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달 15일 “선대 들의 애국심과 그 위대한 뜻을 이어받 아,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이루고 대한민 국의 새로운 도약을 이룩하는 것이, 우 리에게 부여된 소명”이라고 말하고 “저 와 정부는 중단 없는 혁신으로 지속적인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여 세계의 반열에 우뚝 설 수 있는 부강한 나라와 원칙이 바로선 투명한 나라를 건설해 나갈 것”
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2·4·5·6면>
박 대통령은 이날 서울 세종문화회관 에서 열린 광복70주년 중앙경축식에 참 석, 경축사를 통해 “지난 70년은 대한민 국을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참으로 위대한 여정”이라고 평가하고 “저는 이 제 그 불굴의 의지로 창조의 역사, 기적 의 역사를 써온 우리 국민들과 함께 대 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대장정’
에 나서고자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대통령는 특히 “광복 70주년을 맞 는 지금, 우리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국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 다”고 지적하고 “대한민국이 이러한 도 전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21세기 시대적 요구이자 대안 인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의 두 날개를 완
성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또 “금년은 광복과 함께 남북 분단 70년을 맞는 해이며, 진정한 광 복은 민족의 통일을 통해 비로소 완성될 것”이라고 말하고 북한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정부는 우리 국민의 안위를 위협하는 북 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히 대응할 것 이며 (북한의) 도발과 위협은 고립과 파 멸을 자초할 뿐”임을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그러나 만약, 북한이 대 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민생향상과 경제발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 라고 지적하고 “지금도 북한에게는 기 회가 주어져 있다. 북한은 민족 분단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도발과 핵개발을 즉 각 중단하고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 축의 길로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이산가족 문제만큼
은 아무리 정세가 어렵고 이념이 대립한 다고 해도, 인도적 견지에서 남북이 근 본적인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이 산가족들의 생사확인을 위해 우리는 6 만여 명의 남한 이산가족 명단을 북한 측에 일괄 전달할 것이며, 북한도 이에 동참해 남북 이산가족 명단교환을 연내 에 실현”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이외에도 박 대통령은 한반도의 자연 재해와 안전문제 공동 대응, 민간차원의 문화와 체육교류를 통한 민족 동질성 회 복, 역사유적 발굴조사와 겨레말 큰 사전 편찬 사업과 같은 학술·문화교류, 체육교 류 등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최근 역사왜곡을 일삼는 일본과 한일 관계와 관련, 박 대통령은 “어제(14일) 있었던 아베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는 우리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은 것 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가 아시아의 여 러 나라 국민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준 점과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한 사죄와 반성을 근간으로 한 역 대 내각의 입장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 을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밝힌 점을 주목”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조속히 합당하게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촉구하고 일본 측에 대해“비록 어려움이 많이 남아 있 으나, 이제 올바른 역사인식을 토대로 새로운 미래로 함께 나아가야 할 때”임 을 다시한번 상기시켰다.
이날의 70주년 광복절 중앙경축식에 는 박근혜 대통령과 5부 요인을 비롯한 국가 주요인사, 독립유공자와 유족, 주 한 외교단, 사회 각계 대표 등 3,000여명 이 참석했다.
2015년 9월 1일 화요일 (월간) 국가보훈처 ☎1577-0606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달 15일 광복70주년 중앙경축식에서 독립유공자에 대한 포상을 마친 후 참석자들과 함께 수상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평화통일과 대한민국 도약이 우리의 소명”
북측에 대화와 협력 촉구
“이산가족 문화 교류 노력”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 조속히 합당하게 해결해야”
박 대통령 광복70주년 경축사
광복 70주년을 맞는 지난 달 8월 15일 을 전후해 국내외에서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졌다.<관련기사 5면>
16일 독립기념관(천안)에서 열린 광복 70년 경축음악회는 소프라노 조수미, 바 리톤 고성현 등이 출연했으며 지역과 세
대를 아우르는 500여명의 합창단이 참 여해 더욱 커다란 감동을 선사했다.
13일부터 사흘간 서울 시내를 비춘 통 일의 빛은 기간 내내 국가를 위한 희생 과 감사의 의미를 담았다.
11일부터 10일간 서울스퀘어에서 국 민 참여로 만든 태극기를 주제로 한 미 디어 파사드, 11일부터 31일까지 서울역 에서 광화문까지 2.5km 거리에 815개의
태극기를 걸어 만든 태극기등(燈) 거리 도 축제 한마당의 분위기를 더 했다.
한편 해외 14개국에서는 현지 한인회 주관으로 광복70주년 경축식이 열렸다.
정부는 미국(LA, 하와이), 중국, 멕시코, 네덜란드, 스위스, 캐나다 6개국에는 광 복70년기념사업추진위 민간위원 등으 로 구성된 정부대표단을 파견했으며, 이 들 국가 외에도 러시아, 쿠바, 스페인, 일 본, 남아공, 호주, 아르헨티나, 몽골 등 모두 14개국의 경축식을 공식 지원했다.
해외·지방에서 다양한 광복 70년 행사
세계14개국서도 경축식 열려 음악회, 통일의 빛 등 성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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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8·25 남북합의’의 의미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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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군부대 위문 사회봉사활동 ‘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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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호국정신광복70년을 넘어 이제 통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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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생전남 완도 보길도
제844호 2015년 9월 1일 화요일 (월간)
2 종합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 을 맞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지난 70년은 대한민국을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참으로 위대한 여정이었 습니다.
저는 이제 그 불굴의 의지로 창조의 역 사, 기적의 역사를 써온 우리 국민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대장정’에 나서고자 합니다.
광복 70주년을 맞는 지금, 우리는 세 계적인 경기 침체와 국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저는 대한민 국이 이러한 도전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21세기 시대 적 요구이자 대안인 창조경제와 문화융 성의 두 날개를 완성시켜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앞으로 창조경제가 우리 경제의 견인 차 역할을 하면서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 확 신합니다. 앞으로 정부는 창조경제가 개 인과 지역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 도록 적극 지원해 갈 것입니다.
금년은 광복과 함께 남북 분단 70년을 맞는 해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광복은 민족의 통일을 통해 비로소 완성될 것입
니다.
지금 북한은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숙청을 강행하고 있고, 북한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우리의 거듭된 대화 제의에 응하 지 않으면서, 평화를 깨뜨리고 남북간 통합에 역행하고 있습니다. 핵개발을 지 속하고 사이버 공격을 감행해서 우리와 국제사회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민생향상과 경제발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북한에게는 기회 가 주어져 있습니다. 북한은 민족 분단 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도발과 핵개발을 즉각 중단하고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 구축의 길로 나와야 할 것입니다.
DMZ에 세계생태평화공원을 조성하 고 남북간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 면, 한반도 백두대간은 평화통일을 촉진 하고 유라시아 차원의 협력을 실현하는 새로운 축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북한은 도발과 위협을 내려놓고, 생명 과 평화의 한반도를 만드는 길에 동참하 기 바랍니다. 이산가족 문제만큼은 아무 리 정세가 어렵고 이념이 대립한다고 해 도, 인도적 견지에서 남북이 근본적인 해 결방안을 찾 아야 합니다.
이산가족들의 생 사 확 인 이 그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나 아 가 남
북 이산가족들이 금강산 면회소를 이용 하여 수시로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북한 의 협력을 촉구합니다. 한반도의 자연재 해와 안전문제도 함께 대응해 나갑시다.
민간차원의 문화와 체육교류를 통해 남과 북이 만나고 마음을 열어간다면, 민족 동질성도 서서히 회복될 것입니다.
남북간 장벽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 중 인 역사유적 발굴조사와 겨레말 큰 사전 편찬 사업과 같은 학술 문화 교류, 축구 와 태권도를 비롯한 체육교류는 중단 없 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통일 한국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촉진 하며, 세계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 지구촌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 입니다. 남북한의 장점을 결합하고, 한 반도 교통망을 대륙으로 연결해서, 유라 시아 대륙과 태평양 경제권을 연계함으 로써, 우리 기업들은 물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더 큰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평화통일의 꿈이 이루어진 광 복 100주년을 내다보며, 우리 국민 모두 가 함께, 통일을 준비하고 이루어 나갑 시다.
저는 지난 6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 년을 맞아 새로운 협력과 공영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밝힌 바 있습니다.
어제 있었던 아베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는 우리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역사는 가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살아있는 산증인들의 증언으로 살아있는 것입니다.
어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침략 과 식민지 지배가 아시아의 여러 나라 국민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준 점과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한 사죄와 반성을 근간으로 한 역대 내각의 입장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고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밝힌 점을 주목 합니다.
앞으로 일본이 이웃국가로서 열린 마 음으로 동북아 평화를 나눌 수 있는 대 열에 나오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앞으로 일본 정부는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공언을 일관되고 성의 있는 행동으로 뒷받침하여, 이웃나라와 국제 사회의 신뢰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자 문제를 조속히 합당하게 해결하기를 바랍니다. 비록 어려움이 많이 남아 있으 나, 이제 올바른 역사인식을 토대로 새로 운 미래로 함께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70년 전 오늘, 우리는 잃어버렸던 조 국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불굴의 의지 와 하나 된 마음으로 온갖 역경을 딛고 성취와 희망의 대한민국을 건설해 왔습 니다. 선대들의 애국심과 그 위대한 뜻 을 이어받아,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이루 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이룩하는 것이, 우리에게 부여된 소명입니다.
저와 정부는 중단 없는 혁신으로 지속 적인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여 세계의 반열에 우뚝 설 수 있는 부강한 나라와 원칙이 바로선 투명한 나라를 건설해 나갈 것입니다. 확고한 원칙과 유연한 대응으로 통일시대의 문을 열어 나가겠 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제70주년 광복절 경축사 (요지)
창조경제·문화융성이 21세기 시대적 요구 진정한 광복은 민족의 통일을 통해 완성
“중단 없는 혁신으로 통일시대의 문 열어나갈 것”
■ 대학원 장학
○ 신청대상 교육지원 대상인 국가유공자 및 순직·전 몰 유공자의 배우자, 고엽제후유의증 유공자(수당 대상자에 한함), 5·18민주유공자 및 사망·행방불명 유공자의 배우자, 특수임무유공자 및 사망·행방불 명 유공자의 배우자
○신청자격 대학원 석·박사과정(연구과정·해외유학 제 외) 재학자로서 직전학기 성적이 90점 이상인 자
■ 특수 장학
○ 신청대상 보훈법령에 따른 교육지원대상자 중 ‘장 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의 특수교육대상자로 특수학교 또는 일반학교에 재학중인 자
○ 신청자격 성적 제한 없음
■ 제외대상
- (대학원, 특수) 지원대상자, 보훈보상대상자 - (대학원) ’15년 이전까지 대학원 장학금을 3회
이상 지원받은 자
- (대학원) 신입생, 편입생 및 그 외의 사유로 직전학기 성적이 없는 자
- (대학원) 해당과정 수업연한 초과자, 논문학기 재학 중인 자
- (대학원) 해외 대학원, 국내·외 원격대학원 재학자
- (대학원) 동일한 학기에 대학교 수업료 면제지원 을 받고 있는 자
■ 신청서 접수기간, 접수처 및 제출서류
○ 접수기간 2015년 9월 1일(화)~14일(월)
○ 접수처
재학하고 있는 학교 소재지 관할 보훈(지)청 보훈과
○ 제출서류 (대학원 장학만 해당)
재학증명서 1부, 직전학기 성적증명서 1부, 수업료 납입증명서 1부, 소득 및 재산을 확인할 수 있는 자 료, 정보제공 동의서 1부.
※ 신청인원이 선발인원보다 많을 경우 선발기준에 따라 지급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접수처에 문의하거나 홈페 이지(www.mpva.go.kr / 보훈지원 / 지원안내 / 교육지 원)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15년 9월 1일
국가보훈처장
2015년 하반기 보훈장학 신청 안내
발행일 2015년 9월 1일 발행처 국가보훈처 발행인 박승춘 대표전화(정책·민원·상담) 1577-0606 편집·배포 044)868-07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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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963년 9월 19일 홈페이지 www.narasarang.kr
2015년 9월 1일 화요일 (월간) 제8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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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무박 4일, 43 시간의 숨 막혔 던 협상이 드디 어 타결됐다. 이 로 인해 비무장 지대에서 발생 한 북한의 목함 지뢰 및 포격도 발과 이에 대응 한 우리 군의 대 북확성기 방송 재개와 응징 포사격으로 인해 발생한 한반도의 긴장이 일단 누그 러지게 됐다. 6개항의 합의문에는 도발 에 대한 북한의 사과와 사실상의 재발방 지를 위한 내용과 함께 남북한이 미래를 향해 나가자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로써 박근혜 정부 2년 반 동안 그리고 김정은 정권 3년 반 동안 계속됐던 남북한 간의 적대적 관계가 화해 및 협력의 관계로 전환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크게 4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 의 신념에 찬 리더십 때문이었다. 평소 부터 원칙을 자신의 철학으로 간주해 온 박대통령은 이번 협상 대표단에게도 이 런 원칙을 강조했다. 북한이 도발하면 협상을 통해 보상하는 이런 악순환을 끊 고 시시비비를 철저히 가려야 한다는 것 이었다. 보상을 전제로 협상을 해서는 안 되며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사과와 재 발방지 약속을 받아내라는 것이었다. 심 지어 북한이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하 지 않으면 협상이 결렬되어도 괜찮다는 의지를 수석비서관 회의를 통해 밝혔다.
그 결과 합의문 제2항에 ‘북한’이 사과 한다는 ‘유감’이라는 단어가 명시됐다.
또한 제3항은 남북한 간에 비정상적인 상태가 발생하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 개하겠다는 내용으로써 사실상의 재발 방지를 위한 조항이다. 따라서 이번 합 의는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용인하지 않 겠다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빚어낸 결과 였다.
두 번째는 똘똘 뭉친 국민의 단결력 덕분이었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이 국군 들이 탈영하고 시민들은 전쟁에 대비하 여 사재기에 급급하다는 허위 선전을 하 기 시작했다. 이런 허위선전에 국민들이 분개했다. 접경지역 주민들은 대피소에 서 생활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번 에는 북한에게 확실하게 본때를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네티즌들은 동원에 대비하여 예비군 복을 챙기는 모습을 인터넷에 올리기 시 작했고 전쟁불사론까지 외치기 시작했 다. 더 이상 북한을 용서할 수 없으며 단 단히 버릇을 고쳐 놓아야 한다는 댓글들 이 홍수를 이뤘다. 사실 그 동안 남북한 간에 충돌이 있으면 늘 남남갈등이 일어 나거나 또는 정부를 못미더워하는 분위 기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번에는 달랐다. 국민들이 똘똘 뭉쳐 하 나의 목소리를 냈다.
세 번째는 우리 군의 굳건한 전투준비 태세 덕분이었다. 2010년 천안함이 폭침 되고 연평도에 대한 북한의 포격 도발이 있은 후 해군과 해병대는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우리 장병들은 ‘북한이 한
번 만 더 도발하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훈련에 임했다. 이번에 목함 지뢰가 터져 2명의 부사관이 부상 을 당했지만 이들은 두 다리가 절단된 상태에서도 “빨리 돌아가 부대원들과 합류하고 싶다”고 했다. 심지어 전역명 령을 받은 70명에 가까운 병사들은 “부 대원을 두고 홀로 전역할 수 없다”고 전 역 연기 신청을 했다.
이런 장병들의 정신력에 힘입어 국방 부는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라는 칼을 빼 들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 발 이후에도 머뭇머뭇하다가 결국 실행 하지 못했던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했 던 것이다. 북한의 포격 도발에 대해 우 리 군은 적 GP 부근에 29발의 포탄을 아 주 정확하게 쏟아 부었다. 우리 군의 정 확한 포사격은 북한군의 간담을 서늘하 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포는 부정확하고 기동조차 어려운 고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 다. 이것이 바로 북한이 서둘러 회담에 임할 수밖에 없었고 또 우리의 요구사항 이 합의문에 반영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이다.
네 번째는 튼튼한 한미동맹의 힘이었 다.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는 어려움을 당했을 때 확연히 드러난다고 한다. 중
국은 중립을 지켰지만 미국은 즉각 지원 에 나섰다. 물론 중국이 북한 편을 들지 않고 중립을 지키면서 다양한 채널을 통 해 외교적으로 북한을 압박한 것은 사실 이다. 또한 한만 국경선에 장갑차 등을 기동시킴으로써 군사적으로 북한을 압 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동맹인 미국의 지원과 비교할 바는 못 된다. 미국은 한미간의 국지도발공동대응계획에 따라 우리 군 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북한군의 움직임 을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감시태세 인 워치콘(Watch Condition)을 상향조 정했고 포병 전력을 전개시키기도 했다.
또한 상황 변동에 따라 전략자산을 전개 시키기로 했다.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스텔스 전투기인 F-22, B-52전략 폭격 기, 스텔스 폭격기인 B-2는 물론 핵추진 잠수함 전개까지 논의했다. 결국 이런 튼튼한 한미동맹의 의지가 8·25 남북합 의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훈훈한 미담사례 도 많이 생겼다. 병사들의 전역 연기 소 식을 접한 기업들이 이런 병사들의 용기 와 애국심이 회사의 애사심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들을 우선적 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이번 8·25 남북 합의는 그 동안 긴장되었던 남북 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시켜 통일대 박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초석을 놓았다 는 데 의의가 있다. 지도자의 리더십, 국 민의 단결된 힘, 굳건한 전투준비태세, 그리고 튼튼한 한미동맹에 힘입은 바 크 다. 8·25 남북합의를 계기로 다양한 남 북회담이 열리게 될 것이고 민간교류가 활성화될 것이며 이산가족이 상봉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이런 약속을 얼마나 신뢰감 있게 잘 지킬지가 관건이 다. 합의문을 또 뒤집을지 두 눈을 부릅 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8·25 남북합의’의 의미와 전망
“다양한 회담, 교류 기대…이행 지켜보자”
김 열 수 성신여대 교수 국제정치학
<합의 어떻게 가능했나>
1. 대통령의 신념에 찬 리더십 2. 똘똘 뭉친 국민의 단결력 3. 군의 굳건한 전투태세 4. 튼튼한 한미동맹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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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4호 2015년 9월 1일 화요일 (월간)
4 정책
국가보훈처는 제70주년 광복 절을 맞아 중국과 러시아에서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국민대 표회의 위원 등으로 활약한 전 병현 선생 등 257명의 순국선열 과 애국지사를 포상했다.
이번에 포상받는 독립유공자 는 건국훈장 151명(독립장 1, 애 국장 61, 애족장 89), 건국포장 41명, 대통령표창 65명으로, 국 내외에서 한국 독립운동을 지 원한 외국인 10명도 포함됐다.
훈·포장과 대통령표창은 제 70주년 광복절 중앙경축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 식장에서 유족에게 수여됐다.
이로써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분은 1949년 포상이 시작 된 이래 건국훈장 1만407명, 건 국포장 1,132명, 대통령표창 2,658명 등 총 1만4,197명을 기 록하고 있다.
다음은 정부포상자 명단.
■건국훈장 독립장(1명) 전병현(임시정부)
■건국훈장 애국장(61명) 고덕수(만주방면) 권경대 권 성삼(의병) 김기보(국내항일) 김두산(의병) 김봉섭(국내항일) 김상경(3·1운동) 김선여 김수동 김수만 김영식(의병) 김용봉(만 주방면) 김일수 김자화 김재섭 (의 병) 김진성(3·1운동) 김홍록 (국내항일) 도복렬(의병) 마랭 Louis Marin(독립운동지원) 문 홍순 박문도 박영오 박우일 박
학실 설성삼 소윤명 손명선(의 병) 송성호(3·1운동) 안인곤(국 내항일) 양성언 오경화 오명선 오봉칠 오성현 윤팔룡(의병) 이 계환(3·1운동) 이기섭 이남용 (의병) 이동욱(만주방면) 이두 만 이사언(의병) 이성준(만주방 면) 이신산 이영성(의병) 이원 주(만주방면) 이재향(의병) 이 형술(만주방면) 이호습 이화집 임한조(의병) 정종수(만주방면) 조운이 채동환(의병) 최도인 (3·1운동) 최성갑(의병) 최용상 (만주방면) 최천덕(의병) 톰킨 스 F.W. Tomkins(독립운동지 원) 한재명(미주방면) 한태훈 (만주방면) 홍광여(의병)
■건국훈장 애족장(89명) 강국두(국내항일) 강복선 강 영학 곽양일(의병) 구용칠(국내 항일) 권춘경(의병) 김경봉(만 주방면) 김도헌(3·1운동) 김봉 준(국내항일) 김봉학 (의병) 김 석순(국내항일) 김순복 김영화 김옥엽 김완이 김재규 김재문 김재용 김재화(의병) 김정일 김 종건(국내항일)김춘일(의병) 김 필수(국내항일) 김호경(의병) 김홍균(미주방면) 김화춘(의병) 남상빈(국내항일) 남윤서(의병) 노리스 G.W. Norris(독립운동 지원) 문종언(3·1운동) 문취방 (국내항일) 박병수 박선경 박성 창(의병) 박수문(3·1운동) 박용 태 박판동(의병) 방주익(국내항 일) 배복룡 배팔봉(의병) 벡
S.A. Beck (독립운동지원) 서병 순 서용섭 송수만(의병) 송시옥 (만 주 방 면 ) 스 토 리 Douglas Story(독립운동지원) 스펜서 S.P. Spencer(독립운동지원) 신 달선(중국방면) 신우균 신원선 신현명 신홍균(의병) 신흥남 (3·1운동) 안병칠(국내항일) 안 정수(미주방면) 양용태(만주방 면) 양제현(미주방면) 오경춘 오성운 유태규(의병) 이경식(만 주방면) 이봉기 이상학 이성숙 이성순 이소선(의병) 이영백 (만주방면) 영순(미주방면) 이 이봉(의병) 이장옥(3·1운동) 이 정현(국내항일) 이형연(만주방 면) 이홍선 (국내항일) 인문환 임태원(의병) 장두성(국내항 일) 장한순 전대원 전덕진 정기 옥 조봉현(의병) 조승연(학생 운동) 지갑진 진홍대 추재엽(의 병) 한성선(미주방면) 현창주 (만주방면) 화이팅 H.C. Whit- ing(독립운동지원) 황보영주 (미주방면)
■건국포장(41명)
구타펠 M.L. Guthapfel(독립 운동지원) 권영복(미주방면) 김 봉률 김성조(의병) 김세원(미주 방면) 김영근(의병) 김정식(미 주방면) 김천복(의병) 김치일 (미주방면) 김흥룡 나응완 박재 두 박정숙(의병) 박충섭(미주방 면) 박판기 박홍석(의병) 송상 익(만주방면) 안교형 안순경(의 병) 양순진(미주방면) 윤응선
(의병) 윤응호 이명원(미주방 면) 이민태(3·1운동) 이성례 이 운경(미주방면) 이윤희(일본방 면) 이응목 이인상 이종오(미주 방면) 이진해(국내항일) 임병일 임성실(미주방면) 장남일 정판 성 조성학(의병) 주진홍(3·1운 동) 최창선(미주방면) 크롬웰 J.H.R. Cromwell 토마스 C.S.
Thomas(독립운동지원) 하문덕 (미주방면)
■대통령표창(65)
강경숙 강흥식(미주방면) 고 적희(국내항일) 공인덕(미주방 면) 김경철(3·1운동) 김관유(미 주방면) 김기현(국내항일) 김난 줄(3·1운동) 김병양(국내항일) 김복선(3·1운동) 김봉안(의병) 김봉애 김응호(3·1운동) 김재병 (국내항일) 김제선(미주방면)
김준대(의병) 김천문 김태식 김 태진(미주방면) 김한정(국내항 일) 김해중월(3·1운동) 김형기 (의병) 김화용 김효순(3·1운동) 김희철(미주방면) 박달홍(3·1 운동) 박만채(국내항일) 박영제 (미주방면) 박정수(3·1운동) 방 영화(미주방면) 서성국(의병) 서춘동 손동선 송근주(미주방 면) 송금희 송명진(3·1운동) 송 방섭(의병) 송상대 송오균(미주 방면) 송혜덕(3·1운동) 신마실 라(미주방면) 안영즙 안택수 (3·1운동) 유대붕(국내항일) 이 도신 이명수 이성철(3·1운동) 이승갑(의병) 이옥수(3·1운동) 이진섭(미주방면) 이치건(국내 항일) 이한영 장득세 전인갑 (3·1운동) 정상목(국내항일) 정 치석(의병) 조종문 조진환(미주 방면) 차남진(국내항일) 차영천 (미주방면) 최병길(의병) 허완 (미주방면) 홍복용(3·1운동) 홍 순완 홍천식(국내항일)
70주년 광복절, 독립유공자 257명 포상
국가유공자 생활·복지실태조사 실시
보훈정책 수립을 위한 국가유 공자 생활 복지실태 조사가 이 달부터 11월 말까지 진행된다.
국가보훈처는 국가기본법 제 16조에 근거한 보훈정책 수립용 통계자료 작성을 위해 전국의 보훈대상자 1만명을 대상으로 생활실태조사를 실시한다고 밝 혔다. 조사는 성별, 연령, 학력, 가족사항 등 보훈대상자의 일반
특성에 관한 사항 외에 주거상 황, 가계지출, 소득, 자산, 부채 에 관한 사항까지 광범위하게 포함되며 개인의 응답내용은 엄 격한 비밀을 보장하는 한편 보 훈정책수립을 위한 통계목적으 로만 이용된다. <하단공고 참조>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보훈 정책 수립의 중요한 자료가 될 조사이므로, 대상자께서는 조 사에 적극 협조해주실 것”을 당 부했다.
“생활·복지실태조사에 협조를”
1만명 대상 방문 조사
국가보훈처에서는 2015년 9월부터 11월까지 보훈대상자 1만 가구를 직접 방문하여 아래와 같 이 생활 및 복지 실태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보훈정책 수립에 활용코자 하오니, 보훈대상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2015년 9월 국 가 보 훈 처 장
■ 조사목적
○ 국가보훈대상자의 생활 및 복지실태와 경제 여건 등을 조사하여 국가보훈정책 수립을 위 한 통계자료 작성
■ 법적근거
○ 국가보훈 기본법 제16조(국가보훈정책 수립 을 위한 조사)
■ 조사대상
○ 국가보훈처에 등록되어 있는 국가보훈대상자 중 표본 추출인원 10,000명
- 조사대상은 거주지역, 등록대상 구분, 유공자 와의 관계 등을 고려하여 선정
■ 조사방법
○ 조사기관으로 선정된 ‘한국갤럽조사연구소’ 전 문 조사원이 해당 가구를 직접 방문하여 조사
■ 조사기간
○ 2015년 9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 조사내용
○ 국가보훈대상자 개인의 생활 및 복지실태에 대한 개인조사 및 가구현황에 대한 조사 - 성별, 연령, 학력, 가족사항 등 국가보훈대상자
의 일반특성에 관한 사항
- 가구 일반사항, 주거상황, 가계지출, 소득, 자 산, 부채에 관한 사항
※ 위 조사내용에 대한 개인의 응답내용에 대하 여는 「통계법」 제33조 및 제34조 규정에 따라 엄 격히 비밀이 보호되며, 보훈정책수립을 위한 통 계목적으로만 이용됨
조 사 항 목
가구원수, 보훈대상자와의 관계, 가구주와의 관계, 성별, 출생연도, 혼인상태, 교육수준, 상이종류·등급, 장애종류·등급, 공적연금가입현황, 건강보험·의료 급여가입현황, 기초보장수급현황, 의료급여수급현황 등
주거유형, 점유형태, 주거위치, 주택가격(전세금·월세보증금 포함), 월세액, 지대 등 주거비, 식료품비, 교육비, 의료비, 교통비, 통신비, 세금, 공적연금, 가구 간 이전 소득 등
근로소득, 사업소득, 재산소득, 공적이전소득, 사적이전소득, 소유부동산, 금융자산, 자동차 등
부채형태 및 금액, 이자 지출액 등
건강상태, 의료기관 이용현황, 장기요양보험급여 이용현황 등
경제활동 참여 여부, 하는 일, 직위, 일에 대한 만족도, 사회보험 및 민간보험 가입여부, 향후 경제활동 희망 여부 등
보훈정책 서비스 인지여부, 중요도, 필요성, 경험여부, 만족도, 노인 및 장애인 대상 서비스 이용 경험 등
여가 및 문화생활 관심비중, 여가생활종류, 여가만족도 및 불만족 이유 등 노후를 위한 준비여부, 노후를 위한 필요금액, 노후준비에 부담하는 금액, 거주희망지역, 노후에 필요한 희망서비스, 사망 시 안장유형 및 지역 등 자녀, 부모와의 도움정도(정서적·경제적 도움), 가족관계 및 의사소통정도 등 분 야
가구 일반사항
주 거 가계지출
소득 및 자산 부 채 보건의료 경제활동
정책서비스 문화·여가 노후보장 가족관계
■ 실태조사 세부 항목
문의처 : 보훈상담센터(☎1577-0606)
2015년 9월 1일 화요일 (월간) 제8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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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국가보훈처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지난 달 10일부터 16일까 지 국외 거주 독립유공자 후손 을 초청해 다양한 프로그램의 행사를 가졌다.
조국에 대한 자긍심과 한민 족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기 위 해 마련된 이번 행사에는 한국 광복군으로 활동하다 일본에서 거주하고 있는 생존 애국지사 1
명과 독립유공자 14명의 후손 23명이 초청됐다.
이들 애국지사와 후손들은 10일 입국해 다음날 대전현충 원 참배에 이어 독립기념관을 관람하고 12일에는 서대문 역 사공원을 방문했다.
13일과 14일에는 DMZ와 대 한민국역사박물관, 전쟁박물관 을 둘러보며 대한민국의 역사 와 분단현실, 역동적 발전상을 확인하고 선조들의 조국애와 희생정신을 재확인했다.
14일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베푼 공식 만찬에 이어 15일 광 복절에는 역사적인 광복 70주 년 경축식장에 참석함으로서 1 주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한편 박 처장은 14일 한강 프 라디아에서 열린 공식만찬에 참석해 “조국독립을 위해 개인 의 삶을 바치신 선열들의 고귀 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주 권국가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으며, 광복 70년이 지난 오 늘 우리 대한민국은 경제발전 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자랑 스러운 나라가 됐다”며 “정부
는 조국독립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기여하신 분들을 영원 히 기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 는 데 최선을 다해나갈 것이며, 나아가 선열들이 꿈꾸셨던 위
대한 이상과 가치를 완성시켜 나가기 위해 제2의 광복인 한반 도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 혼 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 했다.
“제2의 광복 통일 위해 혼신의 노력”
독립유공자·후손 초청 광복절 경축식 등 참석
국가보훈처는 을지연습 기간 중인 지난 달 19일 국가보훈처 청사에서 보훈단체 간부와 주요 보훈처 공무원이 참석한 가운데
‘전시 국가수호·응전의식 고취’
토론회를 가졌다. <사진>
이날 토론회에서 박승춘 국 가보훈처장은“금년 을지연습 은 다른 때와 달리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준비해야 하며, 국
가보훈처 행정시스템이 신속 하게 전시체제로 전환되고 행 정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앞으로 호국보훈단체와의 을 지연습 협조 외에도 다양한 교 류협력을 통해 호국 보훈의식 함양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 국가수호·응전의식’토론
을지연습 보훈단체 참여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14일 국외거주독립유공자 후손 초청 만찬에서 레이첼 사씨에게 ‘이달의 독립운동가’ 기념패를 전달하고 있다.
오는 4일 한·중 공동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재개관 기념식이 열린다.
상하이임시정부는 국내외 8
개 임시정부 중 첫 통합 임시정 부로 13년간 유지돼 가장 오랜 기간 활동했다.
그동안 임시정부청사는 전시 물의 노후화에 따라 전시관 전 면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돼 지 난 2010년부터 사업이 추진됐 으나 여러 사정으로 지연되다
금년 광복 70주년을 계기로 국 가보훈처와 중국 상하이 정부 간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전면 개선 및 청사주변 환경정리 등 을 추진해왔다.
이에 따라 임시정부청사는 중국 내 8개 임시정부 전체를 아우르는 전시물까지 전면 개
선했다.
정부는 이번 임시정부청사의 재개관으로 중국 내 8개 임시정 부 활동을 종합적으로 기념하 고 전시함으로써 독립운동 관 련 역사교육에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 황푸구에 있는 임시청사 건물은 3층짜리 벽돌 건물로 작년 4월 박승춘 국가보 훈처장 상하이 방문당시 황푸
구청장과의 조찬 자리에서 논 의를 시작해 지난해 9월 실무협 의를 마쳤다.
올해 6월 전시설계안이 최종 확정됐으며 기념관 공사와 소 요예산 전액은 중국정부가 부 담했다.
한편 4일 개최될 재개관 기념 식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박승 춘 국가보훈처장이 직접 참석 할 예정이다.
‘광복70주년’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재개관
양국 협력, 시설 전면 개선
박 대통령 개관식 참석
제844호 2015년 9월 1일 화요일 (월간)
6 광복70주년 화보
광복에 이어 통일로 향하는 ‘하나된 마음’을 확인하다
광복 70년의 열기가 넘쳐났던 8월이다. 전국에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던 태극기와, 밤을 수놓았던 ‘통일의 빛’, 젊은이들이 곳곳에서 나라사랑의 의지를 보였던 플래시몹까지. 한 반도는 광복에 이어 새로운 통일로 향하는 에너지로 충일한 한 달을 보냈다.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지역과 세대 구분 없이 하나가 됐던 그 현장을 만나본다.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방한한 국외거주 독립유공자 후손들 이 11일 오전 대전 국립대전 현충원을 참배한데 이어 애국 지사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16일 오후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에서 열린 광복70년 경축음악회 에서 멋진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다. (사진 위) 8월 한달간 국립대 전현충원을 밝힌 대형 LED태극 기.(사진 오른쪽)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보훈정신, 호국정신, 통일의 꿈을 상징하는 통일의 빛이 서울하늘을 비치 고 있다. (사진 왼쪽) 제70주년 광복절을 나흘 앞둔 11일 오후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 815개의 태극기 등이 걸려 빛 을 밝히고 있다. (사진 오른쪽)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연출한 태극기 플래시몹.
최근 튼튼한 안보와 국민 호 국정신 함양이 어느 때보다 중 요하다고 판단되는 가운데 보 훈단체들이 군 부대 위문 등을 통한 국군의 사기진작과 각종 사회봉사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보훈단체 관계자들은 “이러 한 다양한 활동들이 우리 국민 의 호국정신 함양은 물론 이웃 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국 가유공자 단체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커다란 효과를 얻 을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국군 사기진작 위한 각급 군부대 위문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회 장 최해근)는 지난 5월 26일 최 전방 부대인 6사단과 7사단 부 대를 방문했다.
위문단은 이날 최전방에서 국토방위를 위해 애쓰는 장병 을 찾아 위문품과 위문금을 전 달하면서 장병들을 격려했다.
유족회는 수시로 최전방 부 대를 방문해 회원들의 애국심 과 국가안보 의식을 고취하는 한편 장병들에 대해 국가안보 의 중요성과 애국심을 강조하 는 행사를 해오고 있다.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회장 김병익)는 지난 4월 30일 최전 방 태풍전망대를 관리하고 있 는 25사단 부대를 방문해 국토
방위를 위해 수고하는 장병을 위문하고 위문품과 위문금을 전달했다.
이날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 는 6·25참전 전적비와 유엔군 충 혼비에 참배한 후 당시 재일학
도의용군의 구국정신과 애국심 을 되새기며 장병들에게 재일학 도의용군의 자발적 참전의 의미 등에 대해 설명해 주기도 했다.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회장 이종열)는 지난 5월 14,15 양일간 속초 정보부대를 방문하 고 국토수호에 여념이 없는 부 대원들을 위문하고 격려했다.
임직원과 회원 125여명이 참 여한 이번 위문에서는 정보업무 의 최일선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군 장병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한편, 부대장으로부터 최근의 안보현실에 대한 설명을 듣는 뜻깊은 시간을 갖기도 했다.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회장 박종길) 경기 양주시지회는 지 난 8월 13일 경기도 양주시 제 26기계화사단 방공대대를 방문 해 위문품을 전달하고 장병들 을 격려했다.
이 날 전방부대 방문은 무더 위 속에서도 묵묵히 국토방위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국
군장병들의 노고를 위로 격려하 기 위하여 마련됐으며, 회원들 은 국군장병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위문품을 전달한 데 이어 부대 생활관 등을 둘러보며 장 병들과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 지역사회 큰 호응
대한민국상이군경회(회장 김덕남)는 지난 6월 3일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5개 보 훈병원을 방문해 나라를 위해 헌신하다 상이를 입고 입원 중 인 환자들을 만나 위문품을 전
달하고 위로했다.
김덕남 회장은 중앙보훈병원 을 직접 방문해 입원 중인 회원 들을 격려하는 한편, 병원 임직 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회장 왕성원)는 지난 7월 16일 수원 보훈복지타운을 방문해 전몰군경미망인들을 위로, 격
려하면서 위문품과 위문금을 전달했다.
미망인회는 국가를 위해 희 생하고 홀로되신 미망인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복지타운을 방문해 위문, 격려하고 있다.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회장 이종열)는 지난 5월 19일 부터 21일까지 중앙회 임직원 과 전국 지부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독도지킴이 퍼포먼스와 독도 인근 수중정화 활동을 실 시했다.
애국 보훈단체로 일본의 독 도 영유권 주장에 맞서 지난 07 년부터 시작한 독도지킴이 및
수중정화 활동은 올해로 9회째 를 맞고 있다.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회 장 우용락)는 지난 8월 6일부터 베트남 다문화가정 지원 행사 의 일환으로 ‘베트남 결혼 이주 여성 친정집 나들이’ 행사를 가 졌다.
한국국제교류 재단의 민간외 교 우수 사업으로 선정된 이 행 사에는 베트남 결혼 이주여성 10가족 37명이 참가했으며, 참 석자들은 9박 11일간 자신들이
나고 자란 고향에서 가족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광복회(회장 박유철) 제주특 별자치도지부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지난 3월 12일 서귀포시 한 남리 일대에서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와 서귀 포시산림조합 등과 공동으로
‘광복세대와 미래세대의 만남’
이라는 주제로 명품 숲 조성을 위해 나무심기 행사를 열었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에 광복 세대와 미래세대가 함께하기 위 해 마련한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1,000 여 그루의 제주토종 왕벗 나무, 개벗나무 등을 심었다.
2015년 9월 1일 화요일 (월간) 제844호
7
단체
보훈단체, 군부대 위문 사회봉사활동 ‘활발’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회 장 최해근)는 대학에 재학 중인 6·25전쟁 전사자의 손자녀를 대 상으로 보훈가족장학금을 지급 한다. 장학금은 일반대생 90만 원, 전문대생 70만원으로 전체 지급액은 1억원이다.
장학금은 1955년 6월 30일 이 전에 전사하거나 순직자의 손
자녀로 국내 대학 재학생으로 직전 학기 평균성적 70점(신입 생은 해당 없음) 이상이며 가구 소득 수준 1~7분위자(국가보 훈처 기준)에게 지급된다.
올해 2학기 장학금 신청은 9 월 1일부터 14일까지 전몰군경 유족회 시·도지부 사무실로 하 면 된다. 자세한 사항은 유족회 시·도지부나 서울의 중앙회 회 원부(02-782-2046)로 문의.
전몰군경유족회
6·25 전사자 손자녀에 장학금
위문·봉사 확대, 호국정신 함양 큰 힘
우리나라 국민의 안보의식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국가보훈처가 지난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나 라사랑 의식조사’에 따르면 국 민 10명 중 6명이 우리나라 안 보에 대해서 심각하다고 인식 하는 등 지속적인 북한의 도발 등으로 한반도 안보상황에 대 한 인식이 더욱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쟁이 나면 참여하겠 다고 밝힌 20대가 78.9%에 이르 는 등 2030세대의 국가 안보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으로 나타 났다. 이 같은 생각은 최근 북한 이 대북 확성기를 향해 포격한 사건 이후 88명의 장병이 전역 을 연기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또 보훈처 조사에 따르면 우 리나라 안보수준에 대해 ‘심각 하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62.8%
로 2013년에 비해 11.3%p 늘어 났다. 전쟁 발발 시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고 응답한 비율도 국
민 10명 중 7명(71.0%)에 이른 다. 응답자 중 81.2%는 국가 위 기 시 극복을 위해 동참하겠다 고 응답했다.
한편 우리나라의 역사가 자 랑 스 럽 다 고 응 답 한 비 율 은 70.9%에 이른다. 그 중 20대가 82.4%로 가장 높았고 30대의 비 율도 67.2%로 비교적 높게 나타 났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그간 상대적으로 낮았던 젊은 세대 의 안보의식이 강화된 것은 천 안함, 연평도 포격사건 등 북한 의 지속적 도발과 함께 다방면 의 ‘호국안보교육’ 영향이 컸 다”고 분석하고 있다.
20대 응답자 80%가
“전쟁나면 참전하겠다”
국민 ‘안보의식’ 더 단단해졌다
국립묘지에 국화꽃 한 송이를…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 회원들이 최전방 태풍전망대에서 장병을 위문 하고 있다.
상이군경회 임원들이 중앙보훈병원을 방문, 위문품을 전달하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제844호 2015년 9월 1일 화요일 (월간)
8 이 시대의 호국정신
광복 70년, 한 국은 6·25 전쟁 의 참화를 극복 하고 세계가 인 정하는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 다. 한국은 원조 를 받던 나라에 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전환한 최초의 사례이며,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신생국 중 민주화와 시장화를 동시에 성 공시킨 거의 유일한 국가에 해당한다.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자랑 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구조적인 경제위 기와 상시적인 식량난에 시달리는 최빈 국으로 전락했다. 3대 세습에 이르는 독 재와 가혹한 인권탄압으로 북한은 전 세 계에 불량국가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 다. 광복 70년, 남북한의 자화상이다.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의 성공적인 발 전의 이면에는 분단체제라는 구조적인 제약이 자리 잡고 있다. 분단으로 인해 우리는 매년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지출 해야 한다.
남남갈등을 포함하여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인 사회갈등 구조 역시 분단체 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게다가 그 동안 한국의 발전을 책임졌 던 성장모델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한국은 이미 고령화 저성장 시대에 접어 들었다. 청년세대는 심각한 실업문제에 시달리고 있으며, 노령인구들은 준비되
지 않은 노후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국 가발전의 동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통일로 대륙의 정체성 회복 가능 그런 면에서 답은 바로 통일이며, 따 라서 ‘통일대박론’은 허구가 아니다. 중 국경제의 발전을 토대로 유라시아 대륙 은 역동적인 변화의 용틀임을 하고 있 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통해 아시아 대륙의 각국과 고속도로와 고속철로 연계하는 계획을 야심차게 추 진하고 있으며, 중국에서 출발한 기차 는 이미 유럽까지 운행 하고 있다. 러시 아는 시베리아와 극동개발을 새로운 국 가발전의 동력으로 삼고자 신동방정책 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다. 아시아 지 역에 시베리아와 극동의 풍부한 지하자 원의 수출을 확대하고 시베리아 횡단철 도를 이용한 물류체계의 활성화가 핵심 이다. 이를 위해서 한반도까지 이어지는 가스관과 철도 네트워크의 형성이 필요 하다.
‘유라시아 대륙’의 개념은 유럽과 아 시아를 합친 개념이다. 이 거대한 유라 시아 대륙이 지금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의 국가발전 전략 은 모두 한반도라는 출구를 필요로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 브는 바로 이점에 주목하고 있다. 대륙 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은 국가의 완성 과 아울러 새로운 국가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륙의 주변부였던 지난 5000년과 달
리 한국은 거대한 유라시아 문명권과 태 평양 문명권을 연계하는 지정학적 위치 에 놓여 있다. 남북이 통일될 경우 유라 시아와 태평양의 문물은 한반도라는 관 문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아시아 각국 을 고속도로로 연결하는 야심찬 ‘아시안 하이웨이’ 계획의 출발점이 바로 부산이 며, 경부고속도로는 아시안 하이웨이 1 호선 이라는 명칭을 부여받고 있다. 통 일이 되면 한반도는 유라시아와 태평양 을 연계하는 허브가 될 것이며, 이로 인 해 발생하는 국가적 이익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70주년 광복절 기념 사를 통해 ‘통일이 진정한 광복’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통일에 대한 정책적 의지를 밝혔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 는 확고한 응징의사를 밝혔지만 최근 북한의 DMZ 지뢰도발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북한에 대해 협력과 대화에 나설 것을 강조했다. 한국의 눈부신 발 전에도 불구하고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한 진정한 광복일 수 없으며, 엄밀한 의 미에서 민족국가의 완성이라 할 수 없 기 때문이다.
신뢰프로세스로 북 변화 유도해야 통일은 선택이 아니며, 우리 시대에 반드시 실현해야할 과제이다. 통일을 통 해서 분단으로 인해 발생하는 천문학적 인 분단비용을 해소함과 아울러 새로운 국가발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 70년간 분단으로 인해 한국의 대외교역 은 오로지 해운과 항공을 통해서만 가능 했으며, 대륙국가이면서도 섬과 같은 한 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통일이 되면 서울에서 출발한 화물열 차는 유럽의 끝까지 단숨에 도달한다.
철도운송은 해운에 비해서 시간과 비용 등 모든 면에서 경제적임은 물론, 그 동 안 접근이 어려웠던 중앙아시아의 풍부 한 지하자원 시장과도 직접적인 교류가 가능해진다. 무엇보다 중국의 동북3성 개발과 러시아의 시베리아 극동개발, 그 리고 북한 지역 재건사업의 융합될 경우 동북아는 세계경제를 견인하는 새로운 엔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유라 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연계하는 한반도 는 역동적인 변화의 중심에 서게 될 것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에 대한 여건 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구조적 위기 에 직면한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통일보 다 체제유지에 급급한 실정이며, 미국과 중국 등 주변 강대국들은 한반도 통일의 불확실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통일에 대한 우리의 강력한 의지이다. 광복 70 년 동안 우리가 이룩한 성과들을 바탕으 로 민족분단이라는 비정상성을 해소하 고 진정한 국가완성과 아울러 21세기 새 로운 국가발전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강력한 안보태세를 바탕으로 북한의 도 발을 억제하면서도 통일을 위한 협력과 대화의 길로 북한을 이끌어 내야 한다.
진정한 신뢰프로세스는 ‘변화한 북한’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 내는 것이다. 통일은 21세기 한 반도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결정적 계기 이며, 통일한국은 선진국을 넘어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점을 주지 해야 할 것이다.
광복 70년을 넘어 이제는 통일로
“튼튼한 안보, 통일 위한 대화·협력 가능케 한다”
조 한 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양국의 신속한 군대파병 결정 배경 유엔에서는 이를 좌시하지 않았다. 유 엔에 대한 명백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유엔에 가입한 회원국도 예외는 아니었 다. 소련 중심의 몇몇 공산국가를 제외 하고는 대한민국 지원에 너도나도 앞장 섰다. 지구촌의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참 여했다. 남북 아메리카, 유럽, 아시아, 아 프리카그리고 오세아니아(Oceania)주 의 국가들이 대거 동참했다. 위기에 처 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대한민국을 구 하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대양주(大洋洲)에 속한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는 일찌감 치 발 벗고 나섰다. 제1차 세계대전부터
‘안 작 부 대 (ANZAC: 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를 구성해 싸웠던 두 나라 군대는 태평양전쟁에 이 어 6·25전쟁에도 참전하게 됐다. 안작부 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인 1915년 4월 25일 갈리폴리 반도에 상륙하기 위해 오 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의 젊은이들 로 구성된 연합군이었다. 두 나라는 이 때부터 국제평화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워 왔다.
1950년 6월 29일 미국 주재 오스트레 일리아 대사는 미국의 애치슨 국무장관 에게 일본 해상에서 활동하던 군함 2척 (구축함 1척·프릿기함 1척)과 일본 주둔 F-51 무스탕 전투기 1개 대대를 유엔군 을 위해 파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때 는 서울이 함락되는 등 전선이 불투명할 때였다. 미 극동군사령관 맥아더 원수가 한강전선을 시찰하고 있던 절박한 순간 이었다.
이때 오스트레일리아는 선뜻 해군과 공군의 파병을 밝혔다. 오스트레일리아 의 군함 2척은 6월 30일 한국에 파견됐 고, 전투기 1개 대대(제77전투비행대대) 는 그 다음날인 7월 1일, 미 극동공군에 편입돼 공중작전을 수행했다.
뉴질랜드도 오스트레일리아에 뒤질세 라 “미국이 요청하면 해군부대를 파견 하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런 배 경 하에 뉴질랜드의 군함 2척이 8월 30 일 한국해역에 도착했다. 같은 영연방국 가인 캐나다도 군대파병을 제의했다. 미 국의 전통적 우방국인 영연방국가가 솔 선수범을 보였다. 미 국무부는 즉각 오 스트레일리아의 해군함정 파병제의를
수락하고 뉴질랜드에 보낼 답신을 국방 부와 논의했다.
미 합참은 1950년 6월 30일 존슨 국방 장관에게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의 파병제의를 수락할 것을 건의했다.
이에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는 미 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에 지 상군을 파병한 국가가 됐다. 이때까지 미국 이외에는 지상군 파병을 제의한 국 가는 없었다. 유엔군 부대를 지휘할 유 엔군사령관 맥아더 원수의 입장에서는 전쟁을 수행하는데 4〜4.5개 보병사단 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당 시 미국본토의 가용부대는 5개 사단뿐 이었다. 미국의 군사력만으로는 지상군 해결이 어려울 때였다.
미 육군참모총장 콜린스 장군은 파병 제의를 신속히 했던 영연방국가 중에서 도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의 지상 군 파병요청을 먼저 검토해 줄 것을 합 참에 요청했다. 미국은 파병을 제의한 국가의 군대수준을 먼저 평가한 후 가부 (可否)를 결정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파 병을 제의한다고 해서 전투능력이 없는 군대를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미 합참이 그 일을 맡았다. 미 합참은 오스 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그리고 영국의 지상군이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유엔군 의 일원으로 받아들여도 좋다는 통보였 다. 이들 국가는 태평양전쟁 시 미국과 연합작전을 수행한 경험이 있고, 영어를 사용함으로써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 다 . 6·25전 쟁 이 발 발 하 자 안 작 부 대 (ANZAC)는 다시 뭉쳐 국제평화와 대 한민국을 위해 넘실대는 대양(大洋)을 헤치며 한반도로 달려왔다.
호주·뉴질랜드 파병부대와 활약상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는 영연방 국가였다. 6·25전쟁 초기 영연방국가는 파병에 적극적이었다. 영국이 1950년 7 월 25일 미국 다음으로 지상군 파병을 제의했고,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가 뒤를 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수상 멘지스(R. G. Menzies)는 7월 28일, 트 루먼 대통령과 애치슨 국무장관을 만나 1,000명으로 구성된 보병 1개 대대의 파 병을 제의했다. 이어 뉴질랜드도 1,000 명으로 구성된 1개 포병대대의 파병을 제의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는 이를 즉각 행동으로 옮겼다. 미국과 영국에 이어 오스트레일리아 보병 1개 대대가 1950년 9월 28일 부산에 도착했다. 그 부대는 홍콩에 주둔해 있다가 8월 29일 한국에 들어왔다. 도착하자마자 낙동강 전선에서 싸우고 있던 영국군 제27여단 에 배속돼 38도선을 돌파하고 북한 진 격작전에 가담했다. 영국군 제27여단은 오스트레일리아 대대를 배속 받음으로 써 부대 명칭이 ‘영연방(the British Commonwealth)’ 제27여단으로 개칭 됐다.
오스트레일리아 보병대대는 중공군 개입 당시 북진의 최선봉에 서서 평안북 도 안주에서 청천강을 건넌 다음 압록강 을 향해 진격했다. 그때 중공군의 기습공 격을 받고 대대장 그린(C. H. Green) 중 령이 전사했다. 유엔군 최초의 고급지휘 관의 전사였다. 오스트레일리아 보병부 대는 이를 설욕이라도 하듯 1951년 4월 5 일 유엔군의 재반격 작전시 38도선을 두 번째로 돌파하며 공산군을 압박했다. 이 후 오스트레일리아 보병부대는 경기 가 평전투에서 중공군의 4월 공세를 저지하 며 전선을 안정시켰고, 이후에도 한국전 선이 어려울 때마다 힘이 돼 줬다.
이때 오스트레일리아 공군부대도 일 본 이와쿠니 기지에서 한국의 포항기지 를 거쳐 흥남의 연포비행장으로 전진 배 치됐다. 중공군 개입으로 공군부대는 부 산의 수영비행장으로 철수하는 등 전황
에 따라 전후방을 오가며 지상 작전을 지원했다. 이때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 던 오스트레일리아 해군도 진남포 철수 작전을 적극 지원했다.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51년 8월 31일에는 항공모함 시드니(Sydney)호 를 한국해역으로 파견했다. 전쟁기간 항 공모함을 파견한 국가는 미국과 영국 그 리고 오스트레일리아뿐이었다. 이처럼 오스트레일리아는 육·해·공군을 모두 파병하여 한국을 적극 도왔다.
뉴질랜드도 해군을 파견한데 이어 지 상군을 파병했다. 뉴질랜드 포병부대는 1950년 12월 31일 부산에 도착했다. 제 16포병부대는 한국에 도착하여 경남 밀 양에서 훈련을 마친 후 오스트레일리아 보병대대가 배속된 영연방 제27여단에 배치됐다. 1951년 1월 22일 경기도 장호 원에서다. 이때부터 뉴질랜드 포병부대 는 오스트레일리아 보병대대에 대한 포 병지원사격을 전담했다. 영연방국가 간 의 ‘팀워크(team work)'가 그 어느 때보 다 빛나는 순간이었다. 뉴질랜드 포병부 대는 유엔군의 재반격 작전 시 영연방 제27여단과 함께 수많은 전투를 치렀다.
그중에서도 1951년 중공군 4월 공세시 가평전투에서 뉴질랜드 포병부대의 활 약은 대단했다. 중공군의 공세에 맞서 포병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중공군을 물리쳤다. 이후 영연방 제27여 단은 영연방 제28여단으로 개칭됐다.
영연방 제28여단은 영국군과 오스트 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부대로 편성된 다 국적 군대였다. 그럼에도 전투에서는 그 어떤 부대보다도 더 잘 싸웠다. 1951년 7 월 28일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부 대는 뒤늦게 한국에 투입된 캐나다와 인 도군과 함께 영연방 제1사단에 편입됐 다. 영연방 제1사단에서 두 나라 군대는 핵심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서부전선을 굳건히 지켜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이 어 또 다시 영연방 국가의 명예를 드높 이는 계기가 됐다. 그 중심에는 오스트 레일리아와 뉴질랜드로 구성된 안작부 대(ANZAC)가 있었다.
2015년 9월 1일 화요일 (월간) 제844호
9
이 시대의 호국정신
북한의 기습남침에 국제사회는 발끈했다. 김일성의 전쟁도발은 제2차 세계대전 이 후 오랜만에 찾아온 국제평화에 물을 끼얹은 행위였다. 제2차대전시 다시는 전쟁이 일 어나지 않게 해야겠다고 다짐한 연합국들은 유엔헌장을 제정하고 유엔(UN)을 창설했 다. 북한의 남침은 여기에 도전장을 내민 격이었다.
대양주 ‘안작부대’, 4월 공습 때 가평전투서 대활약
6·25전쟁 65년 …참전국의 희생과 공헌 ③호주·뉴질랜드
호주
•참전현황 : 육·해·공군 8,407명
•피해현황 : 339명 전사 등 1,584명
•중공군 4월공세에 24시간 혈투 끝 격퇴, 적의 가평진출 저지
뉴질랜드
•참전현황 : 육·해군 3,794명
•피해현황 : 23명 전사 등 103명
•가평·마량산전투서 중공군의 포위공격 격퇴
오스트레일 리 아 군 을 지 원 하 는 뉴 질 랜 드 포병.
제844호 2015년 9월 1일 화요일 (월간)
10 현충
한국광복군 제1지대장 이준식 선생 은 1919년 3·1운동 직후 중국으로 건 너가 1921년 중국 곤명에 위치한 운남 강무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만주 대한 통의부에 가입해 항일무력세력을 재 정비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한 결과, 1924년 정의부 중 앙위원에 선임됐다.
1927년 정의부 군사위원장 오동진이 일제에 체포 되자 그 후임으로 임명됐다. 이듬해인 1928년에는 만 주지역 3부가 통합해 조직된 국민부의 군사위원장에 선임됐고 1929년 조선혁명당이 창설되자 조선혁명당
중앙위원 및 산하 무력단체인 조선혁명군 참모장으 로 활약했다.
이준식 선생은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총사령부 참모에, 같은 해 11월에는 제1지대장으로 임 명됐다.
1942년 임시의정원 비서장 및 중령구 의원 선거회 장을 맡다가 1943년 광복군 총사령부 고급 참모로 임 명됐고,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으로도 활약했다.
정부는 항일 전선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이준식 선생의 공로를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 했다.
미국인 선교사 부부의 아들로 평양 에서 태어난 윌리엄 해밀턴 쇼는 자신 을 한국인이라 생각했고 한국을 조국 으로 여겼다. 평양에서 고등학교를 마 쳐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갖췄으며 한 국인 친구들도 많았다. 미 해군에 입대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참전했던 쇼 대위 는 1947년 전역 후 한국으로 돌아와 미 군정청 소속 으로 ‘조선 해양경비대사관학교(현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에서 교관으로 근무하며 생도들을 가르쳤다.
교관 근무 중 학업에 뜻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가 하 버드에서 철학 박사학위과정을 진행하다가 6·25전쟁 이 발발하자 곧바로 ‘제2의 조국’인 한국의 평화와 자 유를 지키겠다며 미 해군에 재입대했다.
그는 한국어와 한국지리에 정통했기 때문에 맥아 더 장군의 최측근 보좌관인 해군정보장교로 임명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또 작전 완수 후에는 다시 자원해 미 해병대 5연대에 배속돼 서울 탈환작전에 직접 참전했다.
1950년 9월 22일 아침 쇼 대위는 적 후방 정찰을 위 해 녹번리(현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접근했고, 이때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적 매복조의 공격을 받아 28세 의 꽃다운 나이에 전사했다. 유엔군은 그가 전사하고 일주일 후 서울 탈환에 성공했다.
전사하기 일주일 전 인천상륙작전에 함께 참전했 던 그는 “나도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한국 사람입니 다. 내 조국에서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하게 공부만 하겠습니까? 공부는 내 조국에 평화가 온 다 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해밀턴 쇼 대위는 우리 정부로부터 충무무공훈장 을 미국 정부로부터는 은성무공훈장을 각각 추서받 았다.
이달의 독립운동가 이준식
선생(1900. 2. 18 ~ 1966. 4. 5)평생 무관으로 항일 전선 무장투쟁 전개
“난 한국인, 공부는 조국에 평화가 온 다음에”
이달의 6·25전쟁영웅 윌리엄 해밀턴 쇼
(1920. 10. 15 ~ 1950. 9. 22)국가보훈처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호국영웅들의 명예를 선양하고 그들의 호국정신을 후손에 알리고 자 매월 ‘우리가 알아야 할 이달의 6·25전투’를 발표 한다. 이달에 선정한 ‘영천 전투’와 ‘인천상륙작전’,
‘단장의 능선 전투’ 중 가장 격렬했던 전투 중의 하나 인 ‘단장의 능선전투’를 소개한다.
단장의 능선 전투는 국군과 유엔군이 중동부 전 선의 주 저항선을 강화하기 위해 제한된 공격 작 전을 실시하고 있을 때, 미 제2사단과 프랑스 대대 가 양구 북방 단장의 능선에 배치돼 있던 북한군 2 개 사단을 격퇴한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미 제2사단은 북한군의 완강한 저 항에 부딪쳐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나 30만발에 달하는 포사격 지원과 항공 근접 지원을 받아가 며 1개월에 걸친 끈질긴 공격으로 북한군을 격퇴 했다.
단장의 능선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이끈 대대장 은 몽끌라르 중령이다. 그는 프랑스군 중장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자 프랑스군의 파병을 적극 주 장했고, 대대급 부대의 파병이 결정되자 그 부대 를 지휘하기 위해 스스로 계급을 중령으로 낮춰 참전하는 용단을 보였다. 그는 전쟁 기간 중 지평 리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등에서 프랑스 대대를 이끌었다.
단장의 능선 전투는 ‘장이 끊어진다’는 이름처 럼 유엔군 전투 중 가장 격렬한 전투 중의 하나였 다. 이 전투에서 유엔군은 597명이 전사하고 3,064 명이 부상당하는 등 큰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의 승리는 인근 가칠봉과 백 선산 사이 국군 쪽으로 돌출돼 있던 전선을 조정 했으며,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북한군 2개 사단은 지혜산 방면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