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 우리 옛길 걷기 ㅣ 28
바람이 들려주는 옛사람의 흔적들
신정일 | 문화사학자,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 「새로 쓰는 택리지」 저자([email protected])
용화에서 호산에 이르는 관동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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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들 중 빼놓으면 서운한 곳이 바로 용화해수욕 장과 장호해수욕장이다. 이 해수욕장들이 가장 잘 보이 는 곳이 마라톤 영웅 황영조의 고향인 초곡에서 고갯마 루를 넘어 용화로 가는 길이다. 막힌 가슴을 그야말로 확 뚫리게 하는 곳, 이곳에 서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장유(長孺) 서익손(徐益孫)은 경치 좋은 곳을 찾아 길 을 떠나는 것을 즐겨했는데, 그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다 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내게 눈도 있고, 발도 있으 므로 내가 갈 수 있는 곳에 경치 좋은 산천이 있으면 내 가 즉시 간다. 그러면 내가 바로 이 경치 좋은 산천의 주 인이 되는 것이다.”
하얀 모래사장과 푸른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를 바라 보면 세상이 달리 보이는 삼척시 근덕면 용화리(龍化里) 는 조선시대에 용화역이 있었기에 지어진 이름이다. 이 곳에 있던 용화역을 두고 정추(鄭樞)는 다음과 같은 시 를 남겼다. “누런 먼지 가득한 모자와 바람 가득한 소매 는, 말 안장을 잠깐 나무 그늘 속에 풀었네. 역사람(郵 人)이 말을 재촉해 사람을 부르는데, 한 줄기 저녁 노을 에 산이 붉게 물든다.”
장호리(莊湖里)는 장호동, 장호진, 장오리, 장울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지형이 장오리(수오리) 같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두 개의 항구와 장호항이 어우러 져 천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풍경을 멀리 하고 관동 대로 옛길에 접어든다.
사라진 옛길을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 길 을 개척할 때의 걱정이 ‘내가 가는 길이 과연 제대로 맞 는가’라는 생각이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 나타나 있 는, 옛길을 표시한 5만분의 1 지도 한 장만 달랑 들고 떠나는 천리 길 여정에 복병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한시라도 한눈을 팔 수가 없다. 조금만 방심하 다 보면 딴 길로 가게 되서 되돌아오는 내가 한심해지 용화해수욕장
기 때문이다.
마을 앞에는 지금도 새끼줄이 남아 있는 당집이 나무 들에 둘러싸여 있다. 마을 길에 접어들자 수령이 제법 오래된 듯한 소나무가 마을 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서 있 어 표지판을 보니 300년이 넘었단다.
마을 사람들에게 “이 길을 넘어 가면 임원리로 가는 길이 나옵니까?”라고 묻자 “이 길을 따라 쭉 가면 됩니 다”라고 한다. 마을을 벗어나면 흙길이다. 흙길은 어디 서든 괜찮지만 포장되지 않은 길에 밤새워 내린 비가 흥 건하여 진흙탕 위를 걷는 것과 같다.
4차선 자동차도로가 개설되는 도로공사장 아래를 지 나면 그곳에서부터 온전히 옛길이다. 추수를 끝낸 논배 미들이 겹겹이 포개져 보이는 길은 휘돌아가고, 날은 봄 날과 같이 아주 포근하다. 논들이 끝났는데도 이어지는 옛길을 보며 ‘길이 이대로 임원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희 망이 이루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온 산천이 다 빨갛고 노랗게 물들었다. “예전에는 어 른들이 단풍놀이 간다고 하시면 뭐하러 가는지 이해가 안 되었어요. 그런데 요즘 답사를 다니면서 단풍을 보 니 이제야 이해가 돼요. 원래 없었던 단풍이 마치 요사 이 생긴 것 같아요.” 경이의 눈빛으로 물든 단풍을 바라
보던 일행의 말이다. 그의 말을 받아 다른 일 행도 내게 한마디 한다. “저도 그런 느낌이 에요. 젊은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작은 것 들이 나이가 드니까 보이는 것 같아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예전의 그 나무나 풀 이 아닌 것 같아요. 내게 막 달려드는 것 같 기도 하고,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해요.” 그 말이 맞다. 모든 사물들에 의미를 부여할 때 그 사물들은 그 전까지 보았던 사물들이 아 니고 새로운 사물이 되는 것이다. 사람도 마 찬가지다.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던 사람이 내 마음에 깊숙이 담기는 그 순간부 터 그 사람은 오직 한 사람으로만 내 가슴에 안기게 되 는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 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 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라고 노래 한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처럼…….
우리 모두가 꽃이 되고, 단풍이 되고, 흐르는 개울물 이 되어 고개를 오르다 보니 공사차량이 눈에 띈다. 알 고 보니 이곳까지 임도(林道) 차원에서 시멘트 포장을 하는 중이란다. 다시 이 길을 걸을 때는 이렇게 고적하 고 포근한 흙길을 볼 수 없겠다는 서운함이 들지만, 어 쩔 수 없는 일이니 국가에서 이렇게 잘 남아 있는 옛길 을 보존하여 사람들이 더 많이 걸을 수 있도록 하고, 그 래서 후세에 길이길이 남겨주기를 바랄 뿐이다.
고갯마루에 올라서 보니 우리가 한 발 한 발 걸어온 골짜기 너머에 푸른 바다가 그림처럼 보인다. 그 당시 바닷길은 벼랑이 많았기 때문에 왕래하기가 힘들었을 것이고,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사람과 마소(馬牛)가 다 니기 쉬운 골짜기와 고갯마루를 넘는 지름길을 택해서 길을 냈을 것이다. 이 고갯마루에 서서 내가 걸어온 길 을 바라보자 왜 이곳이 관동대로의 길목이었는가를 짐 ㅣ 우리 옛길 걷기 ㅣ 28
용화마을 산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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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시작했는지 그 세월조차 짐작할 수 없게 허물어져가 는 돌무더기, 저 모습이 바로 세월이고 역사일 것이다.
이 길을 지나던 나그네들이 그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하나씩 쌓았을 돌무더기들이 허물어지며 내는 소리가 문득 들릴 법도 하다.
사람들의 발길이 멀어지면서 잊혀진 길, 그 길 위에 서 있자 유진택 시인의 ‘잊혀진 길’이라는 시 한 편이 떠 오른다.
“언제부턴가 그 길은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 무수한 사람들의 소란스럽던 발길은 끊어지고 / 대신 크지 못하 던 질경이와 그 질경이의 뚝심 같은 햇살이 / 길을 덮고 있었다 / 하나둘 포근한 하늘 속으로 들지 못한 넋들이 / 그 길가에 서성이며 수런수런 풀들의 흐느낌으로 묻혀 갈 때 / 난 알았다. 그 길을 열고 닫는 건 아직도 낯선 길 가에 서성이는 / 생명의 귀한 넋들이란 것을”
길은 두 갈래다. 바로 골짜기로 통하는 옛길과 산 능 선으로 이어진 임도, 옛길의 특성상 아랫길이 맞을 것이 다. 얼마쯤 내려갔을까? 누군가의 무덤 두 기가 나타나 고, 그곳에서 조금 더 내려가자 큰 길이다. 그곳에서부 터 옛날 사기점이 있었던 곳까지의 길은 탄탄대로다. 사 긋말이라고 부르는 사기점마을에 들어서자 오래되어 부 서져가는 다리가 보이고, 여기저기 들어선 펜션이 몇 채 보인 후 조금 더 내려가자 옛 시절 절이 있었다는 절터 골이다. 이곳에서 호산으로 가는 길은 5만분의 1 지도에 도 나와 있지 않은 옛길이다.
만든 지 오래된 듯한 절터골교를 지나자 훤칠한 대장 부처럼 잘생긴 소나무 두 그루 밑에 당집이 있다. 밭을 매는 마을 사람에게 길곡으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능선 을 타고 가다 돼지 막사를 만나면 그곳에서 물어보고 내 려가면 호산인기라”라고 이야기한다.
길은 처음부터 가파르다. 울진삼척지구에 산불이 일
어났을 때 불에 탄 나무들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 길 은 능선을 따라 이리저리 이어진다. 이 길이 과연 맞을 까 의구심이 들지만 나를 믿고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그 속내를 털어놓을 수도 없다. 한참을 오르자 개 짖는 소 리 들리더니 우르르 따라 짖는 소리, “개 한 마리가 헛 짖 으면, 뭇 개는 따라 짖는다”라는 옛말이 맞다. 결사적으 로 우리를 향해 짖는 개들, 완전히 개판이다. 하지만 개 만 있고 사람은 없다. 그곳에서 산길은 휘돌아가며 마치
‘차마고도’를 연상하게 하는 풍경이 나타난다.
이런 길을 걸으면 “여행을 많이 하시는 분은 마음이 넓으셔서, 참고 이해해주시는 일에 익숙하니까요”라는
「파우스트」의 한 구절처럼 마음이 넓어질 것도 같다. 하 지만 그것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나는 일행들을 뒤따라가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그곳 에서 능선에 오르자 길은 또 다시 두 갈래 길이다. 인적 이 끊어진 길에서 길을 잃으면 길을 물어볼 사람이 없는
절터골 소나무
것이 언제나 문제다. 지금도 그렇다. 길은 확실하지 않 고 표지판도 없으니 믿을 것은 지도뿐인데, 지도를 보면 아무래도 바다 쪽보다 산 쪽으로 이어진 길이 맞을 듯싶 어 위쪽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바다와 산이 만나는 곳, 멀리 바라다보면 수평선 너머 보이는 바다와 하늘에 잇 닿은 듯한 산 능선, 그런데 길은 자꾸만 바다 쪽에서 멀 어져 간다. 아무래도 아래 골짜기로 내려가야 제대로 된 길에 이를 것 같아서 골짜기 깊숙이 내려가다가 결국 길 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 길이 아닝개벼”라고 하는 순간부터 시련은 시작 된다. “걸음만 급하고 길은 찾지 못한다(利足而迷)”라는 순자(荀子)의 말처럼 ‘어디로 해서 어디로 간다’라는 공 식이 없어지고, 몇 가지 방법밖에 없다. 처음에 온 길 로 되돌아가서 시작을 하든지, 아니면 감(感)으로 맞다 고 생각하는 길을 잡아서 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처음 가고자 했던 내려가는 길을 따 라가자 멀리서 보았던 사당 같은 건물이 바로 관동대 로변에 서 있는 소공대비(召公臺碑)다. 길을 잃었던 우 리들이 늦게나마 제대로 길을 찾아 온 것이다. 기쁨에
겨워 바라본 소공대비는 조선 초기의 명 재상인 황희(黃熹)에 얽힌 비석이다. 조 선 태종 3년인 1403년에 관동지방(關 東地方)에 큰 기근이 들어 수많은 사람 들이 굶어 죽게 되었다. 그때 이명덕(李 明德)이라는 관찰사가 백성들을 잘 보 살피지 못하자, 황희가 대신 가서 백 성들을 구호하고 이 고개의 바위 위에 서 쉬었다고 한다. 황희의 현손인 맹헌 (孟獻)이 강원도 관찰사가 되어 이곳에 오 게 되자 이 사실을 적은 비를 세웠고, 그 비는 현재 강원도 문화재 제107호로 지 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비를 세운 뒤부터 임원항 서쪽에 있는 이 고개를 소 공령(召公嶺)이라고 불렀다. 평해로 유배를 가던 이산해 가 지은 시에는 “높고 높은 소공대에서는 멀리 울릉도 가 역력히 보였고”라는 구절이 있는데, 오늘은 날이 맑 은데도 울릉도가 보이지 않는다. 소공대비 앞에 배낭을 벗어놓고 앉아서 바라보자 점심을 먹었던 임원항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올망졸망한 집들 사이로 사람들의 모습까지는 보이지 않고 임원항으로 들어오는 한 척의 배를 바라다보며 「지비록(知非錄)」에 실린 한 편의 글을 떠올린다.
“일찍이 높은 산에 올라 성시(城市)를 내려다보았다.
성이 개미집처럼 보이니, 모르겠지만 거기에 있는 사람 은 얼마나 되겠는가? 높은 데서 내려다보니 세상 사는 것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이 산이 성의 높이보다 과연 얼마나 더 높겠는가, 그런데도 이렇게 보이는데 진정으 로 진짜 신선이 하늘 위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본다면, 개미집같이 보일 정도뿐이 아닐 것이다.”
그래, 이렇게 높게 혹은 멀리서 바라보면 세상이 정 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과 가까이에서 느끼며 사는 것의 차이를 생각하면서 아름 ㅣ 우리 옛길 걷기 ㅣ 28
소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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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기 이를 데 없는 관동대로를 내려갔다.
구부러지고 휘어지는 길, 이 길을 한 번이라도 걸어 본 사람들은 이 길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하늘 과 산과 바다가 맞닿은 길, 그래서 내가 즉석에서 한국 의 ‘차마고도’라고 명명지은 길, 이 길을 걸어서 삼척으 로, 평해로 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들이 올올이 남 아 바람결에 들려주는 길이 바로 이 길이다. 그 길을 한 참 내려가자 기적처럼 길곡마을이 나타났고 그 마을에 서 장재용 옹에게 옛 이야기를 들었다.
“벌써 옛날이지요. 어린 시절에 사람들이 말 타고 고 개를 넘어가는 것을 보았어요. 호산장터에서 장을 본 장 사꾼들이 7, 8명씩 떼를 지어 저 길을 오고갔어요. 장사 하는 사람들은 돈을 모아가지고 소공대 맞은편 제사 지 내는 데 가서 장사 잘되게 해달라고 제사를 지냈어요.”
내가 언제까지 사람들이 많이 다녔는지를 묻자, “1930 년대 말에서 1940년대 초까지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어 요”라고 한다.
지나간 시간들을 탓해서 뭐하랴. “고생 중에서도 즐 거움이 있다(苦中作樂)”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돼지 막사에서 나와 두 갈래 길에서 헤맨 시간이 한 시 간, 거의 5, 6km를 까먹고 말았다.
언제나 그랬다. 순간의 실수로 길을 잘못 들어 길을 잃고 헤맨다. 그러다가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 지나간 시 간들을 더듬어 보는 그러한 시간이 인생사에 얼마나 다 반사였던가? 중요한 것은 내가 길을 잘못 들어 그런 일 이 벌어졌는데 ‘심봉사가 개천을 나무란다’라는 격이다.
길을 잃어서 늦게 도착한 호산 삼거리, 저물어 가는 가을 햇살은 처연하게 아름답고 하늘에는 초이레 달이 수줍은 듯 떠 있다. 어느새 내 머리 위를 따라 온 달을 보자 문득 백거이의 시 한 구절이 슬픔처럼 떠올랐다.
“어느덧 달은 뜨고, 오늘은 또 어느 집에서 머물게 될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