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역사적 사실을 과학과 같은 객관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
(2)역사적 사실을 문학과 같은 창조적 성격으로
보는 시각
1) 역사지식의 습득과 체계적 파악을 중시
2)교과서나 권위를 인정받는 자료 내용에 의존 3)대부분 사료(史料)를 사용
4)역사 학습을 위한 기능으로 자료의 분석이나
해석 능력을 강조하는 관점
1)역사를 인식할 때 자기 나름의 역사상(歷史像)을 구성해 가는 것을 강조
2)같은 역사적 사실을 어떤 관점에서 해석할 것인지를 판단할 것을 강조
3)학생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역사읽기를 함으로써
역사학습 부진 극복을 시도함
역사서술의 형식은 과학의 서술형식보다는 문학적 서술형식에 가깝다 고 할 수 있다.
역사가가 주관이나 상상의 침입을 배제하고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여
‘과학적인’ 관점에 치중해서 역사를 서술할 경우 교실에서의 역사학습으로 이어질 경우,
그렇게 서술된 역사책은 너무 많은 사실을 담고 있고 딱딱한 제도나 구조, 어려운 사회과학적 개념 등이 나열된 재미없는 것이 될 공산이 크다.
이런 역사책을 텍스트로 수업을 한다면 역사를 기계적으로 암기해야 하는 지루한 학습이 되기 쉽다.
-신진균,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문화란 한 시대 인간생활의 총체적 표현이다. 따라서 문화에는 그 시 대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이 그대로 들어 있고, 문화를 통해 당시의 역사상을 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문화란 사회나 경제구조 자체를 잉태한 모태이며 역사적 실체를 구성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엄기환,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북쪽 구지봉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하늘이 내게 명해 이곳에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라 하시어 여기 왔으니 너희는 이 봉우리의 흙을 파면서 노래하고 춤추라”
알 여섯이 모두 사내아이가 되어 있었는데 용모가 매우 깨끗했다.
그 달 보름에 왕위에 올랐는데 세상에 처음 나타났다고 하여 이름을 수로(首露)라 하고
금관가야의 왕이 되고, 나머지 다섯 사람도 각각 다섯 가야국의 임금 이 되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1)문화재에 대한 감상과 함께 문화현상이나 유물, 유적을 통해 시대를 이해하는 것
(2)유물이 탄생하게 된 사회적 배경과 역사적 의의를
살펴봄으로써, 그 시대나 사회의 성격을 설명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
(1)역사지식 필요
-역사지식: 역사가에 의해 구성된 지식 < 구체적 사실, 개념, 일반화>
(2)역사과목에서 사용되는 개념
-주로 사회과학 용어에서 차용된 추상적 개념 -역사학습 부진학생들: 낮은 언어구사력
(왕위계승, 민주주의, 정부구성 등
추상적인 개념에 대한 이해가 낮다고 파악됨)
프랑스 카페 왕조의 샤를 4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영국은 프랑스 의 왕위를 주장하게 된다.
전쟁 초기에는 영국이 우세하였으나, 오를레앙에 포위되어 있던 (훗날의) 프랑스의 샤를 7세를 잔 다르크가 구하게 되면서 전쟁은 결국 프랑스의 승리로 돌아가게 된다.
양국 간의 오랜 전쟁은 국민 의식을 각성시켰고, '국민국가'의 등장에 밑바탕이 되었다.
장기간에 걸친 전쟁과 내란에 의해 봉건 귀족의 세력은 약화되었고, 국가를 상징하는 국왕의 권력은 강화되었다.
강력한 군대를 유지할 필요성을 절감한 국왕은 시민 세력과
결탁하여 국가 재정을 정비하여 중앙 집권 국가를 발전시켜 나갔다.
1)장미전쟁
2)요크 가문 VS 랭커스터 가문 3)헨리 7세-두 가문의 결합 4)튜더 왕조(헨리 7세~) 5)젠트리
6)요먼
7)영국 내 상인의 등장
8)혼인정책: 영국식 종교 개혁의 배경
(가)프랑스에서 발루아 왕조가 들어서자,
영국 왕이 프랑스 왕위 계승을 주장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영국이 우세하였으나, 잔 다르크의 출현으로
프랑스가 승리했다.
(나)프랑스와의 전쟁 후, 영국 내에서는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다시 전쟁이 일어났다. 15세기 말 이 전쟁에서 승리한 헨리 7세는 튜더 왕조를 열었다.
① 교황의 권한 강화
② 신분제 의회 성립
③ 중앙 집권 국가 성립
④ 제후와 기사의 지위 강화
⑤ 개인의 종교 선택권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