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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의 미학』에서 미 이념의 통일성과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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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일_2019.06.10 심사기간_2019.07.01-14 게재확정일_2019.08.20

『추의 미학』에서 미 이념의 통일성과 자유

Unity of Beauty and Freedom in Aesthetic of Ugliness

최행준_전남대학교 미술학과 강사

Choi, Haeng Joon_Chonnam University_Department of Fine Arts_Lecturer

차례 1. 들어가기

2. 미 이념의 통일성

3. 부정적 형상의 비교요구

4. 형식적 주관성의 자유

5. 나가기

참고문헌

(2)

『추의 미학』에서 미 이념의 통일성과 자유

Unity of Beauty and Freedom in Aesthetic of Ugliness

최행준_전남대학교 미술학과 강사

Choi, Haeng Joon_Chonnam University_Department of Fine Arts_Lecturer

요약 본 연구의 목적은 K. 로젠크란츠의 󰡔추의 미학󰡕에서 코믹과 캐리커처 개념을 미 이념의 통일성과 비교 요구 그 리고 자유라는 관점에서 해명하는 것이다. 로젠크란츠의 추에 관한 논의는 추를 미의 부정으로 상정하고, 미로 복귀한 코믹으로 정당화하기 때문에 추의 독자적 가치를 파악하지 못한 이론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필자는 로젠 크란츠가 헤겔의 미 이념에 관한 논의, 그리고 아도르노의 추에 관한 논의와 내적 연관 관계를 갖는다고 생각한 다. 필자는 이 내적 연관 관계를 해명하기 위해 미 이념의 통일성과 비교요구 그리고 자유 개념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첫째, 로젠크란츠의 미 이념은 미의 현상과 달리 실체적 내용이 없는 역동성이며 오히려 추의 현상과 미의 현상이 미 이념의 구분을 구성한다는 점이 밝혀진다. 둘째, 추의 극단화는 캐리커처인데, 캐리커처는 개념 에 반하는 형상으로, 형상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교 요구라는 점이 밝혀진다. 미 이념의 대립과 구분은 점차 통일이 어려운 상태로 현상하는데, 당대에 나타난 코믹은 가장 극단적 추가 미로 환원된 예시에 불과하다.

부자유한 현실을 고발하는 추는 미가 가장한 개념의 형상을 비판하는 예술일 수 있다는 점에서 아도르노의 추 를 상기시킨다. 셋째, 추가 자유와 갖는 관계를 통해 로젠크란츠 추 이론의 현재성이 밝혀진다. 자유롭게 자신 의 자유를 부정한 부자유가 오히려 자유의 가상을 띠는 부분과 추가 자유의 가상을 띨 수 있는 방식이 코믹만 은 아니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추를 미의 부정이나, 코믹을 미로 복귀한 추로 파악하는 로젠크란츠의 한계를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공헌이 갖는 현재성도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larify the concept of comic and caricature in terms of the unity of beauty and freedom in Aesthetic of Ugliness written by K. Rosenkrantz. Rosenkrantz's discussion about the ugliness is regarded as a theory that does not grasp the unique value of the ugliness because it assumes the ugliness as a negation of beauty and justifies the comic as a return to the beauty. But I think Rosenkrantz has an internal connection with Hegel's discussion of beauty idea and Adorno's ugliness. To elucidate this inner connection, I focus on the concept of the unity of beauty idea, comparison request, and freedom.

Through this process, first, it will be revealed that the beauty idea, unlike the beauty phenomenon, is dynamism without substantial content, rather the beauty phenomenon and ugliness phenomenon constitute the beauty idea as divisions of it. Second, The extreme of ugliness is the caricature, which is also contrary to the concept and requires a comparison of what the shape should be. Opposition and distinction of the beauty idea developed into a difficult state of unification, and the comic, the most extreme ugliness, that appeared in the era is merely an example of being returned to beauty. The ugliness, accusations of non-free reality, reminds Adorno of ugliness in that the ugliness can be an art of criticism that reminds of concealed freedom. Third, the part of Rosenkrantz's ugliness that is still nowness is the part of having the imagery freedom that freely denies one's freedom and the part of describing that comic is the only way for the ugliness to have the image of the freedom. We can point out Ronsenkranzt's limitations which assumes the ugliness as a negation of beauty and justifies the comic as a return to the beauty. But, the nowness of his contributions should also be justified.

중심어

미의 통일성 코믹 캐리커처

ABSTRACT Keyword

ugliness unity of beauty comic

caricature

(3)

1. 들어가기

본 연구의 목적은 K. 로젠크란츠(K. Rosenkranz)의 󰡔추의 미학, Ästhetik des Häßlichen󰡕1)에 서 코믹(Komik)과 캐리커처(Karikatur) 개념을 미 이념의 통일성과 비교 요구 그리고 자유라 는 관점에서 해명하는 것이다. 독일 관념론 철학에서 추한 예술을 긍정하는 방식은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형식미학을 정초한 I. 칸트(I. Kant)는 추를 표현한 예술이 가능한 것은 예술가의 탁월한 기술이 우리에게 경탄을 일으키기 때문이라 말한다.2) 합법칙적 형식이 주는 쾌가 추한 대상의 내용을 압도하기 때문에 추는 불쾌가 아니라 쾌를 불러일으킨다. 반면 G. W. F. 헤겔 (G. W. F. Hegel)은 추한 예술을 미가 감춘 진리를 드러내는 이행으로 긍정한다. 예컨대 고전 적 조각상의 미는 정신성과 감각성의 이질성을 감추는데, 이러한 이질성이 낭만적 예술에서 양자가 분리된 추로 드러난다. 헤겔의 미학이론과 낭만주의 예술의 만개로 헤겔과 직‧간접적인 영향관계에 있는 루게(Ruge), K. 피셔(K. Vischer), F. Th. 피셔(F. Th. Vischer), 바이쎄 (Weiße), 로젠크란츠 등이 다양한 방식으로 미와 추의 관계에 관한 논문과 저술을 발표한다.

그 중에서도 로젠크란츠는 󰡔추의 미학󰡕이라는 선언적인 저술로 추의 이론과 추한 예술을 한 권의 단행본으로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로젠크란츠는 헤겔의 제자이자 헤겔 전기3)의 작가로서 헤겔 철학의 강력한 영향권에 있는 인물이다. 로젠크란츠의 󰡔추의 미학󰡕은 미와 추에 관한 헤겔의 생각과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특히 로젠크란츠가 추의 극단인 캐리커 처가 미로 전환되어 코믹이 된다고 주장한 것은 미 이념을 구성하는 두 계기인 미와 추의 현상 이 통일 또는 화해되어 미 이념의 내용을 풍부하게 한다는 헤겔의 생각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그러나 로젠크란츠의 󰡔추의 미학󰡕 구성은 추의 범주들을 형태 없음, 부정확성, 기형화로 나누 고 각각 세 개의 하위범주를 나눔으로써 그 자체로는 미 이념의 통일성이라는 과정의 역동성이 부각되지 않는다. 로젠크란츠의 한계를 논하는 논문들은 그가 추한 예술 현상을 방대하게 집대 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추를 미에 비해 부차적이거나 부정적 현상으로 상정했다는 점을 비판한 다.4) 추한 예술에 관한 가치 부여 없이 󰡔추의 미학󰡕이라는 단행본을 동시대 사람들의 의구심 을 의식하면서도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필자가 보기에 로젠크란츠가 추를 부차적인 것, 부정 적인 것으로 상정한 것은 추 영역의 방대함 때문으로 보인다. 추는 그 영역의 방대함 때문에 무규정적일 수밖에 없고, 상대적으로 협소한 영역인 미의 규정성에 반하는 것으로 규정될 수밖 에 없었다.

로젠크란츠의 한계를 지적하는 또 따른 지점은 코믹이 미로 복귀한 추라는 점이다. 비판적 연구자들에게 로젠크란츠는 추의 가치를 부정하고 아름답게 되어야 비로소 가치를 갖는 것으 로 상정한 이론가가 된다.5) 그러나 미로 복귀한 추에서 미는 미 현상이 아니라 미 이념이다.

추는 미 현상으로 복귀할 수 없다. 미 현상과 추 현상은 서로 반대 규정을 갖는 대립항으로 복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추에 관한 이론가로서 로젠크란츠를 평가절하 하는 연구들은 미 현상과 미 이념의 차이를 간과한다. 미 현상과 추 현상은 미 이념의 구체적 현상들인데, 자체로 는 공허한 내용을 갖는 미 이념이 마치 미 현상의 구체적 규정을 갖는 실체처럼 여겨지는 오해 일 수 있다. 이러한 지점은 로젠크란츠가 헤겔 철학의 영향권에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하 여 해명되어야 한다. 그래야 󰡔추의 미학󰡕을 집필하고 추한 예술 현상을 집대성한 로젠크란츠가 동시에 추의 가치를 절하했다는 아이러니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헤겔과 로젠크란츠가 상정한 미 이념이 무엇인지 확인하면 코믹도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 다. 로젠크란츠는 당대의 캐리커처를 미로 복귀한 추 즉, 코믹으로 파악한 것을 지나치게 강조

1) K. 로젠크란츠, 󰡔추의 미학󰡕, 조경식 옮김, (경기파주: 나남, 2008), 이하 본문에 (ÄH, 페이지)로 표기한다.

2) “예술은 자연에서 추하거나 적의하지 않은 사물들을 아름답게 묘사한다는 데에 바로 그 특징이 있다. 광포함들, 질병들, 전쟁의 폐 허들, 그리고 그와 같은 것들은 재화(災禍)이지만, 매우 아름답게 묘사될 수 있고, 회화로도 표상될 수 있다.”(칸트 강조) I. Kant, Kritik der Urteilskraft, Hamburg : Felix Meiner, 2009, B189(345). B는 제2판의 페이지이고 괄호 안은 번역본의 페이지이다.

번역은 󰡔판단력비판󰡕, 백종현 옮김, (서울: 아카넷, 2009)에 따른다.

3) K. Rosenkranz,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s Leben, Sydney : Wentworth, 2018.

4) 김은정, 「추의 미적 현대성에 대한 철학적 담론-로젠크란츠의 󰡔추의 미학󰡕」, 󰡔독일문학󰡕, 44집 4호, 2003, pp.219-238.

5) 김은정, 「추에 대한 철학적 불신-헤겔과 로젠크란츠 미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 󰡔뷔히너와 현대문학󰡕, 23집, 2004, pp.336-354.

(4)

한 나머지 추의 열린 가능성을 닫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로젠크란츠는 캐리커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캐리커처 자체가 필연적으로 코믹하게 작용하지 않고, 그저 추하거나 무시무시 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ÄH, 187).

로젠크란츠는 코믹하지 않은 캐리커처 또는 범죄적인 것, 유령적인 것, 악마적인 것 등을 염두 에 두고 있는데, 이들의 예술적 가치는 여전히 열린 가능성을 갖는다. 로젠크란츠의 󰡔추의 미학󰡕 은 헤겔과의 영향관계에서 그 의미가 보다 명료하고 풍부해진다. 닫힌 체계로 보이는 로젠크란츠는 헤겔과의 관계 속에서 보다 넓은 해석의 가능성을 보인다. 또한 로젠크란츠는 존재론 미학이나 형식 미학 또는 낭만주의 미학 등의 관점에서 자연과 정신 그리고 예술에서의 미와 추를 단언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러한 단언들은 헤겔과의 관계 속에서 보면 일면성을 긍정한 말에 불과하다.

로젠크란츠가 추에 독자적 가치를 부여한 것은 아니지만 추가 예술 표현에서 긍정될 가치로 제시한 것은 자유이다. 로젠크란츠는 자유를 자유롭게 자신을 부정할 부자유의 가능성을 포함 한 개념으로 상정한다. 같은 방식으로 추의 극단화인 캐리커처는 부자유한 형상이 자유의 가상 을 띠는 경우 코믹이 된다. 코믹이 자유의 가상을 통해 미 이념의 통일성을 보여준다면 그 밖의 추 또는 추의 극단화인 캐리커처도 또 다른 방식으로 자유의 가상으로 전환된 가능성은 없을까? 필자는 부자유의 추가 자유와 맺는 관계, 그리고 반개념의 형상이 개념을 상기하는 부정적 방식이 추가 자유와 맺는 새로운 관계 즉, 부정적 방식의 관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본 논문은 아도르노를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추가 자유와 맺는 부정적 방식의 관계는 아도르노의 추 이론을 염두에 둔 것이다.

󰡔추의 미학󰡕을 미 이념의 통일성과 비교 요구 그리고 자유로 해명하기 위해 첫째, 헤겔의 미 이념과 관계 속에 로젠크란츠의 미 이념의 통일성과 구분의 왕복운동에 대해서 다룬다(2장).

이 과정에서 미 이념은 미의 현상과 달리 실체적 내용이 없는 역동성이며 오히려 추의 현상과 미의 현상이 미 이념의 구분을 구성한다는 점이 밝혀진다. 둘째, 부정적 형상의 비교 요구에 대해 다룬다(3장). 미 이념의 대립과 구분은 점차 통일이 어려운 상태로 현상하는데, 당대에 나타난 코믹은 가장 극단적 추가 미로 환원된 예시에 불과하다. 로젠크란츠는 추가 미로 복귀 한 코믹을 자신 이론의 가장 중대한 공헌으로 강조하는 것은 분명하다. 현대의 관점에서 그가 가장 큰 공헌이라 생각한 것은 오히려 그의 가장 큰 한계이다. 추의 극단화는 캐리커처인데, 캐리커처는 개념에 반하는 형상으로 형상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교 요구이기도 하다.

부자유한 현실을 고발하는 추는 미가 은폐한 자유를 상기시키는 비판의 예술일 수 있다는 점에 서 아도르노의 추를 상기시킨다. 셋째, 추가 자유와 갖는 관계를 다룬다(4장). 로젠크란츠의 추에 관한 논의에서 여전히 현재성을 갖는 부분은 자유롭게 자신의 자유를 부정한 부자유가 오히려 자유의 가상을 띠는 부분이나, 추가 자유의 가상을 갖을 수 있는 방식이 코믹만은 아니 라는 점을 서술하는 부분이다. 로젠크란츠의 한계를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공헌이 갖는 현대성도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그것이다.

2. 미 이념의 통일성

󰡔추의 미학󰡕의 저자 로젠크란츠는 헤겔의 제자로 헤겔이 예술철학에서 견지한 관점, 즉 미 이념이 미와 추의 왕복운동을 통일한다는 관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로젠크란츠는 당대에 그가 목도한 코믹과 캐리커처 그리고 비윤리와 추를 표현하는 예술작품을 미 이념의 필연적 왕복운동으로 설명하려 한다. 그에 따르면 추한 예술은 미 이념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필연적 현상이다. 그 핵심 개념은 코믹과 캐리커처인데, 로젠크란츠는 코믹을 추가 미로 복귀 한 것으로, 캐리커처를 추의 극단화로 묘사되고 있다.

헤겔은 자신의 시대에 추한 예술이 출현하는 것을 목도하고 자신의 예술철학 체계 내로 수렴하

(5)

려 한다. 헤겔은 예술철학의 대상을 아름다운 예술로 제한하고 미를 표현한 예술과 추한 예술 을 미 이념 내에서 운동의 계기로 파악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헤겔이 추한 예술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나, 추한 예술이 미를 표현한 예술에 비해 무가치하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추한 예술은 통일을 표현한 예술이나 화해를 표현한 예술이 은폐 한 진리를 표현한다.

헤겔이 추한 예술에 부여한 지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미 이념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아야 한다. 이는 헤겔의 변증법적 미 이념을 구체적 예술 현상을 통해 서술하려고 했던 로젠크란츠 의 의도를 파악하는 열쇠다. 헤겔은 미를 미 이념으로 상정하는데, 그에게 이념은 비실재적인 사유가 아니다. 그에게 이념은 개념과 개념의 실재성 그리고 개념과 개념의 실재성의 통일이 다.6) 헤겔은 이념이 비실재적 사유라는 통념에 대항하여 이념을 개념과 실재성의 역동적 통일 과정으로 정립한다. 헤겔은 개념을 통일의 점으로 실재성을 구별성의 현존으로 상정한다.

헤겔은 개념과 실재성을 통일로 미 이념을 실재적 이념으로 만든다. 개념은 실재성의 구별을 통일하는 정신의 능력이지만 실재성 없이는 공허한 통일의 점에 불과하다. 실재성은 개념의 내적 구별의 원천이지만 개념의 통일성 없이는 무차별하다. 미 이념은 양자의 통일을 통해 공허함과 무차별함을 넘어선 실재적 이념이 된다.7) 헤겔에게 미는 이념인데, 미의 개념 규정 이 있고 그 개념에 부합하는 실재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념 규정 능력이 실재성 즉, 미의 현상의 전개를 파악하여 미 이념의 풍부한 규정이 생성된다.

헤겔의 예술철학은 미 이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예술이 스스로를 전개하며 규정해 가는 과정 을 서술한 것이다. 그러므로 헤겔의 미 이념은 상징예술, 고전예술, 낭만예술을 모두 과정으로 긍정할 수 있었다. 완전성이라는 내용을 중심에 준 고대미학, 내용적 근거를 제거한 형식미학 을 넘어 내용의 근거와 내용 없는 형식으로부터 자유롭게 내용을 사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헤겔 예술철학의 공헌이다.8) 내용을 제거한 칸트 형식 미학의 공헌은 내용을 과정으로 긍정하 면서도 내용의 근거로부터 자유롭게 사유하는 것으로 전환된다.

헤겔은 이러한 미 이념 규정의 배경에서 중세 기독교 예술로부터 시작하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예술 또는 추한 예술을 그의 예술철학 체계에 포섭할 수 있었다. 추한 예술은 첫째, 종교 적 영역에서 정신성과 감각성의 이질성을 드러낸다. 둘째, 세속적 영역에서 하나인 주체와 여럿인 객체의 이질성을 드러낸다. 셋째, 형식적 주관성 영역에서 하나의 심정과 잡다한 사건 의 이질성을 드러낸다. 헤겔에게 추한 예술은 더 고차의 화해를 위해 지날 수밖에 없는 과정이 라는 부차적 의미만 갖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감각적 드러남이기도 하다.9) 로젠크란츠가 미로 복귀한 추가 코믹이라고 한 것은 미 이념의 통일성 때문이다. 로젠크란츠의 미 이념 이론이 헤겔의 그것과 같은 것이라면 추에 관한 로젠크란츠의 규정은 재검토 되어야 한다.

추한 예술에 관한 독자적인 저술인 󰡔추의 미학󰡕을 남긴 로젠크란츠는 헤겔의 철학 체계를 전반 적으로 수용하지만 추에 관한 서술에 있어서 형식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그는 자체로는 꺼려지 는 추가 그 극단화를 통해 어떻게 형식적으로 아름다운 느낌을 줄 수 있는가에 주목한다. 로젠 크란츠는 예술이 미를 이상화하는 것처럼 추를 극단화하고, 다시 미 이념의 통일성으로 복귀한 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추가 예술에 의해 아름답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유미주의와, 추가 미의 곁에서 미를 더 돋보이게 한다는 기능주의를 극복하지만, 추가 그 극단화에서 형식적으로 새로 운 질서를 창조하고, 내용적으로 개념을 희화화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로젠크란츠 역시 “목적이 미일 뿐인 예술10)이 이제 어떻게 추를 형상화할 수 있게 된 것인 가?”(ÄH, 56)라고 물으면서 그의 중심 주제를 설정한다. 그는 추한 예술을 정당화하는 당시의

6) G. W. F. 헤겔, 『헤겔 예술철학』, 한동원‧권정임 옮김, (서울: 미술문화, 2008), p.127.

7) G. W. F. 헤겔, 『헤겔 예술철학』, pp.128-129.

8) 박배형, 「헤겔과 미학: 칸트의 인식론적 이원론에 대한 헤겔의 비판」, 󰡔헤겔연구󰡕, 29집, 2011, pp.97-123.

9) 최행준, 「헤겔의 낭만적 예술형식에서 미와 추 그리고 관계」, 전남대학교 박사논문, 2014, p.32.

10) 자연과 정신의 경험에서 뒤섞인 미와 추에서 아름다운 것 자체만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정신이 그것을 생산해내어 그 자체로 완결 된 하나의 독특한 세계로 만들어야만 하는데, 로젠크란츠에게 그런 생산이 예술이다. 그는 예술의 토대를 순수하고 혼합되지 않은 미에 대한 정신의 동경으로 설정한다. ÄH, p.53.

(6)

통념, 즉 “예술은 추를 생산하지만 아름답게 생산한다.”와 “미는 훨씬 더 아름답게 나타나기 위해서 추를 필요로 하거나 적어도 추를 이용할 수 있다.”는 통념을 피상적인 성찰이라고 비판 하면서 예술이 추를 형상화하는 “이유는 이념의 본질에 놓여 있다”(ÄH, 53)고 말한다.

그는 예술을 “감각적 요소로서 미 이념의 현상을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것”(ÄH, 56)이라고 설정하는데, 이는 그의 미 이념 규정 즉 “미는 감각적 요소로 조화로운 총체성을 자유롭게 형성하게 하는 이념이다.”(ÄH, 27)와 상응하는 예술의 성격으로 보인다. 각각을 살펴보면, 먼저 감각적 요소에 대해서 로젠크란츠는 “미는 이념의 감각적 현상으로서”(ÄH, 87)라고 말 함으로써 헤겔과 같이 미 이념을 “어떤 특정한 형식으로 있는 이념”11), 즉 “직접적으로 실존하 는 이념”12)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미 이념은 감각적 요소로 현상하는 이념이다. 다음으로 미 이념과 현상의 관계에 대해서 로젠크란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념의 현상적 존재를 자유롭게 풀어 놔두고 그럼으로써 그 부정적인 것의 가능성을 설정하는 것이 이념의 본질이다(ÄH, 56).

미 이념은 우연과 자의에서 유래할 수 있는 모든 형태들, 즉 ,현상적 존재를 자유롭게 풀어 놔두고, 이념의 가능성을 현실화시킨다. 그런데 이렇게 미 이념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현실화 할 때, 자연에서 ‘자유’로운 성장이지만 서로의 간섭에 의해서 형태가 파괴되어 추하게 될 수 있고(ÄH, 31), 정신에서 자신의 ‘자유’로 인해 부자유(ÄH, 49)13)를 선택해서 추해질 수 있 다.14) 이처럼 미 이념은 “우연과 우연이, 본능과 본능이, 자의와 자의가, 열정과 열정이 나뉘고 서로 교차하는 현상의 혼란 속”(ÄH, 56)에 있게 된다. 그러나 미 이념은 이런 혼란을 방치하지 않고 다시 통일하는 힘이다. 미 이념은 현상의 혼란을 풍부한 가능성으로 삼아 통일하는 힘이 다. 미 이념은 “현상의 혼란”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자기 법칙의 통일성으로 보존하는 힘”(ÄH, 56)이다. 미 이념은 구별의 측면에서 자신을 구분하여 현실화 하는 힘이고, 통일성의 관점에서 구분을 다시 통일하는 힘이다.

그런 점에서 로젠크란츠는 미 이념15)의 기본 규정을 ‘통일성’이되 ‘스스로를 구분해내는 통일 성’이라 말한다.(ÄH, 87) 미 이념이 자신과의 통일성 속에만 있다면 미 이념은 자신과 다른 것을 구분하는 경계가 없고, 자신 내부에도 구분이 없는 추상성 속에만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미 이념은 스스로를 분리하는 통일성이어야 하는데, 미 이념은 스스로를 구분할 수 있어야만 외부와 내부에 구분을 가질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미 이념은 통일성이지만 스스로를 구분해 내는 통일성이고 구분을 다시 통일하는 힘이다. 그런데 로젠크란츠는 통일과 구분으로 연속되 는 운동을 “이분화”라 명명하고 이를 “통일성과 자신과의 투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분화라는 것은 통일성과 자신과의 투쟁이기 때문에 그 진행과정에서 통일 성으로 되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 실제의 경험적 진행과정에서 항상 통일성까지 다다 르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통일성은 자신의 구분을 생산해냄으로써, 그리고 그 구분의 해소를 통해서 자신을 조화로운 통일성으로 드러낸다(ÄH, 87).

미는 통일성이기 때문에 통일성으로 되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의 경험적 진행과정 에서 항상 통일성까지 다다르지 못할 수도 있다. 무슨 말일까? 이념으로서 통일성은 스스로를

11) G. W. F. 헤겔, 󰡔헤겔 예술철학󰡕, p.127.

12) G. W. F. 헤겔, 󰡔헤겔 예술철학󰡕, p.127.

13) 로젠크란츠는 부자유에 대해 “악이란 것은 진정한 자유를 자유롭게 부정하는 데서 비롯하는 그런 부자유이기 때문이다.” “악을 악으로서 알고 있으면서도 악을 원하는 데에 본질이 있는 부자유의 의지”라고 언급한다. 자유를 자유롭게 부정하는 것, 악을 악으 로 알고 있으면서도 악을 원하는 것이 부자유이다. ÄH, p.48.

14) “추는 ‘자연의 필연성’과 ‘정신의 자유’를 수단으로 스스로를 생산해낼 수 있다.”ÄH, p.53.

15) 로젠크란츠는 ‘미 이념’, ‘미 개념’, ‘코믹 개념’ 등으로 분리하기도 하지만 이들의 공통된 특성을 말할 때 구분 없이 ‘미’라고 말 하기도 한다. 로젠크란츠가 구분 없이 ‘미’라고 언급하는 것은 맥락에 따라 구분되어야 한다. 필자는 통일성과 구분과 관련된 미 를 미 이념으로 파악한다.

(7)

구분하여 실재화 한다. 구분된 실재화는 다시 통일되어야 하는데, 실제의 경험적 진행과정에서 항상 통일성까지 다다르지 못할 수도 있다.

로젠크란츠는 미 이념에 관한 이런 서술을 통해서 미와 미의 부정으로서의 추, 그리고 그것을 다시 통일하는 코믹을 동시에 설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제1장 형태 없음에서 미 이념의 구분이 현상한 것을 통일하는 계기로 첫째, 통일성(ÄH, 88), 둘째, 규칙성(대칭)(ÄH, 100~101), 셋째, 조화(조화로운 통일성)로 규정하면서 미 이념의 현상을 통일성의 측면에서 규정한다. 그러나 통일성은 스스로를 이분화하는 통일성으로서

이분화는 통일성 같은 요소를 나누어야만 할뿐만 아니라 통일성 자신과의 부정적 관계도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오직 이런 조건하에서 통일성의 재건이 가능하기 때문 이다. 따라서 부정적인 것 자체에 의한 이분화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이분화에서 내적으로 작용하고 전체를 묶어주며 구원해주고 새롭게 해줌으로써 자신의 힘을 입 증하는 통일성에 의한 이분화가 아름다운 것이다(ÄH, 123).

스스로를 구분하는 통일성으로서 미 이념은 자신과의 투쟁 상태인 이분화 상태에 있다. 미 이념은 추상적 통일성으로부터 자신을 구분하여 유한성의 세계에 현상한다. 그러나 로젠크란 츠가 구분이라는 말로 의미하는 것은 ‘구분하여 현상’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자신과의 ‘부정적 관계’도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통일성의 재건이 가능한 조건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미는 “전체 를 묶어주며 구원해주고 새롭게 해줌으로써 자신의 힘을 입증하는 통일성”인 것이다.

미는 통일성 재건을 위해서 항상 자신과 부정적 관계에 있는 것을 현상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부정적인 것은 통일성 재건을 위한 조건이 된다. 예컨대 우리가 하나의 꽃에 주목할 때, 최초에 이념적 ‘통일성’은 자신을 ‘구분’하여 하나의 꽃으로 현상한다. 꽃은 자신과 외부를 ‘구분’하고 자신 안에서 내적 구분을 갖는다. 자기준거적 하나의 전체를 보여주는 꽃은 통일되어 아름답 다. 그런 꽃이 여러 송이로 ‘구분’되어 현상하고, 동일한 것의 반복은 ‘규칙성’으로 ‘통일’되어 아름답다. 규칙성은 전 계기에 비해서 아름답지만, 스스로를 구분하는 통일성인 미 이념은 단조로운 반복으로서 자신의 통일성을 다시 구분한다. 어떤 꽃은 곧고, 또 다른 꽃은 휘어 있으며, 활짝 핀 꽃, 덜 핀 꽃, 시들어 가는 꽃이 공존한다. 그런 상이성은 다시 ‘조화’로 통일된 다.16) 모든 통일과 모든 구분이 운동하는데 통일에 대해서 구분은 부정적 관계이다. 로젠크란 츠에게 구분은 선행하는 통일의 관점에서 추이고 후행하는 통일의 관점에서 통일성 재건의 조건이다. 예컨대, 동일한 꽃의 나열은 단일한 통일성의 관점에서 추이지만, 대칭의 관점에서 미이고, 이질적인 것의 조화 관점에서는 지루한 추이다. 이러한 로젠크란츠의 생각은 아래의 인용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규칙성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러나 이것이 추상적 오성의 욕구를 먼저 만족시키고 이런 이유로 미적인 조형이 오직 규칙성으로 제한되고 그 외에 이념을 표현하는 그 어떤 것도 제공하지 못하는 한, 그것은 추해진다. … 우리는 그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자유를 희구하게 된다. 극단적 경우에서는 혼돈의 자유가 될지라도 말이다(ÄH, 100-102)17).

요약하면 통일성의 두 번째 계기인 규칙성은 추상적 오성 규칙을 만족시키기 때문에 아름답다.

그러나 이념을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추하다는 것이다. 모든 통일성들은 통일성에 머물러 있을 때 추해진다. 추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통일성을 버리고 구분의 추, 즉 다른 통일성을 위한 조건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예술이 추를 형상화하는 이유는 이념의 본질에 놓여 있는 것이다.

16) 이런 설명은 논리적일 뿐 경험적 사례에서 중첩되고, 순차적이지도 않으며 무한히 다양하다.

17) 로젠크란츠는 부조화를 설명하는 p.119과 부정확성을 설명하는 p.135에서, 또 그 밖에 많은 부분에서 이와 같은 설명을 반복한다.

(8)

추가 이처럼 미의 현상 전반에서 중요한 계기이지만 로젠크란츠는 긍정적 전제조건인 미가 존재하는 한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부차적 존재성만 갖는다고 말한다(ÄH, 23). 18) 통일성에 해당하는 순수한 이상은 우리에게 미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즉 긍정적 순간을 제공한다.(ÄH, 56) 추는 그런 미의 필연성을 이루는 규정들이 정반대의 것으로 뒤집어지는 경우에 의해서 현상하지, 자체로 규정을 생산하거나 존재할 수 없다(ÄH, 23).

이러한 설명 방식은 헤겔로부터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헤겔은 합규칙성, 합법칙성, 유기체 성, 영혼성으로 이행하는 미의 현상들을 서술한다.19) 헤겔에 따르면 전자에서 후자로 갈수록 고차의 아름다움이다. 헤겔은 수정(광물), 식물, 동물, 인간영혼의 예를 드는데,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통일성이 유기체적인 통일성을 거쳐 영혼의 통일성으로 나아가는 현상을 서술한다.

헤겔에 따르면 전자는 외적이고 기계적인 통일성이고, 후자는 내적이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비가시적으로 통일된 모습이다. 직선, 사각형, 삼각형, 원 등 규칙성이 높은 선들은 타원, 포물 선, 난형선으로 나아가고 유기체의 파상선은 규칙성과 법칙성은 아니지만 생명의 영혼이 통일 한 선을 보여준다.20)

로젠크란츠가 논하는 미 이념 안에서 통일성과 구분의 운동은 미와 추, 즉 긍정과 부정의 왕복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분을 추라고만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이미 통일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21) 구분은 논리적으로 선행하는 통일에 대해서 ‘추’이지만 후행하는 통일에 대해 ‘구분’이다.

코믹은 그런 추의 현상, 즉 구분을 통일하는 예시이다. 로젠크란츠에게 코믹은 미와 대립적으 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추를 유쾌하게 만들어 미 이념으로 통일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코믹은 미가 될 수 있다. 단순하고 긍정적인 미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심미적인 조화, 모순에서 통일성으로 귀환한다는 의미에서 이다.”(ÄH, 73) 로젠크란츠는 형태를 과장하는 캐리커처의 형태들이 또 다른 의미에서 심미적으로 조화할 수 있으며, 그것은 미 이념의 운동에서 구분이 통일성으로 귀환하는 것에 상응한다고 주장한다.

3. 부정적 형상의 비교요구

로젠크란츠는 캐리커처가 천박함과 역겨움이라는 극단적인 것을 강화하여 숭고함과 유쾌함을 동시에 통찰하도록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천박함과 역겨움을 강화하는 것이 숭고함과 유쾌함 을 동시에 통찰하도록 할 수 있을까? 로젠크란츠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개체화가 개체적인 것을 과장하면 보편적인 것은 사라져버린다. 상술하자면 개체적 인 것이 종(種)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로 대립하는 과도한 개체화와 필연적 보편성의 기준을 비교하라는 요구가 생겨나며, 캐리커처의 본질은 바로 이런 성찰에 놓여 있다(ÄH, 185).

로젠크란츠는 개체적인 것의 과장, 즉 극단적인 것의 강화는 필연적 보편성의 기준을 비교하라 는 요구가 생겨나게 한다고 한다. 그러나 꼭 과도한 개체화가 아니더라도 개체화는 늘 보편성 과 비교된다. 한 쪽 눈이 작아 비대칭인 얼굴은 대칭인 얼굴과 비교 속에서 추하고, 찌그러진

18) “그러나 이 결론(미 이념으로부터 추가 현상하고, 그런 미 이념의 총체성을 표현하려는 예술이 추의 형상화를 피해갈 수 없다는 결론, 필자)으로부터 추가 미와 심미적으로 동등한 단계에 있다는 내용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도 추의 부차적 탄생이 차별성을 만들어준다. 이를테면 미는 자신 내에서 머물기 때문에 다른 것과 완전히 아무 연관 없이, 그리고 다른 모든 배경 없이 도 예술에 의해서 생산될 수 있는 반면, 추는 심미적으로 그와 똑같은 자율성을 가질 수 없다. 경험적으로 보면 추 역시 홀로 나 타날 수 있다는 점은 물론 자명하다. 반면에 추를 추상적으로(홀로) 확고하게 만드는 것은 심미적으로 허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추는 항상 자신이 존재하기 위한 전제조건인 미에 자신을 비추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ÄH, p.57.

19) G. W. F. 헤겔, 󰡔헤겔 예술철학󰡕, pp.144-155.

20) G. W. F. 헤겔, 󰡔헤겔 예술철학󰡕, pp.150-151. 헤겔은 유기체 파상선의 예시로 팔을 드는데, 팔은 양 측면이 동일하지 않고 불 균등한 원주 이지만 기계적 통일성보다 아름답다.

21) 헤겔과 로젠크란츠에게서 유사하게 등장하는 추의 세 가지 의미, 즉 ① 통일에 다다르지 못함, ② 다음 통일의 조건이 됨, ③통일 성 속에만 머무름은 우리의 이해를 어렵게 한다. 우리의 일상경험에서 삼자는 중첩되니 예시를 통해서도 이해가 쉽지 않다. 이러 한 서술은 경험적 서술이기 보다 논리적 서술로 이해해야 한다.

(9)

우산은 꼭지점을 중심으로 대칭인 우산과 비교 속에서 추하다. 캐리커처가 또는 코믹이 단순한 추가 아니라 추의 과도화 혹은 이상화라면, 보편성의 기준을 비교하라는 요구는 단순한 추에서 의 비교와 다른 의미에서 비교일 것이다.

이후 로젠크란츠는 구체적인 예들을 제시하는데, 대칭에 대해 “단순한 부정”과 “과장, 비틀기”

를 비교하면서 비대칭적인 것과 개념에 따라 요구되는 대칭의 기준을 넘어서는 것을 대비한다.

(ÄH, 185) 그에게 비대칭적인 것은 캐리커처가 아니고 개념에 따라 요구되는 대칭의 기준을 넘어서는 것은 캐리커처이다. 이어서 부정확성에 대해서는 전자는 속담의 함축적인 힘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고 후자는 속담으로만 모든 말을 하는 것으로 예시한다. 천박함에 대해서 전자는 천박한 용모이고 후자는 한 부분이 완전히 커져서 얼굴 전체가 되어버린 것을 예로 든다.

이들은 모두 형태의 극단적인 개체화를 강화함으로써 기준이 되는 개념을 비틀고 넘어선다.

단순한 부정이 개념의 기준에서 ‘틀린 것’이라면 과장과 비틀기는 개념을 비틀고 넘어서서 희 화화시켜 ‘다른 것’이 된다. 살대에서 천이 떨어진 우산은 우산 개념의 기준에서 틀린 것이지 만, 비오는 날 앙상한 살대만 남은 우산을 쓰고 다니는 것은 과장과 비틀기이다. 보행 시 비를 막아주는 도구라는 우산 개념을 비틀어 그 기준을 넘어선 다른 것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과장 과 비틀기는 필연적 보편성의 기준을 비교하라는 요구이지만 단순한 부정과 같은 의미에서 기준이 되는 개념이 아니라 기준을 무력화시키는 넘어서기이다. 단순한 부정의 추는 과장과 비틀기로 예술적 가치를 갖는다.(ÄH, 185) “캐리커처는 자신의 척도를 더 이상 보편적 개념에 만 두지 않는다. 그것은 … 단순한 개념성의 영역을 벗어나야 하는, 이미 개체화된 개념과 특정 한 관계를 요구한다.”(ÄH, 403)

그러므로 로젠크란츠가 추의 이상화, 심미적 조화라는 말로 의미하는 것은 형태의 측면에서 개체적인 것을 강화하여 극단적인 것으로 만들고, 그로 하여금 표현된 대상의 개념 규정, 혹은 그 기준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런 기준 넘어서기는 필연적 보편성, 즉 개념과 특정한 관계를 맺는다.

로젠크란츠가 추의 이상화, 심미적 조화라는 말로 의미하는 바는 추를 형식적으로 아름답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화하여 대상의 개념 기준을 비틀고 넘어선다. 그에게 추를 표현하는 예술은 미를 표현하는 예술과 같이 형태를 이상화해야하는 것이지만 미에서와 같이 보편성으 로 이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과장된 개체화가 이상화이다.22) 그러므로 추의 이상화, 즉 캐리커 처는 “무규정적인 것들과 우연적인 것, 특성 없는 것들을 정화하여” “추를 미와 정반대되는 것으로 낙인”찍는다. 그렇다고 과장된 개체화인 캐리커처가 바로 코믹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로젠크란츠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 때문이다.

캐리커처는 특별한 것을 과도하게 몰아가며 이로써 잘못된 관계를 만들어내고 이것 에 이상적으로 반대되는 것을 기억시킴으로써 코믹해진다. 이로써 캐리커처는 코믹 하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캐리커처 자체가 필연적으로 코믹하게 작용하지 않고, 그 저 추하거나 무시무시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ÄH, 187).

위의 언급에서 캐리커처는 조형적인 측면에서 추를 ‘과도하게 몰아기기’와 ‘잘못된 관계로 만 들기’를, 그 논리적 결과로서 코믹은 ‘이상적으로 반대되는 것을 기억시킴’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23) 코믹은 캐리커처의 결과이지만, 모든 캐리커처가 꼭 코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캐리 커처는 그저 추하거나 무시무시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추의 이상화, 즉 캐리커처가 코믹 이 되기 위해서는 “이상적으로 반대되는 것을 기억시킴” 즉 표현된 대상의 개념을 비틀고 넘어 설 때 코믹해진다.

로젠크란츠가 제시하는 다양한 추의 범주들 중 코믹으로 통일되기 어려운 것, 예컨대 악의

22)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과장된 개체화, 즉 추의 이상화가 심미적으로 조화를 이루는데 그 이유는 이어지는 장에서 해명이 필요하다.

23) 필자는 ‘이상적으로 반대되는 것을 기억시킴’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① 개념이 잘못 현상한 추가 자신의 추 함을 아는 상태의 기억, ② 개념의 바른 현상으로서 미의 기억. ②만을 의미한다면 추와 그것의 이상화인 캐리커처는 다를 것이 없다. ①, ②를 동시에 의미할 때만 캐리커처는 그것과의 비교 속에서 추와 구별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10)

하위 범주로서 범죄적인 것, 유령적인 것, 악마적인 것 등은 어떻게 통일되어 예술적 가치를 갖는 것일까? 로젠크란츠는 개념을 비틀고 넘어설 때 캐리커처가 코믹이 된다고도 말하지만,

“자유가 캐리커처를 코믹하게 만든다.”(ÄH, 189) 고 말하기도 한다. 캐리커처와 코믹의 관계, 나아가 추한 예술의 가능성은 ‘자유’라는 새로운 개념의 해명을 요구한다.

4. 형식적 주관성의 자유

로젠크란츠는 추가 ‘자연의 필연성과 정신의 자유’를 수단으로 스스로를 생산해낼 수 있다 (ÄH, 53)고 말한다. 자연의 필연적 규정에 의한 성장은 자체로 미 이지만 서로 간섭하여 추를 생산할 수 있고, 정신은 악을 악으로 알고 그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이지만, 동시에 그 자유를 자유롭게 부정하는 부자유의 상태에서 추를 생산한다.24) 그것은 자유가 자유롭게 부자유한 상태를 원함으로써 이념에 대해 갖는 가장 깊은 모순이다. 그러나 로젠크란츠는 이율 배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이율배반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경우에 악이 체계적 총체성으로 고 착됨으로써 다시금 의지와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고, 이로써 현상도 어느 정도 조화 를 이룸으로써 형태들은 미적으로 완화된다. 개별적인 악의 혼란스러움은 종종 그 부정성에 있어서 전체인 절대악보다 훨씬 더 불쾌하고 눈을 자극하는 표현 형태를 드러낸다(ÄH, 48).

로젠크란츠는 개별적인 악의 혼란스러움과 전체인 절대악의 체계적 총체성을 대비하면서 개 별적인 악이 훨씬 더 불쾌하고 눈을 자극하는 표현 형태를 드러내고 절대악이 조화를 이루어 미적으로 완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언급에 비추어보면 그가 추의 이상화, 또는 심미적 조화라고 말한 것은 미의 현상의 규정이 부분적으로 부정되어 섞이는 것보다 완전히 부정되어 그 부정성 속에서 체계적인 총체성, 즉 전체를 이루었을 때 추가 예술적 가치를 갖는다는 의미 로 보인다. 또 미의 규정이 완전히 뒤집어진 추의 규정들에서 어긋나는 것을 없애고, 추의 규정에 부합하는 형태들만으로 표현하는 것을 이상화라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ÄH, 61) 로젠 크란츠는 예술에서 추를 이상화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예술은 현상에서 중요한 것을 강조하며 중요한 것에서 비본질적인 요소들을 지워버 린다. 예술은 추에서도 똑같이 해야 한다. 예술은 추에게서 추를 추로 만들어 주는 그런 규정과 형태들을 추출해내야 한다. … 이것은 추에 이질적인 미를 보태주는 것 이 아니라 추를 미와 정반대되는 것으로 낙인찍고, 이른바 미적 모순의 근원으로서 추의 근원이 되는 그런 요소들을 명확하게 드러내준다(ÄH, 63).

예술은 미를 표현할 때 미 규정에 비추어 비본질적인 요소를 지운다. 예술은 추를 이상화할 때도 같을 것을 행한다. 다만 추를 이상화하여 표현할 때 규정이 되는 것은 미 현상의 규정이 뒤집어진 부정성이다. 그런 부정적 규정에 비추어 비본질적인 요소를 지운다. 캐리커처와 코믹 그리고 자유의 관계에 관한 로젠크란츠의 언급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천박함, 역겨움, 비어 있음은 그 상태에서 자기 자신을 부자유로 생산해내는 자유의 소산물이다. 그러나 이런 부자유가 진실한 자유와 자신과의 모순을 망각하면, 그래서 그것이 자족적 안온함에서 탐닉하고 있다면, 그것이 천박함과 역겨움과 비어 있음에 만족하며 그 속에서 이상의 현존을 무시하면, 그로 인해서 그런 현상은 단지 형식적 자유로만 채워지고 이 자유가 캐리커처를 코믹하게 만든다(ÄH, 189).

24) 정신의 추인 악이 습관적인 것이 될 때 인간의 외형을 추하게 만드는데, “질투, 증오, 속임수, 인색함, 욕망은 바깥으로 자신을 드 러나는 것이 추이다.” ÄH, p.48.

(11)

그의 언급에 따르면 추는 자유가 자유롭게 부자유를 선택할 때 현상하는 것이다. 추는 자유의 잘못된 소산물이다. 그러나 추가 스스로를 자유의 잘못된 소산물로 여기지 않고, 자유로운양 행세하면, 다시 말하면 추가 자신의 개체성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이는 형식적(가상적)으로 나마 자유롭게 보이고, 그런 형식적 자유가 캐리커처를 코믹하게 만든다. “겉으로 보기에 부자 유는 지양된다.”(ÄH, 189) 현실적 부자유는 형식적 자유로 전이에 의해 지양되어 아름답게 될 수 있다. 그런 자유가 캐리커처를 코믹하게 만든다. 극단화된 추마저 아름답게 만드는 자유 란 무엇일까?

로젠크란츠가 󰡔추의 미학󰡕에서 언급하는 자유는 미 이념의 최후 근거로서 윤리적 의미에서 자기 결정뿐만 아니라 보편적 의미에서 자발성 즉, 역동적이고 유기적인 진행과정으로서 삶의 유희를 의미한다. 미 이념의 최후 근거로서 자유는 통일성, 규칙성, 대칭, 질서, 자연의 진실성, 심리적이고 역사적인 올바름 등과 함께 형식적 자유(자발성, Spontaneität25)) 즉, 추가 자신 의 부자유를 망각하고 그 속에서 자유로운 양 행세하며 유희하는 자유를 포괄한다. 그런 가상 을 입는 것만으로 추의 극단화인 캐리커처는 예술적 가치를 갖는다.

이 장에서 우리의 관심은 코믹한 캐리커처와 대비되는 코믹하지 않은 캐리커처, 더불어 범죄적 인 것, 유령적인 것, 악마적인 것이다. 로젠크란츠에 따르면 범죄적인 것, 유령적인 것, 악마적 인 것은 과장을 통해서 캐리커처가 될 수 있지만 코믹은 아니다. 자유가 미 이념의 최후 근거이 고 추가 자유의 가상을 띨 때 예술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면 코믹하지 않은 캐리커처, 더불어 범죄적인 것, 유령적인 것, 악마적인 것도 자유와 관계 속에 예술적 가치에서 열린 가능성을 갖는다. 일례로 로젠크란츠는 범죄적인 것이 미적 대상이 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범죄와 자유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범죄는 정반대의 것에 의해서, 상술하자면 가장 완벽하게 의식된 자유에 의해서 미적 으로 가능해진다. 그 악한은 자연스럽게 자기 행위의 내용을 통해서 우리에게 혐오감 을 일깨울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행동의 형태를 통해 형식적 면에서, 상술하자면 자기결정이라는 면에서 완벽성의 정상에 있는 자유를 보게 된다(ÄH, 344).

그의 설명에 따르면 범죄는 가장 완벽하게 의식된 자유에 의해 예술적 가치를 갖는다. 왜냐하 면 범죄는 미 이념의 최후 근거인 자유(자기결정)을 형식적으로나마 완벽하게 보여주기 때문 이다. 물론 비범한 지성과 강한 의지로 범죄를 저지르는 악한의 행위는 내용적으로 우리에게 혐오감을 일깨울 뿐이다. 그러나 동시에 자기결정에 따라 행동하는 자유를 보여준다. 마치 코믹에서 형식적 자유를 입은 추가 코믹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로젠크란츠는 이런 언급을 통해서 두 가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용적으로 범죄는 자유 가 없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예술은 범죄를 표현함으로서 “그 관계의 비어 있음과 거짓”됨 을 알린다.(ÄH, 399) 반면 형식적으로 범죄는 가장 완벽한 자유를 보여줌으로 내용의 부적절 함에도 심각한 범죄일수록 미적 가치를 갖는다.(ÄH, 344) 범죄는 내용적으로 선과 대립하기 때문에 자유의 부정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추(범죄)는 부차적인 것이다. 그러나 형식적 의미 에서 범죄는 형식적 자유를 보여준다는 점, 자유의 부정이 자유의 가상을 입는다는 점에서 예술적 가치를 갖는다.

로젠크란츠는 코믹하지 않은 캐리커처나 범죄적인 것, 유령적인 것, 악마적인 것을 자유의 가상을 입는다는 의미에서 예술적 가치를 가진 것으로 설정한다. 그러나 그는 이런 것을 코믹 에서와 같이 개념화하지 않는다. 범죄적인 것, 유령적인 것, 악마적인 것은 코믹과 다른 방식으 로 자유의 가상을 입고 예술적 가치를 갖는다. 코믹을 미의 통일성과 구분 운동의 종착점으로 설정하면 범죄적인 것, 유령적인 것, 악마적인 것의 예술적 가치도 강조하는 로젠크란츠는 사라진다.

25) 부자유의 자발성 개념에 대해 임명규, 「로젠크란츠와 보들레르의 ‘추의 미’와 캐리커처」, 󰡔인문학연구󰡕, 54집, 2017, pp.

392-395 참조.

(12)

로젠크란츠는 코믹하지 않은 캐리커처가 경험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점과 범죄적인 것, 유령 적인 것, 악마적인 것이 자기결정이라는 자유의 형식적 요건을 완벽하게 충족하면서 어두움의 매력이 있는 예술적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서술한다. 그가 추를 추하게 표현하는 예술을 정당화 하는 방식은 형식적 자유, 주관적 자유이다.

5. 나가기

본 논문은 로젠크란츠의 󰡔추의 미학󰡕을 미 이념의 통일성, 부정적 형상의 비교요구 그리고 형식적 주관성의 자유를 통해 재구성을 시도했다. 첫째, 미 이념의 통일성 측면에서 로젠크란 츠의 미 이념 개념은 미 이념을 개념과 실재성의 통일로 정립한 헤겔의 예술철학과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헤겔의 미 이념 이론을 상기하며 로젠크란츠의 이론을 검토한 결과 로젠크 란츠의 미로 복귀한 추에서 미는 미 현상이 아니라 미 이념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로젠크란츠 가 추 현상을 미 현상의 부정 또는 부차적 개념으로 상정한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코믹에서 추 현상이 미로 복귀했다는 말은 추를 미로 완화했다는 말이나 미를 돋보기에 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추를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미로 복귀한 추를 코믹으로 상정하는 로젠크란츠의 구상에서 코믹은 추의 종착역이 아니 라 미 현상과 추 현상의 이념적 통일이라는 역동성 속에서 한 계기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로젠크란츠가 󰡔추의 미학󰡕에서 미로 복귀한 추로서 코믹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추의 극단인 캐리커처가 모두 코믹인 것은 아니고 추의 극단화인 예술현상들이 코믹과 다른 의미에서 예술적 가치를 갖는다는 언급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로젠크란츠의 체계 내에서 코믹이 아닌 캐리커처, 범죄적인 것, 유령적인 것, 악마적인 것인 것은 코믹이 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예술적 가치를 갖는다. 이들이 예술적 가치를 가질 때 주요한 개념은 자유인데, 내용적 자유가 아닌 형식적 자유 즉, 완벽한 자기결정의 자유의 가상을 띨 경우 과장된 형상, 비윤리적인 형상, 소름끼치는 형상도 예술적 가치를 갖는다. 형식 적 자유에 가치를 부여하는 로젠크란츠는 헤겔의 형식적 주관성(formelle Subjektivität)을 상기하게 한다. 헤겔은 낭만적 예술형식의 세 번째 영역인 형식적 주관성에서 외적 현실과 무관한 형식적 주관성의 자유를 표현한 예술에 가치를 부여한다. 헤겔이 대표적 예시로 드는 것이 돈키호테인데, 돈키호테는 외면적 현실에 대한 주관적 해석에 경도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망상에 사로잡혀 풍차를 향해 돌진한다. 헤겔에게 그것은 절대적 주관성이 형식적 주관 성으로 나타난 예시이다.

넷째, 코믹의 경우 부정적 형상의 극단인 캐리커처가 긍정적 형상의 비교를 상기하게 할 경우 희화화라는 예술적 가치를 갖는다. 로젠크란츠의 추의 미학은 미와 추의 현상을 미 이념의 대립하는 두 계기로 상정한다는 점과 미 이념의 근거를 자유에 두었다는 점에서 헤겔의 유산을 상속한다. 그러나 부정적 형상인 추가 긍정적 형상이나 개념에 부합하는 형상을 비교요구 한다 는 점은 그의 독자적인 점으로 보인다. 배제되고 감금된 형상인 추가 부정적 현실을 심문하기 때문에 추에 독자적 가치를 부여한 아도르노의 이론을 상기할 때 추에 관한 이론에서 로젠크란 츠의 새로운 공헌이 드러난다.

로젠크란츠에게 추는 미 이념의 통일성과 구분의 과정에서 새로운 통일에 관한 요청이다. 그렇 기 때문에 추가 요구하는 비교는 선행하는 통일의 미와의 비교가 아니라 후행하는 통일의 미와 의 비교 요구일 가능성이 크다. 아도르노의 추와 로젠크란츠의 추의 비교를 과제로 남기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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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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