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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辭典의 현재적 의미와 개선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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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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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문초록❙

한자문화권에서는 현대에 들어와 백과사전의 기능을 겸한 사전(辭典, 詞典)을 경쟁적으로 편찬, 간행해 왔 다. 현대 거질의 한자어 사전의 편찬은 모로하시 데쓰지(諸橋轍次)가 1960년 완간한 뺷대한화사전(大漢和辞典)뺸, 중화민국(대만) 중국학술원이 1962년 간행한 뺷중문대사전(中文大辭典)뺸, 인민중국의 중국한어대사전편찬위원 회와 한어대사전편찬처가 1993년 완간한 뺷한어대사전(漢語大詞典)뺸에 이어, 한국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이 2008년 완간한 뺷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뺸을 꼽을 수 있다. 현재로서는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의 뺷한한대사 전(漢韓大辭典)뺸이 가장 방대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사전은 개선되어야 할 점도 있다.

(1) 현대 사회의 한자사전은 종래의 한자사전이 지향하던 목표를 계승하면서 독서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여 새로운 목표도 함께 설정해야 한다.

ⓐ 형·음·의 세 방면을 모두 해설하고 자의는 출전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

ⓑ 문화와 역사, 자연과학의 주요 개념들을 망라해야 한다.

ⓒ 운서(韻書)의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

ⓓ 한국 한자문화의 특성을 고려하여 표제항을 선정하고 훈석을 해야 한다.

ⓔ 새로운 인식의 참조준거가 되면서 독서물로서 완상될 수 있게 구성해야 한다 (2) 이상적 한자사전은 대구조와 소구조가 합리적이어야 한다.

ⓐ 부수법(部首法)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 정의식(定義式) 훈석(訓釋)을 지향해야 한다.

ⓒ 자의(字義)의 파생(派生) 내력을 망라하는 보계수(譜系樹)식 구성을 취해야 한다.

ⓓ 인용 원문의 제시 방식 개선에 주의해야 한다.

(3) 한자사전의 표제항을 새로 선정할 때는 다음 사안들을 검토해야 한다.

ⓐ 현대의 다양한 사전들이 제시한 표제항을 참고해야 한다.

ⓑ 한국의 시문, 자전, 운서, 유서(類書), 잡고(雜考)를 함께 참고해야 한다.

ⓒ 북한 과학원 고전연구소의 뺷새옥편뺸(1963년)을 참고로 하면서 한자의 자형을 심사한 방식, 한자음 을 심정한 방식, 이두자를 올림자로 채택한 방식을 더욱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4) 웹 시대 동아시아의 새로운 한자사전은 다음 두 방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 동아시아 한자문화권 공통의 고전 한자 어휘를 재정리해야 한다.

漢字辭典의 현재적 의미와 개선 방안

94)

심 경 호*

*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한문학과 교수 / sim1223@korea.ac.kr

(2)

ⓑ 국고(國故) 정리의 일환으로서 한국한자문화내의 독특한 용례를 지닌 어휘들을 정리해야 한다. 앞으로 한자사전을 편찬할 때에는 웹의 발달에 대응하여 항목의 선정과 서술 내용, 항목의 체계화 등과 관 련하여 획기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주제어]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뺷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뺸, 형(形)·음(音)·의(義), 부수법(部首法), 정의 식(定義式) 훈석(訓釋), 보계수(譜系樹)식 구성, 뺷새옥편뺸, 한자 어휘

❘목 차❘

Ⅰ. 머리말

Ⅱ. 한자사전의 목표

Ⅲ. 이상적 한자사전의 대구조와 소구조

Ⅳ. 한자사전의 재검토 시 유의 사항

Ⅴ. 마무리:

웹 시대 동아시아 한자사전 활용방안 모색

Ⅰ. 머리말

한자 사전은 한문고전과 한문자료를 해독하고

,

현대어의 기층에 놓인 한자어 어원을 탐색하는데 긴요하다

.

한자문화권에서는 현대에 들어와 백과사전의 기능을 겸한 사전

(

辭典

,

詞典

)

을 경쟁적으로 편찬

,

간행해 왔다

.

현대 거질의 한자어 사전의 편찬은 일본의 모로하시 데쓰지

(

諸橋轍次

, 1883~1982)

의 뺷대한화사전

(

大漢和 辞典

)

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 1925

년 다이슈칸

(

大修館

)

서점

(

출판사

)

은 한화사전

(

漢和辞典

)

을 간행할 것을 구 상하고

, 1929

년부터 본격적으로 편찬을 시작해서

1943

년 제

1

권을 완성했다

. 1945

년 동경 공습으로 인쇄용 조판이 녹아버렸으므로

,

전쟁 후 교정쇄를 근거로 다시 편찬을 시작해서

1960

년 뺷대한화사전뺸 전

13

권을 완 성했다

.

중화민국

(

대만

)

은 국방위원회가 중심이 되고 중국학술원이

10

년에 걸친 작업 끝에

1962

년 뺷중문대 사전

(

中文大辭典

)

10

권을 완간했다

.

중국인민공화국도

1975

년부터 국책사업으로 사전 편찬을 시작해서

43

개 대학 및 연구소 협력의 중국한어 대사전편찬위원회와 한어대사전편찬처가 작업을 주도하여

1986

년 제

1

권을 출판하고

1993

년 뺷한어대사전

(

漢 語大詞典

)

뺸 전

13

(

색인 포함

)

을 완간했다

.

주편은 뤄주펑

(

罗竹风

)

이며

,

한어대사전출판사에서 간행했다

.

2010

년에 뺷한어대사전뺸 정보

(

訂補

)

판이 나왔고

, 2012

년에는 제

2

판의 편찬을 시작했다

.

중국인민공화국에서 는 또한

1986

년 후베이성

(

湖北省

)

과 쓰촨성

(

四川省

)

전문가들이

10

년 작업 끝에 뺷한어대자전

(

漢語大字典

)

뺸을 편찬하여

, 1990

8

권본으로 초판 간행했다

.

해서

(

楷書

)

단자

(

單字

)

56,000

여 자를

200

부수의 순으로 정 리했다

. 1992

,

후베이 사서출판사

(

湖北辞书出版社

)

와 쓰촨 사서출판사

(

四川辞书出版社

)

가 뺷한어대자전

(

漢 語大字典

)

뺸 축인본

1

책으로 간행했고

, 1995

3

권본을 출판했다

.

2

판 수정본은

1999

년부터 편찬을 시작하

(3)

, 2010

4

월 쓰촨 출판집단

(

四川出版集团

),

쓰촨 사서출판사

(

四川辞書出版社

),

후베이창장 출판집단

(

湖北 長江出版集團团

),

총웬서국

(

崇文書局

)

에서

9

책을 공동으로 출판했다

.

신판 뺷한어대자전뺸은 해서 단자

60,370

자로

,

(

(

(

)

를 완비된 대형 한어자전이다

.

규모는 뺷강희자전

(

康熙字典

)

뺸의

4

배에 달한다

.

한국에서는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이

1977

년부터 뺷한한대사전

(

漢韓大辭典

)

뺸 편찬을 시작하여

30

여년에 걸친 작업 끝에

2008

10

28

, 55,000

여 자

, 45

만여 단어를

16

(

색인집 포함

)

으로 정리

,

완간했다

.

1) 동 연구원은 이에 앞서

1996

11

3

일 한국 인명

,

지명

,

제도명

,

이두 용어

,

향찰

,

구결 등 약

84,000

여 단어를 정리하여 뺷한국한자어사전

(

韓國漢字語辭典

)

뺸 전

4

권을 간행한 바 있다

.

뺷한한대사전뺸과 뺷한국한자어 사전뺸을 합한다면 전질

20

(53

4

천 단어

)

으로

,

현재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한자사전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

∙ 한국 뺷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뺸:2008년, 전 16권, 5만 5천 자, 45만 단어 뺷한국한자어사전(韓國漢字語辭典)뺸:1996년, 전 4권, 8만 4천 단어

∙ 일본 뺷대한화사전(大漢和辞典)뺸:1960년, 전 13권, 4만9천여 자, 39만 단어

∙ 중화민국 뺷중문대사전(中文大辭典)뺸:1962년, 전 10권, 5만여 자, 40만 단어

∙ 중화인민공화국 뺷한어대사전(漢語大詞典)뺸:1993년, 전 13권, 2만3천여 자, 37만 단어 뺷한어대자전(漢語大字典)뺸:1990년, 전 8권, 해서 단자(單字) 56,000여 자.

2010년 4월 신판, 전 9책, 해서 단자 60,370자.

최근에는 각종 사전들이 웹 사전의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

뺷옥스퍼드 영어사전

(The Oxford English Dictionary)

뺸의 경우

,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가

1989

년 제

2

(OED 2) 20

(

원래의

12

권짜리

OED

5

권 의 증보판 수록 모든 단어를 단일한 알파벳 순서로 수록

)

을 간행하면서 본문 전체를 데이터 베이스에 수록하 여 웹 사전을 구축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

Encyclopædia Britannica

뺸도

1974

년 제

15

판에서 소항목 사전

(Micropædia) 12

,

총론

·

색인

(Propædia) 1

,

대항목사전

(Macropædia) 19

권 등

3

부 구성을 갖추었으 나

, 2012

3

월 브리태니카사는 온라인 판에 주력하겠다고 발표하여

, 2010

32

권본이 마지막 판본이 되었다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도

2010

6

21

일 뺷한한대사전뺸 디지털화 사업에 돌입했고

,

뺷한국한자어사전뺸 의 디지털화도 병행하여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작업을 마무리하겠다고

2010

7

26

일 공식 발표한 바 있 다

.

2) 정보기술

(IT)

과 문화기술

(CT)

을 결합하여 정보화 사회에 맞는 사전을 구축하고

,

다국어서비스

,

자동 번 역 등의 서비스도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 2012

4

16

일 동양학연구원은 한글과컴퓨터와

디지 털한한대사전

활용과

한컴오피스

한자자형 및 한자자전 정비에 관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

3)

1) “표제어 6만자·수록단어 50만개 30년 만에 16권 완간……한한대사전”, 뺷국민일보뺸 20081024일자; “세계최대 漢韓대 사전’ 30년 집념이 이뤘다”, 뺷한국일보뺸 20081025일자; “세계 최대규모 漢韓 대사전완간”, 뺷동아일보뺸 200810 28일자; “세계 최대 한자 전문사전 한한대사전’ 30년만에 완간”, 뺷한겨레신문뺸 20081029일자.

2) “단국대, ‘디지털漢韓대사전편찬 착수(동양학연구소, 한한대사전·한국한자사전 통합)”, 뺷서울경제신문뺸 2010726 ; “단국대 漢韓大辭典 디지털 추진”, 뺷조선일보뺸 2010727일자.

3) “한컴, 단대 동양학연구원과 뺷한한대사전뺸 업무 협약”, 뺷매일경제뺸 2012412일자.

(4)

<그림 1>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뺷한어대자전뺸

(5)

*公①[ɡōnɡㄍㄨㄥ]

[≪廣韻≫ 古紅切, 平東, 見. ]

1.公平;公正. ≪書·周官≫:“以公滅私, 民其允懷.” 孔傳:“從政以公平滅私情, 則民其信歸之.” ≪呂氏春秋·序意≫:

“夫私視使目盲, 私聽使耳聾, 私慮使心狂. 三者皆私設精則智無由公.” 高誘注:“公, 正也.” ≪金甁梅詞話≫ 第四二回:“易 老韶光休浪度, 最公白髮不相饒.”2.公共;共同. ≪禮記·禮運≫:“大道之行也, 天下爲公.” 鄭玄注:“公, 猶共也.” ≪鶡冠 子·天則≫:“夫裁衣而知擇其工, 裁國而知索其人, 此固世之所公也.” 淸王夫之 ≪張子正蒙注·中正≫:“天下之公欲, 即 理也.” 郭沫若 ≪新華頌≫:“工業化, 氣如虹, 耕者有田天下公.”3.朝廷;國家;公家. ≪詩·召南·羔羊≫:“退食自公, 委 蛇委蛇.” 孔穎達疏:“退朝而食, 從公門入私門.” ≪論語·憲問≫:“公叔文子之臣大夫僎與文子同升諸公.” 楊伯峻注:“公, 指國家朝廷.” 唐陳子昂 ≪爲張著作謝父官表≫:“不意臣父衰耄, 恃寵忘公, 貪潤微財, 取犯朝憲.” 宋王讜 ≪唐語林·補遺 一≫:“海州南有溝水, 上通淮、楚, 公私漕運之路也.”如:公事公辦;假公濟私. 4.公事, 政府或機關的工作. ≪詩·召南· 小星≫:“肅肅宵征, 夙夜在公.” 余冠英注:“公, 指公事.” 宋韓琦 ≪登廣敎院閣≫ 詩:“岑寂禪扉啓晝關, 公餘爲會一開顔.”

≪水滸傳≫ 第七二回:“若是做公的聽得, 這塲橫禍不小.”如:上午辦公, 下午開會. 5.屬於國際間的. 如:公海, 公斤. 6.不 加隱蔽, 毫無顧忌. ≪左傳·襄公二十七年≫:“詩以言志, 志誣其上而公怨之, 以爲賓榮, 其能久乎?” 漢桓寬 ≪鹽鐵論·備 胡≫:“今明天子在上, 匈奴公爲寇, 侵擾邊境.” 宋陸遊 ≪老學庵筆記≫ 卷四:“<顔巽>他不法尤衆. 有司稍按治, 輒劫持 之……公行狀牒.” ≪西遊記≫ 第五十回:“律云:公取竊取皆爲盜.”7.猶公布. 馬南邨 ≪燕山夜話·林白水之死≫:“希望 你能把他的不白之冤, 公之世人, 使死者在地下也能含笑長眠.”8.對親屬的稱謂. ≪戰國策·魏策一≫:“其子陳應止其公 (陳軫)之行, 曰:‘夫魏欲絶楚、齊, 必重迎公. 郢中不善公者, 欲公之去也, 必勸王多公之車.’”此稱父. ≪呂氏春秋·異用≫:

일본의 뺷대한화사전뺸이나 중화민국 뺷중문대사전뺸은

CD-ROM

판으로 발매되지 않았다

.

중화인민공화국 뺷한 어대사전

(

漢語大詞典

)

뺸은

1998

CD-ROM

판으로 발매되었고

,

애플 앱스토어에

한어대사전 앱

이 올라와 있 다

.

유료

(USD 1.09)

이다

. CD-ROM

판은

Windows XP

중문 간체판에서 정상 설치되었지만

Microsoft AppLocale

을 이용하면 한글판

Windows

에서도 사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

최근에는 대만의 개방고적 프로그 램

(accelon3)

에 뺷한어대사전뺸이 포함되어 있어 이용 가능하다

.

4)

또한

2004

년 건립된 뺷한전

(

漢典

)

(http://www.zdic.net/)

75,983

361,998

개 사

(

단어

(

短語

사조

(

詞組

), 32,868

개 성어

(

成語

),

기타 중문어언문자형식을 수록한 인터넷 사전

(

辞典

)

이다

.

보조사이트로 한전고적

(

漢典古籍

한전시사

(

漢典詩詞

한전서법

(

漢典書法

한전중문논단

(

漢典中文論壇

한전영문논단

(

漢典英文論壇

)

을 거느리고 있다

.

한전고적은

38,529

장절

(

章節

)

1,055

부 고전문헌서적과

203

편 고문을 포 괄하고

,

한전시사는

268,886

수 고전시사를 포괄하며

,

한전서법은

135,804

개 중국서법가 한자서법 작품을 망 라하고 있다

.

모든 작업은

CC0 1.0 Public Domain Dedication(Validity of the Creative Commons Zero 1.0 Universal Public Domain Dedication)

의 인가에 기초하고 있으며

,

한어사전의 원시자료는 대만교육부 뺷중편국어사전수정본

(

重編國語辭典修訂本

)

(CC BY-ND 3.0

臺灣授權

)

에 의거했다고 한다

.

<표 1> 중국 뺷漢語大詞典뺸

4)개방고적 프로그램(accelon3)에는 뺷한어대사전뺸 이외에 뺷설문해자뺸, 뺷강희자전뺸, 26, 뺷대정신수대장경뺸, 뺷고금도서집성뺸, 뺷속장경뺸, 뺷전당시뺸, 뺷불광대사전뺸 등이 들어 있다.

(6)

“孔子之弟子從遠方來者, 孔子荷杖而問之曰:‘子之公不有恙乎?’次及父母, 次及兄弟妻子.” ≪史記·外戚世家≫:“<竇后>

乃厚賜田宅金錢, 封公昆弟, 家於長安.” 司馬貞索隱:“公亦祖也, 謂皇后同祖之昆弟.”此稱祖父. 唐韓愈 ≪祭故陝府李司馬 文≫:“子婦諸孫, 盈於室堂, 公姑悅喜, 五福具有.” 唐韓愈 ≪扶風郡夫人墓志銘≫:“夫人適年若干, 入門而媼御皆喜, 旣饋而 公姑交賀.”此稱丈夫之父. 9.對某些職業者的稱謂. 如:艄公;園公;端公. 10.對平輩的敬稱. ≪史記·平原君虞卿列傳≫:

“<毛遂>曰:‘……公等錄錄, 所謂因人成事者也.’” 漢應劭 ≪風俗通·正失·葉令祠≫:“公忠於社稷, 惠恤萬民, 方城之外, 莫不欣戴.”11.上對下的敬稱. ≪史記·陳涉世家≫:“<吳廣、陳勝>召令徒屬曰:‘公等遇雨, 皆已失期, 失期當斬.’” ≪漢 書·韓信傳≫:“上曰:‘所追者誰也?’曰:‘韓信.’上復駡曰:‘諸將亡者已數十, 公無所追;追信, 詐也.’何曰:‘諸將易得, 至 如信, 國士無雙.’” ≪周書·文帝紀下≫:“此五日中, 吾取竇泰必矣. 公等勿疑.”12.對尊長的敬稱. ≪漢書·溝洫志≫:“太 始二年, 趙中大夫白公復奏穿渠.”顏師古注:“鄭氏曰:‘時人多相謂爲公.’此時無公爵也, 蓋相呼尊老之稱耳.” 淸兪樾 ≪春 在堂隨筆·小浮梅閑話≫:“以袁紀兩公所言徵之, 則莫素輝果實有其人.” 張天翼 ≪成業恒≫:“此次晉謁潘公, 原想潘公給 我一個位置, 或給我向什么地方介紹介紹.”13.一般的敬稱. 如:張公;城北徐公;亡是公. 14.稱雄性動物. 如:公牛;公 雞. 北魏賈思勰 ≪齊民要術·作醬法≫:“母蟹齊大, 圓, 竟腹下;公蟹狹而長.”15.古代五等爵位的第一等. 直至淸代仍沿 用. ≪易·大有≫:“公用亨於天子, 小人弗克.” ≪詩·小雅·白駒≫:“爾公爾侯, 逸預無期.” ≪禮記·王制≫:“王者之制 祿爵, 公、侯、伯、子、男, 凡五等.”16.東周時期, 諸侯的通稱. ≪論語·顏淵≫:“齊景公問政於孔子. 孔子對曰:‘君君, 臣臣, 父父, 子子.’公曰:‘善哉!’” 參見“公爵”. 17.古代的最高官階. ≪易·小過≫:“公弋取彼在穴.” 王弼注:“公者, 臣之極 也.” 參見參見參見參見“公卿”、“三公”. 18.通“功”. 功績;功勞. ≪詩·小雅·六月≫:“薄伐玁狁, 以奏膚公.” 毛傳:“公, 功也.” ≪呂氏春秋·務本≫:“俗主之佐, 其欲名實也, 與三王之佐同, 而其名無不辱者, 其實無不危者, 無公故也.” 畢沅輯 校:“無公, 後 ≪務大≫ 篇作‘無功’. 公亦‘功’也, 古通用.”19.姓. 漢代有公儉. 見 ≪通志·氏族四≫.

1970, 80

년대는 한문고전을 읽을 때 청나라 강희

(

康熙

) 43

(1704)

장옥서

(

張玉書

)

76

명이 칙명을 받 아 편찬한 어휘집인 뺷패문운부

(

佩文韻府

)

[

정집

(

正集

) 106

,

습유

(

拾遺

) 106

,

모두

212

권인데 이후

444

권으로 분책

]

를 활용했다

.

숙어의 말미의 글자가 속한 운

(

)

에 따라 분류

·

배열하고 출전을 간략히 밝혀두 었으므로 시문의 전고

(

典故

)

나 용사

(

用事

)

를 조사할 때 매우 유용했다

.

하지만

2008

, 2009

년 무렵에는 한 문 강독 때 한글파일로 변환된 뺷한어대사전뺸을 이용했으나

,

 그 후 개방고적 프로그램

(accelon3)

에서 뺷한어 대사전뺸을 찾아 쓰더니

,

최근에는 랩탑

(laptop)

에서

zdic

웹브라우저 탭을 사용하는 일이 많아졌다

.

이러한 시점에서 한자사전은 어떠한 목표를 지향해야 하고

,

어떠한 형태

,

구조

,

기능을 지녀야 하는 것일 까

?

본고는 이 문제에 대하여 규견을 피로하기로 한다

.

Ⅱ. 한자사전의 목표

현대 사회의 한자사전은 종래의 한자사전이 지향하던 목표를 계승하면서 독서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여 새 로운 목표도 함께 설정해야 한다

.

(7)

1. 형·음·의 세 방면을 모두 해설하고 자의는 출전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

중국 고대의 자서는 뺷이아

(

爾雅

)

,

뺷방언

(

方言

)

,

뺷설문해자뺸를 기원으로 삼는다

.

자서는 한자의 자의 정 보에 중점을 둔 것으로

,

자음 정보에 중점을 둔 운서와 구별된다

.

뺷사고제요뺸는 소학 관계의 서적을 분류하 여

,

자형을 요 체로 한 책을

자서

(

字書

)’

라 했다

.

5) 하지만 자전

(

字典

, Dictionary)

은 소학의

자서

와 달리

,

·

·

의 세 방면에 대하여 모두 해설해야 한다

.

이때 검색의 편의를 위해 형을 위주로 하여 부수를 세우 거나

,

음을 위주로 하여 주음부호의 순서로 배열할 수 있다

.

뺷설문해자

(

說文解字

)

뺸는 자형에 근거하여 음과 의를 탐구했으나

,

뺷옥편

(

玉篇

)

뺸은 의를 위주로 했고 형에 는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

.

뺷간록자서

(

干祿字書

)

뺸와 뺷자학거우

(

字學擧隅

)

뺸는 자형만 말했고

,

뺷광운

(

廣韻

)

·

뺷집운

(

集韻

)

·

뺷운회

(

韻會

)

뺸 등의 운서는 자의를 함께 말했다

.

뺷운경

(

韻鏡

)

·

뺷절운지장도

(

切韻指掌圖

)

뺸는 음만 다루고

,

뺷석명

(

釋名

)

뺸은 성

(

)

을 훈으로 삼았으므로

,

음을 매우 중시했다

.

뺷강희자전

(

康熙字典

)

뺸에 이 르러서 비로소 형

·

·

의를 모두 중시했다

.

다만 뺷강희자전뺸은 자의를 해설하면서 경부

(

經部

사부

(

史部

)

에서 인용할 때는 인용문의 편명까지 밝혔지만 자부

(

子部

집부

(

集部

)

에서 인용할 때는 편명을 거의 들지 않았다

.

인용문의 편명을 밝힌 것은 구양부존

(

歐陽溥存

)

등이 엮은 뺷중화대자전

(

中華大字典

)

(

中華書局

)

에서 시작되었다

.

그 후 뺷사해

(

辭海

)

(1936

년 초판 간행

, 1979

10

월 수정발간

3

,

上海辭書出版社

.

표제자

14,872

,

단어

106,578

개 수록

)

도 이 방법을 채용했다

.

한자사전은 기본적으로 한자의 자형을 요체로 하여 글자의 본의와 인신의

(

파생의

),

가차의를 구명하고 활 용의 사례를 밝혀야 하며

,

·

·

의 세 방면을 모두 해설하고 자의는 출전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

.

2. 문화와 역사, 자연과학의 주요 개념들을 망라해야 한다

한 분야의 지식을 사전

(

辭典

)

형식으로 설명한 것을 유서

(

類書

)

라고 한다

.

6) 사전

(

辭典

)

이 언어의 철자

·

발음

·

해석을 수록하는데 비하여 사전

(

事典

)

은 사항의 정보를 설명한다는 차이점이 있는데

,

유서는 사전

(

辭 典

)

의 편찬방식을 취하면서 내용은 사전

(

事典

)

과 같다

.

일종의 백과사전

(Encyclopedia)

이다

.

백과사전이란 말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egkuklopaideia’(

원만한 지식의 교육

)

이라고 한다

.

유서는 각 어휘에 관해 해설문을 들고

,

시문 속의 용례를 제시했다

.

어휘를 운목별로 정리한 예도 있으나

,

대부분 분류목을 설정했다

.

유서는 자서의 원형인 뺷이아

(

爾雅

)

뺸가 고훈

(

故訓

)

19

개 유형으로 분류한 데서 기원한다고 한다

.

그 뒤 위

(

)

나라 때 뺷황람

(

皇覽

)

,

수나라 우세남

(

虞世南

)

의 뺷북당서초

(

北堂書鈔

)

160

,

당나라 때 구양순

(

歐陽詢

)

이 칙명을 받아

624

년에 엮은 뺷예문유취

(

藝文類聚

)

48

100

,

서견

(

徐堅

)

의 뺷초학기

(

初學記

)

30

권이 나왔다

.

송나라 때

977

년 이방

(

李昉

)

등이 칙명에 의해 엮은 뺷태평어람

(

太平御覽

)

1

천 권

,

도교 관련의 내용을 실은 뺷태평광기

(

太平廣記

)

500

, 1013

년 왕흠약

(

王欽若

)

등이 칙명을 받아 역 5) 박형익, 「한국의 자전」, 뺷한국어학뺸 23, 한국어학회, 2004, 1~18; 박형익, 뺷한국 자전의 역사뺸, 역락, 2012.

6) 최환, 뺷한중 유서 문화 개관뺸, 영남대학교출판부, 2008; 심경호, 뺷한국한문기초학사뺸, 태학사, 2012.

(8)

대 군신의 전기를 엄선해서 평론한 뺷책부원귀

(

冊府元龜

)

1

천 권

,

왕응린

(

王應麟

)

의 뺷옥해

(

玉海

)

200

,

축 목

(

祝穆

)

의 뺷사문유취

(

事文類聚

)

237

권 등이 나왔다

.

명나라 때는

1403

년 해진

(

解縉

)

등이 칙명에 따라 뺷영락대전

(

永樂大典

)

뺸을 편찬하기 시작하여

1408

년에

2

2

877

,

범례

60

권을 완간했다

(

正本은 명나라 말기에 없어졌고

,

가정

(

嘉靖

융경

(

隆慶

)

연간에 만들어진 부본

(

副本

)

도 청나라 함풍

(

咸豊

)

연간에 점차 산 실되었다

. 1960

년 중화서국이

730

권을 수집하여 영인출판했고

, 1986

년에도 재차

797

권을 영인했다

).

민간 본으로는 장황

(

章潢

)

의 뺷도서편

(

圖書編

)

(127

, 1562)

과 왕기

(

王圻

)

의 뺷삼재도회

(

三才圖會

)

(80

, 1607

)

가 유명하다

.

청나라 때에는

1701

년 장영

(

張英

)

등이 칙명을 받아 뺷연감유함

(

淵鑑類函

)

150

권을 엮었 다

. 1722

년에는 진몽뢰

(

陳夢雷

)

등이 칙명에 의해 뺷고금도서집성

(

古今圖書集成

)

1

만권

(

목록

40

)

을 엮었 고

, 1728

년 장정석

(

蔣廷錫

)

이 그것을 개정했다

.

이 책은 본문

1

만권

,

목록

40

권에 달한다

. 1915

년 육이규

(

陸 爾奎

)

등 편찬의 뺷사원

(

辭源

)

2

권 및

1931

년의 보편

(

補編

)

은 서양식 백과사전과 사전

(

辭典

)

을 겸했다

.

육조나 수

,

당에서 나온 유서들은 시문 제작에 활용하기 쉽도록 대구

(

對句

대어

(

對語

)

를 중심으로 한 것 이 많았다

.

송 이후로는

어휘

를 운

(

)

에 따라 분류하는 방식이 더 유행했다

.

원나라 음시부

(

陰時夫

)

가 엮은 뺷운부군옥

(

韻府羣玉

)

20

권이 그 예이다

.

하지만 명나라 영락제의 칙찬서 뺷영락대전뺸은 뺷홍무정운뺸의 운목 에 따라 어휘를 배열하되

,

유서의 성격을 지녔다

.

청나라 강희제 때의 뺷패문운부뺸와 뺷변자유편뺸도 어휘 자체 를 분류한 것은 아니지만

,

어휘집으로서 활용되어 왔다

.

또 청나라 완원

(

阮元

)

이 경사

(

經史

)

의 훈고

(

訓詁

)

를 위해 엮은 뺷경적찬고

(

經籍纂詁

)

106

권은 당 이전의 경사

(

經史

제자

(

諸子

뺷초사

(

楚辭

)

·

뺷문선

(

文選

)

뺸 과 자서

·

운서에서 자료를 취하여 주석했다

.

글자들을 뺷패문운부뺸의 체제를 따라 운목

(

韻目

)

의 순서로 배열 했으므로

,

유서의 형태는 아니지만 고전 어휘집으로 중요하다

.

뺷예문유취뺸

·

뺷초학기뺸

·

뺷태평어람뺸

·

뺷태평광기뺸

·

뺷책부원귀뺸

·

뺷사문유취뺸

·

뺷연감유함뺸은 현재에도 전 고 검색에 활용되며

,

일본과 중국의 사전은 이러한 유서들을 기초 정보원으로서 활용했다

.

3. 운서의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

한자는 전통적으로 운

(

)

에 따라 구분되어 운어

(

韻語

)

를 형성하여

,

한시와 한문의 여러 형식들은 압운

(

押 韻

)

을 주요한 형식 요건으로 삼아왔다

.

7) 따라서 사전에서 한자의 운속

(

韻屬

)

을 표시하지 않는다면 고전 연구 에 활용할 수가 없다

.

이때 시대별로 운속의 분류 방법이 달라졌으므로

,

한자 사전은 상고음

·

중고음

·

근고 음에 이르도록 운속이 변화한 사실과 이에 대응하거나 이와 무관하게 한국한자음이 확정된 사실을 밝혀주어 야 한다

.

한자를 운

(

)

에 따라 분류하여 안배한 자전을 운서라고 한다

.

원래 운문을 지을 때 압운을 조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

성조

(

聲調

)

가 같고 운이 같은 글자들을 한 부

(

)

로 삼고

,

그 가운데 한 글자를 취해 표목으로 삼았으며

,

음을 반절

(

反切

)

로 주

(

)

했다

.

7)강신항, 뺷한국의 운서뺸, 太學社, 2000; 정경일, 뺷한국운서의이해뺸, 아카넷, 2003; 심경호, 뺷한국한문기초학사뺸, 태학사, 2012.

(9)

표기 체계 산문의 문체양식 산문제작능력 대응의 시제작 능력

朝鮮의 言語와 文章

(文言語法古文)漢文

唐宋古文, 秦漢古文(擬古文), 小品

詩(詞 포함)

*古白話擬作文 騈儷文(四六文)

科文(科詩·科賦·疑義·科策) 科詩, 詩

佛敎漢文 朝鮮式 古風, 詩

(吏讀式韓國式)漢文

鄕札 初期 音讀訓讀複合文

狀啟 등 公文書 詩 朝鮮式 古風

告目·立案 등 行政 및 生活文書

朝鮮式 古風 한글표기문

諺解 한글 生活文書

한글 書札, 祭文, 行狀行錄, 한글 小說

<표 2> 조선의 언어문장과 문체 양식

수나라 때 육법언

(

陸法言

)

의 뺷절운

(

切韻

)

뺸은

193

운으로 나눈 실용적인 운서였다고 추정된다

.

뒤에 당나라 왕인구

(

王仁昫

)

는 뺷간류보결절운

(

刊謬補缺切韻

)

뺸을 엮어 뺷절운뺸을 보완했는데

, 195

운으로 나누었다

.

송나라 때 진팽년

(

陳彭年

)

등은 뺷절운뺸을 수정하여 뺷광운

(

廣韻

)

뺸을 엮었고

,

이것을

206

운으로 나누었다

.

송나라 때는 과시용

(

科試用

)

으로 뺷예부운략

(

禮部韻略

)

뺸이 나왔다

.

이 책은 뺷광운뺸과 동일하게

206

운목으로 분류되어 있 다

.

뺷평수신간운략

(

平水新刊韻略

)

(

王文郁

1229

)

에서

106

운으로 줄고

,

뺷임자신간예부운략

(

壬子新刊禮部韻 略

)

(

劉淵

1252

)

에서는

107

운으로 되었다

. 106

운을 평수운

(

平水韻

)

이라고 하며

,

시운

(

詩韻

)

으로 정착되었 다

.

그 뒤 뺷고금운회거요

(

古今韻會擧要

)

(

熊忠 찬

.

원나라 大德 원년

, 1297)

는 운서의 체제에 등운표

(

等韻 表

)

를 배합했는데

,

뺷임자신간예부운략뺸과 마찬가지로

107

운으로 나누었다

.

명나라 초의 뺷홍무정운

(

洪武正 韻

)

(

樂韶鳳 등

1375

년 칙찬

)

은 현실음을 일부 반영하여

106

운이 아니라

76

운으로 분류하고 방음

(

方音

)

이 아닌 공통음

(

혹은 표준음

)

을 정음

(

正音

)

으로 삼으려 했으나 인위적인 합성음을 제시하고 말았다

.

따라서 명 나라나 청나라에서는

106

운 체계의 운서가 통용되었고

,

한국과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

4. 한국 한자문화의 특성을 고려하여 표제항을 선정하고 훈석을 해야 한다

한국의 한자사전은 한국한문의 여러 층위를 고려하여

,

문언어법의 한문에 상견되는 어휘들만을 표제항으

(10)

로 삼을 것이 아니라

,

문언어법의 한문이나 이두식 한문 속에 한국의 역사적 실상을 반영하여 한국에서 상용 된 어휘들을 추출하여 표제항으로 삼아야 한다

.

그로써 한국의 한자사전은 자국의 문화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도구가 될 수 있으며

,

이를 통해 동아시아 한자사전의 외연을 확장시키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

한국 한문 은 한국 민족의 사상 감정을 표현한 문학을 낳았을 뿐 아니라

,

역사 사실의 기록

,

학문적 사색의 논술

,

사대 교린의 외교 관계나 공적

,

사적 생활에서 작성한 문건들을 생산했다

.

또 한국 한문은 한국어 어법을 적용하 면서 이두를 붙인 표기법을 사용한 표기체계의 시문과

,

한자를 음차

(

音借

)

와 차자

(

借字

)

의 방식으로 활용한 시문도 낳았다

.

뺷선조실록뺸에는 지방관이 조정에 올린 이두문의 장계

(

狀啓

)

가 실려 있고

,

뺷내각일력뺸에는 규 장각 초계문신의 현탈

(

懸頉

)

을 허가받기 위한 이두문의 공문이 실려 있으며

,

정조는 이두문의 판

(

)

작성에 간여했다

.

5. 새로운 인식의 참조준거가 되면서 독서물로서 완상될 수 있게 구성해야 한다

현대에 한자사전의 내용을 확충하려면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사항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해 두어야 할 것 이다

.

ⓐ 현 시대의 역사적 특성을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

ⓑ 한자문화 및 역사의 사항 확인과 개념 정의가 보편 인문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가?

최근의 국제 관계는 각 국가나 민족의 문화영역을 국제적 역학 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강제하고 있 다

.

자원과 영토의 확보

,

폐기물의 처리

,

인종적

·

민족적 교섭 등 난문들이 더욱 부각될 것이다

.

이에 따라 과거의 역사적 경험과 관련해서

,

국가적

,

사회적 자문도 빈번하게 될 것이다

.

새로운 한자 사전은 이러한 자 문에 응답할 준비를 해야 한다

.

㉠ 근세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국권

,

중국의 국권

,

그리고 러시아의 국권은 우리의 국권과 모순

,

충돌하고 있었으며

,

그 사실은

실측

전도

를 표방한 각종 지도에 반영되었다

.

한자사전은 지도사

(

地圖史

)

의 연구 와 병행해서 지명의 고증 사실을 반영해야 한다

.

㉡ 근대 이전의 역사상

(

歷史像

)

은 조공의 문제를 둘러싸고 지역 국가 사이에 이견이 있다

.

이 문제와 관련 한 여러 어휘들을 정리할 때 한국의 한자 사전은 독자적인 역사상을 반영해야 한다

.

㉢ 세계화 속에서 자국의 문화가 지닌 보편적 성격과 독자적 성격을 확인하기 위하여 한자문화의 지속과 변동의 국면을 동시에 바라보면서 각 개념들을 정의해나가야 한다

.

이때 한국학과 중국학

,

한국학과 일본 학

,

중국학과 일본학의 관계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

㉣ 한자문화에 관한 연구가 새로운 주제를 모색하는 것과 병행하여

,

한자사전도 그러한 주제와 밀접한 어 휘들을 발굴해야 한다

.

이를테면 죽음

,

노화

,

아동

,

질병

,

주거 공간

,

자연

,

이익

,

근면 등등에 대한 의식구 조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관련 어휘들을 정리해야 한다

.

(11)

㉤ 한자문화권의 각 지역은 각종 사상조류와 지식학의 방법이 상호 관련을 맺으면서 다양성을 이루어왔 다

.

한자사전은 관련 어휘들을 정리하여 이 방면의 인식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해야 한다

.

Ⅲ. 이상적 한자사전의 대구조와 소구조

1. 부수법

많은 한자들을 자서

(

字書

)

에 수록하려면 원칙이 있어야 할 것이다

.

후한 때 허신

(

許愼

)

의 뺷설문해자뺸

(

기원

100

)

540

부를 세워

9,353

글자를 분류 수록하는 부수법

(

部首法

)

을 고안했다

.

이 부수법은 철학적 관념에 따른

시일종해

(

始一終亥

)’

의 방식이었다

.

그 뒤 명나라 장자열

(

張自烈

)

은 뺷정자통

(

正字通

)

뺸은 매응조의 뺷자 휘

(

字彙

)

뺸를 계승하면서 뺷자휘뺸의

3

3

179

자 이외에 새로

360

자를 추가하고 이체자

119

자를 수집하여

214

부수에 나누어 싣되

,

·

·

의를 새롭게 수집했다

.

8) 청나라 강희

(

康熙

)

연간에 장옥서

(

張玉書

진정 경

(

陳廷敬

)

등이 칙명을 받아 편찬한 뺷자전

(

字典

)

뺸 즉 뺷강희자전

(

康熙字典

)

뺸은 매응조의 뺷자휘뺸와 장자열의 뺷정자통뺸에 기초하여

214

부의 부수에

49,030

(

重文

10,995

자 포함

)

를 수록했다

.

대만

,

일본과 한국은 대개 이 뺷강희자전뺸식 부수법을 따른다

.

그러나 중국

(

대륙

)

에서는 그것을 재조정했다

. 1953

년의 뺷신화자전뺸은

189

부를 세웠고

, 2014

년 제

10

판 뺷신화사전뺸은

201

부를 세웠으며

, 1986~1993

년의 뺷한어대사전

(

漢語大詞 典

)

(

12

)

200

부를 세웠다

.

향후의 한자사전은 어떤 부수법을 취할 것인지 재검토가 필요하다

.

2. 정의식 풀이의 지향

자형을 기준으로 자의를 밝힌 최초의 자전인 뺷설문해자

(

說文解字

)

뺸는 본의

(

本義

)

를 부여하는 훈고

(

訓詁

)

에 성훈

(

聲訓

)

의 방식을 이용하는 일이 많았다

.

한편 경전의 어휘를 풀이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뺷이아

(

爾雅

)

뺸는 「석고

(

釋詁

)

」에서 동의어를 해석했는데

,

여러 단어들을 늘어놓은 뒤 하나의 단어로 해석하는 형태 로 되어 있다

.

,

해석에는 총석

(

總釋

호석

(

互釋

체석

(

遞釋

)

의 방법이 섞여 있으므로 자의 해석이 분명 하지는 않다

.

특히 호석과 체석은 많은 사전들이 잘못은 범하는 경우가 많다

.

∙ 호석(互釋):a, b也; b, a也.

예) 亮·介·尙, 右也; 左·右, 亮也.

∙ 체석(遞釋):a, b也; b, c也.

예) 遘·逢, 遇也; 遘·逢·遇, 遻(wu)也; 遘·逢·遇·遻, 見也. 8) 하영삼, 「중국 한자사전 부수배열 체계의 변천」, 뺷중국어문논집뺸 10, 중국어문학회, 1995.

(12)

과거의 어휘 풀이에서는

‘a

b’

의 방식을 취한 예가 많았다

.

.

어떤 단어가 본문 속에서 지니는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그것이 다른 어떤 단어에 해당한다고 지적하여

某猶某也

·

某猶言某也

라고 풀이하는 방식이 다

.

풀이에 사용하는 단어와 풀이되는 단어가 꼭 호훈

(

互訓

:

한 단어로 다른 단어를 풀이할 때 그 역으로도 성립하는 것

)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이를테면

側猶厓也

이란 단어가

(

)’

와 같다는 뜻이지

, ‘

자체가

의 뜻을 가졌다는 것은 아니다

.

새로운 한자사전은 하나의 용어나 개념을

종차

(

種差

)+

유개념

(

類槪念

)’

으로 정의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 이다

.

3. 보계수(譜系樹)의 구성

중국학자 왕력

(

王力

)

은 「이상적 자전

(

理想的字典

)

」에서

,

자전은 자의가 파생된 내력을 진

·

한 이후까지 기술하고

,

시대의 선후를 구분하며

,

많은 글자로 한 글자를 풀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9)

이를테면

의 본의는 뺷설문뺸에 따르면 아침

[

]

이다

.

여기서

아침부터 식사 때까지

를 뜻하게 되고

,

한 편으로

천자를 알현한다

는 뜻으로 전이했다

. ‘

천자를 알현하다

는 뜻에서

자식이 부모를 뵘

으로 확대되고

,

한편으로는 의미가 전이되어 군신이 정치를 숙의하는 곳을 가리키게 되었다

. ‘

부모를 뵘

에서부터

공경하는 사람을 만남

을 가리키게 되고

, ‘

군신이 정치를 숙의하는 곳

에서

관부 청사

(

官府聽事

)’

를 가리키게 되었으며

,

한편으로는 의미가 전이되어

한 군왕이 통치하는 시기

를 가리키게 되었다

. ‘

는 근대에 들어와 다시

朝東

’,

朝北

과 같이

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

모든 글자들에 대하여

보계수

를 그릴 수는 없겠지만

,

자전은 의미의 파생이나 변화를 모두 충분히 반영해 야 한다

.

朝, 旦也 從旦至食時 見天子

君臣謨政事處

見君父

每一家的君主時代 官府聽事 見所敬之人

4. 인용 원문의 제시 방식 개선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의 뺷한한대사전뺸은 각 한자나 표제항의 의미를 설명할 때 평이한 한글을 이용하여 읽기에 편하다

.

하지만 용례를 든 것은 모두 원문을 그대로 제시하여 일반 독자들이 전혀 읽을 수가 없다

.

9) 뺷國文月刊뺸 33, 1945. 3; 뺷龍蟲倂彫齋文集뺸 1책에 재수록.

(13)

일본의 뺷대한화사전뺸은 원문의 왼쪽에 훈독 순서 부호

(

, 1·2·3,

·

)

를 붙여 두었으므로

,

일반 독 자라도 읽기에 편하다

.

중국의 뺷한어대사전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원문에 구두점을 붙여 실었다

.

한국의 한자사전은 중국이나 일본의 한자사전과 같은 식으로 어휘의 출전이 되는 원문들을 복수로 제시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

필요한 원문만을 제시하고

,

그에 대한 번역을 함께 병기하는 방법도 신중하게 고려 할 필요가 있다

.

Ⅳ. 한자사전의 재검토 시 유의 사항

1. 현대의 다양한 사전들이 제시한 표제항을 참고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의 뺷한한대사전뺸은 편찬 때 일본의 뺷대한화사전뺸이나 중국의 뺷한어대사전뺸을 철 저히 검토한 것으로 알고 있다

.

재검토 때에는 이외에도 극내외 여러 사전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

특히 뺷대한화사전뺸은 주자학과 불교

,

인명의 어휘 항목이 많은 데 비하여

,

뺷한어대사전뺸은 역사 개념의 항목이 충 실하다

.

한편 한자사전을 재구성할 때는 뺷중국대백과전서

(

中國大百科全書

)

뺸의 항목도 참고로 할 필요가 있다

.

1

판은

1978

중국대백과전서총편집위원회

가 편찬하기 시작해서

1993

년 중국대백과전서출판사에서

74

권으 로 출판했다

. 66

문 학과

(

学科

)

및 지식문류

(

知識門類

)

를 포괄하며

, 8

만개 항목이다

.

학과 및 지식영역에 따 라 분책하고 그 안에서는 한어병음

(

汉语拼音

)

순서로 배열했다

.

10)간명판

(

简明版

) 12

[2004.4],

광반판

(

光 盘版

)[1995~1999.10],

망락판

(

网络版

)

등이 이어서 나왔다

.

뺷중국대백과전서뺸 제

2

판은

1995

12

월 중국국 무원 비준으로 개시되어

, 2009

4

16

32

권으로 출판되었다

.

정문

(

正文

) 30

,

색인

(

索引

) 2

, 6

만개 조목이다

. 3

만 폭의 삽도

, 1

천 폭의 지도가 들어 있다

.

1

판과 달리 영역별로 배열하지 않고 항목의 한어병 음자모

(

汉语拼音字母

)

순서로 배열했다

. 2011

년 말 제

3

판 편집 출판 계획이 국무원 비준을 받았으며

,

인터 넷화를 추진하되 종이판을 계속 출판하기로 했다고 한다

.

한국의 한자사전은 일본과 중국에서 제작되거나 한국에서 제작되는 각종 ⓐ 사전

(

辭典

)

ⓑ 사전

(

事典

)

ⓒ 학예사전

(

學藝事典

)

ⓓ 인명사전

(

人名事典

)

들을 참고하여 항목을 증가시키고 풀이 내용을 개정해나가야 할 것이다

.

10) 뺷중국대백과전서뺸 제174권:哲学Ⅰ·; 宗教;中国历史Ⅰ··; 外国历史Ⅰ·; 政治学; 法学; 军事Ⅰ·; 济学Ⅰ··; 财政·税收·金融·价格; 社会学; 民族; 考古学; 文物·博物馆; 中国文学Ⅰ·; 外国文学Ⅰ·; 美术

·; 音乐·舞蹈; 戏剧; 戏曲·曲艺;电影; 语言文字; 图书馆学·情报学·档案学; 教育; 体育; 新闻出版; 中国地理; 世界地理; 数学; 物理学Ⅰ·; 力学; 化学Ⅰ·; 天文学; 大气科学·海洋科学·水文科学; 固体地球物理学·测绘学· 间科学; 地理学; 地质学; 环境科学; 生物学Ⅰ··; 现代医学Ⅰ·; 中国传统医学; 心理学; 农业Ⅰ·; 矿冶; 机械 工程Ⅰ·; 电工; 电子学与计算机Ⅰ·; 自动控制与系统工程; 化工; 轻工; 纺织; 土木工程; 建筑·园林·城市规划; ; 交通; 航空·航天; 总索引.

(14)

<그림 2> 戸川芳郎 監修, 佐藤進·濱口富士雄 編集, 뺷全訳 漢辞海뺸(三省堂, 2000年 初版, 2017年 4版).

漢和辞典 최초로 漢文用例 모두에 日本語訳·書き下し文·出典을 명시. 親字數 12500. 뺷강희자전뺸식 부수 배열. JIS코 드·유니코드를 명시. 熟語數 8만. 최신 연구성과를 도입한 정확한 字音 情報, 品詞別로 배열한 合理的인 語義 解說.

2. 한국의 시문, 자전, 운서, 유서(類書), 잡고(雜考)의 참고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편 뺷한국한자어사전뺸은

150

여 종

,

3,500

책의 전적

(

典籍

)

을 대상으로 한국식 한자와 한자어를 수집

·

정리하여 그 출전을 밝혔다

.

이 사전은 한국의 고유 한자와 한자어를 최초로 집대성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하지만 한국한자어의 조사와 수용에서 뺷한국한자어사전뺸은 미비한 면이 있다

.

향후 한국의 시문

,

자전

,

운서

,

유서

(

類書

),

잡고

(

雜考

)

에서 다룬 항목들을 분석하여 필요한 표제항을 증가시킬 필 요가 있다

.

이를테면 김려

(

金鑢

)

1797

(

정조

21

)

강이천

(

姜彝天

)

의 비어

(

飛語

)

사건에 연루되어 부령

(

富寧

)

으로 유배 가는 동안 기록한 뺷감담일기

(

坎窞日記

)

11)

土司

公人

이란 말이 나오는데 뺷한국한자어사전뺸은 이 단어들을 저록하지 않았다

.

이 단어들은 뺷한한대사전뺸에 나오는 중국의 아래 용례들에서 파생되어 나온 한 11)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소장 필사본 1; 1882년 목활자 간행 김려 문집 뺷담정유고(藫庭遺藁)126책 가운데 권7 수록.

(15)

국한자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

, ‘

白買

’, ‘

行錢

이라는 말이나

=(

방언

)

은 뺷한국한자어사전뺸에도 뺷한 한대사전뺸에도 수록하지 않았다

. ‘

行錢

은 뺷한국한자어사전뺸에

시중에 유통되는 돈

으로 정의했으나

,

여기서 는

동전을 유통한다

는 뜻이어야 한다

.

(1797년 11월) 十七日壬午, 卯時量, 到金化.

入金化, 先詣土司. 由吏廉麟瑞者防塞, 使不得坐, 出付刑所. 見其貌, 可三十四五年紀, 身材短小, 紫棠 色面皮, 眸子恰像賊眼不良, 呵叱鐵原公人如奴隷. 嗾其倅閔致謙, 多發吏校, 趁時驅逐, 鞭朴俱下. 傷弓之 鳥, 復當厄會, 心膽俱裂, 昏絶僅甦. 致謙是世交, 親誼不凡, 而當是時, 無異讐家, 此曷故焉.

(1798년 정월)初五日庚子, 曉發午憇古站驛, 過皮道崓. 夕宿蘆田項.

是日日稍溫. 曉發午憇古站驛, 一名高驂磧, 村頗富饒. 過皮道崓, 俗名皮斗岸, 或曰皮德. 德者, 方言 岸也. 夕宿蘆田項村舍. 過摩天以北, 無酒肆飯店, 只從村戶買喫. 各邑吏校因公而行, 號曰公人者, 皆白買 討食. 盖嶺以北, 不行錢故也.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뺷漢韓大辭典뺸 중국 뺷漢語大詞典뺸

【土司】1.亦稱“土官”. 元、明、淸時期於西北、西南地區 設置的由少數民族首領充任幷世襲的官職. 按等級分爲宣慰 使、宣撫使、安撫使等武職和土知府、土知州、土知縣等文 職. 明淸兩代曾在部分地區進行改土歸流. 解放后, 土司制度 已廢除. ≪元史·仁宗紀三≫:“雲南土官病故, 子姪兄弟襲 之, 無則妻承夫職.”≪明史·職官志一≫:“凡土司之官九 級, 自從三品至從七品, 皆無歲祿.” 王闓運≪擬李鴻章陳苗 事折子≫:“土司之制, 即蜀臣諸葛亮用孟獲之意也;歸流 之制, 則鄂爾泰、張廣泗所秉廟算於世宗、高宗者也.”2.指 土司官吏所轄少數民族聚居的地區. 淸李調元≪南越筆記· 粵俗好歌≫:“東西兩粵皆尙歌, 而西粵土司中尤盛.” 吳晗

≪朱元璋傳≫第四章二:“三是在上述兩個系統以外, 和南部 思普一帶的許多少數民族, 就是明代叫作土司的地區.”

【公人】1.封建時代稱衙門里的差役. 宋文天祥≪宣州勸農 文≫:“年年早納早收鈔, 那有公人來叫呼?”≪水滸傳≫第十 八回:“隨即押一紙公文, 就差何濤親自帶領二十個眼明手 快的公人, 徑去鄆城縣投下.”≪紅樓夢≫第四回:“<雨村>

便發簽差公人立刻將凶犯家屬拿來拷問.”2.舊時國家機關或 公共團體中辦理公事的人員, 亦稱公人.

향후 한국한자어와 한자 용례를 조사할 때 고려해야 할 조선시대의 사전류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 한국의 초학자용 한자 학습서

한국의 초학자용 한자 학습서는 유서

(

類書

)

의 형식을 참조하여 글자들을 분류했다

. 1527

(

중종

22)

에 최

(16)

세진

(

崔世珍

)

은 뺷훈몽자회

(

訓蒙字會

)

뺸를 간행하고

,

선조 때 유희춘

(

柳希春

)

은 주자학 사상에 맞추어 뺷유합

(

類合

)

뺸의 풀이한 뺷신증유합

(

新增類合

)

뺸을 간행했다

. 1810

(

순조

10)

장혼

(

張混

)

은 어휘집인 뺷몽유편

(

蒙喩 編

)

뺸을 간행했다

.

장혼은 이 외에도 뺷아희원람

(

兒戱原覽

)

·

뺷초학자휘

(

初學字彙

)

뺸 등의 자학 교재를 엮었다

. 1856

(

철종

7)

에 정윤용

(

鄭允容

)

은 뺷자류주석

(

字類註釋

)

뺸을 완성했는데

, 4

35

류에

1

1

천여 항목을 수 록했다

.

이밖에 뺷정몽유어

(

正蒙類語

)

(1884

),

뺷통학경편

(

通學徑編

)

(1916, 1918)

등이 있다

.

㉡ 한자어휘분류집

본래 뺷시경뺸의 학습에서 물명

(

物名

)

을 중시한 전통에서 출발하여 일반 물명을 고증하는 서적이 편성되기 도 했으나

,

기타 한문 전적이나 백화문에 사용되는 한자 어휘에 대하여도 널리 풀이

[

훈석

(

訓釋

)]

를 했다

.

김 진

(

金搢

)

1615

년부터 인조 초에 걸쳐 뺷신보휘어

(

新補彙語

)

뺸를 엮었는데

, 1653

년에

59

13

책으로 목판 인쇄된 이후

, 1684

년에 중간되었다

. 17

부문

649

2,819

목이다

. 1798

년 이만영

(

李晩永

)

은 뺷재물보

(

才物譜

)

뺸 를 엮었다

.

태극

·

천보

(

天譜

지보

(

地譜

인보

(

人譜

물보

(

物譜

)

로 분류하고 다시 각각

130~140

여 개 소 부문으로 분류했다

.

이후 실명씨가 뺷재물보뺸를 증보하여 뺷광재물보

(

廣才物譜

)

4

책을 엮었다

. 1820

년대 유 희

(

柳僖

)

는 이만영의 뺷재물보뺸의 지보

(

地譜

)

와 물보

(

物譜

)

를 고증해서 뺷물명고

(

物名考

)

5

1

책을 이루었는 데

, 4

14

부문

701

항목을 수록했다

.

정약용

(

丁若鏞

)

1819

년에 속어를 고증한 뺷아언각비

(

雅言覺非

)

뺸를 엮 었다

.

뒤에

3

1

책으로 인쇄되었다

.

또 뺷청관물명고

(

靑館物名考

)

뺸를 엮어

, 22

1,748

항목을 수록했다

.

정 약전

(

丁若銓

)

은 흑산도 근처 바다에 서식하는 어류명을 분류하고 고증하여 뺷자산어보

(

玆山魚譜

)

뺸를 엮었다

. 1804

년에는 정약용의 뺷이아술의

(

爾雅述意

)

뺸를 취사하여 뺷몽학의휘

(

蒙學義彙

)

뺸를 엮었다

.

정학상

(

丁學祥

정학포

(

丁學圃

)

는 조수

·

충어

·

초목의 이름을 설명한 뺷시명다식

(

詩名多識

)

4

2

책을 엮었다

.

이밖에 뺷사 류박해

(

事類博解

)

(1855

년 필사

),

뺷만물록

(

萬物錄

)

,

뺷물명찬

(

物名纂

)

(1890

년 필사

),

뺷자의물명수록

(

字義 物名隨錄

)

,

뺷물명

(

物名

)

뺸이란 어휘집이 있다

.

㉢ 근대적 자전

지석영

(

池錫永

)

1906

년에 뺷자전석요

(

字典釋要

)

뺸를 완성했다

.

이것은

1909

7

30

일에 회동서관

(

滙 東書館

)

에서 간행한 최초의 근대적 자전으로

, 1925

년에 제

16

판이 발행되었다

. 1945

년에는 다시 영창서관

(

永 昌書館

)

에서 재판이 나왔다

.

상하

2

권으로

, 16,295

자를 수록했다

.

뺷강희자전뺸에서 자류와 새김 등을 본받되

, 18

세기 말에 이루어진 조선의 운서 뺷규장전운

(

奎章全韻

)

뺸과 뺷전운옥편

(

全韻玉篇

)

뺸 등을 참고로 자류와 자 음

,

새김을 확정했다

.

최남선

(

崔南善

)

의 조선광문회

(

朝鮮光文會

)

1915

년에 뺷신자전

(

新字典

)

4

1

책 총

246

장을 간행했다

. 6

천여 자를 수록했으며

,

뺷강희자전뺸을 참고하여 획수순으로 배열했다

.

한자음은 뺷전운옥 편뺸과 지석영의 뺷자전석요뺸를 참고로 했다

.

한자의 새김은 주시경

(

周時經

)

과 김두봉

(

金枓奉

)

이 담당했다

.

㉣ 한국에서 이용된 운서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운서를 토대로 하되 우리 실정에 맞는 운서를 만들어 왔다

.

고려 덕종 연간

(17)

(1031~1034)

에 뺷예부운략뺸을 수입하고

,

그 뒤 복간본

(

覆刻本

)

을 만들었다

.

이후 뺷배자예부운략

(

排字禮部韻 略

)

,

뺷고금운회거요

(

古今韻會擧要

)

뺸를 이용했다

.

조선초기에는 뺷홍무정운뺸을 받아들였고

,

한자음을 한글로 적은 뺷홍무정운역훈

(

洪武正韻譯訓

)

뺸을 간행했다

.

그 뒤 뺷홍무정운뺸을 기초로 뺷동국정운

(

東國正韻

)

뺸을 만들 었다

.

뺷동국정운뺸의 운목표

(

韻目表

)

는 뺷고금운회거요뺸에서의 내부분운

(

內部分韻

)

이라고 할 수 있는 자모운 의 목록에 해당하며

,

배열만 훈민정음 차례를 따랐다

.

최세진

(

崔世珍

)

의 뺷사성통해

(

四聲通解

)

뺸는 여러 운서 들을 참고로 하되

,

뺷고금운회거요뺸의 체계를 따랐다

.

조선중기에는 편자미상의 뺷삼운통고

(

三韻通攷

)

뺸가 나 왔는데

,

운목은 뺷예부운략뺸을 그대로 따랐다

.

그 뒤 뺷삼운보유

(

三韻補遺

)

뺸와 뺷증보삼운통고

(

增補三韻通考

)

뺸 가 나왔다

. 1747

(

영조

23)

에 박성원

(

朴性源

)

은 뺷화동정음통석운고

(

華東正音通釋韻考

)

뺸를 엮어 뺷삼운통고뺸 에 한글 음을 표시했다

.

그 뒤에 나온 뺷삼운성휘

(

三韻聲彙

)

뺸와 뺷규장전운

(

奎章全韻

)

뺸은 뺷삼운통고뺸와 글자 순서만 다르고 체제는 같다

.

뺷규장전운

(

奎章全韻

)

뺸은 정조의 명을 받아 이덕무

(

李德懋

, 1741~1793)

등이 편 찬한 운서이다

. 1792

(

정조

16)

원고가 완성된 뒤 윤행임

(

尹行恁

서영보

(

徐榮輔

)

등의 검토를 거쳐

1796

년에 간행되었다

. 2

1

책이며 목판본이다

.

12) 운서는

106

개의 운목을 설정한 뒤

4

성에 속하는 글자들을 한 면에 모두 표시하는 방식을 취했다

.

동일한 운에 속하는 글자들은 중국어

36

자모순이 아니라 뺷삼운통고뺸의 체재를 따라 국어 자모순에 따라 배열했다

.

㉤ 한국의 유서와 잡고

유서

(

類書

)

는 재문

(

載文

)

의 형식을 취한 사전이다

.

잡고는 선정한 어휘나 개념들을 구체적 문헌 증거와 경 험 증거를 근거로 논증한 글들을 모든 것이지만

,

선정한 어휘나 개념은 당시의 지식풍토와 현안을 반영한다

.

따라서 한국의 지식계에서 중시한 어휘나 개념들을 폭넓게 수록한 유서의 잡고들을 검토하여 새로 사전을 구 성할 때 표제항을 정리하고 보완할 수 있다

.

고려시대에도 유서가 나왔으리라 추정되지만

,

현재 남아 있는 본격적인 유서로는 조선 선조 때 권문해

(

權 文海

, 1534~1591)

가 엮은 뺷대동운부군옥

(

大東韻府群玉

)

20

20

책이 가장 오래다

.

13) 이 책은 운목별로 표 제어휘를 배열하고 고사

(

故事

)

의 원문을 기록하는 방식은 뺷운부군옥

(

韻府群玉

)

뺸을 모델로 삼되

,

우리나라의 문헌

174

종과 중국의 문헌

15

종에서 우리나라의 지리

·

국호

(

國號

성씨

·

인명

(

부:종실

효자

(

부:효녀

열녀

·

수령

·

산 이름

·

나무 이름

·

꽃 이름

·

짐승 이름과 관련 어휘와 사실을 총망라했다

. 1642

(

인조

20)

에는 김육

(

金堉

)

이 뺷유원총보

(

類苑叢寶

)

46

권을 엮어

(1643

년 전남감영과

1644

년 남한산성에서 목차와 함 께

47

권으로 간행

),

천문

·

지리

·

관제

·

문학

·

진보

(

珍寶

)

에서 초목

·

충어까지의 사항을

25

부문으로 분류 수록했다

. 1654

(

효종

5)

에는 오명리

(

吳命釐

)

가 고금의 사물을

70

부문으로 분류하여 뺷고금설원

(

古今說苑

)

10

10

책을 간행했다

.

조선 영조

45~46

(1669~1770)

홍봉한

(

洪鳳漢

)

등이 왕명을 받아 뺷동국문헌비고뺸

12) 이 책은 대본(大本)과 소본(小本)의 둘이 있으며, 발행 부수가 1만 권에 달했다. 여러 차례 중간되었으며, 1846(헌종 12)

어정시운(御定詩韻)’이라는 이름의 수진본(袖珍本:소매에 넣을 수 있는 크기의 책)이 간행되었다.

13) 1812(순조 12) 목판 간행이 시작되어 1836(헌종 2)에 완간되었다. 현전본 가운데 고려대학교 치암문고(癡菴文庫) 소장 본이 초간본으로 알려져 있다.

참조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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