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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철 : 『열쇳말』의 내적 구성원리와 신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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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쇳말』의 내적 구성원리와 신뢰성*

송승철**

목차

1. 출발: 문화연구와 개념사의 분열 2. 『열쇳말』의 내적 구성원리 3. 『열쇳말』의 내적 구성원리와 신뢰성

레이먼드 윌리엄즈(Raymond Williams)의 『열쇳말』(Keywords)은 특정 분과학문에 속하는 전문용어가 아니라, 영국이 이차대전 후 복지국가를 지향하던 상황에서 당대 의 핵심적 삶에 대한 사유와 경험을 기술할 때 필요한 “일반적 용어” 110 개를 선정 하고, 각각의 용어에 담긴 의미의 다양성, 역사적 형성과정, 그리고 상호 관계를 추적 한 저작이다. 그런데, 문화연구와 개념사, 그리고 지성사 분야에서 이 저작이 가진 위상과 신뢰성에 대한 평가가 너무 달라서 함께 붙여놓으면 마치 학계의 분열적 증상 의 발현처럼 보인다.

필자의 판단하건데, 학계의 이와 같은 불일치의 가장 큰 이유는 윌리엄즈가 『열쇳말』

에서 활용한 방법론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연관이 있다. 윌리엄즈 스스로 자신의 방법 론을 ‘역사적 의미론’으로 명명했지만 방법론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힌 바가 없다. 그러 나 『열쇳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읽어보면 비록 모든 항목에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정한 패턴에 따라 기술됨을 확인할 수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윌리엄스가 자신이 선택한 어휘가 지칭하는 의미들의 역사적 변화와 상호연관성을 추적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과 이념을 ‘내적 원리’라는 이름 아래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았다.

윌리엄즈의 ‘역사적 의미론’은 (1) 개념이나 담론 대신 단어를 중심으로 의미의 역사 적 변화과정을 추구하는데, (2) 이때 대상을 “잠정적으로” 괄호치고, 단어의 내적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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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에 주목하는 게 도움이 되고, (3) 의미변화의 추적 때 문학비평적 방법론의 활용 과 단어의 물적 형태변화의 고찰이 중요하며 (4) 이런 변화과정은 의미의 일반화, 전 문화, 추상화로 요약된다는 것이다.

윌리엄즈의 이러한 방법론은 언어의 살아있는 활력의 환기를 통해 언어의 전문화, 일반화, 추상화를 통해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려는 그 자신의 비평의식의 산 물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서술방식은 독자—특히, 언어와 역사의 비환원적 결합 방식에 대한 요약적 지식을 원하는 개념사 전공자—의 입장에서 볼 때 여러 약점을 노정한다. “잠정적”이지만 현실에 괄호 치고 단어 자체를 살피는 방법론에 유보 없이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고, 단어의 활력으로 이데올로기의 지배에 맞서려는 저자의 의 도의 실효성에 동의하기도 쉽지 않을 터이다. 또한, 개념을 거부하고 전반적 사회조 직과 지배적 관념이 서로 “녹아든”(in solution) “살아진 삶 전체”(a whole lived experience)에 대한 강조로 말미암아 명시적인 체계적 방법론의 개발을 회피하게 되 는데, 이로 인해 저자의 방법론에 대한 일정한 사전 지식이 없을 때 논지의 맥락을 잡기가 쉽지 않다. 반면에, 윌리엄즈의 방법론은 장점도 적지 않다. 개념화되기 이전 의 살아있는 언어적 활력을 중시하는 윌리엄즈 특유의 서술방식은 새로운 개념을 향 한 사유를 촉발하고, 한 단어가 지칭하는 여러 개념들 간 차이를 보다 명확하게 하거 나, 추상화된 근대적 개념에 담긴 의미의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는 장점도 가지고 있 다. 마지막으로 “진보”를 대상으로 한 윌리엄즈의 용례와 코젤렉의 용례를 비교함으 로써 두 사람의 유사성과 차이를 덧붙인다.

논문분야 문화연구, 문학비평, 개념사

주 제 어 레이먼드 윌리엄즈, 라인하르트 코젤렉, 퀜틴 스키너,『열쇳말』, 개념사, 지성 사, 문화연구

* 이 논문은 2015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 2015S1A5A2A01013401)

** 한림대학교 명예교수, scsong@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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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발: 문화연구와 개념사의 분열

전공을 따진다면 문화연구자라 생각하면서, 한편 우리 학계에서 개념사 연구 의 본격적 출범과 진행을 곁에서 지켜본 입장에서는 레이먼드 윌리엄즈(Ray- mond Williams)의 『열쇳말』(Keywords)은 곤혹스러운 저작이다. 문화연구와 개 념사, 그리고 지성사 분야에서 이 저작이 가진 위상과 신뢰성에 대한 평가의 차 이가 너무 커서 함께 붙여놓으면 마치 (서구)학계의 분열적 증상의 발현처럼 보 인다.1) 필자 자신 레이먼드 윌리엄즈와 퀜틴 스키너(Quentin Skinner)의 논쟁 을 다룬 글에서 이 차이에 담긴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한 바 있었다.2)

『열쇳말』은 특정 분과학문에 속하는 전문용어가 아니라 당대의 핵심적 삶에 대한 사유와 경험을 기술할 때 필요한 “일반적 용어” 110 개를 선정하여 각각의 용어에 담긴 의미의 다양성, 역사적 형성과정 그리고 상호관계를 추적한 저작이 다. 윌리엄즈는 저작의 「서문」 후반에서 자신의 작업을 두 가지 목적을 담은

“역사적 의미론”(historical semiotics)이라 명명한다.3) 하나는 소통의 혼란을

1) 리처드 왓모어의 다음과 같은 평가는 지성사 입장에서는 여전히 윌리엄즈의 작업을 특정한 이념에 입각하여 개인적 의도를 투사한 일종의 “휘그주의”로 보고 있음을 말해준다.

F. R. 리비스, E. P. 톰슨, 레이먼드 윌리엄즈 등은 19세기에 벌어진 여러 논쟁을 이런 식으 로, (착한) 낭만주의자들 대 (나쁜) 공리주의자들의 대립이라는 틀로 그려냈다. 시장과 물질 만능주의를 추방함으로써 현세에 새로운 예루살렘을 창조해내고자 하는 열망에 물든 탓에 이들의 역사연구는 과거의 사상을 과장된 형태로 희화화하게 되었다.

라치드 왓모어, 2016, 『지성사란 무엇인가』, 이우창 역, 오월의 봄, 184쪽(Richard Whatmore, What Is Intellectual History?, Cambridge: Polity Press).

2) 송승철, “레이먼드 윌리엄즈의 『열쇳말』과 개념사”, 『개념과 소통』 제 10호, 299-301. 이 글의 초점은 『열쇳말』을 둘러싸고 진행된 윌리엄즈와 스키너 간의 ‘복화술적 대화’의 의도와 논지의 타당성에 대한 검토였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당시 필자는 ‘개념사’를 스키너까지 포 함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지성사 쪽에서는 이런 용법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 고, 개념사의 역사를 개관한 멜빈 릭터(Melvin Richter)도 독일 개념사와 케임브리지 학파 의 지성사는 방법론적 유사성과 결합가능성까지 가지고 있지만 둘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고 지적한다. 멜빈 릭터, 2010, 『정치ㆍ사회적 개념의 역사: 비판적 소개』, 송승철ㆍ김용수 역, 도서출판 소화, 27쪽(Melvin Richter, The History of Political and Social Concepts:

A Critical Introdu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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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는다는 취지 아래 하나의 정확한 의미를 규정하려는 실증주의적 경향에, 다른 하나는 의미변화를 기표들의 관계라는 추상화된 법칙에 종속시키는 구조주의적 경향에 맞서는 것이다. 저자의 입장에서 볼 때 용어의 혼란은 체제의 결함이나 교육의 부족으로 생겨나는 현상이기도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서로 다른 경험의 육화이자 경험에 대한 이해의 차이를 담고 있는 “역사적 당대적 실체”이기 때문 에 의미의 복잡성을 밝히면 논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통념에 동의하지 않 는다. 대신, 자신의 작업으로 진정 기대한 것은 (노동계급이란 표현을 명시적으로 쓰지 않지만) “의식을 한 뼘 더 넓히는 것”(an extra edge of consciousness)이며, 이 의식의 예리한 정련은 적어도 사회적으로 주도적인 의미들이 특정 계급에 의해 형성되고 전문가들은 그 용어들로 작업하는 사회에서는 정곡을 찌르는 일 이라고 말한다.(24)

이미 잘 알려진 바대로 퀜틴 스키너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분석대상으로 단어가 아니라 개념을 선택하고, 언어적 불일치를 의미 변화로 뭉뚱그릴 게 아 니라 기준(의미), 범주(지시대상), 태도(역할 혹은 평가)로 세분한 스키너는 『열쇳말』

이 “저자가 말한 원래의 의도를 달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우리의 인식을 오도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4) 필자는 앞서의 글에서 스키너의 주장 중 ‘반영론’이라는

3) Williams, Raymond, 1976; 1983, Keywords, 1976,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p. 23. 이 저작은 1976년에 초판, 1983년에 수정본이 출간되었다. 그런데, 번역 자 체가 쉽지 않거니와, 윌리엄즈의 표기방식은 기표와 기의의 구분이 애매할 때가 종종 있고, 현재 언어학계의 일반적 표기 관행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이런 부분까지 고려하여 본문 인용 은 수정본을 대본으로 직접 번역하고 쪽수는 인용문 뒤에 표기하였다. 초판과 수정판의 구분 이 필요한 맥락에서는 1976년판은 K1, 1983은 K2로 표기하였다. 『열쇳말』은 김성기와 유 리의 번역으로 『키워드』라는 제목으로 2010년 출간되었는데, 인용문 번역에 도움 받았다는 점을 밝힌다.

4) 퀜틴 스키너 2002, 『역사를 읽는 방법』, 황정아ㆍ김용수 역, 269쪽(Quentin Skinner, Visions of Politics, Vol 1: Regarding Methods, Cambridge:CUP). 이 논문은 「문화적 어 휘라는 관념」(“The Idea of a Cultural Lexicon”)이라는 제목으로 1979년에 Essays in Criticism에 게재되었고, 이후 몇 번에 걸쳐 조금씩 수정이 있었다. 한편, 스키너와 제임스 털리(James Tully)가 공동 편집한 Tully, James (1988), Meaning and Con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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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은 제외하고 비판의 상당 부분을 인정하면서도 두 가지 방식으로 윌리엄즈 를 옹호하였다. 하나는 저작의 출간과정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다. 『열쇳말』은 1950년대에 작업이 상당히 진척되지만 1976년에야 출판되었는데, 그간 『시골 과 도시』(The Country and the City)와 『맑스주의와 문학』(Marxism and Liter- ature)의 출간을 통해 스키너가 제기한 문제가 극복되었음을 말했다. 그런데 이 런 논증은 『열쇳말』에 대한 직접 옹호라기보다 윌리엄즈의 학문적 발전을 통한 간접 옹호에 그친다는 문제가 있다. 또한 스키너는 윌리엄즈가 언어를 실천과 분리시킨 채 “언어의 내적 발전과정”을 천착한다고 비판하는데, 여기에 대해 필 자는 윌리엄즈가 문학연구자로 출발한 만큼 언어의 내적 발전과정에 섬세한 관 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을 뿐 자세한 분석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언어의 내적 발전과정”에 대한 고찰은 『열쇳말』의 성과에 대한 직접 옹호이자 저작의 신뢰성과 연관된 문제이지만, 더 나아가 저작의 가독성과도 연 결된 관건적 지점이라는 사실이란 점에서 섬세한 분석이 필요한 일이었다. 『열 쇳말』은 지금도 문화에 관한 주요 개념을 논의할 때 종종 인용되지만, 표제어마 다 해제의 논의수준과 서술방식이 일정치 않기 때문에 윌리엄즈 특유의 방법론 에 익숙하지 않을 때 읽기 까다로운 대목이 적지 않다. 앨런 듀란트(Alan Durant)는 『열쇳말』에 대해 “문학, 문화, 정치 분야 학계에서 「서문」은 아직도 읽히고 있지만, 개별 표제어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하다”는 점을 지적한다.5) 독성의 어려움이란 저작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와 방법론이 부재하거나, 있더라 도 독자 입장에서 이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생기는 문제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 윌리엄즈는 「서문」에서 “역사적 의미론”과 “언어의 내적 발전에 대한 이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에는 원문을 약간 수정하고 제목을 “Lan- guage and Social Change”로 고쳐 게재하였다.

5) Alan Durant, 2006, “Raymond Williams’s Keywords: Investigating Meanings

‘Offered, Felt for, Tested, Asserted, Qualified, Charged”, Critical Quarterly vol 48.4, (Winter 2006), p.20. “가진 사람은 많지만 읽은 사람이 적은 책은 역사적 의미론 분야에도 많다”라는 유보를 달고 하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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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의 중요성”을 강조할 뿐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의 『지나간 미래들: 역사적 시간에 대한 의미론』(Vergangene Zukunft: Zur Semantik ges- chichtlicher Zeiten)이나 케임브리지 지성사의 마니페스트로 읽히는 스키너의

『역사를 읽는 방법』(Visions of Politics, vol. 1: Regarding Method)에서처럼 연구 대상에 대한 체계적 접근방식을 서술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열쇳말』은 일정한 방법론 없이 문학적 통찰로만 서술된 저작일까.

이런 점에서 『신좌파평론』(New Left Review) 편집자들이 이 저작을 “적어도 영 어권에서는 유래가 없는 독창적인 시도”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동시에 역사적 의미변화를 바라보는 이 저작의 원칙이 『문화와 사회』(Cul ture and Society, 1780-1950)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더 진전된” 면이 있다고 지적한 점은 흥미로 운 일이다.6) 실제로 110 개 표제어 전체를 찬찬히 읽어보면 표제어마다 이차대 전 이후 복지국가를 지향하던 영국의 사회적 상황 속에서 표제어가 가진 긴박성 에 따라 저자의 논의범위, 서술방식과 분량 등에서 차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 구하고 의미 변화를 바라보는 문제의식, 역사적 접근법, 서술형식 등은 표제어 의 해제에서 상당 부분 공유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편람 형식의 『열 쇳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독자는 드물 것이고, 다양한 전공에서 출발한 연 구자들에게 윌리엄즈의 학문적 이력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 읽으라는 요청도 무리한 주문이다. 그렇다면, 이 공유된 문제의식과 방법론을 ‘내적 구성원리’로 추상하여 설명하는 작업은 이 저작에 대한 개념사와 지성사의 비판에 대한 ‘직 접적’ 대응에 해당하는 일이고, 그보다 저작의 가독성을 올려 독자의 이해를 돕 는다는 점에서 (특히 한국의 독자들에게) 필요한 일이 될 것이다. 이 글은 이런 문 제의식에서 출발했다.

6) Raymond Williams, 1979, Politics and Letters: Interviews with New Left Review, London: Verso,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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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열쇳말』의 내적 구성원리

저자가 ‘역사적 의미론’의 체계적 서술형식으로 명시하지는 않지만, 『열쇳말』

을 끝까지 읽어보면 표제어의 대부분은 개략적으로 다음과 같은 절차에 기반하 여 서술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 표제어는 문화와 사회를 대상으로 제기된 생각이나 경험을 토론하고 기술 할 때 통용되는 일상적 ‘어휘’를 선정하여 우선 각 단어에 내포된 의미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기술한다. 이때 의미의 다양성이 중요하므로, 특정한 집단이나 시기 의 의미와 용법으로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

(2) 의미의 역사적 변화과정을 추적할 때는 역사적 변화과정과 함께, 내장된 의미들의 “내적 발달과정과 구조”를 살피는 작업이 도움이 된다. 즉, 단어를 사 회적 맥락에서 “잠정적으로” 분리시켜, 단어 자체에 내장된 여러 의미들의 상호 연관성 및 단어가 지닌 이미지와 비유를 통한 의미의 확장이 의미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3) 한편, 단어의 물적 형태의 변화과정에 대한 추적도 역사적 의미론에 크게 도움이 된다.단어의 문법적 형태의 변화—예를 들면, 진행형 복수명사에서 독립 적 단수 추상명사로의 변화—는 의미의 질적 변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4) 단어의 물적 형태의 변화는 사회적 제도적 변화와의 관계 속에서 진행된 다. 문화와 사회에 관한 어휘의 물적 형태의 변화는 15세기경부터 의미의 전문 화, 일반화, 추상화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과정은 18세기 후반에 거의 완 성된다.

이처럼, 윌리엄즈의 ‘역사적 의미론’은 (1) 개념이나 담론 대신 단어를 중심으 로 의미의 역사적 변화과정을 추구하는데, (2) 이때 대상을 ‘잠정적으로’ 괄호치 고, 단어의 내적 연관성에 주목하는 게 도움이 되고, (3) 의미변화의 추적 때 문학비평적 방법론과 단어의 물적 형태변화의 고찰이 중요하며 (4) 이런 변화과 정은 의미의 일반화, 전문화, 추상화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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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나마 요약해 놓고 보면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독자는 물론이고, 개념 과 구조의 상호관계를 통해 역사적 변화를 파악하려는 개념사 전공자들조차 윌 리엄즈 특유의 문체에 익숙하지 않을 때 해제의 이해가 쉽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좌파평론』(New Left Review)의 편집자들이“적어도 영어권에서는 유래 가 없는 독창적인 시도”라고 평가한 점은 이미 언급했지만, 윌리엄즈를 신랄하 게 비판한 스키너도 이 저작에 대해 “아주 흥미롭고 명민한” 통찰을 많다는 단 서를 붙이고 있다.7) 그렇다면, 왜 혼란스럽고, 무엇이 독창적이고 명민한 통찰 인지 위의 과정을 (1)에서 (4)까지 하나씩 검토해보자.

우선, 특정 단어가 지닌 의미를 영어로 유입된 시점부터 당대까지8) 변화하는 과정을 고찰하는 ‘역사적 의미론’이 단어와 개념을 구분 구분을 소홀히 한 부분 은 해제의 설득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 건 사실인데, 저자가 본문에서 단어 와 개념의 혼용이란 비난에도 전자에 집착하는 까닭과 그 효과에 대해서는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읠리엄즈도 필요할 때는 단어와 개념을 구분한다. 다음은 표제어 ‘industry’ 내의 [산업혁명]에 대한 해제의 일부이다.9)

7) Quentin Skinner, “Language and Social Change”, in James Tully, ed., 1988, Meaning and Context,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p.129.

8) 『열쇳말』의 표제어는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기원이며, 고대 프랑스어를 거쳐 영어로 유 입된 경우가 압도덕이다. K1의 경우, 표제어 110 개 가운데 4 개만이 앵글로-색슨어에서 유래되었다. 케임브리지 대학 부임 전까지 성인교육을 담당했던 윌리엄즈는 이런 라틴어 기 원 어휘의 절대적 우위는 성인교육 현장에서 곧잘 반지성주의를 유발했고, 노동운동의 경우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용하는 ‘언어장벽’ 사례가 자신의 큰 고민거리였다고 말한다.

Raymond Williams, 1979, Politics and Letters: Interviews with New Left Review, p.179.

9) 우리 학계는 물론이고 서구의 개념사 학계에서도 단어와 개념에 대해 정해진 변별적 표기법 이 없는데, 논의의 효율을 위해 양자의 표기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언어 학계의 관행을 빌어, 기표(signifier)는 따옴표를 친 ‘industry’ 또는 ‘산업’, 기의(signified) 는 모괄호에 대문자를 사용하여 [INDUSTRY] 또는 [산업]으로 표기한다. 앞서 각주에서 지 적한 바대로 『열쇳말』의 경우는 표제어는 볼드체로, 주요한 의미(기의)는 때에 따라 이탤릭 체를 사용하는데, 인용문 번역에서는 윌리엄즈의 표기법을 존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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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이란 용어의 사용]은 특히 추적하기 어렵다. 흔히 아놀드 토인비가 1881년의 강연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훨씬 이른 용례 가 불어와 독어에 있다. (중략) 산업의 중대한 변화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질서라 는 생각(idea)은 1811년과 1818년 간 쓴 사우디와 오웬의 글에 명백히 존재하며 이미 1790년대 초의 블레이크와 세기 전환기 워즈워스의 글에서도 암시적으로 존재한다. (중략)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19세기 말까지 흔히 사용되지는 않았지 만, 그 생각은 19세기 중반부터는 널리 흔하게 볼 수 있었으며, 명백히 19세기 초에 형성되었다.(166-7)

여기서 윌리엄즈는 개념(concept) 대신 생각(idea)이라고 표현했지만, 영어권 에서도 ‘산업혁명’이란 기표를 얻기 훨씬 전에 일정한 의식형태로 구축된 개념 으로서의 [산업혁명]이 있음을 지적한다.

그런데, 저자가 작업 단위로 개념보다 단어를 선택한 것은 당대의 언어학적 성과에 소홀했던 일시적 착오라고만 보기 힘든데,10) 그의 학문적 출발점이 크 리스토퍼 코드웰(Christopher Caudwell)로 대표되는 1930년대 속류 마르크스 주의(vulgar Marxism)와 이에 대항하는 F. R. 리비스(F. R. Leavis)의 비평방식 간의 갈등이란 역사적 사실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저자가 경제결정론의 경직된 개념적 이해에 실망하고, 대신 언어는 인간 삶의 “생생함”(livingness in human life)이 총체적으로 드러나는 영역이며, 따라서 개념분석이 아니라 위대 한 작가의 언어적 실천에 대한 섬세한 분석을 통해서만 “위대한 전통”(the great tradition)에 접근할 수 있다는 리비스의 “살아있는 원칙”(the living principles) 에 호응한 결과이다. 다음은 “문학비평과 철학”(“Literary Criticism and Philo-

10) 존 히긴스는 윌리엄즈의 역사적 의미론은 “아마추어” 수준이며, 그의 소쉬르 독해는 “경향 적”(tendentious)이라 비판한다. 사실보다 이념에 기반한, 정치적 의도가 담긴 독해라는 지적일 것이다. John Higgins, 1999, Raymond Williams: Literature, Marxism and Cultural Materialism, London: Routledge, p.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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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y”)에 실린 리비스의 발언이다.

문학비평가의 과업은 [작가의] 대응이 지닌 완벽한 특수성을 획득하는 것이고, 이는 작가가 자신의 반응을 견해로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양자 간의 특수하고 팽 팽한 관련성을 관찰하는 것이다. 비평가는 자신 앞에 놓인 글에서 무언가 추상하 려는 경향으로부터,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또는 그것들로부터의 성급하거나 부 적절한 일반화를 하려는 경향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 비평가의 첫 번째 과 업은 (말하자면) 주어진 시를 구체적이고 완전하게 장악하는 것이며, 계속해서 그 완전한 장악력을 결코 잃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증대시켜야 한다.11)

그러니까. ‘역사적 의미론’이 개념을 중시하지 않은 근저에는 ‘실생활’과 ‘개 념’ 사이에서 역동하는 공간—즉, 제도와 같은 사회적 요소로 환원할 수 없고, 아직 개념으로 규정할 수 없는 무정형의 진행형적 활동—에 대한 관심이 놓여 있으며, 윌리엄즈 자신은 나중에 이 공간을 “감정의 구조”(the structure of feeling)라는 개념으로 구체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 간 명확한 구분의 약화는 저자의 해설을 모호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자주 인용되는 항목인 ‘literature’를 예로 들자. 윌리엄즈 는 ‘literature’의 의미가 16세기 이후 끊임없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우 리 시대의 [문학] 개념—① 전문작가가 ② 상상력으로 삶과 사회를 소재로 쓴

③ 품격 있는 글—은 19세기 초에 형성된 것이며 그 이후로도 ‘literature’의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문학] 개념은 사회적 제도의 변화

11) F. R. Leavis, 1962, The Common Pursuit, Penguin Books, P.213. 물론, 윌리엄즈가 리비스의 언어관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언어가 “공동체가 가진 최고의 통찰”

에는 동의하더라도, 이 통찰이 “연속적 유산”으로 후대에 전달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실제 언어가 놀라운 변모와 반전을 겪는 역사적 현실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관념주의적 언어관이 라고 비판한다. Raymond Williams, 1979, Politics and Letters,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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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결합되어 일정한 강도를 가진 의미구성체로 ‘개념화’된 것으로 그 이전의

‘literature’가 가진 이런 저런 의미와는 질적 차원이 다른 것이라고 기술하면 19세기 초의 의미 변화와 문학제도의 탄생과 연계가 훨씬 명확해진다. 그런데, 윌리엄즈은 견고한 사회제도로서 문학의 탄생보다, 현재의 [문학] 개념은

‘literature’에 담긴 여러 의미 가운데 특정한 하나가 전문화과정을 통해 지배 적 위치를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려 한다. 이는 저자가 현재의 [문학] 개념은 특정 계급의 이데올로기적 장치일 뿐 다른 유형의 [문학]도 가능하다는 비판의 식을 담고 있지만, 일반 독자가 “전문화”란 용어에서 이데올로기적 의미와 저자 의 비판을 포착하기는 쉽지 않게 된다.

그러면, 단어의 역동적 활력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는 윌리엄즈의 시도는 실패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단어에서 출발하여 개념과 이데 올로기를 거쳐 담론에 이르는 다양한 수준의 언어적 실천이 지닌 인식론적 지위 를 비교하는 일이다. 후자로 갈수록 제도와 구조의 힘이 행위자를 압도하게 되 는데, 중간에 위치한 개념사의 인식론적 장점은 구조와 행위자 간 비환원적 상 호관계를 포착하기 유리하다는 점일 것이다. 이에 비해 윌리엄즈는 모든 것이 하나로 “용해된” 상태에서 발휘되는 개개인의 활력을 중시하는데, (‘literature’

의 해제가 보여주는 것처럼) 훌륭한 역사적 추적임에도 불구하고 개념화를 거부하 기 때문에 대상의 명확한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다만, 윌리 엄즈의 의도가 성공할 때는 예기치 않은 인식, 즉 “아주 흥미롭고 명민한” 통찰 을 가져온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determine’에 대한 해제가 이를 잘 보여준다,

윌리엄즈는 ‘determine’에 대해 14세기 영어로 유입된 후부터의 단어의 의 미변화를 추적한다. 초기 의미는 언제나 “한계의 설정”(“setting bounds to”) 로 외부적 힘에 의한 과정의 종결을 의미했다. 윌리엄즈가 주목하는 점은 17 기 중반 신학과 생물학에서 유래한 새로운 의미로 사물의 최종 단계를 결정하는 힘이 이제는 “내재적 속성”이 된다. 마침내 사물에 내재한 속성으로 제시된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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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력은 다시 “절대적 원칙”이나 “불가피성”으로 추상화되는데, 19세기에 불가 피성은 (결정은 개인의 의지와 관계가 없다는) “새로운 의미의 외재성”과 결합한다.

그 결과 20세기에 결정론은 “광기”(madness)의 수준으로 강화되어 극단적인 환 원주의와 경제결정론으로 나타남을 보여준다. 이 해제는 윌리엄즈가 『문화와 사회』를 쓸 당시 목격한 당대의 경제결정론에 대한 비판의 급박성이 배후에 깔 려있긴 하지만 [결정] 개념의 다양성—차례로 외재적 종결점, 내재적 속성, 절 대적 원리, 외재적 힘, 경제—을 제시하는 가운데, “determine”의 다양한 의미 에 대한 설명을 통해 [결정] 개념에 대한 사유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그런데, “determine”의 해설에서 아주 의미심장한 부분이 마지막에 나온다.

결국, [‘determine’]에 또 하나의 아주 다른 의미가 지속된다는 점도 이 단어 의 역사의 일부인데, 여기서는 determine, determined, 그리고 determination은 한계나 종결점 또는 어떤 외재적 원인이 아니라, 특히 “나는 이걸 반드시 해내야 해”(I am determined to bring it about)의 예에서처럼 의지적 행위(acts of the will) 의미한다. 이 의미는 아마 앞서 지적한 바의 “마무리하다”라는 초기 의미에서 유 래한 것으로, 여러 개의 초기 용례는 ‘determine with oneself’의 형태로 쓰였 는데, 이는 해소(resolve)와 해결(resolution)이란 의미의 전개와 연관성이 있다.

‘determine’의 현대적 의미가 신학과 자연과학이 선편을 잡고 사회과학이 좇아가는 의미의 추상화 과정의 끝을 저자는 ‘일상적 언어습관에서 유래하는 determine’의 전혀 다른 의미의 추가로 마무리한다. 중요한 것은 한갓 예외적 추가로 보이는 이 대목으로 인해 저자는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부정적, 외재적 [결정] 개념에 맞서, ‘한계의 설정’과 ‘압력[의지]의 행사’라는 중층적 의미를 가 진 개념으로 재해석하게 되며,12) 이런 재해석은 윌리엄즈 특유의 문화유물론 12) Raymond Williams, 1977, Marxism and Literature,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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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여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문화유물론에 대한 개인적 찬반과는 별도로, 단어 에서 발견하는 일상적 언어의 활력이 새로운 사유를 열어젖힌 점은 윌리엄즈식 역사적 의미론의 성과일 터인데, 이렇게 일상적 언어의 의미 활용을 통해 새로 운 [개념]을 모색하는 시도는 [리얼리즘], [문화], [대중], [매개] 등 여러 사례에 서 발견된다.

둘째, 역사적 유물론은 대상을 “잠정적으로” 괄호치고, 단어의 내적 발달과정 과 구조에 주목하는데, 윌리엄즈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의미의 문제는 사회적 맥락 속으로 집어넣는다고 모두 해소되지 않는 다. 단어는 언제나 언어라는 사회적 과정의 한 요소이며, 그것의 용법은 언어 자 체의 복잡한 그리고 (비록 가변적이나) 체계화된 속성에 좌우되기 때문에, 궁극적으 로 홀로 존재하는 단어란 사실 없다. 그러나 특정한 단어, 특히 문제적 유형의 단어를 선택하여, 그 자체의 내적 발달과정과 구조를, 잠정적으로, 검토하는 것 은 여전히 도움이 될 수 있다. (중략) 실제로 이런 과정들 대다수는 특정 단어의 복잡하고 가변적인 의미 내에서 진행되며, 이 의미를 용법, 지시대상, 관점의 관 계망이 전개되는 방식의 예로서 보여주는 유일한 방법은 당연히 내적 구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잠정적으로, 집중하는 것이다.(22-23)

인용문은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하나는 “잠정적으로”라는 단서를 붙였지 만 대상을 사회적 맥락과 유리시키는 방법론은 개념 대신 단어를 선택한 것만큼 이나 논란의 소지가 있다. 두 번째는 독자 입장에서 “내적 발달과정과 구조”란 말 자체가 가진 모호함인데, 문맥상 한 단어에 내장된 여러 의미들의 복합적 상 호관계, 그리고 단어가 지닌 이미지와 비유를 통한 의미의 확장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experience’를 예로 들자. 윌리엄즈는 다른 표제어 해제의 경 우와 달리13) 주로 18세기 이후 이 단어의 용법을 둘러싼 갈등에 초점을 맞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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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이 갈등을 단어 자체에 내재한 시간적 속성의 상호관계로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experience’에는 과거형과 현재형이 있는데, 과거형 의미는 “경험이 나 성찰에 의해 과거로부터 수집한 지식”으로 종종 혁신에 반대하는 “교훈”으로 활용된다. 이에 반해 현재형 의미는 삶의 완전성에 닿아있는 개방적, 활동적, 내면적 의식으로 이성이나 분석 같은 추상에 맞서는 “특별한 유형의 의식”이다.

윌리엄즈는 오늘날 [경험]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해석—즉, “모든 추론과 분석 에 앞서 이를 뒷받침하는 진정한 근거”라는 인류학적 개념과 “사회적 조건이나 신념체계의 산물”이라는 구조주의적 개념—의 갈등을 단어 자체에 내재한 시간 적 양태의 차이로 설명한다. 문제는 윌리엄즈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할 때 이다.

[2가지 개념 사이의] 논란의 상당 부분은 처음부터 경험 자체가 가진 복잡하고 종종 대체적인 의미들에 의해 혼란을 겪는다. 과거적 경험은, 아주 진지한 용례에 서는, 가장 극단적인 용례의 현재적 경험—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정성과 즉각성—

이 배제하는 숙고, 반성, 분석과정을 이미 포함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경험을 항상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물건으로 환원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분리된 체계라는 유형 과는 속성이 다른 숙고, 반성, 분석에 대한 배제에 기반하고 있다. 그리기에 그와 같은 유형의 증거들을 검증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유형의 증거들 을 가장 깊은 의미의 경험이란 측면에서 따져보자는 것이다.(128-9, 강조는 인용 자)

13) “experience”는 수정본에 새롭게 편입된 표제어인데, 과거의 의미변화에 대한 추적을 생 략한 것은 “experience”가 라틴어가 아닌 앵글로색슨어 계열이라는 점과 연관이 있다. 앵 글로색슨적 기원을 가진 또 하나의 단어인 “work”의 해제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의미를 가진 라틴어 계열의 “labour”의 해제는 영어로 유입된 직후인 14세기부터 출발하는데,

“work”는 18세기 이후 발생한 의미의 전문화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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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즈의 접근법은 이번에도 양면적이다. 민족지학과 구조주의적 접근법의 인식론적 차이를 “experience”의 시간적 속성을 통한 설명은 개념적 차이의 이해에 크게 도움이 된다. 그러나 양자 간 논란의 상당한 이유가 “경험”이 가진 의미의 복잡성 때문이고, 두 입장의 각각의 한계는 (‘determine’의 경우처럼)

‘experience’에 내장된 두 의미를 생각할 때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의 활력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게 높은 게 아닐까.

윌리엄즈가 말하는 “단어의 내적 발달과정과 구조”는 또한 의미변화의 추적 에서 개별 단어의 시간적 양태 및 이미지와 비유의 역할에 대한 강조와도 연결 된다.14) 이미지와 비유를 이용한 의미의 확장과 변화를 설명하는 예로는

“class”가 대표적이다. 지위의 차이를 지칭하는 과거의 용어들 -예를 들면,

‘rank’, ‘order’, ‘estate’, ‘degree’- 이 18세기 이후 ‘class’로 대체되는 과정 을 저자는 언어의 비유성에 기대 설명한다.

class보다 오래된 단어들이 출생에 의해 입지가 결정되는 사회에 속하게 된 것은 그 단어들 모두가 특정한 위치에 서 있고, 계단을 올라가고, 줄 속에 자신을 정렬시킨다는 비유를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 이동이란 하나 의 단계, 등급, 서열 또는 줄에서 다음 단계로의 이동으로 볼 수 있었다. 의식을 변화시킨 동인은 개인적 이동성의 증가뿐만 아니라(이것은 대개 과거의 용어로 담을 수 있었다), 새로운 유형의 구분을 포함한 사회적 구분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새로

14) 언어의 비유성은 윌리엄즈 뿐만 아니라 개념사에서도 사용하는 방법이다. 다음은 『역사적 기본개념』 가운데 「진보」(“Fortschritt”) 항목에 대한 설명의 일부이다.: 이때 시간 그 자체 는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역사적 표현들은 은유적으로 역사와 그 “움직임”에까지 확 대되는 자연적이고 공간적인 배후 의미에 의지하게 된다. ‘진보’ 개념 역시 그러한 표현들 가운데 하나이다. ‘걸어가다Schreiten’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이 개념은 물리적ㆍ공간적 구 성요소를 지니며, 걷는 행위가 이루어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시간적 구성요소가 첨가된다.

그런데, 『역사적 기본개념』에서 비유는 대부분 관념적 의미의 출발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잠시 소환되는데 비해 윌리엄즈의 근대적 의미의 탄생의 설명까지 이미지의 비유적 확장에 의지한다. 인용문은 라인하르트 코젤렉 외, 1975, 『진보』, 황선애 역, 푸른역사, 1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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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의미의 SOCIETY(표제어 참조할 것), 즉 어떤 특정한 사회체계였다.(61-2, 인용 자의 강조)

그러니까 근대 이전의 다른 단어들에 내포된 이미지는 상향적 위계를 향한 이동인데, 이 이미지는 본질적으로 “출생에 의해 위치가 결정되는 사회”와는 상 응하지만 근대적 의미의 [사회] 개념에 내포된 상호 연결된 추상적 전체의 이미 지와 맞지 않기 때문에 ‘class’라는 용어로 대체된다. 『열쇳말』을 읽으면 이런 식의 설명방식과 종종 마주치게 된다. ‘evolution’은 책을 펼친다는 이미지를 저장하고 있는데, 이 이미지는 신학에서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을 펼치는” 신 의 창조행위의 비유로 전용되고, 다시 존재의 내재적 속성의 발현이라는 근대적 [진화] 개념으로 확장된다. 현대적 [대중] 개념의 등장은 ‘mass’에 내포된 무정 형과 덩어리라는 두 이미지를 통해 설명되며, [혁명] 개념을 논할 때는

‘revolve’에 내포된 회전의 의미뿐만 아니라 18세기까지 문학적 수사로 종종 사용된 운명의 수레바퀴(the Wheel of Fortune)의 역할을 지적하는데, 회전과 운명의 수레바퀴의 비유를 통해 ‘revolution’은 근대에 이르러 [혁명] 개념으로 발전한다.

단어에 내장된 의미의 상호관계 그리고 이미지와 비유에 대한 천착은 문학비 평이라는 그의 출발점, 그리고 리비스의 언어관 및 비평방식의 영향으로 이해해 야 할 것이다. 리비스는 언어는 공동체의 진실이 담겨있는 보고이지만 살아있는 경험이 가진 역동성과 근본적 진실은 결코 담론이나 논리와 같은 추상적 장치로 는 결코 드러나지 않으며, 오로지 비유와 이미지에 대한 철저한 검토 속에서

“살아있는 원칙”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15)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언급

15) 예를 들면, 리비스는 매슈 아널드(Matthew Arnold)의 소네트 “셰익스피어에게”에서의 비 유를 분석하면서 아널드의 비유 속에서 정신의 상투성과 공허성의 증거를 찾는다: “저 불행 한 비유는 [아널드]가 셰익스피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체적 징표이 다. 즉 [아널드]가 그 비유를 쓰게 된 것은 그 자신 특별히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없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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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어야 할 사항은 윌리엄즈가 개별 단어의 내적 변화와 구조에 주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유일한 접근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개념사적 방법론 과 마찬가지로 의미 변화를 당대의 제도나 사회적 관계와 연결시킨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면, ‘literature’에서 근대적 의미의 [문학] 개념이 탄생하는 과정 에 대한 해설의 일부이다.

literary는 [18세기에 오면] 의미가 확장되어 literate라는 말의 동의어 이상이 되는데, 아마 처음에는 일반적 의미의 박학다식으로, 그러나 18세기 중반부터는

‘문학적 자질’(골드스미스, 1759)과 ‘문학적 명성’(존슨, 1773) 같이 전업적 실천적 글 쓰기를 의미한다. 이는 후원제도에서 출판시장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작가의 직 업성에 대한 자의식이 고양된 것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185)

이런 식의 설명은 모든 언어행위는 사회 내 언어행위이기에 의미의 문제는 실제적 사회관계에 터를 잡고 있다는 저자 자신의 주장과도 일치하지만, 『열쇳 말』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저작에서 기대하는 바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므 로 앞서 든 몇 가지 사례에서처럼 개념의 변화를 사회제도의 변화와 연결하기보 다 이미지와 비유를 매개로 한 의미의 확장에 의존할 때,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라면 논지의 타당성과는 별도로 윌리엄즈식 해제를 선뜻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윌리엄즈는 앞서 “특정한 단어의 내적 발달과정과 구조를, 잠정적으로, 검토 하는 것은 여전히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정작 그 도움이 무엇인지

이다. 분석가들에게 유용한 조언을 한 마디 한다면, 전체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음은 구체적 으로 이런 식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며. 어떤 판단을 검증하고 강화할 때 생산적 증거를 찾기 위해 검토해야 할 것은 비유와 이미지라는 점을 덧붙일 수 있겠다.” F. R. Leavis, 1943, Education and the University, Cambridge: Cambridge UP, p.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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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해 따로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윌리엄즈의 역사적 의미론은 이번에도 양 면성이 있는데, 『열쇳말』의 표제어 해제를 꼼꼼히 읽어보면 언어의 내적 구조에 대한 해설이 새로운 통찰로 이어지는 경우를 여러 번 목격하게 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단어의 시간적 양태의 변화와 단어의 물적 형태의 변화를 연결시킨 가운 데 의미의 변화를 고찰할 때이다. 이것이 역사적 의미론의 세 번째 특징으로 윌 리엄즈는 단어의 시간적 양태가 동사형에서 명사형으로 변하고, 단어의 물적 형 태가 복수형 일반명사에서 독립적 단수 추상명사로 옮겨가는 과정 속에서 근대 적 의미의 형성 계기를 발견하는데, 이를 의미의 전문화, 일반화, 추상화의 3 범주로 분류하여 파악한다. 『열쇳말』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의 결과 독립적 추상 명사가 탄생하는 시기는 일부 19세기 초반에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기는 하나 대략 18세기 후반이 된다. 그런데, ‘근대성’ 개념이 아직 학계의 본격적 화두로 부상하기 전 출간된 이 저작에서 저자가 근대적 개념체계의 형성이라 설명할 과정을 ‘추상화’로 명명하고, 이 과정을 다시 ‘일반화’와 ‘전문화’라는 개념으로 세분화하여 설명하는 방식은 주목을 요한다. 문법에 담긴 시간적 양태와 물적 형태의 변화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예는 ‘reform’이다 ‘reform’은 14세기 경 영어로 유입될 때 “원상복구”와 “혁신”을 지칭하는 진행형 동사였다. 15세기에 명사형 ‘reformation’이 출현하지만 여전히 진행을 지칭하는 동명사적 명사였 고, 18세 후반에 진행의 의미보다 혁신적 경향이란 정치적 속성을 지칭할 때 추상명사가 되고, 19세기가 되면 “특정한 정치적 집단”을 의미하는 한정명사가 된다. 즉, 단어의 시간적 양태와 물적 형태의 변화는 곧바로 의미의 변화와 직결 된다.16)

16) 단어의 물적 형태에 대한 관심은 개념사에서도 중요한 탐구의 대상이었다. 다음의 예를 보 라: “정치ㆍ사회적 개념은 구체제 유럽에 고유한 신분질서 체제 하에서는 특정화, 특수화 경향을 보였는데, 특정 도시 ‘시민’의 자유들(the liberties of Bürger of a city)과 같은 사례가 보여 주듯 복수 형태로 뚜렷한 사회적 단계와 특권을 지칭했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서면서 그때까지 잔존해서 사용되던 과거의 언어들은 사회적 지칭 범위가 더욱 일반화 되거나, 의미가 더욱 추상화되기 시작하고, 마침내 언어적으로 “주의”(isms) 또는 ‘libe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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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즈는 전문화와 일반화를 개념적으로 따로 구분하거나 차이를 설명한 적은 없지만, 용례를 통해 둘을 구분한다. 일반화는 구체적 활동이나 특정한 대 상에 적용되던 단어가 활동이나 대상의 전체로 확대되는 것이고, 전문화는 일상 적 활동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단어의 적용 범위가 특정한 활동이나 대 상으로 제한되는 현상이다. 이에 반해 추상화는 단어가 구체적 대상을 지시함이 없이 그 자체 객관적 존재로 격상되거나 행위자의 역할을 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주로 전문화와 일반화 과정을 거치면서 나타난다. 의미의 전문화는 ‘art,’

‘communication,’ ‘labour,’ ‘literature’ 등에서 진행되는데, ‘art’를 예로 들자. 원래 ‘art’는 제작의 ‘기술’을 지칭하는 범용적 적용 사례인데, 17세기 말 에는 회화, 판화, 조작과 같은 특정 분야에 제한되어 적용되기 시작한다. 18 기 후반에 “artisan”(장인)과 “artist”(예술가)의 구분이 생기고, 19세에는 상상적 창조적 예술행위를 특정한 추상명사가 되는데 이때는 종종 대문자 ‘Art’의 형태 로 표기된다. 의미의 일반화는 ‘culture,’ ‘charity,’ ‘individual,’ ‘labor,’

‘reform,’ ‘work’ 등 다양한 어휘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면, “charity”는 기독 교적 관점에서 타인을 돌보는 구체적 행위를 의미했는데, 이후 “궁핍한 자에 대 한 시혜”라는 특정한 의미로 적용 범위의 한정을 거쳐 17세기 후반에 오면 ‘자 선행위’ 자체를 지칭하는 일반적 추상적 의미를 획득한다.

물론 의미의 추상화가 전문화와 일반화의 어느 한 형태로 진행하는 것은 아 니다. 오히려 두 개가 함께 얽혀서 진행하는 경우가 더 많고, 이런 경우 일반화 와 전문화의 섬세한 구분의 의미가 중대해진다. 의미변화과정에서 일반화와 전

같이 단수명사의 형태를 취하게 되면서 단수명사는 ‘liberties’와 같은 과거의 복수형적 용 법을 대체하게 된다. 이런 추상명사는 의미의 윤곽이 분명하지 않는 공식어에 아주 적격인 데, 왜냐하면 지지자를 획득하기 위해 경쟁하는 운동과 집단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 말을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념의 문법형이 복수에서 단수로 변한 것은 이러한 이데 올로기적 경향이 확연히 드러난 한 방식이다. 그리하여 과거에는 구체적인 권한, 관행, 또는 사건으로 이해되던 관념들로부터 단수형의 집합적 개념이 탄생한다.” 멜빈 릭터, 2010, 『정 치ㆍ사회적 개념의 역사: 비판적 소개』, 송승철ㆍ김용수 역, 도서출판 소화,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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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통해 추상화가 일어나는 사례인 ‘culture’를 예로 들자. ‘culture’의 어 원에 해당되는 라틴어 “colere”는 의미가 네 가지였지만, 15세기 초 영어로 유 입될 때는 “작물이나 가축을 돌보다”라는 특정하고 구체적인 행위인데 시간적 으로 “진행”의 양태를 가진 동사였다. 이후 3 세기에 걸쳐 두 번의 결정적 의미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는 곡식과 가축에 대한 물리적 돌봄의 의미가 인간 정신 의 돌봄이라는 사회적 교육적 의미로 변한 것으로 의미의 비유적 확장과 전문화 가 동시에 일어난 것이고, 또 하나는 초기에는 구체적 대상에 대한 돌봄의 행위 가 일반적 의미의 ‘돌봄’으로 변한 것이다. ‘culture’는 후자의 과정을 거치면서 품사 형태가 동사에서 마침내 추상 독립명사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추 상적 개념의 [문화] 개념이 탄생하는 과정이다. 윌리엄즈의 [문화]의 세 개념은 잘 알려진 것인데, (i) 독립추상명사로 “지적, 정신적 미학적 발전의 일반과정”

을 지시하거나, (ii) 일반적으로도 전문적으로도 사용하는 추상명사로, “특정 국 민, 특정시기, 특정 집단, 또는 인류전체이든 관계없이, 이들의 특정한 삶의 방 식”이거나, (iii) 다시 독립추상명사로 지적 활동—특히 예술 활동에 따른 작품 과 실천--을 지시한다. (i)은 일반화의 예이고, (iii)은 특정한 활동으로 전문화 된 예인데, 저자는 계속해서 말한다.

영어에서 (i)과 (ii)의 거리는 아직도 가깝다. 그래서 가끔은, 내적인 이유들로 인해, 아널드의 Culture and Anarchy(1867)처럼 [(i)인지 (ii)인지] 구분이 불가 능하다.(91)

Culture and Anarchy는 “문화와 무질서”와 “교양과 무질서”의 두 가지로 번역되었고, ‘옳은’ 번역에 대한 논란도 있는데, 윌리엄즈의 설명은 “문화”와

“교양”의 미묘한 차이가 아널드의 용법이 일반화와 전문화 간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인함을 설명하는 장점이 있다. 아놀드가 “시”(poetry)의 기능 을 논할 때 구체적 작품(poem)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작품이 지향하는 초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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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세계(poetry)까지 지시하기 때문이다.

일반성과 전문성의 변별의 장점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는 ‘common’이다.

윌리엄즈의 설명에 따르면 ‘common’을 규정하기 어려운 것은 이 단어가 라틴 어 “communis”에서 유래한 것과 연관이 있다. “communis” 자체가 “com + munis”(연대 + 책임)와 “com + unis”(같이 + 하나임)의 두 어원을 가지기 때문 이다. ‘common’의 의미는 시초부터 단어에 내장된 두 의미가 섞여 (i) 공동체 혹은 인류 전체 같은 일반성을 지향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ii) 귀족이나 군주에 맞선 사회집단을 특정하기도 하므로, ‘common’의 의미변화는 단어에 달라붙 은 일반성과 특정성의 갈등과 뗄 수 없는 것이 된다. 앞서 지적한 대로 의미의 역사적 변화의 동력을 단어 자체의 “내적발전과 구조”로 설명하는 방식에 대해 회의적인 독자가 적지 않을 터인데, 윌리엄즈의 논의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 다 음 대목이다. 저자는 ‘common’의 적용기준이 일반성을 지향할 때 ‘common’

의 적용에 가치평가가 드러나는 점에 주목한다. 즉, ‘common’이 긍정적 의미 로의 적용일 때는 “공유적 속성”이란 가치를 지니지만, 부정적 적용일 때는 “평 범하거나 저속한 것”을 지칭하게 되는 현상이다. 윌리엄즈는 집단 전체를 지칭 하는 의미의 일반화가 일어나는 경우에도 가치평가의 방식으로 의미의 특정성 을 향한 움직임이 은밀하게 드러난다는 현상을 부각시킨다. 윌리엄즈는 더 이상 나가지 않지만 여기에는 국가나 사회를 통합하는 근대적 정치과정 내에서 “일 상적인 것”을 폄하하려는 움직임이 있음을 우회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3. 『열쇳말』의 내적 구성원리와 신뢰성

그런데,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저자가 왜 이렇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접근법을 택했는지, 또 그 의도가 무엇인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윌리엄즈는 개념보다 단 어 자체의 물적 형태와 변화와 내장된 의미의 다양성을 추적하고, 단어에 내장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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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충적이고 심지어 모순적 관계를 이루는 의미의 다양성이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전문화, 일반화, 추상화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데, 여기 에는 근대사회의 형성이 (리비스적이든 마르크스적이든) “전체적 삶의 과정”(a whole way of life)으로부터의 이탈이라는 비판적 관점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특히, 그가 주목하는 것은 추상화 과정에서 단어의 특정한 의미가 ‘하나의 올바 른 용법’으로 부상하면서 다양한 의미가 지칭하는, 결코 하나의 개념으로 담을 수 없는 실제의 현실이 보이지 않게 되는 현상이다.17) 저자가 보기 드물게 자신 의 의도를 드러내는 항목인 ‘criticism’을 예로 들자. “critic”은 판관을 의미하 는 그리스어 krités가 라틴어를 거쳐 16세기 중엽 영어로 유입된다. ‘criticism’

17세기 초에 등장하는데, 이 단어의 주된 의미는 “흠을 잡는” 부정적 판단이 었다. 그런데, 17세기 후반부터 문학적 판단행위를 의미하는 용어로 전용되는 데,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이 용어가 ‘비난’이라는 의미를 담지한 일반화를 지향 한 가운데, 다른 한편 “주도적이고 자연스럽기까지 한 반응”(the predominant and even natural response)으로 전문화된 의미가 생겨나는 과정이다. 윌리엄즈 는 이러한 의미변화에서 특정 계급에 속한 사람들의 자신감, 즉, 자기가 속한 집단의 개인적 인상을 사회의 표준적 판단으로 표출하는 관행을 발견하며, 유사 한 의미변화는 ‘taste’(취향), ‘cultivation’(교양), ‘culture’(문화)에서도 발견된 다. 해제의 끝에서 윌리엄즈는 자신의 의도를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criticism과 흠 잡기(find-faulting) 간의 연관성뿐만 아니 라, 이보다 더 기본적인 것으로 criticism과 ‘권위적’ 판단이라는 의미 사이의 연 관성인데, 이때 후자는 외관상 일반적이고 자연적인 과정으로 보인다. criticism 은 모든 의사소통, 특히 보다 형식화된 유형의 의사소통에 대한 사회적 내지 전

17) ‘liberal’이나 ‘progressive’의 사례처럼 18세기 후반 이후 추상화가 크게 진행되면, 구체 적 현실과의 연계가 끊기면서 서로 적대적인 정치적 진영들이 자신들을 옹호하는 용어로 사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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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적인 일반화된 수용과정을 의미하는 말이 됨으로써, 소비자의 위상을 취할 때 뿐만 아니라 실제적 반응을 의미하는 일련의 추상화된 용어들(judgement, taste, cultivation, discrimination, sensibility, disinterested, qualified 등에서처럼)을 통해 소 비자로서의 입장을 감출 때도 이데올로기가 된다.(86)

‘criticism’은 원래 일상적 활동이지만, 부르주아 계층에 속한 개인들의 특정 한 인상이나 반응이 [비평]이란 사회적 표준으로 일반화시킬 때 이데올로기로 변질된다. 더 나아가, 개인의 특정한 반응을 [취향], [감수성], [수양]. [무사심]

등 추상화를 통해 은폐할 때도 변함없이 이데올로기일 따름이다. 이 경우 특히 중요한 것은 ‘소비’ 개념이다. 즉, ‘art’와 ‘criticism’은 원래 전체적 사회관계 내에서의 일상적 활동인데, 18세기 이후 미학적 대상을 삶의 전체과정에서 분 리시켜 감상의 대상으로 특정하는 행위의 전문화가 일어나고, 이어서 특정 계급 의 개인적 인상을 당대의 권위적 판단으로 격상하는 일반화를 통해 [비평]은 부 르주아계급의 이데올로기적 소비활동이 된다. 단지 이 사실이 숨겨질 따름인데,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윌리엄즈는 이들 용어를 “다른 용어로 대체할 게”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계급적 자신감이나 습관 자체를 부정하는 일 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일반적 과정으로 고양될 때, 우리가 반드시 이해해야 할 것은 반응의 특정성이고, 특정한 반응은 결코 추상적 ‘판단’이 아니며, 긍정적이거나 부정적 인 반응을 종종 포함할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조차도 그 모든 상황과 문맥과 적 극적이고 복잡한 관계를 갖는 일정한 실천이라는 점이다.(86)

이제 개념이란 의미구성체를 수용하지 않으려는 윌리엄즈의 이유가 보다 분 명해진다. 이데올로기적 작동의 핵심은 근본적으로 “실제의 상황과 환경으로부 터 반응의 추상화,” 또는 “특정한 계급적 반응을 ‘판단’이라는 외견상 일반적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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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으로 고양”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단어가 개념으로 추상화되어 독자성을 가지 면서 일상적 현실과 연결을 잃게 될 때 그 개념은 누구나—그러나 실제로는 지 배계급만이--자의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한 단어가 지시하는 여러 의미들의 복잡한 얽힘을 이해하는 것인데, 이런 얽힘은 ‘물적’ 생산과 ‘상징적’ 생산과의 복잡한 관계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적 의미론은 당대 영국의 변화에 대한 저자의 인식 상황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전후 영국이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가운데 노동자 집단의 생활수준이 일정 부분 향상되면서 계급 정체성이 약화되고 있었는데,18) 저자는 그 원인을 부르주아 계급의 문화적 지배를 은폐하는 추상화된 개념의 지배에서 찾는 한편, 삶의 실제적 전체적 과정을 보여주는 일상적 언어의 다양성과 실천 을 통해 정체성 약화에 저항할 “한 뼘 더 강화된 의식”(an extra edge of con- sciousness)을 키우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한 바를 정리하자. 윌리엄즈의 ‘역사적 의미론’은 (1) 단어를 중 심으로 역사적 의미변화를 고찰하기 위해 (2) 문학비평적 방법론과 단어의 물적 형태변화와 연관시켜, (3) 단어의 내적발전과 구조를 추적하고, (4) 이 과정에서 일반화, 전문화, 추상화 경향을 발견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이러한 방법 론은 결국 언어의 살아있는 활력의 환기를 통해 언어의 전문화, 일반화, 추상화 를 통해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려는 저자의 비평의식의 산물이었다. 그 런데, 이런 식의 서술방식은 독자—특히, 언어와 역사의 비환원적 결합방식에

18) 윌리엄즈는 『기나긴 혁명』의 결론에 해당될 긴 에세이 “1960년대의 영국”에서 노동자 집단에서 계급이 낡은 사고라는 느낌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는 근거 없는 사실이며 기존 의 사회체제를 승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노동당 내의 구좌파와 신우파 는 “지배적인 해석과 방향을 본질적으로 도전받지 않은 채로 내버려두게” 함으로써 “새 로운 의식의 공동체, 새로운 의식의 패턴을 줄 수 없었다”고 비판한다. 레이먼드 윌리엄 즈, 1961, 『기나긴 혁명』, 성은애 역, 문학동네 (Raymond Williams, The Long Revolution, London: Chatto and Windus), 4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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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요약적 지식을 원하는 개념사 전공자—의 입장에서 볼 때 여러 약점을 노 정한다. 우선, ‘잠정적’이지만 현실에 괄호 치고 단어의 내적 관계의 변화를 살 피는 방법론에 유보 없이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고, 일상적 언어의 활력으로 이 데올로기의 지배 맞서려는 전략의 효율성에 동의하기도 쉽지 않을 터이다. 또 한, 개념을 거부하고 전반적 사회조직과 지배적 관념이 서로 “녹아든”(in so- lution) “살아진 삶 전체”(a whole lived experience)에 대한 강조로 말미암아 명시화된 방법론적 체계의 개발을 피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그러나 저작 전체를 통해 어느 정도 드러나는) 저자의 방법론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을 때 필자 스스로 겪은 것처럼 논지의 맥락을 잡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장점도 적지 않다. 개념 화되기 이전의 살아있는 언어적 활력을 중시하는 윌리엄즈 특유의 서술방식은

‘determine’의 예에서처럼 새로운 개념을 향한 사유를 촉발하고, ‘experi- ence’의 사례처럼 한 단어가 지칭하는 여러 개념들 간 차이를 명확하게 하거나,

‘culture’처럼 추상화된 근대적 개념에 담긴 의미의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는 장 점도 가지고 있다.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은 용어사용 사례의 대표성일 터인데, 윌리엄즈의 용례 는 어느 정도 대표성을 가지고 있을까? 여기서 자세히 다루기는 어려울 터지만, 윌리엄즈의 표제어 ‘진보’(progress)를 코젤렉과 크리스티안 마이어(Christian Meier)가 집필한 『역사적 기본개념』의 [진보](Fortschritt) 항목과 비교해보 자.19)

『역사적 기본개념』의 [진보] 항목은 고전시대부터 19세기까지 “넓은 의미의 진보”를 의미하는 단어들을 추적하는데, 두 집필자에 따르면 우리가 지금 사용 하는 [진보] 개념은 18세기 후반에 정립된다. 중세에는 기독교적 의미에서 신과 의 합일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초역사적 [진보] 개념이 있었다. (i) 그런데, 종

19) ‘progressive’는 Keywords, pp.243-245에 실린 짧은 에세이이고, 이에 반해 [For- tschritt]는 Geschichtliche Grundbegriffe, 1975, Stuttgart:Klette-Cotta, vol. 2.에 게 재된 모노그라프이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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