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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연구론총 21집> 『삼국유사』 <의해편>의 인물층위와 그 입전방법 (신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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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민국학연구원 2018. 6. 30.

󰡔三國遺事󰡕<義解篇>의 人物層位와 그 立傳方法

신태수*30)

<목 차>

Ⅰ. 문제제기

Ⅱ. 高僧傳의 두 유형

Ⅲ. 고승전의 서술기법과 인물층위 1. ‘유쾌한 속임수’의 서술기법 2. 고승의 고정관념과 그 인물층위

Ⅳ. 인물층위를 통해본 일연의 입전방법 1. 세속적 욕망의 불교적 내면화 2. 異人說話의 전승문법 수용

Ⅴ. 결론

<국문초록>

󰡔삼국유사󰡕<의해편>에는 13편의 高僧傳이 실려 있다. 어느 고승전에서나 공통 구조와 개 별 구조가 나타난다. 개별 구조에 의거하면 고승전의 유형은 두 개이다. 주인공이 無缺의 품격을 지녔다고 하는 고승전과 주인공이 欠缺의 품격을 지녔다고 하는 고승전이 그것이 다. 전자나 후자나 간에 ‘生涯史 서술의 유쾌한 속임수’가 나타난다. 이 서술방법은 독창적 이다. 화자가 󰡔殊異傳󰡕과 鄕傳의 내용을 가져옴으로써 ‘생애사 서술의 유쾌한 속임수’를 토 속적 분위기로 전환시켰기 때문이다. 유형 간에 차이점도 있다. 전자에서는 어느 층위에서 나 고승의 고정관념이나 세속적 욕망이 나타나지 않지만, 후자의 경우에서는 서술층위에서 고승의 고정관념이 나타나고 인물층위에서 고승의 세속적 욕망이 나타난다. 일연이 전자를

*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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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하게 생각하므로, 전자의 입전방법이 고승전 전체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후자의 경우와는 달리, 전자의 입전방법은 ‘세속적 욕망의 불교적 내면화’와 ‘異人說話의 전승문법 수용’이다.

<핵심어>

고승전, 개별 구조, 生涯史 서술의 유쾌한 속임수, 서술층위, 인물층위, 고정관념, 세속적 욕망, 전승문법.

Ⅰ. 문제제기

<義解篇>은 󰡔三國遺事󰡕卷5의 편명이다. 항목은 14개이고 분량은 62 면이다. 卷3 <塔像篇>과 견주어보면 그 위상이 드러난다. <탑상편>의 항목은 30개이고 분량은 69면이므로, <탑상편>보다는 항목이 적지만

<탑상편>에 비해 분량은 그다지 적지가 않다.1) 항목은 적게 하고 분량 은 많게 하는 방향으로 비중을 높인 셈이다. 비중의 높낮이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내용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의해편>에는 高僧의 행적뿐 이다. 아주 소략하게 소개한 인도 구법승과 고승이 아닌 處士를 제외하 2) 두 항목에 걸친 진표를 한 명으로 처리한다면, <의해편>에는 13 명의 유의미한 고승3)이 등장한다. 일연이 高僧들의 행적담을 다양하게 소개하느라고 분량을 많이 할애했고, 그 결과 <의해편>의 비중이 높아

1) 정병삼, 「신라불교사상사와 󰡔삼국유사󰡕 의해편」, 󰡔불교학연구󰡕16, 불교학연구회, 2007, 30쪽 참조.

2) <蛇福不言>의 주인공인 사복은 승려와 친연성이 깊기는 해도 승려는 아닌 듯하다.

삭발을 했다든가 수계를 했다든가 하는 기록이 없고 사복이라는 兒名을 그대로 사 용한다는 점이 그 근거이다. 승려가 아니므로, 당연히 고승이라고 할 수가 없다. 사 복의 상대가 원효이므로, 고승열전인 <의해편>에 수록되었으리라 본다. 명계환, 「 麟角 一然의 高僧認識」, 󰡔한국불교사연구󰡕8, 한국불교사연구소, 2015, 160~161쪽 참조.

3) 원광, 보양, 양지, 혜숙, 혜공, 자장, 원효, 의상, 진표, 승전, 심지, 태현, 법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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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다고 할 수 있다.

고승들의 행적을 다루었다면 高僧傳이라 지칭할 만하나, 고승전이라 하기에는 그 성격이 분명치 않다.4) 고승의 행적을 일대기 형식으로 서 술한 경우는 몇 편 없고,5) 대부분의 경우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소 략하게 처리하거나 생략해버리고, 신이한 행적6)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를 병렬시키거나 특정 장면을 확장시킨다. 이런 정황을 감안할 때 <의 해편>은 전통적인 고승전은 아니지만, 고승전이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 다. 기존 고승전의 미비점을 보완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고승들의 신이한 행적을 서술하기 때문이다. 일연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는 신이한 행 적을 위주로 하여 새로운 고승전을 집필하려고 했다는 점7)에서, 일단 파격적인 고승전이라고 지칭해보고자 있다. 신이한 행적이 무엇이며 전 체 고승전이 어떤 의미망을 형성하는지를 점검하면 파격적인 고승전으 로서의 위상이 드러나리라 본다.

파격적인 고승전의 요체가 신이한 행적이므로, 신이한 행적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도술 발휘, 초자연적 현상 유발, 이계 출입, 亡者 부활, 중병 치유 등이 그 좋은 사례가 된다. 이런 사례는 위기 국면에서 안정 국면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극적으로 나타난다. 신이한 행적이 위기 국

4) 이렇게 판단하는 논자들이 적지 않다. <의해편> 고승담이 고승전으로서의 성격을 완전하게 지니지 못했다고 여기고, 아예 고승전으로 지칭하지 않고 있다. 그 대표적 인 사례를 두 가지 들기로 한다. 鄭圭薰, 「三國遺事 義解篇 所載 高僧 傳說 小考」,

󰡔啓明語文學󰡕1, 啓明語文學會, 1984, 117쪽에서는 ‘고승전설’이라고 했고, 김상현,

「󰡔三國遺事󰡕 義解篇의 內容과 性格」, 󰡔新羅文化祭學術發表會論文集󰡕34, 동국대 신 라문화연구소, 2013, 3쪽에서는 ‘고승열전에 가까운 편’이라고 했다.

5) 전통적인 전기 형식을 갖춘 고승전은 두 편 정도밖에 없다. <圓光西學>과 <慈藏 定律>이 그것이다. 정병삼, 앞의 글, 36쪽에서도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6) 신이한 행적, 신통력, 도술, 법력의 관계를 정리하기로 한다. 신이한 행적은 신통력 일체를 가리킨다. 신통력은 도술과 법력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불교와 연관되지 않 는 술법은 도술이고 불교와 연관되는 술법은 법력이다.

7) 일연이 이런 언급을 직접적으로 했다. 직접적으로 언급한 경우만을 예거하면 다음 과 같다. <義相傳敎>에서는 최치원 所作 本傳에 없는 내용만을 싣는다고 했고,

<元曉不羈>에서는 원효의 행적이 󰡔唐高僧傳󰡕과 行狀에 전하기 때문에 젖혀 놓고 鄕傳에서 언급하는 특이한 일화만을 소개한다고 했고, <慈藏定律>에서는 󰡔당고 승전󰡕과 향전에 없는 일화를 몇 가지 첨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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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을 안정 국면으로 전환시킨다고 할 때, 신이한 행적의 주체인 고승이 야말로 다름 아닌 ‘위기 국면의 해결사’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고승을 위기 국면의 해결사라고 할 때, 신분이 꽤 높을 것만 같다. 실제로 그렇 지는 않다. 고승 중에 하층인도 있다는 점8)이 그 근거이다. 결국, 겉모 습보다는 속모습을 중시하는 자세, 즉 내실 제일주의가 인간 됨됨이의 판단 근거라고 할 수 있다. 내실 본위주의가 심상치 않다. 불교사회 내 부에서 제기되었다고는 하나, 불교사회 내부에만 갇혀 있지 않고 당대의 사회공동체를 겨냥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의해편> 고승전에서 나타나는 신이한 행적을 통해 일연의 입전방법을 밝혀보고자 한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의 연구방법론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우선, 고승전의 파격적인 양 상을 해부하고 유형화 작업을 시도하고자 한다. 파격적 양상을 들여다보 면 양상과 양상 간에는 공통점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다시 말해, 한 고 승의 특징이 다른 고승의 특징으로도 나타난다. 공통점이 있으니, 유형 화 작업은 필수적이다. 그 다음으로, 서술층위에서 인물층위를 추출하고 자 한다.9) 서술층위에만 얽매이면 신이한 행적 이외에는 찾아낼 만한 사안이 별로 없다. 서술층위를 넘어 인물층위에까지 나아가야 비로소 일 연의 입전방법을 밝혀낼 수 있다. 이와 같은 두 가지의 연구방법론을 관 철시킬 때, <의해편> 고승전의 인물층위와 일연의 입전방법을 구체적 으로 규명할 수 있으리라 본다.

8) 고승들의 신분이 참으로 다양하다. 왕자, 진골, 관리, 낭도, 과부의 사생아, 품팔이 노파의 아들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서 하층인은 과부의 사생아와 품팔이 노파의 아들이다.

9) 서술층위와 인물층위는 사실과 형상의 틈새를 살필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서술층 위는 화자가 서술하는 내용이고, 인물층위는 주인공의 말과 행동으로 형성되는 정 황의 국면을 가리킨다. 화자가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을 아무리 자세하게 서술 한다고 해도 실제로 있었던 모든 정황을 망라하지는 못한다. 이로 인해 사실과 형상 간의 틈새가 불가피해진다. 틈새가 어느 정도이며 왜 생겼는지를 살피려고 한다면, 형상으로서의 서술층위로부터 사실로서의 인물층위를 추출해서 실제로 있었던 정 황을 추론하면 된다. 서술층위와 인물층위의 관계 및 그 틈새 확인 방법에 대해서는 신태수, 󰡔옛 孝行敍事의 功利的 談論󰡕, 지성인, 2017, 65~66쪽에서 구체적으로 다 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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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高僧傳의 두 유형

일반적으로 고승전에서는 고승의 숭고한 일생을 서술한다. 고승이라 하면 불교사에서 큰 업적을 남긴 승려를 가리키므로, 고승전의 서술 방 향은 당연히 고승의 숭고한 일생에 맞춰지게 된다. 으레 숭고한 일생은 영광과 고난의 삶을 통해 나타난다. 신통력을 지니고 대중의 숭앙을 받 기 때문에 영광의 삶이고, 불법을 구하느라 먼 길을 떠나고 타국에 전법 하느라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고난의 삶이다. 숭고한 일생에 고난의 삶 을 포함시켜 서술한 점이 이채롭다. 서술자는 고난의 삶 그 자체야 비장 하지만, 고난의 삶이 전법과 교화 목적을 성취하게 하므로 숭고하게 여 길 수밖에 없다는 시각을 보인다. 覺訓이 “道가 스스로 큰 것이 아니라, 도를 크게 함은 사람으로 말미암았다.”10)고 하는 언급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의해편> 고승전이 기존 고승전과 같은지가 의문이다.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고승의 숭고한 일생을 담아내고자 하기 때문에 기존 고 승전과 같지만, 僧傳 體制에 의거해서 일대기를 보여주기보다는 포교 현 장을 담은 일화에 의거해서 인상적 국면만을 주로 보여주기 때문에 기 존 고승전과는 다르다.11) 결국, <의해편> 고승전과 기존 고승전의 차 이는 승전 체제를 중시하느냐 포교 현장의 일화를 중시하느냐의 여부에 좌우된다. 고승이라면 누구나 포교를 목적으로 비속한 일상으로 들어가, 마침내 비속한 일상과 하나가 되는 경지를 보여준다. 포교를 목적으로 하므로, 아무리 비속하다고 하더라도 고승의 일생은 숭고하다.12) 이 논

10) 道不自弘 弘之由人(󰡔海東高僧傳󰡕流通 一之一). 󰡔論語󰡕衛靈公篇의 “人能弘道 非能 弘人”과 유사한 의미 구조를 보여준다.

11) 기존 고승전으로서는 중국의 고승전과 한국의 󰡔海東高僧傳󰡕을 들 수 있다. 중국의 고승전과 <의해편> 고승전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정훈, 「󰡔三國遺事󰡕 義解의 성격 고찰 – 중국 高僧傳과의 비교를 통해서」, 󰡔한국문학이론과 비평󰡕41, 한국문학이론 과 비평학회, 2008, 123~143쪽에서 다루었고, 󰡔해동고승전󰡕과 <의해편> 고승전 의 관계에 대해서는 최연식, 「高麗時代 僧傳의 서술 양상 검토 - 󰡔殊異傳󰡕, 󰡔해동 고승전󰡕, 󰡔삼국유사󰡕의 阿道와 圓光 전기 비교」, 󰡔한국사상사학󰡕28, 한국사상사학 회, 2007, 161~188쪽에서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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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을 토대로 하여 숭고와 비속의 관계를 설정해볼 수 있다. 숭고의 전제 가 비속이라고 할 때, 숭고가 비속하다는 논법은 성립하지 않아도 비속 이 숭고하다는 논법은 성립된다.

<의해편>의 모든 화자가 비속을 통해 숭고를 지향한다고 할 때, 각 고승전 서술의 방향도 모두 동일한지가 의문이다. 범박하게 말하면, 특 정 경계선 내부까지는 동일하고 그 특정 경계선 외부에서부터는 동일하 지 않다. 화자가 고승의 포교 현장을 생생하게 전함으로써 생애를 숭고 하게 서술하려는 측면은 ‘동일성이 지속되는 경계선 내부’이다. 이 내부 에 있는 한, 모든 고승은 숭고하다. 한편, 각 고승이 독특하게 지닌 신 분, 성품, 환경, 세계관을 생생하게 전함으로써 인간적 면모를 서술하려 는 측면은 ‘동일성이 깨어지는 경계선 외부’이다. 이 외부에 있는 한, 고 승의 생애가 숭고하게 서술된다는 보장은 없다. 흠결 상태가 나타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황을 토대로 할 때, ‘동일성이 지속되는 경계 선 내부’와 ‘동일성이 깨어지는 경계선 외부’가 고승전의 전체 구도를 형 성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 고승전의 전체 구도

동일성이 지속되는 경계선 내부 -- 현장 중심적인 신이한 행적 +

동일성이 깨어지는 경계선 외부 -- 무결 상태가 나타나는 경우 흠결 상태가 나타나는 경우

고승전의 전체 구도를 고려할 때, 고승전은 공통 구조와 개별 구조를 포괄하고 있다. 동일성이 지속되는 경계선 내부는 공통 구조에 해당된 다. 모든 화자가 숭고한 생애를 공통적으로 서술한다는 점이 그 근거이 다. 고승전의 정체성을 담보하는 최소한 조건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한편, 동일성이 깨어지는 경계선 외부는 개별 구조에 해당된다. 각 고승

12) 숭고와 비속의 전반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조동일, 「삼국유사 불교설화와 숭고하고 비속한 삶」, 󰡔三國遺事硏究(上)󰡕, 嶺南大出版部, 1983, 119~146쪽에서 명쾌하게 다룬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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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 화자가 입전 대상의 특징을 서로 다르게 서술한다는 점이 그 근거 이다. 고승전에 탄력을 가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져야 할 필수 조건이 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렇게 보니, 공통 구조와 개별 구조는 나름대로 의 기능을 수행한다. 공통 구조는 고승의 생애를 숭고하도록 추동하고, 개별 구조는 각 고승의 독특한 인간미를 발산하도록 추동한다. 공통 구 조와 개별 구조가 어우러지면서 입전 대상은 승고하면서도 개성적인 삶 을 영위하는 독특한 고승이 된다.

개별 구조가 고승전 서술의 방향을 결정하므로, 개별 구조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동일성이 깨어지는 경계선 외부의 내용을 보면, 고승의 품 격이 무결하다거나 흠결이 있다거나 하는 쪽으로 양분된다. 즉, 양지, 혜 숙, 혜공, 의상, 진표, 승전, 심지, 태현, 법해의 품격은 무결 상태이고, 원광, 자장, 원효, 보양의 품격은 흠결 상태이다. 흠결 상태라고 하는 쪽 의 능력이 부족한가 하면, 그렇지 않다. 원광은 기량이 넓고 자장은 神 志가 맑고 원효는 태생적으로 총명하고 보양은 용왕에게 불법을 전수하 므로, 능력이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준이 분명치 않아 견주 기는 어려우나, 품격에 흠결이 있다고 하는 쪽의 고승이 무결하다고 하 는 쪽의 고승보다 우위에 있거나 최소한 대등할 성싶다. 왜 어떤 고승에 대해서는 무결하다고 하고 어떤 고승에 대해서는 흠결이 있다고 여기는 지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무결 상태라고 하는 쪽의 고승은 하나같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적의 주인공이다. 양지와 혜숙와 진표와 법해는 재주가 뛰어났으면서 도 사소한 술법이나 부리고, 혜공과 의상은 사람들의 입을 막아 신통력 이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고, 심지와 태현은 불심이 두터워 부처의 반응 을 이끌어내고, 승전은 돌멩이를 제자로 삼아 경전을 강론한다. 각 고승 전의 화자에 의하면, 9명의 고승은 다양한 능력을 지녔다. 다시 말해, 일부 능력만을 노출시키고, 전체 능력은 숨겨놓고 있다.13) 전체 능력을 숨겼다는 사실을 놓고, 실제로 능력을 숨겨놓았는지 아니면 없는데도 숨

13) 이런 정황을 <良志使錫>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하찮은 재주에 자신의 능력을 숨긴 사람(以大方隱於末技者)”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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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놓은 체하는지를 따져야 하겠지만, 각 고승전의 화자는 실제로 능력을 숨겨놓았다고 판단한다.14) 드러나는 능력보다 숨기는 능력에 경외감을 가지고 있고, 숨기는 능력은 다양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화자 의 인식을 읽어낼 수 있다.

한편, 흠결 상태라고 하는 쪽의 고승은 하나같이 세상에 잘 알려진 영 웅적 인물이다. 원광은 학문에 통달했고 여러 이적을 일으켰고 외교문서 까지 작성했다. 자장은 자기 자신에게 고통을 가하는 수양을 했고, 여러 이적을 일으켰고, 대국통의 직위에까지 올랐다. 원효는 파계하여 설총을 낳았고, 스스로 소성거사라 일컫고는 시정을 돌아다니며 포교했고, 여러 이적을 일으켰고, 해룡의 권유로 󰡔三昧經疏󰡕를 짓기도 했다. 보양은 서 해 용왕의 초청을 받고 들어가 용자 이목을 데리고 나왔고, 이목에게 한 발을 일거에 해결하도록 했고, 태조 왕건에게 산적을 퇴치할 계책을 일 러주기도 했다. 어느 고승이나 간에 행적이 화려하므로 국내에서뿐만 아 니라 국외에서까지 품격이 무결하다고 소문 날 법도 한데, 의외로 각 고 승전의 화자는 품격에 흠결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왜 흠결 상태라고 하 는지를 살피기로 한다.

원광 : 원광이 삼기산에서 도를 닦았다. 어떤 승려가 와서 살자, 신이 그 승려를 타처로 보내라고 했다. 원광이 옮겨가기를 권했다. 그 승 려는 어찌 여우귀신에게 홀리느냐고 하며 나무랐고, 신은 그 승려 를 매몰시켜 버렸다. 그 뒤, 원광은 신의 도움을 받아 중국 유학 을 갔다. 귀국한 뒤 신을 찾아가, 실제 모습을 보여달라고 청했 다. 신은 거대한 팔뚝을 보여 주었다 그 뒤, 신은 때가 되었으니, 삼기산 고개에 자기 몸을 버리겠다고 했다. 원광이 가보니, 새까 만 늙은 여우 한 마리가 죽어가고 있었다.

14) 각 고승전의 화자는 대개 2~3가지의 이적을 중심으로 하여 고승의 숭고한 일생을 서술한다. 2~3가지의 이적은 대표적인 행적일 뿐이고 전체의 행적은 아니다. 화자 가 직접적으로 고승전에 소개된 이적 이외에 더 있다고 하기 때문에 확인해보기로 한다. “양지의 신기하고 신이한 행적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모두 이와 같았다.(其 神異莫測 皆類比ㆍ良志使錫)”, “그밖의 다른 사적들은 모두 비문에 자세히 실려 있 으니, 󰡔대각국사실록󰡕에 있는 것과 같다.(其他事迹 具載碑文 如大覺國師實錄中ㆍ 勝詮髑髏)”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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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 : 자장이 명성을 드날릴 때, 문수보살이 꿈에 나타나 大松汀에서 만 나자고 했다. 대송정에 나타난 문수보살은 다시 태백산 갈반지에 서 보자고 했다. 문수보살이 올 시각, 어떤 늙은 거사가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고 자장을 보러왔다고 한다. 자장은 미친 사람이 려니 하고 쫓아내게 했다. 그 거사는 ‘자신의 학문과 지위에 자부 심이 강한 사람이 어찌 나를 볼 수 있겠느냐?’라고 하며 사라졌 다. 사태를 깨달은 자장은 남쪽 고개를 올라갔지만, 따라갈 수 없 었다. 자장은 몸을 던져 죽었다.

원효 : 자기 능력이 미치지 못할 때는 능력이 앞선 자를 찾아다녔다. 불 경에 주석을 붙일 때는 혜공을 여러 차례 찾아갔다. 그 뒤 사복이 찾아왔다. 모친 장례를 같이 지내자고 하니, 원효가 사복을 따라 갔다. 사복이 布薩授戒를 청하자, 원효가 따랐다. 사복은 언사가 번잡하다고 하며 보살수계를 다시 청했다. 원효는 군말 없이 따랐 다. 사복이 띠풀 줄기를 뽑자, 밝고 청허한 세계가 나타났다. 사 복이 시체를 업고 들어가자, 땅이 갑자기 합쳐졌다. 원효는 아무 할 일 없이 되돌아왔다.

보양 : 중국 유학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서해 용왕의 초청을 받고 용궁 에 들어갔다. 용왕은 금빛 가사를 시주하는 한편, 이목에게 조사 를 수행하게 했다 그리고는 덕담을 했다. 자기 아들과 본국에 가 서 작갑에 절을 짓고 머문다면 적을 피할 수 있고, 수년 이내에 불법을 보호하는 어진 임금이 나와서 삼국을 통일하리라고 하는 예언이 그것이다. 그 뒤, 예언은 적중되었다. 이목은 절 옆의 연 못에 살면서 보양을 은밀하게 도왔고, 한발이 심할 때는 보양의 명을 받아 天帝 몰래 비를 내렸다.

원광, 자장, 원효, 보양은 모두 남의 정체를 쉽사리 파악하지 못한다.

원광은 여우 귀신과 친밀하면서도 그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15) 리석고 눈까지 무디다. 자장은 자만심이 강해 나 아닌 남을 인정하지 못 한다. 자기 자신의 단처를 깨달았을 때, 문수보살은 이미 떠나버렸다. 원 효는 사복의 능력을 확인하고 크게 당혹해 한다. 혜공이야 애초에 뛰어 난 줄 알았지만, 사복은 능력이 없다고 여겼던 터라 당혹스럽기 그지없 다. 보양은 앞날을 예측하지도 못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품격

15) 여우 귀신이 토속 신앙의 대상이었음을 감안하면, 자장은 토속신의 위력을 알아차 리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강은해, 「󰡔삼국유사󰡕 高僧談의 갈등양식과 의미 - 唐

󰡔續高僧傳󰡕, 宋 󰡔高僧傳󰡕과 비교하면서」, 󰡔한국문학이론과 비평󰡕24, 한구문학이론 과 비평학회, 2004, 265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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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다지 넉넉하지 못하나, 서해 용왕 부자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잘 드 러나지 않는다. 이렇게 보니, 네 명의 고승은 모두 위용이 드세면서도 품격의 흠결 또한 지니고 있다. 위용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품격의 흠 결도 커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각 고승전의 화자는 숨기는 능력보다 드 러내는 능력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고 할 수 있다.

무결 상태라고 하는 쪽의 고승과 흠결 상태라고 하는 쪽의 고승을 점 검해보니, 품격과 능력이 반비례관계이다. 능력을 숨기는 고승일수록 품 격이 무결하다고 하고, 능력을 드러내는 고승일수록 품격에 흠결이 있다 고 하기 때문이다. 능력은 숨기지 말고 드러내어야 마땅하다는 관점에서 보면, 품격과 능력은 비례관계가 되어야 한다. 즉, 능력을 드러내면 드러 낼수록 무결 상태의 품격을 지녔다고 해야 옳다고 여겼을 법하다. 반비 례관계의 차원에서 보면 이 비례관계는 매우 부정적이다. 자기 과시주의 에 해당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왜 명망 있는 고승들을 자기 과시주의와 연결시키는지가 관심사이다. 그 연유를 품격과 능력의 반비례관계에 입 각해서 해명해볼 수 있다. 원광, 자장, 원효, 보양이 실제로 흠결이 있다 기보다 원광, 자장, 원효, 보양 같은 명망가가 가질 만한 흠결을 꼬집어 낸다고 할 수 있다.16)

□ 고승전의 두 유형

유형A : 현장 중심적인 신이한 행적 + 무결 상태의 품격

→ 양지, 혜숙, 혜공, 의상, 사복, 진표, 승전, 심지, 태현, 법해 의 전기

유형B : 현장 중심적인 신이한 행적 + 흠결 상태의 품격

16) 각 고승전의 화자가 실제로 원광, 자장, 원효, 보양을 과시주의적 가치관의 소유자 로 본다고 할 수는 없다. 원광, 자장, 원효, 보양과 같은 명망가를 통해 세상 사람들 에게 경종을 울리려 한다고 볼 때, 원광, 자장, 원효, 보양이라는 이름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라고 할 수 있다. 󰡔수이전󰡕이나 향전에는 인물과 행적의 관계가 느 슨한 사례가 많기 때문에, 이런 사례를 활용하면 고유명사를 일반명사로 전환시키 기가 용이하다. 이런 차원에서 고승전의 화자가 󰡔수이전󰡕이나 향전의 관련 내용을 빈번하게 동원하는 까닭을 해명해볼 수 있다. 화자가 필요로 하는 내용이 󰡔수이전󰡕

이나 향전에 담겼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인물과 행적의 관계가 느슨한 사례가 󰡔 수이전󰡕이나 향전에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11)

→ 원광, 자장, 원효, 보양의 전기

지금까지의 논점을 정리해보면, 고승전의 유형은 두 가닥이다. 유형A 와 유형B가 그것이다. 고승을 놓고 무결하다느니 흠결이 있다느니 하고 평가하는 품격 논의는 고승전 서술에 탄력을 가하는 요인이다. 만약 고 승전의 개별 구조에서 무결 상태나 흠결 상태를 단순하게 선택했더라면,

<의해편> 고승전은 고리타분한 승려이야기 정도에서 그쳤을 터이다.

각 고승전의 화자는 예상을 깨는 高僧像을 제시했다. 당대의 아주 많이 알려진 고승을 유형A와 결부시킨 후에 의외로 품격에 흠결이 있다고 평 가하고, 자기 능력을 숨기며 사는 고승을 유형B와 결부시킨 후에 의외 로 품격이 무결하다고 평가했다. ‘의외의 반전’을 통해 아주 많이 알려진 고승은 깎아내리고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고승은 추켜올렸으니, 유형A 와 유형B는 각기 독자들에게 반전의 확인과 흠결 여부의 추적이라는 즐 거움을 선사한다고 할 수 있다.

Ⅲ. 고승전의 서술기법과 인물층위

고승은 凡人과 다르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도 않고, 순탄하게 일생 을 마치지도 않고, 세속을 초월한 풍모를 지니고 있다. 바꾸어 말해, 여 러 곳을 떠돌아다니고, 험란한 곳을 힘써 찾아다니고, 풍모가 빼어나고 기이하다. 화자가 왜 이렇게 인물을 형상화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화자 가 前後首末을 밝히지 않은 채 신이한 행적을 삽화적으로 나열하기 때 문이다. 신이한 행적을 수합해서 화자의 서술기법을 검출하고 인물층위 를 추론해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리라 본다. 고승전의 입전 대상이 덕 망 높은 고승이므로 화자의 서술기법은 각 고승전에서 대동소이하겠지 만, 각 고승의 성향이나 가치관이 다르므로 인물층위에 있어서는 고승전 의 유형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이 점을 분별하면서 서술기법과 인물층위를 살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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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쾌한 속임수’의 서술기법

고승의 행적은 대체로 과장되어 있다. 가령, 혜숙은 동쪽에서 죽었는 데도 서쪽에서는 살아서 돌아다니고, 혜공은 손대지 않고도 환자의 악 성 종기를 치유했고, 자장은 바위틈에서 이상한 새가 물어다주는 과일 로 연명했고, 원효는 잠깐 사이에 먼 곳에 가 있고, 진표는 魚鼈이 스 스로 만들어준 다리를 밟고 용궁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런 행적은 佛道와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화자가 불도를 닦아 이런 법력을 구사 한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적을 과장할 수 있는 원천은 무엇인가?

민간의 異人譚과 고승의 행적담이 유사하다는 점을 상기할 때, 구전설 화가 그 원천이 아닐까 한다. 고승의 행적이 구전설화를 통해 과장되 었다면 환영받지 못할 법한데, 의외로 과장된 행적담이 모든 고승전에 실려 있다. 그 연유를 밝히지 않을 수 다.

연유를 밝히기 위해서는 고승전의 서술방법을 살필 필요가 있다. 고승 전에서는 으레 신이한 행적을 통해 숭고한 생애를 드러내고자 하므로, 숭고한 생애는 신이한 행적을 전제 조건으로 삼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입론은 고승전 전체에 해당되는 바이므로, 일반론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일반론은 다분히 연역적이다. 숭고한 생애가 목적이고 신이한 행 적이 조건이라고 볼 때, 화자는 숭고한 생애를 먼저 머릿속에 떠올린 다 음 그 숭고한 생애에 걸맞는 신이한 행적을 연역한다고 할 수 있다.17) 신이한 행적을 연역해가는 과정은 거의 속임수에 가깝다. 왜냐하면, 신 이한 행적과 숭고한 생애 사이에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황이 이렇다면 고승전이 읽히지 않아야 하겠으나, 의외로 고승전은 세 세토록 많이 읽혔다.18) 독자들이 속임수인 줄 알면서도 고승전을 읽은

17) 숭고한 생애가 단일하지 않듯이 신이한 행적 또한 단일하지 않다. 가령, 숭고한 생 애는 존귀한 삶을 통해 구현될 수도 있고, 비속한 삶을 통해 구현될 수도 있고, 골계 적인 삶을 통해 구현될 수 있다. 삶의 양태가 어떤가에 따라 숭고한 생애의 성격이 정해질 터이고, 숭고한 생애의 성격에 따라 신이한 행적의 내용도 정해질 터이다.

18) 역대의 쟁쟁한 고승전만을 예거해 보기로 한다. 慧皎의 󰡔梁高僧傳󰡕, 道宣의 󰡔唐高 僧傳󰡕, 義淨의 󰡔大唐西域求法高僧傳󰡕, 贊寧의 󰡔宋高僧傳󰡕, 金大問의 󰡔高僧傳󰡕, 覺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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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니, 의외가 아닐 수 없다.

독자의 측면에서 의외의 현상을 해명해볼 수 있다. 속임수가 전대부터 불가피한 선택으로 인식되어 왔고 속임수를 통해 얻는 성취감이 크다고 여길 때 속임수는 용인될 여지가 있다. 고승전의 독자가 바로 그런 입장 이다. 해당 기록이 없기 때문에 확증하기는 어려우나, 짐작해볼 여지는 있다. 고승전의 작자라면 그 이전에는 독자였을 개연성이 높다. 작자가 독자였을 때 전대 고승전의 내용에 동조했기 때문에 새롭게 고승전을 서술하는 작자가 되었을 터이다. 작자와 독자의 관계가 상당히 긴밀한 편이므로, 앞으로 작자로 발돋움할 현재 독자로서는 과거 독자였을 때의 작자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을 리가 없다. 역대 고승전의 서술방법이 대 동소이한 까닭은 작자와 독자 간에 형성되는 이런 동조감 때문이었으리 라 본다. 작자에 대해 독자가 동조하는 이상, 속임수의 전통에 편승했다 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속임수의 전통에 흔쾌하게 편승하는 독자의 행위를 ‘生涯史 서술의 유 쾌한 속임수’라고 지칭해볼 수 있다.19) ‘생애사 서술의 유쾌한 속임수’

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작자가 독자를 이끌거나 독자가 작자에게 요청 하거나 하며 고승의 신이한 행적을 새롭게 서술해야 할 때 ‘생애사 서술 의 유쾌한 속임수’ 또한 바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바뀐 고승전이 바로 <의해편>이다.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살필 필요가 있다. 일연에 따 르면, 중국 고승전은 젖혀놓고 󰡔수이전󰡕이나 향전에서 내용을 가져왔 다.20) 그 결과, 토속적 분위기는 짙어지고 중국적 분위기는 엷어졌으니,

의 󰡔海東高僧傳󰡕 등이 그것이다. 오늘날에도 이런 僧傳類가 회자되고 있으므로, 세 세토록 많이 얽혔다고 할 수 있다.

19) 신태수, 앞의 책, 29쪽에서 ‘윤리적 차원의 유쾌한 속임수’라는 용어를 사용한 바 있다. 효행서사를 대상으로 하여 속임수를 흔쾌하게 용납하는 독자의 행위를 ‘윤리 적 차원의 유쾌한 속임수’라고 지칭했다. 고승전에 나타나는 ‘생애사 서술의 유쾌한 속임수’와 견주어보면, ‘유쾌한 속임수’라는 용어가 동일하다. 작자가 주인공의 행적 을 추켜올려야 하는 서사작품, 예컨대 일반인의 전기, 승려의 전기, ‘전’자가 붙어 있는 고소설에서는 ‘유쾌한 속임수’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으므로, ‘유쾌한 속임 수’는 서사갈래의 중요한 서술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20) <圓光西學>과 <寶壤梨木>에서는 󰡔수이전󰡕에서 가져왔다고 했고, <二惠同塵>

(14)

일연이 ‘생애사 서술의 유쾌한 속임수’를 토속적 분위기로 전환시켰다는 취지가 된다. 이 취지는 그야말로 대단하다. 기존 ‘생애사 서술의 유쾌한 속임수’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생애사 서술의 유쾌한 속임수’

를 개발하려 하기 때문이다.

일연이 ‘생애사 서술의 유쾌한 속임수’를 왜 개발했는지가 관심사이다.

신이한 행적뿐이라면 숭고한 생애를 드러내기보다는 기괴한 생애를 드 러내고 말 터이다. 일연의 의도가 숭고한 생애를 드러내는 데 있으니,

‘생애사 서술의 유쾌한 속임수’가 숭고한 생애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피면 된다. 신이한 행적이 󰡔수이전󰡕이나 향전에서 왔다는 점과 고승전 의 편명이 <의해>라는 점이 해결의 단서이다.21) 󰡔수이전󰡕이나 향전에 서 토속적 내용을 취했으니, 겉으로는 신이한 행적이되 속으로는 자주적 인 구도행위가 되도록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을 편명인 <의해>와 연결시키면, ‘신라 고승이 자주적으로 구도행위를 하며 경전 해석의 주 체 역할을 했다.’는 논법이 도출된다. 결국, 일연이 ‘생애사 서술의 유쾌 한 속임수’를 개발한 이유는 ‘신라 고승은 어떻게 義解했는가?’라는 물음 에 답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2. 고승의 고정관념과 그 인물층위

<의해편> 고승전에는 고정관념이 강한 고승과 고정관념이 없는 고승 이 등장한다. 원광, 자장, 원효, 보양은 전자에 속하고, 그 이외의 고승 은 후자에 속한다. Ⅱ장에 따르면, 품격의 측면에서 고정관념이 강한 고 승은 흠결이 있고 고정관념이 없는 고승은 무결하므로, 고정관념이 품격 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고정관념이 왜 품격을 좌우하는가? 고전관념

과 <慈藏定律>과 <元曉不羈>에서는 향전에서 가져왔다고 했다. 그 이외의 고승 전에는 󰡔수이전󰡕이나 향전에서 가져왔다고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럴 개연성이 높은 내용들이 더러 보인다.

21) 석길암, 「史實의 記述과 이미지의 記述 - <元曉不羈>조 읽기의 한 방법」, 󰡔新羅 文化祭學術發表會論文集󰡕33,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 2012, 265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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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없는 고승을 놓고 문제를 해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므로, 고정관념이 강한 고승을 살펴서 고정관념이 없는 고승 쪽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고정관념이 강한 고승은 유형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중국을 문화대국이 라고 하여 동경하고 자의식이 끝없이 높다. 바꾸어 말해, 자국문화를 경 시하고 我相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특징은 시대 상황과 연관이 깊을 터 이므로 공통적 특징을 해부한 다음 시대 상황과 연관지워 보기로 한다.

논점을 예각화하기 위해서는 서술층위와 인물층위를 탐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술층위는 화자가 서술하는 내용이고 인물층위는 인물의 말과 행동으로 형성되는 정황의 국면이므로, 화자가 서술하는 자국문화 경시 풍조와 我相 보유 경향은 서술층위이고, 서술층위에는 나타나지 않는 자 국문화 경시 풍조와 아상 보유 경향의 원인은 인물층위이다. 서술층위에 머무르면 고승들의 고정관념만 확인할 뿐이고 고정관념의 원인은 찾아 낼 수 없다. 정황이 이러하므로, 서술층위를 살피기만 해서는 안 되고 인물층위를 추출하는 단계로 반드시 나아가야 한다. 서술층위에서 나타 나는 고승들의 고정관념이 ‘자국문화 경시 풍조’와 ‘아상 보유 경향’이므 로, 이 두 결과를 역추적해서 그 원인을 검출해볼 필요가 있다. ‘자국문 화 경시 풍조’를 ⓐ라고 하고 ‘아상 보유 경향’을 ⓑ라고 한 다음, ⓐ와

ⓑ의 내용을 정리하기로 한다.

원광 : ⓐ 三韓이 낙후되었다고 하며 부끄럽게 여기고, 중국에 유학했다.

ⓑ 아무 의심 없이 여우귀신을 신으로만 알고 줄곧 의지해 왔다.

자장 : ⓐ 변두리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부끄러워하며 중국에 유학했다.

ⓑ 선입견에 얽매여 늙은 거사가 문수보살인 줄을 알지 못했다.

원효 : ⓐ 중국의 선진문화를 배우러 가려고 했다가 중도에서 포기했다.22) ⓑ 사복이 대단한 법력을 지닌 줄 몰랐다가 사라진 뒤에 크게 놀랐다.

22) 일연은 <원효불기>에서 중복을 피하기 위해 󰡔당고승전󰡕과 행장의 내용은 싣지 않는다고 했다. 󰡔당고승전󰡕과 행장에 빠진 내용만 추가한다는 취지라고 볼 때, 일연은 중국 󰡔당고승전󰡕과 행장과 󰡔삼국유사󰡕<의해편>의 <원효불기>가 어우 러져서 하나의 전기가 완성된다고 여겼던 것 같다. 정황이 이렇다면, 중국 유학 포기 사연이 다른 자료에 나온다고 하더라도 끄집어내어 함께 다루어도 좋을 것 같다.

(16)

보양 : ⓐ 陳末에 갔다가 불법을 많이 배운 뒤 開元 연간에 돌아왔다.

ⓑ 권능을 과시하느라고 하늘과 땅과 바다의 조화 원리를 알지 못한다.

각 ⓐ와 ⓑ는 공통점을 갖추고 있다. ⓐ에서는 고승들이 문화 대국인 중국에 유학을 가야 한다고 여긴다. 원광과 자장은 삼한 문화를 부끄러 워하고 중국 문화를 부러워한다. 원효와 보양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다.

중국 문화를 부러워하기는 해도 삼한 문화를 부끄러워하지는 않는다.23)

ⓑ에서는 고승들이 我相에 얽매여 眞如나 본질이나 이치를 밝히지 못하 고 있다. 자장은 진여를, 원광과 원효는 본질을, 보양은 이치에 어둡다.

ⓐ와 ⓑ를 조합하면, 자장이 가장 심각하고 보양이 가장 덜하지만, ⓐ와

ⓑ를 모두 갖추었기 때문에 자장이나 보양이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물 론, 실제로 고승들이 심각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네 명의 고승을 성인이 나 부처라고 소개할 정도이므로,24) 당사자가 심각하다기보다는 고승들 이 지니기 쉬운 자국문화 경시 풍조와 아상 보유 경향이라는 고정관념 을 고승 네 명을 통해 드러내었다고 할 수 있다.

고정관념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국문화 경시 풍조와 아상 보 유 경향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추적해 보아야 한다. 고정관념은 시대적 소산이다. <의해편> 고승전에 의거하면, 고승들의 활동기인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는 국제 교류가 활발했고 고승들이 우대받았기 때문에25) 고승들의 활동이 빈번했다. 활동이 빈번해지면서 긍정적 측면만 나타나

23) 원효가 중도에 돌아왔다고 해서, 중국 문화를 부러워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돌아오게 된 까닭이 해골바가지의 물을 마셨기 때문이고 중국 문화와는 관련이 없 어 보인다. 중국 유학을 가려고 작정했음을 감안할 때 중국 문화에 대한 부러움은 여전하다고 할 수 있다.

24) <원광서학>에서는 원광을 성인이라고 했고, <원효불기>에서는 원효가 태어날 때부터 부처였음을 암시했다. 원효가 태어난 고향마을을 佛地村이라고 소개했다는 점이 그 근거이다. 자장과 보양은 무엇이라고 꼬집지는 않았지만, 대중들이 많이 따 랐다고 한다. 대중들이 많이 따랐다면, 성인이니 부처니 하고 불렀을 개연성이 높다.

25) 고승들이 중국 유학을 쉽게 가는 데서 국제 교류가 활발하다고 할 수 있고, 군주가 고승들을 측근에 두려고 하는 데서 고승들이 우대받았다고 할 수 있다. 김상현, 앞 의 글, 2~11쪽 참조.

(17)

지 않았다. 일연은 부정적 측면을 포착하고 서술층위에다 담았다. 고승 들의 고정관념을 미루어볼 때, 일연은 고승들의 세속적 욕망이라는 부정 적 측면을 고정관념의 원인으로 판단했으리라 본다. ‘중국에 가서 선진 문화를 배우고 싶다.’와 ‘나 자신이 판단의 중심이 되고 싶다.’가 세속적 욕망의 내용이다. 고승들은 이 두 가지의 세속적 욕망을 간직하고 있었 고, 그 결과가 자국문화 경시 풍조와 아상 보유 경향이라는 고정관념으 로 나타났다고 이해할 수 있다.

서술층위 : 고정관념 인물층위 : 세속적 욕망

자국문화 경시 풍조 ---> 중국에 가서 선진문화를 배우고 싶다.

아상 보유 경향 ---> 나 지신이 판단의 중심이 되고 싶다.

세속적 욕망에 대한 일연의 반응은 비판적이다. 중국 중심적 가치관을 지닐수록 자국문화 경시 풍조가 나타나고 자기를 판단의 중심으로 삼을 수록 아상에 얽매인다고 한 점이 그것이다. 비판할 때는 해법도 고려했 지만, 드러내지는 않았다. 즉, 원광과 보양 전기에 해법의 단서를 숨겨 놓았다. <원광서학>의 서술층위에서는 원광이 여우귀신에게 도움을 받 았기 때문에 중국에 갔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 식견까지 확보할 수 있었 다고 하고, <보양이목>의 서술층위에서는 보양이 龍族을 異物이라 하 여 배척하지 않고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세상에 기여할 수 있었다고 한 다. 서술층위가 이렇다면 인물층위에서 마련할 만한 해법은 ‘토속신앙과 제휴하기’와 ‘겉모습으로 됨됨이 판단하지 않기’가 된다.26) 이 해법이 基層社會의 지혜와 경험을 반영한다고 볼 때, 일연이 구상하는 해법은 기층사회와의 융섭이 아닐까 한다.

고정관념이 강한 고승들을 통해 고정관념이 없는 고승들의 성향을 짚

26) 필자가 <원광서학>과 <보양이목>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토속신앙과 제휴하기’

와 ‘겉모습으로 됨됨이 판단하지 않기’라는 해법을 이끌어내었지만, 이런 해법이

<원광서학>과 <보양이목>에 들어 있는 이상 일연이 해법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보다 적극적으로 언급하면, 일연은 ‘토속신앙과 제휴하기’와 ‘겉모습 으로 됨됨이 판단하지 않기’라는 해법을 <원광서학>과 <보양이목> 속에 숨겨두 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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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볼 수 있다. 고정관념이 없는 고승들은 자국문화 경시 풍조나 아상 보 유 경향이라는 고정관념을 지니지 않았다. 고승들의 고정관념이 서술층 위에 나타나지 않으니, 고승들의 세속적 욕망도 인물층위에 나타날 리 없다. 양지, 혜숙, 혜공, 승전, 심지, 대현, 법해는 민간에 몸을 숨긴 채 신이한 행적만 간혹 드러내고, 자장과 진표는 몸을 숨기면서도 상하층을 넘나들며 生民을 慰撫할 뿐이다. 민간과 고승이 둘이 아니므로 토속신앙 과 제휴했을 수 있고, 물고기와 자라와 돌멩이 같은 자연물도 사람과 같 이 대하므로 속모습으로 됨됨이를 판단했을 수 있다. 요컨대, 고승들의 고정관념 유무에 따라 인물층위의 성격도 달라진다. 고정관념이 강한 고 승들은 조화보다 분별을 중시하고, 고정관념이 없는 고승들은 분별보다 조화를 중시한다고 할 수 있다.

Ⅳ. 인물층위를 통해본 일연의 입전방법

세속적 욕망이 심하다면 고정관념이 강하다고 보면 된다.27) 원광, 자 장, 원효, 보양에게서 세속적 욕망이 심하게 나타나므로 고정관념이 강 하다고 할 수 있고, 양지, 혜숙, 혜공, 의상, 진표, 승전, 심지, 태현, 법 해에게서는 세속적 욕망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고정관념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일연이 어느 쪽을 바람직하게 여겼겠는가? 당연히 양지, 혜숙, 혜 공, 의상, 진표, 승전, 심지, 태현, 법해이다. 이런 고승들에게서 관념과 욕망이 없다고 하려면, 적절한 방법을 구사해야 한다. 적절한 방법이란 곧 입전방법이다. 양지, 혜숙, 혜공, 의상, 진표, 승전, 심지, 태현, 법해 의 입전방법이 고승전 전체를 대표할 터이니,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27) 이에 대해서는 󰡔楞嚴經󰡕에서 밝히고 있다. 󰡔능엄경󰡕에서 욕망과 관념의 관계를 설 명하고 있다. 석가가 여래의 설법을 阿難에게 전해주는 장면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해당 부분을 인용하기로 한다. “제법의 나타남은 오직 마음의 나타남이라. 일체의 원인과 결과와 세계의 작은 티끌이 마음으로 인해 실체를 이룬다.(난法所現 唯心所 現 一切因果世界微塵因心成體ㆍ󰡔楞嚴經󰡕第1卷)”가 그것이다.

(19)

그런 다음, 원광, 자장, 원효, 보양의 전기에 비춘다면 고승전 전체를 살 피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1. 세속적 욕망의 불교적 내면화

양지, 혜숙, 혜공, 의상, 진표, 승전, 심지, 태현, 법해의 전기를 보면, 고승들은 하나같이 생활 현장에서 신통력을 발휘한다. 생활 현장이란 숙 식하거나 활동하거나 하는 장소를 가리킨다. 예컨대, 고승이 거처하거나 평소에 주변인들과 함께 있거나 대중들과 빈번하게 만나거나 하는 곳이 바로 생활 현장이다.28) 생활 현장에서 신통력을 발휘하는 까닭은 여러 대중 앞에서 부처의 권능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정황이 이런데도 불구하 고 어느 고승도 능력을 낭비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그 까닭은 두 가지다. 신통력이 불교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과 신통력이 대중 교화 기 능을 감당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각 고승전에 나타난 신이한 행적을 정 리해보고, 신이한 행적 속에 들어 있는 신통력이 어떤 특징을 지니는지 를 점검하기로 한다.

신이한 행적 불교적 성격

양지 지팡이를 날게 하다. 시주할 때 발생한 이적 혜숙 먹은 고기를 소반에 그대로 두다. 살생을 즐겨하는 구담공 질타 이곳과 저곳에 동시에 있었다. 시주댁에서 七日齋 주관 혜공 우물 속에서 몇 달씩 살다. 부개사에서 발생한 이적 새끼줄로 절을 화마로부터 구하다. 영묘사에서 발생한 이적 우천시에 옷이 젖지 않도록 하다. 금강사에서 발생한 이적 의상 탑돌이할 때 허공을 밟고 가다. 황복사에서 발생한 이적 진표 지장보살로부터 수계하다. 망신참법의 결과 미륵보살로부터 간자를 받다. 영산사에서 발생한 이적 어별에게 불법 강론후 계를 주다. 불법 강론 및 계율 부여 미륵보살로부터 계법을 받다. 금산사 창건시 발생한 이적 소의 불심을 알고 계법을 주다. 절을 지으러 가는 길에 발생 28) 孫眞, 󰡔高僧傳의 神異譚 연구󰡕, 동국대 불교학과 박사논문, 2015, 146~153쪽에

서는 생활 현장의 신통력을 교화와 대중화의 차원에서 설명하고 있다.

(20)

흉년에 물고기를 대중에게 주다. 발연수에서 계법을 설한 결과 승전 돌무더기를 제자로 삼아 강론하다. 불경 강의의 결과 심지 한 곳에만 눈이 오지 않도록 하다. 법회 참여시 발생한 이적 부처로부터 간자를 받다. 중악의 신이 법계를 달라고

요청

간자 날려 떨어진 곳에 절을 짓다. 동화사 창건 연기 설화 대현 장육상에게 얼굴을 돌리게 하다. 탑돌이할 때 발생한 이적 극심한 한발 시에 비를 내리다. 불경 강의의 결과

법해 내전을 물에 잠기게 하다. 법력으로 자신의 말을 믿 지 않는 군주 응징

서술층위에서 나타난 신이한 행적을 정리해보니, 특이한 현상이 발견 된다. 신통력이 도술인지 법력인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도술은 승려 가 아니어도 발휘할 수 있지만, 법력은 승려가 아니고서는 발휘할 수 없 다.29) 승려가 아니고서는 발휘할 수 없는 법력은 진표와 심지에게서 나 타난다. 진표는 자장보살로부터 수계하고 미륵보살로부터 간자와 계법을 받는다. 심지는 부처로부터 간자를 받고 그 간자를 날려서 떨어지는 곳 에 절을 짓는다. 돈독한 불심이 아니었다면 계법이나 간자를 받을 수 없 기 때문에, 계법이나 간자를 받는 행위는 틀림없는 법력이다. 그 이외 고승들의 경우는 애매하다. 다시 말해, 법력이라고 할 수도 있고 도술이 라고 할 수도 있는 신통력이 대부분이다. 불교와 연관을 지워놓았기 때 문에 법력이 아니라고 할 수 없고, 민간에서 회자되는 신통력이기 때문 에 도술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법력과 도술의 성격이 뒤섞인 사례가 왜 많은지가 의문이다. 고승전의 화자라면 법력을 많게 해야 제격이다. 서술층위에서는 이유가 나타나지 않으니, 서술층위에서 단서를 포착해서 인물층위에서 그 이유를 추론할 수밖에 없다. 서술층위에서 나타나는 지팡이, 소반, 우물, 새끼줄, 어별 등의 일상적 소품이 그 단서이다. 일상적 소품은 지극히 사소하나, 신통

29) 사전적 개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도술’은 도를 닦아 기묘한 조화를 부리는 술법 을 가리키고, ‘법력’은 불법의 위력을 가리킨다. 도술은 方士나 神仙이나 奇士나 異 人뿐만 아니라 승려도 발휘할 수 있지만, 법력은 승려 이외의 인물이 발휘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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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을 발휘하는 매체가 된다. 지팡이는 포대를 달고 시주댁으로 날아가 고, 소반은 먹은 고기가 사실은 먹지 않은 상태임을 드러내고, 우물은 복衣神童의 별세계와 소통하게 하고, 새끼줄은 원귀가 더 이상 준동하지 못하게 하고, 魚鼈은 한발로 인해 허기진 생민의 배를 채워준다. 일상적 소품으로 신통력을 일으킨다고 하는 발상은 도술 세계에서 흔하게 나타 나는 바인데, 화자가 민간의 도술을 고승전에 가져와서 법력의 성격을 지니도록 했다고 할 수 있다.

민간의 도술을 그대로 가져왔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민간에서 도술 을 부린다고 할 때는 목적이 있다. 가령, 지팡이로 도술을 부릴 때는 무 엇을 가리키거나 상대방을 때리거나 고리에 걸어 당기기 위함이다. 여타 일상적 소품 또한 이와 다를 바 없다. 결국, 목적이란 세속적 이익이다.

세속적 이익을 도모한다고 할 때 이익의 크기만큼이나 욕망이 작동한다 고 보아야 한다. 정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고승전에서는 신통력이 세속 적 이익과는 무관하게 발휘된다. 어느 경우에니 고승 그 본인의 이익과 는 무관하고, 불법을 선양하거나 민중을 교화하거나 하는 데 활용된다.

결국, 고승전의 화자는 민간에서 도술의 껍데기만 가져왔다. 민간의 도 술을 가져오되 도술 안에 들어 있는 세속적 욕망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고승의 불교적 심성을 이입시켰다고 할 수 있다. 민간의 도술은 이렇게 해서 상당 부분 법력이 되었다.

도술을 통해보니, 고정관념이 없는 고승들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특 징은 두 가지다. 가치관의 기준을 자기 삶의 내부에 둔다는 점과 聖俗不 二의 경지를 추구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민간의 도술에서 고정관념을 제 거한 다음 그 자리에 불교적 심성을 이입하고, 일상적 소품을 활용해서 신통력을 발휘했다고 하기 때문에 이렇게 볼 수 있다. 고정관념이 강한 고승들의 경우는 어떠할 것인지 불을 보듯 뻔하다. 가치관의 기준을 자 기 삶의 외부에 둘 뿐 아니라 聖과 俗을 分別하기까지 한다. 민간의 도 술을 가져오되 세속적 욕망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겼다. 이렇게 보니, 일연은 고승을 입전할 때 세속적 욕 망을 분기점으로 삼는다. 고정관념이 강한 고승들의 경우는 세속적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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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남겨두고 고정관념이 없는 고승들의 경우는 세속적 욕망을 제거해 버리기 때문에 이렇게 볼 수 있다.

2. 異人說話의 전승문법 수용

고정관념이 없는 고승들, 즉 양지, 혜숙, 혜공, 의상, 진표, 승전, 심지, 태현, 법해의 경우는 행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각 고승전의 화자가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고승의 행적이 대부분 감추어져 있고 일화 몇 가지만 세상에 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화자가 소개하는 일화를 보면 온통 신이한 행적뿐이다. 먼 거리를 단번에 이동했다든지 이곳에 있던 자가 동시에 저곳에도 있었다든지 높은 곳을 오를 때 계단을 밟지 않는 다든지 한다. 이런 고승의 형상은 󰡔삼국유사󰡕 집필 이전부터 전승되어온 異人說話의 異人과 상당히 닮아 있다. 고승전의 서술층위에서 고승들을 이인설화의 이인과 유사하게 형상화해 놓은 이상, 고승전의 고승이 이인 설화의 이인과 어느 정도 유사하며 일연의 입전의식이 무엇인지를 따져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인설화에 나타난 이인은 자취를 감춘 채 예사롭지 않은 삶을 산 다.30) 예사롭지 않다고 할 때, 능력이 탁월하다는 의미이다. 도술, 주술, 예지 능력이 그런 예이다. 이런 능력을 갖추었다면 세상에 나설 만도 하 나, 이인은 의도적으로 세상에 자취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아예 자취를 감추었더라면 세인에게 알려지지도 않았을 터이나, 최소한 세인에게 알 려질 정도의 자취는 드러낸다. 사는 곳이 정해져 있지도 않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살아가기도 하고, 사람이 희소한 제도권 밖의 궁벽한 곳에 서 살아가기도 한다. 시정에서 살든 궁벽한 곳에서 살든 간에 이인이라 고 하면, 반드시 한 번 이상은 사람이 있는 곳으로 와서 능력을 발휘한 다. 이인 형상이 이렇게 나타난 시기는 알기 어렵다. 4세기에 만들어진

󰡔搜神記󰡕나 󰡔抱朴子󰡕에 이인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니,31) 구전의

30) 이인의 전반적 형상에 대해서는 趙東一, 「口傳說話에 나타난 異人의 면모」, 󰡔韓國 說話와 民衆意識󰡕, 正音社, 1985, 133~157쪽에서 잘 다루었다.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