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과 베르사유 체제
1차대전
1차 대전 발발: 1910년까지 유럽 주요 국가들은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를 중심 으로 하는 삼국동맹이나 프랑스·영국·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삼국협상에 가맹함 으로써, 잠재적 적대관계에 있는 2개의 세력으로 분열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1914.6.28):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 고, 독일이 세르비아를 후원하는 프랑스·영국·러시아와 개전
이탈리아가 삼국동맹을 탈퇴하고 삼국협상으로 & 일본, 루마니아, 그리스가 삼국 협상 쪽에 가담하고, 오스만제국과 불가리아가 삼국동맹 쪽에 가담함으로써 세계 전쟁으로 확대
동맹국의 패배로 끝났으며, 4개의 거대한 제국(독일·러시아·오스트리아-헝가리·터 키)의 몰락 & 볼셰비키 혁명
경제적 원인: 제국주의의 충돌
독일은 통일 후 제국주의경쟁에 후발주자로 들어갔지만 여의치 않음; 이후 중동진 출(3B전략-Berlin, Bizantium, Baghdad)에서 오스만 투르크와 쿠웨이트로부터 철 도부설권과 채굴권을 획득하지만 큰 소득 없음
독일의 팽창정책에 대해 영국은 3C전략(Cairo, Calcutta, Capetown)으로 견제하자 독일은 발칸반도로 진출 모색
당시 발칸반도는 투르크의 쇠퇴로 공백이 생기자 독립국가들이 등장했고, 이에 대 해 유럽열강은 경쟁치열: 유럽의 화약고가 됨(크림 전쟁)
The First World War
초기 파죽지세의 독일군이 파리근교 마 른강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장기전 참호 전(독가스)으로 변모
U-Boat의 무차별잠수함작전으로 미국이 참전하면서 독일전황이 불리해지고 결국 패배
카이저(빌헬름 2세)는 네덜란드로 망명하 고 1918년 Compiegne의 열차 속에서 휴 전조약 체결
1차대전의 결과
1차 대전 32개국 참가, 4천7백만 희생자
2차 대전 61개국 참가, 6천만(유태인학살 5백만 포함)
한국전쟁: 4백만, 세계 20개국이 참여; 북한(2백만 이상의 희생자)
월남전: 미국 희생자 57,685명, 월남+월북 2백만
Versailles Treaty
1918.11 프랑스의 Compiegne 열차 속에서 휴전조약이 체결된 2개월 후 (1919.1)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거울의 방)에서 독일과 31개 연합국과의 강 화회의가 시작 & 6월28일에 베르사유조약 체결.
베르사유조약의 주요내용
1) 독일 영토축소: 모든 해외식민지 포기, 알사스-로렌을 프랑스 양도
2) 배상금: 21.5월까지 결정하기로 하고 200억 마르크, 1921년 런던회의에서 1320억 마르크(320억불)로 결정
3) 독일의 군비제한과 라인란트의 비무장화: 육해군을 합쳐 10만으로 제한하 며, 공군과 잠수함 금지, 전차는 36대만 남기고 연합국에게 양도.
4) 국제연맹의 창설
5) 기타 조약으로 오스트리아가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로 분리되고, 세르비
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등 6국이
합쳐 유고슬라비아연방국가 탄생.
Versailles Treaty
7장 440조항: 전쟁책임을 전적으로 독일에 전가시킨 승전국들의 이해의 산 물; 승자가 곧 정의라는 공식인데, 이는 사실 1차대전이 제국주의간의 갈등 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패전국인 독일에게만 일방적으로 가혹한 제재를 한 것은 불공정하며, 이로 인해 점차 독일의 저항과 극단적인 군국주의(Nazism
& Fascism)의 발생 원인으로 작동
베르사유체제의 이중성: 당시 5대 열강(미, 영, 프, 이, 일)을 비롯한 32개국 이 참여해서 표면적으로는 윌슨이 주창한 14 points(1918.1월 미국 의회 연 두교서)를 중심으로 민족자결과 평화주의를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전쟁 중에 영국과 프랑스 등이 연합국들과 이미 맺었던 영토분할에 관한 비밀외교와 대립
독일의 미래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동상이몽: 영국은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전쟁 전의 비스마르크체제와 같은 BOP를 추구했고 이는 프 & 미의 독 일정책과 상충. 또한 프랑스는 독일에 의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로서 가장 가혹한 응징을 주장하며 독일을 재기 불능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 최대 의 배상과 영토를 요구
민족자결주의(self-determination): 윌슨의 이상주의가 가진 반제국주의 원
칙이지만, 결국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대한 식민지만 박탈했을 뿐 다른 유럽
의 승전국들은 적용 못했음 ex) 민족자결주의 vs. 3.1운동
The First Grand Debate in World Politics
제국주의 현상의 이중적 함의: 한편으로는 힘의 논리에 의한 현실주의적인 현상이 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의 각 지역을 군사적, 정치적, 문화적 그리고 무엇보다 도 경제적으로 접촉시키고 동화시키는 역할
Hedley Bull: 이 시기는 보편적인 국제사회에 대한 유럽의 지배와 확장은 1900년 에 가장 절정을 이루고 있었고, 이는 그 동안의 민족국가의 주권에 의한 개별적 통 치에서 국제적 통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제국주의
1) 1차 제국주의: 15C 스페인, 네덜란드, 포르투갈
2) 2차 제국주의: 19C 이후 유럽국가의 대부분이 참여하고 그 규모도 세계적으로 확 대 (1800년대 초-세계 1/3정도가 제국주의의 식민지; 1870년경-2/3; 제1차 대전 직전 4/5; 특히 벨기에,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등 7개의 주요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아프리카는 19세기말에 이미 85%가 분할 점령)
세력균형체제
군사력을 중심으로 한 BOP의 형성 -유지-붕괴로 요약되는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지배; 안보위협이 상존 하는 갈등구조이며 마침내 비극적 인 세계대전에 이르는 현실주의적 세계
계몽주의의 절정
18C 이래 진행되어온 과학기술 발전, 산업혁명으로 통신, 운송, 무역이 확 대되는 등 국가협력과 통합의 가능 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 는 이상주의 세계의 모습(=오늘날의 세계화)
1차 대전 이전 국제정치의 양면성
Realism vs. Idealism
War but…Idealism
이러한 일부 비판에도 불구, 이상주의 강세
1) 예외: 1차 대전의 원인을 보다 국가간 세력충돌에서 찾기보다는 일종의 예외적 사건으로 취급
2) 국제기구 부재: 1차 대전은 국가 경쟁과 적대심을 조정해줄 국제기구가 부재했 기 때문; 협상을 통해 해결할 수도 있었을 사소한 오해가 축적되어 전쟁 발발 3) 비밀조약: 국가권력자들이 국민들에게 책임을 지는 공개조약이 아닌 권력유지
를 위해 수많은 비밀조약을 맺었기 때문에 전체국민의 의사와는 정반대로 개인 야욕을 위한 권력투쟁이 곧 1차 대전의 본질; 이런 문제인식은 해결방법에서도 바로 나타나는데, 비밀조약을 중지하고, 국제법에 의한 공개조약을 하면 전쟁은 예방이 가능.(Immanuel Kant: Perpetual Peace)
4) 교육 부재: 1차 대전=반문명적인 전쟁; 전쟁의 비극은 계몽주의 이상론 자체의 잘못이 아니라 오히려 계몽주의가 덜 전파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 이상주의자 들은 한발 더 나아가서 1차 대전을 새 시대를 향한 인류발전을 위해 인류가 치 른 성장통(growing pain)/구시대 마지막 발악
낙관적 분위기와는 달리 비극적 1차 대전 발발: 계몽주의적 인간에 대한 신뢰가 도전 받 음. 이상주의자들이 국제정치에 있어 권력을 무시하고, 인간의 대처능력을 과신했다는 비판. 인간에 대한 지나친 신뢰는 곧 국가들이 공통이상을 추구할 수 있다는 잘못된 기대 로 이어지고, 현실에 대한 이런 환상이 곧 비극적인 전쟁을 초래했다는 지적
미국과 이상주의
1) 이상주의가 1차대전 후에도 명맥을 잇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전후 새로운 리더국가로 등장하는 미국의 존재 때문: 유럽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적은 피해를 입음으로 인해서 전 쟁의 비극적 성격에 대해 덜 심각
2) 먼로주의: 1823년 유럽의 세력다툼에 대한 고립정책 선언; 1차 대전 역시 많은 시간이 흐 르고 난 후 참여;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건국을 부패한 유럽의 구질서를 벗어나 세운 신세 계라는 관념; 미국은 우선 지리적으로 거리가 떨어져 있어 당시 유럽국가간의 갈등에 대 한 인식 약했고, 미국식 개인주의나 이상주의적 휴머니즘 사고와 잘 맞아떨어짐으로써 국제정치에 대해 유럽보다 더 계몽주의 세계관을 더 진지하게 수용
3) Wilsonianism & 미국의 전후 leadership: 미국이 평화를 위한 국제연맹의 건설을 통해 서 집단적 안보를 도모한다면 전쟁을 반드시 방지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상주의자들은 여전히 전쟁은 여전히 대외정책의 합리적인 수단이 아니고, 어떤 나라도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믿었음; 전쟁은 오해로 일어난 것이므로 이를 보완하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 으로 생각했다.
당시의 이상주의의 3특징
제도/법에 대한 신뢰: 연구방법 역시 국제법, 국제제도, 외교사, 철학의 범위에 서 연구
이상적 규범을 해석/적용하는데 관심: 실제경험으로 내린 결론이 아니라 인간 이 합리적이며 선하다는 대 전제에서 출발
유토피아적 국제정치 실제보다 희망하는 사항을 우선적 고려: 전쟁의 필연성을
직시하는 현실주의에 비해, 전쟁예방의 가능성을 믿고 여러 가지 방안들을 제시.
현실주의의 반발
이상주의가 주장을 고수한다고 해서 비극적 인 전쟁의 결과를 외면 불가
제1차 대논쟁(The First Grand Debate):
1930년 말 이상주의의 방어논리 vs. 현실주 의의 비판논리의 논쟁 최고조
역사서인 E. H. Carr의 『20년간의 위기,
1919-1939』는 이러한 국제정치의 현실주의 와 이상주의적 관점간의 상반된 관점을 비판 적 기술.
베르사유조약의 체결로 확보되었다던 국제평 화는 이미 효용을 상실했다고 주장: 카아는 당시의 영국과 프랑스의 주도로 유럽에 퍼진 국제협력의 무드가 실제로는 몇몇 강대국간 의 국가적인 이해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 니라고 보았으며, 당연히 이해관계의 충돌은 늘 가능한 것이었고, 그것은 또 다른 전쟁의 가능성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Carr는 이상주의를 일방적으 로 비판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상주의의 오류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은 채찍: 지나친 비관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현실주의도 문제였지만, 또 다른 전쟁의 암운이 드리 워지고 있는 1930년대 말의 긴박한 상황에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평화만을 주장함으 로써 가진 자들의 지배체제 를 고착시키려는 이상주의자 들에 대해 훨씬 더 비판적
베르사유 체제의 약화: Dawes Plan & Rocarno Treaty
Dawes Plan(1924)
프랑스의 입장과 요구를 완화시키고 미국과 영국이 앞장서서 전후 초기 독일에 지웠던 지나친 부담 수정 의도
배상금 경감: 지불방법을 5년간에 걸쳐 첫 해에 10억 마르크부터 시작해
5년째에는 25억 마르크로 올려져 매년 지불
뉴욕과 유럽에서 채권을 발행해서 배상금을 갚게 하는 방안(J. P. Morgan): 통화 및 경제의 안정을 위하여 2억 달러(8억 금마르크)의 국제 차관*
Charles Dawes 미국의 정치가이자 은행가.
미국 예산국의 초대국장을 지냈으며, 미국이 1차 대전에 참전한 뒤 미국 원정군의 군 수품조달책임자로 활동. 전쟁배상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전후 독일의 재정을 안정시킬 수단으로 도스안(Dawes Plan)을 수립하였다. 이 일로 영국의 J. 오스틴 체임벌린과 함 께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 1925~29년에는 캘빈 쿨리지 대통령 아래에서 부통령 역 임, 29년 허버트 후버 정권에서는 주영대사 역임했으나, 곧 사임하고 은행업계로 복귀
Pact of Rocarno(1925)
독일이 전쟁재발방지를 약속하고, 그 대가로 정치적 복권과 라인란트의 점령 군 조기철수
독일을 국제연맹에 가입. 일종의 국제연맹 밖에서의 안전보장 체계로서 영.독.
프.벨.이.체코.폴란드 7개국이 상호보장조약 및 독일의 위상이 회복될 길을 열 어줌
국경보장: 독일-벨기에 및 독일-프랑스 국경안전보장 및 라인란트의 영구 비 무장화를 규정: 유럽각국이 독일과의 국경을 보장하는 조건하에 프랑스의 강 경정책이 무력화되고 독일의 위상회복.
폴란드의 부활로 인해 완충작용을 함으로써 러시아로부터 독일을 보호
베르사유 조약 외의 세력균형적 조약은 영국과 프랑스의 경쟁을 틈타 독일이 부상할 계기를 만들어 줌.
만약 LN 규약에 대한 신뢰가 있었더라면 불필요했을 동맹위주의 전통주의적 협정의 부활: LN의 위상약화와 군비축소노력에 타격
1936년 3월 아돌프 히틀러에 의해 일방적으로 파기되었으며, 독일군의 라인란
트 침입과 재무장이 실시되었다.
Rhineland
베르사유조약에 의해 알자스-로렌이 프랑스로 반환되었을 뿐만 아니라 연합군이 약 5~15년 동안 강 양안의 독일령 라인란트 지방 점령
게다가 독일령의 강 좌안과 우안의 50㎞ 깊숙 이 들어간 지역까지 영구적 비무장지대 선포
1920년대의 라인란트는 위기와 반목의 분쟁이 빈발하는 화약고
독일 공포증을 갖고 있던 프랑스는 대독 유화 정책을 쓰는 미국과 영국과 갈등: 1930.6.30 마 지막 점령군 철수
Ruhr 점령
1923년 독일의 배상금지불 불이행을 이유로 프랑스와 벨기에 군이 점령
프랑스정부는 이 점령을 통해 전후 독 일의 취약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지속 시키고자 했음
독일은 점령군에 대한 비협조투쟁인 루르캄프(Ruhrkampf)
프랑스점령행위의 잔혹성으로 정권 실각(1924)
도스플랜의 동기로 작동
The First Grand Debate in World Politics
양차대전의 파편화
1919-1929년 10년간의 환상, 그러나 1929년-1939년 10년간의 파편화
탈유럽화 경향?: 객관적인 여러 척도에 의해서 확실히 1차대전 이후의 세계 는 유럽중심체제가 많이 이완되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무너진 것은 아님. 유 럽의 상대적 우위(생산이나 무역점유율, 미국시장점유율...)가 낮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영국의 약화나 탈유럽화는 과장
여전히 국제체계는 유럽과 유럽인의 관심사(특히 승전국들의)에 의해 지배:
중국과 러시아는 내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미국은 자신의 부상하는 지위를 감추는 다시 고립정책과 원거리정책 복귀
국제연맹의 한계: 국제연맹은 전쟁 재발방지라는 시대적 소명으로 탄생했으 나, 그것이 새로운 평화시스템을 설립하기보다는 전쟁 종결다음에 출현한 특수한 현상유지를 영속화시키기 위한 조직으로 변질; 전쟁에 대한 혐오는 국제기구의 존재와 함께 별다른 대책 없이 소멸
미국의 국제연맹 불참문제
1929년의 함의
국제주의의 붕괴 & Beggar-Thy-Neighbor(근린궁핍화) Policy
1929년 대공황: 전후 과잉생산의 결과, 미국실업자 1천5백만, GDP 절반, 관세폭등...
Smoot-Hawley Tariff Act: Herbert Hoover 1930년 법안에 서명; 법 시행에 따라 3,200 개 품목의 실행관세율이 60%로 4배나 뛰었다
이 법이 발효도 되기 전에 캐나다가 보복관세를 실시했고 뒤이어 영국, 프랑스가 가세
세계적인 경제불황과 경제민족주의: 사실상 민족주의의 알력과 일방주의가 우세한 경 향이 있었으나, 이 시기에 국제주의에 대한 염원과 수사가 전혀 없어졌다고 볼 수도 없 다. 적어도 당시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던 미국의 이념은 여전히 이상주의적 국제주의였 다. 그러나 동시에 소수열강간의 현상유지를 위한 세력경쟁이 본격화
League of Nations & Two Invasions
민족주의적 전체주의 부상; 무솔리니(1922), 히틀러(1933); 일본 군국주의
일본의 만주침략(1931)과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1935)에 무력한 국제
연맹.
영국의 유화정책과 독일의 재부상
네빌 체임벌린(Neville Chamberlain)
1939년 초, 영국정부는 38년 뮌헨협정에서의 독일에 대한 정치적 유화가 독일과 영국간 의 긴밀한 경제 협력을 통해 강화될 것이라 확신
3월 10일, 유럽이 평온의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발표
특히 체임벌린은 히틀러를 위대한 독일 애국자로 간주했고, 모든 독일인들은 한 국가로 통일시키는 비스마르크의 과업을 완수하기를 원할 뿐이라고 믿었고, 이것만 이룬 다음에 는 행복하고 평화롭게 통치할 것이라 전망
하지만, 6개월 후,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게 전쟁을 선포하게 되었다.
히틀러의 진격
삼국방공협정 결성: 독일, 일본, 이태리의 소위 추축국(Axis Power)이 1937년에 체결
라인란트 비무장지대화를 파기하고, 1936년 라인란트 진격
1938년에는 오스트리아(3월)와 체코의 북쪽 독일접경지역 Sudeten(9월) 합병
영국과 프랑스는 1938.9 뮌헨회담에서 이를 승인하는 정책을 채택. 이에 기세를 얻은 독일이 슬로바키아, 폴란드를 침공.
1939년 3월에는 체코전체 병합
독소불가침조약(1939.8): 1차 대전에서의 동서부전선의 포위문제 해결(소련은 발트 3국 과 핀란드를 침공)
독일의 폴란드 침공(1939.9): 드디어 영국과 프랑스가 대응하고 2차 대전으로 비화.
독일의 전격전(Blitzkrieg): 노르웨이, 덴마크를 점령하고 네덜란드, 벨기에 등 중립국을 침범하고, 프랑스 침공하고 항복시킴(1940.6)
독일의 발칸평정으로 위협을 느낀 소련 & 전쟁물자의 공급(우크라이나와 코카서스-석 유, 밀, 철..)을 위해 소련과도 전쟁(19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