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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과 함께 헤겔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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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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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나종석**

목 차

1. 들어가는 말: 새로운 탈식민적 사유의 필요성 2. 헤겔과 반복되는 서구중심주의

3. 대동민주주의와 한국 근현대사의 정신

4. 대동민주주의, 화해의 정신 그리고 새로운 비판이론을 찾아서 5. 비판이론으로서의 대동민주 유학

<국문초록>

이 글의 주제는 헤겔철학의 한국화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유럽중심주의적 헤겔 철학을 비판하면서 탈식민적 사유의 가능성을 새롭게 모색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 선 서구중심주의를 철학적으로 가장 체계적인 방식으로 정당화한 이론인 헤겔의 서구중심주의의 기본 성격을 살펴보면서 그것이 서구 근대와 비서구 사회 전통의 이분법, 즉 서구 근대를 문명으로 그리고 동아시아 전통을 미성숙한 전근대적 발 전단계에 멈춰버린 것으로 바라보는 관점임을 설명한다. 이와 더불어 한말 이후 오늘날의 식민지근대화론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 온 서구중심주의의 흐름을 근대와 전통의 이분법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서술한다.

이 글은 비서구 사회의 전통을 문명의 타자로 규정하는 태도이자 인식 틀로 규정 될 수 있는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사회의 근현대사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틀을 제안한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대동민주주의의 실현 과정으로서 한국 근현대의 역사를 새롭게 서술할 수 있다는 주장을 논한다. 대동민주주의 이론은

* 이 논문은 2008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08-361-A00003).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HK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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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이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는 인류의 보편적 자유의 실현에 대한 유럽중심주의적 인 서술에 의해 기각된 동아시아 및 한국의 역사가 지니는 고유한 의미를 되살리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다루어지는 문제는 한국 근현대 역사에 대한 대안적 이론으로 제시된 대동민주주의론이 헤겔철학의 화해의 정신과 맺고 있는 연관성이다. 간단하 게 말자하면 대동민주주의론은 헤겔의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자 동시에 그런 유럽중심주의와 긴장 관계에 있는 헤겔의 정치 및 사회철학의 기본 이념 중 하나인 화해의 정신을 재해석한 결과임이 서술된다. 결국 헤겔과 더불어 헤겔을 넘어서려는 시도인 대동민주주의 이론이 어떤 점에서 동아시아 및 한국의 역사적 맥락과 상황에 어울리는 비판적 사회이론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지가 검토된다.

주제어 : 대동민주주의, 서구중심주의, 화해의 정치철학, 헤겔, 탈식민적 사유

1. 들어가는 말 : 새로운 탈식민적 사유의 필요성

서양철학의 토착화 문제는 우리 철학계에서 새로운 문제는 아니다. 모든 문화 및 사상의 교류가 그러하듯이 서로 다른 문화 및 사상의 만남은 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법은 없다. 교류는 역사적 상황이 다른 사회 사이에서 형성되는 것이기에, 서양철학을 접한 이래 그것을 어떻게 우리사회의 실정 에 어울리게 재해석하여 받아들일 것인가는 학자들에게 늘 중요한 화두였 다. 그럼에도 2018년 5월에 조선대학교 우리철학연구소가 “서양철학의 한 국화 및 우리철학의 성찰과 전망”이라는 총괄 주제를 내걸고 학술대회를 주최하는 데에서 보듯이 서양철학의 한국화라는 작업은 여전히 중요한 학 문적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런데 서양철학의 한국화 작업은 우리 근현대 역사 경험의 성격, 예를 들면 서구 근대세계의 동아시아로의 팽창 과정에서 한반도가 제국주의 열 강들의 각축장으로 전락하고 급기야는 조선의 망국과 일본 제국주의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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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식민지배의 역사를 경험했다는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달리 말하자면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독립 한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서세동점의 역사적 도전에 직면하여 서구적 근대화에 재빨리 성공하고 제국주의로 나간 일본과 달리 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던 것일까라는 물음은 여전히 커다란 사상의 과제 로 남아 있다.

주지하듯이 해방 이후 북한학계는 물론이고 남한학계에서도 탈식민 담론 은 매우 강력했다. 이 때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조선사회의 정체론 혹은 타율성론을 극복하는 것이 핵심적 과 제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서세동점의 시기에 서구적 근대화의 길에 들어선 일본과 달리 왜 조선은 망국과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는가하는 물음이 해 방 이후 우리학계가 해명해야 하는 중심적 과제였다. 그리고 조선사회는 정 체된 사회였고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화를 이룩할 수 없었기에 타율적인 방 식으로 근대화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는 식민담론의 극복을 위해 우리 역사학계가 제안한 이론 중 하나가 바로 자본주의적 맹아론이었다.1) 이에 따르면 조선후기에 등장한 자본주의적 맹아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억압되 어 자주적 근대화로의 길이 차단되었던 것이지 본래 조선사회가 정체된 사 회였기에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자본주의 맹 아론은 주로 조선후기의 사회경제적 조건의 변화에 관련된 연구이었다. 타 율성론과 정체론을 핵심으로 하는 일본의 식민주의 역사학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사상사에서도 진행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실학연구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맹아론이나 내재적 발전론으로 일제 식민주의역사학 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탈식민적 시도는 오늘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처럼

1) 북한학계에서의 내재적 발전론에 대해서는, 뺷역사비평뺸 편집위원회 엮음, 「내재적 발 전론과 한국사인식」, 뺷논쟁으로 읽는 한국사: 전근대 1뺸, 역사비평사, 2009, 311~313면 참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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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다. 그것은 조선사회를 봉건사회로, 성리학을 봉건적 사유양식으로, 조 선후기를 봉건사회 해체기로 규정하는 역사 인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역사인식은 서구 근대를 근대의 모델로 설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역사발전 도식을 인류사회의 보편적 역사발전의 모델로 간주하고 있다. 예컨대 일본에서 활동했던 한국역사학자 강재언에 의하면 “근대화란 극단적으로 말하면 서양의 사상을 받아들인 정치개혁에 의해 국민국가를 실현하고 그 과학과 기술을 받아들여 근대적 공업을 발전시키며 그것을 기 초로 자위(自衛)를 위한 군사력을 준비하는 것”으로 이해된다.2) 더 나아가 유럽모델을 한국역사에 적용하는 것은 조선사회의 성격은 물론이고 조선사 회의 근대로의 이행 과정의 특징을 파악하는 데 한계를 지니지 않을 수 없 다.3) 조선사회의 성격과 관련된 문제를 여기에서 상술할 순 없지만 조선이 운영한 과거제도에 국한해 보아도 조선사회를 중세 봉건제 사회로 규정하고 조선후기에 그런 봉건체제의 해체가 진행되고 자본주의적 근대로의 이행의 동력들이 발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은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4)

조선이 과거제도를 통해 구현된 유동적이고 개방적인 능력주의 사회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 외에도, 조선이 중앙집권적인 관료체제를 운영하고 있었다는 점, 지배계층인 양반이 관직을 세습할 수 없었다는 점 그리고 조 선에서 노비제도가 운영되고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중세 봉건제 사 회에서 자본주의 근대사회로의 역사 이행을 역사 발전의 기본 모델로 설정

2) 강재언, 뺷서양과 조선: 그 이문화 격투의 역사뺸, 이규수 옮김, 학고재, 1998, 242면.

3) 미야지마 히로시(宮嶋博史), 뺷나의 한국사 공부: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를 찾아서뺸, 너 머북스, 2013, 41~43면 참조.

4) 중국 송나라 시대에 본격적으로 실시된 과거제도는 유교적 교양에 의거한 능력주의 (meritocracy) 원칙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시마다 겐지(島田虔次), 뺷주자학과 양명학뺸, 김석근․이근우 옮김, 까치, 2001, 20~21면. 나종석, 뺷대동민주 유학과 21세기 실학:

한국 민주주의론의 재정립뺸, 도서출판b, 2017, 제5장 참조 바람. 중국의 과거제도와 조선 의 과거제도가 지니는 유사성과 차이점에 대해서는 기시모토 미오(岸本美緖)․미야지 마 히로시(宮嶋博史), 뺷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뺸, 김현영․문순실 옮김, 역사비 평사, 2008, 97~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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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조선후기에서 봉건체제가 해체되고 자본주의적 근대로의 이행의 가 능성을 탐색함에 의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사학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한 계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탈식민적 사유는 지속되어야 한다. 사유란 역사적 현장성과 장 소성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는 노릇이기에 탈식민적 사유는 중요한 사상 의 과제로 남아 있다. 그렇기에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강조 하는 것처럼 그 동안 수행되어 온 탈식민적 사유의 한계를 서구 자본주의 근대를 인류문명의 정점으로 바라보는 태도로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단견일 것이다.5)또한 우리사회에서 맹위를 떨치는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 의 담론과 연동해서 움직이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영향력도 서구중심주 의의 문화적 주도력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인류의 보편적 이념이나 인간 성 자체를 특권적으로 독점하고 있다는 식의 주제 넘는 주장을 거리낌 없 이 내세우는 유럽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한, 유럽 근대성의 어두운 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탈식민적 시도의 방법에 관한 것이다. 자본주의적 맹아설이나 내재적 발전론이 지니는 한계 를 극복하고 탈식민적 인식과 사유를 한 걸음 더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새 로운 탈식민적 사유가 시도되어야 한다.

탈식민적 사유를 새롭게 전개하기 위해 우선 서구중심주의를 상대화하 는 작업이 요구된다. 그래서 우선 서구중심주의를 철학적으로 가장 체계적 인 방식으로 정당화한 이론인 헤겔의 서구중심주의의 기본 성격을 살펴보 면서 그것이 기본적으로 서구 근대와 비서구 사회 전통의 이분법, 즉 서구 근대를 문명으로 그리고 동아시아 전통을 미성숙한 전근대적 발전단계에 멈춰버린 것으로 바라보는 관점임을 설명한다. 이와 더불어 한말 이후 오늘

5) 식민지근대화론의 전개 과정과 그 이론이 지니는 의의 및 문제점에 대해서는 정연태, 뺷한국근대와 식민지근대화 논쟁: 장기근대사론을 제기하며뺸, 푸른역사, 2011, 제1부의 제1장, 2장 그리고 4장을 참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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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 온 서구중심주의의 흐름을 근대와 전통의 이분법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서술한다. 이어서 필자 는 근대와 전통의 이분법, 달리 말하자면 비서구 사회의 전통을 문명의 타 자로 규정하는 태도이자 인식 틀로 규정될 수 있는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 기 위해 한국사회의 근현대사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틀을 제안한다. 이 와 관련해 필자는 대동민주주의의 실현 과정으로서 한국 근현대의 역사를 새롭게 서술할 수 있다는 주장을 논한다. 대동민주주의 이론은 헤겔이 자명 한 것으로 전제하는 인류의 보편적 자유의 실현에 대한 유럽중심주의적인 서술에 의해 기각된 동아시아 및 한국의 역사가 지니는 고유한 의미를 되 살리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다루어지는 문제는 한국 근현대 역사에 대한 대 안적 이론으로 제시된 대동민주주의론이 헤겔철학의 화해의 정신과 맺고 있는 연관성이다. 달리 말하자면 대동민주주의론은 헤겔의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자 동시에 유럽중심주의와 긴장 관계에 있는 헤겔의 정치 및 사회철학의 기본 이념 중 하나인 화해의 정신을 재해석한 결과임이 서술된 다. 결국 헤겔과 더불어 헤겔을 넘어서려는 시도인 대동민주주의 이론이 어 떤 점에서 동아시아 및 한국의 역사적 맥락과 상황에 어울리는 비판적 사 회이론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지가 검토된다.

2. 헤겔과 반복되는 서구중심주의

서구중심주의를 철학적으로 가장 정교하게 체계화시킨 인물이 바로 헤 겔이다. 헤겔의 유럽중심주의를 구성하는 핵심적 주장은 다음 네 가지이다.

1) 유럽 근대는 다른 문명과의 접촉에서가 아니라 스스로 이룩한 성과다.

2) 근대의 규범적 원리인 보편적 자유의 원리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기독교 가 결정적 기여를 했다. 3) 서구 근대사회는 인류역사 발전 과정에서 정점 에 있으며 다른 사회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전근대적 사회이다. 4) 유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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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것은 식민주의를 동반하는데, 비유럽사회 의 식민지화는 불가피하고 필연적일 뿐만 아니라, 정당하다.6)

헤겔은 서구 근대성의 형성 과정을 서술할 때 다른 문화와의 상호 접촉 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배제한다. 그러니까 서구 근대는 다른 문명으로부터 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문명의 틀 내에서 스스로 이룩한 역사적 성취 로 이해된다. 그런데 이런 서구 근대의 자생성에 대한 헤겔의 서술은 기독 교가 인류역사에서 가장 결정적 전환을 제공해주었다는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 달리 말하자면 프로테스탄티즘의 세계인 게르만 세계는 세계사적 사 명을 띠고 있는 데, 그 사명의 내용은 기독교에 의해 천명된 보편적 자유의 원칙을 이 세상에 실현하는 것이다. 헤겔에 의하면 추상적인 수준에서나마 기독교를 통해 인류역사의 궁극 목적이라고 규정되는 자유의 보편성에 대 한 자각은 이루어졌다. “이념은 기독교에서 그 어떤 불만족스러운 것을 더 이상 발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게르만 세계가 이룩한 “근대 세계의 시대 와 관련하여 대외 관계는 더 이상 규정적인 것이 아니”라고 헤겔은 말한 다.7) 그리고 게르만 세계는 기독교의 원리를 이 세상에 실현하는 과제를 자신의 세계사적 사명으로 삼는다. “게르만 정신은 새로운 세계의 정신인 데, 그 목적은 자유의 무한한 자기규정으로서의 절대적 진리의 실현이다.

그리고 이 자유는 자유의 절대적 형식 자체를 내용으로 삼는 자유이다. 게 르만 민족의 사명은 기독교 원리의 담당자의 역할을 맡는 것이다.”8)

6) 그 동안 필자는 헤겔의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해왔다. 나종석, 「헤겔과 동아시아 - 유럽 근대성의 정체성 형성과 동아시아의 타자화의 문제를 중심으로」, 뺷헤겔연구뺸 40, 2016;

“Ambivalente Moderne : Wie Hegels Parteinahme für den Westen seine Fehleinschätzung Ostasiens erklärt”, in : Allgemeine Zeitschrift für Philosophie, 2015(40. 1); 뺷헤겔 정치 철학의 통찰과 맹목: 서구 근대성과 복수의 근대성 사이뺸, 에코리브르, 2012, 제3장 <헤겔 의 오리엔탈리즘과 서구중심주의>; 「헤겔과 아시아 - 동아시아 근대와 서구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 뺷헤겔연구뺸 32, 2012, 등 참조 바람.

7) Hegel, G. W. F.,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in : Hegel Werke in zwanzig Bänden, hg. v. E. Moldenhauer und K. M. Michel, Frankfurt 1969-1971, Band 12, p.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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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구 근대의 자생성에 대한 서술은 동양의 역사를 근대 문명의 타자로 설정하는 것으로 나간다. 간단하게 말해 인도는 물론이고 중국을 비 롯한 동아시아는 인류역사의 출발점이라는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런데 이 마저도 헤겔은 부정한다. 인도와 중국의 역사가 유럽과 관련이 없었기 때문 이다. 그래서 그는 유럽과 관련을 맺었던 페르시아가 “세계사의 진정한 시 작”이라고 강조한다.9) 이처럼 비서구 사회의 역사의 의미는 오로지 유럽과 의 관계에 의해서만 부여될 수 있다는 것이 헤겔 역사철학의 근본 주장 중 하나다. 인류사의 진정한 담지자인 게르만 세계, 즉 서유럽과 관련이 없는 중국과 인도 문명의 역사적 의미는 이제 인류사의 정점에 이른 유럽과 관 련해서만 비로소 그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게 된다. “중국과 인도는 [……]

우리[유럽인들 - 나종석]로 인하여 역사의 맥락 속에 들어올 수 있다.”10) 인도와 중국과 같은 비서구 사회가 유럽과 관련해서만 비로소 “역사의 맥락 속”에 편입될 수 있다는 헤겔의 주장은 비서구사회의 성숙은 근대 유 럽과의 접촉, 궁극적으로는 유럽에 의한 식민화의 경험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룩될 수 없다는 단언으로 이어진다. 우선 헤겔은 중국과 인도 문명의 성 격을 철저하게 정체된 것, 달리 말해 자신의 역사 속에서 그 어떤 역사적 진보 내지 발전을 이룩해내지 못한 채 야만의 상태에 영원히 머물러 있는 문명으로 규정한다. 중국 및 인도는 “정체된 상태로 머물러 있고 자연적이 고 식물적인 현존재 상태를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지해오고 있다.”11) 중국 과 인도가 근대 유럽과 관련해 인류역사에 편입될 수 있다는 것은 근대 유 럽과의 접촉을 통해서야 비로소 타율적인 방식으로 인도 및 중국사회는 성 숙한 사회로 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맥

8) 같은 책, p.413.

9) 같은 책, p.216.

10) Hegel, G. W. F.,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Weltgeschichte : Zweite Hälfte, Hamburg 1988, p.415.

11) Hegel, G. W. F.,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앞의 책,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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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에서 헤겔은 서구 근대의 역사발전 단계를 대변하는 영국에게 부여된 세 계사적 사명을 언급한다. “영국인들은 전 세계에서 문명(Zivilisation)의 전 도사라는 위대한 사명을 떠맡았다.”12)

영국이 성취해야 할 세계사적 사명은 서구 근대의 전 지구적 전파다. 그 런데 헤겔은 영국에게 부여된 “문명의 전도사라는 위대한 사명”이 관철되 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재앙적 결과도 부득이한 것으로 본다. 헤겔에 의하면 비서구 사회가 유럽의 식민지로 되는 것은 “필연적 운명”인데, 중국 도 이런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13)그리고 인류역사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폭력으로 인한 엄청난 희생도 불가피하고, 심지어 보편적 자유의 원리라는 인류사의 궁극적 목적의 실현을 위해 지불되어야 할 필연 적인 것이다. 헤겔에 의하면 “세계정신의 발전 단계”에서 당대의 사명을 부 여 받은 민족의 권리는 무한한 것이어서 그 앞에 다른 민족은 아무런 “권리 도 없다”(rechtlos).14)

헤겔의 서구중심주의는 보편적 자유의 긍정과 식민주의 옹호 사이의 긴 장을 내포한다. 그리고 그런 긴장은 서구 근대 문명을 문명의 정점으로 보 고 비서구 사회를 전근대적인 미성숙한 문명으로 설정하는 오리엔탈리즘 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헤겔에 의해 가장 체계적 방식으로 정당화된 서 구중심주의는 한말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예를 들어 서구 중심주의적 문명화 담론을 내면화한 결과 자신이 속한 조선 문명을 타자화하는 태도는 조선의 대표적 개화파 인물인 윤치호(尹致昊, 1865~1945)에게서 잘 드러난다. 그는 1894년의 어느 날 일

12) 같은 책, p.538.

13) 같은 책, p.179. 물론 헤겔의 역사철학은 인류사에 등장하는 엄청난 폭력과 희생을 신적인 이념, 즉 이성의 보편적 원리의 관철이라는 낙관적인 믿음에 의해 정당화할 수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헤겔은 역사철학을 “변신론”(Theodizee)으로 이해한다, 같은 책, p.540.

헤겔의 변신론이 지니는 문제에 대해서는 프레더릭 바이저, 뺷헤겔: 그의 철학적 주제들뺸, 이신철 옮김, 도서출판b, 2012, 346~350면 참조 바람.

14) Hegel, G. W. F.,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Frankfurt 1996, p.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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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에 조선이 “민족으로서 어떤 미래도 지니지 않고 있다.”고 적고 있다. 그 가 보기에 조선인은 인종적으로 보아도 아무런 긍정적 요소를 지니지 않는 야만인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조선사회는 인간을 철저하게 노예로 전락시 키는 야만 사회다. 그는 조선인을 최악의 미개인으로 전락시켜 조선을 개선 의 가능성이 조금도 없이 타락하고 부패한 암흑사회로 만들어 버린 주범을 조선의 유교문화라고 지적한다. “유교와 전제주의가 위와 아래에 있는 돌 이고 그런 두 돌 사이에서 인간을 야만인보다 더 고상하게 하는 모든 특징 은 가루로 분쇄되었다.”15)

조선이 일본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한 후에 윤치호는 친일파로 변신한다.

그는 “힘이 정의”라는 입장을 부동의 진리로 섬기면서 힘없는 자는 “약자 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16)고 강변한다. 이런 약육강식의 세계관을 내면 화한 윤치호는 1919년 3․1독립운동을 비웃고 폄하한다. 조선의 독립운동 을 반대하는 윤치호의 태도에 서구중심주의적 문명관이 깔려 있음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는 “문명의 발전단계상 우월한 단계와 저급한 단계가 존 재하는 한, 차별도 존재할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일제의 식민지배와 일본 인에 의한 조선인의 차별은 정당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선진 문명에 속하는 나라들이 후진적인 나라들을 지배하고 이들을 차별하는 것이 정당 하다는 주장은 후진 문명에 속하는 사람들 역시 그런 지배를 받아 마땅하 기에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에 대한 조선인들의 저항과 독립운동은 쓸 데없는 짓이라는 판단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달리 말해 유교 문명에 의 해 철저하게 노예로 되어 버린 조선인들은 독립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독립이 된다고 해도 “독립을 유지해나갈 만한 능력이 없다”고 윤치호는 단언한다.17)

15) 윤치호, 국사편찬위원회 편, 뺷윤치호 일기 3뺸, 1974, 398~399면.

16) 윤치호, 김상태 편역, 뺷윤치호 일기: 1916-1943뺸, 역사비평사, 2001, 95면 및 70면.

17) 같은 책, 133면 및 18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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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가 보여주듯이 피식민지 사회의 지식인들조차 자신의 전통과 역 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서구 근대 문명을 문명의 대표로 설정하는 서 구중심주의를 철저하게 내면화할 수 있다. 그리고 조선의 자주적인 독립역 량에 대한 과소평가와 외세의 식민지배에 대한 순응과 협력은 서구중심주 의적인 식민주의 담론의 내면화에 기인한다. 조선의 유교 전통에 대한 혹평 및 일본 제국주의의 불가피성에 대한 윤치호의 수긍은 헤겔의 동양관의 영 향사와 무관하지 않다. 일본이 조선과 중국에 비해 빠르게 서구 근대의 문 물을 받아들여 조선으로 제국주의적 침략을 노골화할 때 일본은 서구중심 주의를 활용하여 일본 나름의 오리엔탈리즘을 고안해내었다. 그래서 고야 스 노부쿠니(子安宣邦)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헤겔의 역사철학이 구성한 전제와 정체의 왕국으로서의 동양상은 일본으로 하여금 중국 중심의 문명 론적 동아시아 정치지도를 교체하게 했다. 일본은 ‘동양적 전제’, ‘동양적 정 체’라는 이름을 중국에 뒤집어씌우면서 중국을 문명의 중심적 위치에서 끌 어내리고자 한 것이다. 유럽문명의 적장자임을 자인한 일본이야말로 동아 시아의 새로운 문명론적 지도의 중심에 서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18) 한국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스스로 통치할 능력도 자주적 근대 국가를 유 지할 역량도 지니지 못하는 후진적 인종이라는 관점은 해방 이후 우리사회 는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준비와 여건이 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독재 권력을 정당화하는 입장과 질적인 차이가 없다. 그리고 조선의 유교 문화와 민주주의 및 근대적 자주 독립정신 사이의 양립 불가능성에 대한 단언은 오늘날 식민지근대화론19)이라 불리는 학문의 이름으로 우리학계에 다시 등장하고 있다. 이영훈에 의하면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원인은 성

18)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 뺷동아․대동아․동아시아- 근대 일본의 오리엔탈리즘뺸, 이승연 옮김, 역사비평사, 2006, 140면.

19) 식민지근대화론이 식민 지배를 미화하는 경향을 띠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양상에 대해서 는 정연태, 뺷한국근대와 식민지근대화 논쟁: 장기근대사론을 제기하며뺸, 앞의 책, 432~

433면 참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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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학을 지배이념으로 한 조선사회가 산업화의 내적 동력을 실현할 수 있는 조건들을 창출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조선왕조의 성리학적 정치이념에서 경제는 독자적인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지배층을 이루는 군자가 도덕을 올 바로 수양하여 정치를 바로하면 경제는 저절로 통한다는 도덕주의적 정치 관과 경제관이 조선왕조가 산업을 일으키고 국제수지를 방어하기 위한 정 책을 시행하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조선왕 조를 식민지로 떨어지게 한 최종적 원인이겠지요.”20)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을 서구 근대의 핵심적 지표로 삼는 이영훈은 자본 주의적 근대로의 이행의 동력을 조선사회에서 구할 수 없다고 단정한다. 그 는 조선사회의 19세기는 엄청난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고 말한다. 그 “위기 는 1905년 조선왕조의 멸망이 어떤 강력한 외세의 작용에 의해서라기보다 그 모든 체력이 소진된 나머지 스스로 해체되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심 각한 것이었다.”21)더 나아가 식민지시기에 조선에서 일본에 의해 근대적 인 사적 소유 제도가 도입되고 시장경제가 발달하여 근대적 시장경제체제 가 형성되었다고 이영훈은 말한다. 간단하게 말해 조선에서는 자본주의적 맹아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근대 문명은 일본의 제국주의에 의해 이식된 결과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유재산제도를 비롯하여 근대적인 시장 제도와 시장기구 등과 같은 일제시기에 이룩된 성과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 의 건국으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1960, 70년대 자본주의적인 고도 경제성 장의 기반으로도 작용했을 정도로 “하나의 분수령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고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주장한다. 이처럼 안병직과 이영훈은 제국주의 에 의한 식민지배가 문명화를 가져왔다고 강조한다.22)

20) 안병직․이영훈 대담, 뺷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뺸, 기파랑, 2007, 103~104면.

21) 이영훈, 「총설: 조선 후기 경제사 연구의 새로운 동향과 과제」, 이영훈 편, 뺷수량경제사 로 다시 본 조선 후기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382면.

22) 안병직․이영훈 대담, 뺷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뺸, 앞의 책, 126~130면; 139면;

172면; 192면; 19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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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듯이 개화파의 문명론에서 오늘날 식민지 근대 화론에 이르는 서구중심주의 담론은 조선사회의 전통과 역사를 기본적으로 근대 문명과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유 방식은 일제의 식민 지배를 거쳐 해방 후 대한민국의 성립 및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고도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서구적인 근대 문명의 이식 및 수용과 그 확장이라는 맥락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역사로 본다. 그러니까 조선의 전통사회와 오늘날의 근대화된 한국사회와는 연속성보다는 질적인 단절이 깊게 패어 있는데 반해, 일제 식민지-대한민국 성립-자본주의 경제성장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서구 근대 문명의 따라잡기라는 관점에서 연속성을 지니 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중심의 근대 문명을 문명 그 자체로 이해하려는 이영훈 및 안병직은 한반도의 분단도 자본주의적 근대 세계체제의 해양문명 대 동양적 전제주의와 결합된 사회주의 체제라는 대륙문명 사이의 대결에서 생긴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개인의 이기적 본성을 살리는 사유재산 제도 중심의 자유주의 시장사회를 인간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로 바라본다.23)이영훈과 안병직은 서구 근대의 시장지향의 개인주의 사회를 인류사회가 따라가야 할 문명의 표준으로 보고, 그런 개인의 사적 소유의 가치를 부정하는 동양의 전통사회의 억압성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그들은 사회주의를 전제주의와 동일시하면서 그런 야만적인 사회주의가 본래 조선 을 비롯한 전통적인 유교사회와 매우 강한 친화성을 지니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니까 동양의 전통은 이제 마르크스주의 및 사회주의와 결합되어 서구 근대의 개인주의적 자유사회의 타자로 규정되고 있다.24)

안병직과 이영훈은 선진국에서 이식된 근대 문명으로의 전환의 역사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시대에서는 세계화 및 선진화의 방향으로 계속 전개 되어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즉, “세계화를 통한 선진화”만이 우리사회가 걸

23) 같은 책, 263~264면.

24) 같은 책, 263~26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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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가야 할 길이다.25)이처럼 안병직과 이영훈 등의 식민지 근대화론은 우 리사회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발휘하는 세계화 담론 및 선진화 담론과 깊 게 결합되어 있다. 김종태가 강조하듯이 선진국 담론은 “19세기 말의 서구 문명을 기준으로 문명과 야만을 구분함으로써 세계를 위계화했던 서구 중 심적 문명․개화 담론과 맥을 같이한다.”26)한말 개화파의 서구중심주의적 문명 담론의 계보를 잇는 선진국 담론은 21세기 형 서구중심주의의 한국적 발현 형태다. 그리고 선진국 담론은 일부 보수 지식인이나 정치세력에 한정 되어 있지 않고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지배적인 담론이다.

3. 대동민주주의와 한국 근현대사의 정신

앞에서 본 것처럼 서구중심주의는 서구 근대와 비서구 사회의 전통 사이 의 이분법을 그 핵심적 주장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전통과 근대의 이분법 을 자명한 진리로 전제하는 한 우리는 우리사회의 역사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에 이를 수 없다. 전통과 근대의 이분법이라는 신화를 해체함으로써 서 구중심주의에 의해 과도하게 사로잡혀 있는 우리 인문학계, 좁게는 우리 철 학계의 학문의 식민성을 탈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전통 및 역사에 대한 식민화로 규정될 수 있는 전통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적 태도를 넘어 서 한국의 전통, 특히 조선의 유교 전통이 오늘날의 한국사회의 근대성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은 매주 중요하다. 뺷대동민 주 유학과 21세기 실학 : 한국민주주의론의 재검토뺸(이하 뺷대동민주 유학뺸) 에서 제안된 필자의 대동민주 유학은 우리의 역사를 형성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준 유교적 전통의 의미를 반추하는 것이 우리시대에 필요한 사상의

25) 같은 책, 295면.

26) 김종태, 뺷선진국의 탄생: 한국의 서구중심 담론과 발전의 계보학뺸, 돌베개, 2018, 234면;

302면; 30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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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과제 중 하나라는 확신에서 출발한다.

뒤에서 좀 더 다루겠지만 전통과 현대 사이의 상호작용의 맥락에서 우리 의 근현대 역사를 새롭게 조망하려는 시도는 헤겔철학의 용어를 빌어 전통 과의 화해의 시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유교적 전통과 우리사회의 민주주의 사이의 내적 결합에 대한 인식을 통해 전통과 근대의 서구중심적 이분법을 비판하는 작업은 화해를 자신의 철학적 프로그램의 핵심으로 설정한 헤겔의 정치철학의 기본 정신과 상통한다.

뺷대동민주 유학뺸에서 필자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가족, 시민 사회, 국민국가 그리고 유교적 전통과 관련하여 다각도에서 검토하여 그 역 사성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려 했다. 특히 우리사회가 이룩한 민주주의 의 역사적 경로의 독특성을 조선사회로부터 축적되어온 유교적 정치문화 의 영향사(Wirkungsgeschichte)27)와 그 질적 전환의 시각에서 해명함으로 써 적어도 조선 후기 18세기 이래로부터 식민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는 역사를 바라보는 서구 중심주의적 사유 방식을 비판적으로 극복하고자 했 다. 그리하여 필자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서구로부터 이식된 것으로 본다거 나 유교적 전통과 민주주의 사이에는 만날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한다는 전 통과 민주주의 사이의 이분법적 접근 방식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대동민 주주의라는 새로운 인식 틀을 제안했다.

대동민주주의는 한국 근현대사를 새롭게 사유하려는 기본 인식 틀이자 개념이다. 그것은 18세기 이래 오늘날에 이르는 한국사를 관통하는 정신은 대동정신이며, 그 정신은 서구와의 접촉을 통해 대동민주 정신으로 변형되 면서 지속되고 있는 현상을 개념적으로 포착해 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 동민주주의라는 개념은 대동적 세계를 이상적 사회로 상상해온 동아시아

27)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H. G. Gadamer), 뺷진리와 방법: 철학적 해석학의 기본 특징들 2뺸, 임홍배 옮김, 문학동네, 2012, 참조. 전통의 영향사에 대한 좀 더 상세한 필자의 입장에 대해서는 나종석, 「사회인문학의 이중적 성찰 : 대동민주 유학의 관점에서」, 뺷사회와철 뺸 35, 2018, 105~107면 참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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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의 유교적 정치문화와 서구적 근대의 해방적 계기인 민주주의가 결합 되어 한국사회에서 독특하게 형성되어온 민주주의 역사의 고유성 및 그것 을 추동한 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대동민주주의는 한국의 근현대 역 사 속에서 실현되어온 민주주의 이념의 고유한 성격을 이해할 수 있는 결 정적 개념이다. 간단히 말해 대동민주주의는 우리 사회 근현대 ‘역사 속의 이성’과도 같은 것이다.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구현되어 온 대동민주주의는 두 가지 측면에서 부연 설명될 수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 서구적 민주주의 및 국민(인민)주권 주의에 의해 유교적 대동세계관이 어떻게 변형되어 가는지를 파악하려는 개념이다. 즉, 그것은 유교적 유토피아 이념인 민본적 대동사상이 서구의 민주공화와 만나 민주공화적 대동주의로 전개되어 가는 측면을 해명하려 는 개념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서구에서 구현된 민주공화주의의 독자 적인 수용과 그 주체적 변용을 가능하게 한 조선사회의 유교적 대동세계 이상이 영향사적으로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대동민주주의 는 서구 민주공화주의를 대동 이념을 통해 주체적으로 재구성하여 대동사 상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측면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18세 기 이래 오늘에 이르는 역사를 ‘대동적 유교 이념의 현대화를 통한 서구 민 주주의의 유교적 전환’ 내지 ‘유교 전통의 민주적 변형과 민주주의의 유교 적 전환의 이중 과정’이라는 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동민 주주의는 한국사회가 근대 서구 문물의 충격과 영향을 주체적인 방식으로 대응하게 한 전통적인 유교적 민본주의와 서구 근대 민주주의 사이의 이종 교배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된 역사적 구성물로 이해된다. 이런 점에서 필자 가 제안한 대동민주론은 유가적 텍스트 속에서 대동민주주의를 이념사적 으로 연구하고 그 의미를 강조하는 접근 방식과 차이가 있다.

대동민주 유학은 대동민주주의와 함께 뺷대동민주 유학뺸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 중의 하나인데, 잠정적 가설의 형태로나마 19세기 중반 이후 동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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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만남에서 형성된 한국 근현대사의 기본적 모습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 으로 해 유학을 새롭게 이론화하려는 방법론이다. 달리 표현한다면, 대동민주 유학은 동아시아의 유교 전통 속에서 축적해온 유가적 대동세계의 이상이 서구 근대와의 충격적 만남 속에서 전통의 비판적 지속과 아울러 서구 근대의 해방성과 폭력성의 양가성에 능동적으로 대응해나가는 과정을 주도한 정신 이었음에 주목하고 그 역사 형성적 힘을 학문적으로 성찰해보려는 사유 방식 이라고 명명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대동민주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개념 들28)의 체계적 인식을 대동민주 유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동민주 유학의 핵심을 구성하는 개념들은 타자에 대한 무한한 책임과 자율성의 균형을 추구하는 대동적 인(仁), 충서적 개인주의, 백성의 볼모로서의 성왕(왕권의 궁극적 정당성의 근원은 왕이나 왕조가 사사롭게 권력을 행사하지 않고 공적으로 발현되는데 기원한다는 관념의 한 발현 양 상), 천하질서의 궁극적 담지자로서의 백성관(천하는 천하 사람들의 천하 라는 관념 및 소수 전제자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는 사유화에 대한 배제), 화이부동의 조화 및 대동적 평등(균평 및 균분), 평천하적 세계시민주의 그 리고 생명 존중 지향의 천지만물 일체의 어짊(仁) 이념 등과 같은 것들이 다. 이런 기본 개념들로 구성된 대동민주주의는 생태친화적, 평화지향 및 평등지향의 민주적 공화주의 이론의 한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이하에서 조선사회에서 축적된 천하위공, 균평 및 유교적 성왕이론 등을 중심으로 조선의 유교전통이 한국사회의 민주공화정과 접맥되는 역사를 간 단하게 설명해보자. 조선은 건국 초부터 주자학을 통치 이념으로 받아들여 사회를 유교적 원리에 의해 변형하고자 했다. 정치의 정당성을 유교적 민본주 의에서 구했던 조선에서 유교적 정치문화는 국가적인 노력에 의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 결과 조선 후기에 이르러 유교적 윤리와 생활방식은 일반 백성의 세계에도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다산 정약용(丁若鏞)은 조선 후기

28) 매우 잠정적으로 제안된 것임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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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 목도되는 평등화 경향을 “온 나라가 양반되기”라고 압축적으로 표 현했다.29)정약용이 ‘온 백성의 양반화’ 경향이 궁극적으로 실현되어 양반이 없어지는 평등 세상을 꿈꾸었는지에 대해서는 논외로 치자. “온 나라가 양반 되기”라는 표현은 18세기 이후 조선에서 본격적으로 백성이 양반의 생활문화 를 따라하면서 신분상승의 욕망을 분출하던 모습을 잘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유교적 생활양식의 보편화는 족보편찬이나 유교적 가문구성과 같은 양반층의 가족문화의 수용 측면에 한정되지 않고, 선비 의식의 광범위한 보편화 경향을 초래했다.30)그래서 평민들이 유교적 통치이념을 내면화하여 유교적 이념을 기준으로 삼아 선비답지 못하게 행동하는 양반 사족들을 비판 하는 양상도 조선후기에 등장하였다. 이런 현상은 “선비 혹은 군자라는 유교 적 선비/군자 관념의 보편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유교사회가 가장 고귀하다고 칭송하며 존중하는 인간상을 일반 백성도 내면화한 결과가 “백성 의 군자화=군자의 백성화”인데, 이것이야말로 조선사회의 “유교적 평등주의 의 궁극적 실현”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31)군자의 보편화, 즉 백성이 선비로서의 자각을 하게 된 현상은 유교국가인 조선사회가 길러낸 독특한 인간 유형의 습속화의 산물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32)

유교적 선비 혹은 군자의식의 보편화 현상은 조선후기에 이르러 본격화된 대동 이념의 사회적 확산과 맞물려 있다. 대동사상은 조선에서 지속적인 관 심의 대상이었으며, 특히 17세기 대동법(大同法)이 실시되면서 대동이라는 용어는 널리 사용되기에 이른다.33)그런데 대동세계의 이상은 경제적 평등

29) 정약용, 「고정림(顧亭林)의 생원론(生員論)에 발함」(跋顧亭林生員論), 장재한 옮김, 한국고전번역원, 1984.

30) 나종석, 뺷대동민주 유학과 21세기 실학: 한국 민주주의론의 재정립뺸, 앞의 책, 243~245 면 참조.

31) 같은 책, 548면.

32) 이 단락은 나종석, 「사회인문학의 이중적 성찰 : 대동민주 유학의 관점에서」, 앞의 글, 108~109면에 의거하여 재구성함.

33) 안병욱, 「조선 후기 대동론의 수용과 형성」, 뺷역사와현실뺸 47, 2003, 188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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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관점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의 공공성에 대한 관심도 포함하고 있었다. 조선의 유교적 정치문화 중에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연결되는 지점 중의 하나는 왕의 자의적 권력 행사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한 역사이다.

이는 공천하(公天下) 사상과 긴밀하게 되어 있다. 공천하 사상은 18세기 탕 평정치를 통해 조선을 개혁하고자한 왕들이 강조한 이념이기도 했다. 숙종, 영조 그리고 정조 등이 통치한 17세기 말 및 18세기는 탕평정치의 시대로 규정된다. 탕평군주의 한 사람인 영조는 요순 정치를 탕평정치의 구체적 실 천 모델로 이해하면서 “한 사람[一人 : 군주]으로서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지, 천하가 한 사람을 받드는 것은 아니다”라는 공천하 이념을 강조했다.34)

한말 이후 황제나 관료가 권력을 사사로이 남용하여 백성에게 해를 주는 존재로서 전락된다면 백성(혹은 인민/국민)이 나서서 그들을 자리에서 물 러나게 하고 더 훌륭한 왕이나 지배 엘리트들에게 통치를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자 이치라는 천하위공의 대동적 관념은 19세기에 이르 러서도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 상징적 표현이 동학농민전쟁이다.

동학농민전쟁은 조선의 백성이 유교적 민본주의 이념을 백성 스스로 내면 화하여 나라의 운명조차도 백성 스스로 책임을 져야하는 사안으로 여기는 인식을 표현한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동학농민혁명은 국가 의 실질적인 주인은 백성이라는 국민의식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동학농민전쟁을 반제반봉건 투쟁(조선사회는 봉건사회가 아니었다)으로 볼 필요도 없거니와 유교적 근왕 이념을 탈피하 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그것을 봉건적 사회구조에 매몰되어 있는 전근대 적 반란의 반복으로 볼 필요도 없다. 달리 말하자면 갑오농민전쟁의 ‘보국 안민’이라는 기치는 반제․반봉건이란 서구적 틀로 바라보면 이해가 안  된다. 이는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 백성의 삶을 편안하게 한다’는  유교적 사상을 농민전쟁의 가장 결정적인 정당성의 근거로 삼고 있기 때

34) 뺷승정원일기뺸 62책 (탈초본 1115책) 영조 31년 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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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봉건적 질서에 여전히 갇혀 있는 것으로 보 는 것도 문제다. 대중화된 유교적 정치문화를 배경으로 하여 일반 백성이 만민 평등의 대동 사회를 지향하는 유교적 민본주의를 실현할 궁극적인 정 치적 주체임을 자임하고 나선 획기적 사건이기에 그렇다.35)

갑오농민전쟁 이외에도 조선의 유교 전통은 서구 근대의 민주주의 및 공 화주의를 수용하는 지평으로 작용했다. 예를 들어 서구 근대 문물을 접한 유학자들 중 일부는 서구 공화주의 및 민주주의에서 유가적 사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세계로 간주되어온 요순적 대동 세상을 구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이해했다. 자신의 전통을 매개로 해 서구 근대의 이념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활동이 발생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번역행위는 유교적 전통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교정하고 새롭게 확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수반했다.

달리 말하자면 전통에 의해 제약된 특정한 이해, 예를 들어 요순 성왕의 치 세가 가장 이상적인 정치적 상황이었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유학자들이 미국 의 대통령제를 알게 되었을 때 그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자신들의 유학적 텍스트의 이념과 주장을 재해석하여 그것에 새로운 내용을 부여하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 그리하여 그런 재해석은 기존의 해석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의 이해방식과 다른 혹은 그것에 비해 더 좋 고 풍부한 이해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데 기여했다. 사실 이런 현상은 해석학 적 경험의 보편성에 해당되는 것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와 문화의 역사 속에서 세계에 대한 특정한 이해를 전승받으면서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여 기존의 이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기존의 이해 를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해나가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전통 속 에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전통에 의해 전적으로 제약받는 것으로 보는 것은 해석학적 이해의 의미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전통 속에서 살아

35) 이에 대한 좀 서 상세한 서술로는 나종석, 「사회인문학의 이중적 성찰 : 대동민주 유학 의 관점에서」, 앞의 글, 109~111면 참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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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는 것은 새로운 상황 속에서 전승되어 오는 세계 이해를 반성하고 그것 을 변화된 상황에 어울리게 재구성하거나 변화시키는 행동을 수반한다. 가 다머가 말하듯이 “텍스트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과정에서 해석자 자신의 생 각이 함께 작용해야 한다.”36)인민주권 사상이 대동사상과 매개되어 번역되 는 과정은 유교적 사상 전통의 재해석과 전통을 매개로 한 서구 민주주의 이념의 번역 행위 사이의 상호 작용의 과정을 잘 보여준다. 신채호가 쓴 1908 년의 글 「독사신론」(讀史新論)은 그 대표적 사례다. 이 글에서 그는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천하 사람들의 천하’라는 천하위공 및 공천하 사상 을 인민(국민)주권사상으로 재해석한다. 그에 의하면 “국가라는 것이 일개 인의 소유물이 아니요 모든 인민의 공유재산이다.”37)

조소앙(趙素昻)의 삼균주의(三均主義)의 영향으로 인류 평화 및 평등 이 념을 강조하는 대한민국의 제헌헌법도 서구 근대와 유교 전통 사이의 해석학 적 대화의 산물로 이해된다. 제헌헌법이 삼균주의에 의해 얼마나 강하게 영향 을 받았는가는 다음의 일화에서 잘 드러난다. 1948년 제헌헌법을 만들 당시 헌법기초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서상일은 “이 헌법 전문을 보시면 하필 그것 (정치, 경제, 교육을 의미-인용자)만의 삼균주의가 아니라, 모든 영역에 있어 서 만민균등주의를 확인했다”고 강조했다.38)조소앙의 삼균주의는 원래 한 국 독립운동의 지도적 이념을 명료하게 하려는 노력에서 등장했다.39)삼균주 의 이념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상술할 순 없지만. 그 이념의 핵심적 주장

36)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뺷진리와 방법: 철학적 해석학의 기본 특징들 2뺸, 앞의 책, 308면.

같은 책, 425면도 참조 바람.

37) 신채호, 「독사신론」,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단재신채호전집간행위원회 편, 뺷신채 호전집뺸 제1권, 형설출판사, 1982, 482면.

38) 박찬승, 뺷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뺸, 돌베개, 2013, 333면에서 재인용함.

39) 엄격하게 말하자면 삼균주의는 우파적인 민족주의 독립 세력의 이념이어지만, 이념적 지향에서 볼 때 좌파적 민족주의 독립운동의 이념과 큰 차이는 없다. 그리고 조소앙이 삼균주의를 정립하면서 손문(孫文)의 삼민주의, 강유위(康有爲)의 대동사상, 무정부주 의 및 사회주의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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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잘 담아내고 있는 글은 조소앙이 1931년에 쓴 「한국독립당의 근황」이다.

이 글에서 그는 삼균주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러면 독립당이 내거는 주의는 과연 무엇인가?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의 균등한 생활을 주의로 삼는다.’ 어떻게 하여야 사람과 사람이 균등할 수 있는가?

정치 균등화, 경제 균등화, 교육 균등화가 이것이다. 보통선거제를 실시하여 정권을 안정시키고 국유제를 실행하여 경제를 안정시키고 국비 의무교육제 를 실행하여 교육을 안정시킨다. 이것으로 국내의 균등생활을 실행한다. 민족 과 민족의 균등은 어떻게 하여야 이룰 수 있는가? ‘민족자결’이다. 각개의 민족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소수민족과 약소민족으로 하여금 피압박․

피통치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게 한다면 민족 간의 균등은 이룰 수 있는 일이 다. 어떻게 하여야 국가와 국가의 균등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식민정책과 자본제국주의를 파괴하고, 약한 것을 겸병하고 매(昧)한 것을 공략하며 어지 러운 것을 취하고 망한 것을 모멸하는 전쟁행위를 금지시켜서 일체의 국가가 서로 범하지 않고 서로 침탈하지 않으며 국제생활에서 평등한 지위를 온전케 하여 사해가 일가이며 세계가 일원인 구경의 목적을 도모해 간다면 국가 간의 균등은 이룰 수 있다. 천하에 국가를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민족을 다스리고, 민족을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국내의 사람을 다스 린다. 국내인을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바깥 도적을 몰아내고 자국을 건립하는 것이 제1보이다. 그러므로 독립당이 자국을 건립하고자 하는 것은 국가로써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방략이다.”40)

위 인용문에서 보듯이 삼균주의는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의 균등한 생활’을 지향한다. 특히 삼균주의는 서구 근대의 국민국가체제가 보여주는 대외적인 팽창과 반복되는 전쟁 상황을 극복하고자 한다. 뿐만 아니 라 삼균주의는 조선의 독립운동의 궁극적 목적을 자주적인 국민국가의 달성 에서 구하지 않는다. 삼균주의에 의하면 조선의 자주독립의 성취는 천하의

40) 조소앙, 「한국독립당의 근황」, 강만길 편, 뺷조소앙뺸, 한길사, 1982, 16~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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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즉 평천하에 이르는 방법을 의미한다. 이처럼 삼균주의는 조선의 독립 운동을 유럽의 근대 국민국가체제가 해결하지 못한 항구적인 인류평화에 이르는 방법과 관련해 고민한다. 국가들 사이의 침략 전쟁을 방지하고 이들 사이의 평등한 국제 관계를 구성하여 사해일가를 향하는 것을 궁극 목적으로 삼고 있는 조선의 독립운동에 대한 삼균주의적 관점은 유교 전통과 근대의 상호 만남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기존의 통념과 배치된다. 지금까지 간략하게 살펴본 바에 의하면 유교적인 이해 방식은 우리사회를 서구 근대의 도전에 적응하지 못하도록 한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서구 근대의 양가성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그 긍정적 측면을 창조적으로 변형 시켜 나갈 수 있도록 해준 문화적 힘이었던 것으로 드러난다.41)

4. 대동민주주의, 화해의 정신 그리고 새로운 비판이론을 찾아서

헤겔의 역사철학은 지난 두 세기 동안 “가장 자기만족적인 형태의 유럽중 심주의를 정당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42)최고의 세련된 형태를 통해 자유 의 보편적 이념과 식민지배 사이의 긴장을 은폐하는 헤겔의 유럽중심주의적 역사서술에도 불구하고 그의 철학은 어떤 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일까?

유럽중심주의에 의해 변질된 그의 보편사적 이념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길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보편적 자유의 기획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서 대동민주 유학은 보편적 자유의 기획을 전적으로 폐기하고자 하지 않는 다. 그것은 새로운 관점에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대동민주 유학은 인류의

41) 위 세 단락은 나종석, 「사회인문학의 이중적 성찰 : 대동민주 유학의 관점에서」, 앞의 글, 112~119면에 의거하여 압축적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42) 수전 벅모스(Susan Buck-Morss), 뺷헤겔, 아이티, 보편사뺸, 김성호 옮김, 문학동네, 2012, 1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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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사에 대한 대안적 사유를 모색하면서 서구 근대 문명에 의해 문명의 타자화로 낙인찍힌 동아시아 전통과의 새로운 대화에 주목한다.

대동민주 유학은 보편사적 이념을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문제의식에서만 헤겔철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것은 아니다. 대동민주 유학은 헤겔철학 의 근본정신으로 평가되는 화해(Versöhnung)의 이론을 재전유하는 방식으 로도 그것을 이어받고 있다. 전통과 서구 근대의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상호 작용의 결과라는 관점에서 전통과 우리 현대사회와의 연속성에 주목하는 대동민주 유학은 전통과 근대와의 화해의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기 때 문이다. 더 나아가 필자는 우리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되 가능한 한 그에 대한 따스한 관심과 애정을 상실하지 않으려는 태도도 헤겔의 화해의 정신 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그래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다. “신자 유주의적 시장사회가 초래한 극단적인 불평등의 심화, 사회적 연대의 해체 그리고 민주주의의 후퇴로 인해 현실에 대한 급진적인 사유의 필요성이 다 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그러나 사유의 급진성이 ‘적대’, ‘신 적 폭력’ 그리고 ‘새로운 공산주의’ 등등과 같은 몇 마디 현란한 어휘들의 제시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유의 급진성 속에서도 그것이 초래할 정 치적 결과에 대한 신중함을 견지하는 동시에 신중함이 현실에 대한 맹목적 순응으로 빠지지 않도록 견제하는 강인한 독립적인 사유의 정신이 우리에 게 요구되는 참다운 사유의 태도요 얼이라고 생각한다. 사유의 급진성이 도 달할 수 있는 진정한 극단은 세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고 타자의 불행과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가짐에 있다고 본다.”43)

앞에서 강조한 것처럼 대동민주 유학은 유교 전통의 탈식민화를 통한 서 구 중심주의의 상대화라는 과제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헤겔의 화해의 철학을 이어받고 있다.44)우리사회의 전통과 서구 근대의 이분법을 강요하는 서구

43) 나종석, 뺷대동민주 유학과 21세기 실학: 한국 민주주의론의 재정립뺸, 앞의 책, 10~11면.

44) 헤겔의 사회철학을 화해의 기획으로 독해하는 대표적 연구로는 다음 저서가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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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주의는 전통과 과거를 식민화하는 작업에 다름 아니기에 그것의 상대화 는 문명의 타자로 강등된 우리의 전통과 과거의 탈식민화를 통한 전통과의 화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맥락에서 대동민주 유학은 헤겔이 전개한 ‘화 해로서의 정치철학’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재구성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대 동민주 유학은 유럽중심주의 사상가로서의 헤겔과 비판적으로 대결하면서 도 그가 추구한 화해의 정신을 비판적으로 이어받고자 하는 것이다. 헤겔철 학에 등장하는 화해의 의미를 상세하게 논하기에는 적절한 장소가 아니다.

그러나 헤겔철학에서 화해의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은 뺷법철학뺸 서 문(Vorrede)에 등장하는 ‘현실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의 동일성’ 주장, 즉 “이 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라는 문장일 것이다.45)이 명제는 기존 현실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순응적 태도를 정 당화하는 것으로만 해석될 수 없다.46)그런 해석은 사태를 지나치게 단순하 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고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라는 헤겔의 이중명제는 이성과 현실(국가의 제도들) 사이에 화해불가능한 단절과 괴리를 바라보는 시각을 넘어 현재의 제도 속에 기본 적으로 이성적인 원리가 실현되고 있음을 이해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하 고 있다. 그러므로 이성과 현실의 동일성 명제는 역사 속에서 이성적인 원칙 이 더욱 더 풍부하게 현실화되어야 한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여하튼 세계로부터 급진적으로 거리를 취하여 세계를 변혁하려는 프랑 스 혁명의 실패의 경험에서 헤겔은 자유의 실현을 위해서는 특수한 역사적 세계와의 화해가 필수적임을 성찰하게 된다. 프랑스 혁명의 실패의 경험에 대한 숙고의 결과 그는 철학의 참다운 과제를 역사 초월적인 규범에서 구

Hardimon, Michael O., Hegel’s Social Philosophy : The Project of Reconcili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

45) Hegel, G. W. F., Grundlinien des Philosophie des Rechts, 앞의 책, p.24.

46) 이에 대해서는 나종석, 뺷차이와 연대: 현대 세계와 헤겔의 사회․정치철학뺸, 길, 2007, 20~21면 및 각주 2 참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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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고, 역사 속의 이성에 대한 이해에서 구한다.47)역사적 현실로부터 개인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이 속한 역사 세계 속에서 자신을 재발견하는 의식에서 소외의 극복을 추구하는 것은 넓게 보면 헤겔 정신철학 전반, 그 리고 좁게 보면 헤겔의 정치 및 사회철학의 기본적 관심사다.48)이런 화해 의 이념은 그의 독특한 자유의 인식과 함께한다. 그에 의하면 진정한 자유 는 자신이 속한 세계로부터의 도피에서가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더 불어 살아가는 데에서 실현될 수 있다.49)이처럼 헤겔의 정신철학 및 자유 의 이론은 자아와 세계 사이의 극단적인 소외를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 는다. 그런데 서구중심주의가 참이라면 우리사회의 전통과 현대사회와의 매개는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고, 우리는 전통과 역사적 맥락에서 전적으 로 벗어난 상황, 즉 진공 상태에 처하게 된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몰역사 적이고 사회로부터 전적으로 일탈된 고립무원의 유령과 같은 존재로 내몰 리게 되는 셈인데,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구체적 자유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는 것이 헤겔의 화해의 이론이 내리는 결론이다. 인간은 무로부터 아무런 것도 행할 수 없기에 그렇다. 이처럼 헤겔은 한편으로는 유럽중심주의를 내 세워 비서구사회의 몰역사적이고 사회로부터 배제된 구성원으로 만들어 그들에게서 자유로운 삶의 가능성 자체를 박탈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역사적 세계 속에서만 자유의 구체적 실현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한다.

47) Hegel, G. W. F., Grundlinien des Philosophie des Rechts, 앞의 책, p.26.

48) Hardimon, Michael O., Hegel’s Social Philosophy : The Project of Reconciliation, 앞의 책, 2~7면 참조. 세계와 이성의 화해를 헤겔 정치 및 사회철학의 목적으로 인정하면 서도 그런 기획을 오늘날 되살리는 것은 비생산적일 것이라고 보는 입장도 존재한다.

Wood, Allen W., Hegel’s Ethical Thought,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0, p.8 참조 바람. 사회적 자유(social freedom)라는 개념을 통해 헤겔의 자유 이론을 재해석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프레데릭 뉴아우저(F. Neuhouser)는 자신의 사회적 자유 이론과 하디몬의 화해의 기획으로서의 헤겔 철학의 독해가 상호 보안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Neuhouser, F., Foundations of Hegel’s Social Theory : Actualizing Freedom,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 p.7.

49) 프레데릭 바이저, 뺷헤겔: 그의 철학적 주제들뺸, 앞의 책, 16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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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민주 유학이 어떤 점에서 헤겔의 화해의 이론을 이어받고 있는지를 좀 더 살펴보자. 대동민주 유학은 유교적 전통이 전통이라는 점에서 그와 화해할 것을 주장하지 않는다. 앞에서 본 것처럼 대동민주 유학은 유교적 전통의 역사성과 그 속에서 전개되어 오는 대동적 이념의 규범적 영향력에 주목한다. 달리 말하자면 역사 속의 대동적 이념에 대한 서술 속에서 역사 와 현실의 화해의 가능성을 인식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화해의 정신은 정치철학과 비판적 사회이론을 모색할 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대동민주 유학의 입장이다. 이를 보다 명료화하기 위해 필자는 화해의 정치철학에 대 한 롤즈의 인식을 거론하고자 한다. 헤겔의 화해의 정치철학을 이어받아 존 롤즈는 정치철학의 네 가지 역할 중의 하나로 화해의 역할을 강조한다. 화 해의 정치철학은 특정한 사회가 채택한 기본 제도들을 적절하게 철학적으 로 이해함으로써 그것이 왜 “합리적인지”를 보여준다. 게다가 화해의 역할 을 지향하는 정치철학은 특정 정치사회의 제도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형성 되고 전개되어 왔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사회와 역사에 대한 우리의 좌절과 분노를 진정시킬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살아가는 나라를 선택하고 태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태어난 나라로 부터 떠난 삶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자 발적으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평생 동안 살아야 하는 정치사회가 그저 운명 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질서가 아니라, 나름의 좋은 근거를 갖고 그 질서 를 수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화해의 정치철학으로서 대동민주 유학은 특정한 역사적 맥락과 전통 속에서 형성되어 온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사회 세계를 그저 감수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승인해야”하는 이유와 근거를 보여주 고자 한다.50)물론 화해로서의 정치철학은 부당한 현실을 옹호하는 이데올로

50) 존 롤즈, 에린 켈리 엮음, 뺷공정으로서의 정의: 재서술뺸, 김주휘 옮김, 이학사, 2016, 24~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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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 악용될 수 있다. 그런데 악용의 가능성으로부터 전적으로 면역되고 그에 대한 완벽한 저항력을 갖춘 이론이 존재할까? 뿐만 아니라 바로 뒤에서 보듯 이 화해의 정치철학은 보다 힘이 있는 유토피아주의와 결합될 수 있다. 앞에 서 강조했듯이 대동민주 유학은 한국사회를 따스한 시선으로 보고자 한다.

그렇다고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을 부인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런 심각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영역에서 일구어 낸 우리사회의 역사적 성취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리고 그런 역사적 성취를 이룩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사회는 어떤 이상과 원칙에 대한 열망을 실현하고 자 했는지를 새롭게 이해해보려는 탐색 역시 매우 중요하다.

5. 비판이론으로서의 대동민주 유학

앞에서의 분석으로부터 전통과 근대의 이원론은 우리사회에 대한 이론적 인식과만 관계된 것이 아니라, 실천과 관련된 주제임이 분명해졌다. 서구의 눈으로 우리사회 및 동아시아를 보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구중심주의 의 오리엔탈리즘의 과도한 내면화는 우리 현실을 직시하고 고민하는 사유 역량의 형성을 가로막고 있기에 그렇다. 그러므로 현실과의 화해의 정신을 추구하는 대동민주 유학은 우리사회의 실정에 어울리는 비판이론을 모색하 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그 어떤 유토피아적 이상과 비판 이념도 그것이 활동 하고 있는 역사적 삶의 맥락이나 전통과 굳건하게 결합되지 않는다면 실천적 이고 정치적 영향을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비판적 정치철학 과 화해의 정치철학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 및 역사와 화해하지 않고서 우리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으 리라는 희망과 믿음을 갖기란 힘들기 때문이다.51)사실 대동민주주의 및 대

51) 같은 책, 26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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