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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Dream’, the Last Dream of Kurosawa Ak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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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freud.or.kr

97 Film Review

Psychoanalysis 2010;21:97-98

Movie ‘Dream’, the Last Dream of Kurosawa Akira

Doo-Young Cho

Cho Doo Young Neuropsychiatric Clinic, Seoul, Korea

구로자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이 꾼 마지막 꿈

조 두 영

조두영 신경정신과의원

ISSN 1226-7503 Copyright 2010 Korean Association of Psychoanalysis

Received: August 11, 2010 Revised: August 16, 2010 Accepted: August 23, 2010

Address for correspondence: Doo-Young Cho, MD

Cho Doo Young Neuropsychiatric Clinic, 1313 Banpobon-dong, Seocho- gu, Seoul 137-813, Korea

Tel: +82-2-593-3775, Fax: +82-2-593-3778 E-mail: [email protected]

몇 년째 나는 현충일에는 화천(華川) 산골의 비목제(碑木 祭)에 가 보려 벼르기만 한다. 지난 몇 년간 신문에 관련 기 사가 실려 많이 알려진 데다 남이 부를 때면 나도 잘 따라 부르는 노래가 ‘비목’이어서 그렇기도 하였다. 금년에도 결 국은 가지 못했다. 다만 화천에는 그냥 버스타고 후딱 가서 점심은 먹고 온 적이 있다.

마닐라 연안부두에는 인근 꼬리히도(Corrigidor)섬을 왕 래하는 쾌속여객선이 하루 두어 번 있다. 여러 해 전, 호텔 현관에 꽂힌 관광전단을 읽고 무심히 버리려던 찰나 무엇 인가 내 머리를 탁 치는 것이 있었다. 아, 해방 전 라디오에 서 귀가 아프도록 듣던 태평양전쟁 격전지 하나가 아닌가!

정신이 반짝 난 나는 하루 관광에 나서게 되었다.

섬은 한 시간 반 거리였다. 마닐라로 들어가는 만(灣) 한 가 운데에 있어 위치가 인천 앞바다의 덕적도와 흡사했다. 바 다에서 오는 적에 대비한 요새였던 이 섬의 관광객은 미국인 과 일본인이 거의 반반 이었다. 그래서 오전 구경은 일본군 이 전쟁 초 상륙하여 미군을 몰아내던 때의 흔적에, 오후에 는 거꾸로 미군이 되돌아 와 치른 전투 흔적에 초점을 맞추 고 있었다. 곳곳에 일본군 대포들과 진지 잔해가 있었고, 한 군데서는 일본군 고사포진지가 그때 그 모습을 그대로 유 지하면서 구경꾼들을 맞았다. 기름칠을 잘 한 포는 지금도 360도로 돌고 있었다. 상륙한 일본군이 잡은 2만 명의 미 군포로는 바탄 반도를 도보행진으로 끌려가면서 수천 명이 사망한 바 있고, 뒤에 미군이 반격을 하였을 때에는 수비하 던 일본군 2개 사단이 부상자 2백여 명만 남기고 전멸한 바

있다. 맥아더가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떠났던 곳도, 그리 고 바다에서 걸어 나와 땅을 딛는 그 유명한 사진을 찍은 곳 도 이 섬이다.

미국인과 일본인이 아닌 관광객은 필리핀사람 한 가족과 우리 내외뿐이었다. 우리는 처음에 미국인들 곁에 섰다. 하지 만 이들은 우리를 은근히 멀리 하는 것이었다. 우리만 가면 이들은 ‘아이구!’라는 소리는 않지만 얼른 멀찍이 피해 가곤 했다. 일본인이 아니라는 표시로 영어도 하는 체 해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비록 우리를 미국계 일본인으로 여겼다 쳐도 이 격전지에 와 있는 그들에게는 우리가 어디까지나 일본인 이 아니면 아시아인인 것이다. 대신 관광 온 진짜 일본인들 은 우리 내외를 얼이 빠져 자꾸 쳐지는 자국민으로 알고, 서 너 명이 우리 주위를 맴돌면서 우리가 이제 그만 움직여 주 기를 기다렸다. 필리핀 가족은 우리와 달리 당장 용모로 표 가 나서 미국인들은 처음부터 자기 쪽으로 받아 주고 있었 다. 우리는 꼭 바지에 똥 싸고 엉거주춤하는 격이 되고 말았 지만 나중에는 몽골리안(Mongolian) 유전자 소유를 스스로 인정하고 일본인 쪽에 붙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섬 관광의 핵심은 동굴구경에 있다. 필리핀 관광공사가 거금을 들여 천재라던 자기나라 어느 청년 장치예술가를 시 켜 꾸몄다는 3백 미터 길이의 동굴이다. 원래는 수비하던 미 군이 만든 요새로, 그 안에 상륙해 온 일본군을 맞아 싸울 때 의 지휘본부, 야전병원, 포탄저장소, 숙소와 병사들 모습이 실물크기 모형으로 있다. 그때의 울부짖는 각박한 상황을 소리로도 재현시켜 놓았다. 관광객이 일단 동굴 안에 들어가 면 출입구를 닫고 불을 다 꺼서 암흑세계가 된다. 더듬더듬 앞으로 걷다보면 여기저기 좌우에 희미한 조명을 받는 조그 만 굴 방들이 나타났고, 유리 벽을 통해 속이 보인다. 또 주 (主) 굴과 직각으로 판 여러 개 작은 굴이 좌우로 나온다. 굴 을 나와 바로 느낀 소감은 ‘이 굴을 나중에 일본군도 요새로

online©MLCo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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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rosawa Akira’s Dream

98

Psychoanalysis 2010;21:97-98 썼을 터인데…!’라는 것 이었다.

그러던 몇 해 뒤, 나는 일본영화 하나를 보게 되었다. 명 장(名匠) 구로자와 아키라(黑澤明)가 80세 가까이에 자기 생전 마지막이라면서 만든 영화 [꿈(夢)](1990)은 8편의 서 로 다른 짤막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가 평생에 하고 싶었던 말들을 영화로 만들어 남긴다는 목적이었기에, 이 영화는 구로자와 자신의 생애를 일관한 심리변천사(心理 變遷史)가 함축된 일종의 예술유언(藝術遺言)이었다. 소품 제1편에 나오는 주인공은 나무, 숲, 동물을 사랑하는 학령 기 이전의 소년이다. 그리도 뒤를 잇는 소품들에서는 점차 나 이 든 주인공이 등장한다. 마지막 편에는 핵폭발로 세상이 멸망할 때 망연자실 주저앉아 죽음을 맞는 노인이 나온다.

그래서 구로자와 감독은 평생 자연을 사랑했고, 핵을 반대했 다는 말을 듣는다. 내가 여기서 꺼내고자 하는 것은 이 가 운데 제4편 인생중반에 해당한 이야기다.

영화내용은 이러하다.

일본 어느 산골 신작로를 따라 남방전선 육군 장교 복장의 한 30 대 초 사내가 몸 어딘가 좋지 않은 듯 허우적거리며 가고 있다. 계 급장 없는 남루한 군복과 군모, 다 떨어진 장교용 장화, 영양실조의 어깨에 멘 빛바랜 군용 가죽서류가방, 그리고 면도를 못한 얼굴이다.

그의 앞에 산허리를 관통하는 굴이 나타난다. 굴은 캄캄해서 끝이 보이지 않는다. 사나이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잠시 머뭇거리는데, 굴 속에서 미친 것 같은 무서운 큰 개 한 마리가 나와 물을 듯이 으 르렁거린다. 장교는 전기가 나간 이 긴 굴을 조심조심 걸어 들어가고, 개는 간격을 두고 여전히 으르렁 뒤를 따른다. 한참 만에 굴 반대쪽 으로 나온 장교는 저 산아래 마을을 망연히 내려다 보다 가방 속 서 류를 점검한다. 개는 굴 속 어디에서인가 쳐진 듯 보이지 않는다. 해 가 지고 있다.

그런데 굴 속에서 저벅저벅 소리가 난다. 이윽고 총을 멘 육군사병 하나가 나타난다. 그리고 굴 입구에 서서 차렷 자세로 “나까무라 일 등병, 신고드립니다!”라면서 거수경례를 부친다. 군복을 입었지만 전 혀 핏기가 없는 모습이다.

놀란 장교가 잠시 뜸을 드렸다가 말한다. “나까무라! 너는 그때 죽 은 놈이다! 어찌 된 일인가?”

사병이 말한다, “방금 내려다 보셨던 저 아래 마을의 불 킨 집이

제 집입니다.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제 부모님이 저를 기다리실 터 입니다. 잠간 뵙고 곧 원대복귀 하겠습니다.”

“너는 죽은 몸이다. 내가 지금 네가 살아 마지막 쓴 편지를 그 분 들께 전해드리려고 이렇게 찾아가고 있다. 걱정 말고 어서 돌아가라!”

“알았습니다. 나까무라 일등병, 이제 원대로 돌아가겠습니다!”라면 서 사병은 굴 속으로 저벅저벅 총을 메지 않은 왼팔을 90도로 저으 며 들어갔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뒤이어 이번에는 요란한 저벅저벅 소리 가 크게 굴 속에서 울려 나온다. 무리가 힘차게 행군해 나오는 소리다.

이윽고 완전무장한 백여 명 군인이 4열종대로 나타난다. 모두가 우 람하지만, 핏기들이 없다.

그 중 선두에 선 자가 구령을 부친다. “제3중대, 전원 차려! 중대 장님을 향하여 받들어 총! … 제3중대 인원보고, 총원 백이십 명, 사 고 무, 현재원 백이십 명, 전투준비 완료, 이상!”

기가 막힌 중대장이 외친다, “너희들, 반갑다! … 너희들은 그때 섬에서 모두 용감하게 싸우다 절벽 옆에서 다 죽었다! 그런데 웬일 인가? … 다 들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는 내게 맡기고 편안히 쉬어라!”

선두가 말한다, “저희들은 중대장님을 따라 가겠습니다. 어디든 데 려가 주십시오!”

잠시 선두와 눈싸움을 하던 것 같던 장교가 안되겠는지 마침내 울 먹이며 구령을 내린다.

“중대, 전원 차렷! … 뒤로 돌아! … 앞으로 가!”

명령에 따라 그대로 뒤로 돌아 고스란히 굴 속으로 사라져 들어가 는 유령부대 부하들을 향해 장교가 차렷 자세로 경례를 부치고 있다.

차차 멀어져가는 소리, 저벅저벅, 저벅저벅, 저벅저벅 ….!

이상이 [꿈]의 제4편 이야기이다.

이것이 꼬리히도 섬 동굴에 대한 구로자와의 대답이었고, 내게는 이것이 일본판(日本版) ‘비목’으로 들려왔다. 구로자 와는 이 영화에서 부상한 탓에 본의 아니게 혼자 살아남아 생긴 죄책감을 안고 앞서 간 전우들의 뒤치다꺼리를 해 주는 일본군장교를 만들어 내었다. 자신을 그 장교에 비유했다 할 수 있다. 태평양 전쟁 때 그는 아마 30대 후반이 아니었 을까 한다.

구로자와의 [꿈], 그것은 얼마 전 미국 판 ‘비목’영화 [이오 지마]를 보면서 내 머리 한구석에 떠올랐던 이름이기도 하다.

편집자주: 구로자와 아키라(黑澤明 1910~1998)는 일본의 영화감독이다. ‘라쇼몽(羅生門)’으로 1950년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 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대표작으로 ‘7인의 사무라이(1954)’, ‘요짐보(1964)’, ‘카게무샤(1970)’, ‘란(1985)’ 등이 있다.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