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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비평철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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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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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안08] 비평철학(philosophy of criticism)

[학습목표]

1. 비평철학이 비평적 진술에 관한 철학(philosophy of critical statements)이라는 점에 대해 알아본다.

2. 비평철학이 어떤 과정을 거쳐 미학사에 등장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 알아본다.

3. 예술비평과 미학의 관계를 어떻게 상정할 것인가에 대해 알아본다.

[주요용어] 무관심적, 기술(description), 해석(interpretation), 비평(criticism), 수반 (supervenience), 취미 개념(taste concept), 미적 태도, 기술적(descriptive)/해석적 (interpretative)/평가적(evaluative) 기술

[학습과제]

예술작품에 대한 진술, 그런 의미에서의 비평에 대한 비어즐리의 입장, 즉 예술작 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데 있어서 작가의 의도는 관련이 없다는 입 장, 달리 말하자면, 예술작품이 의미하는 것 바로 그것이 작가의 의도가 된다는 입 장에 대해 생각해 보자.

[개관]

비평철학

1. 미학과 예술비평의 관계

비평철학(philosophy of criticism)은 미학이나 예술철학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비평철학을 비평적 진술에 관한 철학(philosophy of critical statements)이라고 이 해한다면, 이는 미 또는 미적인 것에 관한 철학적 탐구, 즉 미학과도 구별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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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예술 또는 예술적 현상에 대한 철학과도 구별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비평철 학은 미학과 예술철학과 비교하여 그 연구 대상에서 구별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 다면, 비평철학은 미학이나 예술철학과는 구별되는 연구 영역을 갖고 독립된 분야 로 미학이나 예술철학과 같은 지위를 누려왔는가? 미학사를 간단히 살펴보더라도

‘비평철학’이라는 용어는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한 미학이나 예술철학 보다는 비교적 협소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비평철학은 어떤 과정을 거쳐 미학사에 등장하게 된 것일까?

비평철학이라는 영역이 등장한 것은 기존 미학 또는 예술철학 내부의 변화가 있 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무관심적 태도에 대한 철학적 주목이 있었 던 근대 미학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즉, 근대적 전통, 특히 칸트적 전통에서는 무관심적인 태도가 미적인 태도의 필요조건이었고, 예술 비평 역시 이 러한 태도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미학과 예술비평은 공통의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의 토대가 마련된다. 그린버그(C. Greenberg)에서 이러한 입장을 살펴볼 수 있 다. "우리가 미학을 위한 가장 만족스런 토대는 미술 비평을 위한 가장 만족스런 토대에 다름아니다(The most satisfactory basis for aesthetics we yet have was nothing less than the most satisfactory basis for art criticism)."(Danto 1996:

108). 직관적으로 보아서 미학과 예술비평이 공유하는 공통적인 기반은 양자 모두 예술을 그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그 자체는 예술적 활동은 아니라는 점이다. 미학 의 중심적인 주제가 미적인 것에 대한 분석에 맞추어지고, 미적인 것을 결정하는 요소를 무관심적인 태도 속에서 찾으려는 전통 하에서 미학적 작업과 예술비평이 서로 동일한 지점을 지향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칸트에 따르면, 미적인 경험과 감상은 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Crawford). 그러나 미학과 예술비평의 대상이 동일하다는 이유에서, 또는 미학에서 요구되는 태도와 예술비평에서 요구되 는 태도가 동일하다는 것이, 양자가 무차별적으로 동일시될 수는 있다는 것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비평에 대한 여러 입장들을 분류하는 방식으로 예술비평과 미학의 관계를 어떻게 상정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적절하다.

미학과 예술비평이 동일한 현상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 둘은 명확히 구분된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고, 이러한 입장을 대표하는 사람으 로 스톨리쯔(J. Stolnitz)를 들 수 있다. 칸트적 입장과는 달리, 그에 의하면, 감상과 비평은 심리적으로 전혀 다른 근거에 서 있는 활동이다. 간단히 말해서 비평자들이 견지하는 태도는 감상을 위해서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한편, 전통적인 미학 또는 예술철학은 성립할 수 없다는 근거에서 “올바른” 미학 은 예술비평에 관한 철학이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이러한 입장은 다시 두 가지 서로 다른 입장으로 구별될 수 있는데, 하나는 비평적 진술이란 주관의 호/불호를 나타내는 의미 밖에는 갖지 않는다는 이모티즘(emotivism)이고, 또 하나는, 이와는 전혀 다르게, 비평의 원리를 구성해 보고자 하는 입장이다. 여기서는 후자의 입장 의 대표적 입장으로 비어즐리(M. Beardsley)를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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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에 앞서 비평적 진술 자체의 성격에 관한 고찰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예술 비평에 관한 여러 입장들의 차이는 궁극적으로 비평적 진술이 어떤 특성을 갖 는가에 대한 견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비평적 진술이 어느 정 도의 객관성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입장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인데, 비평 적 진술의 객관성의 확보는 일반적으로 비교적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다른 진술 들, 예컨대 사실에 관한 진술들과 비평적 진술이 어떤 관계를 맺는가 하는 문제와 연관이 있다. 여기서는 시블리(Frank Sibley)의 입장을 중심으로 비평적 진술의 특 성에 대한 논의를, 수반 논제(supervenience thesis)를 중심으로 비평적 진술의 객 관성에 대한 논의를 살펴볼 것이다.

2. 비평적 진술의 성격

비평에 관한 미학적 입장은 비평적 진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와 밀접한 연관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술작품에 관한 진술은 기술(description), 해석 (interpretation), 그리고 비평(criticism)으로 흔히 구별된다. 비평적 진술의 성격에 관한 논의는 과연 비평적 진술은 얼마나 객관적인가 하는 물음과 관련된다. 그리고 이 물음은 비평적 진술이 예술작품에 관한 기술이나 해석과 얼마나 밀접한가에 달 려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비평적 진술이 해석에 가까울수록, 또 해석이 기술에 가 까울수록 비평의 객관성은 높아진다. 하지만 비평과 해석, 해석과 기술을 구분하는 한에서는 비평의 객관성을 그 기술적 성격에서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 서 비평이 해석과 기술과 밀접하게 연결된 것으로 보는 입장이 필요한데, 이러한 입장을 설득력 있게 만들어주는 이론적 틀 중에 하나로 수반(supervenience) 논제 를 들 수 있다. 수반이란 일반적으로 두 개념군 사이에 존재하는 공변 관계를 지칭 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물리적 속성과 정신적 속성 간의 의존 관계 나 윤리적 속성과 비윤리적 속성 간의 의존 관계는 얼마나 강한가에 따라 정신에 관한 철학적 입장 또는 윤리학적 입장이 수립될 수 있다. 이러저러한 행위를 한 사 람이라면 필연적으로 이러저러한 윤리적 평가가 내려져야 한다는 입장과 동일한 사 람이 이러저러한 윤리적 평가를 받는 것은 옳지만 그러한 평가가 필연적인 것은 아 니라는 입장은 윤리적 속성과 비윤리적 속성 간의 의존성에 있어서 다른 입장을 취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비평과 해석에 적용하여 말하자면, 수반 논제는 비평적 술 어들이 해석적/기술적 술어들에 의존하는 방식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비평적 술어들 해석적/기술적 술어들에 수반한다는 주장이 갖는 함축은 비평이 적 절성 또는 비적절성이 객관적인 토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비평적 진술의 경우 일반적인 수반 논제는 주장되기 힘들어 보인다. 예컨 대, 경사면의 미끄러움이 경사면의 경사각에 수반한다는 주장은 일반화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통일적이라는 미적 속성이 어떤 자연적 속성에 수반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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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화하여 주장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일반적 법칙으로서의 수반 논제를 거 부하면서도 또한 어떤 식으로던 수반 논제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은 사람으로서 시블리를 들 수 있다. 시블리는 그의 논문 “미적 개념(Aesthetic Concepts)”에서

“미적 개념은 조건지배적(condition-governed)이지 않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 렇다면 왜 미적 개념은 이러한 특성을 지니는 것일까? 시블리는 미적 개념이 조건 지배적이지 않다는 점을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즉, 미적 개념은 필요조건은 물론이고 충분조건도 주어질 수 없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필요 충분조건을 제시하기 힘든 개념, 따라서 그 정의가 어려운 개념의 경우에도 충분조 건은 주어질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예컨대, ‘지적(intelligent)’인 것이 무엇인가를 정 의하기는 힘들지만, ‘지능지수가 180이상’인 사람이 지적이라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다. 반면에 미적 개념은 충분조건조차도 주어질 수 없다. ‘불이 타오르는 듯한 현 란함(flamboyance)’이라는 미적 개념이 적용되기에 충분한 조건은 없다는 것이다.

시블리에 따르면 미적 개념은 오직 부정적으로만 조건지배적이다. 다시 말해서, 특정한 미적 개념이 적용될 수 없기에 충분한 조건은 제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 를 들어, 화면 전체가 직선으로 가득한 그림은 불이 타오르듯이 현란할 수 없다.

시블리의 주장대로 미적 개념이 조건지배적이지 않다면, 우리는 미적 개념을 어 떤 대상에도 확실하게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인가라고 의문을 던질 수 있겠다. 시블 리는 그렇지는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놓고 ‘통일적’이라거나 ‘현란하 다’고 할 수 있다. 시블리가 말하고자 하는 점은 그러한 판단을 일반화하여 조건문 의 형태로 나타내고 법칙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직 개별적인 대상이 주어진 다음에야 미적 개념을 확정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 들이 어떤 개별적인 대상에 미적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 에서 이를 놓고 의견의 차이와 논쟁의 여지가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 미적 개념이 적용되는지를 아는 것에는 취미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미적 개념은 취미 개념(taste concept)이다. 그에 따르면, 특정한 대상에 어떤 미적 개념이 적용되는 지를 확정적으로 파악하는 전형적인 사람이 바로 비평가이다.

이러한 미적 개념에 대한 시블리의 논의는 수반이라는 개념을 미학적 논의에 어 떻게 적용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의 중요한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위에서 간단히 살펴보았듯 미적 개념의 특성상 미적 수반이라는 논제는 일반적인 수반 논제와는 또 다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수반 논제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일반적 논의에 대한 소개를 필요로 한다. 그런 이후에야 미적 수반에 대한 정확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가능해 질 것이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점은 수반이라는 개 념을 현대 철학의 장에 되살려 등장시킨 김재권이 시블리를 미적 수반의 대표적 인 물로 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맥키논은 이러한 해석은 시블리에 대한 오 해라는 주장을 펼친 바가 있다. 이 논쟁의 시시비비를 떠나서 이러한 논쟁이 있다 는 것 자체가 미적 수반이라는 개념의 복잡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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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톨리쯔의 비평철학

철학의 영역으로서 비평철학이 성립할 수 있는 또 다른 맥락에는 이른바 ‘언어적 선회’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후기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영향력을 들 수 있다. 후 기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철학적 작업이란 세계에 대한 직접적인 진술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진술들에 대한 분석적 작업이다.

윤리학이 윤리적 진술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다루는 학문이듯이, 예술철학 역시 예 술에 대한 일상적 진술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이러한 이해에 따르면, 비 평철학 역시 비평적 진술에 대한 철학적 분석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비평 을 넓게 보아 예술작품에 대한 모든 형태의 담론이라고 한다면, 예술철학과 비평철 학은 그 외연에 있어서 차이가 없을 수 있다. 문제는 비평적 진술에 대한 성격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스톨리쯔는, 미적 태도에 관한 자신의 입장으로부터 미학의 중요한 모든 개념을 이끌어 내고 있다는 입장에서, 미적 태도 또는 미적 대상과 비평적 태도간의 연결 성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적 태도와 비평적 태도는 여전히 구별되어 야 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미학과 비평철학은 구별된다: “미학은 가치화라는 경험을 다룬다. 나아가 이런 경험을 지배하는 특징적인 태도, 이런 태 도가 취해진 대상, 그리고 그들의 구조를 연구한다. 반면 비평철학은 가치평가의 과정 - 대상의 미적 좋음에 대한 분석과 판단을 다룬다.” 다시 말해서 미학이 미적 태도와 미적 대상에 대한 연구라고 한다면, 비평철학은 가치평가에 대한 연구라는 것이다. 미적 태도와 가치 평가는 어떤 점에서 구별될까?

스톨리쯔는 미적 태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미적 태도란 그것이 어떤 대상이든 간에 인지의 대상을 그 대상 자체를 위해서, 무관심적이고 공감적으로 주 목하고 관조하는 것이다”(스톨리쯔: 38). ‘무관심적 관조’란 분명 근대 미학의 기본 적 논제였던 취미 판단의 무관심성이란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표현이다. 여기에는 대상을 소유하려는 관심은 물론이고, 사물에 대한 지적인 관심, 예컨대 대상의 분 류나 다른 대상들과의 상호관계를 파악하려는 관심까지도 포함된다. 이러한 미적 태도가 주체의 태도를 가리키는 만큼, 미적 태도가 유지될 수 있는 대상에는 그 어 떤 제약도 없어야 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즉, 어떤 대상이든 의식되기만 할 수 있다면, 미적 태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여기에는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전형적인 예들만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대상들도 포함되며, 예술 작품만이 아니라 자연 현 상들도 포함된다.

이렇게 이해된 미적 태도의 개념은 ‘미’와 ‘예술’이라는 전통적 미학적 개념보다 그 외연에 있어서 보다 광범위하다. 모든 예술작품이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으며, 모든 아름다운 대상이 예술작품인 것도 아니라는 전제에서, 스톨리쯔는 미학의 대 상이 아름다움이나 예술에 국한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 이유에서 미학이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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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theory of beauty)이나 예술철학(philosophy of art)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반면에 ‘미적 태도’, ‘미적 대상’, ‘미적 경험’이란 개념에 등장 하는 ‘미적’이라는 용어의 광범위성은 미학이 대상으로 적절하다.

가치평가는 비평적 태도를 요구하는데, 스톨리쯔에 의하면 비평적 태도는 미적 태도와는 전혀 다른 부류의 태도에 속하는 것이다. 비평적 태도는 미적 태도와는 달리 대상의 약점과 강점을 찾으려고 하고, 분석적이며, 예술 작품에 관한 모든 종 류의 지식을 추구하려는 태도이다. 비평적 태도의 결과 생겨나는 비평적 진술은

“...은 미적으로 좋다 (또는 나쁘다)”는 형식의 미적 가치판단의 구조를 갖는다. 비 평적 진술은 그 정당성을 위해 근거를 제시하는데, 스톨리쯔는 비평적 진술과 그 근거와의 관계 규정에 따라 객관주의, 주관주의, 그리고 객관적 상대주의를 구분하 고 있으며, 또한 비평적 진술의 특징적인 방식에 따라 규칙 비평, 맥락 비평, 인상 주의 비평, 의도주의 비평, 내재적 비평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4. 비어즐리의 비평철학

미학과 비평철학을 구분하는 스톨리쯔의 근거는 미적 태도가 갖는 고유한 성격이 다. 하지만 다른 태도와는 구별되는 미적 태도의 고유성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으며, 이런 근거에서 딕키(G. Dickie)는 고유한 미적 태도라는 개념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비어즐리 역시 미적 태도에 의해 미적 대상을 규정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비어즐리에 따르면 미적 대상은 두 가지 원 리, 즉 구별의 원리와 지각가능성 원리에 의해서 규정될 수 있다. 구별의 원리란, 어느 것이든 예술 작품의 부분이 되기 위해서는 그 예술 작품으로부터 구별되어서 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가의 의도는 예술 작품을 낳기 위한 기원일 수는 있으나, 예술작품과는 분리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미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함축 이 이로부터 생겨난다. 또한 지각가능성의 원리란, 미적 대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 서는 정상적인 조건에서 지각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미적 대상 구분은 스톨리쯔의 그것과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다.

미적 태도의 고유성이 부정된다면, 스톨리쯔 식으로 미학과 비평철학의 영역이 첨예하게 구별될 근거도 사라지게 된다. 비어즐리에게는 위에서 규정된 미적 대상 이란 전형적인 비평적 진술이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학은 비평철학에 다 름 아니다. 즉, 비평적 진술에 대한 분석이 바로 미적 대상에 대한 연구이고, 이것 이 바로 미학인 셈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술작품에 대해 그 누구도 말 한 적이 없었다면, 미학의 문제들은 없었을 것이다.”

예술작품에 대한 진술, 그런 의미에서의 비평에 대한 비어즐리의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은 이른바 신비평(New Criticism)이라는 사조이다. 신비평의 입장과 같 이, 비어즐리는 예술작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데 있어서 작가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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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 달리 말하자면, 예술작품이 의미하는 것 바로 그것이 작 가의 의도가 된다는 입장을 취한다. 예술작품에 대한 진술에는 기술적(descriptive), 해석적(interpretative), 평가적(evaluative) 진술이 있는 바, 이들 각자를 밝히는 데 있어서 작가의 의도를 끌어들이는 것은 ‘의도주의의 오류'(the intentional fallacy)에 해당한다는 것이 그가 미학(Aesthetics)에서 벌이고 있는 주장이다. (이와 반대로 작품의 해석에서 작가의 의도를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이는 입장을 비평에 있어서의 의도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입장으로 허쉬(E.D. Hirsh)를 참조하라.) 후에 그는 비평의 가능성(The Possibility of Criticism)에서 의도주의 비평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더욱 강화시킨다. 그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논증으로 의도주의를 공격한다. 첫째, 편집상의 실수로 작가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내용이 작품의 내용 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의도주의는 옳지 않다. 둘째, 텍스트의 의미는 작가가 사망한 이후에도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의도주의는 옳지 않다. 셋째, 텍 스트는 작가가 생각하지 못한 의미를 가질 수 있으므로 의도주의는 옳지 않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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