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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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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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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식문화사

5강. 개화기⦁일제강점기 복식

교재: 우리 옷 이천년, 류희경 외, 미술문화, 2011

(2)

남자복식

- 관복과 더불어 한복이 간소화되었다.

- 서양복식의 영향으로 마고자, 조끼 새롭게 등장, 두루마기는 양복의 외투와 같은 역할. 중머리, 중절모 등을 착용하였다.

- 속옷, 양말, 신발 등이 서양복식으로 바뀌었다.

일반복

명칭 유물 또는 벽화 영상매체 특징

(저고리) 남자의 저고리는 여자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졌다 길어졌다 한 것과는 달리 별 변

동없이 조선말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두루마 기)

두루마기는 사방이 두루 막혀 있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삼국시대의 기본 포가 조 선시대까지 계속 입혀지면서 여러 가지 다른 포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개화기 및 일제강점기 복식

* 복식의 변화 - 근대 서양 문물의 도입, 기독교의 전래, 교육 기관, 언론 등의 보급으로 복식 문화가 변화하였다.

남자복식- 마고자, 조끼,

여자복식- 저고리길이의 변화, 짧은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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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마기는 양복에서의 외투와 같은 역할을 하였으나, 겨울뿐 아니라 사계절을 입게 되어 아무리 더운 여름철이라도 맨저고리, 바지 차림으로는 다닐 수 없었으 며 반드시 두루마기를 입고 외출하였다.

(조끼) 조끼는 우리 고유의 복식에는 없었으나 양복이 들어오면서 양복의 조끼를 본떠

만들어 입게 되었다.

(마고자)

마고자는 저고리 위에 덧입는 옷으로 마괘라고도 하나, 마괘와는 형태도 다르고, 예전부터 있어왔던 대금형의 우리의 옷 가운데 한 가지이다. 대원군의 마괘 착용 이후 유행하였고 조선시대 말부터 마고자라고 불렀다.

바지 남자의 평상복인 바지는 별다른 변화 없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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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복식

- 한일합방이후 적의가 사라졌다.

- 저고리 길이가 길어지고 1950년을 전후로 짧아졌다. 품과 소매통은 넓어졌다. 배래선은 곡선화되고 옷고름과 동정의 나비가 넓어졌다.

- 퍼머넌트, 양산과 숄이 등장하였다.

- 한복 개량하여 양장으로 착용

명칭 유물 또는 벽화 영상매체

예복 조선시대 예복으로는 왕비의 적의를 비롯하여 활옷, 원삼, 당의와 이에 따른 스

란·대란 치마, 그리고 예복용 속옷으로 입혀졌던 무지기·대슘 치마가 있었다.

평 상 복

저 고 리

- 1920년대: 개화기 초에는 전도부인들에 의해 저고리 길이가 차츰 길어졌으나, 일반 부녀자들은 오히려 짧아졌다. 저고리 길이는 20cm 안팎이었고, 겨드랑이 밑도 1cm 정도로 매우 짧고 꼭끼는 형으로 이러한 경향은 1920년대까지 지속되 었다.

- 1930년대를 전후: 저고리 길이가 다시 길어져 겨드랑이 밑이 7~8cm까지 내려 갔고, 진동이나 소매 수구도 더욱 넉넉해졌으며, 특히 배래선이 뚜렷한 곡선을 이 루었다. 또한 고름도 넓고 길어졌으며 동정도 넓어졌다.

- 1940년대: 저고리가 배꼽을 덮을 만큼 되었다.

- 1950년을 전후: 차츰 또 짧아져 가슴 높이까지 올라갔으며 고름은 길게 달거나 브로치를 달기도 했다.

치 마

- 개화기를 통해 일반 부녀자들은 긴 치마를 입어 치마에 별 변화가 없었다. 다 만 사회 활동을 하는 여성들의 치마 길이가 짧아졌다.

(5)

- 외국 유학을 한 학생들 사이에서 짧은 통치마가 등장하여 점점 유행하였다.

1920년초에는 이화 학생들의 치마는 발을 덮을 정도였는데 그후 차츰 저고리가 길어지면서 치마는 무릎까지 올라갔다.

- 1930년대에는 세루가 한창 유행하여 치마와 저고리를 동색으로 만들어 입는 것이 유행했다.

- 1935년경부터는 저고리 길이가 다소 길어지면서 치마 길이도 많이 길어졌다.

- 일제시대에는 몸빼가 치마를 대신하기도 하고, 치마에 어깨허리를 달아 입었다.

속 옷

- 속적삼, 허리띠, 단속곳, 바지, 속속곳, 다리속곳, 너른바지 등의 속옷은 긴 저 고리, 짧은 치마에는 어울리지 않게 되면서 이러한 복잡하고도 불편한 속옷 대신 셔츠, 팬티 등 간편한 내의로 점차 바뀌게 되었다.

- 속적삼은 여자용 셔츠로 대체되고, 팬티를 입게 되자 속속곳과 다리속곳이 없 어지면서 팬티 위에다 단속곳, 바지를 입게 되었다.

- 특히 짧은 치마를 입던 신여성들은 바지, 단속곳 대신 ‘사루마다’라는 무명으로 만든 짧은 팬티를 입었고 어깨허리가 달린 속치마를 입게 되었다.

(양장)

-개화기 여성의 양장 착용은 1899년부터 서양 문물과 먼저 접할 수 있었던 고관 부인, 외교관부인, 유학생들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윤치오가 외국에서 유학하고 돌 아와서 부인에게도 양장을 권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당시 군인 이외에는 관리들도 양복을 입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이므로 여성의 양장은 경이로운 일이었다.

-이 시기 양장의 모습은 양어깨가 올라간 큰 소매에 길이가 길고 폭이 넓어 밑으 로 퍼진 스커트인 깁슨 걸 스타일로, 목에 리본을 달아 여성적으로 보였다.

여 학 생 복

1 9 3 0 년 대

-1930년대에는 점차적으로 양장 교복을 입었으며 흰색 블라우스에 남색 주름치 마를 많이 입었다.

-겨울에는 남색 또는 자주색 세일러복을 입었고 스웨터를 짜 입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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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 양 복 교 복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