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일_2018.12.10 심사기간_2019.01.01-16 게재확정일_2019.01.23
동시대 예술에서 ‘디지털 이후’의 진단과 사유들 - 포스트인터넷과 포스트디지털을 중심으로 -
Analyses and Reflections on “After Digital” in Contemporary Art Scene
- focused on Post-Internet and Post-Digital -
오준호,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Oh, Jun Ho_Graduate School of Creative Media, Sogang University
차례 1. 서론
2. 포스트인터넷
3. 포스트디지털
4. 결론
참고문헌
동시대 예술에서 ‘디지털 이후’의 진단과 사유들 - 포스트인터넷과 포스트디지털을 중심으로 -
Analyses and Reflections on “After Digital” in Contemporary Art Scene
- focused on Post-Internet and Post-Digital -
오준호,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Oh, Jun Ho_Graduate School of Creative Media, Sogang University
요약 디지털 이후 예술의 변화를 논의하는 핵심어로 포스트인터넷과 포스트디지털이 전시장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 용어들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가 불분명해 보인다. 본 논문은 포스트인터넷과 포스트디지털 담론 을 비교하고, 각각의 담론에서 디지털 이후 예술의 변화에 대해서 논의하는 바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본 논문 은 용어의 출현 이후 확장되어 온 담론들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 담론들을 검토하고 나서 ‘포스트’를 접두 어로 등장하는 용어들의 배경으로 돌아가 이 용어들에 공통으로 내포된 불안의 징후가 있다고 간주하고 이를 밝혀보고자 한다. 아방가르드적인 실천은 예술을 허구로 만드는 제도적, 기술적 조건들을 폭로한다는 것을 의미 했다. 인터넷상의 정보는 오프라인의 현실을 지시하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생산되고 전시되는 예술작품은 허구 일 수가 없다. 폭로할 대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비판적 실천이 공허해진다. 인터넷에서는 벗어날 수 있는 바깥이 없고, 인터넷에 부재한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 작가이며, 존재하기 위해서는 타자의 시선으로부 터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포스트를 규정하려는 시도들에 내재된 불안의 실체이다. 디지털 이후 동시대 예술의 변화를 설명함에 있어 유의미하게 포스트라는 접두어가 사용되기 위해서는 작가와 예술작품을 인터넷에 노출된 정보로 국한시키려는 타자들을 무력화하는 예술적 실천들을 더욱 많이 필요로 한다.
Both “Post-Internet” and “Post-Digital” have been keywords to explain the new condition of the art after digital. However, it seems difficult to differentiate the terms. This paper investigates discourses of Post-Internet and Post-Digital. The author regards the attempts to devise new terms starting with post for capturing of current tendencies of contemporary art as a sign of anxieties originated from the production and exhibition of artworks on the Internet. The avant-garde artists have aimed to expose the technological and institutional conditions presenting artworks within the field of fiction. The artworks produced and exhibited on the Internet cannot exist within a fictionalized world because the online information always refers to the offline reality. The critical practices against the Internet cannot be fulfilled. There is no outside which one can escape from the Internet. The authors who are unsearchable and unclickable do not exist in the world. The artists who strive to survive in the constant flow of information cannot escape from the other’s gaze. The anxiety underlying Post-Internet and Post-Digital is caused by the situation that the author as an individual is permanently exposed to others. The effective use of post for indicating of proper changes of contemporary art after digital requires more artistic practices to disturb the surveillance of others.
중심어
포스트인터넷 포스트디지털 인터넷 아트
ABSTRACT Keyword
Post-Internet Post-Digital Internet Art
이 논문은 2015년 대한민국 교 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5S1A5A2A01009751).
1. 서론
디지털 미디어가 보편화된 이후, 우리는 다양한 ‘디지털 이후’의 진단과 사유들을 마주대하고 있다. 전시장에서 최근 몇 년간 주목을 끌었던 용어로는 포스트인터넷(Post-Internet)과 포스 트디지털(Post-Digital)을 꼽을 수 있다. 특히 포스트인터넷 예술은 국내외 전시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아왔다. ‘인터넷 이후의 예술’이라는 모호하고 포괄적인 함의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동시대 예술의 경향을 설명하는데 다양하게 확장 및 적용되어 왔다. 국내 전시 사례로는 2016년 제3회 ‘아마도 전시 기획상’을 받았던 문선아 기획의 <시대정신: 非- 사이키델릭; 블루>을 들 수 있다. 문선아는 이 전시에서 포스트인터넷을 한국의 1980, 90년대 출생의 작가들을 규정하는데 사용하면서, 세대론과 결합시키기도 했다.
포스트인터넷만큼은 아니지만 포스트디지털 역시 동시대 예술의 새로운 경향을 설명하는 용 어로 주목을 끌어왔다. 국내 전시의 사례로는 <무브 온 아시아 2018>을 들 수 있는데, 전시 서문에서 포스트디지털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 인터넷과 물리적 세계가 뒤섞인 현실”1)로 서 탈국가적이며 혼종적인 특성을 갖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심혜련(2015)은 포스트디지털을 여러 매체들이 디지털로 통합되었다가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다시 분화하고 매체에 통합되지 않던 영역들이 통합되는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였다.2)
포스트인터넷과 포스트디지털은 디지털 미디어의 특징을 가상성(virtuality)과 상호작용성으로 규 정하면서 뉴미디어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로 수용했던 시절은 이미 유효기간이 끝났으며, 특정한 장르를 넘어서 디지털 미디어가 예술의 생산과 수용에서 광범위하게 불러온 변화를 사유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포스트인터넷과 포스트디지털이란 용어가 각각 고유하게 구별되는 지점이 무엇인지가 불분명하여, 그 유용성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또한 각각의 용어로 진단하는 내용들이 과연 디지털 이후에만 나타나는 고유한 현상인지도 의문스럽다.
본 논문은 이 두 가지 불명료한 상황을 해소해보는 것을 목적으로 포스트인터넷과 포스트디지 털을 비교하고, 디지털 이후 예술의 변화에 대해서 논의하는 바를 각각 분석한다. 이를 위해 포스트인터넷은 용어의 등장부터 초기 담론 형성까지 살펴보고, 포스트디지털은 플로리언 크 레이머(Florian Cramer)의 논의를 중심으로 검토한다. 크레이머가 포스트인터넷을 의식하면 서 포스트디지털 개념을 분명하게 제시하려는 시도를 지속해왔기 때문이다. 각각의 용어를 검토함에 있어 범위를 담론 형성의 초기로 하는 것은 분량의 한계로 인한 것도 있지만, 본 논문은 이 두 용어와 관련된 담론을 매핑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용어들의 출현이 함의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해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즉 본 논문은 용어의 출현 이후 확장, 전개되어 온 담론들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 담론들을 검토하고 나서 ‘포스트’를 접두어로 등장하는 용어들의 배경으로 돌아가 이 용어들에 공통으로 내포된 불안의 징후가 있다고 간주 하고 이를 밝혀보고자 한다.
2. 포스트인터넷
포스트인터넷은 마리사 올슨(Marisa Olson)이 창안한 용어로, 그 용어가 직접 등장하지는 않 지만 이에 준하는 현상과 개념을 제시했던 공식적은 첫 글은 「미복원 유실물: 디지털 시각문 화에서 이미지들의 순환(Lost Not Found: The Circulation of Images in Digital Visual Culture)」이다. 이 글에서 올슨(2009)은 인터넷상에 올려 진 수많은 사진적 이미지들을 탐색 하고 조합하여 새로운 맥락을 부여하는 작가들을 “프로-서퍼(pro-surfer)”3)라고 지칭하고 풍부한 사례들을 제시하였다. 올슨은 프로-서퍼의 기원을 지저분한 망을 의미하는 내스티 넷(Nasty Nets)에서부터 찾는다. 내스티 넷은 2006년 8월에 설립된 ‘서프 클럽(surf club)’으 로, 예술가들이 협업하여 운영하는 블로그들을 지칭한다. 공교롭게도 2006년은 페이스북이
1) 양지윤, 「Move on Asia 2018」, http://altspaceloop.com/exhibitions/move-on-asia-2018 2) 심혜련, 「포스트 디지털 매체 시대의 예술에 관하여」, 미학예술학연구, 43권, 2015, pp.4-5.
3) Marisa Olson, 「Lost Not Found: The Circulation of Images in Digital Visual Culture」, in Alex Klein(ed.), 『Words Without Pictures』,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2009, p.274.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었던 해이기도 하다. 내스티 넷에 참여했던 예술가들은 마이클 볼링 (Michael Boling), 조엘 홀름버그(Joel Holmberg), 구스리 로네건(Guthrie Lonergan) 등이 며, 올슨도 창립 멤버였다. 내스티 넷은 2006년 8월을 시작으로 2011년 11월에 막을 내렸 다.4) 현재 내스티 넷은 리좀(Rhizome) 온라인 아카이브5)에 보관되어 있는데, 그 첫 번째 게시물은 jmb라는 유저가 올린 것으로 제목은 “ssssstttttttttrrrrrrrrrreeeeeeeeettttttttccccccchhhhhhhh”
이었다. 이 게시물은 어떤 이미지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gif 파일로, 현재는 그 이미지의 링크 가 사라져서 빈 사각형만 움직이고 있다. 게시물에는 두 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첫 번째 댓글의 내용은 “1등(first)”이었다.
내스티 넷에서는 gif, midi, swfs, 유투브 링크 등이 다양하게 활용되었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미디어 객체들이 혼용되는 상황과 유사하다.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 사용자들이 온라인상에서 발견한 미디어 객체들을 몽타주해서 새로운 의미와 맥락을 만들어내듯이, 내스티 넷에서 활동했던 예술가들도 유사한 전략을 활용하였다. 개별 유저가 하 나의 게시물을 올리면, 다른 사용자들이 다양한 미디어 객체들로 댓글들의 타래를 만들어 나간 다는 점도 유사하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파운드 사진(found photography)에서 주로 나타나 는 전유의 전략을 넘어서는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프로-서퍼들은 댓글들로 미디어 객체들을 이어 나가는 것을 다수의 예술가들이 참여해서 펼치는 퍼포먼스로 의식했었고, 그들의 블로그를 협력 플랫폼으로 이해했다. 올슨(2009)은 프로 서퍼들이 이미지들을 “순환에서부터 끄집어내어 재목적화하고, 새로운 가치들을 부여”한다고 보면서도 “파운드 사진의 단순한 전유와 구별되는 기획에 참여하고 있으며,”6) “발견하는 행위가 퍼포먼스로 승격된다”7)고 주장하였다.
올슨은 「미복원 유실물」을 쓰고 나서 3년 뒤인 2011년, 『폼(Foam)』에 「포스트인터넷: 인터넷 이후의 예술(POSTINTERNET: Art After the Internet)」이라는 글을 기고하였다. 이 글에 서 올슨은 포스트인터넷과 관련된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었었는지를 약술하였다. 올슨은 2005 년에 리좀의 큐레이터가 되었는데, 이때 리좀의 목표를 “인터넷 기반 예술뿐만 아니라 인터넷 에 개입하는 모든 예술을 지원”8)하는 것으로 재설정하였다. 이에 리좀의 집행 위원장인 로렌 코넬(Lauren Cornell)은 Electronic Arts Intermix(EAI)에서 토론회를 열고 올슨을 패널로 포함시켰다. 토론회에서 올슨(2011)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에 만든 작품들을 별도로 구별하 지 않고, “내가 만들고 있는 것은 인터넷 이후의 예술(art after the internet)”이며 이때 ‘after’
는 인터넷 “식으로(in the style of)”와 인터넷 “다음(following)”9)의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고 밝혔다. 2005년부터 2008년 어느 시점까지 올슨은 포스트인터넷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 았는데, 용어를 그때까지 고안하지 않았더라도 이에 준하는 개념은 앞에서 간단히 설명한 맥락 에서 살펴볼 때, 넷 아트라는 장르가 더 이상 고유성을 주장할 수 없을 정도로 인터넷이 일상에 침투한 상황에서 예술 전반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준하는 것이었다. 올슨(2011) 은 이를 “인터넷에 영향을 받은 예술에 대한 이미지 철학”10)이라고 표현하였다.
올슨이 포스트인터넷이라는 용어의 개념을 형성해 가던 2005-2008년 사이에, 구스리 로네건 도 유사한 착상을 실현해나가고 있었다. 로네건은 UCLA에 재학 중이던 2005년에 첫 작업을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의 작업들은 현재 http://theageofmammals.com/이라는 사이트 에서 볼 수 있는데, 페이지를 스크롤해 내려가면 2005년부터 2014년 작품들까지의 링크들이 시간 역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림 1>은 로네건이 2005년에 업로드한 <외로운 로스앤젤 레스(Lonely Los Angeles)> 중 일부 이미지이다.
이 작품은 맵퀘스트(MapQuest)를 이용해서 만들었는데, 첫 번째 행에는 맵퀘스트를 통해 흔
4) 내스티 넷를 아카이브한 리좀 사이트에는 마지막 포스트의 날짜가 2012년 1월 2일로 되어 있는데, 이 마지막 포스트의 내용은
“안녕(hi)”뿐이고 이에 대한 댓글은 움직이는 트럭 gif 파일과 “헤이(hey)” 두 개뿐이다.
5) http://archive.rhizome.org/artbase/53981/nastynets.com/index4b2e-2.html?m=200608&paged=5 6) Olson, op. cit., p.283.
7) Ibid., p.274.
8) Marisa Olson, 「POSTINTERNET: Art After the Internet」, Foam, 29, 2011, p.60.
9) Ibid.
10) Ibid.
히 찾아볼 수 있는 패턴의 로스앤젤레스 지도 가 삽입되어 있다. 그리고 “외로운 로스앤젤레 스”라는 작품 제목이 텍스트로 삽입된 다음, 파란색 작은 자동차가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 로 이동하는 gif 파일이 삽입되어 있다. 그 다 음 행의 왼쪽 열 이미지는 추상 이미지처럼 보 이는데, 여기에는 멀홀랜드 드라이브(Mulholland Dr.)라는 텍스트가 쓰여 있다. 이 텍스트를 읽 고 나면 오른쪽에 마치 머리카락처럼 보이는 선은 별도의 이름이 붙여지지 않는 도로를 의 미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 작품에는 아 무런 설명이 없지만 위에서부터 아래로, 오른 쪽에서부터 왼쪽으로 보면서 스크롤 하게 되 면, 어떤 기준으로 이미지를 선택했는가를 이해하게 된다. 로스앤젤레스의 광대한 도로 네트워 크에서 차를 달려 나가면 한적한 도로가 나오는데, 이 도로들을 지도상에서 부분적으로 클로즈 업해 보면 추상 이미지들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에드 할터(Ed Halter, 2014)는 『아트포럼 (Artforum)』에 기고한 「~을 찾아서(In Search Of)」라는 글에서 로네건의 작업 방식을
“인터넷 사이트의 기능을 정보의 회로에서부터 추상적 구성(composition)의 생성기로 전 환”11)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하면, 로네건의 관심은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개별적 인 이미지를 포함하여, 그 이미지가 생성되는 토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로네건의 관심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은 <해킹 대 디폴트(Hacking vrs.
defaults, 2007)>이다. 이 작품은 표 자체인데, 왼쪽 열에는 해킹, 오른쪽 열에는 디폴트가 표시 되어 각 행에서 서로 상반되는 특징들을 텍스트와 이미지로 비교해 놓은 것이다. 해킹은 “이미지 를 만들기 위해서 닌텐도 카트리지를 해킹하는 것,” “로큰롤 같은 태도,” “기술을 정교하게 깨트 리기”라면, 디폴트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MS paint를 쓰는 것,” “지나친 겸손,” “기술을 반쯤 순진하게, 보통 정도로 사용하는 것”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여기서 디폴트는 인터넷의 디폴트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인터넷이 현대 문화의 디폴트라는 이중의 의미를 갖고 있다.
로네건은 2008년에 진행했던 할터와의 인터뷰에서 “소프트웨어에는 특정한 디폴트가 항상 존재하고, 나는 이러한 디폴트에 매력을 느끼며,” “이러한 구조에서부터 출현하는 실재적인 무언가로서의 투쟁과 사랑에 빠져있습니다”12)라고 답했다. 또한 같은 인터뷰에서 로네건은
“당장 지금 나는 텍스트에 빠져있고(시각적이거나/타이포그라피가 아니라... 그냥... 텍스트) 아주 아주 많은 리스트들... 인터넷을 의식하는 예술(Internet Aware Art)”13)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인터넷을 의식하는 예술”은 토론을 촉발했는데, 존 마이클 볼링(John Michael Boling), 세씨 모스(Ceci Moss), 케이틀린 존스(Caitlin Jones)는 인터넷을 의식하는 예술을
“온라인에서 발생하는 행동적이거나 상황적인 경향을 다른 맥락으로, 특히 오프라인으로 번역 하는 예술가들의 경향을 기술하기 위한 시도”14)라고 정의했다. 로네건의 인터뷰들을 볼 때, 포스트인터넷은 미디어 아트를 디지털 문화 비평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뉴미디어가 야기한 이미지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탐색하는 경향을 지신한다고 볼 수 있다.
포스트인터넷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던 초기에 담론 확산에 가장 기여했던 사람은 진 맥휴 (Gene McHugh)이다. 맥휴는 워홀 재단(Warhol Foundation)에서 기금을 받아 2009년 12월 29일부터 2010년 9월 5일까지 포스트인터넷에 관한 블로그를 운영하였다. 현재 이 블로그는 닫혔지만,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이 『포스트인터넷: 인터넷과 예술에 관한 노트들(Post Internet: Notes on the Internet and Art)』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편집되어 출판되었다. 이
11) Ed Halter, 「In Search Of」, Artforum, Nov., 2014, https://www.artforum.com/inprint/issue=201409&id=48701.
12) Ibid.
13) Ibid.
14) Ibid.
<그림 1> Lonely Los Angeles, 2005
책은 아무래도 블로그를 엮은 것이다 보니, 하나의 주제가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논리적으로 전개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의 모호한 용어에 대한 단상이 여러 갈래로 전개되는 과정과 당시 포스트인터넷 예술로 논의되던 전시와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기서 그 일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2009년 12월 29일 화요일_첫 번째 포스트
(레진 드배티 Régine Debatty와의 인터뷰) 드배티: “나는 현재 뉴미디어에서 흥미로운 전환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나는 더 이상 일부의 사람들이 뉴미디어를 볼 때 더 이상 그것을 뉴미디 어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2009년 12월 29일 화요일_두 번째 포스트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포스트인터넷 예술이 예술로 작동하기 위해 그 자체를 왜곡하지 않고 오히려 예술에 대한 일반의 개념을 변경한다는 것이다.
∙ 2010년 1월 27일 수요일
인터넷에 올려 진 예술의 질(quality)은 개별적인 포스트들이 아니라, 시간상에 예술가들의 퍼포먼스로, 그들의 브랜드 관리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 2010년 8월 6일 금요일
물론 인터넷에 개별적으로 흥미로운 작품들이 있으나 그 작품들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저 흥미롭다는 정도이다. 인터넷상에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예술적 매체들의 맥락에서 개별 작품은 그 가치가 거의 영(zero)으로 떨어진다. 아놀드 쇤베르크의 아방가르드 음악과 피아노 를 치는 고양이의 재미난 동영상은 똑같이 흥미롭다...이 결과로 인터넷의 맥락에서 예술작품 을 반성하는데 노력을 기울이는 작품들은 그 혹은 그녀가 제때에 작품을 전파하는 것처럼 예술 가의 생생한 “현존”을 쫒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라이브 퍼포먼스는 누군가가 질적 인 구분을 내릴 수 있는 지점이 된다.
∙ 2010년 9월 5일 일요일
회화의 밈(meme)을 디지털 컴퓨터 네트워크의 맥락으로 확대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가?...이 질문에 답하는 한 가지 방법을 예술사가인 데이비드 조셀릿(David Joselit)이 옥토버 (October) 최신호에 실은 “옆에 있는 회화(Painting beside Itself)”에서 제공하고 있다. 이 에세이에서 조셀릿은 줄리아 쾨더(Julia Koether), 스티븐 프리나(Stephen Prina)와 웨이드 퀴톤(Wade Guyton)과 같은 근래의 화가들은 그들의 오브제가 네트워크의 한 노드에서 다른 노드로 왕복하는 것처럼 - 오브제가 오브제의 사진으로, 다른 예술가가 전유하고 재유통할 수 있는 원재료로, 다시 오브제로 돌아가며 끝없이 순환하는-지속적인 사이에 있음(in- between-ness)과 오브제의 이행성(transitivity)을 은유한다고 제안하였다.
진 맥휴가 2년간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앞서 언급한 올슨과 로네건의 논의에서 확장된 부분은 오브제의 이행성, 예술가의 현존과 브랜드 관리이다. 이 두 가지 측면은 아티 비르칸트(Artie Vierkant)가 「이미지 객체 포스트인터넷(The Image Object Post-Internet)」이라는 글에 서 보다 자세히 다룬 바 있다. 먼저 오브제의 이행성과 관련해서 비르칸트가 주목하는 것은 연산 장치의 편재성(ubiquity)과 그 장치들이 광대하게 얽혀있다는 점이다. 이 조건으로 인해 파생되는 결과는 그 무엇도 고정된 상태에 있을 수 없으며 “모든 것이 다른 어떤 것이 된다 (everything is anything else)”15)는 것과 전통적인 매체 구분이 붕괴된다는 것이다. 후자는 포스트미디어로 대변되는 진단과 관련되어 있다. 비르칸트(2010)는 포스트 미디어 담론이 로잘린 크라우스(Rosalind Krauss)나 레프 마노비치(Lev Manovich)와 같은 학자들에 의해서 깊이 있게 다루어져왔지만, 전자에 해당하는 오브제의 이행성은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왔다고 지적했다.16) 비르칸트는 오브제의 이행성을 대표하는 예로 올리버 라릭(Oliver Laric)의 <버 전들(Versions, 2009-2012)>을 들었다.
15) Artie Vierkant, 「The Image-Object Post Internet」, Jst Chillin', Dec 2010. http://jstchillin.org/artie/pdf/The_Image_
Object_Post-Internet_us.pdf.
16) Ibid.
<그림 2> Versions, 2009
<그림 2>는 <버전들>이 2009년에 설치되었던 버전이고, 이 버전은 2016년 ‘미디어시티서 울’에서도 전시되었었다. 이 작품은 2008년 이란 혁명 수비대 소속 통신사가 네 발의 미사일이 발사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전 세계에 배포한 후, 온라인상에서 떠돌았던 각종 패러디 사진 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란 혁명 수비대가 처음 배포했던 사진에서 미사일 발사 후에 생긴 화염이나 폭발 구름이 복사해서 붙여 넣은 것처럼 보였고, 사진이 조작된 것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의혹이 사실로 판명되자 이란 혁명 수비대는 세 번째 미사일이 발사되지 않은 원본 사진을 공개하였다. 이는 전 세계 네티즌들의 조롱을 샀고 수십 기의 미사일이 발사되거나 발사대로 다시 향하는 미사일 등의 패러디 사진들을 양산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사진 설치뿐 만 아니라 영상 작품 등의 다양한 버전으로 존재한다.
비르칸트(2010)는 라릭의 <버전들>이 “일련의 조각품, 미사일을 에어브러쉬로 그린 이미지, 토크, PDF 파일, 노래, 소설, 제조법, 연극, 정해진 율동, 장편영화, 상품”17) 등의 버전으로 존재하는 것이 포스트인터넷에서 발견되는 오브젝트의 이행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고 보았 다. 비르칸트(2010)는 “포스트인터넷이라는 풍조에서 관객이 뮤지엄이나 갤러리를 통해서 만 나는 예술작품은, 인터넷, 출판물, 오브제나 그 재현물의 불법 이미지, 그리고 다른 저자에 의해서 편집되거나 재맥락화된 그 어떤 버전들과 모두 동등하다”18)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로 예술가의 현존과 브랜드 관리는 포스트인터넷 예술이 예술의 본질보다는 예술의 수용과 사회적 현존에 더 깊이 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향을 대표하는 용어는
“화폐로서의 관심(attention-as-currency)”이다. 관심과 주목은 언제나 돈을 버는 것과 관련 되어 왔다. 그러나 네트워크가 광대하게 펼쳐지고 수평적으로 연결되었을 때, 관심은 소수가 아니라 누구나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전환된다. 비르칸트는 소수 대 다수라는 미디어 모델 에서는 매체의 희소성에 의거해서 이미지와 오브제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해왔지만, 다수 대 다수의 미디어 모델에서는 가치를 부여해 왔던 매체의 희소성 자체가 붕괴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포스트인터넷 예술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이미지들이 그 내용이 아니라 이미지들이 현
17) 「“The Real Thing,” Interview with Oliver Laric by Domenico Quaranta」, Art Pulse Magazine, 2010. Artie Vierkant, op. cit.에서 재인용.
18) Ibid.
재 수용되는 맥락과 유용성”이 더 중요해진다는 점이며, “다수 대 다수라는 새로운 계층 모델에 서는 오브제의 문화적 지위가 주목받는 정도에 온전히 영향을 받으며, 그 이미지들이 사회적으 로 전송되는 방식과 그 이미지가 삽입되는 커뮤니티들의 다양성”19)이 핵심이 된다는 것이다.
<그림 3> Image Objects, 2011~
이러한 인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비르칸트의 <이미지 객체들(Image Objects, 2011~)>을 들 수 있다. <그림 3>은 <이미지 객체들> 시리즈의 일부인데, 이 작품은 처음에 디지털 파일 로 존재하는 이미지를 UV 프린트를 해서 오프라인 객체로 옮긴 뒤에 갤러리에 설치하고 특정 위치에서 사진으로 찍어서 다시 디지털 파일로 변환한 이미지이다. 이 작품은 비르칸트가 주장 하는 오브제의 이행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애초에 작품이 갤러리라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이미지를 온라인상에서 유통시킬 목적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실제로 갤러리에서 본다면, 작가의 목적에 부합하는 관객의 위치는 사진을 찍은 바로 그 위치뿐이다.
비르칸트는 포스트인터넷 상황에서 예술작품은 특정한 물리적 공간에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설치된 이후 인터넷상에서 유통과 변환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객체가 된다. 따라서 비르칸 트는 시각예술의 고유한 대상이 이미지 자체가 아니라 이미지 객체가 되었다고 판단한다.
앞에서 간단히 정리해본 포스트인터넷 초기 담론은 웹 환경이 블로그에서 소셜 미디어로 진화 해나간 과정과 일치한다. 초기 담론은 리좀(Rhizome)과 디지털 미디어가 친숙한 1980년대 생인 작가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포스트인터넷이 동시대 예술 현장에서 더욱 주목을 끌 게 된 계기는 현대예술의 주요 비평가들이 뉴미디어가 예술생산의 조건을 어떻게 변화시켰는 지에 관한 사유를 전개하면서부터이다. 그 중에서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이 쓴 「디지털 분리: 동시대 예술과 뉴미디어(Digital Divide: Contemporary Art and New Media)」를 논쟁 을 확산시킨 주요 텍스트로 꼽을 수 있다. 이 글에서 비숍(2011)은 “많은 예술가들이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을 통해서 생각하고 보고 감정을 여과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정 마주대하고 있는가?”20)라고 묻는다. 비숍은 외형상 동시대 예술의 경향이 디지털 미디어와 무관해보이지만(혹은 뉴미디어 예술이 주류 예술계에
19) Ibid.
20) Claire Bishop, 「Digital Divide: Contemporary Art and New Media」, Artforum, Sep., 2011, in Lauren Cornell and Ed Halter(eds.), 『Mass Effect: Art and the Internet in the Twenty-first Century』, MIT Press, 2015, p.337.
진입하지 못 하지만), 사실은 예술가들이 어떤 포맷과 매체로 작업하는가를 결정함에 있어 디지털 미디어가 가장 깊은 수준에서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비숍(2011)은 1990년대 이후 동시대 예술에서 일반적인 경향인 “퍼포먼스 예술, 사회적 실천, 아상블라주(assemblage) 기반의 조각, 캔버스 위에 그림, 아카이브적 충동과 아날로그 필름, 모더니스트 디자인과 건축에 대한 매혹”21)이 디지털 미디어의 등장에 따른 것이라고 파악했 다. 이중에서도 아날로그 필름이나 사회적 실천은 올드 미디어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디지털 미디어의 등장과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비숍은 동시대 예술가들이 올드 미디어에 갑작스럽게 매혹을 느꼈던 시기가 뉴미디어가 등장했던 시기, 그 중에서도 DVD가 소개되었던 1997년과 중복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아날로그 필름에 대한 매 혹은 디지털 미디어가 결여하고 있는 풍부한 지표성(indexicality)이 드물고 귀한 인상을 줌으 로써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매체의 유토피아적인 잠재성은 그 매체가 구식이 되는 순간에 촉발된다고 믿었던 발터 벤야민을 떠올리게 한다.22) 사회적 실천의 경향 역시 마찬가지로 디지털 미디어에 의해 등장했다고 할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에서 사람들 간의 소통은 탈육화되어 있기 때문에, 대면 접촉을 활성화하고 일상의 행위들(요리, 정원 가꾸기, 대화 등)을 공유하는 사회적 실천의 경향은 디지털 미디어의 스펙터클로 인해 파편화된 사회 적 결합을 회복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관계들은 소수 대 다수의 매스미 디어 모델에 의해 매개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의 상호작용적인 매개 과정을 따르기 때문에 여기서 파생되는 결과가 구체적인 오브제를 생산하지 않더라도(예를 들면, 대화들), 이를 미학 적 대상으로 고려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낳는다고 보았다.
아상블라주 기반의 조각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존재하는 무한대의 자료들을 마주 대했을 때, 선택(selection)이 핵심적인 작동방식으로 등장한다는 것을 반영한다. 이제 누구도 처음부터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고, 기존에 존재하는 요소들을 편집하여 새로운 파일을 만드는 것으로 창작의 의미가 변화했다. 이는 원본성(originality)나 저자성(authorship)을 질문했던 1980년 대 전유의 예술들과는 달리, 존재하는 인공물들을 어떻게 재맥락화할 수 있는가로 강조점이 이동했다는 것을 말해준다.23) 또한 방대한 양의 자료 앞에서 모으고, 재구성하고, 병치하는 행위 등은 기본적으로 아카이브적 충동과 관련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아키비스트 (archivist)가 된다.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문서, 이미지들, 음악 파일들을 저장하고 분류하고 색인을 붙이는 행위는 자료의 수집과 관리를 맡는 아키비스트의 행위와 동일하다. 이러한 방식 은 개별 작품을 제작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작품을 전시하는 방식에도 반영되어 있다. 이를테 면, 타시타 딘(Tacita Dean)이 2005년도에 기획한 <여담(An Aside)>에서 작품은 순전히 우연과 일화에 따라 작품이 선택되었다. 이 전시는 딘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과정을 기록한 에세이와 함께 선보여졌고, 전시가 진행됨에 따라 예술가들과 작품 사이에 특정한 연결들과 유사성이 창발되도록 구성되었다.24) 비숍(2011)은 이러한 전시 방식을 “20세기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표류(dérive)의 논리”이며, “21세기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서핑의 행위이 다”25)라고 보았다. 이와 더불어, 자료의 집적, 관리 및 검색이 손쉽게 이루어지는 디지털 미디 어 환경에서 연구는 이전보다 더 쉬운 행위가 되고 따라서 연구 기반의 예술이 증가하는 것은 인터넷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오늘날 전시에 설치되는 작품들의 지속시간을 모두 합했을 때, 며칠을 보더라도 작품을 모두 다 보기 힘든 상황 역시 디지털 미디어가 보편화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비숍(2011)은 이 상황을 케네스 골드스미스(Kenneth Goldsmith)의 말을 빌려, “새로운 비가독성(the new illegibility)”26)이라고 부른다. 이제 누구 도 온전히 전시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며, 개인의 선택(혹은 임의적 샘플링)에 따라 전혀 다른
21) Ibid., p.338.
22) Ibid., pp.340-341.
23) Ibid., p.342.
24) 「Exhibitions Tacita Dean」, https://www.camdenartscentre.org/archive/d-plain/an-aside 25) Bishop, op. cit., p.343.
26) Ibid., p.349.
전시를 보게 되었다.
비숍은 디지털 미디어가 동시대 예술의 미친 영향을 외관상으로 볼 때에 여전히 아날로그 미디 어가 주인 것처럼 보이나, 그 조건은 디지털 미디어에 의해 구조화되었다고 파악했다. 동시대 예술이 디지털화된 삶의 경험을 기술하는데 주저하는 것은 디지털은 기본적으로 코드로서 인 간의 지각에 낯설기 때문이다. 그것이 1920년대 사진과 영화가, 1960, 70년대에서 비디오가 시각예술에 빠르게 포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디지털이 여전히 동시대 예술의 변방에 머무르 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된다. 그러나 동시대 예술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애매한 혼종으로 존재하면서 한편으로 아날로그로 편향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원인은 그것이 시장이 선호하 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숍(2011)은 “디지털 혁명은 가장 이상적 상태에서 비물질화 되고, 비작가적인(de-authored), 그리고 집단적 문화의 시장화할 수 없는(unmarketable) 실 재를 새롭게 열며, 가장 최악의 경우에는 시각예술 자체가 진부하게 되기 시작하는 징후를 암시한다”27)고 파악했다.
이와 같이 포스트인터넷 초기 담론을 검토해보았을 때, 이 용어가 목표로 하는 바는 인터넷을 포함하는 뉴미디어의 매체로서의 특징이 아니라 뉴미디어의 확산 이후 시각문화와 예술제도 에서 발생한 변화를 설명하는 것에 있다. 포스트인터넷이 동시대 예술 담론에서 기여하는 바가 있다면 뉴미디어를 특정 예술 장르로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촉발된 변화를 시각문 화와 예술제도 전반에 걸쳐 확인하려고 한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개별 작가나 비평가들이 포스트인터넷으로 기술하는 내용이 인터넷이 보편화된 이후 에 등장하는 고유한 현상인지, 아니면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가 일상화된 디지털 용어를 사용하 고 있을 뿐인지가 불분명하다. 이를테면 비숍이 20세기의 표류의 논리가 서핑 행위가 되었고 통찰하는 부분은 예리하지만, 한편으로는 유사한 실천을 설명하는 용어가 디지털 문화에 영향 을 받은 것뿐은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올슨이 포스트인터넷으로 주장하는 바의 대부 분은 사실 이미지의 전유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여기에 덧붙여지는 특이점이 있다면 과정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전유가 퍼포먼스로 승격된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인터넷 커뮤니 티나 블로그에 작가의 행위가 시간별로 자동 정리되어 있어 그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정도의 의미 말고 무엇이 더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로네건이 인터넷의 디폴트로서 디지털 미디어에 서 이미지가 생성되는 토대에 개입한다는 것도 해킹과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진 맥휴와 비르칸트가 지적하는 오브제의 이행성과 예술가의 브랜드 관리도 정도의 심화 로 이해될 수 있어 보인다. 오브제의 이행성은 플럭서스(Fluxus)의 인터미디어적인 실천이 온오프라인을 경계로 이식되었다고 볼 수 있고, 예술가의 브랜드 관리는 예술시장이 존재하는 한 늘 수반되는 것인데 이제 작가가 시장의 평가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브랜드 화하려고 한다는 것으로 정도의 차이로 간주해도 무방해 보인다.
비숍의 경우 디지털 미디어를 사용하지 않는 작업에서 그 영향을 읽는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나, 그 논리는 사실 거의 무적이 되거나 디지털 미디어를 과대평가하게 된다. 비숍 의 논리에 따르면 아날로그 매체와 사회적 실천에 대한 관심은 디지털 미디어가 결여한 부분들 때문에 가능했고 아상블라주나 아카이브적인 실천은 디지털 미디어의 특징을 반영하는 것이 된다. 이 논리가 성립한다면 디지털 미디어의 특징이 어떻든 간에 상관없이 새로운 예술적 실천의 경향을 디지털 미디어의 영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포스트인터넷의 초기 담론을 비판적으로 살펴보면, 문화현상을 디지털 용어로 설명 하고 있을 뿐인 것 같다는 극단적 평가도 내릴 수 있다. 이러한 평가를 내리게 되는 원인으로는 포스트인터넷의 초기 담론이 뉴미디어라는 광범위하고 현재진행형인 기술적 대상들에 대한 엄밀한 검토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일반화된 미디어 사용자 경험의 수준에서 나타는 문화현상 을 비평적 대상으로 삼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접근으로는 새로운 매체가 예술적 재료로서 제공해줄 수 있는 가능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를 결여할 수밖에 없다.
27) Ibid., p.350.
3. 포스트디지털
포스트디지털을 ‘디지털 이후’ 예술과 시각문화의 변화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개념어로 제시 해온 주요 학자는 플로리언 크레이머이다. 그가 ‘포스트’라는 접두어를 사용하는 용법은 포스 트인터넷과 다르지 않다. 포스트인터넷이 인터넷이 보편화된 이후를 지시하듯이 포스트디지 털은 디지털이 일상에 편재된 이후를 지칭하는 것으로 디지털 시대의 종언이라는 뜻을 내포하 지는 않는다. 크레이머가 포스트디지털이라는 용어로 극복하고자 하는 바는 디지털 미디어를 뉴미디어로 규정할 때 내포된 기술적 진보에 대한 이념이다. 뉴미디어는 디지털이 아날로그보 다 진일보하는 것을 전제로 한 용어이다. 뉴미디어에는 디지털 미디어가 기존의 미디어들을 대체하고 통합할 것이며, 사용자에게 기술적으로 더 완벽한 경험을 제공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내포되어 있다.
크레이머는 이러한 기대가 진보에 대한 낙관론에 근거하고 있을 뿐, 디지털 미디어의 보편화 이후 실제로 전개되는 문화현상은 다르다고 진단한다. 디지털 미디어가 출현했던 초기에는 블로그나 팟캐스트가 인쇄물을 대체하고 비닐 레코드가 사라지고 고해상도의 디지털 카메라 와 프로젝터가 필름을 사장시킬 것이라고 기대되었다. 그러나 오픈소스 플랫폼이나 3D 프린팅 을 전통적인 DIY와 결합하는 메이커 운동은 소규모 제조를 활성화하고, 영화작가들이 운영하 는 필름 랩은 8mm, 16mm와 같은 필름 포맷들을 디지털 제작기술과 결합하는 실험의 토대로 활용하여 새로운 전시와 상영의 가능성을 선보이고 있다. 이는 단순히 복고 혹은 아날로그적 감수성 등으로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라, 디지털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실천들의 등장을 의미한다.
크레이머가 포스트디지털을 새로운 문화현상을 포착하는 유의미한 용어로 승격시키기 위해 취하는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포스트디지털은 반-뉴미디어(anti-new media)이다. 디지털을 혁명으로 서술하던 시기는 끝났고,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반성적이고 비판적인 사유와 실천들이 중요하게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둘째,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반성적 실천은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의 혼종으로 등장한다. 포스트디지털은 미디어 를 구식과 신식으로 구별하지 않고, 미디어를 해킹하여 각각의 특성을 혼합하는 집단적 실천들 을 지시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집단성, 오픈소스 문화의 개방성과 같은 디지털적인 특성들이 아날로그 매체 제작에도 드러나면서 혼종의 양상을 보인다. 예를 들어, 팬진(fanzines.tumblr.com) 과 같은 인쇄 잡지 커뮤니티는 종이라는 아날로그 매체에 주목하지만, 소량생산, 자가출판, 개인적 주제라는 측면에서 디지털 문화의 특징을 함께 보여준다. 셋째, 포스트디지털은 신식과 구식의 구별이 아니라 개인화된 미디어와 기업화된 서비스의 차이를 강조한다. 1990년대에는 신문, 영화, 텔레비전, 라디오 등이 기업화된 미디어였고 웹 사이트가 개인제작으로서 대안적 인 미디어였다면, 이제는 인터넷 자체가 기업화되어 개인제작 콘텐츠들이 거대 플랫폼에 종속 되어 있다. 따라서 아날로그 매체를 디지털 미디어 기술의 맥락에서 재목적화하여 인쇄 잡지, 비닐 레코드, 필름 등을 재발견하는 문화적 실천들은 거대 인터넷 기업에 종속된 미디어 경험 의 대안을 제시한다.28)
크레이머의 포스트디지털에서 포스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상하 위계로 보는 관점에 종언 을 고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기업에 종속된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탈피하여 디지털로 대체될 수 없는 아날로그 매체의 가치를 탐구하는 자발적 개인들의 협력적 관계의 출현이라는 의미에 서 포스트이다. 크레이머가 포스트디지털 개념을 제시했던 초기에는 아날로그 매체가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는 현상에 방점을 두었지만, 비판적 실천을 강조하면서 정보기술 자체를 거부하 는 예술적 활동들을 포함시키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크레이머가 포스트디지털의 급진적인 사 례로 예를 드는 작가는 히스 번팅(Heath Bunting)이다. 번팅은 넷 아트 첫 세대에 속하는 작가 로 해적 라디오 방송이나 다이얼 접속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국가와 기업이 관리하는 공공장 소에서 통제를 전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해왔다. 그러나 1998년부터 번팅은 야후와 같은
28) Florian Cramer, 「What is ‘Post-digital’?」, Post-Digital Research, 3(1), 2014, http://www.aprja.net/what-is-post-di gital/
거대 기업이 통제하는 인터넷은 더 이상 대안적 공간이 될 수 없을 정도로 변질되었다고 판단 하였다. 이후 번팅은 다수의 사람들과 협력하여 공공장소나 상점 등에서 감시 카메라를 무력화 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국경 이동의 표식을 남기지 않는 국제 우편 시스템을 만들어내기도 했 다. 번팅은 2004년부터 <신분 프로젝트(Status Project)>라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사람들의 신분을 결정하는 요소와 통제하는 논리를 조사하여 이를 체계적으로 시각화한 플로우차트 (<그림 4>)를 만들고 이를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해서 누구나 출력해서 볼 수 있게 공개하 였다. 또한 일반인들도 자신의 신분을 새로 만들어서 전화를 개통하고 점차적으로 여권을 발급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합법화하는 수단들을 만들어서 이를 전시장에서 가르치기도 했다.29)
<그림 4> Status Project, 2004~2014
크레이머가 포스트디지털을 정보기술 자체를 거부하는 급진적 실천까지 포괄하는 용어로 확 장하는 목적은 포스트인터넷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크레이머는 포스트인터 넷이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인터넷 플랫폼들로 형성된 문화를 반영하는 시각예술 을 지칭하며 전시장이나 온라인에서 모두 그럴 듯하게 보이는 오브제들을 생산할 뿐이지, 매체 자체를 실험하거나 비판적으로 고찰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이에 반해 자신이 제시하는 포스 트디지털 개념은 기업화된 뉴미디어에 저항하는 비판적 실천을 강조하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 는 것이다.
앞에서 검토한 대로 포스트인터넷의 초기는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시각문화 에 관한 비평적 담론을 생산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크레이머가 지적하듯이 포스 트인터넷으로 규정될 수 있는 작업들이 소셜 미디어가 보편화된 이후 이미지의 생산과 순환에 작동하는 논리를 충실히 따르거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오브제들을 변형시키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로네건의 작업에서 디지털 소프트웨어를 단순히 활용하는 태도와 인터넷의 디폴트로서 기술적 토대를 비판적으로 전유하는 태도를 분명히 구별하는 데서 나타나듯이, 포스트인터넷이 기업화된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실천을 결여한 것은 아니다. 또한 크레 이머가 포스트디지털을 제시했던 초기에 강조했던 아날로그 매체가 디지털 기술의 맥락에서 재활성화되는 현상은 클레어 비숍이 1990년대 이후 동시대 예술에서 아날로그 매체의 잠재성 을 탐구하는 작업들의 출현을 설명하는 바와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면 포스트디지털이란 용어 가 유의미할 수 있는 조건은 크레이머가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디지털 미디어를 뉴미디어로 규정할 때 나타나는 기술적 진보에 대한 이념에 대한 비판밖에는 남지 않는다. 그러나 포스트 인터넷이 기본적으로 뉴미디어를 더 이상 새로운 매체가 아니라 동시대 시각문화를 형성하는 기본 토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29) Florian Cramer, 「Talking Past Each Other. On the word combinatorics of ‘post’, ‘media’, ‘digital’ and ‘Internet’」, 2015, http://data.pleintekst.nl/talking_past_each_other.html
크레이머가 포스트디지털을 제시했을 때의 기본 발상은 디지털화 이후 모든 매체가 디지털로 통합 및 대체된다는 주장을 비판하기 위해 디지털 미디어가 보편화된 이후 아날로그 매체가 부활하는 현상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매체를 기술적 우위에 따라 구분 하고 디지털 미디어를 미디어 기술 진화의 최종 단계로 인식하는 태도를 극복해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은 크레이머도 인정했듯이 포스트인터넷과 포스트미디어 관련 담 론들과 유의미하게 구별되는 지점을 갖는다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포스트디지털은 포스트인 터넷과 제임스 브리들(James Bridle)이 제안했던 ‘새로운 미학(New Aesthetics)’을 포함하면 서 동시대의 정보-산업-정치 복합체를 반영하는 예술 담론 전체를 지시하는 포괄적인 용어 가 되어가고 있다.30)
4. 결론
본 논문은 디지털 이후 예술의 변화를 설명하는 용어로서 포스트인터넷과 포스트디지털이 각 각 진단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이 용어들이 유의미하게 구분될 수 있는지와 디지털 이후의 현상으로서 고유하게 지시하는 바가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해보았다. 본 논문에서 검토한 초기 담론의 범위에서 두 용어를 도식적으로 나누어보면, 포스트인터넷은 인터넷이 보편화된 이후 형성된 시각문화에 대한 비평적 작업이고 포스트디지털은 디지털 미디어를 기 술적 진보로 간주하는 태도에 내재된 매체 간의 위계를 전복시키려는 비판적 실천에 해당한다 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각각의 용어를 제시했던 발상을 도식적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하더라도, 초기 담론의 전개를 검토하는 것만으로 이 두 용어를 유의미하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개별 용어들이 디지털 이후 예술의 변화라고 지칭하는 바가 이 시기에만 고유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판단된다. 현상 자체는 이전 시기에 발견되었던 바와 정도의 차이에 그치는 것처럼 보이거나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 자체가 디지털 문화를 반영한 결과라고 간주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포스트인터넷과 포스트디지털 담론이 유의미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용어들을 둘러싼 논의들은 열띤 관심만큼이나 확장되어 왔고 현재 진행 중이기 때문에 본 논문에서 검토한 범위만으로 특정한 결론을 내리거 나 유용성을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를 대신하여 본 논문은 서론에서 밝혔던 대로
‘포스트’를 접두어로 하는 용어들의 배경으로 돌아가 이러한 용어들의 출현을 불안의 징후로 읽어보고자 한다. 포스트인터넷과 포스트디지털이란 용어들의 출현 배경을 이해하는데 참조 할 만한 텍스트는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의 『흐름 속에서(In the Flow)』이다.
그로이스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생산된 예술과 문학의 변화를 비허구화(defictionalization)로 파악한다. 전통적으로 책, 극장, 전시장 등은 허구를 담보하는 프레임으로서 스스로를 엄폐하 여 허구를 허구로 작동할 수 있게 해주었다. 20세기의 아방가르드는 이 프레임이 작동하는 물질적, 기술적, 제도적 기반을 폭로하여 관객들이 인식하게 했다. 그러나 아방가르드적인 실 천은 예술제도에 포획되어 예술을 전시하는 표준화된 방식에 수렴되고 재허구화 (refictionalization)된다. 인터넷은 기본적으로 이 조건을 허물어 버린다. 인터넷은 정보의 매 체로서 정보는 언제나 오프라인의 현실을 지시한다. 따라서 인터넷은 예술의 전통적인 매체들 처럼 허구를 담보할 수 없다. 인터넷에서 가짜 정보가 있다면 그것은 밝혀져야 하는 사기이지 허구로 인정될 수 없다. 또한 인터넷에는 예술만을 위한 프레임이 존재하지 않으며 사용자는 프레임을 언제나 의식할 수밖에 없다. 예술 전문 블로그가 존재할 수는 있지만 사용자가 클릭 했을 때만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화면에 띄워지기에 사용자 스스로가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것 이며, 이 프레임은 정치, 사회, 경제 등의 정보가 전달될 때에도 똑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프레임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관객은 더 이상 예술에 몰입할 수 없고 예술 생산을 실제 과정으 로, 예술 작품을 실제 사물로 인식하게 된다.31) 문학과 예술이 인터넷을 토대로 했을 때에는
30) Ibid.
31) Boris Groys, 『In the Flow』, Verso, 2016, pp.172-174.
프레임이 허구를 담보하지 않고 관객이 프레임을 이미 의식하기 때문에, 프레임의 폭로를 전제 로 하는 아방가르드적인 실천이 존재할 수 없다.
인터넷에 존재하는 것은 예술이나 문학 작품이 아니라 그에 관한 정보이다. 최근 전시장에서 작품 자체뿐만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기록(documentation)이 함께 전시되고, 작 가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작가가 작품을 포함해서 자신의 작업 행위에 대한 기록을 노트북으 로 보여주는 현상은 문제적이다. 예술은 허구이지만 작품에 관한 기록은 실제로 일어났던 전 시, 예술적 행위 등을 지시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예술 작품을 인터넷으로 올린다하더라도 작품은 작가의 생애, 전문가의 비평 등과 함께 정보로 통합된다. 이때 미적 기준은 예술 작품이 어떠한가의 수준이 아니라 작품에 관한 정보를 어떻게 배열하고 보여줄 것인가의 수준에서 작동한다. 인터넷에서 작품이 작가를 둘러싼 여러 정보들과 함께 통합될 때,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해석되어야 하는 주체가 아니라 실재하는 사람이 된다.32) 또한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기록 자체가 작품이 되기 때문에 작가가 최종 산물로서 작품을 만들 필요도 없게 된다.33)
인터넷이 예술적 작업 공간으로서 사용되면, 예술 생산과 전시의 차이가 사라진다. 작가가 인터넷으로 작업을 하게 되면, 작품의 생산과정이 온전하게 타인에게 노출되게 된다. 예술적 생산과정이 완벽한 감시에 처한다는 뜻이다. 전통적으로 창조적 과정은 작가의 부재와 은둔을 전제로 했다. 작가가 작품을 생산하는 시간과 그 결과를 보여주는 시간의 차이 덕분에 작가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작가라는 개인이 타자와 구별될 수 있는 이유는 타자들이 개인에 덧씌우는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는데 있다. 작가가 자신은 누구인가에 대해 서 믿고 있는 바가 사회적 타자들이 규정하는 정체성과 충돌하는 것이 작가가 개인으로서 존재 할 수 있는 기본적 조건이다.34) 타인의 시선이 악마적인 시선이 될 때는 “개인이 비밀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그가 본 것만으로 한 개인을 축소시킬 때”35)이다. 인터넷을 작품 생산과 전시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작가들은 인터넷에 등록된 작품과 작가적 행위에 관한 정보들의 총체로서 규정되기 때문에 부재하는 작가로서의 자유를 누릴 수가 없다.
그로이스가 인터넷을 토대로 한 예술에 관해 분석하는 바가 포스트인터넷과 포스트디지털에 공통적으로 내재된 불안을 설명해준다. ‘포스트’라는 접두어는 기본적으로 이전 시대와의 단절 혹은 질적으로 중요한 변화를 전제하고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부터 탈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과 문학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바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디지털 이후 예술에서 근본적으로 무엇이 달라졌다는 징후를 감지할 수는 있지만 이로부터 벗어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포스트인터넷 예술에서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바깥을 향하는 비판적 실천을 찾아보기가 어려 운 이유는 인터넷이란 프레임 자체가 허구를 담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폭로할 대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의 브랜드 관리라는 것도 전통적인 예술 시장의 평가를 대신하는 네트워크상의 다수들의 추천에 기초한 대안적인 예술 시장의 출현에 따른다기보다는 작가가 실재하는 사람으로서 작품들의 배후로 사라질 수도 없고 부재할 수도 없는 상황에 따른 것이 다. 일상의 예로 들면, 인터넷 게시판의 논쟁적인 콘텐츠에 대해서 ‘주작’ 판정이 따른다거나
‘신상털이’가 횡횡하고 이전의 글들을 불러와서 증거로 펼쳐 보이며 게시자를 ‘어그로’로 낙인 찍는 것과 같은 방식이 예술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가의 행동, 말과 작품 이 모두 실재하는 사람의 책임으로서 추종하거나 추궁할 수 있는 대상이 될 뿐이다. 주로 인터 넷에서 글을 쓰는 지식인들이 극단적인 찬반의 대상이 되는 사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술 생산과 전시가 인터넷을 토대로 했을 때 허구가 붕괴될 뿐만 아니라 작가도 타자의 시선 으로부터 보호될 수가 없다. 크레이머가 초기에 포스트디지털로 주목했던 디지털의 바깥으로 서 아날로그(물질)로 향하는 실천도 결국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아날로그 매체의 질감은
32) Ibid., pp.175-176.
33) Ibid., p.180.
34) Ibid., pp.181-182.
35) Ibid., p.182.
인터넷에 전시되기에 더없이 좋은 대상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젊은 세대들에게 유행 하고 있는 낙후된 동네나 오래된 가게에 가서 사진을 찍는 행위는 인스타그램을 의식하고 있을 뿐이다. 벗어날 수 있는 바깥이 없고, 인터넷에 부재한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 작가이며, 존재하 기 위해서는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포스트를 규정하려는 시도들에 내재 된 불안의 실체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터넷이 작품과 작가들의 종말을 이끌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로이스는 작가로서의 개인과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권력으로서의 타자들 간의 대립을 근대성과 탈 근대성이 놓였던 공통의 조건으로 파악한다. 근대성의 기획은 타자가 분류해 놓은 기준에 따라 개인을 규정하는 권력에 저항하여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믿음에 따른 다. 탈근대성은 개인을 끊임없는 기표들의 놀이 속에서 용해시킴으로서 분류체계를 무력화시 켰다.36) 근대성과 탈근대성 모두 작가의 예술적 실천이 사회적 분류체계를 말소시키거나 무력 화시킨다는 점에서 혁명적일 수 있다.
인터넷은 한때 탈근대성의 기획을 실현시키기에 이상적인 매체로 여겨졌다. 그러나 인터넷에 서 부유하는 모든 기표들은 고유한 주소를 부여받는다. 인터넷에서는 누가 언제 무엇을 보고 읽었는지가 추적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예술을 감상하는 행위는 누군가의 감시와 통제를 벗어 난 개인 고유의 영역이었지만 인터넷은 이 영역마저도 파괴해버렸다.37)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탈근대의 기획을 인터넷에서 상상하고 시도해볼 수 있다. 인터넷의 바깥이 아니 라 인터넷의 내부에서 감시와 추적을 끊임없이 교란하는 실천을 통해 작가 개인의 자아를 무화 시키는 전략들을 계획해볼 수 있다. 디지털 이후 동시대 예술의 변화를 설명함에 있어 유의미 하게 포스트라는 접두어가 사용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정체성을 인터넷에 노출된 정보들로 국 한시키려는 타자들을 무력화하는 예술적 실천들을 더욱 많이 필요로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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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rian Cramer, 「Talking Past Each Other. On the word combinatorics of ‘pos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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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rchive.rhizome.org/artbase/53981/nastynets.com/index4b2e-2.html?m=200608&paged=5
36) Ibid., pp.183-184.
37) Ibid., pp.184-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