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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시에르의 정치적인 미학을 통해 본 에 대한 연구 - 로드첸코의 팍투라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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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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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투고일_2019.06.10. 심사기간_2019.07.01-14. 게재확정일_2019.08.09. 랑시에르의 정치적인 미학을 통해 본 <공간구축>에 대한 연구 - 로드첸코의 팍투라를 중심으로 A Study on “Spatial Construction” through Jacques Rancière’s Politics of Aesthetics - focused on Alexander Rodchenko’s Faktura 김원영_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예술학과 / 박숙영(교신저자)_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학부 교수 Kim, Won Young_Dept. Studies in Visual Art, Graduate School of Ewha Womans University / Park, Sook Young(Corresponding author)_Dept. Sculpture, College of Art and Design of Ewha Womans University. 차례. 1. 서론 1.1. 연구의 배경 1.2. 연구의 목적 및 방법 2. 물질에 대한 새로운 감각 : 팍투라(Faktura) 3. 랑시에르의 정치적인 미학 3.1. 미학적 예술 체제 3.2. 감각적 환경으로서의 매체(medium) 4. 로드첸코의 <공간 구축>에 나타난 팍투라의 의의 4.1. 예술의 원칙으로서의 평등 4.2. 예술의 자율성에서 미적 체험의 자율성으로 5. 결론 참고문헌.

(2) 랑시에르의 정치적인 미학을 통해 본 <공간구축>에 대한 연구 - 로드첸코의 팍투라를 중심으로 A Study on “Spatial Construction” through Jacques Rancière’s Politics of Aesthetics - focused on Alexander Rodchenko’s Faktura 김원영_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예술학과 / 박숙영(교신저자)_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학부 교수 Kim, Won Young_Dept. Studies in Visual Art, Graduate School of Ewha Womans University / Park, Sook Young(Corresponding author)_Dept. Sculpture, College of Art and Design of Ewha Womans University. 요약 중심어 팍투라 공간 구축 로드첸코 랑시에르. ABSTRACT Keyword Faktura Spatial Construction Rodchenko Rancière. 본 논문의 목적은 러시아 구축주의자 알렉산더 로드첸코(Alexander Rodchenko)의 <공간 구축>에 나타난 팍투 라(Faktura)를 분석하여 그 예술 실천에 함의된 정치적인 의의를 규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간 구축>의 팍 투라는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의 정치적인 미학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랑시에르의 정치적인 미학 은 기존 예술 체제에서 소외되었던 감각을 공통의 감각 경험으로 드러내는 예술의 실천이자 사회의 모든 구성 원들이 자율적이고 개방적인 감각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행동방식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회적인 실천이다. 이 러한 관점에서 당시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을 반영한 로드첸코의 예술 활동에서 기존의 위계적인 체제를 재구축 하여 평등과 자유로운 해방을 추구한 정치적인 미학의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로드첸코는 <공간 구축>에서 기 존 체제에 대한 저항과 전환의 방법으로 당대 발명된 산업재료가 곧 작품이 되는 팍투라를 강조하였고, 산업 시 스템적인 제작방식을 적용하여 그 과정을 드러내었다. <공간 구축>시리즈는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구축 방식으로 의 결합과 재구축, 빛과 물질의 조응 관계, 역동적인 움직임 등을 실험했고, 작품의 설치와 전시를 일상 공간으 로 확장하여 관람자와의 상호작용을 중시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부르주아 중심의 예술 체제인 예술의 자율성을 비판하고 기존 예술의 위계질서를 재구성하여 예술의 해방을 지향하는 미적 체험의 자율성을 중시한 것이다. 로 드첸코의 팍투라는 당시 러시아가 처한 정치적인 상황과 예술과의 불가분성을 성찰한 정치적인 미학으로 예 술의 조형적 혁신이 단순히 특정한 재료의 조합을 넘어서 그동안 소외되었던 감각에 주목하여 예술이 모두를 위한 삶의 현장으로 전회하는 실험이자 현실적인 삶에 개입하고자 한 정치적인 실천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se the political significance of the art activities by analyzing the Faktura shown in the Russian Constructivist Alexander Rodchenko's Spatial Construction series. For the study, the analysis was focused on Politics of Aesthetics theory of Jacques Rancière. Politics of Aesthetics is an art practice that seeks to show itself as a common sense experience by paying attention to a sense that has been alienated from the existing system, and a social practice in which all members of society want to change their senses and attitudes through an autonomous and open sense. From this perspective, one can find a point of Politics of Aesthetics in Rodchenko's art activities that reflected the political environment of Russia at that time, seeking equality and free liberation by recreating the existing hierarchical system. In the Spatial Construction series, he emphasized the Faktura, in which industrial materials invented at that time become art works as a way of resisting and switching to the traditional vertical structure, and revealed the process of an industrial system of art works. The Spatial Construction series experimented with the combination and reconstruction of scientific and mathematical construction methods, the interaction of light and material object, and dynamic movements, and valued the interaction with the viewer through the installation method and expansion of the living space of the work. These changes are aimed at criticizing the autonomy of art, which is a bourgeois-centered art system, and in the pursuit of the autonomy of aesthetic experience, which aims for the liberation of art by reconstructing the hierarchical order of existing art and creates a new sense. As a result, Rodchenko’s Faktura is a political aesthetic reflecting the political situation in Russia at the time and its inseparable from art, indicating that the art's formative innovation was a political practice that went beyond just a certain combination of materials and was an experiment to be reunited with the field of life for all and an intervention in a realistic life.. 66.

(3) 1. 서론 1.1. 연구의 배경 19세기 중엽 이후 유럽에서 급속도로 진행된 산업화는 자본주의 체제로 발전하면서 프롤레타 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계급 갈등을 증폭시켰고, 결과적으로 유럽 전역에 사회주의 체제를 확산시켰다. 특히 1917년 프롤레타리아 주도의 정치적인 혁명이 발생한 러시아에서는 계급 간의 위계질서가 무너짐으로 인해 새로운 관계 정립이 필요한 시기였다. 이러한 불안정한 정치 적인 환경에서 예술가들은 그동안 주목받았던 부르주아를 위한 이젤 회화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품고 당시 서유럽에서 유입된 과학기술을 사회주의 체제의 유토피아를 현실화시켜줄 대안으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이 시기에 출현한 러시아 구축주의(Constructivism)는 기존의 예술 체제인 ‘예술을 위한 예술 (Art for art)’을 비판하고, 삶의 현장에 개입하고자 ‘예술을 삶으로(Art into life)’ 라는 슬로 건을 제시하며 사회적인 실천을 성취하고자 하였다. 러시아 구축주의자들은 러시아 혁명 이후 레닌의 정치체제에 맞게 과학기술을 적용하여 사회적 유용성을 지향하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예술 실험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사회주의의 주요 이념이었던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관념을 종합한 물질문화(Material Culture)로 나타났으며, ‘팍투라(Faktura)‘라는 새로운 미 학을 창출하였다. 팍투라는 재료 자체가 가진 본래의 속성과 제작과정을 중시하고 형식과 관계 의 구성을 드러내며 실제 공간을 점유하는 특성을 가진 기능주의 미학이다.1) 이러한 의미에서 당시 예술과 삶의 구분이 사라진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추구한 러시아 구축주의의자들은 팍투라를 가장 중심적인 실천 방법으로 수용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본 연구는 러시아 구축주의자 알렉산더 로드첸코(Alexander Rodchenko 1891-1956)의 <공간 구축 Spatial Construction>시리즈에 나타난 팍투라에 주목하고자 한 다. 로드첸코는 절대주의(Suprematism)의 비대상적인(Non-objective) 회화에서부터 러시 아 구축주의, 나아가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아방가르드 전체를 아우르며 활동했지만 그동안 사진과 디자인, 건축 등 공리적인 측면에서의 활동이 더 깊이 연구되어왔다. 그러나 로드첸코는 정치와 예술의 불가분성을 인지하고 물질적인 질료와 구축 방식을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예술 프로젝트들을 꾸준히 실천해왔다. 본 논문에서는 로드첸코의 <공간 구축>에 나타난 조형적인 혁신이 어떻게 정치적인 미학으로 구현되었는지 고찰해보고자 한다. 1.2. 연구의 목적과 방법 본 논문의 목적은 러시아 구축주의자 로드첸코의 <공간 구축>시리즈에 나타난 팍투라를 분 석하여 그 예술 실천에 함의된 정치적인 의의를 규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로드첸코의 작품 은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 1940- )의 정치적인 미학의 관점으로 분석해보고자 한 다. 먼저 1910년대 러시아의 언어 혁명에 나타난 팍투라 개념의 전개과정과 러시아 미술에 나타난 팍투라의 대조적인 두 양상을 살펴본 후에 기존의 위계적인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 난 팍투라 미학의 개념을 정립하고자 한다. 이론적 배경으로는 랑시에르의 정치적인 미학 개념 을 살펴볼 것이다. 랑시에르는 1960년대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1918-1990)의 제자로 그의 마르크스 이론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68운동 이후 알튀세르의 이론이 지식인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구조인 것을 비판하며, 기존의 위계 구조를 자율적이고 평등한 구조로 재구축하는 것이 정치적인 실천임을 주장하게 된다. 나아가 진정한 해방과 평등은 지적 차원의 문제가 아닌 감각적 차원의 문제임을 인식하게 되면서, 자율적인 미학적 예술 체제를 제안하여 그들의 감정과 행동방식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실천으로서의 정 치적인 미학에 주목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연구자는 당대 러시아의 정치적인 상황에서 로드첸코의 예술 작품에 나타난 평등 개념, 미적 해방과 미적 체험의 자율성이 <공간 구축>에 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로드첸코의 예술 실천이 1910~20년대를 1) 이영철 엮음, 『현대미술과 모더니즘론 : 형식주의, 맑시즘, 후기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 시각과 언어, 1997, p.8. 기초조형학연구 20권 4호 (통권94호). 67.

(4) 넘어 60년대 현대미술의 새로운 전환점의 선구적인 지표가 되었다는 점과 현대 건축과 디자 인, 사진과 영화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공간 구축>에 나타난 정치와 예술의 불가분성 을 고찰하는 것은 동시대의 관점에서도 연구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본 연구에서는 로드첸코가 1918년부터 1925년 사이 팍투라 미학을 적용한 세 가지 <공간 구축> 시리즈를 연구대상으 로 삼았다. 작품 분석을 위해 작품 정보와 제작과정에 대한 설명은 러시아 구축주의와 로드첸 코에 대한 단행본과 학술논문, 강연 자료 등 다양한 문헌 자료와 로드첸코 관련 전시를 기획한 미술관의 웹사이트 등을 참고하였다.. 2. 물질에 대한 새로운 감각 : 팍투라(Faktura) 20세기 초에 서구 유럽에서 시작된 회화의 추상적 경향과 입체주의 공간 분할과 같은 기존 재현 예술에서의 해방을 공통적인 특징으로 갖는 아방가르드 미학이 러시아에 유입되었다. 재현에 대한 저항은 미술뿐 아니라 문학에서도 나타났는데, 특히 1910년대 러시아 미래주의 시인들은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물질에 대한 새로운 감각에 주목하여 언어 혁명을 일으켰 다. 본 장에서는 그 전개과정을 통해 팍투라 개념을 정립해보고자 한다. 1910년에 발족한 러시아 미래주의(Futurism)2)는 부르주아 중심의 전통과 인습에 대한 저항 의 전략으로 기존 러시아 문학이 담지하고 있는 규정을 파기하고자 했다. 일반적으로 언어는 기표가 기의에 종속된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해석으로 의미를 전달해 왔다. 이렇게 규정된 체제는 점차 이상적인 미(美)의 기준을 만들어냈고 위계적이고 억압적인 구조로 고착화되었다. 러시아 미래주의자들은 부르주아 체제를 지속시키는 이런 구조에 대한 저항으로 전통적인 시적 규정을 파기하고 기의에 대한 일률적인 해석을 거부하게 된다. 러시아 미래주의 시인 다비드 부를류크(David Burliuk)와 문학가이자 미술가인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Vladimir Mayakovsky)는 미래주의 선언문 <일반적 취향에 가하는 따귀 A Slap in the Face of Public Taste>를 통해 전통적인 언어체계에 대해 공식적인 저항을 선포했으며, 방법적인 측면에서 ‘언어(言)에 대한 물적이고 구성적 태도’3)를 구현하고자 시각적으로 독특 한 형태를 만들었다. 그들은 내재된 의미가 없어도 실제로 볼 수 있는 물적 형태의 시각적인 감각에 주목하여 물질화된 언어의 형태를 말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주장하였다. 1914년 마야콥스키도 언어가 가진 일률적인 메시지 전달 기능을 해체시켜야 진정한 창조성이 발현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말(言)들에게서 말을 창조할 자유’4)를 조형예술의 창의성 원리로 언급했 다. 그것은 기존의 언어규정에서 벗어나고자 언어를 탈의미화 시키는 방법으로써 언어 자체가 갖고 있는 시각적이고 형태적인 측면을 중시한 것이다. 이를 위해 감정의 연상 작용으로부터 오는 자유롭고 새로운 시적 언어를 창조하고자 언어 자체를 시각적인 것으로 물질화시키는 팍투라 전략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미래주의자들은 새로운 단어와 비논리적인 문구를 시각적 인 이미지로 배열하는 방법을 취하는데, 그것은 기존 언어의 구성에서 벗어나 특정 물질의 장식품이나 표면에 첨가된 무늬 같은 시각적인 개념5)으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언어를 시각 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러시아 미래주의는 이탈리아 미래주의나 다다에서 관습에 저항한 방법으로 수행한 파괴의 기쁨보다는 소리와 문자의 파편들을 재조합하여 시각적이고 형태적 인 측면에서의 단어 구축물을 만드는 방법을 더 선호하였다.6) 이와 같은 맥락에서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 운동을 발족시킨 로만 야콥슨(Roman Jakobson)을 비롯한 언어학자들 또한 전통적인 예술의 상징적인 속성을 타파하고 의미의 부재를 통해 물질 즉 재료 자체의 물리적. 2) 이택광, 『세계를 뒤흔든 미래주의 선언』, 그린비, 2008, pp.136-137. 참조. 3) 1912년 발표된 러시아 미래주의 선언문 “A Slap in the Face of Public Taste”의 제목을 번역한 것으로, 볼셰비키당을 지지한 최초의 예술가 공동체로써 부를류크(David, Burliuk), 클루체니흐(Aleksei Kruchenikh), 훌레브니코프(Velimir Khlebnikov), 마야 콥스키(Vladimir Mayakovsky) 4인이 공동 서명하였다. 인문예술잡지 F, 2011년 2호, pp.56~62. 참조. 4) 블라디미르 마야코브스키,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 김성일 역, 책세상, 2005, p.256. 5) 이택광, 『세계를 뒤흔든 미래주의 선언』, 그린비, 2008, pp.136-137. 참조 6) 할 포스터, 로잘린드 크라우스, 이브 알랭 브아, 벤자민 H. D. 부클로, 『1900년 이후의 미술사』, 배수희 외(역), 세미 콜론, 2007, p.127. 68.

(5) 감각을 드러내는 것이 당시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같은 러시아의 정치적인 현실과 긴밀한 관련 이 있다고 본 것이다.7) 언어 혁명은 과거의 전통적이고 인습적인 미학과 기존의 일반적인 해석과 메시지 전달 기능이라는 기호학적 의미 체계를 벗어나 새로운 감각의 전환을 추구한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학의 출현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지점에서 기존 언어체제에 대한 저항은 당시 미술이 가진 고유한 속성이었던 재현 기능에서 벗어나고자 한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의 혁신적인 전략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1913년 미하일 라리오노프(Mikhail Larionov)는 ‘광선주의(Luchism) 선언’에서 “모든 회화는 채색된 표면과 그것의 팍투라(채색된 표면의 상태와 성질)에서 얻는 감흥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하였다. 그것은 빛에 의해 분할된 색채가 빚어내는 조형적인 구성을 중시한 시도로써 러시 아 미술이 그동안 사실주의에서 강조했던 명확한 재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그 이후 팍투라는 러시아 미술에서 선언문과 텍스트에 개념적으로 정의되기 시작 하면서 러시아 구축주의의 예술 실험에서 가장 핵심적인 미학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1916년 비평가 니콜라이 타라부킨(Nikolai Tarabukin)은 저서 <회화 이론의 실험 A study in painting theory>에서 ‘예술가의 주관적인 영감이 배제되고 재료가 예술가에게 형태를 지시’ 하는 현상을 구축주의의 원칙으로 정의한 바 있다.8) 당시 예술가들은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감각할 수 있고 모든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팍투라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새로운 재료와 방식을 통해 구축한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조합을 예술 작품의 제작원리로 삼게 된 것이 다. 이와 같이 언어와 미술에서 전개된 팍투라는 기존에 규정된 재현과 해석의 기능에 대한 저항이자 이상적인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 현실과의 개입에서 탄생된 새로운 미학이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에서 팍투라는 절대주의와 구축주의에서 각기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 다. 먼저 절대주의 창시자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의 작품에 나타난 팍투라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말레비치는 1915년 당시 과학기술을 정신적인 것으로 파악하여, 재 현 대상(object)과 주제(subject) 없이 단순한 색채를 통한 비대상(Non-objective)적인 회화 를 추구하였다. 공백(void)으로 표현된 비대상 회화에는 실재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 에 캔버스의 색과 표면 질감(texture)만 남게 되었다. 이에 표면적인 측면에서의 팍투라는 재현 회화에 대한 부정의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말레비치는 1915년 12월에 열린「0.10」전 시<그림 1>9)에서 “회화에서 색채와 팍투라는 그 자체로 끝이다. 동시에 그것들이 그림의 본질이다.10)”라고 말하며 재현 회화를 부정하고 그 대신 시각적인 감각으로 드러난 색채와 팍투라를 중시했다. 류보브 포포바(Lyubov Popova)도 "팍투라는 회화적 표면의 본질이다.11) "라며 회화의 주제나 대상이 아닌 표면에서 감각되는 물감의 물성과 캔버스의 물질감 등을 <그림 1> 「0.10」 전시에 출품한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작품들, 1915.. 강조하였다. 이와 같이 러시아 회화에 나타난 팍투라는 그동안 부르주아를 위한 장식적인 이젤 회화와 재현 개념에 대한 저항 방식으로, 표면적인 측면에서의 물질 감각(texture)이 드러난 것이다. 당시 말레비치는 혼란스러웠던 러시아의 정치적인 환경에서 모든 사람이 인 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존중받는 정신적인 혁명을 원했기 때문에 재현에 담긴 보편적인 해석 을 거부하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인 공백의 순수한 미적 가치로써의 절대주의를 주장한 것이다. 이와 대조적인 양상으로 나타난 물질적인 측면에서의 팍투라는 러시아 구축주의자들의 작품 에서 찾아볼 수 있다. 로드첸코는 작업 초기 예술의 자율성과 정신성의 극한을 추구한 절대주 의 회화의 추종자였으나, 당대 러시아의 유물론적 미학을 구현한 타틀린의 영향을 받아 구축주 의자로 전환하면서 물질적인 측면에서의 팍투라를 탐구하게 된다. 로드첸코는 <검정 위의 7) 이장욱, 『혁명과 모더니즘』, 랜덤하우스중앙, 2005, pp.177-178. 참조. 8) Brandon Taylor, 『After Constructivism』, University of Oxford, 2012, p.31. 9) 12월 페트로그라드에서 열린 「0.10 : 최후의 미래주의 회화 The Last Futurist Exhibition of Paintings」 전시. 10) 김현화, 『현대미술의 여정』, 한길사, 2019, p.338, 말레비치는 “Colour and faktura in painting are ends in themselves', at the same moment, they are the essence of painting.” 11) “Faktura is the essence of the painterly surface.” 당시 포포바는 재현 예술에 대한 저항의 의미에서 캔버스 표면 위 에 공백을 드러낸 것으로 팍투라만이 존재함을 강조하고 있다. 기초조형학연구 20권 4호 (통권94호). 69.

(6) 검정 Black on Black>(1919)<그림 3>을 통해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 Black Square>12) (1915)<그림 2>의 표면적인 팍투라의 비공리성을 비판하며 팍투라 개념이 실제적인 실천을 위한 유물론적 가치임을 강조하였다. 로드첸코보다 먼저 물질적인 측면에서의 팍투라를 처음 시도한 예술가는 구축주의의 창시자 인 블라디미르 타틀린(Vladimir Tatlin)이다. 그는 1913년 파리에 있는 피카소의 스튜디오에 서 회화를 위한 콜라주 습작인 <기타 Guitar>(1912)<그림 4>의 입체주의적인 공간 분할에 <그림 2> 말레비치,‘검은 사각. 서 영향을 받아 기존의 조각 패러다임을 뒤집는 획기적인 실험을 하였다.13) 타틀린은 입체주. 형’, 캔버스에 유채, 1915.. 의에 기원을 둔 구축에 대한 아이디어로 인해 <재료들의 선택 : 철, 스투코, 유리, 아스팔 트>(1914)<그림 5>를 제작했다. 그는 먼저 재료들을 늘어놓고 그 본질적인 속성이 적절한 형태를 갖출 수 있도록 구성하였는데, 이러한 시도를 통해 새로운 재료가 새로운 예술적 형태 를 생산해 내는 방식이 창출된 것이다. 이는 ‘재료가 형태를 지시한다’는 타라부킨의 팍투라 개념이 구현된 것으로 재료의 속성과 제작과정을 통해 실제 공간을 점유하는 팍투라의 특징이 구축주의의 원칙으로 발전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 전통적인 조각은 대리석, 나무, 청동, 흙 등을 재료로 조각과 소조의 방법으로 견고한 양감을 중시한 완결된 입체물이었다. 반면, 구축주의자들은 베니어판(plaster), 금속(iron), 유리(glass), 철사(wire), 알루미늄(aluminum), 아스팔트(asphalt) 등 당대 개발된 산업재료. <그림 3> 로드첸코,‘검정 위의 검정’. 캔버스에 유채, 1918.. 의 조합으로 그 형태를 드러냈다. 재료들은 각 속성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를 지시하는데, 가공된 나무 베니어판은 가볍고 컷팅이 가능해서 직선의 기하학적인 형태로 구현되었고, 금속 철판은 자르거나 구부릴 수 있어서 주로 곡선 형태로 표현되었다. 유리는 반사와 투명의 속성 으로 인해 내외부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존재했으며14) 굴절 속성으로 인해 왜곡된 형태로 표현 되기도 했다. 특히 금속과 유리는 반사 기능으로 인해 빛과 그림자의 상호작용을 유도하기에 적합했다. 철사는 매달거나 연결하는 기능이 있어 설치 방법과 공간 구축으로의 확장을 가능하 게 했으며, 아스팔트는 재료들 사이에서 생겨난 빈 간극을 채우는 기능이 있었다. 재료들의 구축을 위해 사용한 산소용접기, 전기톱, 드릴 등 산업 공구들은 기계미학의 관점에서 작품의 제작에 활용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재료들의 기능적인 속성을 드러내는 팍투라는 산업재료의 특성상 선과 면이 더욱 강조된 기하학적인 추상 형상들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타틀린은 기존 재현 조각의 관점에서 중시했던 구체적인 주제와 대상의. <그림 4> 피카소,‘기타’, 꼴라주, 1912.. 재현이라는 조형 원칙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오히려 기존에 조형의 구성요소로 도입되었던 점, 선, 면의 추상 형태를 더 중시하였다. 타틀린은 일상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저렴한 산업재 료들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여 산업재료가 구현하는 형태와 제작방식 그리고 기능성을 통해 산업생산물에 대한 가치를 높이고자 하였고, 이질적인 재료들의 조합이 빚어내는 낯선 감각과 조립과 해체의 방식을 통한 긴장과 유용성 등이 새로운 예술의 본질임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재료들의 선택><그림 5>은 팍투라가 예술의 가치를 획득한 최초의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타틀린은 유물론적 관념에서 과학기술을 실제적인 것으로 파악하였고 각 재료들의 속 성을 살리면서 동시에 구조적 역할을 강조했으며, 예술을 통해 그 개념을 현실화시키고자 하였 다. 니콜라이 푸닌(Nikolay Punin)은 “프롤레타리아는 새로운 집, 새로운 거리, 일상생활을 위한 새로운 사물들 창조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의 미술은 사물들을 나태하게 바라보기 보기. <그림 5> 타틀린,‘재료들의 선택 : 철, 스투코, 유리, 아스팔 트’, 1914.. 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예술적인 사물을 만들어내는 일이며, 공장인 것이다”15)라며 새로 운 프롤레타리아 미술의 길을 제시한 물질문화를 강조하였으며 미술에 있어서도 새로운 전환 12) 말레비치는 <검은 사각형 The Black Square>(1915)을 통해 절대주의를 선언했다고 할 수 있다. 1915년 형태의 ‘영 (Zero)’을 지향한 10명의 작가가 모인 전시회 ‘마지막 미래주의: 0.10’ 전시의 기획 의도는 순수한 조형요소가 실재하 는 대상보다 우위에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3) 할 포스터, 로잘린드 크라우스, 이브 알랭 브아, 벤자민 H. D. 부클로, 『1900년 이후의 미술사』, 배수희 외(역), 세 미콜론, 2007, pp.125-127, 참조. 14) 할 포스터, 로잘린드 크라우스, 이브 알랭 브아, 벤자민 H. D. 부클로, 앞의 책, p.126. 15) 카밀라 그레이, 『위대한 실험 러시아 미술』, 전혜숙 역, 시공아트, 2012, p.220. 70.

(7) 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타틀린은 「0.10」전시에 <코너 역 부조 Corner Counter-relief>(1915)<그림 6>를 출품 했는데, 이 작품은 철사와 막대를 축으로 코너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매달아 놓은 공간 구축 물로 재료가 생성한 볼륨과 리듬이 강조되었다. 이 작품은 1917년에 카페 피토레스크라는 생활공간에서도 설치되어 실제 재료와 실제 공간 그리고 관람자와의 관계를 탐구했다. 결과적 으로 <코너 역부조><그림 6>는 기존 조각이 가진 덩어리라는 폐쇄된 형태 개념으로부터 벗어나 ‘공간 자체를 조각한다’는 열린 형태의 개념으로 역동적이고 장소특정적인 공간으로 <그림 6> 타틀린,‘코너 역 부조’,. 조각의 개념을 확장시켰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2015..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러시아 미술에 나타난 팍투라의 두 가지 양상을 정리해보면, 표면 질감(texture)으로서의 팍투라와 물질적인(material) 측면에서의 팍투라가 있다. 두 양상은 대조적인 개념처럼 보이지만 기존 부르주아 체제의 재현 예술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나 기존 예술의 개념을 새롭게 전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결과적으로 말레비치의 팍투라는 추상회화 의 정점으로 평가받았고, 타틀린의 팍투라는 입체 조각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신적인 전환점이 된 것이다. 1922년 로드첸코는 바바라 스테파노바(Varbara Stevanova)와 비평가 알렉세이 간(Aleksei Gan)과 함께 <러시아 구축주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언문에는 구축주의가 그동안 지향 했던 조형원칙을 팍투라(Faktura), 텍토닉(Tectonics), 구축(Construction) 세 가지 특징으로 정의하였다. 팍투라는 창조된 유기체의 물질적인 특성에 주목하여 재료 자체의 속성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고, 텍토닉은 산업 물질을 공산주의적이고 기능적인 방식으로 사용해 새로운 내용과 새로운 형태의 통합체를 만드는 것이다. 구축은 팍투라와 텍토닉을 합하여 재료에 형상 을 부여하는 것16)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조형 원칙을 통해 러시아 구축주의를 정의해보 면, 예술 작품은 당대 산업재료가 갖는 속성과 제작방식에 주목하여 공리주의적인 목적에 맞는 생산 활동으로 구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선언을 통해 1912년 러시아 문학에서 시작된 물질에 대한 새로운 감각인 팍투라는 10년 동안 발전하여 구축주의의 핵심적인 예술 원칙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선언문에서 팍투라와 함께 정의된 구축 역시 넓은 의미에서 팍투라에서 파생된 원칙으로 러시 아 구축주의의 핵심적인 주제이자 제작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타틀린은 “예술품의 형식은 두 가지 근본 전제로부터 나온다. 하나는 재료이고, 또 하나는 구축이다. 재료는 구축을 통해서 일관된 전체로 조직되고 그렇게 해서 그 예술적 논리와 의미를 얻게 된다.”고 팍투라와 함께 제작방식으로서 구축의 중요성을 같이 언급하였다. 1920년 로드첸코를 주축으로 결성된 「객 관적 분석 노동 그룹 (Objective Analysis Working Group)17)」에서는 구성(composition)과 구축(construction) 대한 논쟁을 통해 좀 더 체계적으로 물질을 구축적으로 생산하는 방법을 논의하였다.18) 팍투라의 제작방식인 구축은 합리적이고 구조적인 원리로 구체화 되었는데, 이러한 원리는 다양한 예술적 흐름과 논쟁을 통일하여 당대 예술에서부터 정치 시스템에 이르 는 모든 영역에 적용되었다. 이와 같이 구축주의의 조형 원칙은 새로운 사회에서 새로운 예술 을 창조하는 데 있어서 위계질서 없이 모든 것을 예술적인 활동이자 사회적인 실천으로 펼쳐나 가는 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팍투라는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반영한 예술의 발현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로 뻗어 나가고자 하는 정치적인 미학이 함의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3. 랑시에르의 정치적인 미학 3.1. 미학적 예술 체제 오늘날 미술의 현장에서는 참여와 공공에 대한 주체의 문제와 나눔의 문제를 통칭하는 예술의. 16) Aleksei Gan, 『Constructivism』, Translated by Christina Lodder, Tenov, 2013, pp.53~56. 17) 1920년 11월에 인후크(INKhUK, 예술문화원) 내에 결성된 그룹. 이영철 엮음, 『현대미술과 모더니즘론 : 형식주의, 맑시즘, 후기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 시각과 언어, 1997, p.9. 18) 장혜진, 「러시아 아방가르드예술에서 구축과 생산의 미학 연구」, 노어노문학회 24(4)권, 2012, p.237. 기초조형학연구 20권 4호 (통권94호). 71.

(8) 사회적 전회(social turn)현상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담론이 논의될 때, 가장 주목받고 있는 사상가는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다. 랑시에르는 프랑스 현대철학의 주요 경향이었던 구조주의자 알튀세르(Louis Althusser)의 제 자로 그의 마르크스 이론에 영향을 받았다. 알튀세르는 지식은 오직 과학적 사유여야 하며, 과학이 됨으로써 이데올로기와 맞서 싸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랑시에르는 학생들로부 터 발발된 68운동 당시 알튀세르와 같은 지식인들은 분리된 경계 위에서 지식과 해방을 가르 치려고 했기 때문에 진정한 해방과 평등이 도래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런 구조에서의 정치는 현실상황을 외면한 채 위계 구조를 더욱 강화하기 때문에 기존의 구조주의 권력 체계를 비판하게 된 것이다. 한편, 랑시에르는 68운동을 주도했던 몫 없는 자들19)이 위계 구조에 저항하며 자신들의 자리 를 새롭게 찾고 규정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해방과 평등을 보았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지향하는 평등과 해방의 실천이 지식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인 것에 있다는 것20)에 주목하 게 된다. 랑시에르는 몫 없는 자들이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와 규정의 경계 를 흐트러뜨리고 기존 감각을 재구성하는 것을 ‘감각적인 나눔’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기존 주류 체제에 대한 전복이라기보다 기존 질서에 고정되어 있던 감각과 그동안 현실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소외되었던 감각들이 서로 교차하고 뒤섞이면서 다시 구성되는 평등과 해방 영역으 로의 사고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몫 없는 자들이 자신의 자리를 갖기 위해 자신의 몫을 상상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실천하는 행동이 바로 정치적인 실천의 시작인 것이다. 랑시에르는 평등과 해방에 대한 개념적 지표를 2000년 이후 미학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한다. 그는 미학을 예술이라는 특정한 대상에 관한 이론이나 학문이 아니라 예술을 이해하는 특정한 사유방식을 지시하는 것21) 이라고 말하며, 정치적인 미학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그것은 정치 와 예술이 서로 다른 영역이지만, 정치는 평등의식을 전제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세계를 감각 하는 방식들이 충돌하고 특정한 감각의 방식에 따라 세계 안에 각각의 자리가 부여되는 과정이 며,22) 예술은 몸이 느끼는 감각이 사회적으로 위치 지어지는 방식을 드러내는 과정이므로 이 두 영역 간에 불가분성을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랑시에르는 예술이 정치적인 실천을 위해 전적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과 지각을 규정하는 체제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그 위계적 질서를 다시 재구성할 수 있도록 새로운 감각의 출현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랑시에르는 역사적으로 예술을 규정하는 세 가지 식별 체제-윤리적 예술 체제(Règime ètique des Images), 재현적 예술 체제(Règime Reprèsentatif des Arts), 미학적 예술 체제(Règime Esthétique des Arts)-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인 미학을 설명하고 있다.23) 첫 번째로 윤리적 예술 체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플라톤의 모방비판론에 근거를 두고 있는 이 예술 체제는 예술의 기원과 목적을 중심으로 예술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이 올바 른 것인지, 예술은 현실에 어떤 효과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도덕적, 종교적, 사회적 기준으로 예술을 규정한다. 그러나 예술이 윤리적인 기준으로만 식별된다면, 예술은 자율적인 지위를 갖지 못하게 된다. 오히려 이 체제에서는 사회적 유용성에 따라 예술의 가치 가 결정되기 때문에 진정한 예술은 존재할 수 없게 되며, 노동자로서의 예술가들은 자신의 몸이 느끼는 감각을 표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목소리도 낼 수 없게 된다.24) 두 번째, 재현적 예술 체제에서는 이데아와 현실에 대한 모방의 개념에서 벗어나 관념을 표상 하는 행위에 주목하게 된다. 예술은 단순한 노동의 영역을 벗어나 독자적 규칙과 질서를 가진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영역으로써 예술 자체의 제작방식과 평가 기준으로 식별되는 예술의 자 19) 랑시에르가 언급하는 몫 없는 자는 노동자를 포함한 약자와 소외된 자 등의 계층으로 이해할 수 있다. 20) 자크 랑시에르, 「미학 안의 불편함」, 주형일(역), 인간사랑, 2008, p.12. 21) 박기순, 「랑시에르의 로댕―미학적 사건으로서의 로댕과 그 정치성」, 미학 76집, 2013, p.108. 22) 박기순, 앞의 글, p.107. 23) 자크 랑시에르, 「감성의 분할: 미학과 정치」, 오윤성(역), 도서출판b, 2008, pp.26-31, 참조. 24) 자크 랑시에르, 「미학 안의 불편함」, 주형일(역), 인간사랑, 2008, p.13. 72.

(9) 율성 체제를 갖추게 된다. 이 체제는 플라톤주의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에 따라 윤리적 체제로부터 해방시켰으나, 예술 작품의 형식과 예술가들의 재현 능력에 따라 위계가 발생된다 는 문제가 생겨난다. 살펴본 바와 같이, 랑시에르는 이제까지 예술로 식별되었던 기존 체제들이 사회적 유용성과 재현의 형식주의를 추구하기 때문에 예술의 해방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예속적인 체제라는 점 을 비판하고, 현실의 새로운 사회문화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미학적 예술 체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세 번째, 미학적 예술 체제는 18세기 근대화의 시작점에서 출현한 개념으로 앞의 두 체제와 지속적 충돌하며 공존해왔지만, 예술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개방적이고 자율 적인 감각을 나눔으로써 그들의 감각과 사유방식을 변화시킨다는 점에 주목한다. 따라서 이 체제는 서열, 위계, 질서 등의 권력을 통해 불평등한 감각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감각 체제에 근거해 예술을 식별하고 나아가 기존 체제의 특정한 생산 규정과 위계질서를 흐트 러뜨리고 재배치하여 감각의 해방과 평등을 지향한다. 결론적으로 랑시에르는 예술과 삶을 분리하지 않고 감각의 영역에서 나타난 각각의 불일치를 존중하고 불화를 가시화하여 불편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예술을 미학적 예술 체제에 속한다 고 말하며, 그러한 예술적 실천이 진정한 해방과 평등을 지향한다는 점을 강조한다.25) 이러한 예술의 해방이 정치적인 평등으로 이어진다는 의미에서 미학적 예술 체제를 정치적인 미학이 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자면, 랑시에르가 말하는 정치적인 미학이란 기존 체제에서 소외되었던 감각에 주목하여 공통의 감각 경험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예술적인 실천이자 사회 의 모든 구성원들이 자율적이고 개방적인 감각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행동방식을 변화시키고 자 하는 사회적인 실천인 것이다. 3.2. 감각적 환경으로서의 매체(medium) 랑시에르는 그의 논문 「What medium can mean」26)에서 감각적 환경으로서의 매체 개념을 새롭게 정립한다. 원래 모더니즘의 중요한 요소인 매체 개념은 아이디어와 그것의 구현물 사이 의 매체 즉 중개자 역할을 의미한다. 이때 매체는 중간자로서 예술가의 관념을 표현하고 전달 하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1960년대 미국의 형식주의 미술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는 「모더니 스트 회화 Modernist Painting」(1965)에서 모더니즘의 매체 개념을 정립했다. 모더니즘 예 술에서 매체는 미디어로서의 충실함을 중시하여 회화, 조각, 영화, 사진 등 개별예술의 고유한 권한과 장르적인 구분을 경계 짓는 규정인 것이다. 그린버그는 마네가 추구한 평면성 이후의 회화는 매체 자체가 가진 ‘물질에의 충실함’을 예술의 원칙으로 삼아 모더니스트 회화로 발전 해왔다고 보았다.27) 모더니스트 회화는 재현으로 구현되는 표상성을 제거하여 회화의 매체를 구성하는 표면과 착색된 물감의 안료를 통해 표면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2차원의 평평한 표면 에 주목하는 회화의 평면성은 다른 어떤 예술도 갖지 못한 회화만의 유일한 장르적 속성이라고 정의하면서 다른 예술 매체로부터 도입한 모든 효과들을 제거하고 매체의 고유한 본성에 집중 함으로써 순수회화로 전향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매체는 더 이상 예술의 도구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매체 자체의 표면성이 갖게 되는 특수한 물질성(specific materiality) 이 예술의 본질이 된 것이다.28) 이러한 맥락에서 그린버그는 물질에의 충실함을 통해 회화의 표면성에 나타난 팍투라(Faktura) 개념을 정립한 것이다. 그는 특히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검은 사각형><그림 2>에 나타난 팍투라를 추상회화의 절정으로 규정하는데, 그린버그의 글 「아방가르드와 키치 Avant-Garde and Kitsch」(1939)에서 키치와 대립되는 관점에서 “아방가르드가 절대(러시아의 절대주의를 지칭)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추상 내지 비대상 회화 에 도달했다”29)고 함으로써 모더니즘이 곧 추상미술의 출현이라는 연관 관계를 정당화하였 25) 자크 랑시에르, 앞의 책, p.12. 26) Jacques Rancière, 「What medium can mean」, Parrhesia, No.11, 2011, p.35. 27) 중앙M&B 편집부, 『현대미술비평 30선』, 중앙일보 계간미술편, 1989, p.15. 28) 클레멘트 그린버그, 『예술과 문화』, 조주연(역), 경성대학교출판부, 2004, p.16. 기초조형학연구 20권 4호 (통권94호). 73.

(10) 고, 나아가 이러한 회화의 평면성에 나타난 팍투라 개념을 통해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의 개념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그린버그가 절대주의를 추상표현주의의 절대치의 영역으로 주장한 이상 캔버스 표면에 나타난 팍투라는 자기비판적인 모더니스트 회화가 유념해야 할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된 것이다. 한편, 랑시에르는 앞서 중간자의 매개 역할로서의 매체와 그린버그의 표면성(texture)의 매체 라는 두 가지의 상이한 개념에서 미학적 예술 체제에 근거한 새로운 매체 개념을 도출해낸다. 그는 “예술은 예술인 것과 동시에 예술이 아닌 것이 될 수 있는 한에서 예술이 된다. 예술은 예술인 것과 예술이 아닌 것 사이의 구별이 불분명해지는 어떤 감각적인 환경에 자신의 생산물 들이 귀속하게 될 때, 예술이 된다. 이를 테면, 수단은 자기 자신의 목적과는 다른 어떤 것을 획득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특정한 환경의 형성에 참여하는 수단이다.”라며 새로 운 매체 개념으로서 감각적인 환경을 설명한다.30) 감각적인 환경이란 기존 재현 예술 작품의 의미화 과정에서는 드러난 적이 없었던 주변적이고 소외된 것들에 주목함으로써 그것이 보이 게 되고 들리게 되는 감각할 수 있는 환경으로서의 예술 매체 자체에 주목한 것이다. 다시 말해 자율적인 감각이 발현되는 예술 매체 환경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모든 감각들이 발현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랑시에르의 매체 개념은 감각적인 환경(medium, milieu) 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감각적 환경으로서의 매체는 매개체로서 아이디어의 구현 (재현) 수단도 아니고, 자신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실현하지 않는 순수한 자기 목적성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낯설고 이질적인 감각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이며, 새로운 감각적 형식들의 구성이 실험되는 공간이다.31) 이러한 매체 자체가 의미화되어 있는 감각적인 환경 자체에서 또 다른 정치적인 의미들이 도출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랑시에르는 아방가르드와 정치적 효과의 측면에서 삶의 새로운 형식(forms)을 창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안된 예술로써 러시아 구축주의를 언급한다.32) 그는 러시아 구축주의자 엘 리씨 츠키(El Lissitzky)와 로드첸코는 질료(materials)와 형식(forms)을 사용해서 세계를 변화시 키려는 프로젝트들을 추진했다고 보았다.33) 1920년대에 소비에트 체제의 합병이 이루어지자 그들의 물질문화는 평등한 사회에서의 예술이란 쉽게 이해되고 실용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공 리주의를 지향했고 이는 당시 새롭게 재구축된 노동계급의 위상이라는 측면과 무관하지 않았 다. 이를 위해 구축주의자들은 노동자들과 관계된 저렴하고 대량생산된 산업재료를 예술 실천 에 도입함으로써 그들과의 결속을 더욱 확고히 다지고자 한 것이다.34) 이러한 맥락에서 타틀 린의 물질적인 측면에서의 팍투라와 그린버그가 주장하는 모더니즘의 표면적인 측면에서의 팍투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의 예술의 가치를 주장한 것이 확인되며, 물질적인 팍투라가 단지 재료로의 실증주의적 환원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 예술과 정치는 시대를 막론하 고 그 불가분성으로 인해 삶의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기 위한 예술의 실천을 지향하고 새로운 감각 체제의 구축을 통해 사유방식을 변화시켰다. 이러한 관점에서 랑시에르가 정립한 감각적 인 환경으로서의 매체 개념은 로드첸코의 <공간 구축>에서 나타난 팍투라에 함의되어 있는 정치적인 미학을 논의하기에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4. 로드첸코의 <공간 구축>에 나타난 팍투라의 의의 로드첸코는 화가, 조각가, 사진가, 디자이너, 교육자, 행정가 등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의 전 영역에 걸쳐 활동했지만, 그동안의 연구는 사진과 디자인, 건축 등 공리주의적인 측면에 집중 되어 있었다. 특히, 스탈린 체제에서 선전 예술(propaganda)로 전환되면서 예술에 대한 부정 29) Jacques Rancière, Artemy Magun, Dmitry Vilensky & Alexandr Skidan, 「You Can't Anticipate Explosions : Jacques Rancière in Conversation with Chto Delat」, Rethinking Marxism, No.20, 2008. p.402. 30) 박기순, 「랑시에르의 로댕 ― 미학적 사건으로서의 로댕과 그 정치성」, 미학 76집, 2013, p.113. 31) 박기순, 앞의 글, p.113. 32) Jacques Rancière, Artemy Magun, Dmitry Vilensky & Alexandr Skidan, 앞의 글, p.402. 33) Jacques Rancière, Artemy Magun, Dmitry Vilensky & Alexandr Skidan, 앞의 글, p.403. 34) Jacques Rancière, Artemy Magun, Dmitry Vilensky & Alexandr Skidan, 앞의 글, p.403. 74.

(11) 과 함께 그동안 로드첸코가 예술적 실천을 통해 미적인 해방과 평등을 지향했던 조형적인 실험 들이 깊이 연구되지 않았다. 이에 랑시에르의 정치적인 미학을 통해 로드첸코의 <공간 구축> 시리즈를 분석해봄으로써 그가 추구했던 예술적 실천을 정치적인 미학의 맥락에서 재검토해 보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는 1918년부터 1925년까지 러시아 구축주의의 조형 원칙을 적용한 세 가지 <공 간 구축>실험을 그 대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그림 7>은 <공간 구축>시리즈에 대한 전체 공간 구축물을 순열대로 그린 스케치다. 이 스케치의 순열대로 세 가지의 특성을 기준으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첫 번째 <공간 구축> 시리즈는 1918년부터 1919년 사이에 제작한 <공 간 구축>(No.1~No.7) 작품이다. 로드첸코는 화이트 비대상 조각(White Non-Objective Sculpture)으로 불리는 이 시리즈에서 다양한 조합과 해체의 방식을 탐구했다. 1920년에서 1921년에 제작된 두 번째 <공간 구축>(No.8~ No.13) 은 동일한 재료의 동일한 구성을 통해 논리적 구조를 탐 구한 것으로 공중에 매달린 <공간 구축>으로 그 특징 을 분류할 수 있다. 세 번째 <공간 구축>시리즈에서는 다양한 건축적인 실험 방식들을 찾아볼 수 있다.35) 이 <공간 구축>시리즈는 입체주의의 공간 분할에서 영향 을 받아 발전된 입체 구축물로써 팍투라에 대한 실험이 기도 하지만 조형의 실험을 넘어 건축의 현장에서 사용 하기 위한 구축 실험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다. <그림 7> 로드첸코의 공간구축 스케치. 4.1. 예술 원칙으로서의 평등 로드첸코는 러시아 구축주의의 실질적인 주도자로 당시 러시아가 처한 정치적인 상황을 극복 하고 새로운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그가 러시아 구축주의 초기에 팍투라에 주목한 이유는 과학과 예술 전반에 형성된 유물론적 세계관을 반영한 물질문화에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의식이 함의되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 는 로드첸코의 <공간 구축>의 팍투라에 함의된 예술 원칙으로서의 평등의식이 어떻게 구현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실제로 삶의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던 산업재료에 관심을 갖고 있던 로드첸코는 인후크 (Inkhuk)36)의 책임자가 되면서 팍투라 연구에 더욱 주력하였다. 첫 번째 눈에 띄는 변화로는 구축주의자들이 작품의 제목(title)에 팍투라를 그대로 기재한 방식에서 그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 예술에서는 작품 제목에 주제와 대상에 대한 의미를 함축하고 그 정체성 (identity)을 드러냈으나, 구축주의자들은 재료(material)와 구성방식(construction), 순번 (number)등을 작품 제목으로 제시하였다. 예를 들어, 타틀린의 <재료들의 선택 : 철, 스투코, 유리 아스팔트 Selection of Materials : Iron, Stucco, Glass, Asphalt><그림 5>, <코너 역 부조 Coner Counter-Relief><그림 6>, 로드첸코의 <타원형의 매달린 공간 구축 No.12 Oval Hanging Spatial Construction No.12> <그림 8>등 그들은 작품 제목에 산업재료의 종 류와 제작방식, 순열을 직접적으로 표기함으로써 팍투라를 주체(subject)이자 객체(object)로 써 부각시키고 나아가 예술 작품의 위치로 격상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재료에 대한 새로운 <그림 8> 로드첸코, 매달린. 접근은 기존 예술 체제에서는 부차적인 도구였던 재료에 예술의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기존의. 공간구축, no.12, 1920.. 미적 가치를 전환하고 예술의 원칙으로서 팍투라에 함의된 물질에 대한 평등성을 구현한 것이 35) Selim Omarovich Khan-Magomedov, Vieri Quilici, 『Rodchenko』, MIT Press, 1987, pp.96-102, 참조하여 <공간 구축> 시리즈 작품을 분석하였다. 36) 인후크(Inkhuk, Institute of Artistic Culture, 1920–24)는 1920년 5월 미술 프로젝트들을 수행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설립된 미술 문화 연구소이다. 인민교육위원회인 나르콤프로스(Narkompros)의 미술부 IZO의 분과로서 타틀린(페트로그라드)과 말레비치 (비텝스크)의 관리 하에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초대 원장인 칸딘스키가 미술의 생산주의를 반대하자 좌파 진영에 의해 물러나게 되었고, 이후 로드첸코가 임명되었다. 기초조형학연구 20권 4호 (통권94호). 75.

(12) 다. 당시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기계혁명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었던 예술가들은 기존 예술 체제에서 벗어나 팍투라의 기능주의 미학이 사회적인 유토피아를 실현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 었다. 따라서 생산주의 시대 저렴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각 재료들의 가치를 강조하고 각 재료의 속성을 존중한 것이다. 이러한 낯선 감각의 출현은 실제 삶으로의 개입을 지향한 전략 의 일환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간 구축>시리즈가 랑시에르의 미학적 예술 체제에서 제 안한 낯선 감각의 불일치와 부조화를 수용한 것이고, 그 기저에 미적 가치에 대한 평등 의식이 함의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 변화로는 로드첸코가 전통적인 조각품의 단단한 덩어리와 연속된 표면의 완결성에서 벗어나고자 재구축이 가능한 단편화된 모듈(module) 방식을 적용한 점이다. 모듈 방식이란 조립(assemble)과 분해disassemble)를 통해 재구축이 가능한 가장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생 산 방법이다. 각 작업마다 다른 방식으로의 결합과 해체가 가능하기 때문에 형태적으로나 기능 적으로 부분과 부분의 결합을 통해 부분과 전체 사이에 다양한 유기적인 조직체의 구조를 형성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방식은 작품이 예술가에 의해 탄생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생산 가능한 방식을 탐구한 것으로 같은 재료로 여러 가지 형태의 구축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팍투라에 집중한 로드첸코는 첫 번째 <공간 구축>시리즈를 흰색의 가벼운 금속으로 작업하 기를 원했지만 당시 정제된 금속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흰색 페인트로 칠한 얇은 합판을 사용해 단편의 원과 사각형 등 기하학적 도형들의 구축적인 방식을 실험하였다. <공간 구축 No.5><그림 9>은 조립을 통해 수직과 수평의 직선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상층에 볼륨감이 <그림 9> 로드첸코, 공간구축 no.5, 1919.. 형성되어 있어 불안정해 보이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건축공법인 캔틸레버(cantilever)37)방 식을 도입하여 균형 잡힌 구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시리즈와 달리 <매달린 공간 구축물>시리즈는 로드첸코가 개발한 수학적 원리에서 도출된 연역적 구조를 적용하여 구현해낸 작품이다. 제작 방법을 살펴보면, 평평한 한 장의 얇은 합판에 나침반 이나 눈금자를 사용하여 기하학적인 도형을 그린 다음, 동심원에서. <그림 10> 로드첸코, 공간구축. 부터 규칙적으로 커지는 패턴으로 합판을 절개한다. 그리고 도형 중. no.10, 1920.. 앙에 철사를 고정시켜 천장에 매달고 지지대를 회전시켜 평평한 평면이 입체적으로 펼쳐지면 서 <매달린 구축물><그림 10>로 전환된다. 합판과 나침반, 컴파스 등의 도구를 사용하여 그려낸 방식은 원, 육각형, 정사각형, 타원 등 다양한 기하학 형태에 동일한 방식의 적용이 가능했다.38) 로드첸코는 <공간 구축>시리즈에서는 주로 역동성을 추구했으나, 세 번째 시리즈 중 <공 간 구축 No.25> <그림11>에서는 수직과 수평의 구축을 통한 안정감을 추구했다. 이 작품 <그림11>로드첸코, 공간 구축 No.25, 1920-1921.. 에서는 도색되지 않은 비슷한 크기의 두꺼운 나무 블록을 통해 나무의 속성을 강조했고 재 료들의 결합과 해체를 통해 재구축의 다양한 방식을 탐구했으며,39) 못 자국을 통해 구조적 인 역학관계를 드러냈다. 그는 예술 창작을 예술가의 서사, 영감, 감정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전문 지식과 노동력의 구축으로 보았으며, 예술가의 역할은 새로운 사회의 건설에 참여하는 건축가 또는 엔지니어로서 삶으로의 개입을 구체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당 시 러시아의 정치적인 현실을 반영한 구축물을 통해 무언가를 묘사하거나 재현한 예술 작 품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위해 실현 가능한 삶의 구축 방식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이에 비슷한 크기의 블록이 반복된 구축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각 부분을 동등하게 분할되 고 할당받는 평등성(equality)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연역적 구조는 40 년 뒤에 칼 안드레(Carl Andre)<그림12>와 같이 단순한 기하학적 사물의 반복을 추구하. <그림12> 칼 안드레, Belgian blue limestone, in eight parts, 1986.. 는 미니멀리즘 작가들에 영향을 주어 현대미술사에 새로운 전환점의 계기가 되었으며, 바우 하우스, 데 스틸과 같은 현대 건축에서도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데 스틸의 공간이 사 37) 한 쪽은 고정시키고, 다른 쪽은 돌출시킬 수 있는 구축 방식으로 힘의 균형을 맞추는 건축 공법이다. 38) 할 포스터, 로잘린드 크라우스, 이브 알랭 브아, 벤자민 H. D. 부클로, 『1900년 이후의 미술사』, 배수희 외(역), 세미콜론, 2007, pp.177-178. 39) Selim Omarovich Khan-Magomedov, Vieri Quilici, 『Rodchenko』, MIT Press, 1987, p.101 76.

(13) 회적인 계급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이 다가갈 수 있는 평등주의적 공간을 추구한 점도40) 이 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1919년 모스크바에서 창립된 ‘오브모후(OBMOKhU)’는 공간 구조와 산업재의 성질을 실험에 목적을 둔 러시아의 청년예술가 공동체(collective)이다. 오브모후의 활동은 나르콤프로스 (Narkompros)의 미술부 IZO에서 지원받았는데, 그들은 새로운 공동체 활동과 새로운 체제의 예술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산업미술을 지향하였다. 1921년 로드첸코는 오브모후 전시<그림13> 를 기획했는데, 이 전시에는 당대 저렴하고 대 량으로 생산되는 재료인 금속과 유리 그리고 나무를 이용한 기하학적인 구축물들이 출품되 었다.41) 작가로는 「구축주의 예술가 작업 그 룹 Constructivism Artist Working Group」 의 회원인 칼 이오간슨(Karl Ioganson), 카지 미르 메두네츠키(Kazimir Medunetsky), 스 텐베르그 형제(Vladimir Stenberg brother)와 브후테마스 학생 13명이 참여했다. 로드첸코 <그림 13> 오브모후 전시 설치 전경, 1921.. 는 이 전시에 <매달린 공간 구축>시리즈. (No.8 원, No.9 원, No.10 육각형, No.11 정사각형, No.12 타원42)) 5점을 출품했다. 이 전시는 1921년 3월 결성된 인후크의 「1차 건축가 그룹」이 새로운 형태의 건축 방식을 확립하는 데 큰 도움을 주게 된다. 그들은 1921년 12월 <구축주의에 대하여>라는 글을 통해 새로운 사회에서 노동자이자 기술가이고 예술가인 자신들의 위치를 재정립하기 위해 현실적인 삶과 의 상관관계를 중시하고 자신들의 위치와 역할을 재정립하였다. 나아가 로드첸코는 창작 영역 외의 활동에서도 예술 원칙으로서의 평등 의식을 지향하였다. 오브모후 공동체는 당시 주로 포스터와 새로운 정부를 위한 모든 종류의 선전 재료 및 장식 디자인을 주문받아 제작했는데, 생산품에는 오브모후 공동의 이름이 서명되었고, 판매금은 그것을 제작에 참여한 모든 회원들이 균등하게 나누어 가졌다. 로드첸코가 <공간 구축>의 팍투라를 통해 수행한 프로젝트들은 물질문화에 의해 조형적인 전환을 이룬 동시에 예술가의 역할을 새롭게 제시하였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부르주아를 위한 이젤 회화의 수직적인 체제를 실제 삶으로의 개입을 통해 수평적으로 재배치하고 사회 구조에 대한 인식을 변혁하여 평등 의식을 성취하고자 한 정치적인 미학으로 볼 수 있다. 1920년 후반에 로드첸코는 국립예술기 술공방 브후테마스(VKhUTEMAS)43)의 교수로 임용되었는데, 시각 및 소재를 형성하는 새로 운 예술가이자 기술자를 양성하는 교육자의 역할도 겸하였다. 그곳에서 로드첸코는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공유하는 예술가 공동체인 「구축주의 예술가 작업 그룹」을 결성하여 공동체 구 성원들과 함께 더욱 적극적으로 협력 체제의 구축 실험을 도모하였다. 1927년 미국의 전시기획자 알프레드 바(Alfred H, Jr. Barr)는 러시아를 방문하여 로드첸코와 인터뷰를 했다. 바는 혁명적인 사회에서 작업하는 예술가들이 생산하는 당대의 아방가르드 예술을 조사했는데, 러시아에서 혁신적인 예술방식들을 시도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남녀 모두 위계 없이 평등하고 자율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공동 체를 통해 정치사회적인 이론과 담론을 나누고 프로젝트를 수행하였으며 순수미술과 응용미 술, 창작과 노동, 예술과 일상 등의 구분을 없앴다고 기록에 남겼다.44) 이러한 실천들은 러시 40) Manfred Bock, Mildred Friedman, 『De Stijl, 1917-1931: visions of utopia』, Walker Art Center, 1982. p.8 41) https://www.moma.org/artists/4975 42) <Hanging Spatial Construction no.12>(1920), Plywood painted with aluminum paint and wire, 61 x 83.7 x 47 cm. “빛을 반사하는 표면(Light-Reflecting Surfaces)”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매달기 위해 제작되었는데 당시 알루미늄의 무 게 때문에 페인트 칠로 대체하였다. 43) 비후테마스(VKhUTEMAS)(Higher State Artistic-Technical Workshops). 44) 이영철 엮음, 『현대미술과 모더니즘론 : 형식주의, 맑시즘, 후기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 시각과 언어, 1997. p.3. 기초조형학연구 20권 4호 (통권94호). 77.

(14) 아 혁명 이후 예술 활동을 통해 부르주아 사회와 제도 예술의 생산 및 수용의 제반 조건들을 변혁하고자 한 의도로써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개선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니즘을 지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과학적 지식과 산업 시스템의 미약 한 발전으로 인해 계획들은 실현되지 못하고 중단되는 경우가 많았다. 4.2. 예술의 자율성에서 미적 체험의 자율성으로 예술과 삶의 일체화를 주장한 로드첸코는 부르주아를 위한 규범과 관행의 단절을 선언하고 이젤 회화와 수공예적 작품 생산의 비공리적인 생산 태도를 비판하며, 기술적으로 진보된 사회 의 혁명적인 목표와 조화를 이루고자 객관적이고 공공적인 목적의 예술을 추구하였다. 본 장에 서는 로드첸코의 <공간 구축>에서 객관적이고 공공적인 목적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공간 구축>은 작품 제목에 드러난 것처럼 공간과 구축의 상관관계를 실험하는 프로젝트로 써 로드첸코는 <매달린 공간 구축>을 통해 기존 예술에서 배경으로 인식되었던 공간을 작품 의 영역으로 수용하였다. 이 작품은 받침대가 제거된 채 공중에 최초로 설치한 작업인데, 주변 의 빛과 공기의 영향으로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생성되어 역동적인 환경을 연출하였다. 그리고 기존 조각이 덩어리와 고정성을 추구하였다면, <매달린 공간 구축>은 입체 볼륨의 밀도를 제거하여 열린 공간으로의 깊이 있는 확장을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재료에 대한 연구는 입체 적인 볼륨과 공간의 관계로 전이되어 감각적인 환경을 생성하였고, 관람자와 상호작용하는 감각적인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이를 통해 관람자는 새로운 감각적인 환경에서 미적 체험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1917년 초 로드첸코와 타틀린은 사업가인 필리포프가 모스크바에 세운 극장식 ‘카페 피토레스 크(café pittoresque)’의 실내인테리어 디자인을 의뢰받았는데, 카페 피토레스크는 다다의 카 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와 비슷한 성향의 예술 공간으로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러시아 미래주의 시인들의 언어 실험장이었고, 예술가들의 담론의 생산지이자 자유로운 실험을 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이었다.45) 로드첸코와 타틀린은 피토레스크 실내 코너에 나무, 금속, 카드보드 등으로 제작한 역동적인 구축물<그림 14>을 설치하였다. 미술관을 벗어나 일상 <그림 14> 카페 피토레스크에 설치된 구축물, 1917.. 공간인 카페에 설치된 구축물은 조명 빛의 스펙트럼이 작품에 투사되며 역동적인 환경으로 조성되었다. 이런 방법은 기존의 사각의 벽으로 둘러싸인 전시 공간의 폐쇄성에서 벗어나고자 한46) 미적 체험의 자율성에 대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로드첸코는 「오브모후」 전시에서 <공간 구축><그림 13>작품들을 공 중에 매달아 놓음으로 빛과 공간과의 조응 관계를 실험하였다. 이 작품들은 3차원의 기하학적 형태로 가변적인 볼륨을 만들어냈으며, 빛이 투사되자 그림자가 생성되며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구조로 전환되었다. 이 작품들은 마치 우주공간에 무중력한 상태로 떠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로드첸코는 당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의 휜 공간(curved space), 시·공간, 정지, 역 동성 등 기존에 절대적이고 일정하게 흐르는 시간과 공간 개념에 상대성 이론을 도입하여 과학 적 사고와 우주공학을 구현한 것이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우주가 공간적으로 무한하고 시간적 으로 영원하다는 불멸사상의 우주론(cosmism)47)이 널리 퍼져 있었고, 로드첸코는 모두를 위 한 실존의 공간인 유토피아로써 우주 공간으로의 확장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로드첸코는 <매달린 공간 구축>을 통해 알루미늄 재질의 빛과 반사를 이용한 반응을 실험하 고 싶었으나, 실제 알루미늄판은 그 무게감으로 인해 지탱하지 못했고, 나무 합판에 알루미늄 재질이 나도록 페인트칠을 해서 매달게 되었다. 중심에서부터 방사형으로 확장되는 동선의 구조는 관람자가 보는 각도에 따라 형태가 변형되도록 제작했는데, 예를 들어, 원은 보는 각도 에 따라 다양한 타원이 중첩된 모습으로 보이며 다양한 볼륨감과 움직임을 만들어 내었다. 45) 카밀라 그레이, 『위대한 실험 러시아미술 1863-1922』, 전혜숙(역), 시공아트, 2012, p.217. 46) 카밀라 그레이, 앞의 책, pp.215-16, 참조. 47) 보리스 그로이스, 「러시아 코스미즘-불멸의 생명정치」, 김수환(역), 문화와 사회, 32(1)권, 2019, pp.332-333, 참조. 78.

(15) 그리고 공기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빛과 사물, 그림자의 관계로 인해 형태와 배경의 구분이 사라지면서 감각적인 환경이 연출되었다. 관람자들은 구축물의 주변을 돌면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계속적인 움직임을 통한 운동감이 생성되었다. 관람자는 이러한 시공연속체와의 상호 작용을 통해 지속적으로 현상학적 체험을 하게 되었다. 팍투라라는 개념에는 구축주의적 대상 의 배치 및 그것과 관람자 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개념이 이미 내포되어 있었다.48) 이와 같이 빛과 공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각은 시각적이고 동시에 촉각적인 감각으로 확장되었고 공 간적이고 시간적인 미적 체험이 된 것이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미적 체험의 자율성은 관람자가 각기 다른 미적 체험을 통해 고정된 감각이 아닌 자율적인 감각의 체험을 의미한다. 이것은 예술의 자율성을 부정하고 관람자 중심의 미적 경험을 통해 기존 예술을 위한 예술의 체제를 파기하고자 한 것으로 미적 체험의 자율성은 미학적 예술 체제와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의 분석을 통해 로드첸코는 알려진 바와 같이 공리성만을 추구한 예술가는 아니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감각적인 환경에서의 미적 체험을 통해 각 개인의 감각을 중시한 것이다. 랑시에르 는 매체를 환경으로 이해할 것을 주장하였는데, 매체는 새로운 감각적 형식들의 구성이 실험되 는 환경이었고, 감각적 형식들은 결국 새로운 삶의 형식을 도출한다는 점에서 매체의 물질성에 대한 탐구 이상의 것을 의미하게 된다.49) 그것은 예술가들이 실제 공간 속에서 재료와 제작방 식을 통해 이루어내는 예술 실천과 사회적 실천이 잠재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다고 할 수 있다.. 5. 결론 지금까지 로드첸코의 <공간 구축>를 분석하여 팍투라애 함의된 정치적인 의의를 살펴보았 다. 러시아 혁명 전후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에서 나타난 팍투라 미학은 당시 부르주아 중심 의 불평등하고 위계적인 체제에 대한 저항이자 새로운 사회를 위해 예술적인 실천을 통한 삶의 조직을 평등하고 자유롭게 재구축한 실천 미학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로드첸코가 <공간 구축> 시리즈에 구현한 정치적인 의의를 결론지으면, 첫째, 기존 예술에서 부차적인 재료로 취급받았던 당대 산업재료가 곧 작품이 되는 새로운 예술 원칙을 확립한 것과 둘째, 산업시스 템인 켄틸레버 공법과 모듈 방식을 적용하여 단편화된 부분의 결합과 해체를 통해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구축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이것은 과거의 낡은 감각을 깨고 해방과 평등을 위한 새로운 감각으로 전환해보자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로드첸코의 팍투라 예술 실천은 단순 히 특정한 재료의 조합이 아니라 기존의 위계적인 구조를 흐트러뜨리고 그동안 소외되었던 감각에 주목하여 예술의 개념을 삶의 현장으로 전회하는 실험이자 현실적인 삶에 개입된 정치 적인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와 같이 혁신적인 미학을 창출한 로드첸코의 <공간 구축>이 그동안 깊이 연구되 지 못한 이유는 공리적인 측면과 과학적 원리의 충실한 구현물이라는 비판과 함께 1931년 스탈린 체제에 의해 러시아 구축주의가 중단된 이후에 서구의 관념론 미학의 흐름 속에서 형식 적인 측면에서만 연구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 구축주의의 예술적 실천은 1960년대 68운동의 정치적인 환경의 변화와 연관되 어 현대미술사의 전환 지점에서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의 선구적 미술이자 독일의 바우하우 스와 데 스틸에 연결되어 있으며, 장르와 매체 구분 없이 현대건축 및 디자인, 사진과 영화에까 지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밝혀져 현대미술의 가장 큰 축을 형성했다고 재평가할 수 있다. 나아가 동시대 미술의 현장에서도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정치적인 미학은 새로운 사유와 지각방식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사회에서 논의해야 할 논쟁의 장을 구축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다학제적인 측면에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48) 이영철 엮음, 『현대미술과 모더니즘론 : 형식주의, 맑시즘, 후기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 시각과 언어, 1997, p.10. 49) 박기순, 「랑시에르의 로댕 ― 미학적 사건으로서의 로댕과 그 정치성」, 미학 76집, 2013, p.117. 기초조형학연구 20권 4호 (통권94호). 79.

(16) 참고문헌 김현화, 『현대미술의 여정』, 한길사, 2019. 블라디미르 마야코브스키,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 김성일(역), 책세상, 2005. 이영철 엮음, 『현대미술과 모더니즘론 : 형식주의, 맑시즘, 후기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 시각과 언어, 1997. 이장욱, 『혁명과 모더니즘』, 랜덤하우스중앙, 2005. 이택광, 『세계를 뒤흔든 미래주의 선언』, 그린비, 2008. 자크 랑시에르, 『감성의 분할: 미학과 정치』, 오윤성(역), 도서출판b, 2008. 자크 랑시에르, 『미학 안의 불편함』, 주형일(역), 인간사랑, 2008. 중앙M&B 편집부, 『현대미술비평 30선』, 중앙일보 계간미술편, 1989. 카밀라 그레이, 『위대한 실험 러시아미술 1863-1922』, 전혜숙(역), 시공아트, 2012. 클레멘트 그린버그, 『예술과 문화』, 조주연(역), 경성대학교출판부, 2004. 할 포스터, 로잘린드 크라우스, 이브 알랭 브아, 벤자민 H. D. 부클로, 『1900년 이후의 미술사』, 배수희 외(역), 세미콜론, 2007. Aleksei Gan, 『Constructivism』, Translated by Christina Lodder, Tenov, 2013. Brandon Taylor, 『After Constructivism』, University of Oxford, 2012. Manfred Bock, Mildred Friedman, 『De Stijl, 1917-1931: visions of utopia』, Walker Art Center, 1982. Selim Omarovich Khan-Magomedov, Vieri Quilici, 『Rodchenko』, MIT Press, 1987. 박기순, 「랑시에르의 로댕 ― 미학적 사건으로서의 로댕과 그 정치성」, 미학 76집, 2013. 보리스 그로이스, 「러시아 코스미즘-불멸의 생명정치」, 김수환(역), 문화와 사회, 32(1)권, 2019. 장혜진,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에서 구축과 생산의 미학 연구」, 노어노문학회 24(4)권, 2012. Jacques Rancière, Artemy Magun, Dmitry Vilensky & Alexandr Skidan, 「You Can't Anticipate Explosions : Jacques Rancière in Conversation with Chto Delat」, Rethinking Marxism, No.20, 2008. Jacques Rancière, 「What medium can mean」, Parrhesia, No.11, 2011. 인문예술잡지 F, 2011년 2호. https://www.moma.org/artists/4975.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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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