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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R I H S 서 평
도시를 해석하는 또 하나의 시각
조판기|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서평)
도시의 창, 고급호텔
발레리 줄레조·티에리 상쥐앙 외 지음 | 양지윤 옮김 | 후마니타스 | 320쪽 | 17,000원
발터 벤야민은 그의 미완성 저작인「아케이드 프 로젝트」에서‘상품자본주의 원조 신전’인 아케이 드를 통해 19세기 말 파리를 사유했다. ‘아케이 드’, ‘패션’, ‘박람회’, ‘광고’, ‘산보자’, ‘매춘’,
‘도박’, ‘파노라마’, ‘사진’, ‘증권거래소’, ‘보들 레르’등「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차례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벤야민은 고유한 사유를 통해 서구 근대성을 분석하고 근대도시의 내부모순을 해명 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목록에 서구의 고 급호텔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고급호텔은 제1차 산업혁명의 기술적·경제적 변화로 등장한 19세기 서구의 산물이다. 19세기 는 철도기술의 발전과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부 르주아의 여행이 발전한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변화는 이전에는 거리상의 제약으로 생각하지 못 했던 절벽이나 해안이 부르주아 계급의 여행지가 되면서 그 지역의 토지소유자들에게 예기치 못한 경제적 수입원을 제공하게 된다. 또한, 종래의 여 인숙과 귀족의 옛 저택으로는 숙박시설에 대한 새 로운 수요를 더 이상 만족시킬 수 없게 되자, 건물 에 사용된 기술이나 서비스 기능, 편의시설 등과 건축의 측면에서도 뚜렷이 구분되고 진일보한 새 로운 유형의 숙박업체인 고급호텔이 등장했다.
이 책은 일본,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의 고급 호텔과 서구의 고급호텔의 차이를 넘어, 아시아 도시와 서구도시의 보편성 및 차별화된 특수성을 분석하고 있다. 이들 세 나라는 서구에 의해 강제 로 개방되어 근대화 혹은 현대화의 길을 걷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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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서구적인 것’이 이들 사회에‘각인(imprint)’되는 특정한 방 식을 탐색하는 것이 아시아 지역연구에 있어서 핵 심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때 서구적인 것이 들 어오는 공간적-장소적 통로는 바로 대도시이고, 그곳에서 서구적인 것을‘거주하게’만들기 위해 맨 처음 필요했던 것이 서구식 숙박시설이었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메이지정권은 데이코쿠호텔을, 중국의 조자치정권은 리쉰더호텔을, 조선총독부 는 조선호텔을 지었던 것이다. 또한 아시아의 고 급호텔들은“1960년대 이후 아시아 경제의 세계 화 과정에서 동아시아 주요 도시가 국제도시로 변 화하는 과정을 실증한다.”도쿄, 서울, 홍콩이 그 러했고, 현재는 상하이와 베이징이 그러하다.
이 책의 서술방법대로 말하자면 아시아의 고급 호텔은 이들 사회에서‘현대성’과‘서구화’그리 고 그 관계를 구체적으로‘표상’하고 있는 대표적
‘기호들의 집합체’역할을 한다. 이러한 저자들의 시각은“호텔의 출현은 도시 현대화뿐만 아니라 문호개방을 비롯해 서구인들과 관계를 맺게 된 여 러 시기와 연관된 현상이다. 한마디로 아시아의 고급호텔은 문화적 충돌과 경제적 역학관계가 집 약되는 장소다”를 통해 알 수 있다.
서울의 고급호텔들은 건설과정이나 운영에 있 어 철저하게 시대를 반영한다. 일제강점기, 미군 정기 동안에 건설된 조선호텔과 워커힐호텔은 외 국인 투숙에 집중했다. 이와 달리 1970년대 이후 지어진 고급호텔들은 몇 가지 활동들을 추가한다.
첫째, ‘사업, 오락 등 도시활동’장소와 가깝고 그 주변지역의 경제활성화를 앞당기는 역할을 한다.
둘째, 1970년대 정권과 밀착한 기업들은 정경유 착을 통해 호텔경영까지 영역을 확장했으며 호텔 은 재벌의 홍보장소로 이용된다. 셋째, 경제성장 과 함께 성장한 신흥중산층은 호텔을 사교의 장소 로 이용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고급호텔이 특히 차별화되는 점은 외국인 투숙에 관한 서비스를 중 시한 만큼 내국인에 대한 서비스에도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한국인들에게 고급호텔은 내부의 구조나 편의성 측면이라기보다는 고급호 텔을 이용함으로써 스스로를 특정한 계층에 자리 매김하고 싶어 하는 상징효과를 의미한다.
벤야민이 살아 돌아와 서울을 연구한다면, 이 책의 저자들과 같이 서울에 있는 고급호텔의 특수 성에 주목했을 것이다. 그를 통해 이 시대를 사는 도시중산층의 허위의식, 물신성, 자기과시를 분석 해 내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중의 한 사람인 발레리 줄레조는 이미 그녀의 책「아파트 공화국」
을 통해 한국의 아파트 모습에서 볼 수 있는 한국 인의 의식과 사회구조를 분석해낸 바 있다. 이 책 은 통계상의 오류 등 몇 가지 사실만을 눈감아 준 다면「아파트 공화국」과 마찬가지로 우리 도시의 일면을 읽어내는 훌륭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발 레리 줄레조는 백령도와 같은 접경지역을 대상으 로 남북한의 상호 인식을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관심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기대된다. 어느 서평가는「아파트 공화국」의 서평에서“한국의 아 파트 연구자들은 아파트를 분석하여 연구서를 내 지 않고 아파트 투기에 열중하고 있다”고 꼬집은 바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