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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국토」에 독자 여러분의 원고를 보내주세요!
특집을 제외한 모든 컬럼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가지고 계시는 생각, 정보, 논문 등을 아래의 컬럼에 맞게 작성해 보내주세 요. 보내주신 소중한 원고는「국토」에 심의를 거쳐 게재하겠습니다. 원고가 채택된 분들께는 그 달치「국토」와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국토논단: 국토관련 분야의 연구논문, 정책제안(200자 원고지 50매 분량)
�해외리포트: 국토관련 분야의 정책에 대한 최신 해외 사례(200자 원고지 40매 분량)
�e-interview: 해외의 국토관련 이론가를 국내의 독자들에게 이메일로 인터뷰해 소개(200자 원고지 80매 분량, 국∙영문으로 작성)
�알기 쉬운 연구방법론: 국토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연구방법론을 쉽고 자세히 소개(200자 원고지 40매 분량)
�독자와 함께: 국토정책에 대한 곧은 목소리와 월간「국토」에 대한 의견(200자 원고지 7매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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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시대를 맞아
황호민|충남 논산시 취암동
서산, 당진, 옥구. 지금의 화려한 지명도에 비해 이곳들은 불과 30년 전에는 말도 못할 벽촌으로 인식되었다. 대학교는 고사하고 고등학교 부터 치열한 입시전쟁을 치르던 때 충남 공주에 있는 나의 모교는 명 문으로 알려져 각지에서 아이들이 모여 들었다. 오죽했으면 한반에서 반 이상의 학생들이 하숙이나 자취를 했을까? 그런 우리끼리도 서산 이나 당진 등의 이름이 나오면 오지 중의 오지로 통하여 아주 먼 벽촌 에서 대도시로 유학온 출세한 학생이라고 놀려 대었다. 실제로 당시에 는 대전에서 서산까지 시외버스로 하루가기에도 멀고 먼 거리였다.
그런 상황에서 옥구에서 온 친구는 거의 바다건너 외국에서 온 외국인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군산시로 편입되었지만 그땐 옥구읍의 항만소도시였는데 군산에서 배를 타고 장항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하루 종일 와야 하는 곳이 우리학교였다. 그러므로 그 친구도 여름방 학과 겨울방학이 되지 않고서는 집에 다녀올 수 없었다. 그런 우리 처 지에서 소위 말하는 살 만한 곳이라면 서울이나 고도 산업도시 몇몇 이라고 인식되었다. 공부 열심히 해서 대처로 나가는 것이 성공이라 여겨질 만큼 우리 국토 이용의 편향도가 심했다.
하지만 이 땅의 꾸준한 균형발전 노력에 힘입어 지금은 전혀 새 로운 도시로 탈바꿈되었다. 서산은 시로 승격되어 교육, 문화, 관광으
로 서해안 중심도시가 되었고, 당나루로 알려졌던 당진은 철강과 물 류의 중심이 되었다. 그런가하면 멀고 먼 타국처럼 느껴졌던 옥구는 이미 군산으로 통합되어 도시의 변화를 느끼게 한 지 오래다.
옥구에 사는 친구와는 지금도 절친하게 지내는데 지금 복선화가 추진 중인 장항선 철도가 군산까지 이어지면 수도권에서 일하는 나와 훨씬 쉽게 만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완성되며 이 미 오지로 남은 서쪽 지방은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오히려 지나친 개발이 문제되어 30여 년 전의 자연 풍광이 그립다는 말이 나올 정도 이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무서운 성장을 이어가는 중국 과의 교역을 위해서도 서해안 지역개발은 우리 국력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하다. 그렇다고 무분별한 난개발로 당장의 이익에 급급하면 훨씬 큰 부작용을 맞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구 온난화와 자연 재해를 부르는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 게 하여 친환경으로 특화시킨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오래전 낙후 된 지역의 대명사였지만 공기 좋고 사람들 인심 좋았다는 말에서 잃 은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서해안 시대의 개막이라는 화려한 기치를 진정 내보이기 위해 균형 잡히고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개발이 필요하다.
독 자 와 함 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