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유찬 대사가 Van Fleet의 미국 내 활동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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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고위정치인 관련 서한Chapter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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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 Fleet가 한국과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의견을 담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은 원고의 초고

생산일자 1958년 6월 10일 서한종류 일반 서한

철 명 서한철(미 Van Fleet, James A. 장군) 수 신 건 명 KOREA - TODAY AND TOMORROW By General

James A. Van Fleet 발 신

한국 - 오늘과 내일 James A. Van Fleet 장군

1958년 6월 10일

한국 - 오늘과 내일 James A. Van Fleet 장군

올해 8월 15일 한국은 대한민국 독립 10주년 기념식을 거행할 것입니다.

미 8군이 빠른 속도로 지리멸렬하는 공산군을 가차 없이 몰아붙이고 있던 1951년 5월 중순, 제가 일선부대에 근무하고 있을 당시 우리는 불타고 있는 한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 마을은 한국인 희생 자들의 시신과 흰색 전통 한국 옷을 입고 덕망을 갖춘 나이와 사회적 신분을 보여주는 흑색 말총머리 로 짠 정교하고 높은 모자를 쓴 한 쓸쓸한 노인을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 노인이 우리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길을 건너고 있었을 때 우리가 탄 지프와 탱크 그리고 반 궤도차량들의 행렬이 철커덕 소리를 내며 멈추어 섰습니다. 우리는 - 장군들과 대령들 그리고 전투 병들 - 그 노인이 몹시 천천히 걸으면서 위엄 있게 길 한 쪽 편에서 반대편으로 건너가는 모습을 말 없이 지켜보았습니다. 그 노인은 하수구 도랑에서 작은 국자에 물을 퍼서 조심스럽게 다시 길을 건너 그 물을 화염 속에 부었습니다. 이것이 이 나이든 노인이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그 노인은 불타고 있는 자신의 집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무엇이든 해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는 제게 한국 사람들의 성품을 잘 보여준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이었습니다. 그 역사에 어떤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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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Ⅰ

이승만 대통령 영문서한 자료집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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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 1905년부터 이루어진 일본의 40년간의 점령, 제2차 세계대전, 1945년부터 있었던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의 북한 점령과 마지막으로 공산주의자의 침략으로 발발한 한국 전쟁 등 -- 한국은 계속 그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 중 단 하나도 한국인이 이를 일으킨 것은 없었습니다.

일본의 점령은 1905년에 있었던 러일전쟁이 종료되면서 승자인 일본에게 한국을 안겨주기로 한 열 강들의 비극적인 결정의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40년 동안 한국인들은 고등교육의 제한을 받고 자국 의 언어를 공부하거나 고유의 의상을 입을 수 없었으며 막대한 자신의 토지와 재산을 수탈당한 피정 복민이 되고 말았습니다.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의 북한 점령은 북한과 만주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의 항복을 받아내려 던 시기에 맞춰 러시아가 일본과 전쟁에 돌입할 수 있도록 방치했던 동맹국들의 비극적인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러시아가 일본이 한국에서 물러나는 대로 한국에서 철수한다는 합의 하에 38도선 남쪽 지역을 포기한다는 데 동의했지만, 러시아는 1945년 5월 유럽전쟁(제2차 세계대 전) 말기에 동부유럽에서 철수를 거절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국 군대의 철수를 거부했습니다.

동맹국들은 러시아에게 약속을 지키라는 압력을 넣지 않음으로써 한국전쟁의 기반을 제공한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전쟁으로 1백만 명 이상의 한국인들과 54,000명의 미국인, 그리고 유엔의 다른 15개국에서 온 수천 명의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50억 달러 이상의 재산 피해를 냈습니다. 이것 이 자유를 수호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치렀던 대가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 러시아가 창립회원국이었던 UN에 의해 수립되었습니다. 그러나 1950년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은 미국이 동맹국들과의 합의사항을 지키기 위해 전 병력을 철수시키자 실질적 으로 비무장상태였던 대한민국을 침략했으며 이 나라를 단숨에 완전히 황폐화시켜버렸습니다.

유엔이 한국을 구하기 위해 달려 왔을 때 러시아는 중공이 이 전쟁에 개입하도록 설득했습니다. 이 후 6년간에 걸쳐 8백만에 달하는 북한 주민들 중에서 거의 4백만 명이 자유 남한으로 탈출했습니다.

러시아는 이러한 손실을 보충하기 위해 공산주의자들이 점령하고 있던 북한에 병력과 노예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거의 1백만 명에 달하는 한국인들을 그들의 고향으로부터 만주로 이주시켰습니다.

남한은 농업지역으로서 -- 한국에서도 미작지대에 속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한국이 분단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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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고위정치인 관련 서한ChapterⅠ

51 여러 산업을 육성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공장을 건설하고 4백만 명에 달하는 난민에게 음식과 집을 제공하며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찾아주어야 했습니다.

과거 한국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서 14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한 왕조 - 최초이자 유일 한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의 조상들인 이씨왕조 - 가 통치하던 5백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평화로 운 국가였습니다. 최근인 올해 봄에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저는 이승만 대통령의 건강이 좋다는 사실 을 알고 기뻤습니다. 이 대통령은 마치 젊은이처럼 걷고 두뇌가 매우 영민해서 토론을 할 때에도 항 상 여러분들보다 생각이 앞서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생각을 표현하기도 전에 이미 여러분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계신 분입니다. 눈도 밝아서 안경이 없이도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으며 보청기 도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비록 키가 크지는 않지만 그분과 함께 있으면 늘 여러분들보다 훨씬 더 키가 큰 느낌이 들게 되며, 이분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정신을 알게 되면 제 자신이 초라해지기 도 합니다.

대대로 학자이자 정치가 집안 출신으로서 부모로부터 극히 절제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받은 이 대 통령은 옛 한국의 문화와 교육 중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으며 젊은 시절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했 습니다. 이후 더 공부하고자 하는 학문적 열의를 불태우며 모친의 동의를 받아 감리교 신학교(the Methodist missionary school)에 입학했습니다. 부친이 이 사실을 알고 자존심은 상했지만 아들 이 과정을 끝마치는 것을 막지는 않았습니다. 이승만은 미국 대학에서 3개의 학위를 얻기 위해 계 속 공부를 해서 조지타운(Georgetown)에서 학사를, 하버드(Havard)에서 석사를, 그리고 프린스턴 (Princeton)에서 박사학위를 우드로우 윌슨(Woodrow Wilson)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세계에서 한국, 중국 및 일본의 역사뿐만 아니라 미국과 서구세계의 역사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 배경과 위대한 지혜를 갖춘 이승만은 오늘날 극동지역에서 벌어 지고 있는 역사에서 지극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우방국들이 취하고 있는 현재의 정책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는 전 세계적인 발전을 기다리기보다는 차라리 힘으로 한국을 통일시키고자 합 니다. 그러나 그가 자주 지적하듯이 한국은 한 번도 공격적인 전쟁에 연루된 적이 없기 때문에 우방 국들의 정책을 위험에 빠뜨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는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통일이 이루어지기 를 조급하게 요구하는 경우가 자주 있기는 하지만 유엔의 감독을 받는 선거를 통해 “평화적인 통일”

을 기다리는 데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가 공개적으로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을 상대로 위협의 목소리 를 내기도 하고 심지어는 압록강(Yalu)으로 진군하겠다는 암시를 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그러 나 간혹 이렇게 언급하는 것은 평양, 북평(Peiping: 북경, 감수자주) 및 모스크바에 있는 공산주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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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Ⅰ

이승만 대통령 영문서한 자료집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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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들에게 또 다시 침략을 하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역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경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연히 떠벌리는 위협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군대를 보유하고 있 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한국

오늘날의 한국은 희망과 야심으로 가득 찬 새로운 나라의 모습입니다. 한국에 있는 우리 병사들의 지원을 받아 학교와 교회들이 건설되고 있습니다. 우리 군인의 날에 이승만 대통령과 영부인이 자유 라는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단 장병들을 기려서 1957년 11월 11일에 봉헌된 미 제7사단 전몰장 병추모 기념교회를 방문해 주셨습니다.

같은 날 이승만 대통령과 영부인은 7사단 장병들의 도움을 받아 본부 인근에 지은 초등학교에 다니 는 1,900명의 어린이들을 방문했습니다.

우리 병사들은 겉보기에는 아직 어린아이들 같아도 폭격을 밭은 마을에 함께 모여 연필이나 종이, 책도 없이 미군 사병들이 전투가 없는 틈을 이용해서 지은 임시 보호소 아래서 크랙커 박스를 책상으 로 하여 한없이 밝고 행복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그런 열성적인 어린 학생들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 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투가 계속되고 있는 동안에도 이 어린 학생들에게 공부에 대한 애정을 유지 하도록 격려하는 선생님으로서 헌신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옥시덴탈 칼리지(Occidental College) 근처에 있는 이글 록(Eagle Rock)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의정부에 있는 한 학교를 위해 책과 연필을 사도록 폴 켄달 중장(General Paul Kendall)에게 1,000 달러를 보내기도 했으며,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우리 병사들 덕분에 수천 개에 달하는 다른 학교들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집이 건설되고 있고 공장들도 다시 한국 사람들의 옷감으로 사용하고 수출하기 위해 비단을 만들 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한때 원시적인 수준이었던 조국을 20세기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주게 될 엄 청난 발전기 동력산업의 미래를 꿈꾸면서 엔진 수리와 유지보수의 기초지식을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 다. 젊은 여인들은 스스로 선생님과 간호사, 그리고 더 나은 주부가 되도록 갈고 닦기 위해 과학과 의 학의 기초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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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교육은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입니다. 교실은 아직 추가로 필요한 수천 개가 부족한 실정이지 만 학교들은 다섯 배나 많아졌습니다. 말을 못하는 사람들과 장애인들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현재 교육은 모든 한국인들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작은 마을인 천왕 마을(천국의 밝은 마을)에 사는 맹인들조차도 이제는 앞을 볼 수 있습니다. 총 8,040달러 덕분에 이들 한국인들이 이제 는 손가락으로 점자를 읽고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교적 적은 금액인 이 돈은 유엔 산하 기관, 미국의 경제원조와 미국의 민간 재단 등에서 마련해 준 것입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저는 그를 모시고 서울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는 대한민국 중앙청 사단(Capitol ROK Division)을 보여드렸습니다. 이 사단은 전쟁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이자 훌륭한 장군 중 한 사람인 “호랑이” 송 장군("Tiger" Song)이 지휘하고 있는 부대였습니다. 그는 영어를 조금밖에 하지 못해서 며칠 전에 통역관을 통해 대통령 당선자에 게 브리핑을 해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저는 아이젠하워 장군이 목소리를 직접 들으면서 행동을 관찰하기 위해 사단장으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고 말하면서 그가 바라는 것과는 반 대가 되는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호랑이” 송 장군은 그 말에 따라 브리핑 준비를 했고 리허설이 멋지게 이루어졌습니다.

대망의 날에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를 비롯한 수많은 방문객들이 브리핑 실에 자리를 잡았고 저는 “호랑이” 송 장군이 발표를 하게 되어 기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호랑이 송 장군이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중앙청 사단을 지휘하고 있는 송요찬입니 다. 우리는 여기(지도상의 한 지점을 긴 지휘봉으로 가리키면서) 대한민국 중앙청 사단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중앙청 사단.... 대한민국... 중앙청... 사단....”

이때 우리는 “호랑이” 송 장군이 영어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줄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저를 쳐다보고, 그러고 나서는 통역관을 간절하게 쳐다보았습니다. 저는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송 장군은 필사적으로 말을 생각해 내려고 애를 썼지만 실패하면서 지도를 쳐다보고 긴 지휘봉을 들고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우리는 싸우고 싶습니다.. 우리는 갑니다.” 그리고는 지휘봉을 북쪽 방향으로 압록강(Yalu)까지 쭉 밀었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는 브리핑이 끝난 것으로 생각하고 일어나서 축하의 악수를 청하면서 “이 브리핑은 부대의 사기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들어본 것 중 가장 훌륭한 브리핑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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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송 장군은 130마일 전선을 따라 배치된 대한민국 제1사단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군대는 늘 미국과 유엔에 대해 충성심을 보여 왔습니다. 누차 말씀드리거니와 전투 중에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의 자유를 위해 죽어가는 미군 병사들과 유엔의 모든 병사들에 대하여 눈에 눈 물을 머금고 한국 병사들을 위해 더 많은 무기를 달라고 간청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싸울 각오가 되어 있고 조국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젊은이들이 있으며, 여성들도 있습니다. 그들 역시도 싸울 것입니다!”

그러나 훈련을 받지 못한 병사들 손에 들려 있는 총들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고철 덩어리에 불과합 니다. 훈련을 받지 못한 병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사용할 무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렇게 조바심을 내는 대한민국 군대를 훈련시키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미군 분대와 소대의 빈자리를 보충하면서 마치 호랑이처럼 싸우는 대한민 국 병사들은 특유의 지혜로움과 학습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대한민국 군대는 유엔의 계획을 훨씬 앞질러 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가 있습니다. -- 655,000명의 대한민국 군대는 지 원부대를 갖춘 21개 사단으로 구성된 강력한 타격부대와 2개의 제트기 전투편대로 이루어진 공군, 그리고 작지만 효율적인 연안해군의 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투로 단련된 젊은이들로 구 성된 군사조직이 핵무기를 비롯한 현대적인 장비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동맹국들의 방위력을 보면, 아시아의 어느 지역에서든지 공산주의자들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바로 동원할 수 있는 기동력이 매우 뛰어난 군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유엔이 한국을 원조하기 위 해 왔을 때 대한민국은 공산주의자의 침략에 저항하기 위해 동원된 우방국에게 자국 군대를 지원 해왔습니다.

자금의 측면에서는 미군 1개 사단에 들어가는 연간비용으로 대한민국 군대 전체를 1년 동안 지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시아와 중동, 또는 세계 어느 지역에서든지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이 존재하는 한, 이에 대항하는 군사력을 감축시키는 것은 한국인들이 바라는 바도 아닐 뿐만 아니라 우리들 역시 도 이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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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한 민족의 민속은 그 사람들의 성품을 보여줍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자신들의 동화내용을 여전 히 믿고 있으며, 아일랜드에 거주하는 원주민이라면 어느 누구도 “꼬마 요정들(Wee People)”이 존 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악한 캐릭터는 전혀 없으며, 다만 자녀들에게 들 려주는 동화 속에 등장하는 장난기 많은 요정들과 아름다운 소녀, 그리고 개구리 왕자 보니(Bonnie Prince Charmings)만이 있을 뿐입니다.

전 그리스 국민들은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속에 표현된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을 가장 완벽 하게 표현한 작품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인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파르테논 신 전”을 이 세상에 내놓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지만, 현재 그들의 민속은 문명 초기에 존재했던 진 정한 역사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의 어머니들은 개구리 왕자에 대한 아름다운 아가씨의 영원한 사랑과 그 아가씨에 대한 왕자의 사랑 이야기를 딸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예부터 있었던 고유의 악기 로 여러 세기 동안 전해져 내려온 노래에 맞춰 아름다운 의상을 입고 이 노래들을 완벽하게 재연하 고 있습니다.

저는 제8군 사령관으로 재직 당시 모든 한국군 부대의 파티에서 사랑스러운 장교 가족들의 자녀 들이 저녁 식사 후에 제게 즐거움을 주었는데, 그 노래들은 항상 아름답고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이 었습니다.

저는 한 때 매력적이고 재능 많은 손 제독(Admiral Sohn: 현, 서독 주재 대사, 손원일 제독: 감수 자주)의 부인에게 지뢰밭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전장에는 아직 사용하지 않은 수류탄이 흩어져 있을 정도로 전쟁이 한창일 무렵 한 한국인 가족이 예전에 논이었던 곳을 부인이 앞장서고 남편은 부인의 발자국만 따라 가로질러 가는 모습을 우리가 자주 목격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던 적이 있 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무뎌지고 이 옛 지역을 치우면서 그 남편이 또 다시 전통적인 방식으로 앞 장을 서고 부인과 아이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손 제독의 부인은 아주 부드럽게 바로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밴 플리트 장군님, 동포들이 우리에 게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에 우리가 동포들을 지뢰밭으로 인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가 동포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바랬던 소망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은 꽃을 사랑하는 것이나 사람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것, 춤을 좋아하고 자유를 사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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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등 여러 가지로 그리스 사람들과 공통점이 많습니다. 한국인들은 초기 기독교 시대에 중국에 정복 을 당해 수백 년 동안 늘 교육과 철학 등을 중국에 의존해왔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예술과 문화는 독특하게 한국적인 것으로서 현재 미국에서 전시되고 있는 고대 유 물들은 엄청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고대에 지어진 건물의 건축양식에도 나타나 있습니 다. 유명한 일본의 사츠마 도자기(Satsuma China)는 한국에서 가져온 것이며, 이를 일본에서 제조 하기 위해 장인들을 포로로 잡아가기도 했습니다. 워싱턴에서 유명한 벚꽃나무 군락과 일본에서 온 선물은 원래 한국에서 온 것들입니다.

이대통령이 말하듯이, “한국인들은 천부적인 손재주가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무언가를 만드는 데 우수한 재능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민주 정부가 지속될 것은 분명하며, 한국인들은 다른 규칙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 니다. 한국 정부는 절대로 공산정권과는 외교관을 교환하지 않을 것이며, 한국인들은 러시아를 경험 한 이후 공산주의자들이 하는 제안은 무엇이든 전 세계의 다른 국가들에게도 해롭다고 믿고 있습니 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솔직한 반공산주의자들입니다. 우리는 옛 중국은 잃었지만 우 리 친구인 한국을 소중히 여기고 계속 잘 지켜 나갑시다.

예전에는 산에서 흘러내리는 급류가 벌거벗은 계곡을 통해 아무런 통제 없이 마구 유입되어 바다 로 흘러가던 남한에서 이제는 수력발전소들이 그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습니다. 5년 전에 계획했던 새로운 산업들이 거의 하룻밤 사이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습니다. “한국산” 상표가 시멘트, 비 료, 소금과 소다회 등을 적재한 화물차에 부착되어 있습니다. 옛 비단 산업은 최근에 도입된 나일론 및 인조견 공장과 더불어 다섯 배 이상 팽창했습니다. 철강 및 무쇠 공장들은 급성장하고 있는 새로 운 플라스틱 산업만큼 빠르게 부상하고 있으며, 통신망이 한 때 낙후되었던 이 나라를 견고하게 연결 시켜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미래

한국의 미래는 이승만 대통령이 오늘날의 어린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이 될 것입니다. 이 대 통령은 이 어린이들에게 자신의 조국에 사심 없이 헌신할 수 있는 기독교적인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 니다. 의무교육과 훌륭한 선생님들이 바로 이 대통령이 첫 번째로 꼽고 있는 요건입니다. 그는 자신 의 조국이 일본의 강점 하에 있는 동안 하와이에 있는 훈련학교의 장(長)이었을 때 자신 스스로가 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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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은이로서 자신보다 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적지 않게 훈련시킨 적이 있습니다. 좋은 건강 역시 아 이들에게 강조되는 부분이며 어린이들의 빛나는 얼굴과 강건한 신체 등이 그의 노력의 결과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국 어린이들은 부모와 선생님들에게 순종함으로써 행복해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는 어린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늘 가족들의 사랑을 받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위대한 포부는 20세기가 밝기 전에 수백 년의 오랜 기간 동안 그러했듯이 한국이 완전히 독립이 되어 산업이 발달한 북과 농업을 주로 하는 남이 본래의 범위 내에서 통일이 되고 스 스로의 힘으로 국민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상태에서 조국을 떠나는 것입니다. 이 대통령이 얘기하듯 이 “어떠한 나라도 반 노예와 반 자유 상태로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는 없습니다.” 1958년 5월 17일 국군의 날에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제7사단에서 한 최근 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미국의 전투병 과 미국의 전투력이 세 번이나 자유와 민주주의를 구해내는데 도움을 주었던 것이 기억 속에서 생생 합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계시듯이 그 마지막의 경우는 바로 여기 한국에서였으며 이 나라에 살고 있 는 우리는 우리나라의 언덕과 계곡에서 생명을 바쳐 헌신해주신 수만 명의 군인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이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 있으며 우리의 힘이 닿는 한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전 세계 의 자유와 정의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책임 중에서 우리가 해야 할 몫을 반드시 해낼 것이라는 점은 굳이 말씀 드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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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일자 1958년 3월 27일 서한종류 일반 서한

철 명 46-서한철(미 Van Fleet, James A. 장군) 수 신 이승만 건 명 Letter Numer 247 - Your Excellency 발 신 양유찬

1958년 3월 27일 3급 비밀

247번 서한

각하,

한국협회에 관한 각하의 37번 3비 편지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제네바에서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뉴욕에 잠시 들러 밴 플리트 장군과 3월 20일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그는 제게 정유 시설과 제주도 소 목장, 그리고 한국협회에 관한 이야기들을 전해 주었습니다. 물 론 그는 이 세 건 모두에 대한 열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다음번에 밴 플리트 장군을 만나게 되면 로젠그린 대령과 관련해 얘기를 나누고 싶은 데, 이는 대령 건과 관련해 각하의 편지를 그 때까지 아직 받지 못했던 탓에 3월 20일 만남에서는 이 에 대해 거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때껏 그가 캘리포니아로 간 사실과 심지어 샌프란시스 코나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우리 총영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밴 플리트 장군이 이 사람을 극도로 신뢰하는 듯해 보여 전 장군을 당장 화나게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 만, 이 사실이 거론되었기에, 저는 각하께 그간 그에 관한 형편없는 보고들을 받아 온 사실을 비밀스 럽게 보고 드리고자 합니다. 물론 저는 이 모든 보고들이 정확한 것인지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저는 밴 플리트 장군이 그에게 잘못된 일이 있다면 이를 감지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장군은 뉴욕에 오래 머 무르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받은 이 보고들을 보면 로젠그린 대령은 한국의 동지가 아닌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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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며 저는 그가 사석의 대화에서 우리 정부를 비난하고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의 우리 쪽 인사들 중 다수가 비리를 저지른다고 비난합니다. 아주 솔직히 말해,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제 가 보기에 그는 제멋대로이고 고압적인 영업직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이제 전 이를 묵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 데다, 결국 이 사람이 계속 우리 정부를 비난하고 다니다가 이것이 사실로 드 러난다면 장군께서 크게 상심하실 거라 봅니다. 이러한 사정에 대해 가능한 한 빨리 밴 플리트 장군 에게 조용히 언질해주는 것이 저의 계획입니다.

그러나 밴 플리트 장군이 사무소를 운영할 사람을 구할 때 구인에 애를 먹었습니다. 로젠그린 대령 이 나타나자 밴 플리트 장군은 그에게 현재의 직위를 주었습니다. 로젠그린 대령이 1년 간 머무를 예 정이라고 알고 있는 게 사실이라 이제 6개월만 남은 거라면, 그를 더 붙잡고자 하지 않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저는 그가 워싱턴으로 왔던 석 달 전부터 그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그는 한국으로 여행을 가는 데 대해 언급하고 있었으며 저는 그가 밴 플리트 장군에 관해 모르는 채로 그렇게 떠들 었다 확신하지만 당시 저는 그가 한국협회 등록 건이 최종 마무리되기도 전에 한국을 여행할 궁리에 차 있는 게 다소 이상하다 느꼈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밴 플리트 장군이 여기저기 많이 다녀야 하 기 때문에 그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이 사실에 관한 비밀 보고를 드립니다. 맥퀸 여사[Mrs. MacCune]와 관련해서는 이 모든 일이 대단히 유감입니다. 저는 그가 어떻게 그녀의 이름을 알았고 왜 그가 그녀와 접촉하기로 결정했는지 모릅니다.

이와 관련해, 또한 제가 각하께 다음과 같은 보고를 드려도 되겠는지요...

[이하 편지지가 고르게 찢어져 있음]

...[다음 페이지] 이들이 대변인실의 일을 맡는다면, 자연스레 이들은 자신들의 출현에 대해 대 가를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역시 이하 편지지가 앞장과 똑같은 절취선을 따라 고르게 찢어져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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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KOREA SOCIETY에 대한 이승만 대통령과 Van Fleet의 대화록

생산일자 1958년 2월 19일 서한종류 대화록

철 명 46-서한철(미 Van Fleet, James A. 장군) 수 신 건 명 Gist of the Talk between His Excellency and

General Van Fleet 발 신

1958년 2월 19일 각하와 밴 플리트 장군 간 대화 요지

한국협회 :

밴플 : 아직 회장은 선출 또는 임명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원년에는 이 자리를 재캔도프 씨[Mr.

Zeckendorf]가 아니면 헨리 루스[Mr. Henry Luce]씨 같은 거물급 인사들 중 한 사람이 맡 았으면 합니다. 명예회장 직은 두지 않으렵니다. 저희 목표는 일단 조직을 성장시키는 것입 니다. 저희는 코울터 장군을 이사진의 한 사람으로 세우고 싶습니다. 이에 대한 각하 의견은 어떠십니까? 다울링 대사[Ambassador Dowling]는 어떻습니까. 제 생각에 그는 조직에 아 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각하 : 코울터 장군은 퇴역 장성입니다. 본인은 전직 군인이 우리와 함께 해 우리 국민들에게 애 국심을 일으켰으면 합니다. 우리 쪽엔 양 대사[Amb. Yang]와 임 대사[Amb. Limb] 같 이 돌아다니면서 연설을 할 수 있는 인사들이 좀 있습니다. 본인이 랜돌프 허스트 씨[Mr.

Randolph Hearst]에게도 조직에 협조해달라고 편지를 쓰겠습니다. 본인은 장군이 제주도 목장 같은 작은 일 대신 한국협회를 위해 많은 시간을 쏟아 주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본 인은 이 조직이 모금을 하기보다는 오직 애국 단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밴플 : 4천 달러 안에 기부금도 약간 있습니다.

각하 : 본인은 5천 달러 정도로 시작하게 하려 생각했소만.

밴플 : 남궁 총영사[Mr. Namkoong]가 5천 달러를 주었지만 이미 썼습니다. 급료 등을 지불할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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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고위정치인 관련 서한ChapterⅠ

75 이 없어서 지난주에 제 개인 명의의 5천 달러짜리 수표를 보냈습니다. 제 생각엔 6천 달러 가 급료로, 그리고 추가로 6천 달러가 유지비로 필요합니다. 여기에 더해 비서들에게 주당 각 100달러씩 주어야 합니다. (이 부분쯤에서 이 문제에 관한 말은 충분히 명확하지 않았음) 저는 올해 최소 2만 달러는 모금하고 싶습니다. 아마 5만 달러 정도는 가능할 겁니다. 그래 서 예비비를 좀 만들어 놓아 파산 우려를 없애려 합니다. 저는 남궁 총영사에게서 미리 받았 던 돈을 갚을 것입니다.

각하 : 우리가 지고 있는 빚이 다 합해 얼마입니까?

밴플 : 합이 1만 달러입니다 : 5천 달러는 남궁 총영사에게 지고 있고, 제가 지난 주에 로젠그린에 게 준 5천 달러가 있습니다. 회비로 4천 달러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각하 : 1만 달러가 우리가 진 빚의 전부입니까?

밴플 : 예

각하 : 앞으로 6개월 간 얼마가 필요합니까?

밴플 : 돈은 들어올 겁니다.

각하 : 본인도 이 조직이 순수하게 가치 있는 명분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사람 들이 본 조직의 진짜 목적을 알게 되면 기부를 해 우리 조직을 도울 것입니다. 현재 시점에 서 러스크 박사가 실수를 했습니다. 한미재단은 사심 없는 조직이지만, 돈은 다른 목적들에 쓰였습니다.

밴플 : 맥그로우-하이드로카본, 백텔, 그리고 미국의 주요 은행들이 본 조직의 중요한 구성원들이 되고 있습니다. 우린 이들에게 1천 달러씩 기부를 하도록 부탁하려 합니다. 이들은 일본협 회에 기부를 했습니다. 현재 유일하게 문제가 되는 데가 뱅크오브아메리카입니다. 이 은행 은 우리 협회에 가입하기를 윈치 않습니다. 일전에 저는 한국은행 김 총재에게 이 은행에 돈 을 좀 예치토록 요청했습니다. 이는 우리 조직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각하 : 일본에 관심이 있는 어떤 은행이나 기업들도 우리 한국협회에 거액의 기부를 하려 하지 않 을 것입니다. 예로 록펠러 재단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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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플 : 일본협회는 다음과 같이 기부금을 받았습니다. 록펠러 재단으로부터 미화 4만 달러. 기업체 들로부터 4만 달러 그리고 회비로 미화 3만 달러

각하 :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미국인들이 우리 목표와 하고 있는 일들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전 목적으로 주간지 또는 격주간지를 발행할 수 있습니다. 미국인들에게 진주만을 상기시 키세요. 우리는 강력한 조직이 될 수 있습니다. 본인은 헨리 루스[Mr. Henry Luce] 씨와 우 호 관계를 일구고 싶습니다. 그가 미국인들을 상대로 말을 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각하 : 우리 빚을 다 갚읍시다.

밴플 : 남궁 총영사에게 공식적으로 지시해주시면 제가 이에 대해 그와 대화를 나누고 계산을 해 보겠습니다. 제 생각엔 지난주에 제가 로젠그린 대령에게 보내준 5천 달러가 6월까지 계속 [빚으로] 남아있을 겁니다.

각하 : 본인은 장군에게 일체의 재정적 곤란을 주고 싶지 않소. 귀관에게 5천 달러를 먼저 주고 나 중에 돈이 충분히 모이거든 그 때 갚는 게 어떻겠소?

밴플 : 그렇다면 1만 달러를 빌려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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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Wahington Post와 Times Herald지의 이승만 정부 비판 기사에 대한 Coulter 장군의 반박 서한

생산일자 1959년 1월 6일 서한종류 일반서한

철 명 서한철(1960년) 수 신 The Washington Post and Times-Herald의 편집자

건 명 General John B. Coulter가 The Washington Post

and Times-Herald의 편집자에게 보낸 서한 발 신 General John B.

Coulter

1959년 1월 6일

친애하는 담당자 귀하,

한국에 수년 동안 근무했던 미국인으로서 그리고 이제 한국에서 미국으로 갓 돌아온 사람으로서 귀하의 “이승만의 압제(Repression by Rhee)”라는 제하의 칼럼에 1959년 1월 1일자로 게재된 편지 에 대해 분노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편지는 어투가 사악할 뿐만 아니라 용맹스러운 한국 이라는 나라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공상과 허구를 끌어 모아놓은 것이어서 이 편지를 읽은 것 자체가 저에게는 불행이었습니다. 분명히 홈즈(Mr. Holmes) 씨는 단 한 순간도 한국에서 실제로 근무해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명백한 허위진술과 근거 없는 소문을 사실로 내세우려 고 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입니다.

예를 들어, 그는 이승만 대통령이 “자신의 자유당(Liberal Party)을 선전하기 위해 미국의 해외원 조기금을 남용”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이것은 철저한 거짓말입니다. 미국의 해외원조기금 이라는 메커니즘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것이 한국이나 세계 그 어느 다른 지역에서 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모든 미국의 기금은 합동경제위원회(the Combined Economic Board) - 한국인과 미국인 관리들이 동수로 구성된 - 의 승인 하에 한국에서 관리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의 사전 동의가 없는 프로젝트에는 단 1센트도 사용될 수가 없습니다.

또한 모든 원조기금은 반드시 구제와 재건 목적으로만 할당되어야 합니다.

과거 5년 동안 유엔 한국부흥재건단(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의 단장이 었던 제 자신도 한국의 재건을 위해 불특정 국가로부터 배정된 어떠한 기금도 이승만 대통령이 남용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추가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보고가 거듭될수록 의회뿐만 아니라 유엔에서도 한국 관리들이 원조기금을 최대한 도움이 되도록 사용하기 위해 협력해온 방식을 칭찬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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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한국 정부는 공산주의자의 침략으로 인한 경제적 혼란과 끔찍한 파괴에도 불구하고 현재 과거 해방 때보다 경제적으로 더 건전해져 있을 정도입니다. 저와 기타 모든 원조관리들뿐만 아니라 이승만 대 통령 자신도 오로지 한국 경제를 재건하는 데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글쓴이는 마치 “경찰국가”가 존재하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한국의 정치상황에 관해 이상하리 만큼 터무니없는 억측을 내놓기 위해 새로 제정된 한국국가보안법(the Korean National Security Law)의 구절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이상한 “사실들”을 내놓았습니다. 1) 1952년과 1956년에 이승만 대통령의 선거 의 주요 상대방들이 “시기에 맞지 않고 예측하지 못했던 죽음을 맞았다고 했으나,” 실제로 이승만 대 통령은 1952년과 1956년에는 정적(政敵)이 전혀 없었으며, 신익희 씨는 심장마비로 사망하였습니 다. 2) “야당지도자였던 부통령 John Chang(장면)이 거의 성공할 뻔했던 두 번의 암살시도의 대상이 었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장 부통령의 생명에는 영향이 없었던 사소한 것일 뿐이었으며 이는 자기 당 에 불만을 가진 당원의 소행으로서 정부에서 그를 체포하여 재판에 넘긴 바 있습니다. 3) 장 부통령 이 “한 번도 엄중한 경계를 받고 있던 자신의 집을 떠난 적이 없다고 했으나,” 실제로 나와 잘 아는 지 인인 장 부통령은 이동의 자유를 누리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으며, 우리 두 사람 모두 여러 차례 공개 행사에 참석하였으며 국회 회기 중에 있었던 토의가 장 부통령의 참석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것입 니다. 4) “이승만 대통령이 자신을 승계할 입양 상속인을 위한 준비를 했다고 했는데,” 이승만 대통령 의 어린 아들은 어른들이 가까운 친구나 친척의 아들을 “입양”하도록 권장하는 한국의 오랜 관습에 따라 입양된 것이므로 이는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옛 군주제에 대항하는 혁명가로서 자신의 정치 생활을 시작한 이승만 대통령은 분명히 그 누가 옛 군주제를 다시 부활시키려고 하더라도 이를 결코 지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기붕 씨와 그의 어린 아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따뜻한 우정이 그 입양의 진정한 이유라는 점을 알고 있는 모든 정통한 관찰자 (observer)들과 의견을 함께 공유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국가보안법(the National Security Law)과 관련하여 홈즈(Mr. Holmes) 씨는 자신의 정보 부족을 다시 한 번 철저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입법은 공산주의자들의 침투로부터 한국을 보호 하기 위해 제정된 것입니다. 즉, 이 법은 어떤 방식으로든 충성스러운 한국 국민들에 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산분자들이 남한에 침투해 들어오고 있는 문제가 점점 엄청나게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 법이 필요합니다. 지난 해만해도 900명이 넘는 공산분자가 체포되었지만, 여전히 존재하 는 법률의 구멍 때문에 많은 자들이 석방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국가보안법은 이러한 구멍을 틀어막 고 대한민국이 공산분자들의 전복활동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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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식으로든 합법적인 언론의 자유를 축소시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국은 아직도 전쟁상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비상상황에는 엄격한 조치가 필요한 법입니다. 이 승만 대통령은 1950년에 공산주의자들이 공격했을 때 자신의 나라를 구해냈습니다. 그는 지금 새로 운 국가보안법으로 간접적인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으로부터 자신의 조국을 보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한 벗,

John B. Coulter 미국 중장(퇴역)

편집자

워싱턴 포스트 및 타임즈 헤럴드 워싱턴 D. C.

뉴욕, 엘(L) 가(街) 1515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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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장군의 보좌관 Willoughby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

생산일자 1958년 3월 27일 서한종류 일반 서한

철 명 46-서한철(미 Van Fleet, James A. 장군) 수 신 이승만 건 명 Letter Numer 247 - Your Excellency 발 신 윌로우비

1958년 10월 15일

친애하는 대통령 각하:

저의 게으름 탓에 각하의 서한에 더 빨리 답장을 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대도시의 중요한 시민클럽과 사교클럽에서의 연설약속을 일부 수락해서 상하이의 협력자들인 미 국공산당(American Communist Party)을 폭로한 조르게(Sorge) 사건에서의 제 연설은 소비에트의 스파이 행위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우연히도 저는 자연스럽게 극동상황에 접촉하게 되었습니다. 그 책은 현재 절판이 되어 있으므로 소책자 1부와 요약본을 첨부합니다. 현재는 매우 중대한 상황입니 다. 타협가들인 “하나의 세계(one world)”를 부르짖는 미치광이들이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각하께서는 아마도 제가 (5월 5일) 청문회에서 같은 날 국제관계 평론잡지인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의 동료이자 Cromwell & Sullivan의 법률 파트너인 유스터스 셀리그먼(Eustace Seligman) 과 짝이 되었었다는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Dulles도 그곳에 있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우연한 사 건이 아니라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각하께서 올리버(R. T. Oliver) 박사를 언급하셨던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원 고를 보고 그것을 “머큐리(Mercury)”측에 전해주었습니다. 저는 기고자일 뿐이어서 이에 대해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각하처럼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적으로 솔직한 보고가 필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른바 중국과 한국 양국의 홍보는 효과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각하 의 대사는 현재 개인적으로 큰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업무로 다니면서 하는 연설 일부를 읽어보면 그 내용이 참 좋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혀 악의가 없는 “잡지”나 “연구지”를 몇 권 가지고 있습니다.

각하께서는 상당히 큰 사건을 다루시는 것이므로 이는 단호하게 제시해야 합니다. 지금 Oliver의 논 설(그러니까 뭐랄까, 저는 그에 대해 전혀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은 충분히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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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이 아닙니다. 그 대신 저는 각하께서 제 연구를 전부 다시 출판하기를 (아니면 정부의 인쇄업자 가 워싱턴에서 그 작업을 하도록) 권해 드립니다. 그것은 지적인 지정학적 자료이자 전략적이며 태평 양의 방어에 대한 연동적(interlocking) 관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자료는 공정합니다. 저는 외 부인(Outsider)이므로 펜타곤(Pentagon)과는 어떠한 관계도 맺기를 원하지 않으며 그런 관계를 가 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정확하게 의회가 정보 때문에 저에게 의존하는 이유입니다. 만약 이 연구를 중국인이나 한국인이 쓴다면, 순전히 선전으로 낙인찍혀 공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제가 진실성을 가지고 이 연구물을 썼기 때문에 이의를 달 수 없고 흠이 없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각하 께서는 모든 출판물 중에서 이를 잘 이용해야 합니다. 이는 제가 그것을 써서도 아니고 그것이 문학 작품이라는 것도 아니며, 그 안에 나타나 있는 조건과 요소들이 당대에 맥아더가 직면했었고 오늘날 의 우리가 직면하고 있으며 앞으로 오랫동안 우리에게 남아있을 요소들이기 때문입니다.

재판(再版)은 의회 청문회 때 손쉽게 구하셔서 언론, 친구, 학교 등 현지 배포를 위해 각하의 모든 영사관과 재외공관에 보관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각하 자신의 사건으로 언급하실 수는 없으며 – 반 드시 “외부인”에 의한 것임을 언급하셔야 합니다.

암울했던 시절 각하의 관저에서의 즐거웠던 환경과 짧았던 저의 방문이 생각납니다. 영부인님을 존경하고 있다는 말씀을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존경하는 벗,

윌로우비(C. A. Willoughby)

첨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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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이 Robertson 전 국무부

차관보에게 훈장을 수여하겠다는 내용으로 Glenn에게 보낸 서한

생산일자 1960년 3월 11일 서한종류 일반 서한

철 명 서한철(1960년) 수 신 Dr. Glenn

건 명 Dr. Glenn에게 보내는 메시지 발 신 대통령 비서실

1960년 3월 11일

Glenn 박사 귀하:

3월 26일(오후 6시)에 대사관에서 거행되는 간단한 의식을 통해 양 대사(Amb. Yang)가 존경하는 월터 로버트슨 씨(the Honorable Walter S. Robertson)께 대한민국 훈장을 수여할 예정입니다.

귀하께서 필요로 하실 것 같아 – 사설(社說) 또는 귀하께서 좋다고 생각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든 - 참고로 훈장 사본을 첨부합니다.

워싱턴 시간으로 3월 26일 이전에 게재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시지 않는 한, 이 내용이 한국 신 문에 발표되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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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이 국가보안법에 관련해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

생산일자 1959년 1월 7일 서한종류 일반 서한

철 명 27-서한철(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수 신 Dwight D. Eisenhower 건 명 이승만 대통령이 Dwight D. Eisenhower에게 보낸 서한 발 신 이승만

1959년 1월 7일

친애하는 대통령 각하:

진해에 있는 본인에게 배달된 각하의 편지를 매우 주의 깊게 읽었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나 라의 국회에서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각하의 걱정은 우리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의 국가보안법[National Security Law] 통과와 관련해서 상당히 와전된 부분 이 있었습니다. 이것에 대해 우리는 매우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중요한 사안이 통과될 때에 몇몇 국회의원이 의장의 명령에 의해 국회 본의회실(Assembly Chamber)에서 쫓겨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의장의 퇴장명령은 소수, 즉 전체의 3분의 1정도가 연단을 점거하고 난 후에 공표된 것입니다. 이들은 국가보안법의 통과를 저지했을 뿐만 아니라, 기타 핵심적인 법안들의 통과 역시 막았습니다. 의원이 방해와 파괴적 행위를 이유로 퇴장 당할 시에는 의 장의 허락 없이는 특정 회기에 다시 입장할 수 없습니다. 경비원은 이 규정을 지키기 위해 의무를 다 해야 했습니다.

본인이 국회 다수파가 소수파의 권리를 침해할 의사가 없었다고 말한다면 다수파를 대변하는 것임 을 알고 있습니다. 이들 다수의 의견을 대변하여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수가 폭력 으로 다수에 도전한다면 그러한 도전에는 반드시 맞서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각하. 우리가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는 목적은 공산주의 침투, 간첩, 전복 행위에 대비 하여 보다 효과적 법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 금 우리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하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우리가 민주주의적인 대의정치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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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우려를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안심하십시오, 각하, 우리는 우리 모두의 자유를 위협하는 국제공산주의세력에 대항해 우리의 능 력이 닿는 한 계속 싸울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군사, 경제적 원조의 중요성이 너무 나 크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한국의 생존과 자유세계의 승리를 위한 미국 의 도움에 깊이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당신의 진실한 벗,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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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낸‘국가보안법 파동’관련 서한

생산일자 1958년 12월 25일 서한종류 비밀 전문(SECRET

Telegraphic Text)

철 명 27-서한철(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수 신 이승만 건 명 Dwight D. Eisenhower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낸 전보 발 신 Dwight D. Eisenhower

1958년 12월 25일

친애하는 대통령 각하:

최근 한국 국회에서 이루어진 논의들에 대하여 개인적인 우려를 표현하기 위해 각하께 직접 쓰게 되었습니다. 국가보안법 개정의 목적이 공산주의자들의 침투, 간첩, 전복 행위에 대비하여 보다 효 과적 법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은 이해합니다. 이 목적에 대하여 우리는 물론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 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방식에 대해서는 대단히 염려하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대한민국과 대통령 각하를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하와 함께 우리를 시험했던 비극적인 시기 동안 공동의 명분을 만들었고 이후 귀국의 재건과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노 력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이러한 과정을 계속 진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러한] 관 계 때문에 해당 법안의 심의 및 통과 시도 과정에서 있었던 사건들에 관해 최근 보도되는 내용들은 저를 슬프고 불안하게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해당 법이 통과된 방식, 즉 민주당 의원이 회의장에서 퇴장 당한 것은 대한민국의 동맹과 우방 국가들로 하여금 해당 법안이 지닌 장점에 대한 심각한 의심 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이 법이 지닌 가치와 진정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러한 의심이 제기된다면 한국을 강하게 지지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유엔(United Nations) 및 다른 곳에서 지장 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점에서 한국의 조치들이 해외에서 낳을 수 있는 이미지는 우리의 역량에 반 드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러한 [사태의] 전개는 현재 미국 언론 및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 법이 애초에 공표된 바대로 공산주의자들의 체제 전복 위협을 효과적으로 다루겠다는 당초 의도에 부합하게 활용될 것임 을 법의 시행 과정에서 입증해 주시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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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SECRET]

그리하여 대한민국에서 민주적인 대의 정부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리라는 전망에 관한 우려가 근거 없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은 연유로 한국의 친구로서 각하께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저와 같이 친구의 마음으로 본 인의 의견을 받아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진심을 담아,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비밀[SEC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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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고위정치인 관련 서한Chapter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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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고위정치인 관련 서한

이승만 대통령 영문서한 자료집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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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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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고위정치인 관련 서한Chapter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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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er Judd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낸

‘보안법 파동’ 과 관련한 미국 언론보도를 담은 서한

생산일자 1958년 12월 27일 서한종류 전보(Telegram)

철 명 27-서한철(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수 신 이승만 건 명 Walter H. Judd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낸 전보 발 신 Walter H. Judd

워싱턴, 1958년 12월 27일

친애하는 이 박사:

공산주의자들에게 공공연하게 맞서기 위해 마련되었으나, 야당에서는 소수파와 이들을 지지하는 언론을 억압하는 데 활용될 수 있고 또 그럴 거라고 보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한국의] 국회 다수 당이 사용한 폭력적인 조치들을 보도하는 미국 지면 매체들의 뉴스에 심각하게 우려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소식들을 믿기가 망설여졌지만 우리 정부와 함께 확인하면서 저는 언론 보도들이 본질적으로 정확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전복의 위협을 폭로하며 통제할 방법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개량할 필요성을 저보다 더 잘 인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법안이 공산주의자들과의 전투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 행하는 데에만 쓰일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습니다. 이 법안은 각하나 저 못지않은 투철한 반공주의자 들인 국회의 소수파 구성원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힐 것입니다.

일본과 공산주의 압제에 맞서 싸우는 데 연합한 우리의 오랜 세월을 걸고 새 법률이 공산주의자 들에게 입히는 타격보다 이번 경우에 취해진 이 비민주적인 조치들이 이곳과 세계 곳곳에서 각하 의 지위에 입힐 타격이 더 클 것이라는 제 확신을 알려드립니다. 사실 그러한 조치들은 공산주의자 들에게 바로 그들이 바라고 또 각하의 정부에 효과적으로 맞서는 데에 활용될 수 있는 무기를 제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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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고위정치인 관련 서한

ChapterⅠ

이승만 대통령 영문서한 자료집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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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께서 말이나 조치를 통해 이 법안이 야당에 호의적인 한국인들이 아니라 명백한[proven] 공산 주의자들에 대해서만 사용될 것임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신다면 저와 동료들에게 안도감을 주고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메시지를 공공 상업 수단[public commercial channels]을 통해 발송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고 생각해 국무부에 비밀 수단을 통해 전달해 주기를 부탁했습니다.

저의 높은 존경심과 충실한 개인적 지지를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월터 H. 주드[Walter H. Judd]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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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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