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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서울 대성 성공회 서울 대성 성공회 서울 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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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공회 서울 대성 성공회 서울 대성 성공회 서울 대성

성공회 서울 대성당의 건축양식과 당의 건축양식과 당의 건축양식과 당의 건축양식과 그리스도교 빛의 미학

그리스도교 빛의 미학 그리스도교 빛의 미학 그리스도교 빛의 미학

김 정 신 김 정 신 김 정 신 김 정 신

*

1) 1) 1) 1)

목차

서 .

성공회 대성당 건축의 배경 .

성공회 서울 대성당의 구조와 장식 .

제단 모자이크와 스테인드글라스 .

로마네스크 건축양식과 성공회 서울 대성당 .

그리스도교의 빛의 미학 .

Ⅵ 결론 .

서 서 서 서 ....

Ⅰ Ⅰ

Ⅰ Ⅰ

성공회 서울 대성당은 국내 유일의 완전한 로마네스크양식의 건물로 내부 제단

이 논문은 한국미학예술학회 년 봄 학술대회의 발표원고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 2004 .)

단국대학교 교수

*

(2)

모자이크와 공간구성이 뛰어난 건물이다 국내에는 약현성당 . (1892), 명동성당 계산성당 전동성당 등 서양 중세양식의 교회건축물이 더러 (1898), (1902), (1922)

있다 하지만 대개가 성직자의 설계에 의한 절충 또는 변형된 양식이지만 성공회 . 대성당은 전문 건축가의 설계와 감독으로 국내에선 가장 양식에 충실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영국인 건축가의 설계에 의해 1922 년에 착공하였으나 자금사정으로 인해 1926 년 부분 준공하였으며 미완성인 채로 70 여 년 사용하다가 교회 창립

주년 기념으로 년에 증축공사를 시작하여 년 기존 건축면적

100 1994 1996 532.5㎡

에 626 ㎡ 를 증축한 총 1,158.5 (350 ) ㎡ 평 규모로 완공하였다 애초 설계의 모습은 . 모델사진이 유일한 자료였으나 영국의 한 도서관에서 원 설계도면이 발견됨으로써

1)

원래 계획대로 건축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교리실 강당 등 소요공간의 확보를 . , 위해 지하 공간 지하 층 이 부가되고 성당의 주입구 ( 3 ) - 배랑 (narthex) - 부분이 변경되었으며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설치되어 성당 내부는 원 설계도와 꼭 일치하 , 지는 않는다.

본 고는 성공회 대성당의 건축양식과 내부공간의 빛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건축양식에 대해서는 양식결정의 배경과 과정 공간구성의 특성을 분석하고 내부 , , 공간의 빛에 대해서는 기존의 제단모자이크와 스테인드글라스의 역할과 의미 조 , 화 문제를 논하고자 한다.

성공회 대성당 건축의 배경 성공회 대성당 건축의 배경 성공회 대성당 건축의 배경 성공회 대성당 건축의 배경 ....

입지와 대성당 건립과정 입지와 대성당 건립과정 입지와 대성당 건립과정 입지와 대성당 건립과정 1.

1.

1.

1.

성당이 위치한 서울시 중구 정동 번지 일대는 서울의 한 중심으로서 개항이후 3 서양 선교사들과 외교사절들이 정부로부터 일신의 보호를 받으며 기거하였던 곳이 다 이 곳은 원래 월산대군 . (1454-1488) 이 기거하던 집으로 1611 년 광해군 당시

1) 1993 년 관광차 방한하여 성당에 들렀던 한 영국인의 우연한 제보로 증축설

계를 맡은 건축가 김원이 런던 근교 렉싱톤 (Lexington) 에 있는 한 도서관에

서 설계도면을 찾았다.

(3)

경운궁이었다가 년 순종 즉위년에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종은 이

‘ ’ 1907 .

궁을 크게 중건하였는데 아관파천 , (1896-97) 이후 고종이 왕궁으로 사용했던 구한 말의 정치적 소요와 비운이 있었던 곳이다 . 1882 년 한미수호조약 체결 후 초대 주 한공사가 정동에 있던 민계호의 저택을 구입하여 공사관으로 사용하였고 그 뒤로 , 영국공사관과 러시아공사관 프랑스공사관이 덕수궁 주변에 자리잡으면서 정동이 , 외교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지금의 대성당 터는 대군 자제들의 교육기관인 경학 . 당이 있던 곳이다.

영국 성공회가 한국 선교를 목적으로 주교를 성품하고 한국에 처음 들어온 것은 1890 년이었다 .

2)

1889 년 11 월 일 캔터베리 대주교는 중국에서 사목 활동을 했던 1 해군 군종 사제 고요한 (C. John Corfe, 1843-1921) 신부를 대한성공회의 초대 주 교로 임명하였으며 , 1890 년 11 월 제물포를 통해 서울에 온 고요한 주교는 서울에 두 곳의 대지를 마련하였는데 하나는 영국대사관에 인접한 지금의 정동 대성당 자 리이고 하나는 낙동이었다 정동에는 . 1890 년 12 월 21 일 기존 한옥에 십자가를 달 고 장림성당 ‘ ’(The Church of Advent) 으로 명명하였는데 , 1 년이 지난 1891 년 11 월 일부터 정기적인 미사를 드림으로써 공식적인 교회로서 출범하였다 대한 성공 1 ( 회는 이 날을 교회 창립일로 삼고 있다).

년에 보다 성공회의 전례에 맞게 한옥성당을 신축하였으며 현재의 대성당

1892 ,

이 건축되는 1922 년까지 대한 성공회의 중심성당이 되었다 새 성당의 신축계획은 .

대 주교인 단아덕 주교에 의해 년부터 계획하였으며

2 (A. Turner, 1862-1910) 1910 , 그의 뒤를 이어 1911 년에 부임한 트롤로프 주교는 새로운 구상과 함께 이후 10 년 간 모금과 준비를 하였다 그의 구상은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기에 적합한 성당만 . 이 아니라 십자가의 승리를 증거할 수 있는 웅대한 대성당을 건축하는 것이었다.

3)

2) 성공회의 한국선교는 다양한 선교단체들이 참여한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영 국의 해외 복음 선교 협의회 ‘ ’(SPG : The Society for the Propagation of 라는 한 선교단체의 소극적인 지원 하에 이루 the Gospel in Foreign Parts)

어졌다 영국 성공회의 한국 선교는 . 19 세기 서구열강의 팽창주의에 따른 선 교 의도는 아니었으며 순수한 종교적 열정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특 징과 전통은 다음과 같다.

복음을 전하려는 왕성한 선교의욕 학문에 대한 존중 토착화 정신 , ,

공교회 ( 公敎 ) 적 전통유지 성서와 성사를 신앙생활의 중심으로 삼음 ,

교회의 재일치와 신 구교 사이의 중도신학

3) 1911 년 11 월 주교로서 한국에 도착 직후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 본

(4)

당시 일본인은 낙동성당 명동 대연각 호텔근처 영국인과 한국인은 장림성당 지 ( ), ( 금의 대성당 에서 각각 따로 예배를 드렸는데 이를 한 성당에 통합하고 조선교회 ) 의 모범으로서 대성당 건물을 짓고자 하였다 . 1 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성당건축의 계획이 지체되었으나 , 1917 년에는 설계자 딕슨에 의해 모형이 완성되었고 , 1920 년에는 구체적인 설계에 들어갔다 당시 트롤로프주교가 제시하였던 설계의 원칙 .

4)

은 다음과 같다.

한국교회활동을 고무하고 전국의 신자들에게 전도의 열의를 일으키고 용기 ,

를 줄 수 있는 하나의 유형의 중심체가 되어야 한다.

어떤 민족이든 간에 서로 언어가 다르더라도 교회를 통해 하나의 가족임을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한국 일본 영국인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 . , , 린다 필요하다면 다른 제단에서 예배를 드리거나 다른 채플에서 기도를 드릴 수 .(

있다.)

전국교회의 규범이 되고 절차에 맞는 예전적인 예배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되

③ 어야 한다.

미래 교회건축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이런 조건에 따라 건축양식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순수한 고대 그리스도교 건축 양식을 따르기로 했다 그 이유는 이 양식이 한국의 건축자재나 기후 풍토에 맞을 .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년 월에 착공하여 월 일 정초식 년 월 일 원 계획의 절반정 1922 3 (9 24 ) 1926 5 2

도로 미완성 상태에서 완공하고 축성하였다.

5)

익랑의 좌우 날개부분과 회중석 4

인은 머지않아 서울에 우리의 중앙성당을 가지게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것은 일면 터너주교를 기념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서로 다른 . 민족 한국인 일본인 영국인 의 신자들이 서울에서 별도로 흩어져 자기들의 ( , , ) 작은 예배당을 지키지 않고 적어도 한 성당 안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언어의 차이가 있겠지만 필요하다면 한 성당 안에서 다른 제단에 . , 서 예배를 드리거나 , 다른 채플에서 기도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 궁극적으로는 뉴욕의 웅대한 성 요한 대성당과 같이 우리가 예배에 공통언 , 어를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Constance Trollope, Mark Napier Trollope; Bishop in Korea 1911-1930 , London, Society for Promoting Christian Knowledge, 1936, p.63)

4) Constance Trollope, Mark Napier Trollope; Bishop in Korea 1911-1930 , London, Society for Promoting Christian Knowledge, 1936, pp.64-65.

5) 미완성 건물이기 때문에 대성당 대용교회 “ ”(Pro-Cathedral) 라고 불렀다 .

(5)

개의 베이는 건축하지 않은 상태로 1996 년 증축 완성되기까지 약 70 년간의 그 모 습 그대로 지내왔다 전체 계획의 절반 밖에 지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 형태에 . 있어 부족함이나 어색함을 느낄 수 없을 만큼 균형잡혀 보였던 것은 설계자의 계 획에 의해 그 부분이 결정되기도 하였지만 차 공사의 설계도가 있다 확장이 가 (1 ) 능한 베이 체계 ‘ ’(bay system) 를 채용하였고 전체를 파악할 만한 시점 , (view

이 없었기 때문이다

point) .

트롤로프 주교와 그의 건축의도 트롤로프 주교와 그의 건축의도 트롤로프 주교와 그의 건축의도 트롤로프 주교와 그의 건축의도 2.

2.

2.

2.

서울 대성당을 건축한 한국 성공회 대 주교인 트롤로프 3 (Mark Napier Trollope, 는 런던 웨스트민스트의 찰스 트로롤프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

1862-1930) .

로부터 장로교의 영향과 아버지로부터 옥스퍼드운동의 영향을 받은 그는 1881 년 옥스퍼드대학교의 뉴칼리지에서 MA 학위를 받고 1887 년 노르위치 (Norwich) 교구 대성당에서 부제품을 그 이듬해 사제서품을 받았다 , .

년 해외복음선교협의회 를 통해 초대 한국 주교인 코프 의

1890 SPG( ) (C.H.Corfe)

한국선교에 동참하게 되어 1891 년 한국에 와서 강화지역 개척 문서선교와 성당건 , 축 등 초기 한국선교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 1901 년 영국으로 귀국하였다 가 1911 년 한국 성공회 대 주교로 서임되어 돌아왔으며 3 1930 년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였다.

이라는 별명까지 받을 정도로 높은 프라이드를 가졌던 그는 학자

‘Oxford Man’

적인 사제로 한국의 문화예술에 조예가 깊었다 왕립 아시아학회 한국지부의 장을 . 맡아 한국학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그는 한국 종교 특히 불교에 대해 . , 지대한 관심을 가졌으며 한국건축양식과 재료 기후에 대해서도 잘 파악하였으며 , , , 한국의 전통문화와 융합할 수 있는 표상으로서 성당건축을 추구하였다.

6)

“The Bishop's Letter”, MC. Vol. 37, No. 187 (Apr, 1926), p.21.

6) 특히 그가 본당신부로 재임하면서 지은 강화성당 (1900) 은 서양교회건축의

전례와 상징성을 우리 전통건축 속에서 찾고 재해석함으로써 교회문화의 수

용이 일방적인 서양문화의 이입이 아닌 주체적인 우리문화로의 수용이었음

을 보여줌과 동시에 한옥이 가지는 기능적 구조적 공간적 잠재력을 확인

시켜주었던 기념비적인 건축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졸고 .( , 「 성공회 강화

성당의 건축적 특징과 의미 」 , 강화읍성당 축성 백주년 기념 학술 세미나 ,

(6)

그런 그가 서울 대성당의 건축에서는 단순하면서도 순수한 로마네스크 양식을 택했는데 이는 교회의 발전과정과 교회건축양식과의 연계성을 볼 때 한국 교회의 종교적인 깊이는 서양의 로마네스크에 해당한다고 보았으며 고딕양식 보다는 로마 네스크양식이 한국적 풍토와 전통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건축 양식에 대해 트롤로프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건물은 다음세대 교회 건축가들에게 주는 교회건축 모델이 될 것이다 그

“ .

나라의 오래된 전통건축은 나름대로 권위를 갖고 있지만 가톨릭 예배를 진행하기 에는 어려움이 많다 최근 벽돌과 돌로 짓는 서양 건축물이 서울뿐만 아니라 곳곳 . 에 세워져 사용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교 초대교회의 건축물처럼 . 권위가 있으면서 가장 단순하고 순수한 건축양식일텐데 건축자재는 이 나라 풍토 와 기후에 적합한 전통 건축재료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7)

원 설계자 아더 딕슨 원 설계자 아더 딕슨 원 설계자 아더 딕슨 원 설계자 아더 딕슨

3. (Arthur Dixon, 1856-1929) 3. (Arthur Dixon, 1856-1929) 3. (Arthur Dixon, 1856-1929) 3. (Arthur Dixon, 1856-1929)

설계자는 트롤로프가 영국 성 알반 (St. Alban) 교회에서 시무할 당시 알게된 독 실한 가톨릭 신자인 아더 딕슨이다 그는 . 1856 년 엣바스턴 (Edgbaston) 에서 조지 딕슨 (George Dixon) 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부친은 버밍엄 시장과 하원의원을 지낸 . 영국사회의 실력자였고 명문 럭비 (Rugby) 고등학교와 옥스퍼드 대학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University College) 에서 건축학을 수학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

그는 러스킨 (Ruskin) 과 모리스 (Moris) 의 영향을 받아 미술공예운동 (Art and 의 제 세대로서 버밍엄 지역에서 미술공예운동을 이끌었으며 찰 Craft Movement) 2

스 애쉬비 (Charles Ashbee) 와 함께 버밍엄 미술공예 길드의 디렉터로 일하기도 하였다.

8)

그들의 유토피아적 취미는 중산층과 로맨스의 기묘한 조합 이었다라는 “ ” 표현과 딕슨이 참여했던 길드의 망치와 손 “ ”(By Hammer and Hand) 이라는 표어

참조 2000. 10. )

7) Constance Trollope, 같은 책 , p.65.

8) The Birmingham Guild of Handicraft, "Register of Members",

Birmingham Central Library.

(7)

처럼 마치 중산층의 낭만적 취향을 만족시킬 물건을 망치와 손으로 생산해내고자 하는 미술 공예운동가들의 사회주의 성향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특히 딕슨의 주 . 된 전공은 건축보다는 촛대와 주전자를 제작하는 은 공예 ‘ ’ (Silver-work) 이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9)

그는 영국 왕립건축가학회 명예회원 (FRIBA) 이 되었고 버밍 , 엄 건축협회 (Birmingham Architectural Association) 회장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했 으며 특별히 종교건축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

년 당시 버밍엄의 교회건축은 네오 고딕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비잔틴

1910-20 ,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가 건축되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옥스퍼드 운동의 계승자 이며 버밍엄 교구의 초대 주교였던 찰스 고어 (Charles Gore) 가 변화하는 산업도시 에 새로운 교회의 역할과 활력을 위해서는 진부한 고딕양식이 아닌 새로운 양식이 요구되고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딕슨은 버밍엄의 한 . 보험회사를 건축했던 윌리암 레다비(William Richard Lethaby)

10)

의 영향을 받고, 그가 이끌었던 비잔틴 연구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 ’ .

말년까지 버밍엄에 살면서 레이번 (Rabone Bros. and Co.) 의 파트너로 일했으 며 버밍엄 시립예술학교 운영위원회의 회장을 지냈다 주요 교회작품으로 성 바실 , . 성당 (St. Basil's Church, 1910) 과 성 안드레아성당 (St. Andrew's Church, 1911), 회색옷의 성모성당 (Chapel of the Grey Ladies, 1913) 등이 있는데 바실성당과 성 안드레아성당이 로마네스크양식이다.

딕슨은 성공회 서울대성당의 설계를 위해 두 번에 걸쳐 내한하였으며 준공 후 , 일부개조를 위해 내한한 1927 년에는 『 と 建 』 에 기고한 글을 통해 그의 설 계의도를 밝히기도 하였다.

11)

그는 건물의 전체 설계뿐만 아니라 부분 준공을 위 ,

9) Alan Crawford(ed.), " By Hammer and Hand: The Arts and Crafts Movement in Birmingham ", in: Birmingham Museum and Art Gallery, 이정구 영국의 미술공예운동과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 한국교

1984, , 「 」 ,

회사연구소 제 125 회 교회사연구발표회 , 2000. 9. 30 에서 재인용 .

10) 아트 앤드 크래프트 (Arts and Craft) 운동의 건축가 . 1884 년 Art Workers' 의 창립맴버로서 런던의 아트 앤드 크래프트 중학교

guild (London Central

의 교장을 지냈다 기능의 유효성과 합목적성을 School of Arts and Crafts) .

강조하고 근대디자인에서 기계화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였으며 모리스 사 , 상에서 나타나는 중세를 이상으로 한 사고방식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 다 . Art Workers' Guild 는 1888 년 다른 단체와 합병되어 ‘the Arts and

를 탄생시킨다

Crafts Exhibition Society’ .

(8)

한 변경도면도 그렸으며

12)

, 지하성당의 제대와 촛대 감실 주교좌 등 모든 것을 , , 건물과 조화되게 직접 선정하거나 디자인하였고 가격도 산정하였다 , .

모자이크 작가 죠지 젝 모자이크 작가 죠지 젝 모자이크 작가 죠지 젝 모자이크 작가 죠지 젝

4. (George Jack, 1855-1932) 4. (George Jack, 1855-1932) 4. (George Jack, 1855-1932) 4. (George Jack, 1855-1932)

모자이크를 제작한 죠지 잭은 미국인이었는데 영국으로 이주하여 필립 웹(Philip 의 런던공방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윌리암 모리스 공방에서 가

Web, 1831-1915) ,

구 디자인을 하다가 후에 레다비와 함께 런던예술공예학교(Lee Central School of 에서 교수로 재직했던 사람이다 그는 가구뿐만 아니라 Arts and Crafts, 1896-) .

모자이크와 스테인드글라스도 디자인 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영국 가톨릭 웨스트민스트 성당의 성 앤드류 채플의 모자이크가 있다.

13)

성공회 서울 대성당의 제단 모자이크는 시칠리 성당의 모자이크에서 힌트를 얻 어 제작하였다 하는데 이를 위해 번 내한하였으며 2 , 1927 년에는 돔의 그리스도상 을 제작하였고 그가 죽은 후인 , 1938 년에 하단의 성인상이 완성되었다 모자이크 . 의 원래 구상은 앱스 상부의 돔에는 주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그 아래 단 중앙에 ,

11) “ 하나의 건축이 무슨 양식으로 설계되는가 하는 질문을 건축가가 가끔 받 는 것인데 그러한 질문은 건축가에 있어서는 매우 달갑지 않은 것이다 왜 , . 냐하면 옛 건축은 그것이 건축된 시대에 진정한 생명이 있었던 것인데 이 , 제는 이미 죽은 양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근대의 모든 건축은 그 죽은 , 한둘의 고 건축의 복사를 보여주는 것 같다 . … 우리는 생명 있는 신 양식 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동시에 누구도 그 탄생에 대하여 응분의 노력을 아끼 는 자 있지 않겠지마는 신 양식을 위하여 인식적으로 개인적으로 어떠한 , , 노력을 하여도 행복한 결과도 만족한 결과도 얻기 어려울 것 같다 신 양식 . 은 사회조건의 변화와 사회의 요구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자리하게 된다 건 . 축가는 자신의 노력을 바탕으로 옛 것 중에 하나 혹은 두 개를 선택하여 참 고하게 된다 그런데 주교님이 택한 전통은 그리스도교의 초기부터 . , 12 세기 까지 멀리 유럽에 행해지던 로마네스크양식이다 이 양식은 고대 로마양식 . 이 발달 변화한 것으로 보다 동양풍을 가미한 비잔틴 양식과는 형제 사이 , 와 같은 것이다 .” (A. Dixon, 「 조선 성공회 건축에 대하여 」 『 , と 建

조선건축협회

, , 1927. 6. pp.10-12)

12) 그가 그린 원 설계도면은 대판 사이즈의 기본도면 (1/8 인치 -1 피트 : 1:96 스 케일 과 입면 상세도 ) (1/2 인치 -1 피트 ; 1:24 스케일 ), 1/2 스케일의 각종 디테 일 중판 사이즈 ( ), 1/400 의 배치도 등 30 여 장에 달한다 .

13) “The Cathedral of SS. Mary and Nicolas, Seoul”, MC. Vol. 36,

No.183(Apr, 1925), pp.24-25.

(9)

는 성모 마리아 그리고 양측에는 복음서 저자인 성요한과 예언자 이사야 그리고 , , 성 니콜라오와 배 및 동방의 사도인 성 토마스 (St. Thomas) 가 흰말을 타고 중국 의 황제에게 달려오는 광경을 넣기로 하였다.

14)

그러나 1927 년 말 디자인이 완성 될 때에는 토마스 대신에 돌무더기 옆에 서 있는 성 스테파노로 바뀌었다 모자이 . 크의 형태는 5-12 세기 이탈리아의 전통을 따라 구성되었는데 특히 시칠리 , (Sicily) 의 몬레알 (Monreale) 대성당과 세팔루 (Cefalu) 대성당에 있는 모자이크의 전통을 따 른 것이다 모자이크에 사용된 유리 각석 . (tesserae) 은 별도 주문하여 들여왔으며 , 시공은 젝의 밑에서 일한 바 있는 조시 (Josey) 가 1927 년 말 수개월 걸린 공사 끝 에 상단부의 예수상만을 완성할 수 있었다.

15)

하단의 성인상 역시 조시에 의해

년에 완성되었다

1938 .

성공회 서울 대성당의 구조와 장식 성공회 서울 대성당의 구조와 장식 성공회 서울 대성당의 구조와 장식 성공회 서울 대성당의 구조와 장식 ....

배치 배치 배치 배치 1.

1.

1.

1.

성공회 서울 대성당은 영국 대사관 동측 덕수궁 북측의 완만한 경사지에 동쪽 , 제단과 서측에 출입구 정면을 둔 라틴 십자형 (Latin Cross) 의 평면

16)

으로 위치하 고 있다 동측의 낮은 대지를 이용하여 지면과 동일한 레벨에 지하 소성당 . (crypt) 이 구성되어 있는데 층 대성당의 북쪽 종탑의 나선 계단실과 지하 홀을 통하여 1 진입할 수 있고 바로 외부와도 연결되어 있다 , .

지하 소성당 지하 소성당 지하 소성당 지하 소성당 2.

2.

2.

2.

지하 소성당은 1926 년 초창 당시의 그대로인데 좌우에 이중 아일 (aisle) 이 있는

14) MC. Vol. 38, No. 193(Oct, 1923), p.80 15) MC. Vol. 39, No. 194(Jan. 1928), p.8

16) 서측 출입구 포치가 입구 홀의 좌우에 돌출하고 있어 엄밀하게 보면 라틴

십자형을 두 개 연결한 꼴이다.

(10)

바실리카식 공간으로 개의 회중석 베이 6 (bay) 에 제단부 각 앱스 그리고 좌우의 5 , 트란셉 (trancept) 1 베이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대 주위에는 , 10 개의 기둥을 둘러놓 아 유보랑 (amburatory) 공간도 형성하고 있다 천장은 중앙 네이브 . (nave) 는 베렐 보울트인데 각 열주 사이에도 반원 아치를 두었으며 아일은 교차 그로인 보울트 ,

로 되어 있다 (groin vault) .

소성당 한 가운데는 본 성당 건축 당시의 주교였던 트롤로프의 묘비 황동판 (brass)

17)

이 놓여있고 그 아래에 영구가 안치되어 있다 그 황동판에는 성당을 , . 손으로 받쳐든 트롤로프 주교의 초상화와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황동판 속의 성당 은 동측 입면으로서 실제와 똑 같다.

소성당은 회백색의 단아한 공간으로서 창의 개구부가 작고 기둥간격도 좁아 납 골당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특히 열주로 주위를 동그랗게 둘러싼 제단부는 . 묘당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 1996 년에 설치한 스테인드글라스는 부드 러운 파스텔 색조로 오방색을 상징하고 있다.

대성당 대성당 대성당 대성당 3.

3.

3.

3.

층 대성당은 개의 베이를 가진 외진 과 교차부 내진 그

1 7 ( ) (crossing), ( ),

리고 베이의 배랑 1 (narthex) 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베이의 외진과 배랑 그리 . 4 , 고 교차부의 좌우 베이의 익랑 3 (transept) 은 1996 년에 증축 완성된 부분이다 .

외진은 열주에 의해 신랑 (nave) 과 측랑 (aisle) 의 구별이 뚜렷하며 내부 벽면은 , 열주의 아케이드와 클리어스토리 (clearstory) 의 층 구조로 되어있다 신랑의 폭은 2 . 약 7.6m, 측랑의 폭은 3.8m, 열주간격은 3.8m 로 신랑은 측랑의 개 베이이며 교 2 , 차부는 개 베이로 구성되었다 측랑의 창호는 각 베이마다 연 아치창이며 클리 4 . 2 , 어스토리는 각 베이마다 연 아치창인데 가운데 한 개씩의 작은 창만 뚫여있고 나 5 머지는 블라인드 윈도우 (blind window) 이다 .

기둥은 엔타시스를 가진 화강암의 석주로 사각형 주초 위에 원통형 주신( ),

17) 프란시스 쿠퍼 (Francis J.C.Cooper) 가 1930 년에 985 시간에 걸쳐 제작한 수

공예품이다 영국 더비셔 . (Derbyshire) 에서 생산되는 흑 화석 대리석으로 틀

을 하고 런던 하트 브로스 (Hart Bros) 회사의 메머스 (Messrs) 가 상감한 작품

이다 이정구 같은 글에서 재인용 .( , )

(11)

그 위에 주두 ( ) 를 얹었는데 주두는 약식화된 블록 캐피탈 (block capital) 로 초 록색과 빨간색의 띠문양이 채색되어 있다 이 기둥 형태는 지하 소성당과 창문의 . 문설주 (mullion) 등에 그 축소형이 사용되고 있다 신랑의 천장은 목조 왕대공 트 . 러스이며 측랑은 회반죽으로 마감된 그로인 보울트 , (groin vault) 이다 .

교차부는 가운데 개의 높고 커다란 기둥 4 (pier) 이 중앙 종탑의 큰 매스를 받쳐주 고 있으며 수직방향의 상승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부분이 성당 내부에서 가장 밝 , . 은 곳으로 상부의 창으로 채광이 되고 층 부분에는 지붕으로 나갈 수 있는 좁은 , 3 목조 발코니가 사방둘러 만들어져 있다 좌우 익랑은 회중석 신랑의 베이와 똑 같 . 은 크기의 베이가 개씩인데 중앙에 반원 앱스가 돌출되고 그곳에 부제단이 놓여 3 있다 북측이 성모 마리아 제단이고 남측이 성십자가 제단이다 정방형 교차부의 . , . 천장은 목조의 특이한 형으로 말각조정 ( 角 ) 형태로 장선을 보냈는데 여 기에 붉은색과 초록색으로 사선문양을 넣었다 익랑의 천장은 회중석 신랑과 같은 . 목조 왕대공 트러스이다.

내진은 성가대석 (choir) 및 성단 (sanctuary) 으로 구성되는데 성가대석은 베이로 1 서 계단탑과 같은 치수 교차부보다 단 높으며 좌우 남녀 성가대석이 열씩 서 ( ) 2 , 2 로 마주보도록 설치되어 있다 원래는 북측 나선계단이 있는 종탑 하부 층 갤러 . 2 리에 오르간이 설치되었으나 현재는 교차부의 북측 계단실 앞에 회중석을 향하여 , 임시로 놓여있다 그리고 성가대석 전면 중앙에 새 제대가 놓여있다 . .

내진 (chancel) 부분은 제단을 향하여 단씩 높은 개의 베이로 되어 있고 좌우 1 4 , 열주는 똑같은 단면을 갖은 개의 기둥이 하나의 주두를 받치고 있는 형식이 사용 2 되고 있다 . 3 번째 베이의 좌측 기둥 사이에 주교좌가 위치하고 우측에 사제석이 마련되어 있다 내진의 끝 제단이 있는 반원 앱스 . (apse) 의 벽과 반구형 돔에는 화 려한 색유리 모자이크가 장식되어 있다 성단 바닥은 원래 목조 마루였으나 증축 . 공사시 회중석 및 교차부와 같이 화강석을 깔았다.

외벽 외벽 외벽 외벽 4.

4.

4.

4.

구조는 벽돌 조적구조인데 외벽을 구성하는 마감 재료는 화강석과 적벽돌이다.

강화도산 증축부분은 중국산 인 화강석은 기초부와 전후면 및 측랑 단부 처마 밑 ( ) ,

(12)

이나 아치둘레에 쓰여졌으며 적벽돌은 브라인드 윈도 등에 쓰이고 있다 , .

탑은 교차부 상부의 중앙탑과 인접한 개의 작은 종탑 그리고 각 날개의 단부 2 , 모서리의 버팀벽 (buttress) 을 강조한 소탑 개가 세워져 있는데 정방형 루각 형태 8 의 모임지붕으로 기와를 올렸다 종은 남쪽 콰이어부 옆의 종탑에만 실제 종이 설 . 치되어 있다 모두 . 11 개의 탑은 중앙탑을 중심으로 매스의 좋은 위계성을 보여주 고 있다.

제단 뒤 앱스부는 모두 화강석으로 쌓고 상부에는 역시 로마네스크풍의 갤러리 를 냈다 지붕과 벽체의 접합부는 처마장식 . (cornice) 을 돌리고 모딜리온 (modillion) 들을 등간격으로 붙였으며 기와는 애초에는 회색 한식 기와였으나 개수과정에서 , , 붉은 오지기와로 바뀌어 현재는 앱스 부분과 개의 종탑 및 소탑 부분만 한식기와 2 로 되어있다.

제단 모자이크와 스테인드글라스 제단 모자이크와 스테인드글라스 제단 모자이크와 스테인드글라스 제단 모자이크와 스테인드글라스 ....

로마네스크양식의 성당 내부는 다양한 요소들의 조합으로 고딕양식에 비해 통일 성이 결여될 수 있다 그러나 성공회 서울 대성당은 성단 끝의 제단 모자이크가 . 있어 전체의 초점이 되면서 강한 축을 형성한다 역사적으로 교회당 내부의 시각 . 적 초첨이 되는 중요한 부분에 그림을 넣는 것은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바실리 카식 교회당부터인데 주로 제단이 놓이는 앱스의 후면 벽과 반구형 천장돔에 집중 하였다.

제단 모자이크의 구조 제단 모자이크의 구조 제단 모자이크의 구조 제단 모자이크의 구조 1.

1.

1.

1.

성공회 서울 대성당의 앱스 부분은 직경 5m 의 반원형 평면에 벽면높이 5.4m,

반구형 돔의 높이 3m 로 원주곡면 길이가 약 8m 에 이른다 전체를 수직으로 부 . 3

분으로 나누었는데 돔부분은 그리스도 상 모자이크 벽면 상부 높이 , ( 2.4m) 는 개 5

의 인물상 모자이크 그리고 벽면 하부 높이 , ( 3m) 는 대리석으로 마감되어 있다 전 .

(13)

체 높이 8.4m 를 5:4:5 의 비율로 나누었는데 모자이크와 대리석 벽면이 구분되는 곳에는 수평 띠를 돌리고 그 위에 고전적 라틴어 찬송인 찬송 천주 송가 ‘ ’(Te 의 첫 구절이 쓰여져 있다 제단 모자이크는 이 노래를 찬란한 금색 바탕의

Deum) .

모자이크로 표현한 것이다.

그 원문과 번역은 다음과 같다.

“TE GLORIOSUS APOSTOLRUM CHORUS, TE PROPHETARUM CHORUS. TE PROPHETARUM LAUDABILIS NUMERLUS. TE MARTYRUM CANDIDATUS LAUDAT EXERCITUS. TE PER ORBEM TERRARUM SANCTA CONFITETUR ECCLESIA”

영화를 입은 모든 사도들이 주를 찬송하오며 주를 위해 증거하고 순교당한

“ , ,

자들 모두 주를 찬송하오며 온 천하의 모든 교회가 주를 찬송하도다 , .”

반구형 돔에는 한 손에 책을 펴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이며 하부의 반원 앱 , 스 벽면에는 개의 기둥에 의해 분절된 칸의 아치공간에 인물상이 그려져 있다 6 5 . 왼쪽으로부터 순교자 성 스테파노와 복음서가 요한 그리고 중앙에 성 모자 그 우 , , 측에 예언자 이사야 맨 오른쪽에 대성당의 수호자인 성 니콜라오가 장식되어 있 , 다 기둥의 사각 주초에는 십자형의 무화과 잎의 문양이 그려져 있고 주두는 아칸 . , 서스 잎 모양이며 아치는 반원형이다 기둥과 아치의 테두리에는 검은 색과 흰색 . 의 선이 그려져 있다.

상단부 돔의 그리스도 상 상단부 돔의 그리스도 상 상단부 돔의 그리스도 상 상단부 돔의 그리스도 상 2.

2.

2.

2.

이 그리스도상은 소위 전능하신 그리스도 ‘ ’(Pantocrator) 형에 속하는데 반신상의 그리스도가 오른손을 올리고 왼손에는 성서를 들고 계신다 머리 뒤의 후광 안에 . 는 전통적인 십자가형이 있고 후광 좌우에 예수 그리스도의 희랍어 약자인 , ‘IC’, 가 쓰여져 있다 얼굴은 소위 시리아형으로 검고 깊은 모발과 신비로운 표정

‘XC’ .

을 하고 있으며 그가 펴들고 있는 성경에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 는 글귀가 라틴 “ ”

어로 적혀있다 그의 오른손 두 손가락이 모여진 것은 흔히 인상 . ( ) 이라고 하는

(14)

데 이것은 아버지와 나의 일체 라는 뜻이다 “ ” .

하단부 성 모자와 성인 상 하단부 성 모자와 성인 상 하단부 성 모자와 성인 상 하단부 성 모자와 성인 상 3. 3.

3. 3.

성모자 상 (1)

성모 마리아가 보좌에 앉아서 아기 예수를 안고있고 그 발 아래에 한 쌍의 비둘 기가 있다 소위 엘로사 . ‘ ’(Eleousa theme) 형의 자연스럽고 인자한 모습이다 한 쌍 . 의 비둘기는 예수의 부모가 팔일 만에 아기 예수를 성전에 바칠 때 산비둘기 한 “ 쌍이나 집 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정결례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다 루가 .”(

는 말씀을 나타낸 것이다 비둘기는 성령을 상징하기도 하고 은유 겸손과 순

2:24) . ,

결을 의미하기도 한다.

보좌 아래는 녹색 바탕 위에 꽃들이 피워있는데 자세히 보면 수선화 같고 백합 같다 백합은 천주 성삼과 마리아의 수태 . ‘ ’ ‘ ’, ‘ 복되신 동정 마리아 ’, ‘ 순결을 상징 ’ 하며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 ’ .

스테파노 상 (2)

스테파노는 겉옷자락에 돌들을 모아 들고 있고 그 곁 풀밭에는 바구니가 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다 돌에 맞아 죽은 첫 순교자는 풀밭 위의 바구니에 돌을 모아 넣었다 핍박을 관용하는 순교자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 .

복음서가 요한 상 (3)

복음서가 요한이 복음을 기록한 두루마기를 보며 강론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 . 아래 요한을 상징하는 독수리가 바위 위에 앉아있다.

옥좌 앞은 유리바다 같았고 수정처럼 맑았습니다 그리고 옥좌 한 가운데와 그

“ .

둘레에는 앞뒤에 눈이 가득 박힌 생물이 네 마리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첫째 생물 .

은 사자와 같았고 둘째 생물은 송아지와 같았으며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의 얼 , ,

굴과 같았고 넷째 생물은 날아다니는 독수리와 같았습니다 그 네 생물은 각가 날 , .

개를 여섯 개씩 가졌고 그 몸에는 앞뒤에 눈이 가득 박혀 있었습니다 묵시 , .”(

(15)

여기서 사자는 마르코를 송아지는 루가를 얼굴이 사람 같은 것은 마

4:6-8) ‘ ’ , ‘ ’ , ‘ ’

태오를 독수리는 요한을 상징한다 그리고 독수리가 바위 위에 앉은 것도 그 , ‘ ’ . “ 바위는 곧 그리스도였습니다 고린 ”( 10:4) 고 한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

예언자 이사야 상 (4)

이사야가 걸으면서 독경하는 모습이다 흔히 성령과 믿음을 통해 태어난 그리스 . 도인들에 비유되는 이사야는 망국의 슬픔과 장차 올 메시아의 고난을 걱정하는 듯 한 모습이다.

성 니콜라오 상 (5)

세 명의 어린이를 돌보고 있는 니콜라오 성인이 있고 좌측 상부에 배가 그려져 , 있다 니콜라오는 산타크로스 전설의 기원이 된 인물이다 성탄에 선물을 가져온다 . . 는 산타크로스는 인간에게 가장 귀한 선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사자를 의미한다.

항해사 어부 부두 노동자 여행자 누명 쓴 죄수 시인 구두닦이에 이르기 까지 , , , , , , 많은 계층 사람들의 주보인 니콜라오는 서울 대성당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다섯 성인상은 모두 녹색 방석같이 보이는 지면 위에 서 있다 이 방석 같은 표 . 현은 로마네스크양식에서도 보이는 단순화 (simplification) 이다 시편 . 23 ( 편 다윗의 노래 의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 “ , . … ” 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 같다 스테파노 요한 사도 이사야 니콜라오 모두가 한결 . , , , 같이 그리스도를 위해 수난을 당했으나 그들이 다같이 설 땅은 하느님의 영원한

푸른 풀밭이란 뜻으로 생각할 수 있다

‘ ’ .

스테인드글라스 스테인드글라스 스테인드글라스 스테인드글라스 4.

4.

4.

4.

초창 당시의 창은 한식 띠살창에 투명유리만 끼워져 있었으며 일체의 스테인드 글라스 장식은 없었다 다만 정면 출입구 상부의 원형창에는 . 625 전쟁에서 피를 흘린 젊은이들을 기념하여 적황녹청자색의 강한 색조의 색유리가 끼워져 있었다.

현재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이번의 증축완공 후 1996 년에 대성당 외진의 고창 을 제외하고 대성당 및 지하 소성당의 창 모두에 설치하였는데 작가는 (clearstory)

재불 유리조형작가인 심현지이다 독일의 엔티크글라스를 사용하였는데 지하 경당 .

및 대성당의 하부 창은 전통 한식 띠창살에 대응하여 한식 격자문양으로 디자인하

(16)

였다 지하 소성당 및 대성당 트란셉 창은 오방색을 주조로 하였고 대성당 외진의 . , 하부창은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핑크색 그린색 블루색의 그라데이션을 주었다 반 , , . 면 전면 및 트란셉의 상부 아치창은 월계수 나뭇잎을 모티프로 하였는데 전면은 청색주조 트란셉은 청색과 적색 및 녹색을 주조로 매우 강하다 , .

로마네스크 건축양식과 성공회 서울 대성당 로마네스크 건축양식과 성공회 서울 대성당 로마네스크 건축양식과 성공회 서울 대성당 로마네스크 건축양식과 성공회 서울 대성당 ....

로마네스크 양식은 고대 로마의 두터운 벽체와 둥근 보울트의 조적구조를 기본 으로 비잔틴이나 이슬람 중세를 주도했던 게르만적인 여러 요소들이 혼합된 양식 , 이다.

18)

평면형식은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바실리카식 교회와 비슷하지만 교인수의 증 가로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장식이 풍부해졌다 지형조건과 지가 . ( 價 ) 때문에 중정 을 없애고 배랑 이 도로에 접하게 되었으며 고탑을 올리기도 하였

(atrium) (narthex) ,

다 . 8-9 세기 서유럽 교회에 행렬이 새로운 의식으로 첨가되었고 그 결과 앞에는 포치 (porch) 가 있고 제단 주변에는 보회랑 , (ambulatory) 이 있는 새로운 형식의 라 틴십자형 성당을 탄생시켰다.

일반적으로 제단은 동쪽끝 앱스에 입구는 서측을 정면으로 하였는데 , 9-10 세기 에 더러는 서측입면도 동측입면과 같이 앱스가 돌출한 유형이 있었다 서쪽 단의 . 지면에는 납골당이 그리고 그 위에는 네이브를 향한 반원 앱스의 상층 제단과 좌 , 우 포치를 둔 복잡한 구성인데 두 개의 십자가를 연결한 것과 같은 평면이다 이 . 를 독일에서는 베스트베르크 (westwerk) 라 부르는데 교회의 동쪽 끝이 사케르도티 움 (sacerdotium ; 영적인 힘 을 서쪽끝이 레그눔 ) , (regnum : 세속적인 힘 을 상징 ) 한다면 이 유형은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의 균형을 이룬 것이었으며 성찬식이 , 나 십자가에 대한 흠모를 위한 많은 행렬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 유형은 .

18) 로마풍이라는 뜻의 로마네스크라는 용어는 1824 년 프랑스인 제르빌르 (De 와 드 코몽 이 처음 사용했으며 그 후에 예술사가 쿠 Gerville) (De Caumont) ,

글러 (Kugler) 가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고딕양식으로 발전해 가 .

는 과도기적인 것으로 여겼지만 오늘날에는 성숙한 양식으로 여겨진다 카 .

알 대제 이전을 프리 로마네스크로 부르고 카롤링 왕조와 오토왕조 시대를 ,

프로토 로마네스크 혹은 초기 로마네스크로 , 1050 년경에서 1200 년경까지의

중세미술을 본래의 로마네스크 미술로 부르기도 한다.

(17)

오래가지 못하였다.

19)

세기경에 예배의식이 변하였고 건축에 즉시 반영되었다 점차 일반 회중들은

10 , .

예배에 대한 수동적인 구경꾼이 되었다 그리하여 순환공간은 더 이상 필요하지 . 않게 되었다 점차 포치가 있는 상층성당은 사라지기 시작하였고 앱스 보회랑에 . , 방사형 예배실 앱시돌 ( , apsidiole) 이 외벽에 첨가되었다 이러한 보회랑은 측랑의 . 연속으로 건물의 공간적 통합을 이루게 하였다.

성직자들은 회중들을 위하여 예배의식을 행한다기 보다는 회중들을 대신하여 예 배를 드리게 되었다 제단은 회중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고 제단과 회중석 사이에 . , 성직자와 수도자의 자리가 설치되고 그 사이에 신랑과 내진 , (chancel) 을 구분하는 칸막이랑 난간이 가능하였다 제단은 앱스의 벽 근처에 설치되고 그 배후에는 묘 . 와 같은 것이 서게 되었으며 그림과 조각으로 장식하였다 또한 성찬에 대한 개인 , . 의 주관적인 신심의 경향이 강해졌고 미사를 개인적으로 드리는 습관이 시작되면 , 서 한 성당 내에 많은 제단이 만들어졌다 따라서 로마네스크 양식의 평면구성은 . 바실리카식의 회중석 외진과 교차부 (crossing), 좌우 익랑 (transept), 그리고 내진

의 위계적인 구성이 이루어졌다

(chancel) .

로마네스크 구조의 특징은 경간구획 - 베이 (bay) - 라고 하는 구조적공간적 단 위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신랑 . (nave) 의 폭은 측랑 (aisle) 의 배이 2 며 (2 bay), 교차부는 길이와 폭이 측랑의 배였다 2 .(2bay x 2bay = 4bay)

로마네스 건축은 구조적 안전을 위해 창을 작게 했으므로 채광은 약했으나 성당 의 넓고 매끈한 내부벽과 궁륭은 장식하기에 좋은 여건을 제공하였다 특히 앱스 . 부분의 돔과 반원통형 벽면에는 모자이크나 프레스코로 형상을 그려 넣었다 이것 . 은 동유럽의 비잔틴 교회에서 비롯된 것이다.

20)

천장은 초기의 목조 평천장에서 조적조의 보울트 천장으로 바뀌어 나갔는데 간단한 원통형 보울트 (barrel vault) 에 서 내개의 만곡된 면으로 이루어진 교차보울트 (groin vault) 로 발전하여갔다 .

로마네스크 건축은 경간구획체계 반원아치 육중한 벽 교차보울트 건물과 탑 , , , ,

19) 이러한 유형의 성당으로는 Fulda 수도원교회 (802-?), Centula 수도원교회

힐데스하임의 성 미카엘 교회 등이 있고

(790-799), (St, Michael) (1001-1033) , 성 갈렌 (St. Gallen) 수도원의 이상적인 도면 (820 년경 에도 등장하였다 ) . 20) Anne Shaver Crandell, The Middle Ages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2, p.22.

(18)

과의 조화 등 몇 가지 공통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 데 일반적으로 신성 로마제국의 건축양식은 독일과 북부 이탈리아 동부 프랑스에 , 지배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로마건축의 전통은 중부 이탈리아와 남부 프랑스에서 , 가장 강하였고 노르만 건축은 북서부 프랑스와 영국 스칸디나비아 반도 남부 이 , , , 탈리아 및 시칠리에서 두드러졌다 노르만 양식 중 앵글로 노르만 . (Anglo-Norman) 양식은 1066 년 윌리엄 세의 잉글랜드 정복에 의해 노르만의 본거지가 영국으로 1 옮겨지면서 앵글로 색슨의 목조건축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양식으로 높은 측벽, 거대한 석벽과 피어 장대한 신랑 등이 특색이며 날카로운 지그재그나 딱딱한 아 , , 치형태의 반복 등 추상적인 장식 모티프가 많이 사용되었다.

이상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일반적인 특성에 비추어 성공회 서울 대성당의 양식 적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크고 작은 여러 매스가 조합된 성공회 성당의 외관은 마치 거대한 집짓기 , 블록으로 맞춘 듯한 인상을 준다 . 2 개의 라틴 십자가 , 4 개의 앱스 , 4 개의 출입구 아치 , 11 개의 탑 등 다양한 요소들이 위계적으로 조합되어 있다 .

둘째 내부공간의 기능적 형태가 외관 매스에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 . 셋째 육중한 벽체와 명쾌한 수직선 반원 아치와 처마장식의 연속과 중첩으로 , , 형태상의 통일감을 주고 있다.

넷째 엄격한 경간구획체계 , (bay system) 로 이루어진 내부공간은 열주 아케이드 의 리듬있는 분절 (articulation) 로 인해 보다 미적인 통일로 결합되어 있다 .

다섯째 일체의 조각장식이 배제된 흰색 회반죽 마감의 소박한 벽면과 검은색 , 천장골조 부드러운 색조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제단 모자이크벽화의 영롱한 빛은 , 보다 정신적인 면을 강조한다.

여섯째 성공회 서울 대성당은 전형적인 앵글로 노르만 양식의 건물이나 매스의 , 위계적인 조합과 함께 처마장식 창살문양 기와지붕 스테인드글라스의 오방색 등 , , , 한국 전통건축 요소를 섞어 씀으로써 한국적 스케일과 풍토에 잘 어울린다.

그리스도교의 빛의 미학 그리스도교의 빛의 미학 그리스도교의 빛의 미학 그리스도교의 빛의 미학 ....

(19)

건축공간에서 빛은 밝음이라는 물리적 기능 외에 중심과 영역 통로 절점 등의 , , 공간개념을 나타낸다 건축공간은 빛에 의해서 활성화되며 다양한 특질을 부여받 . 는다 특히 종교건축에서 빛은 그 비물질적 성격 때문에 물질과 정신 사이를 오가 . 며 생명을 부여하는 중개자로서 고대로부터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녀왔다.

21)

성서는 하느님 그리스도 진리 덕 구원을 빛과 동일시하였으며 서양의 교회건 , , , , 축은 빛의 신학적 해석에 의해 독특한 형식을 발전시켜왔다.

22)

조화가 인간의 이 성에 비유된데 비해 빛은 신앙에 비유되었으며 이 두 요소의 결합에 의해 교회건 축이 발전하였으며 고딕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극치에 달한다.

비잔틴 모자이크와 성공회 서울대성당의 모자이크 비잔틴 모자이크와 성공회 서울대성당의 모자이크 비잔틴 모자이크와 성공회 서울대성당의 모자이크 비잔틴 모자이크와 성공회 서울대성당의 모자이크 1. 1.

1. 1.

플라스터 회반죽 에다 착색된 재료의 작은 조각을 박아 구성하는 모자이크는 기 ( ) 원전 3000 년 경부터 수메르인들에 의해 건축의 표면을 장식하는데 쓰였고 그리스 , 로마인들은 텟세라라 불리는 대리석의 네모진 조각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들 ‘ ’ . 모자이크는 거의가 천연대리석의 상면 ( ) 모자이크로서 색상이 제한되었고 농 담의 변화는 풍부했어도 광택이 결여되었다.

비잔틴 시대 사용하기 시작한 색유리 텟세라는 금빛을 포함하여 대리석 텟세라 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강렬한 색채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었으나 반면 채색회화의 미묘한 농담변화는 결핍되었다 유리 텟세라의 반짝이는 그리고 얼마쯤 모양이 고 . ( 르지 않은 표면은 작은 반사경처럼 작용하므로 전체적인 효과는 견고한 연속된 ) 표면의 효과라기보다는 반짝이는 비물질적인 스크린의 효과이다.

스테인드글라스가 빛나는 광채를 배경으로 투과광 보이는 반면 모자이크는 곡 ( ) 면에 비친 빛의 기묘한 매혹을 표현한다 평평한 벽면 상에서 모자이크는 상대적 . 으로 우둔하다 완전히 어둡거나 금빛바탕이 어둡고 무색의 윤곽선으로 드러난다 . .

21) 빛에 의한 신의 이미지는 셈족의 Baal, 이집트의 Ra, 페르샤의 Mazda 로부 터 플라톤의 선 ( ) 의 이데아로서 태양에 이르기까지 고대의 계보를 갖고 있으며 이것은 다시 , Neo-Platonism 에 이어진다 . (Umberto Eco, Art and Beauty in the Middle Ages, Yale University Press, 1986, p.47)

22) Wojciech G. Lesnikowski, Rationalism and Romanticism in Architecture ,

McGraw-Hill, 1982, p.130.

(20)

쿠폴라 앱스 스퀸치 펜덴티브 보울트 니치에 넣은 모자이크는 차원적으로 평 , , , , , 2 평하다 모자이크의 화면 뒤에는 공간이 없다 그러나 니치에 의해 에워싼 물리 . ‘ ’ . 적 공간이 앞에 존재한다 이 공간은 그림 속에 포함된다 그 뒤로 착시적 그림이 . . 시작하는 화면의 가상의 유리창에 의해 보는 사람으로부터 그 이미지는 분리되지 ‘ ’ 않는다 관자 . ( 觀 ) 가 살고 움직이는 전면의 실제공간으로 열고 들어온다 그래서 . 그의 공간과 성인이 살고 행동하는 공간이 같다 상 . ( ) 자체가 성인과 성스러운 사건과 신비롭게 동일하다 비잔틴 교회 자체는 성상의 그림공간 . ‘ ’(picture-space) 이다 그것 자체가 전체로서 신성한 세계의 질서의 개념을 현실화 한 이상적인 성 . 장 ( , iconostasis) 이다 관자는 성인들의 축복에 에워싸이고 그가 보는 이벤트 . 의 한 역할을 수행한다.

23)

이러한 비잔틴 모자이크의 공간 현실성 ‘ ’(reality of 은 성상논쟁의 결과로 비잔틴 조각이 죽었을 때 발전하였다 비잔틴의 기념

space) .

비적인 회화는 사실은 기념비적인 비잔틴 조각의 적법한 후계자인 셈이다.

비잔틴의 모자이크가 주로 교차 사각형 보울트나 쿠폴라의 곡면에 넣는데 비해 성공회 서울 대성당의 경우는 앱스의 반구형 돔과 수직 벽면에 그렸다 앱스에 쿠 . 폴라 (cupola) 의 구상을 적용시켜 성공한 시칠리의 세팔루 (Cefalu' 대성당을 모델 ) 로 하였음이 틀림없다.

24)

노르만의 정복왕 윌리암이 지중해에 시칠리 왕국을 세 웠는데 이때 비잔틴 예술가들이 노르만의 왕을 위해 , 12 세기 그리스 모자이크 작 업을 하였는데 그 첫 작품이 세팔루 대성당 앱스의 모자이크이다 .(1148 년경 )

세팔루의 모자이크는 반구형 돔에 판토크레이토 ‘ ’(Pantocrator : 전지전능하신 그리스도 를 꽉차게 배치하고 비잔틴 쿠폴라에서 일련의 연속된 열로 배열되었던 ) 마리아 천사들 사도들 등 예수승천 , , (Ascension type) 의 상 ( ) 은 개의 단에 분리 3 하여 배열하였다 마리아와 천사를 제일 위층에 크게 놓았고 다음에는 베드로와 . , 바오로 복음서가를 그리고 나머지 사도를 맨 아랫단에 배열하였다 그리고 같은 , , . 열에서도 높은 위계를 앱스의 중앙축에 가깝게 배열하였다.

25)

사도들의 두 열은

23) Otto Demus, BYZANTINE MOSAIC DECORATION, Routledge &

Kegan Paul, 1976, p.13.

24) 세팔루의 구상은 전체적으로 쿠폴라의 장식을 앱스에 수용한 성공적인 시

도였다 이것은 시칠리의 두 개성당 팔레모 . - (Palermo) 의 Palatin 채플 (1140 년

대와 1160 년대 두 단계로 장식 과 ) Monreale 성당 (1180 년 이후 의 앱스 장 )-

식의 모델이 되었다.

(21)

크기에 있어 똑 같아서 그들 사이의 차이는 해체하였다.

성공회 서울 대성당의 모자이크는 화면구성과 표현기법에 있어 세팔루의 것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즉 돔에 꽉 차게 배열된 세팔루의 그리스도상이 성당내부를 . 압도하는데 비해 서울 대성당의 것은 돔의 1/2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하단의 성 ( 인상과 거의 같은 높이이며 얼굴이 돔의 수직면에 위치한다 하단의 성인상이 세 , .) 팔루의 경우 문자기입 외에 아무런 맥락없이 배경과 분리된데 비해 서울대성당의 , 것은 문자 외에도 상징적인 요소 - 돌무더기 독수리 옥좌 비둘기 어린이들 풀 , , , , , 밭 등 - 가 함께 있어 훨씬 더 친밀하고 공간적인 깊이감을 주고 있다 세팔루의 . 그리스도상은 압도하듯 앞으로 다가오는데 비해 서울의 것은 저 높은 곳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물러나 있다 비잔틴 모자이크의 정면성과 도식적인 표현이 남아있지 . 만 보다 인간적인 친밀감과 심리묘사가 표현되었다.

성공회 성당의 모자이크는 성당 내부 전체보다는 내진부 (chancel) 만을 위한 것 으로 보인다 그것은 모자이크의 면적이 상대적으로 적을 뿐만 아니라 제한된 색 . 채사용

26)

에서 볼 수 있으며 내진부가 교차부에 비해 훨씬 어둡기 때문에 입구쪽 , 회중석에서는 잘 인식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딕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성공회 서울성당의 창 고딕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성공회 서울성당의 창 고딕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성공회 서울성당의 창 고딕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성공회 서울성당의 창 2.

2.

2.

2.

고딕건축이 이룩된 중세 신학체계 속의 신플라톤주의의 형이상학적 해석에 의한 빛의 관념은 물리적화학적감각적 빛이 아닌 비물질적인 것으로 자연 현상 중 가 장 고귀한 순수형상으로서 형체 없는 실체이며 육체가 없는 실체와 육체적인 실 , 체와의 매개자이다 또한 모든 것의 창조원리로서 천상의 세계에서도 가장 활동적 . 이며 지상에서도 모든 것의 유기적 성장의 원인인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빛은 질 . 서와 가치의 원리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광휘의 대상을 보는 체험을 통하여 만유의 존재론적 존엄성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27)

고 하였다.

25) Otto Demus, BYZANTINE MOSAIC DECORATION, op. cit., pp.64-65 26) 배경의 금색만 유리에 금박을 입혔을 뿐 청색 녹색 황색 백색 등은 대리 , , ,

석 테세라이다.

27) Otto von Simson, The Gothic Cathedral ,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2, pp.51-52.

(22)

이러한 빛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바탕으로 고딕성당의 벽체는 돌과 유리 의 얇은 껍질로 추구되었다 내력 리브와 뾰죽아치 플라잉 버트레스의 도입으로 . , 벽체의 기능을 최소한으로 축소시킴으로써 벽을 부정하고 커다란 창에는 스테인 , 드글라스를 끼워 비현실적이고 신성한 신이 현현 , , ( ) 하는 공간을 연출하였다 .

스테인드글라스는 색유리를 도상의 형태에 따라 절단하고 자형의 납틀 H (lead 에 끼워서 만든다 그림은 문자해독이 어려운 중세의 일반 신자들에게 성경

came) .

의 구실을 하며 멀리서 보면 추상화와 같이 강한 감동을 주는 영적 대상물이 된다.

고딕성당은 가능한 한 많은 빛을 수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천장은 더욱 높아지고, 내외부는 빛을 통해 상호 관입되며 신비로운 색채에 의한 천상적 공간으로 비물질 화를 이루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자연의 태양광선에 그 표현효과를 전적으로 의 . 존한다 반사광에 의해 전달되는 대부분의 시각예술과 달리 스테인드글라스는 그 . 표현매체를 투과하는 강력한 빛의 에너지에 의해 조절된다 유리의 색은 창이 설 . 치되어질 때 빛에 의해서 바래지고 그 회화적인 표현효과는 강한 태양광선에 의해 감소된다 그리고 창의 위치와 방향 계절 시간의 변화와 장애물에 의한 투사광의 . , ,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한다.

성공회 서울 대성당의 창에는 원래 스테인드글라스가 없었다 고창은 한식 전통 . 띠창살을 응용한 격자창이었고 하부의 연 아치창은 다이아몬드꼴의 색유리가 창 , 2 살의 교차점에 드믄 드문 박혀있는 정사각으로 분할한 격자창이었다 하지만 두터 . 운 벽체에다 상대적으로 작은 창 면적 때문에 외광의 방해를 그다지 받지 않고 조 용한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마치 반투명한 한식 창호지의 빛의 조절과 같은 연 . 출이었다.

로마네스크양식의 교회당에 스테인드글라스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 6 세기 경부터 드물지만 교회당에 창유리가 끼워지기 시작했고 로마네스크 시대에 색유 , 리의 납틀 (lead came) 기법이 등장하는 등 12 세기 고딕시대이전에도 부분적으로 사용되었다.

28)

더구나 11 세기 앵글로 노르만 양식은 고딕양식에 가장 가까운 로 마네스크양식으로서 건축당시 이미 스테인드글라스가 끼워지기도 하였고 나중에 ,

28) 현존하는 로마네스크 스테인드글라스로 아우구스부르그 대성당의 예언자상

독일 세기 이 있으며 테두리 기법 엣칭 그리샤이 기법

( 11 ) , (border) , , (grisalle)

등은 고딕시대에 와서야 등장하였다.

(23)

는 모두 추가 설치되었다 유럽의 경우 중세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노후화와 혁명 . , 전쟁 등에 의해 거의 파손되고 19-20 세기에 다시 교체보수되었는데 이때 처음 건 축양식과 같은 과거의 양식으로 복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현대적인 색조와 기법으 로 하는 경우도 많다.

이번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는 어떤 이야기 거리가 있는 형상적이거나 굵은 흑색선의 정통적인 기법이 아니다.

29)

중세의 초월적이고 신비스런 색광은 더더육 아니다 오히려 기하학적인 추상과 아르누보 색조로 은은하고 부드럽다 당초 설계 . . 자의 구상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증축결과 상대적으로 밝아진 ,

30)

회중석 내부의 빛을 조절하기 위한 방안으로 보여진다 초월성의 표현이나 교화적인 기능이 아니 . 라 내부공간의 빛 조절과 다소 단조로웠던 내부공간을 보완하기 위한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결론 결론 결론 .... 결론

성공회 서울대성당은 영국인 건축가의 치밀한 계획 하에 설계 시공된 전형적인 앵글로 노르만 양식의 건물이지만 매스의 위계적인 조합과 함께 처마장식 창살문 , 양 기와지붕 스테인드글라스의 오방색 등 한국 전통건축 요소를 섞어 씀으로써 , , 한국적 스케일과 풍토에 잘 어울리는 훌륭한 건축물이다.

위계적으로 조합된 외관매스와 공간구성은 서양 중세 로마네스크 양식의 이념인 신을 영접하는 성채 보호와 초월적 열망을 지닌 하늘에 이르는 문 을 구현

“ ( ), ”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신비스런 경외감이나 초자연적인 영적인 분위기 보 . 다는 인간적인 친밀감을 더 느끼게 한다 그것은 소박한 재료와 구조의 솔직한 표 . 현 분절된 건축요소 제단 모자이크와 스테인드글라스 세부 디테일 등에 힘입은 , , , 바가 크다.

29) 중세 스테인드글라스의 특징인 흑색선 기법이나 페인팅 강한 색채대비 등 , , 은 보이지 않고 반투명 색유리 자체 색조의 그라데이션 효과를 중시하였다 , . 납틀 (lead came) 작업은 오히려 거칠고 세련되지 못하다 .

30) 회중석 외진 의 ( ) 4 베이 교차부의 좌우 측랑 , 3 베이씩이 증축됨으로써 면적이 배로 늘어났고 내부공간도 훨씬 밝아졌다

2 , .

(24)

한국 근대건축사에서 성공회 건축이 갖는 의미는 전통적인 서양 건축양식의 수 “ 용 과 교회건축의 토착화 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의 배경에는 트롤로프주 ” “ ” . 교와 건축가 아더 딕슨이 있다 일본과의 특수한 관계 영일동맹 가 선교에 역작용 . ( ) 하고 영국교회의 지원부족과 선교방법 선교지 선택 등의 문제점으로 성공회의 선 , , 교정책은 실패하였지만 문화차원에서의 공헌은 높이 살만하다 높은 문화의식을 . 가졌던 영국인 선교사들이 추방되고 일제 말기 주교가 한국인으로 교체되면서 성 ( ), 공회 건축의 토착화된 면모나 정통성을 상실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핵심어 핵심어 핵심어 핵심어

로마네스크 성공회 서울 대성당 제단 모자이크 분절 공간구성 건축의도

(25)

참고문헌 참고문헌 참고문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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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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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31)

원고제출일 년 월 일

원고제출일 년 월 일

원고제출일 년 월 일

원고제출일 년 월 일

* 2004 4 19

* 2004 4 19

* 2004 4 19

* 2004 4 19

(26)
(2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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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질의문 지정질의문 지정질의문 지정질의문

장 록 희 장 록 희 장 록 희 장 록 희

*

32) 32) 32) 32)

성공회 서울 대성당은 두 차례의 일요 미사를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지 않는 아주 특별한 곳입니다 국내에서는 유일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자 소중 . 한 연구자료이지만 평일에는 항상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밖에서만 감상하고 돌아 , 서게 만드는 냉담한 종교적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발표문을 통해 성당 . 내부의 구조를 상세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김 선생님께 먼저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첫 번째는 질문은 건축 용어의 표기에 대한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거의 모든

1. .

건축용어를 영어 발음표기와 한글 번역 중 한 가지만 사용하시거나 또는 두 가지를 동시에 사용하고 계십니다 예를 들어 ( , modillion → 모딜리온 , chancel → 내진 , 아일 측랑 때로는 한 단어에 대한 번역이 두 개 세 개인 경우도 있습니

aisle → , ). ,

다 예를 들어 ( , narthex → 주입구 입구홀 배랑 , , , crypt → 소성당 지하 경당 이처 , ).

럼 일관성 없는 용어표기는 건축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상당한 부담과 혼란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통일성 있는 표기방식을 쓰지 않은 이유를 , 알고 싶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성공회 서울 대성당이 과연 전형적인 앵글로 노르만 양식의

2. ‘ ’

건축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 ① 원 설계자였던 아더 딕슨 은 1910 년에서 20 년 사이에 버밍엄에서 일기 시작한 비잔틴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부활에 영향을 받아 성 바실 성당과 성 안드레아 성당을 건축하기도 했는데 아마도 , 이 두 성당이 성공회 서울 대성당의 기본 모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는 이 두 성당 . 은 11 세기나 12 세기의 전형적인 노르만 양식이라기보다는 비잔틴풍이 가미된 양식 으로 보입니다 . ② 모자이크 제작자였던 죠지 젝은 시칠리의 몬레알 대성당과 세팔

영남대학교 박사과정

*

(30)

루의 대성당에 있는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를 모델로 하여 서울 대성당의 모자이크 를 제작했습니다 하지만 . 11 세기와 12 세기 서유럽 로마네스크 교회의 앱스 부분은 프레스코로 장식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12 세기 노르만 건축양식에 비잔틴 모 자이크를 적용한 것은 보편적인 양상이 아니라 이탈리아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③ 1996 년의 증축 공사에서는 현대적 감각을 띤 아르 누보풍의 스테인 드글라스를 도입하였습니다 따라서 성공회 대성당은 서유럽의 노르만 양식과 동방 . 의 비잔틴 양식 그리고 현대식 스테인드글라스가 조화를 이룬 절충식 로마네스크 , 양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 점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 .

마지막 질문은 성공회 대성당 내부에서 빛의 역할이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3.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설명하신 대로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부터 빛은 물질과 정신을 . 오가는 아주 중요한 매개로 여겨져 왔으며 중세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신학자들이 , 빛의 신학적 의미를 규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동방 교회에서는 모자이 . 크를 통해서, 서방 교회에서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빛의 역할과 의미를 가시적으로 강화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특히 중세 교회는 촛불이나 자연 채광에만 의존하였기 때문에 어두 . 컴컴한 교회 내부에서 반짝이는 모자이크의 이미지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형형색 색의 이미지가 투사되는 내부 공간은 신앙심을 고양시키는 중요한 요소였음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대부분의 교회가 그렇듯이 성공회 대성당 실내도 인공 조명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이나 찬송집을 읽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배려이기 .

도 하겠지만 지나치게 밝은 인공조명은 오히려 종교적 명상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기 ,

도 합니다 현존하는 유럽의 중세 교회에 들어가 보면 인공 조명의 수를 제한하여 . ,

실내가 최대한 본래의 분위기에 가깝도록 유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의 성당들은 .

본래의 건축이 연출하는 독특한 실내 분위기를 무시하고 지나치게 사용자 중심적이

고 실용주의적 사고를 내세워 인공조명을 남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과연 .

한국의 성당을 두고 그리스도교의 빛의 미학을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전 .

문 건축가의 관점에서 볼 때 선생님께서는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습 ,

니다.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