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일_2019.04.10 심사기간_2019.05.01-14 게재확정일_2019.06.03
역사적 기억과 사진적 재현 - 한국 현대사와 다큐멘터리 사진 -
Historical Memory and Photographic Reappearance - The Modern History and Documentary Photo of Korea -
박종현_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Park, Jong Hyun_PUSAN NATIONAL UNIVERSITY Film Institute
차례 1. 서론
1.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1.2. 연구의 방법 및 내용
2. 한국 현대사 풍경의 사진적 재현
2.1. 분단 한국으로부터 시작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계보
2.2. 기념비적 공간의 가치와 무가치 - 강용석의 《한국전쟁 기념비》
2.3. 분단의 경계와 정치적 유령 - 손승현의 정치적 유령 - 《국가의 안전》
2.4. 부유하는 시선의 형상 - 유별남의 《빗개》
3. 결론 및 제언
참고문헌
역사적 기억과 사진적 재현 - 한국 현대사와 다큐멘터리 사진 -
Historical Memory and Photographic Reappearance - The Modern History and Documentary Photo of Korea -
박종현_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Park, Jong Hyun_PUSAN NATIONAL UNIVERSITY Film Institute
요약 본고는 한국 현대사에서 굵직한 사건들을 소재로 한 사진작품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이에 관한 비평적 논의를 통해 ‘역사와 기억의 테크놀러지’로서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전개양상과 한국 현대사의 의미를 파악하는 연구 를 진행하였다.
강용석의 《한국전쟁 기념비》에서는 전쟁기념비로 상징되는 분단 상황이 가지는 긴장과 일상의 풍경을 통해서 과거 이데올로기 시절의 모습과 현재의 소소한 일상을 함께 사진 프레임에 포착하여 미세하게 충돌하는 분단 한국의 문제를 담아내고 있다. 손승현의 《국가의 안전》은 서사가 중심이 되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작품은 설명 이 전면에 나서고 사진은 배경으로 밀려난다. 사진보다 설명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사진의 설명은 사 진의 내용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들고, 설명된 언어들을 더욱 감각화 하게 만든다. 손승현은 과거의 이야기를 회 자하지만 그 해석을 과거에만 두지 않는다. 그에게 역사는 과거, 현재, 미래와 같은 특정 시점에 존재하는 것 이 아닌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유별남의 《빗개》는 자연 속에서 비극적인 역사의 단편과 자취를 찾으려고 하였 다. 그는 제주도의 자연풍경을 통해 한국인들의 망각된 역사의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의 사진을 이 해하기 위해서는 표면적 이미지보다 그 너머의 역사적 배경과 사건의 장소가 더 중요해진다. 그의 사진은 역 사적 사건에 대한 정확한 실증적 구현이 아닌 과거의 기억을 상기해 뿌리 깊은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해소하려 는 시도에 가깝다.
연구자는 본고를 통해서 역사를 소재로 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은 다양한 의미와 해석으로 인해 사진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보다 사진 작품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결국 본고에서 논의되는 시진들에서 판독할 수 있는 것은 사진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사진작품에 깃든 역사의식이며, 이러한 사진 논의를 통해 얻어진 사진작품들은 사회과학의 도구로도 이용할 수 있다.
This study inquired into development aspect of documentary photography of Korea and meaning of modern history of Korea as “history and technology of memory” by analyzing photographic works based on landmark events in the modern history of Korea and making critical discussions on them. “Memorial Monument of the Korean War” of Kang Yong-seok portrays problems of divided Korea with minute collision, by capturing the aspects of the past ideology and simple daily life of the present in the photographic frame at the same time, through the landscape of tension and everyday life due to the state of division symbolized by a war monument. In “Safety of State” of Sohn Seung-hyeon, the work explanation of the documentary photography appears in front and the photograph is placed at the background. We face the explanation instead of the photograph. Here, the picture explanation enriches the content of photograph, while we perceive more vivid senses from the explained words. “Bitgae” of Yoo Byeol-nam tries to find fragments and traces of tragic history in nature. Through the natural landscape of Jeju Island, he asks a question about the forgotten historical consciousness of Koreans. The investigator concluded it is more important for documentary pictures on the history to understand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the pictures rather than their contents themselves due to their multiple meanings and interpretations. This suggests the potential of photography to be expanded and advanced more as the area of the study upon treating them as the subject of the study how photography can be integrated with history rather than simply explaining them in the photography area.
중심어
강용석 손승현 유별남 피에르 노라 분단 현대사 기억 이데올로기 비전향장기수
ABSTRACT Keyword
Kang Yong Suk Sohn Seung Hyun Yoo Beyl Nam Pierre Nora a divided country contemporary history of korea memory ideology
long-time prisoner
이 논문 또는 저서는 2017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 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7S1A5B5A070615 03)
1. 서론
1.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전쟁과 분단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키워드이다. 단언컨대 한국현대사의 굵직한 흐름은 전쟁과 분단으로 파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현대사는 수많은 정치적 사건과 죽음, 그리고 그 파생으로 발생한 여러 인물들과 기념물로 점철되었다. 과거 국가 권력은 그들의 정치 체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국민들을 강박하고 주권을 말살하였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권리와 자유는 무시당하고, 그 과정에서 안타까운 희생도 많았다. 폭력적 죽음은 정치적으로 정당화 되었으며 국가의 정체성을 위한 근원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영화감독 및 화가들의 작품이 통제되고 사전검열 받는 현실을 감안할 때 지난 역사에서 국가 권력이 유발한 희생을 표상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현재를 바라본다는 것은 역사적 트라우마이기 때문에 한국의 정치가들은 그들의 수사에서 현재를 삭 제한다. 5·16 군사쿠데타, 10월 유신, 박정희 대통령 암살, 5·18광주항쟁 등 1980년까지의 한국 현대사의 현재는 고통의 시간들로 점철되어 있고, 이것들을 제대로 표상한다는 것은 내면 적·외면적 검열에 의해 가로막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한국에서 ‘현재’는 표상 불가 능한 영역이 되어 버렸다.1) 굳이 국가 권력의 제약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노출 시키는 행위는 주변의 따가운 눈총과 함께 견제를 당하는 현실에서 국가 권력의 부조리에 대해 표상하는 것은 작가로서는 대단한 모험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여러 제약을 받으면서 도 작품 활동을 이어간 작가들은 우리 사회 현실을 견주어 볼 때 소중한 자산임은 분명하다.
1.2. 연구의 내용 및 방법
본고는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상징적 사건과 그 파생적인 여러 인물·풍경에 관한 논의를 할 것이다. 이 논의 과정을 통해서 한국 현대사를 소재로 삼는 또는 추종하는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해 사유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연구의 주요 내용은 한국 현대사에서 역사적·정 치적 측면에서 상징적인 몇 장면(사건, 인물)을 소재로 하는 사진작품을 분석하는 것에 있다.
현재까지 진행된 한국 현대사를 소재로 한 사진에 관한 논의들은 크게 역사적 사건 그 자체와 한국 현대사가 생산한 여러 풍경들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전자의 경우 역사적 사건 그 자체를 중심으로 한 초상 사진들과 부조리한 정치적 상황으로 피해를 입거나 그로 인해 파생된 인물들의 초상 사진으로 구분할 수 있다.
현재까지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상징적 사건을 소재로 한 사진 작품들에는 이상일의 《망월 동》(1995), 노순택의 《망각기계》(2012), 강홍구의《도망자》(1996), 오형근의 《광주 이야기》(1995), 권순관의《퇴적된 공간에 배치되다》(2013), 조습의《달타령》(2013), 오 석근의 《비난수하는 밤》(2013), 김은주의《오월 어머니》(2011), 김혜선의 《사라진 상무 대 영창》(1998) 등이다. 이들은 모두 1980년 광주항쟁을 소재로 하는 사진작품들이다. 손승 현의 《국가의 안전》(2005), 정지윤의 《귀향》(2018), 신동필의《우리 다시 꼬옥 만나 요》(2014) 등은 비전향 장기수를 소재로 하는 사진작품들이다. 유별남의《빗개》(2018)는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하는 사진작품들이다. 이재갑의《잃어버린 기억》(2006)은 한국전쟁 중 민간인 대규모 학살사건을 촬영한 사진작품들이다. 강용석의《동두천 풍경》(1987), 《매 향리 풍경》(1999), 《한국전쟁기념비》(2009)는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가 중에서는 찾아보 기 힘들만큼 작품 세계 전체가 분단 한국으로 수렴된다고 설명할 수 있는 사진가이다.
연구자는 이 중에서 분단 한국을 관통하면서 사진작업의 궤를 이루고 있는 강용석의《동두천 풍경》(1987)과 《한국전쟁기념비》(2009), 비전향 장기수를 통해 국가의 정체성이 무엇인 지 묻고 있는 손승현의《국가의 안전》, 제주 4·3 사건과 민간인 학살사건이라는 잊혀진 역사 속에서 역사의 흔적을 찾으려는 유별남의《빗개》를 논의하고자 한다. 연구자는 이러한 논의 를 통해 역사적 사건을 재현 또는 재연하는 사진작품들을 비교·분석하면서 역사와 사진의 의미 를 파악하고 다큐멘터리 사진은 동시대 역사를 간과해서는 안 되며 사진작품의 소재로 삼아야
1) 이영준, 「사진과 역사적 기억」, 『비평의 눈초리』, 2008, pp.186-187.
한다는 결과를 도출할 것이다.
2. 한국 현대사 풍경의 사진적 재현
2.1. 분단 한국으로부터 시작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계보
전쟁과 분단으로 파생된 한국 전쟁의 상처/흔적을 주제로 하는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계보는 주명덕으로부터 시작한다. 주명덕의 <홀트씨 고아원》>(1966)은 홀트아동복지회가 운영하 는 보육원의 혼혈고아들을 촬영하였다. 주명덕 이후로는 정동석의 <분단풍경>(1984)이다.
정동석의 사진은 휴전선의 비무장 지대와 동해안과 서해안의 철책과 경비초소의 등 한국의 분단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정동석의 경우는 그 동안 풍경사진 중에서도 분단풍경을 위주로 한 사진을 고집하였다. 그런데, 그의 사진의 분단 풍경이 갖고 있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그가 사상적 기반으로 내세우고 있는 경(景)이라고 하는 테마는 그 의미가 축소되어 해석되거나 다른 의미 속으로 포함되어 해석될 여지가 있다. 반면 같은 시기에 활동한 강용석은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리에 위치한 기지촌 여성을 소재로 하는 <동두천 기념사진>(1984)을 발표하 였다. 강용석의 사진은 분단 한국이 탄생시킨 희생양(도 다른 의미로는 괴물)을 주목하였는데 그것들이 기지촌 여성, 매향리, 선전촌 같은 것들이다. 그가 1980년대 기지촌 여성을 통해서 한국전쟁에 대해 던진 문제는 1960년대 주명덕이 혼혈아를 통해 문제 제기를 한 것과 비견되 는 사항이다. 아울러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 문제로 한국에 존재하는 상처들을 사진의 전면에 부각시켰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최근에는 강용석의 뒤를 이어서 노순택이 한국 분단 상황에 천착하며 사진적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분단 상황이라는 주제로만 <분단의 향기>(2004), <얄읏한 공>(2006), <레드 하우스>(2007) 등을 발표하였다.
연구자가 본고의 연구대상인 강용석·손승현·유별남의 사진을 논의하면서 상기되는 것들은 어 두운 역사이기 때문에 공식적 역사에서 삭제되고 누락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는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 의 용어로 말하자면 아브젝시옹(abjection)으로서 오염되고 제거 되어야 하는 대상이 본고의 대상들이었다. “밀려난, 분리되고 방황하는 존재, 아브젝시옹에 점령된 아버지는 한 마디로 방ㄴ황하는 자들로, 끝없이 밤의 끝을 쫓는 어둠 속의 나그네다.
배제된 영역 속에서 길을 잃은 이들은 지워진 시간 속에서 망각의 땅으로 쫓겨난다.”2) 본고에 서 살펴볼 전쟁기념비·비전향장기수·제주 4·3 사건은 소위 금기로 취급되며 망각을 강요당했 던 역사들이다. 본고는 그 망각의 대상들을 하나씩 추적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2.2. 기념비적 공간의 가치와 무가치 - 강용석의 《한국전쟁 기념비》
오늘날은 기념비적 건축물과 공간으로 가득하다. 전쟁과 역사적 사건이 많은 국가와 민족은 그것들을 추도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기념비와 기념비적 공원을 만든다. 피에르 노라(Pierre Nora)는 기억의 장소는 자생적 기억으로 존재하지 않고, 기념일을 유지하고, 기념식의 거행·
조직하고, 자각으로부터 태어나고 그것으로 살아간다고 설명한다. 또한, 기억의 장소들은 본질 적으로 잔해이며 역사학 안에 존재하는 추모 의식의 최종적 형태라고 설명한다.3) 피에르 노라 는 더 이상 순수한 기억은 존재하지 않으며, 기억은 역사에 의해 사라지게 되었다고 주장하면 서, 이제 흔적을 통해서만 기억을 알 수 있다고 하는 ‘기억의 터’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기억의 터’는 일종의 메타포이며, 기억의 담론성에 주목하고, 동시에 기억 자체에 대해서도 성찰할 수 있게 하는 개념이다.4) 그런데 한국에서 기억의 장소나 기념비는 단순한 공간이나 조형물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집단 기억을 조장하거나, 그 자체가 정치적·교조적 성격을 지닌다. 따라 서 한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조형물에 특별한 역사적·사회적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 를 영구 보존하려는 목적을 드러낸다.
과거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은 최근까지 기억·추념의 장소·공간·기념비 등에 시선을 두지 않았
2) 줄리아 크리스테바, 서민원 역, 『공포의 권력』, 동문선, 2001, p.31
3) 피에르 노라 외, 김인중·유희수 역, 『기억의 장소 1』, 나남, 2010, pp.41-42.
4) 태지호, 『기억문화연구』,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p.49.
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기념비적 공간을 다르기 시작하였고, 이들 사진가로는 강용석, 이상일, 노순택, 차진현 등이 있다. 이상일과 노순택은 5·18과 광주 망월동 묘지를 소재로 한다는 점, 강용석과 차진현은 분단 한국이 만들어 낸 기념비와 분단의 상징적 장소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을 차지한다.
강용석은 한국 분단 상황이 탄생시킨 여러 가지 상흔들을 고집스럽게 추적한 몇 안 되는 작가 주의 사진가이다. 강용석의 작품을 보자면《동두천 기념사진》(1984),《매향리 풍경》
(1999),《민통선 풍경》(2000),《선전촌 사진》(2006),《한국전쟁 기념비》(2009) 등의 사진 연작이 있다. 이들 사진 작품들이 모두 한국 전쟁 분단의 흔적과 그 부조리를 주제로 심도 깊은 다큐멘터리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선과 관심은 항상 예외 없이 6.25 전쟁으 로 인해 생겨난 분단과 대치가 바꾼 우리의 삶, 미군의 주둔으로 형성된 우리의 풍경, 그리고 전쟁에 기생하는 권력의 작동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5) 강용석의 사진이 갖는 가치는 한국 사회가 직시하고 우리 사회의 모순이자 상흔인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파생물과 유령하는 부유물에 천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중에서《한국전쟁 기념비》는 강용석이 전쟁과 역사를 기념비적 공간으로 주목한 사진 시리즈이다.《한국전쟁 기념비》는 서울 및 지방 그리고 전국 에 건립된 한국 전쟁과 관련된 군인들의 동상, 승전비 또는 기념비를 촬영한 것이다. 이 사진들 에서 강용석은 기념비적 공간을 포착하고 있다. 그는 주류 사회에 의해 주입되고 강요된 상징 적인 기념비적 공간을 해체하고, 재해석의 과정을 통해서 기념비적 공간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일반적인 한국의 전쟁 기념탑과 기념비는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으며, 위풍당당한 동상들은 일반인에게 너무 고압적인 느낌을 준다. 전쟁 기념비와 동상들이 조국을 위해 희생한 분들의 넋을 기리는 것치고는, 이것들은 너무 고압적인 위세로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그리고 아무리 군인의 동상이라 하더라도 하나같이 결연한 표정과 자세, 보디빌더 같은 근육질의 몸매는 헐벗 던 시절의 모습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이런 고압적인 풍경은 우리의 일상적인 정서와 는 거리감이 있으며, 전사자들이 겪었을 고통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추념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이러한 여러 종류와 형태의 전쟁기념비를 나름의 정치적인 역할을 한다. 그것 은 과거는 미래를 위해 봉사하고, 죽은 자는 산 자를 위하여 헌신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보이지 전통은 기념비를 제작하는 주체에 의해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전쟁기념비를 제작하는 주체는 정부나 유력한 사회단체 또는 권력계층이다. 이들 주체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서 특정인물이나 역사적 사건을 계속해서 기념할 필요와 명분이 있다. 이들 전쟁 기념비는 전사자를 추념하는 상징적 기호이지만 살아남은 자들의 위안물로서 작용의 역할도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념의 조형적 선전물이라 할 수 있다.
《한국전쟁 기념비》 시리즈의 사진을 보도록 하자. 《한국전쟁 기념비》의 사진 내용은 크게 2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과거와 다른 전쟁 기념비의 권위 붕괴를 보여주는 사진이고 두 번째는, 분단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사진들이다. 이 2가지 내용들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연관성을 가지며 사진의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한국전쟁 기념비》는 과장 된 웅장함과 이념적 적대감을 강하게 표현하는 전쟁기념비 및 그 동상과 대비되는 휴식을 취하 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불멸의 권위의 상징인 이념적 전쟁기념물과 스쳐 지나가는 행인들, 이 두 대립구조를 통해 일상의 불협화음을 보여주는 사진들이다. 즉, 강용석 의 사진에서는 전쟁기념비가 가지는 긴장과 경직, 그리고 일상의 이완된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는 전쟁기념비 풍경을 통해서 과거 이데올로기 시절의 모습과 현재의 소소한 일상을 함께 사진 프레임에 넣어 미세하게 충돌하는 분단 한국의 문제를 담아냈다.
강용석의 사진 중에는 한가롭게 여유를 즐기는 사람을 향해 전차의 포신이 그 사람을 겨냥하고 있는 사진이 다수 있다. 공원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향한 포신, 다정하게 통일 전망대 내 공원을 산책하는 연인을 향한 포신, 또는 마리아상과 불상을 향해 포신이 겨냥하고 있는 사진 등이다. 남한과 북한이 서로 총부리를 서로 겨누고 있는 긴장된 현실 속에서도 전혀
5) 박주석, 「<한국전쟁 기념비>의 역사적, 미학적 전망」, 강용석, 『한국전쟁기념비』, 한미사진미술관, 2009, p.6.
그 기운을 감지하지 못 하고 있다는 아주 상징적인 장면이다. 이것은 한국인이 분단 상황에 처한 모습이다.
강용석의 사진 가운데 춘천시 삼천동 춘천지구 전적기념관 작품은 전차 포신을 강조하여 촬영 한 작품이다. 사진에 등장하는 조그마한 크기의 사람한 전차의 포신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다.
또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통일공원 작품은 군인 동상과 중년 남성을 대비시켜 긴장감과 이질감 을 증폭시킨다. 두 사진 모두 분단 현실에 대한 무감각과 불협화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 다. <한국전쟁 기념비>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한국전쟁이 남긴 불안감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 한국인의 숙명, 하지만 그 불안의 숙명은 너무 익숙하여 일상에서 감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한국전쟁 기념비》가 감정적 몰입 대신에 이성적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진의 흑백 톤 때문이다. 강용석의 흑백 사진은 콘트라스트가 강하지 않다. 흑백의 농도는 큰 차이가 나지 않으며 오히려 밋밋하기까지 하다. 그의 흑백 톤은 감상자들이 사진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 다. 강용석이 이런 방법론을 취하는 이유는 이성적 태도와 관조적 시각을 유지하고자 함이다.
분단을 다룬 사진가는 많았지만 강용석이 그들과 다른 점은 감정적 몰입 여부 때문이다. 그의 사진은 처절한 분단의 비애, 분노, 울분 같은 출렁거리는 감정의 파고가 없다. 다만 감정적 몰입 대신이 이성적 질문이 가능하게 하는 사진들이다. “눌러서 진하게 만든 톤들은 감정을 쉽게 동화시킨다. 반면에 회색 톤은 대상을 냉정하게 보게 만든다. 하지만 모든 게 그렇지는 않다. 형태를 파악해야 한다. 대상을 더불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6) 그의 흑백 톤과 정태 적인 프레임은 사진가가 분단 상황을 소극적으로 바라본다는 뉘앙스를 주면서 개인적인 가치 판단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을 유지함으로써 그의 사진은 감상자들에게 과거의 문제 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과 방향을 제시하지 않으며, 개인 스스로의 성찰을 유도한다.
6) 이상엽, 『사진가로 사는 법』, 이매진, 2010, p.236.
<그림 1> 강원도 춘천시 삼천동 춘천지구 전적기념관, 2007. <그림 2>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 2007.
<그림 3> 대전광역시 중구 사정동 대전보훈공원, 2007. <그림 4>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현충탑, 2007.
2.2. 분단의 경계와 정치적 유령 - 손승현의 《국가의 안전》
분단 한국은 비전향 장기수라는 독특한 인간 집단을 낳았다. 한국에서 비전향 장기수는 반체제 범의 전형적인 유형의 인물들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구속되어 공안 사범(정치범)으로 분류 되는 사람으로 의미할 수 있다. 비전향 장기수는 사상범 중 7년 이상의 장기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좌익수 또는 사상범으로 전향하지 않은 수형자를 가리킨다. 정치범은 국가의 정치 질서를 변혁할 목적으로 범죄를 구성한 수형자를 지칭하는데, 한국의 경우에는 반국가적·반정 부적 신념이나 동기에서 비롯된 행위로 수감된 수형자를 의미한다.7)
한국에서 비전향 장기수 시선(입장)은 다양하겠지만, 그 중 주류 사회에서 대표적이고 지배적 인 것은 ‘빨갱이’ 담론이다. 비전향 장기수는 한국 전쟁 이후 지속되어왔던 좌우 이념 갈등의 상징이다. 한국의 현대사는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이 굴곡 많은 한국의 근대사를 거창하게 말해서 “압축적 근대화”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시인 김수영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었을8) 정도로 한국의 근대사는 많은 사건이 있었다. 그 중에서 분단 한국 의 문제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상이 비전향 장기수이다. 손승현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발생한 난민들을 추적하는 인물사진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국가의 안전》
(2005) 시리즈는 한국 정부가 사상범으로 낙인 찍힌 비전향 장기수들을 촬영한 것이다.
손승현의 사진을 보도록 하자. 한 노인의 초상이 있다. 그냥 평범한 노인의 초상사진으로 보인 다. 사진 속의 그들은 나름 자세를 잡고 앉아 있거나 서 있다. 삶의 고단한 계단을 내려와 구부정하고 힘 빠진 모습으로 앉아 있는 노인의 모습이다. 사진에 대한 감상은 이뿐이다. 사진 의 가운데 인물이 서고, 인물의 삶을 유추할 수 있는 어떤 단서로서 인물이 촬영된 장소가 제공된다. 다이안 아버스(Diana Arbus)가 취했던 방식과 흡사하다. 감상자가 손승현의 사진에 서 읽어낼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상자는 사진을 읽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우선, 감상자가 사진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얼굴을 뒤덮고 있는 주름과 모든 것에 초연한 눈빛이다. 사람의 얼굴은 많은 서사를 상기하는 매개이다. 희노애락과 같은 한 순간에 폭발하는 감정이나 개성이 느껴지는 독자적인 특징도 얼굴에 어느 정도 반영되어 나타난다.
그래서 얼굴은 모든 것을 누설하며 주체가 타자와 만나는 지점이자 세상과 마주하는 최전선이 다. 따라서 얼굴에는 한 개인의 복잡한 내면과 그 시대의 역사가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손승현 의 사진 속 노인들의 표정에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얼굴 표정과 초연한 눈빛으로 가득하다.
손승현의 사진이 비전향 장기수라는 사진의 설명이 없다면 늙고 힘없는 노인이 가진 의미망에 둘러싸인 초상으로 보일 뿐이다. 손승현의 사진 속 노인들은 좌우익 이념 대결로 인해 40년 이상 감금 당한 채 40년 가까운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연구 자가 직면하는 것은 사진 속 노인의 초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노인의 초상을 계기로 도출되는 좌우 이데올로기의 문제이자 한국 현대사의 굴곡이다. 손승현의 사진 속 노인의 정체 를 인지하는 그 순간 노인의 표정·의상·배경은 다시 절절하게 의미화 되고 감응은 또 다른 감정을 유도한다. 비전향 장기수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그것은 다의적 의미나 주관적 반응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과 역사의 기록으로서, 고발 또는 정보로서 정확성이라는 분명한 이해를 요청하고 그렇게 독해하게 한다. 한 노인의 초상으로 보고 해석하던 자의적인 의미와 주관적인 감응과 인상은 순식간에 어긋난 사진 읽기로 퇴출되고, 분단 한국이 만든 전쟁과 이념의 갈등이라는 새로운 의미들이 사진의 전면으로 등장한다.
한국 사회는 이들을 비전향 장기수라고 명명한다. 사진의 의미로 볼 때 북한으로 돌아갔다면 가슴에 주렁주렁 훈장을 달고 만세를 부를 그들이 사진의 이미지로는 그저 어느 동네의 평범한 노인으로 보일 뿐이다. 사진 이미지는 별다를 것 없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노인의 초상이 극심한 좌우익 이념 대결에 의해 40년 이상 옥고를 치룬 노인이라는 사실이 제기하는 기록과 정보가 주어질 때, 이 사진은 다른 초상사진과는 다른 혼란에 빠지게 된다. 내가 보았던 초상으 로서 사진과 정치 이데올로기 대결의 파생물이라는 어두운 역사가 서로 교차하면서 단순히
7) 최정기, 『비전향 장기수 - 0.5평에 갇힌 한반도』, 책세상, 2002, pp.18-20.
8) 김수영, 『김수영 전집2』, 민음사, 1981, pp.139-141.
초상사진으로서 이미지가 주던 내용은 어디로 가고 없게 된 것이다. 초상으로서 이미지, 그 다의적 감흥과 해석의 풍부함이 순식간에 정치범·사상범이라는 분단 한국의 상황이 던지는 질문과 내용은 사진의 이미지와 무관할 수 없게 한다. 황혼을 바라보는 노인의 이미지 대신 그 자리에 역사와 고통의 언어들이 침입하는 것이다. 내재된 역사의 시간을 독해해야 할 의무 감이 사진 위를 뒤덮는다. 초상사진의 진정한 의미는 기록 그 자체가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을 일깨워줄 때 가능한 해석이자 이해이다. 비전향 장기수라는 사실을 알 때와 모를 때, 같은 사진에 대한 상반된 감응이 연구자의 물음이자 당혹감인 것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그 사진 이미지가 담고 있는 여러 상징과 은유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넘어서 는 서사를 읽어내기란 힘들다. 결국 사진에 대한 설명과 역사의식이 이 사진들을 해석하게 만든다. 우리가 직면하는 것은 사진이 아니라 사진으로부터 시작하는 역사의식이다. 사진에 대한 설명을 듣고, 해석하고 그래서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 이미지로서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생각하게 만든다. 손승현의 사진처럼 서사가 중심이 되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작품은 설명이 전면에 나서고 사진은 배경이거나 계기로 밀려난다. 사진보 다 설명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사진의 설명은 사진의 내용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들고, 설명된 언어들을 더욱 감각화 하게 만든다. 이것이 손승현 사진의 힘이다.
2.3. 부유하는 시선의 형상 - 유별남의 《빗개》
유별남은 1948년에 발생하여 그 여파가 1954년까지 이어진 제주 4·3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빗개》(2018)라는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제주 4·3 사건은 미 군정시절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이르기까지 7년여에 걸쳐 계속된,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 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 가 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라는 것이 현대의 정의이다. 원래 제주 4·3 사건은 본토에서 진행 되었던 공산주의자 색출작업이 본토 내의 공산당을 도와주고 지원해준다는 의심을 받던 제주 도민으로까지 확장되면서 본격화되었다. 정확한 사상자의 수는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몇몇 생존증인들은 정부의 공식발표의 약 2배인 3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다고 주장한다. 노무현 정 부는 2001년, 제주 4.3 사건 평화공원을 조성하고 기념관을 건립하여 역사적 화해를 진전시키 고자 하였다. 지금은 국가 권력의 오남용으로 인한 집단 학살로 판단되었지만, 2000년 이전에 는 진상규명은 물론이고 입 밖으로 발설해서도 안 되는 사건이고, 육지 사람들도 잘 모르던 사건이었다. 제주 4·3 사건은 아직까지도 제주도민에게는 슬픈 역사이자 가족과 이웃의 아픈 상처로 자리한다. 제주도민들은 사건 발생 이후 70년이 넘었지만 자신의 자식과 부모, 배우자
<그림 5> 국가의 안전 1999/2010 <그림 6> 국가의 안전 1999/2010
를 죽게 한 이웃을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며 살고 있다. 제주 4·3 사건은 지금도 그 아픈 역사가 이어지고 있는 귀결되지 않는 현재이자, 종식되지 않는 과거이다.
빗개는 토벌대의 진입을 감시하는 보초를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으로 당시 망 보던 소년들을 일컫는다. 유별남은 다른 사진가들이 제주 4·3 사건을 재현하는 방법, 이를테면 생존자의 초상 사진이나 희생자의 무덤들을 시각화 한 기존의 방법과는 다른 방법론으로 제주도 4·3 사건을 재현하고자 하였다. 즉, 현존하는 흔적들에서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시선으로 현재의 제주를 바라보는 방법으로 사진 작업을 시작하였다. 외지인이나 현재의 시각으로는 제주도는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빗개나 과거의 시선으로는 매우 불안하고 광기에 찬 섬 또한 제주도이다.
유별남은 감추어진 역사적 비극과 현재의 풍경, 과거와 현재의 교류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현대 관람객들에게 특정한 비판적 정치 태도를 주입시키기보다는 우리나라의 이데올로기 대 립에 대한 대안적인 역사를 상상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의 사진은 제주도 4.3 사건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비극적 사건에 대한 흔적, 기억을 이해하도록 관람객의 생각을 유도함으로써 현재의 삶과 과거의 삶이 달랐음을 설명한다. 아마 유별남은 이 사진 방법론이 우리의 아픈 역사를 새롭게 환기하고, 다른 사진가들의 작품들과 차별점을 두었다. 유별남의 사진은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그의 풍경 사진에는 연무가 낀 가득 한 숲, 억새가 가득한 오름, 이름 없는 돌담과 바위만 등장할 뿐 비극적인 제주도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는 전혀 재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사진은 고요한 풍경사진 과 그 바탕에 내재되어 있는 제주도의 비극적 장소와 역사가 대비되면서, 현 상황에서 역사적 망각의 문제를 환기하고 재고하게 만든다.
유별남의 공간의 기억을 채집하듯이 공허하게 보이는 제주도의 풍경 사진은 공간을 바라보는 과거와 현재의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비로소 제주도의 풍경은 기억의 공간으로 감각된다. 흥미 로운 것은 200년대 후반 이후의 사진/영화 등의 시각예술에서 인물이나 사건이 부재하는 무규 정성의 공간이 작품의 배경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 자리에는 임의성이 존재한다.
이 공간들은 무규정적이며 개별적이며 파편화되면서 비서사적 공간을 생산한다. 결국 이 지점 에서 새로운 이미지 읽기가 가능해진다.9) 즉, 기존의 사진 문법에서 벗어나 풍경은 재현의
9) 질 들뢰즈 『시네마 Ⅱ시간-이미지』, 이정하 역, 시각과언어, 2005, pp.18-21.
<그림 7> 선홀리, 2018.
<그림 8> 아끈다랑쉬, 2017.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상의 매개가 되고 사색의 피조물이 된다.
연구자는 유별남이 제주 4·3 사건의 흔적들을 자연풍경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전통적 인 다큐멘터리 사진과는 다른 결정적 단서를 찾아볼 수 있었다. 수잔 손탁(Susan Sontag)에 따르면 전쟁이나 참혹한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텔레비전이나 매체를 통해서 간접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 때 이러한 이미지는 각자 가정에서 작은 모니터 화면으로 즐기게 되는 오락거리의 일부가 된다.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의 힘이 현장성을 가짐으로써 역사성을 가지게 된다는 신념으로 광기 어린 장면, 폐허의 장면을 카메라에 포착한 이미지의 결과물을 통해서 전쟁이나 참혹한 사건은 이해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사진을 통해서 연민, 분개 등의 감정을 자극한다는 쟁점들이 발생하며 증오가 증오를 낳는 인간 존재의 본성을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유별남의 정확하게 대척점을 가진다. 유별남의 사진에서 로버트 카파의 “만약 당신이 당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와 같은 사진 신념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주목할 점은 유별남은 사진 촬영을 통해 단순히 새겨진 사체 또는 핏자국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제주도의 평화로운 자연 풍경을 통해 평온함을 보여주고, 감상자들이 제주 4·3 사건과 관련된 끔찍한 역사에 대해 상기하고 새롭게 성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흐릿하게 보이는 깊은 선흘리 숲의 풍경은 신비감을 더해주 고, 오름 억새의 흔들림은 어떤 기척처럼 수상하기만 하다. 이 신비롭고 수상한 징후들이 제주 4·3 사건을 오늘로 환원하고 있는 사진들인 것이다.
선흘리의 풍경사진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근경의 어두운 부분과 원경에서 내려 쬐는 빛은 불길한 숲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또한 유별남의 사진에서 근경에는 사물을 아웃포커스로 배치 시키고, 원경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감상자는 사진촬영의 현장에 서 있는 듯한 뉘앙스와 함께 당시 빗개의 시선으로 풍경을 바라보게 된다. 그의 사진은 유독 어딘가 불안하고 몰래 숨어서 내다보는 시점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유별남의 사진에서 숲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공포와 두려움을 관객에게 알려준다. 사진의 제목, ‘선흘리’가 암시하는 바와 같이 유별남은 비극적인 역사와 관련된 사실을 자극적이지 않고, 사건 장소에 대해 담담해지고자 한다. 유별 남의 사진은 감상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70년 전 제주 도민들은 학살을 피하기 위해서 이 숲으 로 올라왔을 때, 그들이 죽기 직전에 본 자연 경관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고, 어떻게 다가왔을 까? 도대체 그 숲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들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 까? 죽기 전 이들이 본 풍경은 무엇이었을까? 그때에 일어났던 일들 혹은 사건을 체험한 사람 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이유 없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죽어간 그들을 되살려 억울함을 들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산 자와 죽은 자가 교감할 수 있는 방법이며 산 자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애도가 되는 방법으로 풍경에 말을 건네는 것이다. 구멍 뚫린 현무암 돌담 너머에는 그들이 그토록 살아서 보고자 한 하늘이 걸려 있다. 당시 그들의 눈에 잿빛 하늘은 아스라이 멀어져만 갔을 것이다.
유별남의 무덤덤한 풍경사진은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보이고, 보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풍경이다. 이를 다시 말하자면 보이 않으려는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역사이기도 하다.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는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사람들이고 존재하지만 볼 수 없는 사라 져 간 사람들이며, 존재하지만 볼 수 없는 풍경들이다.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들이 제주도를 찾지만 그들 대부분이 제주도의 아픈 망각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 유별남의 사진은 제주도의 역사적 토양분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3. 결론 및 제언
본고에서는 한국의 굵직한 현대사를 모티브로 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내용을 파악하고, 다큐 멘터리 사진과 역사의식의 합치가 어떻게 한 장의 사진작품을 감각하게 하는지 사진의 의미를 되새기려는 논의를 하였다. 연구자는 이 논의 과정에서 한국의 현대사는 다종의 국가폭력이 있었던 시기로써 한국의 군사독재와 분단 상황이 생산한 정치적·사회적 불안정으로 갈등과
분열로 점철되었으며 역사의식을 가지며 이를 재현한 다큐멘터리 사진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늘날 굵직한 현대사를 사진의 소재로 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은 전통적 스트레이트 한 방법으로 역사적 사건·상황을 재현한다는 관점과 역사적 사건·상황을 재구성·재해석하는 방법 으로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전통적 다큐멘터리 사진의 방법을 취하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 역사라는 무대에서 사진가가 각색하여 모던한 방법을 취한다. 본고에서는 전자에 속하는 사진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논의하였다. 오늘날 사진가들은 과거로부터 현재 까지 무수한 역사 속에서 차마 말하지 못하고 침묵해야 했던 아픔을 다큐멘터리 사진으로써 때로는 사실적으로 때로는 상징적·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이때 사진은 아픔과 침묵을 감사고 위로하는 초혼이자, 긴 어둠의 시대를 관통하며 빛으로 쓴 역사이다. 우리는 이 사진들을 통해 가려진 역사의 진실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다.
강용석의 《한국전쟁 기념비》에서 전쟁기념비는 전사자들의 숭고함을 부각시키고, 지금 우 리의 삶이 이들의 희생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계몽한다. 조국을 위한 죽음이야 말로 국가를 존속시키는 동력이 되며, 역사적으로도 볼 때 가장 기념비적 사건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전쟁기념비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전쟁에 스러져 간 군인들과 그 전쟁기념비는 아우라와 같은 후광을 지니게 되고, 우리의 삶은 그들의 희생에 비교하면 범속하고 세적인 것이 된다. 결국 지금 우리의 평온한 삶은 군인들의 숭고함과 희생 덕분으로 환원된다. 강용석은 《한국전쟁 기념비》에서 나타나는 슬픈 초상화와 무덤덤한 풍 경 사진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무력감과 나약한 위치를 각성하게 한다. 우리는 진실을 대면하는 순간 불편함을 느끼는데 강용석의 사진이 그 점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강용석의 사진 전반에서 걸쳐진 핵심 전략이다.
손승현의 《국가의 안전》은 한 장의 사진에서 무거운 역사를 어떻게 재현하고 또 전달될 것인 가를 고민한 인류학적이고 문명사적 성찰이 돋보인다. 손승현의 사진에서 읽어낼 수 있는 키워 드는 경계이다. 비전향 장기수, 그들은 대한민국이라는 질서로부터 이탈한 자들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역사의 유령이었다. 이처럼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경계의 존재 들에게 손승현은 정면성을 강조하며 이들의 존재감을 부각하였다. 비전향 장기수는 한국 현대사 에서 잊혀진 인물이고, 경계 밖의 존재들이며, 한 번도 기록되지 않은 부유물이었다. 그래서 손승 현의 사진에서 그들이 정면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었다면 지나친 비약인 것일까. 이렇듯 손승현 은 《국가의 안전》에서 줄곧 경계 밖의 비전향장기수를 조형적 장치를 통해 탐색하였다.
유별남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사건 중의 하나인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들을 기리 기 위하여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집중하였다. 유별남의 사진은 표면적으로는 평화로운 자연은 모순된(또는 불안한) 평화적 상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중요한 기제들이다. 그의 사진 은 역사적 사건 속 사진 이미지의 편린만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감상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러한 감상자의 호기심은 감상자가 더욱 적극적인 감상 자세를 취하게 된다. 즉, 유별남은 제주도의 평화로운 일상 또는 풍경에 사진의 초점을 맞춤으로써, 프레임 내부가 아니라 외부의 상황을 보도록 유도하고 있다. 따라서 유별남의 사진은 한국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과 맞물리면 서 한국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를 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연구자가 본고의 연구대상인 강용석·손승현·유별남의 사진을 논의하면서 상기되는 것들은 일 제 강점기, 해방, 냉전, 미군점령기, 좌익과 우익, 이데올로기, 미국과 소련의 격전장, 분단, 국가 폭력 등 감당할 수 없는 단어들이었다. 그래서 그의 사진을 볼 때마다 연구자의 마음 한 구석은 불편하기만 하였다. 하지만 이 불편한 논의 과정을 멈출 수 없는 것은 이것들이 우리가 그 동안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실체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들의 두려움이고, 그 두려움은 이 시대의 어두운 현실이기 때문에 공식적 역사에서 삭제되고 누락되었다. 이 역사들 은 지배적 담론에서 추방 당하면서 트라우마적 상처로 존재한다. 본고에서 살펴본 전쟁기념비·
비전향장기수·제주4·3사건과 미처 본고에서 논의하지 못 했던 5·18광주민주화운동 기지촌여 성과 혼혈아, 그리고 디아스포라로 분류될 수 있는 조선족과 고려인, 재일교포는 그 동안 침묵 속에서 봉인되어 있던 과거들이다. 이들은 크리스테바의 아브젝시옹으로서 분단 한국의 상처
속에 치욕과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었던 과거의 아버지다. 이러한 역사들은 현대화의 과정 속에 서 학살당한 채 망각의 땅으로 추방된 기억들이다.
분단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터인가 충격이 아닌 일상, 아니 일상에서조차 망각되어버린 이미지 라는 느낌마저 준다. 그것은 마치 사춘기 소년의 밤을 붙잡아 주던 포르노그래피처럼 해가 지날수록 익숙하고 지루한, 그리고 외설스럽고 허무한 몸짓의 퍼포먼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분단, 그것은 대한민국에서 약 70년 동안 익숙하게 받아들인 포르노그래피의 또 다른 이름이 다. 이 외설스런 분단의 시스템이 잉태한 숱한 분단의 괴물들이 세상을 혼탁하게 하고 있다.
‘안보관광’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사용되는 현실에서 분단이라는 상황 자체가 모종의 허구나 사기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작금의 상황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역사적 기억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은 단지 그 기억이 어떠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도리어 그게 무엇이든 기억을 물려주려는 끊임없는 행위에 의해서만 우리는 존재한다 고 말할 수도 있다. 그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지점이다.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은 그 사진 이미지가 내포하는 여러 의미에도 불구하고 사진이 내용을 완벽하게 판독하기 어렵다. 결국 사진을 판독하고 해석하는 힘은 역사적 배경지 식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본고에서 논의되는 시진들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사진에 대한 설명 그 자체가 아니라 역사의식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진학의 학문적 풍토에서 이와 같은 연구를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가 한국 현대사에서 발생했던 국가 폭력의 기억을 망각의 창고에 가두지 않고 사진의 영역에서 꾸준한 탐구를 거듭해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거대한 폭력에 대항해서 끝내 지켜내야 할 인간성의 옹호라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여전히 유효 한 성찰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가 역사적 기록으로만 남아 있지 않고 우리와 함께 숨 쉬며 정서적 교감까지 교감하게 하는 것은 사진 예술의 기능이고 힘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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