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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공화국을 바라보는 아픔 | 희망칼럼

2006/08/27 16:05

http://blog.hani.co.kr/randf/3399

- “누가 모차르트와 같은 우리 아이들을 죽이고 있는가?”

“바다이야기”에 얽힌 사건이 터지던 날, 무슨 횟집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나 스 스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잘 몰랐기 때문에 부끄럽기도 하고 공감이 가기도 했었다. 그런데 연일 각종 언론과 매스컴을 타고 날아드는 소식은 그것이 우리나라의 도박 산업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것이다. 그 엄청난 뉴스들은 우리 동네의 골목까지 잠식한 도박 산업의 실체를 알지 못했던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아니 단지 부끄러움이라는 감 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충격과 아픔이 밀려 왔다.

언제부턴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행성 오락들이 무혈 입성한 점령군들처럼 활개를 치고 있다. 단지 늘어나는 동네 오 락실의 실태만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뉴미디어 사회가 도래하면서 각종 미디어를 통해 오락은 인류의 삶을 지배하는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 TV를 통해서 방송되는 많은 오락 프로그램들만 해도 그렇다. 주제도 없고, 의미도 없는 가십거리들을 쏟아내는 각종 오락 프로그램들이 오늘의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다. 인터넷 검색어의 상위에 랭크 되어 있는 단어들은 거의 대부분 이런 연예 오락 정보들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의 거의 대부분은 이런 정보들과 무관하지 않다. 도대체 이런 정보들이 그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주고 있기 에 이토록 열광하는 걸까?

나보다 좀 앞 선 시대를 살았던 우리의 선배들로부터 가끔씩 듣는 이야기가 있다. 저들이 대학에 다닐 땐 대학 캠퍼스 나 카페에 모여 토스토예프스키나 헤밍웨이의 소설에 나오는 한 구절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학과 지성에 대한 열정을 키우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네 대학 시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 역시 크로닌, 카잔차키스에 매료되어 도서관에 들어 앉아 그들의 작품들을 모조리 읽으면서 흡족해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요즘 대학생들은 그런 지성의 몸부 림을 벗어던져버린 지 오래다. 저들이 나누는 정보들은 그저 한 순간 흘려버릴 수밖에 없는 연예의 가십들 뿐....

도박공화국의 모습은 이런 현대 문화가 낳은 기형적 현상일 것이다. 특별히 그 기형의 잉태는 우리의 초중등학생들을 사로잡고 있는 컴퓨터 오락 게임이 아닐까 싶다. 사실 엄밀하게 보면 도박공화국의 현실은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하고 있다. 특별히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 등을 통해서 일찍부터 이런 오락의 현실에 노출됨으로써 그 상태가 점점 더 심각해 지는 것이다. 도박공화국의 현실은 “바다이야기”가 나오기 이전에 안방에서 컴퓨터 게임과 오락에 빠져 있는 우리 아이 들의 모습에서 이미 구현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문화적 기형의 확장으로 이 나라가 도박공화국이 되어버린 것 아니겠는가!

“바다이야기” 사건이 반복될 때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아이들의 현실이다.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 해서 한참 긍정적인 가르침을 받아 올바른 판단력과 이성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해야 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우리 아 이들이 현대 문화의 무한 공격에 변변한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정복당해 버린 이 불쌍한 모습들! 그래서 자신의 의지 와 상관없이 점점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이나 오락에 빠져가는 아이들!!! 그렇게 비참한 현실에 앉아 있는 우리 아이의 등을 바라볼 때마다 난 너무도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이것이 정녕 누구의 책임이란 말인가?

오늘 왜곡된 현대 문화의 노예가 되어버린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괴로워해야 하는 나의 모습을 생텍쥐페리는 이 해할 수 있을까? 프랑스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 당시 공군 조종사로 활동했던 문학가 생텍쥐페리는 <인 간의 대지>라는 한 단편에서 자신이 겪었던 한 경험을 소개한다. 그가 기차여행을 하던 도중 한 번은 자신의 고향을 방 문하고 싶어 3일 동안을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 기차의 삼등 칸에는 프랑스를 떠나 고국으로 돌아가는 폴란드 노동자들 백여 명이 타고 있었다. 나이 많은 노인으로부터 어린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이국땅에서의 고단한 노동 에 지쳐 정든 땅과 집, 고양이와 제라늄 화분 등을 모두 버리고 간단한 이불과 취사도구 몇 개만을 싸 들고 고국으로 돌 아가는 처량한 저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생텍쥐페리는 측은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때 그의 마음을 진정 으로 괴롭게 만든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자신의 앞에서 피곤에 지쳐 잠들어 있는 부부 옆에 누워서 함께 잠든 아이의 천진난만한 얼굴이었다. 먹지 못하고, 쉬지 못해 건강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작은 아이이지만 그 얼굴은 인간의 황금 열매가 틀림없다고 여기면서 생텍쥐페리는 그 아이가 ‘어린 모차르트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전설 속의 어린 왕자들과 그 아이가 무슨 차이가 있을까? 만일에 좋은 환경에 둘러싸여 보호받으며 교육받으면 이 아 이인들 모차르트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아이의 인생엔 분명히 아름다운 미래가 약속되어 있다. 그러나 그 아이를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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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싼 환경이 그걸 도와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괴롭다. 생텍쥐페리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배고픔도 아니고, 꼽추의 등도 아니고, 추함도 아니다. 그것은 그 사람들 각자에게 있는 살해된 모차르트 같은 것이다”(인간의 대지 마지막 구절에서).

그 아이와 우리 아이들과는 삶의 환경이 다르다. 그러나 “살해된 모차르트”로 살아가야만 하는 이 아이들의 환경은 무 관하지 않다. 생텍쥐페리가 말한 아이의 “모차르트”를 죽인 것은 가난과 배고픔과 같은 전근대적인 것이지만 우리 아이 들의 “모차르트”를 죽이고 있는 것은 탈근대적인 것이다. 어쨌건 이들을 둘러싼 삶의 환경들이 그들의 “모차르트”를 죽 이고 있다. 오락과 게임 등의 환경에 우리 아이들의 창조성과 천재성을 죽이고 사행성 오락에 함몰된 도박공화국의 시 민만을 만들어내고 있다. 가난과 배고픔은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지만 도대체 도박공화국을 만들어내야만 하 는 이 운명과도 같은 사회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가난의 운명은 벗어나려고 애 쓰면서 왜 도박과 같은 불합리한 운명은 벗어나려고 애쓰지 않는가? 그것이 인류 사회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된다고 저렇 게들 난리 법석을 치고 있는가? 그저 몇몇 사람들의 배만 부르게 해준 채 철저하게 우리 아이들의 “모차르트성”을 죽이 는 이 사행성 오락, 도박, 게임 등이 왜 이렇게 극성을 부리는가 말이다.

매스컴이나 저널 등과 같이 사회적 책임을 가진 공공기관들에서조차 생텍쥐페리와 같은 고통을 느끼는 주체들은 아무 도 없는 것 같다. 아니 애초에 저들에게는 그런 양심의 중추가 존재하지 않았었던 것 아닐까? 왜곡된 오락 문화를 바로 잡자는 외침은 왜 잠잠한 것일까? 이런 현실이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내가 소망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토스토예프스키를 읽고 인생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해졌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모두 스스로 가지고 있는 무 한한 잠재성을 발현시켜 “모차르트”와 같은 창조적인 인물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나의 이런 소망을 무 참히 짓밟고 있다. 누가 이 소박한 소망을 빼앗고 있는가?

“도박공화국을 만든 사람들, 당신들이 바로 그 찬탈자들이오. 제발 우리 사회에서 물러가 주시오. 우리 아이들의 ‘살해 된 모차르트’가 보이지 않는단 말이오. 더 이상 인류의 가능성을 살해하는 일은 하지 말아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반드 시 그 아이들을 선물로 주신 신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될 것이오. 그것이 두렵지도 않소?”

원문 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524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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