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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다문화소설에 나타난 가족과 이웃의 재발견 - 김려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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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남정*

목 차 1. 들어가는 글

2. 새로운 가족의 개념과 구성 3. 다문화사회와 공동체로서의 이웃 4. 나가는 글

<국문초록>

한국 다문화 소설은 ‘다양한’ 국적과 상황들에 처한 인물들을 통해 현장감 있는 다문화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 속 인물들이 시도하는 탈영토화는 종 국에는 약물중독, 범법, 살인이나 자살 등 극단적인 결말로 이어지며 대부분 재영 토화에 실패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따라서 한국 다문화소설의 기존 연구들 또한 이들의 재영토화 실패 원인 분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차이 에서 비롯되는 혼종성이나 경계성에 대한 연구가 그러하고, 디아스포라적 맥락에 서의 연구가 그러하며, 주체성과 타자성에 대한 연구들이 그러하다. 이 글은 이러 한 연구들이 그 자체로 이주민들의 ‘재영토화의 실패’를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지금까지 발간된 한국 다문화소설 역시 이주민들의 비극적인 서사가 중심이 된 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다문화사회의 일면을 볼 수 있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이처럼 비극적 결말로 점철된 한국 다문화 소설 속에서 유독 희망적 대안을 제시하는 김려령의 뺷완득이뺸와 손홍규의 뺷이슬 람 정육점뺸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희망을 암시하는 열린

* 창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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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을 추구하고 있으며, 성장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작 품 속에서 재현되고 있는 가족이나 이웃이라는 공동체 개념이 기존의 그것과 유사 한 듯하면서도 선명한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두 작품 속 에 나타나는 ‘가족’과 ‘이웃’의 형태나 관계, 그리고 그 역할에 대해 분석하는 것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다문화주의가 바람직하게 정착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 작은 제안이 될 것이다.

주제어 : 가족의 개념, 이웃의 역할, 전통적 개념, 대안적 공동체, 다문화가족, 다문화소설.

1. 들어가는 글

“오늘날 다문화주의는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1) 조너선 색스는 자유 주의와 다문화주의 사이에는 해결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며, 따라서 개인 의 권리와 집단의 권리는 동시에 충족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2) 지금까지 다문화 ‘주의’가 다문화 ‘사회’로 정착․지속되는 국가가 없다는 사실이 이 를 반증한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건국 이래 수많은 외세의 침입을 받아왔다는 사실 은 상식적으로 순혈민족일 수 없다는 명백한 배경임과 동시에 굳건한 민족 주의 의식을 가능케 하는 배경이 된다. 이러한 이중성은 다양한 목적으로 한국에 유입된 이주민들을 대하는 태도 및 정책에서도 드러난다. 오늘날 한 국 정부의 다문화 정책은 “표면적으로는 ‘사회적 통합(integration)’을 표방 하지만, 구체적으로 실행되는 정책들은 ‘동화(assimilation)’정책에 가깝”3) 다. 또한 한국의 다문화정책은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에 비해 검토가 충분하

1) 조너선 색스 지음, 뺷사회의 재창조뺸, 서대경 옮김, 말글빛냄, 2007, 8쪽.

2) 자유주의와 다문화주의에 대해서는 조너선 색스, 위의 책, 45~47쪽 참조.

3) 윤영옥, 「21세기 다문화 소설에 나타난 국민 개념의 재구성과 탈식민성」, 뺷한국문학이 론과 비평뺸 제56집,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2012, 3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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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은 채로 추진된 면이 없지 않고, 다문화정책이나 교육이 동화와 적응 위주라는 점은 이미 차이를 전제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더욱이 내재된 배타적 순혈주의 정서는 결국 한국에서의 다문화사회 정착이 실패할 수밖 에 없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4)

이러한 사실들은 다문화 소설5)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한국 다문화 소 설은 ‘다양한’ 국적과 상황들에 처한 인물들을 통해 현장감 있는 다문화사 회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 속 인물들이 시도하는 탈영토화는 종국에는 약물중독, 범법, 살인이나 자살 등 극단적인 결말로 이어지며 대 부분 재영토화에 실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기존 다문화소설 연 구는 대체적으로 이들의 재영토화 실패 원인 분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차이에서 비롯되는 혼종성이나 경계성에 대한 연구가 그 러하고, 디아스포라적 맥락에서의 연구가 그러하며, 주체성과 타자성에 대 한 연구들이 그러하다. 본고는 이러한 연구들이 그 자체로 이주민들의 ‘재 영토화의 실패’를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지금까지 발간된 한국 다문화소설 역시 이주민들의 비극적인 서사가 중 심이 된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다문화사회 의 일면을 볼 수 있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본고는 이처럼 비극적 결말로 점철된 한국 다문화 소설 속에서 유독 희망적 대안을 제시하는 김려령의

4) 한국 다문화정책의 실패 요인에 대한 분석은, 곽경숙, 「‘이슬람 정육정’을 통해 본 생태 학적 다문화사회」, 뺷현대문학이론연구뺸 제5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4, 28~30쪽과 강 영훈, 「보호와 억압, 다문화주의의 두 얼굴-다문화 소설에 나타난 민족공동체의 역설」, 뺷현대문학이론연구뺸 제62집, 2015. 56쪽 참조.

5) 다문화 소설의 정의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있다. 본고에서는 다양한 다문화 소설 의 개념을 종합하여 정리한 최남건의 의견을 반영하기로 한다. “한국에 새로운 구성원 으로 유입된 이주 노동자, 결혼이주여성, 탈북자, 혼혈인, 유학생, 전문직업인 등 정주민 과 대응되는 이주민을 대상으로 하고, 한국을 서사 공간으로 설정하여 재현하거나 한국 외의 공간에서 이주자로서 살아가는 한국인을 형상화 한 서사 문학” - 최남건, 「2000년 대 한국 다문화소설연구-이주민 재현 양상과 문학적 지향성을 중심으로」, 한국외국어 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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뺷완득이뺸6)와 손홍규의 뺷이슬람 정육점뺸7)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두 작품 은 공통적으로 희망을 암시하는 열린 결말을 추구하고 있으며, 성장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연구들이 청소년문학 또는 성장소설이 라는 범주에서 연구되기도 했다.8) 특히 영화로 각색 되었던9) 뺷완득이뺸의 경우에는 다양한 영화적 요소와 장면들도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있다.10) 영화가 원작을 대체적으로 수용하고 있으므로 내용이나 주제적인 측면에 서 소설과 크게 다를 바는 없다. 다문화주의 관점에서 진행된 연구들 역시 마찬가지다.11)말하자면 성장, 차이와 차별, 타자성과 주체성 등에 연구 목 적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들 작품은 미시적 인 연구 방법으로 다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음 식’의 의미를 분석한 연구라든가12) 교육적․언어학적 측면에서의 연구13)

6) 김려령, 뺷완득이뺸, 창비, 2008.

7) 손흥규, 뺷이슬람 정육점뺸, 문학과지성사, 2010.

8) 김화선, 「청소년 문학에 나타난 ‘성장’의 문제 : 김려령의 <완득이>를 중심으로」, 뺷아동 청소년문학연구뺸 3집, 한국아동청소년문학학회, 2008; 오홍진, 「소설의 재미와 성장의 교훈」, 뺷어린이책이야기뺸 3집, 아동문학이론과창작학회, 2008; 이미림, 「<이슬람 정육 점>에 나타난 다문화적 사유와 타자지향적 응시」, 뺷한민족어문학뺸 64집, 한민족어문학 회, 2013; 하웅용 , 김예성 「‘완득이’에 함의된 다문화가정 청소년에 관한 담론 연구」, 뺷인격교육뺸 10집, 한국인격교육학회, 2019. 등을 들 수 있다.

9) 이한 감독, 유아인․김윤식 주연, 2011년 10월 20일 개봉.

10) 이도균, 「한국영화 속 다문화 가정의 재현 방식에 관한 연구 - 영화 <완득이>를 중심 으로」, 뺷예술과 미디어뺸 14집, 한국영상미디어협회, 2015; 이상란, 「영화 <완득이>에 나타난 그림자 인식과 승화」 48호, 뺷드라마연구뺸, 한국드라마학회, 2016; 황영미, 「<완 득이>의 서술전략과 영화화 연구」, 뺷돈암어문학뺸 24집, 돈암어문학회, 2011. 등을 들 수 있다.

11) 정선주, 「소설 뺷완득이뺸를 통해 본 한국사회의 다문화 판타지 고찰: 지젝의 이데올로기 론을 중심으로」, 뺷다문화교육연구뺸 7집, 한국다문화교육학회, 2014; 이영아, 「<완득이>

에 나타난 다문화 사회에서의 ‘차이’ 형상화 연구」, 뺷동아시아문화연구뺸 62집, 한양대학 교동아시아문화연구소, 2015; 허정, 「<완득이>를 통해 본 한국다문화주의」, 뺷다문화콘 텐츠연구뺸 12집, 중앙대학교 문화콘텐츠기술연구원, 2012. 등을 들 수 있다.

12) 김남석, 「<완득이>에 나타난 ‘음식’의 의미와 문화적 통합에 관한 연구」, 뺷한국어문교 육뺸 32집, 고려대학교한국어문교육연구소, 2020; 우남희, 「영화 <완득이>에 사용된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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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그러하다. 이러한 경향은 다문화소설의 연구 방향과 목적이 더욱 세분화 될 필요성을 시사한다.

본고에서 이 두 작품에 주목한 또 다른 이유는 이들 작품 속에서 재현되 고 있는 가족이나 이웃이라는 공동체 개념이 기존의 그것과 유사한 듯하면 서도 선명한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가족’이라 하면 부모와 자녀, 혹은 친인척 등의 직계로 구성되는 집단을 떠올리게 마 련이다. 또한 ‘이웃’을 떠올릴 때도 물리적으로 이웃한 집단을 먼저 떠올린 다. 이 두 작품 속의 가족과 이웃 역시 대체적으로 그러한 개념들을 내포한 다. 하지만 이들 작품에 나타나는 가족과 이웃은 보편적인 구성 방식과 형 태를 벗어나고 있으면서도 그 관계나 역할을 ‘보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개념으로의 변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가족 과 이웃의 ‘형태’가 ‘관계’ 중심으로 변하고 있으며, 또한 그 ‘관계’나 ‘역할’

마저도 해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작품 속에 나타나는 ‘가족’과

‘이웃’의 형태나 관계, 그리고 그 역할에 대해 분석하는 것은 급격하게 진행 되고 있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다문화주의가 바람직하게 정착되기 위한 방 향을 제시하는 작은 제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그리되 현실을 넘 어서는 모색을 하는 것이 소설의 본령”14)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고에서 는 이 두 작품에 나타난 가족과 이웃의 분석을 통해 다문화사회가 지향해 야 할 가족의 의미와 이웃의 긍정적인 역할을 제시하면서, 그 새로운 공동 체 개념에 연대의식으로서의 ‘우리’를 제안해 보고자 한다.

핍과 치유로서의 음식」, 뺷인문사회과학연구뺸 20집, 부경대학교인문사회과학연구소, 2019.

13) 강서희, 「동사성 분석을 통한 청소년 주체의 성장 양상 연구」, 뺷아동청소년문학연구뺸 22집, 한국아동청소년문학학회, 2018; 임지연, 「공감개념의 확장과 다문화적 공감서사 -<이슬람 정육점>을 중심으로」, 뺷문학치료연구뺸 27집, 한국문학치료학회, 2018; 정은 주, 「다문화 성장소설을 통한 도덕 교육의 가능성」, 뺷학습자중심교과교육연구뺸 20집, 학습자중심교과교육학회, 2020.

14) 우한용, 「21세기 한국사회의 다양성과 소설적 전망」, 뺷현대소설연구뺸 제40권, 한국현대 소설학회, 200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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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새로운 가족의 개념과 구성

2.1. 새로운 가족의 탄생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모든 사회에는 전통적이고 표준적인 가족 형태가 존재”15)했다. 그렇지만 가족의 개념을 정의하는 일은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다. 국립국어원은 ‘가족’의 개념을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 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16)으로 정의하면서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는 사항을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여성가족 부에서 5년 주기로 진행하는 ‘가족실태조사’나 통계청에서 시행하는 ‘인구 주택총조사’ 등에서의 ‘가족’은 ‘가구(家口)’의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실적으로 주거 및 생계를 같이 하는 사람의 집단”17)을 가족 범위로 설정하기 때문이다.

다변화된 오늘날의 사회에서 이러한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은 이제 그 의 미를 잃어가고 있다. 우선 혼인으로 맺어지던 과거의 ‘부부’라는 형태가 다 양하게 변화했으며, “주거 및 생계를 같이 하는”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동 물인 경우에도 ‘가족’이란 단어를 쓰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가족이란,

“혈연이나 혼인 그리고 가족으로서의 정체성 및 공동체 의식 등에 주목하 는 개념”18)으로 보거나, 애초부터 “결혼이나 혈연에 근거하기보다는 현재 누구와 어떠한 관계로 상호작용을 하느냐에 초점을 두고, 그들의 실제 생활 을 공유하는 공동체”19)로 보기도 한다. 또한 가족은 “정서적 유대와 생활의 안정을 함께 만들어 간다는 목표를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이며, 이 공동체 내에서 각자는 나름의 다양한 역할들을 수행하고, 그 역할 수행의

15) 조너선 색스, 앞의 책, 422쪽.

16)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View.do. (검색 일 2020.6.17.)

17) 국립국어원, 위의 사이트 .(검색일 2020.6.17.)

18) 이여봉, 뺷가족 안의 사회, 사회 안의 가족뺸, 양서원, 2006, 25쪽.

19) 유영주 외, 뺷변화하는 사회의 가족학뺸, 교문사, 2010,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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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로 유지․계승”20)되며, “혈연이든 법이든 정서적이든 가족은 가족 정 체성을 공유하는 집단”21)을 의미하기에 이르렀다. 정리하자면, 현대 사회 에서 ‘가족’은 그 형태보다는 관계나 역할에 의미를 두는 개념으로 변했다 는 것이다.

현대 사회, 특히 다문화적 사회에서 가족의 개념을 정리하는 데 있어 가 장 중요한 요소는 가족 구성의 형태나 관계에 대한 조항이다. “주로”라는 표현이 포함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부부 중심’으로 가족 개념을 정의한다는 것은 다양해진 가족의 형태와 관계에 부응할 수 없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 할 수 있다. ‘혼인’을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는 일”22)로 정의하는 일은 더욱 그러하다. 보편혼 규범이 지배적이었던 한국 사회는 그러나 최근까지 급격한 인구변동과 사회 변화를 겪으며 ‘혼인’의 형태 역시 다양하게 바꿔 놓았다. 법적인 절차를 생략하고 생활만 함께 유지하는 동거 부부나, 한국 에서는 여전히 법적 허용이 되지 않는 동성 부부가 그러하다. 이처럼 제도 권의 범위를 벗어난 부부의 형태는 일단의 가족 개념으로 인정하지 않음에 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가족’을 구성하고 살아간다. 이러한 사실은 더 이상 가족의 개념을 ‘혼인으로 맺어진 부부 중심’으로 한정지을 수 없음을 암시한다.

비혼(非婚) 역시 가족 개념의 형성에 있어 문제적 요소로 작용한다. 기존 의 가족 개념이 혼인을 통한 부부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비 혼은 애초에 가족을 구성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국 사회의 비혼률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통계청에서 2020년 3월 발표한 ≪KOSTAT 통계플러스≫에 따르면, “혼인 생애를 대체로 마무리

20) 이기숙 외, 뺷가족과 문화뺸, 창지사, 2014, 12쪽.

21) 박산향, 「<이슬람 정육점>으로 본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 뺷인문사회과학연구뺸 제17 권, 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2016, 48쪽.

2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 page Size=10&searchKeyword=%ED%98%BC%EC%9D%B8 (검색일 202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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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974년 출생 여성의 경우 40세까지 비혼 상태로 남아 있는 비율이 이미 12.1%”에 이르며, “2012∼2014년 기간의 연령별 혼인 이행 패턴이 향후에 도 지속될 경우 40세 기준 생애 비혼 여성의 비율은 18∼19% 수준까지 높 아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23)

뿐만 아니라 도시중심화와 성비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되었 던 ‘국제결혼’의 여파와 통신과 교통의 발달이 불러온 세계화로 인해 다문 화 가족24)이 증가했고, 이혼 및 원거리 주거로 인한 한부모․조부모 가족 도 생겨났다. 이처럼 쉽고 간편해진 오늘날의 가족의 구성과 해체를 가족 제도의 위기로 보기도 하고 가족 제도의 진보로 보기도 한다.25) 위기론이 든 진보론이든 현대사회는 “가족의 ‘형태’보다는 가족의 ‘관계’를 더 중요시 하는 특성을 지니며, 어떤 가족 형태를 취하더라도 그 속에는 함께 살아가 는 일상, 함께하려는 의지와 신념이 담긴 어떤 것, 즉 문화가 있다”26)는 사 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를 가졌으면서도 ‘형태’보다는

‘관계’ 중심의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그것이 가족 구성원 내에서, 혹은 사회 공동체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 바 로 김려령의 뺷완득이뺸와 손홍규의 뺷이슬람 정육점뺸이라 할 수 있다.

뺷완득이뺸는 난쟁이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싸움꾼 ‘완득이’가 주변 사람들 과의 갈등과 화해를 거듭하면서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완득이와 아버지, 그리고 베트남 출신의

23) 통계청, 「KOSTAT 통계플러스」 2020년 봄호. http://www.kostat.go.kr/portal/korea/

kor_nw/1/1/index.board?bmode=read&aSeq=381378 (검색일 2020.6.22.)

24) 다문화 가족이란 결혼이민자 혹은 귀화 허가를 받은 자와 출생 시부터 대한민국 국적 을 취득한 자로 이루어진 가족을 말한다. - 국가법령정보센터, http://www.law.go.kr.

다문화가족지원법 제2조 참조. (검색일 2020.7.1.)

25) 가족의 위기론과 진보론에 대한 설명은, 전주희, 「가족의 위기 시대, 가족 이데올로기의 재구성-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중심으로」, 뺷문화과학뺸 제92호, 문화과학사, 2017.

참조.

26) 이기숙 외, 앞의 책, 1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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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다. 전통적인 혈연 중심의 가족 형태를 띠고 있지만, 여기에는 어머 니가 베트남 출신이라는 점에서 다문화 가족의 형태를 포괄하고 있으며, 어 머니가 집을 나가 가족이 해체된 상태이므로 ‘한부모가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처럼 두세 겹 이상 중첩된 가족 형태는 오늘날의 새로운 가족 구성 의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이 가족에 대안적인 개 념을 제시하는 가족 구성원이 바로 ‘민구 삼촌’이다.

‘민구 삼촌’은 “십여 년 전, 아버지가 새로 생긴 카바레를 홍보하기 위해 거리에서 명함을 돌릴 때”, “아무리 돌려보내도 아버지 춤을 흉내 내며 따 라다”니던 “정신 능력 발달이 늦어진 채 어른이 된 사람”이다. 그에게 붙여 진 호칭인 ‘삼촌’은 혈연관계로 맺어진 친인척 관계로서의 삼촌이 아니라 보통 명사로서의 삼촌이다. 굳이 가족으로 범주화하자면 동거 가족인 셈이 지만 가족은 “나름의 다양한 역할들을 수행”한다고 보았을 때 민구 삼촌은 완득이의 형이며, 아버지의 동생 역할을 부족함 없이 해낸다.

1) 물건의 반 이상을 바닥에 버리다시피 떨어뜨렸다고 한다. 그런데 떨어진 물건보다 삼촌이 문제였다. 눈이 찢기고 다리에 멍도 들었다. 아버지 대신 삼촌이 다 맞은 모양이다. 그래도 삼촌은 웃는다. 친형도 아니면서……27)

2) 아버지는 다시 한 번 내 뺨을 내려쳤다. 예상했고 피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그런 춤을 춰서, 세상이 더 받아주지 않은 것 같은데요.”

짝! 짝! 짝! 볼이 얼얼했다. 삼촌이 나 대신 울었다.28)

인용문 1)의 상황은 아버지와 민구 삼촌이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다가 건 달들한테 당한 일을 묘사한 글이다. “가만히 있는데 이 미친 세상이 왜 자 꾸 건드리는지 알 수”는 없지만, 비슷한 상황은 작품 내에서 반복되고, 그때

27) 김려령, 앞의 책, 20~21쪽.

28) 김려령, 위의 책, 79쪽.

(10)

마다 완득이는 아버지를 무시하는 ‘어른’들에게 온몸을 던져 싸움꾼이 된다.

싸움이라면 자신 있는 완득이지만 싸우는 것인지 상대를 업어주는 것인지 구분도 못 하는 ‘민구 삼촌’과, 아무리 가라고 해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 는 아버지 때문에 수세에 몰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버지가 상대에게 달 려들기도 하는데, 아들이 맞는 걸 보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인 듯하지만 도와 주려고 달려드는 게 아니라 대신 맞으려고 달려드는 것이다. 누군가를 대신 해 자기 자신을 내던질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이 혈연으로 맺어진 부모자식 사이라 가능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용문 1)의 상황처럼 “친 형도 아니면서” 살이 찢어지고 멍들 정도로 대신 맞아줄 수 있는 ‘민구 삼 촌’의 계산 없는 행동은 혈연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끈끈한 ‘가족’에 다름 아니다.

인용문 2)는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 상황을 묘사한 글이다. 여기서 ‘민구 삼촌’은 갈등에 개입할 수도 방관할 수도 없이 발만 동동 구르며 가슴 아파 하는 제3의 가족, 즉 어머니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민구삼촌의 어머니 같 은 역할은 완득이를 보살피는 데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분명한 남이지만 함 께 사는 것도 아닌 것도 아니고, 삼촌이었다가 형이었다가 때로는 엄마도 되는 ‘민구 삼촌’의 이 같은 특이한 가족의 존재는 손흥규의 뺷이슬람 정육 점뺸에서는 ‘안나 아주머니’로 중첩 된다.

2.2. 가족의 중심, 어머니

뺷이슬람 정육점뺸은 온몸에 ‘기원’을 알 수 없는 흉터들을 가진 ‘나’와, 그 런 나를 입양한 터키인 의붓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세계를 입양하기로 마음먹”게 되기까지의 성장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의 가족 구성은 시작부터가 신선하다. 의붓아버지인 하산 아저씨는 한국전쟁 때 참전 용사 로 왔다가 그대로 한국에 살게 된 터키인이다. 따지고 보자면 하산 아저씨 는 형태야 어떻든 ‘이주민’이다. 그런 이주민이 정주민인 ‘나’를 입양한 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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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입양 가족’이자 ‘한부모가족’이면서 동시에 ‘다문화 가족’이지만 그 구성 은 새롭다. 이 둘을 연결하는 고리는 오직 몸에 새겨진 비슷하거나 혹은 같 은 모양의 ‘흉터’일 뿐이다. 하지만 입양이라는 것이 비슷한 흉터나 상처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생명체를 입양 한다는 것은 그 생명체의 양육에 대한 책임이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오 늘날의 입양기준으로 보자면 하산 아저씨는 ‘나’를 입양할 자격이 못 된다.

그런데 이 부족한 자격요건을 채워주는 인물이 바로 ‘안나 아주머니’다.

3) 안나 아주머니는 (중략) 시들어 말라비틀어진 푸성귀조차 몇 번 주무르면 때깔 고운 나물 반찬으로 식탁에 올랐다. (중략) 손바닥으로 뜨겁게 달아오 른 이마를 만져주면 열이 내렸고 배탈이 났을 때도 그 손이 한번 왔다 가면 냉증이 가셨다. 모스크가 있는 가파른 언덕에서 넘어져 무릎이 까지더라도 안나 아주머니의 입김만 쏘이면 반쯤은 아물었다.29)

작품 전반적으로 안나 아주머니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마치 엄마가 아 들을 보살피는 태도와 닮았다. ‘나’ 역시 안나 아주머니를 “미워할 수 있으 려면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할” 정도로 좋아한다. 공교롭게도 안나 아주 머니 역시 남편의 폭행으로 인한 흉터가 온몸에 표식처럼 있는 인물이다.

터키인 의붓아버지 하산 아저씨와 “기억의 돌팔매질은 고아원 담장을 넘어 가지 못”하는 ‘나’, 그리고 “가이아 같은 여인” 안나 아주머니는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아온 남이지만, “정서적 유대와 생활의 안정을 함께 만들 어 간다는 목표를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30)즉 가족의 개념에 부 합하는 ‘가족’이다. 각자 다른 과거가 흔적처럼 흉터로 남아 공통의 DNA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가족의 개념을 기존의 혈연 중심에서 ‘정서적 유대’와 그 ‘역할’

29) 손홍규, 앞의 책, 11쪽.

30) 이기숙 외, 앞의 책 12쪽.

(12)

중심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보면, 공통적으로 ‘어머니’의 존재가 새삼 중요 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장류 동물은 “암컷이 새끼를 배면 수컷은 암 컷의 임신과정을 살피고 보호하면서 가족공동체를 이루게” 되고, “새끼의 출산이 이루어진 이후 암컷에게는 모성적 본능이 나타나며, 수컷은 암컷과 새끼를 보호하고 먹이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31)그러나 새끼를 낳 고 키워서 독립을 하면 가족이 해체되는 영장류 동물 집단과는 달리 인간 은 “자식의 성장 및 독립 이후에도 가족성원들 간 지속적인 결속”32)을 유 지한다. 이러한 지속적 유대는 인간의 성장 기간과도 관련이 있고, 오랜 직 립보행으로 골반이 작게 진화된 여성이 다른 동물들보다 미숙아를 출산하 게 된 것과도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인간의 영아는 어머니에게 오랜 기간 의 존할 수밖에 없고, 이와 같은 의존관계는 모자 간 강한 정서적 유대를 형성 하게 된다.33)다시 말해 인간에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정서적으로 가장 평 화롭게 의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중심이라 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이 두 작품은 가족 형성에 있어 ‘어머니’

의 존재가 곧 가족 그 자체임을 알 수 있는 정황들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정황 속에 나타난 ‘어머니’의 역할은 기존의 생물학적, 진화학적인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남과 동시에 초월한다.

완득이는 담임 ‘똥주’로 인해 “등본에도 없”던 어머니의 존재를 알게 된 다. 그렇게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완득이의 어머니인 ‘그분’은 “한 번 도 본 적 없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내 가슴이 그렇게” 뛰는 존재다. ‘그분’

이 다녀가면 방에서는 전에 맡아보지 못했던 냄새가 나는 듯하고, 완득이는

“이런 게 어머니 냄새라는 걸까”하고 생각한다.

31) 이용수, 뺷조화로운 가족공동체에 관한 연구: 홍익인간 이상의 현대적 구현을 중심으로뺸, 국제뇌교육종합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7, 37쪽.

32) 이용수, 위의 글, 37쪽.

33) 인간의 ‘모자 간 정서적 유대’ 형성에 대하여는, 이용수, 앞의 글 참조.

(13)

4) 옥상에 빨래가 가득하다. 어머니가 다녀간 모양이다. (중략)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 꽤 자주 온다. 그리고 십자가 대신 이제 ‘神(신)나는 댄스’ 간판 이 세워진 교습소 옆 쉼터에 자주 간다. (중략) 어머니 요즘 화장하신다.

처음 봤을 때보다 많이 예뻐졌다.34)

어머니의 존재가 등장함으로써 드디어 완전체가 되는 완득이네 가족이, 그렇다고 보편적인 가족으로 재결합되는 것이 아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으로 온 결혼이주여성들은 대부분 자본의 논리로 취급당하곤 한다. 한 국 남성은 자본가의 입장이 되고, 결혼이주여성은 노동자의 입장이 된다.

가족을 형성할 동등한 배우자로서의 대우는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힘들다.

대부분 낙후된 국가에서 건너온 결혼이주여성들 역시 그러한 대우를 감수 하고자 하지만 언제나 치밀한 자본주의의 논리에 희생당한다. 뺷완득이뺸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대다수의 결혼이주여성이 겪는 편견과 차별로 고통 받 는 것은 다르지 않지만 어떻게 가족과 화합하고 어떤 관계를 만들어내느냐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것이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노력과 배려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 특히 그것이 쉽지는 않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점을 적절하게 제안하고 있다.

한편 뺷이슬람 정육점뺸의 하산 아저씨는 “겁을 준적도 없고 불량스럽게 대한 적도 없고 품에 무기를 숨긴 것도 아닌데”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한다.

“자신들과 다르다는 사실”과 콧수염을 길러서, 눈이 더 깊고 그윽”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나’ 역시 “하산 아저씨를 처음 보았을 때” 해외로 입양되는 줄 알고 두려워서 “내내 도망칠 궁리만 했다.” 그러나 하산 아저씨가 콜레 라에 걸린 돼지고기를 판다는 모함에 빠졌을 때, ‘나’는 그를 위해 사람들 앞에서 생 돼지고기 살점을 “발칙하게 예의 바른 태도로” “씹고 또 씹”어 보인다. 그 일로 ‘나’는 “직장에 든 것까지” 다 토해내고, 아팠다.

34) 김려령, 앞의 책, 204~205쪽.

(14)

5) 지난밤 나는 하산 아저씨의 품에 안겨 바보처럼 울었다. 나는 내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엄마, 라니. 바보처럼 엄마, 하고 울다니.

엄마를 그리워한 적도, 여태 그런 식으로 울어본 적도 없었다.35)

혹독한 통과의례를 통하고서 하산 아저씨는 ‘나’에게 아버지이자 ‘엄마’가 된다. 이처럼 독특한 관계가 형성된 이 가족은 하산 아저씨의 임종 앞에서 다문화가족이 지향해야 할 ‘가족의 의미’가 더욱 뚜렷해진다. “나는 내 몸속 으로 의붓아버지의 피가 흘러들어온 걸 느”끼며 “훗날 내 자식들에게 나의 피가 아닌 의붓아버지의 피를 물려주리라” 생각하는데, 여기서 ‘의붓아버지 의 피’는 민족과 국가와 문화와 종교 따위의 서로 다른 그 모든 것들을 넘어 서는 초국적 피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나’가 의붓아버지를 대신해 이슬람 사원을 찾아서, 어설픈 흉내 내기보다 한국식으로 큰절을 하 는 행위는 다문화주의가 본래 의도한 화합과 공존 및 다양성의 인정을 상 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위라 할 수 있다. “통합 속의 다양성은 다문화주의와 마찬가지로 차이와 존엄을 소중히 여”36)기기 때문이다.

“미치지 않고서야”37)미워할 수 없고, “내 몸이 미쳐서 움직”38)이게 하는 존재가 바로 어머니이며, 어머니는 곧 가족의 중심이다. 여기서 중심이란

‘핵심’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관계와 관계를 연결하는 중심이라는 의미다.

형태적 측면에서의 ‘어머니’는 출생과 양육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가족의 개념에서 형태적인 측면을 배제하고 보면, 어머니의 역할은 끊임없이 미끄 러지는 기표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다. 또한 반드시 핏줄로 연결될 이유도, 여성일 이유도, 한 집에 함께 거주할 이유도 없음을 보여주며, 그러한 가족 구성이 사회적․문화적으로 문제되지 않음을 긍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35) 손홍규, 앞의 책, 110쪽.

36) 조너선 색스, 앞의 책, 54쪽.

37) 손흥규, 앞의 책, 9쪽.

38) 김려령, 앞의 책, 131쪽.

(15)

뺷완득이뺸에서의 가족은 혼인으로 맺어진 부부 중심이라는 전통적 가족 개념에 부응하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혈연도, 입양도 아닌 형태로 개입된

‘민구 삼촌’의 존재는 기존의 가족 개념 자체를 해체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현대 사회의 가족 개념이 형태보다는 정서적 관계에 집중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게 된다. 반면 뺷이슬람 정육점뺸에서의 가족은 입양이라는 방식을 통 하기는 하지만, 애초에 혼인으로 맺어지지도, 부부가 중심이지도 않은 가족 을 제안하고 있다. 뺷완득이뺸가 가족이 어떻게 형성되느냐 보다 어떤 관계여 야 하는지를 제안하고 있다면 뺷이슬람 정육점뺸은 가족이 서로에게 어떤 역 할을 해야 하는가를 제안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다문화사회와 공동체로서의 이웃

3.1. 경계와 언어

오늘날 도시는 “낯선 사람들이 만나고, 서로 가까운 곳에 머무르며 서로 에게 계속 낯선 이인 채로 오랫동안 상호작용하는 곳”으로 규정된다.39)이 에 ‘서로 가까운 곳에 머무르는’ 관계를 ‘이웃’이라 한다. 이러한 ‘이웃’이라 는 개념은 물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사회적 거리의 인접성도 포함한다. 그 러나 바우만은 도시 환경의 목소리가 복수화되고 문화적으로도 다양해짐 에 따라 분리주의적 충동이 지속적으로 촉진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40) 실제로 현대 생활에서 이웃 간에 크고 작은 분쟁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 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웃’이라는 것이 노동력 교환이나 길흉사를 서로 도우며 사회적 협력관계로서 형성되었던 전통 사회와는 그 기능과 의 미가 매우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요인으로는 일차적으로 경계구간이 ‘담’이 ‘벽’이 된 주거

39) 지그문트 바우만, 뺷리퀴드 러브뺸, 권태우․조형준 옮김, 새물결출판, 2013, 237쪽.

40) 지그문트 바우만, 위의 책, 248쪽.

(16)

구조에 의한 것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페 르시아의 자민족중심주의에 대해 언급하면서, 인접한 이웃들을 가장 존경 하며, 지역이 멀어질수록 존경심도 줄어든다고 했다.41) 가장 인접한 곳을

‘담’으로 경계 지은 전통 사회에서의 이웃은 서로의 주거 및 생활에 참견과 공유가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는 사생활 침해라는 법적 제재를 받는 일이 되었다. 인접성과 상관없이 단지 ‘벽’만 가로막혔을 뿐인 오늘날의 ‘이웃’은 이웃한 집의 주거 및 생활에 대해 알지도 못할뿐더러 관심과 참견을 거부 하기에 이르렀다.

바우만과 헤르도토스가 언급한 분리주의와 자민족중심주의는 다문화사 회에서 더욱 명확한 문제점을 드러낸다. 전지구적 인구 이동은 다양한 민족 과 문화가 공존할 수 있는 조건으로 작용했지만, 이러한 다문화주의는 한편 으로 분리주의와 자민족중심주의와는 지극히 대립적인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론적으로는 다양성 수용과 공존에 대한 효과와 전망에 대해 수긍하는 편이지만, 실제로 편견과 차별의 행태는 세계 곳곳에서 끊임 없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이웃’에 대한 인식은 다문화사회 에서 더욱 가혹한 형태로 나타난다. 관심의 거부뿐만 아니라 편견까지 작용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이라는 것은 떨어져 사는 가족보다도 단합과 연 대의 조건을 더 많이 갖추고 있고 또 의향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 다. 따라서 전통사회에서 추구했던 ‘이웃’의 개념과 역할이 오늘날 그 형태 만 조금씩 변형되어 활용되는 예42)가 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현대 사회에서 ‘이웃’ 공동체 개념이 전통사회의 그것 과 잘 연계될 수 있다면 그 역할과 가치를 새롭게 재발견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다문화사회라면 더욱 그러하다.

41) 이-푸 투안, 뺷토포필리아-환경 지각, 태도, 가치의 연구뺸, 이옥진 옮김, 에코리브르, 2011, 60쪽.

42) 반상회나 입주자모임, 육아품앗이, 학습두레 등등을 들 수 있다.

(17)

뺷이슬람 정육점뺸은 애초부터 새로운 이웃 개념이 성립되어 있다. 우선 한국전쟁에 참여했다가 한국에 눌러앉은 터키인 하산 아저씨가 그러하다.

아주 오래 전 비행기 조종사였다는 ‘야모스 아저씨’ 역시 내전 중이던 그리 스에서 실수로 마을사람들과 친척들을 쏘아 죽이고는 그 죄책감에 도망치 듯 한국전쟁에 자원해서 왔다가 살아남은 그리스인이다. “충북식당, 강원식 당, 제주식당, 호남식당”으로의 변신을 거듭하다가 “충남식당”을 하게 된

‘안나 아주머니’는 본명뿐만 아니라 진짜 고향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방인이며, 전쟁 후유증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대머리 아저 씨’ 역시 여섯 식구가 퍼즐처럼 끼어 맞춰 살던, 좁디좁은 방에 새롭게 이사 를 들어옴으로써 추가된 이방인이다.

이들이 사는 동네는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있는 달동네라는 묘사를 통 해 이태원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태원은 “지리적으로 한국에 있지만 다양한 이질적인 문화가 결합되어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경계공간”43)이며 경계인들의 공간이다. 경계공간이란 “공간으로서의 특유의 정체성을 지니 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가변적 성향을 지니는”44) 곳을 말하며, 또한 그러한 사람을 경계인이라 한다.

따라서 뺷이슬람 정육점뺸은 경계공간에 살고 있는 경계인들의 이야기이 며, 물리적으로는 인접하지만 정서적․문화적으로는 절대 이웃할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경계’를 구분하고 이쪽과 저쪽으로 선 을 긋는 기준은 유사성의 논리에서 기인한다.

6) 유사성이 어떤 코드와도 상관없다 하더라도, 그 닮음이 제작적인가 혹은 생산된 것인가에 따라 두 형태를 구분할 수 있다. 한 사물의 요소 사이의 관계들이 다른 사물의 요소들 사이의 관계들로 직접 넘어가게 되면, 그 닮

43) 곽경숙, 「‘이슬람 정육정’을 통해 본 생태학적 다문화사회」, 뺷현대문학이론연구뺸 제58 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4. 33쪽.

44) 곽경숙, 위의 글, 33쪽.

(18)

음은 제작적이다. 이 경우 두 번째 사물은 첫 번째 사물의 이미지가 될 것 이다. (중략) 유사성은 구상적이고, 닮음이란 구상의 첫 번째 원칙이다. 반 대로 닮음이 자신이 재생하도록 되어 있는 관계들과는 전혀 다른 관계들의 결과처럼 느닷없이 나타날 때, 그 닮음은 생산된 것이다.45)

다시 말해 우리가 유사성의 논리로 긋는 경계선은 자연발생적으로 생산 된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제작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제작의 기준은 종 교, 문화 등등의 사회적인 유사성의 영향도 크지만 단순하게 피부색이나 언 어 등이 잣대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뺷이슬람 정육점뺸의 인 물들은 하나같이 독특한 언어, 특히 보편성을 벗어난 언어 방식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경계인이 된다. 언어사회학적 관점에서 “경계인 의 경계언어는 타자의 언어이자 이방인의 언어”46)이기 때문이다.

뺷이슬람 정육점뺸에서 소설가가 꿈인 ‘유정’은 수다쟁이에 말더듬인데다 가 동물과 대화를 하며, ‘맹랑한 녀석’은 상황에 관계없이 “죽을 건데 뭐”라 는 말을 반복적으로 쓰는 ‘나’의 이웃 사람들이다. 술주정뱅이 ‘열쇠장이 영 감’은 대상이 무엇이건 “(분홍) 코끼리가 지나가고 있다”고 하고, ‘대머리 아저씨’는 밤만 되면 온 동네가 떠들썩하도록 군가를 불러댄다. 쌀집 ‘김씨’

는 “세상 모든 개를 이 동네로 불러들일 수 있을” 정도의 “걸어 다니는 비 속어사전”이며, 그리스인 야모스 아저씨는 입만 열었다하면 거짓말이 줄줄 흘러나오는 사람이다.

이처럼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각기 다른 언어 방식을 사용하는데 도 불구하고 ‘가족 같은 이웃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 게도 바로 이 언어 방식에서 기인한다. 인간의 소통에 언어가 기본 전제임 을 감안할 때 이는 아주 특이할 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문화사회에서의 대부분의 갈등과 편견이 소통에서 기인하며, 그 소통의 중심에 언어가 차지

45) 질 들뢰즈, 뺷감각의 논리뺸, 하태환 옮김, 민음사, 2008, 133쪽.

46) 이미림, 뺷21세기 한국소설의 다문화와 이방인들뺸, 푸른사상사, 2014, 184~185쪽.

(19)

하는 중요성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품 속 인물들에게는 “다의 미적 언어뿐만 아니라 몸짓, 표정, 춤 같은 비기표적 기호론에 기반 하는 피진이 표현되는데, 이러한 경계언어를 통해 주변부 혹은 타자라는 연대성 과 동질감을 서로 파악하”47)기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언어 방식 으로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다문화 이웃의 연대 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제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2. 이웃의 재탄생

이웃과의 연대 가능성을 보여주는 징조는 뺷완득이뺸에서는 뺷이슬람 정육 점뺸과 조금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이웃집 옥탑방에 사는 담임선생 ‘똥주’는 걸핏하면 온 동네에 다 들릴 정도의 큰소리로 완득이를 불러낸다. 그때마다 등장하는 이가 바로 ‘앞집 아저씨’다.

7) “어떤 씨불놈이 밤만 되면 완득인지 만득인지를 찾고 지랄이야! 야이 씨불 놈들아! 니들은 전화도 없냐!”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둔 앞집 아저씨가 창문으로 머리를 쑥 빼고 소리쳤다.

깜깜한 밤을 가르는 욕설이었다.

완득이네 집에 전화 없다잖아, 이 양반아!” 똥주는 크게 소리치고 얼른 집으로 들어갔다.48)

전화로 해도 될 일임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완득이를 불러내는 일은 작품 전반에 걸쳐 반복되고, 그때마다 앞집 아저씨의 ‘씨불놈아’도 함께 반 복된다. 게다가 ‘똥주’도 꼬박꼬박 말대답을 해준다. “어떤 씨불놈이 야밤에 몽키 타령이야!”하면 똥주는 “완득이 아버지, 몽키 없어서 일을 못 나갔다 잖아, 이 양반아!”로 대응하고, “씨불놈아! 왜 일요일까지 지랄이야!”하면

47) 이미림, 앞의 책, 183쪽.

48) 김려령, 앞의 책, 19쪽.

(20)

똥주는 “완득이네 엄마 왔다잖아, 이 양반아!”한다. 두 사람의 오고가는 고 성으로 인해 완득이의 일은 이웃 사람들 모두가 다 아는 일이 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요구는 문명화된 삶의 기본 수칙 중 하나이며,49)이 같은 수칙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됨 (humanity을 탄생시키는 행위였다.”50)그러나 인간이 “자신과 타자가 표면 적인 관계를 맺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한, 그들은 인생을 생존경쟁의 장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들이 타자와 내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갖게 될 때, 그들은 삶이 결핍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너그럽 고 관대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며, 공격적이고 경쟁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51)말하자면 타자와의 관 계에서 너그럽고 관대해지려면 ‘타자와 내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똥주’의 행위는 ‘앞집 아저씨’를 ‘내적인 관계로 포섭하기 위한 전략이라 볼 수 있으며, 끊임없이 구체적인 지적을 하는 ’앞집 아저씨‘의 행위 역시 내적 관계로 포섭되기 위한 ’관심‘의 또 다 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관심의 시작은 우리가 전통적인 이웃 개념에서 가졌던 ’사회적 협력관계‘로 나아가는 연대의 추동력이 된다.

가족 같은 유대감으로 뭉쳐진 이웃 간의 연대는 뺷완득이뺸에서는 ‘공동의 식사’로, 뺷이슬람 정육점뺸에서는 ‘소풍’으로 완성된다. 그런데 이들의 ‘식사’

와 ‘소풍’은 괴이하기 짝이 없다.

8) 드디어 삼계탕을 먹기 시작했다. 나와 삼촌과 그분과 아버지는 폐닭에 익 숙했다. 그런데 똥주와 앞집 아저씨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49) Sigmund Preud. Civilzation and its Discontents(1930), James Strachey`s Sandard Edition, 1961. (지그문트 바우만, 앞의 책, 185쪽 재인용)

50) 지그문트 바우만, 앞의 책, 187쪽.

51) Michael F. Zimmerman, Feminism, Deep Ecology, and Environmental Ethics, The Deep Ecology Movement, ed by Alan Dregson & Yunichi Inoue. North Atlantic Books, 1995, p.169. (곽경숙, 앞의 책, 39쪽 재인용)

(21)

“이런 씨불, 뭐야 이거, 이게 고기여 타이어여? 니들, 나 골탕 먹이려고 불 렀지?”

(중략) “아니, 무슨 고기가 씹을수록 더 질겨. 이 고기 정체가 뭐예요?”

“폐닭입니다. 노계요. 씹는 맛도 좋고 씹을수록 고소합니다.”

아버지가 능숙하게 살점을 뚝 떼어내며 말했다.52)

인간에게 음식이란 “선의의 표현이고, 환대의 방식”53)이다. 특히 함께 음 식을 먹는다는 것은 차이를 넘어서고 문화를 공유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다.54)완득이네 이웃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에 마련된 메뉴는 ‘폐닭 삼 계탕’이다.55)그런데 폐닭을 즐기는 ‘문화’는 완득이네 가족만의 음식 문화 다. 앞집 아저씨와 똥주는 ‘욕이 나올 만큼’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지만 끝 까지 그릇을 비우고, “아무리 먹고살기 힘들어도 이딴 닭 먹지”말라며 다음 날 좋은 닭 몇 마리 사주겠다고 한다. 이러한 언행들은 음식을 나눠준 이웃 에 대한 배려임과 동시에, 이웃의 일에 관심을 가져주고, 좋은 것은 나눠주 는 전통적인 이웃의 개념으로서 뿐만 아니라 건전한 이웃으로 거듭나는 일 이다.

문화는 민족과 국가마다 다른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정마다, 심지어 개 인마다 다른 것이기도 하다. 뺷완득이뺸에서의 다문화적 요소는 오늘날 이웃 하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다양한 문화적 요소도 포괄한다는 의미에서, 그리 고 그것이 바람직한 다문화주의로의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

52) 김려령, 앞의 책, 156쪽.

53) 김남석, 앞의 글, 282쪽.

54) “성별과 나이와 취향과 피부색과 사회적 계층이 다른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모였 고, 그들은 차이를 넘어 함께 음식을 먹는 사이가 되었다.” 김남석, 앞의 글, 281쪽.

음식이 갈등 관계에 놓인 공동체의 갈등을 해소하고 그들의 결속을 다지는 데 기여한 다.” 우남희, 앞의 글, 213쪽.

55) “영계가 아닌 폐닭으로 만든 백숙은 현대 도시의 중심에서 벗어나 주변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관계가 시간을 들여야만 쫄깃한 맛을 내는 폐닭처럼 끈끈한 공동 체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상징한다.” - 우남희, 앞의 글, 211쪽.

(22)

미가 크다고 하겠다.

9) 돼지를 잡는 방법에 대해 여러 말들이 오갔다. 누군가는 해머로 쳐서 단번 에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고 누군가는 목을 따야 한다고 했다. 장롱을 오른 쪽 벽에 둘 것인지 왼쪽 벽에 둘 것인지를 의논하는 것처럼 심상한 목소리 들이었다. (중략) 돼지는 목에 칼이 꽂힌 채 괴성을 질렀다. 야모스 아저씨 가 칼 손잡이를 잡고 톱질을 하듯 돼지의 목을 켰다.56)

안나 아주머니의 지휘로 용달차까지 빌려서 소풍을 간 뺷이슬람 정육점뺸 의 이웃들은 살아있는 돼지를 잡아먹는 ‘엽기적인’ 일을 벌이는데, 이 상황 은 구체적인 묘사로 제법 길게 서술되고 있다. 이 작품이 청소년들을 대상 으로 한 성장소설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유쾌하고 ‘바른 생활’을 줄곧 제시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대목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예로부터 명절이나 큰 잔치가 있으면 마을에서 가축을 잡아 이웃끼리 나눠먹는 전통 이 있는 나라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가축을 제물로 바치며 액운 을 떨쳐버리는 의식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살아있 는 돼지를 힘을 합쳐 잡는 행위는 이웃끼리 벌이는 공동의 작업이며, 동시 에 공동의 축제 행위라 볼 수 있다.57)특히 시끌벅적하고 야단스럽게 진행 되는 돼지 도살 장면은 한편으로는 한 판 굿 또는 푸닥거리를 연상케 하기 도 하는데, 이는 살아있는 가축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액운을 막고 복을 기 원하는 한 편의 동제(洞祭)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인물들이 하나같이 몸 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푸닥거리는 서로의 안

56) 손홍규, 앞의 책, 200쪽.

57) 이미림은 이 소설의 소풍장면을 ‘전민중적인 속성을 지닌 카니발적 요소로 본다. “카니 발은 관조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모든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며, 카니발에 참여하 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부활과 갱생이자 세계 전체의 독특한 상황”이라는 바흐친의 카 니발 이론을 접목시키는 해석이다. 뺷이슬람 정육점뺸의 카니발적 성격에 대해서는, 이미 림, 「차이와 생성 그리고 카니발 문학 <이슬람 정육점>」, 한중인문학회 국제학술대회, 201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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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를 공유하고자 하는 긍정적이고 대안적인 공동체 의식에 다름 아니다. 이 는 ‘이웃’이라는 개념에 전제되어 있던 가족 같은 단합과 연대를 다문화적 개념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럼으로써 뺷이 슬람 정육점뺸은 다문화주의의 대안적 모델을 제안하는 데 한 발 더 다가갔 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이란 공동체 안에서 성원권을 가진다는 것을 말한다. 즉 “사람임은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사람과 인간의 다른 점이다.”58)그러나 성원권을 가지기 위해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이방 인은 “존재 규정이 아니라 위치에 따라 상대적으로 주어지는 호칭”59)이라 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결국 사람은 서로에게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는 의미다. 서로의 인정, 즉 이웃이란 곧 ‘우리’가 되는 일에 다름 아니다.

4. 나가는 글

다문화주의의 종말을 선언했던 조너선 색스는 “다문화주의를 넘어서는 길”을 창조해야 할 때라고 하면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고향’을 제안한 바 있다.60)말하자면 이주민을 별장이나 호텔에 온 손님으로 대해서는 안 되고, 그들의 공간을 인정하고 서로 가치 있는 것을 주고받는 동등한 공동 체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는 이주민을 여전히 ‘손님’으로 대 한다. 낯선 곳에서 온 낯선 손님들은 개인의 특성과는 상관없이 국가별 민 족별로 규정된 등급으로 나뉜다. 급변하는 다문화 시대에 발 맞춰 다양한 다문화 정책과 다문화 담론을 수정해 보려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졌고, 또

58) 김현경, 뺷사람, 장소, 환대뺸, 문학과지성사, 2015, 31쪽.

59) 김애령, 「이방인과 환대의 윤리」, 뺷철학과 현상학 연구뺸 39집, 한국현상학회, 2008, 176쪽.

60) 조너선 색스는 다문화 사회의 형태로, ‘시골 별장으로서의 사회’, ‘호텔로서의 사회’, ‘우 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고향으로서의 사회’를 제시하면서 그 중 세 번째 사회가 가장 바람직한 다문화 사회라고 제안하고 있다. - 조너선 색스, 앞의 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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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손님을 대하는 태도다. 다시 말해 손님을 대할 때 무례(無禮)에서 례(禮)의 담론으로 변경하자는 것에 불과한 것이 다. 이는 종종 동정의 담론으로 변질되기조차 한다.

현대 사회에서의 가족이란, ‘가족 구성원 각자의 역할이 고정되지 않고도 나름의 역할들을 수행하면서 가족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는 제1차 사 회 집단’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에 혈연이나 관계 같은 것은 개입될 필요가 없다. 또한 물리적․사회적으로 인접한 것을 일컫던 ‘이웃’은 이제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즉 ‘정서적 인접성’을 가진 공동체로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여기에는 물리적․사회적․문화적 요소가 개입될 이유도 없다. 하 지만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나아갈 길이 멀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가족과 이웃이라는 두 공동체의 개념은 조금씩 그 의미를 달리해왔다. 하지만 그것이 ‘형태’보다는 ‘관계’로의 의미로 변형되 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현대는 빠르고, 종잡을 수 없이 변화하는 시 대다. 우리는 한 소속을 가리키는 말에도 ‘패밀리(Family)’라는 용어를 쓰 며, 소셜네트워크의 발달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이웃’을 ‘추가’하 거나 ‘차단’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가족’과 ‘이웃’의 ‘형태’가 ‘관계’중 심으로 변함과 동시에 그 ‘관계’조차도 해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김려령의 뺷완득이뺸와 손흥규의 뺷이슬람 정육점뺸이 여 타 한국 다문화소설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 주목하여 소설 속에서 구현되고 있는 다문화 사회를 모델로 제시해 보고자 했다. 두 작품 에서 보여주는 다문화 사회에서의 ‘가족’의 개념은 전통적인 것을 완전히 탈피하는 개념으로 재구성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반면, ‘이웃’의 개념은 오 히려 전통 사회의 그것으로 회귀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곧 통합을 의미한다. 다문화시대에 있어 가족은 이웃에 다름 아니며, 이웃은 가족에 다름 아니다. 이제 이웃과 가족의 개념은 더 폭넓은 연대의식으로서의 ‘우 리’를 제안한다. 이것이 바로 다문화사회가 나아가야 할 공동체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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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작품에서 보여주는 가족과 이웃의 창의적인 구성과 역할들이 올바 른 다문화 사회를 위한 대안적 개념으로 작용되길 기대해 본다. 이제 우리 는 다문화 담론을 현대적인 시각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때다. “우리가 완벽 히 다른 존재라면 우리는 소통할 수 없다. 우리가 완벽히 똑같은 존재라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할 말이 남지 않은 것”61)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61) 조너선 색스, 앞의 책,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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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Rediscovery of the Concepts of Family and Neighborhood in the Korean Multicultural Novels

- Focusing on Wandeuki And Islamic butcher shop -

62)Lee, Nam-jung*

Most of the novels for the Korean multi-culture demonstrate the dynamic society with characters from different nation and situation. But they failed to overcome and it led to a tragic ending like an addiction to drug, violation of the law, the murder, and the suicide. So, the precedent studies for multi-culture novel were focused on analyzing their failure’s reason. The examples of these studies focused on the hybridity and borderline, diasporic context, the independent and the otherness. This paper suggests that the precedent researches presumed a failure of the immigrants.

So far, the Korean multi-culture novels concentrated on the immigrant’s tragedy. It displays aspects of the Korean multi-culture society because novels reflect the reality. Most of the novels about multi-culture in Korea are tragedy. But Wandeuki and Islamic butcher shop implies hope, their conclusion is open, and Bildungsroman(coming of age novel). The concepts of Family or Neighborhood look similar to traditional concept. But there is a clear difference between them. It is interesting that the concept of community like the family and neighborhood in two novels seems similar but it is obviously different.

Conclusively, the analysis for concepts like the family and neighborhood can suggest a direction for the multi-culture to settle down great. up.

These cases implies that the family can’t be confined to the married relations.

* changwon University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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