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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롤드 블럼 선생과의 세미나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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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EP Reports 精 神精 神 分 析J Korean Psychoanalytic Society 精 神精 神分 析分 析分 析 :: 第第 11 卷卷 第第 1 號 2 0 0 0 Vol. 11, No. 1, page 136~137, 2 0 0 0

해롤드 블럼 선생과의 세미나 참관기

문 경 희

*

Seminar with Dr. Harold Blum

Kyung-Hee Moon, M.D.*

2000년 4월 7일, 8일(금, 토요일)에 현재 New York University Medical Center Psychoanalytic Institute의 Clinical Professor 및 Training Analyst인 해롤드 블럼 선 생을 모시고 서울대학교 병원의 시계탑 건물에서 세미나가 있었다. 첫째 날은 오후 6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강박 신경증의 이론에 대한 공부를 하였고, 둘째 날에는 박세현 회원이 제출한 증례를 가지고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토론을 하였다. 세미나에는 심리학자인 블럼선생의 부인 Elsa Blum 여사도 참석하여 자리를 지키셨다.

첫째 날에 공부한 논문은 (1) S. Freud의 Notes upon a case of obsessional neurosis, (2) A. Freud의 Summary of Symposium on Obsessional Neurosis, IJP 1966, (3) M.

Mahler, F. Pines 및 A. Bergman의 The Psychological Birth of the Human Infant 및 (4) R. Munich의 Obse- ssional Character and Transitory Symptom Formation 등이었다.

첫날 시간은 주로 위 논문들에 대한 강의로 채워졌다. 강 의와 토의 중에 기억에 남는 내용은 강박신경증 환자의 치 료는 환자는 자신의 내적 의미세계가 불안정한 상태에 있으 므로 내적 세계를 발견하게 돕는 것, 즉 the sense of inner zone의 확립을 촉진하는 것이라는 것과, 정도언 회장의“강 박신경증의 약물치료가 매우 발달한 현재에 강박신경증의 정 신분석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와 타당성을 가지는 것인가”하 는 질문에“아무리 약물학이 발달하였다고는 하지만, 예를 들어 환자가 일요일과 월요일에 느끼는 스트레스에 대하여 평일과 다른‘Sunday neurotransmitter라는 것’이 따로 있 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니겠냐”는 블럼 선생의 다소 일반 적인 답변이었다. 그 답변을 하면서 선생은 자신이 정신분

석을 처음 시행하기 시작하였을 때 경험했던 증례를 예로 내 놓았다. 그 환자는 성적인 죄책감으로 자신의 양쪽 팔과 손 의 피부가 남아 있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강박적으로 문질 러 씻어서 결국 항정신병 약물까지 투여하여야 했던 환자였 으나, 그 강박적인 행동의 원인인 죄책감에 대한 해석 등 일 련의 해석과정으로 치료가 되었다고 하였다.

한 환자를 치료할 때에 다른 치료의 방법, 즉 행동치료나 약물치료를 병행하는가 라는 질문에 선생은 약물치료가 필 요하다고 생각되는 환자의 경우에는 약물치료 전문가에게 동 시에 치료를 의뢰하는 경우는 있으나 행동치료 등을 병행하 지는 않는다 하였다. 선생의 강의 내용의 일관성이나 설득 력으로 보아 지금까지 접했던 어떤 연자 보다 한층 해박한 지식과 경험의 소유자라는 인상을 깊게 받았다.

둘째 날의 증례는 결혼한지 육 개월 정도만에 일방적으로 이혼을 당하여 우울감에 빠져서 정신치료를 받게된 전문직 을 가진 환자였다. 비교적 소량으로 요약하여 제출되었던 자료를 가지고 막대한 양의 심리적 사실들을 끄집어내고 추 리하는 능력에는 그저 입이 딱 벌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들을 외디푸스 콤플렉스와 절묘하게 연관하 여 설명하는 말들은 이것이 교과서적인 지식만이 아니고 아 주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저절로 느끼게 하였 다. 필자로서는 모든 심리적 움직임들을 외디푸스 콤플렉스 와 전적으로 연관하여, 그것도 아주 명쾌하게 설명하는 것 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다음은 선생이 얘기했던 것들의 단편들이다.

선생은, 환자는 어릴 때 할머니를 상실하고 앓던 우울증을 현재 relive하는 것이라고 하였다(선생은 환자가‘할머니가 쫓겨났을 때에 엄마는 울고 또 울었다’라고 말한 것을 당시 의 우울증에 대한 기억이라고 파악하였다.). 환자가 정신치 료를 그만두고 명상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하였을 때, 그리고

*문 정신과 의원

Dr. Moon’s Psychiatric Clinic, Kwang myung,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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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경 희

참 참 참 참 관 관 관 관 기 기 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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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주당 치료시간을 줄이고 싶다고 하였을 때, 그 의미

는 환자가 아내에게 버림을 받았으므로 다시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서 자신이 치료자에게 버림을 받기 전에 먼저 치료자 를 버리려는 것, 또한 환자는 유아기의 욕망들에 대하여 스 스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으므로 그것을 드러내야 하는 매 치료시간이 위험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치료자에 대한 longing for nurturing에 대한 denial일 수도 있다고 하였고, 이런 순간에는“안 오려는 혹은 치료시간 수를 줄이 자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는“당신이 내게 유아 시절의 매우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였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식의 해석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또 환자가 치료자에게‘나이가 더 많은 치료자를 원한다’

는 말을 한 것에 대하여, 이것은“나는 좀 더 경험이 많은 치 료자를 원한다”는 마음을 외교적으로 표현한 real com- plaining일 수도 있고, 환자가 치료자로 하여금 narcissistic hurt를 느끼게 하려는, 또한 치료자를 degrade하고 deva- luate하려는 마음일 수도 있다고 하였다.

환자가 어린 시절에 조모의 품에 안겨서 자던 사실에 대 하여는 oedipal한 조모라고 하였고, 한편 조모를 내쫓아버 린 잔인한 아버지의 행동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아버지의 그 런 행동은 환자가 독립하고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는 조모의 over-indulgence로부터 환자의 differentiation을 가능케 하는 적절한 행동일 수도 있었다고 하였는데, 한가지 사실 이 여러 가지 심리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의 절묘한 예로 보였다.

환자가“나는 사랑이 뭔지를 모른다”고 한 말에 대하여서 이것은“oedipal grandmother에 대한 사랑을 얘기하는 것 이며, 그것이 너무 incestuous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환자가 성장한 후에도 여자친구 가 없었던 것이며 이것이 바로 신경증 환자들이 childhood 를 re-live하는 것이다”라는 설명을 하였다.

꿈에 대한 해석들도 재미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는 꿈속에 등장하는‘물위에 떠다니는 사과들’에 대하여, 사과는 breast 를 의미하는 typical한 것이며, 환자의 longing for nurturing 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고 환자가 정신치료를 그만두고 불교 의 명상에 몰두하고 싶다는 것은 그런 바램을 deny하는 것 이라 하였다.

이 환자는 자기를 crying baby로서 드러내기를 두려워하

고 있으며 이 환자를 치료하는 초기의 목적은 환자로 하여금 crying child로서 얘기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 하였 고, 이 환자의 치료의 궁극적 목표는 환자가 자신의 유아기 시절의 우울증에 대처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일 것이다 라 고 하였으며, 이 증례 “a patient who quit treatment after crying-out”의 좋은 예라고 하였다.

치료의 기술적인 것에 대하여는, 항상 surface로부터 해 석할 것을 강조하였고, 아주 작은 insight라 하여도 그것이 환자에게는 매우 오래가는 중요한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정 신분석과 정신치료의 차이를 염두에 두고서 이런 환자의 정 신치료에 있어서 좀 더 실제적인 기술에 대한 코멘트를 요 청 받았을 때 선생은 역시 전이상황의 중요함을 이야기하여, 선생은 정신분석과 정신치료를 크게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 을 알 수 있었다.

필자는 세미나가 있기 전날 선생부부를 모시고 한국민속 촌을 방문하였는데, 한국전통혼례복을 입고 사진을 찍으며 아주 즐거워하였으며, 선생의 부인은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고, 귀국한 후에 한옥지붕들 따위를 찍은 사진을 보내 왔는데 사진 솜씨가 보통을 넘는 것을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구경을 하는 중에 선생은“한국정신분석학회에서 대상관계이 론이나 Self Psychology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가”라는 질 문을 하였는데 필자가 한국에서는 주로 정통정신분석이론이 이야기된다라는 답을 하자 고개를 갸우뚱하며“이상한데...”

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선생이 주관하여 열렸던 Freud 전시회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에‘Freud같은 역사상 사 상 위대한 인물의 어깨 위에 서서 출발할 수 있는 우리는 행 복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반복하였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선생은“불분명하면 블럼에게 물어 보라”는 말이 있을 정 도로 이론과 실제의 대가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과연 선생의 강의는 매우 인상깊은 것이었고, 그런 선생과 의 세미나가 이틀 밖에 안 된다는 것이 퍽 아쉬웠다. 선생은 일본의 M. Mahler Symposium에 참가하러 왔다가 한국을 방문한 것이어서 한국 학회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없 었던 것이었다고 한다.

세미나 후에 선생 부부, 회장, 부회장, 동아일보의 김찬형 기자 등이 회식을 하며 기자 회견을 하였다 하며, 그 회견내 용은 간략히 나마 며칠 후 동아일보에 게재되었다.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