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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 목 .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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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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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년 예술가 창업가들의

골 . 목 . 길

고군분투기

서울시 청년일자리허브

문화기획집단 영희야놀자

(2)

강유가람, 김혜정, 김현경, 홍혜미

문화기획집단 영희야 놀자는 여성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며 사람들과 소통 하고자 하는 여성들이 모여 만든 문화기획집단입니다. ‘영희’는 우리 자신들이자 우리가 말 걸 고 싶은 우리 세대 보통 여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동안 <모래>, <왕자가 된 소녀들> 등의 다큐 멘터리 영상작업과 구술사연구를 병행하는 방식의 작업들을 해왔습니다.

연구지원 연구진

서울시 청녀일자리허브

이 보고서는 2014년도 서울시 청년일자리허브 연구/조사 사업의 결 과물로 만들어 졌습니다.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3)

01. 청년, 골목길 고군분투기

_04

02. 이태원, 부상하는 골목길

_06

03. 골목의 청년들, 누가 왜 골목을 찾았나

_09

04. 골목의 청년들, 마을을 꿈꾸다

_14

05. 골목의 청년들, 위기에 봉착하다

_22

06. 청년과 마을,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_27

참고문헌 및 자료

소자본 청년 예술가-창업가들과 마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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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야놀자는 문화기획집단을 표방하여, 주로 다큐멘터리 제작 위주의 활동을 해 온 집단이다. 지난 1년간 우리는 이태 원에 대한 공간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촬영해 왔으며, 그 과 정에서 자연스럽게 회나무길과 우사단길에서 활동하는 청년 들을 만나게 되었다. 1년은 짧은 시간이지만, 그 와중에 목도 한 공간의 역동적 변화의 중심에 그들이 있었다. 그리하여 우 리는 몇 가지 질문들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첫째 이 청년들은 누구이며, 이들은 어떤 시도를 하고 있는가? 둘째 이들의 시 도는 어떠한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셋째 이들의 시도 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 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나름의 분석을 다큐멘터리 뿐 아니라 좀 더 정리된 글이라는 형태로도 재현해보려고 한다.

골목에서 살아간다는 것

회나무길과 우사단길 이전에, 홍대가 있었다. 1990년대 이 후 홍대앞은 젊은 예술가들, 개성있는 상점들과 주인들, 놀러 오는 젊은이들의 감성과 에너지가 어우러져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 곳이다. ‘압축적 근대화’의 영향으로 어디 나 비슷비슷한 서울에서 개성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란 그 자 체로 해방구적인 의미를 가지기에 충분했다. 어떻게 입고 다

녀도, 당장 돈 안 되는 ‘예술’을 하고 있어도 그게 바로 멋이 되어 ‘홍대앞’의 풍경 한 조각이 되던 시절이다. 도시사회학 자 파크(Robert Park)의 말을 빌자면 그 당시 ‘홍대앞’ 사람 들은 ‘그들 임무의 본질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간접적으로 (도시 만드는 일을 통해) 그들 자신들을 거듭 나게 했다’(Park, 1967:3)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홍대앞’의 상승 가치는 그것을 만들어낸 예술가 들과 젊은이들, 대부분의 소상점 주인들에게 돌아가지 않 았다. 지대의 상승은 부동산 소유자의 배만 불렸을 뿐이 다. 이들 대부분은 더 큰 지대수입을 기대하는 새로운 투 자자들에게 부동산을 넘겼고, 이는 비싼 상업적 공간으 로의 용도 변경을 촉진했다. 이제 ‘홍대앞’은 예술가들 의 작업실, 개성 있고 자그마한 상점들, 예술과 젊음의 열 기가 어우러지는 바, 클럽, 술집들, 동네에 하나씩 있음 직한 문방구, 분식집, 세탁소, 미용실들의 공간이 아니 라 그러한 분위기를 차용한 대형 프랜차이즈 상점들의 쇼윈도가 되었다.

인디밴드 멤버인 주인이 2004년 그냥 사무실이던 점포를 빌려 독특한 인테리어의 북카페로 운영 했다. 젊은예술가의 공연과 전시회가 수시로 열리면서 하나의 복합문화공간이 됐다. 5년

01. 청년, 골목길 고군분투기

ⓒ 영희야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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쯤 지나 홍대 앞 명소로 자리 잡은 어느 날 건물주가 찾아왔다.

조카들이 여기서 장사하려고 하니 나가라는 거였다.(국민일보, 2013.11.24.일자)

이렇게 홍대 일대에서 밀려난 소규모 상점들과 작업실들은 인근으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상수동, 합정동, 연남동 등이 바로 그런 지역들이다. 크게 보면 홍대인근의 상권의 일 부로 여겨질 정도인데, 이 공간들은 아직은 주요 상권과는 거 리가 있어 임대료가 저렴한 점, 골목들이 아직은 개발이 덜 된 점들 덕분에 소자본을 지닌 청년들 혹은 문화 작업자들이 매력을 느껴 찾아올 수 있었다. 이런 공간들에서 문화적 재능 과 감수성을 가진 청년들이 모여 터를 이루고 네트워크를 형 성하면서, 단순히 공간의 점유가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공간 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나아가 이들은 지역사회와도 소통하 며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동네들 또한 ‘핫’한 공간으로 미디어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지된다. 기 존 ‘홍대앞’ 변화와 똑같은 과정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동 네에 터를 잡고 문화를 만들어가던 이들이 비싼 임대료를 감 당할 수 없어 떠나게 되고, 그 이전부터 살고 있던 원주민 역 시도 머물 수 없게 되는 상황의 도래. 자본의 유입은 오랫동 안 그 공간에 터전을 잡았던 원주민들의 공간마저도 다른 방 식으로 바꾸어 버린다. 우리는 연남동에서 오랫동안 홍어를 팔던 가게 주인으로부터 얼마 전 갑자기 집주인이 냄새가 난 다며 가게를 비워달라고 한 상황을 접했다. 그이는 오랫동안

‘동네’에서 홍어를 팔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냄새나는 구닥 다리 장사치가 된 것이다. 하나둘씩 자리잡는 깔끔한 상업적 가게들과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필요보다 그곳에 뭔가를 사러 오는 사람들의 취향에 더 부응 하라는 명령. 이처럼 지금 서울 시내 여러 동네들은 입지와 장소에서 비롯되는 독점력이 무엇이며, 그것은 누구의 것인 가를 둘러싼 격렬한 투쟁들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골목길 청년들을 만나다

이러한 일들은 홍대 일대 뿐 아니라 젊은 예술가들이 작업공 간으로 터를 잡고 문화공간으로 일군 지역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현상이다. 가로수길이나 삼청동 같은 동네들도 지역 성을 바탕으로 모여든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개성 강한 상권 을 형성했었다. 이후 미디어와 자본에 의해 소위 ‘핫’한 공간

이 되면서 이제는 그 지역성마저 퇴색된 공간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반복을 보고 있노라면, 동네 청년들의 시도는 어떤 조 건에서 어떻게 일어나며, 이 시도들의 의미는 무엇인지 좀 더 깊은 분석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또한 청년들의 자생적인 시도와 실험들이 원주민들과 공생하면서 그 자체로 개성있 는 골목과 동네로 유지될 수는 없는 것인지도 궁금해진다.

우리는 이러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태원 경리단 회나무길 과 우사단길의 사례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원주민의 자원과 그 자원을 새롭게 변주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시도가 우리 모 두의 공유재가 되기보다 쉽사리 자본으로 흡수되어 버리는 한국 사회에서 이태원이라는 소위 ‘이방’의 공간에 새롭게 자 리를 튼 청년들은 어떤 현실을 마주하고 있을까.

이태원 회나무길과 우사단길은 다양한 시도가 시작된 지 2~3년 정도 된 곳으로, 아직 상업화 물결이 본격화되기 전이 라고 판단된다. 우리는 자본화의 갈림길에 서 있는 이 공간들 에서 청년들의 문화 및 예술작업, 창업 시도가 골목과 마을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동시에 어떤 갈등과 협상의 과정에 있 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나아가 그 지역의 공간이 어떻게 변화 하는지도 알아보려 한다. 이들이 그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어 려움, 해결의 모색은 그 자체로 청년 예술가-창업자들과 마 을의 공생을 위해 필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다른 듯 비슷한 두 공간의 청년 예술가-창업자 그룹 중 10개 작업실 및 창업 가게의 12명의 청년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하고, 이 공간들에서 진행하고 있는 지역문화 관련 프 로그램들에 참여하였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골목으로 들어 오는 청년 예술가-창업자의 창업과정에 대해서 들을 수 있 었다. 또한 우사단마을의 LIFEWORK 301이라는 공동작업 실에 거주하며 일상적인 변화들도 감지해보고자 노력했다.

이에 더해 지역 주민들과 만나 그들이 바라보는 청년 예술 가-창업가들의 마을 만들기 활동에 대한 생각도 알아보았다.

나아가 영국 런던과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리 등 도시 공간 에 대한 흥미로운 정책 실험을 벌이고 있는 국가들의 사례 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새로 창업 및 문화 작업을 시도하 고 실험하고 있는 청년들이 궁극적으로 청년 예술가-창업가, 마을, 도시가 바람직한 공생관계를 일구어 나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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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梨泰院)의 다른 이름이 이태원(異胎院), 즉 외국인 을 뜻하는 ‘이타인(異他人)’에서 왔을 만큼, 이태원의 이방 성은 오랜 역사적 맥락을 지니고 있다. 한강의 물길이 닿는 교통의 요지이자 한양으로 통하는 주요 관문으로서, 이태원 을 포함한 용산 일대는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해왔 다. 이러한 지정학적 특성은 외국군의 주둔을 불러와, 식민 지 시절에는 일제의 군사기지가 들어서고, 해방 후에는 미군 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이태원 일 대에 완전히 자리를 잡은 주한 미8군의 용산기지로 인해 이 태원은 기지촌으로써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방문화의 공간 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때문에 이 지역의 사회적, 경제적, 정 치적, 문화적, 지리적 특성은 미군과 용산기지를 제외하고 설 명하기 어렵다. 요약해 말하자면, 이태원은 미군들의 유흥지 로, 다양한 외국인이 모여드는 이국적 공간으로, 외제 물건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색다른 공간으로 오랜 시간 명성을 이어 왔다. 이렇듯 미군기지로 인한 이태원의 공간적 특성은 이 공 간 자체의 이방성을 확장 변주시키며 이태원의 문화적 의미 를 만들어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국적이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핫 플 레이스는 바로 이태원입니다. 세계인이 모여 고유의 문화를 전 파하고 다른 문화와 융합돼 독특한 색깔을 만듭니다.(국민일보, 2014.8.19.일자)

미군뿐 아니라 이태원에는 노르웨이, 덴마크, 스리랑카 대사 관 등 외국 공관이 집중되어 있어 대사관 직원을 비롯한 외 국계 기업 종사자들이 거주하는가 하면, 이슬람사원을 중심 으로 한 지역에는 무슬림과 아프리카계 이주민, 동남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들어 다국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나아가 다양한 예술가들이 꾸린 작업실들, 성소수자들이 몰 리는 바(bar)들, 한국 대중음악의 자양분이 되었던 오랜 역 사의 음악 클럽들은 이질성, 다양성, 해방성의 공간으로 이태 원을 구성해왔다. 2011년 그룹 UV가 발표하여 큰 인기를 얻 었던 <이태원 프리덤>은 이태원의 문화적 위치와 상징을 극 명하게 보여준다.

배달하는 집배원 / 물건파는 판매원/

기타치는 김태원 / 모두 모여 이태원 새로운 세상 그곳을 말해봐 음악이 있어 또 사랑도 있어 세계가 있어

청소년은 대공원 / 노인들은 양로원/

아이들은 유치원/ 우리들은 이태원 - UV, 2011, <이태원 프리덤> 가사 중

최근 몇 년간 매체를 통해 이색적이면서도 ‘핫’한 공간으로 알려진 이태원은 이국풍의 다양한 레스토랑과 옷, 골동품, 악세사리 가게 등 상업적 공간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자민족 중심주의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보기 드문 다문화 공간으로서의 독특성과 모방할 수 없는 고유성의 이미지가 독점지대를 추출하고 전유하려는 욕망과 엉키기 시작한 것 이다. 우리가 들여다본 두 개의 골목길 또한 이러한 과정에 놓여있다.

이태원 프리덤

회나무길과 우사단길의 현재 변화는 이태원이라는 동네가 한국 그리고 서울에서 갖는 문화사회적 의미와 긴밀한 연관 이 있다. 때문에 이 골목길의 청년들을 만나기 전에 이태원이 라는 공간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02. 이태원, 부상하는 골목길

ⓒ 영희야놀자

| 용산에 자리잡은 미군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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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골목이 뜬다

최근 2~3년 언론에 급격히 노출되기 시작한 이태원의 새로 운 명소들은 "00길"이라는 이름의 골목들이다. 이 골목의 이 야기는 TV 다큐멘터리, 각종 잡지, 블로그 등을 통해 앞다투 어 소개되고 있다. 해밀톤 호텔을 중심으로 좌우로 뻗어 있는 이태원의 주요 공간들에서 떨어져 있는 이 공간들은 여전히 이태원이면서도 동시에 독특한 그만의 문화적 특성을 가지 고 있다.

회나무길 용산구 회나무로 13가길

최근 이태원에서 가장 ‘핫’한 지역을 말하자면 녹사평역에서 하얏트호텔에 이르는 경리단길을 꼽을 수 있다. 길 건너편의 미군 기지와 초입의 국가 재정관리단의 경직된 이미지와 개 성 강하고 이국적인 음식점들이 대비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이 경리단길이다. 최근 1~2년 새에 경리단 초 입에는 크래프트 비어 붐이 일었다. 이국적인 음식을 팔던 맛 집들도 점점 더 늘어나서 경리단의 주말은 인파로 넘쳐난다.

경리단길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회나무로 13가길’이 나 온다. 한적하고 조용한 주택가 골목인 이곳은 개를 산책시키 는 외국인 거주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곳이며, 동네 원주 민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한때 저렴한 집세 덕에 아프리카계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라 한다. 최근 몇 년 사 이에는 장진우라는 이름의 한 사진작가가 친구들을 불러 요 리해주던 작업실을 간판 없는 레스토랑으로 변형해 히트시 키면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테이블이 하나뿐인 식당, 전용 밴드를 두고 매주 재즈공연이 열리는 가게, 꽃집인지 빵 집인지 아리송한 제과점까지, 자신만의 철학을 녹여낸 다양

한 가게들이 마니아 고객층을 만들어내며, 3년 새 ‘장진우’라 는 이름을 단 가게가 한 거리에 7~8개나 문을 열었다. 그의 성공이 유명세를 타면서 이 골목길은 '장진우 거리'로 더 많 이 알려지게 되었다.

장진우 거리로 본격적인 유명세를 타기 전부터 이 골목에는 젊은 예술가와 창업자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는데, 이들 은 미술소품가게, 조명가게, 레코드점, 1인 미용실 등을 운영 하는 소상점 주인들로서 이태원만이 지난 매력을 좋아하면 서도 상대적으로 집세가 저렴하고 부산스럽지 않은 공간을 찾아 모여들었다. 이들은 서로의 단골이 되어주며 커뮤니티 를 형성하는 것은 물론, 거리에 ‘보석길’이라는 이름을 붙이 고 벼룩시장을 여는 등 골목의 색깔 자체를 바꾸어나가고 있 다.

그러나 각종 미디어에서 주목하는 ‘핫’한 공간으로 떠오르면 서, 최근 이 한적한 거리에는 유난히 공사소리가 많이 들린 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서고 있는 중이며, 임대료 역시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 지역 부동산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지난해 3.3㎡당 2,500만 원 선이던 매매가가 현 재 3.3㎡당 4,000만 원 이상으로 치솟았고, 임대료 역시 지 난해보다 30% 이상 뛰었다고 한다. 얼마 전 경리단길 초입 에는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들어섰다. 이로 인해 경리단 길의 자본 점령이 머지않았다는 심상치 않은 소문들이 떠돌 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회나무길 청년창업자들의 위기감도 높아지고 있다.

ⓒ 영희야놀자

| 회나무길 지도

[출처] 중앙일보, 2014.4.14일자, 한정식에 스테이크, 여기는 장진우 골목,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4436479&cloc =olink%7Carticle%7Cdefault

| 2014년 회나무길은 공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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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단길 이태원 우사단로 10길

또 다른 사례로 우리가 주목한 거리는 이태원 우사단로 10길 로서 보통 우사단길, 또는 우사단 마을이라 불리는 곳이다.

회나무길이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다면, 우사단길은 역사와 문화, 경제적 맥락이 좀 더 복잡하게 중첩된 공간이 다. 이태원역 3번 출구 근처의 119 안전센터 뒤쪽으로 언덕길 을 올라가면 서울에서 유일한 이슬람사원이 나온다. 이곳이 우사단길의 초입이다. 사원 인근에는 이슬람계 거주자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으며, 거리에는 터번이나 히잡을 쓴 무슬림들 외에도 아프리카계, 아시아계 이주민들의 모습도 많이 보인다. 한편 후커힐, 게이힐로도 불리는 골목골목에는 미군을 상대로 한 클럽과 성매매 업소, 트랜스젠더 바가 옹기 종기 모여 있다. 한때 미군을 상대로 한 업소들이 성황을 이 루던 시절, 우사단길은 이태원의 배후마을로 기능하면서 미 군에서 흘러나온 제품들로 블랙마켓이 도깨비처럼 잠시 들 어섰다 사라지곤 하던 곳이다. 아직까지 우사단길의 끝에 도 깨비시장이 자리해 있고, 다른 지역보다 유난히 미용실과 세 탁소가 많이 보이는 것도 기지촌의 성격을 보여준다.

작업실 하기 전에 방석집이었던 것 같아요... 여기 앞에 완전히 까맣게 해놓고....(중략) 지하에 친구들 셋이 같 이 살았는데, 인테리어 자기들이 하겠다 해서 도와주 러 갔었는데 바닥, 장판을 계속 덮은 거예요. 뜯어도 뜯 어도 계속 나오더라고요. 진짜 신기했었어요. (중략) 여 기가 85년도에 지금 집주인이 들어왔는데, 그때 공사를 처음 했다고 하니까.... 아마 그때 이후로 계속 쌓이지 않았을까... 오래된 역사를 보았죠. / 청년N 인터뷰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미군들의 업소출입이 제한되고, 한편 으로 2003년 한남뉴타운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10여년 가까 이 재개발이 지체되면서, 이 지역은 한동안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다. 재개발을 노리고 건물을 구입한 투자자들은 노후화 되는 건물을 내버려두었고, 세입자들이 빠져나가 건물이 비 거나 창고로 쓰이는 곳이 많아지면서 거리는 슬럼화되었다.

이후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들과 젊은 창작자들이 하나둘 채 우기 시작하면서 다시 새롭게 변모중인 곳이 바로 이곳 우사 단길이다.

쇼룸을 겸한 작업실과 독특한 컨셉의 작은 가게들, 타투가게, DJ교습소, 인력시장, 게스트하우스, 낮술주점 등, 최근 2~3 년 사이 이 거리는 젊은 창작자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빠르 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우사단단’이라는 이름의 마을모임 을 통해 계단장, 우사단신문, 옥상음악회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며 지역 주민과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모색 중이다. ‘자 본의 손길이 닿지 않아 아직 쓸쓸한 채로 남아있던 우사단길 은 아방가르드한 예술가 집단과 젊은 패기로 무장한 집단이 어우러져 새롭고 신선한 예술마을 공동체로 변화’(이투데이, 2014.6.20일자)하고 있는 것이다. 재개발이 가장 큰 변수인 이 길은 임대료가 폭등할 가능성은 없지만, 재개발이 진행되 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불안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 영희야놀자

|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빨간 깃발

| 우사단길 지도

[출처] 네이버케스트, 한국관광공사, 한남동 뒷골목여행,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72&contents_id=67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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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예술가-창업가 골목에 들어서다

일명 ‘보석길’과 ‘우사단마을’로 불리는 회나무길과 우사단 길. 최근 몇 년 각종 언론 매체에서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는 이 길들이 처음부터 ‘핫’한 공간은 아니었다. 이 공간이 많은 이들이 찾고 싶은 거리가 된 것은 여기에 자리를 잡고, 각자 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청년들이 있기 때문이다.

골목에 들어선 청년들은 누구인가?

골목길 청년들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 아야 했다. 창업 이전까지의 삶의 경험들을 듣고, 현재의 삶 을 구성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질문했다. 물론 그들의 경험은 동일하지 않지만, 어떤 경향성이 있다고 말할 만한 공통적인 경험들은 있었다.

건축을 전공했고, 어렸을 때는 미술이나 글을 쓰고 싶 어 했었는데, 재능이 없다는 것을 빠르게 알고 나서 일 찌감치 포기하고, 그것과 좀 관련된 것들. 뭐 인문학 이나 이런 것들도 관심이 좀 많았었는데, 그리고 다 양한 분야의 예술적인 장르, 그리고 어떤 공학적인

그런 것들까지. 복합적인 것이 저는 건축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단순히 건물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약 간 도시적인 맥락에서의 것들을 공부하고 싶어서 도시 대학원 쪽으로 입학을 했다가, 그만 뒀죠. 그러고 나서 외국에 나가서 한 1년 정도 살았었구요. / 청년C 인터뷰

블로그를 통해서 판매를 하거나 아니면 아트마켓에 참 여를 했었어요. 그러다가 예전부터 제 가게가 하고 싶 었기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오픈 준비를 했죠. 전공 은 미술, 순수미술 전공이고요. 그러다 보니깐 작업만 하는 것도 재미는 있지만은 그래도 이제 작업한 거를 보여주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좀 만들고 싶어서...

/ 청년M 인터뷰

청년 C와 청년 M이 두 골목의 청년 예술가-창업가의 삶을 대변하거나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경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용한 것인데, 먼저 이들의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부모님의 거주 위 치와 상관없이 비교적 일찍(20대 초반) 부모로부터 독립해 서 생활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장기간의 여행이든, 교환학생이든, 유학이든, 국외에서 거주한 경험 혹은 여행 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 주로 디자인, 미술, 미디어영상, 미용, 건축 등 시각 예술과 관련된 전공을 가지고 있거나 그 와 관련된 일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골목길에 자리잡은

ⓒ 영희야놀자

03. 골목의 청년들,

누가 왜 골목을 찾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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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창업가와 예술가들의 교집합에서 가장 큰 부분이라 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을 통해 두 길에 모여든 청년들이 높은 문화자본과 상대적으로 낮은 경제자본을 가지고 있고, 혼자 무언가를 해 내며 돈을 버는 프리 에이전트적 노동(핑 크, 2004)에 익숙할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제가 여행 다니면서 전 세계, 전 세계까진 아니지만 어 쨌든 각 나라마다 시장이 있잖아요. 특히 벼룩시장이 되게 재밌어서 벼룩시장을 많이 다니면서 이제 우리 동 네에 이런 게 있으니깐 재밌겠다, 나도 참여를 하고 싶 다 그래서 제 친구들을 데리고 셀러(seller)로 참여를 했었어요. 셀러로 참여를 하면서 친구들은 물건을 팔 고, 저는 그냥 구경을 다니면서 놀고 하면서 이쪽 분들 이랑 친해지고. 당시에 저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거든 요. 그게 그렇게 계속 인연이 되었던 건 있는데... 여기 차린 거는 정말 되게 우연하게 제가 회사를 그만 두고 여행을 준비를 하다가... / 청년G 인터뷰

청년 G는 여행을 통해 경험한 벼룩시장의 즐거움을 이 골목 의 벼룩시장에서 찾게 되면서, 먼저 골목에 자리를 잡은 청 년들과 친해진 것이 창업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들과 얘기하 다가 그중 하나가 “너 창업하고 싶다며, 근데 여기 옥상도 너 무 괜찮고 여기서 하면 재밌을 거 같다 해 봐라”라고 제안하 자, 2주 만에 결정을 하고 창업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청년 G 의 경험은 골목길에 자리 잡은 청년들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 여준다. 돈과 ‘재미’를 함께 추구할 수 있는 일에의 욕망이 바 로 그것이다.

집이 여기 근처예요. 그래서 요 근처로 찾았던 것도 있 고, 그리고 뭐 저희가 되게 엄청난 상업적인 목적을 가 지고 장소를 찾았으면 아마 굉장히 번화가거나 아니면 교통이 좋다거나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을 택했을 텐 데, 저희는 그런 목적은 아니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굳 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나 그런 게 아니어도 그 냥 우리끼리 놀고, 우리끼리 뭐 이렇게 할 수도 있고...

이렇게 조용한 곳을 찾다가 보니까 집도 근처고 뭐 그 런 이유였어요 / 청년D 인터뷰

창업 전 프리랜서로 일하며 많은 돈을 벌었다는 청년 D가 그 일을 접고 창업한 이유는 “우리끼리 놀고, 우리끼리 뭔가를 해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프리랜서 일은 많은 돈을 안겨주 었지만, 그만큼의 노동 강도를 요구했다. 미용일이란 예술적 일 수 있는 일이지만, 언제나 대기 상태로 있으면서 어디나

달려가야 했던 과거에는 기계와 별 다를 바 없는 매일매일을 영위했다고 한다. 재미와 자율성을 추구할 수 있는 일, 그것 은 바로 ‘소외되지 않은 노동’에 대한 지향에 다름 아니다. 상 대적으로 낮은 임대료에, 이국성과 독특성이 결합된 공간에 서 추구해 볼 수 있는 잠재성으로서의 예술적 노동. 이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이러한 종류의 일을 추구하게 된 것일까?

청년들이 골목으로 온 까닭은?

우리가 이 두 길에서 만난 청년들 중에는 ‘신의 직장’이라 불 리는 외국계 대기업과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그만두고, 자신 의 일을 하고 싶다고 길을 찾은 이들이 있었다. 또한 남부럽 지 않은 고수입과 명성이 보장된 일을 던져버리고 골목길을 찾은 청년들도 있었다. 애초에 본인만의 작업공간을 갖겠다 고 나선 예술가와 문화작업자 청년들도 있었다. 서로 다른 배 경에서 출발하였지만, 이 청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 가 있다.

어떤 회사나 다 조직이 그렇겠지만 그런 조직생활에서 느끼는 그게 좀 오래 가기도 하고 언젠가 바뀌겠지 주 기가 있어야 되는데, 주기가 있는 게 아니라 너무 그게 계속 쭉 이어지더라고요. (중략) 일이 힘들다기보다는 성취감이 전혀 없는 일에 내가 하루 종일 매달려야 된 다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그리고 그게 성취감이 있을 법한 일을, 뭐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거나, 실적을 올 린다거나, 다른 사람들한테 만족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윗사람에게 만족감을 주기 위해서... / 청년G 인터뷰

여러 팀들을 했었는데, 좀 힘들었어요.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육체적으로도 그렇고. 아무래도 지금 여기는 대충은 끝나는 시간과 시작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100% 예약제로 하고 있어 우리 스스로 스케줄 을 조절할 수 있는... 그런 여유라고 해야 되나? 어쨌든 그런 것이 생겼죠. (중략) 돈을 버는 거는요 이전이 훨 씬 잘 벌었어요. 옛날 일했을 때가. 음... 그래도 옛날처 럼 돈을 많이 벌진 않지만 막 없어서 죽을 지경은 아니 에요. (중략) 저희가 주 5일 근무제를 꼭 고수하고 있거 든요. 그래서 여기 골목 다른 사장님들이 되게 부러워 하면서 의아하게 생각하세요. 사실 가게를 많이 돌려야 되는데 저희는 웬만하면 놀자는 주의여서... 그게 옛날 에 너무 힘들게라고 그래야 되나? 너무 빡세게 일했던 거에 대한 보상 심리가 있는 것 같아요. / 청년D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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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일을 해야 되니까, 궁극적으로. 뭐 회사생활이란 걸 평생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고, 자기 삶에 있어서 좀 주체성을 가지려면 자기 사업을 해 야 되니까. 늘 사업을 하고 싶었죠.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할 수 있으면 하는 것 도 당연히 좋은데, 그 회사 생활이라는 것이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어느 정 도 한계가 있는 거니까. 당연히 창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그게 더 좋 은 선택이라고 전 봤죠. 그리고 뭐 회사생활을 하면, 예를 들어서 좀 더 안정 적으로 어느 정도 많은 연봉을 주지만, 저는 특별히 돈을 많이 갖고 싶고 그 런 것은 크지 않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사업에서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 하더 라도 생계만 되면 되니까... / 청년A 인터뷰

고성장 시대가 지나고, IMF를 거쳐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로 접어든 한국 사회에 서 청년 실업은 심각한 문제다. 이를 감안한다면 두 길에 모여든 청년들의 위와 같은 이야기는 ‘가진 자의 여유’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능성은 오히려 이런 청년들의 욕구로부터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삶의 욕구를 화폐 측정 가능성 과 화폐로의 교환 가능성에 짜맞추어야 하고, 그것이 당연시되는 오늘날의 상황 에서 ‘돈 많이 벌지 않아도 괜찮으니 생계를 유지하면서 자율성과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추구는 단지 한가로운 소리가 아니라 이 시대 노동이 지향해 야 할 바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상 우리가 만난 이들은 현재 자신들이 가꾸고 있는 이태원의 일터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우 리의 인터뷰 요청에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가능한지’를 칼같이 알려주며 스스로를 관리하는 모습에서 청년들의 지향이 한낱 여유로운 베짱이의 그것으로 재현되지 않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생겼다. 우리는 일을 하며 짬을 내어 마을 회의나 문화행 사 등을 조직하는 바지런한 이들에게서 일시적으로나마 노동과 예술이 하나 되 는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우리의 일이 지향하는 바로 그 것. 이 청년들 각각이 소상점주인, 예술가, 활동가로 분류되기보다 이런 여러 면 모를 가지고 있으면서 어떤 계기가 있으면 손쉽게 넘어가는 국면을 발견할 수 있 었던 것은 바로 이 탓이리라.

너무 기계적인 거 같아서. 월급을 두 달 치를 받았는데, 한 달 받고, 두 달 받았는데 너무 달콤한 거예요. 그 월급이. 그리고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지.

월급을 받고 나니까. 그런데 그렇 게 여기서 한 달을 내가 더 받으면 못 나갈 것 같더라고요. 여기서 내 가 한 달을 더 월급을 받으면 계속 사무실에서 캐드하고, 포토샵하 고, 엑셀 만지고, 파워포인트 하고 뭐 그런. 그게 좀 따분하다는 정도 의 느낌이었는데, 이것을 내가 1 년을 하고, 2년을 하고 10년을 했 을 때, 끔찍하더라고요. 그렇게 내 가 살 생각을 하니까. 평생을... 그 래서 더 어떤 달콤함에 젖어들기 전에 빨리 나왔죠.(두렵지는 않으 셨어요?) 두려움이라고 하는 감정 자체는 뭔가를 잃거나 내가 손해 를 볼 때 나타나는 감정인데. 저는 뭐 특별히 가진 게 별로 없는 사 람이에요. 지금도 그렇고. 잃을 게 별로 없으면 별로 안 두려워요. 내 가 뭐 그래봐야 백수. 월급 한 달 에 한 200 정도 받았던 거 같은데, 200 정도 받는 거 실은 별로 안 중 요했고... / 청년C 인터뷰

똑같은 일이라고 해도 어쨌든 회 사에서 하는 일은 좀 업무적인 것 이 많고. 어떻게 보면 고객들의 뜻 에 좀 더 많이 부합하는 그런 작업 들이 많은데, 저희가 하고 싶은 일 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작업실 갖 게 됐거든요. 모든 디자이너들이 나 회사 다니면서 작업실 갖고 싶 어 하는 사람들, 로망 같은 게 있 는데, 그래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푸는 느낌? 그래서 그냥 작업, 하 고 싶은 거 좀 더 많이 하고 싶은 느낌. / 청년Z 인터뷰

7년이란 시간을 준비를 하고, 이 것도 사실은 짧은 거거든요. (중 략)일본에 있는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레스토랑, 외식업에 관 련된 식당 이런 곳에서 일을 했 거든요. 하면서 많이 공부를 한 것 같아요. 운영을 하는 거나, 사 람이 일을 한다는 게 어떤 것 인지 일본에서 많이 배워왔어 요. (중략)어릴 때부터 학교에

ⓒ 영희야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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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공부하는 게 꼭 공부라는 생각 은 안 했거든요... 학교를 간다는 것은 학위를 딴다라는 의미가 굉 장히 크잖아요. 그런데 학위를 포 기하는 대신에 어떤, 정말 의미 있 는 것은 내가 내 머리로 알고, 그 것을 쓸 수 있게 되는 거니까. / 청 년S 인터뷰

음악을 좋아하니까 기본적으로.

전에 있던 회사도 실질적인 음악 을 좀 더 다룰 수 있는 그런 회사 가 좋겠다고 생각을 해서 시작을 하게 됐는데 오래 있었죠. (중략) 재미도 있고, 좋아하니까. 일 자체 가 그렇게 큰돈을 벌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중략) 동네에 친한 친 구들도 생기고 그냥 자기가 좋아 서 하는 건데 그 좋아하는 사람들 이 또 좀 형성되어 있고, 또 몰랐 던 사람들도 새롭게 알게 돼서 또 같이 즐기고... 그런 거지 뭐. / 청년 R 인터뷰

말하자면, 골목의 청년들은 창업 이전의 삶에서 “빡센” 조직을 경험하면서 “일 과 삶”의 부조화에 회의를 느껴왔다. 더 많은 화폐와의 교환 가능성 속에서 점 점 자신이 소멸되는 듯한 느낌이 끌어낸

‘나 자신의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 다니 던 학교보다, 쌓아왔던 명성보다, 안정된 직장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진 자기 삶을 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이들을 남들이 주목하지 않은 길들로 향하게 한 것이다.

청년들은 왜 이곳에 왔을까?

그렇다면 이들은 왜 하필 많은 골목들 중에서도 이태원에 위치한 회나무길과 우 사단길에 자리를 잡게 되었을까? 면접에 응한 대부분의 청년들은 해당 지역과 근 처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거나, 친구나 지인의 소개로 이태원에 자리를 잡게 된 경 우다. 사는 동네가 마음에 들어서 집 근처로 가게를 얻고 싶었거나, 혹은 친구 작 업실에 놀러다니거나 벼룩시장에 다니다가 알게 된 지인을 통해 이 지역을 알고 매료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살던 집이 여기서 좀만 올라가면 있어요. 거기서 항상 제가 다니던 길 이에요... 혼자 밥 먹으러 갈 데가 그때 되게 많이 있었어요. 그니까 조그만 그냥 외국인들 상대로 하는 가게들이 있는, 그런. 참 동네가 아담하고. 그래 서 좋아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이제 가게를 알아보는데, 여러 군데를 알 아봤어요. 요즘에 뜨고 있는 연남동, 뭐 아니면 저기 이슬람 사원 쪽, 다 알아 보는데 이미 상권이 너무 떠버려서. 저는 근데 처음에 1순위는 이 동네였거 든요. 그래서 여기를 알아보는데 이제 자리가 없었죠. 없어서 포기를 하고, 이제 다른 동네를 알아보다가 제가 아, 올해는 안 되나 보다 하고 그러고 있 다가 우연히 진짜로 발견해서 무조건 이건 무리를 해서라도 여기는 잡아야 겠다 싶었죠 / 청년M 인터뷰

작년에 이 동네 앞에서 제일 성공적인 맥주집 중에 하나인 ‘OOO’ 라는 데 창업자 부부가... 그 친구들이 제가 있는 시골에 놀러왔는데 ‘자기들 사업 잘 하고 있다. 돈 많이 번다. 당신은 왜 여기서 맨날 이러고 있냐. 뭔가를 해야 되지 않냐.’ 그렇게 얘기를 해서, ‘아 얘네들 맥주 잘 파네. 나도 막걸리나 팔 아볼까?’ 이 생각을 한 거고. 그래서 막걸리를 팔아야겠다고 생각을 한 다음 에 그 친구들한테 어디로 가면 좋냐 했더니 그 친구들이, 자기들도 가게 많 이 보러 다녔는데 이 골목에, 지금 제가 있는 데가 나와 있더라, 여기 한번 가 봐라 해서 가봤고. 저도 와봤는데 좋아서 왔죠. (이태원에 대한 이미지?) 이 태원이라는 게 저쪽 이태원역 있는 이태원하고 여기 경리단 쪽하곤 완전 다 른 동네고, 그래서 그냥 경리단으로는, 저는 한 1~2년? 거의 2~3년 전부터, 제일 초기에 뜰 때부터 여기에 굉장히 독특한 색깔이 있는 가게들이 생기 니까. 전 그런 거 많이 찾아다니는 편이었으니까 알고 있었고, 자주 왔었고.

그래서 아 여기가 제일 좀 세련된, 뭐 영어 표현으로 요즘 힙스터 플레이스 (hipster place), 힙(hip) 플레이스라고 할 때, 제일 힙(hip)한 동네니까, 서울 에서 한국에서. 그냥 당연히 이리로 가야된다고 생각을 했죠. / 청년A 인터뷰

그냥 ‘외국인들 상대로 하는 가게들이 있는 아담한 동네’, ‘독특한 색깔이 있는 가 게들이 생기는 동네’라고 표현되는 ‘핫하고 힙한’ 공간의 매력이란 결국 동네의 역사성과 문화적 다양성/특이성이 일종의 공유재로서 청년들의 장사와 작업 밑 천이 되었다는 의미다. 일종의 상징자본으로 기능하게 된 동네의 역사와 문화가 좀 다른 삶의 경로를 모색하는 청년들의 레이다망에 포착된 것이다. 그러한 동네 들 중에서도 아직은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싼 두 길은 경제자본이 낮은 청년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터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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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지역이 서울에 몇 개 안 남았어. 2012년 초에 이태원 경리단, 뜨기 전이 었어요. 서촌. 그리고 이태원 여기였어. 세 지역 다 3~4년 전부터, 2010년부 터 관심 있게 지켜보던 지역. 세 지역이 가장 빠르게 변화하겠다고 예상했지 요. 되게 유명해지고 있긴 한데 이 동네가 가장 더디긴 해요. 우리가 일부러 속도를 조절한 것도 있어요. 경리단은 상권이 물밀듯이 들어와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포화되었고, 서촌도 마찬가지고. 우리도 서촌에서 장사하고 있 지만 그 지역은 규합할 단체가, 서촌은 너무 많고 경리단은 너무 없어요. 너 무 많거나 너무 없으니까 둘 다 제어가 안 돼. 서로 잘한다고 하니까 연대하 지 못하고. 이쪽은 너무 없으니까 난개발. 속도 조절이 안 되는 거지요. 수명 이 얼마 안 남았어요. 우리는 여길 선택을 했지요. 가장 가능성 있는 지역이 기도 했고.... (중략) 임대료가 가장 싼 지역이기도, 동네가 가장 재밌는 지역 이기도 해. 공간적으로. 구릉 위, 이슬람 사원, 중국인들, 이슬람 사람, 아프리 카계 흑인, 예술가, 원주민, 집창촌 일하시는 윤락업소 윤락녀들, 막 뒤섞여 있어요.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고 제일 재밌겠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어요. 모일 수 있을만한 사랑방 공간부터 만들자 해서 (중략) 사람들을 모 았어... / 청년C 인터뷰

위 면접 내용은 우사단단을 이끄는 주요 멤버이자, 스스로를 장사꾼이면서 기획 자라고 소개하는 청년의 이야기다. 주요 상권과 가까우면서 활용가능한 콘텐츠 가 풍부하고 거기다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싼 우사단길은 재개발 지역이라는 이 유로 개발속도가 더뎌 자신들과 같은 청년들이 재미있는 일을 벌일 수 있는 곳이 다. 흥미로운 것은 자신들이 이 속도를 조절하기도 했다고 말하는 데 있다. 이러 한 이야기는 특정 국면에서는 이러한 지역을 주목하는 청년들과 자본을 일률적 으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지리학자 하비(David Harvey)는 도 시 공유재에서 벌어지는 진정한 비극은 ‘지역사회에서 활기차고 재미있는 일상 생활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부동산 개발업자, 금융업자, 상류층 소비자의 약탈 행위에 직면해 일상생활을 잃어버리고 도시 고유의 사회적 상상력을 빼앗기고 마는 것’(하비, 2014: 145)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이 청년들이 ‘개발의 속도를 조절한’ 내용과 이유다. 그들은 애초 역사성과 문화 적 다양성을 지닌 이 골목들에서 더 풍부한 공유재를 만드는 실천을 해 온 것인 가, 아니면 ‘부동산 개발업자, 금융업자, 상류층 소비자의 약탈 행위’로 가는 초석 을 닦아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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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청년들, 모이다

우사단길과 회나무길에는 활동하는 청년들이 함께 모이는 모임이 있다. 사실 두 골목이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골 목이 명성을 얻게 되기까지의 경로와 현재 분위기가 같지는 않다. 모임이 형성되어 활동한 시기에서도 차이가 있다. 우 사단단은 2년 정도 된 우사단길의 청년 모임이고, 회나무길 은 보석회라는 모임이 발족한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유사한 것은 모임 시작 당시의 분위기와 모이게 된 이유이다. 골목에 자리를 잡은 청년들은 이웃의 청년들과 만 나 함께 놀기 시작하면서 가까워지고, 이는 어려움을 나누고 함께 해결하기 위해 “모여 무엇인가를 하자”는 의기투합으로 이어진다.

ⓒ 영희야놀자

04. 골목의 청년들, 마을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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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회나무길이잖아요, 행정구역상. 근데 문제가 회 나무길이라는 것을 이 동네사람도 쓰지 않아요. 어떻 게 해서 그렇게 지었는지… 그렇다면 그냥 우리끼리 브 랜딩을 해서 지금 마음 맞으니까, 그 당시에 한 8~9명 이었거든요. 이름 한번 지어보자 그래서 그날 우스갯소 리로 나오다가 뭐 여기가 보석 같은 존재들이다 그래서 그럼 보석길 해. 그래서 이름을 짓고 다 동의해서 한 거 죠. / 청년R 인터뷰

처음에는 가가호호 방문했죠. 같이 놀아봐요. (중략) 마 을에서, 처음에는 술이나 먹자 뭐 이런 식의 모임이었 고요. 그런 모임들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죠. 뭐 그냥 우리끼리 놀아 봐요 이러면서 만나보자고 했고. 첫 번 째 모임을 했던 날 한 5~6명 오셨는데, 그 중에서 한 절 반 정도는 안 나오고 거쳐 간 사람도 되게 많고요. / 청 년C 인터뷰

우리랑 친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다 데리고 온 거죠, 그냥.

마을회의한다, 같은 동네니까 와서 재미있게 놀자. 처 음엔 진짜 술모임이었던 거죠. 술모임으로 재밌게 놀 고, 마을 사람들끼리 그냥 놀고먹으면서 재밌는 일을 뭐 이런 걸 하면 재밌겠다 이러면서.. 일.. 그러니까 놀 이랑 일의 경계가 없이 그렇게 했었던 거니까. 그래서 모을 수 있는 사람들은 다 모았던 거죠. 회의는 회의였 는데, 그때 회의는 그러니까 무엇을 하면 재밌을까에 대한 회의죠. / 청년N 인터뷰

경리단 회나무길에는 소위 상가 번영회 같은 자조모임으로 보석회가 만들어졌다. 이들은 자신들의 모임의 이름을 따서 회나무길에 새 이름을 줬다. 이름하여 보석길. 우사단로 10길 역시 마을로 만들고자 하는 청년들이 우사단단을 꾸리고 이 곳에 우사단 마을이라는 새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리하여 우 사단 마을.

요즘에 새로운 가게도 많이 생기고 임대료가 너무 높아 졌어요. 너무 높아지다 보니까 사실 기존에 있던 가게 들은 조금 있으면 재계약 기간이 다가올 가게들이 많거 든요. 그럼 당장 그게 눈앞에 다가온 현실이 돼버리는 거죠. 지금 들어온 사장님들은 본인들의 의지와 상관없 이 높여주셨겠죠. 이제 피해를 여기 기존에 있던 사람 들이 안고 가야 되는 게 사실이니까. 그거에 대해서 저 희가 너무 넋 놓고 어떡하나 하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까 저희가 모임을 통해서 좀 더 힘을 키우고자 하는 거 죠. / 청년D 인터뷰

제가 이 동네에 이사를 오게 된 거고요. 제가 지금까지 작업을 해오던 그런 것들이 다 사람에 대한 관찰이었어

요, 포커스가. 근데 그런 작업을 계속 해오다 보니까 이 동네를 온 거 자체가 계기가 된 거죠. 그러니까 이 동네 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에 대해서 알게 되고, 생각하게 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게 되고. 근데 절대 그것이 남 을 돕기 위해서는 아니고 뭐 어쨌든 당장 우리 집 앞에 쓰레기가 문제가 되고, 당장 친구들한테 이 동네를 소 개시켜주고 싶은데 “야 이 동네 좀 무섭다”라는 얘기가 나오고, 그리고 여기에 사람들을 오게 하고 싶은데 역 시나 무서워할 수도 있고, 거리도 멀고. 그런 것들을 해 결할 방법들을 하나씩 만들어 간 거죠. 그리고 그 방법 들을 봉사차원에서 풀면 풀 수 없기 때문에 제 작업이 랑 연결시켜서 제 작업화 했던 것들이고, 그래서 이런 것들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거고, 계속 할 거고. 그런 것 같아요 / 청년N 인터뷰

위 면접 내용처럼 청년들은 각자가 가진 고민들과 골목에서 경험하는 어려움들을 공유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마을회 의를 조직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구 체적으로 어떤 활동들을 해 왔는지 2년여 간의 활동이 쌓인 우사단 마을을 중심으로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골목 청년들, 작당모의하다

다양한 관심사의 청년들이 참여하는 우사단단의 여러 활동 들의 면모를 보고 있노라면 앞 장에서 제기한 질문과 관련하 여 이들이 우사단길을 더 풍부한 공유재로 만드는 실천을 해 왔다는 것에 손을 들어주고 싶어진다. “사람이 모여 골목이 되고, 골목이 모여 마을이 되고, 마을이 모여 사회가 된다”는 이를 잘 드러내는 그들의 모토다.

벼룩시장은 마을의 축제

계단장/들어와 그리고 보석시장

두 길 모두 벼룩시장을 열고 있다. 주 목적은 골목의 지역성을 홍보하고 지역 상권을 살리는 데 있다. 특히 우사단길의 경우, 상권 살리기를 넘어서 ‘재개발 지역’으로 묶여 오히려 개발이 제 한되었기 때문에 역사성이 보존되고 특이성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어 개발을 막을 수 있는 힘을 조성하려는 기획 의도가 흥 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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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을에서 잘 놀았는데 너무 우리끼리 노니까 좀 심심해졌어요. 실은 자랑 도 약간 하고 싶었어요. 우리 재밌게 노는데 너희들 해봐, 와서 구경해봐, 우리 재 밌는거 진짜 많아, 재밌는 사람도 많고 활동도 많이 하고. 와서 배워봐. 이런 취지 죠. 외부인의 역할은 한 명 한 명이 방송국인 거에요. 우리 마을의 가치를 외부에 서 평가하는데도 좋은 것이고. 좀 더 정치적으로 풀면 여긴 재개발 구역.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외부에서 우리를 어떻게 바라봐주는지 그 여론 이 훨씬 크게 작용하는 거지요. / 청년C 인터뷰

그리고 이들은 이러한 힘의 조성이 스스로 이 공간에서 좀 더 주체적이어야 가능하다 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홍대 사례가 있으니깐 이런 활동이 언젠가 홍대처럼 우리가 자승자박할 수 있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돼서 이 동네에 올 수밖에 없었던 것도 있고, 일정 부분. 그러 니까 우리가 만약에 여기 주체가 되지 않으면 어쨌든 쫓겨나는 거는 똑같을 거라 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런 모임이나 이런 것들을 만드는 주체가 되려고 했었 고. 그런 마을 장터라는 것도 그런 특정한 이슈가 있는 날 자기 작업이나 아니면 자기 프로모션이 될 수 있으면 어쨌든 이 거리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또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고. 근데 굳이 예술가에게 한정을 두지 않았던 이유는, 물론 예술가들만 모여 있어도 흥미로운 장터를 만들기에 더 좋은 부분들 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주민들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장터가 되면 좋겠다 싶어가 지고 아무것도 제한을 두지 않았었거든요. / 청년N 인터뷰

이러한 기획의도를 가지고 시작된 벼룩시장은 우사단 마을의 원주민들에게는 일단 ‘비어 있고 조용하던’ 동네가 활기넘치게 된 것 자체로 반가운 일이 되었다. 특히 활발했던 ‘예전’

을 기억하고 있는 주민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이들은 일단 청년들의 시도를 반긴 다. 그러나 동네의 활력에 대한 욕구는 자본화의 가능성과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청년 들이 가득하고, 외부인이 찾아와서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주기를 바라는 욕구와 사놓기 만 한 건물이 비어있지 않고 들어차기를 바라는 욕구 사이는 얼마만큼 먼 것일까, 혹은 가 까운 것일까?

옛날에는 여기가 굉장히 활 발했는데 이제 재개발 그런 것도 있고, 여기가 많이 조용 해졌었거든요? 그랬는데 이 렇게 젊은 사람들이 넘쳐나 니까 우리도 기분이 좋고요.

더 활성화돼서 이 거리도 좀 더 신났으면 좋겠어요. 여기 이제 (건물)사놓기만 하고, 비어있고 이러니까. 안 좋았 죠.(중략) 그게 저 인터넷 영 향 같아요. 우리 같은 사람은 그런 거 상관없는데, 이런 젊 은 사람이 한두명 들어오면 서 뭐 우사단로 신문도 만들 고, 인터넷으로 또 많이 그거 퍼져서 이제 딴 데서 하던 사 람들이 이쪽으로 많이 이동 했나 봐요. 그러니까 그런 인 터넷 덕분이지 뭐 보통 이런 사람들로서는 할 수가 없죠.

(중략) 너무 예쁘고 좋아요.

더 많이 오면 좋겠어요 / 우사 단길 주민

시장이 열림으로써 이제 이 거리를 좀 더 활성화시키죠.

여러 사람이 그 뭐 잡지 나 뭐든 .이렇게 알리게 되잖아 요. 멀리서도 또 많이 와요.

원래 이 동네에는 토박이들 이 많아요. 나이 드신 분들.

ⓒ 영희야놀자

ⓒ 영희야놀자

ⓒ 영희야놀자

| 우사단단에서 주최하는 벼룩시장 <이태 원 계단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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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적으로. 근데 지금 이런 거리가 이렇게 형성되면서는 이제 젊은 층들이 굉장히 많 이 왔다 갔다 하는 골목이 돼 버린거죠. / 회나무길 주민

저는 처음 와봤거든요. 그래 서 되게 흥미롭고, 재밌고. 이 런 문화가. 저는 예전에는 이 태원 문화가 다른 외국이라 든지 그런 거를 따라하는 문 화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 게 아니라 새로 생성된 어..

좀 특이한 문화가 된 거 같아 요. 사실 경리단길이 작년부 터 좋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처음 들었거든요. 그리 고 올해 많이 듣다가 오늘 처 음 참여해봤는데 이렇게 화 려하거나 아니면 다양한 문 화가 있는지도 오늘 처음 알 았고. 되게 재밌는 경험이었 던 거 같아요. / 보석시장 판매자

테스트이기도 하지만, 이제 저라는 사람과 제가 만드는 것들에 대한 어필을 할 수 있 어서. 고객층을 잡는 게 사실 처음부터 시작하기가 어렵잖 아요. 그래서 그분들을 알아 가는 것도 좋고, 그리고 아무 래도 다양한 사람들 만나다 보니까 아이디어 같은 것도 얻을 수 있고. 교류도 되고, 그리고 또 그걸로 인해서 네 트워크가 좀 커지는 게 아무 래도 프리마켓 장점인 거 같 더라고요. 그래서 그거 때문 에라도 더 나오게 되는 거 같 아요. / 보석시장 판매자

자신들의 시도로 새롭게 이 길을 알림으로써 재개발을 막거나 늦춰보려는 청년 예술 가-창업자들, 이태원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벼룩시장 참여자들, 비슷한 관심사의 청년들과 네트워킹을 목적으로 자신의 예술작업을 선보이는 작업자들, 예전 기억을 주섬주섬 꺼내들며 이러한 활력을 반기는 원주민들 모두 어쩌면 동상이몽을 꾸고 있 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그러한 꿈을 꺼내보이고, 서로 부딪혀 설득하는 과정을 겪을 수 있다는 점에서 벼룩시장은 중요한 장이다.

청년들의 작업실과 가게에는 여전히 원주민들보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다른 동네 젊은이들이 더 많이 찾아오지만, 어떤 청년들의 꿈은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들 에게 파스타와 칵테일을 먹이는 것이다. 장사의 목적은 돈이지만, 돈만은 아닌 것이 다. 거리의 근접성에서 오는 온기를 흐름화 할 수 있을 때, 동네의 분위기와 매력은 자 연스럽게 빛을 더할 것이다.

정말 좀 허황되긴 한데, 낮에 여기 계시는 할머님 할아버님들한테 파스타를 드 리고 싶은 거예요. 동네 애기들한테 파스타를 먹이고 싶어서 그때는 그거에 맞는 운영을 했었는데. 그게 조금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다시 밤에 운영을 하고 있는데. 그건 이제 하나의 꿈으로 가지고 있는거고, 다시 또 시작을 해보려고 생 각을 하고 있고. 처음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경영에 대해서 다 알지는 못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처음에 계획했던 거는 사실은 실패였죠. 이제 낮에 운영을 하고, 동네 분들한테 이런 칵테일을 준비를 해드리고. 이런 걸 하고 싶었었거든요. / 청 년S 인터뷰

| (좌)우사단길 벼룩시장 <이태원 계단장> 홍보 포스터, (우)회나무길 벼룩시장 <보석시장> 홍보 포스터 [출처] 우사단마을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wosadan

장진우 식당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321kit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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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을 알고 기록하고 알리자!

마을 투어 & 지도 & 마을신문

지리학을 전공중인 청년L이 전공과 관련해 지역에서 무언가 를 하고 싶다는 고민 끝에 우사단 마을 투어를 시작했다. 그 는 ‘지역을 관찰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수집하고 지 역문화콘텐츠를 만드는 작업을 통해 한 지역이 어떻게 하면 더 살기 좋은 곳이 될지를 고민하고 실천하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 투어는 계단장이 있는 날 주로 진행되는데, 이태원의 배후지 마을이었던 우사단 마을의 성격과, 이슬람 사원, 그리 고 한남 3구역의 재개발 관련된 공간까지 살펴본다. 이를 통 해 투어 신청자들이 재개발로 사라질지도 모를 이 마을에 대 한 애정을 갖고,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와 또 한 명의 마을 청년N은 우사단단 모임과 함께 마을의 역사를 기록하고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마을의 모든 것을 빨리 부수고, 새로 세우고, 그 과정에서 원래 살던 사람들은 떠나는 일이 반복되어 온 서울에서, 한 동네에서 오래 거주하 고 있었던 사람들과 장사를 해왔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이야 기를 듣고 이를 기록하며 아카이빙하는 작업은 보통 사람들 의 눈높이에서 역사를 새로 쓰는 일일 것이다. 이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지도도 만든다. 그 과정에서 이 동네의 역 사성과 문화적 교차성이 더 다양하게 드러나기를 바란다. 유 토피아로서의 헤테로토피아 공간. 청년들을 품어준 이질성 이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할지니!

ⓒ 영희야놀자

| 클라우드 펀딩 서비스의 하나인 텀블벅에 소개된 우사단 마을 박물관 개관 프로젝트

[출처] 우사단 마을박물관 만들기 텀블벅 https://tumblbug.com/ko/usadan

| 청년 L이 진행하는 동동투어

[출처] 동동투어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dongdong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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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악단

옥상유랑단

마을의 청년들이 모든 것을 회의를 통해 결정해서 다 같이 일사불란하게 하지는 않는다. 이 골목으로 자리를 잡은 청년 들의 개성이 다양한 만큼, 각자가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일들 을 통해서 따로 또 같이 마을의 문화를 만들고 즐긴다. 옥상 유랑단 역시 동네친구이자 이 마을에 터를 잡은 청년 두 명 이 매달 1회 우사단의 아름다운 옥상경관 속에서 공연을 하 는 것을 목표로 기획했다. 옥상 공연은 ‘지역 재생의 촉매로 도 작용한다. 젊은 예술가가 찾는 옥상은 대개 노후 주택에 딸린 옥상이다. 자연히 성북동, 이태원, 성수동 등 재개발 대 상인 강북의 허름한 동네가 주 무대다. 이는 그 지역 주민 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기 때문에 마을 만들기 운동으로 연 결’(조선일보, 2014.7.22 일자)된다.

| 옥상유랑단 공연 홍보 포스터

[출처] 옥상유랑단 페이스북 www.facebook.com/rooftop.wanderers

| 우사단마을의 마을신문 <월간 우사단>

[출처] 우사단마을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wosadan

| 우사단마을 열린가게 지도

[출처] 청년장사꾼 블로그 http://blog.naver.com/youngseller/110187859665

주차금지, 발로 차지 마세요!

라바콘 화분작업

저희가 되게 오랫동안 생각한 게 주차 문제랑 쓰레기 문제 딱 두 가지에요. 막 여기 들어온 작업자들이 모두 고통 받는. 근 데 어쨌든 돈을 지원해주셔서 너네 동네 예쁘게 만드는 아이디어를 내라고 했을 때 라바콘이 집집마다 필요한데 그걸 돈 주고 사기가 너무 아깝잖아요. 그리고 그거를 그냥 칵테일해서 식물을 심으면 예쁘고, 그 꽃을 사람들이 차로 치진 않겠 지. 하는 생각에서 그냥 아이디어를 내서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게 통과가 돼가지고. 왜 가게 주인들이 잠깐 가 게를 비울 때가 있는데요. 진짜 문 잠깐 닫아놓고 나면 차를 바로바로 대요. 근데 이거를 내놨을 때는 그래도 어느 정도 효 과를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 청년Z 인터뷰

우사단 마을회의에서 골목의 주차문제는 심각하게 다뤄진다. 골목이 좁다 보니, 불법 주차를 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또한 주차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라바콘을 설치하면, 사람들이 그것을 치 우사단단 모임에서 (격)월간으로 제작하는 마을 신문 <월간

우사단>은 이태원동, 한남동, 보광동을 가로지르는 우사단길 에 모여 사는 동네주민, 예술가, 창업가들이 모여 마을 소식, 마을 부동산 정보 및 마을로 온 예술-창업가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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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고 함부로 불법주차를 하거나 발로 차버리는 경우가 많다.

대안으로 마을회의에서 라바콘에 꽃을 심어 화분을 만들기 로 결정했다. 발로 차버리거나, 이동시키지 못하도록 말이다.

청년들이 다 같이 모여서 만든 라바콘은 청년들의 작업장 혹 은 사업장에 주로 배치되고, 원하는 마을 주민들에게도 배포 되었다. 물론 화분에 있는 꽃들을 뽑아가는 경우도 있고, 없 어지기도 했지만, 거리 자체의 분위기를 환기하면서도 하나 의 문제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디어 가 반짝이는 청년들의 작업이었다.

ⓒ 영희야놀자

| 우사단 마을의 청년들이 늦은 시간까지 라바콘 화분을 만드는 모습

마을벽화 및 빈 공간 정화 작업

좀 무서운 곳? 좀 위험한 곳! 그랬고.. 제가 왔었을 때도, 이태원에 살기 전에 놀러왔었을 때도 되게 좀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이 됐는데... / 청년G 인터뷰

저는 좀 약간 무서운 느낌 있었어요. 좀... 뭐 흑인들도 많고 너무 다른 세계 사람들이 여기 있는 듯한 느낌? / 청년Z 인터뷰

ⓒ 영희야놀자

| 매달 계단장이 열리는 우사단길의 계단에 벽화작업을 한 모습

공공성+예술, 마을을 살릴 수 있을까?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공공포스터

지난 4월 회나무길의 상점들에는 아래와 같은 포스터들이 붙 어 있었다. 이는 세월호 사고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아이들 을 슬퍼하고, 기억하기 위한 행위였다. 이러한 퍼포먼스는 한 가게의 주인이 제안하여, 이 뜻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모두 국 화꽃과 함께 포스터를 한 달 가량 부착했다. 이를 예술과 정 동노동의 특성이 겹치는 서비스를 주로 파는 이 지역에서 언 뜻 출현한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으로 파악할 수 있지 않을 까? 역시나 장사의 목적은 돈이지만, 돈만은 아니라는 것. 그 것은 바로 우리들 일상을 돌아보아야 하는 하나의 사건이 낸 파열에 청년 예술가-창업자들 나름의 정직한 응답이었을 것 이다.

ⓒ 영희야놀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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