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의료시설의 유형 및 특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Types and Characteristics of Ancient Medical Facilities
이해경 Lee, Haekyung* | 채철균 Chai, Choul Gyun**
Abstract
This study is to understand the architectural types and characteristics of the medical facilities during ancient period. The study is based on the research of the medical and architectural history. The medical or healthcare facilities are influenced by their social, cultural and conceptual idea, especially how they think about 'disease', 'cure' and the 'medicine'. As the results of the examination of this study can be summarized as followings.
Firstly, Ancient medical facilities are classified into four types according to the ideas of 'disease' and 'cure'
; 1) God oriented facility 2) health welfare facility 3) treatment oriented facility 4) practice & educational facility. Secondly, there are three typical types of the spatial characteristics what modern hospitals have ; 1) nursing ward 2) treatment ward 3) hostel or hospice. And they are all assembled around the courtyard in common. Thirdly, their architectures are not 'designed' but 'derived' plan by reasonable other building types, and transformed by medical function. Fourthly, a consideration of the surrounding circumstances is the most important point to make the medical health facilities during ancient period.
키워드 고대, 의료시설, 건강복지시설, 병원역사, 의학, 건축유형
Keyword ancient, medical facility, health welfare facility, history of hospital, medicine, architectural type
1. 서론
1.1 연구의 배경
1)및 목적
현대의 대표적 의료시설, 병원은 개인은 물론 지역사회 및 한 국가의 건강을 책임지는 중요한 기관이다. 병원은 근 대 이후 의학 및 과학의 발전과 함께 전문적 · 기술적 진화 를 거듭하였으며, 지금은 그것이 갖는 첨단 장비 및 특성화 된 의술에 의해 그 수준이 판단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전일적 세계관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속에서, 현대의 병원은 단지 전문적인 치료공간을 넘어 인간 의 전반적인 삶 자체를 관리해야 하는 복합적 측면의 시설 로서의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미래에 요구되는 병원의 모습 은 질병의 치료를 위해 찾아가는 소극적인 공간으로부터 건 강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질병의 예방과 치료는 물론 건강교육 및 지역적 커뮤니티까지도 담당하는 적극적 공간 으로서의 변화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 광운대학교 건축학과 박사과정
** 광운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공학박사, 교신저자
이에 본 연구는 역사의 궤적 속에 존재했던 중요한 의료 시설을 통해 그것이 가져야 할 근원적 의미를 찾고자 하였 다. 의료의 역사는 인류의 탄생과 함께 진행되었고, 인간과 질병의 치열한 싸움 속에서 발전하였으며, 그 존재가 특정 문명의 흥망성쇠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볼 때 의료 및 의료시설에 관한 역사적 고찰은 현재 이 시점에 있어서 매우 필요한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헨리 지거 리스트. 2008 : 13-37) 따라서 본 논문은 인류 역사의 초기에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근세 및 근대초기 의료시설의 형 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미래의 의료시설이 갖추어야할 근원적인 상(狀)을 내포하고 있다고 사료되는 고대의 의료 시설의 특성을 파악함으로써 현재와 미래 의료시설이 갖추 어야 할 본질적 · 유형적 특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진행되 었다.
1.2 연구의 방법 및 범위
본 연구는 문헌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시간적 범위는 고대의 문화를 이룬 시기 즉 이집트 · 그리스 ·로마 시대로 부터 초기기독교 전파시기까지로서, 대략적으로 기원전
[그림 1] 의료시설의 연구방법에 관한 개념도
3000년경 ~기원후 4·5세기가 된다. 공간적 범위는 당시 그리 스·로마문화권이 형성된 지역 중 고도의 문명 및 의학이 발 전하고 대표적 의료시설이 존재했다고 기록된 곳으로 정하 였다. 내용적 범위는 공공적 성격을 가진 의료시설을 중심으 로 하되, 그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는 인문·사회·문 화·철학적 배경들에 관한 고찰도 병행하였다. 특히 당시의 질병관 및 치료관과 위생관 및 복지관이 의료기술과 시설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가정하고, 서로의 관계와 형성과정을 심층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하였다.[그림 1] 이와 더불어 의료 시설의 공간적 특성이 당시 다른 기능의 건축물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여부 및 중세와 근세의 의료시설에 미친 영향에 관해서 고찰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가 가지는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 금까지 주로 다루었던 근대이후가 아닌 고대의 의료시설을 대상으로 초기 의료시설의 특성을 파악했다는 점이다. 둘째, 건축의 역사적 고찰에만 국한하지 않고, 의학, 인문, 질병, 위 생, 복지 등 관련 학문과의 관계 속에서 건축적 특성과 의미 를 고찰했다는 점이다. 셋째, 의료시설의 건축적 유형과 내 부의 개별적 공간의 유형적 특성을 다른 기능의 건축과 비 교하고 그 연관성을 파악함으로써 그 건축물의 원류적 특성 을 파악하려 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헌이 가진 시간적·내용적 한계로 인해 보다 객관적인 분석 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을 본 연구의 한계로 밝힌다.
건축이 그 시대의 총체적 산물인 것처럼 인류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와 복지체계 또한 그 시대와 문화가 만들어낸 복합적 산물임에 틀림이 없다. 현재의 의료시설이 가진 문제 점과 한계점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을 판단 할 수 있는 공시적 시각과 함께 역사의 역학관계 속의 흐름 을 파악할 수 있는 통시적 시각 또한 필요할 것이다. 즉 현대 의 의료체계 및 시설들이 어떤 배경 속에서 형성되었고, 어 떤 조건들을 받아들여 형성된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점을 지향하여 나아가야하는지에 관한 혜안(慧眼)과 관점의 전환이 필요다고 보고 본 연구는 진행되었다.
2. 고대의 질병관 및 치료관
역사적으로 질병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1), 이는 질병을 인간의 신체로부터 분리하여 독립된 하나의 객 체로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다.(에릭 J.
카셀. 2002 : 37-56)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원인을 이성적 · 분석적 시각으로 관찰하기 시작한 르네상스 이후 로부터 질병은 인간의 신체로부터 분리되어 연구되었으며, 그로 인해 근대의 의학은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러한 분석적 시각의 근원은 이미 고대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당시의 질병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1 초자연주의적 질병관
초자연주의적 질병관이란, 질병의 원인이 초월적 존재로 부터 생긴다고 믿는 것이다2). 이것은 원시시대부터 만들어 진 관념으로서 질병은 ‘불운’에 의해서 혹은 ‘정령’이나 ‘신’
이 만들어 내기 때문에 그 원인을 제공한 알 수 없는 ‘존재’
를 달래주는 행위 즉 기도나 제식을 통해 치유가 된다고 믿 었다. 따라서 사제(priest)가 곧 의사의 역할을 수행하였으 며, 이들이 하는 일은 주로 질병의 원인을 해석하거나 대처 해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전부였다.(로이포터. 2010 : 24-26) 이러한 질병관은 이집트 시대를 거쳐 중세시대까지 계속 이어진다.
이것은 각 시대와 문화권별로 치료와 건강을 담당하는 특별한 신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이집트는 이시스(Isis)와 임호텝(Imhotep), 그리스와 로마는 아폴로(Apollo)와 아스클 레피오스(Aesculapius), 중세는 예수 그리스도로서 누가 치 료하느냐만 바뀌었을 뿐 그 역할은 비슷했다. 또한 전체 질 병과 건강을 관장하는 주신(主神)과 함께 특정 신체장기 및 질환을 담당하는 반신(半神)들도 존재하였으며, 고대의 반신 은 기독교의 전파이후 성자(聖者)들로 대체되었다.3) 이러한 질병관 및 치료관을 통해, 질병은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순리로 받아들였으며, 질병으로부터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faith)을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따라서 치
1) 전통적 질병관은 병이란 신체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현상으로 바라 보는 것인데 반해, 근대적 질병관은 특정 질병이 특정 기관과 연관 되어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이는 다시 정신과 신체를 하나로 보는 관점과 정신적 질병을 신체적 질병으로부터 분리하는 관점으로 나 누어진다.
2) 당시 이집트 혹은 알렉산드리아 지역 등에서 여러 수준의 외과적 수 술이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의료는 ‘주술’과 ‘의식’에 의 해 이루어졌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도 숙련된 외과의사가 존재하였으며, 이들은 외상을 치료하고 수술하는 중요한 지위에 있 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대부분 가벼운 질병과 외상은 흔히 일어나 는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3) 티베스(Tibes) 강가에 위치한 아폴로 신전은 기독교 시대가 되면서, 성 세바스챤(St. Sebastian)에게 봉헌된 교회당으로 바뀌었다.
[그림 2] 4체액설의 개념 및 체액설에 관한 중세의 판화
료는 주로 신전과 같은 종교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2.2 자연주의적 질병관
자연주의적 질병관이란, 질병은 신의 뜻이 아닌 자연적 인 현상으로서 그 원인이 인간신체 내부에 있다고 보는 관 념이다. 이것은 그리스 시대에 이성적·근원적 사고를 중시하 는 철학자들에 의해 건강과 질병의 근본 및 합리적 치료방 법을 모색하려는 차원에서 형성되었다. 그리스인들에게 있 어 이상적 삶은 곧 ‘건강한 삶’을 의미했으며, 인간의 삶에 있어서 최고의 덕목은 ‘건강’이었다.4) 그들에게 있어 건강이 란 ‘조화’의 문제였다. 즉 ‘조화’가 이루어진 상태는 건강한 것이며(eucrasia), 그 조화가 깨지면(dyscrasia) 그것이 곧 질병이 된다고 생각했다5). 인간 신체 내의 ‘조화’는 네 개의 체액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여기는 학설이 지배적이었으 며, 이것을 ‘4체액설’(four humoral theory)이라고 한다. [그 림 2]
인간의 몸은 네 개의 체액 즉, 혈액(blood)과 점액 (phlegm), 황담즙(yellow bile)과 흑담즙(black bile)으로 이 루어져 있으며, 각각은 인간의 성격과 물질의 특성과도 연관 된다고 여겼다.6) 하지만 이들의 불균형으로 몸에 이상이 생 겼어도 인간은 스스로 불균형을 균형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메카니즘(숙성과정 ; pepsis)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으 며, 따라서 치료행위란 몸의 상태가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제일 먼저 행하 는 치료법은 좋은 환경과 음식 그리고 상태를 만들어 주기
4) 그리스에서 질병은 인간을 열등한 존재로 만드는 재앙처럼 느꼈으 며, 치료 불가능한 질병을 가진 자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자연 스러운 일이었다고 한다. 전문 의사는 건강을 유지·회복시키는 장인 으로서 대우받았으며, 히포크라테스에 의해 가망 없는 환자에 대해 서는 치료를 거부하는 것이 보다 윤리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졌다.
5) 플라톤(Platon)의 ‘이데아(idea)’사상은 그리스 시대의 많은 영역에 영향을 미쳤으며, 인간의 이성을 통한 이상적 세계를 실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이상’이란 완벽한 조화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 었으며, 이는 수학적인 비례체계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여겼다.
6) 그리스에서 숫자 ‘4’는 조화롭고 완전한 수를 의미했다.
위한 목욕과 식이요법 그리고 운동 등을 권장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호전되지 않으면 약초에 의한 약물요법을 쓰거나 체 액의 배출을 통해 균형을 이루도록 하였다.7)
하지만 이렇게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의료관과는 다르게 그에 대한 치료는 지속적인 체험과 관찰을 통해 얻어진 경 험적 치료에 국한되었다. 즉 질병의 원인을 진단하는 것이 아닌 그 증상과 경과의 관찰이 더 중요한 것이라 여겼던 것 이다. 반면 엠페도클레스(Empedocles)로부터 시작된 체액 설은 피타고라스(Pythagoras)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를 거쳐 로마의 의사 갈렌(Galen)에 의해 더욱 체계화되어 중세까지도 질병을 구분하고 치료하는 강력한 의학체계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는 현대까지도 대체의학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인공으로 체액을 배출하는 치료법은 현대 일상생활 에서도 빈번히 행해지고 있다. [그림 3]
[그림 3] 구토·사혈 등을 통해 몸의 독소를 제거하는 체액 배출법
2.3 고대의 질병구별
질병과 그 증상과의 정확한 연관관계가 밝혀지기 전까 지 즉 근세 전까지의 질병은 다음과 같이 구분되었다8). 1) 신체 내에 특정 증상이 나타나는 내과적 질병, 2) 이상적 행 동으로 나타나는 정신병, 3) 전염병에 의해 외향상의 이상이 나타나는 피부병, 4) 골절이나 외상, 5) 불구자 등이다. 고대 에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대상으로 여겼던 것은 내과적 질 병으로서, 주로 당시의 현인 혹은 학자와 전문인들이 치료를 행했다. 반면 높은 신분과 노예나 군인을 제외한 일반인들의 외상은 생활의 일부분으로 여겨지거나 대수롭지 않은 일이 었으며,9) 불구자는 치료할 대상이 아닌 ‘저주받은 자’였다.
질병 중 타인으로부터 가장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흑
7) 구토, 관장, 발한, 이뇨, 사혈법 등 몸 안의 체액을 인공적으로 배출하 는 방법이 행해졌다.
8) 헨리지거리트는 인간의 역사는 질병의 역사와 같다고 가정하고, 질 병의 발생요인을 경제, 사회, 역사, 종교, 철학, 과학 등의 측면에서 분석하였다.
9) 이집트와 로마시대의 노예 및 군인들은 사유재산 및 국가의 중요한 재산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외상은 노동과 전쟁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현실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이들의 치료는 전문인에 의해 이루 어졌다.
[그림 4] 이집트 이시스 신전과 그에 부속된 의료시설
사병이나 나병 등으로 나타나는 피부병으로 이는 치료할 대 상이 아닌 격리시켜야 할 두려운 대상이었다. 이와 같이 당 시에는 각각의 질병을 증상별로 구별하는 것이 아닌 병에 의해 나타나는 신체적 현상을 커다란 범주로 나누어 구분하 는 정도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사회문화적 정서와 인식의 차이에 따라 그 정도 또한 다르게 인식되었다.
3. 고대 의료시설의 유형과 특성
고대의 의료시설들은 그 목적에 맞도록 특별한 계획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공공건물들의 형태 - 종교 · 상업 · 주택 -를 받아들여 의료의 목적에 맞게 변화 시켜 사용하였다. (John M. Currie. 2007 : 13) 하지만 의료 행위는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그룹에 의해 다루어져야한 다고 믿었기 때문에 별도의 의료시설이 존재한 것임은 틀림 이 없다. 고대의 의료시설을 시대별로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매우 어렵다. 시설들은 몇몇의 특성들이 상호관계를 가지고 형성되지만, 본 연구에서는 보다 중요하게 나타나는 특성을 중심으로 분류하였다.
3.1 신중심의 의료시설 : 이집트
많은 사람들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특정의 신을 찾아 신전으로 왔다. 이집트 시대 가장 대표적 치료신은 이시스와 임호텝이었으며, 신전을 중심으로 치료 및 의료 관련시설이 존재하였다10). 토템이즘(totemism) 및 여러 신들에게 일상 생활을 의지했던 당시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 지 모른다. 치료는 주로 의식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중앙 신 전의 기둥이 많은 다주실(hypostyle hall)에서 소위 말하는
‘수면치료’(incubatio)가 이루어졌다. 많은 사람들은 꿈속에서 신들의 치료를 받아 기적적으로 회복되기를 기원한 것이다.
그림 4의 덴데라(Dendera) 이시스 신전의 평면을 보면
10) 이집트 시대의 파피루스(Papyrus) 기록을 통해 당시 의학이 체계 적으로 분리되었음과 해부학 및 외과술과 산과술 또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피라미드 공사로 동원된 노동자들의 외과적 수술 은 외과의사들에 의해 시행되었으며, 내과적 질환은 사제의사가, 정신적 질환은 엑소시스트(exorcist)들이 담당하였다.
신전을 중심으로 부속시설도 배치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몸을 청결히 하는데 사용되었을 호수와 분만실(birth house) 그리고 치료실(sanatorium) 등이 그것인데, 치료실에서 환 자들은 의식을 기다리거나 숙박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사제 의사(priest-physician)들은 신을 만나기 전 환자들의 몸을 청결히 하도록 권했으며11), 날것을 피하고 신선한 음식을 섭 취하는 식이요법을 권했다. 이러한 부가적인 치료법과 함께 각 질병을 신에게 맡기는 치료관은 로마시대까지 그대로 이 어졌다.
3.2 건강증진중심의 의료시설 : 그리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의술(art of healing)이란 신이 가 르치는 것이었다12). 따라서 이집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의 의료시설 또한 신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독특한 것은 부속시설의 대부분이 주로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성격을 가진다는 점이다. 즉 질병 혹은 이상증상을 궁극적으로 제거 하는 것은 신의 뜻이지만, 치료의 결과를 높이고 도움을 주 기위해서는 환자들의 안정과 휴식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따라서 이 공간은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한 그 리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건강증진시 설(health welfare center) 혹은 복합치유시설의 성격을 가진 다고 말 할 수 있다. 이들은 복잡한 도시와 떨어진 곳에 좋은 공기, 조망을 고려하여 신중히 만들어졌으며, 이것은 당시에 질병을 초자연적 그리고 자연적인 현상으로 보는 견해가 공 존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라 할 수 있다.
당시 가장 환영받는 치유공간으로서 에피다우로스 (Epidaurus)에 위치한 아스클레피우스 신전(Aesculapia)13) 이 있다. 치유를 위해 찾아온 순례자들은 수일씩 숙박하면서 신으로의 축복을 빌며 사제의 처방을 받았다. 그들은 신에게 제를 올리고 의식을 행한 뒤 잠자는 동안 뱀으로부터 치료 를 받을 수 있다고 믿었으므로, 제단과 신전을 중심으로 개 방형 수면홀 아바톤(abaton)이 둘러싸인 배치를 선호하였다.
그 외 부속시설로는 방문자들을 위한 숙박시설과 목욕시설 그리고 운동시설(stadium)이 존재함을 그림 5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사제들은 제례의식은 물론 휴식, 운동, 식이요법 등을 통해 환자들을 돌보았다. 이집트의 마술·종교적 의술은 그리스 이후 기술적 의술로 대체되면서 보다 합리적 접근이 이루어졌다. 즉 ‘수면치료’ 및 ‘최면치료’와 같은 영적치료로
11) 물은 위생 및 치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중세 기독교시대에는 탈의를 하고 몸을 씻는 행위가 죄악시 여겨졌기 때문에 위생상태가 최악에 이르렀으며, 그로인해 흑사병이 창궐했다는 주장도 제기되 었다.
12) 기술자로 여겨졌던 당시 일반 의사들은 별도의 진료시설이 없이 떠 돌이 생활을 통해 진료봉사를 다녔다.
13) 아스클레피아는 기원전 300년 경 가장 성행했으며, 에피다우로스 (Epidaurus), 페르가문(Pergamum), 카르타고(Carthage), 코스 (Kos)그리고 로마(Rome)에도 만들어졌다.
[그림 5] 그리스 아스클레피오스 신전과 부가된 복합의료시설
[그림 6] 로마 군막사와 의료시설 부터 보다 정확한 처방을 위해 보고, 만지고, 듣고, 맡고, 관
찰하며 기록하는 일들이 복합적으로 행해진 것이다14). 그리 스·로마(Greek-Roman)시대에 만들어진 아스클레시아에서 는 보다 발달된 목욕시설과 위생시설이 첨가되었다.15)
3.3 치료중심의 의료시설 : 로마
로마시대 질병에 대한 치료의 주관은 역시 ‘신’ 과 ‘반신’
의 담당이었다. 하지만 질병의 치료가 현실적으로 필요한 곳, 즉 노예와 검투사들의 수용시설이나 군대막사에서는 전 문의에 의해 창상치료와 수술 등의 외과적 시술이 이루어졌 다. 일반적 병원의 모습과 전문의 그리고 신속한 의료서비스 가 탄생한 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John D. Thompson et al..1975 : 6) 이들의 건강은 개인의 재산 혹은 나라의 존망과 연결되는 것이었으므로, 제때 치료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 한 것이었다. 초기 로마시대에 활동한 대부분의 의사는 그리 스에서 온 노예들이었기 때문에 의료관과 기술 모두 그리스 로부터 받아들인 것들이었다16). 해부학자이자 생리학자였던 갈렌에 의해 4체액설은 더욱 체계화되었으며, 16세기 안드 레아 베살리우스(Andrea Vesalius)와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에 의해 체액설의 오류가 수정되는 순간까지 그의 영향력은 계속되었다.
로마시대의 대표적 의료시설은 야전병원으로 불리는, 발 레투디나리아(valetdinaria)이다. 이는 바실리카(basilica)를 변형시킨 독특한 건축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노예와 검 투사들에게 제공된 건축물과도 유사하다. 그림 6과 같이 군 대막사는 주로 일반 도시와 떨어진 국경지역에 위치하여 하 나의 작은 로마식 도시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그중 의료시설 은 중심으로부터 떨어져 주변부에 위치함을 알 수 있다17).
14) 이성적 의료행위는 히포크라테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환 자의 질병과 상처를 관찰하고 구체적으로 기록하여 70권 이상의 건강관리법에 관한 서적을 편찬했다.
15) 건축 구조술이 발달한 로마문명은, 상·하수도시설은 물론 수세식 공중욕장과 화장실과 같은 위생시설의 수준 또한 높았다. 이는 특 히 위생관념과도 연관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자국의 수준 높은 문 화를 상징하는 것으로도 이용하였다.
16) 그리스 문명으로부터 받아들인 외과적 치료술은 메소포타미아, 이집 트 문명 특히 알렉산드리아와 멤피스로부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는 전쟁 중 외부에서 실려 온 병사의 치료를 신속하게 하 기 위한 위치적 고려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몇 개의 평 면을 고찰해 본 결과18), 발렌투디나리아가 가지는 일반적 특 성은 선형의 일반 막사와는 다르게 중심적 구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창상을 입은 병사를 쉽게 감독, 치료 및 관리 할 수 있도록 관리동이 부속되어 있으며, 각각의 진료실은 하나의 복도를 통해 양쪽으로 출입할 수 있는 기능적 구성을 취한 다. 전체 건물은 중정을 둘러싸는 내향적인 공간구성을 이루 고 있다. 규모가 큰 막사의 경우 주변에 목욕시설을 갖추기 도 했다.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의료시설은 현대의 개인 병원과 같은 성격으로서, 일반 개인주택에서 행해졌다.19) 이 것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대부분의 질병은 신을 통해 치료를 구했으며, 가벼운 처치나 시술은 특별한 기술을 가진 자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폼페이(Pompeii)에서 발굴된 외과의사의 집을 보면, 아트리움(Atrium)은 있으나 페리스타일(Peristyle)의 중정이 없는 초기도시주택의 모습 이다. (로버트 쉐나우어. 2004 : 163) 주택에서 도로에 접하 는 부분은 대체로 상점으로 임대되었는데 의사들은 이곳을 환자를 진료하거나 외과적 시술을 하기 위한 곳으로 개조·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20).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방들이 있으며, 몇몇의 방은 회복실(recovery room)이 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림 7]
17) 의료시설은 군대막사의 헤드쿼터와도 비슷한 형태를 띠는데, 발굴 당시 외과수술 도구가 발견되었는지 여부에 따라 기능을 구분했다 고 한다.
18) 참고문헌으로 충분히 파악할 수 없는 평면자료에 대해서는 인터넷 자료를 이용하였다.
19) 로마의 상류층은 일반적으로 의학, 특히 외과술은 교양인이 할 것 이 못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로마의 초기 의사들은 그리스에서 온 노예 신분이 주를 이루었으며, 당시 갈렌에 의해 의사는 점차 전 문 기술자로서 인식되기 시작했다.
20) 이 주택의 이름은 발굴 당시 수술도구가 많이 발견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그 연대는 기원전 4~5세기로 추정된다. 로마의 전형적 도 시주택 도무스(Domus)의 일반적 형태는 아트리움과 페리스타일 중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림 7] 로마 도시주택을 이용한 의료시설
3.4 실습·교육중심의 의료시설 : 비잔틴·아랍
비잔틴시대 지중해 동쪽 지역에서는 과학적이고 실제적 인 의학과 의료기관의 발전이 있었다. (로이포터. 2010 : 43) 동로마 즉, 비잔틴 제국의 의학체계는 그리스의 히포크라테 스와 갈렌, 아랍의 아비센나(Avicenna)를 통해 만들어진 철 학과 과학의 혼합체였다21). 다시 말해, 이들은 관념적 치료 관과 함께 특정 질병에 관한 약리학, 치료학, 외과학 등의 치 료법을 발전시켰으며, 치료 효과를 세심하게 관찰·기록하는 과학적인 방법에 바탕을 두어 이후 르네상스의 근대적 의학 이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비잔틴 의료시설 중 대표적인 것은 제노네스(xenones) 와 노소코미온(nosokomeion)라 불리는 병원과22), 바실(St.
Basil)23)에 의해 만들어진 바실리아스(Basileias)24)가 있다.
바실리아스는 전문적인 의료술과 의료인을 위해 만들어진 일 종의 센터로서, 환자들을 위한 병원(hospital)과 나병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hospice), 노약자를 위한 구빈원(poorhouse), 그리고 방랑자들을 위한 호스텔(hostel) 등을 포함하고 있으 며, 이후 이러한 용어와 시설들은 기독교의 자선활동에 힘입 어 4·5세기에 걸쳐 전유럽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이후 비잔틴 지역의 병원은 서로마와는 다르게 독자적인 의료교 육과 실습의 장을 만들었으며, 전문적이며 체계적인 복합 의 료시설들을 건설하였다25).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 위치한 판토크레토 (Pantocrator)는 무슬림 병원으로서 기능에 따라 다섯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각 50개의 병상을 가지고 있다.
21) 그리스 의학은 시리아와 페르시아를 통해 중국·인도의 의학을 반영 하여 전 아랍세계로 퍼져나갔으며, 이러한 의학은 12세기에서 15세 기까지 서양의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2) 비잔틴 시대의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와 유스티니아누스 (Justinianus) 황제는 자선시설 및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시설 들을 많이 공급하였다.
23) 바실은 369년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샤라(Caesarea) 주변 에 최초의 병원을 설립한 자로 알려진다.
24) 바실리아스는 그리스 말로 왕궁(royal palace)을 의미한다.
25) 아랍과 페르시아의 병원은 학교와 간호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근대 병원과 매우 유사한 특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각 부분은 내·외과 그리고 여성을 위한 공간이 한 섹터씩 중 환자를 위한 공간이 두 개의 섹터로 구성되어 있다. 그 외에 약국과 부엌, 환자들을 위해 고기를 공급한 공간과 부엌이 따로 있었으며, 화장실과 세탁실 등의 서비스시설도 갖춘 복 합의료시설이었다. [그림 8]
[그림 8] 콘스탄티노플에 설립된 종합의료시설, 판토크레토
4. 고대 의료공간의 유형과 특성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대의 의료시설은 당시의 질 병관이나 치료관에 의해 독특한 구성을 가지지만, 다양한 기 능이 복합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에 있어서 현대 의료시설과 의 유사점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의료시설을 구성하는 각 각의 건물 혹은 공간은 다음과 같은 유형과 특성으로 구분 되며, 동시대의 다른 건축적 유형 혹은 근·현대의 건축유형 과의 유사점도 찾아볼 수 있다.
4.1 병동부문
고대의 의료시설 내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은 현대병원에서의 병실 부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즉, 특별한 치료행위가 이루어지기보다는 환자가 충분히 쉴 수 있는 공간 혹은 신의 계시를 받기 위해 기거하는 성격의 공 간이 많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 때, 전체 공간은 하나로 개 방된 성격을 가지며, 병실은 환자의 휴식과 간호라는 두 가 지의 기능을 수반한다. 개방된 병동의 유형은 근대병원까지 유지되었다.
[그림 9] 고대 의료시설 내의 대표적 병동부, 아바톤
1) 그림 4에서 보듯이, 이집트 덴데라 이시스신전의 치 료소 병실은 그리스·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신전에 들 어가기 전 대기하는, 혹은 환자가 휴식하는 공간이었다. 거대 한 단일 공간 내에 침대가 일렬로 배열된 것을 볼 수 있다.
2) 그리스의 대표적 의료시설이라 할 수 있는 아스클레 피아의 치료공간 아바톤은 개방형 병실의 근원적 모습을 보 여준다. 넓은 중정을 두고 열주랑으로 둘러싸인 이것은 마치 아고라(agora)에서의 스토아(stoa)가 가진 공간구성과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다. [그림 9] 이는 환자들이 머무는 동안 중심에 위치한 신전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이를 통 해 환자들은 쾌유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을 것이다. 또한, 지중해성 기후 특성상 건물 내에 쾌적한 그늘과 상쾌한 바 람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으므로 열주랑을 가진 이러한 건축 구성은 환자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었다. [그림 10]
숙박시설의 전면에 열주랑을 두는 형식은 초기 기독교 시대 에도 유지되었으며, 성지 순례길을 따라 만들어진 교회당에 서 그 사례를 볼 수 있다.
[그림 10] 그리스 공공시설 스토아와 의료시설 아바톤
3) 기독교의 자선적 치료관에 힘입어 보다 많은 사람들 을 수용하기 위한 개방형 병동은 그 규모와 기능이 점차 커 졌다. 5세기경 시리아에 건설된 성 시미온(St. Simeon Stylites)수도원의 의료시설은 초기기독교의 바실리카를 네 방향으로 교차·중첩시킨 형식을 보여주며, 각각의 병동은 여전히 하나의 거대한 공간으로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이 는 하나의 제단 혹은 서비스 공간을 중심으로 네 개의 병동 이 결합될 수 있는 공간구성의 가능성을 보여준 예로서, 실 제로 15세기 밀라노의 오스페달레 마지오레(Ospedale Maggiore)의 계획과의 연관성을 볼 수 있다.[그림 11]
[그림 11] 초기기독교와 르네상스 시대 개방병동의 유사성
4.2 진료부문
단지 환자를 수용하는 공간보다 특별한 치료나 시술을 위한 시설이 일반화된 곳은 외과의학이 발전한 이집트와 아 랍문화권 주변, 그리고 로마문화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 기서 치료의 의미는 외과적 시술을 의미하는 것이며, 따라서 커다란 공간이 아닌 작은 방의 규모를 가졌을 것으로 판단 된다.
1) 폼페이의 의사주택에서는 일반인들의 상처의 치료는 물론 간단한 수술 혹은 소작술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 다. 시술실 혹은 회복실로 보이는 작은 방들은 중정을 둘러 싸고 배치되어 있으며, ‘중정형 주택’은 고대 문명의 발상지 로부터 그 원류를 찾아볼 수 있다. 중정형 주택이 가지는 ‘내 향적 공간구성’의 이점은 치료·시술·회복이라는 기능에 적합 한 것으로서 이후 병원의 공간구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2) 가장 가혹한 시술들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이는 군 대의 막사에 위치한 의료시설 내의 치료실들은 매우 기능적 이며 합리적인 공간구성을 취하고 있다. 중간의 복도를 따라 배치된 처치실들은 두 개의 방이 하나의 서비스 공간을 공 유하도록 계획되었으며, 각 방은 서너 개 정도의 침대가 들 어갈 수 있는 크기이다. [그림 12] 여기서 근대병원의 중복도 식 진료부와 수술부 배치의 공간적·기능적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림 12] 로마군병원 진료부의 평면 및 단면도
4.3 호스피스 · 호스텔
고대의 의료시설에서는 환자들은 장·단기적으로 거주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 모습은 당시의 주거와 많은 유사성을 가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1) 에피다우로스 및 트로에젠(Troezen)에 위치한 아스클 레피아 의료시설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숙박시설이 있는데, 이는 그리스의 페리스타일 중정형 주택과 거의 유사한 형식 을 가지고 있다. [그림 13] 중정형 주택이 가지는 ‘환경조절 체’라는 점이 이 시설의 형식을 결정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 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림 13] 그리스 의료시설 내 숙박시설과 도시주택과의 유사성
2) 초기기독교 시대 성지순례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수 도원 및 자선의료시설 등에는 헐벗고 굶주린 순례자들을 위 한 호스피스가 운영되었다.26) 전체 시설은 그리스의 것과 비 슷하게 종교적 시설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기능이 합쳐진 복 합시설의 성격을 가지지만 가장 중요하고 많은 부분을 차지 하는 것은 바로 숙박공간이었다. 이는 순례자를 위한 숙박과 수도사 및 수녀를 위한 기숙시설로 나누어진다. 교회당은 초 기 바실리카양식을 가지며, 호스피스의 아래층은 그리스의 아바론처럼 보다 개방된 성격의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이후 중세를 거치면서 호스피스는 프라이버시 개념을 받아들이면 서 각 실이 구획되어진 집합주거시설의 특성을 보이며 발전 하게 된다. [그림 14]
[그림 14] 초기기독교 시대의 전형적인 호스피스 혹은 호스텔
5. 결론
본 연구는 사회·문화적 배경과 더불어 고대 질병관과 치료관 그리고 위생·복지관을 통해 의료시설을 재조명해봄 으로써 고대 의료시설이 가진 건축적 유형 및 특성과 함께 그것이 가지는 본질적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했으며, 그 결과 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고대에 형성된 질병관은 초자연주의적 질병관과 자연주의적 질병관이 공존하였으며, 이에 따라 의료시설들 은 1)신 중심 2) 건강 증진중심 3) 치료 중심 4) 실습·교육 중심의 의료시설로 구분된다.
둘째, 고대의 의료시설 역시 다양한 기능의 공간들이 모 인 복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주된 공간은 다음과 같이
26) 기독교에서의 일곱 가지의 자비(seven mercy)란 굶주린 자, 목마른 자, 길을 잃은 자, 헐벗은 자, 아픈 자, 죄지은 자, 죽은 자를 위한 자비를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당시 맨발로 고행을 행했던 순례자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시설은 매우 중요했다.
세 가지의 유형과 특성으로 구분될 수 있다. 1) 병동부문 2) 진료부문 3) 호스피스와 호스텔 등이 그것이며, 이것은 근대 의료시설의 근원적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라 파악할 수 있다.
셋째, 위에서 구분한 세 개의 공간유형의 집합방식은 모 두 중정이라는 공간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의료 시설이 가져야하는 환경적 안정감 혹은 안락함을 위한 당연 한 결과이며, 중정은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공간구성이 가지는 독특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넷째, 고대의 의료시설들은 그 기능에 따라 특별히 설계 된 것이기 보다 주변에 유용한 건축유형을 받아들여 사용하 거나 약간의 변형을 통해 그 만의 독특한 양식을 만든 것이 라 볼 수 있으며, 주로 받아들인 건축유형은 종교시설과 사 람들에게 편안함을 제공하는 공공집회공간이나 주택이었다.
다섯째, 고대 의료시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복 에 대한 믿음과 쾌적한 환경의 구축이었다고 판단된다. 이는 당시의 질병관 및 의료적 관념과 관련된 것이며, 건축을 통 해 환경이 가진 문제점 및 한계점을 극복하는 방법을 엿볼 수 있었다.
끝으로 향후 본 연구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은 근대의료 시설에 대한 비잔틴 및 아랍문화권에 대한 새로운 자료 발 굴 및 연구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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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 : 2012년 3월 22일 1차 심사 완료 : 2012년 04월 16일 게재확정일자 : 2012년 04월 16일 3인 익명 심사 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