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8호 2021 August
유럽의 공동체 자산화와 지역 이익 선순환
이영범 경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우리가 공동체성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도시에서 공유와 공존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가치이며 실천력이기 때문이다. 도시공간에서 지속적으로 공동체성이라는 이슈에 집착하 여 그 근본 가치를 찾아 나서는 것도 공동체성이 결국은 내가 중심이 된 세상, 사유(私有) 가 지배하는 도시에서 인간이 과연 인간다움으로 존중되고 있는가를 묻는 화두이기 때문 일 것이다. 도시에서 혼자의 삶이 함께 사는 삶으로 전환되거나, 궁극적으로는 함께 사는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이 의미를 가지려면 공(公)과 사(私)의 이분법적 대립 구조나 사유 (私有)의 지배 가치가 만드는 갈등과 모순을 보완할 수 있는 제3의 가치가 필요하다. 이의 대안적 가치로 등장한 것이 공동체성이다. 사유(私有)와 공유(共有), 사익(私益)과 공익(公益) 의 극단적인 분할에서 생기는 삶의 공백 지대를 메우고 양분화된 가치를 통합할 수 있는 대안적 가치를 찾기 위해 우리는 공동체 자산화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공동체 자산화에서 자산은 물리적 자산, 사회적 자산, 그리고 경제적 자산으로 나누어 지며, 대체로 공동체 자산화는 물리적 자산화에서 출발한다. 공동체 자산화는 물리적 시설 (건물이나 땅)을 시민사회가 소유하거나 사용하여 사회적 가치와 이익을 창출하고, 창출된 이익은 다시 시민사회의 지속가능한 복지를 위해 순환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공동체 자산화여야 하는가? 지금까지 진행된 마을공동체나 지역재생사업에서 주민공동체나 시민 주체가 지역 기반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가치실현과 운영의 재정적 독립을 가능하게 하는 자산(asset)의 부재였다.
지역 기반 공동체 활동의 지속성과 가치의 확장적 실천은 재정과 운영의 독립성에 좌우 된다. 아무리 좋은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더라도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더 큰 가치로 확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행정의 지원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수익구조를 확보해야만 한다.
이때, 사회적 가치와 수익이 동시에 가능한 공동체 활동의 수익모델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게 자산이다. 즉, 공동체 자산화의 가능성은 자산의 취득 여부에 달려 있다. 공동 체가 활동거점으로 자산을 확보하여 지속적인 활동으로 지역사회와의 가치를 공유하며 꾸
공동체성과
공동체 자산화
도적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자산을 갖지 못하여 활동의 지속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지역을 떠나거나 활동을 접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했다.
특히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지역에서 벌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이슈 화되면서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주체들의 지속가능한 활동은 불가능해졌다. 도시재생 행 정의 하향식 사업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주체로서의 공동체 성장과 자기 주도성에 기반한 운영의 지속성 확보가 대안으로 자리 잡으면서, 서울시나 행정안전부에서 점차 자 산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제도를 만들어 지원하기 시작했다.
최근 시민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지역 기반의 자산을 취득하면서 마을 펍이나 공동체 주택 등의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초기 자금 지원과 행 정안전부의 지역 자산화 지원사업 등을 통해 지역에서 공동체 가치 실현을 위한 자산취 득 비용을 지원 받게 되면서 초기 자기자본금의 규모가 최소화되었기 때문이다. 민간임대 에 기반한 자립재정을 통해 지역의 소규모 자산화의 가능성을 보인 서울 해방촌의 공유주 방 ‘후암주방’이나, 청년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과 달리, 목포 의 ‘건맥1897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마을 펍과 현재 조성 중인 마포의 ‘해빗투게더(have it together)’는 공공으로부터 자산취득 초기 비용을 지원 받게 되어 가능하게 된 사례이다.
이처럼 공동체가 자산을 기반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지속적으로 실현해 나가는 사례가 계 속 늘어나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공동체 자산화는 공간을 공유하여 사회적 이익을 실현하는 것을 기본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공동체 자산화가 마을 단위나 특정한 공동체 단위를 기반으로 시민사회의 자율적 성 장을 돕기 위해서는, 먼저 자산을 단순히 시설이나 공간의 공유 차원에서 인식하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동체 자산을 거점으로서의 시설이 아니라 공간, 주체, 프로그램이 통합
커뮤니티
지역 유휴공간
공유경제
공간 주체 프로그램 자산화
asset
사회화
참여 소통 협력
일상화 가치의 공존거주 가치 삶의 공존 생활공동체
관계의 확장 지역 재생
<그림 1> 공동체 자산화를 통한 가치 실현의 프로세스
제478호 2021 August
된 플랫폼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간의 공유를 통한 자산화는 먼저 참여, 소통, 협력의 사회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며, 지속적으로 사회화 과정을 유지해야만 한다. 국내에서 공동체 자산화가 행정제도에 의존하여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면, 유럽에 서는 주민과 공동체 활동을 지향하는 시민단체들에 의해 공간점유(squatting)에서 출발해 시민 자산화를 일궈낸 사례들이 많다.
공동체 자산화는 사적 소유나 공적 소유를 사용권과 소유권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소유로 전환하고, 이를 통해 마을이나 공동체, 혹은 시민사회가 주체가 되어 사회적 가치와 이익 을 만들어내는 자산으로 개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에서의 공동체 자산화도 초기부터 제도화되어 다양한 지역공동체가 공공이 소유한 자산을 양도 받거나 취득하여 이를 기반으 로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개발하고 운영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산화의 출발이 공유지의 불법점거와 대안적 삶의 실험에서 출발하였음을 유럽의 다양한 도시에서 목격할 수 있다.
여기서 간략하게 소개할 코펜하겐의 ‘크리스티아니아(Christiania)’ 사례나 베를린의 ‘우파 파브릭(Ufa Fabrik)’의 사례 등이 모두 공유지의 불법점거인 스쾃(squat)에서 출발하였다.
이 사례들에서 나타난 과정을 정리하면 ① 제도화된 정책의 비판과 대안적 가치의 제시,
② 공간점거를 통한 사회적 이슈화, ③ 대안적 실험과 지역공동체와의 공유, ④ 지역 가치 의 재발견과 사회적 연대, ⑤ 대안 개발의 가능성 모색과 행정과의 협의, ⑥ 실행력 확보 (자산 개발과 공간경영)를 통한 사회적 이익 창출, ⑦ 공동체적 가치의 사회화와 지역사회 의 재구성, ⑧ 공동체 단위에서의 지구적 의제 실험과 실천의 확장 등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공동체 자산화는 궁극적으로 초기 참여 주체의 특정한 이해관계를 넘어, 비정치적 시민성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 다양한 접점을 만들어내어 정치인과 시민 사회 양방향의 지지를 획득한다.
해외사례 1: 덴마크 코펜하겐의 크리스티아니아(Christiania)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중심부에 위치한 자유도시 크리스티아니아는 덴마크 내에 존재하 면서도 국가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해방구로, 자치적 삶을 누리는 약 천 명의 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이곳은 덴마크의 오래된 해군 기지였는데, 1970년대 초 기지가 폐쇄 되자 집 없는 사람들과 자유로운 삶을 원하는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방치된 건물을 점유하 고 거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유도시가 형성되었다. 함께 모여 살면서 이들은 공동체적 삶 의 원칙을 디자인하였다. 중요한 안건이 있을 때에는 전원 합의제에 의한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하고, 화폐도 독자적으로 만들어 사용해왔다. 통행은 보도 및 자전거로 하며, 주민의 30%는 텃밭 농사나 목공예작업 등 공동체 내에서 활동하며 수익을 올린다.
유럽에서의 공동체
자산화 개념과 의미
의 주민점거가 불법이라는 최종판결을 내림으로써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하지만 덴마크 정부는 이들 히피 공동체의 퇴거를 강요하는 대신, 시세보다 훨씬 싼 값으로 땅을 매입할 것을 제안했고 주민들은 받아들였다. 크리스티아니아 사람들은 공동체 안팎에서 다양한 경제활동을 한다. 외부에 일자리를 얻어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 이 공동체 내부의 대장간이나 목공소, 공연장 같은 공동 작업장에서 일한다. 이곳의 대표 적인 경제활동으로는 크리스티아니아 자전거(Christiania Bike)가 있다. 수레가 달린 이 자전거는 고가에 판매되는 명품자전거로 인정받고 있다. 이곳 크리스티아니아 라디오 방 송국은 공동체의 이상과 다양한 음악을 코펜하겐시 일대에 송출하여 공동체 밖의 시민사 회와 다양하게 소통하기도 한다.
크리스티아니아에서는 공동체가 스스로 재원을 마련하여 토지주권을 확립한 뒤 크리 스티아니아 고유의 시민자치와 분권을 이룩할 수 있도록 토지소유권을 지속적으로 확보하 고, 이를 기반으로 공동체 자치의 경제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자유도시(free town)를 지향 하는 이들 크리스티아니아의 공동체 자산화 사례는, 자본주의 도시가 갖는 기존의 가치와 질서에 저항하는 사회적 실험인 동시에 꿈과 이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자유로운 공동체 를 구성하여 함께 살아가는 해방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해외사례 2: 독일 베를린의 우파파브릭(Ufa Fabrik)
우파파브릭은 3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며, 생태환경과 문화, 대안교육 분야를 중심으로 180명 이상의 직원이 운영하는 대안 공동체 마을이자 문화생태마을이다. 원래 이곳은 독 일 영화사 우파(UFA, 유니버설 영화배우협회)에서 1920년부터 1961년까지 영화를 찍고 필름을 현상하던 곳이었다. 독일의 분단과 함께 이 영화사도 폐쇄되었다가, 이후 생태환경 적 삶을 추구하는 집단이 이곳을 점거하면서 우파파브릭의 자산화에 기반한 공동체 마을 에 이르게 되었다. 1978년 예술가들과 생태환경 기술자들이 서베를린의 한 공원에서 일과 가족, 여가가 분리되는 자본주의의 기능적이고 구조적인 삶의 틀을 깨고 이 모든 것을 통 합하는 대안적인 삶을 실험하는 축제를 6주간 진행한 것을 계기로, 이들은 이런 실험적 삶
<그림 2> 공동체 자산화를 넘어 시민자치구를 형성한 크리스티아니아 전경
제478호 2021 August
을 지속하기 위해 1979년 방치된 영화촬영소였던 우파를 점거하게 된다. 이곳에서 그들은 생태환경의 대안적 삶을 실험하며 지속가능한 공동체로 성장했다.
<그림 3> 우파파브릭의 안내도와 친환경 건물
우파파브릭은 1만 8500㎡ 정도의 대지에 생태환경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여 빗물 저장과 에너지 자립을 위한 공동체 시설을 단계적으로 설계하였다. 빗물 정화 · 저장장치를 설치 하여 마을에 필요한 물을 충당하고, 옥상 지붕을 흙과 잔디로 덮어 냉방 에너지를 줄이며,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전력을 생산하는 등 에너지 자립을 통해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공 동체를 만들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공동체적 삶을 실천함과 동시에 지역사회와 생태환경, 문화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로써 생태공동체 의 가치를 지역사회로 확산해 초기에 불법으로 점거했던 이곳을 시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장소의 위탁을 통해 공동체 자산화를 실현하고 있다.
우파파브릭 안에 학교를 세워 이웃 주민과 함께 아이를 키우고 온 가족을 위한 교육, 건 강, 여가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학교뿐 아니라 마을 내에는 카페와 베이커리, 친환경 식 료품점, 영화관, 공연장 등 일상에 필요한 생활문화 요소들이 갖춰져 있고, 이곳을 통해 사 회적 이익을 창출하여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유지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지역사회에 열 려 있다. 이들 공동체의 가치와 활동은 지역사회와 공유되며 사회적으로 지지를 받음으로 인해 공존과 공유가 작동하는 지역 이익의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생태적 가치, 대안교육, 문화예술, 지역사회 공헌의 네 가지 가치를 통합적으로 실험하 고 실천하는 도시공동체인 우파파브릭의 자기주도적 지속성으로 베를린시 정부는 이곳을 2066년까지 시민들의 생태공동체 삶터로 장기 임대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도 이런 공동 체의 대안적 삶이 지속된다면 이 땅은 영구히 이들 공동체의 자산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앞에서 살펴본 유럽의 시민주도형 공동체 자산화 사례를 통해 자기주도적 공동체 자산화 는 공동체성을 넘어 지역사회와의 가치공유를 통한 이익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함을 알 수 있다. 지역공동체의 자산화에 기반한 사회적 개발이 지역사회에 내재된 자원의 잠재력을
맺음말:
공동체 자산화와
사회적 개발
적 이익을 창출하여 궁극적으로는 지역 사회의 자발적인 복지서비스까지 확대가 이루어져 지역 자치에 기반한 지역 이익 의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공동체 자산화 를 통해 다양한 가치가 연계되어 이익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지역재생을 이룩 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역할이 매우 크 다. 하지만 이런 공동체의 형성은 사회적 가치의 실천과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는 변화, 혁신을 꿈꾸는 자유로운 시민의 발 굴에서 출발한다. 개개인의 시민성이 공 동체성으로 발전하여 공동체 기반의 자 산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시민 개개인 의 시민성을 끌어낼 수 있는 일상생활에 서의 공동체적 가치를 발굴하고, 이를 공유하는 다양한 실험이 필요하다. 실험이 성공사례 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노력에 제도적 지원이 결합되는 것도 필요하다. 자산 취득 의 초기 비용을 지원하거나 세제 혜택을 통해 공동체의 활동이 자산화에 좀 더 쉽고 다양 하게 접근할 수 있을 때 자산 기반의 공동체 개발은 활성화된다.
공동체 자산을 통해 구현된 공공성의 가치가 지역사회 구성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일상 생활의 새로운 실천력으로 작동할 때, 자본에 의한 거대 개발에 저항할 수 있는 공동체 중 심의 대안적 개발이 가능해진다. 유럽사회의 공동체 자산화 사례는 기후변화와 같은 지구 적 의제(global agenda)가 개인 삶의 영역과 공동체의 일상을 통해 어떻게 로컬 차원(local level)에서 실천될 수 있을지를 보여준다. 이를 위해서는 공동체 자산화라는 판에서 다양 한 가치를 실험하고 실천하는 주체들의 연대와 협력, 그리고 도시행정과의 수평적 거버넌 스를 어떻게 유도해내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지역공동체가 자산으로서의 거점공간을 확보 하여 이 공동체 자산을 사회적 가치실현을 위해 운영하면서 수익을 만들고 이 수익을 다시 지역사회로 환원하여 모두의 공동체로 확장해 나갈 때, 공동체 자산화는 도시의 혁신과 변 혁을 이끌어내는 동력이 될 수 있다.
김은희, 박소영, 서수정, 윤주선, 이영범, 이영은, 이재우 외. 2019. 당연하지 않은 도시재생. 세종: 건축공간연구원.
김은희, 이영범. 2011. 사회적 기업을 이용한 주거지 재생. 안양: 국토연구원.
이영범. 2013. 지역공동체 기업의 사회적 개발에 관한 연구: 런던 코인스트리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EU연구 제33호:
281-312.
참고문헌
<그림 4> 공동체 자산화를 통한 지역사회의 재구성
유휴시설
거점공간화 참여와 공간주권
민·관협치
가치의 연결망 운영의 자기주도성
지구적 의제의 로컬화
지역사회의 재구성
공동체 자산화 실험과 실천의
사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