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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5·18 다큐멘터리가 생성하는 ‘거짓의 역량puissance du fa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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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다큐멘터리가 생성하는 ‘거짓의 역량(puissance du faux)’

: <김군>(2018)을 중심으로*

김태환** 유지나***

I. 들어가며

II. 다큐멘터리와 진실의 문제 III. ‘거짓의 역량’으로서의 다큐멘터리 IV. <김군>이 생성하는 거짓의 역량 1. 사진의 운동성

2. 사적 기억의 자유간접화법

3. 재현불가능성을 넘어서는 감정-이미지 4. 증언 주체의 해체

V. 나가며

I. 들어가며

5·18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5·18은 단 하나의 ‘진실’이 아닌 다층 적 ‘기억’들로 형성된 현재진행형의 역사로 소환된다. <김군>(2018, 강상 우)은 5·18에 대한 논쟁의 영역에 과감하게 개입하는 역사 다큐멘터리이 다. 그간 한국 역사 다큐멘터리는 은폐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발과 계 몽의 메시지를 던져왔고, 소통을 통해 역사적 상상력을 구축함으로써 ‘기

논문투고일 : 2021.04.30. 심사완료일 : 2021.05.18. 게재확정일 : 2021.05.18.

* 이 논문은 2020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20S1A5B5A17089082)

** 주저자.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영화영상학과 박사수료

*** 교신저자.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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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 투쟁’을 행한 대안역사(counter-history)의 장이었다.1) <김군>은 이 러한 한국 역사 다큐멘터리의 계보에서 5·18의 기억 주체 문제를 건드리 는 대안역사의 생성과정을 제시한다. 대안역사의 생성과정은 5·18을 겪 지 않은 세대로서 이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즉 ‘포스트메 모리’의 문제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 연구는 진실과 거짓이라는 이원론적 역사 프레임 을 돌파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에 대한 고찰을 시도한다. 이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을 위해 들뢰즈가 시네마2: 시간-이미지에서 제시한 ‘거짓의 역량(puissance du faux)’ 개념을 활용한다. 거짓의 역량이란 진리에 대 한 서사를 파괴하고, 진실과 거짓이라는 이원론을 넘어서는 가치를 생성 하는 힘이다.2) 바로 그런 점에서 거짓의 역량은 5·18의 포스트메모리를 생성하는 <김군>을 관통하는 핵심적 개념이기도 하다.

<김군>은 ‘증언(불)가능성’과 ‘포스트메모리’ 개념을 통해 연구된 바 있 다. 백규석은 역사의 증언불가능성 문제를 극복하는 상상적 가능성을

<김군>에서 발견하고 ‘김군’이라는 ‘고유명’을 찾아가는 과정을 철학적으 로 분석한다.3) 배주연은 5·18에 대한 기억 주체의 ‘당사자성’ 문제를 거 론하며 <김군>의 포스트메모리적 정동을 다룬다.4) 이 연구들은 ‘역사적 텍스트’로서 <김군>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데 크게 기여하나, ‘다큐멘터 리’라는 매체가 가진 영화적 역량에 대한 문제까지는 다루지 않은 것으 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김군>은 증언과 기억의 문제를 제기하는 ‘다큐 멘터리 영화’로서 분석돼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김군> 텍스트를 통해서 다큐멘터리가 마 주하게 되는 ‘진실의 문제’를 다룰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전복하

1) 이승민, 「한국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의 오늘: 은폐된 역사를 기록하는 다양한 미학적 실천들」,

인문학연구 56권,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8, 79~80쪽.

2) 강선형, 「들뢰즈와 바디우의 영화론에서 ‘거짓’이 만들어내는 역량(puissance) 문제」, 철학연 구 56권,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2017, 236쪽.

3) 백규석, 「‘증언(불)가능성’의 문제를 다루는 영화적 재현 방식의 두 가지 사례: 영화 <사울의 아들>과 <김군>을 중심으로」, 한국영상학회 논문집 17권, 한국영상학회, 2019.

4) 배주연, 「포스트메모리와 5.18: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을 중심으로」, 서강인문논총 57권,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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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거짓의 역량’ 개념을 통해 다큐멘터리 형식에 대한 고찰을 진행하고, 실질적으로 ‘거짓의 역량’이 영화적으로 생성되는 과정을 <김군> 텍스트 분석을 통해 살펴볼 것이다.

II. 다큐멘터리와 진실의 문제

다큐멘터리는 ‘진실의 문제’라는 의혹의 심판대에 빈번하게 올라왔다.

이 문제는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것이 사실(fact)인가’라는 물음을 내재 한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이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답하려면 다큐멘터리 의 정체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큐멘터리의 원형은 존 그리어슨이

<모아나>(1926, 로버트 플래허티)에 대해 “다큐멘터리 가치가 있다”라고 서술한 데에 있다. 다큐멘트(document)의 어근은 라틴어 ‘도세르 (docere)’에서 비롯된 것으로 ‘가르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5) 그러나 당 시 다큐멘터리는 어떤 사실이나 사건에 대해 가르치고, 선전하는 차원의 매체로만 여겨지지는 않았다. 존 그리어슨은 다큐멘터리를 ‘현실의 창조 적 처리’라고 정의한다.6) 이 정의는 그가 다큐멘터리 역시 극영화처럼 창조의 영역을 동반한다는 점을 지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달리 빌 니콜스는 다큐멘터리가 현실의 ‘재생물(reproduction)’

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점하고 있는 세계의 ‘재현(representation)’이라 고 서술한 바 있다.7) 이러한 구분을 통해 ‘다큐멘터리’와 ‘현실’의 관계 를 보다 엄밀하게 경계 짓고, 다큐멘터리에 대한 보다 명증한 정의와 형 식을 찾아 나선다. 또한 “극영화가 연속 편집에 의해 획득하는 것을 다 큐멘터리 영화는 역사에 의해 획득한다”8)라고 주장함으로써 인간이 공유 하는 역사적 현실과 다큐멘터리와의 긴밀한 관계를 드러냈다. 이처럼 빌 니콜스는 다큐멘터리의 ‘창조성’보다 ‘재현’에 방점을 찍고 있다.

5) 잭 엘리스·베시 멕레인,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역사, 허욱 외 옮김, 비즈앤비즈, 2011, 16쪽.

6) 위의 책, 9쪽.

7) 빌 니콜스, 다큐멘터리 입문, 이선화 옮김, 한울아카데미, 2005, 55~56쪽.

8) 위의 책,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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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큐멘터리의 정체성은 그런 주장에 쉽게 포섭되지 않는다. 다 큐멘터리는 창조와 재현의 경계를 넘나들며 주관적 세계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다큐멘터리는 극영화와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 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는 영화언어가 진화하며 새로운 표현방식이 등 장하는 영화사의 과정에서 공존해왔다.9) 대표적으로 마이클 무어의 다큐 멘터리는 세계를 충실하게 재현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왜곡 편집을 통해 정치적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진실 왜곡 문제는 항 상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에 제기됐다. 또한 평론가나 저널리스트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마이클 무어 작품들의 의도적인 진실 왜곡을 비판했 다. 이런 점에서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수사학은 극영화의 성격을 띤다. 그러나 다큐멘터리가 믿을만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다고 해서 극 영화로 규정되지는 않는다. 단지 왜곡된 정보에 대한 문제 제기가 발생 하는 구심점으로서 다큐멘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축해나간다.

1960년대 프랑스의 ‘시네마 베리테’, 미국의 ‘다이렉트 시네마’가 등장 하면서 다큐멘터리는 ‘진실’의 문제와 본격적으로 마주했다.10) 시네마 베 리테의 방법론은 제작진이 개입함으로써 인물들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었던 반면, 다이렉트 시네마는 최대한 제작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관찰 자적 입장을 고수했다.11) 전자의 방식이 진실을 ‘구성’해나가는 것이라 면, 후자의 방식은 진실을 ‘발견’해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구성이 현실을 창조적으로 처리하는 일이라면, 발견은 세계를 재현하 는 일에 가깝다.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모든 영화는 원초적으로 프레임화 돼있다. 즉, 어떠한 대상을 다루든지 그것을 다루는 일 자체가 이미 주관 적이다. 영화 이전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 적 양식’, ‘관찰자적 양식’, ‘수행적 양식’ 등 빌 니콜스가 유형화한 다큐 멘터리의 형식 역시 언제나 주관적 프레임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단 지 ‘객관에 가까운 주관’ 혹은 ‘주관에 가까운 주관’의 형식들이 존재할

9) 서현석, 「‘진실’의 끔찍한 무게: 마이클 무어와 다큐멘터리의 유동성」, 한국언론학보 48권 6 호, 한국언론학회, 2004, 404쪽.

10) 위의 논문, 408쪽.

11) 위의 논문, 4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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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이다.

이처럼 픽션과 논픽션을 나누는 경계가 부정확하고 모호하지만, 다수 는 그 경계선이 실재한다고 믿는다.12)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진실은 구 성되기도 하고 발견되기도 한다. 진실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진실 여 부는 다큐멘터리의 정체성을 가르는 온전한 척도가 될 수 없다. 다큐멘 터리는 논쟁적이고 불온한 세계 속에서 ‘진실의 유동성’과 관계할 뿐이 다.

‘진실의 유동성’은 역사 다큐멘터리의 ‘증언’ 문제와 만난다. 진실은 입 장에 따라 유동적이나, 권력은 ‘하나의 진실’을 선택하고 고수한다. 권력 적 진실은 타자의 증언을 소외시키거나 심지어 소멸시킨다. 이에 아감벤 은 진실에 대한 ‘윤리적 범주’와 ‘법적 범주’를 혼동하는 상황을 강조한 다.

“진실에는 비법률적인 요소가 존재하며 그렇기 때문에 ‘사실의 문제’는 결코 ‘법의 문제’로 축소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생존자들이 우려하는 것이다. 즉 인간의 행동을 법 너머의 문제로 치부하고 재판과는 철저히 무관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그 모든 것 말이다.”13)

이에 따르면 법의 언어로 환원될 수 없는 진실이 존재한다. 아우슈비 츠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은 이 지점에 존재한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들’이 아우슈비츠의 ‘죽음’을 증언할 수 있을까? 여기서 증언의 공백이 발생한다. 증언의 공백이란 증언의 불가능성에 대한 증언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언어화될 수 없는 공백을 통해 증언한다.

아감벤의 통찰은 진실 증언 주체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누가 죽음 의 역사와 여기에 내재한 진실을 증언할 수 있는가? 전통적인 증언 형태 는 증언하는 사건에 증인이 현존하고, 증언하는 순간에도 증인이 현존해 야 한다.14)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객관적 증언’이 아닌, ‘편집된 증언 이

12) 빌 니콜스, 앞의 책, 81~82쪽.

13) 조르조 아감벤,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 문서고와 증인, 정문영 옮김, 새물결, 2012, 23쪽.

14) 양운덕, 「몸, 권력, 이미지 ; 침묵의 증언, 불가능성의 증언: 아감벤의 생명 정치의 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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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를 제시한다. 이로 인해 다큐멘터리는 증인의 직접적 현존이 될 수 는 없다. 다만 한 편의 다큐멘터리는 권력적 진실 반대편에 존재하는 또 다른 진실을 제시하는 ‘사건’이다.

Ⅲ. ‘거짓의 역량’으로서 다큐멘터리

진실이 유동적인 것이라면 ‘거짓된 다큐멘터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 다. 하지만 진실과 거짓이라는 경계선은 ‘믿음’의 영역에서 존재한다. 다 큐멘터리는 이러한 경계에서 진실 검증을 요청받는다. 그러나 들뢰즈는 진실과 거짓의 검증이 아니라 이러한 이원론 자체를 문제 삼는 ‘거짓의 역량’ 개념을 제시한다.

“서사는 진리언표적이기를 그치고, 다시 말하면 참임을 주장하기를 그 치고 본질적으로 거짓을 만들어내는 것이 된다. 이것은 ‘모든 것은 각 자 진실이다’라는, 내용과 관련된 다양한 변주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것은 함께 가능하지 않은 현재들의 동시성, 혹은 비-필 연적으로 참인 과거들의 공존성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참의 형태를 대체 하고 실각시키는 거짓의 역량이다.”15)

‘거짓의 역량’은 감각-운동적 구조의 붕괴를 예견하는 결정체적 서사 의 특징이다.16) 결정체적 서사에 다다른 영화는 진실과 거짓의 구분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것이 ‘모든 것은 각자 진실’이라는 변주 양 상을 뜻하는 게 아니다. 즉, 거짓의 역량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 인문학연구 37권,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09, 86쪽.

15) 질 들뢰즈, 시네마2: 시간-이미지, 이정하 옮김, 시각과 언어, 2005, 264쪽. 강조는 필자에 의함.

16) 감각-운동 구조는 시간이 운동에 의존하는 형태로 공간 내 힘의 중심에 의해 형성된다. 이미 지를 운동에 종속시키는 고전 할리우드 영화의 유기적 체제가 감각-운동 구조의 대표적 사례 가 될 수 있다. 결정체적 서사는 감각-운동 구조를 붕괴시키고 비-연대기적인 구조로 시간- 이미지 자체를 드러낸다. 위의 책, 258~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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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와 같은 양가성을 넘어서는 메타적 개념이다.

양가성을 넘어선다는 것은 함께 가능하지 않은 것들의 동시적 공존성 을 제시함으로써 진실의 형태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즉 거짓의 역량은 진실/거짓 판단체계의 해체 과정을 지시한다.

들뢰즈는 철학의 시작을 모든 전제를 배제하는 무전제로부터의 출발이 라고 주장한다.17) 이러한 견해는 그의 영화철학에서도 드러난다. 진실/

거짓 판단체계는 관습적 전제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거짓의 역량’

은 이러한 전제를 해체하는 과정이다. 동시에 들뢰즈는 전제를 와해시키 는 거짓의 역량이 “판단체계를 재건하는 것”18)이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이 반문은 진실과 거짓이 ‘생성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거짓의 역량이 해석하고자 하는 것은 ‘의미’가 아니라, ‘무엇이 의미를 만드는가’이다.19) 즉, 의미의 생성과정이 관건이다. 세계가 ‘다양한 힘들 의 생성’이라면 의미와 판단체계의 ‘중심’은 사라진다. 따라서 거짓의 역 량이란 거짓을 힘의 생성 차원으로 끌어올리면서 삶을 진실의 판단체계 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20) 들뢰즈에 따르면 시네마 베리테 역시 진실 의 모델을 해체하는 운동이다. 진실의 모델을 파괴함으로써 영화 스스로 진리의 창조자이자 생산자가 되는 것이다.21)

거짓의 역량에는 ‘이야기 꾸며대기’ 기능이 존재한다. 들뢰즈는 시네마 베리테를 언급하면서 ‘이야기 꾸며대기’의 특징을 “생생하게 포착된 전설 화하기”22)라고 서술한다. ‘전설화하기(légender)’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 한다. 하나는 말 그대로 ‘전설화’, ‘신화화’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지에 주석을 달거나, 해석을 단다’는 의미이다.23) 이에 따르면 시네마 베리테 의 ‘전설화하기’는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하나는 재-신화화를 통한

‘신화의 전복’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이미지의 해석을 통한 새로운 ‘의미

17) 강선형, 앞의 논문, 238쪽.

18) 질 들뢰즈, 앞의 책, 281쪽.

19) 데이비드 노먼 로도윅, 질 들뢰즈의 시간기계, 김지훈 옮김, 그린비, 2005, 262쪽.

20) 질 들뢰즈, 앞의 책, 286쪽.

21) 위의 책, 296쪽.

22) 위의 책, 296쪽.

23) 데이비드 노먼 로도윅, 앞의 책, 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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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생성’이다.

이런 의미에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범주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오히려 텍스트의 의미생성 과정에 도움 되지 않는다. 극영화의 ‘구성된 이미지’와 다큐멘터리가 포착한 ‘현실의 이미지’가 서로 구별되지 않고 모두 ‘실재하는 것’으로서 재개념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24) 즉, 모든 이 미지는 잠재된 것이 현실로 드러나는 ‘힘의 생성’ 과정이다. 이 힘들은 진실/거짓 판단체계에 포획되지 않는다. 각자가 다양성으로 공존하기 때 문이다. 결국 ‘거짓의 역량으로서 다큐멘터리’는 진실/거짓 판단체계의

“식별불가능성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문제 제기 역량’을 가 진 것”25)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 역량은 여태껏 선행하는 판단체계의 전 제를 해체 시키고, 새롭게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Ⅳ. <김군>이 생성하는 거짓의 역량 1. 사진의 운동성

<김군>은 5·18 당시 찍힌 한 장의 사진 속 인물을 추적해가는 다큐멘터리이다. 사 진 속 인물은 바로 ‘김군’으로 명명되는 인물이다.(<사진1>) 제목에서도 알 수 있 듯이, 그의 신원은 미궁이다. 몇몇 극우파 정치인과 지지자들은 그의 신원을 줄곧 문제 삼는다. <김군>은 1989년 1월 26일 열렸던 ‘제25차 5·18광주민주화운동 특별조사회’(이후 25차 특별조사회) 의 영상을 오프닝 시퀀스에 배치함으로써, 당시 시민군의 신원을 문제

24) 그레고리 플랙스먼 엮음, 뇌는 스크린이다: 들뢰즈와 영화철학, 박성수 옮김, 이소출판사, 2003, 285쪽.

25) 이지영, 「들뢰즈의 <시네마2>의 구조에 대한 연구: ‘거짓의 역량’을 중심으로」, 철학사상

51권,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14, 271쪽.

<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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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았던 현장을 소환한다. 동아일보 기자 김영택은 여기서 ‘복면부대’의 신원에 의문을 제기한다. 복면부대가 대체로 강경파였고, 과격했으며 복 면을 한 것 자체가 의문이라는 그의 목소리는 오프닝 시퀀스의 권력으로 작동한다. 김영택의 목소리는 사진 속 복면부대의 이미지를 주관적으로 해석한다. 프레임 밖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영화에 나열되는 사진 들의 ‘의미’를 지배한다. 권력의 목소리에 따라 총을 든 사내는 강경파로 읽히거나(<사진2>), 차를 타고 이동하는 폭도처럼 보이기도 하며(<사진 3>), 차량을 탈취하는 무장단체(<사진4>)로 해석될 여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사진이 <김군>의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순간 의미는 변화한다.

오프닝 시퀀스에 연쇄적으로 등장하는 5·18 사진은 운동-이미지라는 영 화의 존재론과 접합된다. 들뢰즈는 베르그손의 ‘지속’ 개념을 통해 영화 적 운동의 의미를 심화시킨다. 그에 따르면 ‘설탕물’이 곧 ‘설탕’과 ‘물’

로 단순 환원되지 않는 것처럼 영화 또한 포토그램의 집합으로 환원되지 않는다.26) 즉, 영화는 운동-이미지의 지속이다. 이러한 운동-이미지와 접 합된 ‘사진’은 본래의 속성에서 벗어난다. <김군>의 사진은 결국 ‘사진 몽타주’이다.

<사진2> <사진3> <사진4>

‘사진 몽타주’는 사진에 운동의 속성을 부여한다. 배치에 따라 다양한 의미가 생성되고, 영화언어와 협업하면서 ‘운동하는 사진’으로 나아간다.

다소 단순하고 노골적인 방식이지만 <김군>은 5·18 당시 광주 도청 앞 분수대에 모인 시민들의 사진부터 금남로의 시위 현장 사진들을 스톱 모 션(stop motion) 형식으로 재생하면서 사진에 운동성을 부여한다. 이로

26) 질 들뢰즈, 시네마1: 운동-이미지, 유진상 옮김, 시각과 언어, 2002, 7~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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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해 ‘과거로서 5·18 사진’은 현재적 운동성을 획득한다. 현재적 운동성 은 5·18을 현재화하고, 포스트메모리적 시선으로 5·18 다시 읽기를 요구 한다.

2. 사적 기억의 자유간접화법

25차 특별조사회 장면 이후, 폭도로 의미화된 사진(<사진5>)의 해석 주체는 5·18의 생존자 가족에게 넘어간다. 즉, 과거 5·18 사진은 현존하 는 시민군(<사진6>)과 희생자의 어머니(<사진7>)의 클로즈업 쇼트를 통해 현재화된다. 이것은 곧 프레임 밖에서 들려오는 ‘김영택 기자 목소리’와, 현존하는 ‘5·18의 얼굴’ 간에 발생하는 ‘충돌 몽타주’이다. 생존자들은 사 진을 해석하면서 오프닝 시퀀스에서 ‘복면부대’이자 ‘폭도’로 의심받은 존재자들의 의미를 밝혀나간다. 앞서 언급했던 아감벤의 주장처럼 진실 에는 비법률적 요소가 존재하나, 이는 ‘법의 문제’로 축소되기도 한다.

이에 대항하는 것이 바로 생존자들의 ‘사적 기억’이다.

<사진5> <사진6> <사진7>

<사진8> <사진9>

(11)

‘사적 기억’은 공적 역사가 아니다. 따라서 사적 기억은 사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발생시킨다. 생존자들의 다양한 해석이 진행되는 프레임 안에 ‘인터뷰어’가 등장한다. 생존자와 인터뷰어가 함께 한 쇼트를 공유 하거나(<사진8>), 심지어 인터뷰어가 초점의 주체가 되어 쇼트를 지배하 기도 한다.(<사진9>) 인터뷰어의 노출은 5·18의 흔적에 대한 직접적 참 여다. 동시에 <김군>은 카메라의 객관적 시점과 인물의 주관적 시점을 넘어서는 “자유간접화법”27)을 시도하게 된다. 자유간접화법은 ‘거짓의 역 량’의 또 다른 특성으로 나와 타자의 경계를 넘어서는 영화적 타자-되기 이다. 인터뷰어는 인터뷰이와 상호작용을 통해 보다 더 역사적으로 확장 된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28) 인터뷰는 생존자의 사적 기억을 ‘객관화’하 기 위한 참여인 것이다. 하지만 인터뷰어 또한 주관적인 존재자이다. 따 라서 이러한 ‘자유간접주관성’의 영역에서 사적 기억은 객관과 주관을 넘 나드는 ‘거짓의 역량’으로 작동할 수 있다.

생존자의 사적 기억은 김군의 신원(<사진1>)에 대한 증언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군인 같아 보이지 않는다.”, “학생 같기도 하다.”, “어떤 분인 지를 잘 모르겠다.”와 같은 증언들은 ‘해석’의 차원으로 넘어간다. 이에 인터뷰어는 노골적으로 김군이 “어떤 사람처럼 보이냐.”고 묻는다. 이것 은 김군의 ‘신원’이 아닌 ‘인상’에 대한 물음이다. 이러한 태도는 사진의 해석이 ‘검증’이 아니라 ‘거짓의 역량’일 수밖에 없음을 선언한 것과 같 다. 결국 인터뷰이에게 요구된 것은 기억 복원을 통한 진실 검증이라기 보다는 ‘기억 생성’이다.

그러나 지만원은 김군의 사진뿐만 아니라 수많은 5·18의 시민군의 신 원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에 따르면 사진 속 시민군 얼굴의 외곽선을 기 하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북한군과 일치한다. 이렇게 밝혀진 북한군은

‘광수’로 명명된다. 기하학은 공간의 수리적 성질을 연구하는 수학의 분 야다. 여기서 지만원이 언급한 ‘기하학적’이라는 것은 3차원 이상의 공간 을 분석하는 현대기하학과 거리가 멀다. 단지 그는 ‘닮음’을 통해 사진

27) 질 들뢰즈, 앞의 책, 293쪽.

28) 빌 니콜스, 앞의 책,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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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얼굴의 신원을 밝히고자 하는 도구로써 고대의 기하학적 방법을 활용 한다.

생존자들의 사적 기억이 5·18의 얼굴들을 ‘생성’한다면, 지만원의 기하 학적 방법론은 얼굴들을 ‘환원’한다. 이러한 환원은 5·18의 얼굴들을 단 하나의 진실로 ‘박제’하는 행위다. 여기는 생성은 없으며, 고정된 진리와 진실의 추구만이 있을 뿐이다. 흥미로운 점은 생존자들이 사진을 해석할 때는 인터뷰어가 프레임 안에 등장해 객관화를 유도하지만, 지만원의 인 터뷰에서는 프레임 밖에 위치한다. 이에 따라 지만원의 주장은 주관적인 쇼트로 덩그러니 남겨진다. 즉, 지만원의 인터뷰는 자유간접화법을 통해 객관/주관 프레임을 넘어선 생존자의 인터뷰와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다. 외견상 중립적으로 양측의 의견을 담아내지만, <김군>의 정치적 태도는 명확한 편이다. 이는 생존자 편에 서서 “그들 자신이 ‘우리, 진리 의 창조자’라 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공동체”29)가 되게끔 유도하는 정 치적 태도이다.

지만원의 인터뷰에 이어 생존자들의 반론이 프레임 안으로 배치된다.

제44광수로 명명된 이는 당시 시민군 고광덕으로 밝혀지고, 제36광수로 지목된 이는 시민군 양동남으로 밝혀진다. 이들과의 인터뷰에서도 인터 뷰어는 프레임 안에 위치하여 객관화를 시도하지만, 그 의미작용을 단언 할 수는 없다.

3. 재현불가능성을 넘어서는 감정-이미지

양동남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5·18 당시 민주화가 무엇인지 알거나 의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단지 일반 시민들이 죽어 나가는 것에 반발하기 위해 운동에 참여한 것이라고 밝힌다. 또한 그는 전두환 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다고 말한다. 그의 증언은 5·18이 ‘민주화운 동’의 차원에서 정치적 성소(聖所)가 되는 과정에 대한 거짓의 역량이기 도 하다. 이에 따르면 5·18의 희생자, 생존자는 ‘순교자’로 신화화될 수

29) 질 들뢰즈, 시네마2: 시간-이미지, 앞의 책, 3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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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이제 <김군>은 5·18의 얼굴들이라는 타자 재현 문제와 만난다.

아감벤의 재현에 관한 논의는 5·18이 포스트메모리를 생성하는 거짓의 역량에 대한 윤리적 단서를 제공한다. 그는 ‘재현불가능성’이라는 현대철 학의 제안에 반론을 제기한다. 재현불가능성이란 ‘타자의 고통’을 이미지 안으로 불러오는 데서 출발한다. 손택은 타인의 고통이라는 잔혹함에 대 한 익숙함을 비판하며 이에 대한 재현이 ‘양심의 사각’을 만드는 행위라 고 지적한다.30) 아감벤은 이와 같은 재현불가능성에 대한 지지가 ‘재난 의 신화화’를 통해 이미지를 완전히 소거시킨다고 주장한다.31) 그리고 그는 이미지 소거의 이중성을 강조한다.

“사람들이 아우슈비츠가 ‘말해질 수 없다’거나 ‘불가해하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어느 신에게 그러는 것과 다름없이 ‘에우페멘’하는 것, 즉 조용히 경배하는 것이다. 그들의 원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는 아우슈 비츠의 영광에 기여하는 것이다.”32)

이에 따르면 가해자들 역시 이미지의 재현불가능성을 지지한다. 물론, 가해자의 경우 ‘재현의 숨김’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미묘하게 다르지만

‘재현의 숨김’과 ‘재현불가능성’의 결과만큼은 ‘이미지 소거’라는 부분에 서 유사하다.

그러나 ‘이미지 소거’라는 문제점이 곧 ‘재현의 윤리’를 무의미하게 만 드는 것은 아니다. 재현불가능성에 대한 저항은 “어떻게 재현할 것인 가?”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김군>은 생존자의 증언뿐만 아니 라, 일상에 접근한다. 5·18 당시 시민군에 주먹밥을 나눠줬던 ‘주옥’은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 <김군>은 그녀의 세탁소에 도달하는 과정의 뿌 리를 5·18에 두고 있다. 주옥은 5·18 사진을 바라본다.(<사진10>) 이후 익스트림 클로즈업 쇼트를 통해 그녀의 정동에 더욱 깊이 다가간다.(<사

30) 최종철, 「‘재난의 재현’이 ‘재현의 재난’이 될 때: 재현불가능성의 문화정치학」, 미술사학보

42권, 미술사학연구회, 2014, 67~72쪽.

31) 위의 논문, 82~83쪽.

32) 그리스어 에우페멘(euphemein)은 ‘경건하게 침묵을 지킨다’는 뜻이며, 완곡어법을 의미하는 유피미즘(euphemism)의 어원이다. 조르조 아감벤, 앞의 책,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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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11>) 그 헤아릴 수 없는 깊이가 오늘날 광주의 한 세탁소 근방으로 넘 어온다.(<사진12>)

<사진10> <사진11> <사진12>

이러한 깊은 “감정-이미지”33)(<사진11>)는 “대상을 시공간적인 모든 좌표들로부터 추상화”34)한다. 즉, 주옥의 얼굴을 통해 5·18의 시공간은 추상화된다. 이를 통해 5·18은 ‘과거’가 아닌 ‘오늘날의 감정’으로 밀려 들어온다. ‘감정의 역사’는 ‘법의 역사’라는 권력 앞에서 무력하다. 그러 나 감정의 역사는 생성의 ‘읽기’를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재현불가능성 을 조심스럽게 ‘거짓의 역량’이라는 생성의 영역으로 옮겨오는 일이다.

<사진13> <사진14> <사진15>

엔딩 시퀀스에서도 주옥의 얼굴은 광주를 덮쳐가는 감정-이미지로 등 장한다. 카메라는 세월호 시위 현장에서도 주먹밥을 나눠주던 그녀를 따 라간다. 그녀가 도달하는 곳은 한 건물의 옥상이다. 주옥은 광주를 내려 다본다.(<사진13>) 이 쇼트 또한 <사진11>의 감정-이미지와 유사한 구조

33) 들뢰즈는 클로즈업 쇼트를 감정-이미지라고 일컫는다. 지각한 것에 대해 행동으로 반응하기 전의 단계이자 사이의 영역이다. 질 들뢰즈, 시네마1: 운동-이미지, 앞의 책, 168~231쪽.

34) 질 들뢰즈, 시네마1: 운동-이미지, 앞의 책, 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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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5·18의 현장이었던 광주도청 앞 분수대가 풀 쇼트로 포착된다.(<사 진14>) 적막한 광주도청이 쇼트 안에 위치한다.(<사진15>) 이러한 쇼트 의 배치는 오늘날의 광주와 5·18을 추상화한다.

주옥의 시선을 이어받은 광주는 어디를 바라보는 것일까? 마지막 광주 도청 쇼트는 40초 가량의 롱테이크로 재현된다. 이것은 관객이 5·18의 흔적을 응시하는 시공간이다. 한 편으로는 5·18의 흔적에 의해 관객이 응시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응시의 교차를 통해 관객은 광주의 기억과 상호작용한다. 상호작용은 감정-이미지를 통한 정동적 읽기를 요구한다.

정동적 읽기는 5·18의 얼굴들과 교감하며 새로운 의미를 읽고 쓰는 일이 다. 진실의 검증이 아닌 정동적 진실의 생성 행위는 거짓의 역량을 증명 한다.

4. 증언 주체의 해체

재현불가능성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증언은 윤리적 문제와 연결된다.

5·18과 같은 희생을 동반한 역사에 대한 생성적 읽기는 ‘왜곡’의 위험을 만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5·18을 겪은 이의 ‘사적 기억’ 또한 정확 한 증언은 아니다. 5·18 당시 희생자의 시신 관리를 하던 오기철의 인터 뷰는 증언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기억을 안 하고 싶은 걸 기억을 해버리면 잠을 못 자. 마찬가지야. 또 자네한테 이런 얘기하고 나면 난 또 오늘 저녁에 잠을 못 자. 잠재웠던 걸 다시 깨우는 거나 똑같은 거여. 이 사진 속의 사람을 찾는 것도 중 요하지만, 역행하는 거지. 난 그걸 내버려 둔다는 게 이해가 안 돼. 우 리 스스로가 이놈을 찾으러 다니면서 이놈 스스로를 증명한다는 것도 이해가 안 돼. 똑같은 거 아닌가 그럼? 그래, 이놈이 막 가짜라고 하니 까. 아니야. 이 새끼야 나는 진짜야 이 새끼야. 내가 사람 찾아갖고 와 서 증거로 들이댈게. 바꿔서 이야기하면 그 얘기 아닌가 지금? 아무것 도 관련 없는 사람이 객관적으로 그 문제를 쳐다봤을 때, 어 저 새끼들 옛날에 그럼 뭔 일 있었는가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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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철의 인터뷰는 5·18에 대한 기억이 트라우마로 현재 소환되는 과 정과 증언 불가능성을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사실상 증언 주체는 존재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5·18을 역사적으로 기록한다. 오기철이 말하는 것은 증언 불가능한, 역사의 공백 지점이다. <김군>은 이 지점을 그대로 노출한다. 또한 오기철은 김군의 행방에 대해 죽었거나, 세상 보 기 싫어 산속에 들어가 스님이 되지 않았겠냐고 추측한다.

<사진16> <사진17> <사진18>

결국 5·18에 대한 실질적 증언, 그것에 토대로 작용하는 기억은 김군 의 행방과 닮아있다. 김군에 대한 증언을 하는 오기철의 옆 모습이 담긴 클로즈업 쇼트(<사진16>)는 ‘텅 빈 공간’을 만난다. 오기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빈 공간이 연쇄적으로 드러난다. 하나는 창에 의해 닫 힌 공간(<사진17>)이고, 다른 하나는 문 없이 ‘열린 공간’(<사진18>)이다.

이러한 이어붙이기는 닫힌 공간의 ‘개방’을 닮았다. 빈 공간 쇼트는 의미 가 공백에 도달하는 ‘임의적 공간’으로서 ‘내용의 부재’를 개방한다.35)

<사진19> <사진20> <사진21>

35) 질 들뢰즈, 시네마2: 시간-이미지, 앞의 책, 37~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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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은 임의적 공간이자 부재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5·18을 생성한다. 이를 통해 특권화된 권력적 증언 주체를 해체하고, 5·18을 과 거 역사가 아닌 포스트메모리로 재생성된 역사로 위치시킨다. 더불어 5·18 당시 시민군이었던 최진수, 이강갑, 최영철이 극장에서 재회하는 장 면은 증언 주체의 해체 과정을 보다 명증하게 드러낸다. 그들은 미디엄 쇼트의 주체로서 극장 의자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본다.(<사진19>) 그들 시점이 향한 곳은 5·18의 사진이다.(<사진20>) 그들이 스크린을 바라보 는 행위가 객관적인 형태의 롱 쇼트로 재현된다.(<사진21>) 다시 말해, 그들이 5·18 사진을 바라보는 쇼트에서 관객은 그들의 시선을 통해, 그 리고 그들과 함께 본다. 이러한 시점 교차는 그들이 5·18 증언 주체인 동시에 객체라는 점을 재현한다. 즉, 그들은 사진을 바라보며 증언의 사 유를 하고, 이 광경을 바라보는 관객은 그들의 모습을 통해 5·18의 새로 운 증인이 된다. 여기서 증언 주체라는 중심이 사라지고, 탈중심화된 포 스트메모리적 증언 주체가 등장한다. 이는 5·18 증언 주체 중심성에 대 한 문제 제기이자 거짓의 역량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군>은 5·18의 진 실을 찾아가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생성하는 다큐멘터 리가 된다.

Ⅴ. 나가며

<김군>은 ‘거짓의 역량’을 통해 5·18을 오늘의 역사로 생성하는 다큐 멘터리이다. 즉, 거짓의 역량은 5·18을 검증하거나 재현해야 할 단 하나 의 진실 역사가 아닌 현재 생성되는 세계로 그려낸다. 이러한 생성의 주 체는 5·18의 희생자, 피해자, 생존자라는 프레임을 넘어선다. ‘운동하는 사진’, ‘사적 기억의 자유간접화법’, ‘재현불가능성을 넘어서는 감정-이미 지’, ‘증언 주체의 해체’라는 방법을 통해 <김군>은 단 하나의 진실을 요 구하는 행위에 물음을 던지고, 포스트메모리를 생성한다. 5·18을 겪지 않 은 세대는 <김군>을 통해 기억 생성의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오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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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인터뷰처럼 사적 기억의 증언은 권력 앞에 무기력하다. 다큐멘터리가 생성하는 ‘진실의 유동성’은 이러한 무기력을 다양한 힘들로 생성한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와 같은 기성의 판단체계는 모호한 실재의 영역을 여과하지 못한다.

<김군>이 끝내 ‘김군’의 신원를 모호하게 남겨두고 역사의 흔적을 더 듬거리는 것은 바로 이러한 체계의 부실함을 드러낸다. 판단체계는 의미 의 ‘중심’을 고정하려 하지만, ‘거짓의 역량’은 이러한 중심을 해체하는 탈중심화 운동을 지속한다. 이러한 체계와 의미의 미끄러짐을 생성하는 것이 <김군>이 다큐멘터리로서 해낸 성과이다.

<김군>은 5·18의 진실/거짓 판단체계에 대한 문제를 익명의 존재들에 게 던진다. 그 익명의 자리에는 5·18을 겪은 이들뿐만 아니라, 이를 겪 지 않은 자도 위치한다. 이제 거짓의 역량은 스크린을 넘어선 물음이 되 고, 5·18은 끝없이 현재화하는 생성의 역사가 된다. 5·18 이전과 이후는 물리적 시간관으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는 편집을 통해 시공간을 해방하고, 이전과 이후의 역사를 함께 가능하게 한다. <김군>

에는 5·18 이전과 이후가 공존한다. 여기에는 하나의 중심이 없다. 다양 한 힘들만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5·18의 의미는 끊임없이 와해되고 재 건될 것이다. 와해와 재건은 사유의 무능력함을 초래한다. 그러나 기성의 판단체계에 의한 사유가 무능력한 것임을 알아차릴 때, 실재의 영역에 대한 사유가 요청된다.

지금까지 본 연구는 다큐멘터리, 진실, 거짓의 역량이라는 개념에 방점 을 두고 <김군>을 탐구했다. 5·18을 겪지 않은 세대가 제작한 5·18 다큐 멘터리로서 <김군>은 동시대의 역사적 무의식을 읽어낼 수 있는 흥미로 운 역사텍스트이기도 하다. 이러한 <김군>의 면면들은 다양한 학문 분야 의 후속연구를 요청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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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초록

5·18 다큐멘터리가 생성하는 ‘거짓의 역량(puissance du faux)’

: <김군>(2018)을 중심으로

김태환 · 유지나

<김군>은 5·18이라는 현재진행형의 역사에 과감하게 개입하는 다큐멘터 리이다. 특히 기억 주체와 포스트메모리 문제를 통해 <김군>은 대안역사 의 장을 생성한다. <김군>이 제시하는 사적 기억과 다층적 해석은 진실 과 거짓의 이원론을 해체하는 계기가 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원론적 역사 프레임을 해체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에 대한 고찰과 이에 대한 구체 적 사례인 <김군>의 영화적 의의를 탐구한다.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것이 사실(fact)인가’라는 물음은 다큐멘터리와 진실의 문제를 소환한다. 그러나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는 완전히 분리되 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창조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단 하나의 진실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은 ‘진실의 유동성’을 드러낸다.

진실이 유동적이라면 다큐멘터리는 또 하나의 진실을 생성하는 ‘사건’이 다.

진실과 거짓이라는 이원론을 해체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은 질 들뢰즈의 영화론이 제시하는 ‘거짓의 역량(puissance du faux)’ 개념과 맞닿는다.

즉, 거짓의 역량은 진실과 거짓의 검증이 아니라, 이러한 이원론의 생성 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따라서 다큐멘터리가 생성하는 거짓의 역량은 기 존의 판단체계를 해체하면서 재건한다.

판단체계를 재건하는 일은 세계를 재현하는 일이 아니라, 세계를 생성 하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군>은 5·18을 재건하고 생성한다. 이 다 큐멘터리는 ‘김군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포스트메모리적 추적이 자 대답이다. 몇몇 극우 정치인은 ‘김군’을 폭도나 북한에서 파견된 광수 라고 주장한다. 5·18 생존자들은 그들의 사적 기억을 통해 극우파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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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에 대항한다.

<김군>은 크게 네 가지 영화적 방법론을 통해 거짓의 역량을 생성한다.

첫째, 사진을 몽타주함으로써, 운동의 속성을 부여한다. 즉, ‘운동하는 사 진’은 과거를 현재화하고 의미변화를 일으킨다. 둘째, 사적 기억의 자유 간접화법을 통해 객관적, 주관적 판단체계를 와해하고, 5·18을 생성의 역 사로 위치시킨다. 셋째, 타자의 재현불가능성을 넘어서는 사려 깊은 감정 -이미지를 통해 5·18에 대한 권력적 진실이 아닌, 정동적 진실을 생성한 다. 넷째, 증언 주체를 해체함으로써 5·18과 증언의 문제를 오늘날로 끝 없이 연장한다.

주제어: <김군>, 질 들뢰즈, 5·18, 거짓의 역량,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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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stract

The 'Puissance du faux' created by the 5 · 18 documentary

: Focused on <KIM-GUN>(2018)

Kim Tae Hwan · Yu Gi Na

The documentary <KIM-GUN> intervenes in the history of the current progression type called 5·18. <KIM-GUN> created an alternative history through the memory subject and the post-memory problem. The historical memory presented by

<Kim-Gun> and the multi-layered interpretation of it dismantle the dualism of truth and falsehood.

This documentary form is in line with the concept of 'puissance du faux' presented by Gilles Deleuze's film philosophy. The 'puissance du faux' is rebuilt by dismantling the judgment system of truth and falsehood.

In this sense, <KIM-GUN> reconstructs and produces ‘5·18’.

Furthermore, <KIM- GUN> creates 'puissance du faux' through four cinematic methodologies. First, the movement is given to the photograph. Second, the objective and subjective judgment system is dismantled through the 'free indirect method' of private memory. Third, through ‘affection-image’ beyond the possibility of non-representation, it creates an affective truth, not a powerful truth about 5·18. Fourth, by dismantling the subject of testimony, the testimonial issue of 5·18 is extended to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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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s: <KIM-GUN>, Gilles deleuze, Puissance du faux, Documentary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