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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울의 회심에 관한 정신분석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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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EP Original Article

精 神 分 析 :第 14 卷 第 2 號 2 0 0 3

J Korean Psychoanalytic Society Vol.14, No. 2, Page 177~183, 2 0 0 3

성 바울의 회심에 관한 정신분석적 고찰 *

손 진 욱

**

A Psychoanalytic Study of the St. Paul’s Conversion

*

Jin-Wook Sohn, M.D., Ph.D.

**

서 론

현대 그리스도교의 틀을 만든 사도 성 바울(St. Paul)은 본래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극렬히 박해하던 열렬한 유대교 인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체포하러 시 리아 다마스커스(Damascus)로 가는 길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나는 극적인 체험을 한 후 소위 회심(回心, conversion) 을 하게 된다. 회심한 바울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정반대 의 인간이 되어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그 리스도교의 체계를 세우고 그리스도교를 전 세계, 특히 유럽 에 전파시키는 일에 헌신한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한 것일까? 저자는 관련된 성서 내용과 문헌을 읽어 본 후 이런 극적인 변모의 동기와 과정 의 일부는 정신분석의 이론을 통하여 설명될 수 있을 것이 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즉, 이런 변모는 바울 개인의 내 면적 욕구 및 동기, 성장과정, 주위 상황 등이 서로 작용하여 만들어진 정신역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추측되었던 것 이다.

저자는 좀더 많은 문헌고찰과 탐색을 통하여 이런 가정을 확인하는 작업, 즉 바울의 회심에 대한 정신분석적 해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바울의 생애

초대 그리스도교 인물 중에서는 바울에 관한 자료가 가장 풍부하다. 베드로(Peter) 등 예수의 직계 열두 제자는 물론

심지어 예수에 대한 신빙성 있는 역사적 자료가 극히 부족 한 반면 바울에 대한 사료는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바울에 관한 사료는 주로 그의 친필 서신들이라고 알려져 있는 로마서, 고린토 전·후서, 갈라디아서, 데살로니카 전서, 필립비서, 필레몬서 등 일곱 권의 신약성서와 루가가 초대 교회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사도행전에 실려있다.

이런 사료들을 참조하여 바울의 생애와 사상을 요약해 보 면 다음과 같다. 아래 내용들은 대한성서공회(1977) 편 공 동번역 신약성서와 성바오로딸수도회(1999), 장종현과 최 갑종(2001), 정양모(2001), Barclay(1958), Bornkamm 과 Kohlhammer(1978), Bruce(1985), Castaneda(1989) 등의 저서를 참조하여 작성되었다.

1. 출 생

그리스-라틴식 이름인 바울의 히브리 식 이름은‘빌어서 얻었다’또는‘소망했다’ 라는 뜻의 사울(Saul)이었다.

바울은 이스라엘 민족의 선조로 추앙 받는 믿음의 인물 아 브라함(Abraham)의 후손으로 이스라엘 12지파 중 베냐민 (Benjamin) 지파에 속하는 정통 유대인이었다. 그는 이스라 엘의 혈통과 국적을 지녔으며, 나중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에도 이스라엘 국적을 버리지 않았다. 한편 그는 로마 시 민권도 소유하고 있었다.

출생 연도는 기원 후 5~10년경으로 추정되며, 출생지는 소아시아 길리기아주의 다르소(Tarso)로 알려져 있다. 다 르소는 오늘날 터키의 동부해안 일대로, 당시는 고대 로마 의 속주였으나 자치권이 허용되었으며, 인구가 30만 명에 이 르는 거대한 상업도시이자 아름다운 항구도시로 동방과 서 방을 연결하는 요충지이고 문화의 중심지였다. 큰 대학과 무 역센터가 있었고 스토아 학파의 유명한 철학자들이 활약하 고 있었다.

2. 외모 및 성격

유사(類似) 성서, 즉 소위 외경(外經)에 속하는 <바울로

*본 논문은 2002년도 경상대학교병원 임상연구비의 지원을 받아 쓰 여졌음

**경상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경상대학교 건강과학연구원 Department of Psychiatry, College of Medicine, Gyeongsang National University, Gyeongsang Institute of Health Sciences, Jinju,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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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전>에는 바울이 키가 작고, 대머리이며, 다리가 약간 굽었 으나 걷는 데는 지장이 없었고, 속눈썹이 길고, 매부리코였 다는 등의 기록이 있으나 근거는 희박하다.

바울은‘불같은’성격에 신념을 행동화하는 실천적 의지 가 강하였다. 다혈질이고 정이 많았지만 감정에 치우치는 일 없이 늘 균형과 조화를 잃지 않았다. 자립심이 강하여 남의 신세를 지지 않고 스스로 생계를 유지했다. 남의 눈치를 보 지 않고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며, 필요시에는 권위를 내세우기도 하였다.

3. 교 육

바울은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유대식 교육(율법, 유대인의 역사와 전통, 생활의 지혜, 종교 등)을 받았으며, 어린 시절 에 이미 그리스어, 그리스 문학과 철학, 특히 성서(70인 역) 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약 15세 경에는 예루 살렘에 가서 당시의 대석학 가믈리엘에게 고등교육(성서, 랍 비들의 전통 및 율법의 해석 방법 등)을 받았다.

특히 바울은 구약성서를 즐겨 읽었으며, 다마스커스 회심 이후에는 그리스도 신앙의 입장에서 구약을 이해하기 시작 하였다.

4. 직 업

바울의 직업은 천막과 가죽 제조업이었으며 아버지로부터 천막 제조 기술을 배웠으리라 추측된다.

그의 아버지는 매우 부유했으며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하 여 로마 시민권까지 획득하였는데, 천막을 제조하여 로마 군 인들에게 납품하는 사업가였다는 주장도 있다.

그는 선교를 하면서도 보수나 기부금을 받지 않았으며 부 유한 사람의 집에서 기숙하는 일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손 으로 직접 일해서 먹고 살았다. 그는 노예들과 함께 하는 일 도 마다하지 않았다.

당시 그리스 사회에는 이상이 높은 자유인에게 노동은 적 합하지 않다라는 풍조가 있었으나 그는 이를 과감히 깨뜨렸 다. 그는 자유인이고 선교사였지만 자신의 손으로 일해서 먹 고사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5. 건 강

바울은 철의 인간이라고 할 만큼 불같은 열정으로 살면서 많은 일을 하였다. 그만큼 그는 건강체였다. 그러나 두 번 째 선교여행에서 그만 병이 나고 말았다. 그때 얻은 병은 눈병 으로 추측된다.

그는 자신이‘몸을 가시로 찌르는 것’ 같은 병을 갖고 있 다고 했으나, 이 신비로운 병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6. 그리스도교 박해와 회심

1) 바울의 종교

바울은 회심하기 전에는 자기 백성의 희망이었던 율법에 따른 삶을 살던 경건한 유대교인이었다. 유대교인 중에서도 실천면에서 아주 엄격했던 바리새파(Pharisee)에 속했으며, 조상의 전통을 고수하려 했다. 그가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 을 극렬하게 박해했던 것도 전통을 너무 철저히 지키려 했 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2) 스테파노(Stephen)의 죽음

바울은 율법을 충실히 지킴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맛보 고 자기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런 노 력은 별 성과가 없는 것이었다.

바울이 자신의 그때까지의 추구에 회의와 실망에 빠져 있 을 때 스테파노가 유대인들에게 돌로 맞아 죽음으로써 그리 스도교 최초의 순교자가 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바울은 스 테파노를 만나지는 못했고 처음에는 그의 죽음에 냉담했지 만, 스테파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은 결국 그의 마음을 움직 였고 이것이 그의 회심에 중요한 동기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3) 다마스커스 체험(Damascus event)

기원 후 35~36년 경 바울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체포하 기 위해 다마스커스로 가던 도중에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쏟아져 자신을 에워싸는 신비체험을 하게된다.

이 사건은 외적인 사건이기보다는 바울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난 주관적인 심경의 변화, 즉 일종의 내적 체험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때 그는 확실히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믿었으며, 이때 회심하여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되었다.

4) 다마스커스 사건 후 제 1 차 선교여행까지

바울이 회심 후 선교여행 전까지의 몇 년을 어떻게 보냈는 지에 대한 기록은 분명하지 않다. 회심 후 곧 아라비아로 갔 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알려져 있 지 않다. 아마도 그동안 그는 예수를 만난 체험의 뜻을 되새 기며 보냈을 것이다. 그 후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서 베드로 와 보름을 지냈고, 또 야곱(Jacob)을 만났다. 야곱은 바울 에게 생전의 예수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이다.

그 다음 그는 시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가서 지냈다고 되어 있으나,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기록이 없다.

7. 세 번의 선교여행

회심한 바울은 소아시아와 유럽을 대상으로 세 차례(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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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진 욱

179 차 45~47년 경, 제 2 차 50~52년 경, 제 3 차 53~58년

경)의 선교여행을 떠난다. 그는 많은 역경과 고난에도 불구 하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교회공동체를 설 립함으로써 그리스도교를 세계적인 종교로 만들어 나갔다.

8. 체포와 죽음

세 번째 선교여행을 끝낼 무렵, 바울은 예루살렘의 분위기 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교회에서 거두어들인 성 금을 갖고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 무렵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군중을 선동하여 바울 이 율법을 반대하고 이방인들까지 성전으로 데리고 들어갔 다며 고발하였다. 로마 파견대장은 군대를 보내어 바울을 체 포하였으며, 군중은 그를 죽이라고 요구하였다.

바울은 서기 58년 말 가이사리아의 총독에게 소요자 및 성전 모독자로 고발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행 사하여 황제에게 상소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하였다. 바울은 다른 죄수들과 함께 배를 타고 로마로 향하였다. 그들은 항 해 도중 폭풍을 만나 멜리데 섬에서 석 달을 보내는 등 고 생 끝에 61년 봄 로마에 도착하였다.

로마에서는 경비병의 감시를 받았지만 다른 죄수들과 달 리 어느 정도 자유로운 상태에서 로마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바울에 대한 기록은 여기서 끝난다. 그가 스페인까지 가서 선교를 하였다고도 하나 확실 하지 않다. 그가 언제 죽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으나, 네로 황 제가 로마 대화재를 빌미 삼아 일으킨 박해 때인 67년 경 참수 순교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바울의 성격

바울은 흔히‘불같고’강하며 정열적이고 다혈질적인 성격 의 소유자, 실천적 의지가 강한 투사형이자 행동파, 자기 자 신에 철저하고 자만심이 강하고 자화자찬을 잘하며 타협을 모르는 인물 등으로 묘사되고 있다(성바오로딸수도회 1999;

정양모 1991).

어쨌든, 성서에 나타나있는 바울의 언행을 자세히 살펴보 면 그가 어느 정도는 자기애성 인격성향(narcissistic per- sonality trait)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자주 자신의 중요성을 과장하는 언행을 보인다. 자 신을‘예수의 종’ 이라고 부름으로써(로마서 1장 1절, 이하 1,1로 표기) 자신을 구약의 위대한 예언자들인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다윗, 이사야 등과 동격으로 올려놓는가 하 면, 심지어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와 한 몸이고(로마서 15,17) 그리스도가 자신 안에서 살고 있다(갈라디아서 2,20)고 하

면서 자신과 예수를 동일시(同一視, identification)한다. 그 는 또 자신이 정통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았으며(사도행전 22,3) 오로지 선한 양심만을 갖고 하느 님을 열심히 섬기며 살아왔음을 내세우며(사도행전 23,1),

‘온 세상에’(로마서 1,8)나‘끊임없이’(로마서 1,9) 같은 과장성 용어들을 즐겨 사용한다.

그리고, 바울은 권위주의적이고 독선·독단적이며, 타협 을 모르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자비한 저주 를 퍼붓거나 비난하는 행동을 자주 보인다. 자신이 로마 시 민임을 내세우고(사도행전 16,17), 마술사에게‘온갖 사악 으로 가득 찬 악마의 자식’ 이라고 저주하며(사도행전 13,10), 자신을 신으로 모시려는 사람들에게‘옷을 찢으며’격한 감 정을 표출한다(사도행전 14,13-14). 예수의 으뜸 제자인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가 하면(갈라디아서 2,11- 14) 자신의 선배 선교사이자 후원자였던 바르나바(Barnaba) 와는 심한 언쟁 끝에 결별하고 만다(사도행전 15,36-40).

이런 바울의 언행은 그에게 감정이입(empathy)의 결여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낳게 한다.

또, 바울은 지나치게 논쟁적이고(사도행전 15,1-2;로 마서 2,29), 단언을 잘하며(로마서 2,25), 상대방을 자주 비 난하거나(로마서 3,1), 권고(로마서 12,1) 또는 훈계(로마 서 16,17)하기를 즐기며, 쉽게 분노를 표출한다(사도행전 14,13-14;16,18;23,3). 그의 분노는 소위‘자기애성 분 노(narcissistic rage)’ 이었을 가능성이 있다(손진욱 2001).

이런 바울의 자기애성 인격성향은 그의 돌연한 회심과 관 련이 깊을 것이다(이만홍 등 2000a).

바울의 회심

1. 바울의 갈등과 그리스도교 박해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바울은 독실한 정통 유대인 가정에 서 태어나 엄격한 유대식 종교 교육을 받고 성장한 바리새 인이었다. 바리새파는 기원전 2세기 말 모세 율법을 엄격히 지킨 유대교의 한 종파로, 형식주의와 위선에 빠져 있다고 예수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으며, 결국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데 앞장을 섰다(허종진 1994).

바울은 성격상 훌륭한 바리새인이 되기 위하여 모든 율법 을 지키려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율법을 엄격히 준수함 으로써만 유대의 전통을 지키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런 바울이 자신의 여망에 정면으 로 반대되는 주장을 펴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한 것은 어쩌 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을 완벽히 지킨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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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이 율법을 지키려 노력하면 할수 록 그것을 막는 더 큰 힘이 자신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었 던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 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 다.”(로마서 7,15)

“여기에서 나는 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곧 내가 선을 행하려 할 때에는 언제나 바로 곁에 악이 도사 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 마음 속으로는 하느님 의 율법을 반기지만 내 몸 속에는 내 이성의 법과 대 결하여 싸우고 있는 다른 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 습니다. 그 법은 나를 사로잡아 내 몸 속에 있는 죄 의 법의 종이 되게 합니다.”(로마서 7,21-23)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선과 악은 무엇일까? 선은 엄격한 종교 교육과 율법이 내재화(內在化, internalization)되어 형 성된 강한 초자아(superego)―특히 자아이상(自我理想, ego ideal)―이고, 악은 이드(id)일 것이다. 그리고 바울의 자아 (自我, ego)는 안타깝게도 자신이 이 싸움(내적 갈등)에서 결코 승리(극복 또는 해결)할 수 없음을 알고 절망에 빠지 고 만다(Drane 1989).

바울이 예수와 그의 추종 세력인 그리스도교를 그토록 극 렬히 핍박했던 것은 이런 절망감에 동반된 분노의 표현, 즉 반동형성(反動形成, reaction formation)이나 투사(投射, projection)가 동원된 일종의 행동화(行動化, acting out) 였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절망에 빠진 바울의 자아는 어쩔 수 없이 모든 방어기제 를 총동원하여 새로운 초자아(자아이상)를 찾는 노력을 기 울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에 때맞추어 예수라 는 인물과 그의 새로운 사상이 바울 앞에 나타났던 것이리라.

2. 전 조

바울은 본래 무슨 일에나 매우 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 는 자신의 내부의 양심에 목소리에 맞춰 행동하는 매우 적 극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율법을 옹호하고 그리스도 추종자 들을 박해한 것도 자신의 내면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결 코 자신의 사리사욕 때문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바울의 마음속에는 언제부턴가 정 반대의 목소리가 태동하고 있었다(Bornkamm과 Kohlha- mmer 1978). 그는 예수라 불리는 사나이의 행적과 그가 주장하는 새로운 율법인 사랑의 계명에 이끌렸으며, 그가 죽 은 후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종한다는 사실에 놀랐고, 특

히 젊은 청년 스테파노가 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일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런 새롭고 놀라운 경험들은 바울의 마음속에 내재화되 어 조금씩 조금씩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영역, 또 다른 내적 가치는 그가 그 동안 간직해 왔 던 열망이나 가치 기준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그는 갈등하기 시작했으며 뭔가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지 모 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되었다. 그는 점점 자라나는 새로운 가치를 억압(抑壓, repression)하고, 대신 자신이 헌신해 왔 던 기존의 가치에 더 집착함으로써 갈등과 불안을 해소하려 하였다. 바울이 그토록 열렬히 그리스도 추종자들을 박해한 것도 사실은 내면의 불안 때문에 일어난 일종의 반동형성 이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새로이 자리잡고 급격히 그 세력을 확장해 가는,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억압, 또는 부정(否定, de- nial)하면 할수록 그 목소리는 더 또렷이 크게 들려왔다.

사실 그는 언제나 목마른 사람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을, 그리고 모든 인류를 구원해 줄 보편적인 가치, 즉 진리를 갈 구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런 소망이 그들 유대 종족의 종교이자 생활규범인 유대교의 율법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구약에 예언된 구세주 메시아 (Messiah)만 오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 는 율법을 통해서 그의 목마름을 해소할 수 없었다. 율법은 피지배민족 이스라엘에 아무런 구원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별다른 전망도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새로운 가치가 필요 했다.

드디어 때가 무르익고 있었다. 바울의 마음속에서 극적인 반전(反轉, reversal)이 일어날 때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은 이렇게 극적으로 일어났다.

3. 바울과 예수의 만남(다마스커스 사건)

“길을 가다가 오정 때쯤에 다마스커스 가까이에 이 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찬란한 빛이 나타나 내 주위에 두루 비쳤습니다. 내가 땅에 거꾸러지자‘사 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하는 음성이 들 려왔습니다. 나는‘주님, 누구십니까?’하고 물었습니 다. 그랬더니‘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다’

하는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그때 나와 함께 있던 사

람들은 그 빛은 보았지만 나에게 말씀하신 분의 음성

은 듣지 못하였습니다.‘주님,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

습니까?’내가 이렇게 물었더니 주께서는‘일어나서

다마스커스로 들어가거라. 거기에 가면 네가 해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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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진 욱

181 일을 모두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하고 말씀하

셨습니다. 나는 그 눈부신 빛 때문에 앞을 못 보게 되어 같이 가던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커스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는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율법을 잘 지키는 경건한 사람이었고 거기에 사는 모 든 유다인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가 나를 찾아와 곁에 서서‘사울 형제, 눈을 뜨시오’하고 나 에게 말하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눈이 띄어 그를 보 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나니아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 다.‘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뜻하신 바를 깨닫 게 하시고 그 죄 없으신 분을 알아보게 하시고 또 친 히 하시는 말씀을 듣게 하시려고 당신을 택하셨습니 다. 당신이 보고들은 일을 그분을 위해서 모든 사람 앞에 증언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어서 일어나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깨끗이 씻어 버리시오.’”(사도행전 22,6-16)

뒤이어 바울은 다시 한번 예수를 만나는 환시(幻視, vi- sual hallucination)를 본다.

“그 뒤 나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하 루는 내가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무아지경에 빠 져 주님을 뵈었습니다. 그때에 주님은‘어서 빨리 예 루살렘을 떠나거라. 예루살렘 사람들이 나를 증언하 는 네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 니다. 그래서 나는‘주님,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제가 감옥에 가두고 또 가는 곳마다 회당에서 매질한 일을 그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증인이었던 스데파노를 돌로 쳐서 죽일 때 저도 그 자리에 있었 을 뿐 아니라 그 일에 찬동하였고 그를 죽이는 사람 들의 옷을 지켜주기까지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 니다. 그때 주께서‘나는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 낼 터이니 어서 가거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사도 행전 22,17-21)

바울이 이렇게 예수를 만나 예수의 모습과 광채를 보고 (환시), 말소리를 듣는(幻聽, auditory hallucination) 현상 은 투사일 것이다. 바울의 마음속에 그도 모르게 자리잡고 있던 어떤 것들이 외부로 투사되어 마치 외부에 있는 예수 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언제부턴가 바울 자신의 내부 에 자리잡기 시작한 새로운 것, 변화에 대한 열망이 커져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그가 지금까지 추종해온 유대

주의에 대한 충실 또는 관성 때문에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외부로 돌려, 외부의 것, 즉 예수에게 사로잡 히는 체험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어쨌든 이 만남은 바울에게는‘예측할 수 없었고’ ,‘저항 할 수 없으며’ ,‘즉석에서 전체의 윤곽을 파악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었다(Drane 1989). 그는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아 앞을 못 보게 되었고 다마스커스에 당도한 후에도 사 흘 동안이나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었다.

이 사건은 바울에게는 자아가 분쇄되는, 자신의 과거를 송 두리째 뒤흔드는 일대 변혁이었다. 그가 이 충격을 소화하 고 그 의미를 충분히 깨닫고 더구나 받은 소명을 실천할 수 있기까지는 아직도 더 많은 고통과 인내와 성숙의 시간이 필요하였다.

4. 다마스커스 사건 후의‘침묵의 세월’

바울에게 소명이 주어진 후 제 1 차 선교여행을 떠나기까 지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침묵의 시기를 보낸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무엇을 한 것일까? 이 침묵은 그를 어떻게 변화 시켰는가? 이 침묵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바울은 소명을 받고 즉시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 을 했으나 양쪽 모두로부터 고립되어 있었다. 유대인 공동 체는 그를‘배반자’ 로 낙인찍었고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신 자들의‘박해자’요 원수로 악명을 떨치던 그를 아직도 경 계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과거를 정리하고 새로운 질 서에 융화될 시간, 즉 일종의 전환기가 필요하였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침묵의 시기 동안 바울은 그리스도교 여러 전승과의 접촉을 모색하고, 다마스커스 사건을 다시 분석하고 깊이 성 찰하며, 앞으로의 활동에 대하여 숙고했을 것이다.

한편, 이 시기는 바울이 당초 자기 안의 것이었으나 외부 에 있는 예수의 모습으로 투사되었던 것을 다시 자기 것으 로 내재화하는, 즉 새로 받은 사명을 자기 안에 함입(含入, introjection)하는 기간이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예수를 만나 그에게 사로잡힌(possession) 바울 은 그를 동일시(同一視, identification) 또는 함입하여 그 와 하나가 됨으로써 만족과 평화를 얻고(Drane 1989) 새 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바울은 이런 모든 과정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이

것은 자신이 오래 전부터 항상 바라고 있었던 것임을 깨닫

는다(성바오로딸수도회 1999). 즉, 바울에게 있어서 이런

변화는 결국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오랜 소망의 충족’이

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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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찰

회심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동기에 의해 사람이 정신적 변화를 일으켜 다른 정신세계의 상태로 변하는 것>이다. 특 히 그리스도교에서는 회심을 <자신의 삶을 회개하고 믿음에 눈을 떠, 옛 삶을 버리고 하느님을 믿는 경건한 믿음살이로 마음을 돌리는 일>로 정의하고 진정한 신앙인이 되는 데 필수적인 종교적 체험으로 여긴다(이만홍 등 2000a;허종 진 1994).

회심은 흔히 급격형 회심(sudden conversion)과 점진형 회심(gradual conversion)으로 분류된다(James 1902;

Meadow와 Kahoe 1984). 급격형 회심은 위기형 회심(cri- sis conversion)이라고도 하는데, 전형적이고 극적이며 갑 작스럽게 나타나는 회심으로 신약성서에 나오는 성 바울의 회심이 그 전형이 된다. 점진형 회심은 오랜 동안 점진적으 로 의지적 요인과 동기에 의해 의식적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회심을 말한다. 이중 특히 위기형 회심은 혼돈과 심한 심리 적 갈등, 고조된 자기포기와 갑작스러운 통찰력, 통합과 평 화의 3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앞에서 분석한 대로 바울도 이런 3단계를 그대로 거쳤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만홍 등(2000a)은 회심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위기형이 점진형이나 비회심군에 비하여 유의하게 높은 자 기애성 인격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보고하면서, 그러나 이들 의 자기애성 인격성향은 병적이고 비적응적 측면보다는 적 응적이고 기능적인 측면을 보다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 하였다. 이만홍 등(2000a)의 이런 연구결과는 바울이 자기 애성 인격성향을 갖고 있었다는 본 연구의 결과와 일치하는 것이다.

한편, 이만홍 등(2000b)은 신비체험과 해리성향과의 관 계를 조사한 또 다른 연구에서 신비체험군이 비신비체험군 에 비하여 해리경향성이 강하고 외상경험이 많았다는 보고 를 하였다. 그러나 신약성서의 기록에 의존한 본 연구에서 바울의 해리경향성을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바울 자신 의 내적 갈등과 스테파노의 순교가 그에게 정신적 외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바울의 신비체험을 둘러싼 쟁점의 하나는 소위‘다마스커 스 사건’ 이 과연 역사적이고 외적인 것인가, 아니면 바울의 내면에서 조용히 일어난 내적인 것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하는 것이다(성바오로딸수도회 1999;정양모 1991;Born- kamm과 Kohlhammer 1978;Bruce 1985). 이 사건에 대 한 신약성서의 기록은 루가가 쓴 사도행전의 세 대목(9,1- 19;22,3-21;26,9-18)과 바울이 직접 썼다고 알려진

서신들의 몇 대목(갈라디아서 1,15-16 ; 고린토전서 9, 1.15,8;필리비서 3,12;고린토후서 4,6)뿐이다. 바울은 자신의 이 체험을 주관적인 심경의 변화, 즉 일종의 내적인 체험으로 아주 간단히 서술한 반면, 루가는 길고 자세하게 극적이고 외적인 사건으로 기술하고 있어서 루가가 자신의 주관을 갖고 시청각 교육적인 관점에서 이 사건을 각색한 것 이 아닌가 여겨진다(성바오로딸수도회 1999;정양모 1991;

Bornkamm과 Kohlhammer 1978). 루가의 세 보도에 서 로 상치되는 부분이 있고, 장면 묘사가 정형적인 신의 현현 (顯現, Theophania) 양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루가는 바울을 본 적이 없다.

만일 바울의 신비체험에 내적인 요소가 강하다면 그것은 분명히 심리적인 것이고, 따라서 심리적 해석도 가능할 것 이다. 그러나, 바울의 신비체험에서 심리적 요소가 발견된 다고 하여 종교적, 또는 신적 요소를 경시하거나 그의 공적 을 조금이라도 폄하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요약 및 결론

신약성서 나오는 바울의 회심에 대한 정신분석적 해석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 바울의 회심은 급격형(sudden conversion) 또는 위 기형(crisis conversion)이다.

2) 그의 회심은 그의 자기애성 인격성향(narcissistic per- sonality trait) 및 심적 갈등과 관계된다.

3) 그의 회심 과정에는 반동형성(反動形成, reaction for- mation), 부정(否定, denial), 반전(反轉, reversal), 투사 (投射, projection), 내재화(內在化, internalization), 함입 (含入, introjection), 합일화(合一化, incorporation)같은 방 어기제들이 작동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바울의 회심에는 종교적 요소 이외에 그의 자 기애성 인격성향과 심적 갈등 및 다양한 방어기제 같은 정 신역동(精神力動, psychodynamics)이 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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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Psychoanalytic Study of the St. Paul ’s Conversion Jin-Wook Sohn, M.D., Ph.D.

This paper psychoanalytically investigates St. Paul’s conversion by analyzing his personal life and so-called

‘Damascus event’ in the New Testament(The Acts of the Apostles and The Letters).

The results are as follows;

1) St. Paul’s conversion was sudden and crisis-based.

2) He seems to have a narcissistic personality trait and psychic conflict.

3) The various defense mechanisms(such as reaction formation, denial, reversal, projection, internalization, introjection, and incorporation) might be involved in his conversion.

In conclusion, St. Paul’s conversion seems to be related to his narcissistic personality trait and unconscious motivation and processes, such as psychic conflict and various defense mechanisms.

KEY WORDS

: St. Paul’s conversion·The New Testament·Narcissistic personality trait·Psychodynamics.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