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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정보시대와 한국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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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Horizon

지식정보시대 : 지식과 정보의 상보적 동학

본고는 지식정보시대 패러다임 하에서 한국의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 다. 그런데 시대나 사회의 특징을 담기 위한 개념은 상당한 사회적 반 응을 얻는 것에 비해서는 개념의 적확성이 엄밀하지는 않은 경우가 많다. 지식사회, 정보시대, 정보사회와 같은 개념들 역시 실증적이기 보다는 선제적 의제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으며 사회적 합의에 도달한 개념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그 개념들은 대단한 운 동성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처음 개념들이 제시되고 난 이후 시 간이 지나면서 그에 부합한 근거들이 더 풍부해졌다고 할 수 있다. 적 어도 일시적 유행어는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적어도 위의 개념들 을 통해서 사회를 풍부하게 해석해내는 프레임이라는 점에서 존재가 치가 있는 개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필자는 지식과 정보를 별도가 아니라 사회나 시대의 특징을 서술하는 상호보완 개념들로서 묶어서 제시하고자 한다. 지식과 정보 가 현실을 이해함에 있어서 서로 다른 측면을 포착하면서도 서로 긴 밀하게 얽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정보시대(사회)와 지식 사회에 대한 논의들은 유사해 보이는데도 그 차별성과 연계성에 대한 검토가 없이 각각 별도로 논지가 전개되고 있다. 필자는 양자를 동시 에 고 려할 때 함의가 풍부해진다고 보며 지식정보 개념의 운동성을 이해하 는 창이라고 여긴다.

먼저, 정보는 감각적 또는 기술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 정보에 해당 하는 영어 단어인 ‘Information’의 동사형인 ‘Inform’은 상대방이 지각 또는 인지케 한다는 뜻을 갖는다. 상대방이 그것을 어떻게 해 석하는지는(심지어는 무시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정보라는 단어가 함축하고 있지 않다. 정보를 전달(즉 Inform)하는 것은 그래서 감각 적인 것이며 그 감각을 가능하게 하는 제반 수단(구두, 문자, 다양 한 신호)을 동원하기 때문에 기술적이다. 정보의 이러한 기술적 성 격의 발달은 인류 문명과 궤를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표

의문자, 표음문자, 기록매체, 금속활자, 전신전화, 라디오, TV에 이 어서 컴퓨터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정보전달을 위한 기술적 진보는 문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 컴퓨터의 등장과 대중화 그리고 컴퓨터 간의 통신은 산업과 문화를 획기적으 로 변모시켜서 정보혁명(Information Revolution) 또는 정보화 기 반 혁명(Informational Revolution)이라는 개념을 대두하게 했고, 이것은 18세기 후반의 동력기관 기반 산업혁명, 19세기 후반의 과 학기술기반 산업혁명에 이어, 20세기 후반 정보기반 산업혁명이라 는 시대구분을 낳게 했다. 이러한 정보혁명에 기반해서 네트워크사 회, 가상사회와 같은 보다 큰 사회적 함의를 제시한 논자도 있으며 일정하게 지지를 얻고 있다(네트워크사회는 Manuel Castells가 그 대표적 주창자)1).

다음으로 지식은, 개인, 사회, 또는 인류 문명 차원에서 축적된 무형 재(Intangible Asset)로서, 인간의(개별적 또는 집단적으로) 자연 과 사회에 대한 이해의 체계이고 그에 기반해서 의사결정이나 삶의 방향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관점에서 지식은 종교적 믿음 이나 세계관, 사회 윤리, 지혜, 실용적 기술, 체계화된 과학지식, 과 학기반의 기술 지식을 모두 포괄한다. 그런데 이러한 지식의 개념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여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지금에 있어서 도 지식의 다른 개념의 제시가 이루어진다. 지식은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그 유용성 또는 경제적 가치라는 점이 강조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식경영’, ‘지식경제’에서처럼 지식 은 경영 또는 경제와 같은 효용 개념들과도 잘 연결이 된다.2) 필자는 정보를 기술적 기반이라고 하고, 지식을 그러한 기술적 기반 에서 형성되고 체계화되는 행동양식 또는 의사결정의 준거라고 본다.

이러한 상호보완적 개념화는 정보와 지식의 상호연계 운동을 이해하 는데 도움이 된다. 금속활자라는 정보처리의 획기적 전환이 책의 값 을 떨어뜨려서 책의 대중화가 가능해지고 대중도 비교적 쉽게 문자

지식정보시대와 한국의 과제

글 김석현(자유기고자, 前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원)

미래연구 포커스 미래지식창출 패러다임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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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던 점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루터가 종교개혁 을 주장하면서 작성한 팜플렛은 독일어로 쓰임과 동시에 금속활자에 의해 작성되어 대량 배포되었던 것이 금속활자가 가져다준 대중문명 (Literacy)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

정보혁명 시대가 지식에 미치는 운동성에서 먼저 주목할 대목은 지식 단위와 그 귀속권의 해체이다. 금속활자의 발명과 도서의 대량 유통에 따른 수익 확보는 저서의 저자에 대한 물질적 권리가 가능하게 했고 이 에 따라 저작권의 개념과 더불어 ‘지식의 원 저자’라는 지식의 개인성 을 확고하게 하였다. 그런데 컴퓨터 네트워크는 방대한 정보 또는 지 식을 연결하고 섞어버림으로서 지식 자체의 일정한 단위(unit, 예컨대 책이나 논문)의 개념과 더불어 그 단위에 대한 저작권이라는 개인성 도 해체하고 있다. 웹에서 사용되는 하이퍼텍스트(Hyper Text)에서는 더 이상 지식의 범위(Boundary) 설정도 가능하지 않게 하며 ‘저작권’

의 원천적 근거가 사라지게 하고 있다. 유럽에서 구글(Google)이 검색 한 정보들에 대해서 정보원천이 있는 인터넷 사이트와 구글 측 간에 그 이익을 놓고 다툼이 발생하는 것은 그러한 해체를 잘 보여준다. 해체는 부정적인 느낌을 전달하지만, 그러한 해체를 능동적으로 활용한 위키 피디아(Wikipedia)의 사례는 집단지성(Group Intelligence)라는 새로 운 지식창출의 현실화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다음으로 주목할 대목은 지식의 탈문자화 되는 흐름이다. 20세기 중 반 이후 라디오/TV의 대량 보급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 면서 탈근대주의 사상가인 보드리야르(Bauldrillard)와 부르디외 (Bourdieu) 등은 이미지와 같은 제반 상징으로 대변되는 문화로 관 심사를 넓힌다. 두 사람은 각각 시뮬라크르(Simulacre)와 문화자본 (Culture Capital) 개념을 통해서 명시적인 문자 외의 제반 상징까지 도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으로 상정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필 자는 문자 외의 소리와 이미지도 지식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다. 컴퓨터의 발달을 통해서 이미 각종 비문자(Non-text) 정보가 멀티 미디어(Multimedia)로 유통되고 ‘컨텐츠’(Contents)라는 개념으로 생 산, 소비되기에 이른다. 영어권에서 컨텐츠가 책의 목차로서 책의 내용 이 무엇인지를 드러내주는 개념이라고 할 때 비문자 정보가 정보라는 기술적 차원을 넘어서 지식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비문자 정보에 기 반 한 컨텐츠는 또한 대단히 감각적이고 오락적인 면이 강해서 ‘어렵고 딱 딱한’ 종래의 지식과는 괴리가 커서 지식으로 인정하기 선뜻 어렵게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수학의 내용을 컴퓨터 게임의 형식으로 전환시키는 등 지식습득 심지어 연구도 게임화(Gamefication) 또는 감각화해가는 경향성에 주목 할 때 ‘감각적이라고’ 해서 지식이 아니라 고 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3)

지식에서 한국의 위치 : 반(半)근대성과 변방성

앞에서 제시한 바의 정보지식시대가 갖는 한국에 부여하는 실천적 함 의를 보다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 ‘지식에서의 한국의 위치’를 가늠해 보고자 하는데, 이러한 문제의식 자체가 생소하기도 하고 타당하지 않다고 여겨질 수 있다. 생소하다는 것은 자신의 지식 또는 지식 탐구 에 있어서 그러한 위치잡기를 일상적으로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먼저, 생소하다는 것은 그에 대한 사리 판단과 더불어 이유를 추리하 기가 간단치는 않다. 지식을 수입하는 것에 익숙했던 한국으로서 새 삼 한국의 지식의 위치를 가늠해볼 필요가 없었을 것으로 볼 수도 있 다. 그런데 수백 년의 세월 동안 국경을 넘는 지식 교류가 있었던 유 럽(이후 미국을 포함)에서도 이미 지식이 유럽 차원에서 발전했기 때 문에 지식사에서의 자국의 위치라는 문제가 생소할 수도 있다. 그리 고 다음으로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그러한 위치잡기에 필요 한 전제인 ‘인류의 지식사’라는 지식의 집적체라는 게 편의상 통칭 정 도를 넘어서서 지식의 변천을 적절히 이해하고 가늠하는데 필요한 것 인가라는 문제 제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4) 특히 이 문제는 문화에 대 한 서구 중심주의적 시각이라는 또는 근대를 서양의 관점에서 보는 치우친 견해라는 비판과 그 결이 통하기 때문에 그 무게감이 너무 커 서 다만 균형적 시각을 위해 그런 문제의식이 있다는 점을 짚는 것으 로 한정하고자 한다.

이처럼 ‘지식에서 한국의 위치’라는 문제는 타당성과 더불어 생소함 이라는 사전적인 고민거리를 안고 있지만, 지식을 생산하는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그 위치의 문제를 외면하기가 어렵다. 이 고 민이 과학사 연구자인 김영식에서 잘 드러난다.5)

동양과학사 전공자인 김영식은 한국과학사를 연구하는 제자들이 정작 중국의 과학사에 많은 노력을 들이게 됨을 인지한다. 그것은 한국의 대 부분의 전통적인 과학기술이 중국으로부터 수입되어왔기 때문에 그 연 원을 추적하면 결국 중국 과학사 연구에 많은 시간을 투입할 수밖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영식은 이런 본인의 경험과는 반대로 일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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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Horizon

인 한국의 과학사 연구는 한국의 과학사를 대상으로 한 한국어로만 발 표되는 고립된 섬임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김영식은, 통상적인 한국과 학사 연구가 한국과 외부를 관련시킴에 있어서도 창조성이나 독자성이 라는 서사의 전형성이 있음을 지적한다. 예컨대, 한국의 과학사 서사는 금속활자나 측우기 등을 통해서 창조성과 독자성을 강조하거나, 중국 등 외부로부터 지식을 수입했다고 해도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독자성을 획득한다. 김영식은 한국 과학사가 중국 과학사의 일부로 봐야 한다거 나 또는 아니라고 단정하지는 않으며, 다만 한국의 과학사를 한국으로 만 한정했을 때 이해의 폭이 협소함을 짚고 있다.

필자는, 김영식에 있어서 ‘지식에서 한국의 위치’에 대한 고민이 특히 심각하게 다가온 것은 그가 다루는 지식인 과학기술이 현대에 갖는 독보적인 위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은 근대시대를 만든 핵심적인 지식이고 압도적인 보편성 (Universal)을 갖는 것으로 간주됨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을 뒤늦게 수용한 한국으로서는 그만큼 강렬하게 열망하는 지식이다.

현실과 열망의 차이는 복합심리(콤플렉스)를 야기하게 되는데, 필자 는 과학기술을 계기로 드러나는 한국의 복합심리를 ‘반(半)근대성’과

‘변방성’으로 특정지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개념은 이미 ‘완성 되어 쫓아가는 근대’와 ‘중심과 변방’이라는 위계적 그리고 서열적 개 념으로서 그 자체로도 근대시대의 산물이기도 하고 탈근대시대가 극 복하고자 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근대시대의 물질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되자, 인근 유럽국가들도(특히 독 일) 그것을 따라잡고자 집요한 노력을 했다는 점을 반추하면 ‘근대’가 지니는 선형적 발전 모델의 현실성은 엄연히 존재했다는 점은 인정되 어야 한다. 또한 후발국들은 근대의 물질기반뿐만 아니라 그 정신적 가치와 그것의 제반 사회제도도 상당 부분 수입했고 자기 것으로 만 드는데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했다. 예컨대 미국은 유럽의 대학제도 를 수입했지만(특히 독일의 연구중심대학), 정작 미국의 대학이 지식 분야에서 지금의 세계적 차원의 대표성을 획득한 것은 2차 대전 이후 부터였고 그 전에 미국의 지식인들(특히 과학자들)이 유럽에 일정 정 도 머물면서 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다.6)

한국처럼 단지 근대화가 늦었을 뿐만 아니라 근대화를 주도한 서구 국가들과 문화적 전통 자체가 전혀 상이했고 그러면서도 식민주의에 희생되었던 국가들은 근대화에 있어서 다만 늦었다는 것으로는 그 특 징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워서 필자는 ‘변방성’이라는 개념이 필요 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세계적인 지식 중심지였던(유일한 중심지가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중국과의 인접 이점을 누리면서 비록 중국에 대해 약소국과 주변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었지만 ‘소중화’라는 자부

심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이 더 이상 세계의 지식 중심지가 아니 면서 한국의 변방성은 그 한계가 극대화된다. 한국에 비해 중국에 대 한 의존도가 낮았던 일본은 보다 능동적으로 서구의 근대성을 받아드 리고 결국 서구 제국주의의 일원이 되어서 한국을 식민지화하기에 이 르는데 일본에 대해 문화적 자긍심이 높았던 한국으로서는 심대한 충 격이 된다. 그래서 한국은 한편으로는 무기력하다고 여겨진 전통문화 에 대한 강한 부정적 인식과 서구 또는 일본에 대한 강렬한 선망과 더 불어,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제국주의 경험의 국가들에 대한 강한 거부감에 기반한 민족주의라는 콤플렉스를 안게 된다. 예컨대,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이 되기 위해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 유학이 여전히 필수 과정으로 간주되고 이를 선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 대한 거부감도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7)

지식정보시대, 한국의 과제

‘반(半)근대성’과 ‘변방성’이라는 과거에서 연유한 고민을 안고 있는 한국으로서, 탈근대 시대에 대한 대응이라는 현재 또는 미래의 문제 는 고민의 심도를 가중시킨다. 그런데 다만 숙제가 더 많아지고 어려 워졌다는 것으로만 보는 게 그 인식과 실천에 타당한지 의문을 던질 수 있다. 그 이유는 탈근대가 근대에 대한 비판과 반성 또는 근대와는 다른 가치 체계이거나 다른 가치 체계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탈근대 는 근대가 보여주는 선형적 발전성과 더불어 서구 중심성에 대한 비 판에 기반하고 있고 그래서 ‘반(半)근대’ 또는 ‘미(未)근대’라는 시간 개념과 변방성이라는 공간 개념에 대한 재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그 래서 필자는 탈근대는 한국에 있어 기회로도 작용하는 면도 있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기회의 측면에 주목할 때 효과적인 한국의 지식전략 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서 짚어본 한국 또는 한국 지식의 변방성과 반근대성을 탈근대 관점 또는 탈근대 지식의 특징인 지식정 보사회 관점에서 재조명하고자 한다.8)

먼저, 지식정보시대가 부여하는 기회라는 관점에서 변방성은 다음 과 같이 재해석될 수 있다. 자국 지식의 변방성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은 자국의 민족문화에 대한 높은 자긍심과는 부합하지 않을 수 있 다. 하지만 변방성 자체를 인정한다는 것 자체도 민족 문화 중심적 사 고와는 거리를 두고 보다 객관적인 입장이라는 점에서 우선은 근대 적 정신과 부합한다. 이러한 변방성이라는 인식이 있을 때 자국의 지 식 전략을 보다 객관적으로 효과적으로 조망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발 더 나아가 중심과 변방에 각각 우월과 열등이라는 수직 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 자체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것이 탈근대 시대 와 부합한다. 탈근대시대는 해석과 판단의 차이는 있지만 상당 정도

미래연구 포커스 I 미래지식창출 패러다임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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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화된 사회와 조응한다. 네트워크 사회는 완전히 수평적인 사 회는 아니지만, 그 내부의 위계적 권력관계가 사전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들뢰즈-Deleuz와 가타리-Gatari가 제시한 Rhizome-뿌리줄 기-개념이 이에 부합한다. 네트워크사회에서는 부분 또는 변방 가리 지 않고 네트워크 내에서 다양한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가 이 루어짐으로써 네트워크의 양상이 변할 수 있다. 네트워크 사회는 변 방에도 많은 기회로 작용한다. 가수 싸이는 2012년 ‘강남 스타일’을 발표했는데 유튜브 플랫폼에 올려진 그의 뮤직 비디오는 순식간에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몇 달 안돼서 가수 싸이는 세계적인 지명도를 얻게 되었고, 지금도 그 뮤직비디오는 10억 건이 넘는 유 튜브 동영상 중에서 최고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데서 네트워크 사회가 변방과 중심에 대한 고정 관념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것을 보 여준다.

다음으로 ‘반(半)근대성’의 기회적 측면을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탈 근대시대는 근대가 버리고자 했던 ‘과거의 가치’에 대해서 새롭게 인 식한다. 대량제조업에 의해 소멸될 것으로 여겼던 장인노동(Craft)에 대해 그 가치가 재인식되고 있고, 고집적 고효율 도시에 의해 가려졌 던 전통성이 보존된 도시나 촌락이 안식처로 재조명되고 있고, 도시 내에서의 생태적 농업 활동도 부상하고 있다. 또한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문화컨텐츠와 같이 과거에는 지식으로 간주되지 못했던 영역이 이제는 당당히 고부가가치을 담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식의 판도 또 한 변화했다. 한국은 피식민국가에 처한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한국 의 전통 문화 그리고 전통적인 지식에 대해 일방적으로 부정하거나, 또는 그 반작용으로 지나치게 협소하게 자부심의 원천으로 확대해석 한 양단의 오류를 경험했고 지금도 일정 정도 그러하다. 그런데 새로 운 문화나 지식이 결코 과거와의 일방적 단절이나 찬양에서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런 양단적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 서양의 지식도 결국 과거의 지식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더불어 정당한 비판을 통해

서 일신되어 왔기 때문이다. 서양의 지식에 있어서 누적성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항상 비판적인 재구성이었다는 점에서, 한국도 이제는 ‘반(半)근대성’을 강박관념적 추격의 개념이 아니라 과거의 재발견과 재인식을 통해서 한국 지식의 누적성이라는 관점에서 재해 석할 필요가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식정보시대를 기회로 해석할 여지가 있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도약’(Leap-frogging)을 위한 전략적 재해 석일 뿐, 근대지식이라는 기반이 탄탄하지 않는 한국에 있어서 지 식정보시대는 위기로서도 여전히 작용함을 냉정하게 짚으면서 글 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정보에 가까운 단편적인 지식 또는 형식지식(Codified Knowledge)은 그 가치가 낮다. 그런데 한국은 서구로부터의 형식지 식을 수입하는 것에 여전히 익숙하고 교육에 있어서도 단순 지식의 전수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한국인들이 지식으로서 얻은 ‘과학지 식’은 많지만 과학지식의 탐구 나아가 지식 일반을 만들어내는 데 필 요한 ‘과학적 사고’에 대한 훈련은 많이 받지 못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 러하다. 한국은 근대성이라는 과거의 숙제도 여전히 해결해야 하는 운명을 안고 있다.

지식정보시대와 한국의 과제

1) 카스텔스(Castells, Manuel)이 1996년 발표한 ‘The Rise of the Network Society’가 네트워크 사 회론의 대표작이고 이 책은 2000년과 2010년 개정증보판이 이어졌음

2) 마흐럽(Machlup, Fritz)은 이러한 관점에서 지식의 역사적 이해, 활용성, 기여에 대해 10권 에 이르는 연작 저술을 기획했는데 4권 째를 1980년 발표하고 1983년 고인이 되었다. Machlup 의 연작 기획의 대강이 그가 1972년 발표한 ‘The Production and Distribution of Knowledge in the United States’라고 할 수 있다.

3) foldit(http://www.fold.it/)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는 단백질 구조 탐구에 대한 노력을 게임의 방 식으로 전환시켜서 대중의 집단 지성을 활용하고 있음

4) 이러한 집적성은 누적성(cumulativenes)라고 볼 수 있는데 서양의 지식에서 중요한 관점이 다. 뉴튼(Newton, Issac)이 친구이자 과학자인 후크(Hooke, Robert)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은 거인 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봤다(“If I have seen further it is by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라 고 말한 바 있으며 철학자 화이트헤드(Whitehead)는 서양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각주 라고 말하면서 역시 그 누적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동양에서도 고전을 중시하여 견해를 밝힘에 있어서 경(經)과 사(史)에 충실할 것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아주 다르지는 않다.

5) 이하 김영식의 견해는 김영식(2013) ‘동아시아 과학의 차이 : 서양과학, 동양과학, 그리고 한 국 과학’(사이언스북스)를 따른다.

6) DNA발견에 기여로 노벨상을 수상한 왓슨(James Watson)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 고 덴마크의 코펜하게 대학과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의 물리학과(캐번디시 연구소-Cavendish, laboratory- 더 많이 알려짐)에서 박사후연구(post-doctoral research)를 하면서 X-ray 분석기법을 접한다. 노벨상 공동수상자 중 다른 한 사람인 Crick은 캐번디쉬 연구소 소속이었다.

7) 최근 이와 관련 대립구도가 비슷한 시기에 간행된 두 책에서 보인다. 김종영(2015), ‘지배받 는 지배자 :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돌베개)는 선진국 선망을 비판하고 있는 반면 김 경만(2015)의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 : 한국 사회과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문학동네)는 지 식의 세계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자신이 그 일원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노력을 담고 있다.

8) 이러한 집적성은 누적성(cumulativenes)라고 볼 수 있는데 서양의 지식에서 중요한 관점이 다. 뉴튼(Newton, Issac)이 친구이자 과학자인 후크(Hooke, Robert)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은 거인 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봤다(“If I have seen further it is by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라 고 말한 바 있으며 철학자 화이트헤드(Whitehead)는 서양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각주 라고 말하면서 역시 그 누적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동양에서도 고전을 중시하여 견해를 밝힘에 있어서 경(經)과 사(史)에 충실할 것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아주 다르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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