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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G 환경지질연구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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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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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Information Jour. Petrol. Soc. Korea Vol. 21, No. 2, p. 51~58, 2012. 한국암석학회 20년의 회고와 미래에 대한 전망: 한국암석학회 창립 20돌을 기념하며 송용선* 부경대학교 지구환경과학과. The Past, Present, and Future of the Petrological Society of Korea: The 20th Anniversary Celebration Yong-Sun Song* Department of Earth Environmental Sciences, Pukyong National University, Busan 608-737, Korea. 한국암석학회가 시대적인 흐름을 따라 지구과학 분 야에서 새롭고 선진화 된 연구 사조를 구현하겠다는 열망으로 태어난 지 만 20년이 된 기쁨을 회원 여러 분들과 함께 하며, 미력하나마 우리 학회의 창립 배 경과 지난 20년을 더듬어 보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해 볼까 합니다. 여기에 기술한 내용들은 여러 자료 들과 일부 회원들의 조언을 참고하였지만 많은 부분 들이 필자의 개인적인 관점과 기억에 바탕을 두었음 을 밝힙니다. 혹 내용 중에 다소의 탈오가 있더라도 널리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먼저, 암석학회의 지난 역사를 창립을 준비할 때부터 창립총회까지, 창립 후 첫 10년간, 그리고 두 번째 10년간으로 세 시기로 나누어 각각의 시대적 배경과 암석학회가 이룬 성과 들을 두루 살펴볼 것입니다. 다음에 필자가 생각하는 암석학회의 창립과 성장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해 온 사람들과 활동들, 암석학회의 전망과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제안을 해보려 합니다.. 1991년 11월에 개최된 46차 대한지질학회 총회에서 하신 특별강연*에서 그 당시까지의 우리나라 지질학 의 발달사를 5대분하여 80년대 이후를 ‘세분화의 시 대’로 규정한 바 있는데 한국암석학회의 출범은 이런 시대적 흐름을 따른 자연스런 결과이고, 2) 우리나라 암석학 분야의 지속적 발전으로 이미 당시에 석사학 위 이상의 전문 인력이 1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양 적으로 풍부한 연구 인력을 갖췄으며, 3) 그럼에도 불 구하고 국내 암석학 연구수준이 아직 미흡한데 그 원 인을 암석학자들 상호간의 정보 교환의 부족과 조직 적인 공동연구 노력 부족 및 연구결과의 효과를 극대 화하지 못한데 있다고 보고, 4) 한국암석학회를 통해 국내 암석학 연구 수준을 국제적 수준으로 도약시켜 우리나라 지질학의 발전을 이루고, 특히 5) 철저한 심 사체계를 도입하여 국제적인 수준에 필적할 연구 논 문의 발간에 주력하겠다는 것을 창립의 배경과 목적 으로 하였다. 참고로 지질학계에선 1980년대 중반부 터 전문 학회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1990년대 들 어와 한국암석학회를 비롯한 다수의 학회들이 새로 창립되면서 본격적인 분화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는 데, ‘세분화의 시대’를 읽으신 석학의 탁월한 통찰력 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발기인 총회에서 구성된 창립준비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수개월의 각고 끝에 1992년 4월 12일에 고려대 학교 과학도서관 대강당에서 창립총회(사진 1과 2 참. 창립기: 용융에서 정치까지 한국암석학회는 1991년 4월부터 10월까지 5차의 준비모임을 거쳐 1991년 11월 30일 제1차 발기인 총 회를 고려대학교 지질학과에서 개최함으로써 서막을 열게 됩니다. 발기문에서 1) 고 손치무 교수께서 *Corresponding author Tel: 051-629-6627 E-mail: [email protected]. *손치무, 1991, 우리나라의 지질학 발달과정과 향후의 과제. 지 질학회지, 27권 5호 521.. 51.

(2) 52. 송용선. 회장의 임기를 1년으로 하고, 부회장을 선출하여 부회 장이 차기 회장을 승계하도록 하였는데, 중간에 잠시 변경되기도 하였었지만 그 제도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상만 회장님이 1991년 11월에 창립된 한국지질 과학협의회장으로 선임되시어 한국암석학회는 1992년 5월 29일 한국지질과학협의회에 가입하게 된다. 이 때 한국암석학회는 장래의 연구과제로 11가지를 선정하 여 한국지질과학협의회에 제시하였는데 학회의 목표 를 되새겨보자는 의미에서 그 내용을 소개한다. 1) 한 반도의 암석구 선정, 2) 한반도의 기반암의 성인 연 구, 3) 화성암류의 성인연구, 4) 화산암류의 성인연구, 5) 암석의 성인과 광상생성과의 관련성 연구, 6) 변성 암류의 실험암석학적 연구, 7) 화성암류, 변성암류의 지체구조적 연구, 8) 암석의 공학적 물성 연구, 9) 석 재의 암석학적 연구, 10) 석재의 경제성 연구, 11) 국내산 암석 연구. 사진 1. 한국암석학회 창립총회 때의 고 손치무 교수님 특별 강연 모습.. 사진 2. 1992년 4월 12일에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암석 학회 창립총회 때의 한 장면.. 조)가 개최되었다. 즉, 2012년 올해가 바로 만 20주 년이 되는 해이다. 창립총회에는 기념강연을 해 주신 고 손치무 교수님을 비롯한 지질학계의 많은 원로들 과 각계의 인사, 회원들로 연인원 310명이 참가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초대 회장에 이상만 교수님, 부회장 에 이종혁 교수님이 선출되었고, 총 가입회원 수는 230명에 이르렀다. 우리 학회의 창립과정은 마치 지 구 내부에서 용융된 마그마가 웅장한 화성활동을 일 으키기 위해 지각을 통해 상승하여 자리를 잡는 과정 에 비유될 것입니다. 암석학회의 독특한 점은 회장, 부. 첫 십년간(1992~2002): 초기의 자유 정출기 학술발표 1992년 4월에 창립된 우리 학회는 고려대학교 지 질학과에 사무실을 두고 힘찬 출발을 하게 된다. 그 해 9월 19일에는 사무실이 있는 고려대학교의 과학 도서관에서 제1차 정기총회 및 학술발표회를 개최하 였는데 이상만 회장님의 특별강연과 22편의 논문 발 표가 있었다. 이후 정기총회 및 학술발표회는 1998년 까지는 매년 가을(9월 말 또는 10월 초)에 열리게 되 었는데, 격년으로 본부인 고려대학교와 강원대, 부산 대, 경북대 등 지방대학을 오가며 열렸다. 강원대에서 열린 1993년의 제2차 정기총회 및 학술발표회부터 둘 째 날에 야외답사를 가지는 전통을 만든다(사진 3 참 조). 18세기 말 당대 학계의 최고의 이슈였던 ‘수성론 자’와 ‘화성론자’ 사이의 논쟁은, ‘수성론’의 지지자, 추종자들이 화산지대를 야외답사하게 되면서 ‘화성론’ 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마침내 ‘화성론’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암석을 제일 많이 본 사람이 최 고의 지질학자”라 했던 Reed(1957)**의 주장을 오늘 날과 같이 미세영역에 대한 분석과 연대측정 기술의 발달로 실험실에서의 연구로 거대한 지구조 운동과 **Reed, H.H., 1957, The Granite Controversy. London, Murby.. J. Petrol. Soc. Korea.

(3) 한국암석학회 20년의 회고와 미래에 대한 전망: 한국암석학회 창립 20돌을 기념하며. 53. Yangtze 지괴에 관한 초청강연을 가져 국제적인 학술 활동으로 영역을 넓혔다.. 사진 3. 강원대에서 열린 제2차 정기총회 및 학술발표회 다음 날 춘천 각섬암 지역을 야외답사하던 장면. 이상만 명예회장 님(가운데 마이크 잡으신 분)께서 주먹을 굳게 쥐시고 후학들 에게 열강하시고 있다.. 지각의 발달사를 해석하고 있는 기술 중심 지질시대 에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지질학의 상징이 된 hammer를 들고 야외답사를 하면서 노두를 관찰하 는 데서 출발하는 지질학의 유산이 아직도 우리 암석 학자들에게 잘 계승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세기가 저물어 가는 1999년 6월에 서울대학교에 서 열린 제8차 정기총회 및 학술발표회는 한국광물학 회와의 협의를 통해 학술발표회를 공동으로 개최하는 시발점이 되었는데 이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사 진 4 참조). 마침내 2002년 5월 전북대학교에서 제 11차 정기총회 및 창립 10주년 기념 국제학술발표회 를 개최하면서 암석학회 첫 10년의 대미를 이루었다. 이 회의에선 일본과 중국의 학자를 초청하여 Hida와. 암석학회지 암석학회는 창립총회에서 결의한 바대로 첫 해인 1992년에 창간호와 제2호, 두 호의 ‘암석학회지’를 발 간한다. 창간 첫 해에 학술지, 그것도 두 호를 발간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그만큼 암석학회의 출발이 필연적이고 준비된 것임을 나타낸다. 주황빛 바탕에 이상만 교수님이 쓰신 검은색의 ‘암석학회지’ 제자(題 字)를 사용하여 표지를 꾸몄다. 이 고전적이고 중후한 단색 도안은 창간호부터 제10권 제3호까지 사용되었다. 철저한 심사에 의해 국제적인 수준에 필적할 학술 지를 발간하겠다는 학회의 창립정신이 철저히 반영되 어 창간호부터 수준 높은 논문들로 구성이 되었고, 그 명성은 지구과학계에 널리 퍼지게 된다. 변성암, 화강암, 실험암석학, 연대측정, 화산암, 안정 동위원소, 구조지질, 광물, 지구화학분석법, 또한 광상에 대한 것 까지 다양한 분야의 연구논문들이 게재되었는데 주로 중국학자들이지만 외국인 학자들의 논문도 여러 편이 실렸다. 제2권 제1호의 Liu Xiaochun(1993), 제3권 제3호의 Glebovitsky et al.(1994), 제7권 제1호의 Zhai Mingguo & Liu Wenjun(1998) 등의 논문은 지금까지 널리 인용되고 있다. 국내 지구과학계에도 SCI 등재 학술지를 가져야한다는 염원에서 출범한 ‘Geosciences Journal’ 발간에 협력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아쉽지만 암석학회지에는 영문으로 된 외국학 자들의 논문을 더 이상 싣기 어렵게 되었다.. 사진 4. 2000년 안동대학교에서 개최된 한국암석학회·한국광물학회 공동학술발표회. Vol. 21, No. 2, 2012.

(4) 송용선. 54. 임진강대의 고압변성(조문섭 외, 1995), 오대산 지 역의 맹거라이트(권용완 외, 1997), 경기육괴(조윤호 외, 1996)와 소백산육괴(송용선, 1999: 권용완 외, 1999)에서의 백립암상 변성작용과 챠노카이트(박계헌 외, 2001) 등 한반도 기반암에 관한 새로운 연구결과 들도 발표되었다. 여기서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지만 화강암, 화산암, 지질구조 등의 분야에서도 우수한 논 문들이 발표되었다. 나중에 심사과정의 엄격함이 조 금 완화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일부의 반대도 있었지만 논문의 질보다 양으로 평가하려는 외부의 압력을 무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 시 기는 1990년대 말부터 학술단체 통폐합을 밀어붙이 기 시작하는 외풍을 적게 받아 창립정신에 충실하게, 크지는 않아도 모범이 되는 빼어난 학회와 학술지가 되려고 했던, 마치 마그마 챔버 속에서 초기 결정화 하는 광물들이 주변의 방해를 받지 않고 제 모습대로 성장하는 시기에 비유될 수 있다. 2001년 12월에 발행된 제10권 제3호까지 총 10권 27호를 발간하였고, 논문, 논평, 단보, 보고를 모두 포 함하여 154편이 게재되는 성과를 이루었다. 지구화학 분석법에 관한 특별호로 발간된 제10권 제3호는 논 문과 논평을 합해 10편을 게재함으로써 첫 10년을 결산하였다.. 두 번째 10년간(2002~2012): 틈바귀의 후기 정출기 암석학회의 두 번째 10년을 시작하던 시기에 안팎 으로 어려움이 닥쳤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주관한 학 술지 평가제도의 도입은 암석학회지에 지금까지도 스 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다. 규모가 큰 기존 메이저 학 회들에 절대 유리한 기준을 제시하고, 이 틀 속에 적 응하지 못하는 후발, 중소 전문학회들의 통폐합을 유 도하겠다는 것이다. 학회 난립을 막겠다는 엉뚱한 관 료주의에 시대를 대표한다는 일부 학계의 세간에 꽤 이름난 학자들이 편승하여 만들어 낸 제도로 보이지 만, 이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다. 먼저 결정화 된 광물 결정들 사이의 틈바구니 속에서 주변의 광물 들과 부딪히고, 그 틀에 맞추어 결정화되어야 하는 후기 정출 광물의 운명에 다름없었다. 안으로는 2002 년 초에 학회를 전담하시던 고 김형식 교수님이 유명 을 달리하셨는데 이는 더욱더 큰 충격이었다. 김 교 수님의 부재는 당장 학회 사무실 운영에 바로 영향을. 주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사무실을 잠시 서울대학 을 거쳐 부경대학교로 이전하게 되어 지방화 시대를 열었다. 이사회에서 지방 이전에 제일 강하게 반대했 던 사람이 필자인데 학회사무실 운영을 맡게 되었으 니 좀 아이러니컬하다. 학술발표와 심포지움 만만치 않은 어려움 속에서도 지난 10년간 튼튼하 게 다져진 내실과 후학들의 노력으로 암석학회의 수 레바퀴는 큰 어려움 없이 정례적으로 굴러갔다. 정기 총회 및 학술발표회는 2003년 제12차는 한국지질자 원연구원에서 열렸고, 2004년의 제13차부터 2011년의 제20차까지 충남대학을 제외한 전국의 각 지방 국립 대에서 한국광물학회와 공동으로 개최된다. 2012년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아 지방을 전전하던 정기총회 및 학술발표회는 서울대학교에서 열리게 되어 그 감 회가 새롭다. 2004년 이상헌 제9대 회장이 암석학회의 학술활동 을 좀 더 활성화 시키겠다는 의지로 추계학술심포지 움 개최를 추진하였고, 그 해 12월에 "한국의 화성활 동"이라는 주제로 첫 번째 한국암석학회 학술심포지 엄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개최한다. 제2차 “한국 의 변성작용”, 제3차 “응용암석학”, 제4차 “신생대 제 3기 화산활동 및 지구조환경” 등의 주제로 계속되었 고, 제5차부터는 전문학자들만의 학술활동을 벗어나 일반인들과 매스컴에 암석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 켜 보자는 의도로 제5차 “지질학으로 본 우리 명산”, 제6차 “자연유산으로 본 우리 명산”, 제7차 “지질자 원으로 본 우리 명승지” 등의 주제로 심포지움을 개 최하였는데 제5차 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지만 기 대에 미치지는 못하였다고 판단된다. 2011년에는 외국의 학술단체들과 공동으로 2차례의 국제학술심포지움을 개최하는 것으로 대체하였다. 9월 에 오창의 기초과학지원연구원 분소에서 International Precambrian Research Center of China, 기초과학지 원연구원 등의 기관과 공동으로 “International Field Workshop on the Precambrian Crustal Evolution in Korea and east Asia Tectonics”, 11월에는 부산 에서 “Isotope-ratio Mass Spectrometry”, 제목으로 Mass Spectrometry Society of Japan과 한일 공동학 술회의를 개최하였다. 또한 2009년 강원대에서 “방사 성 동위원소의 지질학적 응용”, 2010년 서울대학교에 서 “Migmatite” 등의 주제로 단기강좌도 열어 학술활 J. Petrol. Soc. Korea.

(5) 한국암석학회 20년의 회고와 미래에 대한 전망: 한국암석학회 창립 20돌을 기념하며. 동의 폭을 넓힌 시기였다. 지금도 아쉬운 것 중의 하나는 남북 공동연구/학 술회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2006년 평양에서 ‘남북학술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MOU)’가 체결되 었고, 2007년에 남북학술교류 시범협력사업 및 공동 연구가 제안되어 학술진흥재단에서 50여개 학회로부 터 신청을 받아 북측에 제안하였는데 2008년 북측에 서 7개 학회를 선정하여 교류를 추진하기로 하였다. 우리 암석학회는 처음에는 선정이 되지 못하였는데 암석학회를 포함한 몇 개 학회가 추가 선정이 되었다. 당시 필자가 회장이어서 박계헌 교수와 함께 우리 학 회의 공동연구 및 학술회의 제안서를 다듬어 곧바로 제출하였다. 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협의가 진행 중이 라는 통보를 받아 무난히 성사되는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2008년에 있었던 정권교체 후 남북관계가 잘 풀리지 않으면서 무산이 되었다. 멀지않은 장래에 우리 암석학회 회원들이 북쪽의 지질학자들과 공동연 구도 하고 학술회의도 열어 “한반도 지각의 형성 및 진화사의 규명”***을 제대로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 기대한다. 암석학회지: 등재학술지와 인용색인정보 창간 10주년이 되는 2002년에 발행된 제11권 제1 호부터 암석학회지의 표지 도안이 바뀌게 된다. 이전 의 주황색 도안이 고전적인 멋은 있지만 다채로움을 추구하는 시대흐름을 반영하여 표지 도안을 바꿔보자 는 박계헌 당시 편집위원장 의견으로 암석의 느낌을 살린 무늬를 넣은 새로운 도안을 마련하였다. 이상만 명예회장님이 더 높아진 필력으로 제자를 새로 써주 셔서 다음호인 제11권 제2호부터는 암석학회지 제자 도 바뀌어 제17권 제4호까지 발간이 되었고, 제18권 제1호 때부터 현재의 표지 도안으로 한 번 더 변경 하여 발행이 되고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회원들은 표지 도안과 제자의 변경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겠 지만 이 기회에 한 번쯤 다시 살펴보면 새삼스러울 것이다. 암석학회지는 표지만 바뀐 것이 아니다. 그전까지 는 매년 2회 또는 3회 발간하였지만 제11권부터는 매년 4회 정기적으로 발간하게 되었다. 논문투고규정, 심사규정, 편집내규, 편집위원회규정, 윤리규정 등 많 ***2008년 당시에 암석학회가 학술진흥재단에 제출한 ‘남북 공 동연구 및 학술회의’ 제목.. Vol. 21, No. 2, 2012. 55. 은 부분들이 개정되거나 새로 제정되었다. 학술지평 가라는 새로운 제도의 틀 속에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 으로 볼 수 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학회는 더 세 련되고 조직화되었다. 비합리적이고 부당해 보이는 제 도나 원치 않게 주어진 어려운 환경이 항상 나쁜 쪽 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암석학회지는 제 11권 제1호부터 제20권 제4호까지 총 10권 40호(제 11권은 3호와 4호는 합본)가 발간되었고, 총 206편이 게재되었다. 암석학회지는 2003년에 한국학술진흥재단의 등재 후보 학술지로 선정되었고, 2004년 1차 평가, 2005년 2차 평가를 통과하여 2006년 1월부터 등재학술지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이후 2년마다 수행된 계속평 가를 통과하여 2008년, 2010년, 그리고 2012년 올해 까지 계속 등재유지 판정을 받았다. 처음 등재학술지 평가를 받던 2004년에 암석학회지 편집을 맡게 되었 고, 학회 사무실도 인계를 받아 평가항목들을 분석하 고 평가기준에 맞추려 동분서주하던 때가 엊그제 같 은데 벌써 3번째 계속평가의 벽을 넘었다. 다들 등재 학술지인데 자랑할건 아니지만 저절로 되는 것도 아 니다. 편집위원장들의 노고가 컸다. 이번부터 2년마다 하던 학술지 평가를 3년으로 변 경한다 해서 조금 여유를 느끼려던 차에 한국학술진 흥재단이 2014년부터 현행 평가 제도를 폐지한다고 느닷없이 예고하였다. 새로운 평가제도를 마련하기 위 한 설문조사도 실시하였는데 어떤 제도가 마련되더라 도 우리 학회에 그렇게 유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새 로운 평가시스템에는 SCI에서처럼 인용지수(IF)가 중 요한 항목으로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2005년인가 에 학술진흥재단이 국내학술지 인용색인정보(KCI)를 처음 구축하였는데 당시 우리 암석학회지의 Impact Factor는 전학문 분야 등재 및 등재후보학술지 중 최 상위에 속하였고, 자연계 93개 등재 및 등재후보학술 지 중 6번째로 높았으며, 여타 지구과학 관련 학회지 들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지금도 우리 암석학회지의 KCI 인용지수가 다른 국내 학회지들에 비해 그렇게 낮은 편에 속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 암석학회지에 게재된 논문들의 인용지수에 관 심을 갖고 조사를 해온 박계헌 차기 회장과 가끔 의 견을 나눴었는데, 우리 학회 회원들만이라도 암석학 회지에 게재되는 논문들을 잘 읽어보고 국내 학술지 에든 SCI 학술지에든 투고하는 논문들에 빠뜨리지 않 고 인용한다면 인용지수는 더 올라갈 수 있는 여지가.

(6) 송용선. 56. 충분히 있다고 판단되었다. 학회지에 우수한 논문들 을 많이 투고하는 것 외에 인용지수에도 관심을 기울 여야겠다.. 두 거인: 도암상과 선암상 한국암석학회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두 분은 이 상만 초대 회장님과 돌아가신 김형식 전 회장님이라 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두 분은 탁월한 지질학적 식견과 건장한 체구를 갖추신 암석학계만이 아니라 전 지질학계의 명실상부한 거인이셨다. 학회의 창립 과정에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많은 분들의 수고 가 있었지만, 특히 이상만 초대 회장님과 창립준비위 원장으로 거의 모든 일들에 고군분투하다시피 노력하 신 김형식 전 회장님의 암석학회에 대한 각별한 애정 과 헌신이 없었다면 암석학회의 탄생은 아마도 없었 을 것이다. 두 분의 암석학회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거금을 희 사하셔서 도암상과 선암상 두 개의 학술상이 만들어 져 그 결실을 보게 된다. 1994년 이상만 초대 회장 님이 1,000만원의 암석학회 기금을 희사하셨는데, 10 월14일 제16차 이사회에서 이 기금으로 선생님의 아 호를 따 “도암학술상”을 제정하고 1995년부터 암석학 회지에 우수한 논문이 게재된 연구자 중에 매년 1명 의 수상자를 선정하여 시상키로 결정하였다. 1995년 9월 부산대학교에서 열린 제4차 정기총회 및 학술발 표회에서 제1회 도암학술상이 수여되었는데, 학회의 출발 때부터 학회지의 간행에 노심초사해 오신 김 전 회장님이 바로 첫 수상자가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그 때부터 2011년까지 17명의 수상자가 배 출되었다. 나중에 500만원을 더 희사하셔 기금이 증 액되었고 올해 또 더 증액될 계획이다. 2002년은 암석학회의 큰 별이 진 정말로 안타까운 한 해였다. 박사학위과정 중에 두 분을 따라 야외조 사를 다녔었는데, 젊은 시절 두 분이 함께 도폭조사 를 하시던 때의 영웅담을 들려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두 분은 야생 한국호랑이가 남한에서 1920년대에 멸종되었다는 통계를 믿지 않으셨다. 지 리산 일대를 조사하실 때 분명히 호랑이를 만났다는 건데, 우리 후학들끼리 모이면 두 분과 마주친 호랑 이가 더 긴장하지 않았을까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 다. 암석학회 첫 10년은 거의 김 전 회장님이 꾸리셨 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학회 사무실 운영은. 물론, 학술총회, 암석학회지 발간 등 1인 3역, 4역을 하셨는데 그 헌신적인 노력으로 학회의 재정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고, 학회지도 제대로 구색을 갖추게 되었다. 암수술을 받으시고 나서도 얼마 안 되어 바 로 학회 일을 다시 도맡아 하시면서 믿고 맡길만한 후학을 찾지 못해 걱정하시던 모습을 생각하면, 그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지 못한 후배 중의 하나 로서 죄책감을 느낀다. 우리 후학들이 어떤 마음가짐 으로 학회를 생각해야 하는 지를 보여주신 전형이셨 다. 김 전 회장님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암석학회에 대한 애정을 끊지 못하셨다. 2003년 5월 제12차 정 기총회 및 학술발표회 때 김 전 회장님의 뜻에 따라 사모님이 학회에 5000만원의 거금을 기부하셨고, 학 회에선 고인의 뜻을 받아 이 기금으로 한국암석학회 ‘선암(김형식)상’을 제정하여 암석학 분야에서 학술적 으로 탁월한 업적을 이룩한 젊은 암석학자를 선정하 여 수상하기로 결정하였다. 2004년 5월 충북대학교에 서 열린 제13차 정기총회 및 학술발표회에서 제1차 선암(김형식)상 수상자로 선정된 장윤득, 고정선 두 젊 은 학자들에게 사모님이 직접 시상하셨다. 이후 2011 년까지 8차에 걸쳐 13명의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고인 의 뜻이라고 하지만 그러한 거금을 선뜻 희사하신 사 모님과 유가족들 또한 대단한 분들로 우리 회원들뿐 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 암석지구조 연구모임 암석학회의 첫 10년간의 성장과정에서 고 김형식 전 회장님의 헌신이 그 중심축이었음을 앞에서 밝힌 바 있는데, 이에 비할 바는 아닐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축은 ‘지구조 연구모임(Tectonics Meeting)’이었다고 평가한다. 1807년 세계에서 가장 최초로 창립된 런던지질학회(Geological Society of London)가 Freemason’s Tavern에서 저녁을 들며 토 론을 벌이던 13명의 모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1993년 권성택, 조문섭, 박계헌, 이진한, 황상기 등의 몇몇 회원들이 이를 닮은 토론모임을 시작하였고, 필 자와 오창환, 이승구 회원이 합류하여 1994년 ‘Precambrian Tectonics Meeting’이라는 명칭으로 정 식으로 모임을 발족시켜 2월25일 기초과학지원센터에 서 제1차 모임을 개최하였다. 년 3~4회 정도 모여 한두 사람의 자유롭고 informal한 발표와 질문을 갖 는 토론모임이었다. Precambrian Tectonics를 이해하 J. Petrol. Soc. Korea.

(7) 한국암석학회 20년의 회고와 미래에 대한 전망: 한국암석학회 창립 20돌을 기념하며. 사진 5. 홍성-백동지역 초고철질암 노두를 빗속에서도 열성적 으로 관찰하고 있는 암석지구조 연구모임 회원들.. 57. 고무적이고 열띤 자유로운 토론회였다. 모임이 외부 에 알려지면서 참가를 원하는 회원들이 늘어나고 학 회 내에 분파를 만든다는 불만과 오해가 있어, 1996 년에 ‘암석지구조 분과’라는 명칭으로 ‘응용암석학 분 과’와 함께 한국암석학회의 공식적인 분과활동으로 등 록되게 되었다. 참가자도 확대되었고 대학원생들도 참 여하게 되면서 모임은 점점 커졌고, 김천, 지리산, 화 천, 홍성-백동, 충주부근 문주리층과 계명산층 지역 등 관심있는 지역들을 야외답사(사진 5와 6 참조)하면서 회원들의 연구의지 고양, 새로운 연구과제의 개발과 공동 연구 등에 기여하였고, 후학들의 암석학에 대한 관심도 증폭시켜 암석학, 지구화학, 구조지질학 분야 에 많은 후학들이 양성되어 학회의 연구자원을 증대 시켰다. 학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모임이지만 이보다 먼저 인 1992년경에 부산대학교의 이준동, 이상원, 김진섭, 윤성효 교수, 부경대학교(당시 수산대학교)의 필자, 경 상대학교의 좌용주 교수 등 부산-경남 지역 암석학자 들이 모여 ‘암석학 연구회’를 시작하였다. 한두 달에 한번 모여 세미나 발표를 하고 저녁을 들면서 토론을 하는 모임이었다. 학부와 대학원생들도 참가한 공식 적인 세미나를 열었고, 한두 번인가 야외답사도 가졌 었다. 1995년 10월에 제24차 모임을 가질 정도로 활 발하였는데 ‘암석지구조 분과’ 모임이 확대된 영향도 있고 해서 이후에는 흐지부지되었다. 부산-경남 지역 3개 대학에서 암석학 석-박사 학위수여자들이 비교적 많이 양성되었는데 이런 모임들이 암석을 다루는 학 문의 매력을 느낄 기회를 제공하고, 학구열을 자극한 결과일 것이다.. 맺는 말: 미래에의 전망과 제안 사진 6. 2004년 2월 당시 공사 중이던 중부내륙고속도로 절 개면에 노출된 충주지역 향산리 돌로마이트층의 습곡구조를 관찰하고 있는 암석지구조 연구모임 회원들. 이렇게 도로공사 로 드러난 멋진 노두들이 무자비한 절개면 피복사업으로 대 부분 사라져버리고 있어 이들을 보존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 하다.. 기 위해 필수적인 암석학, 지구화학, 구조지질학 분야 의 연구자들 간에 상호 정보교환 및 연구진행 성과 보고, 해외에서의 최근 연구동향 소개 및 우리나라에 서의 적용성 검토, 그리고 중요한 연구과제 개발 및 집중적인 공동 연구의 가능성 모색 등을 목표로 한 Vol. 21, No. 2, 2012. 지금까지 암석학회는 학회 재정이 충분치 못하여 독립된 사무실을 갖추지 못하고, 학회 사무도 파트타 임의 총무간사에 의존하고 있다. 앞으로도 재정을 늘 릴만한 마땅한 수익사업을 찾기는 어려워 보이며, 실 제로 수익사업을 할 수 있는 사정도 아니어서 독립된 사무실과 전담 사무원을 고용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 해도 사무담당자의 처우개선에 관심을 갖고 재정확충에 노력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암석학회의 창 립정신이 회원들 안에 살아있는 한 학회가 재정적인 문제로 크게 위기를 겪지는 않을 것이다. 학술지 평가제도가 어떻게 바뀌더라도 암석학회지.

(8) 58. 송용선. 는 등재학술지든 다른 이름으로든 계속 유지되고 발 전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 근거는 첫째, 암석학회의 인적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우리 학회의 연구 인 력을 언뜻 헤아려보기만 해도 박사급만 40~50명은 족히 되어 적지 않고, 다른 분야에 비해 그들의 연구 능력도 우수하다. 회원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협조하고, 노력한다면 투고 논문의 확보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 회원들의 연구역량을 어떻게 암 석학회지로 끌어 모으느냐가 관건일 뿐이다. 또 한 가지 근거는 우리 학회 회원들의 연구수준이 매우 높 다는 것이다. 국내외 SCI급 학술지에 많은 우수한 논 문들을 게재하고 있음이 그 증거이다. 그런데 이 부 분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만 SCI 학술지에 투고하는 양이 늘어날수록 암석학 회지에 투고하는 논문수가 줄어들고 있다. 우리 회원 들이 암석학회지에 조금만 더 애정을 기울이면 이 문 제는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본다. 암석학회지와 SCI 학 술지에 투고하는 논문의 수가 적절히 유지된다면 우 리 회원들이 유명 학술지에 투고하는 논문들은 암석 학회지의 인용지수에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가 있다. 암석학회의 인적자원이 풍부하다고 했지만 현재 활 동하는 연구자들의 수가 적지 않다는 것이고, 장기적 으로는 염려되는 점이 많다. 필자도 이제 나이가 들 어 생긴 노파심인지는 몰라도 요즘 각 대학들에서 암. 석학 관련 분야를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의 수나 그 열 기가 예전 같지 않아 보인다. ‘암석지구조 연구모임’ 이나 ‘암석학 연구회’와 같이 학생들에게 관심을 불 러일으키고 영감을 주는 새로운 부흥운동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편집위원과 위원장 제도에 관한 것이다. 암석학회지도 국내 대부분의 학 술지처럼 2년의 임기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할 수 있 다면 외국의 유명 학술지들처럼 편집위원장만이라도 임기를 두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학술 지 평가기준에서도 편집인들이 더 길게 봉사할수록 유리해질 것 같고, 편집위원장으로 활동해 본 경험에 도 비추어 보면 비전과 역량을 갖춘 편집위원장이 적 어도 7~8년 아니면 10년 이상을 암석학회지 발간의 책임을 지고 전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마그마 내에서의 정출작용을 끝내고 이대로 식어버 릴 건지, 아니면 새로운 지각변동을 겪으면서 더욱 단단하게 재결정되고, 재용융되어 새로운 격렬한 활 동을 시작할지 암석학회의 미래는 우리 회원들에게 달렸다. 특별히 마음이 젊은 암석학자들의 분발을 기 대한다. 2012년 4월 20일 접수 2012년 4월 23일 심사개시 2012년 4월 30일 채택. J. Petrol. Soc.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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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