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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Fans appeared in the Western Costume Culture - Focusing on 16~18 centu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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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responding author ; Eui-Jung Lee Tel. +82-10-8362-7474, Fax. +82-2-490-7555 E-mail : [email protected]

서양복식문화에 나타난 부채에 관한 연구 - 16∼18세기를 중심으로 -

이 의 정+ㆍ강 경 애*

서일대학 의상과 교수+ㆍ서일대학 의상과 겸임교수*

A Study on the Fans appeared in the Western Costume Culture - Focusing on 16∼18 century -

Eui-Jung Lee+ㆍKyung-Ae Kang*

Prof., Dept. of Fashion Design & Textile, Seoil College+ Adjunct Prof., Dept. of Fashion Design & Textile, Seoil College*

(2012. 8. 31. 접수; 2012. 11. 7. 수정; 2012. 11. 13. 채택)

Abstract

There are practicality, ornamentality and symbolic in a folding fan among Western accessories, and that is a little tool to enhance the overall harmony of a dress.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Western folding fans in an effort to shed light on the history, culture, fashion and life of different ages in which folding fans had been used. It's specifically meant to look into the mentality of people who had used folding fans. The meaning and function of folding fans were investigated, and their diverse types and characteristics were analyzed. As a result, it's found that in the West, a folding fan was one of major accessories that had an inseparable relation to popular clothes in each age and were necessary for a perfect coordination. Folding fans had been used as ornaments for Western noble women since the 16th century. After a certain period of time passed by, the 18th century became the heyday of folding fans. At that time, folding fans were one of aesthetic art works that even served as a means of mental exchange.

Key Words: Accessory(액세서리), Folding fan(부채), Popular clothes(유행의복), Coordination(코 디네이션), Aesthetic art works(미적 예술품)

Vol.14 No.4 (2012) pp. 73~88

I. 서 론

액세서리는 의복의 전체적인 조화를 돋보이 게 하는 부속품이며 실용성과 장식성이외에 상 징성을 지닌 소도구로 장갑, 신발, 부채, 백, 자 등 실용성 위주의 액세서리와 귀걸이, 목걸 이, 반지, 팔찌 등의 장식성 위주의 액세서리들 이 있는데(김혜경, 2007) 각각의 액세서리들은 시대마다 착용자의 사회적 신분과 권위의 상징

을 나타내며 사회적인 흐름에 따라 의복의 변화 와 함께 다양한 양상으로 발전과 쇠퇴를 거듭하 여 왔다.

본 연구에서 다루고자하는 액세서리인 부채 는 일반적으로 공기를 순환시키고 무더위를 다 소나마 식혀주는 생활도구로서의 이미지를 가 장 먼저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시

대부터 18세기까지, 특히, 서양에서 사용된 부채

들은 생활용품으로서의 기능이외에도 종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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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의 용도에 장식적인 의미까지를 포함한다.

또한 시대마다 상이한 기능을 보이면서 과학문 명이 급속도로 발전하기까지 사람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용도로 사용되어왔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 이며,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때와 장소를 불문하 고 항상 손에 지니고 다니는 생활용품으로 사람 들은 제일 먼저, 핸드폰을 떠올리게 된다. 이처 럼 특정 시기의 부채는 의사소통의 기능을 가진 핸드폰과 같이 신분이 높은 여성들이 무언의 대 화의 수단으로 자주 지니고 다니는 필수품이자 주요 장식품이었다. 또한 부채는 다양한 용도로 동서양 곳곳에서 사용되어왔는데, 특히 서양의 수많은 화가들의 그림들을 살펴보면, 남성들은 부채 대신 벨트에 주머니나 칼을 매달거나 지팡 이나 회중시계를 주요 액세서리로 착용하거나 지닌 반면, 귀족 신분의 여성들은 유행의복과 코디네이션이 잘 이루어지는 신발과 장갑을 착 용하고 손수건이나 핸드백, 예술품의 경지에 다 다른 다양한 부채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내 지고 있다.

서양에서는 남성들이 부채를 들고 있는 모습 을 볼 수 없으나, 한국화에서는 여성보다는 주 로 선비들이 도포와 잘 어울리는 부채를 들고 풍류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는 부채를 주로 사용하는 사용자의 성별과 문화 적 상대성에 의해 부채의 기능이나 의미에 있어 도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의복이 한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는 동적인 조 형예술로서 시대의 일부이자 신분을 보여준다 면, 액세서리인 부채가 의복과 조화를 이루어 의복의 일부로 보이는 순간, 부채 역시 시대상 과 신분을 모두 반영하게 되며, 부채의 재료와 디자인 역시 의복과 매치되는 것으로 결정된다.

또, 각 시대의 다양한 부채들은 시대의 사회상 과 유행을 반영하는 그림들이 그려진 작은 화폭 이며 예술품으로도 여겨질 수 있다.

따라서 부채에 대한 연구는 한 시대의 역사와 문화, 패션의 일부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뿐 만 아니라 다른 액세서리들이 지니지 않은 의사 소통 수단의 기능까지 지녔다는 부분에서 그것 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활상 안에서의 정신적

인 측면까지도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라 사료 된다.

Ⅱ. 연구 목적 및 방법

부채는 서양에서 여성들의 주된 액세서리로 의복과 분리되어 생산되지만, 의복이라는 공통 분모 안에서 함께 묶이며 패션의 완성에 필수적 인 아이템으로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여 패션 유 행을 이끄는 예술품이라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가방이나 신발처럼 실용적 의 미가 강조된 액세서리와 달리, 실용성과 함께 장식적인 사치품으로서 서양에서 여성들에게 유독 더 많이 사용되었던 부채가 본격적으로 패 션의 일부로 등장한 16세기부터 18세기를 중심 으로 다양한 시대별 유형과 특성을 문헌 고찰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여러 유형의 부채 의 발전과정과 부채 안에 표현된 디자인적 요소 와 유행 의복, 생활 속에서의 부분적 의사소통 기능 등을 살펴봄으로써 향후 본 논문이 디자인 계발의 한 자료로 활용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본 연구의 방법은 서양복식문화와 복식역사 관련 서적, 패션변천과 부채 관련서적, 패션 액 세서리 관련서적, 웹사이트 자료를 바탕으로 한 이론적 고찰을 토대로 하였으며, 각 문헌의 사 진자료 및 영국 부채 박물관 서적의 그림 자료 에 나타난 부채의 특징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시대적인 분류기준은 복식관련 여러 문헌에서 장신구인 부채에 관한 실증적인 자료가 제시됨 으로써 본격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시기인 16세 기부터 부채가 거의 사라지기 시작한 19세기 이 전, 즉, 18세기까지 분류하였으며, 특히 부채가 성행하였던 유럽을 중심으로 각 시대마다 부채 가 지니는 기능과 형태별 분류에 따른 다양한 유형과 특징들에 대해 고찰하였다.

Ⅲ. 부채의 의미와 기능

부채는 순수한 우리말로 영어의 ‘fan'을 지칭 하는데, 사전적 의미는 손에 쥐고 흔들어서 바 람을 일으키는 제구(諸具) 또는 바람을 일으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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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이집트 부채 기원전 1840년경 (출처: 서양복식의 역사,(p.49) 조진애 외, 2001, 서울:경춘사.)

<그림 2> 아시리아 부채 기원전 7세기경 (출처: 서양복식의 역사,(p.73) 조진애 외, 2001, 서울:경춘사.)

<그림 3> 고대 그리스 타나그라 인형의 부채

기원전 4∼3세기 (출처: http://en.wikipedia.org)

<그림 4>이집트 플레벨럼 뉴욕국립도서관 사진모음 (출처: http://en.wikipedia.org)1868

더위를 덜거나 불을 일으키는데 쓰는 물건으로 정의된다(한글학회, 1992). 부채의 종류는 형태 에 따라 크게 비단이나 종이로 둥글게 만든 둥 글부채인 단선(團扇), 접었다 폈다 하는 접는 부 채인 접선(接扇)으로 나눌 수 있으며, 재질에 따 라 깃털로 만든 우선(羽扇), 대나무로 만든 죽선

(竹扇), 종이로 만든 지선(紙扇)(저우위치, 2006),

접부채를 변형한 브리제 부채, 둥글부채를 변형 한 깃발부채 등 어떤 소재와 방법으로 만들었는 지에 따라 그 종류가 다양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부채는 새의 깃털을 손 잡이 끝에 방사상으로 고정시킨 깃털부채로서,

기원전 1300년경 고대 이집트의 18왕조 12대 파

라오인 투탕카멘의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부조 에 묘사된 것이다. 왕의 부채를 드는 사람은 가 장 가까운 친구 중에서 선택되었으며, 보통은 왕족이었다. 부채에는 두 종류가 있었는데 하나 는 깃털을 긴 장대에 높이 단 것으로, 이것은 계 급의 표시였으며, 왕과 상류귀족계층에서 사용 하였고 다른 하나는 타조 깃털로 된 반원형으로 왕족의 행렬에 이용되었는데 태양열과 곤충을 막아주기도 하였다(조진애, 손희정, 2001) (그림 1).

고대 메소포타미아 아시리아 복식의 장신구 에서도 왕의 부채를 들고 있는 사람의 모습에서 부채를 발견할 수 있으며, <그림 2> 또한 고고 학 유적과 고대의 원문을 보면 BC 4세기이후부 터 고대 그리스에서 부채가 사용되었음을 시사 하고 있다(그림 3).

중세시기까지 유럽에는 부채가 없었으며, 럽의 기독교 교회에서, 초기 부채는 BC 6세기까 지 종교적인 의식에 사용된 것으로 기다란 손잡

이에 흰 깃털을 입힌 부채꼴 모양의 기구인 플 레벨럼(flabellum)만이 존재하였다. 이는 13세기 까지도 사용되지는 못했으며, 다만 그리스 정교 회와 에티오피아 교회에서만이 계속적으로 사 용되었다. 플레벨럼은 깃털이외에도 금속, 가죽, 실크, 양피지등으로 만들어졌으며, 카톨릭 종교 의식 때 신성한 빵과 포도주에 곤충들이 덤비지 못하도록 부치는데 사용되었는데, 이 기구는 날 짜를 고대 이집트 시대로 되돌려 투탕카멘의 피 라미드의 부조에 묘사된 부채를 다시 보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Catholic Encyclopedia,

1913)(그림 4). 이후 15세기에 포르투갈 상인들

이 중국과 일본에서 유럽으로 부채를 들여왔으

16세기 이후부터 부채는 유럽 귀족들에게 인

기 있는 액세서리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특히 루이 14세 때에는 중국으로부터 우수한 부채 제 조 기술이 받아들여지면서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체로 퍼져나갔다(저우위치, 2006).

17, 18세기 이후 유럽에서는 부채가 신분과 권위의 상징이었으며, 귀족 여인들에게는 없어 서는 안 될 장식품이자 사랑을 전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였다. 서양에서 부채 장식의 양(量)과 양식은 유럽의 유행에 따라 달라졌는데, 17세기 벽화를 소규모로 복제한 장식이 있는가 하면 바 깥쪽 부챗살을 단순하게 만든 주름 부채도 있었다.

수세기 동안 부채는 단순한 디자인에서부터 섬세하게 디자인된 것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필수적인 의복 액세서리였으며, 동일한 의복에 부채와 같은 액세서리의 변화만으로도 다른 분 위기의 이미지 연출이 가능하였다(이승아 외,

2010). 또한 남녀 간의 신중한 사회적 교류를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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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하는 도구로 작용해 왔고, 경박한 욕망에서부 터 철학적 이미지를 담고 있는 헌신적인 사랑에 이르기까지 정서 교류에 힘을 얻을 수 있는 의 사소통의 도구로 작용해 왔다.

또한, 앞서 서양을 기준으로 부채의 기능들을 살펴보았는데, 서양에서뿐만 아니라 부채의 역 사가 오래된 동양의 중국에서도 또 다른 기능들 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의약과 관련한 것으로 부채를 태워 약으로 조제해 복용하면 식은땀을 가시게 하고 부인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였으 며, 부채를 빌어 청풍을 비유하면서 관리들의 청렴결백을 장려하는 것이 상례가 되어 있고, 부채를 선물해 사랑을 맹세하고 사랑의 증표로 사용한다고 되어 있다(저우위치, 2006). 특히 동 양에서 부채 제작 기술이나 예술품으로서의 다 양한 부채들이 유럽으로 전파된 이후에 서양의 부채문화는 동양의 부채문화처럼 물질과 정신 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과 귀족층 여인들을 중 심으로 한 심미적인 기능이 더욱더 뚜렷해졌다.

Ⅳ. 부채의 시대별 유형 및 특성

부채는 인간 생활 발전에 따른 물질적인 산물 의 하나로 한 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졌고 발전되었다. 서양의 복식사에 서 부채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16세기 는 유럽의 역사가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중 간시기로, 로마가 멸망한 후, 스페인이 유럽의 가장 강력한 세력의 중심이 되었다가 영국에 멸 망하면서 영국과 프랑스로 중심 세력이 옮겨간 시기이다. 따라서 서양 복식의 유행 역시 문화 의 중심인 나라들을 선두로 그 흐름이 전개되었 으며, 복식의 일부인 액세서리들 또한 각 시대 마다 유행한 의복의 형태나 소재, 칼라 등의 특 징적인 부분들을 기준으로 디자인되었다. 이들 액세서리 중 부채도 15세기를 시작으로 스페인 과 인접한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동양의 부채 가 유입되면서 16세기 중반에 본격적으로 제작 되고 사용되기 시작했다.

17세기 바로크시대에 이르러 전기에는 상업 과 무역의 중심지인 네덜란드로, 후기에는 프랑 스로 문화의 중심이 옮겨가는데, 18세기에 로코

코양식 자체가 프랑스에서 일어난 예술 사조이 므로 프랑스를 문화의 중심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으나, 이전 세기부터 프랑스는 유럽 귀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유행의 중심이 되었기 때 문에 그 영향은 프랑스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김영옥, 안수경, 2008). 17세기에 프랑스의 대표

적인 패션 리더였던 마리 드 메디치(Marie de

Medici)와 루이 14세(Louis XIV)의 복장은 17세

기의 복식을 대표하였으며(정흥숙, 2005), 특히 루이 14세가 중국의 부채 제조기술을 들여온 것 은 유럽 전역으로 부채가 확산되고 인기를 끌게 된 획기적인 일이었다.

17∼18세기의 부채는 보다 더 다채로운 발전 과 변화를 보였으며, 그 성격 또한 생활용품에 서 예술품으로 이행하면서 단순하게 시원한 바 람을 일으켜주는 물품을 넘어 정신적인 교류의 수단으로 진일보했다.

본 장에서는 서양에서 부채가 본격적으로 등 장하기 시작한 16세기부터 절정에 이르는 18세 기까지 유행했던 복식의 흐름에 부합한 의복과 부채의 상관관계와 그 시기 제작된 부채의 다양 한 유형과 특성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단, 16세 기에는 부채 자체의 실증적 자료가 미비한 관계로 의복과 함께 보여지는 부채에 관해서 다루었다.

1. 16세기: 사회적 신분 과시의 수단

16세기 후기 르네상스시대의 복식의 특징은 왕족과 귀족계층의 의복에 진짜 보석을 붙여서 무늬를 만들 정도로 과도하게 장식을 한 점이 며, 남녀 모두 정교하게 세공된 굵은 사슬형태 의 목걸이나 커다란 보석이 박힌 펜던트, 귀고 리, 팔찌, 반지 등을 상류계층에서 즐겨 사용하 였고, 손에는 장갑, 부채, 손수건 등을 멋있는 자세로 들고 다니는 것이 유행하였다(신상옥, 2009).

또한 이 시기 자신을 독보적으로 보이기 위해 자신 이하의 모든 여성들에게 의복 규범을 공포 하였던 엘리자베스 1세는 화려하고 장식적인 의 상을 선보였는데,(게르트루트 레네르트, 2005).

이는 의복을 통한 사회적 신분 과시 현상으로 볼 수 있으며, 복식에 있어서 이처럼 시대적 분 위기를 반영하는 의복과 함께 복식의 또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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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접부채, 16C후반 (출처: 서양의 복식 문화와 역사,(p.165)

고애란, 2008, 서울: 교문사.)

<그림 6> 깃털부채, 16C후반 (출처: 서양의 복식 문화사, (p.180)

정흥숙. 1997, 서울: 교문사.)

<그림 7> 둥글부채, 16C후반 (출처: 서양 복식사, (p.158) 신상옥. 2006, 서울: 수학사.)

일부인 부채 역시 장식적이고 실용적인 용도이 외에도 여왕이나 귀부인들의 신분 과시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위

16세기의 부채는 타조나 공작의 털, 양털,

넨, 실크 등의 고급스러운 재료를 사용하여 제 작되었으며, 허리 벨트에 매달고 다니기도 하였 는데 둥근 모양과 접는 형태의 부채가 있었으 며, 상아 손잡이나 보석을 박아 장식하기도 하 였다(조진애, 손희정, 2001).

16세기 부채가 의복과 함께 사회적 신분을 과 시하는 수단이었다는 증거를 <그림 5-7>에서 찾 아볼 수 있었다.

<그림 5>는 16세기 후반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초상화로 후기 르네상스시대의 유행 복식과 함께 볼 수 있는 부채이다. 의복의 형태 는 코르셋을 입어 허리부분이 더욱 가늘고 축소 되어 보이며, 스커트 부분은 프랑스식 휠 파팅 게일(wheel farthingale)에 의한 원통형으로 확대 되어 나타나고 있다. 레이스로 여러 겹 된 부채 형의 러프칼라와 레그 오브 머튼(leg-of-mutton) 소매로 어깨부분을 강조하고 있으며, 우아한 로 브는 연속적인 X자선으로 구성되어 있고, 차분 하고 연한 색상이 과장된 형태의 의복 안에서 평온한 느낌을 주고 있다. 한 손에는 장갑을 다 른 한 손에는 허리끈에 매단 접부채를 들고 있 는데, 연결된 끈으로 인해 의복과 단절되지 않 고 자연스럽게 의복의 일부로 보여 지는 효과를 주고 있다. 접혀진 부채의 형태가 부채형 러프 칼라의 한 구획처럼 보이고, 색상은 로브에 나 열되어 있는 무늬의 색상과 유사한 붉은 계열의 색을 띠면서 전체적으로 유사색의 조화를 이루

고 있다.

<그림 5>에서 부채는 여왕의 이미지에 부합

할 수 있도록 근엄해 보이면서도 패셔너블한 의 복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패션액세서리의 역할 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그림 6>은 16세기 후반 영국의 활 동적인 화가였던 윌리엄 라킨(William Larkin)이 그린 메리 커즌(Mary Curzon)의 초상화이다. 대한 러프칼라는 끝부분의 형태가 여러 겹의 레 이스로 되어 마치 공작새의 깃털과 같고, 꽉 끼 는 긴 소매 끝부분에는 러프 칼라와 같은 소재 로 장식된 소매 커프스를 댔으며, 코르셋으로 V 자형 허리선을 강조하고, 그 위에 스토마커

(stomacher)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원통형 스커

트 위에 같은 소재의 넓은 러플 스커트를 덧입 어 스커트의 실루엣을 강조하였고, 이 시기에는 스커트길이가 짧아져서 신발의 장식들을 볼 수 있는데, 낮은 굽에 앞 코가 약간 뾰족하고 발등 은 꽃모양의 장식으로 되어 있다.

소매 부분을 제외한 의복 전체는 평평함을 지 탱하는 고요함과 안정감을 지닌 일정한 간격의 수평선들이 들어가 있고, 스토마커 중심부분과 로브의 스커트 트임에 의한 앞 중심 부분에 힘 의 중력을 느끼게 하는 수직선들이 들어가 있 다. 수직・수평의 성질이 다른 두 가지 선들이 만나면서, 의복 전체의 분위기는 밝고 부드러운 색상에서 오는 은은함과 로제트무늬의 화려함 속에서 절대적이고 확고한 균형감각을 조성하 고 있다.

한 손에 고리로 된 여러 개의 팔찌를 하고 있 으며, 다른 손에는 양털로 만든 부드럽고 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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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에 짧은 손잡이가 달린 부채를 들고 있는 데, 이 부채는 둥글부채의 형태를 변형시킨 후, 여러 장으로 만들어 겹쳐 새의 깃털처럼 변형시 킨 깃털부채로 볼 수 있다. 부채의 전체적인 색 상은 의복 전체의 색상과 동일한 아이보리색이 며, 소재는 양털로 되어 있는데, 부채의 따뜻하 고 부드러운 소재와 의복의 광택 나는 차가운 실크소재 사이에서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여기 서 부채와 의복의 동일색상은 전체적인 분위기 에 완결된 하나의 통일성을 주게 되고, 상반된 소재는 변화의 요소로 작용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림 6>에서의 부채는 의복의 일부로 보이

는 액세서리의 기본적인 기능을 넘어서서 자칫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화려하고 사치스 럽게만 보일 수 있는 의복 전체의 분위기를 차 분함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포인트로서의 역할 을 하고 있다.

끝으로 <그림 7>은 엘리자베스1세 여왕의 또

다른 복식의 형태를 볼 수 있는 16세기 후반의 초상화이다. <그림 7>의 의복은 인위적으로 인 체를 강조하고 있는데, 예각을 이루는 바디스는 허리선 아래로 내려와 허리부분을 더욱더 가늘 게 보이게 하고, 원통형으로 부풀려진 스커트실 루엣은 과장된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스토마커 끝부분부터 나비형태의 러프 칼라가 연결되면 서 시선을 위쪽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스토마커 와 스커트 부분의 소재는 실크로 의복의 고급스 러움과 화려함을 주고 그 안에 자수를 놓은 동・

식물 문양은 자연의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매끝부분은 러프칼라와 동일한 레이스로 장식 하였으며, 의복 전체를 화려한 자수와 보석으로 장식하여 우아하고 기품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 고 있다. 여기에 머리 장식, 장갑, 부채의 손잡 이부분까지도 과도한 보석들로 장식하고 있다.

부채의 형태는 둥근 모양의 둥글부채이며 색 상이 밝은 단색의 광택 나는 리넨위에 화려한 레이스로 장식을 하였다. 손잡이 부분을 금으로 만들었으며 그 위에 보석을 박아 장식하였는데 부채의 화려한 느낌이 의복에서의 화려함과 동 일시되고 있다.

<그림 7>에서의 부채는 의복과 유사한 소재

로 화려한 액세서리로서의 기능이 강조되며 여

왕의 당당하고 멋진 자세를 더욱더 돋보이게 해 준다. 반면 부채의 둥근 형태감은 지나치게 뾰 족하고 가늘게 강조된 의복의 허리선과 여왕이 지닌 세련되지만 차가운 이미지에서 나오는 날 카로움을 다소 부드럽게 융화시켜주고 있다.

위의 고찰을 토대로 16세기의 부채는 당시 최 고 권력자인 왕족과 귀족계층 여인들의 호화로 운 패션과 함께 초상화 안에서 그 모습을 나타 내기 시작했다. 이 때 부채의 여러 형태들은 다 양한 소재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으며, 그 자 체가 강조되었다기보다는 여왕이나 귀족 여인 들의 절대적 신분과 권위의 아름다움을 나타내 는 화려한 장식의 의복 즉, 패션을 완벽하게 코 디네이션 해주는 상징과 장식적 조화의 기능이 컸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2. 17세기: 형식의 다양화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복식은 르네상스 예술 의 특징인 조화와 균형에 의한 아름다움을 의도 적으로 배제하고 동적이고 부조화된 의복 장식 과, 다채롭고 환상적인 복식소재를 사용하고 유 동적 분위기를 나타내었으며, 액세서리는 특히 화려하게 세공된 보석류를 과다하게 사용하는 등 실용과 장식을 목적으로 하는 다양한 형태들 이 등장하게 되었다(고애란, 2008).

부채 역시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여 화려한 장식으로 제작되었는데, 은으로 만든 손잡이가 달린 깃털부채나 접부채가 있었으며, 접부채를 겨울에 들고 다닌 점으로 보아 장식품과 귀한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는 과시의 한 수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신상옥, 2009). 이처럼 장식적인 성격을 띤 부채는 때로 머프와 동시에 들고 있 는 경우도 있었으며, 정장을 입었을 경우에는 반드시 부채를 들었다(Anderson,,Garland, 1997).

그 밖에도 주름진 연결구조 없이 화려하게 장식 된 스틱으로만 구성된 접부채 형식의 브리제 부 채가 등장함으로써 세공 기술의 발전이 부채의 다양성에 기여한 시기로 보인다.

17세기의 부채의 그림들은 일반적으로 가죽 에 불투명 수채물감인 과슈(gouache)로 채색을 하였는데, 내용에 있어서 어떤 부채는 고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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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 신화에 대한 관심으로 만들어진 반면 또 다른 부채는 전쟁과 혁명의 역사에 대한 관심으 로 제작되기도 하였다(Hart, Taylor, 1998). 그림 으로 묘사된 부채를 살펴보면,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를 주제로 다룬 장면들에서 여러 신들과 함께 인간의 모습들도 같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때 등장하는 여성들이 입고 있는 드레스는 그 시기 패션의 유행 경향을 반영한 것들이었다.

1) 깃털부채(타원형 깃털부채)

<그림 8> 둥근 깃털부채, 17C초반 (출처: 서양 복식의

역사, (p.277) 조진애 외, 2001, 서울: 경춘사.)

<그림 9> 타원형 깃털부채, 17C중반 (출처: 서양의 복식

문화와 역사, (p.194) 고애란, 2008, 서울: 교문사.)

<그림 8>은 17세기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

가는 시기의 독일의 막달레나 실비아 공주의 초 상화이다. 17세기 초반에 유행했던 옆으로 부풀 려져서 흐트러진 단발머리형태인 헐루벌루

(hulubulu) 헤어스타일에 아래로 내려왔던 허리

선이 제자리로 올라가면서 의복은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실루엣을 형성하고 있다. 깊고 넓게 파인 네크라인과 붉은색 꽃 모양 리본이 달린 허리벨트, 또, 소매의 중앙부분을 허리벨트의 장 식과 같은 리본으로 묶어주었으며, 소매끝부분 은 여러 겹 레이스로 장식된 커프스를 달았다.

부채는 작고 동그란 형태의 가벼운 깃털부채 로 손잡이는 은으로 만들어졌으며, 가운데를 리 본장식으로 묶어줌으로써 위아래로 두 개의 동 그란 형태가 생겨난 짧은 길이의 퍼프소매와 함 께 귀엽고 사랑스런 이미지를 더해주고 있다.

부채를 쥐고 있는 인물의 포즈에서 앞쪽으로 향 하는 방향성과 이로 인해 얼굴과 소매, 부채사 이에 자연스럽게 삼각형 구도가 생겨나 보는 이

로 하여금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해준다.

소매 가운데부분과 허리의 리본장식들은 인물 의 옆으로 부풀린 헤어스타일과 소매를 비롯해 자칫 전체적으로 밋밋하면서 단순하게 부풀린 볼륨감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에 포인트가 되고 있다.

깃털부채의 색상은 로브의 스커트 색상과 같 은 저채도의 붉은 색이며, 동그란 형태는 인물 의 이미지는 물론 볼륨감 있는 의복 전체와도 조화를 잘 이루고 있으므로, <그림 8>에서의 부 채는 의복의 완벽한 코디네이션을 위한 액세서 리로서의 기본적인 기능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림 9>는 17세기 중반 젊은 여성의 초상화

로 어깨가 드러나도록 넓게 파인 보트네크라인 의 가운 위에 장식적 소재의 얇은 천으로 만든 파틀렛 두르고 있으며, 로브의 스커트는 앞 중 심선을 금선으로 장식한 언더스커트가 보이도 록 위로 잡아 묶었다. 또 바디스가 다시 타이트 해지고 스토마커의 끝도 초반의 부드러운 선에 서 다시 뾰족해지면서 예각의 허리선이 나타나 는 것을 볼 수 있다.

부채는 짧은 손잡이가 달린 부드러운 타원형 의 깃털부채이며, 외곽부분은 머리띠 장식과 같 은 코랄색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이 타 원형태의 부채는 동그란 형태의 부채가 가지는 안정성의 성질을 포함하면서 동시에 운동감과 방향성을 지니고 있으며 위에서 보았을 때 어깨 를 감싸는 얇은 파틀렛의 가로로 긴 타원형과도 유사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의복의 요란하지 않은 실루엣과 절제되어 사 용된 색상들은 전체적으로 차분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여기에 언더 스커트의 앞 중심선과 밑 단의 금선, 파틀렛 중심의 보석장식과 머리장식, 그리고 의복의 실루엣 및 인물이 착용한 다른 액세서리와의 자연스런 조화를 이루는 부채가 포인트가 되어 인물의 이미지를 더욱더 우아하 고 여성스런 분위기로 자아내게 하고 있다.

2) 접부채

<그림 10>은 17세기 중반 접부채로 부채 면

‘알렉산더 대왕의 승리’를 바로크 양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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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부채의 그림은 루

14세 때, 프랑스 화가 르 브룅(Charles Le

Brun)에 의해 1661년에서 1668년 사이에 제작된

“the History of Alexander”의 다섯 그림 중 하나 이다.

<그림 10> 접부채, 프랑스, 17C중반 (출처: FANS, (p.23) Hart&Taylor, 1998, V&A Publications.)

부채의 그림은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르 브룅 의 원작을 복제하였으며, 일련의 장면들을 살짝 이동시킴으로써 부채면의 구부러진 모양에 맞 게 솜씨 좋게 조성하였고, 알렉산더의 전차 앞 중앙 전경에는 완전히 새로운 그룹을 도입하였 으며, 강한 코발트블루를 이용하여 색채의 밸런 스에 변화를 주었다. 알렉산더의 망토와 헬멧은 금빛이며 승리의 상징인 월계수 환을 쓰고 있는 데 반해, 부채에서는 헬멧이 붉은 깃털로 장식 되어 있다. 가죽에 과슈화법을 사용하였으며 상 아색 스틱, 은빛 피케(piqué)에 장식하였다.

<그림 11> 중류계급 및 귀족계급 여성의 의상과 접부채, 17C후반 (출처: 서양 패션의 역사, (p.133)

James Laver, 정인희 역 2005, 시공사.)

<그림 11>은 17세기 후반 귀족 및 중류계급

여성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인데, 귀족 계급의 여성의 복식은 많은 양의 레이스로 의상 가장자

리를 두르고 있으며 화려한 머리장식인 퐁당주

(fontange) 역시 레이스로 되어있다. 스커트는 가

운데 자락을 뒤 중심으로 끌어올려 버슬스타일 을 만들었으며 뒷자락을 길게 늘어뜨렸다. 중류 계급 여성의 복식은 귀족계급 여성의 복식에서 전체적인 형태가 간소화되었을 뿐, 디자인적인 요소들이 대부분 차용되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접부채는 이 시기 여성들에게 상당히 호응을 얻었으며, <그림 11>에서처럼 이 시기 초상화를 통해 중류계급의 여성들과 귀족계급의 화려한 복식 차림을 한 대부분의 여성들에게서 접혀지 거나 혹은 펼쳐진 형태의 부채를 들고 있는 모 습을 흔희 발견할 수 있다.

커다랗게 펼쳐진 부채를 보면, 일률적인 선들 에서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닌 연속적으로 움직이 는 효과를 느끼게 되며, 연속적인 선들은 왼쪽 에서 오른쪽 혹은 반대 방향으로의 방향성까지 도 가지게 된다. 이는 하나의 선이 운동성을 내 포한다는 것의 표현으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그림 11>의 의복 레이스의 곧고 수직적인 선들 역시 정적이며 정지되어 있는 듯 하지만 그 안 에 선들의 움직이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 을 지각하게 된다. 단, 이 초상화에서의 부채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복, 머리장식과 일치를 이루 고 잘 어울리는 장식적인 액세서리지만, 부채 자체가 지닌 선들의 표현적인 힘들이 의복의 선 들이 주는 것과 공통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초상화를 볼 때, 시각적으로 더욱더 매 치가 잘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3) 브리제 부채

<그림 12>는 17세기 초반 브리제 부채로 브

리제는 주름진 연결구조 없이 몇 개의 장식된 스틱들로만 구성된 변형된 접부채의 일종이다.

<그림 12>는 V&A 컬렉션에서 보여지는 가장

이른 시기의 부채로서 이탈리아의 브리제 부채 이다. 이 부채는 7개의 스틱으로 구성되어 있으 며 각각의 스틱은 컬 모양의 타조 깃털 형태를 띄고 있으며, 깃털 형태들은 딱딱한 회색의 판 지를 가는 금속 막대나 철사로 보강한 후 녹색 의 실크로 양면을 감쌌으며 각각의 면들은 담황 색의 아플리케로 장식하였다. 스틱은 녹색의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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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본으로 연결돼있고 이로 인해 부채를 펼쳤 을 때 각각의 스틱들이 겹쳐서 부채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깃털모양의 손 병풍은 16세기부터 17세기 초반에 가장 유행하는 부채의 한 형태로 서 이들 브리제 부채는 아마도 접이식 깃털부채 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V&A 렉션의 이 부채와 유사한 형태는 1660년대 이탈 리아 화가 지롤라모 포라보스코(Girolamo Forabosco) 그린 몇몇 초상화에서 볼 수 있으며 뮌헨의 바바리안 국립박물관(Bavarian National Museum) 에서도 볼 수 있다.

<그림 12> 브리제 부채, 이탈리아, 17C초반 (출처: FANS, (p.12) Hart&Taylor, 1998, V&A

Publications.)

<그림 13> 브리제 부채, 프랑스, 17C후반 (출처: http://www.thefanmuseum.)

<그림 13>은 물감으로 채색을 하고 그 위에

옻칠을 한 상아색 브리제 부채로, 말을 탄 유럽 상인과 햇빛을 가려주기 위한 파라솔을 상인의 머리위에 들고 수행하는 하인, 그리고 그들을 앞서서 뛰어가는 강아지와 그런 모습들을 떨어 져서 바라보는 중국 신사의 모습이 붉은 선의 타원형 안에 그려져 있다. 타원형안의 그림 아 래로는 또 다른 작은 타원형의 연못 안에서 잉 어와 바다가재가 헤엄치고 있고, 양 옆으로 원 안에 시조새가 그려져 있으며, 또 이 그림들 아

래 새들과 나비 그리고 만개한 자두 꽃이 그려 져 있다.

중국에서 유럽으로 수출된 이 부채는 중국적 인 문양과 색채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부채에 표현된 내용을 보면 이 시기 유럽과 중국의 무 역에 따른 활발한 교류가 시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본 연구를 통해 17세기의 부채는 16세기보다 훨씬 더 다양한 형식을 보이며 내용에 있어서도 이 시기 문화와 사회적 교류를 반영한 부채들이 등장하면서 귀족계급의 여성들뿐만 아니라 중 류계급의 여성들에게까지도 폭 넓게 사용되었 으며, 이전의 신분과시에 따른 역할보다는 여성 들 사이에 유행한 늘 손에 지니고 다녔던 인기 있는 패션요소로서의 필요성이 강했던 장식용 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 유행을 선도하면서 대중에게 영향을 미쳤던 소수 상류 층의 패셔너블한 여성들의 의복과 함께 부채 역 시 중류층이나 일하는 여성들의 패션에도 전파 되면서 멋을 내는 용도가 보다 더 강조되어 사 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3. 18세기: 다양한 부채의 대중적 보급과 대화 기능의 발전

18세기 로코코시대의 복식은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남성적이고 장중한 복식의 분위기와 달 리 여성 중심의 우아하고 낭만적이며 섬세한 분 위기라고 할 수 있으며, 장식요소로 레이스와 리본, 꽃을 주로 사용하였다. 이 시기 사람들은 인간의 내재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려했으 며 안락함보다는 예술에 대한 욕구가 높아서 작 은 일용품까지 예술품으로 만들었으며 작은 살 롱의 쾌적하고 친밀한 사적 공간을 아름답게 치 장하는데 공을 들였다(고애란, 2008). 또 프랑스 의 귀족 계급은 상류 사교계를 이루어 독특한 생활과 정신과 관습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것이 이루어지는 장소의 하나가 살롱이었으며, 살롱 은 르네상스시기에 생겨나 20세기에 와서 사멸 할 때까지 유럽적 정신을 상징함과 동시에 줄곧 여성 해방의 시험 무대이기도 했다(Rynsch, 1999).

살롱문화의 출발점은 여성으로, 살롱 여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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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석과 같은 힘을 발휘하는 정신과 기지를 지닌 부유한 여성을 말하며 옅은 관능적 색조가 흘러 드는 세련된 분위기를 만들고 즐거운 대화를 이 끌어내며 대립은 완화해주고 영혼의 편안함과 정신적 감동을 만들어낸다(Rynsch, 1999). 이 같 은 대화방법 중 하나가 ‘부채 언어(The language of the fan)’였는데, Hart & Taylor(1998)는 “부채

18세기 전반에 걸쳐 연애와 연관되었고,

가들은 부채를 든 여인에 의해 전달되는 것으로 추측되는 ‘언어’ 또는 비밀스런 메시지를 종종 언급하였다. 사람들이 어떤 대단히 복잡한 암호 에 동의하거나, 그런 암호가 연인에게 전달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부채가 남성을 유혹하는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 [중략] ... 그것(=

부채)이 있으면, 멋진 여인은 경멸, 사랑, 무관 심, 격려 등을 표현할 수 있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18세기 부채의 제작과 디자인은 새로운 수준 의 완성도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부채 관련 산업에 있어서도 번성을 이끌었다. 이 시기에는 모든 여성들이 부채를 가져야만 했고 간단하게 는 단지 영화 관람을 위해서 값이 싼 부채에서 부터 시작하여 몇 백 파운드의 값어치에 이르는 보석 장식을 한 우아하고 예술적인 값 비싼 부 채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Hart, Taylor, 1998).

또한 18세기에 이르러 부채는 유례없이 화려한

형태를 띠기 시작하여 가히 예술의 경지에 다다 랐다고 할 수 있었다. 고급스런 견 바탕 위에 훌 륭한 터치로 풍경과 인물이 묘사되었으며, 당대 최고의 대 화가들이 화필을 들고 부채를 캔버스 삼아 그린 것이기에 훌륭한 작품이 나온 것은 당연한 것이며, 화가들에게 있어서도 예술의 새 로운 표현영역을 개척하게 된 것이다(라사라교 육개발원, 2000).

1) 접부채

<그림 14>는 프랑스 화가인 와토(Antoine Watteau) 의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여 유래된 와토 주름이 특징인 로브 아 라 볼랑(robe a la volante)을 입 은 여성의 뒷모습으로 뒷목둘레와 어깨에서 시 작된 주름이 바닥까지 닿을 정도로 길게 늘어져

완만하게 퍼져 있다. 호화로운 중국 실크와 브 로케이드 소재, 짙은 네이비 색상위에 디자인의 과감함을 볼 수 있는 붉은 색의 커다란 꽃 모양 의 자수는 드레스의 풍성함과 여유로움을 살려 더욱 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그림 14> 접부채, 18C초반 (출처: 패션의 변천사 2, (p.52) 라사라교육개발원,

2000, ㈜라사라패션정보)

얼굴을 가릴 정도의 높이에서 펼쳐진 접부채 역시 로브와 동일 색상을 띠고 있는데 이때의 부채의 역할은 귀족 여성들이 자신의 얼굴의 표 정을 드러내지 않고 공기를 순환시키기 위한 필 수품으로서 반드시 지니고 다녔던 액세서리였 다. 앉아 있는 여성을 보면 로브 아 라 볼랑의 앞모습을 잘 볼 수 있으며, <그림 14>에 등장한 여성들의 움직임과 포즈를 보면 부채가 이 시기 여성들에게 꼭 지녀야 할 과시용 장식품이라는 것을 한 눈에 지각할 수 있다. 또한 부채는 모든 의복들이 내포하고 있는 부분적인 요소와 동일 한 부분들 즉, 색상이나 소재나 혹은 표현된 이 미지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했을 때 의복과의 조 화를 잘 이루어 완성도를 높여주는 중요한 위치 의 액세서리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림 15>는 18세기 로코코후반의 대표적 로

브인 로브 아 라 폴로네즈(robe a la polonaise)를 착용한 프랑스 여성의 모습이다. 상의와 소매모 두 타이트하며 소매 끝은 레이스로 장식되어 있 고, 좁아진 스커트 폭이 여성의 활동성을 보다 더 간편하게 해주고 있는 가운데 오버 스커트자 락을 걷어 올려 생긴 드레이프가 의복의 우아함 을 더욱더 증가시켜주고 있다. 광택 나는 그린 색 실크 타프타 소재로 된 오버스커트는 동양의 식물문양을 모티브로 자수가 놓여 있으며, 속에 입는 언더스커트는 누빈 실크새틴으로 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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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5> 접부채, 18C후반 (출처: FASHION, (p.80) Fukai외 (2002). Fashion, Koln ; London:

Taschen.)

<그림 16> 접부채. 이탈리아 18C초반 (출처: FANS,(p.21) Hart&Taylor, 1998, V&A Publications.)

<그림 17> 접부채, 프랑스,18C중반 (출처: FANS, (p.31) Hart&Taylor, 1998, V&A Publications)

다. 여성은 오른손에 그린 색 리본장식을 매단 지팡이를 들고 있으며, 왼손에는 블루그린색상 의 실크 천에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담은 접는 부채를 들고 있다. 여기서의 부채는 의복과 소 재, 색상을 거의 일치시켜줌으로써 의복과 연장 선상에 있는 액세서리이며, 이 시기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목가적 풍경을 담은 예술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그림 16>의 부채는 18세기 초반 거북등껍질

소재의 스틱으로 만들어진 부채로서 비너스와 아도니스를 주제로 한 그림인데 섬세한 점묘기 법으로 가죽에 수채화로 그려졌으며 ‘ Leonardo

Germo of Rome' 라고 서명되어 있다. 이 시기

가장 두드러진 부채 그림 중 일부는 고대신화에 서 영감을 받은 것들인데 미세화가의 채색기법 은 이 시대 가장 섬세한 이탈리아 부채그림의 특징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림 17>은 18세기 중반 프랑스의 접부채로

송아지 피지에 그린 과슈화로서 그림이 그려진 부분들 사이에 코튼 망을 끼워 넣었고, 상아색 스틱에 조각을 하였으며 마디를 갖고 있다. 부채는 정성들여 장식되어 있으며, 중앙에 있는 장면은 로코코 시대의 화가인 부셰(Boucher), 라고나르(Fragonard)와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준 다. 중앙 화면의 복잡스런 정원에 앉아있으며, 주어진 공간에서의 제한된 모습이지만 아치모 양의 장미격자 울타리, 호수, 벽과 소녀들이 앉 은 돌 벤치를 볼 수 있다. 그림의 주제는 낭만과 목가적 분위기로 두 소녀 중 한 소녀는 손에 농

기구인 고무래를 들고 있으며, 두 소녀가 함께 정원에서 일을 쉬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고, 녀들 위쪽에서는 큐피트가 사랑의 화살을 겨누 고 있는 모습이다. 둥글고 건강미 넘치는 소녀 들의 얼굴과 밝은 색의 흐르는 듯한 느낌의 드 레스는 전형적인 루이 15세 스타일이며, 호화롭 게 그려진 선홍초, 물망초, 장미, 카네이션이 양 측 판넬에 되풀이되어 나타나고 있다. 또 그림 그려진 종이기둥으로 경계를 이룬 망이 판넬에 여럿 나타나는데, 이는 18세기중반에 유행하던 테크닉이기도 하다.

또한 이 부채는 관절과 같이 이어져있는 스틱 으로 인해서 위아래로 움직일 때, 놋쇠 핀이 세 명의 숙녀와 세 명의 신사들의 얼굴만 나와 있 는 그림들을 작은 창을 통해 나타나게 해주고 있다. 이와 같은 재미난 트릭은 이 시대 부채에 서 흔히 발견할 수 있으며 친숙한 모습을 제공 해주었다.

<그림 18>은 18세기 후반 종이에 그린 과슈

화로서, 식물 문양을 투각한 상아색의 스틱으로 만들어져 있는 영국 또는 독일에서 만들어진 부 채이다. 중국양식에 대한 가장 숙련된 모습을 갖춘 작은 부채로서, 부채의 면은 세 개의 개별 적 장면으로 나누어져 있고, 중국 그림을 상당 히 정교하게 복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얼 굴모습은 아주 정확하게 그리려 하지는 않았으 며, 양식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망원경 그림부분 을 보면 유럽식 표현방법을 사용하고 있음을 나 타내주고 있다. 하지만 식물문양을 새겨 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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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9> 접는 부채, 프랑스, 18C중반 (출처: FASHION,(p.107) Fukai외 (2002).

Fashion, Koln ; London: Taschen.)

<그림 20> 접는 부채, 영국, 18C중반

(출처: http://www.thefanmuseum.) <그림 21> 접는 부채, 프랑스, 18C후반 (출처: FANS,(p.54) Hart&Taylor, 1998, V&A

Publications.)

투각한 상아색의 스틱은 전적으로 중국 기원의 것으로, 이처럼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부채스틱 에 후에 유럽의 부채 제작자가 부채 면을 완성 하여 첨가하는 일이 흔했으며 이는 유럽인들의 새로운 물건에 대한 욕구를 크게 충족시켜 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그림 18> 접부채, 프랑스, 18C후반

(출처: FANS, (p.46). Hart&Taylor, 1998, V&A Publications.)

<그림 19>는 18세기 중반 독일에서 제작된 부채 로 실크 천위에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상아색 스 틱의 부분에는 식물의 잎이 투각되어 있다. 그림이 그려진 부분의 왼쪽에는 밝은 노란색이 오른쪽에 는 짙은 갈색이 배경색으로 되어 있는데 배경에는 과일과 나비, 새 등 동식물문양이 그려져 있다. 한 밝은 노란 색 배경의 육각형 안에는 바닷가근처 의 경치가 그려져 있고, 짙은 갈색 배경의 원 안에 는 바다에 돛단배가 떠 있는 풍경이 묘사되어 있 다. 이 부채는 한 화면 안에 밝고 어두운 배경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는데 이러한 시도는 마치 예술 작품에서 전체적인 문양과 내용이 유사할 때 자칫 지루해 보일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한 변화의 시도라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20>은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제작된

부채로 초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색상과 노을이 지는 배경 가운데 귀족계급이 아닌 중산

층으로 보이는 남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낚시를 하고 있는 남성과 피크닉 가방을 옆에 둔 여성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시기에는 부채에 프린트하는 기술이 발달됨으로 인해 좀 더 싼 값에 사람들이 부채를 구입할 수 있었다.

따라서 부채는 이전시기 보다 더 좀 더 대중적 일 수 있게 되었으며, 그림에서 보여지는 것처 럼 귀족계급이 아닌 중산층계급도 그림의 소재 로 등장하게 되었고, 부채도 대중적인 액세서리 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림 21>은 1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만들어

진 부채로서 실크에 과슈로 그림을 그리고 장식 용 금속편으로 수를 놓았으며, 스틱은 거북 등 껍질을 소재로 하였다.

부채 중앙의 삽화를 보면 새침한 젊은 여성이 의자 귀퉁이에 앉아있고, 그 옆에 엉성한 차림 의 체격이 큰 여성, 악수하는 신사들은 어떤 이 야기 거리를 암시하고 있다. 앉아있는 귀족 신 분의 신사가 파란색 옷을 입은 젊은이와 소녀의 결혼을 축하해주고 있으며, 중앙 삽화 양측에는 이 시기 유행했던 우아하고 세련된 드레스를 입 은 두 숙녀가 전원적인 공원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왼쪽에는 로브 아 랑글레즈(robe a langlaise) 착장한 여성이, 오른쪽에는 슈미즈 아 라 렌 느(chemise a la Reine)를 착장한 여성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러한 장면은 장 미하엘 모로 (Moreau le Jeune)에 의해 만들어진 동시대 유행 하는 의상의 판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부채의 실크와 장식용 금속편, 매우 잘 꾸 며진 상아 스틱은 장식용 금속편을 수놓은 실크 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18세기 후반의 전 형적인 모습의 부채라 할 수 있다.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