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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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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프란스 >

_ <학조( )> 1호 (1926)

심은 종려( )나무 밑에 빗두루 슨 장명등(長明燈),

카페 프란스에 가쟈.

이놈은 루바쉬카

또 한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뻣적 마른 놈이 압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 처럼 가는데 페이브먼트에 흐늙이는 불빛 카페 프란스에 가쟈.

이 놈의 머리는 빗두른 능금

또 한놈의 심장(心臟)은 벌레먹은 장미(薔薇) 제비처럼 젖은 놈이 뛰여 간다.

오오 패롵(鸚鵡) 서방! 꾿 이브닝!

 이브닝! (이 친구 어떠하시오?)

울금향(鬱金香) 아가씨는 이밤에도

경사(更紗) 커―틴 밑에서 조시는구료!

나는 자작(子爵)의 아들도 아모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히여서 슬프구나 !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 테이블에 닷는 내뺌이 슬프구나 !

오오, 이국종(異國種) 강아지야 내발을 빨아다오.

내발을 빨아다오.

(2)

< ( ) >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3)

2011년 8월 29일 <교수, 학창시절, 그리고 책> ① <정지용 전집> 1권 : 시 (Link)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명성이 자자하고 국어 교과서에도 올라 있지만, 내가 대학에 입학해 2학년이 될 무렵까지는 사정이 많이 달랐다. 문학사 수업 중에 중요한 시인이라고 배우기는 했지만 시집으로 볼 수는 없었다. 납북 시인 정지용의 작품이 해금된 것은 1988년 1월 18일이었다.

해방 후 북으로 넘어간 시인이라 해서 당시까지 그의 시를 책으로 펴내는 것은 불법이었다. 일반 독자가 읽는 것은 어땠을까? 모르겠다. 하지 만 사법적 처벌 여부와는 별개로 대학생이 1935년이나 1941년 또는 1946년에 나온 시집을 구해 읽어야 할 이유는 별로 없었다.

지금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법적 금지가 풀리고 나서 시와 산문을 모은 두 권짜리 전집이 나왔다. 내가 책을 산 것은 그 이듬해였다. 시집이야 소설과는 달라 처음부터 차례로 읽어나갈 필요가 없다고 여겼기에 우선 이름난 작품만 골라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이상했다. 수업시간에 또 언론 매체를 통해 듣기로는 최고의 시인이라는데, 도통 실감이 나질 않는 것이었다.

(4)

작품치고 좋다는 느낌을 주는 시가 별로 없었다. “검정 콩 푸렁 콩을 주마”라는 구절이 인상 깊다는 <말>은 말도 그렇고 뜻도 그 렇고 좀 유치해 보였고, ‘바다는 푸른 도마뱀 떼 같이 재재발렀다’는 비유가 일품이라는 <바다>는 너무 작위적인 듯싶었다. 산수시를 대표한 다는 <구성동>이나 <비> 같은 시는 사람이 나오지 않아 그저 텅 비어 있는 느낌만 주었고, 동양정신의 심오한 경지를 보여준다는 <백록담>이나

<장수산>은 시가 아니라 수필 같았다.

심지어 <향수>도 그랬는데, 솔직히 말하건대 노래는 괜찮았지만 시에서는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인이야 “그곳이 차 마 꿈엔들 잊힐리야”라고 다섯 번이나 되뇌지만, 지방도시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게는 그에 공감할 만한 체험이 없었다. 내 고향 동네에 는 들판도 개천도 없었고, 젖소도 황소도 없었다. 나는 흙에서 자라지 않았고, 식구 중 누구도 농사를 짓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천장은 있었지만 지붕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시집을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랬어야 했다. 유명한 시만 골라 읽을 일이 아니었다. 책을 덮고 나자 세 편의 시가 기억에 남았다. 어쩌면 이들은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로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수도 있을 작품이었다. 그로부터 이십 년도 더 지난 지금도 나는 그 셋을 정지용 시 중에서 제일 좋아한다.

먼저 맨 앞에 놓인 <카페 프란스>. 일본에 유학 간 한 청년이 친구들과 어울려 카페에 가 술을 마시고 취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운다. 아 버지가 귀족이 아니라고, 자기가 백수라고, 나라를 잃었다고. 그리고는 남의 나라 강아지한테 제 발을 빨아달라고 한다. 읽고 나면 아주 묘한 기 분이 드는 시다.

다음으로 <오월소식>. 일본 교토에 있는 시인이 바다 건너 우리나라로 일본말과 아라비아 숫자를 가르치러 간 애인을 애타게 그리며 시를 적는 다. 그런데 애인의 닉네임이 ‘페스탈로치’다. 정지용은 이미 결혼한 ‘조선인’인데, 어찌된 노릇인지 무척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끝으로 <저녁 햇살>. 셋 가운데서도 가장 좋아하는 시다. 내가 아는 시 중에 이만큼 야한 시는 없다. 사극의 원작자로 유명한 박종화는 정지용 의 시를 가리켜 ‘감각의 연주(聯珠)’라 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구슬을 꿰놓은 것 같다는 말인데, 이 시를 보면 정말로 그렇다는 게 느껴 진다. 그리고 감각의 기능과 작용을 왜 관능이라 하는지 그 까닭을 확실하게 알게 된다.

(5)

< > _ 2002년 가을호 이창민(문학평론가)

일단 — 정지용 <저녁 햇살>

불 피여오르듯하는 술

한숨에 키여도 아아 배곺아라.

수줍은 듯 놓인 유리컵

바쟉 바쟉 씹는대도 배곺으리.

네 눈은 고만( )스런 흑(黑)단초.

네 입술은 서운한 가을철 수박 한점.

빨어도 빨어도 배곺으리.

술집 창문에 붉은 저녁 햇살 연연하게 탄다, 아아 배곺아라.

(6)

누구의 시인가? 정지용의 시가 맞다. 월탄 박종화는 정지용 시를 두고 ‘감각의 연주( 珠)’라 했는데, 거기에는 관능도 달려 있다. 관능 또한 감각의 일단인 것이다. 연보에 따르면 이 시는 「카페ㆍ프란스」가 지상에 발표된 것과 같은 해 에 씌어졌다. 「카페ㆍ프란스」는 1926년 정지용 시로는 처음으로 지상에 발표됐다. 이로써 이 시가 시작 초기의 감수성을 드러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향수」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술집 안에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있다. 화자와 애인이 서로 눈을 맞춘다. 그의 눈에는 여인의 눈과 입술만이 보인다.

그녀의 검고 동그란 눈은 도도하고 거만하고, 붉은 입술은 차가운 듯 달콤하다. 마음속엔 정염이 타오르고, 급하게 마시는 술이 이를 더욱 북돋운다. 그렇잖아도 뜨거운 정염에 불을 지피니 술이 곧 불이고, 정염이 곧 정화(情火)다. 불같이 타오르 는 욕정은 극에 달해 파괴의 충동으로 이어진다. 부끄러운 듯 앉아 있는 여인의 모습이 오히려 욕망의 불꽃을 부채질한다.

한껏 달아오른 화자의 시선은 탁자 위 술잔과 여인의 몸매를 거쳐 까만 눈과 빨간 입술에 집중된다. 이제 술과 잔으로의 환유도, 단추와 수박으로의 은유도 작동하지 않는다. 오로지 직설만이 화자의 충동을 드러낼 수 있다. 이제 그는 비유를 쓸 여유조차 없다. 행동이 아니고서는 이 강렬한 욕구를 어찌할 도리가 없다. 다른 연은 모두 두 줄인데 네 번째 연만은 한 줄 인데, 여기서 정념의 강도는 최고에 이른다.

잠깐 눈을 돌려 창을 바라본다. 해가 진다. 노을이 탄다. 저녁 햇살이 선연한 빛으로 붉게 탄다. 술집 안도 술집 밖도 온 통 애욕을 자극하는 요인들뿐이다. 술이 불타고 노을이 불타고 마음이 불탄다. 무엇으로 이 불을 끌 것인가? 이 시 안에서 충동을 사그라지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탈대로 다 타 재가 되지 않는다면 이 불꽃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여 자의 눈과 입술을 묘사하고 있는 세 번째 연을 제외하고 이 시의 모든 연은 배가 고프다는 탄식으로 끝난다. ‘배곺아라’

와 ‘배곺으리’는 자탄이기도 하고 호소이기도 하다. 식욕과 색욕은 몸 가진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욕구다. 영원한 만족을 알지 못해 일시적 충족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식색은 사람이 동물임을 알려주는 표지다. 먹고 또 먹어야 하는 식욕을 무 슨 수로 억누를 수 있겠는가? 먹지 않는다면 배고픔은 달래 지지 않는다. 색욕도 그런 것일까? 정염을 허기로 치환함으로 써 정지용은 그렇다고 대답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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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좋은 시일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여기서 정지용은 복잡한 시대 상황이나 성가신 연애 감정의 매개를 전혀 거 치지 않고 애욕의 충동을 직접 표백했다. 이 시에는 아무런 사유의 계기가 없고, 오직 신체가 발산하는 욕구만이 만연하다.

욕정의 표출은 강렬하고도 과격해 그 파장은 대기처럼 사람과 사물을 감싼다. 이런 이유로 정지용을 다룬 어떤 평자도 이 시에 주목하지 않는다. 정지용은 평생 동안 대략 세 유형의 시를 썼다. 이들은 각각 감각적 묘사에 근거를 둔 이미지즘, 신 성의 표출에 치중한 카톨리시즘, 정관적 표상을 토대로 삼은 고전주의로 규정된다. 이 중 두 번째를 제외한 양상은 한국현 대시사의 획기적 계기를 이루는 까닭에 문단에서건 학계에서건 모더니즘과 동양 정신에 대한 주목이 요청될 때마다 관심의 초점이 된다. 정지용 시의 정수가 향수」와 「바다」와 「유리창」, 「인동차」와 「장수산」과 「백록담」 같은 작품에 집약돼 있음 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에 비춰 본다면 일체의 사유의 계기가 없는 관능적 감각이란 하찮을 수밖에 없다.

정지용의 데뷔작은 「카페 프란스」이거니와 거기에도 애욕의 표현은 존재한다. 실제로 색정적인 화제는 없지만 이 시의 분 위기는 관능적이다. 처음부터 이어지는 색감의 양상부터가 그러하다. 종려나무 꽃의 엷은 노랑색, 카페의 걸린 장명등의 붉 은 빛, 능금의 황홍색, 장미의 붉은빛과 튤립의 주황빛이 어울려 자극적 정감을 조성한다. 이에 더해 애욕의 상징인 뱀눈처 럼 내리는 비에 젖은 포도(鋪道)의 습기와 매끄럽고 가늘고 흐릿한 경사 비단 커튼이 감각적 분위기를 강화한다. 이어서 격 한 울음이 터져 나오는데, 의미의 진폭과는 별도로 여기에는 퇴폐적 자학의 기운이 배어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정지용 시를 해명하는 데 아주 중요한 단서로 취급된다. 나라도 집도 없어 슬프다는 취언 한 줄이 거기에 섞여 있기 때문이다. 전 체적인 분위기나 감정의 동선과는 별개로, 그야말로 느닷없이 튀어나온 이 한마디가 시를 구했다.

정지용 시의 해석과 평가에서는 순전한 정념의 표백이 사소한 것으로 제외되는 것과 유사하게 전적으로 정치적인 발언도 우연한 일로 배제된다. 해방 이듬해 초 정지용은 조선문학가동맹이 개최한 문학자대회에서 아동문학 분과위원장으로 추대 됐고, 나중에는 전향자 집합 단체로 결성된 ‘국민보도연맹’에 가입됐다. 그 사이 그는 「조선시의 반성」이란 제하의 산문 을 써 “민족문학의 노선과 민족의 정치노선이 서로 이탈될 수 없다는 것이 문학을 정치에 예속시킨다는 중상적 구실이 될 수 없는 것이요”, “현실과 사태에 대응하여 정확한 정치감각과 비판의식이 희박하면 할수록 유리되면 될수록 그의 시적 표현이 봉건적 습기(習氣)외에 벗어날 수 없는 것을 본다”며 시대의 변화를 전신(轉身)의 계기로 인정했다. 전쟁이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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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됐다. 작품의 내적 특성과는 무관하게 정치의 위력은 그를 비켜 가지 않았으니, 그의 시에는 정치적 선도 정치적 악도 내포돼 있지 않지만 역사의 격류는 그를 관통했다.

하지만 삶의 행로를 결정지은 이 사건도 정지용 시의 주조를 구성하는 데에는 애욕의 표현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큰 역할 을 하지 못한다. 정지용이 태어난 지 백 년이 됐고, 그의 시에 대한 공적 금기가 풀리는 데는 한 세대가 넘는 세월이 필요 했다. 1980년대 말 이른바 월북 문인의 작품이 해금된 이후 정지용은 집중적인 비평을 거쳐, 이효석, 이무영, 박태원, 김기 림, 이상 등이 참여한 ‘구인회’의 일원으로서 모더니즘의 선구자, 박용철, 김영랑과 함께 한 ‘시문학’ 동인으로서 서정 시의 기수, 청록파 전원과 박남수, 이한직을 발굴한 ‘문장파’의 거두로서 현대시의 대부로 정립했다. 그의 시를 기리는 문학제가 만들어 졌고, 문학상이 제정됐다. 이로써 1930년대 이래 그에게 쏟아진 휘황한 찬사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이 판명됐다. 언어의 요술을 부리는 시인 중의 시인, 최초이자 최고의 현대시인, 한국현대시의 아버지, 한국어의 시적 발명자, 그리고 세계 문단에 내놓을 수 있는 천재 시인―이런 에피셋epithet이 주어진 시인은 일찍이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인 데, 정염의 발로와 정치적 행동은 이 같은 평가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민음사에서 나온 정지용 전집은 두 권으로 돼 있는데, 시를 모은 1권과 산문을 모은 2권에서 정념의 강도와 발언의 수위 가 가장 높은 것은 저녁 햇살」과 「조선시의 반성」이다. 막연한 추정이기는 하나 평범한 독자가 별다른 선이해 없이 전집 을 통독한 후 인상적인 작품을 꼽는다면 아마도 이 두 편이 빠지지는 않을 것 같다. 삶의 무대는 예나 지금이나 애욕의 밀 실과 거래의 시장과 정치의 광장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것이니, 이들은 바로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삶과 시는 다른 것이라면, 삶의 무대와 시의 영역이 구분되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삶의 표현과 시의 표상을 구별해야 한다면 인상과 가치 또한 마땅히 분별해야 할 것이다. 삶이 시를 포괄하는 순간 삶의 무상함이 시의 영속성을 잠식하기 시작할 것이다. 아 무래도 시는 삶의 소산이 아니라 사유의 결과인 것 같다.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