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 국토시론 ㅣ
중세 유럽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사건으로 ‘신의 분노’라 일컬어 졌던 흑사병의 창궐을 들 수 있다. 14∼18세기의 유럽은 상·하수시설 에 대한 개념과 설비가 상실되면서 항상 흑사병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 고, 그 결과 유럽 전역에서 도시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망했을 뿐 아니 라 사회구조가 붕괴될 정도의 위기를 맞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수 로 및 하수시설이 발달했던 고대 로마제국의 수도 인구가 19세기 최대 도시였던 런던의 인구와 비슷한 규모였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처럼 라이프라인은 인간의 안전과 삶의 질,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구조나 관 념에까지 영향을 미쳐왔다. 라이프라인은 도로, 가스, 상·하수도, 에 너지, 통신 등 우리 생활에 가장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는 네트워크 시설 물로, 우리의 인간다운 삶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이라 할 수 있으며, 도시에 인구가 집중될수록 이에 비례해서 라이프라인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과거와 같은 위협은 상당히 사라졌지만, 안전에 대한 우려는 항상 우리 곁에 상존하고 있다. 특히, 현대사회에 들어오면 서 재해 또는 재난은 라이프라인과 같은 기술, 산업적 요인과 결합되어 복합적이고 광대한 타격을 줄 수 있어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최근에 발 생한 서울 도심 내 다발적인 도로함몰 및 평택 대형 상수도관 파열 등 여 러 지하시설물과 관련된 사고는 우리에게 라이프라인의 중요성을 거듭 확인시키는 동시에 그동안 지적되어 왔던 라이프라인의 노후화와 개별 적 관리전략의 한계를 보여준다.
김문겸
연세대학교 토목·환경공학과 교수, 대한토목학회장 (applymkk@yonsei.ac.kr)
국토정책의 새로운 시대적 화두,
사람과 안전
2
라이프라인에 관한 현안
안전한 국토와 우리 국민의 인간다운 삶의 질 확보는 라이프라인이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낼 수 있 을 때 가능하다. 따라서 라이프라인의 현재를 사회·
환경적 변화, 시설현황, 유지관리 측면에서 진단하는 것은 장기적인 국토 및 라이프라인 정책수립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첫 번째로, 사회·환경 변화에 따른 국토이용의 메 가트렌드 변화에 대응하는 라이프라인이 필요하다. 도 시 광역화로 주요 거점도시 주변의 교통량이 증가하고 있고, 이로 인한 혼잡비용은 GDP의 약 2.2%인 30조 3,146억 원(2012년)에 이른다. 한편, 국민의 삶의 질 에 대한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이를 충족하기 위한 수 도, 전력, 교통 등 여러 라이프라인 시설도 확충을 요 구하고 있다. 그러나 도시지역은 이미 기존 시설로 인 해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추가적인 공사가 어려운 상 황이다. 또한,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도심지 재해가 대 형화되는 동시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추세에 있다. 이 는 도심기능의 마비뿐만 아니라 기간 시설물 파손에 따른 2차 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두 번째로, 라이프라인의 노후화 문제 해결이 시 급하다. 서울 지하철 1∼4호선 차량 일부와 케이블
의 다수는 노후화가 심각해 차량의 속도개선을 논하 기 이전에 안전을 걱정해야 할 수준이다. 도로는 아 직 심각한 문제가 보고되고 있지는 않지만, 태백 등 일부 산간지역을 중심으로 잦은 보수 수요가 발생하 고 있고, 학계를 중심으로 도로 노후화에 대한 대책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상·하수도 또한 노후화가 급 속하게 진전됨에 따라 누수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며, 도심지 도로함몰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상 수관망의 누수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한 해에 5,100 억 원 이상으로 추정되며, 라이프라인 시설의 상당수 가 이미 준공된 지 20년 이상 경과되었다는 점에서 라이프라인의 노후화로 인한 사회, 경제적 손실은 앞 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가 라이프라인의 관리·운영전략 의 전환이 필요하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부터 본 격적인 라이프라인의 통합 유지관리 필요성이 제기 되어 왔지만, 아직까지 국내 라이프라인은 기관별로 분산관리되고 있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분산관리 로 인해 유사 시설물 관리에 관한 여러 법률 및 제도 가 서로 상충되기도 하며, 중복투자되는 경우가 많 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구축한 라이프라인의 유지관 리를 위한 DB를 구축하였으나, 가시적인 성과는 미 비한 상황이다.
안전한 국토와 우리 국민의 인간다운 삶의 질 확보는
라이프라인이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낼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따라서 라이프라인의 현재를 사회·환경적 변화, 시설현황, 유지관리 측면에서 진단하는 것은 장기적인 국토 및 라이프라인 정책수립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3
안전한 라이프라인을 위한 우리의 대응과 노력
앞에서 언급한 여러 현안들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 는 라이프라인에 대한 장기적 관점에서의 투자와 전 략,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노력들이 전방위적으로 수 반되어야만 할 것이다.
먼저, 장기적인 투자와 통합관리 전략이 선행되어 야 한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의하면, 라이프라인을 포함한 여러 기반시설물의 건설투자 총액 대비 유지 관리투자 비중은 14.6%로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황인혁 외 2014). 이제는 유지보수를 단지 비용을 부담한다는 단기적이고 성과중심적인 인식에 서 벗어나, 심모원려(深謀遠慮)의 적극적인 미래투 자로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현재 우리 사회의 라이프라인에 대한 다양한 수요를 충족하면서 급증 하는 라이프라인 시설의 유지관리 비용 문제를 효율 적으로 대처해 나가기 위해서는 실질적이고 본격적 인 통합적 유지관리 전략이 반드시 수립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 라이프라인의 생애주기를 고려한 통합 관리를 위해 우리의 ICT 역량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 용할 필요가 있다. 국내 U-City 사업의 다양한 라이 프라인 시설물 구축·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체계적 이고 통합 운영가능한 DB구축 전략을 수립하는 한 편, 빅데이터 분석, 예측기술 기반을 구축함으로써 축적된 대규모 DB정보의 효과적인 활용을 이끌어내 야 한다. 이와 함께 문제에 대한 사전예측과 피드백 이 가능한 플랫폼 기반의 통합관리 형태로 전환이 필 요하다. 기존의 소관부처별, 유형별 정보시스템을 범 정부적 관리 플랫폼으로 전환해 운용함으로써 현재 시설물의 단순 이력관리나 수동적 사후관리에서 벗 어난 통합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끝으로, 고도화된 라이프라인 기술 확보와 이를 적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
하다. 현장 중심의 기술개발을 위한 투자를 적극 지 원하고, 더 나아가 이미 현장에서 성능이 검증된 원 천기술 및 대체기술을 적극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독 자기술을 확보함으로써 기술수출을 통한 국부 창출 을 이룰 수 있을 뿐 아니라, 유지보수 시 외국기업과 의 기술제휴로 인해 발생하는 어려움을 피할 수 있 다. 이와 함께 새로 개발된 기술이 현장에서 적극 활 용될 수 있도록 제도적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하겠다.
이제 우리는 라이프라인을 비롯한 인프라가 경제 력이 향상되었기 때문에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투자라는 인식을 가 져야만 한다.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갖출 수 있는, 그 리고 복지를 이루는 최소한의 요소가 라이프라인에 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지정책 우선과 세수 부족을 이유로 라이프라인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해 서는 안 될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사태를 반 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사건의 시작은 지진 및 홍수해였지만 원전과 관련된 전력 및 교통시설의 마 비로 인한 초기 대응실패가 사고의 심각성을 키웠다.
우리나라 또한 기후변화로 기상재해가 가중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라이프라 인의 통합적인 관리 부재와 시설 노후화가 여러 자연 재해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말콤 글래 드웰의 ‘티핑 포인트’처럼 대형사고를 눈앞에 두고 있 는지도 모르겠다. 철저한 준비만이 한국판 ‘신의 분 노’를 경험하는 우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ㅣ 국토시론 ㅣ
참고문헌 ---
황인혁, 전범주, 우제윤, 김유태. 2014. 30년 넘은 시설 1864개 … 댐·철 도 교량 노후화 심각. 매일경제. 5월 29일. A8.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