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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위기와 실용주의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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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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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토 시 론

글로벌 위기와 실용주의 행정

정용덕|한국행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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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사이에 미국 행정학계는 20세기에 가장 큰 학문적 업적을 남긴 석 학 세 사람을 잃었다. 모두 80대 중반까지 왕성하게 학문 활동을 하다가 세상 을 하직했으니, ‘호상(好喪)’이라면 호상인 셈이다. 이 세 학자들이 수행한 행 정학의 접근법과 이론형성은 매우 독창적이어서 서로 다른 측면에서 현대 행 정학의 메카인 미국의 행정학 발전에 기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에서 독선적인 방법을 비판하고 실용적인 방법을 제안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나이 면에서 가장 위인 왈도(Dwight Waldo, 1913~2000) 교수의 경우, 행 정을 수행함에 있어서 다양한 상충적 가치들에 직면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 다. 분권과 집권, 많은 참여 대 적은 참여, 기대의 확대 대 감축, 합리성 대 감 성, 안정 대 변동, 자유 대 평등, 공동체주의 대 개인주의, 공(公) 대 사(私), 관 료주의 대 민주주의, 개발 대 보존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상충적인 가치 기 준 가운데 어느 한 가지가 더 바람직하다는 정답은 없으며, 행정이 직면하는 구조적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판단하여 정책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더 나아가, 행정도 정치과정 속에서 수행되기 때문에 행 정가 즉 관료들도 - 만일에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대안이 있다고 할지언정 - 스 스로의 정치적 시각과 이익을 정책결정에 더 반영하려고 노력한다고 보는 이 른바‘관료정치(bureaucratic politics)’개념을 지지했다.

1978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던 사이몬(Hervert A. Simon, 1916~

2001) 교수를 경제학자로 간주하거나, 심리학자, 인공지능학자, 컴퓨터공학 자, 통계학자로 알고 지내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이몬은 본래 행 정학자로서 학문생활을 시작했고,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기도 한‘행정행태론’

은 행정 의사결정에서 완전한 합리성의 확보가 불가능함을 입증한 저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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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이 지닌 능력의 한계로 인해 완전한 합리성보 다는 왠만큼‘만족할 만한(satisfising)’수준의 합리 성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 제 행정의 의사결정 과정은 순수 경제학자들이 가정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복수의 목표-수단 의 연결고리에 의해 구성되고, 다단계의 조직구조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완전 정보를 토대로 최적 대안을 선정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행정을 수행함에 있어 어떤‘과학적’원리를 적용하거나

‘합리적’기획에 의하기보다는 점증적으로 절충과 정을 거치면서‘만족할 만한’수준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차선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다.

90세의 나이에 금년 초까지도 인터넷으로 전 세 계에 널려 있는 친구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다가 서거 한 릭스(Fred W. Riggs, 1917~2008) 교수는 특히 제1세대 한국 행정학자들에게 처음으로 미국 행정학 을 소개하고 지도함으로써 초창기 한국의 행정학 발 전에 크게 도움을 준 학자다. 그는 다양한 나라들의 행정에 대한 비교 연구를 통해 미국 행정학의 외적 타당성을 높이는 데 크게 공헌했다. 행정이론이 과학 성과 보편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비교 연구가 필수적 이라고 보았다. 더 나아가, 나라마다 정치, 경제, 문 화 등에 차이가 있어 어느 한 가지 최선의 행정체제 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각 나라별로 처한 구조적 상황과 발전 단계를 감안하여 행정을 설계하 고 운영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보았다.

이처럼 왈도, 사이몬, 릭스 교수는 서로 다른 접 근법과 시각을 통해 연구를 수행했지만, 행정에서 유일의 최적 해답은 없다는 점을 강조한 점에서 공 통점을 지닌다. 이들은 행정은 여러 가지 환경적 배 경과 구조적 맥락을 고려하여 차선의 방법을 찾는

것이 오히려 최선이라고 간주함으로써, 미국의 현대 행정학 이론이 실용주의 철학에 기반을 두도록 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발생한‘9.11 테러사건’과‘허 리케인 카트리나’사태 등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점이나, 그후에도 위기관리 체계를 새로이 설계하는 문제를 두고 미국의 행정 실무계와 학계에서 계속해 서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세 행정학 대가들이 일생을 통해 형성해 놓은 지식과 지혜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 각이 들기도 한다. 행정의 문제 가운데에서도 위기 관리만큼 실용주의를 필요로 하는 사안은 없을 것이 다. 테러사건이 난 직후에는 미국의 위기관리 관련 행정기구들이 너무 산만하게 분권화되고 다원화되 어 있어 문제가 되었다는 분석에 따라 집권화와 획 일화를 시도했었다. 그러나 이 집권적이고 획일적인 위기관리 체제가 새로운 문제들을 유발하여 오히려 허리케인 사태에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 이 일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세계 냉전과 남북 분단을 배경 으로 한 국가형성과 빠른 산업화 과정에서 많은 사회 적 위험 요소들을 배태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짧은 기간에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폭발적으로 분출하 는 시민들의 참여 욕구와 그로 인한 사회갈등을 다원 적이고 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제도화가 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 있다. 이런 국 내적인 여건에 더하여 전 지구화(globalization)의 심 화로 인해 점점 더 복잡하고 예측 능력을 저하시키는 대형의 자연적 및 사회적 위기의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문제들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서 는 어떤 한 가지의 접근법보다는 종합적이고 실용적 인 접근법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