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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세계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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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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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세계 개관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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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문명

• 미케네 문명 멸망 후 암흑시대가 지속

• BC 800년경에 도시국가(polis) 발달

- BC 800년에서 500년 사이 – 코린토스와 아르고스 - BC 7세기 - 스파르타

- BC 6세기 - 밀레토스에서 철학과 과학 발달

- 아테네는 다른 폴리스들에 비해 발전이 늦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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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문명 - 스파르타

• 미케네를 멸망시킨 도리아인의 후예

• 정치제도 – 실질적인 과두정치 체제

- 두 명의 왕 / 원로원 (28인의 귀족) / 민회 (성인 남성) - 감독관 위원회(Ephorate) – 실질적인 권한 행사

• 계급사회

- 시민 5% / 페리오이코이 (perioikoi) / 헤일로타이 (heilotai)

- 시민 계급의 엄격한 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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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문명 – 아테네 (1)

• BC 8세기까지 왕정

• BC 7세기부터 귀족 과두정 – 아레오파고스 회의 - 부의 집중 현상

• BC 621 드라콘(Dracon) 입법

• 594년 솔론의 개혁

- 개인이 토지 소유 면적 제한

- 하층 계급에 민회 참석 권한 확대

• 정치적 혼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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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강독 – 솔론의 개혁

• 사정이 이러한 것은 정체가 거의 과두 형태였기 때문이다. 빈민들이 자신의 자식과 처와 더불 어 부자들의 노예가 되었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그들은 예속인 혹은 핵테모로이로 알려 져 있다. 그들이 부자들의 경작지에서 일하는 빌미는 바로 지대였기 때문이다. 모든 농지가 소 수의 손에 장악되었다. 그리고 만약 지대를 지불하지 않으면 그들과 그들의 자식들이 압류되 었다. 게다가 모든 채무는 채무자의 인신을 담보로 이루어졌다. 이런 일은 데모스의 대변자인 솔론이 나올 때까지 이어졌다. 그 정체에서 대다수 사람들에게 가장 가혹하고 견디기 어려운 일은 바로 노예 상태에 빠지는 것이었다. 이 말이 그들에게 다른 고통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전반적으로 소외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아테네인의 정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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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강독 – 솔론의 개혁

• 그[솔론]는 부자들로 하여금 탐욕스럽지 말 것을 강요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에서 그것을 입증 한다. “당신들의 강한 심장을 가슴속에서 억제하라, 모든 선한 것을 과도하고 추구했던 당신들 이여, 당신들의 자만심도 절제하도록 하라.” 그는 언제나 스타시스의 근본적인 책임을 부자들 에게 돌린다. (아리스토텔레스, 『아테네인의 정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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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강독 – 솔론의 개혁

• 더욱이 많은 귀족이 부채 말소 때문에 솔론과 불화하게 되었다. 그리고 양편 다 마음이 바뀌었 다. 그가 확립한 것들이 그들의 기대에 반하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인민은 그가 모든 것을 재분배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반면에 귀족들은 그가 자기들을 원래 지위로 돌려놓거나 작 은 부분만 바꿀 거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솔론은 양자 모두에게 반하였고, 어느 한 편을 선정하여 연합함으로써 참주가 될 수도 있었지만 조국의 땅을 지키고 최선의 법을 통과 시킴으로써 양편을 화나게 하는 쪽을 택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아테네인의 정체』,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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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문명 – 아테네 (2)

• BC 560년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 등장 – 히피아스의 압제

• BC 582년-502년 클레이스테네스 (아테네 민주정의 아버지)

- 참정권 확대

- 민회의 권한 확대

- 도편추방제 실시 (BC 487년)

• BC 461년 – BC 429년 페리클레스

- 모든 시민에게 참정권이 확대되며 민주주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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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강독 - 도편추방제

• 필로코로스는 그의 책 3권에서 도편추방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우선 인민이 여덟 번째 당번 기간 전에 도편추방을 실시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예비 투표를 한다. 그렇게 하 기로 가결되면, 널판으로 아고라를 두르고, 열 군데에 입구를 남긴다. 사람들이 그 입구를 통해 부족별로 들어와서는 글이 새긴 면을 아래로 하여 자신의 도편을 내려놓는다. 이 과정은 아홉 명의 아르콘과 협의회가 주재한다. 도편이 계수되면 최다이면서 6,000표 이상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고소인이든 피고이든, 관련된 송사의 의무를 열흘 내에 정리하고 10년간 도시 를 떠나야 한다. 그 기간에 그는 자신의 소유물로부터 나오는 수입을 받을 수 있다.” (K. Muller et al., Fragmenta Historicorum Graecorum, Parisiis, 1841, 79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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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문명 – 아테네 (3)

• 아테네 민주정의 원리

- 다수에 의한 지배 – 다수결의 원리 - 법 앞의 평등

• 현대 민주주의와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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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강독 – 페리클레스의 장송연설

• 우리의 정부 형태는 다른 나라의 제도와 비견할 수 없다. 우리는 이웃나라들을 모방한 것이 아 니며 도리어 그들의 귀감이 되었다. 우리의 국법이 민주주의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는 권력이 소수가 아닌 다수에게 있기 때문이다. 사적 분쟁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재판이 보장되지만 다른 한편 개인의 공헌에 따른 차등 대우도 역시 인정받고 있다. 누 구든 차등 대우를 원한다면 공직취임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특권의 문제라기보다는 업적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난은 공직취임의 장애물이 아니며 누구든 미천한 자일 지라도 국익을 위해 봉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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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강독 – 민주정이 가져온 결과

• 그리하여 아테네인은 강대해졌다. 참주 치하에서 그들은 어느 이웃나라 사람들보다 싸움에 뛰 어나지는 못했으나, 참주에게서 한번 풀려나오자 아주 두각을 나타낸 것이니, 한 가지 점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점에서 동등한 발언권의 훌륭함을 드러냈다. 그러므로 압제 하에서는 상전 을 위하여 일하는 터라 일부러 힘을 다하지 않았으나, 자유의 몸이 되자 각자가 자신을 위해 보람 있게 일하려고 애쓴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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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문명 – 페르시아 전쟁

• BC 490년 - BC 479년까지

• BC 492년 페르시아의 원정 실패

• BC 490년 마라톤 전투

• BC 481년 테르모필라이 전투

• BC 480년 살라미스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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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그리스 문명 – 펠레폰네소스 전쟁

• BC 431년에서 BC404년까지

• 델로스 동맹과 아테네 제국주의의 성장

• 델로스 동맹 (아테네) vs 펠로폰네소스 동맹 (스파르타)

• 아테네의 패배 – 스파르타의 속국으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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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 문명

• 마케도니아

- 페르시아 전쟁 이후 그리스 문화 수용

- 필리포스 2세 (BC 359년 – BC 336년) - 그리스 정복 - 알렉산드로스 (BC 336년 – BC323년) - 동방 원정

- 대제국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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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 문화의 성립

• 그리스 문화 + 오리엔트 문화

• 알렉산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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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비교

헬레니즘 헤브라이즘

그리스-로마 다신교 인본주의

현세적 철학과 과학 발달

르네상스 시기 부활

유대-그리스도교 일신교 신본주의

내세적 종교 문화

중세를 지배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