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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메리카 마야문명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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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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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메리카 마야문명을 찾아서 - 2007. 12. 9 ~ 2008. 1. 18 -

1. mesoamerika 탐사 일정

1. 12월 9일(일)

인천(11:05)-NW008-나리따(13:20) 나리따(15:35)-NW002-LA(08:00)

♨ LA 1박(7~23℃) 2. 12월 10일(월) LA 관광(강의)

♨ LA 2박 3. 12월 11일(화) LA 강의(관광)

♨ LA 3박 4. 12월 12일(수) LA(13:00) - MX901 - 멕시코시티(18:33)

♨ 멕시코시티 남산하숙 1박 5. 12월 13일(목) 멕시코시티 시내관광

오전 : 마요르 사원(Templo Mayor), 세 문화 광장(Plaza de las Tres Culturas), 꾸이꾸일꼬(Cuicuilco)유적.

오후 : 멕시코 국립 인류학 박물관 (Museo Nacional de Antropologia)

Martin Schaeffer

1박

6. 12월 14일(금) 뚤라(Tula) 유적 답사

Martin Schaeffer

2박 7. 12월 15일(토) 떼오띠와깐 (Teotihuacan)

♨ 멕시코시티 남산하숙 2박 8. 12월 16일(일) 멕시코시티 - 오아하까(Oaxaca)

멕시코시티(10:25) - MX217 - 오아하까(11:25) 102+31.95$

오후 : 시내 박물관

(Museo de las Culturas de Oaxaca)

♨ 오아하까 1박 9. 12월 17일(월)오아하까 - 몬떼 알반(Monte Alban) 마야유적 답사

♨ 오아하까 2박

10. 12월 18일(화) 오아하까 - 야굴(Yagul), 미뜰라(Mitla) 마야유적 답사,

뚜레나무, 이에르베 델 아구아(Hierve el Ag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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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아하까 3박 11. 12월 19일(수) 오아하까 - 비야에르모사(Villahermosa)

오아하까(11:50) - MX216 - MEX(13:00/14:00) - MX7705 - VSA(15:20) ♨ 비야에르모사 1박(Calinda Viva 또는 Olmeca Plaza Hotel) 12. 12월 20일(목) 비야에르모사(Villahermosa) 주변 유적 답사

오전 : 라벤따 유적공원(Parque-Museo de la Venta)

오후 : 인류학지방박물관(Museo Regional de Antropologia, CICOM) 빨렝께로 이동

♨ 빨렝께 1박(Chan-Kah Resort Village 또는 Kashian Hotel) 13. 12월 21일(금) 빨렝께(Palenque) 마야유적 답사

♨ 빨렝께 2박

14. 12월 22일(토) 빨렝께 - 야흐칠란(Yaxchilán) - 보남팤(Bonampak) - 플로레 스(Flores) 1박 2일, 출발 : 6:00 AM,

♨ 캠핑 버스 1박 15. 12월 23일(일) 플로레스 도착 (-13:00) 오후 휴식

1$=7.7Q 1Q=118원

♨ 플로레스 1박(Peten Esplendido 또는 Sabana 호텔) 16. 12월 24일(월) 띠깔 마야유적 관광

♨ 플로레스 2박 17. 12월 25일(화) 과테말라 - 벨리제

풀로레스(05:00/07:30) -국경버스 - 산ㆍ이그나시오(San Ignacio) 카알 페츠(Cahal Pech), 후난투니츠(Xunantunich) 관광

* 벨리제 비자 필요 - 명예 영사관 (02) 553 3836 , * 1 $ = 2 BZ$

♨ 산ㆍ이그나시오 1박(Rosa's Hotel) 18. 12월 26일(수) 산 이그나시오 - 벨리제시티

Caracol Archaeological Site 답사

♨ 벨리제시티 1박(Chateau Caribbean 또는 The Bellevue호텔) 19. 12월 27일(목) 라마나이(Lamanai), 알탄 하(Altan Ha)

♨ 벨리세 시티 2박 20. 12월 28일(금) 벨리세시티 관광

벨리세 박물관

벨리세(17:20) - TA411 - 산살바도르(18:20)

♨ 산살바도르 1박(San Carlos-Tika bus) 21. 12월 29일(토) 산살바도르 관광

시내관광(Museo Nacional de Antropologia 등)

♨ 산살바도르 2박(San Carlos-Tika bus)

22. 12월 30일(일) 호야 데 쎄레엔(Joya de Ceréen), 산 안드레스(San André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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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주말(Tozumal) 마야유적 답사

♨ 산살바도르 3박(San Carlos-Tika bus)

23. 12월 31일(월) 산살바도르(06:00) - TIKA BUS 5시간 - 과테말라시티(11:00) ♨ 빠나하첼(Panajachel) 1박 24. 1월 1일(화) 아띠뜰란호수(Atitlan lago) 이힘체유적(Ruinas de Iximché)

♨과테말라시티1박(

Japon Tenango(공항영접 20$, 트윈숙박 25$)

25. 1월 2일(수) 꼬빤유적 투어 참석

♨ 꼬빤 1박 26. 1월 3일(목) 꼬빤투어에서 돌아옴

♨ ANTIGUA "Casa Florencia"

27. 1월 4일(금) 과테말라시티 관광

국립고고민족학박물관(Museo Nacional de Arqueologia y Etnologia) 포폴 부 박물관(Museo Popol Vuh)

까미날 후유 유적(Sitio arqueológico de Kaminal Juyú)

♨ 과테말라시티 2박 28. 1월 5일(토) 과테말라 - 니카라과(Nicaragua) 마나과(Managua) 과테말라시티(06:32) - CM710 - 마나과(07:48)

마나과 시내관광

♨ 마나과 1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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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mesoamerika 탐사 기록

* 기록 가운데 작은 글자로 되어 있는 것은 탐사 가기 전 수집한 자료들이며, 나머지는 현 장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1. 12월 9일(일)

인천(11:05)-NW008-나리따(13:20)

일어나니 6시 반, 엊저녁 늦게 잤더니 기상이 늦었다. 주섬주섬 준비를 하고 상욱이 집에 가서 아침을 먹었다. 상원이가 대전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매주 하던 토요 아침 합동식사는 이번이 마지막이고 다음 달부터는 1달에 한 번 하게 된다.

상원이가 아침에 이미 집에서 인터넷으로 체크인을 해주어 줄을 서지 않고 좌석표만 받았 다. 이전에는 미국 가는 손님만 따로 보안 검사를 했는데, 지금은 미국 가는 사람은 신발을 벗는 정도로 가벼워졌다.

인천을 떠난 미국 서북항공은 동해를 건너 쿄토 나고야를 지나 예정보다 20분 정도 빠르 게 동경 하네다공항에 도착하였다. 다시 긴 줄을 서서 연결 손님에게만 하는 보안검사를 하 고나니 바로 탑승구역이다. 껌과 생수 한 병을 사려는데 240엔이다. 이것 때문에 일본 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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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꿀 수도 없고, 신용카드를 내밀자니 너무 작은 액수라 망설이다가 그냥 카드를 냈더니 두 말없이 팔아준다.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는 시에틀을 가기 때문에 다른 비행기로 갈아탄다. 서북항공은 홍 콩, 중국, 한국 등지에서 미국에 가는 모든 손님을 싣고 와서, 여기서 다시 시에틀, LA 등 지로 바꾸어 타고 미국의 각지로 직접 날아가게 하는 시스템이다. 그야말로 동경을 허브공 항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나리따(15:15)-NW002-LA(08:00)

3시 15분 예정대로 탑승이 끝났으나 뜨는 비행기가 늦어 4시가 다 되어서야 take off, 500명 이상의 타는 747은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대단한 규모이다. 커다란 강당 이 하나 떠서 날아간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갈 것이다. 옛날에는 나르는 궁전이라고 했는데, 이제 궁전은 아닌 것 같다. 동경으로 올 때 탄 비행기는 영화, 음악, 게임, 지도를 마음대로 골라서 볼 수 있었는데, 747은 아니다. 특히 현재 나는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지도 기능을 이용할 수 없어 아쉽다.

겨울에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언제나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 하는 것이 작지만 중요한 고민이다. 우선 내복을 입고, 춘추 남방을 입은 뒤 스웨터를 입었다. 그리고 공항에서 배웅 나온 상원이 상욱이에게 입고 왔던 파커를 벗어주었다. 처음 이런 상태에서 비행기를 타면 너무 더울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지금 입고 있는 정도가 가장 알맞았 다. LA는 덥다고 하지만 최근 온도를 체크해 보니 최저 7도이고 최고 23도 이상은 올라가 지 않는다. 한국의 가을 정도이고, 이 정도면 내복을 입고 들어가도 너무 덥지 않겠다는 생 각이 든다.

저녁 먹고 나니 6시가 넘어 7시가 가까워진다. LA는 밤 2시가 가까워진다. 지금부터는 자는 것이 최고다. 한국은 초저녁이지만 도착지는 앞으로 몇 시간만 더 가면 해가 뜰 것이 기 때문이다.

몇 시간 잔 것 같은데 계속 잠이 오지 않는다. 다행히 지희심은 타서부터 계속 잠을 잔 다. 그동안 사무실 일로 많이 피곤했나 보다. 멕시코 인류학박물관에 대한 설명을 번역하면 서 정확하게 파악하기 시작하였다. 상당한 공부가 되었다. 그런데 노트북 배터리가 다 되어 부득이 중단했다. 밖에는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고 LA에 가까워진다.

8시 로스엔젤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미국 국적인(citizen)은 아주 빨리 끝나는데 외 국인(visitors)들은 입국목적 등을 묻는 것으로 시작하여 지문 찍고 사진 찍고 하느라 시간 이 많이 걸린다. 우리는 뒤에 앉았기 때문에 1시간이 훨씬 넘어서야 긴 줄에서 해방되었다.

박문옥 군이 차를 가지고 나와서 쉽게 민박집을 찾을 수 있었다.

L.A 홈스테이 민박(USA Tour) : usaminbak@yahoo.com, Tel : 1-213-392-3007 서울 연락처 : 736-5000, 010-6340-4638

10시 반쯤 올림픽가(Korea Town)와 Arlington이 만나는 부분에 있는 민박에 도착해 보 니 아주 편하게 대해준다. 2층 방에 짐을 내리고, 조금 쉰 뒤, 12시 쯤 낮밥을 먹었다. 이곳 민박집은 밥, 라면, 김치, 곰국을 준비해 놓고, 손님들이 시간에 관계없이 아무 때나 먹는 시스템이다. 하나 더 좋은 것은 무선 인터넷이 되어 메일을 검색하고 뉴스를 볼 수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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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마침 과테말라 에스페란티스토가 나를 안내할 계획을 보내와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마침 5명의 가족이 새로 도착하였는데, 뉴질랜드에서 사는 동포들이 다. 우리는 함께 시내구경을 가기로 하였다. 집에서 쉬면 잠을 자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저녁 에 잠을 자지 못해 시차적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걸어서 Korea Town을 구경하면서 지 하철과 버스를 탈 수 있는 Western Ave와 Wilshire Blvd가 만나는 역까지 가서 버스 타고 먼저 로데오거리에 가서 구경을 하였다. 티파니, 구찌, 크리스찬디올, 뤼비똥, 샤넬 같은 고 가품을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아주 화려하지 않고, 깨끗한 거리인데, 여기가 세계 최 고 쇼핑가라고 한다.

장엄한 하루의 해가 지는 태평양 가 Santa Monica에서 오늘 일정을 마감하였다.

돌아와 저녁을 먹고, 9시 조금 넘어 잠자리에 든다. 이렇게 해서 긴 여행을 위한 긴 첫날 은 상큼하게 시작되었다.

♨ LA 1박(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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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LA 의 산타 모니카에서

해지는 태평양

태평양은 분명히 서쪽에 있고,

오늘도 붉은 해는 태평양 서쪽으로 지내

일생을 태평양은 동쪽에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어찌하여 하루 만에 태평양이 서쪽으로 갔는가!

본래 동서남북 상하좌우가 없는데, 우리는 움직이지 않는 해를 보고

아침에 동쪽에서 떠서 저녁에 서쪽으로 진다고 생각하다 어느 날 무덤 앞에 서있는 나를 발견하네!

2. 12월 10일(월) LA 관광(강의)

깨서 보니 새벽 1시 반 그래도 4시간을 잘 잤다. 이 정도면 시차극복을 성공한 것이다. 4 시간만 자면 오늘 일정은 차질이 없기 때문이다. 어제 한 일 기록하고, 멕시코시티 인류학 박물관 공부를 마쳤다. 아침밥 먹고 오늘 일과 시작,

걸어서 코리아타운인 올림픽거리 → Western Ave. → Wilshire에 도착하여 전철을 탔다.

좀 먼 거리를 걸었지만 서울보다 공기가 좋아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처음 타보는 LA 전 철은 복잡하지 않았다.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내려가 표 파는 곳을 찾았지만 서울처럼 표 파 는 곳은 없고 자동판매기가 전부다. 물어물어 one day pass를 샀다. 성인 한 사람에 5달 러. 마침 한국에서 이민 온 74살의 젊은 노인을 만나 함께 가면서 전철 타는 법을 자세히 배웠다. 62세 이상 senior는 1.8$만 내면 되는데 나는 너무 많이 낸 것이다.

먼저 할리우드에 가기로 하였다. 할리우드 역도 3군데나 된다. 그러나 할리우드 기분이 가장 잘 나는 곳은 바로 마지막 역인 할리우드 하일랜드라고 한다. 거리로 나오자마자 길바 닥에 스타들의 이름이 끝없이 이어진다. 톰 행커스 이름 앞에서 기념촬영, 차이나하우스에 있는 스타들의 손도장, 발도장을 보러 갔는데, 무슨 행사를 하느라 관광객의 출입을 막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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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 보지 못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거행되는 코닥극장 관광, 선셋스트립 같은 곳을 30분 정도 간단히 보고 다시 지하철로 내려갔다.

지하철 타고 한 정거장 가니 바로 유니버셜 시티역이다. 시간은 이미 11시 반이다. 길 건 너에서 셔틀을 타고 표를 사는데, 한 사람에 64$,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0년 쿠바 다 녀오면서 한 번 와보았지만, 완전히 새로 출발이다. 안내소에서 한글로 된 지도를 한 장 받 아, 보고 또 보고, 우선 사람들의 물결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서 촬영소 투어에 들어갔다.

17년이 지났지만 거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특수효과 쇼, 쥬라기공원, 블루브 라더스 공연, 워터월드 등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곳저곳을 다녔다. 그러나 전체를 다 보기 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여, 천천히 볼 수 있는 만큼만 돌아다녔다.

3시 50분부터 시작되는 워터월드를 보고 나니 4시 반이 다 되었다. 내복 입고, 스웨터까 지 입었지만 생각보다 날씨가 쌀쌀하다.

* 세계 최대의 영화촬영소 유니버셜 스튜디오(Universal Studios Hollywood) *************

유니버셜 스튜디오 헐리우드는 헐리우드 북쪽에 위치한 170만 평방킬로미터의 면적을 자랑하 는 세계최대의 영화 및 TV 촬영 스튜디오로서, 테마파크까지 있어서 죠스, 쥐라기 공원, 킹콩 등 의 영화에서 나왔던 광경들을 실제로 볼 수 있고 다양한 놀이기구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 는 쉬렉 4-D 극장을 개관해서 관광객을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주위는 유니버샬시티워크 등 각종 위락시설과 대형 영화관 등 볼거리가 풍 성해서 밤낮으로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LA 관광명소 중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이다.

1일 이용권 - 2007년 2월 현재 - 일반인 - US$ 64.00 평일 - 오전 10 시 ~ 오후 6시

주말, 공휴일 - 오전 9 시 ~ 오후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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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전철 타고 버스 타고(one day pass는 버스도 모두 탈 수 있다) 민박집으로 돌아와 잠깐 쉬었다.

7시가 좀 못 되어 겨레얼찾기운동 단체 사무총장 김현숙 박사가 차를 가지고 와서 국선 도 도장으로 갔다. 김창욱 사범을 비롯하여 10명쯤 되는 회원들이 모여 있었다. 1시간 반쯤 중국의 역사침탈과 동북공정에 대해서 강의를 하고, 이어서 질의응답을 하는데 1시간이 걸 려 2시간 반이 지나서야 강의가 끝났다. 인원은 많지 않았지만 상당히 관심이 많고, 전문적 인 지식을 가진 이들이 참석하여 해외 동포들도 조국의 역사 문제에 대해 상당히 진지한 관 심을 갖는데 대해 감동을 받았다.

10시 반부터 김현숙 박사의 차로 LA 야간 투어를 시작하였다. 차이나타운, 일본타운, 멕 시코인 유태인 거리, 비버리힐즈 등등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민박집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방에 들어와서 보니 조금 전까지 찍었던 사진기를 가지고 들어오지 않았다. 차에 떨어져 있 기를 기대했지만 결국은 찾지 못했다. 새로 사서 2일 찍은 카메라도 아깝지만 하루 종일 찍 은 사진이 몽땅 날아가 버렸다. 여행의 첫머리에서 분실물에 주의하라는 경고로 삼아야 할 일이다. 2시쯤 취침.

♨ LA 2박

3. 12월 11일(화) LA 아는 이들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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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서 보니 벌써 6시 45분이다. 7시에 오인동 박사가 와서 함께 아침밥을 먹기로 했기 때 문에 부지런히 준비를 마치고 나섰다. 가까운 한인타운 호텔에서 2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었 다.

Rotex호텔 ‘旅愁’ 3411 W Olympic Bl. 323-734-1001 (한국식 아침밥 되는 곳)

오박사님은 원래 정형외과 의사이지만 통일문제나 역사 문제에 관심이 많아 관련 글을 상 당히 발표한 전문가다. 특히 Korea라는 나라이름의 유래에서 깊은 연구가 있어 고구리와 고리의 소릿값을 논문으로 썼던 나는 15세기 이후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국호를 어떻게 불 렀는가에 대해서 여러 가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민박집으로 걸어오는 동안 마침 달마사라는 절이 있어 잠깐 들렸다. 아주 큰 규모는 아니 지만 수없이 많은 교회 사이에 절도 있다는 것이 이채로웠다.

12시가 되니 ‘di ji Camera’ 지경수 사장이 차를 가지고 왔다. 엄청나게 많은 양을 주는 도가니탕을 함께 먹으면서 함께 등산 다니던 시절, 뉴올리언즈에서 만났던 시절 같은 추억 을 뒤돌아보았다. 3개월 전에 개업했다는 지박사(한국에 있을 때부터 카메라 박사라고 해서 이렇게 불렀다.) 가게는 작지만 정년이 다 된 나이에 무언가 자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시 반쯤 박문옥 군이 와서 함께 우선 큰 마트에 들려보았다. 잃어버린 아픔을 잊는 데는 똑같은 것을 다시 갖는 것이고, 앞으로 여행에서 필요한 카메라를 사기 위해서다. 그러나 어제 잃어버린 것 같은 카메라는 살 수가 없었다.

박문옥 군은 이민 와서 몇 년 안 되었지만 직업도 갖고 집도 사는 등, 안정된 자리를 잡 고 살고 있어 마음이 기뻤다. 이번 박문옥 군 집 방문에서 훌륭한 저녁 대접, 가족들의 연 주 등 모두 기쁜 일이었지만,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은 작은 기도실이다. 함께 사시는 73세의 노모께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작은 다락(다용도실?)방을 기도실로 만들어 깊은 신 앙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먼저 조국과 민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나라가 둘로 갈라져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통 일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식들 하나하나 기도를 해주다 보면 3시간이 금방 갑니 다.”

10년이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3시간씩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노모의 모습 에서 참 종교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피부도 곱고 건강하게 노년을 보내 시고 있어 큰 감동을 받았다.

전태동 군이 바빠서 참석하지 못했지만, 이수호 군이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즐 거웠다. 3년 전에 왔을 때 바로 미국에 도착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3년 만 에 만난 이수호 군은 그사이 영주권 따고 아이까지 생겨 이민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10시 반쯤 민박집에 돌아와 12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 LA 3박

4. 12월 12일(수) LA(13:00) - MX901 - 멕시코시티(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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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서 보니 3시 반, 기록하고 나니 5시 반이다. 다시 잠을 청해 보아야 하겠다.

똑똑....

“차 왔습니다.”

이 소리에 눈을 떠보니 이미 공항으로 출발하기 위해 9시에 와달라고 부탁한 차가 도착 한 것이다. 둘이 모두 늦잠을 잔 것이다. 우리는 주섬주섬 짐을 챙겨 세수도 못하고 공항으 로 달렸다.

‘멕시코 사람들 줄이 길게 서 있으니 빨리 가야한다.’

‘미국은 검사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 빨리 가야 한다.’

여러 가지 말들이 있어 4시간 전에 출발했는데 체크인 마치고 안으로 들어가 약간 지루 한 2시간의 기다림이 있었다.

어제 시내에서 못 산 카메라를 사려고 했으나 공항에는 아예 카메라 파는 상점이 없다.

대 유나이티드 항공사 빌딩 안의 면세점들은 생각보다 초라했다. 출발이 27분 늦어졌지만 저녁 7시 크리스마스 추리를 장식한 것처럼 불빛으로 반짝이는 멕시코시티에 도착하였다.

멕시코시티 공항은 지금까지 내가 다녀본 공항 가운데 가장 활기차고 복잡하다. 내리는 사람과 타는 사람들이 모두 만나서 부딪쳐야 할 만큼 자유분방하다. 이 공항에서는 귀국하 는 사람들도 면세점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카메라를 사려고 했으나 잃어버린 것과 같은 카메라가 없어 허탕. 그런데 출국심사장과 타는 곳이 뒤범벅이 되어 찾기가 쉽지 않다. 결국 처음 긴 줄을 섰다가 허탕, 다시 미국, 아시아, 유럽에서 오는 비행기 손님과 남 미에서 오는 손님은 출국장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다시 긴 줄을 서야 했다.

오랜 기다림 뒤에 출국장을 나서니 수많은 멕시코 사람들 가운데 키가 큰 독일인이과 멕 시코 여인 한 명이 에스페란토 깃발에 “서길수 환영”이란 표지를 써서 들고 서 있다. 갑자 기 복잡한 공항이 간단명료해졌다. 마중 나온 친구들의 완벽한 안내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주의사항.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 것.”에서 시작해, “공항에는 환율이 그다지 좋지 않으니 최소한 금액만 바꿀 것.” 등등. 그리고 돈 바꿔 택시 타는 곳까지 안내하였다. 택시는 갈 곳을 말하 면 그에 따른 표를 떼어 주는 시스템이라 따로 가격 흥정을 안 해도 되어 편리하다. 우리가 갈 곳은 152페소(약 만 4천원)이다. 다시 긴 줄을 섰으나 의외로 빠르다.

우리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앞으로의 일정을 이야기 하는 등, 끝없이 이야기가 계속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saluton”하고 에스페란토로 인사를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뒤에 호 아킴이라는 에스페란티스토가 줄을 서 있다가 인사를 한 것이다. 이 청년은 1990년 쿠바 갔을 때 만났던 소년이었는데,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정말 기막힌 우연이다.

2000만이 사는 멕시코시에서 한 순간에 아는 사람을 만나다니, 우리는 서로 짧은 순간이지 만 이 우연한 만남에 놀라고 기뻐하였다.

마르틴 일행은 택시 운전수에게 우리가 갈 목적지를 정확하게 얘기해 주고, 멕시코시티에 서 45㎞나 떨어진 집으로 1시간 반 차를 타고 돌아간다고 한다. 시간은 이미 9시가 훨씬 넘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고, 에스페란토의 실용성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숙소인 남산하숙에 도착한 것은 10시가 다 되어서였다. 시내 한 복판에 있는 집인데, 주 로 일반 민박집과 달리 오랫동안 머무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한가하다. 우리는 LA 민박 집에서처럼 민박집에서 저녁밥을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주인아저씨가 나와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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녁을 먹고 들어와야 된다며 안내하는데, 뜻밖에 한국 음식점이 있다. 간판도 없는 2층 집에 서 육개장을 먹고 돌아오니 11시가 넘는다.

하숙집은 하루 1인 30달러, 식사 한 끼 5달러 모두 70달러를 주었다. LA 민박집보다 비 싸지만 시설이나 식사 모두 따라가지 못한다. 12시쯤 일찍 잤다.

멕시코시티 남산하숙(김성진) namsanmexico@daum.net 52-55-5207-2162 Hamburgo # 182 / c'irkau' sona risa / taxi 154 peso

엄마하숙 52-55-5207-6541 Londres # 190- 218

멕시코 서울여행사 55-5514-1193 Londres # 175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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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한국관광여행사 55-5512-1417 I. Catolica 1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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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시티 남산하숙 1박

* 멕시코시티 (Mexico D. F.) ***********************************

멕시코시티는 인디오인 아스떼까의 시대에는 호수에 떠 있는 커다란 도시였다. 그러나 스페인 이 점령한 후 호수를 메워버렸기 때문에 현재처럼 분지의 형태가 되었다. 아스떼까 도시에 있던 건축물 역시 묻혀 버리거나 파괴되었다. 지금도 멕시코시티의 지하에는 아스떼까의 도시가 잠들 어 있다.

멕시코시티는 아스떼까제국과 스페인 식민지시대의 옛터, 그리고 중남미 여러나라의 중심지로 서 현대 문화가 섞여 있는 860만 인구(수도권까지 포함하면 2000만이라고 한다.)의 대도시다.

유럽에서 콜럼부스가 찾아오기 전에 이미 스스로 독자적인 고도의 문명을 가진 민족이 살고 있었다. 당시 멕시코시티의 원주민인 아스떼까인들은 호수 위에 거대한 도시를 건설하여 살고 있 었는데, 나중에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이 떼스꼬꼬라는 이 호수를 매워버렸기 때문에 지금 같은 함 지땅이 되어버렸다.

「‘꿈의 세계란 이런 것인가!’ 우리는 입을 모아 말했다. 높은 탑, 신전, 건물 같은 것들이 수중 에 우뚝 세워져 있어 병사들 가운데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자기 눈을 의심하는 자 도 있었다.」 아스떼까제국을 멸망시킨 에르난 꼬르떼스가 지휘하던 군대의 기록관은 떼노치띠뜰 란(?)이라 부루던 현재의 멕시코시티를 처 음보았을 때의 놀라움을 그렇게 쓰고 있다.

현재의 멕시코시티는 아스떼까제국의 중심지였던 신전이나 궁전을 부셔 그 석재로 스페인풍의 시가지를 만들고, 호수를 메워 완성하였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거대한 유적 위에 지금의 수도가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시내에서 신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은 국립궁전 옆의 템플로 마요르나 3문화광장, 그리고 남쪽의 꾸이꾸일꼬 같은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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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 지역전화코드 변경************************************************************

【멕시코무역관】11월 17일부터 멕시코 정부가 모든 지역전화코드를 변경함에 따라 한국에서 멕시코로 전화하거나 멕시코 내에서 장거리 전화를 이용할 경우 새로운 지역번호를 추가해야 한 다. 각 지역번호는 멕시코 3대 도시를 제외하고는 모두 세 자릿수로 변경되었다. 멕시코3대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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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멕시코시티(55), 과달라하라(33), 몬테레이(81)로서 8자리 전화번호에 지역코드 2자리를 추가 하면 되는 것이다. 나머지 도시는 전화번호 7자리에 3자리의 지역번호가 추가되어 모두 10자리 가 되는 셈이다. 다만 같은 지역 내에서 일반전화로 통화할 경우에는 변동사항이 없지만, 같은 도시라도 휴대폰으로 전화할 경우 '044'이후 각 지역번호를 추가해야 한다.

새로운 지역번호에 따른 전화하는 방법에 대한 예시는 다음과 같다.

○ 일반전화 (멕시코시티 기준)001-52-5514-3172 → 001-52-55-5514-3172 ○ 휴대폰 (멕시코시티 기준)001-52-2558-5071 → 001-52-55-2558-5071

○ 일반전화- 멕시코시티에서 몬테레이로01-8380-1090 → 01-81-8380-1090- 몬테레 이에서 멕시코시티로01-5514-3172 → 01-55-5514-3172

○ 일반전화에서 휴대폰- 멕시코시티에서 과달라하라로 01-3150-1234 → 0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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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시티 1박 5. 12월 13일(목) 멕시코시티 시내관광

이곳 민박집은 정말 시끄럽다. 바로 길가에 있어 그런지 저녁 내내 차가 다니고 총소리 같은 소리가 나서 자주 깼다. 일어나 보니 7시 20분, 부지런히 기록, 간단히 마치고 나니 이미 8시 식사시간이다. 그러나 노래방에서 늦게 돌아온 주인아저씨는 아직 기침을 안 한 모양이다. 8시 20분쯤 식사를 시작하려는데, 3명의 에스페란티스토들이 우리를 안내하기 위 해 찾아왔다. 엊저녁 늦게 돌아가 다시 새벽에 일어나 일부러 우리 때문에 온 것이다. 부지 런히 식사를 마치고, 짐을 맡긴 뒤 오늘의 일정에 들어갔다.

오늘의 첫 일정은 멕시코시티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재인 꾸일꾸일꼬를 보는 것이다.

우리 5명은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멕시코시티에서도 상당히 남쪽으로 내려간다. 아마 서 울로 따지면 안양 정도 될 것으로 보인다. 버스에 내려 길을 건너기 위해 육교에 올라갔는 데, 바로 눈 아래 오늘의 첫 목적지인 꾸이꾸일꼬 유적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 꾸이꾸일꼬(Cuicuilco)유적 *********************************************************

멕시코 시내에 현존하는 많지 않는 기원전의 유적. 약 2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제사유 적이라고 하는데, 가장 전성기는 기원전 6세기~2세기라고 한다. 중앙고원에서도 가장 오래된 귀 중한 유적이다. 꾸이꾸일꼬는 “노래하는 곳”이란 뜻인데, 제사의식을 상징하여 이름을 부쳤을 것 이다. 유적은 용암원의 안에 있다. 이것은 기원전 100년에서 기원 100년에 걸쳐 히뜰리(Xitli)라 는 작은 산이 폭발하면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용암에 묻혀 파괴된 것이다. 유적 안에는 박물관도 있고, 유적에서 출토된 질그릇이나 돌그릇 따위가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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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이꾸일꼬 입구에서는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내 카메라를 본 입구 직원이 전문(프 로세셔널) 사진기는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여행을 하면서 사진 기를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곳은 있었지만, 사진기가 좋으니 못 들어간다는 일은 처 음 있는 일이다. 멕시코 친구들이 모두 나서서 픽셀이니 뭐니 전문용어를 총동원하여 설득 에 들어갔고, 간신히 가지고 들어갈 수가 있었다.

다람쥐들이 유난히 많이 돌아다니는 조용한 유적에는 겨울이지만 제법 많은 꽃들이 아직 도 남아있어 마치 봄에 교외에 소풍을 나온 기분이다. 좀 빨리 걸으면 약간 땀이 날 정도로 햇빛도 강하다. 규모가 큰 유적을 몇몇 노동자들이 계속 정비하고 있어 깔끔하게 정돈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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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나 찾아오는 사람은 우리를 비롯해서 서너 팀 밖에 되지 않아 아주 한적하다.

대형 제단은 3층으로 되어 있는데 모두 현무암을 가지고 쌓았다. 당시 돌을 다루는 솜씨 가 상당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꼭대기에는 특별히 태양의 방향과 관계가 있는 네모난 제단이 남아있다.

꼭대기에서 다시 내려와 박물관 쪽으로 가면 마치 돌로 만든 무덤처럼 생긴 축조물을 발 굴하여 놓았다. 이어서 이어지는 박물관에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 는 유물들이 제법 많이 전시되어 있다. 입구와는 달리 후렛쉬를 쓰지 않는 조건으로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돌아올 때는 다시 걸어서 버스 정류장까지 나와 마이크로버스를 탄다. 바로 그때, 여행일 정 노트를 보니 꾸이꾸일꼬와 같은 용암원에 아나와깔리라는 박물관이 있다고 적혀 있다.

운전수에게 물어보니 차타고 한참 가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차에 내려서도 다시 마을버스 를 타고, 또 걸어서 간신히 박물관에 다다랐다.

* 아나와깔리 박물관(Moseo Anahuacali) <화 - 일 10:00-14:00 / 15:00-18:00> ********

꾸이꾸일꼬 유적에 이어져 있는 용암원에 세웠다. 멕시코 벽화의 거장인 디에고 리베라가 수집 한 마야ㆍ아스떼까의 출토품이 전시되어 있다. 개인의 컬렉션으로서는 멕시코 최대의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관내에 가득 찬 전시품을 보고 있으면 고미술품 수집에 쏟은 그의 정렬이 느껴진다.

개인의 힘으로 모은 것이기 때문에 출토된 곳이나 연대가 분명치 않은 것도 많지만 리베라의 눈 에 든 것인 만큼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도 될 것 같다.

리베라의 말에 의하면 아스떼까ㆍ마야 그리고 리베라식의 양식을 조합한 것이라고 한다. 이 박 물관은 화산암으로 만들어진 특이한 건물이다. 내부에는 피라미드식의 좁은 휭도(橫道)가 있고 제단식의 대가 있으며 벽을 도려내고 출토품을 올려놓기도 했다. 참으로 정교한 전시다.

건물의 가장 위층에는 리베라의 아틀리에가 재현되어 있으며 그가 대벽화를 구상했던 스케치 나 몇 점의 유화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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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깨끗하고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일체 짐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으며, 문 앞 에서 안내원이 팀을 맡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고 내보낸다. 내가 사진을 찍느라 늦어지 자 다음 팀에 합류해 사진을 더 찍으라고 한다. 안내원 없이 관람객만 박물관에 남지 못하 게 되어 있는 것이다.

정말 감동적인 박물관이다. 우선 박물관 건물 자체가 잘 설계되었고, 천장과 바닥에 천연 색 돌로 모자이크를 하였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하지 않도록 아주 잘 진열되어 있다.

수집품은 모두가 중앙아메리카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으로 모두 59,400점을 모았는데 지금은 2,000점만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전시품을 시대별로 구분해 놓지 않아 전체를 시대별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아쉬웠다.

관람에 몰입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관람 온 많은 학생들이 낮밥을 먹던 광장이 텅 비어 있다. 우리는 참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맛있는 샌드위치로 낮밥을 먹었다.

너무 여유를 부리다보니 시간이 많이 가버렸다. 돌아오는 길에 마을버스를 기다리는데 시간 이 너무 많이 걸린다. 국립 인류학 박물관 시간이 문제가 되어 택시를 탔다. 문제는 일반적 으로 택시 정원이 4명인데, 우리는 모두 다섯 명이라 한 명이 초과된다. 어찌 어찌 해서 운 전수와 상의를 하더니 앞에 두 명을 태우고 모두 함께 출발할 수 있었다. 박물관에 도착하 니 거의 4시가 가까워 온다. 짧은 시간이지만 부지런히 구경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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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 국립 인류학 박물관 (Museo Nacional de Antropologia) ***********************

<화 - 토 09:00-19:00 일 10:00-18:00> 45페소=3825원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큼 유명한 규모와 내용을 자랑하는 대 박물관이다. 떼오띠와깐, 마야, 아 스떼까 같은 유적을 비롯하여, 영원히 보존할만한 발굴 유물을 가려 뽑아 전시하고 있다.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적에서 중요한 벽화나 석상은 현지 신전에는 없고, 모두 이곳에 모여 있다.

멕시코 국립 인류학 박물관에는 유적이 존재하는 현지에서는 볼 수 없는 귀중한 전시품이 다 수 있다. 예를 들면 빨랑케의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왕의 분묘를 비롯하여 유적의 발굴품들이 더 좋은 상태로 보존된 채 감상하기 쉽게 전시되어 있다.

전시실 1층은 북쪽 끝의 입문(1실)에서 시작하여 시계반대 방향으로 나아가 남쪽의 서부 멕시 코실(12실)까지 훌륭한 전시가 계속된다. 바쁜 사람은 태양의 역석(曆石)이 있는 멕시까=아스떼 까실(7실)을 먼저 보고나서 다른 전시를 보면 좋다.

① 1실 멕시코의 원주민 문화(Culturas Indigenas de Mexico)

② 2실 인류학 입문실 (Introduccion)

언어학ㆍ고고학ㆍ민족학ㆍ형질인류학 등의 입장에서 세계의 인류와 그 문화의 분포ㆍ교류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전시되어 있다. 인류사에 있어서 아메리카 대륙 그리고 멕시코의 자리매김을 세계 각지의 실물 고고학 자료나 사진, 그림을 가지고 비주얼하게 해설하고 있다. 멕시코에서 중 앙아메리카 각지에 존재하는 고대 문명의 특징, 그리고 각 문화의 연관성을 문물을 비교하며 해 설한다.

③ 3실 아메리카의 기원실 (Origenes)(Poblamiento de América)

이 전시실부터 드디어 멕시코 역사로 들어간다. 기원(起源)이라는 것은 멕시코에 다양한 문화 가 일어났던 최초의 것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멕시코에 최초로 건너 온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 온 것일까.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유랑 생활에서 수렵과 낚시를 알았고, 식물 채집에서 농경을 발견하고, 일정 장소에 정착하게 된 것일까 하는 것들이 설명되어 있다.

고대 멕시코 지도와 투시화는 빙하시대 말기에 구석기 시대의 수렵 민족이 아시아에서 베링 해협을 건너 알래스카에서 남하하여 멕시코에 정착하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특히 눈여겨 볼 것은 원주민이 주식으로 한 옥수수다. 각지에서 출토된 어른 손가락만 한 옥수수의 ‘선조(기원전 5000년)’를 전시하는 코너이다. 마야민족의 창세신화 뽀뽈부흐에 따르 면 인류는 옥수수에서 발생하였다고 되어 있어, 옥수수는 그들의 종교체계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 지하고 있다.

④ 4실 고대 이전/ 선고전시기 (Preclasico)

농경 재배가 출현하고 그것이 발전해 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토기 등이 처음에는 생활 필 수품으로서 소박한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차츰 장식이 시도되어 예술성을 지니게 된다. 그 양상 을 전기ㆍ중기ㆍ후기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촌락공동체에서 도시, 그리고 문화의 발생에 이르 는 문화사의 흐름을 토기 같은 풍부한 출토품에서 느낄 수 있다.

전시실 중앙에는 1936년 뜰라띨꼬(Tlatilco)마을에서 발견된 당시의 발굴상태가 재현되어 있 다.

⑤ 5실 떼오띠와깐실 (Teotihuacan)

떼오띠와깐은 A.D. 300-600년에 번성했던 20㎢의 규모를 가진 중앙아메리카 최대의 고대도 시다. 후에 이 땅을 방문했던 아스떼까 인들은 거대한 떼오띠와깐에 놀라 이곳을 신들의 고향이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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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실에서 최초로 주목해야 할 것은 실물 크기로 복원 된 께쌀꼬아뜰의 신전이다. 본래 6 층이었던 기단 중 3층의 편익(片翼)이 복원 되어 있다. 날개를 가진 뱀의 신 께쌀꼬아뜰과 비의 신 뜰랄록 두상이 엇갈려서 나란히 있고 건설 당시 그대로의 색(적색과 녹색)이 채색되어 있다.

⑥ 6실 똘떼까실 (Tolteca)

중앙고원을 지배하고 있었던 강력한 떼오띠와깐 문명은 A.D. 650년경부터 쇠퇴하기 시작한다.

그 후 중앙고원에는 몇 개의 중형 도시가 생겨나서 서로 다투는 혼미한 시대가 온다. 그 중에서 중앙고원 북부를 정복했던 것이 똘떼까 문명이었다.

멕시코시티에서 북쪽으로 약 80km 떨어진 뚤라(Tula)에는 지금도 그 유적이 남아 있다. 유적 이 있었던 부조에서는 상당히 군사적인 색채가 농후했음을 알 수 있다. 똘떼까실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전사의 상이다. 이것은 뚤라의 중앙신전의 지붕을 받치고 있던 4개의 석주 중의 하나다 (높이 4.6m). 멀리 떨어지 치첸 이차에서도 이 석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 있다. 똘떼까 문화권에 서 번성했던 호치깔꼬(Xochicalco), 까까흐뜰라(Cacaxtla) 같은 중앙고원 각지의 유적도 상세하 게 소개하고 이다.

벽화와 뚤라 전사는 반드시 보아야 할 것이다.

⑦ 제7실 메히까(아스떼까)실 (Mexica - Azteca)

멕시코 국립 인류학 박물관의 높은 평가는 경이적인 컬렉션 외에도 공간을 훌륭하게 사용한 아름답고 독창적인 전시 방식이 큰 몫을 차지한다. 그 중에서도 박물관의 백미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이 메히까실이다.

멕시코 고대문화에서 마지막 등장했던 제국이 아스떼까제국이다. 아스떼까는 또 다른 이름으로

“메히까”라고 한다. 메히까족이야 말로 스페인에게 정복되기 이전, 대제국을 세워 이 나라를 지 배했던 민족으로 현재의 나라 이름 ‘메히꼬(멕시코)’는 이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멕시까실의 오른쪽 한 모퉁이에는 아스떼까의 도시 떼노치띠뜰란이 재현되어 있다.

중앙부에 넓은 로비에 배치된 이 박물관 최고의 볼거리. 그 중심은 거대한 돌에 새긴 아스떼까 의 역(曆)을 도형화한 태양석(해돌), 즉 아스떼까 칼렌다이다.

왼쪽에는 아스떼까인이 받들었던 신의 석상이 진열되어 있다. ‘꼬아뜰리꾸에’는 대지의 여신이 고, 죽음의 신이며, 다른 신을 낳은 어머니신이다. 복부에 있는 잘라<?> 떨어진 머리에서 두 마 리의 뱀이 되어 피를 흘리고 있는 이상한 상은 1790년 멕시코시티에서 발견되었다. ‘께찰꼬아뜰’

은 깃을 단 뱀신으로 문화와 농경을 상징한다. 몸을 서리고 있는 뱀의 몸통 표면에 무수히 많은 깃이 달린 석상이 몇 개 있다. 전설에서는 이 신은 희생물을 싫어했다고 하는데, 아스떼까인은 이 문화신에게도 희생물을 바쳐왔다. 에르난 꼬르떼스에게 정복되기 전 멕시코시티인 떼노치띠뜰 란을 복원한 모형, 북적대는 시장 같은 것도 지오라마로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떼노치띠뜰 란 복원도에는 이 도시가 모두 호수에 떠있는 섬이었던 때의 경치가 재현되어 있어 감동을 준다.

또 전시에서 현재의 소깔로 주변에 피라미드가 줄지어 서 있고 매일 희생물을 바치는 의식이 행 해졌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아스떼까 도시로 되돌아가 보는 착각이 일어날 정도이다.

* 해의 돌(太陽의 石) 아스떼까 캘린더

직경 3.6m의 원반에는 중앙이 있는 태양신 둘레에 복잡한 모티브가 몇 겹 둘러싸여 있다. 태 양신 둘레에는 4개의 네모꼴로 둘러싸여 있는 무늬는 우주가 지금까지 지나온 4개의 시대를 나 타낸다. 각 시대는 새로운 태양이 생겨나 사라지는데, 그렇게 해서 지금은 가운데 있는 5번째 ‘해 의 토나띠우’시대라고 한다.

달력은 또 가느다란 모티브를 조합하여 20일 1달로 하는 1년 18개월로 나뉘어, 거기에 ‘빈 5 일’이 있어 정확하게 1년 365일이 된다. 이와 병행하여 260일을 한 사이클로 하는 점성술 때문 에 달력도 존재하였다. 아스떼까인들은 이 캘린더를 바탕으로 정확한 농사력에 따라 일하고,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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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다 피의 희생물을 바치는 제사를 지냈다.

이 영원한 시간을 새긴 상징적인 기념비는 아스떼까제국 붕괴 뒤, 멕시코시티의 중ㅇㅇ광장 부 근에 팽개쳐 있었다. 그 뒤 이 성스러운 돌에 원주민들이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모고 멕시코 대 주교의 명령으로 땅 속에 묻어버렸다. 그 뒤 1790년 다시 발견되었다.

⑧ 제8실 오아하까실 (Oaxaca)

오아하까실에서는 이 지방에서 2개의 뛰어난 문화를 꽃피웠던 민족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몬떼 알반 유적으로 대표되는 사뽀떼까족과 미뜰라 유적으로 대표되는 믹스떼까족이다.

사뽀떼까족은 B.C. 600년경에 오아하까 주에 모습을 나타냈다. 올메까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중앙아메리카에서 최초로 문자를 발달시켰다고 하는데 조각상에서는 상형문자를 볼 수 있 다. 유명한 ‘춤추는 사람(Danzantes)'이라고 불리는 부조 석판들은 올메까의 영향이 특히 강한 것 이다.

미뜰라에 도시를 만든 믹스떼까족은 10세기에 몬떼 알반을 침략하여 시뽀떼까 제국을 정복하 고, 일종의 융합 문화를 완성했다. 미뜰라의 건축물에는 믹스떼까 인들에 의한 독특한 돌 모자이 크로 된 기하학 모양의 아름다운 장식이 있다. 이들 모자이크의 대표적 패턴이 오아하까실에 복 원 전시 되어 있으므로 기하학 모양의 변화를 감상하면 좋을 것이다.

⑨ 제9실 멕시코 만 지방실 (Golfo de Mexico)

멕시코 만 연안에 발생했던 문명은 많아서 그 하나하나에 전시실을 만들 수는 없고, 멕시코 고 대 문명의 어머니인 기원전 12세기 이 지역에서 일어난 올메까 문명이 집중적으로 전시되어 있 다. 흑인의 얼굴과 흡사한 인두상 때문에 의문을 부른 올메까의 거대한 인두상이 전시실 바깥에 놓여 있다. 같은 올메까의 작품인 레슬러의 상은 동적인 느낌이 강한 예술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 되고 있다. 베라꾸르스에있는 에르따힌이나 센뽀아라 유적에서 나온 웃는 얼굴을 가진 토우 같은 것도 전시하고 있다.

⑩ 제10실 마야실 (Maya)

중앙아메리카의 남부 일대에 B.C. 600년경부터 싹트기 시작한 마야문명, 그것은 아스떼까와 떼오띠와깐처럼 타민족을 지배했던 강대한 한 국가의 명칭은 아니다. 그것은 이 지대에 펼쳐진 깊은 정글 안에 산재했던 몇 개의 독립된 도시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생겨난 하나의 문화 적 경향이다. 그래서 마야 유적은 몇 가지 공통점으로 연결되지만 하나하나가 독자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보는 이를 싫증나지 않게 한다.

마야실의 한쪽 모퉁이에는 치첸 이사ㆍ꼬빤ㆍ야슈칠란 같은 피라미드 모형이 전시되어 있어 공통성을 가지면서도 각각 독자성이 있는 마야 유적을 한 눈에 비교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마야실의 최고 볼거리는 지하에 있는 빨렝께 왕릉이다. 비문의 신전 지하 왕릉이 실물 크기로 복원되어 발견된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빨렝께 신전은 지하에 무덤을 만들었는데, 에집트 피라 미드와 마찬가지 역할과 구조를 갖추고 있다.

밀림에 살았던 마야인은 수준 높은 문자와 숫자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숫자는 마야의 복잡한 천문학 지식을 뒷받침해 준다. 그들은 일찍부터 ‘0’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잘 알려 져 있다. 마야실 한 모퉁이에는 이 마야 숫자의 해독표가 있다.

마야실에 전시된 등신이 큰 석판이나 돌기둥에는 마야의 역사상 에피소드라고 보이는 모티브 가 이상하리만큼 자세하게 새겨져 있고, 모티브의 구석에는 반드시 마야 숫자로 연대가 쓰여 있 다.

마야실과 마주보는 바깥 뜰에는 보남빡의 채색벽화가 잘 재현되어 있다.

⑪ 11실 서부실 (Occidente)

현재의 아까뿔꼬에서 마사뜰란에 걸친 태평양 연안을 포함하는 서부지방에도 전기 고대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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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부족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미초아깐 주의 따라스꼬족(Tarascan)처럼 강대한 아 스떼까제국에도, 스페인 정복자에게도 굴복하지 않았던 민족이 있었다. 특히 따라스꼬왕국의 중 심지였던 쌍쑹싼에서 발견된 피라미드는 원형과 네모형이 조합된 진귀한 것이다. 그 전모를 나타 내는 모형도 전시되고 있다. 여기서 흥미있는 것은 서부지방 무덤은 깊은 종혈식(縱穴式)으로 그 바닥을 정시하여 무덤을 만들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중앙 고원지역에서는 보이지 않고 멀리 콜롬 비아, 에과도르, 페루 같은 태평양 연안의 유적에서 발견되고 있는 유적이다. 이것은 이 문화가 내륙보다는 바다나 바닷가를 통해 이동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⑫ 12실 북부실 (Norte)

미국 국경 근처의 멕시코 북부 지방에는 진흙 벽돌로 만들어진 조악한 집에서 살며 수렵과 채 집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인디오들이 있었다. 그들은 멕시코 남부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빛 나는 문명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미국 근처라는 지리적 요건도 있어서 그 문화의 색조가 북아메리 카 인디언과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다.

⑬ 2층 (민족학실)

돌뿐인 1층과는 달리 현대를 사는 인디오들의 색채가 풍부한 생활이 전시되어 있어 한번 둘러 볼만 하다. 13실에서 21실까지 멕시코 전역에 걸친 인디오 문화를 체계적으로 모아서 전시하고 있는 색깔의 민예품이 눈을 즐겁게 해주는 마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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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에서 가장 진지하게 감상한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모든 전시물은 나를 사 로잡았다. 파리의 루불박물관, 베를린 박물관, 동경국립박물관 같은 세계적 박물관을 수없이 봐왔지만 이곳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을 주는 곳은 처음이다. 여행 도중 사진기 메모리 카드 3개를 모두 쓰고도 모자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어떻게 이런 찬란한 문화를 가진 아메리카 문화를 16세기에야 콜럼버스가 처음 발견한 미개한 문화로 평가했던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진다. 이런 문화를 깡그리 없애고, 유럽 위주의 새로운 역사를 기록하려 했던 정복자들의 만용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웅변으로 보 여주는 전시였다.

전시 내용도 대단하지만 전시 기술도 나무랄 데가 없을 정도이다. 물론 이곳 문화 전체를 한꺼번에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전체의 흐름이 정리되지 않기 때문에 연대별, 지역별을 섞어 놓아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것은 내 역사 지식이 짧아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 다시 와서 시간을 가지고 찬찬히 둘러보고 싶은 박물관이다.

문 닫는 시간 7시가 다 되어서야 나와서 영어와 일본어로 된 안내 책자와, 고전기 이전의 음악 시디를 한 장 사서 밖으로 나오니 완전히 어두워져 있다.

다시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숙소 근처에 와서 피자로 저녁밥을 먹고, 짐을 찾아 끌고 다시 버스타고 지하철타고, 시외버스 정류장에 오니 벌써 밤 10시다.

시외버스로 다시 1시간을 달려 11시 도착, 내일 마실 물을 사고 어쩌고 숙소에 돌아오니 11시 반, 사진 다운받고 메일 체크하고 나니 1시가 다 되어 버렸다. 오늘 너무 피곤하게 다 녀서 그런지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과감하게 다시 불을 켜고 기록을 하고 나니 4시 10 분이 지난다. 이제 좀 자야겠다.

♨ 멕시코시티 2박

6. 12월 14일(금) 뚤라(Tula)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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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6시까지는 잠을 자지 못했다. 한 시간쯤 잔 뒤 7시에는 일어나 자료를 보다가 8시 반쯤 아침밥을 먹었다. 원래 8시 반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늦어졌다. 마르틴은 우리가 공항 에 도착했을 때 우리 마중을 위해 왔다가, 12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와 1시에 잤는데, 5시 에 일어나 다시 멕시코시티까지 왔다고 한다. 그리고 하루 종일 우리를 안내하고, 11시가 되어서야 들어와, 1시가 넘어 잤으니 피곤할 것이다.

우리가 잔 곳은 독일인 마틴의 집인데, 이곳 멕시코시티 교외의 부인 집에서 처가살이를 하고 있다. 부인은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인텔리인데, 독일에 어학연수까지 갔다 와 서 금년 3월에 결혼했다고 한다. 아침밥을 먹는 동안, 오빠, 언니, 동생, 어머니, 식구가 많 아 인사할 사람이 많다. 계란 스크렘블, 귤을 직접 짜서 만든 주스, 빵 등 맛있는 식사다.

특이한 것은 선인장을 잘게 썰어 계란과 함께 볶은 것인데, 먹을 만하다.

9시 50분에야 출발했다. 다행히 마르틴의 차가 있어 이동이 쉽다. 처음 에스페란티스토들 에게 메일을 보낼 때, 내가 민박하는 집에서나 현지 에스페란티스토들이 차를 가지고 있는 경우, 기름 값을 포함해서 모든 경비를 내가 내기로 했고, 차가 없는 경우는 믿을만한 차를 빌릴 수 있도록 주선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런데 멕시코시티에서는 마침 차를 가지고 있는 회원집에 머물게 된 것이다. 다만 어제는 시내에 주차할 곳이 없어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았 다고 한다.

11시 35분 목적지인 뚤라에 다다랐다.

* 뚤라(Tula) ***************************************************************

멕시코시티의 북쪽 약 65km 지점에 있다. A.D. 7세기 떼오띠와깐이 의문의 붕괴로 파괴된 후 사람들은 이미 있었던 근처의 도시로 들어가거나 새로운 도시를 세우려고 중앙고원을 우왕좌왕했 다. 그러다가 10세기 무렵 남쪽에서는 뿌에블라의 촐룰라와 소치깔꼬, 북쪽에서는 이 뚤라가 도 시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중앙고원 전체를 지배하지는 못하여 중소 도 시가 난립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것은 아스떼까제국이 출현하기까지 이어진다.

뚤라를 중심으로 하는 문명은 똘떼까(Tolteca) 문명이라 하는데, 중앙고원의 북쪽 일대를 지배 했다. 일설에 의하면 떼오띠와깐을 파멸시킨 것은 이 똘떼까 인이라고 한다. 뚤라에는 그만큼 군 사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 있는 유적이 남아 있다.

이 유적의 규모는 작지만 남아 있는 돌기둥이나 돋을새김(浮彫)에는 볼 만한 것이 많다. 뚤라 에서 유일하게 형태가 보존되어 있는 피라미드 위에는 전사(戰士)의 기둥 4개가 세워져 있다. 높 이 4m가 넘는 이 석상은 하늘을 배경으로 솟아있다. 유적을 둘러싸고 있는 벽에는 전사의 그림, 산 제물의 그림과 해골 등 전쟁과 죽음을 모티브로 한 것들이 충만한데 군사적인 성격이 강했던 뚤라의 번영기를 말해 주고 있다. 현재 뚤라의 유적에서 발견된 출토품은 대부분 멕시코시티의 인류학 박물관으로 옮겨졌는데 4개의 석상 중 2개도 인류학 박물관으로 옮겨져 뚤라에는 2개의 진짜와 2개의 모조품이 남아 있다.

마야 문명 후기, 특히 치첸 이싸의 유적에는 똘떼까 문명의 영향이 짙게 남아 있어 공통되는 모티브도 많다. 전사의 신전이나 차끄 몰 상 등은 그 대표적인 예다. 문화교류가 있었던 증거여 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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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펌] 멕시코 뚤라와 세계 제2의 촐룰라 피라미드 마야이야기 ***************************

2004/12/13 16:37

http://blog.naver.com/kayche/100008500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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뚤라(멕시코)

이 곳의 역사는 잘해야 1,000년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전설은 보다 오래된 시대 와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당시에 그 장소는 톨란(TOLLAN)으로 알려져 있었다. 모든 전승 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어둠과 암흑의 신 테스카틸포카가 케찰코아틀을 격파한 장소는 톨란이며 격파당한 케찰코아틀은 멕시코를 떠났다는 것이다.

이달고 주의 툴라

상상력이 부족한 듯한 이름이 붙은 피라미드B의 편평한 정상에 앉아 있었다. 늦은 오후의 햇 살이 투명한 하늘에서 내리 쪼이고 있었다. 남쪽을 향하고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피라미드 토대의 북쪽과 동쪽 벽에는 인간의 심장을 탐내고 있는 재규어와 독수리가 묘사되어 있었다. 내 뒤로 네 개의 기둥과 2.7미터나 되는 화강암으로 만든 무서운 우상이 네 개 서 있었 다. 내 앞으로 왼쪽에는 현재 발굴 중인 높이 12미터의 파리미드C가 있었다. 선인장으로 뒤덮인 이 고분에서 좀 떨어진 곳에는 아직 고고학자들이 손대지 않은 고분들이 몇 개 있었다. 오른쪽에 는 긴 I형 운동장이 있었다. 고대에 끔찍한 경기를 거행한 곳이었다. 두 팀 또는 두 사람이 운동 장에 들어가서 고무공을 서로 빼앗기 위해서 싸웠다. 패자는 목이 잘렸다.

스페인 정복 기지(초룰라, Cholula)

큰 광장을 가진 인구 11만의 차분한 도시 촐룰라에 도착한 것은 오후 늦어서였다. 동쪽으로 핸들을 돌려 좁은 길을 달리다가 선로를 지나 “인공 산”인 틀라치우알테페틀의 그림자에서 차를 세웠다.

한때는 평화를 사랑하는 케찰코아틀을 숭배하는 종파의 성지였던 이곳에는 현재 화려하게 장 식된 카톨릭 교회가 세워져 있었다. 이 대 건축물은 고대 세계에서 최대이면서 가장 야심적인 기 술계획의 산물이었다. 토대의 크기는 45헥타르에 이르며 높이는 64미터나 된다. 이집트 대 피라 미드의 세 배나 되는 크기이다. 세월이 지난 탓에 윤곽이 분명하지 않았고 경사면에는 잡초가 무 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은 옛날에 네 군데의 급경사 “계단”이 하늘을 향해서 뻗어 있는 위압적인 지구라트였음을 느끼게 했다. 토대의 한 변은 500미터로 당당한 위엄을 자 랑했고, 비록 일부가 더럽혀져 있었지만 아름다움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고대로부터 계속된 전 통과 생활양식을 단절시키기 위해서는 “인공 산”의 위엄을 깨뜨릴 필요가 있었다. 그것을 위해서 선택된 것이 지구라트의 정상에 있는 신전을 파괴하고 모독한 다음 그 자리에 교회를 세우는 것 이었다.

코르테스 일행은 소수였고 촐룰라 사람들은 다수였다. 그러나 스페인 군대는 도시로 진군해가 기 위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턱수염을 기르고 하얀 피부에 빛나는 갑옷과 투구를 몸에 걸친 스페인 인은 예언을 성취하러 온 것처럼 보였다. 케찰코아특(깃털 달린 뱀)이 “동쪽 바다에 서”부하를 거느리고 돌아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순진하고 신앙심이 깊은 촐룰라 원주민들은 정복자들을 지구라트 정상에 있는 신전의 안뜰로 안내했다. 신전에서는 화려하고 발랄한 처녀들이 춤과 노래로 그들을 환영했고, 시종들이 빵과 호화로운 음식으로 그들을 대접했다. 자기들이 찾아온 목적을 주민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안 스페인 인들은 안뜰로 통하는 문을 잠그고 보초를 세운 다음 칼을 뽑아들어 지도자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이 학살로 6,000여 명이 살해되었는데, 그 흉폭성은 아스텍 인들의 피에 물든 의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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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해서 전혀 손색이 없었다.

페루와 멕시코의 정복자들은 하얀 피부와 턱수염을 가진 신이 돌아온다는 전설로부터 동일하 게 도움을 받았던 것이다. 그 신이 신격화된 인간이라면 그는 고도의 문명을 가지고 사람들의 모 범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페루와 멕시코에 나타난 것은 같은 배경을 가진 다른 사람들 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은 멕시코에 나타나서 케찰코아틀이라고 불렸고, 다른 한 사람은 페 루에서 활약하며 비라코차랄고 불렀던 것이다. 스페인 인들이 표면적으로 그 옛날의 하얀 피부에 턱수염을 기른 이방인과 비슷했기 때문에 원래라면 굳게 닫혀 있어야 할 많은 문이 활짝 열렸다.

그러나 현명하고 자비로운 전임자와는 달리 안데스 지역의 피사로와 중앙아메리카의 코르테스는 먹이를 찾아 헤매는 이리와도 같았다. 그들은 획득한 땅과 사람들과 문화를 먹어치웠고 대부분을 파괴했다…..

멕시코의 과거가 보존되어 있는 지식의 보고를 없앤 전형적인 예로 아스텍 제국의 황제 몬테 수마가 코르테스에게 보낸 두 개의 선물이 있다. 그것은 원형 달력으로서 차바퀴 정도의 크기였 다. 하나는 순은으로 만든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순금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 달력에는 중요한 정보가 될지도 모를 아름다운 상형문자가 정성스럽게 조각되어 있었다. 그러나 코르테스는 그 자 리에서 선물을 녹여 주괴로 만들고 말았다.

광신적인 수도사들은 중앙아메리카 곳곳에 있던, 고대로부터 축적된 지식의 보고를 조직적으로 철저하게 수집해서 한곳에 모아놓고 불을 질렀다. 예를 들면 1562년 7월 마니(현재 유카탄 주의 메리다에서 조금 남쪽에 위치한 도시)의 광장에서 신부 디에고 데 란다는 수천 점에 이르는 마야 의 사본 그리고 그림 이야기와 상형문자가 조각되어 있는 사슴 가죽들을 불태웠다.

디에고 데 두란은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수도사였는데 원주민의 전승에 대한 양심적인 기록자 였는데 그는 변해가는 촐룰라를 찾아가 그곳에서 100살이 넘는, 도시에서 가장 존경받는 노인에 게 면접조사를 실시했다. 노인은 위대한 지구라트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이야기해주었다.

처음 아직 태양의 빛이 창조되기 전에 촐룰라는 암흑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언덕도 산도 없었 으며 편평한 땅은 거의 물에 잠겨 있었다. 나무도 없었고 창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동쪽 하 늘에 태양이 떠올라 햇살을 비추기 시작하자 기묘한 모습을 한 거대한 남자들이 나타나서 이 땅 을 지배했다. 태양의 빛과 아름다움에 매료된 거대한 남자들은 하늘까지 이르는 매우 높은 탑을 짓기로 했다.

탑을 짓기 위한 재료를 모두 모은 후에 접착력이 매우 강한 흙과 역청을 사용해서 곧바로 탑 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가능한 한 높이 쌓아올렸기 때문에 탑은 하늘에 이르렀다. 천국의 신 이 분노하여 하늘의 주민들에게 말했다. “지상의 사람들이 태양의 빛과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하 늘을 향해서 거대한 탑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았겠지? 내려가서 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라. 육 체를 가진 지상의 사람들이 우리와 섞여서는 안 된다.” 곧바로 하늘의 주민들이 전광석화처럼 내 려와서 건축물을 파괴하고 건축가들을 분열시켜 지구의 구석구석으로 내쫓았다.

이 이야기는 성서 속에 나오는 바벨 탑 이야기(고대 메소포타미아 전승의 개작)와 너무 비슷하 다.

출처는 http://www.amigos.co.kr/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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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한 시간쯤 박물관을 관람하였다. 뚤라에서 나온 유물들이 제법 많이 전시되어 있다.

완벽하게 남은 차크 몰에서는 자유스럽게 기념촬영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심하게 관리하지 않는다. 다만 조명이 잘 되지 않아 사진 찍기가 좋지 않았다.

입구에서 유적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를 걸어서 가야하고, 중간에 기념품 파는 가게도 많 다. 가는 동안 여러 가지 선인장이 가로수처럼 들어서 있어 지루하지가 않았다.

먼저 공놀이 한 운동장을 보고 피라미드 B로 올라갔다. 이 유적에서 가장 중요한 전사의 상을 감상하였다. 설명서에 전사라고 했는데, 무기를 확인할 수 없어 정말 전사인지는 알 수 없다. 가장 특이한 것은 석상이 신고 있는 슬리퍼다. 발가락 5개가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고, 발가락 사이로 두 가닥의 끈이 끼워져 있는 것이 마치 일본의 게다나 조리를 신는 것 과 같다. 그렇다면 이 석상이 슬리퍼를 신은 최초의 기록이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피라 미드 아래 기둥들 가운데는 머리가 떨어져 나간 차크 몰이 2개 있어, 박물관에 있던 차크몰 이 미라미드 어디에 있었던 것인지 위치를 알 수가 있다.

피라미드 C에서 보니 피라미드가 단순히 높이 단을 쌓아올린 것이 아니고, 아래층에 아 주 넓은 공간을 만드는 건축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운동장을 보고 그늘에서 싸가지고 온 센드위치로 낮밥을 먹었다. 햇볕은 따갑지만 그늘 에 있으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어 피곤이 확 가신다. 뚤라는 큰 피라미드가 아니기 때문에 오늘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여유를 가지고 구경하였다. 앞으로 볼 거대한 피라미드를 대하 기 위한 예행연습 같은 답사였다.

입구에서 잠간 휴식을 취하고 3시 출발하였다. 돌아오는 길은 다른 곳으로 돌아서 왔다.

빠츄까라는 도시에 들어가 이 도시의 명물인 “PASTES”를 먹었다. 빵 속에 고기, 치즈 같 은 것을 넣어 구운 음식인데, 이 고장의 독특한 음식이라고 한다. 이 도시는 입구에서 나올 때까지 온통 길가에 이 음식점이 계속된다.

7시 25분 숙소에 도착하였다. 바로 아래채에 태권도를 가르치는 곳이 있는데 무덕관 미 국관이라고 써 있는 것을 보니 한국의 무덕관 미국 지부가 가르친 곳인 모양이다. 태극기가 잘못되어 있어 자세하게 그려주고, 건곤감리(乾坤坎離)의 뜻도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밀린 일을 하였다. 먼저 사진을 다운 받고, 과테말라시티 호텔을 해약하고, 한국인 민박을 할 수 있게 하고, 모래 갈 오아하까에서 재워줄 회원에게 전화하 고, 메일 체크하고, 인터넷으로 신문 좀 읽고, 서울의 아들들에게도 전화를 하였다. 오늘은 12시가 되기 전에 기록까지 마친다.

♨ 멕시코시티 3박 7. 12월 15일(토) 떼오띠와깐 (Teotihuacan)

7시에 잠을 깼다. 아주 두꺼운 이불이라 이불 속에는 따뜻하지만 움직일 때마다 찬 기운 을 느낀다. 이곳은 해발 2,283m이기 때문에 바깥 온도는 5℃, 방안 온도도 12℃ 밖에 되지 않는다. 낮에도 땀을 많이 흘리지 않아 샤워를 할 필요도 없지만 집안 온도가 이 정도이기 때문에 잘 못하면 감기 걸릴까봐 참았다.

다시 아침 식사시간에는 바쁘다. 같은 대문 안에 모두 15명의 가족이 살기 때문에 우선 인사하기에 바쁘다. 떨어져 사는 아버지 빼고도 어머니, 아들 하나, 딸 4(그 가운데 Mallely=마젤 리가 에스페란티스토다), 태권도 도장하는 남동생, 사위 2(한 명은 독일인 에 스페란티스토 마르틴), 며느리 1명, 큰 딸(사위와 함께 사는) 집 아이 3명, 아들 집 아이 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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