEPI)은 ‘과학기술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 는가 : 성장동력과 고용창출’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우리나라 최고 전문가들을 초청해 과학기술이 성장 과 고용을 동시에 이끌 수 있는지, 견인을 위한 정책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혜안을 모으 는 자리를 마련했다.
제400회 과학기술정책포럼
과학기술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가 : 성장동력과 고용창출
글: 이세민 ([email protected])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원
1) 제1회 과학기술정책포럼은 1998년 10월 9일에 ‘정부연구개발사업의 우선순위와 적정자원배분’을 주제로 열렸다.
제400회 과학기술정책포럼 전경
송종국 STEPI 원장은 개회사에서 과학기술의 발 전과 성장동력, 고용창출의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뿐 만이 아닌 전 세계의 화두임을 강조하며 400회 포럼 이 이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출발점이 되기를 기 대한다고 밝혔다. 이후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와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의 주 제발표와 전문가 패널의 토론이 이어졌다.
과학기술과 성장동력
먼저, 성태윤 교수는 ‘과학기술과 성장동력’을 주 제로 경제학 관점에서 저성장 시대 논쟁을 소개하 고, 한국의 대응 전략으로서 기술혁신 주도 경제로 의 전환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국가가 저성장 문제에 부
딪혀 있는 가운데, 저성장 시대가 계속 이어질지 아 니면 이를 돌파할 수 있을지에 대해 학자 간 여러 논 의가 있다. 성태윤 교수는 로버트 고든의 ‘지난 25년 간의 빠른 경제성장은 예외적인 경우로, 향후 저성 장은 필연적이다’라는 주장과 조엘 모키르의 ‘혁신의 영역은 고갈되지 않았으며,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 으로 저성장 구도를 돌파할 수 있다’는 주장 등을 소 개하며 저성장 시대 논쟁을 설명했다. 저성장 필연 론에서는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이유를 세 차례의 산 업혁명으로 설명하며, 특히 2차 산업혁명 때 이루어 진 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산업혁명이라고 명명할 수 있 는 뚜렷한 기술적 진보가 최근에는 잘 보이지 않으 며 구조적인 저성장 문제에 봉착해 있다고 말한다.
동시에 일자리 문제, 소득 불평등과 소비 부진, 환경
성태윤 연세대 교수의 발표
문제 등도 경제성장을 제약하는 요인들로 지적한다.
저성장 불필연론에서는 기술 발전으로 경제성장을 견인할 혁신의 영역은 아직 남아 있다고 보며, 로봇 이나 인공지능, 신소재, 의료 등을 혁신 분야의 예로 들고 있다. 성태윤 교수는 저성장 필연론과 불필연 론의 두 주장이 완전히 대립하기보다는, 기술 혁신 을 통한 경제 성장, 이른바 ‘빅 푸쉬’를 이루어내지 못하면 저성장이 불가피하다는 것에서 맥을 같이 하 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엘하난 헬프만의 ‘일반목적기 술’이 언급되었다. 일반목적기술은 증기기관, 전기, 컴퓨터 등과 같이 삶의 방식에 큰 변화를 주는 기술 로 급진적 혁신 형태의 기술 진보를 일컫는다. 그 적 용 분야가 일부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범용적 속 성을 가지며, 상호보완적 관계의 다른 형태의 기술
을 낳는 형태로 발전한다. 성태윤 교수는 이러한 형 태의 기술 진보를 가져오기 위해 일종의 기술혁신 어젠다를 세팅하는 국가적 차원의 역할이 중요할 것 으로 보았다. 범용성, 상호보완성을 갖는 기술을 찾 아 지원하고 파급·활용되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해 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경제 견인을 위한 기술혁신 주도 경제로 의 전환을 강조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자기 자본 형태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금융 구조를 만 드는 것과 혁신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보상을 받도록 하는 것, 그리고 소득 불평등 해결 등을 꼽았다. 이러 한 정책적 요소들이 신성장동력이 되는 기술을 개발 하고, 개발된 기술을 토대로 다른 형태의 기술이 경 제성장을 견인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에 중요한 역할 을 할 것으로 본다며 발표를 마무리하였다.
정재승 KAIST 교수의 발표
다음으로 ‘과학기술과 고용창출’을 주제로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의 발표가 이어졌다.
정재승 교수는 최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알파 고와 이세돌 구단의 바둑 대국으로 서두를 놓으며, 알파고와의 대결을 통해서 미래사회에 우리가 겪게 될 일을 안전한 방식으로 먼저 경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알파고의 승리를 본 사람들이 제일 먼저 가졌던 불안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따라잡는 이른바 ‘특이점(singularity)’ 현상이 벌어질 것에 대 한 감지를 꼽았다. 도구로서의 과학기술이 아니라 의사결정 주체로서의 과학기술을 경험하면서 인간 이 통제권을 상실하게 되는 것에 대한 불안을 겪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로는 인공지능에 일자리 를 뺏기는 것에 대한 불안을 꼽았다. 하지만 정재승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인간이 새로 이 키워야 할 기술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기회가 우리 사회에 주어졌다고 보았다. 또한, 인공지능을 잘 사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 격차, 즉
‘기술계급사회’가 도래할지 모른다는 불안으로 우리 사회가 들썩이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력이 기계로 대체되면서 인간 이 일자리를 잃을 거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제조업 의 일자리는 줄어든 대신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업 일자리가 늘면서 전체 일자리 수는 줄지 않았다. 과 학기술을 통한 경제성장이 고용창출로 이어진 것이 다. 하지만 정재승 교수는 ‘쉐프 로봇’의 등장을 예로 들며 최근 서비스업에도 로봇이 진출하면서 사람들 이 고용에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보았다. 게다 가, 예전에는 노동생산성이 늘면 고용도 창출되었는 데 이에 디커플링(decoupling)이 일어나기 시작했
제400회 과학기술정책포럼 패널토론 모습
고, 21세기 들어서 경제는 성장하고 생산성은 늘어 나는 반면 사람들의 소득과 일자리는 늘지 않는 현 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과학기술은 고용창출을 위해 어떻게 해 야 하는가? 이 질문에 정재승 교수는 ‘경제성장을 위 한 성장동력으로서의 과학기술’이라는 패러다임에 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성장주의에서 벗어 나 다른 잣대로 과학기술을 바라보고자 하는 움직임 이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고, 한편에서 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과학기술을 만들어보자는 노 력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초고령화 사회, 고용불안, 불평등 심화, 기후 변화 등 미래 이 슈를 언급하며, 앞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 학기술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삶의 질도 높이는, 소위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새로운 시대의 욕망—즉, 삶의 질을 위한 과학기술 이 고용창출에 기여할 것이라고 보면서, 인프라를 구축하고 깨끗하고 안전한 사회를 조성하는 등 삶의 질에 기여하는 과학기술 영역이 블루오션이며, 이러 한 분야 연구를 위한 창의적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설명했다.
마지막으로는 지식노동자 시대의 종말을 받아들 이고 전뇌적으로 사고하는, 즉, 과학, 인문사회, 예 술적 소양을 두루 갖춘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고 이 야기하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재승 교수는 과학기술의 역할,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관점, 이공 계 교육 등에 대한 근본적인 제고가 이번 이세돌-알 파고 대결 덕분에 안전한 방식으로 깊이 있게 잘 진 행되기를 바란다고 밝히며 발표를 마쳤다.
제400회 과학기술정책포럼 주최 측 및 참여 연사
두 주제 발표 후에는 전문가 패널의 토론이 이어 졌다. 송종국 STEPI 원장이 직접 좌장을 맡아 토론 을 진행했고, 장석인 산업연구원 주력산업연구실 선 임연구위원,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 장, 박영일 이화여대 대외부총장, 최경수 한국개발 연구원(KDI) 인적자원정책연구부장이 패널로 참가 했다.
첫 번째 토론자로 나선 장석인 산업연구원 선임연 구 위 원 은 핵 심 원 천 기 술 ' K e y E n a b l i n g Technologies‘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파급 효과가 높고 사회문제 해소에도 기여하는 기술을 선정해 발 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앞선 주제 발표 와 맥을 같이 했다. 그리고 혁신의 성장동력화를 위 해서는 ’전체의 맥‘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고, 과학기 술이 시스템, 제품, 서비스, 시장 등과 연결되는 장·단기적 전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마 지 막 으 로 마 리 나 마 주 카 토 의 책 ' T h e Entrepreneurial State’를 소개하며, 과학기술정책 구상에서 정부가 담대하게 먼 미래를 내다보고 과감 한 정책 제안과 투자를 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이어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기술혁신 주도 경제 로의 전환이 저성장 구도를 돌파하는 해법 중 하나 라는 데에 동의하며, 성태윤 교수가 언급한 혁신 성 과 보상, 불평등 해소 등 네 가지 요소에 교육을 다 섯 번째 필수 요소로 제안하면서 창조경제에 맞는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교육 혁신이 필요하다 고 설명했다. 또한, 기술혁신 주도 경제를 위해 도전 적 기업가정신과 불안감을 감소하고 소비를 증진하 는 사회안전망 등이 필요할 것으로 꼽았다.
박영일 이화여대 부총장은 과학기술이 성장동력
창출되기에 성장동력과 고용창출은 사실은 두 마리 가 아닌 ‘한 마리 토끼’로 볼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 다. 과학기술은 단순한 경제성장의 도구만이 아니 며, 미래사회의 여러 변화 요소를 잘 파악하고 뒷받 침하도록 발전해나가며 고용도 만들어내는 것으로 설명했다. 이어 과학기술과 고용을 다룰 때 교육, 탈 규제 등의 문제도 같이 논의되어야 할 것으로 보았 다. 최경수 KDI 부장은 역사적으로 볼 때 과학기술 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창출되어왔고, 그 이유는 기 술혁신으로 인한 직접적인 고용 창출 외에 서비스업 등 다른 부문의 일자리 파급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R&D 지출로 인한 일자리 창출 효 과는 크지 않으며, 과학기술 발전 단계를 거쳐 매출 이 늘어날 때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이에 과학기술을 사회로 연결시키는 제도를 강화하는 것 이 필요할 것이라 말하였다.
이후 청중석에서도 질의가 이어졌고, 과학기술이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한 마리 토끼로 보고 잡을 수 있다는 데에 장내 공감을 이루며 앞으로 정밀한 연 구와 정책 제안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에 뜻을 모았 다. 포럼 이후에도 온·오프라인에서 과학기술과 성 장동력, 고용창출에 관한 논의가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400회를 맞이한 과학기술정책포럼은 성 황리에 막을 내렸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2016),「과학기술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가 : 성장 동력과 고용창출」, 제400회 과학기술정책포럼 자료집.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