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유산의 이해
10주 : 근대문화유산
10주 :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근현대시기에 만들어진 문화재 가운데 보존할 가치가 큰 것을 등록한 문화재
근대 및 현대 문화유산을 보호하고자 2000년 부터 실시
외관은 보존하되 내부는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음 (2017년 현재 686호까지 등록)
한국 근현대 문화유산의 분류
10주 : 근대문화유산
옛 서울특별시청
(등록문화재 52호)
10주 : 근대문화유산
사적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지로 국가에서 지정한 문화재
고대~조선시대 유적이 대부분이지만, 근대문화 유산 가운데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이 일 부 포함됨
외관 뿐만 아니라 내부도 원형에 가깝게 보존해
야 함(2017년 현재 539호까지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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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서울역사 (사적 2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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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미래유산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 유산 중에서 후세에 전달할 가치가 있는 것을 서울특별시가 소유자의 동의를 받아 2013년 부터 선정
유형문화유산 및 무형문화유산을 모두 포함함
미래에 문화재가 될 만한 문화유산을 미리 지
정하여 보존한다는 의의가 있지만, 법적인 보
존의무나 지원이 없는 상태
10주 : 근대문화유산
명동예술극장
10주 : 근대문화유산
한국의 근대화와 망국의 아픔
대한제국(1897-1910) 시기를 전후하여, 자주적인 근대화를 이룩하려던 뜻이 좌절되고,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기는 시기에 만들어진 문화유산
덕수궁을 중심으로, 서울의 정동 일대에 많이 남 아 있음
한국 근현대 문화유산 살펴보기
10주 : 근대문화유산
옛 러시아공사관 (사적 253호)
1890년 러시아가 공사관으로 지은 건물이다. 1895년 일본이 경복궁에 침입해 명성왕후를 살해하자, 1896년부터 1년간 고종이 피신하였던 곳이다. 한국전쟁 당시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되고 망루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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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단
(사적 157호)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했던 고종은 1897년 덕수궁으로 돌 아왔다. 그 직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즉위하였다.
황제이므로 하늘에 제사지내는 장소인 환구단을 지었다.
중국 황제가 하늘에 제사하던 천단(天坛)에 해당하는 장소 이다. 일본이 헐어내어 일부만 남아 있다.
10주 : 근대문화유산
서울 독립문 (사적 32호)
1898년 자주독립 의지를 다짐하기 위해, 중국 사신을 맞 이하던 영은문을 헐고 국민 성금을 모아 독립협회가 건립 하였다. 파리 개선문을 참고하여 지었다고 전해진다.
10주 : 근대문화유산
덕수궁 중명전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1904년부터 정사를 보던 곳으로, 1905년 일본에게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조약을 체결한 장소.
일본이 1915년 덕수궁을 축소하면서 지금은 덕수궁 바깥에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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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고종황제가 황궁으로 쓰고자 서양식으로 지은 곳. 1909년 에 완성되었다. 미술관 등으 로 쓰이다가 대한제국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10주 : 근대문화유산
배재학당 동관
1885년 미국의 선교사 아펜젤러가 세운 한국 최초의 근대 중등교육기관으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비롯 해 많은 인재들이 이 학교를 다녔다. 이 건물은 1916년에 지어졌으며, 현재 역사관으로 개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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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침략과 식민통치
1910년 강제로 대한제국의 주권을 빼앗은 일 본은 1945년까지 한반도를 식민통치하면서 많 은 피해를 입혔다.
서울을 비롯해 부산, 대구 등 대도시와 지방도
시에 이르기까지 식민통치에 관한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이 시기에 한국인들의 삶도 근
대적인 요소를 많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한국
인의 생활에 관련된 중요한 문화유산도 적지
않다.
10주 : 근대문화유산
구 서울특별시청 (등록문화재 52호)
1926년 경성부 청사로 건립되었으며, 광복 후에도 서울 특별시의 청사로 사용되었다. 2012년에 시청을 옮기고, 이 건물은 내부를 개조해 서울도서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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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한국은행 본관 (사적 280호)
1912년 조선은행 본점으로 준공되어, 일본의 한반도와 대륙 침략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한 장소이다. 광복 이후 에는 한국은행으로 사용되며 한국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였다. 1987년 신관으로 이전하고, 이 건물 은 2001년부터 화폐금융박물관이 되었다.
10주 : 근대문화유산
구 대법원 청사
(등록문화재 237호)
1928년 경성재판소로 지어져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재판 을 받은 곳이다. 광복 이후에는 대한민국의 최고법원인 대법원으로 쓰였다. 2002년부터 내부를 개조하여 서울시 립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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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서대문형무소 (사적 324호)
1907년 준공된 감옥으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 었던 곳이다. 광복 이후에는 서울교도소(서울구치소)로 불렸으며, 군사정권 시기에는 민주화운동가들이 다수 수 감되기도 하였다. 1998년부터 역사관이 되어, 식민통치의 잔혹한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10주 : 근대문화유산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
(등록문화재 183호)
군산은 전라북도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식민지시기에 한 국인이 생산한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던 주요 거점이었다.
일본인 농장 주인의 주택을 비롯해, 일본식 사찰 등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오늘날에는 근대문화유산 관광지로서 매우 인기가 높다.
10주 : 근대문화유산
구 목포 일본영사관 (사적 289호)
목포는 전라남도 끝에 위치한 도시로, 군산처럼 쌀을 일 본으로 반출하던 주요 항구였다. 식민통치에 사용되던 큰 건물은 역사관으로, 일본인들이 살던 주택은 카페 등으로 리모델링하여 군산과 함께 근대문화유산 관광지로 각광 받고 있다.
10주 : 근대문화유산
제주 송악산 해안 일제 동굴진지
(등록문화재 313호)
제주도는 한반도 남단의 섬으로,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이 많아 한국의 주요 관광지 가운데 한 곳이다. 또한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군은 한국인을 강제로 동원하여 제주도에 각종 군사시설을 지었는데, 침략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등록문화재로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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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인의 삶
식민지시기는 한국인에게 나라 잃은 설움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자본주의를 비롯한 근대의 문물을 받아들여 삶이 변화하기 시작한 시기 이기도 하다.
전기, 자동차, 철도 등 근대문명의 산물을 비롯
해 가톨릭과 같은 서양의 종교, 영화와 백화점
등의 소비문화, 서양식 주택 등이 유입되어 한
국인의 생활양식을 바꾸기 시작하였다.
10주 : 근대문화유산
서울 옛 신촌역
(등록문화재 136호)
1899년 서울 노량진역과 인천역 사이의 철도가 개통된 이래, 철도는 한반도의 근대화와 산업화에 크게 기여하였 다. 일본의 대륙 침략 수단이기도 하였고, 가난한 사람들 이 돈을 벌고자 도시로 이주하는 등 수많은 사연을 간직 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10주 : 근대문화유산
노면전차 (등록문화재 467호)
서울의 노면전차는 1899년~1968년까지 운행되었다. 식 민지시기에는 부산과 평양에도 설치되었으며, 당시 중요 한 대중교통이었다. 대도시로 성장하면서 속력이 느린 전 차가 교통에 방해가 되면서 지하철로 바뀌어 갔다.
10주 : 근대문화유산
전주 전동성당 (사적 288호)
가톨릭이 한반도에 전래된 것은 18세기 말이었으나, 정식 으로 포교를 허가받은 시기는 1886년이었다. 이후 1900 년대부터 큰 성당을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했다. 전동성당 은 1914년에 완공되었으며,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축물 중 하나로 꼽힌다.
10주 : 근대문화유산
서울 동아일보
(서울 문화재 131호)
근대적 한글신문은 1896년에 발행된 “독립신문”을 비롯 해 여러 종류가 발행되었으나, 일본의 탄압으로 폐간되었 다. 1920년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창간되어 식민 지시기 민족정신을 지키는데 공헌하였다. 1926년에 이 건물로 이전하였고, 현재는 신문박물관과 미술관이다.
10주 : 근대문화유산
서울 백인제 가옥
(서울 민속문화재 22호)
근대 이후, 한국인 부자나 지식인들이 서양식 생활양식을 받아들이면서 한옥 역시 변화하기 시작했다. 유리창을 달 고 대청마루에 서양식 거실을 두었으며, 일본식 복도로 개조하기도 했다. 서울 북촌에 있는 이 집은 근대 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10주 : 근대문화유산
한국의 현대사 관련 문화유산
한국은 광복과 함께 남북한이 분단되고, 한국 전쟁의 아픔을 겪었다.
전쟁의 피해를 극복하고 한국은 1960년대부터 고도성장을 이룩하였다. 4.19혁명을 비롯해 5.18민주화운동 등을 거치면서 한국은 2차대 전 이후 독립한 국가 가운데 산업화와 민주화 를 동시에 달성한 드문 사례이다.
한국은 현대사 관련 문화유산도 등록문화재
제도에 포함하여 관리하고 있다.
10주 : 근대문화유산
경교장 (사적 465호)
1938년 광산업자 최창학의 집으로 지어졌다. 임시정부 주석 김구가 1945년 귀국 직후부터 1949년 암살될 때까 지 이 집에 머물렀다. 복원공사를 거쳐 2013년부터 전시 관으로 개방하고 있다.
10주 : 근대문화유산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등록문화재 41호)
1925년 총독부가 경상남도 도청으로 지었다. 광복 후에 도 경상남도 도청으로 사용하다가, 한국전쟁중 정부가 부 산으로 피난하면서 임시 정부청사가 되었다.(1950-1953) 1983년 창원으로 도청이 이전했고, 2009년부터 동아대학 교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10주 : 근대문화유산
부산 임시수도기념관 (부산 기념물 53호)
1926년 경상남도지사 관사로 지어졌으며, 한국전쟁 기간 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생활하며 집무하는 공간으로 사용 되었다. 2012년부터 한국전쟁중 대통령과 시민들의 피난 생활을 보여주는 전시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10주 : 근대문화유산
부산 UN기념공원 (등록문화재 359호)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UN군 전사자(미국, 영국, 터키 등) 2,300여 명이 묻힌 묘지이다. 한국전쟁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상징물로 역사적 의미가 크다.
10주 : 근대문화유산
포항 포스코역사관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포항 해변가에서 시작해 세계 굴지 의 제철소로 성장한 포스코의 역사를 보여주는 기념관이 다. 한국 산업화의 상징으로 의미가 크다.
10주 : 근대문화유산
인천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농촌에서 살다가,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도시로 이주하 는 현상이 196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다. 이런 사람들은
‘달동네’라 불리는 곳에서 가난하게 살았는데, 1960-70년 대 한국 서민들의 생활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10주 : 근대문화유산
광주 전라남도청 옛 본관 (등록문화재 16호)
1930년 한국인 건축가에 의해 지어져 2005년까지 전라남 도 도청으로 사용되었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도청 앞 광장과 도청에서 많은 시민들이 희생되어, 대한 민국 민주화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이다.
10주 : 근대문화유산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영국의 Foley와 Lennon이 제시한 개념으로,
‘죽음이나 재난과 연관된 장소를 방문하는 것’
을 의미
근대에 본격화된 유산 관광(heritage tour)의 초기에는 훌륭한 가치를 지닌 유산만을 대상으 로 한 반면, 20세기 후반부터는 부정적인 유산 (negative heritage)도 대상이 되기 시작하였음 에 주목
이론적 접근: 다크 투어리즘
10주 : 근대문화유산
분류체계 및 특징
여러 학자들에 의해 분류체계가 제시되었지만, 최초로 이 개념을 제시한 Foley와 Lennon에 따 르면, (1) 전쟁, (2) 묘지, (3) 식민지 역사, (4) 대 학살(holocaust), (5) 재해/재난, (6) 유령(ghost), (7) 감옥, (8) 기타(광산 등)로 분류.
유럽 중세시대부터 있었던 성지순례와 다크 투
어리즘이 다른 점 : (1) 근대성(modernity)에 대
한 의문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 (2) 대중매체
(mass media)의 영향, (3) 상업화에 의한 관광
상품
10주 : 근대문화유산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다크 투어리즘을 유산 관광의 대상으로 삼았을 때에는 주의해야 한다. 비극의 상품화, 관광의 진정성 등과 관련한 여러 가지 윤리적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Sharpley 2009)
따라서 다크 투어리즘은 관광객에게 대상을 사
실(fact) 그대로 전달해야 하며(장성곤 2017),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10주 : 근대문화유산
역사적 교훈과 즐거움 사이에서
반면 관광은 기본적으로 오락(entertainment) 이므로 즐거움도 제공해야 한다.
Tunbridge와 Ashworth는 그 문제에 대한 해답 을 ‘집단 간의 가치를 초월할 수 있는 해설’에 서 찾았다.
그러한 해설을 제공하기 위해, 대상에 관한 다 양한 기억을 발굴하고 스토리텔링으로 가공하 기 위한 전문적인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장성 곤 2017)
사진출처: 문화재청, 서울미래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